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활동가인터뷰] 중간지원조직에서 조직가로 활동하는 남길현



남길현(52세) 활동가를 처음 만난 건 ‘푸른경기21’(현, 경기도 지속가능발전협의회)에서였다. 당시 남길현 활동가는 경기여성단체연합(이하 ‘경기여연’) 사무국장이었다. 그 때는 그리 잘 아는 사이가 아니었다. 그보다는 화성 지속가능발전협의회(당시는 화성의제21, 이후는 ‘화성 지속협’으로 표기)에서 주민자치 및 마을 활동을 함께 하며 친해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화성 지속협을 통해 많은 지역의 활동들이 인큐베이팅 되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핵심에는 항상 남길현 화성 지속협 국장이 있었다.

그런 활동 방식은 풀뿌리운동 활동가의 전형적 모습이라 생각하기에 그의 생각과 활동 내용을 한 번은 차분히 듣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지속협은 우리 사회에서 매우 초기에 설립된 중간지원조직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화성 지속협 사무국장과 우리 사회 중간지원조직과 관련한 이야기도 해보고 싶어, 연락하고 사무실을 찾아가 인터뷰 했다. 

꽤 오래 알고 지내던 사이다보니 대화는 존대말과 반말이 섞여 사용되곤 한다. 그런 특성을 감안한 말투를 이 글에서 그대로 사용했다. 


젊은 날의 내가 부끄럽다는 건 그만큼 성장했다는 증거

 

지금까지의 활동 이력을 좀 들어보고 싶은 데요. 내가 처음 만난 건 경기여연 사무국장 시절이었는데...

경기여연에서 처음으로 여성운동을 시작했는데, 그 때는 정말 아무 것도 모르고 시작했어요. 같이 해보자고 해서... 그 전에는 수원 KYC에서 활동했어요. 사실, KYC 이전인 ‘수원사랑민주청년회’에서 청년운동부터 시작했죠. 이 청년단체는 아는 언니 소개로 풍물을 배우면서 참여하기 시작했어요. 당시 이 단체 회원들은 거의 매일 저녁마다 만나서 함께 노래도 하고 토론도 하고 그랬죠. 그래서 회원들 간 관계가 매우 끈끈했어요. 그러면서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하는 생각과 우리가 세상을 바꿔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여기서 지금의 남편을 만나 결혼도 하고...

결혼하고 둘째를 낳으면서 이 애가 36개월 될 때까지는 아이 키우는 데에만 집중하자고 생각했고, 실제 그렇게 했어요. 그 후에 KYC 사무실에서 상근을 했죠. 2년 정도 했는데, 내가 생각하는 시민운동과는 좀 달랐던 것 같아요. 그래서 2년만 상근을 하고 그만뒀어요. 다시 아이만 키우며 살려 했는데, 선배의 권유로 경기여연 일을 시작했죠.

나는 여성운동을 하면서 사람이 됐다고 생각해요. 그 때가 2004년이었는데, 이 곳에서 여성운동을 하면서 내가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등 세상에 대한 관점이 많이 다듬어진 거 같아요. 나는 평생 가부장적 사회와 가정에서 살아왔구나, 그리고 그렇게 계속 살면 안 되겠구나 하는 것도 당시에 깨달을 수 있었죠. 그러면서 스스로 성찰하는 계기가 많이 됐어요. 나는 여성운동이 여성의 권익 등을 증진시키는 것보다 나를 변화시키는 운동이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그러지 않으면 이 운동을 계속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거죠. 그래서 그 때부터 어느 순간 내 성찰이 느슨해졌다고 느껴지면, ‘뽕 맞으러 갈 때가 됐다’고 해요. 공부를 하러 가거나 스스로 성찰하는 시간을 가지려고 했죠. 그러면서 내가 좀 성장을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경기여연에선 어떤 활동을 주로 했어요?

