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 활동가들의 시대'라고 할만큼 각자의 분야에서 독립적으로 자기 활동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조직에서 해야하는 일 대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다는 욕구에서 시작하기도 하고, 한 곳에서만 소속감을 느끼지 않고 다양하게 연결되고 관계 맺으며 활동하는 것을 선호하기도 한다. 과거에 단체나 기관에 소속해서 일하는 사람만을 활동가라고 말해왔다면 개인이지만 네트워크로 활동하는 조직 밖 활동가들 역시 변화를 만드는 구성원이다. 다양한 개성과 철학으로 자기다운 활동을 고민하고 시도하지만 소속에 대한 욕구, 정기적인 활동비에 대한 고민은 없을까? 최근 1인 활동가 펀딩을 통해 사할린에 다녀온 구태희 활동가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인터뷰이: 구태희 (별칭 '굿데이', 1인 활동가)
- 인터뷰어: 시도 (더 이음)
- 인터뷰 날짜: 2018-12-19
최근에 1인 활동가가 되셨어요. 어떻게 지내고 계세요? 지금 가장 관심있게 하고 있는 일에 대해 이야기해주세요.
1인 시민활동가로 선언하기까지 상당한 고민이 있었는데 주변에서 활동하는 1인 활동가의 응원과 적절한 개인 타이밍으로 ‘1인 시민활동가’ 선언을 17년 11월 하게 되었어요. 벌써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나갔네요. 선언 이후 명함도 만들고 호기롭게 출발했지만 빛 좋은 개살구 같은 느낌이랄까요? 18년 상반기는 너무도 힘든 시간이었어요. 한달에 50만원도 벌기 힘든 상황이었고, 얼마 안되는 퇴직금을 야금야금 까먹고 있었고 그러다 보니 누군가를 만나기 보다 집에서 조용히 지내게 되더라구요. 아무 일도 없이 집 구석에서 뒹굴다 보니 점점 어두워지고 그저 먹고, 자고, TV보고를 무한반복 했던 것 같아요. 물론 중간중간 일이 있으면 돌아 다녔지만 자문을 구하거나 도움을 요청하는 일에 인건비를 책정해 주는 곳은 그리 많지 않았고 주더라도 정말 쥐꼬리만한 인건비를 책정하더라구요. 기획과 자문을 해달라고 해서 갔더니 실무를 맡기고, 안하겠다고 하면 무책임한 사람으로 낙인되고.
여튼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고 지금은 성공회대학 ‘민주주의연구소’에서 사무국장으로 주3일 일하고, 비상근으로 ‘우토로 역사관을 위한 시민모임’ 간사 일을 하고 있답니다. 그 외에도 청소년 인권, 참여 강의와 공정여행 강의, 시민교육, 국제교류 기획자문, 프로그램 기획자문 등 이것저것 부르면 달려 가고 있답니다.
저에게는 활동하면서 ‘평화’, ‘청소년’, ‘동포’라는 3가지 키워드가 있는데요. 활동의 목표라고 하기에는 거창하지만 꿈꾸는 것이 있다면 남과 북을 포함해 동아시아 청소년, 청년들이 만나 평화를 꿈꾸는 캠프를 하고 싶어요. 그런 활동을 만들어 가기 위해 꾸준히 동포를 만나고, 관계를 만들어가고 있답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우토로 역사관을 위한 시민모임 일이 가장 즐겁고 고민이 많은 일이긴 하지만 아직까지 이렇다할 큰 역할은 하고 있지 못하네요.
*1인 활동가가 된 이후 자신의 명함을 만들어 활동하는 구태희님
명함에도 본인을 활동가로 정의하는 모습이 신선했어요. 활동이란 무엇일까요? 어떤 사람이 활동가일까요? 나는 활동가인가요?
