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인터뷰] 어느 환경활동가의 고향살이 - 구미 김팔곤

밀짚모자로 얼굴을 반 쯤 가리고 자전거를 타고 논에서 일하다 돌아오고 있는 일흔의 김팔곤 활동가를 초여름의 솔바람이 불고 있는 들녘에서 마주쳤다. 그는 몇 년 전 귀향하여  막역한 고향 친구들과 술 한 잔의 여흥을 즐겼는데 코로나로 인하여 만나지 못하는 날이 길어졌다. 그런데 급기야는 코로나19 기세가 꺾이자 하루가 멀다 하고 모여서 소주를 주거니 받거니 했단다. 코로나19 시대를 살아가다 보니 생활이 다소 불규칙하여 몸이 견디지 못하고 대상포진이 엄습했단다. 평소 친하다 보니 말을 친근하게 하기로 해서 반말로 받아 적어보았다.


건강은 회복되셨나요?

처음에는 엄청난 고통이 있었는데 지금은 많이 회복 중. 이번에 많이 아프고 보니 건강에 대한 자신감이 넘쳐서 전조증상이 있었는데 눈치채지 못했던 것 같아. / 정영자(활동가의 아내) : 술을 너무 좋아하는데다 동네 일이랑 여러 가지 모임에서 한잔 두 잔이 불러온 참사랍니다.) (웃음)


지금도 카센터를 하고 계시나요?

아직 힘이 남아있는데 일을 그만 둘 수는 없어서 오후 서 너 시까지 일하고 퇴근하고 있지.


카센터를 하게 된 동기가 있었나요?

그때는 중학교도 시험 쳐서 들어갔는데 세 군데나 합격했지만 가난해서 학교를 못 가게 되었지. 농사일을 하다가도 흰 칼라 교복을 입고 자전거 탁 타고 학사모 쓰고 지나가는 학생들이 얼마나 멋있게 보이고 부러웠던지.

(네 마음이 많이 아팠겠네요)

내 나이 오십에 IMF가 터졌는데 자식 셋이나 대학에 다니고 있었고 등록금 걱정에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지. 그전에는 영광 자동차에서 공장장으로 일을 하다가 작은 카센터를 시작하여 밤낮없이 일했어. 남보다 일찍 출근해서 새벽에 카센터 문을 열었지.


어릴 때 기계나 자동차 쪽으로 관심이 있었나요?

농사를 지으면 가물 때 양수기로 물을 밤새도록 퍼는 일이 많았는데 고장이 나면 고쳐보기도 하면서 발전기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지. 처음에는 영어를 하나도 몰라서 정비기술을 배우는데 어려움이 있었지만 주경야독하면서 책을 사서 독학으로 정비기술 자격을 취득하게 되었어.


카센터에 일하는데 가장 큰 어려움이 있다면 어떤 것일까요?

손님들이 정비를 맡겨 놓고 갔다 와서 정말 제대로 했는지 의심하는 경우가 가장 자존심이 상하지. 그래서 다시 정비한 것을 뜯어서 보여주는 경우가 제일 힘든 부분이지. 그래도 정비를 배운 게 가장 잘한 것 같아. 다행히도 카센터 해서 아이 셋 대학 공부 시키고 출가시켰지.


농사일이 힘들어서 도시로 떠났다가 다시 귀향해서도 농사일을 하시는데 어떤가요?

그때는 먹고살기가 힘들어서 농사일을 했지만 지금은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텃밭에 여러 가지 채소랑 과일나무를 심고 가꾸어서 이웃들과 함께 나누는 재미가 쏠쏠하지.

(네. 뒤꼍에 청둥오리도 키우시고 토종닭도 알을 낳고 있네요)

병아리를 부화시켜서 방 안에서 어느 정도 키우다가 바깥으로 독립을 시키지. 닭 우는 소리를 들으며 옛날 생각에 젖어들곤 하지. 옛날에는 닭이 인근 숲에 알을 낳아서 부모님과 함께 달걀을 찾으러 다닌 기억이 떠올라. 아마 지금은 추억을 먹고 사는지도 몰라.


동네에서 농사를 잘 짓는다는 칭찬도 있던데요 (웃음) 근처에는 5일 장천장이 선다. 필자는 가끔 장에서 활동가의 소식을 들었다. 동네에서 베풀기 잘하는 인심 좋은 분이라는 소문을 접할 때가 많았다.



특별히 동네 어르신들을 대접하시는 계기가 있었나요?

부모님께 잘 해 드리지 못한 죄송한 마음이 마음 한편에 늘 자리 잡고 있어서 우리 부모님께 못한 작은 효도라도 대신해드리면 죄송한 마음에서 놓여나리라 생각한 거지. 베풀고 나눔을 통해 기쁨을 얻게 되고 횟수가 늘어나면서 습관처럼 동네분들과 함께 어울리지. 동네분들을 대접하느라 우리 마누라가 고생이 많아. 늘 고맙고 보조를 잘 맞추어서 동네 일에 손발을 벗고 나서서 하는 것이 너무 대견하고 고마운 생각을 갖고 있어. 어르신들에게 차량봉사를 해주기도 하구.


생기를 잃어가던 조용한 마을 산어귀 작은 폭포처럼 기분 좋게 나타난 김팔곤활동가로 인해 작은 산골 마을에는 어떤 변화가 생긴 걸까? 궁금하였다.


귀향하셔서 지역사회에 변화를 주도하신 적도 있나요?

