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활동가인터뷰] 돌봄공동체, 원주를 꿈꿔요! 위드커뮨 천혜란

햇살이 눈부신 6월의 아침, 설레는 마음으로 원주로 향했다. 대한민국 협동조합의 메카 원주에서는 요즘 커뮤니티케어(지역통합돌봄)가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던데, 그 중심에 천혜란 열혈 활동가가 있다는 즐거운 소식 때문이었다. 6월5일(화) 오전 11시, 아침회의를 마치고 카페로 숨가쁘게 뛰어들어오는 그녀의 얼굴에는 이미 희망찬 기운이 가득했다. 일본에서 사회복지를 공부한 그녀가 어떻게 아무 연고가 없는 원주에 정착하게 되었을까? 커뮤니티케어의 내용 그 자체도 궁금했지만, 사실은 그녀가 걸어온 삶의 여정이 더 마음을 끌어당겼다.



“십년 이상 한국을 떠나 살다가 작년 봄에 귀국을 했어요. 아무 연고도 없는 원주라는 곳에서 새로운 한국생활을 시작해야겠다고 결심했던 이유는, 그저 협동조합이 좋아서였어요. 저는 일본에서 사회복지를 전공했는데, 석사논문이 장애인 고용을 위한 사회적 지원 연구였고, 결론 부분에 사회적기업, 사회적협동조합의 가능성에 대한 언급을 했었어요.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보람을 느끼며 나답게 일할 수 있는 곳, 그 일터를 제공할 수 있는 곳으로 (사회적)협동조합이 정말 좋다고 생각했고, 이후로 사회적경제, 협동조합 등에 대한 공부를 본격적으로 하기 시작했어요. 

오히려 일본에서는 한국의 협동조합들의 다양한 활동을 주목하고 있었어요. 놀랍죠? 우리는 우리가 얼마나 잘하고 있는지 잘 모르고 있어요. 오히려 일본인들은 한국 협동조합들의 장점을 배우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저는 2015년 박사논문의 기초 자료 수집을 위해 원주에 오게 되었고 정말 자연스럽게 협동조합의 활동가들과 인연을 맺게 되었습니다. 그때 만났던 분들이 제게 ‘지역돌봄을 위한 공동체’를 만들고 싶은데 함께 하면 어떻겠냐고 먼저 제안을 주셨어요. 아, 제 눈빛을 읽으신거죠. 운명처럼 저는 귀국과 동시에 바로 원주에서 활동가로 삶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지역활동가의 삶을 그처럼 쉽게 받아들이다니! 그녀의 결단력과 진취력은 이미 국가대표급임을 알겠다. 결국 그녀는 운명처럼 한 순간에 원주에 정착하게 되었고, 커뮤니티케어를 준비하는 협동조합에서 그 누구에게 일을 배울 사이도 없이 멀티 플레이어가 되어 사업을 진행해 오고 있다. “우아, 맨땅에 헤딩은 바로 이런 거구나! 매일 매일이 전쟁 같았어요. 즐거운 전쟁!” 그녀의 목소리가 일순간 한 옥타브 올라갔다.


“원주협동사회경제네트워크에서 첫 근무를 시작했습니다. 원주에 오자마자 정말 많은 사람들을 만났어요. 지역의 어르신들부터 아주 젊은 활동가 분들까지 계속 만나고 다녔어요. 지역주민들을 찾아다니고 만나고, 그 안에서 각자가 가지고 있는 돌봄에 대한 욕구들을 끌어내고, 함께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내고 만들어내는 것이 저의 역할이라고 생각했거든요. 다양한 욕구들이 있는데, 어떻게 그 욕구를 지역의 자원들과 엮을 수 있을까 정말 많이 고민했어요. 물론 혼자 고민한 건 아니구요.”


여기서 잠깐! 커뮤니티케어에 대해서 약간의 설명이 필요할 듯하다.  커뮤니티케어란 지역사회의 힘으로 돌봄이 필요한 사람이 자신이 살던 곳에서 어울려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돌봄 시스템이라 할 수 있다. 돌봄을 필요로 하는 주민들이 자택이나 그룹홈 등 지역사회에 거주하면서 개개인의 욕구에 맞는 복지 급여와 서비스를 제공받는 시스템이다. 즉, 의료기관이나 요양시설 중심의 돌봄에서 벗어나 지역사회가 힘을 모아 노약자를 돌보는 서비스로, 돌봄이 필요한 사람이 자신이 살던 곳에서 어울려 살아갈 수 있도록 하겠다는 취지에서 시작되었다. 이미 미국, 영국 등과 같은 선진국에서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복지시스템이기도 하다. 과연 원주에서도 커뮤니티케어 시스템의 적용이 가능할까? 또 하나, 기존의 지역활동가들은 그녀의 활동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제가 가장 힘들었던 건, 시스템 적용 문제가 아니었어요. 커뮤니티케어의 의미는 다 좋은데, 제가 이곳 사람이 아니어서 지역이나 조직의 정서를 잘 모르고 마구 덤벼들고 있다는 부정적인 시각이었어요. 처음엔 얼마나 고민스러웠는지 몰라요. 많이 당혹스러웠어요. 내가 도대체 원주에 대해 무엇을, 얼마나 더 알아야 잘 아는 걸까? 그분들이 말하는 ‘정서’라는 건 내가 살면서 익숙해지면 해결되는 게 아닌가? 그럴 때마다 저는 긴 호흡으로 가자, 다시 걸어 가자...... 지금은 그런 고민의 시간이 다 지나가고 부지런히 달려나가고 있어요.

