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전, 지역에서 청년커뮤니티 하나를 만들었다. 서울에 살지 않아 이런저런 기회를 놓친 친구들 3명이 뭐라도 해보자고 만든 단체(?)였다. 천안은 호두가 유명하고, 우리에겐 청년학교가 필요하니까 ‘호두와트마법학교’로 하자고. 풀네임으로 이름을 말하기 너무 부끄러운 그 커뮤니티는 내 20대를 지탱하게 하는 힘이었다. 우린 동네에서 놀면서 서로의 일상을 변화시키고 스스로의 삶을 꾸리는 법들을 배웠다. 가장 좋은 소득은 지금도 서로의 대나무숲이 되어주는 동료들을 만난 것이다. 지역 시민단체활동가로 살아가며, 가장 툴툴대고 불만이 많지만, 가장 진지한 고민을 하고 있는 내 칭구칭긔(서로를 부르는 호칭) 임가혜를 소개하고 싶다. (*평상시 대화 형식대로 표현하게 되었습니다. 질문과 대답이 섞여있기도 합니다.)
거창하게 시작해볼게. 활동이란 무엇인가. 너는 어떤 활동가인가.
처음부터 너무 하는 거 아니냐. 특별하게 생각해본 적은 없다. 사회를 조금 더 나은 곳으로 만들려고 하는 모든 일들을 활동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문제를 해결하거나, 판을 만들고 사람을 조직하거나, 가끔 싸움에 참여하는 일을 업으로 삼는 사람이 활동가라고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자기규정이 아닐까. 자기 스스로를 개인활동가로 규정하는 사람도 있고, 단체 활동에 열심히 참여해도 그냥 참여했을 뿐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도 처음에는 어색했는데, 요즘에는 자연스럽게 활동가라고 소개한다. 언어가 익숙해지기도 했고 내 스스로 그렇게 이야기하는 것에 대한 거리낌이 별로 없다. 내가 어떤 활동가인지는 잘 모르겠다.
어떻게 하다가 활동가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는가? 우리 또래들은 그런 선택을 잘 안 하지 않았나.
어린 시절부터 집 안 분위기가 진보적이었던 것 같다. 단편적으로 기억이 나는 것은 5월 1일 날 아빠가 회사를 안가고 데모하러 간다고 이야기했던 일, 언제인지 모르겠지만 대통령 선거할 때 누구 뽑았냐고 물어보니 권영길을 뽑았다고 해서 이유를 물었더니 ‘노동자는 노동자를 뽑아야지’라고 돌아왔던 대답. 알게 모르게 관심이 싹 트고 있던 것 같고 자연스럽게 사회 과목을 좋아하고 관련 학과에 진학했다.
관심은 늘 있었지만 관련된 일을 해야겠다고 결심한 계기가 있긴 하다. 대학교 3학년 때인가, 오마이뉴스 기획기사로 접하게 된 삼성노동자산재사건(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던 황유미씨가 백혈병으로 사망한 사건)이 컸다. 그 때 엄마가 삼성에서 클린룸 알바를 하고 있었다. 가끔 집에 가면 공장에서 유독가스가 나온더라, 삼성이 몰래 배출을 한다더라, 누군가는 백혈병에 걸렸다고 하더라, 갑상선이 아픈 것 같더라고 실없는 소리를 했다. 워낙에 엄마가 엄살이 심해서 갑상선은 통증이 느껴지는 부위가 아니라며 삼성 같은 대기업이 그렇게 소홀하게 일하지 않는다고 엄마의 말을 무시했었다. 그런데 그 기사를 접하고는 펑펑 울었다. '내 믿음이 틀렸구나. 저 사람이 우리 엄마가 될 수도 있겠구나'라는 자각을 처음으로 했던 것 같다. 이 후에 사회문제에 조금 더 적극적으로 관련된 일들을 찾아보게 되었다.
@자신의 앞 날을 모른 채...
그러다가 KYC에 들어가게 된건가?
천안에 돌아와서 일단 지역에서 활동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고 검색창에 ‘천안시민단체’ 치니까 KYC가 제일 먼저 나와서 가입을 했다. KYC에서도 젊은 사람이 직접 회원가입을 하니까 반가웠는지, 적극적으로 활동을 권유하기도 하고 알바 자리도 소개시켜주었다. 두 군데 정도 단체를 거치고 결국 KYC에서 일하게 되었다. 일하면서 지역 내 지형(?)을 파악하는 눈치도 배우고, 나에게 선뜻 선의를 베푸는 좋은 사람들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왜 하필 KYC였나?
