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들의 삶 전반을 고민하며 정책을 제안하고 담론을 만들어왔던 청년단체들을 꼽으라면 ‘청년주거’의제를 구체화시키고 지금의 청년주거정책들의 주춧돌을 만들어왔던 ‘민달팽이유니온’을 빼놓고 말할 수 없다. 이제는 민달팽이주택협동조합과 함께 역할을 나눠 실제 집을 공급하고 주거의제를 확장시키고 있다. 청년 당사자들이 자신의 문제를 풀기 위해 만든 시민사회단체이자 회원들의 회비로 7년째 운영중인 이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어떤 고민을 가지고 있을까?
- 인터뷰이: 최지희 (민달팽이 유니온 위원장)
- 인터뷰어: 시도 (더 이음)
- 인터뷰 날짜: 2018-10-19
이런 질문 많이 받으시죠? (웃음) 지금 어떤 일을 하고 계세요?
‘민달팽이유니온’ 이라는 청년주거 문제를 다루는 단체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항상 소개를 할 때 어려운 것 같아요. 청년의 문제이기도 하고 주거의 문제이기도 하고. 청년의 주거를 이야기하는 것인데 이것 각각이 다루는 분야도 많은 것 같고요. ‘청년’은 그냥 나와 내 친구들과 내 주변에 보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좀 하고 싶었고 ‘주거’는 그냥 집 문제였어요.
청년주거 문제를 이야기하는 초반에는 자취를 할 수밖에 없는, 지방에서 올라온 대학생들 이야기를 했어요. 요새 가장 관심 있는 건 경제적으로든 물리적으로든 독립을 못하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 어떻게든 살고 있지만 안전한 공간에 살지 못하는, 특히 여성들, 약자들의 이야기에요. 원래도 대학생 주거를 이야기했던 건 대학생이 특별해서가 아니라 누구나 집을 집답게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었어요.
워낙 부동산 이슈가 들썩들썩하잖아요. 집을 집답게 바라보는 관점이 사회적 논의가 되는 시기인 것 같아요. 청년주거 이슈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도 점점 늘어나고 있는 것 같구요. 청년에서 시작하지만 전반적인 주거문제로 확장해서 보지 않으면 청년 주거 문제도 풀 수가 없다는 게 참 당연한 말이기도 하지만 요새 정말 깊이 느껴요.
*매년 10월 첫째주 월요일은 UN에서 정한 '세계 주거의 날 (UN Habitat day)'. '집없는 사람들의 달팽이 행진'이라는 이름으로 주거권 관련 단체들과 진행할 행사 준비를 하는 중. 달팽이 모양 박스를 멘 사람이 최지희님.
어떻게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나요? 활동을 시작한 계기가 궁금해요.
#활동의 시작은 대학에서.
뭔가 액션을 시작했던 것은 대학교를 다닐 때였던 것 같아요. 전 그 때 자취하고 있었는데 친구들끼리 술 먹고 늦게 들어가면 그 근처 사는 얘들이 같이 걸어가잖아요. 들어가면서 “니는 어디 사노? 얼마 주고 얼마에 사노?” “어떻게 돈(월세)내고 있어? 어떤 집이야?” “니는 집에 안 미안하나?”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부모님 집에 내려가면 아줌마들이랑 같이 앉아서 커피 먹고 노는데 “애 밑에 돈 백만원 깨지는 건 일도 아니다” 하시고 다들 죽겠다고 하세요. 친구들도 스스로는 월세를 감당 못하니까 부채감이 들고 뭘 좀 해보고 싶어도 하지 못하게 되고. 안정적인 직장을 쫓아서 막 가는데 사실 그게 맞는지도 잘 모르겠고 심지어 이미 구조적 문제 때문에 그것마저 잘 되지 않고. 이런 것들을 내내 봐왔죠. 그 때 누가 집 문제를 이야기하는 단체가 있다고 같이 해보자 그래서 오천원씩 내는 회원이 됐던 것 같아요. 그게 민달팽이유니온이에요.
