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활동가인터뷰] 활동 과정에서 생긴 상처로 잠시 쉬고 있는 화려한 경력의 활동가, 진경아

이번에 만난 사람은 오랫동안 잘 알고 지내던 진경아(48세)다. 나는 천안댁이라 부르기도 한다. 진경아는 <천안 YMCA>, <복지세상을 열어가는 시민모임> 등에서 활동해 온 오래된 경력의 활동가다. 인터뷰는 주로 현재의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묻고 답하는 형식으로 이뤄졌다. 이전의 활동에 대해서는 여러 번 긴밀하게 대화한 적이 있었기에, 별도로 다시 묻는 것이 오히려 어색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본격적인 대화 내용을 소개하기 전에 진경아의 활동 이력을 간략하게나마 소개하고자 한다. 그래야 두 시간 넘게 진행된(물론, 짧게 정리하기는 했지만) 이 대화의 내용을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진경아를 처음 만난 건 한창 젊은 시절의 천안 YMCA 간사 시절이었다. 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정도 전이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친해지기 시작한 것은 천안의 <복지세상을 열어가는 시민모임> 사무국장으로 일하면서,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운영위원이 된 이후다. 그런데, 내가 진경아를 훌륭한 활동가라 여기며 좋아하게 된 것은 오랜 인연 때문만이 아니다. 개인적으로 복지세상이 주도한 <천안 참여예산 복지 네트워크> 활동은 세계적으로 자랑하고 싶은 풀뿌리운동 사례라 생각한다. 복지와 예산, 참여와 인권 등이 함께 어우러진... 그만큼 나도 그 활동에 애정이 컸었다.

복지 네트워크는 천안 지역의 사회복지 단체 및 복지관 등의 복지 관련 기관이 형성한 네트워크다. 이 네트워크에서는 매년 복지사업의 수혜자들에게 해당 사업이 얼마나 효과가 있었는지를 조사했다. 그리고 그 조사결과를 바탕으로 새로운 복지예산을 편성해 천안시 담당부서에 전달하는 활동을 해왔다. 그 이전에 천안시에 강력한 정치적 세를 과시한 것과 행정에서 보기에도 충분히 대안적 제안일 수 있었기에, 실제 채택 비율도 꽤 높았다. 

그러다 계속해서 복지예산을 확충하라는 요구가 현실적 대안이 될 수 없다는 깨달음(?)으로, 활동과 사업의 기조를 확 바꿨다. 가난한 이들에 대한 복지를 인권의 문제로 확인하고, 이들의 인권을 증진시키기 위한 대안 정책과 사업예산을 제안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이 시도를 매 해 거듭하면서, 당사자들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직접 하는 질적 발전의 과정을 이뤄냈다. 이와 관련된 자세한 내용은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이 2008년에 발간한 「달팽이가 달리기를 시작한 까닭은?-풀뿌리운동 조사보고서」에 실려 있다.

그렇게 잘 나가는 활동을 하던 중 후배에게 복지세상의 사무국장과 그 활동을 물려줬고, 이후 충청남도에 새롭게 설립된 인권센터장으로 새롭게 일을 시작했다. 그런데, 충남도의 인권조례에서 언급한, 성적 지향에 대한 차별금지 내용이 담긴 '충남인권선언'을 이행해야 한다는 조항을 문제 삼아 개신교계의 엄청난 반발이 발생했다. 이로 인해 인권조례가 폐지되는 상황을 맞았고, 여기에 안희정 지사 사건이 터지기까지 했다. 그런 우역곡절로 인해 진경아는 상당히 큰 내상을 받게 됐고, 인권조례를 다시 제정하는 데까지만 활동하고 그 일을 그만뒀다. 아직까지 그 내상은 치유되지 않은 듯하고, 그래서 현재는 활동을 중단한 채 쉬는 중이다.



내가 하고 싶고 잘 할 수 있는 일을 해 오다.


오랫동안 시민사회운동을 해왔는데, 처음엔 어떻게 시민사회운동을 시작했어?