‘활동가’라는 명칭을 쓰기 시작한 건 고등학교 시절 청소년 인권운동을 할 때 부터였던 것 같아요. 그리고 2005년부터 10여년을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로 살아오다가 2013년 시민단체가 위탁운영하는 청소년시설에서 근무했고, 당시에도 청소년, 마을 활동가라고 생각하면서 살아왔어요. 어린 시절부터 ‘활동가’라는 명칭을 사용해 왔고 막연하게 익숙한 단어인데 이걸 딱 뭐라고 정의하기 쉽진 않은 것 같아요. 다만 나에게 활동가란 ‘스스로 주체가 된 활동, 내가 가진 가치를 확산하기 위해 꾸준히 움직이는 사람’ 정도로 해석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전 뼛속까지 활동가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중요한 건 선언이고 그 선언에 따라 움직여지기도 하니까요.
누군가 당신은 활동가야, 아니야 라고 하는 것 보다 본인 스스로 활동가이냐, 아니냐를 고민하는 것이 먼저라는 생각이 드네요. ‘활동가’를 정해진 틀에 넣어서 정의를 내리고 싶지는 않아요. 활동가라는 것은 시대에 따라, 사람에 따라, 환경에 따라 항상 변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요.
한국은 전업으로 또는 어딘가에 소속된 사람만을 활동가라고 하는데 저는 그런 고정관념은 조금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일본의 경우 각자의 돈벌이를 하면서도 또 한편으로 활동가로 살아가는 사람이 많은데. 우리도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전국민의 활동가화? 요런거 한번 꿈꿔보면 어떨까요?
활동하시면서 어려울 땐 없었나요? 조직 또는 활동을 그만두고 싶을 때가 있다면 언제였나요? 그만두고 싶었던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활동하면서 어려움이 전혀 없다면 거짓말이겠죠. 활동하면서 가장 큰 어려움은 관계, 소통인 것 같아요. 활동의 초기에는 선배들이 너무 힘들었어요. 희생을 강조하고, 배움의 욕구가 충만한 나를 가로막고, 새로운 시도를 하거나 무언가를 제안하면 ‘그거 내가 해봤어’, ‘안돼’, ‘하지마’ 등 부정적인 응답만 있었거든요. ‘함께 해보자’, ‘예전엔 이런 이유로 실패했는데 잘 보완해보자’ 이런 응답을 할 순 없는 걸까요? 많은 사람이 그렇겠지만 저도 하고 싶은 것을 못하게 하는 순간 답답함을 느끼는거 같아요. 누구나 존중받기를 원하고, 특히나 활동가들은 주체성이 강한데 그 주체성을 무시해버릴때 너무 힘이 든거죠.
또 공익활동이 항상 가난해야 하는 것인지, 모든 것을 잘해야 하는 것인지, 각자가 잘하는 것을 서로가 도와가면서 활동할 순 없는 것인지, 서로 아껴주고 챙겨주면서 위로하면서 활동할 순 없는 것인지. 결국 얼마나 대화를 하고 소통하고 이해하려고 하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느낄 때가 많아요. 함께 하는 사람들과 말이 잘 통하고 마음이 잘 맞다면 어떤 일이든 정말 신나게 할 수 있거든요. 때론 서로 오해가 생기기도 하고, 말이 통한다고 생각했는데 아닌 경우도 있고, 전혀 말이 안 통하는 사람을 만나기도 하고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일이 힘들어지고 그만두고 싶어지고 그러잖아요.
*제주 곶자왈작은학교 ‘오돌또기’ 친구들에게 동포 이야기를 전하는 구태희님
어렵고 힘들어도 계속 활동을 하고 계시는 걸 보며 그 일을 지속하는 힘이 어디서 오는지 궁금해져요. 활동을 지속하는 동기는 무엇인가요?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사로 잡혀 있나봐요. 때로는 힘들고, 때로는 고통스럽지만 또 한편으로 응원해주고, 함께해주는 사람들 때문에 힘을 낼 수 있는거 같아요.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내가 꿈꾸는 세상이 있기 때문 아닐까요? 좀 더 평화롭고, 좀 더 함께 잘 사는 세상을 원하니까 또 그런 세상을 위해서 누구나 조금씩의 역할을 해야 하니까. 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조금씩 한다는 생각인 것 같아요.