별 생각 없이 들어가긴 했다. 시민단체에서 일해보고 싶기도 했고, 대학원을 다니고 있어서 학비를 내야 했다. 탄력근무를 할 수 있다고 하기에 큰 고민 없이 결정했다. 시간이 보장되는 것이 가장 컸던 것 같다. 2014년 10월부터 시작했으니까 지금 7년 차이다.
들어가보니까 어땠나?
다 똑같더라. 일하기 싫은 건.(늘 하는 소리. 웃음) 처음에 들어가서 벽화그리기 사업과 홍보, 여성리더DB구축사업, 교류 사업, 회원 동아리사업 등등의 다양한 일을 했다. 3년 차에 슬럼프가 크게 왔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한 번도 못 쉬었기 때문에 소진된 것도 있었고 권태기이기도 했다. 너한테 매일 그만두고 싶다고 징징대지 않았나. 지금 돌이켜보니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내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때 가장 힘들었던 것 같다. 내가 하는 일이 스스로 설명이 안 되는데 나한테 일들이 주어지는 것에 화가 많이 났었다.
@기본적으로 불만이 많은 표정. 꾸짖을 가에 흘겨볼 혜
그러면 그만 둘 수 있지 않았는가.
신기하게 그럴 때마다 늘 사업개편이 되거나, 재밌는 일들이 조금 생기니까 버티면서 계속 하게 되었다. 이제 할 만하니까 조금 더 있어볼까? 라고 생각하고. 또 조직이나 사업 개편을 할 때 내가 너무 열심히 참여해서 만들어놓고 빠질 수가 없어서 근근이 연명하다 보니 여기까지 와버렸다.
힘들었지만 조직 안에서 재밌게 할 수 있는 일을 찾을 수 있는 기회들이 만들어지긴 했다. 네가 벽화사업 할 때 벽화금지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던 말이 생각났다. 그래도 버티면서 배운 것들이 있다면?
벽화 그리는 법?(웃음) 그래도 경험이나 시간은 그냥 흘러가는 것은 아니니까. 내가 뭘 싫어하고, 뭘 좋아하는지, 어떻게 일해야 행복한 사람인지 배울 수 있었다. 추상적이지만 일하는 리듬이 몸에 배기도 했다. 예전보단 힘을 빼고 일을 하는 법을 알게 된 것 같다. 열심히 일을 안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매사에 이유를 찾거나 고민하지 않는다. 전에는 그것 때문에 괴로웠는데 지금은 조금은 내려놓을 수 있다. 어쨌든 힘들어했던 사업들은 나중에 좋은 기회가 되어서 다 없앨 수 있었으니까. 다행이다.
사무국장님이 나가시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사무국장이 된다.(지금은 권한대행 국장) 조직을 보는 눈이 달라졌을 것 같다. 지금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나?
KYC는 이슈파이팅을 하는 조직은 아니다. 꽤 오래 전부터 우리 단체 활동의 핵심은 ‘회원의 직접 참여’였던 것 같다. 공익적 회원활동을 하거나 예산분석모임에 참여하는 등 활동의 과정 속에서 ‘시민이 되어가는 공간을 만드는 단체’ 이라고 스스로 생각하고 설명하고 있다.
시민단체는 회원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단체다. 회원들의 기반이 충분한지, 다른 변화가 필요하다고 느끼는지 궁금하다. KYC는 네가 원하는 활동을 지속하는 것이 가능한 조직이라고 생각하는가?
말하기 조심스러운 게 어쨌든 사무국장이 되었는데 그게 가능하지 않은 조직이에요 말할 수는 없으니까.(웃음) KYC 정도면 회원 참여가 높은 편이지만, 예전보다 역동이 많이 떨어지긴 했다고 한다. 활동의 세대가 바뀌기도 했고, 자기영역으로 성장해서 다른 공간에서 활동하는 사람도 있고. 우리의 활동이 욕구를 충족해주지 못하는 것도 있다. 어쨌든 새로운 활동을 하면 변화가 생길 수 있다고 기대하고 있다. 고민이 되는 부분은, 활동에 동의를 해서 함께 하더라도 회원가입은 안 하더라. 요새는 굳이 가입을 하지 않아도, 필요에 의해서 모이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하고 유동적이다. 그래서 단체 자체에 대한 한계는 느끼고 있다.
맞다. 요새는 느슨한 연대조직이 충분히 가능한데, 왜 KYC 같은 시민단체가 굳이 필요할까?
