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활동가인터뷰] 우직하고 꾸준한 마을 활동가, 지리산이음 임현택



내 기억으로는 임현택*을 처음 만난 건 10년이 훨씬 넘었다. 당시 내가 일하던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사무실로 그가 찾아왔었다.
* 지리산 작은변화 지원센터장-이 글에서는 이름 뒤에 직책을 붙이지 않고 그냥 ‘임현택’이라 표현하고자 한다. 나보다 나이가 적다고 그런 건 아니다. 간략한 표기를 하기 위함이고, 또 그게 더 친근한 것 같아서다.

당시 부산의 풀뿌리운동단체들이 네트워크를 만들려 준비 중이었는데, 그에 대해 이것저것 상의하고 싶다고 찾아왔었다. 임현택의 기억으로는 오래 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의 지리산 탐방 때에도 만났다고 하는데, 그 시기가 내가 기억하는, 사무실로 날 찾아왔을 때 전인지 후인지도 기억이 안 난다. 그냥 오래 전부터 알고 있는 사이 정도라 하는 게 지금의 기억으로는 가장 정확하다.

내가 임현택을 인터뷰한 것도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그것도 오래 전에... 부산의 풀뿌리운동 네트워크에 대해 인터뷰 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지금 다시 임현택을 만나 인터뷰하기로 한 것은 정작 개인적인 이야기를 잘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부산에서의 활동은 알고 있었는데, 어느 날 지리산에서 임현택을 다시 만날 수 있었다. 그간 가끔씩 만나면서 묻지는 않았지만, 간접적으로 아이가 아토피가 심해져 공기 좋은 지리산으로 이주했다고 들었다. 그리고는 일 관련해서 가끔 만나는 사이가 됐다. 그런데, 어느덧 지리산 지역에서는 매우 중요한 활동가가 돼 있다. ‘지리산 이음’의 사무국장을 맡더니, 이제는 ‘아름다운재단’과 협력해 만든 ‘지리산 작은변화 지원센터’의 센터장 역할도 하고 있다. 이 두 곳은 굳이 산내면이나 남원시만이 아니라, 지리산권역(남원, 구례, 산청, 함양, 하동)을 활동 대상으로 하고 있다. 이 활동들은 주로 이 지역의 풀뿌리운동을 연결하고 지원하는 역할이다.

그런데, 임현택의 활동 내용에는 그것만 있는 것이 아니다. 산내면 지역에서는 마을잡지 편집장, 산내극단 매니저 역할도 맡고 있다. 동네에서는 이런 구체적 직책보다도 동네 활동가처럼 여러 가지 일들을 앞장서 하는 편이기도 하다. 그래서 궁금했다. 부산에서 지리산으로 활동과 거주 공간을 바꾼 속내도 그렇고 이곳에서의 활동들, 그리고 그와 관련된 개인적 생각 등이...




지리산 이음 사무국장과 지리산 작은변화센터 이음 센터장을 모두 맡고 있는데, 너무 바쁜 건 아닌가? 게다가 산내면에서도 마을 사무국장 같이 여러 가지 일들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지리산 작은변화지원센터 3년차가 되면서 실무자들이 이제 자기 일과 역할을 잘 찾고 있어 정신없이 바쁘지는 않아요. 나는 실무자들 일을 도와주는 정도? 많은 일들을 같이 논의하지만, 그 구체적인 역할들을 다 알아서 하는 편이에요. 물론,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에요. 처음에는 내가 사람들에게 연락하고 약속 잡는 일 등도 모두 했어요. 실무자들이 현장 사람들을 잘 몰랐기 때문에... 그런데, 지금은 다들 잘 알아서 해요. 다만, 현장의 지역 활동가들을 만날 때 “아! 그렇군요” 라는 공감의 표시나 “그거는 이렇게 하는 게 어떨까요? 어디에서는 이렇게 하던데”하는 등의 제안은 내가 주로 하는 편이기는 해요. 그래도 지금은 내가 젊은 실무자들을 도와주는 정도라 할 수 있어요.


젊은 실무자들과의 관계, 인정하고 인정 받고 싶은...


젊은 실무자들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이들과 일하면서 세대차이나 그런 건 없나요? 사실 현택 센터장도 40대 후반인데... 20-30대의 젊은 실무자들을 잘 이해하지 못할 것 같은데... 게다가 이 문제는 10여 년 전부터 시민운동단체들마다 겪는 문제이기도 하고...

상근 실무자는 20대가 두 명이 있고,  저 말고 40대도 있어요. 저도 20대를 이해하지 못하는 편은 아니라고 생각해왔는데,  조금씩 공감 능력이 떨어진다고 생각 들때가 생기더라구요. 공감이 어려울때 인정해보려고 노력하는중이라고 해야할까...


