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인터뷰] 마을과 교육을 연결하는 활동가, 대안학교 교사 전정일

개인적으로 활동가들에 대한 인터뷰는 오랜 동안 나의 중요한 활동 중 하나였다. 그런 활동들 대부분은 그 사람이나 그 활동에 대해 일정한 친분이 있는 경우였다. 그런데 이번에 만난 전정일(52세)씨는 그와는 좀 다르다. 과천에서 이런저런 활동을 할 때 이런저런 모임에서 지나치듯 만난 정도기 때문이다. 게다가 주변에 대안학교를 운영하거나 교사로 참여하는 이들도 많아 그리 인상이 깊지도 않았다. 다만 그 인연으로 페이스북에서 친구가 됐는데, 하는 일이 무척 다채로웠다. 대안학교 교사를 하면서도 여러 가지 동네 일을 하고 있었고, 시와 연관된 주민참여예산위원회, 주민자치위원회, 시에서 운영하는 블로그 기자 등 활동도 열심히 하고 있는 걸 알게 됐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열심히 풀뿌리운동을 하는 활동가라는 생각이 들었고, 한 번은 개인적으로 만나 얘기를 나눠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던 차였다. 그래서 활동가 인터뷰를 통해 전정일씨에게 연락을 하고 이 분이 교사로 일하고 있는 ‘맑은 샘 학교’를 찾아갔다.



대안학교 교사, 교육운동 및 마을 활동가로


주로 하시는 일은 뭡니까?

대안학교 교사에요. 맡은 직무는 교장이고.


항상 교장인 것은 아니라고 알고 있는데....

예. 우리는 일정한 주기로 역할을 바꿔요. 지금 현재는 교장이에요. ‘맑은 샘 학교’를 운영하는 ‘맑은 샘 교육연구회’ 대표도 하고 있어요. 연구회는 학교 운영만이 아니고 마을학교 관련 일을 해요. 그러다보니 마을과 교육을 연결하는 일들을 공모사업 통해 하고 있어요.

이건 본업이고, 양지마을 주민자치회 활동도 하고 있어요. 이 이름은 우리끼리 붙인 건데, 과천동 주민자치위원회와는 관계없어요. 물론, 과천동 주민자치위원회에도 참여하고 있어요. 과천시 주민참여예산위원으로도 2기 째 참여하고 있고요. 그리고 이웃 주민들과 마을방범대 활동도 자율적으로 꾸준히 하고 있어요.


꿈의 학교 활동도 열심히 하시는 것 같은데...

경기도 교육청과 협력해서 꿈의 학교를 과천지역에서는 처음 시작했어요. 처음엔 농사와 요리 꿈의 학교로 시작했다, 지금은 더 넓혀서 적정기술, 일 놀이 꿈의 학교로 확장됐어요. 꿈의 학교는 초기 동아리 활동부터 합치면 6년 차가 됐네요. 꿈의 학교는 과천시가 예산을 맞대응해야 해서, 꿈의 학교를 지원하도록 과천시에 지속해서 요구하기도 했어요. 시장이 바뀌면서 과천에서도 본격적으로 시작할 수 있었죠.

과천 꿈의 학교 학습공동체(꿈의학교 네트워크) 운영진도 하고 있어요. 원래 꿈의 학교는 마을교육공동체를 목표로 하거든요. 그러면서 경기도 교육정책자문위원회 등 경기도 교육청과 협력하는 여러 위원회에도 참여하고 있어요. 하는 일이 많지는 않지만, 경기 교육 관련 자료와 정보들을 접하고 싶어서 거절하지 않고 참여하고 있어요. 또 경기 교육청에서 공립형 대안학교를 세 개 만들 계획이 있는데, 하는 김에 제대로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해 추진단에도 참여하고 있어요. 과천교육혁신포럼과 과천시 창의교육협력센터 운영위원회에 참여하고 있고, 대안학교 연대체인 대안교육연대 운영위원, 과천시 대안학교협의회 대표도 하고 있어요.

그밖에도 과천시 소셜 시민기자단에도 참여하고 있어요. 과천시 블로그에 주로 기사를 올려요. 올 해 처음으로 해보는 거예요.


이런 일만으로도 바쁘잖아요. 그런데도 주민참여예산, 자율 방범대 등은 대안교육과 큰 연관이 없는 것 같은데...

