‘취업이 되지 않는 나, 빚쟁이로 사는 나’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청년 운동으로 전환한 용감한 활동가 최유리.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고 청년들을 위로하며 청년의 사회안전망을 위한 씨앗을 심고 있는 대구청년연대은행 디딤 최유리 이사장을 만났다.
Q. 자기소개부터 부탁합니다.
대구청년연대은행 디딤에서 활동하고 있는 최유리입니다. 지역에서 청년 부채 관련된 점들을 사회 문제로 규정하고 이 문제를 청년들이 스스로 보호막을 만드는 것과 사회적으로 어떻게 안전망을 만들 수 있을지 고민하는 일들을 하고 있습니다.
Q. 대구청년연대은행 이전에도 청년에 관한 활동을 하신 걸로 알고 있어요.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요?
저는 고등학교 때 영화동아리를 했었어요. 그래서 촬영 기술도 배워야했는데, 사단법인 청소년교육문화센터 우리세상 이라는 곳에서 동아리를 대상으로 영어나 촬영, 편집 같은 기술을 가르쳐주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두 달 정도를 열심히 배웠는데요, 유독 활발한 제가 튀었나봐요. 한민정 위원장님(정의당 대구광역시당) 이 짜장면을 사주시더라고요.(웃음) 그렇게 우리세상에서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본격적으로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진 계기가 있었나요? 월드컵으로 전국이 시끌벅적할 때 효순이·미선이사건(2002년 미군 여중생 압사 사고)이 있었는데요, 그 때 우리 사회의 모순과 부당함을 느꼈어요. 그래서 관련된 공부와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죠.
Q. 대구청년연대은행 디딤 이전 활동한 대구청년유니온의 시작은 어땠나요?
7~8년 정도 활동을 계속 했어요. 그러면서 학교도 잘 못 가고 집안 사정도 안 좋아서 아르바이트도 많이 했었어요. 학점도 안좋고 휴학도 많이 해서 늦게 졸업했어요. 그러고 나서 구직활동을 하는데 흔히 말하는 서류 광탈을 많이 겪었죠. 그나마 연락 오는 것은 저임금, 장시간 노동하는 곳이었어요.
그 시기 때 대구에서도 청년유니온을 만들자는 이야기가 있었고, 함께 학생 운동하던 선배들과 함께 단체를 만드는 작업을 시작했어요. 그러면서 저와 같은 처지의 청년들을 더 많이 만나게 되고 공감도 얻고 위로도 얻게 되었죠.
그런데 공부를 하다 보니 결국 개인의 문제라기보다는 우리 사회의 시스템과 불안정 노동과 같은 문제들, 그리고 IMF를 지나가면서 일자리가 많이 줄어들고 비정규직이 양성되는 문제가 한창 심화되고 있던 시기더라고요.
Q.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문제라고 생각하게 되신 거네요.
네, 그렇게 대구청년유니온에서 활동을 시작했어요. 우리세상에서 일꾼으로 활동을 할 때 주한미군 철수라든지 그런 문제들이 크게 와 닿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런데 대구청년유니온 준비위원회를 하면서 이게 정말 나의 이야기고, 심각한 문제라는 걸 많이 체감했어요. 이 문제가 해결 되지 않는다면 모든 청년들이 정말 고통 받겠다, 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고 그렇게 2012년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오게 된 것 같아요.
Q. ‘청년부채’에 관한 활동도 직접 느낀 청년 문제에서 시작했나요?
그 전까지는 비상근활동가이거나 활동비 30만원 정도를 받으며 생활했어요. 활동은 계획하며 열심히 했는데 삶에 대한 다른 부분은 신경을 못 썼던 것 같아요. 한국장학재단에서 학자금을 대출했는데 그걸 못 갚았어요. 10년 정도 지났는데, 모른 척 하다 보니 300만원에서 이자를 포함해서 450만원이 되어 있더라고요. 연체 이자가 150만원이 붙었어요.
