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인터뷰] ‘기획하는 활동가’ 공공활동기획자를 꿈꾸는 왕꽃, 김지현

그녀를 처음 만난 건 지금부터 11년 전이다. 아무런 연고도 없는 지역에서 5개월 남짓 진행되는 교육과정을 핑계로 무작정 내려갔고, 고시원에서 머물며 교육하는 날을 제외하면 이 동네 저 동네로 다니던 시절이었다. 그 곳은 교과서 속에서만 알던 5·18의 도시, 광주였다. 광주를 들여다보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시간이 나면 틈틈이 광주 곳곳을 돌아다녔고, 광주를 방문한 외국인들이 광주에 대해 잘 알고 돌아갈 수 있길 바라는 마음으로 작은 프로젝트도 진행했었다. 어떤 한 지역을 깊이 알고자 하는 마음으로 머물렀던 적은 그 전에도 그 이후에도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광주는 늘 내게 애틋한 곳이다.

그녀는 내가 참여했던 교육과정을 주관하는 단체에서 일하고 있던 실무자였다. 지금은 단체를 나와 작은 변화를 추동하는 것들에 즐거움을 느끼며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개인활동가이다. 우리는 교육 담당자와 참가자로 만난 사이였고, 그 이후로는 페이스북 친구라는 것 말고는 특별한 인연이 이어지지는 못하고 있었다. 그로부터 한참 뒤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 마을활동을 지원하는 일을 시작하면서, 우리에게 조금씩 공통점이 생기기 시작했다. 우리는 둘 다 녹색당원이었고, 젠더나 환경문제, 사회이슈 등 관심사가 비슷했으며, 활동가라는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가지고 있었다. 글로만 접하는 서로의 생각과 일상이지만 나는 늘 그녀와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온전히 그녀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을 갖고 싶다는 생각은 늘상 했지만 서울과 광주, 겹치기 쉽지 않은 동선이라 생각으로 그칠 뿐이었다. 활동가 인터뷰는 그런 내게 그녀에게 한달음에 달려갈 수 있는 부스터가 되어주었다.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해요. 이 인터뷰 기획을 본 순간 지현쌤이 가장 먼저 생각났어요. 히히.

신기하다. 흐흐. 활동가 인터뷰에 올라오는 내용을 보면, 어쨌든 다 선명한 활동가들이던데.. 그래서 나에 대해 쓸 이야기가 있을까..? 싶어요.


아무렴요. 스스로를 활동가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던 건 언제였어요?

처음엔 자원활동으로 시작했고요. 관계가 있는 단체에서 일을 더 이어가보자-라는 생각으로 입사했어요. 처음 일했을 때는 시민단체에 대한 개념도 별로 없었고, 활동을 어떻게 해야한다는 건 없었어요. 연차가 낮았을 때는 프로젝트 베이스로 보게 되더라고요. 스스로를 일을 하는 실무자 정도로 여겼는데. 점점 연차도 올라가고 시야도 좀 달라지면서 조직이 어떻게 운영이 되어야하나 하는 고민을 하게 되고, 다른 단체와 연대하면서 국제교류단체가 어떻게 활동성을 계속 지닐 수 있을까도 고민하게 되었어요.

저는 활동가란 자기가 꿈꾸고 있는 이슈나 조직이 갖고 있는 이슈로 사회의 긍정적인 변화를 만들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단순히 직장인 또는 실무자였다기 보다 자기 활동성을 가지고 있지 않았나 싶어요. 제가 의미지향적인 사람인 것 같긴 해요. 제가 활동을 계속 해올 수 있었던 건 제가 하는 일에서 가치를 발견하는 것을 좋아했던 것 같아요. 억지로 의미부여하던 때도 있었어요. 예를 들어, 기념품을 만드는 것이 조직에 수익을 내서 조직을 지속할 수 있게 한다면 나한테 그런 의미로 다가오면 그런 일도 할 수 있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그 일의 가치나 의미가 흔들렸을 때 이 일을 계속 하기 힘들더라구요. 조직의 미션이나 비전은 흐려지고 조직이 계속 존재하기 위해, 끊임없이 일을 하는 느낌 있잖아요. 그런 생각이 들 때 힘들었어요.