좀 다른 것 같다. 자발적인 활동들이나 촛불 같은 시민참여적 공간에도 판을 까는 사람이 있다. 홍보물을 만드는 사람이 있고 확성기를 준비하는 사람들이 있고, 일이 되기 위해서 조직된 힘이 반드시 필요하고 느낀다. 그 사람들의 활동공간이나 자양분이 시민단체인건 맞는 것 같다. 그래서 다른 활로를 찾기는 해야 할 텐데 고민이 된다. 나도 당장 내 친구들도 가입시키긴 힘든데.
운동권 선배그룹을 보면 친구들을 잘 가입시킨다. 너무 신기하지 않나?
신기하지.
@여성의 날 행사. 늠름함.
그런 운동권 선배들과 같이 일을 하면서 어땠나?
확실히 활동하는 것이 다르긴 하다. 결합하거나 도와주는 부분에서 강하고 끈끈하다. 장단점이 있는데 운동권이었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라고 굳이 느끼는 것은 없는 것 같다. 가끔씩 느끼는 문제의식은 정의롭고 진보적인 사회를 말하면서 실망스러운 모습들을 발견할 때다. 내 사람 챙겨주기나 물 밑에서 작업하기라던지. 너무 자연스러운 패거리 문화를 형성하고 있는 것을 볼 때 조금 실망스럽다. 우리 세대에는 이런 문화가 없어지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최근에 새로운 청년활동가가 왔다. 한 살 차이 밖에 안 나는데 활동에 대한 인식 차이가 느껴진다. 나는 일을 오래 하기도 하고, 관성에 약간 젖어있는 편인데 새로 온 간사님은 활동가의 사명감이나 과한 노동을 당연하게 여겨지는 문화를 보고 많이 놀랐다고 한다. 주말 근무를 해서 대체휴무를 요청했는데 활동가 마인드가 아니라는 이야기를 듣기도 하고. 솔직히 이야기하면 월급을 받으려고 왔는데 그런 요구가 느껴져서 부담스러웠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맞다. 그래서 새로운 세대의 사무국장이 되면 조직 문화가 달라질 거라고 기대하고 있다. 어떤 노력들을 할 수 있을 것 같은가?
우리도 인력이 부족하니까 제도의 도움을 받아 청년활동가를 뽑긴 했지만 고민을 많이 해야 하는 지점인 것 같다. 필요해서 뽑아놓고 노동력만 착취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가치도 전하면서 같이 일할 수 있는 동료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제대로 가르쳐 주지도 않으면서 사명감을 섣불리 요구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NPO센터에서 나온 조직문화 툴킷을 뽑아서 새로 오신 간사님하고 대화를 오래 나누었다. 활동가에게 있어서 워라밸은 무엇인지를 가장 많이 이야기했던 것 같다. 나도 그게 많이 중요한 사람이다. 집으로 가는 순간 일에 대한 생각을 차단하고, 단톡방에선 퇴근하고 연락 안 했으면 좋겠다고 요구도 했었다.
너무 당연하게 활동과 자신의 삶이 일치되어 있는 모습을 보기도 하는데 나는 그렇게까지 할 자신은 없다. 활동이 나고, 내가 활동이 되면 자기를 다른 자리에 서서 볼 수 없게 된다. 그러다가 꼰대가 되고, 고인물이 되고 결국엔 건강하지 못하게 활동하게 되는 것 같다. 활동을 비난하면 자기 삶을 비난하는 게 되어버린다. 그러니 쉽사리 잘못을 인정하지 못하고 ‘내가 어떻게 살았는데!’로 변해버리는 모습을 보곤 하는데 우리 그렇게는 되지 말자고 종종 이야기를 하곤 한다. 내 활동에 건강성을 위해서라도 너무 몰입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늘 간격을 두고 내 자리에서 서서 내 일을 바라보는 것이 필요하다.
워라밸이 있는 삶, 알맞은 보상을 받는 것이 우리 세대에겐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옳은 일'이기 때문에 그것만을 주장하다가 다른 대화의 기회를 놓쳐버리는 경우가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워라밸은 지속가능한 건강한 활동을 위해서 필요하다는 의미인 것 같다.
