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22 변만사] 재난대응은 나와 이웃, 정부와 기업이 함께 노력해야죠. 세심하고 긴밀하게. - 재난대응공익활동가 정미정

변화를만드는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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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의 시대에 살면서도 재난대응공익활동가는 낯설다. 재난대응, 그것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5년 전 경주지진은 한 사람의 삶에 중요한 터닝포인트가 된다. 재난을 경험한 당사자로, 12년간 사회부 기자로 현장을 누빈 경험으로 재난대응 해법을 만들면서 스스로를 치유해 왔다는 에이팟코리아 A-PAD KOREA 정미정 이사장을 경주에서 만났다. 5년간의 활동과 재난대응을 위한 시민, 정부, 기업의 역할을 이야기하는 담담함에서 오히려 담대함이 느껴진다.      


“재난대응공익활동가 정미정입니다. 경주지진을 겪고 재난구호활동가가 되었습니다. 여전히 많은 분들이 묻습니다. ‘당신은 괜찮습니까?’라고. 저는 다른 이들을 구호하며 나의 상처를 치유하고 극복하는 운디드 힐러(wounded healer)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에이팟코리아 A-PAD KOREA 정미정 이사장 (사진촬영 : 바라봄사진관)

9월 12일이 경주 지진 5년째가 되는 날이에요. 지진주간을 운영하신다고 들었어요. 


재난 이후에 회복과정에서 사람들이 치유되고 스스로 극복하기 위한 활동들을 꾸준히 해오고 있는데 새롭게 한번 해보자는 취지로 치유와 회복을 위한 REMEMBER 시즌1을 진행하고 있어요. 어둡고 두려운 기억은 자꾸 꺼내지 않으면 트라우마가 되거든요.

그 기억을 꺼내서 대면하고 빨래 말리듯 말려보자, 아무것도 아니라고 털어내보자는 마음으로 에이팟코리아가 협력단체로 함께 하고 있어요.  

경주지진 5년째가 되는 2021년 9월, 치유와 회복을 위한 경주아이쿱의 지진 주간 프로그램 REMEMBER 운영에 에이팟코리아가 협력단체로 함께 했다. (자료제공 에이팟코리아)


‘기억하기’부터 시작하고 있는데요, 지진 났을 때 나는 어떤 상태의 상황이었는지 한 문장으로 써보고 그 이후에 어떻게 변했는지 써서 밴드에 올려보자고 했는데 참여자가 80명이나 되었어요. 기대 이상의 참여예요. 

지진 이후에 소리만 들리면 지진이 시작되나 보다 생각하게 된다거나 굉장히 악몽 같은 날로 기억하는데 그 이후로 지구 환경의 소중함을 느끼면서 환경 살리기에 생각과 행동이 적극적으로 변했다는 긍정적인 변화를 글로 적어준 분도 있어요. 아이가 셋인데 지진이 나면 아이들을 어떻게 데려와야 하는지 계속 시뮬레이션을 한다는 분도 있어요. 공부하는 슬기로운 사람이 되었다, 삶을 바라보는 자세가 좀 달라졌다, 삶의 우선순위가 바뀌었다, 평범함의 소중함을 느꼈다는 글도 계속 올라와요. 

우리는 재난이 지나면 잊어버리는데 당사자들은 아주 오랫동안, 평생 트라우마가 지속돼요. 개인의 노력으로 극복되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사회에서 같이 그 짐을 나눠주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괜찮다면 당시 상황과 그 이후의 재난대응 활동을 좀 듣고 싶어요.    

남편이 퇴근하고 거실에서 상 펴놓고 아이랑 셋이 저녁을 먹는데 갑자기 집이 움직이는 거예요. 뭐지, 뭐지 하다가 순간적으로 지진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막 뛰쳐나왔어요. 뉴스도 없고, 속보 자막도 없고 드라마가 계속 방송되고 있어요. 전화도 메신저도, 무선데이터 되지 않았어요. 좀 있다 지진 속보가 한 줄 떴어요. 

일단 애를 데리고 공터로 갔어요. 본진이 난 후 집에 와보니 스무 군데 이상 금이 가 있었고 밤에도 여진이 있었는데, 그 후로 일 년 동안 600번의 여진이 계속되었어요. 집에서 잠을 못 잤어요. 차에서 자거나 마당에 텐트를 쳐놓고 잤어요. 다른 지역으로 피신한 사람들도 있었고 대피소도 없으니까 황성공원에 텐트촌이 생겼어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모여서 텐트 생활하는 시간이 좀 지속이 됐어요. 


당시 방송에서 드라마가 계속 나왔던 장면이 우리 사회나 정부가 재난을 대하는 방식은 굉장히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거라고 생각해요. 보통은 재난이 발생하면 공영방송에서 특별 방송을 하잖아요. 일본은 지진이 나기 전에 방송에서 지진발생 경고음이 나오고 앵커가 속보로 대피안내를 하는데 지진이 나도 드라마만 하고 있으니 우리나라가 재난에 대한 시스템이 너무 안 돼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또 재난의 두려움을 호소하는 사람들을 되게 예민한 사람으로 치부하는 분위기여서 어디 호소할 데도 없고, 내진 설계가 된 공공시설이 별로 없다 보니 시민들이 각자 알아서 살아남아야 하는 건가 했어요. 여진이 계속 있고 지진이 또 올 수도 있으니까 매뉴얼이라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해서 찾아봤는데 한 장짜리 매뉴얼이 있긴 한데 지진이 났을 때 행동 요령 정도예요. 앞으로 지진이 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무엇을 주의해야 할지에 대한 매뉴얼이 있어야 되는데 그게 없었던 거예요. 경주 아이쿱생협이 2017년 6월에 창립하고 제가 이사장이었는데 9월에 재난이 발생했어요. 조합원이 대부분 돌봄을 담당하는 여성들이다 보니 또 지진이 나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너무 불안하다는 얘기들을 많이 했어요. 