물론 나 혼자만 한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니까 함께 할 사람들을 계속 찾는거 같기도 하구요. 저를 포함해 많은 사람들이 외로운거 같아요. 1인시민활동가로 살아가지만 항상 적당한 테두리와 공동체를 원하고 그리워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거든요. 그래서 더욱 함께하는 연대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서로를 옭아매는 불편한 공동체가 아니라 서로를 인정하면서 서로를 지지하는 느슨하지만 끈끈한 연대를 통해서 함께 가치를 이야기하고, 함께 활동하면서 힘도 얻고, 행복함을 느끼는 그런 걸 꿈꿔요.
누군가 그러더군요. 연대란 손을 맞잡고 일어나는 것인데 일어나는 건 스스로 일어나는 것이지만 손을 잡기 위한 누군가 있어야 하는 거라고. 진짜 아프고 속상하고 또는 행복하고 기쁠 때 연락하고 서로의 감정을 나눌 수 있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기쁨이란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욕구가 커지는 것이고, 슬픔이란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욕구가 작아지는 것인데 나는 살아가고자 하니 기쁨에 대해 더 많이 이야기 하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많은 분들의 지지와 응원을 받은 1인 활동가 펀딩을 진행하셨어요. 펀딩을 시작하게 된 계기, 과정이 궁금해요. 저는 펀딩 진행한 후에 삶으로 증명해야한다는 무게감이 있더라구요. 펀딩 후의 고민도 있을 것 같아요.
워낙 배움의 욕구도 강하고, 부족한 활동의 지점을 채우기도 하고, 지금까지의 활동을 정리하고 싶은 마음이 커서 성공회대학교 NGO대학원을 다니고 있어요.
올해가 마침 논문학기이고 지금껏 지구촌동포연대 운영위원으로 사할린을 4년간 다녀오면서 보았던 사할린 한인사회에 대한 논문을 쓰고 싶어서 사할린을 가야겠다는 마음을 먹었어요. 하지만 1인 시민활동가로 선언하고 몇 달간 거의 수입이 없는 상태이기도 했고, 비용도 만만치 않아서 고민고민 끝에 주변 사람들에게 개인 펀딩을 시작했어요. 하고 싶은 말, 후원을 요청하는 글을 쓴 뒤, 쓴 글을 바탕으로 카드뉴스를 만들고 ‘구태희를 후원하세요’ 라는 제목으로 페이스북과 인스타크램, 최근 몇달 간 만나고 알게된 사람들에게 메일을 보내기도 했답니다. 후원이 시작되고 어떤 분은 정기 후원을, 어떤 분은 일시 후원을 해주셨는데 49여명이 후원을 해주셨고 작은 금액들이 모여 꽤 많은 후원금을 모을 수 있었답니다. 그렇게 후원해주신 돈으로 한달반 가량 사할린에서 생활을 했고 논문 자료를 위한 인터뷰와 자료를 수집해서 돌아올 수 있었답니다. 하지만 논문을 올해 완성하지 못해 너무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기도 해요. 그래서 내년에는 꼭 논문을 완성해야 겠다는 마음을 먹고 있어요.
이번 펀딩은 개인적 관계를 중심으로 진행되었고, 카드뉴스 형태로 제작하다보니 좀 더 자세한 설명을 담지 못했던거 같아요. 아직까지 관련해서 문의를 주시거나 요청하신 분은 없었지만 충분한 설명을 하지 못한 것이 조금 마음에 걸리긴 해요. 나중에 논문을 쓸 때 이와 관련해서 후원하신 분들 한분 한분의 이름을 명시하고 감사의 인사를 전하려고 생각 중이에요. 사실 후원을 받는다는 것이 어찌보면 참 부담스러운 일이에요. 누군가 나를 지켜 보고 있을 것이고, 삶으로서 증명하면서 살아가야 하는 것도 큰 부담 중에 하나에요.
