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에.... 처음 그들이 들어왔을 때 오랜만에 본 선후배, 비슷한 음악영역, 그냥 벽에 부딪히고 볼 수 있는 청년이란 동질감에 공간은 북적였을 것이다. C19로 적막이 흘렀던 골목에 다시 조금의 희망이 깃들고 있다. 그 희망들이 요구들이 퍼즐에 들어맞듯. 계획했던 일정들이 완성되길. 한량마당협동조합 예술감독 종현. 인터뷰를 위해 찾은 아지트에서 공연 연습이 한창인 활동가를 만났다.
소규모도시재생사업지내 축제거리
#클래식 기타리스트 #정미다방 #7月25日
광주와 구미를 왔다갔다 하는 걸로 알고 있어요. 주 활동 분야가 어떻게 되세요.
기타리스트이고요, 연주활동이나 대학에서 학생을 대상으로 강의 중입니다. (대학은 광주에 위치한 대학이고요?) 네 광주 쪽에.
음악활동가이신데, 음악을 처음 접하게 된 계기는 어떻게 되세요?
음악은.. 집에 6살 때 집에 피아노가 있었는데, 유치원 다녀와서.. 피아노에 그냥 놀이삼아 앉은 날부터 건반을 눌러보고 하니까 어머니가 관심을 가지고 피아노 학원에 보내주셨죠.
(그럼 집안에 음악을 하시는 분이?) 아니요. 음악을 하시는 분이 계신 게 아니라 늘 두드렸던 그 피아노는 어머니가 외할아버지에게서 선물 받은 어머니의 추억이 담긴 가보입니다. (본격적으로 음악활동 하겠다고 마음을 정하신 나이는 언제쯤일까요?) 처음에는 예술고등학교에 진학하고 싶었는데, 반대하셔서 접게 되었었고. 그래도 계속 가고싶고 음악을 계속하고 싶은 마음이 유지되어서, 고등학교 때도 계속 기타를 하게 되어서 기타로 전공을 해야겠다. 2학년때 그런 결심이 있었던 거 같아요.
(보통 그시기쯤 기타를 하겠다 마음 먹은 애들이 밴드활동에 관심이 있는 걸로 알고 있거든요. 혹시 밴드?) 네 밴드 했었어요. 중학교때부터 했죠. 정식 밴드는 아니고, 교회안의 찬양밴드라고 하죠. (아, 이전 인터뷰이도 교회 찬양활동을 계기로 음악을 시작하셨더라고요.) 많은 분들이 그렇게 하시죠(웃음)
광주에서 그러면 청년이 된 시기, 19세 학교를 졸업하고 처음 청년으로 나서는 나이가 되잖아요. 그때는 음악계 대학으로 가신건가요?
네, 대학 전공을 예술대학교 음악학부 기타전공을 했습니다. 전공은 클래식 기타를 했는데, 학교는 대전에 위치했고 20대의 대부분은 대전에서 보냈는데.. 예술하는 사람들은 보통, 학교 재학 중에 활동을 많이 하거든요. 저도 3학년 4학년 이때부터 활동을 활발히 했었고, 30대에 들어서며 다시 광주로 와서 그 바탕으로 이어서 하죠. 혼자 독주를 주로 했었고, 노래공연에서의 반주로 같이하거나 이렇게 해왔죠. 대전을 벗어나고서는 학교에서 함께 결성을 계기로 이어진 건 없는 것 같아요.
광주가 문화예술의 도시잖아요? 광주에서 활동하실 때, 이야기도 해 주세요.
네, 아까 말씀 드렸듯이 세 군대 정도의 대학 실용음악과 학생들 전공실기 강의 나가고 있고, 입시생들 지도하고 있고.. 그전 대전에서의 20대 때는 문화센터라든지, 방과후 활동 케어라든지, 학생들 대안학교 같은데 가서 밴드수업도 하고.. (네, 대안학교가 광주에는 삶디자인학교 같은 곳이 있더라고요) 네 거긴, 학교는 아니고 청소년삶디자인센터 인데, 거기서도 밴드활동지도를 하고, 청소년들에게 기타이해를 위한 교습을 했죠.