우리 공동체에서라도 뭔가 해봐야겠다는 생각으로 활동가들이 모였고, 도쿄방재 한글판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부분만 축약해서 미니북으로 매뉴얼을 만들었어요. 소리 내 읽으면서 교정을 보고 편집해서 2,000부를 제작했어요. 매장에서도 나눠주고, 우편으로도 보내고 시민들에게도 드리고요. 그런데 매뉴얼이 있어도 안 읽으면 소용이 없잖아요. 그래서 매뉴얼 읽기 모임도 했어요.

다음 단계로 재난위원회를 만들었는데 포항 지진 이후 아이쿱 내에서도 재난 대응 활동이 확산 되어야 한다는 움직임이 생겼어요. 제가 재난위원장을 맡게 되면서 전국단위로 확대했던 아이쿱의 활동이 지금 제가 에이팟코리아에서 하고 있는 일들과 자연스럽게 연결되었어요. 

재난위원회에서 먼저 한 일은 재난물품비치예요. 여진이 있고 또 지진이 나면 전부 집을 뛰쳐나올 텐데 우선 조합원 300명 정도에게 나눠 줄 수 있는 생수, 대용품, 은박담요를 준비해서 재난물품으로 매장에 상시 비치했어요. 일본은 주요 공공시설에 재난물품을 비치해 놓고 1년에 한 번씩 열어서 먹는 행사를 한대요. 후쿠시마지진이 났을 때도 수학여행 갔던 학생들이 여행지 근처 학교에서 이 비상물품으로 꺼내 먹고 대피했다가 돌아왔다고 하더라고요.

우리나라는 아직 그 정도까지는 못하지만 우리라도 상징적으로라도 한번 해보자 했어요. 이런 일이 안 생기면 좋겠지만 그래도 혹시나 또 생길지 모르니까. 한 번도 쓰지는 않았어요, 아직까지. 그런데 이건 위로이자 안심이 되는 장치예요. 매장은 물품을 계속 보관하는 데니까 따로 비용이 크게 들지 않아요. 유통기한만 체크하면 되니까. 

당시에 우리 네트워크 안에서도 저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얘기도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저는 그건 경험의 차이, 민감성의 차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재난교육을 시작했죠. 재난교육이 필요했는데 마침 국제재난심리치료 구호단체 <이지스>에서 제안이 와서 제가 바로 하겠다고 했어요. 기획 단계부터 우리가 참여해서  물리적 대응, 심리적 트라우마 대응 두 가지로 시민대상 프로그램을 진행했어요. 1년 계획이었는데 반응이 좋아서 3년 간 했어요. 방사능 누출 훈련, 지진대피, 재난정보 매핑도 하고. 어린이들은 별도 프로그램을 만들어 진행하고요. 이 모든게 전체적으로는 심리치료과정이었어요. 연말에는 콘서트 형식으로 우리가 뭘 했는지, 마음은 어땠는지 편지도 쓰고 사진도 전시하고 공유회를 꼭 했어요. 이게 공동체 회복의 과정이었던 것 같아요.


#. 심리치료에도 골든타임이 있다. 빠른 심리적 돌봄 지원과 탄력적인 대응방식이 중요


재난교육이 당사자들의 심리치료와 공동체 회복에도 도움이 되었군요.

교육하고 얼마 뒤에 포항에 지진이 났어요. 경주도 많이 흔들렸거든요. 그때 트라우마가 확 올라왔는데 심리치료 선생님들이 서울에서 내려와서 그다음 날 바로 심리지원을 해줬어요. 그래서 포항 지진의 트라우마는 없어요. 그런데 경주는 1년을 묵혔잖아요. 그러니까 심리치료를 해도 완전히 없어지지가 않더라고요. 

그때 심리치료에도 골든타임이 있다는 걸 느꼈고 재난 지역에는 심리 지원이 최대한 빨리 들어가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재난지역에 가서 “어땠어요?” 상담하는 게 아니라 위로해 주고 같이 놀고 생활하는 게 모두 심리적 돌봄이에요. 연결돼 있다는 느낌만 줘도 굉장히 가벼워져요. 제도적으로 빨리 정착되면 좋겠어요. 

강원도 산불이 났을 때 어른들이 마을 회관으로 대피했어요. 그때는 제가 아이쿱재난위원장이었는데 에이팟코리아에 어른들의 심리지원부터 했으면 좋겠다고 제안하고 비용을 먼저 보냈어요. 심리지원하시는 분들이 마을에 들어가서 상담이 아니라 꽃그림 그리고 한 달 이상 같이 지냈어요. 

그런데 포항 지진 났을 때 구호소에 심리지원데스크가 있었지만 사람들이 안 갔대요. 어른들이 오지 말라고 했다고 해요. 처음 보는 사람들이 어땠냐고 물어보는데 말하기 싫다고.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공개된 장소에서 심리 지원을 받는다는 것에 마음의 부담감이 있어요. 그런데 에이팟코리아는 한두 달을 거기서 지내니까 조끼만 보고도 “아이고 저이들 왔네” 하셨대요. 

관계가 어느 정도 형성이 되는 게 필요해요. 재난지역에서 심리치료가 필요한 사람들이 부담을 느끼지 않게 탄력 있게 대응하는 방식이면 좋겠어요. 관주도보다는 민간구호단체가 이웃이나 공동체 개념으로 소프트하게 지원하는 게 훨씬 효과가 있는 것 같아요.


재난교육하실 때 재난상황에서 주체는 바로 ‘나’ 스스로를 돌보아야 한다고 강조하신다고요.