회원으로 있으면서 기숙사 좀 지어보자고 세미나를 하는데 기웃거리기도 하고, 축제 때 벽돌모양 스티커에 각자 이야기 써서 탑 부수는 것도 해보고, 달팽이 모양으로 붕어빵 같은 빵 만들어서 팔기도 하고. 이런 걸 통해서 활동이란 것을 했던 것 같아요. 열심히 하긴 했지만 주도적으로 하던 친구들만큼 열심히 하지는 않았어요. 이런 것들을 하면 운동권이라고 보지 않을까 생각도 하고. 어렸을 때부터 괜히 데모같은 거 나가지 말라고 들어왔잖아요. 심지어 우리 집은 괜히 알바 같은 거 나가지 말고 그 시간에 공부해서 장학금 받는게 훨씬 낫다고, 그게 효율적인 일이라고 할 정도였으니까요.
겪어보니 이런 문제에 관심 갖고 참여하는 것이 나와 우리 집, 내 친구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라고 느끼긴 했지만 목소리를 내는 것이 여전히 금기를 깨는 것 같고 두렵기도 했어요. 그걸 그나마 깨게 해준 건, 다들 문제라고 하지만 뾰족한 방법이 없는 큰 문제를 겁도 없이 이야기해보겠다는 사람들이었어요. 그 사람들도 재미있었고 이런 이야기를 주변에 하는 것도 재미있었구요. 대학생들은 이런건가보다 세상엔 참 다양한 사람들이 많구나, 이런 것들도 할 수 있구나, 알아갔던 것 같아요.
#휴학하며 민달팽이 활동에 집중
3학년쯤에 휴학이 너무 하고 싶은데 엄두를 못 내다가 부모님이랑 대판 싸우고 한 학기 휴학을 했어요. 아무것도 안 하는게 목표였어요. 학원을 다니거나 스펙을 쌓는 일 외에 다른 것을 해보자고 생각했죠. 그 때 마침 민달팽이유니온이 정식 시민단체로 나가려고 하고, 대학생 주거권 네트워크도 꾸리고 여러모로 세상 밖으로 나가는 시기여서 그걸 같이 준비했어요. 그게 2013년도에요. 몇 달 안되는 기간 동안 서울시 사회적 아이디어 대회에 나가서 민달팽이 마을을 만들자고 해서 상도 받기도 하고, 공공기숙사 짓는 데에 MOU도 하고 이것저것 했었어요. 내 나름 열심히 하긴 했지만 휴학 기간이 끝나고서도 투신하면서 할 용기나 집념은 없었어요. 그래서 복학했죠.
#배움과 실천의 일치, 전공과 활동
저의 정체성을 구성하는데 사회복지학과 영향이 커요. 왜냐면 그 시기에 과를 통해 고민하고 구현하고 했던 게 많았거든요. 어릴 때부터 세상에 대한 것들을 어디에 가면 잘 배울 수 있을까 고민했어요. 그렇지만 대학가면 뭘 하는지, 무슨 과가 어떤지 사실 뭘 어떻게 알겠어요. 그런데 마침, 들어갔던 사회복지학과가 운이 좋게도 내가 찾던 그 곳이었던거죠. 모두가 너무 아픈 세상이잖아요. 그 다양한 이야기들을 따뜻한 가슴으로 바라보는 관점, 그리고 그것들을 변화시키기 위한 냉철한 지성에 대해 배울 수 있었던 곳이었다고 저는 생각해요. 학업을 막 성실히 했던 것은 아닌데 수업에서도, 친구들도 평소 내가 고민하는 것을 쏙쏙 짚어 알려줘서 너무 행복했어요. 다른 곳들은 보통 분위기 자체가 경쟁적으로 남을 압도해야하는 식이었다면, 여기는 서로의 말을 잘 들어주는 분위기인 것도 제가 사람들과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을 배우는 데 정말 중요했구요.
