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수진씨를 알게 된 건 서울시 청년허브에서였다. 청년허브에 근무하며 청년참(청년커뮤니티 지원사업)을 진행하던 때, 지원받는 커뮤니티 담당자였다. 그녀는 부암동에 살면서, 동네 사람들과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먹는 모임을 열었다. 이웃이 있는 게 좋다고 했다. 동그란 눈을 반짝거리며 시원시원하게 웃었다. 재미있어 보였다. 활동을 들여다본다는 핑계로 몇 번 놀러 갔다. 방이 하나 빈다고 해서 부암동에서 살고 싶던 나의 로망을 일주일 동안 실현하기도 했다. 조용하고 한적한 동네, 그 사람이 깃든 공간에서 보내는 시간이 두고두고 남았다.
수진씨는 2016년 여름 목포로 내려갔다. 목포에 간다는 소식은 오며 가며 마주친 대화를 통해 알고 있었다. 부모님이 운영하시던 호텔을 개조할 것이란 얘기도, 서울에서의 활동을 목포에서도 이어가고 싶다는 말도 나눴다. 친구들을 초대하고 맛있는 음식을 나눠먹는 귀중함을 아는 사람은 목포에 가서도 자기답게 살지 않을까. 그녀의 선택에 공감했다. 그리고 목포에 대한 뉴스를 접하면서 수진씨 생각이 종종 났다.
목포 유달동, 만호동 일대의 원도심 근대거리는 일제강점기 조선 4대 항구이자 6대 도시였던 목포를 대표하는 번화가다. 해방 뒤 일본 중국과의 교역이 끊기면서 퇴락을 거듭해오며 방치됐던 음울한 거리였다. 그러다 2017년 도시재생뉴딜 사업의 적지로 지목되어 수백억대로 추산되는 재생예산투입 계획이 나왔고, 지난해 옛 화신연쇄점 건물 등 근대건축물 15곳과 거리 경관 자체가 등록문화재로 지정되면서 관심을 모으기 시작했다.
국토개발 소외된 ‘목포의 눈물’…잠재력 가득한 ‘목포의 유산’ / 한겨레 2019.02.01
목포에서 삶을 꾸려가는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질문을 하며 지내고 있을까. 2019년 가을, 우리는 목포에서 다시 만났다. 서울에서 목포는 KTX로 2시간 반이면 도착했다. 기차역엔 사람들이 바글바글했다. 기차역에서 걸어서 10분, 근대문화거리가 나왔다. 일본식의 갈색 벽돌 건물이 군데군데 보였다. 남쪽 특유의 따뜻하고 포근한 볕이 동네를 감쌌다.
내가 목포에 사는 이유
만나자마자 “배고프죠? 밥부터 먹자"며 골목을 누볐다. 동네 사람들만 알 법한 백반집을 갔다. 서로 아는 사이인지 왜 이렇게 오랜만에 왔냐, 요즘엔 뭐가 맛있냐 등의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주문했다. 전라도 사투리가 정겹게 느껴졌다. 음식에 마음이 묻어난다.
목포엔 언제 내려왔어요?
"목포가 고향이에요. 대학 때부터 서울에서 지냈죠. 20년은 목포, 20년은 서울에 살다가 2016년에 내려왔어요. 벌써 4년이 됐네요. 부모님이 숙박업을 하고 계셨는데 계속 운영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으니 도와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내려와서 처음 한 일이 리모델링 공사예요. 부모님이랑 많이 싸웠어요. 변화가 필요하다는 걸 받아들이면서도 그동안 문제없이 해오셨으니까."
어떤 숙소를 만들고 싶었어요?
"여행자들에게 필요한 숙소가 되길 바랐어요. 국내 숙박업은 대부분 연인들의 공간이지 여행자들을 위한 공간이 아니잖아요. 2016년에 목포에 KTX가 생기고 중국 관광객이 늘어나면서 관광지가 될 가능성이 있지 않나. 그러면 숙박업소가 변해야 한다는 건 나보다 부모님이 더 잘 아셨어요. 본인들이 여행을 다녀보면서 작은 호텔에 대한 로망이 있어서 직접 설계하고 디자인하고 2003년 정도에 지으신 거거든요. 많이 낡았고 커뮤니티 공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새로 리모델링 했죠.
제가 밤 10시부턴 호텔을 지켜요. 그렇게 되니 다른 활동을 하기 어려워요. 저녁 시간에 많은 활동이 이루어지잖아요. 커뮤니티를 유지하지 못한지 1년이 됐어요."