혹시 재난대응3원칙 들어보셨어요? 자조, 협조, 공조가 3원칙인데요, 한신 대지진 이후 생존자를 대상으로 지진 났을 때 누구에게 구조를 받았는지 물었대요. 우리는 소방관이나 경찰, 국가에서 나를 구조해줄 거라고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걸 보여준 결과가 나왔어요. 실제로 정부가 구조해 준 건 1.7%에 불과하고 자기가 자기를 구한 경우가 제일 높았어요. 그 다음이 옆에 있던 이웃이나 가족, 지나간 사람 순이었어요. 98%가 본인 스스로 혹은 이웃이 구조를 도왔다는 거죠. 재난이 났을 때 공적 구호가 한 시간 이내에 나에게 오기는 힘들어요. 지방 정부는 가장 피해가 심한 곳을 가야 하잖아요. 재난상황에서  내가 나를 스스로 지키는 게 가장 먼저고, 그 다음으로 이웃이 서로를 돕고 정부가 국민을 지키는 건 제일 마지막이라는 거예요. 자조와 협조를 잘 하는 것이 우리가 재난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키워드인데 자조와 협조는 나와 이웃을 살리는 원칙이기도 하고 협동조합의 원칙과 같아요. 그래서 협동조합이 재난 대응을 제일 잘하겠다고 생각했어요.

자조의 측면에서 조합원 재난대응 훈련을 하고 재난리더를 만들고 재난매뉴얼을 만들면 되겠다 판단했어요. 2018년부터 전국에 해마다 재난리더 양성 과정을 운영하고 있는데요, 우리 같은 생활 속 리더를 만들자는 교육이에요. 재난 강사는 뭔가 지속적으로 업무를 만들어야하는 테스크가 있어야 되지만 재난리더는 재난이 났을 때 빨리 대응할 수 있는 인적 자원이라고 생각해서 민감성을 키워주는 방향으로 교육하고 있어요.

올해 4년 차네요. 재난매뉴얼 <가족을 지키는 대응매뉴얼(2019. 아이쿱소비자생활협동조합)>은 도쿄방재 만든 덴츠사와 재난리더들이 협업해서 새로 만들었어요. 

정미정 이사장은 아이쿱재난위원회 위원장 시절부터 에이팟코리아로 옮겨 온 후에도 재난교육에서 소외된 여성들을 대상으로 재난대응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재난리더교육도 하고 있다. <가족을 지키는 대응매뉴얼>은 국내 최초로 여성의 관점에서 제작된 재난대응 매뉴얼이다. (사진촬영 : 천막사진관)


협조를 위해 아이쿱은 재난구호단체와 협업하겠다가 기조였어요. 일본의 그린쿱처럼 재난구호에서 정부의 지원이 미치지 못하는 공백 있는 지역을 가겠다고 했어요. 


#. 일상에서 연결된 이웃이 재난 현장에서 더욱 빛나는 구호의 빛이 된다 


재난활동 시스템을 위해 해외 연수도 갔었다고요.

네. 일본 구마모토로 재난 연수를 갔었어요. 일본이 지진이 많이 나니까 다 잘할 것 같지만 구마모토도 300년 만의 지진이었대요. 경주와 구마모토는 관광도시라는 공통점이 있는데 100년이 걸리는 구마모토성 복구 과정을 관광 상품으로 보여줄 거라는 얘기를 듣고 숨기지 않고 잘 준비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 굉장히 합리적인 판단이라 생각했어요. 소방과 방재 통합시스템이라든가 그린쿱의 활동, 정부의 구호가 닿지 않는 곳에 사회적 경제나 공익적인 가치를 가진 단체가 지원활동을 보면서 재난대응에 있어서 민간 자원들이 해야 할 일이 많구나 생각했어요. 많이 배웠어요.

인구 일 만 명이 안 되는 작은 마을에 호타루 라는 치매노인돌봄시설의 사례가 인상적이었어요. 8명의 치매노인과 상주 직원 1명이 지내는 곳인데 한 밤중에 지진이 났을 때 마을주민들이 이 분들을 휠체어 태워서 500미터 떨어진 대피소로 모셔갔다고 하더라고요. 재난 상황에서 자기 몸 피하기도 바쁜데 어떻게 이웃들이 여기에 있는 노인들을 떠올렸을까요? 물었더니 평소에 계속 발신했다는 거예요. 메밀을 공동 수확해서 소바 나누기 행사도 하고 된장도 나누면서 우리가 여기 있다는 걸 알렸대요. 억지로 관계를 만드는 게 아니라 자주 보면서 우리가 여기에 있다고 빛을 발신하듯 활동을 일부러 했다고요. 그럼에도 “믿기지 않았다. 우리는 반딧불처럼 반짝 반짝 밝혔고, 그 빛을 보고 이웃이 찾아와줬다”고 했어요. 

또 하나가 그린쿱을 방문해서 매니저에게 재난 대응 매뉴얼이 있느냐, 우리도 실천해보고 싶으니 좀 달라 했더니 ‘매뉴얼 필요 없다 비상연락망과 얼굴을 아는 이웃만 있으면 된다’고 하더라고요. 

아이쿱도 이웃을 연결하는 공동체니까 코로나 상황에서 비대면으로라도 연결하려는 노력을 많이 했어요. 개별화되고 고립되는 상황에서 조금 더 재난 대응의 시각으로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 더 필요하다는 좀 생각을 했어요. 코로나19라는 감염병 재난의 상황에서 더 중요한 이슈가 되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연수 후에 공동체 안에서 재난 교육은 더 섬세하고 깊어졌겠네요.

일본 연수를 다녀와서 정부는 정부가 해야 할 일을 잘하면 되고, 우리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을 먼저 찾아보자 했어요. 아는 관계를 많이 만드는 것이 중요하겠다는 생각을 해서 공동체를 강화하자는 미션이 생겼어요.  

