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인터뷰] 공익활동을 향한 또다른 걸음 - 권순표

두 사람 다 활동가는 고도의 전문성과 책임감을 지닌 특수한 직업군이라고 생각한다. 이승현은 사회문제를 창의적 아이디어로 풀고 싶다는 개인적 관심에서 상근자가 아닌 회원으로 조직에 결합했다. 권순표는 사회적기업을 설립하고 운영하지만, 자립하고 지속할 수 있을 정도로 돈을 벌어야 한다는 조건을 ‘사익’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활동’과는 거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개인사적 경험에 따라 결이 다르긴 해도 둘 다 ‘좋은’ 일, ‘의미있는’ 일을 벌이는 것만으로는 활동이라고 하기 어렵다는 인식을 강하게 보였고, 그런 기준 때문에 스스로의 활동을 좀 더 엄격하게 평가한다. 민주적 소양을 가진 시민으로서 존재하는 것과 사회 문제에 구조적으로 개입하고 바꾸는 활동은 어떻게 다른가. 경쟁과 자기개발에 몰두할 수 밖에 없는 현실 속에서 ’먹고사니즘’과 직업적 활동가의 삶은 근본적으로 어떻게 다른가. 그런 질문을 품게 만드는 대화였다. (신비)

 

  • 인터뷰이 : 권순표 / 사회적기업 사각사각 대표(익산참여연대 회원)
  • 인터뷰어 : 장상미(더 이음 운영위원), 유일영(더 이음 사무국장)
  • 일시 : 2018년 5월 31일(목)
  • 장소 : 익산미디어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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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익활동가’가 어디까지인지 범주의 변화가 많고 생각도 다양해진 것 같아요. 순표님이 생각하는 활동가란 어떤 역할을 하는 사람인가요?

“처음 연락을 받았을 때 제가 활동가로서는 활동을 많이 안 했기 때문에 나하고는 안 맞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사회적 기업도 활동가 영역에 속한다고 얘기하셔서 인터뷰를 수락했습니다. 정말 ‘활동가'는 아이쿱생협의 김명희 이사님 같은 분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사익을 위해서 사회적기업을 운영하는데 김명희 이사님은 사회적기업이나 협동조합을 만들 수 있도록 운영하고 서포트를 하세요. 활동은 그런 것이라고 생각해요. 김이사님을 만나면서 활동을 접하게 되었고 시민사회 영역은 전혀 모르다가 사회적경제를 알게 되면서 활동가 영역을 알게 되었어요.”

 

사회적경제는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어요?

“처음엔 평범하게 회사를 다녔어요. 목공이 취미였는데 육성지원사업이 있어서 지원을 했다가 합격이 되었구요. 지금 사회적기업은 3년 되었어요. 아직은 사회적경제를 잘 몰라서 대학원을 다니면서 병행 중이에요. 이렇게 사회적경제 영역으로 들어오면서 시민사회를 만나게 되었지요. 사회적경제를 알게 된 건, 직장을 다니다가 캐나다에 여행을 가게 되었는데 언어의 장벽을 겪어 1년을 쉬던 중 퀘벡에서였어요.”

 

캐나다에서 접한 사회적경제는 어떤 것이었나요?

"당시엔 그게 사회적경제인지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사회적경제였어요. 공동체로 진행하는 것이 많았고 시골마을의 교회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많았어요. 교회 내 수익사업을 개인이 아닌 마을의 발전이나 마을에서 소외된 분들을 위한 활동들을 하더라구요.”


아무래도 캐나다에서 사회적경제를 보고 받은 인상과 실제는 다를 수 있을텐데 계속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제 이후의 사회적경제를 하는 사람들의 상황이 더 좋았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하고 있습니다. 현실적인 어려움은 있으나 좋아하는 일이니까요. 좋아하니까 잘 되었으면 좋겠고, 그러면 누군가는 해야 하는데 시민운동 하는 분들도 같은 이유라고 생각해요.

저희가 진행하는 어린이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학부모들은 저희가 순수한 의도인 것을 처음에는 의심하고 오더라구요. 그런데 일단 참여하면 만족도가 높아서 계속 하고 싶어하세요. 가구(목공)라는 것이 삶의 필수품은 아니지만 없으면 불편한 것이라 관련된 일들을 하고 나면 ‘뿌듯함’이 있고 할 만 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사회적기업으로서 지금 하고 있는 구체적인 활동을 소개해주시겠어요?