* 안산 고려인지원센터 ‘너머’의 고려인 청소년들과 함께 부산탐험활동 중. 맨 오른쪽이 구태희님
현안과 의제가 많지만 그중에서도 지금 가장 필요한 변화와 그 일을 하기 위해 필요한 활동은 무엇일까요?
참 어려운 질문이네요. 너무도 빨리 변화하는 세상이고, 많은 변화와 혁신을 이야기하고 있는 가운데 가장 필요한 변화란 무엇일까요? 변화라기보다 내가 고민하는 것을 나눈다면, 우선은 활동가 모두가 고민하는 문제이기도 하면서 모두가 순응하기도 하는 자본에 대해서 더 많은 논의와 고민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모든 것이 자본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세상이고 성장과 개발이라는 말에도 ‘지속가능한’이라는 단어로 포장했지만 여전히 자본의 속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슬플 때가 많아요.
얼마 전 지인의 페북 글에서 본 건데 사회적 기업과 공유경제도 약탈을 목적으로 하는 것은 아니지만 자본을 추구하는 과정 속에서 약탈적 기업의 속성을 재현하는 경우가 빈번하다고 하더라구요. 공익적 가치를 우선으로 열심히 활동하는 조직과 사람들은 점점 가난하고 힘들어지는데 어떻게 하면 우리들이 추구하는 가치와 활동을 건강하게 할 수 있을지 고민이 많아요.
때로는 지금과는 완전 다른 방식으로 구성되는 사회를 꿈꾸기도 하는데 ‘보다 적게’가 아니라 ‘다름’에 초점을 맞추어서 가치 체계를 완전히 바꾸는 탈성장의 개념으로 전환해야 하는건 아닐까 생각도 해보아요. 그래서 더더욱 ‘가치’를 돌아보게 되는거 같아요. 그리고 이런 고민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하고 싶기 때문에 마음 맞는 사람, 마음 맞는 공동체를 계속 찾고 있나봐요. 모든 활동가들이 너무도 바쁘고 힘들지만, 우리 일로서가 아니라 삶으로서 사부작사부작 즐거운 일을 만들고, 만나보면 어떨까요? 서로 수다를 떨며 재미있고 자연스럽게 말이에요.
요즘 가장 집중하고 있는 생각, 앞으로 하고 싶은 활동이 있다면요?
고민이 항상 많기 때문에 집중하고 있는 생각도 시시때때로 바뀌는거 같아요. 얼마 전까지는 ‘나의 행위가 과연 다른 이들에게도 선한 행동일까?’ 라는 화두와 ‘공동체 그리고 협동조합’, ‘평등한 관계’, ‘다양한 활동가의 삶’, ‘탈성장’ 등을 고민하고 있어요. 모든 고민과 생각이 정답을 찾고 다음으로 넘어가지 않지만 차곡차곡 쌓여서 나를 구성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지난 1년간을 뒤돌아 보면 너무 나태했고, 재미없고, 몸을 사리면서 살아왔단 생각을 할 때가 많기 때문에 2019년에는 조금 더 다이나믹한 시간을 만들어 볼려구요. 소소한 활동으로는 동네 친구들과 공부 모임 또는 책모임을 하나 해볼까 해요. 그리고 성공회대학교에서 1과목 정도는 청강을 하고, 조금 큰 활동으로는 서울 경기 지역에서 민주시민교육과 평화교육을 하는 청소년활동가들의 모임을 한번 가져볼까 해요. 서로의 활동도 공유하고, 정보도 나누면서 청소년활동가 서로가 응원해주는 시간을 갖고 싶어요.
앞으로 1인시민활동가로서 계속 살아갈 수도, 아닐 수도 있지만 내가 걸어가는 삶과 활동을 의미있게, 재미있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조금씩 실천하면서 꾸준히 이어가다보면 자연스럽게 다음 활동의 모색도 할 수 있을꺼라 생각하고 있어요.