학생운동으로부터 시작했지. 학교에서 학보사 동아리에 있었어. 여기서 자연스럽게 세미나 하고 그랬어. 학보사에 3년 동안 있으면서 글 쓰는 것도 좋아하고 재밌어하고 그랬어. 그래서 지역 언론에 관심이 많았지. 그렇지만 당시 지역 언론 상황이 열악해 사람들을 많이 뽑지도 않았고 해서 거기서 일하지는 못했어. 그래서 1년 정도 반도체 회사 홍보팀에서 일했는데, 너무 재미없어서 그만뒀죠. 그러던 중 ‘천안시민신문’이라는 지역 언론이 생겨 거기서 일하게 됐죠. 들어가서 신나고 재밌게 일했어요. 그러다 신문사가 망했죠. 그렇지만, 여기서 일 할 때 지역에서 주로 시민운동단체들 취재했기 때문에 그 단체들과 활동가들을 많이 알게 됐어요.

그러던 중 천안 YMCA에서 제안이 와서, 거기서 일했죠. 시민사업부 간사로. 거기서 의정감시 활동, 걷고 싶은 천안 만들기, 예산감시 네트워크 같은 전국적 네트워크 활동도 하고 그랬죠. 그렇게 지역 활동과 전국 단위 네트워크 등 재밌는 활동을 많이 했죠.


그렇게 재미있게 일 했는데, 복지세상에서 일하게 된 계기는...?

5년 정도 YMCA에서 활동했는데, 당시 선배는 조직화하지 않는 운동은 운동이 아니라고 강조했어요. 조직 안에 머물러 있지 않고, 사람을 만나서 사람을 성장시키는 것이 운동이라고. 그래서 천안 YMCA는 여러 사업을 만들고 그 주체들을 인큐베이팅 하는 방식으로 일했죠. <천안 녹색소비자연대>도 그렇게 만들었고, 천안 복지세상도 그렇게 만들어졌죠. 

윗 선배들이 그렇게 독립해 나가면서 어느 순간 내 순서까지 오게 된 거야. 그러면서 “왜 너는 그렇게 안 해?”라는 눈총이 쏟아지는 걸 느끼기도 했어요.(웃음) 마음의 준비가 안 됐는데, 나가야 하는 건가 그런 고민을 하고 있었죠. 그래서 새로운 단체를 만들었어. 도시정책연구소라고.

YMCA에서 행·의정 감시, 대중교통, 보행권 관련 활동을 했기 때문에, 그 일은 내게 그리 낯설거나 힘든 일은 아니었어요. 그렇지만 혼자 일하는 게 너무 어려웠어요. 일을 해도 서로 댓거리 하면서 쿵짝을 해야 하는 거잖아요. 그런데 혼자 조사하고 정리하고 혼자 모든 일을 해야 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 좀 우울증이 왔어. 몸도 맘도 힘들었죠. 그걸 잘 돌파하지 못하니까 내가 무능해서 그런 건가 하는 생각도 들고 그랬지. 너무 힘들었는데, 그 때 복지세상에서 제안이 온 거죠. 사람들과 함께 일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 매력적이었어요.

재정적으로도 사실 어려웠죠. 상근비를 제대로 충당하기가 어려웠거든. 월급을 제 때 못 가져 갈 때도 많았어요. 그러던 중에 천안복지세상에서 활동하던 윤혜란 선배에게 연락이 온 거예요.


전임 사무국장은 인큐베이팅 사업으로 유명해졌고, 그래서 그 후임으로 가는 게 좀 꺼려질 수 있었을 텐데.

좀 이상한 게, 당시 30대 초반이어서 인정과 자기 전문 분야에 대한 욕심이 많을 때고, 일도 잘 하고 싶고 인정받고 싶을 그럴 땐데... 그리고 내가 그 후임으로 가면 전임자와 비교되고 그럴 텐데... 근데 그 땐 그런 생각이 잘 안 들더라구요.