조직에 있을 당시에는 제가 오만했던 거 같아요. 내가 열심히 하면 바꿔낼 수 있지 않을까? 했는데 그건 함께 만들어가야 하는 거 잖아요. 근데 함께 변화를 만들어 가는 게 어려웠었어요. 그 뒤로는 개별적인 활동을 많이 했던 거 같아요. 아프기도 아팠고. 많이 아파서 퇴사를 하고 여행도 다니고. 그렇게 조직을 떠나고 난 후 더 관심 가는 것은 대부분 뭔가 의미 있는 일이었던 거 같고, 그 일들에서 계속 확장되고 있어요. 오월안부프로젝트도 그렇고 까페라떼클럽도 그렇고.


** 멈춤의 시간, 회복의 시간을 가졌던 라오에서 라오스 푸딘댕 청소년센터 직원들과 함께. 2015


지금 지현쌤이 가장 많이 활동하고 있는 오월안부프로젝트나 까페라떼클럽? 그 이야기도 좀 자세히 해주세요.

엽서를 통해 80년 오월을 기억하고자 하는 오월안부프로젝트 경우에는 변화보다는 개인적인 관심에서 시작하게 되었어요. 엽서를 원래 좋아했고요. 오월의 이야기를 엽서에 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게... 광주의 거리를 걷다보니깐 생각보다 오월의 시간이 안 보이는 거예요.


그런 생각을 언제 처음 했어요?

한 4년 전...? 2016년에 그런 화두가 왔어요. 이매진피스 임영진 선생님과 피스모모랑 이야기를 하면서 장소가 갖는 시간성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어요. 오월이라는 역사적인 시간을 겪어낸 장소들이 그렇게 그냥 지워지고 새로운 공간이 되는 게 맞는 건가 하는 고민을 했어요. 역사적인 공간이 재해석 되어서 건물이 새로 바뀌었을 때 그 시간이, 물론 의도 했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데, 보이지 않는 거예요. 그러다보면 그 공간이 갖고 있던 시간의 중요성이 사라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다가 어느 날 사실은 여기 있는 모든 공간이 다 그 때 그 시간의 증인이자 목격자이지 않았을까..? 금남로도, 건물들도, 식재되어있던 나무들 조차도. 사람으로 치환할 수는 없겠지만 어떻게든 이 공간이 그 때를 함께 겪었겠구나-하는 상상이 되니까 그 시간을 지켜본 공간이나 존재들을 스토리텔링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오늘 주려고 갖고 왔어요. (제작한 엽서를 꺼내며..) 이건 그 때 함께 만들었던 명함. (고민하고 엮는 김지현이라고 적혀 있다.) 기획이라는 말보다는 고민을 엮어내고 싶어서 첫 명함에는 고민과 엮음이라고 썼는데 사람들이 출판사인줄 알고..


(둘이 동시에 웃으며) 고민과 엮음 출판사 ㅎㅎ

그래서 이렇게 수식어처럼 기획이라는 말 대신 다른 것을 하고 싶어서..


그녀가 하고 있는 자세한 활동 이야기는 아래 링크를 참고해주세요.

#오월안부프로젝트 https://bit.ly/maygreetings
 #까페라떼클럽
 https://www.instagram.com/cafe_latte_club/

** 오월안부프로젝트 엽서 (그림-윤연우, 사진-김향득)


오월을 기억하는 방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고, 반드시 해야 될 일도 너무 많죠. 진상규명도 있고, 책임자 처벌도 있고. ‘내가 할 수 있는 건 무얼까?’ 생각해봤어요. 광주에 있는 사람이나 광주를 찾은 사람들이 엽서를 쓰고 자연스럽게 그 엽서를 받는 사람들이 엽서에 쓰인 오월 이야기를 한번 읽어 보잖아요. 그렇게 나마 광주라는 도시나 5월을 다시 한 번 상기하게 하고 싶다. 거칠게 기억하라는 것보다, 당위로 무조건 기억해야 해! 하는 것 보다, 이 편지가 온 광주에서는 이런 장소가 있음을 같이 나누고 싶고요. 한편으로는 지금은 엽서를 쓰지 않는 시대잖아요. 

