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활동가인터뷰] 생협운동에서 재난구호 공익활동가로. 운디드 힐러(wounded healer) 정미정


우리 가족이 경주에 내려와 3년을 살면서 경주에서 여행자로 느꼈던 필요와는 다른 삶 속에서의 필요들이 생겨났다. 그것을 활동이라는 이름으로 부를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경주에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에게 이곳에 좋은 활동들이 있는지 묻곤 했다. 그런 인연 중 한 사람이 정미정 활동가다. 처음 만났을 때는 경주아이쿱생협에서 이사장으로 일하고 있었고, 도중에 아이쿱생협연합회의 재난대응위원장으로 활동을 하고 있었는데 최근에는 재난구호 전문단체인 에이팟코리아 이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경주가 재난이라는 단어와 잘 어울리는 도시가 될 거라고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었지만, 정미정 활동가의 삶에 큰 영향을 준 것 같았다. 


활동가 전에는 어떤 직업인이었나요

12년을 방송사 취재기자로 일했습니다. 돌아보면 공익적인 일에 계속 관심을 가져왔다는 생각이 듭니다. 언론사에서 취재하고 뉴스를 만들어 온 일들에는 사회의 어려운 부분들을 개선하고자 하는 공익적인 의도가 들어가 있잖아요. 그리고 새로운 일들을 개척해 나가는 힘도 취재기자로 일했던 습관에서 나온 것 같습니다. 언론사에서는 매일매일 새로운 것을 해야 하잖아요. 아침에 출근해서 정오까지 그날의 뉴스를 마감해야 하는데, 12년간 그런 일을 하다 보니 새로운 일들에 대한 두려움 같은 것은 잘 못 느끼게 되었습니다. 오히려 새로운 것을 하는 걸 좋아합니다. 옛 직장에서 다져진 습관 같은 것이었어요.


그렇게 잘 맞는 일이었는데 왜 그만두게 되었나요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면서도 일을 계속했는데 아이가 4살 때 가와사키 병을 아주 심하게 앓았습니다. 당시에 병원 응급실로 아이가 실려 갔을 때 저는 서울에 출장을 가 있었습니다. 부랴부랴 내려와서 병원으로 갔는데 아이가 저를 외면하더라구요. 화가 많이 난 거지요. 자기는 이렇게 아픈데 엄마가 옆에 없으니까. 상황이 심각해서 대학병원 어린이 중환자실 병동으로 이송돼 병원에서 한 달간 입원을 하며 치료를 받았는데요. 처음에는 남편이 일을 그만두겠다고 했습니다. 아이를 전업으로 키우겠다고 하더라구요. 그 때 일을 그만두고 아이를 키우기에 누가 더 적합한지 남편과 협의를 했는데 아이의 입장에서는 엄마가 옆에 있는 것이 더 좋겠다고 생각했죠.


그렇게 활발하게 직업인으로 살다가 육아에 전념하게 하시는 게 힘들지는 않았나요?

처음에는 뭘 하지 않고 쉬는 게 좋았습니다. 제가 출산하기 바로 전날까지 출근을 했었어요. 막달까지 경찰서를 출입했습니다. 기자로 직장생활 10년이 넘어가니까 마침 쉬고 싶기도 했습니다. 포항에서 아파트에 살다가 경주로 한옥을 지어 이사하게 된 것도 그때였습니다. 전원생활도 느끼고 아이도 키우고 하면서 얼마간은 편하고 행복하게 쉬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이가 커 가면서 조금씩 활동을 시작하셨군요?

생협 조합원으로 처음에는 작은 활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마을지기를 했고, 동아리지기를 했습니다. 당시에는 경주에는 아이쿱생협이 없었고 포항아이쿱의 경주모임으로 존재했어요. 경주에는 300명 정도의 조합원이 있었는데 매장을 만들어야 한다는 이야기는 계속 있었습니다. 그런데 당시에 아이쿱은 매장을 만들려면 조합원이 자발적으로 돈도 모으고 시행을 해야합니다. 그리고 그때는 경주에 매장을 열어도 적자가 날거야 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어떻게 그 힘든 매장을 경주에 만들 생각을 하셨지요?

대통령 선거가 있었어요. 개표방송을 보다가 납득이 되지 않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지역의 부동층이 움직여야 하는구나. 부동층은 누구일까? 우리의 생활이 정치로 인해 얼마나 많이 영향을 받는지 같이 알아가는 작은 활동들을 하고 싶었고 내 주변의 정치에 관심 없는 주부들이 그 중 하나구나 라는 걸 깨닫게 되었습니다. 주변의 변화를 위해 뭔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물론 그때는 그런 이야기를 하지는 않았어요.(웃음)


12년 간의 뉴스취재 경험으로 분석해 내셨군요.