제가 어디 가서 위원장이라고 다니는데, 통장도 못 만들고 내 명의로 휴대폰 개통도 못하는게 너무 부끄럽더라고요. 그런데 청년 활동을 하면서 만나는 사람들 중에 부채가 있거나 빈곤한 청년들이 굉장히 많더라고요. 결국 이 불안정 노동이 결국은 부채로 연결되니까 그 부분에서 고민을 많이 했어요. 나조차도 부끄럽고 자존감이 많이 낮아지고 또 자괴감까지 들었거든요. 조금 더 많은 청년들을 만나 어떤 사례가 있는지 알아보면서 청년 부채 문제가 정확히 어떤 것인지 파악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Q. 청년 부채 당사자들을 만나는 일부터 시작했군요.
그래서 대구청년유니온에서 일을 하면서 기획을 했고요, 대구시민공익활동지원센터의 용역 사업으로 ‘청년부채새로고침’ 이라는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되요. 청년 당사자 컨퍼런스도 진행하고 실태조사도 진행하고요. 그렇게 청년들을 만나면서 결과적으로는 우리가 빚을 바로 봐야 하는 문제도 있지만 모두 똑같이 불안정 노동으로 이어지는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우리 사회는 결과적으로 금융 사각지대에 있는 청년들은 빚을 질 수 밖에 없고 악성 채무로 이어질 수밖에 없구나 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Q. 그 이후에 ‘청년빚쟁이네트워크’가 만들어진 거군요.
‘청년부채새로고침’ 프로젝트를 계기로 해서 대구청년유니온 위원장 임기가 마감되는 시기여서 ‘청년빚쟁이네트워크’라는 단체를 만들었어요. 청년 부채 문제를 공론화 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서울이나 타 지역에서는 청년 의제를 가지로 목소리를 내는 단체들이 많았어요. 부채, 주거, 노동 문제에 있어서 모여서 네트워크를 만들고 스피커가 되거나 청년정책네트워크 같은 제도들이 많이 만들어진 상황이었거든요. 그래서 저도 지역에서 청년 부채라는 의제를 확장하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죠.그런데 이슈파이팅을 하며 활동을 했던 대구청년유니온과는 방향이 조금 달랐어요. 부채 문제라는 건 결국 노동 문제와는 달랐어요. 노동은 노동법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기준으로 해결하면 되지만 부채는 개인의 문제라서 청년들을 밖으로 끌어내기도 힘들고 이슈 파이팅만으로는 부족한 부분이 많이 생겼어요. 특히 고민이었던 것은 청년들이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었죠.
Q. ‘대구청년연대은행 디딤’도 많은 고민들로부터 출발했네요.
직접적으로 이 빚을 함께 해결하지 않으면 진전이 없겠구나. 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서울의 청년연대은행토닥 이라는 자조금융 모델을 적용했고요, 대구의 지역성으로 변형해서 대구청년연대은행 디딤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디딤을 처음 만들었을 때 처음 고민했던 것은 청년들의 생활비 문제였어요. 주거비나 교육비는 그나마 정책들이 있어서 저리 대출이 가능했지만 생활비는 정책도 없고, 결국 고금리로 대출을 해야 했거든요. 그래서 청년들이 2·3금융권에서 대출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대출도 시작했어요. 신용도라는 기준으로 하게 되면 기존 은행과 차별점이 없으니 관계를 기반으로 한 관계 신용도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죠.
Q. 관계신용도를 조금 더 소개해주세요.
디딤의 모임에 나오거나 교육에 참여하면 ‘디딤돌’이라고 하는 관계신용도를 쌓게 되요. 이렇게 디딤돌을 쌓고 대출도 하고, 대출 한도도 높아지는 모델이에요. 처음에는 이게 될까? 하는 의심도 있었는데 1~2년 정도는 그 실험을 계속 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대출 상환도 잘 되고, 그 과정에서 부채 상담도 하면서 잘 진행되었죠.
디딤은 200만원이 대출 한도거든요. 그런데 200만원으로는 사실 청년의 어떤 상황도 다 해결할 수 없어요. 그래서 저희가 상담을 하면서 채무 조정을 하거나 대출로 연결해줘야 하거든요. 그런데 그 방법이 너무 제한적이고 방법도 어려워요.