“2016년에 창업했고 작년에 예비사회적기업 인증을 받은 상태에요. 처음엔 솔직히 돈을 버는 것이 목적이었어요. 돈이 있어야 저와 직원도 먹고 살고, 그래야 누군가를 도울 수 있지 않겠는가 생각한 거죠.

사회적기업이란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면서 수익을 창출하는게 가장 좋은 목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저희가 하고 있는 일을 말씀드리자면... 보통 가구를 만들 때 나무 한 판의 로스율이 40%인데 그것이 태워지거나 잘려서 버려지거든요. 그래서 저희는 그 나무로 새집이나 곤충집을 만들어주는 활동을 해요. 주말에는 학생, 학부모들과 함께 하는데, 20명으로 구성되어 17주로 진행되는 프로그램 과정이 어느덧 12주차에 접어 들었어요. 문화재단에 공모해서 일부 지원 받으며 추진중이에요. 6월부터는 자투리 나무들로 아이들의 소품이나 인테리어 소품을 만들 계획이에요. 하반신 장애인에게 기술을 가르쳐주고 기계를 집에 설치해서 그분들이 만든 것을 전량매입해 저희가 팔아보자 하고 있어요. 6주 정도의 기간 동안 다섯 분 정도를 시범적으로 교육 시켜서 전량매입을 해보려고 생각 중인데 저희에게는 부담도 있을 수 있으나 일단 해보자 하고 있습니다.

 

부담이 있는데도 하려는 이유는 무엇인지요? 지금이 혹시 돈을 버는 것을 넘어서는 단계인가요?

“(그것이) 사회적기업이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사회적기업은 사회 문제를 경제적으로 풀어주는 것이라고 배웠어요. 옆의 승현씨가 얘기했듯이 나무를 심었는데 그 나무가 돈이 되고 환경문제 해결도 되면 좋은 것 같은 것이죠. 이런 과정을 하다보면 원래 저희가 하려던 일인 아이들에게 곤충집이나 새집을 만들어주는 일도 계속 할 수 있을 거고요.”


취업난이라고 하지만 실상 중소기업에는 지원을 안 해서 사람을 뽑기가 힘들다고 하더라고요. 지금 순표님의 일은 기존의 틀에서는 다른 선택이라는 생각도 들고 일종의 마이너한 선택이라는 생각도 드는데 왜 그런 선택을 하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저희는 채용공고시 실질적으로 지원은 많이 안 해도 들어오고 싶어하는 친구들은 꽤 있어요. 생각보다 복지가 좋고 휴일도 챙겨서 잘 쉬고 월급도 괜찮은 편이거든요. 그래도 저희가 생각한 것 이상의 좋은 친구가 들어오면 금방 다른 곳으로 가더라구요. 그동안 직원이 4~5명 바뀌고 지금 제일 오래 일한 사람이 1년 정도 같이 일하는데 처음에는 부모님이 재정적인 이유로 여기서 일하는 것을 반대하셨지만 저희가 하는 일이 언론에 노출되면서 지금은 굉장히 자랑스러워하세요. 보람을 느낍니다.

경제적 이유라는 현실적 조건이 있기 때문에 젊은 친구들이 이 파트로 넘어오기는 힘들 거라는 상황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저도 서울로 이동할까 생각도 했었어요. 서울의 지원은 규모도 다르고 인력풀도 다르니까요. 그러나 가정이 있어서 이동을 하지는 못했어요. 서울에서 배우면 전문성이 커지고 배우는 지식이 달라지는 것 같아요. 제가 지금 하고 있는 생각도 서울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배우고 난 뒤에요. (서울에서 배우면서 보니) 우리가 그동안 한 것은 소셜미션도 아니었고 사회적기업 흉내였더라구요. 그래서 자극 받아서 6월에 계획한 일정들을 본격적으로 해보려고 하는 것입니다.

원광대 졸업생 중에서 그래픽 디자이너를 뽑고 싶었는데 원광대 1~5등은 취업이 되든 안 되든 다 서울로 가요. 누군가와 교류하고 누군가에게 더 배워야 하는데 여기서는 여기 사람이 최고로 잘 하니까 지역에서 혼자 하는 것은 발전이 안 된다고 생각하고 그러니 서울로 가죠. 각자 꿈들이 큰데 여기서는 그 꿈을 펼치기 어렵다고 생각하는 거죠. 그런데 서울에서 생활하다가 온 친구들은 기대연봉이 올라가 있어서 지역기업 입장에서는 채용이 어려운 상황이고 그 친구들도 지역기업에 잘 안 오려고 해요. 시민사회도 비슷할 것 같네요.”

 

청년 일자리는 물론 교육 분야에도 관심이 많으신 것 같아요.