경기 여연에선 2008년 말까지 꽉 채운 5년 동안 일했어요. 내가 스스로 이렇게 얘기하긴 좀 부끄럽지만, 그 때는 경기 여연 활동이 정말 활발했던 시기이기도 해요.(웃음) 지금도 기억이 많이 남는 건, 이마트 여성노동자들이 노조를 만들려고 시도한 초기에 이 분들 지원 활동을 열심히 했어요. 3.8 여성대회 때 내가 추천해서 이 분들이 여성 디딤돌 상을 수상하기도 했어요. 그리고 평택 대추리 마을 할머니들도 많이 기억나요. 이 분들은 미군기지 반대투쟁으로 방문한 사람들을 위해 매 끼니마다 밥도 해주고, 문화제 등이 있으면 맨 앞에 앉아 계셨어요. 그런데 정작 대추리 투쟁에서 이 분들의 역할은 잘 드러나지 않았죠. 그래서 내가 이 분들을 앞에서 말한 상 후보에 추천했고, 마찬가지로 같은 상을 수상하게 됐어요. 그 때 많이 뿌듯했어요.

그리고 북경대회 이후 여성정치세력화에 대해 많이 강조하기 시작해서, 지방선거에 여성 공천 30% 할당을 주장했던 일도 기억이 나요. 그래서 일정 정도 성과를 거두긴 했죠. 그리고 처음으로 여성의제로 경기도지사 후보초청 토론회도 성사시켰어요. 그리고 경기 3.8 여성대회 만든 것도 기억이 나네...


뭐든 하면 열심히 하는 스타일...


그러다 경기 여연을 관두고 화성의제에서 일을 시작했잖아요. 그렇게 스스로에게 큰 영향을 끼친 여성운동단체를 그만두고 왜 화성 지역에서 새롭게 활동을 시작했죠?

당시 경기여연 사무국장이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은 공중에 붕붕 떠다니는 의제들을 모아 정책으로 만들고 이를 이슈화시키는 거였어요. 그런데 나는 그런 게 잘 안 맞았어요. 그 잘 안 맞는 걸 5년이나 한 거예요. 우리는 계속해서 이슈를 만들고 문제 제기할 건수를 찾아야 했는데, 그게 나한테는 너무 스트레스 였던 거야. 그런데도 그걸 5년이나 하다 보니 너무 힘들어서 두 달 정도 쉬었어요. 두 달 만에 다시 돌아왔는데도, 그게 회복되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어 그만뒀어요. 내가 그만둔다고 했을 때, 주위에서 내 상태를 잘 알고 있었기에 아무도 말리지 못했어요. 게다가 당시는 나 혼자 상근을 하고 있었거든요. 물론, 어떤 프로젝트로 돈을 지원받으면 임시로 함께 일하는 사람이 있기도 했지만, 두 명의 상근비를 마련할 형편이 안 됐어요.


상근자로 혼자 오래 일한다는 게 어떤 건지 잘 알지. 그건 안 좋은 상황이야. 나도 그랬거든. 사실,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문을 닫자고 내가 강하게 주장한 이유 중 중요한 한 가지도 그거였던 거 같아.

혼자서 일하다 보니 주변 사람들을 찾아다니고 상의하면서 많이 배우고 크기는 했지만, 너무 힘들었어. 그러다가 그만둔 거죠. 그래서 2009년에 1년을 쉬었어. 당시에는 1년 동안 푹 쉬려 했는데... 내가 그 때 생협 조합원이었거든. 3월 쯤에 생협에서 문자가 왔어요. 조합원 마을모임을 우리 아파트에서 한다기에 가봤어. 4명이 참여했는데, 마을지기 하던 사람이 급한 사정이으로 못하게 됐다는 거야. 그런데 나머지 사람들도 여러 사정으로 할 수 없다는 거야. 그래서 나밖에는 그걸 맡을 사람이 없었어. 그래서 마을지기 활동을 시작했어요. 그런데, 내 성격상 대충 할 수는 없었어. 그래서 열심히 했지.