#구태희 #1인활동가 #부산 #서울 #시도 #지구촌동포연대 #아시아 #청소년
'1인 활동가들의 시대'라고 할만큼 각자의 분야에서 독립적으로 자기 활동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조직에서 해야하는 일 대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다는 욕구에서 시작하기도 하고, 한 곳에서만 소속감을 느끼지 않고 다양하게 연결되고 관계 맺으며 활동하는 것을 선호하기도 한다. 과거에 단체나 기관에 소속해서 일하는 사람만을 활동가라고 말해왔다면 개인이지만 네트워크로 활동하는 조직 밖 활동가들 역시 변화를 만드는 구성원이다. 다양한 개성과 철학으로 자기다운 활동을 고민하고 시도하지만 소속에 대한 욕구, 정기적인 활동비에 대한 고민은 없을까? 최근 1인 활동가 펀딩을 통해 사할린에 다녀온 구태희 활동가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최근에 1인 활동가가 되셨어요. 어떻게 지내고 계세요? 지금 가장 관심있게 하고 있는 일에 대해 이야기해주세요.
1인 시민활동가로 선언하기까지 상당한 고민이 있었는데 주변에서 활동하는 1인 활동가의 응원과 적절한 개인 타이밍으로 ‘1인 시민활동가’ 선언을 17년 11월 하게 되었어요. 벌써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나갔네요. 선언 이후 명함도 만들고 호기롭게 출발했지만 빛 좋은 개살구 같은 느낌이랄까요? 18년 상반기는 너무도 힘든 시간이었어요. 한달에 50만원도 벌기 힘든 상황이었고, 얼마 안되는 퇴직금을 야금야금 까먹고 있었고 그러다 보니 누군가를 만나기 보다 집에서 조용히 지내게 되더라구요. 아무 일도 없이 집 구석에서 뒹굴다 보니 점점 어두워지고 그저 먹고, 자고, TV보고를 무한반복 했던 것 같아요. 물론 중간중간 일이 있으면 돌아 다녔지만 자문을 구하거나 도움을 요청하는 일에 인건비를 책정해 주는 곳은 그리 많지 않았고 주더라도 정말 쥐꼬리만한 인건비를 책정하더라구요. 기획과 자문을 해달라고 해서 갔더니 실무를 맡기고, 안하겠다고 하면 무책임한 사람으로 낙인되고.
여튼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고 지금은 성공회대학 ‘민주주의연구소’에서 사무국장으로 주3일 일하고, 비상근으로 ‘우토로 역사관을 위한 시민모임’ 간사 일을 하고 있답니다. 그 외에도 청소년 인권, 참여 강의와 공정여행 강의, 시민교육, 국제교류 기획자문, 프로그램 기획자문 등 이것저것 부르면 달려 가고 있답니다.
저에게는 활동하면서 ‘평화’, ‘청소년’, ‘동포’라는 3가지 키워드가 있는데요. 활동의 목표라고 하기에는 거창하지만 꿈꾸는 것이 있다면 남과 북을 포함해 동아시아 청소년, 청년들이 만나 평화를 꿈꾸는 캠프를 하고 싶어요. 그런 활동을 만들어 가기 위해 꾸준히 동포를 만나고, 관계를 만들어가고 있답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우토로 역사관을 위한 시민모임 일이 가장 즐겁고 고민이 많은 일이긴 하지만 아직까지 이렇다할 큰 역할은 하고 있지 못하네요.
*1인 활동가가 된 이후 자신의 명함을 만들어 활동하는 구태희님
명함에도 본인을 활동가로 정의하는 모습이 신선했어요. 활동이란 무엇일까요? 어떤 사람이 활동가일까요? 나는 활동가인가요?