수진씨가 목포로 온 이유가 있나요?
"저는 2010년에 유럽여행을 6개월 정도 다녀왔어요.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출발하기도 했지만 갔다 와서도 변하고 싶더라고요. 그때 만난 게 청년참이었어요. 2013년, 2014년에 제가 사는 곳에서 이웃과 함께 하는 활동을 했었죠. 그러면서 제주도로 이주하려고 했는데 막상 못 살겠더라고요. 섬이잖아요. 산다고 생각하니 답답했어요.
서울로 올라가는 길에 목포에 들렀는데 '어, 여기다' 했어요. 사실 목포는 떠나고 싶던 동네였어요. '목포는 뭐가 아무것도 없다. 새로운 곳, 낯선 곳으로 떠나겠다.'라고 갈망했죠."
유럽여행 영향을 많이 받았는지도 모르겠네요. 유년시절을 보낸 목포가 새롭게 보였다는 얘기 같아요.
"맞아요. 유럽 여행하면서 포르투갈에 갔었어요. 산티아고를 걸었는데 거기서 만난 독일인 친구가 포르투갈 작은 마을에 힐링공간을 짓는다고 해서 따라나섰어요. 저에게도 4일을 일하면 숙식을 해결해준다고, 아무것도 시키지 않고 프로젝트를 직접 정하라고 했어요. 텃밭을 가꿔볼까. 잘 모르니까 검색하고 찾아보면서 텃밭을 일궜어요. 그때 처음으로 흙을 만졌어요.
거기서 보낸 3주가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에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결정하고 실제 해보고, 잘 됐는지 지켜보며 내가 먹는 것은 스스로 만드는 시간. 단순하게 보낸 생활에 행복했어요. 한국 가서도 이렇게 살아야겠다 결심했어요. 지역으로 내려오고 싶어졌고요."
목포와 포르투갈이 비슷한 느낌이에요.
"정말 매력이 비슷해요. 바다와 산 그리고 항구가 다 있죠. 여기서 15분만 나가면 무안이에요. 완전 다른 풍경이에요. 자연과 가깝게 살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목포에 있으니 다 해결돼요. 뭘 보고 싶어져서 조금만 나가면 전혀 다른 풍경과 바다를 볼 수 있으니까. 남도를 다 누리고 있어요. 남도 안에서 목포에 머무른다 뿐이지 남도를 갖는다는 느낌이에요."
서울에서는 무슨 일을 했어요?
"배우였어요. 연기가 좋았는데 그것만 하기엔 세상에 재미있는 것들이 많았죠. 예술에 온 몸을 바칠 거란 마음만 가지고 하기엔 세상을 모르는 것 같았어요. 연기한다는 건 환상에 살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 세상이 실제는 아니잖아요. 그래서 안전하다고 느껴요. 연기하는 세상 안에서 분노하고 슬프고 행복한 게 현실로 돌아오면 진짜는 아니니까요. 무대가 끝나면 사라지는 거예요. 삶은 그렇지 않더라고.
공연을 좋아하고 연기하고 싶었던 건 진짜를 맞닥트리고 싶지 않은 게 아니었을까. 온전한 세계로 돌아가고 싶었어요. 그래서 목포에 왔어요."
호텔 커뮤니티 공간 (사진출처: 배수진)
목포에 살면서 생기는 질문들
서울에서 배우 생활을 했다. 15년 넘게 연기 생활을 하며 질문이 생겼다. 연기하는 세계는 안전한 울타리이지 않을까. 그리고 온전한 세계, 목포로 향했다. 부모님 사업을 이어가면서도 자신의 일을 벌였다. 사람들에게 목포를 알리기 위해 '목포를 씁니다' 콘텐츠를 만들고 선물가게를 비롯해 공간을 운영하고 있다.
목포에서 생활해보니 어때요?
"부모님이 하시던 호텔을 맡아서 하는 거니까 처음으로 루틴 한 일을 하는 거예요. 일에 적응하느라 어렵긴 했지만 도시 향수병으로 힘들었어요. 서울에는 친한 친구들이 있잖아요.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시간을 보내더라도 '말하지 않아도 서로 이해하는 오래된 친구들이 없는데 여기서 뭐 하고 있나' 생각이 드는 거예요. 쓸데없는 이야기 나눌 관계가 가깝게 있다는 건 중요한 것 같아요."
호텔을 운영하는 것 말고, 목포에선 또 어떤 일들을 하세요?