맞다. 내가 혹시 그런 말 하는 꼰대가 되면 혼내줘. 내가 어떻게 살았는데. 우리는 그렇게 안했는데. (웃음)
그런데 천안KYC라서 가능한 이야기인 것 같기도 하다. 사안이 급박한 조직의 경우에는 균형을 맞추는 것이 불가능에 가까울 수도 있다. 그래서 시민단체나 활동가들은 노동에 대한 충분한 대화를 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
KYC는 선배들이 길을 잘 닦아놓은 편이다. 워라밸이 가능한 환경이다. 보통은 미혼인 활동가들이 많은데 기혼인 여성들이 오래 일할 수 있도록 조직 문화가 만들어졌다. 육아휴직도 유연하고 아이들을 데리고 일을 하는 것도 자연스럽다. 활동 성격 때문이기도 하지만 조직 문화가 잘 만들어진 편이다.
@워라밸의 핵심. 맥주를 손에서 놓지 않는다.
그럼 앞으로의 KYC 활동은 어떻게 변화할 것 같나?
잘 모르겠다. 기존에 했던 사업들을 내 방식대로 다시 이야기하는 작업들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주민자치는 KYC의 주요활동이라고 하는데 ‘자치’보다는 행정과의 관계, 주민자치회라는 조직으로서의 주민자치에 집중했던 것 같다. 다시 한번 생각해볼 수도 있는거다. 회원들과의 관계도 고민이고 걱정이다. 이 전 국장님이 가진 상징성도 있고. 맺은 관계들이 있었는데 나랑은 다르다. 운영위원도 대표도 다 내년에 바뀌어서 많은 변화가 생길 것 같다. 스트레스가 있긴 하지만 힘들 때마다 어디선가 변화와 새로운 동력이 생겼으니까 리셋의 포인트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우린 나름(?) 청년 활동도 했다. 우리 다음에 또 다른 밀레니얼들이 시민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시민단체나 활동가들은 뭘 할 수 있을까?
‘어떤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되겠다.’라는 막연한 상은 있는데 그런 참여를 지속하게 하는 건 정말 어려운 것 같다. 의견을 갖고 자기 생각을 언어로 가지는 훈련이 많이 필요한 것 같다. 미디어를 매개로 모이는 것도 좋을 것 같고. 선배들이 왜 우리를 이렇게 반가워했는지 술을 사줬는지 이해가 된다. 고민해도 잘 안 되는 일을 자발적으로 하겠다고 나섰으니. 이제 나도 벌써 새로운 사람이 반가울 세대가 되었다. 40이 되기 전에 그만두고 싶은데.(웃음)
그만두면 뭐하고 싶나. 활동 영역이라던가. 포부라던가.
포부? 없어. 물어보지마.
간사 32호봉을 꿈꾸다가 사무국장이 되어버렸다. 어떤 각오를 가지고 있는지.
옛날에 노무현 대통령이 '나는 새로운 세대를 여는 대통령인 줄 알았는데 문을 잘 닫는 대통령이었다' 이런 얘기를 했었다고.(웃음) 나도 문을 잘 닫고 싶다. 단체 문을 닫는다기보다는 내가 마주했던 문제들이 우리 세대에서 끝났으면 좋겠다.
해산하겠다는 이야기인가.
해산하는 것을 두려워하진 않으려고는 한다.(웃음) 호두와트처럼. 활동하면서 권태기거나 세대 차이를 혹독하게 앓고 있었는데 그 시기에 서로한테 많은 지지가 되었었다. 덕분에 대부분 지역에 남기도 했고. 지금은 그 때만큼 농밀한 접촉을 하거나 의미를 가지지 않기에 소멸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보면 KYC도 천안사랑청년회로 출발하고, 학생운동 하다가 지역에 남고자 하는 사람들이 계속 지속해왔던 활동이다. 그 세대는 그걸 유지하는 것도 큰 미션이니까 남아 있을 수 있는거고. 남아 있으면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도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지역에 천안KYC가 있어야하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는가.
이 단체를 플랫폼으로 여기고 활동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있다. 지금은 브로커들이 많지만 민주시민교육이나 퍼실리테이팅의 영역에서 역할에서 시민단체같이 건강한 생각을 할 수 있는 조직의 역할이 필요한 것 같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없어. 물어보지 마.