‘활동가’라는 명칭을 쓰기 시작한 건 고등학교 시절 청소년 인권운동을 할 때 부터였던 것 같아요. 그리고 2005년부터 10여년을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로 살아오다가 2013년 시민단체가 위탁운영하는 청소년시설에서 근무했고, 당시에도 청소년, 마을 활동가라고 생각하면서 살아왔어요. 어린 시절부터 ‘활동가’라는 명칭을 사용해 왔고 막연하게 익숙한 단어인데 이걸 딱 뭐라고 정의하기 쉽진 않은 것 같아요. 다만 나에게 활동가란 ‘스스로 주체가 된 활동, 내가 가진 가치를 확산하기 위해 꾸준히 움직이는 사람’ 정도로 해석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전 뼛속까지 활동가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중요한 건 선언이고 그 선언에 따라 움직여지기도 하니까요.
누군가 당신은 활동가야, 아니야 라고 하는 것 보다 본인 스스로 활동가이냐, 아니냐를 고민하는 것이 먼저라는 생각이 드네요. ‘활동가’를 정해진 틀에 넣어서 정의를 내리고 싶지는 않아요. 활동가라는 것은 시대에 따라, 사람에 따라, 환경에 따라 항상 변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요.
한국은 전업으로 또는 어딘가에 소속된 사람만을 활동가라고 하는데 저는 그런 고정관념은 조금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일본의 경우 각자의 돈벌이를 하면서도 또 한편으로 활동가로 살아가는 사람이 많은데. 우리도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전국민의 활동가화? 요런거 한번 꿈꿔보면 어떨까요?
활동하시면서 어려울 땐 없었나요? 조직 또는 활동을 그만두고 싶을 때가 있다면 언제였나요? 그만두고 싶었던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활동하면서 어려움이 전혀 없다면 거짓말이겠죠. 활동하면서 가장 큰 어려움은 관계, 소통인 것 같아요. 활동의 초기에는 선배들이 너무 힘들었어요. 희생을 강조하고, 배움의 욕구가 충만한 나를 가로막고, 새로운 시도를 하거나 무언가를 제안하면 ‘그거 내가 해봤어’, ‘안돼’, ‘하지마’ 등 부정적인 응답만 있었거든요. ‘함께 해보자’, ‘예전엔 이런 이유로 실패했는데 잘 보완해보자’ 이런 응답을 할 순 없는 걸까요? 많은 사람이 그렇겠지만 저도 하고 싶은 것을 못하게 하는 순간 답답함을 느끼는거 같아요. 누구나 존중받기를 원하고, 특히나 활동가들은 주체성이 강한데 그 주체성을 무시해버릴때 너무 힘이 든거죠.
또 공익활동이 항상 가난해야 하는 것인지, 모든 것을 잘해야 하는 것인지, 각자가 잘하는 것을 서로가 도와가면서 활동할 순 없는 것인지, 서로 아껴주고 챙겨주면서 위로하면서 활동할 순 없는 것인지. 결국 얼마나 대화를 하고 소통하고 이해하려고 하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느낄 때가 많아요. 함께 하는 사람들과 말이 잘 통하고 마음이 잘 맞다면 어떤 일이든 정말 신나게 할 수 있거든요. 때론 서로 오해가 생기기도 하고, 말이 통한다고 생각했는데 아닌 경우도 있고, 전혀 말이 안 통하는 사람을 만나기도 하고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일이 힘들어지고 그만두고 싶어지고 그러잖아요.
*제주 곶자왈작은학교 ‘오돌또기’ 친구들에게 동포 이야기를 전하는 구태희님
어렵고 힘들어도 계속 활동을 하고 계시는 걸 보며 그 일을 지속하는 힘이 어디서 오는지 궁금해져요. 활동을 지속하는 동기는 무엇인가요?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사로 잡혀 있나봐요. 때로는 힘들고, 때로는 고통스럽지만 또 한편으로 응원해주고, 함께해주는 사람들 때문에 힘을 낼 수 있는거 같아요.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내가 꿈꾸는 세상이 있기 때문 아닐까요? 좀 더 평화롭고, 좀 더 함께 잘 사는 세상을 원하니까 또 그런 세상을 위해서 누구나 조금씩의 역할을 해야 하니까. 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조금씩 한다는 생각인 것 같아요.