Q. 그래서 금융안정망을 만드는 제도나 정책에 대해서도 고민하시는군요.
정책 제안도 많이 하고, 주민참여예산제에도 참여했어요. 지금은 선정되고 진행이 1년 정도 진행됐고요, 여전히 실태조사 사업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어요. 이렇게 확장되는 단계도 있었지만 코로나 때문에 불법 금융이 엄청 많았던 시기가 있었는데요. 여러 가지 대출 상품들도 나오고 투자 열풍도 불던 상황이어서 청년들이 자기 스스로 금융에 대한 분별력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책도 만들고 유투브 채널도 개설했어요.
올해는 ‘부채금융클리닉’이라는 사업을 하고 있어요. 악성 채무가 있거나 금융 불법 피해를 당한 청년을 대상으로 해서 간담회를 열고 F. G. I.형식으로 인터뷰를 진행해서 전문가와 연결하고 해결책을 마련해 주는 사업이에요. 그리고 부채상담소도 진행하면서 벼락에 몰리는 청년들이 도움이 될 수 있는 제도들을 알고 디딤과 연결이 되는 지점을 만들려고 하고요.
Q. 자조금융모델을 운영하면서 어려운 일은 없나요?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너무 힘들다’라는 청년들의 전화가 오지만 대출 과정에 대해 설명하면 결국 다시 전화가 안와요. 내가 지금 너무 급하고 힘든데 어떻게 기다리겠어요? 지금 5년 정도 운영을 해 왔는데 정말 급한 채무, 악성 채무에 시달리는 청년들이 디딤까지 접근하기가 너무 많은 시간이 걸려요. 디딤에서 대출을 하려면 가입도 해야 하고 디딤돌도 쌓아야하는 문턱이 있어요. 그리고 조합비로 운영이 되고요.
지속가능성을 만들기 위한 고민들을 많이 하고 있어요. 다른 관계금융이나 대안조직의 모델을 보면 모법인이 있어요. 기독교나 사회적경제협의회 같은 모법인이 기금을 마련하고요. 재단이나 규모가 있는 단체가 기금을 만들어서 대출해 주는 시스템을 많이 만들었으면 좋겠어요. 서로 연대하고, 비영리단체의 직원 복지이기도 하고요.
규모를 조금 확장하기 위해서 지원사업에도 많이 신청하는데, 자조금융·대출이라는 형태가 잘 받아들여지지는 않는 것 같아요. 펀딩도 준비하고 있고요. 정말 금융 상담도 해주는 카페를 만들어야 하나, 라는 고민까지 하고 있어요. 수익사업에 대한 고민이 가장 많아요. 롤모델이 없어서 상상이 잘 되지 않는 한계에 부딪힌 것 같아요.
Q. 상환을 못하시는 분들도 있나요?
저희도 놀랄 만큼 대출 상환율이 높아요. 그래도 아주 적은 수로 대출 상환을 못하시는 분이 있긴 하죠. 대출을 진행할 때 상담사가 상담을 진행하는데, 상환계획서를 함께 작성해요. 언제부터 갚을 수 있을지, 매월 금액은 얼마로 할 건지 등에 대해서 자세하게 계획하고 작성하죠. 그리고 내가 6개월 안에 취업해서 상환하겠다고 계획했지만 취업이 안될 수도 있잖아요. 그런 부분들은 다시 상담하면서 대출을 연기하고 상환계획서를 다시 작성해요. 자조금융모델을 설계하면서 리스크를 예상했기 때문에 괜찮아요. 그래도 그 분들이 다시 디딤을 찾아주시고 고민을 함께 나누면 좋겠다는 아쉬움이 있긴 해요. 이 부분들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어요.