저는 마을과 교육이 하나로 가야된다고 봐요. 그래서 낮에는 대안교육 일을 하고 저녁에는 마을 일을 하는데, 같은 맥락으로 받아들이고 있어요. 과천 양지마을에 살다보니 주민들과 이런저런 일들도 하게 되고, 과천동에서도 주민자치위원회가 뭐 하는 지 궁금하기도 하고, 참여예산은 이웃들과 이야기 나눠서 시정에 반영하면 좋겠다 싶어서 참여하고 있어요. 그리고 우리가 과천시민들에게 뭘 알리고 싶어도 알릴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그러면 내가 직접 알리지 뭐” 하는 생각에 시에서 운영하는 블로그 시민기자로도 참여하고 있어요.

저는 대안학교 교사로서 양 쪽에 양 발을 담근다고 생각 안 해요. 그것보다는 이것이 하나의 활동으로 이어지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이에요. 저는 대안교육도 정치와 자치의 영역으로 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스스로 마을을 자치적으로 변화시켜야 한다는 거죠.


** 맑은 샘 학교 아이들이 사용할 각종 작업 도구들이 있는 창고(?)



활동을 지탱해 주는 건 함께 하는 사람들


왜 이런 일들을 하고 있나요? 혹시 과거에 운동권이었나요? 나이를 감안해 보면, 학생운동의 끝물인 것 같은데...

저도 학생운동에 참여했죠. 그 시기는 전대협 시기부터 한총련 1기 정도까지 에요.


졸업하고 바로 대안교육 일을 시작했나요?

아니에요. 학교 졸업 후 광고 기획사 일도 잠깐 했어요. 당시엔 돈을 좀 벌어서 의미 있는 일을 하자는 그룹이 있었어요. 그래서 기획사 이후엔 이 그룹에서 하는 사업으로 책방에서 일하기도 했어요. 좀 길게 했던 건 학원 일이에요. 한 10년 넘게 했어요. 그런데, 아이를 낳으면서 생각이 달라졌어요. 사교육 일선에 있으면서, 우리 아이가 살아가는 세상이 좋아지질 않는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 데에는 당시 녹색평론이란 잡지 영향도 많이 받았죠. 그래서 가족들과 함께 귀촌을 생각했어요. 그래서 우리 얘들도 시골에 있는 대안학교 프로그램에 보내보기도 했어요. 그런데 좀 힘들더라구요. 그래서 접었죠. 그러다 서울에서 작은 공동육아 모임에 참여했어요. 이 활동을 하면서 대안교육을 처음 접하게 됐어요. 그러다 18년 전 쯤에 과천으로 이사했어요. 과천에서 그런 고민하다가, 맑은 샘 학교와 연결됐어요.

맑은 샘 학교의 전신은 2005년에 개교한 대안학교였는데, 내부 이견으로 두 개로 분화됐어요. 교사들은 시골로 내려가 기숙학교를 하려 했고, 여기에 남겠다는 학부모들이 있었고. 그런 학부모들 중 한 분은 제가 잘 아는 선배였어요. 그 분을 여기서 만난 거죠. 그 분 소개로 2007년 분리돼 만들어 진 맑은 샘 학교 교사로 일하기 시작했어요. 교사 하면서, 아이들과 여행 다니는 등 활동을 하면서 이렇게 사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아이들에게 일방적으로 가르치는 것이 아니고, 같이 성장하는 게 좋았어요.


이미 한 가정을 꾸린 상태에서 대안학교 교사를 선뜻 하기에 경제적 어려움에 대한 고민도 있었을텐데...

일을 시작할 때부터 제 가족은 4인 가구 였어요. 당시 제 월급이 150만원이었고요. 아내도 이 정도 인지 모르고 허락을 했어요. 생활고가 생겼죠. 그래서 1년 정도는 전에 보험 든 거 깨고 그러면서 생활했죠. 큰 애가 그러더라고요. 대안학교 교사하지 말고, 전처럼 돈 많이 벌라고... 또 아빠가 주말과 저녁 없이 일을 하느라 아이들과 시간을 함께 보내지도 못하니, 불만이 있었던 거 같아요. 지금은 좀 나은데, 학교 설립 초기에는 일들이 엄청 많았죠. 아이들이 지금은 20댄데, 예전에는 내가 왜 이 일을 하는지 잘 이해 못하는 것 같았어요. 내가 좋아서 하는 거죠. 그래도 가족의 힘이 없으면 버티지 못해요. 여기도 함께 사는 분이 경제적 능력이 없으면 오래 버티기 힘들어하는 편이에요. 가족들 생각하면, 어찌 보면 이기적이죠. 소박한 삶이지만, 아이들에겐 강요된 소박함이라 할 수 있죠.