가혜가 7년동안 ‘존버’하는 동안 나는 3번째 이직을 하고 쉬는 중이다. 이 친구는 실업급여 받는 백수인 나를 부러워하고, 나는 꾸준하고 단단한 임가혜의 일상을 존경한다. 오래 활동하기 위해, 적지만 여전히 머무르는 사람들을 위해, 그리고 다가올 새로운 사람들을 위해. 딛고 있는 자리를 지키며 균형을 지키는 칭구칭기의 곁을 지키며 오래 응원하고 싶다. _ 인터뷰. 쇼샤나
#호두와트마법학교 #간사 #시민단체 #천안 #충남 #충청남도 #활동가인터뷰공모 #임가혜 #박소산 #청년
7년 전, 지역에서 청년커뮤니티 하나를 만들었다. 서울에 살지 않아 이런저런 기회를 놓친 친구들 3명이 뭐라도 해보자고 만든 단체(?)였다. 천안은 호두가 유명하고, 우리에겐 청년학교가 필요하니까 ‘호두와트마법학교’로 하자고. 풀네임으로 이름을 말하기 너무 부끄러운 그 커뮤니티는 내 20대를 지탱하게 하는 힘이었다. 우린 동네에서 놀면서 서로의 일상을 변화시키고 스스로의 삶을 꾸리는 법들을 배웠다. 가장 좋은 소득은 지금도 서로의 대나무숲이 되어주는 동료들을 만난 것이다. 지역 시민단체활동가로 살아가며, 가장 툴툴대고 불만이 많지만, 가장 진지한 고민을 하고 있는 내 칭구칭긔(서로를 부르는 호칭) 임가혜를 소개하고 싶다. (*평상시 대화 형식대로 표현하게 되었습니다. 질문과 대답이 섞여있기도 합니다.)
거창하게 시작해볼게. 활동이란 무엇인가. 너는 어떤 활동가인가.
처음부터 너무 하는 거 아니냐. 특별하게 생각해본 적은 없다. 사회를 조금 더 나은 곳으로 만들려고 하는 모든 일들을 활동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문제를 해결하거나, 판을 만들고 사람을 조직하거나, 가끔 싸움에 참여하는 일을 업으로 삼는 사람이 활동가라고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자기규정이 아닐까. 자기 스스로를 개인활동가로 규정하는 사람도 있고, 단체 활동에 열심히 참여해도 그냥 참여했을 뿐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도 처음에는 어색했는데, 요즘에는 자연스럽게 활동가라고 소개한다. 언어가 익숙해지기도 했고 내 스스로 그렇게 이야기하는 것에 대한 거리낌이 별로 없다. 내가 어떤 활동가인지는 잘 모르겠다.
어떻게 하다가 활동가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는가? 우리 또래들은 그런 선택을 잘 안 하지 않았나.
어린 시절부터 집 안 분위기가 진보적이었던 것 같다. 단편적으로 기억이 나는 것은 5월 1일 날 아빠가 회사를 안가고 데모하러 간다고 이야기했던 일, 언제인지 모르겠지만 대통령 선거할 때 누구 뽑았냐고 물어보니 권영길을 뽑았다고 해서 이유를 물었더니 ‘노동자는 노동자를 뽑아야지’라고 돌아왔던 대답. 알게 모르게 관심이 싹 트고 있던 것 같고 자연스럽게 사회 과목을 좋아하고 관련 학과에 진학했다.
관심은 늘 있었지만 관련된 일을 해야겠다고 결심한 계기가 있긴 하다. 대학교 3학년 때인가, 오마이뉴스 기획기사로 접하게 된 삼성노동자산재사건(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던 황유미씨가 백혈병으로 사망한 사건)이 컸다. 그 때 엄마가 삼성에서 클린룸 알바를 하고 있었다. 가끔 집에 가면 공장에서 유독가스가 나온더라, 삼성이 몰래 배출을 한다더라, 누군가는 백혈병에 걸렸다고 하더라, 갑상선이 아픈 것 같더라고 실없는 소리를 했다. 워낙에 엄마가 엄살이 심해서 갑상선은 통증이 느껴지는 부위가 아니라며 삼성 같은 대기업이 그렇게 소홀하게 일하지 않는다고 엄마의 말을 무시했었다. 그런데 그 기사를 접하고는 펑펑 울었다. '내 믿음이 틀렸구나. 저 사람이 우리 엄마가 될 수도 있겠구나'라는 자각을 처음으로 했던 것 같다. 이 후에 사회문제에 조금 더 적극적으로 관련된 일들을 찾아보게 되었다.
@자신의 앞 날을 모른 채...
그러다가 KYC에 들어가게 된건가?
천안에 돌아와서 일단 지역에서 활동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고 검색창에 ‘천안시민단체’ 치니까 KYC가 제일 먼저 나와서 가입을 했다. KYC에서도 젊은 사람이 직접 회원가입을 하니까 반가웠는지, 적극적으로 활동을 권유하기도 하고 알바 자리도 소개시켜주었다. 두 군데 정도 단체를 거치고 결국 KYC에서 일하게 되었다. 일하면서 지역 내 지형(?)을 파악하는 눈치도 배우고, 나에게 선뜻 선의를 베푸는 좋은 사람들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왜 하필 KYC였나?