Q. 엄청 많은 미래를 그리면서 고민이 많으신데요,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배터리가 있으면 충전이 되어야 하는데 활동이라는 건 충전이 안 되는 것 같아요. 그래도 저는 0%가 될 때까지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요. 그리고 디딤에서 함께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어서 못 그만둘 것 같아요. 디딤을 좋아하고,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고, 함께 만들어가는 사람들이 있으니까요.
최근 다음세대재단의 비영리스타트업 사업을 진행했었는데 많은 도움을 받았어요. 엄청 힘들었어요.(웃음) 그런데 프로젝트에 관한 내용이 아니라 우리 조직의 미션과 비전을 찾아보고 어떤 방향성을 만들어 가야할지 고민하는 과정이 많았거든요. 함께 일하는 구성원들의 디딤에 대한 고민이 다 다르더라고요. 우리 조직의 비전에 대한 정리를 많이 하게 된 좋은 계기였어요. 결론적으로 정리는 됐지만 해결 방안은 아직 못 찾았으니까 그걸 찾아가야겠죠.
Q. 청년 당사자로서 청년 운동을 하고 있는데, 이후에는 새로운 전환을 하실 건가요?
정말 오래 열심히 활동을 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그만두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제가 한 만큼의 결과는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것 같아요. 청년 운동이라는 것도 세대별로 나눠져서 선배가 없거든요. 그런데 광주 지역에 있는 활동가분들과 교류를 하는데 40대 분들이 청년 운동을 하며 선배로서의 조언을 해주시더라고요. 정말 부럽고 좋은 점이라고 생각했었어요. 문제를 느끼는 그 당사자가 해결해야 한다는 당사자성이 중요하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어요. 그런데 제가 점점 잃어가고 있거든요. 빚도 다 갚았어요. 그래도 아직 완성되지 않은 이 활동에서 시행착오를 겪지 않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내가 해야겠다는 생각을 해요.
다른 일을 하는 내 모습을 상상해 본 적 있나요?
제가 지금 고양이 세 마리를 키우고 있어요. 모두 길냥이들이었거든요. 동물에 대한 감수성이 뛰어난 편이라, TV 동물농장 프로그램을 보면서 울곤 해요. 지구에 같이 살고 있는 생명체들, 동반자라고 생각하는 인식과 같은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은 생각을 해요. 함께 사는 고양이들이 에너지도 주고, 영향을 많이 주죠. 너무 예뻐서 자랑하고 싶은 마음에 유투브를 해볼까라는 고민도 했어요.
Q. 마지막으로 인터뷰를 읽는 분들에게 전해줄 이야기가 있다면요?
곧 1년 안으로 펀딩을 시작하려고 해요. 청년들의 경제 상황은 더 나빠지고 있거든요. 코로나 이후 대출, 주식 투자 등의 문제와 최근 금리가 높아지면서 주거비용에 대한 대출 등의 문제가 대두 되고 있고요. 그리고 물가도 높아지면서 생활고에 더 허덕이고 있어요. 월급 빼고 다 오른다는 말이 있잖아요. 청년들의 소득에 비해 모든 물가가 올라서 생활비 대출도 엄청 많아졌어요. 최근 실태조사에는 채무자 10명 중에 4명이 2·3금융권에서 대출을 했고요. 그래서 생활비 대출에 대한 요구가 많아졌어요.
저희가 여태까지 실험했던 이 관계 금융이라는 건 결과적으로 좋은 시스템이고 연대를 통한 회복으로 청년들에게 다가갈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을 했었죠. 그런데 대출 규모나 청년을 만날 수 있는 것에 대한 한계가 분명하더라고요. 대구청년연대은행의 시즌2, 그리고 청년들을 위한 펀딩에 많은 분들이 함께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공익활동가주간 #대구 #길민준 #최유리
글쓴이 : 길민준
좋은 변화를 만드는 사람을 만나고 그들을 조명하는 활동을 합니다. 좋은 사람들이 좋은 사회를 만든다고 믿는 인터뷰어 길민준입니다
2024공익활동가주간을 맞아 다양한 지역과 분야에서 자기만의 방식으로 변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활동가들을 만나 이들의 일과 삶에 대한 이야기를 기록하는 활동가인터뷰 공모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인터뷰 공모에는 여러 지역의 활동가들이 참여해주셨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공익활동가사회적협동조합 동행>, <한국시민사회지원조직네트워크>, <지리산이음>이 공동주최하고, <아름다운재단>이 지원했습니다. |
‘취업이 되지 않는 나, 빚쟁이로 사는 나’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청년 운동으로 전환한 용감한 활동가 최유리.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고 청년들을 위로하며 청년의 사회안전망을 위한 씨앗을 심고 있는 대구청년연대은행 디딤 최유리 이사장을 만났다.