저도 외부에서는 신념이 있네 뭐네 하지만, 어찌 보면 신념보다는 이기적인 것일 수도 있어요. 내가 좋아서 이 일을 오랫동안 하는 거니까. 이 일을 오래 하시는 힘은 뭐라고 생각하세요?

내적 동기가 우선이죠. 그리고 이걸 뒷받침해주는 사람과 조직이 있어야 하죠. 아까 말한 대로 곤궁함은 가족들이 버텨 준거고, 대안교육은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버틸 수 있었던 거 같아요. 중간에 떠나는 분들도 있지만, 저는 아직도 이 일을 하고 싶어서 계속 버티는 거고. 물론, 제 아내에게도 이 활동에 대한 동기부여가 있죠. 여기가 맑은 샘 교육‘공동체’니, 거기서 만들어지는 관계가 있잖아요. 거기서 교류하며 새로운 관계와 일을 만들어 가는 기쁨을 아내도 맛볼 수 있기 때문에 지금까지 할 수 있는 거 아니겠어요? 물론, 교사의 아내라는 입장에서 속앓이가 왜 없었겠어요? 그래도 그런 관계가 있으니까... 아내 스스로도 이런 활동들을 이해하고 또 좋아하기도 하니까, 그냥 해라 하고 인정해 주는 것 같아요.


공동체로 함께 어울려 사는 것은 많이 어렵잖아요. 특히, 뜻과 의지, 지향을 같이 해서 모인 공동체가 더 어려울 수 있어요. 자기 확신과 주장들이 각자 강하기 때문에... 개별로는 다 훌륭한 사람이지만, 이들이 모여서 함께 뭘 한다는 것은 쉽지 않아요. 그래서 이런 공동체가 갈등과 분열을 많이 겪잖아요.

공동체 생활을 하며 어려웠던 것이 바로 그거예요. 곤궁함 등은 개인이 감당하면 되잖아요. 함께 하는 사람들끼리의 갈등은 참 어려워요. 저마다 의견은 다 좋은데, 그런 의견들이 충돌하고 갈등이 생기잖아요. 이런 문제는 그 관계망에 대한 역량이 쌓여야 하죠. 근데, 학교는 계속 새로운 구성원이 들어오는, 순환되는 공동체잖아요. 그게 단점일 수도 있지만, 저는 장점이라고 봐요. 고여 있지 않는다는 점에서... 여기에 교사들이 중심을 꽉 잡고 있으니 장점으로 더 작용한다고 봐요.

저도 그런 갈등 많이 겪었죠. 학부모들 간의 관계, 교사와 학부모의 관계 등. 교사와 학부모는 보는 관점이 달라요. 그런 다른 관점을 학부모가 강하게 주장하면 갈등이 생기곤 해요. 교육공동체를 지향하는 이런 대안학교는 학부모들의 역할이 커요. 이런 작은 공동체는 이런 갈등에 매우 취약해요. 그럼에도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초기 이 학교가 분화될 때 발생한 갈등의 교훈이 큰 역할을 했다고 봐요. 그래도 많이 힘든 건 사실이에요. 교사와 학부모들 간 갈등이 생기면 저는 중재하려 노력하는 편이에요. 갈등조정위위원회도 있고 규정도 있어요. 그렇지만, 어쩌다 그 갈등이 교사들 개인의 잘못으로 지적되는 건 받아들일 수 없어요. 그럴 땐 교사들을 방어하는 편이에요. 그러면 그 화살이 나한테 올 때도 있죠. 그럴 땐 힘들어요.


그렇게 힘들 땐 어떻게 해요?