그럼 한량마당과 만나게 되신 계기는?
음, 한량마당 협동조합 그렇게 오래 된 건 아닌데요. 구미로의 처음은 2018년 2년 전에 왔었는데, 여기서 음악활동하고 있는 후배들을 통해서 또 음악을 하는 다른 사람들을 알게 되었고. 그렇게 알아가다 보니까.. 예술인들을 위해서..뭔가 또 활동을 하고 싶어하고,, 구미를 기반으로 뭔가 이끌어가고 싶어하는 단체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죠. 저도 음악하는 청년으로서 그들과 맘이 들어맞았고, 그렇게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협동조합을 정식적으로 만들어서 함께 활동해나가고 있습니다. (제가 말씀을 안 드렸는데 한번 공연에서 본적이 있어요. 첼리스트 공연이었는데, 함께 협주 하셨죠?) 그때 오셨나요? (네, 협연이 너무 아름다워서 정말 음률에 맞추어 춤추며 들었어요.)
자신의 나이를 정의하는 노래를 하는 가수 아이유 아세요? (네) 그럼, 지금 나이를 표현하는 말씀 한마디 전해 주세요.(제 나이요? 웃음)
음, 바로 떠오르진 않는데, 그런거 같아요. 약간 한세대 전에 나온 슈퍼카 같은 느낌? 현재에서 그 성능이나 외관은 그대로 인정이 되면서, 이제 어느정도 중후해진 느낌이랄까? 새로운 신상스포츠카가 아니라 (그... 나이의 색이 묻어나 계속 쌓인 느낌?) 아직은 에너지가 많이 있다고 생각하고, 왔다갔다 하는 것만 봐도 사실 제 일이 에너지가 있어야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에너지 추진력을 제가 좋아해요, 많이. 만들어서 끌어나가고 생활력 있게 추진력 있게 살아가는 걸 좋아해서 비유를 그렇게 정했어요. 나이를 먹어가긴 하니까.. (그래도 슈퍼카 라면, 처음부터 좋은 성능이죠?) 네, 에너지 및 성능이 좋죠. 물론 새로 나온 것만은 못하겠지만 그래도 다른 차보단 뛰어난 기준점을 가지고 있죠.
현재 어떠한 기준을 가지고 지금의 활동을 이어가고 있나요?
저는 몇가지 기준, 하나로 정리가 되지는 않을 것 같은 데요. 하나는 제가 잘할 수 있는 음악을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보여주는 것. 일단은 제안에서도 행복함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같이 연대해서 이렇게 와서 활동하는데 있어서는, 이 많은 젊은 인력들을 데리고 문화예술적으로 활기차고 에너지가 넘치게 무언가 자꾸 노출이 되고 이런 식으로 활동이 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거든요.
또 지금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만나게 되었는데, 그래서 두 번째 기준은 같이하는 사람들이 같이 행복했으면 좋겠고요.
세 번째로 목적과 방향이 같아지길 바라며, 지금의 목적과 방향은 아까 말씀 드린 것처럼. 이 지역에 있는 더 나아가서 문화예술을 이끌어나가는 새로운 창출을 하고. (구미에서) 이때까지 보여줬던 모습과는 다르게 좀 더 색다른. 퓨전..에 더해 그거란 좀 다른 결의 새로운 문화.. 콘텐츠를 창출해 나가는 게 방향이죠. (여기와 만나지면 로컬이 또하나 탄생되겠죠. 구미지역의) 네, 그렇죠. 협동조합내 마음이 녹아든 여러 꿈을 모아서, 개인적인 바람일 수도 있는데... 그렇게 그렇게 만들어가고 싶습니다.
힘들었던 부분은 없을까요? (제가요? 그런말씀은 안드렸는데..)
사실 많이 힘든 부분이.. 활동하는 것에서는 많이 힘들거나 한건 없었는데... 개인적으로는 음악하거나 예술인들 입장에서 힘든 부분이 있다면.. 갈수록 교육쪽도 마찬가지인데 학생인구도 줄고 이러니까 설자리가 조금씩 사라지는 것 같아요. 물론 본인하기 나름이겠지만 이 상황에서는 더더욱 연주자가 없어요.