보통 사회복지라고 하면 봉사, 사회복지사, 요양보호사 느낌이 강하고 중요한 부분이지만, 행정가, 액티비스트 역시 사회복지 하는 사람들의 정말 중요한 역할이에요. 이론과 실천처럼, 저는 학교에서 수업으로 배운 것들을 민달팽이 활동을 통해 경험했어요. 공부와 삶이 연결되어 있는 것, 안에서 배우는 것과 밖에서 배우는 것이 다 연결되어있다는 것을 경험했죠. 그래서 민달팽이유니온 활동을 하고서 다시 사회복지학과로 돌아가서 수업을 들었을 때 더 재미있고 좋았던 것 같아요.
#진로 고민, 여전히 살아있네?!
이렇게 벅차게 공부하고 생각한 것을 어디서 어떻게 직업으로 풀어낼 수 있을까 고민했을 때 주변 친구들이 가는 경로는 자신이 없더라구요. 그것도 물론 훌륭한 일인데 나에게 그 길이 잘 맞을지는 의문이었어요.
제가 나고 자란 환경은 권위주의라던지 기존 사회의 구심력이 강력하게 작동하는 곳이었다고 생각해요. 저에게 서울은 권위에서 해방된 공간, 그렇지만 냉혹한 현실을 마주하는 공간이었어요. 민달팽이 활동 역시 이 모든 것을 바꿔볼 작은 시도, 꿈틀거림이었지만 세상을 바꿀 수 있으리라는 확신은 없었구요. 이런 문제의식을 주변 친구들, 가족들과 나누고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우리가 사는 세상을 바꿔보기 위한 귀한 시도라는 것을 설득할 수 있을까?
휴학하면서 민달팽이 활동할 때는 자신이 없었어요. 그랬는데 복학하고 진로를 고민하며 민달팽이유니온을 돌아보니 안 망하고 살아있는거에요. 심지어 2년 전에 계획했던 것을 다 하고 있는거에요. 그게 저한테는 좀 충격이었어요. 이런 활동이 중요하다고 생각은 했지만 동시에 사상누각 같다는 생각을 했는데 오히려 확실하지 않았던 건 나였구나 싶더라구요. 알바해서 그 돈으로 활동하는 사람들, 나처럼 가볍게 활동했던 사람들의 시간과 에너지가 다 모이니까 변화를 만들어내고 단단한 기반을 다지기도 하는구나 깨달았죠.
다시 이 일을 직업으로 해볼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어떻게 하면 행복할 수 있을까, 삶이 나아지는 제일 좋은 방법이 뭘까 생각을 해봤을 때 이 활동을 하면 그럴 수 있겠다 싶었어요.
* 2015년 대학생 기숙사 사업을 담당하여 진행한 기자회견. 학생들의 기숙사 건립 활동의 결과물로 기부받아 생긴 기숙사가 터무니없이 높은 비용을 받는 것에 대한 기숙사 문제 해결 활동을 하던 시기. 가운데 회색 상의 차림이 최지희님
자신을 활동가라고 생각하신다고 느껴져요. 활동가는 누구인가요? 활동은 무엇인가요?
저는 원래 활동이나 역사 관련해서 관심이 많았어요. 여전히 이런 저런 관심을 가지고 생활에서 실천할 수 있는 걸 하고 있어요. 지금 저는 주거 분야를 활동의 영역이자 업으로 삼고 있지만 그게 아니어도 주거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잖아요. 직업, 직군으로서의 활동가가 분명 필요한 영역이긴 하지만, 그 활동가라고 하더라도 당연히 혼자서 문제를 해결할 수 없어요.
모임을 열고 사람들을 모으는 상근자, 관련 소식을 보내면 링크라도 한번 열어보는 사람, 정책 간담회를 가는 사람, 이런 활동이 가능하도록 회비를 내는 사람 모두 다 자기가 할 수 있는 영역에서 세상을 좋게 변화시킬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게 다 활동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그런 사람들 중에 전업으로 활동을 하는 활동가인거죠.