"일을 많이 벌였어요. 예술인 복지재단 지원을 받기도 하고, 콘텐츠진흥원 지역특화사업으로 선정되어 중국인 대상으로 목포를 소개하는 일도 했고요. 개인적으로 '나는 목포에 삽니다' 회사를 운영해요. 목포 콘텐츠를 발굴해서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일들이에요. 이곳에 사람은 별로 없고 알려지지 않은 곳들이 많으니 ‘여기 예뻐요, 놀러 오세요’ 했던 거죠.
지역 청년들, 취향이 비슷한 사람들을 묶는 공간을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근데 목포가 도시재생 지역으로 선정되고 내려오는 사람들이 생기면서, 나 말고도 할 사람들이 많아요."
고민이 많아졌겠어요.
"네, 내가 하는 것들을 수정해야 했어요. 지원사업에만 의지하지 않고 자생할 구조를 만들어야겠다고. 지원을 받으면 성과에 대한 압박이 생기더라고요. 자립하려면 수익이 생겨야 하잖아요. '비즈니스 모델이 정확한 스타트업을 만들어야 할까 고민했죠.' 비즈니스 모델을 찾는 것과 목포를 알린다는 두 가지 방향이 있으니까 '목포를 씁니다' 출판사업과 선물가게를 만들었어요.
돈은 잘 안 돼요. 지역이 좁으니까 내가 이런 일을 할 때 '우리도 해봤는데 잘 안 됐어, 열심히 해봐.'라고 하든지, '쟤 뭐 하는 거야? 누구 편이야?' 하는 느낌도 받아요. 힘이 빠질 때가 있어요. 누구 보라고 하는 건 아닌데 그런 게 생기기도 하고요."
요즘 전국적으로 '도시재생' 관련 예산이 많아졌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목포에도 외지인들이 많아졌어요. 그런 생각을 해요. 여기 일자리들은 대부분 서울에 있는 사람들에게 돌아가는 거예요. 현지인들은 경험이 부족하니까. 그래도 서울에서 온 사람들이 주도적으로 만드는 게 뭔지 모르게 불편할 때가 있죠. 물론 이 도시가 잘 되려면 그런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공공자원이 투입되어 성과를 내야 하는 시기는 짧고 뭐가 되든 할 사람들이 있어야 하고요. 잘 모르겠어요. 사업하러 온 사람들은 단체로 내려왔다가 단체로 가죠. 그 내부 멤버냐 아니냐가 중요한 것 같아요.
제 생각이 이상적일 수 있어요. 지역 주민들을 차근차근 변화시키고 서로에게 영향받으면서 지역사회를 나은 방향으로 만드는 게요."
수진씨는 서울에 살았었고 행정기관에서 지원받은 경험이 있으니 목포에서도 보이는 게 다를 것 같아요.
"맞아요. 목포가 반짝반짝해지고 알려졌는데 '그다음이 뭘까?' 질문해요. '이 도시가 지향해야 하는 것은 무언인가'하고요. 뭐랄까요. 이 도시가 가진 고유함을 발견하는 일이겠죠? 목포의 고유함을 알았던 것 같은데 빨리빨리 변해요. 지켜야 하는 그 무엇을 나 혼자 주장하는 게 아니라 함께 의논하며 만들어가면 좋겠어요. 공공의 장에서 논의하고 서로 다른 길에서 합의한 방향을 지켜나가야 해요. 어렵죠. 같은 생각 하는 사람을 만나기가 쉽지 않아서 답답해요."
목포에 애정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방향을 공유하는 공공의 장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로 들리네요.
"목포를 변화시키는 건 외부에서 온 친구들이 새롭게 보여주는 부분이 있을 거예요. 각자의 역할과 목표가 있지만 서로 이 도시가 어떤 방향으로 가면 좋겠는지 공감하면서요. 이곳의 매력을 알아본 사람들이라면 정체성에 대해 끊임없이 소통하면 좋겠어요. 그런 장이 별로 없는 게 아쉬워요."
나는 목포에 삽니다 프로젝트 (사진출처: 배수진)
선물가게 (사진출처: 배수진)
목포에서 오래오래 살고 싶은 마음
밥을 다 먹고 수진씨 사무실로 산책하듯 걸었다. 마을 입구엔 아름드리나무가 가을색으로 물들었다. 1층 벽돌 건물이 길게 늘어서있는 동네다. 집 앞에 벤치가 있어서 볕을 쬐는 할머니, 할머니가 앉아계신다. 수진씨가 어르신들에게 인사를 건넨다. 분홍색 조끼를 입은 할머니가 무어라 하시는 말씀을 나는 도통 못 알아듣겠는데 이야기 나누는 모습이 신기하다. 그저 웃었다.