그렇게 화살이 나에게 오면, 또 나를 이해해주는 사람들도 있는 거죠. 사실, 이런 공격은 모두에게서 나오기보다 한 두 사람에 의해 나와요. 다수는 공동체를 유지하려는 경향이 강해요. 그래서 이들 때문에 지금까지 이 학교가 이어져 내려올 수 있었죠. 그리고 이런 문제들도 있고 해서, 교사들 안식년을 5년마다 줘요.


강제적으로 가게 해요?

그렇게 하려고 하지만, 잘 못 가요. 그래서 누군가 먼저 가는 모범을 보여야 한다고 생각해서, 내가 먼저 갔어요. 사실, 올 해 제가 안식년 갈 차롄데, 제가 선택해서 안 가겠다고 연기했어요. 대안학교가 안 어려울 때가 없었지만, 그래도 최근은 좀 더 어려워서 그러기로 했어요. 교사들이 3년 전에 많이 바뀌었어요. 오래된 교사들이 50%가 안 돼서, 부모들이 불안해하기도 해서... 그래서 대신 안식월을 갖기로 했는데, 코로나 때문에 다 헝클어졌죠.


** 올 해 덕적도로 다녀 온 '자연 속 여행기숙학교'


마을과 학교는 서로 깊이 연결돼 있다


과천에 대안학교가 여럿 있잖아요. 보면 교사들이 주도하는 대안학교와 학부모들이 주도하는 대안학교가 있던데, 여기는 어떤 곳이죠?

학교 세울 때부터 규정으로 박아놨어요. 교육 과정이나 방식은 모두 교사들이 결정하도록 했어요. 학교 운영과 관련해서는 교사와 부모가 함께 운영하는 게 규칙입니다. 다만 학생 중심의 교육을 실천하는 교사들을 학부모들이 뒷받침하는 힘이 큰 곳입니다. 학교의 주체는 교사, 학생, 학부모지만 실제로 학교에서 살아가는 주체는 교사와 학생이라고 봐요. 학부모는 교육의 한 주체죠. 학교에서는 학생들과 교사가 살아가잖아요. 학부모는 학교에서 줄곧 사는 분들이 아니기에 주로 지원하는 활동과 운영하는 일에 참여하곤 합니다. 다만, 교육활동과 학교에서는 아무래도 교사의 주도성이 더 커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만드는 과정에서도 차이가 있잖아요. 교사가 중심이 돼서 학부모를 모집하는 경우와 학부모들이 중심이 돼서 교사를 초빙하는 방식은 다르죠.

여기는 교사들이 중심이 돼서 학부모들을 모집한 경우죠. 학부모들은 최대 6년 동안만 여기 함께 있는 거예요. 그러니 아무래도 교사들이 중심을 잡을 필요가 있어요. 교사들의 역량을 쌓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오고 있어요. 그래도 학부모들과의 관계가 아주 중요한 곳입니다. 교육‘공동체’를 지향하기에 그렇습니다.

교육공동체는 부모들이 재정과 시설 등 교육 환경을 만들어 주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교사들이 재정과 시설 포함해 교육 과정까지 모든 걸 다했다면, 지금은 부모님들이 많이 고민하고 뒷받침 해주고 있어요. 그런데, 교육비용을 계속 올릴 수는 없으니까, 공모사업이나 자치단체 지원 폭을 넓히려 해요. 지원 끌어오는데도 부모들이 많은 역할을 해요.


공모사업도 많이 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공모사업 중 성평등, 기후위기, 생태 등 우리 교육과 연관된 것은 일부러 끌어오려 노력해요. 그래서 과천의 기후학교에도 적극적으로 결합해요. 재정 문제도 있지만, 시에서 하는 그런 좋은 일이 확산되기를 바라기 때문에...


선생님은 대안학교 일을 하면서도 동네 일을 많이 하는데, 학부모들도 동네 일에 참여하는 그런 경향이 있나요?