그러다가 푸른경기21 모임에서 당시 화성의제 사무국장인 최오진을 만났는데, 갑자기 “너 화성 살지?” 하면서 반색을 하더라고. 그러다가 그냥 어떤 모임에 와보라고 해서 갔지. 왜 그때 이호 샘이 모임 주관했었잖아. 그 모임은 마을활동을 위해 동네 한 바퀴 등을 실습해보는 그런 교육이었어. 그리고 그때 화성시 관련 팀장도 그 교육에 왔었어. 이 사람이 화성에서 그런 활동을 하고 싶다고 이호 샘에게 전화해서 도와달라고 했어. 그랬더니 이호 샘이 화성의제라는 데가 있으니 거기와 의논해보라고 했데. 그래서 그 팀장이 당시 화성의제 사무국장인 최오진을 찾아와 의논을 했어. 그런 계기를 통해 좋은 마을만들기란 이름으로 동네 한 바퀴 활동을 시작한 거야. 그래서 최오진 국장이 나한테 연락을 한 거야. 그 교육받은 사람들 중에 너 말고 화성에서 그 활동을 할 사람이 없다고... 그래서 당시 화성의제 실무자로 일하던 김도근(현 화성시의원)과 화성시 내 주민자치위원회를 돌면서 4주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동네 한 바퀴 활동을 한 거야. 당시 이호 샘과 신효진씨가 처음으로 양감면을 하고, 그 후에 다른 읍면동은 이어서 우리가 다했지. 그 때 마을운동에 대해 많이 배웠어요.


사실 나는 잘 기억이 안 나요. 그렇지만 내가 일하는 방식이 주로 그렇긴 해. 그래야 그 지역에서 그 일을 할 주체가 만들어지거든...

그래서 나하고 김도근이 얼떨결에 그 일을 하게 된 거야. 그러다가 김도근이 화성의제를 그만둔다는 거야. 그런데, 나도 일을 좀 쉬고 있던 중인거야. 그런데 쉬지도 못하고 이런 일에 끼어들게 된 거죠. 내가 당시에도 화성시에 살고 있기는 하지만, 내 활동 기반은 수원이었어요. 그래서 화성에서 일한다는 생각을 못했지. 그래서 처음엔 화성의제 일 안 하겠다고 했어요. 그런데, 최오진 당시 국장이 총회는 보름 뒤에 하는데, 사람이 없어 급하다며 오라고 재촉을 하는 거야. 그러니 맘이 약해져서 오게 됐죠. 처음엔 이곳에서 오래 활동할 생각은 없었어요. 그런데, 하다 보니 재밌는 거야. 거기엔 최오진 당시 국장 스타일도 한 몫 했어요. 일을 하는 사람이 하고 싶은 일을 하도록 그 사람에게 전권을 주는 스타일이야. 그래서 재밌게 일했어요. 여기서 일한 지 벌써 11년 째네...


** 화성지속협의 성공적 사례 중 하나인 '착한 여행 하루' 간판 앞에서...


중간지원조직 활동가는 조직가가 되어야...


내가 남길현 국장을 인정하는 게 몇 가지 있는데, 여러 활동들을 인큐베이팅 했잖아. 그걸 보면서 훌륭한 활동가라는 생각을 하게 됐지. 그런데 여성운동에서는 그런 게 주요한 활동 내용이 아니잖아. 그러니 잘 안 맞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화성 지속협에서는 좀 다른 방식으로 일한 거죠?

나는 주로 먼저 ‘동’ 뜨는 역할을 했지. 한 번 모여 봐 그러면서. 나는 스스로를 조직가라고 생각해요. 정책가가 아니라... 사람들을 모으고 붐업 하는 걸 잘해요. 그런데, 조직가는 다른 사람들이 주체가 되고 내가 안 보이잖아. 섭섭한 맘이 솔직히 있지만, 뿌듯함도 있지. 다른 사람은 인정해주지 않아도 나는 그걸 알잖아. 그럼 된 거지. 하늘이 알고 내가 알면 되지, 뭐. 같이 일하는 후배들한테도 그렇게 얘기해요. 우리는 드러나지 않아야 하고, 우리가 성과를 내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저 사람들이 성과를 내도록 해야 한다고...


조직가의 중요한 자세죠. 그런데, 그게 쉽지 않아요. 이런 일 하는 사람들은 월급을 많이 받는 것도 아니고, 그런 상태에서 이런 사람들이 이런 일을 계속할 수 있는 건 자신도 성과를 가질 수 있어야 하는 거죠.

나는 월급을 받으니까 그렇게 일할 수 있는 거죠.


그렇다고 모든 활동가, 조직가들이 월급 받고 일하는 건 아니잖아요.

저는 이런 활동하는 사람들이 정당하게 적더라도 월급 받고 일하는 세상을 만들고 싶어요.


나는 이런 활동하는 사람들이 계속 많아지길 바라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계속 이런 사람들을 고용하기 위한 돈이 필요하잖아. 어느 정도까지 그럴 수 있을까?