목포의 매력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효자동이나 익선동 좋아해요?"
네, 종종 가요. 도시에서 다른 감성을 즐기고 싶을 때.
"여긴 널려있어요. 동네가 예뻐요. 도로가 시원시원하고 일본식 건물이 나지막하게 있어요. 여기는 익선동, 저기는 효자동 이런 식. 제주도는 살고 싶은 사람들이 내려가서 자기만의 세상을 만들었잖아요. 물론 많아져서 문제가 되고 있지만. 목포도 그런 공간이 되면 좋겠다 생각해요. 소문나지 않고 조금조금씩 살고 싶은 사람들이 늘어가는 곳. 그래야 지속 가능해지는 것 같아요. 어디서나 볼 법한 예쁜 카페촌이 생긴다고 그 지역만의 개성이 생기는 건 아니더라고요. 자기가 만드는 공방, 자기 색이 담긴 커피숍이 있어야 매력적이라 느껴요. 여기도 그러면 좋겠어요."
정말 그런 것 같아요. 여긴 익선동이네요. (웃음) 집 앞에 마을 할머니들이 옹기종기 앉아계시는 모습이 보기 좋아요.
"그렇죠? 저는 처음에 여기 들어오면서 상상을 했어요. 우리 집 앞 골목에 테이블을 길게 깔아서 동네 할머니들 모시고 밥 먹는 자리를 만들어야겠다고. 살면서 쉽지 않다는 걸 깨달았어요. 옆집 할머니께 우리 집 놀러 오시라고 해도 안 오시거든요. 폐 끼친다고. 그냥 집 앞에 평상이 있으면 할머니들 모여서 노닥노닥하시죠.
도시재생 사업 중에 골목길 개선사업 등으로 500만 원 정도 쓸 수 있게 지원하거든요. 할머니들은 그런 거 없어도 행복해요. '골목 예쁘면 좋으니까 화분 맞출까?' 여쭤보면 '그래 뭐 좋지' 하시지만 없어도 고무대야에 상추니 뭐니 키우며 잘 사시는 분들이에요. 바꿀 필요가 없어요. 누구한테 예뻐 보이게? 굳이 돈 들여 나무화분으로 바꿔야 하는 이유는 뭘까요?"
그러게요.(웃음) 할머니들이 원하시는 게 뭘까요?
"할머니들이 무얼 원하시는지 살펴보면, 별로 원하시는 게 없어요. 심심하니까 소일거리 삼아서 할 게 있으면 좋겠다 정도? 할머니들은 하루가 기니까 콩 까달라고 부탁드리면 그렇게 좋아하세요. 남의 집 콩 까는 걸 번갈아 하시더라고요. 노동이라 생각하지 않고 할 수 있는 그런 것들."
수진씨는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으세요?
"나는 여기서 오래오래 살고 싶어요. 이 도시에 흥미를 가진 다양한 사람들이 많아져서 새로운 사람들이 도시의 활력을 가져오는 것. 기존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며 변화하고요. 무엇보다 여기 사는 사람이 많아져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변화가 만들어지기 쉽지 않은 것 같아요. 매력적이라 느끼는 사람들이 살고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서로 소통하며 사는 것. 느슨하고 느긋한 공동체 있잖아요.
저는 서울에서 부암동에 오래 살았었어요. 거기 살고 있는 것 자체가 행복했어요. 내가 살았던 동네는 남들도 살고 싶은 동네였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사람들이 많이 오고 가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 게 좋았어요. 서로 다른 사람들이 만나면서 다양함을 볼 수 있게 하는 거요. 이런 것들을 재미있다고 느껴요."
동네 골목길 (사진출처: 배수진)
목포에 오기 전까지 막연했다. 뉴스로 접한 목포의 이미지만으로는 그곳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다. 무엇보다 고향을 떠나 서울에 살다가, 다시 고향에서 삶을 꾸리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듣고 싶었다. 역시. 간단하게 정리할 수 없는 이야기였다. 명료하게 정의되는 ‘활동’이 아니었다. 부모님의 사업을 이어가는 일상, 지역 주민들의 반응, 외부 자원, 목포를 다룬 뉴스를 보며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목포에서 어떤 활동을 벌일 것인가, 삶을 지속하려면 수익이 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할 텐데 어떻게 가능할까' 질문이 끊임없다.