엽서를 쓰던 시대의 감각을 주고 싶었어요. 머뭇거리기도 하고 누구한테 쓸지 고민도 하고 쉽게 지워버리지도 못하는.. 그런 걸 작게나마 조금씩 함께 하는 경험을 하는 것? 광주정신 할 때 공동체 이야기도 많이 하잖아요. 주먹밥 만들어 서로 나눠주고. 약탈도 없었고. 공동체 정신을 지금 구현한다면 그게 뭘까. 서로를 같이 챙기는 게 아닐까, 어떻게 지내는지 묻는 거 아닐까 하는 생각에 이 작업들을 시작을 했어요. 


비용은 어떻게 충당하신 거예요?

처음에는 관련 기관이나 단체에 제안하고 인쇄비나 발송비 같은 걸 지원받아서 작업을 2년 동안 했어요. 3년 차에는 기획사업 비용으로 쓸 수가 없어서 공모사업으로 지원해서 진행했는데, 맘고생을 많이 해서 올해는 안 해야겠다 했는데 또 하게 됐어요. 추가로 더 필요한 엽서 인쇄 등은 자비로 진행하기도 하고요. 사실 이 일을 숫자로 보면 마이너스예요. 빠듯한 예산으로 진행하니 버겁기도 하고요. 초기엔 광주 곳곳에 엽서를 두고 싶어서 엽서 배달을 하고, 수거하고 하다보면 교통비도 꽤 나와요. 차량으로 지원해주시거나 발송작업을 도와주는 손길도 많지만, 아무래도 비용 외에도 시간과 품을 많이 들이는 작업이에요. 그런데 이 작업에 대한 존중이 없는 소리를 들으면 힘이 빠지기도 해요. 

그러다보니 계속 고민이 되는 거예요. 나는 조직에 소속되어 있지도 않고 내가 멈추면 멈춰지는 구조가 부담스럽기도 하고요. 경제적으로 돌파하려면 조직이나 단체를 만들어야 하나 싶고, 내가 돈이 많지 않으면 가끔 불가능한 것처럼 느껴지는 거예요. 개인 사비로 인쇄를 하면서도 이렇게 하는 게 맞는 건가 싶고요. 일이 확장될 때는 재미를 느끼는데, 그게 바로 생활에 영향을 주니 이건 아닌데 싶은거죠.

뭔가 재밌는 활동이나 공익적인 활동을 하려는 사람 자체를 지원하면 안 되나.. 프로젝트를 지원하는 게 아니라. 또는 엄청나게 이미 대단한 사람들 지원하는 거 말고요. 이 사람이 어떻게 고민을 확장하고 있는지 지켜봐주고 지지하는 그런 지원이요. 그래서 활동가에게는 마치 숨통이 트이는 금액의 지원 같은 거요. 주변에서는 농담반 진담반으로 후원계좌라도 열라는 말도 하는데...

한 출판사와 함께 온라인서점에서 5·18 관련 도서 구매자에게 사은품 형태로 오월엽서를 보내주는 이벤트를 했는데요. 좀 더 다양한 이들에게 오월엽서를 나눌 수 있어 좋은 기회임에도 처음엔 인쇄비 부분이 걸려서 망설이게 되더라고요. 매번 그럴 때마다 아주 큰 비용은 아닌데 계속 고민하고 주저하게 되는 거예요.


제겐 큰 액수라고 여겨지는 걸요. 한 개인이 안정적인 벌이가 있고 후원하는 것도 아니고, 내 품을 다 들여가면서 진행하는 프로젝트에 경제적인 부분까지도 내가 감당해야한다고 생각하면 제가 느끼기엔 사실 굉장히 큰 것처럼 여겨져요.  

내가 이렇게 해올 수 있었던 동력이 뭘까 하면은 경제 관념이 무너져 있어서 그런 (하하)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요. 균형이 깨져있어서? 단체 활동을 하면서 다들 힘들게 하는 걸 많이 봐서 그런가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보면 다양하지가 않은 거예요. 그러다보니까 그냥 받아들인 거죠. 만약에 제가 경제적인 압박을 더 많이 받았으면 못했을 거 같기는 해요. 