물론 나 혼자만 한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니까 함께 할 사람들을 계속 찾는거 같기도 하구요. 저를 포함해 많은 사람들이 외로운거 같아요. 1인시민활동가로 살아가지만 항상 적당한 테두리와 공동체를 원하고 그리워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거든요. 그래서 더욱 함께하는 연대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서로를 옭아매는 불편한 공동체가 아니라 서로를 인정하면서 서로를 지지하는 느슨하지만 끈끈한 연대를 통해서 함께 가치를 이야기하고, 함께 활동하면서 힘도 얻고, 행복함을 느끼는 그런 걸 꿈꿔요.
누군가 그러더군요. 연대란 손을 맞잡고 일어나는 것인데 일어나는 건 스스로 일어나는 것이지만 손을 잡기 위한 누군가 있어야 하는 거라고. 진짜 아프고 속상하고 또는 행복하고 기쁠 때 연락하고 서로의 감정을 나눌 수 있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기쁨이란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욕구가 커지는 것이고, 슬픔이란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욕구가 작아지는 것인데 나는 살아가고자 하니 기쁨에 대해 더 많이 이야기 하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많은 분들의 지지와 응원을 받은 1인 활동가 펀딩을 진행하셨어요. 펀딩을 시작하게 된 계기, 과정이 궁금해요. 저는 펀딩 진행한 후에 삶으로 증명해야한다는 무게감이 있더라구요. 펀딩 후의 고민도 있을 것 같아요.
워낙 배움의 욕구도 강하고, 부족한 활동의 지점을 채우기도 하고, 지금까지의 활동을 정리하고 싶은 마음이 커서 성공회대학교 NGO대학원을 다니고 있어요.
올해가 마침 논문학기이고 지금껏 지구촌동포연대 운영위원으로 사할린을 4년간 다녀오면서 보았던 사할린 한인사회에 대한 논문을 쓰고 싶어서 사할린을 가야겠다는 마음을 먹었어요. 하지만 1인 시민활동가로 선언하고 몇 달간 거의 수입이 없는 상태이기도 했고, 비용도 만만치 않아서 고민고민 끝에 주변 사람들에게 개인 펀딩을 시작했어요. 하고 싶은 말, 후원을 요청하는 글을 쓴 뒤, 쓴 글을 바탕으로 카드뉴스를 만들고 ‘구태희를 후원하세요’ 라는 제목으로 페이스북과 인스타크램, 최근 몇달 간 만나고 알게된 사람들에게 메일을 보내기도 했답니다. 후원이 시작되고 어떤 분은 정기 후원을, 어떤 분은 일시 후원을 해주셨는데 49여명이 후원을 해주셨고 작은 금액들이 모여 꽤 많은 후원금을 모을 수 있었답니다. 그렇게 후원해주신 돈으로 한달반 가량 사할린에서 생활을 했고 논문 자료를 위한 인터뷰와 자료를 수집해서 돌아올 수 있었답니다. 하지만 논문을 올해 완성하지 못해 너무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기도 해요. 그래서 내년에는 꼭 논문을 완성해야 겠다는 마음을 먹고 있어요.
이번 펀딩은 개인적 관계를 중심으로 진행되었고, 카드뉴스 형태로 제작하다보니 좀 더 자세한 설명을 담지 못했던거 같아요. 아직까지 관련해서 문의를 주시거나 요청하신 분은 없었지만 충분한 설명을 하지 못한 것이 조금 마음에 걸리긴 해요. 나중에 논문을 쓸 때 이와 관련해서 후원하신 분들 한분 한분의 이름을 명시하고 감사의 인사를 전하려고 생각 중이에요. 사실 후원을 받는다는 것이 어찌보면 참 부담스러운 일이에요. 누군가 나를 지켜 보고 있을 것이고, 삶으로서 증명하면서 살아가야 하는 것도 큰 부담 중에 하나에요.