(같이 하고픈 연주자를 찾기 힘든?) 저를 찾을 때도, 클래식 기타가 지역에서는 그리 흔하게 연주자를 찾기 힘든 분야에요. 제가 집이 광주지만, 거의 전라남도나 광주쪽에는 전공하는 과가 없어서.. (기존 연주자가 없다면, 기존 연주층을 뚫고 나가기도 어려울 거 같아요) 알지를 못하죠. 공연분야를 담당하는 시청이나 지자체의 담당자들은 예술활동을 하시는게 아니고 그냥 행정공무원이시니까 이런 분야가 생소할 수 있죠. 기관이 관심이 없다면 분야 예술인들이 당연히 설자리가 없는 것이죠. 문화재단 같은 문화관련 법인이 많이 생겨나고 공무원 분들도 생소한 분야 및 사람에 대해 많이 관심을 가져 주시고, 같이 협업할 수 있는 공간이 열린다면 생기 넘치게 펼쳐질 일 들이 정말 많거든요, 재원도 많고.
살펴보면 활동하고 싶고 준비가 되어 있는 예술가들이 많이 있는데, 이 사람들을 어떻게 더 대중들에게 노출을 시키고 시에서도 함께 ‘어떻게 그 자원들을 참여시켜서 서로에게 좋은점이 생기는지’를 고민할 사업을 창출해 낼 수 있으면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저희가 한량마을 협동조합이란 타이틀을 씀으로써 열심히 활동하면서 많이 알려지는 편인데, 이게 알려지니까 그분들이 찾기 시작합니다. 한량예술협동조합을 통해서 행정담당자들과 커뮤니케이션이 되니까 그런 ‘기회’와 ‘협업자리’들이 전보다 많이 생겨나고 있는 현실입니다. 그래서 저희의 존재 이유가 그런 사람들이 설 수 있는 플랫폼 역할을 하는 거죠. 저희가 소속사나 이런 존재는 아니지만, 예술가에게 함께할 타이틀을 찾고 저희와의 커뮤니케이션을 통해서 실무자들이 숨어있는 연주자들을 발견할 수 있는 매개체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을에 있으니 주민들과의 연결도 피할 수 가 없잖아요) 당연히 마을축제가 주민과 연결된 협업이다 보니까.. 관이랑 주민들이랑 함께 저희가 지닌 예술적 부분을 잘 통합을 잘 이끌어 내야 하다보니까 아무래도 조금 어려울 때도 이야기가 잘 통하지 않을 때도 있고 그런 점에선 이사장님이 지금 많이 뛰시죠. 그래도 지금 관계도 쌓아가고 있고 조금 시간이 흐르니까 주민들도 한량마당협동조합을 더욱 더 신뢰해 가고 있다고 생각하고. 팀이 좋은 모습을 보여드린다면 지역의 청년이 더 많은 활동을 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2020년 이후 일정은요?
일단은 연중계획들에 맞추어 음악활동 중입니다. 한량마당 주관으로 하는 각산마을 축제나 문화마당때 제가 예술감독을 맡고 있으니까요. 무대 그러니까 축제에 오면 제가 있겠죠. 또 가깝게는 담양에서 진행하고 있는 연주라든가 카페에서도 연주를 할 겁니다. 연주회에 오면... 볼수 있겠네요.
(카페 이름은요?) 카페는 정미다방이라고 담양에 있는데 7월 25일날.. 각산마을 축제때 가까이 있었던 연주가 코로나 때문에 밀리고 있는 상황이어서 (그렇죠. 아쉬워요.) 6월달에 하기로 했었다가 8월달로 연기되었죠. 그래서 가까이 만날 수 있는 연주는 7월 25일날 2시 담양에 있는 정미다방입니다.
활동가들에게 공통으로 묻는 질문이 있더라고요.