이번 작업을 하면서 스스로를 살펴보니 다시 도약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어요. 이 활동을 계속 확장해나갈 수 있다면 포기하고 싶지 않은 마음도 들고. 내가 더 많이 움직이면 확장될 수 있을 것 같은데 사업하는 사람들처럼 투자를 할 만한 여유가 안 되니깐 활동도 대부분 혼자서 꾸려가고요. 종이팩 분리배출 실험을 하는 카페라떼클럽 활동도 마음 맞는 지역 활동가 친구와 작업을 해나가는데, 어떻게 하면 이 활동이 확장되고, 어떤 일들이 더해져야 하는지 알겠어요. 그게 눈에 보이지만, 무작정 일을 벌릴 수도 없겠더라고요. 이 활동을 함으로써 내 인건비가 나오는 게 아니니까 생활을 위해 다른 일을 계속 하게 되고요. 그 일을 하다보면 원하는 만큼 활동도 못하니 맘이 지치고 그래요. 내가 계속 하고 싶은 일을 하려면 지금은 N잡러여야지만 하는데, 이런 방식으로 얼마나 개인이 성장할 수 있는지 고민도 되요.


** 종이팩 분리배출 실험을 진행 중인 '카페라떼클럽'. 2019


이렇게 활동을 이어가는 게 분명 쉽지 않을 텐데. 힘든 건 없었어요?

힘들 때도 있고, 재밌을 때도 있고 그래요. 고민하고 그림을 그려가며 기획할 때는 참 재밌는데, 이게 마치 하나의 사업 아이템처럼만 여겨지고, 누군가 그대로 가져가거나 할 때 힘이 빠져요. 저는 활동을 어떤 식으로 하는지도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우리가 바꾸고자 하는 사회를 어떤 언어를 통해서 말을 하느냐에 대한 기획이 조금 더 되면 좋겠어요. 기존의 방식이 좀 더 재밌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사회운동과 문화는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 하며 새로운 확장의 방식을 계속 고민하는데요. 그 고민의 결과물이 아이템처럼 여겨져 단순하게 카피될 때는 '이게 공익활동이라는 이유로 공공재처럼 쓰이는 게 진짜 다 좋은 건가?' 하는 의문이 들 때도 있고요. 사회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확산되는 게 맞고, 카피해서 쓸 수도 있다 생각하면서도, '내가 품을 들여 머리가 깨지도록 고민한 기획, 나의 활동은 좋은 활동이니깐 이 기획은 공공재가 되는 것에 대해서 속이 상하는 게 맞나?' 의문이 들어요. 

활동도 하고 기획도 하고 싶은데 이걸 어떻게 다른 방식으로 풀어야 할지 고민이 되요. 활동만 중요한 게 아니라 활동으로 갖고자 하는 변화를 괜찮고 재미난 방법으로 해보고 싶어요. 그래서 기획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나는 가치로 일하고 싶지 폼나는 행사 하고 싶은 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의 활동에 대한 것도 존중하지만 기획에 대한 것도 존중해달라. 나는 활동가이지만 기획자고 기획자이지만 활동가다.’ 사람들이 나의 활동의 방향성을 인정하고 기획자로서의 고민을 인정해줬으면 좋겠어요.


활동가와 기획자를 구분하는 건 무엇 때문일까요?

하는 일에 활동성을 꼭 갖고 가고 싶어 하는 것 같아요. 제가 하는 일을 문화기획으로 명명하는 분들이 있는데 뭔가 사회적 의미를 더 갖고 싶다는 생각도 있고. 쌓이는 걸 만들고 싶다? 그래서 활동성을 계속 가져가고 싶다는 마음이 있어서 활동가라고 하는 것일 수도 있고...


저는 지현쌤이 활동의 다양한 방식 중 기획으로 활동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활동가들은 결국에는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해 중요한 가치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니까요. 무언가가 지닌 가치를 잘 전달하기 위한 ‘기획하는 활동가’로 보여요. 기획과 활동을 분리시켜서 생각하시는 것 같은데, 왜 그럴까 궁금했어요. 

뭔가 100% 활동가라고 하면 그것도 부담되고, 100% 기획자라고 하면 그것도 싫어서 그러는 거예요.


100% 활동가라고 했을 때 부담이 되는군요. 