* 안산 고려인지원센터 ‘너머’의 고려인 청소년들과 함께 부산탐험활동 중. 맨 오른쪽이 구태희님
현안과 의제가 많지만 그중에서도 지금 가장 필요한 변화와 그 일을 하기 위해 필요한 활동은 무엇일까요?
참 어려운 질문이네요. 너무도 빨리 변화하는 세상이고, 많은 변화와 혁신을 이야기하고 있는 가운데 가장 필요한 변화란 무엇일까요? 변화라기보다 내가 고민하는 것을 나눈다면, 우선은 활동가 모두가 고민하는 문제이기도 하면서 모두가 순응하기도 하는 자본에 대해서 더 많은 논의와 고민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모든 것이 자본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세상이고 성장과 개발이라는 말에도 ‘지속가능한’이라는 단어로 포장했지만 여전히 자본의 속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슬플 때가 많아요.
얼마 전 지인의 페북 글에서 본 건데 사회적 기업과 공유경제도 약탈을 목적으로 하는 것은 아니지만 자본을 추구하는 과정 속에서 약탈적 기업의 속성을 재현하는 경우가 빈번하다고 하더라구요. 공익적 가치를 우선으로 열심히 활동하는 조직과 사람들은 점점 가난하고 힘들어지는데 어떻게 하면 우리들이 추구하는 가치와 활동을 건강하게 할 수 있을지 고민이 많아요.
때로는 지금과는 완전 다른 방식으로 구성되는 사회를 꿈꾸기도 하는데 ‘보다 적게’가 아니라 ‘다름’에 초점을 맞추어서 가치 체계를 완전히 바꾸는 탈성장의 개념으로 전환해야 하는건 아닐까 생각도 해보아요. 그래서 더더욱 ‘가치’를 돌아보게 되는거 같아요. 그리고 이런 고민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하고 싶기 때문에 마음 맞는 사람, 마음 맞는 공동체를 계속 찾고 있나봐요. 모든 활동가들이 너무도 바쁘고 힘들지만, 우리 일로서가 아니라 삶으로서 사부작사부작 즐거운 일을 만들고, 만나보면 어떨까요? 서로 수다를 떨며 재미있고 자연스럽게 말이에요.
요즘 가장 집중하고 있는 생각, 앞으로 하고 싶은 활동이 있다면요?
고민이 항상 많기 때문에 집중하고 있는 생각도 시시때때로 바뀌는거 같아요. 얼마 전까지는 ‘나의 행위가 과연 다른 이들에게도 선한 행동일까?’ 라는 화두와 ‘공동체 그리고 협동조합’, ‘평등한 관계’, ‘다양한 활동가의 삶’, ‘탈성장’ 등을 고민하고 있어요. 모든 고민과 생각이 정답을 찾고 다음으로 넘어가지 않지만 차곡차곡 쌓여서 나를 구성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지난 1년간을 뒤돌아 보면 너무 나태했고, 재미없고, 몸을 사리면서 살아왔단 생각을 할 때가 많기 때문에 2019년에는 조금 더 다이나믹한 시간을 만들어 볼려구요. 소소한 활동으로는 동네 친구들과 공부 모임 또는 책모임을 하나 해볼까 해요. 그리고 성공회대학교에서 1과목 정도는 청강을 하고, 조금 큰 활동으로는 서울 경기 지역에서 민주시민교육과 평화교육을 하는 청소년활동가들의 모임을 한번 가져볼까 해요. 서로의 활동도 공유하고, 정보도 나누면서 청소년활동가 서로가 응원해주는 시간을 갖고 싶어요.
앞으로 1인시민활동가로서 계속 살아갈 수도, 아닐 수도 있지만 내가 걸어가는 삶과 활동을 의미있게, 재미있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조금씩 실천하면서 꾸준히 이어가다보면 자연스럽게 다음 활동의 모색도 할 수 있을꺼라 생각하고 있어요.
#구태희 #1인활동가 #부산 #서울 #시도 #지구촌동포연대 #아시아 #청소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