그래서 ‘일상에서 재난을 대비하면서 공동체 같이 만들기’를 하기로 했어요. 우리의 모토는 ‘재미있고 가볍게’였어요. 재난이라는 단어가 너무 무겁고 두렵기 때문에 사람들이 오기 싫어한대요. 그래서 좀 가볍고 재미있게 하자, 처음 경험이 긍정적이지 않으면 반복이 어려우니까 재난에 대한 훈련이나 교육도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받을 수 있게 접근하기로 했어요.  

우리 활동을 보고 연구자들이 많이 왔어요. 우리나라가 경주 지진 이후로 재난이 남의 일이 아닌 나라가 됐잖아요. 재난에 국가가 어떻게 대응해야 하고, 사회가 어떤 시스템을 만들어야 하고, 민간이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에 대해서 자발적인 연구자들이 있어요. 특히 공동체가 어떻게 자기 주도적으로 재난 후에 회복하는지 리질리언스(회복력) 관점의 연구논문들에 많이 소개되었어요. 

재난 후 지역사회 회복력 강화를 위한 자조조직의 역할과 협력(한승헌, 2021)에서 경주아이쿱의 재난대응 자조조직 활동 사례는 재난 후 지역사회 회복력 강화를 위해 공동체 안에서 사회적 자본을 구축한 자조조직 활동으로 코로나로 인한 상황에서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주는 모델로 소개되었고 이 논문은 대학교 교재로 채택되었다고 한다.


#. 재난대응은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만으로 해낼 수 없는 일, 협치가 필요하다


우리 사회가 정부의 재난이나 사회적 참사 대응에 대한 불신이 있어요. 코로나19 이후 더 심해진 것 같기도 해요. 현장 전문가 입장에서 보시기엔 어때요?  

정부의 재난 대응에 대한 불신은 여전히 있죠. 불신은 항상 있을 거예요. 잘해도 불신은 있고 못해도 불신은 있을 거예요. 저는 전 국민이 갖고 있는 세월호 트라우마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아직 흐르고 있는데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재난 대응을 굉장히 중요한 이슈로 가져갔다고 생각해요. 그걸 확실히 느낀 게 포항 지진 났을 때 경주 지진 대응과 너무 달랐어요. 수능을 미뤘잖아요. 약자를 배려해서 공동체가 같이 마음을 맞춘다는 게 감정적으로 배려하는 차원에서는 가능하지만 정부가 그런 결정을 하기는 쉽지 않거든요. 그 결정을 보고 좀 다르다고 느꼈어요.   

그 이후에 해마다 재난이 나고 있잖아요. 매번 다른 형식으로 규모도 역대급으로. 이제는 어떤 정부냐에 따라 재난을 대하는 태도나 관심사가 달라질 시기는 아니에요. 기후재난도 앞으로 일어날 수 있고, 언제 어디서든 재난이 일어 날 수 있는 상황에서는 사회적 합의와 제도적 차원에서 충분히 재난대응 기반을 갖춰야 하는 시기가 왔어요. 정무적으로 재난에 대응하고 있다고 해도 기술적으로 정책적으로 매뉴얼화 되어서 잘 구현되는가는 별개의 이야기거든요. 지금은 코로나19라는 특수한 재난 상황이긴 하지만 어느 정도 정리가 되면 기술적으로, 제도적으로 잘 만들어지고 제대로 구현되고 있는지 점검하고 기록해서 쌓아둘 필요가 있어요.

그리고 재난대응에도 협치가 필요해요. 재난구호에 있어서 누가 주도권을 잡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역할을 잘 나눠서 협치를 잘하는 구조가 만들어지면 좋겠어요. 정부가 다 할 수 있다는 시각을 버리고 민간과 협치를 잘하는 틀을 갖춰야 된다고 생각해요. 재난 대응 3원칙을 보셔도 알겠지만 재난 초기에 정부의 역할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민간에서 재난 상황의 리스크를 빨리 극복하거나 회피할 수 있는 힘을 잘 만들 수 있게 협치 구조도 잘 짜야 된다고 생각해요.

재난 상황에서 정부는 큰 틀에서 우선 돌봄과 경제적 보상을 하다 보면 공동체 회복이나 당사자들에게 필요한 것들을 빨리 캐치하는 게 기술적으로 어려워요. 그런 건 민간이 할 수 있도록 권한과 자원을 잘 나눌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 그 틀을 세밀하게 잘 짰으면 좋겠어요. 지금의 구조는 좀 아닌 것 같아요.

재난대응을 위한 정부의 역할에 대해 “재난상황에서 자조와 협조의 영역들이 잘 기능할 수 있도록 정책적, 재정적 차원에서 생명을 구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고민하고 세밀한 구조 설계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사진촬영 : 바라봄사진관)


리스크가 전쟁이었던 과거와 달리 지금 세대는 재난 대응의 패러다임이나 리더들이 많이 바뀌고 있어요. 요즘 세대들은 자기 주도권과 협치의 개념으로 재난 대응 활동을 하고 있기 때문에 좀 더 세심한 재난대응을 위해서는 새로운 세대에 맞게 패러다임을 재구성할 필요가 있어요. 정부가 너무 주도성을 가지면 지금의 세대는 거기에 부응을 하지 않는다는 거죠. 정부주도의 자원봉사자 시스템만으로는 이제 어려워요. 사회적 경제조직이나 지역공동체에 어느 정도의 자원이나 권한을 배분한다든지 고민을 해야 하지 않을까 해요.