그 이슈에 대해서 잘 알아야 하고 제대로 된 방향성을 지녀야 하고 전문가여야하고.. 뭔가 이래야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조직 베이스가 아니다 보니 개인의 흥미나 관심에 따라서 확장이 되잖아요. 이러다 보니까 계속 스스로가 부족하다는 생각을 많이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연속성인 면에서 고민이 되기도 하고요. 얼마 전 인터뷰에 제가 ‘독립기획자’로 소개된 적이 있어요. 나를 소개하기에는 뭔가 부족한 것 같다고 다른 활동가와 이야기를 하다가 제게 이름을 만들어 준 게 ‘공공활동기획자’ 예요. 맨날 다니면서 이렇게 저렇게 하면 좋겠다고 한 마디씩 하거든요. 광주가 바뀌길 원하는 시선으로 그런 기획들을 계속 하고 싶어 하니까 공공활동기획자가 맞지 않나? 진쌤 말처럼 기획하는 활동가?


일전에 한 번 자신을 삼분의 일 활동가라고 얘기하셨는데. 흐흐. 아니 이 분은 1.5도 되는 활동가인데 왜 자꾸 자기를 그렇게 이야기할까 싶었죠.

오히려 조직에 있을 때는 저를 활동가로 정의하기에 더 좋았던 거 같아요. 그 조직이 시민단체이고 비영리단체니까 조직에 속해 있으면, 비록 그게 남이 부여한 위치일수도 있지만, 활동가라고 말하기는 쉽죠. 조직이라는 건 방향과 미션이 명확하게 정해져 있고, 우리는 어떤 활동을 하는 조직이라고 말하잖아요. 사실 그 안에서 일하더라도 활동성을 지니지 않은 사람들도 있지만, 그 사람들한테도 그냥 활동가라고 하잖아요. 이 부분은 개인 성향일 수도 있지만 단체 소속이 아닌 개인적으로 활동하는 나는 그쪽 일을 충분히 하지 않고 있으니까 1/3이라고 하지 않나 싶어요. 자기 자신이 이런 일을 하거나 이런 고민을 하기 때문에 나를 스스로 활동가라고 할 수 있을까.. 라는 뭔가 더 엄격해지고 잣대가 생기는 거 같아요. 스스로 계속 활동가에 대한 상을 그려 놓는 것 같아요. 


아까 활동가 인터뷰 대상들이 대부분 선명한 활동가라고 하셨는데, 제가 생각하는 지현쌤이야말로 정말 선명한 활동가예요

‘활동가’라는 게 명예로운 이름같이 느껴질 때가 있어요. 혼자 이상화하는 것일 수도 있는데 활동가는 공부도 많이 해야하고 분야가 명확해야한다는 생각이 있다보니. 나는 5·18에도 관심 있지만 환경에도 관심이 있고. 쓰레기 문제나 교육에도 관심이 있고. 이렇게 넘나들다 보니까...


너무 공감되요. 내 영역이 명확하지 않다는 것. 나를 어떤 활동가라고 명명하기가 어렵잖아요. 환경운동가, 인권활동가처럼 딱 붙이기 어렵다 보니까 저 역시 스스로를 활동가라고 부르지 못하게 되요.

넘나들고 경계를 넘고. 표현은 좋잖아요. 근데 이게 좋은 건가 싶어요. 관심이 확장된다고 모든 걸 다 할 수는 없으니까요. 내가 이 일을 하고 싶은지, 내가 하고 있는 이 활동이 뭔지, 스스로를 정의해야하는 부분인거 같아요. 내가 멈추면 멈춰지는 이것이 의미 있는 일인가 그런 생각도 하고요. 제 장점이자 단점이 어떤 일을 시작하면 계속 쌓이고 발전해야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러다보니 다른 일로 털고 넘어가는 것이 힘들어요. 주변 사람들이 내년에는 또 하는지 물을 때면 ‘이 일은 내가 안 하면 그냥 끝나는거구나, 그러니 계속 해야할 텐데, 근데 내가 이걸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이게 내 업은 아닌데..’ 나이는 계속 먹어 가는데 이런 작은 변화를 추동하는 것들에 즐거움을 느끼는 게 맞는지 불안해요. 왜냐하면 이런 작은 작업들도 개인이 하기에 한계가 분명해서 변화를 함께 만드는 사람들과의 협력이 필요하거든요. 다만 어떻게 사람들과 만나고, 협력해야하는지 감각적으로 잘 모르겠어요. 느슨하지만 유연하게 결합하는 것에 대한 경험이 없는데 지역에서도 그런 작업들이 많이 없지 않나 싶어요. 그래서 혼자 작업하게 되고 나를 소개할 때 계속 “독립”이 붙나 봐요.