저는 제일 먼저 스터디 모임을 만들기로 했어요. 적은 인원이라도 지속적으로 만나 같이 공부하고, 토론하고, 계속해서 이야기를 나누어 보고 싶었거든요. 그렇게 하다 보면 다양한 의견들이 쌓이고, 그 안에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도 하나씩 만들어 갈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스터디 모임은 같은 꿈을 꾸는 동지를 찾아가는 과정이었습니다. 이젠 혼자 고민하지 않습니다. 운 좋게도 저는 같은 길을 걷는 친구들과 어깨동무를 하고 있습니다. 요즘 원주지역 협동조합들의 운동성이 많이 약해졌다는 이야기들을 많이 하는데요, 꼭 길 위에서 큰 소리로 말하고, 서명하고, 집회에 참석하는 것만이 운동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함께 공부하고 논의하고 방향을 찾아가는 이 시간들이 지금 가장 필요한 지역운동의 시작이라고 봅니다."


** 사진2. ‘돌봄수다회&북리딩’ - 원주에서 주목받는 돌봄 학습모임으로 성장하고 있다.


그녀의 길었던 유학생활은 그녀를 전사로 만들어주었는지도 모르겠다. 석박사 과정 내내 스스로 학비와 생활비를 해결해야했고, 언어와 문화가 전혀 다른 일본의 사회복지현장에서 쌓아올린 짱짱한 현장경험들은 그녀에게 단단한 맷집을 선물로 안겨주었다. 지역 사정을 잘 모른다며 냉소를 보이던 지역활동가들이 이제는 둘도 없는 동료가 되어 그녀와 함께 하고 있으니, 이보다 더 즐거운 일이 또 있을까. 현재 그녀가 진행하는 ‘돌봄수다회&북리딩’ 모임은 지역에서 주목받는 모임 가운데 하나로 성장했다. 커뮤니티케어 학습자를 위한 정기 워크샵도 진행할 만큼 모임의 역량도 강화되었고, 지난해에는 원주시에서 처음으로 ‘돌봄백서’를 출판하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다.


** 사진3. 돌봄백서 - 원주시 최초로 지역의 돌봄자료와 자원들을 한곳에 모았다.


“커뮤니티케어(지역통합돌봄)가 사회 이슈가 되면서, <지역>을 중심으로 한 돌봄에 대한 논의가 점차 수면위로 올라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번의 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저는 지역 내에서 해야 할 일들이 더욱 많아지리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케어야말로 지역사회의 임무하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지역복지 실천주체로서의 사회적경제의 역할도 더욱 강조되리라 생각합니다. 지역과 밀착하여 사업을 전개하고 있는 비영리복지협동조직(사회적기업, 사회적협동조합, 협동조합, NGO 등)들의 돌봄이 점차 주목받고 있어요. 지역의 자료와 자원들을 한곳에 되었습니다. 이제 진짜 시작인거죠.”


원주에 커뮤니티케어의 닻을 내린 그녀는, 뜻밖에도 창업을 준비하고 있었다. 큰 조직에서 안정적인 사업에 안주한다면 더 이상 진정한 활동가가 아니란다. 아, 얼마나 뜨끔하던지. 인터뷰이 선정을 정말 잘했다.


“운이 좋았어요. 2020년 사회적기업가 육성사업에 창업준비팀으로 선정이 되었고, 현재 ‘위드커뮨’이라는 법인으로 새롭게 일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조직이라는 울타리 덕분에 이만큼 성장했다면, 이제는 독립해서 겁 없이 일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현재 위드코뮨은 돌봄과 사회적경제를 테마로 하는 학습강좌와 돌봄학교 등을 기획하고, 돌봄활동에 관한 상담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저는 많은 사람들이 돌봄을 나만의 문제에서 우리 가족의 문제로, 그리고 지역의 문제로 인식하기를 바랍니다. 더 나아가 내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정든 지역에서 안심하고 계속 살아갈 수 있는 돌봄공동체를 만들어가기를 원합니다.”


누가 원주를 이토록 사랑할까? 고향은, 그 지역에서 태어난 사람의 공간이 아니라 그 지역에서 살아갈 사람의 공간으로 그 정의를 바꾸어야하지 않을까? 이제 원주는 그녀의 고향이고, 이웃들과 함께 정들어갈 그리고 나이들어갈 공간이다. 이미 고향의 의미를 충족하고도 넘친다. 새로운 고향에서 그녀는 어떠한 꿈을 꾸고 있을까?


“사회적경제 영역에서의 다양한 돌봄활동이 있어요. 단기적으로는 이를 지역에 널리 널리 알려야 해요. 누구도 지역사회 돌봄에서 소외받지 않도록 말이에요. 그리고 이 사례와 경험들을 해외에도 알리고 싶습니다. 외국의 선진 사례들을 공부하기 위해 수많은 조직들과 사람들이 해외로 연수를 갑니다. 하지만 저는 반대로 다양한 나라와 지역에서 강원도 원주에 커뮤니티케어를 벤치마킹 하기위해 찾아오기를 희망합니다. 그날까지 저는 꿋꿋하게 이 길을 걸어가겠습니다.”


‘나이 들면 원주로 이사를 가야하나?, 이참에 고향을 바꾸어야하나?’ 그녀와의 못내 아쉬운 데이트를 마치고 나서는 길, 차 안으로 그녀의 카랑한 웃음소리가 자꾸만 따라오네~

 

** 사진4. 인터뷰 현장사진, 천혜란 & 양진운


인터뷰어 양진운 : 오랜 시간 국제개발협력사업을 기획하고 운용해왔다. 현재는 대학에서 사회복지를 가르치는 선생으로, 자전거 타는 지구별 여행자로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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