내 식으로 표현하면,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인정을 한다는 건데...

같은 의미에요. 나도 그 실무자들을 인정하고, 나도 그들에게 인정 받고 싶고...


그래도 젊은 활동가들과의 사이에서 갈등이 생기는 건 피할 수 없쟎아요. 그런 문제들은 어떻게 헤쳐나가는지...

지리산 이음과 작은변화지원센터는 저를 비롯해 오관영, 조아신 등 나이가 좀 있는 활동가들이 처음 만들었쟎아요. 저희가 처음 만들 땐 구체적인 어떤 비전이나 활동 내용 등을 정하고 시작하지 않았어요. 다만, 그런 게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바탕이 됐죠. 구체적인 건 활동하면서 함께 만들어 나가자고 한 거였죠. 그런데, 지리산 이음이나 작은변화지원센터에 결합한 젊은 활동가들은 그런 공감대에서 출발하지 않았기 때문에 좀 다르죠. 그래도 지금보다 한 발짝 더 나갔으면 하는 바램은 있어요. 비전이나 활동 방향, 내용 등을 함께 만드는 데 한 발짝 더 깊이 들어왔으면 하는... 그렇지만 그게 바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죠.  그런 기대를 갖는 것 자체가 욕심일 수 있죠.


그런 차이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드러나죠?

예를 들면, 업무적으로가 아니더라도 주말에 나와서 일을 해야 할때가 있잖아요. 일과 일상이 크게 분리되지 않은 나나 조아신은 주말 상관없이 필요한 일을 하는 편이죠. 하지만 젊은 활동가들에게 함께 그러자 하는 얘기를 못하는 거죠 . 


그건 입장이 좀 다르기 때문이 아닐까요? 그 분들은 활동가라는 것도 좋지만, 노동자로서의 기본적 권리에 대한 인식이 있는 거 아닐까요?

그런 건 지켜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도 필요하면 하자고 이야기 할 수 있을 텐데, 나 스스로가 그 말을 꺼내는 것에 부담을 느끼는것 같아요. 마을 활동가들이 대부분 일과 일상이 분리되지는 않죠. 이음 활동가이자 마을활동가로서 그냥 자연스럽게 받아들이 거죠. 그런데, 출퇴근의 개념이 들어가기 때문에 부담을 느끼게 되는것 같아요.  저는 사무실에 잘 붙어있지 않아요. 동네에서 사람들과 좀 더 자연스럽게 만나는 편이에요. 전화로 얘기할 수도 있지만, 저 같은 경우는 직접 찾아가서 얘기하는 걸 선호하는 편이에요. 직접 만나서 얘기하다보면, 일 얘기만이 아니고 이런 저런 이야기도 하죠. 그러면서 관계가 더 긴밀해지고, 좋은 아이디어도 나오고 그런 편이죠.

일상과 일의 분리를 어떻게 느끼느냐의 차이, 그런 점 등에서 젊은 활동가들과 약간의 차이가 있다는 것이지, 불편하다거나 틀렸다거나 그런 건 아니에요. 소통이 어려울 때도 있기는 하지만, 우리 활동가들은 내가 밖에서 사람들을 만나면,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 공유해주기를 바래요. 그런 과정에서 조금씩 소통의 폭도 좁혀지는 것 같아요. 저희는 일주일에 한 번씩 그런 이야기를 하는 편이에요.

사실 이런 차이는 젊은 활동가들과만 생기는 건 아니에요. 최근에는 시민사회단체들이 활동 체계 만드는 걸 강조하곤 해요. 하지만, 저나 조아신은 그런 체계보다는 풀뿌리운동 활동 방식에 더 익숙해요. 마을 사람들과 형님 동생 하면서 관계를 만들어 나가는 걸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이죠. 그런 체계와 매뉴얼을 만든다고 일이 잘 된다고 생각지 않거든요. 저희 활동 방식을 기업 같은 방식으로 만들고 싶지는 않아요.




동네에서 주민들과 함께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주제를 좀 돌려, 풀뿌리운동에 관심을 가지게 된 배경에 대해 이야기해 주세요. 그리고 지리산에 오게 된 배경까지...

저는 학생운동이 저물어가는 시점에 학생운동을 열심히 했어요. 학교를 나오고 청년회 활동하기도 했고, 컴퓨터 관련 사업 하던 형님 일 도와주기도 했죠. 그러다 부산 민주공원에서 사람 뽑는다 해서 지원해 들어갔어요. 그러다가 2007년 6월 항쟁 20주년 기념사업조직위원회에 참여했어요. 여기서 회의를 하는데, 주요 사업이 서면에 길을 막고 무대 세우고 초청가수 공연하는 등 중심인 거예요. 나는 그런 행사보다는 6월 항쟁을 더 많은 사람이 기념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6월 항쟁을 마을에서 기념하는 방법은 없을까 하는 고민을 했고, 이를 사업으로 제안하기도 했어요. 다른 분들도 공감해줘서 그에 필요한 예산도 배정받을 수 있었어요.