생활 정치를 해야겠구나. 생협을 하자. 그렇게 경주에서 조합을 창립하게 되었습니다. 300명에서 시작했습니다. 조합으로 7억을 모아 매장을 오픈했습니다. 그런데 창립하고 3개월 만에 경주에서 지진이 났습니다. 그런데 당시 세월호 참사에 대한 사회적 트라우마가 심각하게 남아있었고 경주 지진이 났을 때 정부의 재난대응에 대한 불신이 여전했죠. 처음 겪어보는 대형 지진에 정부와 지자체, 시민들 모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당황했던 것 같아요. 그 때 각자도생이라는 단어가 유행했는데 당시 제가 조합 이사장으로 조합원의 안전을 함께 고민하고 해결하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생각했고 그 이후에 생협에서 지진대응 활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재난 대응에 관심을 가지고 실천하며 제도를 개선하는 것도 중요한 생활정치의 하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같이 움직이던 분들은 어떤 분들이었나요

생협 모임에서 동아리지기, 마을지기를 오래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커뮤니티가 형성되었습니다. 또래 엄마들과 교류를 많이 하게 되었는데 대부분 매장에서 장을 보고 싶은 욕구가 높았습니다. 정치에는 관심 없는 생활인들이었는데 활동을 같이 하다 보니 협동조합 안의 민주주의 원칙, 마을 만들기, 사회적 경제, 안전한 식품, 공정무역, 지속 가능성, 안전 등등 새롭고 중요한 것들을 함께 배우게 되었습니다. 자연스럽게 변해갔지요. 지금은 다양한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은 커뮤니티가 되었습니다.

재난대응에 대한 관심도 자연스럽게 이어졌고 처음에는 경주조합에서만 하던 활동이 100개 가까운 전국의 아이쿱조합을 확장되어서 아이쿱 재난대응위위원회가 구성되면서 위원장을 2년간 했고 자연스럽게 재난전문구호단체인 에이팟코리아와 협업으로 이어져 강원도 산불과 코로나19 구호활동을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생활인들의 모임이 활동가들의 모임이 되는 게 어렵지 않았나요?

마음에 공간이 많은 분들이 개방적이고 포용력이 좋고 잘 변하세요. 오히려 생활인들의 모임이었기 때문에 단단한 활동가의 모임으로 변해갈 수 있었습니다. 함께 고민하고 배우고, 담으면 담은 대로 담기고,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우며 함께 성장하고... 제가 그 분들에게 제일 많이 배웠다는 생각이 듭니다.


요즘은 어떤 활동가로 살고 계시지요?

재난구호 공익활동가라는 명칭을 써도 좋을 것 같습니다. 재난구호에는 아직 공익활동가 개념이 없는 것으로 알로 있는데요. 대형 재난이 많아지면서 이제는 재난 대응분야에도 다양한 활동의 영역이 생겨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재난대비를 위한 마을 만들기와 재난 후 회복탄력성을 위한 재난지역 밀착형 회복 프로그램 등 다양한 분야를 고민할 수 있습니다.

물론 재난 구호 분야는 직업적으로 접근해야 전문성이 있고 재난이 일어나면 효용성이 있습니다. 경주 지진때 우리나라에 재난대응 민간 전문가가 거의 없더라구요. 조합에서 재난대응 강의를 하려고 많이 알아봤는데, 서바이벌 전문가는 있었지만 재난대응 민간전문가는 없더라구요. 경주, 포항 지진이나 강원도 대형산불, 코로나19 감염병 재난 등 대형 재난이 일어나면 행정이 대응하거나 돌보지 못하는 부분이 분명히 있어서 민간 전문가의 역할이 있고 무척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에이팟코리아에서 일하는 분들은 재난이 나면 48시간 안에 현장에 들어가 구호를 진행하는 긴급구호 전문가들로 구성되어 있는데요. 저는 아직 직업적 전문가라기 보다는 생협에서 만들어온 일상의 재난대응과 활동의 경험이 남아 있어 아직은 활동가로 불리고 싶습니다.


내가 활동가구나 하는 생각이 언제 드나요?

요즘 ‘내가 활동가’구나 라고 느낄 때는 경주에서 만들어온 일상의 재난대응 활동과 경험을 나누어 달라는 요청과 조언을 나눌 때 인 것 같습니다. 그동안 경주 지진의 경험으로 자조와 협조, 공조라는 재난대응의 원칙을 구체적으로 실현하는 일들을 했습니다.