별 생각 없이 들어가긴 했다. 시민단체에서 일해보고 싶기도 했고, 대학원을 다니고 있어서 학비를 내야 했다. 탄력근무를 할 수 있다고 하기에 큰 고민 없이 결정했다. 시간이 보장되는 것이 가장 컸던 것 같다. 2014년 10월부터 시작했으니까 지금 7년 차이다.
들어가보니까 어땠나?
다 똑같더라. 일하기 싫은 건.(늘 하는 소리. 웃음) 처음에 들어가서 벽화그리기 사업과 홍보, 여성리더DB구축사업, 교류 사업, 회원 동아리사업 등등의 다양한 일을 했다. 3년 차에 슬럼프가 크게 왔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한 번도 못 쉬었기 때문에 소진된 것도 있었고 권태기이기도 했다. 너한테 매일 그만두고 싶다고 징징대지 않았나. 지금 돌이켜보니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내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때 가장 힘들었던 것 같다. 내가 하는 일이 스스로 설명이 안 되는데 나한테 일들이 주어지는 것에 화가 많이 났었다.
@기본적으로 불만이 많은 표정. 꾸짖을 가에 흘겨볼 혜
그러면 그만 둘 수 있지 않았는가.
신기하게 그럴 때마다 늘 사업개편이 되거나, 재밌는 일들이 조금 생기니까 버티면서 계속 하게 되었다. 이제 할 만하니까 조금 더 있어볼까? 라고 생각하고. 또 조직이나 사업 개편을 할 때 내가 너무 열심히 참여해서 만들어놓고 빠질 수가 없어서 근근이 연명하다 보니 여기까지 와버렸다.
힘들었지만 조직 안에서 재밌게 할 수 있는 일을 찾을 수 있는 기회들이 만들어지긴 했다. 네가 벽화사업 할 때 벽화금지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던 말이 생각났다. 그래도 버티면서 배운 것들이 있다면?
벽화 그리는 법?(웃음) 그래도 경험이나 시간은 그냥 흘러가는 것은 아니니까. 내가 뭘 싫어하고, 뭘 좋아하는지, 어떻게 일해야 행복한 사람인지 배울 수 있었다. 추상적이지만 일하는 리듬이 몸에 배기도 했다. 예전보단 힘을 빼고 일을 하는 법을 알게 된 것 같다. 열심히 일을 안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매사에 이유를 찾거나 고민하지 않는다. 전에는 그것 때문에 괴로웠는데 지금은 조금은 내려놓을 수 있다. 어쨌든 힘들어했던 사업들은 나중에 좋은 기회가 되어서 다 없앨 수 있었으니까. 다행이다.
사무국장님이 나가시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사무국장이 된다.(지금은 권한대행 국장) 조직을 보는 눈이 달라졌을 것 같다. 지금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나?
KYC는 이슈파이팅을 하는 조직은 아니다. 꽤 오래 전부터 우리 단체 활동의 핵심은 ‘회원의 직접 참여’였던 것 같다. 공익적 회원활동을 하거나 예산분석모임에 참여하는 등 활동의 과정 속에서 ‘시민이 되어가는 공간을 만드는 단체’ 이라고 스스로 생각하고 설명하고 있다.
시민단체는 회원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단체다. 회원들의 기반이 충분한지, 다른 변화가 필요하다고 느끼는지 궁금하다. KYC는 네가 원하는 활동을 지속하는 것이 가능한 조직이라고 생각하는가?
말하기 조심스러운 게 어쨌든 사무국장이 되었는데 그게 가능하지 않은 조직이에요 말할 수는 없으니까.(웃음) KYC 정도면 회원 참여가 높은 편이지만, 예전보다 역동이 많이 떨어지긴 했다고 한다. 활동의 세대가 바뀌기도 했고, 자기영역으로 성장해서 다른 공간에서 활동하는 사람도 있고. 우리의 활동이 욕구를 충족해주지 못하는 것도 있다. 어쨌든 새로운 활동을 하면 변화가 생길 수 있다고 기대하고 있다. 고민이 되는 부분은, 활동에 동의를 해서 함께 하더라도 회원가입은 안 하더라. 요새는 굳이 가입을 하지 않아도, 필요에 의해서 모이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하고 유동적이다. 그래서 단체 자체에 대한 한계는 느끼고 있다.
맞다. 요새는 느슨한 연대조직이 충분히 가능한데, 왜 KYC 같은 시민단체가 굳이 필요할까?