나의 인생을 기준으로 가슴에 품어 둔 문장.. 어록 같은 것이 있을까요?( 웃음 ) 이것을 질문지로 드렸다면 좀 쉬웠을 텐데요.^^ 어~(정미다방 사진을 검색하면 사진을 좀 얻을 수 있겠죠?) 거기가 사실 담양군에 위치한 예전의 정미소를 카페로 만들어둔 장소이고 술담던 주조장 곡식창고도 카페로 만들어 군에서 관리하고 있는데, 이런곳을 카페로 만든 곳에서 연주활동 하기도 했는데.. 정미다방이 크지는 않아요. 예전의 정미소 기계를 살려 놔서 나름의 감성이 살아나는 공간이죠. 좌우명 이런 것은 아닌데.. 제가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것 중 .. 그게 “무조건 못먹어도 고(웃음)” 약간 사기성 같아서 좀.. 항상 도전적이고 할려고 하는 고집 같은게 있어서 다른 말로는 “빠꾸 없다”
지금 한창 움직이고 있는 같은 또래, 청년들에게 한마디를 해주세요.(제가 아는 또래들이요?) 전체적으로, 구미 광주 타지 아무 분관 없이 (예술인?) 힘들게 바쁘게 개척하고 있는 청년들에게 한마디?
본인의 목적과 방향성이 분명하다면 언젠가는 이루려고 하는 부분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경제적인 문제들이라든지 주변의 주변인들로 인해서, 다른 것들 때문에 흔들리지 않기를 바래요. 신념을 가지고 계속 방향을 이어나가면 그 뜻에 맞는 사람들이 모이게 되는 것. 더 많은 활동을 할 수 있고, 이루려고 하는 것에 더 다가갈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흔들리지 않고’) 사실은 제 나이쯤이라고 하면 경제적인 부분 생각을 해야 하고 미래성 미래에 대한 불투명성이 중요해지는 시기라고 생각되는데 그것 때문에 주변에 봐도 많이 포기하거나 그런 부분을 보죠. (인문 독립활동가들도 그래요) 그래도 해나가다 보면 풀리는 일들이 있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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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19로 생긴 변화 누군가의 안전을 지켜야 한다는 보이지 않는 원칙으로 일상으로의 활동 기회가 사라진 것.
각산마을 구미역 후문을 나와 금오산을 향해 도보로 발을 떼 보자. 구미역 광장을 지나 도로 건너편에 25시 마트가 있는데.. 그 왼쪽이 각산마을이다. 금오산을 졸졸 흘러내려온 금오천이 남쪽을 코레일 철도가 동쪽을 안고 금오산에서 내려온 금오지맥 황소봉이 북쪽을 둘러싸고 있는 부채형 마을이다. 금오산진과 쌍을 이루는 진을 이 지역에 두어 황소뿔을 의미하는 각산이란 지명을 얻었다. 마을에서 도시재생대학으로 도시재활성화에 대해 접한지 근 3년이 흘렀다. 주민협의체 활동을 해온지 근 2년. 1억이란 소규모도시재생사업지이지만 이 또한 사업이며 한 사업체의 일이라 받아들여져야 하는 것이다. 대개의 목적을 가진 사업체는 멈춤 상태에서도 각자의 사업완성을 위해서 작업을 멈추지 않고 이어간다. 2번의 뉴딜도전 실패로 끈끈한 주민공동체 판 조성이 힘들었고 주민목적이 흐릿해진.. 이곳은 C19에 멈추어 버렸다. 그럼에도.. 소규모도시재생사업 목적을 이뤄야 한다는 작은 동아줄 하나로 직전 6월 용기 내어 도출해 내었던 협의 또한 지자체의 만류로 8월로 연기되어버렸다. 그 안에서 축제를 담당하는 청년예술인협동조합이 바로 한량마당협동조합이며, 35세의 오종현 예술감독이 함께하고 있다. 골목이 멈출때가 있다면... 흐르는 기류에 따라 움직일 때도 있는 법. 움직임의 가치가 바로 보이지 않더라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수준에서의 움직임을 찾아내는 이들에게서 '활동, 생존'의 기운을 느낀다. C19사태를 잘 대비하는 준비로 한량없이 흐르는 서로간의 호혜의 장 축제마당에서 오종현, 그를 보길 바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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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활동가인터뷰공모 #종현 #김은영 #기타 #예술 #공연 #도시재생 #축제 #청년
골목에.... 처음 그들이 들어왔을 때 오랜만에 본 선후배, 비슷한 음악영역, 그냥 벽에 부딪히고 볼 수 있는 청년이란 동질감에 공간은 북적였을 것이다. C19로 적막이 흘렀던 골목에 다시 조금의 희망이 깃들고 있다. 그 희망들이 요구들이 퍼즐에 들어맞듯. 계획했던 일정들이 완성되길. 한량마당협동조합 예술감독 종현. 인터뷰를 위해 찾은 아지트에서 공연 연습이 한창인 활동가를 만났다.