스스로 재난대비를 준비하는 매뉴얼을 만들고, 이웃을 서로 돕기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그리고 대형 재난 시 이재민을 구호하는 사회적경제와 구호단체간의 협업 플랫폼을 만드는 일을 했는데 돌이켜보니 매우 효율적이고 기능적인

민간의 재난대응 모델을 만들었던 것 같아요. 전국자원봉사센터 컨퍼런스와 서울시 자원봉사센터 컨퍼런스에서 재난대응 사례를 발표하기도 했고 요즘은 전국을 다니며 강연과 함께 재난대응 국가 정책에 대한 인터뷰, 그리고 사회적 경제와 재난구호의 협업을 연결하는 일 등을 합니다. 사람들과 함께 사고를 확장하고 자원을 연결하고 성과를 만들면서 ‘변화’라는 일이 일어날 때 활동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떤 사람들이 조언을 구하나요?

국내에 있는 재난구호 관련한 전문가 집단에서 조언을 구하거나 의견을 달라고 할 때 경주에서 시작한, 생활을 기반으로 한 경험적인 재난 대응 활동이 가치가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실제로 재난구호 업계에서 당사자로 재난을 겪은 사람들이 많지 않더라구요. 경주에서 시작한 생활을 기반으로 한 경험적인 재난 대응 활동이 가치가 있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A-PAD Korea는 NGO와 기업, 언론 등 민간이 주도하는 재난 대응 플랫폼을 구축해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관여하기 어려운 재난현장에서 신속하고 빠르게 구호 활동을 펼치는 활동을 하고 있다. 2019년 강원도 산불재난 구호 활동, 그리고 2020년 코로나19 감염병 재난 시 대구에서 신속하게 활동했던 A-PAD Korea의 여러 구호사업은 대형 재난 상황에서 민간 구호의 플랫폼이 얼마나 중요한지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활동가로 살면서 어떤 것들이 힘든가요?

생협에서는 관계가 힘들었지요. 협동조합에서는 무엇을 하든 협동의 방식으로 진행해야 의미가 있는데 마음 맞추기가 힘들었어요. 경주아이쿱 활동을 할 때는 조합원이 1,500명이고 활동가는 30여 분이었습니다. 초기에는 매장을 열고나서 빨리 손익분기점을 넘어서 흑자를 내야하고 그래야 생협 사업과 협동조합 공동체를 지속할 수 있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목표를 설정하고 일 중심으로 진행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생협은 직원이 아니라 자발적 활동가 조직이어서 자발성으로 일을 성취하기 때문에 자발성과 사업, 활동 목표를 매칭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매장이 성장하고 안정되면서는 관계 중심형으로 바뀌어 갔습니다.

재난구호도 마찬가지입니다. 재난구호라는 물리적 업무를 해내야 하기도 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관계를 만들고 회복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보니 이제 일이 잘 되는 것보다 관계가 참 중요하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코로나19 긴급 구호를 위해 에이팟코리아 구호 전문가가 대구 지역아동센터에 갔을 때 이상한 단체로 오해하고 경계심을 가져서 초기에 애를 먹었습니다. 에이팟코리아는 민간의 재난구호 플랫폼이기 때문에 민간과 기업, 단체, 공동체들의 관계를 미리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때문에 재난대응을 위한 새로운 협력 관계를 만드는 것에 힘을 쏟고 있습니다.


계속 활동가로 살고 싶으신가요?

뭔가 새로운 걸 만들고 시도해 보는 것이 좋습니다. 호기심이 있는 삶을 유지하고 싶어요. 재난구호 활동은 생협에서는 마이너한 활동이었지만 관심이 그쪽으로 갔습니다. 결국은 타의로 전문가가 되기는 했지만요. 원래 그간의 활동을 본다면 사회적 경제 쪽으로 활동이 이어졌겠지만 그 쪽은 좋은 사람이 많아서 그런지 이렇게 재난구호 활동을 이어서 하게 되었습니다. 인디 정신인가(웃음)


계속 배우고 싶은 부분이 있나요?

배울 것이 많습니다. 에이팟코리아에서 일한 지는 3개월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재난은 해마다 일어나고 있고 국가가 효과적으로 감당해내기 어려운 상황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지요. 개인적으로도 그렇고 공동체가 회복 탄력성을 키울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배워가고 싶습니다.


정미정 활동가는 본인을 운디드 힐러(wounded healer)라고 표현했다. 상처 입은 치유자. 내 상처를 극복함으로써 다른 이들을 치유하는 사람이다. 경주 지진을 겪은 후 생활 활동가에서 재난구호 활동가로 삶이 바뀌었다. 아마도 본인의 치유 경험이 강하기 때문에 치유의 필요성, 치유의 어려움 들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그 활동이 오래 지속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터뷰. 피터(경주 신촌서당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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