Q. 자기소개부터 부탁합니다.
대구청년연대은행 디딤에서 활동하고 있는 최유리입니다. 지역에서 청년 부채 관련된 점들을 사회 문제로 규정하고 이 문제를 청년들이 스스로 보호막을 만드는 것과 사회적으로 어떻게 안전망을 만들 수 있을지 고민하는 일들을 하고 있습니다.
Q. 대구청년연대은행 이전에도 청년에 관한 활동을 하신 걸로 알고 있어요.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요?
저는 고등학교 때 영화동아리를 했었어요. 그래서 촬영 기술도 배워야했는데, 사단법인 청소년교육문화센터 우리세상 이라는 곳에서 동아리를 대상으로 영어나 촬영, 편집 같은 기술을 가르쳐주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두 달 정도를 열심히 배웠는데요, 유독 활발한 제가 튀었나봐요. 한민정 위원장님(정의당 대구광역시당) 이 짜장면을 사주시더라고요.(웃음) 그렇게 우리세상에서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본격적으로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진 계기가 있었나요? 월드컵으로 전국이 시끌벅적할 때 효순이·미선이사건(2002년 미군 여중생 압사 사고)이 있었는데요, 그 때 우리 사회의 모순과 부당함을 느꼈어요. 그래서 관련된 공부와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죠.
Q. 대구청년연대은행 디딤 이전 활동한 대구청년유니온의 시작은 어땠나요?
7~8년 정도 활동을 계속 했어요. 그러면서 학교도 잘 못 가고 집안 사정도 안 좋아서 아르바이트도 많이 했었어요. 학점도 안좋고 휴학도 많이 해서 늦게 졸업했어요. 그러고 나서 구직활동을 하는데 흔히 말하는 서류 광탈을 많이 겪었죠. 그나마 연락 오는 것은 저임금, 장시간 노동하는 곳이었어요.
그 시기 때 대구에서도 청년유니온을 만들자는 이야기가 있었고, 함께 학생 운동하던 선배들과 함께 단체를 만드는 작업을 시작했어요. 그러면서 저와 같은 처지의 청년들을 더 많이 만나게 되고 공감도 얻고 위로도 얻게 되었죠.
그런데 공부를 하다 보니 결국 개인의 문제라기보다는 우리 사회의 시스템과 불안정 노동과 같은 문제들, 그리고 IMF를 지나가면서 일자리가 많이 줄어들고 비정규직이 양성되는 문제가 한창 심화되고 있던 시기더라고요.
Q.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문제라고 생각하게 되신 거네요.
네, 그렇게 대구청년유니온에서 활동을 시작했어요. 우리세상에서 일꾼으로 활동을 할 때 주한미군 철수라든지 그런 문제들이 크게 와 닿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런데 대구청년유니온 준비위원회를 하면서 이게 정말 나의 이야기고, 심각한 문제라는 걸 많이 체감했어요. 이 문제가 해결 되지 않는다면 모든 청년들이 정말 고통 받겠다, 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고 그렇게 2012년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오게 된 것 같아요.
Q. ‘청년부채’에 관한 활동도 직접 느낀 청년 문제에서 시작했나요?
그 전까지는 비상근활동가이거나 활동비 30만원 정도를 받으며 생활했어요. 활동은 계획하며 열심히 했는데 삶에 대한 다른 부분은 신경을 못 썼던 것 같아요. 한국장학재단에서 학자금을 대출했는데 그걸 못 갚았어요. 10년 정도 지났는데, 모른 척 하다 보니 300만원에서 이자를 포함해서 450만원이 되어 있더라고요. 연체 이자가 150만원이 붙었어요.
