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활동가인터뷰] 동료가 있고 꿈이 있어 멈출 수 없어요 - 청년정책활동가 조은주

2015년 여름, 시흥시 청년들을 위한 ‘청년기본조례’를 만들기 위한 시작에는 ‘시흥청년아티스트’가 있었다. 지역민의 공감과 지지를 바탕으로 조례를 발의하는 ‘주민청구방식’을 선택해 시민들이 모이는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가 서명을 받았다. 3개월 안에 시흥시 선거권자의 50분의 1인 6,125명의 서명을 받아야 하는 쉽지 않은 방식이었다. 

청년이 스스로 자기 문제를 풀기 위한 시도는 지역사회의 긍정적인 반응을 끌어내고 조례 제정까지 일궈냈다. 청년세대 당사자 운동을 하는 이들에게는 용기와 도전을 주며, 여러 지방자치단체에서 ‘청년기본조례’ 제정을 통한 청년 삶의 보장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행정 주도가 아닌 청년 당사자들의 학습과 고민으로 시작된 조례제정의 시작에는 조은주 총괄디렉터가 있었다. 이제는 지역사회로 돌아간다고 자신을 소개하는 그는 공무원이라는 직함을 가졌지만 늘 활동가였다. 시민사회 활동가가 어‧공(‘어쩌다 공무원’의 줄임말, 임기제 공무원 등 민간에서의 전문성을 토대로 행정 기관에 들어가 일하는 기간제 공무원을 말한다.)이 되면 많은 기대를 하지만 행정과 민간 사이에서 공무원 신분으로 자기 위치와 역할을 잘 해내는 것은 참 어려워 보인다. 청년들이 설 수 있는 너른 자리를 만들고 동료들의 버팀목으로 쉼 없이 몇 년을 달려온 그는 여전히 현장의 과제와 앞으로 할 일을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었다.


  • 인터뷰이: 조은주 (전 시흥시 청년정책팀 총괄 디렉터, 현 나눔자리문화공동체 이사)
  • 인터뷰어: 시도 (더 이음)
  • 인터뷰 날짜: 2019-01-02


최근에 시흥시청을 그만두셨다고 하셨어요. 어떻게 지내세요? 요즘 가장 관심 있게 하는 일에 대해 이야기해주세요.

2018. 12. 31까지는 시흥시청에서 청년정책 업무를 총괄하는 디렉터를 맡았습니다. 지금은 시간 부자, 백수입니다. (웃음) 현재 관심 있는 일, 분야는 짧게는 도시와 사회학입니다. 아무래도 도시대학원을 다니다 보니 그런 것 같습니다. 주요 관심사를 키워드로 나열하자면 ‘사회적 불평등 해소’, ‘포용사회’, ‘다양성’, ‘존중’, ‘사회권적 기본권’, ‘도시’, ‘재생과 개발’, ‘사회주택’, ‘지역자산화’, ‘공동체 이익회사’, ‘대안금융 정도일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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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네‧바‧보(동네가 바라는 것을 보여주는 청소년, 청년프로젝트팀) 활동중인 조은주님


Q. 그 바쁜 와중에 대학원도 다니셨군요. 얼마 전까지 시흥시에서 공무원으로 일하셨어요. 하지만 일반적인 공무원과는 조금 다르게 느껴졌어요. 스스로는 자신이 하는 일을 무엇이라고 정의하세요? 

어‧공의 역할은 기존 조직사회에 파열음을 내는 사람 같아요. 그리고 공공과 민간을 연결하는 연결고리 같은 역할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공 역시, 공무원의 윤리강령과 법적인 테두리 안에서 업무를 집행하는 것은 늘‧공(‘늘상 공무원’의 줄임말)과 같지만, 그 외의 접근 방법이나 가치관이 완전히 다릅니다. 그러다 보니 기존과는 다른 역동성, 활기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분야에 대해 끝까지 파고드는 열정까지 더해져서 일상적인 법정 업무와는 일하는 방식이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존경도 받고 시기와 질투도 동시에 받기도 하죠. 일을 처리하는 속도와 자원을 연계하는 네트워킹이 다 되고, 계속 전문성이 쌓이게 되니까요. 

무엇보다도 민간에서 왔기 때문에 시민권에 대한 감수성과 이해도가 높고, 공조직에 들어왔어도 자신을 둘러싼 환경이 민간영역에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시민사회에 대한 가치와 경험에 대한 존중이 모든 일을 할 때 기저에 깔릴 수밖에 없는 부분이 있죠. 그러다 보니, 아무래도 소통하는 부분이나 혹은 어떤 일을 함에 있어 매우 적극적이고 주변 네트워크를 잘 연계하는 링커(linker) 역할을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한계 역시 있습니다. 어.공이 거대한 관료 조직 안에서 힘 있게 가기 위해서는 위에서 힘을 실어 주는 것도 필요하지만, 아무래도 계층제 안에서는 어려움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5년차에 접어들면서 공직생활이라는 것이, 왜 적극행정이 어려운지를 조직이라는 시스템 그리고 감사체계 안에서의 한계를 분명히 맛보았다고 할까요? 이제 조금씩 바뀌고 있지만, 여전히 어려운 부분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행정 시스템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점에서 행정혁신이 매우 중요하다고 봐요. 