좀 다른 것 같다. 자발적인 활동들이나 촛불 같은 시민참여적 공간에도 판을 까는 사람이 있다. 홍보물을 만드는 사람이 있고 확성기를 준비하는 사람들이 있고, 일이 되기 위해서 조직된 힘이 반드시 필요하고 느낀다. 그 사람들의 활동공간이나 자양분이 시민단체인건 맞는 것 같다. 그래서 다른 활로를 찾기는 해야 할 텐데 고민이 된다. 나도 당장 내 친구들도 가입시키긴 힘든데.
운동권 선배그룹을 보면 친구들을 잘 가입시킨다. 너무 신기하지 않나?
신기하지.
@여성의 날 행사. 늠름함.
그런 운동권 선배들과 같이 일을 하면서 어땠나?
확실히 활동하는 것이 다르긴 하다. 결합하거나 도와주는 부분에서 강하고 끈끈하다. 장단점이 있는데 운동권이었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라고 굳이 느끼는 것은 없는 것 같다. 가끔씩 느끼는 문제의식은 정의롭고 진보적인 사회를 말하면서 실망스러운 모습들을 발견할 때다. 내 사람 챙겨주기나 물 밑에서 작업하기라던지. 너무 자연스러운 패거리 문화를 형성하고 있는 것을 볼 때 조금 실망스럽다. 우리 세대에는 이런 문화가 없어지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최근에 새로운 청년활동가가 왔다. 한 살 차이 밖에 안 나는데 활동에 대한 인식 차이가 느껴진다. 나는 일을 오래 하기도 하고, 관성에 약간 젖어있는 편인데 새로 온 간사님은 활동가의 사명감이나 과한 노동을 당연하게 여겨지는 문화를 보고 많이 놀랐다고 한다. 주말 근무를 해서 대체휴무를 요청했는데 활동가 마인드가 아니라는 이야기를 듣기도 하고. 솔직히 이야기하면 월급을 받으려고 왔는데 그런 요구가 느껴져서 부담스러웠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맞다. 그래서 새로운 세대의 사무국장이 되면 조직 문화가 달라질 거라고 기대하고 있다. 어떤 노력들을 할 수 있을 것 같은가?
우리도 인력이 부족하니까 제도의 도움을 받아 청년활동가를 뽑긴 했지만 고민을 많이 해야 하는 지점인 것 같다. 필요해서 뽑아놓고 노동력만 착취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가치도 전하면서 같이 일할 수 있는 동료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제대로 가르쳐 주지도 않으면서 사명감을 섣불리 요구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NPO센터에서 나온 조직문화 툴킷을 뽑아서 새로 오신 간사님하고 대화를 오래 나누었다. 활동가에게 있어서 워라밸은 무엇인지를 가장 많이 이야기했던 것 같다. 나도 그게 많이 중요한 사람이다. 집으로 가는 순간 일에 대한 생각을 차단하고, 단톡방에선 퇴근하고 연락 안 했으면 좋겠다고 요구도 했었다.
너무 당연하게 활동과 자신의 삶이 일치되어 있는 모습을 보기도 하는데 나는 그렇게까지 할 자신은 없다. 활동이 나고, 내가 활동이 되면 자기를 다른 자리에 서서 볼 수 없게 된다. 그러다가 꼰대가 되고, 고인물이 되고 결국엔 건강하지 못하게 활동하게 되는 것 같다. 활동을 비난하면 자기 삶을 비난하는 게 되어버린다. 그러니 쉽사리 잘못을 인정하지 못하고 ‘내가 어떻게 살았는데!’로 변해버리는 모습을 보곤 하는데 우리 그렇게는 되지 말자고 종종 이야기를 하곤 한다. 내 활동에 건강성을 위해서라도 너무 몰입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늘 간격을 두고 내 자리에서 서서 내 일을 바라보는 것이 필요하다.
워라밸이 있는 삶, 알맞은 보상을 받는 것이 우리 세대에겐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옳은 일'이기 때문에 그것만을 주장하다가 다른 대화의 기회를 놓쳐버리는 경우가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워라밸은 지속가능한 건강한 활동을 위해서 필요하다는 의미인 것 같다.