제가 어디 가서 위원장이라고 다니는데, 통장도 못 만들고 내 명의로 휴대폰 개통도 못하는게 너무 부끄럽더라고요. 그런데 청년 활동을 하면서 만나는 사람들 중에 부채가 있거나 빈곤한 청년들이 굉장히 많더라고요. 결국 이 불안정 노동이 결국은 부채로 연결되니까 그 부분에서 고민을 많이 했어요. 나조차도 부끄럽고 자존감이 많이 낮아지고 또 자괴감까지 들었거든요. 조금 더 많은 청년들을 만나 어떤 사례가 있는지 알아보면서 청년 부채 문제가 정확히 어떤 것인지 파악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Q. 청년 부채 당사자들을 만나는 일부터 시작했군요.
그래서 대구청년유니온에서 일을 하면서 기획을 했고요, 대구시민공익활동지원센터의 용역 사업으로 ‘청년부채새로고침’ 이라는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되요. 청년 당사자 컨퍼런스도 진행하고 실태조사도 진행하고요. 그렇게 청년들을 만나면서 결과적으로는 우리가 빚을 바로 봐야 하는 문제도 있지만 모두 똑같이 불안정 노동으로 이어지는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우리 사회는 결과적으로 금융 사각지대에 있는 청년들은 빚을 질 수 밖에 없고 악성 채무로 이어질 수밖에 없구나 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Q. 그 이후에 ‘청년빚쟁이네트워크’가 만들어진 거군요.
‘청년부채새로고침’ 프로젝트를 계기로 해서 대구청년유니온 위원장 임기가 마감되는 시기여서 ‘청년빚쟁이네트워크’라는 단체를 만들었어요. 청년 부채 문제를 공론화 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서울이나 타 지역에서는 청년 의제를 가지로 목소리를 내는 단체들이 많았어요. 부채, 주거, 노동 문제에 있어서 모여서 네트워크를 만들고 스피커가 되거나 청년정책네트워크 같은 제도들이 많이 만들어진 상황이었거든요. 그래서 저도 지역에서 청년 부채라는 의제를 확장하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죠.그런데 이슈파이팅을 하며 활동을 했던 대구청년유니온과는 방향이 조금 달랐어요. 부채 문제라는 건 결국 노동 문제와는 달랐어요. 노동은 노동법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기준으로 해결하면 되지만 부채는 개인의 문제라서 청년들을 밖으로 끌어내기도 힘들고 이슈 파이팅만으로는 부족한 부분이 많이 생겼어요. 특히 고민이었던 것은 청년들이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었죠.
Q. ‘대구청년연대은행 디딤’도 많은 고민들로부터 출발했네요.
직접적으로 이 빚을 함께 해결하지 않으면 진전이 없겠구나. 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서울의 청년연대은행토닥 이라는 자조금융 모델을 적용했고요, 대구의 지역성으로 변형해서 대구청년연대은행 디딤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디딤을 처음 만들었을 때 처음 고민했던 것은 청년들의 생활비 문제였어요. 주거비나 교육비는 그나마 정책들이 있어서 저리 대출이 가능했지만 생활비는 정책도 없고, 결국 고금리로 대출을 해야 했거든요. 그래서 청년들이 2·3금융권에서 대출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대출도 시작했어요. 신용도라는 기준으로 하게 되면 기존 은행과 차별점이 없으니 관계를 기반으로 한 관계 신용도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죠.
Q. 관계신용도를 조금 더 소개해주세요.
디딤의 모임에 나오거나 교육에 참여하면 ‘디딤돌’이라고 하는 관계신용도를 쌓게 되요. 이렇게 디딤돌을 쌓고 대출도 하고, 대출 한도도 높아지는 모델이에요. 처음에는 이게 될까? 하는 의심도 있었는데 1~2년 정도는 그 실험을 계속 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대출 상환도 잘 되고, 그 과정에서 부채 상담도 하면서 잘 진행되었죠.