활동 자체를 그만두고 싶었던 적은 없나요? 비영리, 시민사회 영역을 떠나고 싶을 땐 없었나요? 왜 떠나고 싶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활동을 하는 이유는요?
엄청 많았죠. 이유는 역시나 사람들에게 실망하는 것밖에 없는 것 같아요. 우리가 그토록 바꾸고 싶어 했던 것들로부터 안전하고 자유롭다고 여기는 이 공간과 속에서 나를 옭아매는 무거운 중력들을 정면으로 볼 때. 괴로웠죠.
저는 애초에 문제의식이 날카롭지 못해요.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에요. 그래서 끊임없이 깨어있고 문제를 문제라고 바라보는 여기가 좋았던거죠. 그런데 그렇게 둔한 내가 여기에서도 무언가 문제를 느끼고 ‘이건 문제가 있다’라고 말하기까지, 오랫동안 견디고 지나온 시간이 있었어요. 그 때 절망감이 들었죠. 이 사람들에 대한 실망이라기보다 이런 활동 전반에 대한 절망 같은 것이었어요. 밖에서 보면 이렇게 변화를 만들어내고 평등하고 자유로운 우리들의 관계도 결국 별수 없는 것인가. 세상이란게 그런건가?
기존의 강력한 중력 속에 있다가 지금 여기로 올 때, 저는 나름의 고민과 번뇌를 통해서 이 길을 확신하고 왔거든요. 이렇게 사는 것이 장기적으로는 더 합리적이고 다 같이 잘 살 수 있는 방법이라는 생각으로요. 그래서 내가 생각하는 지향이자 최저선이 침범당할 때의 현타, 그게 엄청 컸어요.
조금 더 구체적으로 물어봐도 될까요? 열정과 애정이 많은 곳에 대한 절망을 오게 했던 사건이 있었나요?
시민사회가 자유롭고 평등한 문화에 대한 감수성이 있다면 청년 단체가 가장 높을꺼라는 생각을 했어요. 시민 사회 내에서도 일상 속 민주주의, 평등문화 이런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편이니까요. 일반 회사에서도 ‘90년대생이 들어온다’ 이런 책이 요새 인기라면서요. 그것에 대한 신뢰와 자부심이 있었는데 그 신뢰가 무너지는 과정을 겪었고, 어느 순간 그 결과를 마주하니까 충격이었어요. 일상 속의 민주주의가 구현되는 수준 높은 문화가 우리 단체에는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심각한 수준의 일들이 있었고 그것이 드러났고,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바로잡기 위해 애썼고, 그런데 또 쉽게 왜곡되고 오해와 상처를 낳고, 그런 과정들이 끝나지 않은 것 같고.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바로잡기 위해 애썼고, 그럼에도 쉽게 왜곡되고 오해와 상처를 낳고, 그런 과정들이 끝나지 않은 것 같고. 그래서 여전히 절망스럽기도 한 것 같아요.
그래도 우리의 활동들을 다시 긍정할 수 있다면, 그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일을 꺼내놓고 마주하고 있다는 점. 이 상처들을 직면하고 회복하는 것을 올해 민달팽이의 중점 과제로 삼은 것에 비해선 큰 진전이 없었고 여전히 너무 불안전하고 아직도 너무 많은 해결과제들이 있지만 그럼에도 큰 역경을 마주하고 넘어오고 있는 과정 중인건 맞는 것 같아요. 이것이 가능하도록 절망에만 머무르지 않고 끊임없이 용기를 내 준 사람, 그리고 그에 조우하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점이 저에게는 매번 새삼스럽게 놀랍고 아픈 점이에요. 그렇게 용기내주고 애쓴 사람들이 상처입고 침잠하고 잊혀져가는 것들에 대한 개인과 집단의 상실감과 부채감, 이걸 어떻게 하면 긍정적이고 건설적으로 제대로 마주할 수 있는지가 늘 고민이에요.