소규모도시재생사업지내 축제거리
#클래식 기타리스트 #정미다방 #7月25日
광주와 구미를 왔다갔다 하는 걸로 알고 있어요. 주 활동 분야가 어떻게 되세요.
기타리스트이고요, 연주활동이나 대학에서 학생을 대상으로 강의 중입니다. (대학은 광주에 위치한 대학이고요?) 네 광주 쪽에.
음악활동가이신데, 음악을 처음 접하게 된 계기는 어떻게 되세요?
음악은.. 집에 6살 때 집에 피아노가 있었는데, 유치원 다녀와서.. 피아노에 그냥 놀이삼아 앉은 날부터 건반을 눌러보고 하니까 어머니가 관심을 가지고 피아노 학원에 보내주셨죠.
(그럼 집안에 음악을 하시는 분이?) 아니요. 음악을 하시는 분이 계신 게 아니라 늘 두드렸던 그 피아노는 어머니가 외할아버지에게서 선물 받은 어머니의 추억이 담긴 가보입니다. (본격적으로 음악활동 하겠다고 마음을 정하신 나이는 언제쯤일까요?) 처음에는 예술고등학교에 진학하고 싶었는데, 반대하셔서 접게 되었었고. 그래도 계속 가고싶고 음악을 계속하고 싶은 마음이 유지되어서, 고등학교 때도 계속 기타를 하게 되어서 기타로 전공을 해야겠다. 2학년때 그런 결심이 있었던 거 같아요.
(보통 그시기쯤 기타를 하겠다 마음 먹은 애들이 밴드활동에 관심이 있는 걸로 알고 있거든요. 혹시 밴드?) 네 밴드 했었어요. 중학교때부터 했죠. 정식 밴드는 아니고, 교회안의 찬양밴드라고 하죠. (아, 이전 인터뷰이도 교회 찬양활동을 계기로 음악을 시작하셨더라고요.) 많은 분들이 그렇게 하시죠(웃음)
광주에서 그러면 청년이 된 시기, 19세 학교를 졸업하고 처음 청년으로 나서는 나이가 되잖아요. 그때는 음악계 대학으로 가신건가요?
네, 대학 전공을 예술대학교 음악학부 기타전공을 했습니다. 전공은 클래식 기타를 했는데, 학교는 대전에 위치했고 20대의 대부분은 대전에서 보냈는데.. 예술하는 사람들은 보통, 학교 재학 중에 활동을 많이 하거든요. 저도 3학년 4학년 이때부터 활동을 활발히 했었고, 30대에 들어서며 다시 광주로 와서 그 바탕으로 이어서 하죠. 혼자 독주를 주로 했었고, 노래공연에서의 반주로 같이하거나 이렇게 해왔죠. 대전을 벗어나고서는 학교에서 함께 결성을 계기로 이어진 건 없는 것 같아요.
광주가 문화예술의 도시잖아요? 광주에서 활동하실 때, 이야기도 해 주세요.
네, 아까 말씀 드렸듯이 세 군대 정도의 대학 실용음악과 학생들 전공실기 강의 나가고 있고, 입시생들 지도하고 있고.. 그전 대전에서의 20대 때는 문화센터라든지, 방과후 활동 케어라든지, 학생들 대안학교 같은데 가서 밴드수업도 하고.. (네, 대안학교가 광주에는 삶디자인학교 같은 곳이 있더라고요) 네 거긴, 학교는 아니고 청소년삶디자인센터 인데, 거기서도 밴드활동지도를 하고, 청소년들에게 기타이해를 위한 교습을 했죠.