디딤은 200만원이 대출 한도거든요. 그런데 200만원으로는 사실 청년의 어떤 상황도 다 해결할 수 없어요. 그래서 저희가 상담을 하면서 채무 조정을 하거나 대출로 연결해줘야 하거든요. 그런데 그 방법이 너무 제한적이고 방법도 어려워요.
Q. 그래서 금융안정망을 만드는 제도나 정책에 대해서도 고민하시는군요.
정책 제안도 많이 하고, 주민참여예산제에도 참여했어요. 지금은 선정되고 진행이 1년 정도 진행됐고요, 여전히 실태조사 사업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어요. 이렇게 확장되는 단계도 있었지만 코로나 때문에 불법 금융이 엄청 많았던 시기가 있었는데요. 여러 가지 대출 상품들도 나오고 투자 열풍도 불던 상황이어서 청년들이 자기 스스로 금융에 대한 분별력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책도 만들고 유투브 채널도 개설했어요.
올해는 ‘부채금융클리닉’이라는 사업을 하고 있어요. 악성 채무가 있거나 금융 불법 피해를 당한 청년을 대상으로 해서 간담회를 열고 F. G. I.형식으로 인터뷰를 진행해서 전문가와 연결하고 해결책을 마련해 주는 사업이에요. 그리고 부채상담소도 진행하면서 벼락에 몰리는 청년들이 도움이 될 수 있는 제도들을 알고 디딤과 연결이 되는 지점을 만들려고 하고요.
Q. 자조금융모델을 운영하면서 어려운 일은 없나요?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너무 힘들다’라는 청년들의 전화가 오지만 대출 과정에 대해 설명하면 결국 다시 전화가 안와요. 내가 지금 너무 급하고 힘든데 어떻게 기다리겠어요? 지금 5년 정도 운영을 해 왔는데 정말 급한 채무, 악성 채무에 시달리는 청년들이 디딤까지 접근하기가 너무 많은 시간이 걸려요. 디딤에서 대출을 하려면 가입도 해야 하고 디딤돌도 쌓아야하는 문턱이 있어요. 그리고 조합비로 운영이 되고요.
지속가능성을 만들기 위한 고민들을 많이 하고 있어요. 다른 관계금융이나 대안조직의 모델을 보면 모법인이 있어요. 기독교나 사회적경제협의회 같은 모법인이 기금을 마련하고요. 재단이나 규모가 있는 단체가 기금을 만들어서 대출해 주는 시스템을 많이 만들었으면 좋겠어요. 서로 연대하고, 비영리단체의 직원 복지이기도 하고요.
규모를 조금 확장하기 위해서 지원사업에도 많이 신청하는데, 자조금융·대출이라는 형태가 잘 받아들여지지는 않는 것 같아요. 펀딩도 준비하고 있고요. 정말 금융 상담도 해주는 카페를 만들어야 하나, 라는 고민까지 하고 있어요. 수익사업에 대한 고민이 가장 많아요. 롤모델이 없어서 상상이 잘 되지 않는 한계에 부딪힌 것 같아요.
Q. 상환을 못하시는 분들도 있나요?
저희도 놀랄 만큼 대출 상환율이 높아요. 그래도 아주 적은 수로 대출 상환을 못하시는 분이 있긴 하죠. 대출을 진행할 때 상담사가 상담을 진행하는데, 상환계획서를 함께 작성해요. 언제부터 갚을 수 있을지, 매월 금액은 얼마로 할 건지 등에 대해서 자세하게 계획하고 작성하죠. 그리고 내가 6개월 안에 취업해서 상환하겠다고 계획했지만 취업이 안될 수도 있잖아요. 그런 부분들은 다시 상담하면서 대출을 연기하고 상환계획서를 다시 작성해요. 자조금융모델을 설계하면서 리스크를 예상했기 때문에 괜찮아요. 그래도 그 분들이 다시 디딤을 찾아주시고 고민을 함께 나누면 좋겠다는 아쉬움이 있긴 해요. 이 부분들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어요.