쓰레기차가 들어오지 않아서 쓰레기가 동네에 방치되어 있었는데 주민들과 함께 노력하여 지금은 쓰레기 수거차가 1주일에 한 번씩 쓰레기를 수거해 가지. 동네의 환경이 많이 깨끗해져서 다행이야. 작년에는 어버이날 동네에 한마당 축제를 유치해서 연주단이 연주를 하고 동네 어르신들과 손자들과 함께 노래하며 어울렸지.


조용하던 산골 동네에 활기를 불어 넣으셨네요. 그 외에도 환경 감시원으로 활동하고 계신다고요?

정말 마음이 아픈 일이지만 전국의 폐기물들이 우리 고향에 다 모이잖아. 귀향해서 청정지역에서 사는 것이 꿈이었는데, 폐기물이 들어온다는 소식은 들었지만 고향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았으면 지금처럼 되지 않았을 텐데. 후회스럽기도 하고 해서. 뭔가 중립적인 위치에 있는 사람이 눈을 크게 뜨고 살피기라도 해야겠다 싶어서 자원해서 감시원이 되었지. 한 달에 두어 번 가서 침출수나 폐기물 처리 상태를 살펴보곤 하지. 처음에는 속상하고 화가 나는 일이 있었지만 지금은 폐기물 업체와 지역사회가 함께 환경보존을 위해 애쓰고 있긴 하지만 환경 감시원 만으로 고향의 환경을 지키는 데는 역부족인 것 같아. 코로나19와 같은 사태가 일어나는 것도 환경과 연관이 있는 것 같아서 걱정이 되지. 생태파괴로 일어나는 걱정스런 일들이 우리 후손들에게는 일어나지 않아야 할 텐데.


논농사를 지으시는데 침출수나 지하수 오염이 되면 지은 농작물도 오염되지 않을까요

오염되는 기간이 오십 년 백 년 정도 지나야 영향을 미친다고 하던데, 과연 그럴까 싶고 장마가 져서 폐기물처리장 부근에서부터 물이 내려오는데 그걸로 농사를 짓는데 괜찮은지 은근히 걱정이 되지. 

(좀 더 환경문제에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함께 노력해야 할 것 같네요. 공업용 폐기물을 줄일 수 있는 대책도 필요한 것 같아요.)


코로나19가 산골마을에도 영향을 미쳤나요?

카센터에 손님이 한동안 오지 않아서 수입이 상당히 줄었고 무엇보다는 손자 손녀가 초등학교 입학한다고 동네 할배가 가방 사서 준비했는데 학교에 못 가서 할배 마음이 아팠다고 하데.


앞으로 고향에서 어떤 역할을 하실 계획이신가요?

지역사회에서 중립적 위치에서 역할을 하고 아직 해결되지 못한 환경문제를 위해 중간 역할을 잘 해볼 생각이야. 그리고 고향산천이 죽어가지 않도록 방법을 찾아야겠지. 나이가 들면서 느끼는 것은 서로 화합하고 소통하며 베푸는 삶이 가장 큰 기쁨과 행복을 안겨주는 것을 알게 돼.


고향마을에 와서 맘껏 베풀고 죽마고우들이랑 시간을 보내시는 활동가, 가난한 청년 시절을 보내면서도 가난에 굴복하지 않았고 중년시절에 생각지도 못한 이별과 절망할 수밖에 없는 사건이 있었지만 꿋꿋이 딛고 이겨온 모습은 이 시대를 살아온 우리의 부모님 형제들의 삶의 한 단편을 본 것 같다. 이레유치원사회적협동조합 이사로 자원봉사자로 활동하고 있는 활동가의 아내가 쓴 귀향 일기를 소개해본다.


삐루루 삐루루 새소리에 아침이 열린다.
뒤뜰에서의 첫 만남은 꼬리 흔드는 강아지
잠이 들깬 들녘에선 보드랍고 싱그런 잎들이 푸른 바람을 일으키며 반겨준다.
돌아오는 길에 토종 달걀이 내 손을 따뜻하게 데운다.
감나무 밑을 지나니 감꽃이 나를 반긴다.
어릴 적 생각나서 목걸이 만들려고 몇 개 주머니 속에 집어넣어 본다.
오늘은 5일장이 열리는 면소재지로 노래교실 가는 날 
내일은 요가로 문화를 접한다 다행이다.
차 한잔하고 이웃들과 나눈 정겨운 대화
어느덧 별빛 내리는 배란다
감기 든다며 겉옷 하나 챙겨와 어깨를 감싸준다.
올 한 해도 내가 먼저 손 내밀어야지.(정영자)

김팔곤활동가는 작년에 설립한 하늘빛 지역아동센터 모 법인인 꿈땅마을학교 사회적 협동조합 감사로 활동하고 있다. 그의 아내(정영자)는 전국에서 세 번째로 설립된 이레 유치원 사회적 협동조합에서 활동하며  내년 3월 유치원 개원을 위해 함께 걱정해 주는 격려자이다. 이제 시작에 불과하지만 나이를 잊고 새로운 시도를 지켜봐주는 활동가 부부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이 글을 쓰는 필자도 이분들의 격려와 다독임에 부모와 교직원, 지역사회가 함께 하는 이레 유치원 사회적 협동조합 운영을 통하여 남들이 가지 않은 새로운 길로 접어들고자 한다. 끝으로 사회 구석구석에서 일어나는 작은 움직임도 놓치지 않고 투박한 이야기를 들어주시며활동가 이야기를 응원해주시는 지역사회기관에 소나기 박수를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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