그럼 한량마당과 만나게 되신 계기는?
음, 한량마당 협동조합 그렇게 오래 된 건 아닌데요. 구미로의 처음은 2018년 2년 전에 왔었는데, 여기서 음악활동하고 있는 후배들을 통해서 또 음악을 하는 다른 사람들을 알게 되었고. 그렇게 알아가다 보니까.. 예술인들을 위해서..뭔가 또 활동을 하고 싶어하고,, 구미를 기반으로 뭔가 이끌어가고 싶어하는 단체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죠. 저도 음악하는 청년으로서 그들과 맘이 들어맞았고, 그렇게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협동조합을 정식적으로 만들어서 함께 활동해나가고 있습니다. (제가 말씀을 안 드렸는데 한번 공연에서 본적이 있어요. 첼리스트 공연이었는데, 함께 협주 하셨죠?) 그때 오셨나요? (네, 협연이 너무 아름다워서 정말 음률에 맞추어 춤추며 들었어요.)
자신의 나이를 정의하는 노래를 하는 가수 아이유 아세요? (네) 그럼, 지금 나이를 표현하는 말씀 한마디 전해 주세요.(제 나이요? 웃음)
음, 바로 떠오르진 않는데, 그런거 같아요. 약간 한세대 전에 나온 슈퍼카 같은 느낌? 현재에서 그 성능이나 외관은 그대로 인정이 되면서, 이제 어느정도 중후해진 느낌이랄까? 새로운 신상스포츠카가 아니라 (그... 나이의 색이 묻어나 계속 쌓인 느낌?) 아직은 에너지가 많이 있다고 생각하고, 왔다갔다 하는 것만 봐도 사실 제 일이 에너지가 있어야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에너지 추진력을 제가 좋아해요, 많이. 만들어서 끌어나가고 생활력 있게 추진력 있게 살아가는 걸 좋아해서 비유를 그렇게 정했어요. 나이를 먹어가긴 하니까.. (그래도 슈퍼카 라면, 처음부터 좋은 성능이죠?) 네, 에너지 및 성능이 좋죠. 물론 새로 나온 것만은 못하겠지만 그래도 다른 차보단 뛰어난 기준점을 가지고 있죠.
현재 어떠한 기준을 가지고 지금의 활동을 이어가고 있나요?
저는 몇가지 기준, 하나로 정리가 되지는 않을 것 같은 데요. 하나는 제가 잘할 수 있는 음악을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보여주는 것. 일단은 제안에서도 행복함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같이 연대해서 이렇게 와서 활동하는데 있어서는, 이 많은 젊은 인력들을 데리고 문화예술적으로 활기차고 에너지가 넘치게 무언가 자꾸 노출이 되고 이런 식으로 활동이 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거든요.
또 지금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만나게 되었는데, 그래서 두 번째 기준은 같이하는 사람들이 같이 행복했으면 좋겠고요.
세 번째로 목적과 방향이 같아지길 바라며, 지금의 목적과 방향은 아까 말씀 드린 것처럼. 이 지역에 있는 더 나아가서 문화예술을 이끌어나가는 새로운 창출을 하고. (구미에서) 이때까지 보여줬던 모습과는 다르게 좀 더 색다른. 퓨전..에 더해 그거란 좀 다른 결의 새로운 문화.. 콘텐츠를 창출해 나가는 게 방향이죠. (여기와 만나지면 로컬이 또하나 탄생되겠죠. 구미지역의) 네, 그렇죠. 협동조합내 마음이 녹아든 여러 꿈을 모아서, 개인적인 바람일 수도 있는데... 그렇게 그렇게 만들어가고 싶습니다.
힘들었던 부분은 없을까요? (제가요? 그런말씀은 안드렸는데..)
사실 많이 힘든 부분이.. 활동하는 것에서는 많이 힘들거나 한건 없었는데... 개인적으로는 음악하거나 예술인들 입장에서 힘든 부분이 있다면.. 갈수록 교육쪽도 마찬가지인데 학생인구도 줄고 이러니까 설자리가 조금씩 사라지는 것 같아요. 물론 본인하기 나름이겠지만 이 상황에서는 더더욱 연주자가 없어요.