공무원 신분 자체가 활동가라고 여겨지기 어려운 것 같아요. 그럼에도 활동의 정의를 일에 적용하며 근무하고 계신다고 느껴지는데 자신을 무엇이라고 정의하세요? 행정 활동가?  

‘공무’를 수행하는 ‘활동가’라는 두 가지 정체성을 다 가지고 활동했던 것 같아요. ‘활동’, ‘현장’, ‘시민’이라는 것이 특별하기보다는 그저 저를 둘러싼 모든 사람의 삶이고 생활이었기 때문에 뭐라고 표현하기가 어려워요. 제가 기억이 있는 시점부터 활동하는 삶이 저에게는 너무 당연한 일이었거든요. 

그래서 오히려 저보고 “넌 이제 공무원이니까.”라고 선을 긋는 듯 장난처럼 툭 내뱉으시면 “그죠, 이젠 활동가가 아닌 것이죠.”라며 기운 빠져 했던 것 같아요. 인정할 수밖에 없지만 뭐랄까. “난 그래도 활동가이고 싶은데?” 뭐 이런 마음? 그렇지만 ‘맞아. 공무원 신분인 건 맞으니.’ 자아분열(웃음) 속에서 끊임없이 애정했죠. 

제가 공무원이니까 활동가를 짝사랑하는 기분이 들 때가 많았어요. 다른 도시에 가면 보행로, 쓰레기 분리수거 체계, 커뮤니티 공간 등의 사진을 찍고, 행사장에 가면 행사 물품부터 준비사항을 먼저 체크하는 나 자신이 느껴질 때가 있어요. 사람을 보지 않고 물리적인 모습을 먼저 포착하는 자신을 느낄 때마다 ‘이러다 활동가 즉, 사람을 먼저 보는 눈을 잃어버릴 수도 있겠다.’ 하며 긴장을 놓지 않으려 했죠. 


계속 놓치지 않으려고 하는 그 '활동'이란 무엇일까요? 

활동은 우리들이 일상을 살아가며, 최대한이자 최소한인 "인간됨"을 잃지 않으려는 의지이고 실천인 것 같습니다. 나, 너, 우리의 일상이 존중됨은 사실 기본이잖아요. 근데 그 균형을 자꾸 비틀고 깨는 일들이 발생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심할 경우 사람이 다치는 참사가 발생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고로, 활동은 그것을 최대한 막고 일상을 최소한 지키려는 사람들의 절박한 외침이고 생계로 권리를 포기하지 않게 하려는 우리들의 치열한 고군분투 그 자체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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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년, 청년기본조례 서명운동중인 시흥청년아티스트. 맨 왼쪽이 조은주님. 


활동을 시작한 계기가 궁금해요. 그 활동이 나에게 미친 영향도요.

아무래도 집안의 영향이 가장 큰 것 같습니다. 저희 어머니가 엄청난 활동가시거든요. 집에서 뵐 수가 없어요. 행사장에서 엄마를 만나니까요 (웃음) 시흥시청 벽면에 최초로 봉사자 명예의 전당에 오르시고 최근에는 경기도에서 가장 봉사활동을 많이 한 분으로 선정된 거로 알고 있습니다. 

주말에 성당이나 교회에 가는 것처럼 어린 시절 저의 놀이터는 봉사 현장이었어요. 그래서인지 일찍부터 봉사 모임을 조직해서 봉사활동을 했었고, 대학생이 되어서는 청소년 자치공동체를 만들어보겠다는 마음으로 "나눔자리문화공동체"라는 단체를 만들어 경기도 비영리민간단체로 등록하고 지금까지 활동을 내내 지속해온 것 같습니다. 

효순이 미선이 장갑차 사건이 고등학생 때 정말 충격이었어요. 전시작전통제권도 없고, 국민이 무참히 죽었는데 국가가 정말 아무것도 못하는 무능함을 보면서 어떻게 이런 세상이 존재할 수 있지 하는 생각에 비참하고 참담하게 생각하며 촛불을 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시민단체 활동에도 관심을 두게 되고 나눔의 집도 방문하면서 일분군위안부 할머니와 함께 수요집회도 참여하면서 사회활동이 특별한 것이 아니라 내 주변 그리고 나와 연결된 삶의 문제임을 자각했던 것 같아요. 아마 그런 활동이 켜켜이 쌓여서 지금 저에게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지역사회에서 활동한 역사가 어머니로부터 시작되네요. 활동이 공기같이 당연한 것이라는 말이 이해가 되네요. 나와 사회의 연결에 대한 감각들이 어렸을 때부터 쌓여왔네요. 꽤 오래 지역사회에서 활동하셨는데 청년 의제를 다루면서 어려웠던 점은 없으세요? 