혼란을 혼란으로 겪으며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자연스러운 과정일지 모른다. 자신이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들이 가까이 있고, 내가 무엇을 재미있어하는지 아는 수진씨가 목포에서 어떻게 살아갈까. 헤어지는 길에 그녀는 말했다. "재은씨, 목포에 또 와요. 여기서 할 일 많아요." 같이 살자는 얘기로 들려서 베시시 좋아졌다. 목포의 가을볕이 따뜻하다.
_ 이재은
#이재은 #목포 #전남 #전라남도 #배수진 #공간 #숙박 #여행 #호텔 #로컬 #지역
내가 수진씨를 알게 된 건 서울시 청년허브에서였다. 청년허브에 근무하며 청년참(청년커뮤니티 지원사업)을 진행하던 때, 지원받는 커뮤니티 담당자였다. 그녀는 부암동에 살면서, 동네 사람들과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먹는 모임을 열었다. 이웃이 있는 게 좋다고 했다. 동그란 눈을 반짝거리며 시원시원하게 웃었다. 재미있어 보였다. 활동을 들여다본다는 핑계로 몇 번 놀러 갔다. 방이 하나 빈다고 해서 부암동에서 살고 싶던 나의 로망을 일주일 동안 실현하기도 했다. 조용하고 한적한 동네, 그 사람이 깃든 공간에서 보내는 시간이 두고두고 남았다.
수진씨는 2016년 여름 목포로 내려갔다. 목포에 간다는 소식은 오며 가며 마주친 대화를 통해 알고 있었다. 부모님이 운영하시던 호텔을 개조할 것이란 얘기도, 서울에서의 활동을 목포에서도 이어가고 싶다는 말도 나눴다. 친구들을 초대하고 맛있는 음식을 나눠먹는 귀중함을 아는 사람은 목포에 가서도 자기답게 살지 않을까. 그녀의 선택에 공감했다. 그리고 목포에 대한 뉴스를 접하면서 수진씨 생각이 종종 났다.
목포에서 삶을 꾸려가는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질문을 하며 지내고 있을까. 2019년 가을, 우리는 목포에서 다시 만났다. 서울에서 목포는 KTX로 2시간 반이면 도착했다. 기차역엔 사람들이 바글바글했다. 기차역에서 걸어서 10분, 근대문화거리가 나왔다. 일본식의 갈색 벽돌 건물이 군데군데 보였다. 남쪽 특유의 따뜻하고 포근한 볕이 동네를 감쌌다.
내가 목포에 사는 이유
만나자마자 “배고프죠? 밥부터 먹자"며 골목을 누볐다. 동네 사람들만 알 법한 백반집을 갔다. 서로 아는 사이인지 왜 이렇게 오랜만에 왔냐, 요즘엔 뭐가 맛있냐 등의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주문했다. 전라도 사투리가 정겹게 느껴졌다. 음식에 마음이 묻어난다.
목포엔 언제 내려왔어요?
"목포가 고향이에요. 대학 때부터 서울에서 지냈죠. 20년은 목포, 20년은 서울에 살다가 2016년에 내려왔어요. 벌써 4년이 됐네요. 부모님이 숙박업을 하고 계셨는데 계속 운영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으니 도와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내려와서 처음 한 일이 리모델링 공사예요. 부모님이랑 많이 싸웠어요. 변화가 필요하다는 걸 받아들이면서도 그동안 문제없이 해오셨으니까."
어떤 숙소를 만들고 싶었어요?
"여행자들에게 필요한 숙소가 되길 바랐어요. 국내 숙박업은 대부분 연인들의 공간이지 여행자들을 위한 공간이 아니잖아요. 2016년에 목포에 KTX가 생기고 중국 관광객이 늘어나면서 관광지가 될 가능성이 있지 않나. 그러면 숙박업소가 변해야 한다는 건 나보다 부모님이 더 잘 아셨어요. 본인들이 여행을 다녀보면서 작은 호텔에 대한 로망이 있어서 직접 설계하고 디자인하고 2003년 정도에 지으신 거거든요. 많이 낡았고 커뮤니티 공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새로 리모델링 했죠.
제가 밤 10시부턴 호텔을 지켜요. 그렇게 되니 다른 활동을 하기 어려워요. 저녁 시간에 많은 활동이 이루어지잖아요. 커뮤니티를 유지하지 못한지 1년이 됐어요."
수진씨가 목포로 온 이유가 있나요?
"저는 2010년에 유럽여행을 6개월 정도 다녀왔어요.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출발하기도 했지만 갔다 와서도 변하고 싶더라고요. 그때 만난 게 청년참이었어요. 2013년, 2014년에 제가 사는 곳에서 이웃과 함께 하는 활동을 했었죠. 그러면서 제주도로 이주하려고 했는데 막상 못 살겠더라고요. 섬이잖아요. 산다고 생각하니 답답했어요.