맞다. 내가 혹시 그런 말 하는 꼰대가 되면 혼내줘. 내가 어떻게 살았는데. 우리는 그렇게 안했는데. (웃음)
그런데 천안KYC라서 가능한 이야기인 것 같기도 하다. 사안이 급박한 조직의 경우에는 균형을 맞추는 것이 불가능에 가까울 수도 있다. 그래서 시민단체나 활동가들은 노동에 대한 충분한 대화를 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
KYC는 선배들이 길을 잘 닦아놓은 편이다. 워라밸이 가능한 환경이다. 보통은 미혼인 활동가들이 많은데 기혼인 여성들이 오래 일할 수 있도록 조직 문화가 만들어졌다. 육아휴직도 유연하고 아이들을 데리고 일을 하는 것도 자연스럽다. 활동 성격 때문이기도 하지만 조직 문화가 잘 만들어진 편이다.
@워라밸의 핵심. 맥주를 손에서 놓지 않는다.
그럼 앞으로의 KYC 활동은 어떻게 변화할 것 같나?
잘 모르겠다. 기존에 했던 사업들을 내 방식대로 다시 이야기하는 작업들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주민자치는 KYC의 주요활동이라고 하는데 ‘자치’보다는 행정과의 관계, 주민자치회라는 조직으로서의 주민자치에 집중했던 것 같다. 다시 한번 생각해볼 수도 있는거다. 회원들과의 관계도 고민이고 걱정이다. 이 전 국장님이 가진 상징성도 있고. 맺은 관계들이 있었는데 나랑은 다르다. 운영위원도 대표도 다 내년에 바뀌어서 많은 변화가 생길 것 같다. 스트레스가 있긴 하지만 힘들 때마다 어디선가 변화와 새로운 동력이 생겼으니까 리셋의 포인트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우린 나름(?) 청년 활동도 했다. 우리 다음에 또 다른 밀레니얼들이 시민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시민단체나 활동가들은 뭘 할 수 있을까?
‘어떤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되겠다.’라는 막연한 상은 있는데 그런 참여를 지속하게 하는 건 정말 어려운 것 같다. 의견을 갖고 자기 생각을 언어로 가지는 훈련이 많이 필요한 것 같다. 미디어를 매개로 모이는 것도 좋을 것 같고. 선배들이 왜 우리를 이렇게 반가워했는지 술을 사줬는지 이해가 된다. 고민해도 잘 안 되는 일을 자발적으로 하겠다고 나섰으니. 이제 나도 벌써 새로운 사람이 반가울 세대가 되었다. 40이 되기 전에 그만두고 싶은데.(웃음)
그만두면 뭐하고 싶나. 활동 영역이라던가. 포부라던가.
포부? 없어. 물어보지마.
간사 32호봉을 꿈꾸다가 사무국장이 되어버렸다. 어떤 각오를 가지고 있는지.
옛날에 노무현 대통령이 '나는 새로운 세대를 여는 대통령인 줄 알았는데 문을 잘 닫는 대통령이었다' 이런 얘기를 했었다고.(웃음) 나도 문을 잘 닫고 싶다. 단체 문을 닫는다기보다는 내가 마주했던 문제들이 우리 세대에서 끝났으면 좋겠다.
해산하겠다는 이야기인가.
해산하는 것을 두려워하진 않으려고는 한다.(웃음) 호두와트처럼. 활동하면서 권태기거나 세대 차이를 혹독하게 앓고 있었는데 그 시기에 서로한테 많은 지지가 되었었다. 덕분에 대부분 지역에 남기도 했고. 지금은 그 때만큼 농밀한 접촉을 하거나 의미를 가지지 않기에 소멸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보면 KYC도 천안사랑청년회로 출발하고, 학생운동 하다가 지역에 남고자 하는 사람들이 계속 지속해왔던 활동이다. 그 세대는 그걸 유지하는 것도 큰 미션이니까 남아 있을 수 있는거고. 남아 있으면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도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지역에 천안KYC가 있어야하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는가.
이 단체를 플랫폼으로 여기고 활동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있다. 지금은 브로커들이 많지만 민주시민교육이나 퍼실리테이팅의 영역에서 역할에서 시민단체같이 건강한 생각을 할 수 있는 조직의 역할이 필요한 것 같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없어. 물어보지 마.
가혜가 7년동안 ‘존버’하는 동안 나는 3번째 이직을 하고 쉬는 중이다. 이 친구는 실업급여 받는 백수인 나를 부러워하고, 나는 꾸준하고 단단한 임가혜의 일상을 존경한다. 오래 활동하기 위해, 적지만 여전히 머무르는 사람들을 위해, 그리고 다가올 새로운 사람들을 위해. 딛고 있는 자리를 지키며 균형을 지키는 칭구칭기의 곁을 지키며 오래 응원하고 싶다. _ 인터뷰. 쇼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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