저희는 초기부터 마을이 아이들을 함께 키운다, 그러기 위해서는 마을 일에도 열심히 참여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해요. 그래야 마을 사람들에게 함께 아이들을 키우자고 얘기할 수 있죠. 마을이 가꿔지려면 우리도 마을을 위해 열심히 참여해야죠. 초기에는 학교가 자주 이사 가야 하는 문제 때문에 안정된 터전을 만드는 것이 중요했죠. 그런데 터전을 마련했기 때문에, 학교가 터 잡은 양지마을을 가꾸는 게 중요하죠. 과천시와의 관계도 그런 점에서 중요하고요. 그런 점에서 우리 학교 학부모들도 마을 일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그래서 마을에 필요한 공모사업을 받아 운영하기도 하고, 점점 주민자치위원회 같은 마을 일에 참여하는 분들이 생기게 돼서 즐겁습니다. 사실 과천시민들 대부분은 이런 대안학교가 있는 줄 몰라요. 모르면 어떻게 함께 마을을 가꿔갈 수 있겠어요.


주민자치위원회에 참여하면서 좀 답답하진 않나요?

사실 주민자치위원회가 그리 많은 일을 하는 건 아니에요. 처음엔 주어진 형식에 너무 매몰돼 있는 것 같고 그랬어요. 그렇다고 거기에 목소리 크게 문제를 제기하면, 함께 어울릴 수 없었겠죠. 문화가 다른 것이라 생각했어요. 저는 이 분들이 자원봉사 활동이나 마을을 위해 맘을 내놓은 걸 좋게 봤고 많은 것을 배우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저도 열심히 자원봉사 참여하고 그러죠. 나중에는 저희가 교육 과정에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후위기 문제나 그런 것들을 시나브로 조금씩 나누려고 해요. 제가 참여예산에 참여하는 것도, 주민자치위원회에서 지역에 필요한 예산을 제안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얘기했기 때문이기도 해요. 그래서 잘 활용하기도 했어요. 그러다보니 주민자치위원회도 그런 활동에 자연스럽게 참여하게 되고... 그러는 사이 이 분들이 대안학교 행사에도 오시고... 이젠 우리 학교에 대해서도 긍정의 눈길을 보내는 분들도 계십니다.

작년부터 과천시 내 공교육 학부모들과도 함께 활동하고 있어요. 이 분들 가운데 지지난해 대안학교 급식비를 감액하는데 동의했던 분도 있어요. 좋은 분들인데, 이상하게 오해한 거예요. 그런데, 과천시나 과천동을 위해 함께 좋은 일을 하면 진심이 그렇지 않다는 것도 알게 되고 참 좋은 분들이라는 걸 확인하게 되어 좋습니다.


저도 나이든 사람들은 바꾸기 힘들다고 생각해요. 나부터도 그런 걸요. 그렇지만 관계를 바꿀 수는 있어요. 그런 증거가 여기 있네요.




1시간 30분 이상 주로 대안교육에 대해서 열정적으로 이야기하는 걸 보면서, 그만큼 이 활동은 이 사람 삶의 대부분을 차지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인터뷰를 시작한 지 시간이 많이 지났지만, 개인적인 이야기도 좀 들어보고 싶어 질문을 던졌다.



내가 아닌 마을의 성과로 남기기 위해


요즘에는 주로 무슨 고민을 하세요?

하나는 코로나 이후 교육 담론에 대한 고민이 있어요. 상반기에 학교를 문 닫을 수밖에 없었고 5월 20일부터 60명 이하 작은 학교는 개학할 수 있다는 교육부 지침에 따라 다시 문을 열 수 있었어요. 그래서 아이들과 여행을 다녀왔죠. 하지만, 앞으로 이런 상황이 더욱 확대되면 교육이 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어요. 온라인 교육으로는 저희가 할 수 있는 게 한계가 있어요. 앞으로는 코로나를 함께 껴안고 살아야 한다고 보는데, 저희 같이 60명 이하의 작은 학교는 그래도 괜찮은 편이죠. 문제는 아이들의 돌봄 문제에요. 큰 학교는 이걸 할 수 없잖아요. 그러면 작은 학교를 많이 만들어야 하는데, 공교육은 예산 문제로 이와 정반대로 가고 있어요. 예산이 더 들더라도 작은 학교 중심으로 재편돼야 일상이 회복돼요.

다른 하나는, 학령인구가 적어지니 들어오는 학생들이 줄어요. 공교육만이 아니라, 우리 같은 민간 대안학교에도 그 영향이 커요. 학생들이 안 오면 교사들이 빠져나갈 수밖에 없고, 그러면 교육의 질도 떨어질 수밖에 없고. 저희 학교는 아주 작은 규모라서 그런 영향이 아직은 크지 않지만, 곧 이런 작은 학교에도 영향이 올 거예요. 살아남으려면 뭔가 해야 하는데... 우리는 교육운동 하는 사람들이지 대안교육운동만 하는 사람이 아니니까... 공교육을 이에 맞게 변화시키고 대안학교도 특별한 매력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하죠.