주변의 반응을 보면 많은 분들이 하시는 말이 ‘사실 이 정도까지 드러내놓고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보면서 처음에는 놀랐다, 동시에 그래서 여긴 좀 다른 곳이라는 희망을 느꼈다’고 하세요. 그런 이야기들이 저에게는 이 일을 계속 하는 동력인 것 같아요. 시민사회 대나무숲만 보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이런 문제를 겪잖아요. 다들 조용히 사라지는 방식, 문제제기를 하든 못하든 그냥 조용히 사라지는 현실들에서 민달팽이에서는 그나마 그 문제를 끊임없이 수면 위로 끌어왔던 노력들이 있었던 거죠. 저는 문제를 드러나게 하는 데는 부족한 사람이에요. 그렇다면 다른 사람들이 정말 애써서 여기까지 끌어올린 그 노력을 이어받지 못해 ‘결국 안되네’ 이렇게 남도록 두진 않아야겠다, 그게 나의 역할이겠다 하는 생각이에요.
* 매년 참여하고 있는 서울시의 거버넌스 플랫폼, '서울청년정책네트워크'(='청정넷')의 2018년 살자리분과의 모습. 주거팀은 언제나 인기가 많아서 함께하는 사람도 많다. 최지희님이 손을 들어서 환한 표정을 짓고 있다.
충격받고 절망하면서도 계속 활동할 수 있는 동력은 무엇인가요?
하나는 여기에서 만나는 사람들이요. 저의 성향은 만나면 꼬리부터 흔드는 강아지 같은 느낌이거든요. 저는 사람들을 진짜 좋아하는 것 같아요. 애정과 호기심이 있는 사람이라 활동인 아닌 다른 영역에 갔어도 즐겁게 지냈을 것 같긴해요.
여기가 좋은 건, 물론 개개인이 힘들고 좋고의 주기는 있지만 그 기저에 있는 생동감이 좋아요. 변화가 딱 일어나는 어떤 ‘특별한’ 순간이 아니라, 아닌 일상적으로 변화를 만들어 내는 지난한 순간들. 그 모든 순간들에 있는 생동감이 너무 멋있어요. 여기서 만난 사람들은 하나하나 다 멋있어서 이곳을 사랑할 수밖에 없게 해요.
또 하나는 내가 이 일을 함으로 만들어내는 작은 틈이 너무 좋아요. 역사는 앞으로만 나아가지 않는다고 생각하거든요. 언제든지 역사는 빠르게 후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후퇴를 하는 시기에는 후퇴를 늦추는 틈, 앞으로 나아갈 때는 작은 틈들이 모여서 이벤트가 생기고 변화의 모멘텀을 만들고. 이런 것들을 보는게 재미있는 것 같아요.
구체적으로 예를 들면 역세권 2030청년주택만 하더라도 애초에 청년주거란 이슈 자체가 사회적으로 전혀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한 결과거든요. 청년들이 장애인, 노인보다 힘드냐는 저항을 받으면서 청년주거의 열악함, 절박함을 호소하기도 하고 통계나 실태조사로 사람들의 목소리를 드러내기로 하고. 사람들의 목소리가 모이는 광장을 만들어서 거기서 분출되는 에너지로 중요한 문제라는 것을 보여주기도 하고.
다양한 방법들로 청년주거문제를 다뤄서 (사실 논란이 많은 정책이지만) 역세권 2030같은 정책을 만든 것도 대단한 변화를 만든 거라고 생각해요. 세세하게 들어가보면 갈 길이 구만리로 머니까 해나가야 할 일은 많지만요.