서울로 올라가는 길에 목포에 들렀는데 '어, 여기다' 했어요. 사실 목포는 떠나고 싶던 동네였어요. '목포는 뭐가 아무것도 없다. 새로운 곳, 낯선 곳으로 떠나겠다.'라고 갈망했죠."
유럽여행 영향을 많이 받았는지도 모르겠네요. 유년시절을 보낸 목포가 새롭게 보였다는 얘기 같아요.
"맞아요. 유럽 여행하면서 포르투갈에 갔었어요. 산티아고를 걸었는데 거기서 만난 독일인 친구가 포르투갈 작은 마을에 힐링공간을 짓는다고 해서 따라나섰어요. 저에게도 4일을 일하면 숙식을 해결해준다고, 아무것도 시키지 않고 프로젝트를 직접 정하라고 했어요. 텃밭을 가꿔볼까. 잘 모르니까 검색하고 찾아보면서 텃밭을 일궜어요. 그때 처음으로 흙을 만졌어요.
거기서 보낸 3주가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에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결정하고 실제 해보고, 잘 됐는지 지켜보며 내가 먹는 것은 스스로 만드는 시간. 단순하게 보낸 생활에 행복했어요. 한국 가서도 이렇게 살아야겠다 결심했어요. 지역으로 내려오고 싶어졌고요."
목포와 포르투갈이 비슷한 느낌이에요.
"정말 매력이 비슷해요. 바다와 산 그리고 항구가 다 있죠. 여기서 15분만 나가면 무안이에요. 완전 다른 풍경이에요. 자연과 가깝게 살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목포에 있으니 다 해결돼요. 뭘 보고 싶어져서 조금만 나가면 전혀 다른 풍경과 바다를 볼 수 있으니까. 남도를 다 누리고 있어요. 남도 안에서 목포에 머무른다 뿐이지 남도를 갖는다는 느낌이에요."
서울에서는 무슨 일을 했어요?
"배우였어요. 연기가 좋았는데 그것만 하기엔 세상에 재미있는 것들이 많았죠. 예술에 온 몸을 바칠 거란 마음만 가지고 하기엔 세상을 모르는 것 같았어요. 연기한다는 건 환상에 살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 세상이 실제는 아니잖아요. 그래서 안전하다고 느껴요. 연기하는 세상 안에서 분노하고 슬프고 행복한 게 현실로 돌아오면 진짜는 아니니까요. 무대가 끝나면 사라지는 거예요. 삶은 그렇지 않더라고.
공연을 좋아하고 연기하고 싶었던 건 진짜를 맞닥트리고 싶지 않은 게 아니었을까. 온전한 세계로 돌아가고 싶었어요. 그래서 목포에 왔어요."
호텔 커뮤니티 공간 (사진출처: 배수진)
목포에 살면서 생기는 질문들
서울에서 배우 생활을 했다. 15년 넘게 연기 생활을 하며 질문이 생겼다. 연기하는 세계는 안전한 울타리이지 않을까. 그리고 온전한 세계, 목포로 향했다. 부모님 사업을 이어가면서도 자신의 일을 벌였다. 사람들에게 목포를 알리기 위해 '목포를 씁니다' 콘텐츠를 만들고 선물가게를 비롯해 공간을 운영하고 있다.
목포에서 생활해보니 어때요?
"부모님이 하시던 호텔을 맡아서 하는 거니까 처음으로 루틴 한 일을 하는 거예요. 일에 적응하느라 어렵긴 했지만 도시 향수병으로 힘들었어요. 서울에는 친한 친구들이 있잖아요.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시간을 보내더라도 '말하지 않아도 서로 이해하는 오래된 친구들이 없는데 여기서 뭐 하고 있나' 생각이 드는 거예요. 쓸데없는 이야기 나눌 관계가 가깝게 있다는 건 중요한 것 같아요."
호텔을 운영하는 것 말고, 목포에선 또 어떤 일들을 하세요?
"일을 많이 벌였어요. 예술인 복지재단 지원을 받기도 하고, 콘텐츠진흥원 지역특화사업으로 선정되어 중국인 대상으로 목포를 소개하는 일도 했고요. 개인적으로 '나는 목포에 삽니다' 회사를 운영해요. 목포 콘텐츠를 발굴해서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일들이에요. 이곳에 사람은 별로 없고 알려지지 않은 곳들이 많으니 ‘여기 예뻐요, 놀러 오세요’ 했던 거죠.