소위 중간지원조직이라는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그 곳에서 월급 받으면서 그렇게 일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자신의 성과를 만들기보다 참여하는 이들이 그 활동의 성과를 자신의 것으로 가져갈 수 있도록... 그런 사람들은 그림자처럼 일해야 한다고 봐요.


지속협은 우리 사회에서 초기에 만들어 진 중간지원 또는 거버넌스 기구잖아요. 그런데, 스스로를 그렇게 위상 정의하는 것에 나는 좀 비판적인 편이에요. 그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특히, 중간지원조직이라는 곳들 대부분은 행정의 말단 집행기구 이상도 이하도 아니잖아요.

저도 동의해요. 중간지원조직으로서의 자기 역량과 역할을 찾기보다 행정에 종속되는 그런 곳이 대부분이라고 생각해요. 중간지원조직을 만드는 이유는 행정의 경직됨, 민간의 자유로움, 이 중간쯤 어딘가에서 양쪽을 돕는 유연한 조직이 필요해서 그런 건데... 지금은 그런 조직이 왜 없을까요?


일단, 행정의 입장이 잘못됐어요. 민간의 힘을 얻기 위해 그런 기구를 만드는 거잖아요. 그런데, 민간의 장점을 살리지 못하고 자기 말 잘 듣는 곳으로 만들려고 하는 것은 중간지원조직의 필요성 자체를 스스로 부정하는 거예요. 그럴 바엔 공무원을 늘려 그 일을 하면 되지. 민간의 경험 있는 사람을 데려오는 거는 민간의 자율성과 창의성을 활용하려는 거잖아요. 그리고 시민사회에서도, 월급을 주는 일자리가 많지 않다보니 서로 그 중간지원조직이라는 데에 들어가려는 경쟁이 생기는 거예요. 그러다보니 더 행정의 눈치를 보게 되는 거죠.

중간지원조직은 조직가로서의 역할을 해야 하죠. 공무원이 제일 무서워하는 게 시민이에요. 행정 입장에서 시민들은 모두 민원인이에요. 자기들이 경험해 본 시민들은 민원인들밖에 없는 거죠. 그런데 이는 시민들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에요. 시민들이 주로 경험한 공무원은 자신들의 책임을 회피하려 이리저리 다른 부서로 미루는 그런 사람들이죠. 그러니 거버넌스 기구나 중간지원조직이 자리 잡기 힘들죠. 중간지원조직은 양쪽에 새로운 경험을 통해 신뢰를 쌓도록 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봐요. 그래서 중간지원조직은 주인공이 되는 게 아니라, 이 양쪽이 잘 되도록 해야 한다는 거죠. 그러기 위해서는 성과를 이 둘이 가져가도록 해야 해요. 그래서 조직가 같이 일해야 하죠.

행정이 젤 못하는 것이 시민들을 만나는 거예요. 그 싫어하는 일을 중간지원조직에 떠넘기는 거죠. 현재 중간지원조직의 역할은 딱 그 정도인 것 같아요. 시민들을 직접 만나기 싫은 행정이 자기 임무를 일부 떼어주고, 그 역할을 하도록 하는 거죠. 그러다보니 중간지원조직은 행정에서 떼어 준 딱 그 정도 안에서만 자율성이 부여되는 거죠. 중간지원조직들은 당사자 주체들의 참여와 역할을 인큐베이팅하는 목표를 갖는 경우가 많아요. 하지만 공모사업 딱 그 정도를 통해서만 그 역할을 하려 한다는 거죠. 하지만, 공모사업도 현장에서 필요한 일이 뭔지 찾아보고 그에 필요한 것들을 지원하는 역할을 해야 하는데, 그것보다는 ‘이런 일 할 사람 모여’ 그런 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실정이죠. 지금의 공모사업 방식이나 돈을 나눠주는 방식은 사용자 입장에서 사람들을 모집하는 방식이죠. 그러다보면 현장 조직들이 거기에 익숙해지고 길들여지는 거죠. 그런 상황에서 시민조직의 자율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어요.