맘 맞는 사람과 함께 일 하는 건 참 즐거운 일인 데 말이예요. 어떤 방식의 협력, 함께 일하기를 하고 싶으세요?

조금씩 서로 시간 내고 마음내고 하는 것에 대해서 배워가고 있어요. 그런 거 있으면 좋겠어요! 좀 덜 조심하면서 협력하는 거. 요즘은 엄청 배려하고 그 사람이 이 작업에서 빠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서로 조심스러워 하는데. 그런 거 말고 서로 신나서 막 이야기를 더하는 경험을 다시 해보고 싶어요. 조직에 있을 때는 그런 경험을 했던 것 같고 그 때는 더 자신감이 있었던 거 같아요. 티키타카하면서 같이 재밌게 하는 거 해 보고 싶어요. 


이제 마지막 질문이예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으로서 활동을 계속하게 하는 동력은 무엇인 것 같아요?

누구는 제가 하는 작업들을 취미활동이라고 하더라구요. 그만하고 일하라고요. 취미활동일 수도 있지만 어떤 상상하는 그림을 실제로 해보는 것을 좋아하니까요. 이런 상상을 해요. 5월이면 광주에서 엽서가 날아가요. 광주가 다른 사람들에게 계속 안부를 묻는 도시가 되는 거예요. 그게 10년 정도 되면 매년 5월이면 광주에서 엽서가 보내진대- 이런 것들을 상상하다보면 너무너무 재밌는 거예요. 제가 생각한 것이 진짜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지금 현재 그런 게 존재하지 않고 실제 그 필요를 확인하는 것. 무엇보다 머릿속에 있던 걸 끄집어냈을 때 이게 실현되고 굴러가는 것을 보는 것이 이 일을 계속하게 해요.

제가 하는 작업들이 큰 작업이 아니잖아요. 그러다보니 주변에서 그런 얘기를 해요. 큰일을 해야지, 정책을 만들어야지, 제도를 바꿔야지. 이런 예쁜 그림만 그리는 거 말고. 사람들이 어떤 걸 기대하는지 알 것 같기도 하고 그래요. 그렇다면 제가 하는 이 일이 이후의 변화들을 추동하기 위한 마중물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재밌게 기획해보고 싶어요. 이런 작은 작업들이 광주 전역에서 일어나면 오히려 제도나 방식을 바꾸려는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지 않을까요? 나의 한 걸음도 바꿔 나가는 게 힘들다는 걸 잘 아니까, 이 정도만이라도 누군가와 같이 이야기하고 실천할 수 있게 돕는 역할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생각해요. 이럴 때 좀 응원해주면 좋겠어요. 뭔가 그런 힘 빠지는 소리 하지 말고. 나는 활동비도 안 받는데 그런 말 들으면 힘 빠지잖아요.


힘내요, 왕꽃.
늘 응원해요.
언제 어디에서든 활짝 펴요. 



질문한 사람  서 진 oliveclair@gmail.com

궁금한 게 많고 질문이 많고 호기심이 많습니다.  배움이 있는 대화와 새로운 도전을 좋아합니다. 변화와 성장을 목도하는 일을 즐거워 합니다.  자기 이해를 통한 나의 변화에서부터 조직과 사회의 변화가 시작된다고 믿습니다. 

- 세상에서 자기가 제일 궁금하지만 정작 자신을 사랑하는 법은 잘 모르는 #나연구소 소장
- 개인과 조직, 사회를 변화시키고 일상의 민주주의를 촉진하는 기술을 공부하고 나누는 #민주주의기술학교 상임연구원


활동가이야기주간2020 프로젝트의 '활동가인터뷰 공모 지원사업'으로 진행한 인터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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