(같이 하고픈 연주자를 찾기 힘든?) 저를 찾을 때도, 클래식 기타가 지역에서는 그리 흔하게 연주자를 찾기 힘든 분야에요. 제가 집이 광주지만, 거의 전라남도나 광주쪽에는 전공하는 과가 없어서.. (기존 연주자가 없다면, 기존 연주층을 뚫고 나가기도 어려울 거 같아요) 알지를 못하죠. 공연분야를 담당하는 시청이나 지자체의 담당자들은 예술활동을 하시는게 아니고 그냥 행정공무원이시니까 이런 분야가 생소할 수 있죠. 기관이 관심이 없다면 분야 예술인들이 당연히 설자리가 없는 것이죠. 문화재단 같은 문화관련 법인이 많이 생겨나고 공무원 분들도 생소한 분야 및 사람에 대해 많이 관심을 가져 주시고, 같이 협업할 수 있는 공간이 열린다면 생기 넘치게 펼쳐질 일 들이 정말 많거든요, 재원도 많고.
살펴보면 활동하고 싶고 준비가 되어 있는 예술가들이 많이 있는데, 이 사람들을 어떻게 더 대중들에게 노출을 시키고 시에서도 함께 ‘어떻게 그 자원들을 참여시켜서 서로에게 좋은점이 생기는지’를 고민할 사업을 창출해 낼 수 있으면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저희가 한량마을 협동조합이란 타이틀을 씀으로써 열심히 활동하면서 많이 알려지는 편인데, 이게 알려지니까 그분들이 찾기 시작합니다. 한량예술협동조합을 통해서 행정담당자들과 커뮤니케이션이 되니까 그런 ‘기회’와 ‘협업자리’들이 전보다 많이 생겨나고 있는 현실입니다. 그래서 저희의 존재 이유가 그런 사람들이 설 수 있는 플랫폼 역할을 하는 거죠. 저희가 소속사나 이런 존재는 아니지만, 예술가에게 함께할 타이틀을 찾고 저희와의 커뮤니케이션을 통해서 실무자들이 숨어있는 연주자들을 발견할 수 있는 매개체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을에 있으니 주민들과의 연결도 피할 수 가 없잖아요) 당연히 마을축제가 주민과 연결된 협업이다 보니까.. 관이랑 주민들이랑 함께 저희가 지닌 예술적 부분을 잘 통합을 잘 이끌어 내야 하다보니까 아무래도 조금 어려울 때도 이야기가 잘 통하지 않을 때도 있고 그런 점에선 이사장님이 지금 많이 뛰시죠. 그래도 지금 관계도 쌓아가고 있고 조금 시간이 흐르니까 주민들도 한량마당협동조합을 더욱 더 신뢰해 가고 있다고 생각하고. 팀이 좋은 모습을 보여드린다면 지역의 청년이 더 많은 활동을 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2020년 이후 일정은요?
일단은 연중계획들에 맞추어 음악활동 중입니다. 한량마당 주관으로 하는 각산마을 축제나 문화마당때 제가 예술감독을 맡고 있으니까요. 무대 그러니까 축제에 오면 제가 있겠죠. 또 가깝게는 담양에서 진행하고 있는 연주라든가 카페에서도 연주를 할 겁니다. 연주회에 오면... 볼수 있겠네요.
(카페 이름은요?) 카페는 정미다방이라고 담양에 있는데 7월 25일날.. 각산마을 축제때 가까이 있었던 연주가 코로나 때문에 밀리고 있는 상황이어서 (그렇죠. 아쉬워요.) 6월달에 하기로 했었다가 8월달로 연기되었죠. 그래서 가까이 만날 수 있는 연주는 7월 25일날 2시 담양에 있는 정미다방입니다.
활동가들에게 공통으로 묻는 질문이 있더라고요.