지역 청년들, 취향이 비슷한 사람들을 묶는 공간을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근데 목포가 도시재생 지역으로 선정되고 내려오는 사람들이 생기면서, 나 말고도 할 사람들이 많아요."
고민이 많아졌겠어요.
"네, 내가 하는 것들을 수정해야 했어요. 지원사업에만 의지하지 않고 자생할 구조를 만들어야겠다고. 지원을 받으면 성과에 대한 압박이 생기더라고요. 자립하려면 수익이 생겨야 하잖아요. '비즈니스 모델이 정확한 스타트업을 만들어야 할까 고민했죠.' 비즈니스 모델을 찾는 것과 목포를 알린다는 두 가지 방향이 있으니까 '목포를 씁니다' 출판사업과 선물가게를 만들었어요.
돈은 잘 안 돼요. 지역이 좁으니까 내가 이런 일을 할 때 '우리도 해봤는데 잘 안 됐어, 열심히 해봐.'라고 하든지, '쟤 뭐 하는 거야? 누구 편이야?' 하는 느낌도 받아요. 힘이 빠질 때가 있어요. 누구 보라고 하는 건 아닌데 그런 게 생기기도 하고요."
요즘 전국적으로 '도시재생' 관련 예산이 많아졌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목포에도 외지인들이 많아졌어요. 그런 생각을 해요. 여기 일자리들은 대부분 서울에 있는 사람들에게 돌아가는 거예요. 현지인들은 경험이 부족하니까. 그래도 서울에서 온 사람들이 주도적으로 만드는 게 뭔지 모르게 불편할 때가 있죠. 물론 이 도시가 잘 되려면 그런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공공자원이 투입되어 성과를 내야 하는 시기는 짧고 뭐가 되든 할 사람들이 있어야 하고요. 잘 모르겠어요. 사업하러 온 사람들은 단체로 내려왔다가 단체로 가죠. 그 내부 멤버냐 아니냐가 중요한 것 같아요.
제 생각이 이상적일 수 있어요. 지역 주민들을 차근차근 변화시키고 서로에게 영향받으면서 지역사회를 나은 방향으로 만드는 게요."
수진씨는 서울에 살았었고 행정기관에서 지원받은 경험이 있으니 목포에서도 보이는 게 다를 것 같아요.
"맞아요. 목포가 반짝반짝해지고 알려졌는데 '그다음이 뭘까?' 질문해요. '이 도시가 지향해야 하는 것은 무언인가'하고요. 뭐랄까요. 이 도시가 가진 고유함을 발견하는 일이겠죠? 목포의 고유함을 알았던 것 같은데 빨리빨리 변해요. 지켜야 하는 그 무엇을 나 혼자 주장하는 게 아니라 함께 의논하며 만들어가면 좋겠어요. 공공의 장에서 논의하고 서로 다른 길에서 합의한 방향을 지켜나가야 해요. 어렵죠. 같은 생각 하는 사람을 만나기가 쉽지 않아서 답답해요."
목포에 애정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방향을 공유하는 공공의 장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로 들리네요.
"목포를 변화시키는 건 외부에서 온 친구들이 새롭게 보여주는 부분이 있을 거예요. 각자의 역할과 목표가 있지만 서로 이 도시가 어떤 방향으로 가면 좋겠는지 공감하면서요. 이곳의 매력을 알아본 사람들이라면 정체성에 대해 끊임없이 소통하면 좋겠어요. 그런 장이 별로 없는 게 아쉬워요."
나는 목포에 삽니다 프로젝트 (사진출처: 배수진)
선물가게 (사진출처: 배수진)
목포에서 오래오래 살고 싶은 마음
밥을 다 먹고 수진씨 사무실로 산책하듯 걸었다. 마을 입구엔 아름드리나무가 가을색으로 물들었다. 1층 벽돌 건물이 길게 늘어서있는 동네다. 집 앞에 벤치가 있어서 볕을 쬐는 할머니, 할머니가 앉아계신다. 수진씨가 어르신들에게 인사를 건넨다. 분홍색 조끼를 입은 할머니가 무어라 하시는 말씀을 나는 도통 못 알아듣겠는데 이야기 나누는 모습이 신기하다. 그저 웃었다.
목포의 매력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효자동이나 익선동 좋아해요?"
네, 종종 가요. 도시에서 다른 감성을 즐기고 싶을 때.