재난대응에 정부가 변수가 될 수 있다는 걸 이미 경험했잖아요. 정부라는 변수가 변하더라도 민간의 좋은 사람들, 조직들로 탄탄한 상수가 된다면 크게 영향을 안 받겠죠. 정부가 아무것도 안 해도 된다는 게 아니라 너무 많은 것을 주도하지 않는 것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상수를 잘 만드는데 정부가 자원을 잘 투여할 필요가 있어요. 


경주지진 이전에 정미정의 삶에 재난이라는 키워드가 있었나요?

없었어요. 제가 경주에서 생협을 하게 된 이유는 서울중심이 아닌 지역에도 사회적 경제라는 새로운 경제 시스템의 대안이 꼭 필요하고, 괜찮은 미래를 위한 괜찮은 아이디어와 상상을 같이 나눌 사람들과 조직이 필요했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우리가 전략이라는 게 있잖아요, 생협이 굉장히 좋은 플랫폼이라고 판단했어요. 조합원들이 삶과 연계된 이슈로 모였기 때문에 유연했고, 이슈를 만들면서 성취하고 나누고 자연스럽게 전환되면서 보수적인 경주에서 젠더, 여성의 리더십을 키우기에도 좋은 플랫폼이 되겠다고 판단했어요. 협동조합 매장을 열기 위해 조합원에게 7억을 모았는데 너무 기반이 없어서 힘들었어요.(웃음)


#. 구호대상자에서 구호당사자로, 스스로 회복하고 치유하는 힘을 기르다 


재난을 당한 당사자가 구호활동가로 나선다는 게 의미 있지만 쉽지 않을 것 같아요. 마음을 돌보고 회복하는데도 시간이 걸리잖아요. 충분히 치유된 상태였는지 지금 어떤 상태인지 궁금했어요. 

질문이 생기죠. 보통은. 그걸 어떻게 하셨냐고 물어보면 답은 그것 같아요. 운디드 힐러 wounded healer 라고 하죠. 상처 입은 치유자.

재난구호 활동과정에서 제가 치유된 것 같아요. 제가 아무것도 안 했으면 계속 힘들어 했을 텐데 그런 걸 만들고 해결하는 과정에서 제가 제일 먼저 치유가 된 것 같아요. 저는 공감형 보다는 해결형인가 봐요. 누가 고민을 털어놓으면 공감해줘야 되는데 자꾸 해결을 하려고 해요. 들어달라는 건데 자꾸 해결책을 제시하는 스타일이거든요. 뭔가 솔루션을 만들어야지 그게 해소돼요. 

기자 생활을 오래 했잖아요. 빨리 상황에 적응해야 되는 일들, 미션을 해결해야 되는 일들을 오래 했기 때문에 그게 좀 익숙한 게 아닌가 싶어요. 그래서 상황이 바뀌면 패닉이 오거나 어떡하지가 아니라 이렇게 한 번 해보자, 저렇게 한번 해보자 솔루션을 만들어 해결을 해야 해요. 생협활동에서도 에이팟코리아에 와서도 솔루션을 만들고 사업을 하면서 계속 성취감을 얻는 것 같고요. 그래서 아마 재난대응 해법을 만들면서 그 속에서 치유한 게 아닌가 생각해요. 

일본은 대피소에 가면 접수할 때 당신이 이 대피소에서 할 수 있는 자원 활동이 있는지 묻는대요. 그리고 밥을 해서 주는 게 아니라 밥을 해 먹을 수 있는 재료를 준대요. 당사자들이 대피소 생활을 하면서 자기효용감을 느끼고 그 속에서 스스로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한 행위들도 계속하고 치유하는 과정이 녹아 있다고 하더라고요. 

우리나라는 대피소 가면 전부 가만 앉아 있고 시간 되면 밥 먹고 약 먹고 하니까 내가 필요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만한 것이 없어요. 그저 대상자일 뿐인 거죠. 그런 건 회복에 효과적이지 않다는 거예요. 

대구에서 지역아동센터 급식 사업할 때도 지역에 문 닫은 식당에 가서 문을 열어서 아이들이 도시락을 만들어달라고 말씀을 드리고 바로 입금을 바로 해 드렸어요. 그분들이 도시락을 만들어 아이들에게 주면서 되게 신나했어요. 그분들도 피해당사자였지만 자기 회복을 하는 과정이 되었어요. 내가 뭔가 쓰임이 있다는 것에 털고 일어날 수 있는 힘이 생겼다고 해요. 이런 과정을 통해서 스스로 회복하기 때문에 재난 대응에 있어서도 회복 탄력성 이야기가 계속 나오고 있어요. 구호를 받아야 되는 대상자가 아니라 구호의 당사자가 되는 경험도 중요하다고 이야기하는 게 그런 이유죠.

저도 그런 측면에서 치유된 게 아닐까 생각해요.


우리사회가 재난이 한번 발생하면 아주 심각했다가 어느 순간 잊어요. 재난과 피해자를 바라보는 시선, 태도에도 그런 게 나타나는 것 같거든요. 

재난은 개인의 트라우마도 상당 기간 가고, 공동체가 붕괴되거나 가족이 해체되기도 하는 어려움이 끊임없이 생겨요. 재난피해자를 피해 보상으로 끝나는 대상으로 보면 안 돼요. 상당 기간 회복이 필요하다는 관점을 가지는 게 필요해요.

우리도 가족이 어려운 일을 겪거나 사망하면 그게 한순간 끝나지 않잖아요. 인생에 있어 계속 트라우마로 작용하고 어려움이기 때문에 상당 기간 회복이 필요한 치유대상자로 봐야 되고, 그러니까 그 분들에게 치유할 수 있는 사회적 자원이 계속 공급되어야 하는 거죠. 


단순히 보상금만 받으면 해결되는 문제가 아닌데도 재난 이슈에는 보상금 얼마 받았다 이런 기사가 늘 나와요. 