나의 인생을 기준으로 가슴에 품어 둔 문장.. 어록 같은 것이 있을까요?( 웃음 ) 이것을 질문지로 드렸다면 좀 쉬웠을 텐데요.^^ 어~(정미다방 사진을 검색하면 사진을 좀 얻을 수 있겠죠?) 거기가 사실 담양군에 위치한 예전의 정미소를 카페로 만들어둔 장소이고 술담던 주조장 곡식창고도 카페로 만들어 군에서 관리하고 있는데, 이런곳을 카페로 만든 곳에서 연주활동 하기도 했는데.. 정미다방이 크지는 않아요. 예전의 정미소 기계를 살려 놔서 나름의 감성이 살아나는 공간이죠. 좌우명 이런 것은 아닌데.. 제가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것 중 .. 그게 “무조건 못먹어도 고(웃음)” 약간 사기성 같아서 좀.. 항상 도전적이고 할려고 하는 고집 같은게 있어서 다른 말로는 “빠꾸 없다”
지금 한창 움직이고 있는 같은 또래, 청년들에게 한마디를 해주세요.(제가 아는 또래들이요?) 전체적으로, 구미 광주 타지 아무 분관 없이 (예술인?) 힘들게 바쁘게 개척하고 있는 청년들에게 한마디?
본인의 목적과 방향성이 분명하다면 언젠가는 이루려고 하는 부분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경제적인 문제들이라든지 주변의 주변인들로 인해서, 다른 것들 때문에 흔들리지 않기를 바래요. 신념을 가지고 계속 방향을 이어나가면 그 뜻에 맞는 사람들이 모이게 되는 것. 더 많은 활동을 할 수 있고, 이루려고 하는 것에 더 다가갈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흔들리지 않고’) 사실은 제 나이쯤이라고 하면 경제적인 부분 생각을 해야 하고 미래성 미래에 대한 불투명성이 중요해지는 시기라고 생각되는데 그것 때문에 주변에 봐도 많이 포기하거나 그런 부분을 보죠. (인문 독립활동가들도 그래요) 그래도 해나가다 보면 풀리는 일들이 있다고 생각해요.
C19로 생긴 변화
누군가의 안전을 지켜야 한다는 보이지 않는 원칙으로 일상으로의 활동 기회가 사라진 것.
각산마을
구미역 후문을 나와 금오산을 향해 도보로 발을 떼 보자. 구미역 광장을 지나 도로 건너편에 25시 마트가 있는데.. 그 왼쪽이 각산마을이다. 금오산을 졸졸 흘러내려온 금오천이 남쪽을 코레일 철도가 동쪽을 안고 금오산에서 내려온 금오지맥 황소봉이 북쪽을 둘러싸고 있는 부채형 마을이다. 금오산진과 쌍을 이루는 진을 이 지역에 두어 황소뿔을 의미하는 각산이란 지명을 얻었다. 마을에서 도시재생대학으로 도시재활성화에 대해 접한지 근 3년이 흘렀다. 주민협의체 활동을 해온지 근 2년. 1억이란 소규모도시재생사업지이지만 이 또한 사업이며 한 사업체의 일이라 받아들여져야 하는 것이다. 대개의 목적을 가진 사업체는 멈춤 상태에서도 각자의 사업완성을 위해서 작업을 멈추지 않고 이어간다. 2번의 뉴딜도전 실패로 끈끈한 주민공동체 판 조성이 힘들었고 주민목적이 흐릿해진.. 이곳은 C19에 멈추어 버렸다. 그럼에도.. 소규모도시재생사업 목적을 이뤄야 한다는 작은 동아줄 하나로 직전 6월 용기 내어 도출해 내었던 협의 또한 지자체의 만류로 8월로 연기되어버렸다. 그 안에서 축제를 담당하는 청년예술인협동조합이 바로 한량마당협동조합이며, 35세의 오종현 예술감독이 함께하고 있다.
골목이 멈출때가 있다면... 흐르는 기류에 따라 움직일 때도 있는 법. 움직임의 가치가 바로 보이지 않더라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수준에서의 움직임을 찾아내는 이들에게서 '활동, 생존'의 기운을 느낀다. C19사태를 잘 대비하는 준비로 한량없이 흐르는 서로간의 호혜의 장 축제마당에서 오종현, 그를 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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