그 때도 부산 여러 지역에서 어떤 사람들이 풀뿌리운동 하는지 알고 있어서 그런 거예요?

그 땐 몰랐고, 찾아봤죠. 그렇게 찾아보니 여러 사람들을 알게 됐죠. 그래서 무조건 찾아갔어요. 거기서 그 분들에게 우리가 이런 사업을 기획하고 있으니 함께 하면 좋겠다 하는 제안을 하게 됐죠. 그런데 이 분들과 소통하다보니, 마을이 생각보다 사람도 많고 재밌다는 느낌을 갖게 됐어요. 그래서 이 행사를 하고 난 후 풀뿌리단체들과 함께 해 볼 일들을 기획하기 시작했어요. 현장 활동가들에게 어떤 걸 하면 좋을지 묻고 다니기도 하고, 당시 부산대 NGO 대학원에 다녔는데, 그 동료들과 풀뿌리운동에 대한 조사도 하고 그랬어요. 그리고 풀뿌리 활동가들과 함께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는 아카데미를 진행하기도 했어요. 그 때 이호 소장님도 찾아갔죠.

25명 정도의 풀뿌리운동 활동가들과 아카데미를 같이 했고, 마지막 프로그램으로 엠티를 갔어요. 거기서 풀뿌리운동 활동가들이 이런 모임을 지속했으면 좋겠고, 부산민주공원이 이를 지원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가 많이 나왔어요. 그러면서 풀뿌리운동 네트워크를 만들자는 이야기가 나왔죠.

개인적으로도, 촛불집회(노무현 탄핵인 듯)에 조직되지 않은 시민들이 나오는 걸 보고, 여기에 나오는 사람들이 이후에 시민단체에 참여할 거라 생각되지 않았어요. 나는 이들이 다시 자신의 일상이 있는 지역과 마을로 돌아가 뭔가를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러면서 풀뿌리운동이 보다 폭발적으로 일어나면 좋겠다는 생각과 고민이 들었어요. 그래서 풀뿌리운동 네트워크 만들고, 민주공원 직원으로서 풀뿌리운동 네트워크를 어떻게 잘 만들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현장 활동가들과 했죠. 그리고 나도 민주공원 관두고 현장에서 풀뿌리운동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러다 민주공원이 보수동 책방골목문화관을 위탁하게 됐는데, 내가 그 역할을 자진해 맡게 됐어요. 개인적으로는 이 문화관을 풀뿌리운동의 거점 공간으로 활용하고 싶었거든요. 일은 재미있었는데, 문제는 개관시간이 긴 거에요. 그러다보니 퇴근 시간이 너무 늦었어요. 그때 교사로 일하는 아내는 많이 힘들어했어요. 아이 양육과 직장을 겸했고, 나는 너무 늦게 퇴근해 잘 도와주지 못하니... 게다가 둘째가 아프기 시작했어요. 

그 때 생각에, 내가 이런 일은 다시 할 수 있겠지만, 아이는 지금 돌보지 않으면 안 되겠다. 그래서 잠시 일을 쉬면서 아이를 돌보려 했어요. 그러던 중 아내가 지리산 실상사 귀농학교를 나와 지리산에서 결혼해 정착한 후배와 연결됐어요. 나도 전에 민주화기념사업회에서 지리산 탐방했을 때 같이 온 적이 있었어요. 자연스럽게 그렇게 연결된 거죠.

아내는 지리산에 오고 싶어 했어요. 나는 부산에서 하던 일 때문에 갈등하고 있었고요. 그러다 아내 후배를 방문하러 와서 1박2일 정도 지리산에 머물 기회가 있었는데, 그 때 마음이 확 녹으면서 이곳에 오고 싶다는 결심을 하게 됐어요.



그렇게 이 곳에 왔는데, 어떻게 지금까지 오게 됐어요?

 2012년 3월 말에 이 지역에 왔는데, 아내는 우리가  10년 정도 열심히 일했으니 맘 놓고 푹 쉬자고 했어요. 근데, 나는 몸이 근질근질했고 동네 사람들과 빨리 친해지고 싶었어요. 그래서 불교신자도 아닌데 절에도 가고 아빠 모임에도 나가고, 둘레길 센터에서 하는 숲길 공부하는 모임에도 나가고 그랬어요. 그러던 중 조아신도 제주에서 다시 돌아왔죠. 그래서 만나게 됐어요.