내가 복지세상으로 갈 때는 인큐베이팅 사업이 완결될 때였어요. 윤 선배는, 그러니 기존의 활동에 구애받지 말고 네가 하고 싶은 걸 하면 된다고 얘기했어요. 그렇게 얘기해주니까 그런 부담은 없었어요. “그래 내가 하고 싶은 거 잘 하면 되지”하는 생각...

YMCA에서 일 할 때 정책, 예산 등의 활동을 했었어요. 그래서 거기서 예산과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참여 사업을 하는 거는 하나도 부담되지 않았고, 하고 싶었어요. 인큐베이팅 한 단체들하고 지역의 다양한 단체들 네트워킹 하는 것과 정책화 사업을 하는 것이 새롭게 내가 하고 싶은 일이고, 그런 일들은 내게 낯설지 않았어요. 물론 복지 정책은 좀 낯설었지만, 그래서 그 공부하는 게 좀 어려웠어요. 하지만, 그걸 정책화 하는 건 그리 어렵거나 낯설지 않았어요. 그래서 네크워킹 하고 정책화하는 등의 사업은 내가 잘 할 수 있는 거라 생각했고, 기존의 복지세상 사업과 차별적인 거라서 전임자와 비교되는 게 부담되지 않았어요. 새로운 일이고 내가 재미있어 하는 일이고 잘 하는 일이라서...


** 참여예산 조사차 방문한 독일 베를린 리히텐베르그에서 시장과 함께. 참고로, 진경아 오른쪽이 필자


새 술은 새 부대에


요즘은 뭘 하며 지내? 우리 같은 사람들은 쉬고 있어도 이런저런 궁금한 게 많은데...

충남 인권센터 관두고 지금은 아무 것도 안 하고 지내요. 벌써 1년 반이나 지났네. 별로 궁금하진 않아요. 그래도 아는 사람들한테서 이런 저런 이야기 듣는 게 있긴 하지만.


오랫동안 활동해 온 천안 복지세상과도 연락 안 해?

전임자가 자주 나타나면 후배들이 부담될 것 같아서 내가 먼저 찾거나 연락하지 않아요. 지금 일하는 본인들이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게 좋은 거지. 작년 말 올해 초에 연락 와서 이것저것 문의한 적이 있었는데, 그러면 그에 응하는 정도.

참여예산 복지 네트워크 정리하는 것과 관련해 같이 상의하자고 해서 간 적 있어요. 그런데 내 이야기를 먼저 하기가 좀 그렇더라구. 내가 이것저것 이야기하기보다는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됐는지 질문하고 듣는 정도였지. 이 사업을 담당한 간사는 이 사업을 정리하고 싶어 했지만, 오랫동안 대표 사업이었는데 자기가 정리하는 게 부담스러워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대요.

이야기하면서 내가 느낀 것은 계속 하는 게 의미가 없다는 거였어요. 네트워크가 2005년에 만들어져서 15년 간 유지했는데, 당시 이 네트워크가 필요했던 상황과 지금의 여건이나 상황이 다른 거죠. 본인들의 얘기를 들어보니, 과거의 내용과 형태가 유용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과거의 성과에 얽매여 유지해야 한다는 생각을 안 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했죠. 나라면 안 할 거라고. 그 후에 후배들에게서 연락이 와 그 사업을 정리하기로 했다고 하기에, 잘 했다고 그랬죠.

지금 중요한 것은 현 시점에서 복지세상이 뭘 잘 할 수 있고, 필요한 것이 뭔지 이야기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에요. 낡은 틀은 그 틀이 가지고 있는 방식이 있잖아요. 근데, 그 틀이 깨지면, 처음엔 막막하지만, 그보다 현장에서 뭐가 필요한 건지를 찾는 과정이 더 필요해지지 않겠어요? 그래서 그걸 찾으라고 이야기했죠. 뮬론, 그 과정이 힘들다는 걸 알기에 좀 안쓰럽기는 해.


참여예산 복지 네트워크 만들 때와 지금의 상황이 다르다는 건 어떤 건지?