그런 보도는 진짜 나오면 안 돼요. 사람들의 시각에 틀을 딱 씌워버리는 거잖아요. 저는 언론의 경솔함도 있지만 거기에 왜 관심을 갖느냐는 거죠, 우리가. 그 뉴스가 나와도 관심 안 가지면 되잖아요. 그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면 되는데 관심을 갖는 이유는 우리에게 있어요. 내 돈도 아닌데 왜 피해자가 얼마 받는지에 관심을 갖는지 자신의 마음을 한번 직시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시선은 다른 데로 가야 한다는 거죠. 피해자들이 얼마나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회복하려면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한지에 관심을 가져야 해요. 그래서 재난 이후 공동체 회복을 위한 매뉴얼이나 로드맵이 꼭 필요하다고 봐요.  


코로나19 얘기를 안 할 수가 없어요. 지금은 자연이나 사회적 재난보다 감염병으로 인한 재난의 시대죠. 포스트코로나를 기대했지만 이제는 위드코로나로 가야한다는 분위기예요.  

요즘 코로나19 백신 이슈가 있잖아요. 개인은 백신을 안 맞을 권리가 있고 공동체 차원에서는 백신접종자가 많아져야 위드코로나가 되는 거잖아요. 백신 접종은 아무도 걸리지 않게 한다가 아니라 중증 환자를 안 만드는 게 목표거든요. 만 명이 걸리고 2만 명이 걸려도 중증으로 안 가고 독감처럼 지나가면 위드코로나가 되는 거예요. 여기서 관건은 사람들이 백신을 빨리 맞아야 되는 거죠, 그래야 위드코로나가 빨리 오는 거죠. 우선 접종대상자였던 기저질환이 있거나 고연령층은 공동체적인 삶에 익숙해서 그런지 큰 이슈가 없었던 것 같은 데 젊은층에서 감염자가 나오면서 자율의 가치와 공동체 가치가 굉장히 충돌하는 시기예요.

접종을 하고 안하고는 개인의 선택이니까 비난할 이슈는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문제는 몰아가는 거예요. ‘이거 왜 맞아야 돼? 국가가 우리를 통제하는 거야? 내 개인의 자유를 보장해줘’ 반대로 ‘전체가 다 맞아야 되는데 네가 안 맞으니까 문제잖아. 넌 왜 개인만 생각해?’ 이렇게 서로를 몰아가는 건 문제라고 생각하거든요. 이 이슈는 우리가 이번 기회에 고민해 볼 필요가 있어요. 그와 별개로 개인의 감염으로 다른 사람이 피해를 보지 않도록 예방차원에서, 내가 백신을 맞을지 안 맞을지를 공동체 구성원으로 조금 더 넓은 고민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감염병으로 인한 재난에서 사회적 약자들이 재난약자가 되고 특히 아이들은 공동체 생활을 시작할 타이밍을 놓치면서 리스크들이 있어요. 친구 만들기도 그렇고 우리가 누렸던 학창실절의 경험들이 지금 거의 너무 없어요. 그런 것들을 골고루 살펴야 할 필요가 있지 않나 해요. 


#. 우리의 미션은 자원을 연결해 현장에 필요한 구호물품을 빠르게 전달하는 것


에이팟코리아와는 어떻게 인연이 되었나요? 

작년 4월에 에이팟코리아에서 이사장 제안을 받았어요. 에이팟코리아는 재난이 났을 때 민간플랫폼을 만들어서 자원을 연결해서 빠르게 구호하는 것이 미션이에요. 조직구성에 제 도움이 필요한 부분도 있었고 제가 아이쿱재난위원장을 했기 때문에 사업을 연결하기에 좋잖아요.(웃음) 그리고 재난피해자에서 구호활동을 하면서 그 영역을 확장하고 확대하는 제 이력이 좀 특이하니까.   

아이쿱재난위원장일 때 재난현장에는 사회적 경제조직과 재난구호단체의 협업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 에이팟코리아와 MOU를 체결했어요. 현장에서 필요한 건 무조건 선지급한다는 내용으로. 시간이 늦어지면 현장에 이미 구호 수요가 없어지기 때문에 뒷북을 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러면 아무 의미가 없으니 현장이 생기면 무조건 돈은 바로 주고 이후에 모금해서 조합에 돈을 채우는 방식으로 하자고 했죠. 

당시에 에이팟코리아에서 놀랬어요. 지금까지 이런 협약은 없다는 거예요. 미리 돈 준다고 약속해 주는 데가 없다는 거예요. 제가 재난을 겪은 당사자이기 때문에 현장에서 뭐가 필요한지 경험적으로 아니까 가능했어요.  


구호현장에서 선지원 후정산의 해법이 통했겠군요.  

대구에서 폭발적으로 코로나19가 확산되었을 때 현장에 갔더니 대구는 유령도시 같았어요. 의료구호에 행정력이 총동원되다보니 사회적 약자들이 더 고립된 상황이었어요. 이때 에이팟코리아와 손발을 맞춰서 아이쿱에서 먼저 수성구 200명 아이들에게 14일간 무료급식을 제공했어요. 그리고 언론사에 보도자료 보내서 이슈화시키고 전국재해구호협회(희망브릿지) 지원으로 5,000명 전체아동으로 확대 지원했어요. 

에이팟코리아로 옮겨 온 후에 구례에 엄청난 수혜피해가 났어요. 그때도 현장에 가서 '아름다운가게'에 지원을 요청하고 이재민들이 집으로 돌아갔을 때 필요한 기초물품을 꾸러미로 먼저 지원했어요. 자원봉사센터에 요청해서 군부대나 지원 인력들 밥차로 식사도 제공하고요. 또 아이쿱 자연드림파크에는 식당과 목욕시설이 있으니까 식사제공과 목욕시켜드리고 모셔드렸어요. 그 분들이 구례에 목욕하러 오는 날은 소풍가는 기분으로 나오셨다고 해요. 우리가 하는 재난구호에는 심리지원까지 포함되어 있어요. 