전부터 조아신을 알았나요?

몰랐지만, 내가 알고 있던 풀뿌리운동 활동가들이 조아신이란 사람이 지리산에 산다는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조아신은 동네 까페에서 우연히 처음 만났어요. 조아신도 내가 이 곳에 이주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저녁에 맥주 마시게 됐고, 얘기하다보니 동갑이더라구요. 그래서 여러 차례 만나 계동 치킨(산내면 사무소 소재지에 있는 맥주집)에서 맥주 같이 마셨죠. 그러면서 조아신이 여기서 이러저러한 일을 하고 싶다 하고, 그러면 나도 끼워달라고 그랬죠. 조아신은 일을 구체적으로 만들고 바로 시작하더라구요. 그래서 함께 하게 됐죠. 그런데, 조아신은 계속 서울 왔다 갔다 하고, 조아신이 서울 간 사이에 동네에서는 내가 그 일을 다 하게 되고...(웃음)

처음 같이 한 일은 토닥 까페를 만드는 일이었어요. 조아신은 일을 어렵지 않게 쭉쭉 추진해 가더라구요. 그러면서 디테일도 있고... 나하고는 좀 다른 스타일이라 부럽기도 해요.


동네에서 좋은 사람들과 좋은 이야기를 많이 만들고 싶어...


이야기를 들으니 천상 풀뿌리운동 활동가네요.

최근에 내가 센터장을 하다보니 누군가에게 무언가 발표해야 할 일이 많아졌어요. 처음에는 발표하는 일이 익숙치 않았어요. 그런데 지난 10년 훨씬 넘게 풀뿌리운동을 고민해 왔고, 네트워크도 만들어보고, 사단법인에서도 일 해봤고, 협동조합도 만들어봤고, 비영리 단체도 한 두 개 정도 만들어봤고, 까페도 해봤고, 법인 운영 경험도 해봤고... 생각해보니까 여러 가지를 해봤더라구요. 그래서 최근에 내가 풀뿌리운동이나 관련된 일에 조언을 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은 들더라구요.



* 함양작은변화네트워크에서 지리산이음의 활동사례를 발표하는 임현택 센터장


활동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때가 언제였어요?

사실은 지금이 가장 어려워요. 아름다운 재단과 협업해서 만들어진 작은변화지원센터에 대한 기대가 크다는걸 느껴요. 물론, 재단에서는 그런 부담을 주지 않으려 하지만, 재단 지역사업의 추후 전망이 이 곳에서의 활동 평가를 통해 크게 영향을 받게 될 수 있거든요. 지리산 이음과 작은변화지원센터 활동을 통해 젊은 활동가들과 이런 활동을 지속가능하게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아름다운재단 지원을 받아 처음 시작한 일은 지역의 활동가를 발굴∙양성하고 의제를 발굴하기 위해 지역조사를 하고, 지역의 다양한 네트워크를 만들어나가는 방식으로 일을 하고 있어요. 더 새롭고 다양한 방식이 있을텐데, 지금 이렇게 가는길이 맞는 길인가에 대한 불안감이 있는것 같아요. 하지만 내가 잘 할 수 있는 방식이 무엇인지 찾기 위해 노력해야겠죠.


지리산이 특별한 의미가 있나요? 많은 사람들은 지리산에 대해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기도 하는데..

난 그런 의미를 갖고 온 건 아니에요. 그냥 내가 사는 곳이란 의미가 더 커요. 여기 살면서 지리산이 잘 지켜지고(파헤쳐지지 않고), 이 곳에서 내가 만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다른 사람들과 잘 공감되기를 바래요.

이 곳에 살면서 애착이 더 커져요. 그러면서 지리산에 산다는 자부심이 생겼어요. 그러다보니 지리산 사람들의 좋은 이야기를 더 많이 만들고 싶고, 그런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고 싶어요. 



* 지리산작은변화지원센터의 5개 지역 15명의 작은변화활동가들과 함께




나는 개인적으로 풀뿌리운동을 할 수 없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풀뿌리운동을 잘 할 수 있는 기질이나 성격은 분명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기준으로 보면, 임현택은 천상 풀뿌리운동 활동가의 기질을 타고 난 것 같다. 그래서 임현택의 이야기를 듣는 내내 기분이 좋아졌고 또 미소 짓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 너는 이 곳에서 계속 행복한 꿈을 꾸며 살 수 있겠구나...”

_ 인터뷰어 : 이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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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년 활동가이야기주간 프로젝트 일환으로 기획/진행한 '활동가 인터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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