내가 복지세상에 처음 왔을 때는 현장을 직접 지원하는 사업들이 인큐베이팅을 통해 다 떨어져 나갔어요. 현장을 직접 지원하는 사업을 할 게 없었죠. 그래서 현장 사람들을 계속 만나면서 소통하고 워크숍 하고, 이런 저런 사업을 하면서 그 사람들과 함께 네트워크를 만들었어요. 현장에서 필요한 것들을 찾아내면서 그 일을 한 거죠.

그런데, 요즘 얘기 들어보니 그 네트워크 자체가 느슨해지고 함께 뭘 할 분위기가 아니었어요. 그래서 새로운 일을 찾으려면 당사자들을 계속 만나서 이야기해 보라고. 그래야 뭘 할지 알 수 있을 거라고. 지금같이 실무자들 몇 명 만나서는 새롭게 필요한 일을 찾기가 힘들어요.

그건 지금 실무자들이 잘못해서 그런 건 아니에요. 내가 활동하던 때와 분위기도 많이 바뀌었어요. 실은 일 할 때 공식적인 것보다 개인적인 만남을 통해 많이 공감하고 소통하면서 여러 일들이 진행될 수 있었는데, 지금은 그런 만남 자체가 힘들어졌데요. 요즘은 함께 저녁 먹거나 술 한 잔 하는 분위기도 없어졌데요. 그런 상황에서는 힘들죠. 문화 자체가 완전히 다른데, 이런 상황에서는 나도 다시 활동하기가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에요.


그래도 그런 소식 들으면 다시 후배들과 활동해 보고픈 욕구가 솟구치지 않았을까?

사실 지금 일하는 활동가들과 나이 차가 많이 나요. 20년 정도... 게다가 지금 일하는 활동가들 중 함께 일해 본 사람도 현 사무국장밖에 없어요. 그런 상황에서 같이 일하겠다고 하기에는 조심스럽죠. 까딱 잘못하면 꼰대 짓이나 하게 될 것 같아 내 언행도 불편해지고... 그러다보니 쉽게 함께 일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아요.

내가 거기서 일 할 때 함께 일했던 후배들은 10년 정도 차이가 나지만, 별 차이 없이 같이 일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물론,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만, 당사자들은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겠죠.(웃음)


사람으로부터 받은 상처는 쉬이 아물지 않아.


그래도 1년 반 정도 쉬니까, 몸이 근질근질해지지 않아요?

나도 못 견딜 거라 생각했는데, 아직 그렇지 않아요. 그건 두 가지 이유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해요. 내가 나를 잘 몰랐거나, 아직은 시간이 좀 더 필요하거나... 가끔 보면 둘 다 일 수도 있고... 좀 더 지나봐야 알 수 있을 거 같아. 저 같은 경우는 고지식한 성실 스타일이거든요. 출퇴근이나 사업 기간 등 나를 볶으면서 일하는 스타일이라, 뭔가를 안 하는 걸 못 견디는 스타일, 강박 같은... 그래서 쉬는 걸 못 견딜 거 같았어요.

충남 인권센터를 그만 둔 첫 날을 잊을 수가 없어요. 보통 때 같이 6시 반에 일어났어요. 그런데 그 때부터 할 일이 없는 거야. 출근할 때 주말에 쉬는 거와 달랐어요. 마치 내가 잉여 인간, 쓸모없는 사람이 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 부지런히 바쁘게 살아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니까 뭔가 불편한 거야. 다른 사람들이 수근 대는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아침에 차를 끌고 밖으로 나갔어. 근데 갈 데가 없잖아. 그래서 전부터 생각했던 수영장을 찾아 등록하고 왔어요. 그러고 났더니 뭔가 했다는 뿌듯함이 생기데요. 그리고 매일 할 일이 생겼다는 뿌듯함... 그러고도 시간이 남아 산책을 갔다 왔는데, 오전 10시도 안 된 거야. 전에는 집이 잠만 자는 곳이었는데, 낮 시간에 집에 있으니 뭘 해야 할지 모르겠고... 처음엔 그게 너무 힘들었어요. 어떻게 시간을 보내야 할지... 안 하던 집안 일을 엄청 했어요. 난생 처음... 근데, 좀 지나니 그래도 조금씩 편해지데요. 또 운동을 하니 몸도 괜찮아지고.