당장 청년 주택 반대 플랭카드만 하더라도 변화가 드러나요. 주민들 반대로 그동안 기숙사가 무산되고 행복주택이 무산됐고. 청년들이 여기 들어오면 다 빈민촌, 모텔촌 되고 우리 초등학교 아이들 위험해서 어떡하란 말이냐, 심지어는 ‘세월호 참사의 위험을 잊으셨나요.’ 이런 것도 붙었어요. 이렇게 혐오적으로 바라봤어요. 집값 떨어지는 걱정을 다른 방식으로 드러내는거죠. 근데 이젠 주민들 반응도 조금 바뀌고 내거는 플랭카드 문구도 바뀌었어요. ‘닭장같이 좁은 곳에 (청년들이) 그렇게 높은 임대료를 지불하며 어떻게 사냐.’, ‘청년들을 위한 임대주택이 아니라서 반대한다.’ 이런 문구가 걸려요. 반대를 하는 진짜 이유와 별개로 사회에 나오는 메시지들이 달라지는 것, 그리고 그동안은 집값 떨어지면 큰 일 난다고 생각하는 목소리에 주목할 수밖에 없었다면 이제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주목한다는 것을 느껴요.
시민사회가 어떤 모습이었으면 좋겠나요? 내가 기대하고 이상하는 시민사회는 어떤 모습이에요? 그게 가능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제가 막 용기가 뛰어나서 전면에 나서서 뭔가를 하는 사람은 아니에요. 민달팽이가 좋고 든든했던, 선택할 수 있었던 이유는 거대해 보이고 해결할 수 없어 보이는 문제라고 해도 계속 이야기를 꺼내고 결국 균열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한참 힘들어서 극단적으로 그만둘까를 고민할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는 안전하고 자유로울 수 있는 곳이라는거에요. 그게 저에게는 정말 중요했어요. 저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민달팽이란 이름 안에서 오가고 머무를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해요.
한 마디로 말하면 다양성이 존중받는 것. 명절 때 내려가면 나이부터 결혼까지 낯선 사람으로부터 같은 말을 여섯 번을 넘게 들었는데요. 민달팽이 안에서는 우리 사회의 강력한 중력이자 경쟁체제로 존재하는 나이, 성별, 학력, 사회적 위치, 경제적 위치, 인종 다양한 것들로부터 멀어지려고 해요. 물론 실수를 하겠죠. 하지만 실수인 것을 깨닫고 사과하고 좀 나아지려고 하는 의지가 있어요. 남에게 위해가 되는 말이 아니라면 무슨 말이든 할 수 있고 힘들면 힘들다고 나를 내보여도 되는 그런 공간, 시민사회도 그런 안전한 공간이어야 되는 것 같아요.
초기에 주거의제, 청년의제를 이야기해오던 주체들이 있고 이제는 주체도 다양해지고 담론도 확장되고 있죠. 그런 거 있잖아요. 골목에 국밥집이 처음 생겨서 터 닦아놓으면 그 골목에 국밥집이 주르륵 생기고 국밥골목이 되면 누가 원조인지 논란이 붙잖아요. 그래도 그 골목 자체는 계속 살고 더 강해지잖아요. 시민사회라는 활동 전반이 같은 논리라고 생각해요. 어떻게 인간이 이렇게 다양할 수가 있나, 생각하고 해결하는 방식도 이렇게 다를 수가 있나? 같은 가치를 두고 이렇게나 다른 모습으로 이 가치를 추구한다고 말할 수 있나? 이런 당황스러움이 있었어요. 그런데 이젠 그냥 내려놓게 되었달까. 가치와 실제 언행, 방법 이런 것들에서 다양할 수 밖에 없고, 그냥 최선을 다해 내 방법과 내 가치를 일치시켜며 살아가는 노력을 할 수 밖에 없지 않을까. 그런 것들이 섞여서 나아가지 않을까 해요.