"여긴 널려있어요. 동네가 예뻐요. 도로가 시원시원하고 일본식 건물이 나지막하게 있어요. 여기는 익선동, 저기는 효자동 이런 식. 제주도는 살고 싶은 사람들이 내려가서 자기만의 세상을 만들었잖아요. 물론 많아져서 문제가 되고 있지만. 목포도 그런 공간이 되면 좋겠다 생각해요. 소문나지 않고 조금조금씩 살고 싶은 사람들이 늘어가는 곳. 그래야 지속 가능해지는 것 같아요. 어디서나 볼 법한 예쁜 카페촌이 생긴다고 그 지역만의 개성이 생기는 건 아니더라고요. 자기가 만드는 공방, 자기 색이 담긴 커피숍이 있어야 매력적이라 느껴요. 여기도 그러면 좋겠어요."
정말 그런 것 같아요. 여긴 익선동이네요. (웃음) 집 앞에 마을 할머니들이 옹기종기 앉아계시는 모습이 보기 좋아요.
"그렇죠? 저는 처음에 여기 들어오면서 상상을 했어요. 우리 집 앞 골목에 테이블을 길게 깔아서 동네 할머니들 모시고 밥 먹는 자리를 만들어야겠다고. 살면서 쉽지 않다는 걸 깨달았어요. 옆집 할머니께 우리 집 놀러 오시라고 해도 안 오시거든요. 폐 끼친다고. 그냥 집 앞에 평상이 있으면 할머니들 모여서 노닥노닥하시죠.
도시재생 사업 중에 골목길 개선사업 등으로 500만 원 정도 쓸 수 있게 지원하거든요. 할머니들은 그런 거 없어도 행복해요. '골목 예쁘면 좋으니까 화분 맞출까?' 여쭤보면 '그래 뭐 좋지' 하시지만 없어도 고무대야에 상추니 뭐니 키우며 잘 사시는 분들이에요. 바꿀 필요가 없어요. 누구한테 예뻐 보이게? 굳이 돈 들여 나무화분으로 바꿔야 하는 이유는 뭘까요?"
그러게요.(웃음) 할머니들이 원하시는 게 뭘까요?
"할머니들이 무얼 원하시는지 살펴보면, 별로 원하시는 게 없어요. 심심하니까 소일거리 삼아서 할 게 있으면 좋겠다 정도? 할머니들은 하루가 기니까 콩 까달라고 부탁드리면 그렇게 좋아하세요. 남의 집 콩 까는 걸 번갈아 하시더라고요. 노동이라 생각하지 않고 할 수 있는 그런 것들."
수진씨는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으세요?
"나는 여기서 오래오래 살고 싶어요. 이 도시에 흥미를 가진 다양한 사람들이 많아져서 새로운 사람들이 도시의 활력을 가져오는 것. 기존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며 변화하고요. 무엇보다 여기 사는 사람이 많아져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변화가 만들어지기 쉽지 않은 것 같아요. 매력적이라 느끼는 사람들이 살고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서로 소통하며 사는 것. 느슨하고 느긋한 공동체 있잖아요.
저는 서울에서 부암동에 오래 살았었어요. 거기 살고 있는 것 자체가 행복했어요. 내가 살았던 동네는 남들도 살고 싶은 동네였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사람들이 많이 오고 가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 게 좋았어요. 서로 다른 사람들이 만나면서 다양함을 볼 수 있게 하는 거요. 이런 것들을 재미있다고 느껴요."
동네 골목길 (사진출처: 배수진)
목포에 오기 전까지 막연했다. 뉴스로 접한 목포의 이미지만으로는 그곳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다. 무엇보다 고향을 떠나 서울에 살다가, 다시 고향에서 삶을 꾸리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듣고 싶었다. 역시. 간단하게 정리할 수 없는 이야기였다. 명료하게 정의되는 ‘활동’이 아니었다. 부모님의 사업을 이어가는 일상, 지역 주민들의 반응, 외부 자원, 목포를 다룬 뉴스를 보며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목포에서 어떤 활동을 벌일 것인가, 삶을 지속하려면 수익이 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할 텐데 어떻게 가능할까' 질문이 끊임없다.
혼란을 혼란으로 겪으며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자연스러운 과정일지 모른다. 자신이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들이 가까이 있고, 내가 무엇을 재미있어하는지 아는 수진씨가 목포에서 어떻게 살아갈까. 헤어지는 길에 그녀는 말했다. "재은씨, 목포에 또 와요. 여기서 할 일 많아요." 같이 살자는 얘기로 들려서 베시시 좋아졌다. 목포의 가을볕이 따뜻하다.
_ 이재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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