행정이 시민사회를 지원하는 건 당연한 거죠. 이건 자기들 돈이 아니라 세금이잖아요. 그런데 그 돈으로 중간지원조직 예산 올려주는 걸 인심 쓰듯이 한다는 거죠. 이 돈은 시민들에게 적절한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책정된 거죠. 그런데, 마치 종속적 관계에서 자기들이 인심 쓰듯 하니, 그런 종속적 관계가 변하지 못하는 거죠.

저는 중간지원조직 활동가들이 조직가로서의 역할을 하기 위해 공부도 하고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고 봐요. 자기가 맡은 업무 전문성을 높이기 위한 공부 말고, 사람들을 만나고 세상에 대한 관점 등 조직가로서의 전문성을 높이기 위한 공부와 훈련이 필요해요. 현장에 있는 사람들과는 다른 조직가로서의 역량을 키울 필요가 있어요. 그런데 그런 공부를 안 하고, 그런 필요가 있다는 것도 잘 몰라요. 그래서 중간지원조직의 리더들이 중요해요. 리더에 따라서는 조금의 변화가 가능하다고 봐요.


그래도 지속협은 최근에 설립되는 다른 지원센터들보다 간섭이 좀 덜하지 않아요?

다른 곳들은 단일한 의제로 활동하잖아요. 그런데 지속협은 사회의 제반 다양한 문제들을 다루잖아요. 그러니까 행정의 어떤 부서와 직접적인 이해관계로 연결되어 있지 않아요. 그래서 그런 거 같아요.




자기 일을 잘하는 게 중요


행정과 어떻게든 합을 맞춰나가기 위해 치사한 일도 하고 그럴 수 있잖아요. 그런 게 힘들진 않아요.

그럴 때가 있긴 해요. 그래도 저는 굉장히 현실주의자에요. 안 될 것 가지고 진을 빼지는 않아요. 행정과 부딪히는 걸 최소화하고... 저는 저녁에 술 마시며 형님 아우로 관계를 맺는 스타일은 아니에요. 그래도 잘 지내는 편이에요. 필요한 일이 있으면 가서 차근차근 이야기 하고. 못 알아들으면, 나중에 다시 하면 되요. 또 될 거는 막 드라이브 걸고 그래요. 그래도 우리는 큰 탈을 일으키지 않으니까 그리 예민하게 신경을 쓰진 않아요. 그냥 알아서 하게 두는 편이죠.


그럼 예산도 잘 안 주잖아요.

그렇진 않아요. 우리가 일을 잘하거든요.(웃음) 그래서 자기들이 필요하면 와서 같이 하자거나 해달라고 부탁하곤 해요. 그래서 예산을 잘 안 주지는 않아요. 그리고 우리는 예산을 늘리는 것도 눈에 띄지 않게 1천만 원씩 2천만 원씩 조금씩 늘렸어요. 저희 사무국 인원이 느는 것도 조금씩 했어요. 눈에 안 띄게. 그래도 지금 많이 늘었잖아요. 저는 막 뭐 달라 떼쓰고 그런 건 안 했어요. 별로 눈에 띄게 활동하지도 않았지만, 또 챙겨줄 게 있으면 가서 챙겨주고 그랬죠.


현명한 방식이거나 탁월한 처세술이거나 그렇네요.(웃음)

맞춰줄 건 맞춰주고, 얻을 건 얻고 그랬죠. 나쁘게 얘기하면 비위를 잘 맞췄죠. 저는 행정하고 싸울 필요가 없다고 봐요. 저희 같은 중간지원조직은 행정과 싸울 게 아니고 설득을 해야 한다고 봐요. 갈등이 왜 없었을까? 관심이 없었다는 것도 한 원인일 테고, 나도 관심을 갖지 않길 바랐던 것 같아요. 그래서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었던 것 같고...


많은 곳을 인큐베이팅 했는데, 어떤 일들인지 소개해 주겠어요?

‘마을만들기 네트워크’는 아까 얘기한 대로 최오진, 김도근, 저하고 처음 같이 시작한 거죠. 지속협 내에 분과 만들고... 그리고 ‘민주시민교육 네트워크’도 그렇고, ‘화학물질 알 권리 시민협의회’도, ‘공정무역협의회’, ‘식생활교육시민네트워크’ 등도 우리 활동으로부터 인큐베이팅 됐다고 할 수 있어요. 참여예산 네트워크도 있네요. 물론, 지금 참여예산 네트워크는 그 구성원들이 대거 참여예산위원회로 들어갔기 때문에 독자적인 활동은 없는 편이에요.