수영장에 다니니 좀 좋아졌어?

수영장에 다니면서 지금까지 만난 적 없던 사람들을 처음 만나보게 됐어요. 완전 신세계인거야. 좀 친해지니 사람들이 내 별명을 지었더라고. ‘자메이카 국대’... 제가 좀 피부가 검은 편이잖아요. 그런데다가 초보에 비해 수영을 곧잘 하니까... 어느 순간 사람들이 나를 ‘자메이카’ 하고 부르더라고요. 그러면서 친해져서 같이 밥도 먹고 차도 마시고 그랬어요. 그러면서 내가 참 좁은 우물에서 살아왔구나 하는 걸 느꼈어요.

남편한테도 물어봤는데, 같은 차종 가진 사람들 동호회 있잖아요. 차에 그런 스티커 붙이고 다니는 거... 왜 그런 건지 몰랐어. 그런데, 요즘에 사람들이 뭔가 업무와 관련되지 않은 사람들끼리 만나고 싶은 욕구가 있구나 하는 걸 깨달았어요. 새로운 경험을 하고 있는 중이예요.


나도 풀자연 이음 관두고 상근 활동을 하지 않았으니, 3-4년 됐지. 나는 백수 되고 내가 이렇게 바쁠 줄 몰랐어. 제도권에 편입되지 않는 경력 있는 활동가가 별로 많지 않아서 그런 것 같기도 해. 그러면 천안댁에게도 그런 요청이 많이 올 것 같은데...

물론, 외부에서 요청이 온 적도 있지만, 별로 응하지 않았죠. 그리고 자체 일상 활동이 있는 단체와 자체 일상 활동보다는 이음 같이 네트워크를 주로 하는 단체와는 차이가 있죠. 개인적인 캐릭터가 아니라 단체 활동의 성격이 다르기에 차이가 있죠.

인권센터 그만둘 때에는 내상이 심해서, 사람들을 만나고 싶지 않았어. 당시 조례 폐지 국면에 들어서서는 1년 동안 말도 안 되는 준동들에 대항해 싸움하고 악다구니 하다 보니... 그러다 조례 폐지 되고, 다시 조례 제정될 때까지 1년 동안 많이 힘들었어요. 그래서 2년을 채 채우지도 않고 그만뒀어요. 너무 힘들어서...

게다가 조례 폐지되고 다시 제정되기까지 조례에도 없는 조직이 왜 있어야 하느냐는 문제도 의원들이나 행정부터도 계속 나왔고... 그걸 내부적으로 방어해야 했고... 게다가 이런 와중에 안 지사 사건 터지면서, 엉망진창이 된 거죠. 정말 망연자실했죠. 고개를 들고 다닐 수가 없었어요. 참... 너무 힘들더라구요.


그 때 많이 힘들어서 생긴 상처가 지금도 아물지 않았구나...

조례 폐지되는 그 때 개신교계의 말도 안 되는 혐오 발언들, 거기에 부화뇌동하는 정치권, 우리 편이라 생각했던 사람들의 내부 총질까지... 저는 개신교계에서 매일 나와 쏟아내는 혐오발언과 이를 쏟아내는 사람들을 보면서 너무 힘들었어요. 그게 내게 쌓인 내상의 가장 큰 원인이 아닌가 싶어요. 그러니 당사자들은 어떻겠어요. 그러면서 당사자들을 이해한다는 게 어렵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렇지만, 나도 그 때 분노의 정점까지 간 거 같아요.


내가 알기에 독실한 개신교 신자인데, 개신교 목사들이 하나님 이름으로 그런 혐오발언을 쏟아내는 거 보면서, 종교나 신앙에 대해 회의가 들지 않았어?