강원도 대형 산불이 났을 때는 에이팟코리아 직원들이 한 분씩 발사이즈를 재고 서울에서 신발을 사서 포장까지해서 선물처럼 드렸어요. 

 

1년 반이 지났는데요, 자리를 옮기고 달라진 게 있나요?

제가 사회적 경제영역에서 재난 구호로 왔잖아요. 현타(현실자각타임의 줄임말로 입말을 그대로 옮겨 적음)가 자주 오죠. 내가 원래 잘하는 사람도 아니었는데, 어쩌다 지금 이걸 하고 있나... 재난 구호 분야가 힘들어요. 박봉에 현장에 가면 항상 힘든 거 보고 또 현장 갔다 오면 활동가들도 트라우마가 와요. 그래서 회복도 해야 되거든요. 장기간 이 일을 좋아서 하는 사람이 그렇게 많이 없다고 봐요. 

제가 에이팟코리아에 와서 지금 하는 일은 없는 시스템을 갖추고 조직의 구조를 만드는 거예요. 에이팟코리아가 사회적 자원을 잘 연결해서 재난 구호 활동을 하는 플랫폼이 되려면 필요한 자원들 연결도 해야 하고, 회계부터 시작해서 법인이 자체적으로 돌아가는 구조를 만드는 작업도 계속 하고 있어요. 그런 일에 제가 성취감을 느끼는 것 같아요. 

지난해부터 현장구호 활동 외 일상적으로 조직 운영하기 위해 재난리더를 양성하는 재난대응 전문교육팀 래거시를 Legacy 운영하고 있어요. ‘교육은 인류의 지혜를 공동체가 상속하는 것이다’의 의미로 래거시Legacy로 팀 이름을 정했어요. 

처음에 경주아이쿱에서 같이 활동했던 윤정임, 정꽃님 선생님께 일상의 교육에서 소외된 분들 대상의 재난 교육을 부탁했는데 감사하게도 두 분이 사업으로 접근하기보다는 자신의 경험으로 다른 분들이 재난상황이 왔을 때 잘 극복하고 대응할 수 있도록 나누는 것에 의미를 두고 합류해주셨어요. 재난 당사자의 입장에서 경험을 위주로 교육하니 굉장히 효과적이에요. 국내에서 재난 교육 강사 찾기가 쉽지 않아요. 제대로 교육을 받았다 하더라도 자기 경험이 아니라서 교육에 어려움이 있는데 우리는 경험자들이고 스스로 회복을 했고 그 과정에서 무엇이 필요한지를 잘 알기 때문에 모여서 교육안을 만들고 교육하고 있는 게 더 의미 있지 않나 해요. 

작년에 코로나19로 대면교육이 어려워져서 비대면 재난대응교육을 기획 운영했는데요, 지금은 코로나19상황에서 자가격리자가 되었을 때 어떻게 해야 할지 연습하는 교육도 하고 있어요. 슬기로운 자가격리를 위해 꼭 필요한 생활지침과 방역지침을 미리 알려드리고 자가격리상황에 맞게 가정 내 공간 분할과 동선을 만들고 가족자가격리매뉴얼 만들기도 하고 있어요. 교육을 받는 분들이 자가격리자가 됐을 때 이제 당황하지 않을 것 같다는 말씀들을 해요. 


활동역량과 중요성에 비해 아직까지 재난대응플랫폼도 낯설고, 에이팟코리아도 익숙하지 않아요. 

에이팟 A-PAD은 아시아태평양 재난대응플랫폼인데요, 국내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일본에 본부가 있고 아시아 6개국 네트워크로 구성되어 있어요. 동아시아 지역은 지진에 화산에 재난이 잦잖아요. 그런데 재난이 발생했을 때 각 나라에서 유엔에 낸 분담금을 서구적 시각에서 지원하는 경우가 많아요. 동아시아 지역의 구호단체들이 주도적으로 지원하고 활동할 필요가 있다 해서 만들어진 단체예요. 그 분담금이 에이팟코리아에는 오지 않아서 지원 없이 민간의 힘으로 운영해야 하는 상황에서 어려움이 있어요. 그래서 사회적경제 조직이나 기업들이 활발하게 이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협업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어요.


[사진설명]구호단체의 리더로 사회적경제조직과 기업들이 재난에 관심을 가지고 구호단체와 민간재난구호 플랫폼으로 협업하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사진촬영 : 천막사진관)

 

재난 지역에 구호물품을 보유한 기업이 있으면 물류 창고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런 기업들이 재난구호 플랫폼으로 연계가 되면 좋겠어요. 현장에 필요한 구호물품을 우선 지원하고 재해구호협회에서 사후 정산을 하든 아니면 기업이 지역 후원을 하든. 굉장히 적극적이고 확실한 사회 공헌이 될 수 있으니까요.


#. 재난대응을 위한 거버넌스와 집행플랫폼 구축에 정부와 기업의 관심이 필요 


우리나라도 일본처럼 재난대응 거버넌스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시죠? 

일본은 기업-NGO-정부가 연결된 재난대응 거버넌스 모델인 재팬플랫폼이 있어요. 정부는 정부대로 기업은 기업대로 구호에 필요한 물류와 물자를 모으면 NGO가 현장에 바로 집행하는 시스템이에요.

해외의 경우는 재난이 발생했을 때 현장에서 제일 먼저 하는 게 NGO 클러스트를 만들어요. 그래서 등록하면 각 NGO가 하는 일이 뭔지 정리되어서 물자를  배분하고 현장에 빨리 지원할 수 있게 해요. 