 


어떻게 잘 그만두고 잘 늙어갈까...?


이젠 개인적인 얘기 좀 하죠. 우리 세대 사람들은 개인적 얘기하자고 해도 일 얘기만 하는 경향이 있어요. 그거 말고 그냥 개인적 얘기... 요즘 개인적인 고민은?

잘 그만둬야 할 텐데... 어느 시점에 어떻게 그만둬야 하나? 그래도 늘 아쉽죠. 그래서 이것만 더 이것만 더 하고 있는데, 그러다가는 어느 세월에 그만둘 수 있겠어요. 요즘 고민은 어떻게 잘 그만둘까 하는 거예요. 그래서 올 해 시무식 때 사무국 활동가들에게 올 해는 너희가 더 자율적으로 많은 일을 해야 한다고 부담을 줬어요. 나는 이들에게 기능보다는 철학과 관점, 사람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등을 많이 전해주려 했어요. 나는 일 못하는 사람은 용서해도 싸가지 없는 사람은 용서 못한다고 얘기해요. 일은 못해도 기다릴 수 있어요. 그렇지만, 사람들과의 관계와 사회적 가치를 만들고 그걸 실현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인데, 그런 방향의 싸가지가 없는 사람과는 같이 일할 수 없다고... 그래도 우리 간사들은 그런 점에서 잘 하고 있어 다행이에요.

이번에 새롭게 SDGs(지속가능발전 목표)를 시민들이 직접 수립하는 과정을 시작했어요. 바텀 업(bottom up)으로... 1년 반을 했어요. 먼저 주요 활동가들 모아서 작업을 했어요. 그리고 이해당사자 그룹 워크숍을 했어요. 간사들이 1년 동안 이해당사자들을 만나러 다니도록 했어요. 저는 화성 SDGs 만드는 것 자체가 목적이 아니에요. 사람들을 조직하고 역량을 강화시키는 것이 목적이에요. 이해당사자를 만나는 것도 조직화의 과정이에요. 모니터링 하는 주체를 형성하려 해도 그런 조직화를 통해서 가능하잖아요. 그래서 간사들이 이 사람들을 모두 만나고 다닌 거예요. 그래야 이 사람들이 현장 네트워크를 형성할 수 있잖아요. 그런데 올 해 이 작업에 저는 전혀 다니지 않았어요. 간사들이 다 다녔어요. 그러면서 현장에서 이들도 많이 배웠다고 해요. 그런 걸 보면서 좀 있다 나가면 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또 하나는, 인정하고 싶지 않은데, 갱년기 우울증이 좀 있어요. 가족들 때문에 섭섭하기도 하고... 잘 늙어야 하는데, 이 갱년기를 극복하고 잘 건강하게 늙는 법을 어떻게 찾아야 하나 그런 고민이 있어요.


잘 늙는다는 게 뭘까요?

잘 모르겠어요. 그래도 전 지금 죽어도 아쉬울 거 없어요. 내가 하고 싶은 거 원 껏 했는데요, 뭐. 그래도 막상 일을 놓으면 날 어떻게 성장시키고 극복해야 하나 하는 생각은 들어요. 나를 성찰하고 좀 더 성장하고 시련을 겪고 성찰하고 그러면서 좀 더 성장하고 하는 과정을 죽을 때까지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일을 놓으면 진짜 우울해질 거 같아요.


나는 사회적 쓰임이 없으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게 내 삶의 목표에요. 그런데, 나 개인적으로는 어떻게 될까? 맨날 사회적으로 활동하던 사람이 그런 일을 그만두면, 난 개인적으로 어떻게 살아갈까 하는 고민은 있어요.

나는 지금 해야 할 일이 있고 그 일을 하면서 나의 존재감을 느끼고 그런 건데, 그런 일이 없어지면 나의 존재감을 어떻게 확인하고 살아가나 하는 고민이죠.


내 사회적 삶의 목표와 내 개인 삶 간에 괴리가 있는 거죠. 그게 고민이죠.

나도.


_ 인터뷰어 : 이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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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년 활동가이야기주간 프로젝트 일환으로 기획/진행한 '활동가 인터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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