Q. 엄청 많은 미래를 그리면서 고민이 많으신데요,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배터리가 있으면 충전이 되어야 하는데 활동이라는 건 충전이 안 되는 것 같아요. 그래도 저는 0%가 될 때까지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요. 그리고 디딤에서 함께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어서 못 그만둘 것 같아요. 디딤을 좋아하고,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고, 함께 만들어가는 사람들이 있으니까요.
최근 다음세대재단의 비영리스타트업 사업을 진행했었는데 많은 도움을 받았어요. 엄청 힘들었어요.(웃음) 그런데 프로젝트에 관한 내용이 아니라 우리 조직의 미션과 비전을 찾아보고 어떤 방향성을 만들어 가야할지 고민하는 과정이 많았거든요. 함께 일하는 구성원들의 디딤에 대한 고민이 다 다르더라고요. 우리 조직의 비전에 대한 정리를 많이 하게 된 좋은 계기였어요. 결론적으로 정리는 됐지만 해결 방안은 아직 못 찾았으니까 그걸 찾아가야겠죠.
Q. 청년 당사자로서 청년 운동을 하고 있는데, 이후에는 새로운 전환을 하실 건가요?
정말 오래 열심히 활동을 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그만두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제가 한 만큼의 결과는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것 같아요. 청년 운동이라는 것도 세대별로 나눠져서 선배가 없거든요. 그런데 광주 지역에 있는 활동가분들과 교류를 하는데 40대 분들이 청년 운동을 하며 선배로서의 조언을 해주시더라고요. 정말 부럽고 좋은 점이라고 생각했었어요. 문제를 느끼는 그 당사자가 해결해야 한다는 당사자성이 중요하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어요. 그런데 제가 점점 잃어가고 있거든요. 빚도 다 갚았어요. 그래도 아직 완성되지 않은 이 활동에서 시행착오를 겪지 않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내가 해야겠다는 생각을 해요.
다른 일을 하는 내 모습을 상상해 본 적 있나요?
제가 지금 고양이 세 마리를 키우고 있어요. 모두 길냥이들이었거든요. 동물에 대한 감수성이 뛰어난 편이라, TV 동물농장 프로그램을 보면서 울곤 해요. 지구에 같이 살고 있는 생명체들, 동반자라고 생각하는 인식과 같은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은 생각을 해요. 함께 사는 고양이들이 에너지도 주고, 영향을 많이 주죠. 너무 예뻐서 자랑하고 싶은 마음에 유투브를 해볼까라는 고민도 했어요.
Q. 마지막으로 인터뷰를 읽는 분들에게 전해줄 이야기가 있다면요?
곧 1년 안으로 펀딩을 시작하려고 해요. 청년들의 경제 상황은 더 나빠지고 있거든요. 코로나 이후 대출, 주식 투자 등의 문제와 최근 금리가 높아지면서 주거비용에 대한 대출 등의 문제가 대두 되고 있고요. 그리고 물가도 높아지면서 생활고에 더 허덕이고 있어요. 월급 빼고 다 오른다는 말이 있잖아요. 청년들의 소득에 비해 모든 물가가 올라서 생활비 대출도 엄청 많아졌어요. 최근 실태조사에는 채무자 10명 중에 4명이 2·3금융권에서 대출을 했고요. 그래서 생활비 대출에 대한 요구가 많아졌어요.
저희가 여태까지 실험했던 이 관계 금융이라는 건 결과적으로 좋은 시스템이고 연대를 통한 회복으로 청년들에게 다가갈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을 했었죠. 그런데 대출 규모나 청년을 만날 수 있는 것에 대한 한계가 분명하더라고요. 대구청년연대은행의 시즌2, 그리고 청년들을 위한 펀딩에 많은 분들이 함께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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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길민준
좋은 변화를 만드는 사람을 만나고 그들을 조명하는 활동을 합니다. 좋은 사람들이 좋은 사회를 만든다고 믿는 인터뷰어 길민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