우리나라는 아직 이런 시스템이 없어요. 우리나라는 전국재해구호협회(희망브릿지)가 큰 축을 담당하고 있는데 재난 현장에서는 실행하는 경로가 많을수록 현장에 빨리 집행이 된단 말이죠. 시간차가 있으면 아무리 모금을 잘해도 제대로 쓰이는데 어려움이 있어요. 현장에서 실행할 수 있는 역량들을 잘 모아서 재난구호 집행플랫폼을 구조화하면 훨씬 잘 될 것 같아요.

구례 수재와 강원도 산불 현장에서 자원을 미리 주고 현장에 바로 갈 수 있도록 해 본 거예요. 아이쿱과 에이팟코리아가 함께 해서 좋은 사례로 많이 소개가 되었고요. 이 구조를 걸 확대하고 싶은데 기업들이 관심을 많이 안 가져 주시네요.(웃음)


올해 미얀마 지원 활동을 한 걸로 알고 있어요. 당시에 상황이 미얀마로 송금도 힘들었던 상황인데 어떻게 가능했나요? 

아시아 지역의 재난 협업 플랫폼이 필요하다고 제가 아까 말씀을 드렸는데 국내 대형 단체들도 모금을 못 했어요. 모금을 해도 굉장히 늦게 집행이 됐거나 집행이 안 된 경우도 많았을 거예요. 당시에 미얀마가 군부 통제가 너무 심각했어요. 국내로 입금되는 걸 모두 통제했기 때문에 해외에서 큰 금액이 들어오면 바로 계좌정지 시켜버리고 그 기관은 조사대상이 되는 거예요. 길에서 차에 뭐 싣고 다니면 다 열어보고 구호 물품이 발견되면 현장에서 제재가 들어가고 현장에 있는 활동가들도 다니지 못 했어요 현장 모습을 촬영하다가 들키면 잡혀가기도 했어요. 그때 미얀마에 있는 에이팟과 관례를 맺고 있는 활동가들에게 우리가 지원할 수 있는 방법이 없겠냐 해서 돈을 보냈죠. 그 분들이 현지에서 관계 맺고 있는 NGO 관계자들을 통해서 지원을 할 수 있게 된 거죠.

그 지원금으로 파업으로 이탈한 의사들이 시위자들을 위한 치료 공간을 운영했는데  그 곳에 기본치료물자를 지원하고, 파업으로 생계가 어려운 가정에 플라스틱 바스킷에 기본물품을 담아 집집마다 몰래 넣어주고 했어요. 그 활동을 하면서 ‘국제 네트워크가 이럴 때 굉장히 필요하겠다, 굉장히 중요한 협업플랫폼이다’ 이런 생각을 했어요.


활동하면서 어려운 점이 있겠지요, 아니 많겠지요. 

있죠, 많죠. 개인적인 어려움도 있고, 조직적인 측면과 사회적인 측면으로 얘기해 볼까요? 재난이 그렇게 즐거운 이슈가 아니거든요. 좀 즐겁게 해야 지속가능한데 현장에 계속 가야 되고 또 현장에 갔는데 자원이 없잖아요. 현장에 필요한 요청들이 있는데 우리가 자원을 스스로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라 연계와 협력이 잘 안 돼서 지원을 못하게 될 때 느끼는 좌절감도 있고 재난이 갖고 있는 단어의 무게감, 일의 무게감에 내가 현장에서 제대로 보호할 수 있을까에 대한 걱정이 개인적인 부담으로 작용해요. 

조직적인 측면은 인력과 재정 지원 없이 자구의 힘만으로 지속가능한 조직을 만들어가다 보니 쉽지 않다는 것이고, 사회적 측면으로는 좀 벽돌 깨기 느낌이 들어요. 교육을 나가면 재난에 대해서 별로 관심이 없어요. 경험해 본 자와 경험해 보지 않은 자의 격차가 제일 큰 게 재난인 것 같아요. 경험한 분들은 교육내용이 잘 흡수되는데 관심이 없거나 경험이 없는 분들은 설득하기가 너무 어려워요. 그래서 항상 어떤 키워드로 다가가면 좋을지 고민해요.  

재난이라는 주제가 무겁고 어렵게만 느껴졌는데, 앞으로 우리사회에 재난을 이야기하는 자리가 많이 만들어졌으면 좋겠어요.   


#. 구르는 돌처럼 계속 굴러가며 길을 찾고 자연스럽게 다음으로 연결되는 삶


마지막 질문입니다. 재난구호단체의 리더로, 재난대응 공익활동가로 이 길을 계속 가실건가요? 

재난대응 활동으로 자연스럽게 여기까지 왔지만 이걸 너무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하고 있어요. 내 경험이 여기에서 구현되고 필요한 것들을 충족하면 그 이후에는 제가 필요 없다고 생각해요. 

저는 구르는 돌인 것 같아요. 지금의 목표를 정하고 이루고면 자연스럽게 그 다음단계로 연결이 되더라고요. 계속 굴러가면서 길을 찾고 할 수 있는 것들이 충족 되면 필요성이 있는 일을 계속 해 나갈 것 같아요. 

에이팟코리아 이사장도 연임은 가능하지만 2년 임기직인데요, 이사장의 이름으로 개인적 성과를 내기 위해 노력하지는 않아요. 같이 하는 분들께 우리는 코어 워킹 그룹이라고 얘기해요. 내가 이사장이지만 지시하는 조직이 아니라 같은 일을 하는 협업 그룹이라고. 그런 조직문화를 만들면 잘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조직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기여가 다 끝나고 물러나면 그 나름의 의미가 있겠지요. 저는 성과형보다는 기여형 리더 같아요.


피플포체인지가 만난 재난대응공익활동가 정미정은 치유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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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이경원
기획, 기록, 연결로 변화를 만드는 일과 사람을 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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