어른들의 산수요.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맞지 않으면 일단 무시하고 공격하는 적대감이랄까요? 청년들이 정치세력화되는 것에 대한 경계심도 있고요. 그러다 보니, 청년들이 자신의 삶을 뛰어넘어 다음 세대와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무언가 해보겠다는 의지마저도 꺾이게 하는 일들이 종종 발생합니다. 

저희가 청년들 대상으로 조사했을 때, 이 사회가 청년들을 위해 무엇을 해주었으면 좋겠냐는 질문에 1위는 수당(돈)도 공간도 아닌 "사회적 지지"였습니다. 무언가 하려고 할 때 "안 돼!"하는 것이 아니라 "그래, 해 봐!, 해보자!, 잘할 수 있어, 실패하더라도 우리가 안전망이 되어줄게!" 하는 지지였습니다. 

IMF의 불행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세대이자, 철저히 옆 친구와도 경쟁하도록 배워온 교육 시스템에서 성장한 세대가 자존감을 회복하고 무언가를 시도하려고 할 때, 가장 큰 장애물은 사회적 편견과 부정적 시선입니다. 부디, 청년들의 시도를 그리고 그 움직임을 정치적 이해관계 속 어른들의 산수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지역에서 청년들이 자치, 자립, 자생할 수 있는 시도를 스스로 열어갈 기회와 지지를 부탁드립니다. 진짜,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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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흥시 청년정책실 식구들



Q. 최근에 여러 가지 정치적 상황 속에서 시흥시 내 청년정책부서 구성원들이 함께 사직서를 썼다고 들었어요. 그 과정에 무력감과 회의감 등 어려운 감정들을 느꼈을 것 같은데 활동을 하며 그만두고 싶었던 적이 있다면 어떨 때였는지 그럼에도 그 일을 하는 계속하는 동력은 어디에서 나오는지 궁금해요. 

일은 시스템이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합니다. 그래서 그 ‘사람’의 존재, 존엄성이 매우 중요하죠. 가장 힘들었던 것은 동료들이 나날이 비참하고 참담함을 이야기할 때였어요. 그래서 나날이 무너졌어요. 저는 ‘사람’ 때문에 일하는데, 사람이 다치는 문제 앞에서는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모든 일에는 이면이 존재하죠. 도시가 아침에 깨끗한 이유는 이른 아침 환경미화원분들께서 새벽같이 일을 하시기 때문이죠. 마찬가지입니다. 시흥의 청년 정책이 잘 되었던 이유는 청년들과 소통하는 청년정책실 식구들의 힘이 컸다고 생각합니다. 처음에는 혼자였고, 사직서 걸고 둘이 되고 그 이후에 셋이 되고, 다섯이 되고 아홉, 열이 될 때까지 나날이 얼마나 많은 일이 있었는지 모릅니다. 매니저님들 역시 같은 또래를 지원하는 청년임에도 자신이 빛나기보다는 다른 청년이 빛나도록 지원해야 하기에 그림자가 되어야 했습니다. 

이제는 밖으로 나가 더 자유롭고, 더 높게 비상하며 우리 식구들도 빛났으면 합니다. 끝까지 활동을 계속 이어나갈 힘도 바로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 꿈을 꾸고 있기 때문이죠. 우리는 나날이 다음을 이야기하고 그 이후를 준비합니다. 그래서 멈출 수가 없습니다. 동료(사람)가 있고 꿈이 있는데, 어떻게 멈출 수 있을까요?


Q. 지금 우리 동네에 또는 일하는 영역에서 필요한 변화와 그 일을 하기 위해 필요한 활동은 무엇일까요? 

너른 커뮤니티보다 쫀쫀한 네트워크가 가능하도록 연대하는 활동이 필요합니다. 아울러 시정과 시의회를 모니터링하는 제대로 된 시민단체 역시도 필요하고요. 필요한 데 없으면 만들면 되고, 만들어나가면서 하나하나 엮으면 되는 일이라 이제 나날이 세우는 일에 몰두해야 할 때인 것 같습니다. 시.발.연(시흥시발전연합)이라는 조직을 만들까 싶습니다. 발음에 유의하세요. (웃음)



Q. 요즘 가장 집중하고 있는 생각, 그리고 내가 하고 싶은 일(활동)이 있다면요? 

청소년&청년 자치공동체 모델링, 사회권적 기본권의 확립을 위한 시민단체 조직화, 지역자산화 추진, public developer입니다.  2018년, 더이음은 아름다운재단과 함께 [공익활동가 이야기캠프]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지역 내 공익활동가들이 한 곳에 모여 ▲지역 시민사회와 활동가들의 현재 상황을 함께 이해하고, ▲공익 활동의 어려움과 고민을 대화를 통해 나누고, ▲지속적인 대화를 위한 공통의 질문을 찾아보는 워크숍형 프로그램입니다. 이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현장의 고민을 보다 깊이 들여다보기 위한 활동가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그 내용을 더플랜B를 통해 공유해나갈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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