“아이들 프로그램을 하다보니 저도 교육에 관심이 생겼어요. 초·중학교 아이들을 만나보니 교육과 교육방식에 대한 고민이 드는데, 협동하면 손해 본다는 생각이 있는 것 같아요. 협동을 해보면 좋다는 경험을 해본 적이 없는 거죠. 그래서 일부러 협동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프로그램을 셋팅했어요. 보통은 도구를 가진 사람이 리더이고 주역할이라고 배우는 경우가 많은데, 저희는 망치질을 하는 사람보다 망치질을 잘 할 수 있도록 잡아주는 사람이 더 잘해야 하고 더 중요하다고 이야기 해요. 그렇게 얘기하면 처음엔 서로 망치질을 하려던 아이들이 오히려 잡아주는 것을 하려고 하죠.”

 

이야기를 쭉 듣다보면 하는 일들이 그야말로 ‘활동’인데 본인이 활동가라는 것을 부정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혹시 마음에 안드시나요?)

“그런 것은 아니고요~^^ 아까 얘기한 명희선배님 같은 분이 활동가라고 생각해요. 활동은 신앙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자기 희생과 헌신을 하는 것. 제가 만나고 주로 보는 사람들은 그렇습니다. 그런데 제 생각은 이렇지만 정작 그 분들은 재미있어서 활동을 하신다고 하더라구요.”

순표님의 앞으로 계획을 들려주세요.

“사회적경제가 무엇인지 이제 조금 알게 되었는데 지금 하는 사업들을 통해서 이익도 많이 남고 정관에 따른 분배도 충실히 하고자 해요. 승현씨가 아까 녹색폐기물 얘기했을 때 저는 속으로 비용에 대해서 생각했어요. 만약 국가 보조로만 이 일을 하면 단체나 복지단체 수준인 것인데 저는 기업인으로서 생각하게 되거든요. 자립 없이 하게 되면 자신의 아이디어를 잘 진행하기 어렵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 A4 용지를 만드는 외국 회사인 더블A는 나무 품종개량을 해서 종이로 쓰기도 좋으면서 나무가 빨리 자라게 했다고 해요. 그리고 이 나무를 동남아에서만 심을 수 있게 해서 새로운 나무를 자르지도 않고, 하층민들에게 수익이 창출되는 구조로 만들어서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지요. 저희도 나무를 자르기는 하지만 새집 짓고 곤충집 짓는 것이 원래 버려지던 40%를 살려보자는 취지이고, 이것이 수입이 된다면 다른 공방에서 나오는 나무를 우리가 폐기물을 가져다가 재사용해볼 수 있겠고 ..

저는 기업인으로서 돈을 얼마나 버느냐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어요. 공익활동을 하는 것도 좋지만 처음에 사업시작 했을 때처럼 직원들이 힘들면 안 하느니만 못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이 친구들이 많은 수익은 아니어도 일반적인 수익을 가지고 가고 지속가능했으면 좋겠습니다. 직원들이 윤택하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그것이 첫 번째 목표입니다.”



익산에서 두 청년 활동가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 묘한 기분이 들었다. 새롭고 반가웠으나 한편 낯설고 또 신기했다. 표면적 이유는 ‘단체의 상근활동가’가 아니었기 때문이겠지만 이미 충분히 활동을 하고 있는데도 인터뷰 마지막까지도 손사래를 치며 본인들은 활동가가 아니라고 했다. 무엇이 그들의 활동을 스스로 활동이라 정의하기 어렵게 할까? 활동가는 누구이고 활동은 무엇을 의미하기에? 보다 다양한 활동과 활동가유형이 존재하고 있지만, 여전히 활동의 기준은 엄격하고 소위 전문적이어야 하며 활동가의 삶은 희생적이고 열악하기 때문은 아닐까 속상했다.

그러나 한편 새로운 움직임은 언제나 설레고 잘 되기를 응원하게 되는지라, 이승현 회원의 활동 아이디어와 실질적 참여, 권순표 대표의 에너지와 구체적 사업계획을 어떤 기준이나 명제로 규정하는 것이 오히려 불필요하게도 느껴졌다. 특히 이승현 회원의 사회활동과 NGO의 역할에 대한 생각은 청년세대에 대한 나의 부족한 통념을 아주 가볍게 깨주었는데, 인터뷰 기록을 수차례 읽을 때마다 그의 이런 생각이 더 넓게 많이 퍼지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권순표 대표의 6월 전량매입 계획 사업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많이 궁금하다.  - 유일영(더 이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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