특히, 재정 문제는 심각해요. 경제가 어려워지면 아무래도 대안학교 보내려는 분들이 줄어들 수 있기 때문에 대안학교 운영 자체가 힘들 수밖에 없게 되죠. 지속가능성이라는 것도 결국 생존전략이잖아요. 그래서 이런 상황에서 학제 편성 등에 대해서도 고민 중이에요. 진입 장벽 없는 교육 서비스를 어떻게 만들까 하는 고민...


역시나 교육과 관련한 고민들이네요. 좀 더 개인적인 고민들도 있을 텐데... 오래 이 활동을 해왔고, 나이도 이제 50이 넘었고...

교육 기관에 일한지 25년 가량 됐죠. 옛날 입시교육의 첨병 노릇에 대해서는 지금 그 죗값을 갚아나가고 있다는 생각을 해요. 여기서는 업무용 복장이 작업복이에요. 아이들과 함께 여러 작업을 하기 때문이에요. 그러다보니 요즘은 체력이 좀 달려요. 얼마 전 ‘자연 속 여행기숙학교’를 덕적도로 다녀왔어요. 부모를 떠나 여행하면서 자기 혼자 생활하고 생태적 감수성도 길러주는 학습 과정이에요. 이번 여행을 통해 체력 관리도 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한 학교에서 오래 일하는 사람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외국의 여러 대안교육기관을 방문하고 그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만나봤어요. 많은 곳의 특징이 오래된 교사가 있더라고요. 그런데 요즘은 좀 다른 생각이 들어요. 한 명이 오랫동안 한 학교에 있으면, 그 사람에게 쏠리는 부담이 있잖아요. 오랫동안 정신을 지켜 온 것은 장점이지만... 그게 우리 처지에서 바람직할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아무리 우리가 순환교사제를 해도 새로운 교사는 오래된 교사 눈치를 볼 수밖에 없죠. 그래서 요즘에는 “이렇게 오래 있어도 되나?” “이제는 그만두어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고민을 해요. 오래된 교사로 줄곧 일 하면 좋겠다는 생각과 젊은 교사들을 위해 물러나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한데 어우러져 있는 중 인거죠.

교육 말고 다른 일 하는 걸 상상하지는 않아요. 그래도 교육을 매개로 사회적 협동조합 같은 그런 영역으로 또 다르게 해나가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있어요. 그게 쉬운 일은 아니니까 이런저런 고민을 하고 있어요. 그리고 요즘은 일 말고 아이들 진로 문제 등 가족 걱정도 좀 되는 편이에요.


마을신문도 발행하네요?

벌써 5주년이 됐네요. 재작년까지는 제가 편집장을 했는데, 올 해부터는 다른 분이 편집장 역할을 해요. 이 분이 맡고 나서 마을신문이 훨씬 다채로워졌어요. 방범대도 오랫동안 대장을 해서 넘겨야 하는데, 다른 분들이 다 바쁘네요. 옛날에 마을장터 지기도 내가 했는데, 다른 분에게 넘겼어요. 이제는 제가 하던 역할들을 마을의 다른 분들에게 조금씩 넘기는 중이에요.

지금은 동네 주민들과 하는 여행계가 제일 재밌어요. 20가구 정도가 참여하는데, 2년 주기로 계를 타는 사람이 여행을 가요. 그리고 여행 갔다 온 걸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거죠. 2기는 해외 말고 국내에서만 다녀오는 걸로 했어요.

그렇게 마을의 많은 재주꾼들이 나와서 마을을 이루는 주체들이 많아졌으면 해요. 그래야 다양한 활동들이 마을에서 벌어질 수 있고, 또 그걸 통해 그런 다양한 활동들이 온전히 마을의 성과가 될 수 있다고 봐요. 그렇게 제가 하던 활동들을 마을이 가져가게 하고 싶어요.


_ 인터뷰어 : 이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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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년 활동가이야기주간 프로젝트 일환으로 기획/진행한 '활동가 인터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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