신앙 생활 한 지는 얼마 안 됐지만, 신앙이 뜨겁게 불타오른 경우야, 나는. 당시 내가 다니던 교회 목사님의 설교도 좋았고, 그래서 당시 내가 최애하던 책이 성경책이었어. 그러면서 하나님을 만났어. 그래서 그 일을 겪으면서 하나님은 사랑과 정의의 하나님인데, 저 목사들과 교인들은 왜 저렇게 하나님을 왜곡하지 하는 생각이 들었어. 그나마 그건 다행이라 생각이 들어. 목사들과 교인들의 그런 혐오발언들을 들으면서 저런 종교나 신이라면 나는 믿지 않아 라기보다는 저들이 하나님을 왜곡한다고 생각할 수 있어서... 그렇지만 그런 목사님과 교인들을 보면서 참 부끄러웠어. 아마 그 때 내가 신앙이 없었으면, 그런 하나님과 종교를 혐오했을 거야.

** 산티아고 가는 길 순례 중


함께 재미있는 일 도모해볼까?


그래도 지금까지 시민사회운동을 해왔는데, 이 곳으로부터는 힘을 좀 받지 못했나?

힘이 돼 줬죠. 특히, 인권단체들이 매우 헌신적으로 이 문제에 함께 해 줬어요. 그러니까 충남도 의원들도 그냥 조례 폐지로 끝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죠. 이 분들 없었으면, 저는 그 안에서 고립무원으로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을 거예요. 그래도 이 상황과 사람들에 대한 실망과 낙심이 커서 마음이 많이 힘들었어요. 그래서 인권센터 관두고 지역에서 뭔가를 하고 싶은 맘을 더 가질 수 없었죠.


힘들 때 인권운동 하는 사람들이 많은 도움이 됐다면, 그래도 시민사회운동 차원에서 맘에 드는 사람과 함께 일 해볼 생각은 없었어? 내가 앞에서 뭘 기획하지 않더라도 다른 사람들이 같이 하자고 제안하는 일에 함께 할 수는 있잖아.

난 아직 그러고 싶은 생각이 안 들어. 난 원래 새로운 일을 하는 걸 좋아했거든. 그런데, 지금은 그런 걸 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아요. 다만, 내가 활동하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빚 진 게 있고, 그 빚을 갚는다는 맘으로 조금씩 들어오는 요청에 응하긴 하지만, 그 정도에요.


천안댁도 한 성격 하잖아. 분위기 어색해도 할 말은 하는 스타일이고, 그러면 자연스럽게 책임질 일도 생기고 할 텐데...

그렇죠.(웃음) 내가 책임질 수 있는 일이면 그렇게 하죠. 하지만, 내가 책임질 수 있는 일이 아니면, 그렇게 하질 못해요. 괜히 꼰대짓 하는 것 같고... 그러니까 점점 얘기를 안 하게 되는 거고... 책임지지 않고 말만 뱉어서는 그 문제가 해결되는 거 아니잖아. 그냥 내가 할 말만 하면 된다고 자위하면 되는 건가? 그런 불편함 때문에 얘기를 잘 안 하게 되더라고.


누가 이것저것 같이 해보자고 하면, 그 중에 재밌는 것도 있을 수 있잖아.

그러면 하기도 해요. 재밌다고 생각하는 거나, 내가 빚 졌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요청이 오면 하죠. 주로 단기간의 사업 같은 거. 얼마 전 서천에서 일하는, 천안에서 일했던 사람이 복지 네트워크를 통해 정책, 예산과 관련한 활동을 기획하면서 도움을 요청한 적이 있었어요. 그래서 좀 도와주는 일을 하기도 했죠. 그런 제안이 오면 제가 할 수 있는 일들은 하고, 연결할 수 있는 일들은 연결해주고... 다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기획해서 뭘 해보고 싶은 맘은 아직 별로 없어요.


그럼 됐어. 그래도 재미있겠다고 생각되는 제안이 오면 한다는 거잖아.

그렇죠. 그럼 하죠.


그럼, 천천히 함께 할 만한 일을 생각해보자고.

_ 인터뷰어 : 이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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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년 활동가이야기주간 프로젝트 일환으로 기획/진행한 '활동가 인터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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