*2018 여름, 민달팽이 전체 상근자 워크샵에 가서 하반기 사업 논의를 하는 중. '발제자의 의자'에 앉아서 담당 사업을 발제하는 중
세대차이를 느끼나요? 활동을 하는데 세대 차이가 걸림돌 또는 장점이 되는지, 만약 그렇다면 자신은 어떤 세대라고 생각하고 다른 세대와는 어떻게 다르고 그게 활동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요.
저는 초창기부터 함께하는 구성원으로 있다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데, 예를 들어 내가 여기를 나간다고 하면 이제까지 이어져온 것들이 끊어질까봐 걱정이 되죠.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여기서 활동한지 오래되었으니까 세월이 쌓여서 알고 있는 것들, 이런 맥락에서 이런 결정들을 했던거야, 저렇게 만들어진거야 이야기할 수가 있는데 그럴 사람이 없어질 것이 고민이 되요. 근데 이 고민은 정말로 답을 모르겠어요. 왜냐하면 저 역시 구태의연함이 있고 그걸 제 스스로가 많이 느끼거든요. 그래서 새로 온 사람들이 올 때마다 새로운 시도를 해보는 것이 정말 중요하구나 느껴요. 내가 민달팽이 유니온의 과거 사람들과 같이 했던 것에 집중하면 다른 것을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가장 좋은 것은 새로운 사람들이 뭔가를 해볼 수 있도록 OB들은 뒤로 물러나서 여건들을 지원하고 필요할 때 대화 나누면 제일 좋은데. 그런 면에서 지금의 구성원들과 어떻게 운영을 해나갈지 고민이 많죠. 제 임기가 끝났을 때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만큼의 역량이나 기반이 있는가도 고민이구요.
10년 후 모습을 상상해봐주세요. 뭐하고 있을 것 같아요? 그 때도 활동하고 있나요?
시민사회라는게 애초에 모호한 일을 하는 곳이라고 생각해요. 눈에 보이지 않잖아요. 친구들이 물어보면 설명하기가 어려워요. 시민단체 안에서도 저기 뭐하는 것이야 싶은 게 많잖아요. 애초에 저는 이 일을 직업으로 삼겠다, 활동가로 살겠다 생각할 때는 민달팽이 말고 다른 활동은 어떤 것이 있는지 어떻게 가능한지도 몰랐어요. 그냥 민달팽이라는 문만 통과했던거에요. 그만큼 저에게 애정이 크고 수많은 사람의 시간과 노력과 일상이 담겨있는 총체이기 때문에 그런 일을 겪었어도 이 곳을 떠나는 것을 상상해보지 못했던거죠.
나름 4~5년 정도 활동을 하다보니, 그리고 주변을 볼 수 있게 회복이 좀 되니까 다시 다양한 세상이 보여요. 요새 저는 다양한 세상과 주거 이야기를 하는게 재미있어요. 아직 못가본 세상이 너무 많구요. 일어나지 않은 일은 일어나기 전까지는 모른다는게 제 생각이긴 한데, 그래도 ‘집은 사는 것이 아니라 사는 곳이다’ ‘누구든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자유롭고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어야 한다’는 모토로 활동을 계속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정말 그러면 너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 '보유세 강화 시민행동'이라는 네트워크의 공동 대표단으로 참여한 기자회견에서 청년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보유세를 강화해야한다고 발언하는 최지희님.
청년들이 만든 시민단체는 뭔가 다를거라고 기대하지만 조직 내부에서 겪는 갈등, 사건, 위기 등은 전통적인 시민사회단체와 다르지 않다. 오히려 위기가 왔을 때 어떤 태도로 대처하는지, 위기에서 얻은 교훈을 어떻게 단체의 운영에 반영하는지가 다름을 말할 수 있는 기준일 것이다. 민달팽이 역시 문제를 꺼내고 말할 수 있었던 것은 용기 있게 나선 사람들의 행동과 말이 있어 가능하다고 말한다. 해결되었다고 말하기엔 여전히 진통중이지만 문제를 문제라고 공개적으로 말할 수 있는 조직문화야말로 어떤 위기에도 우리의 건강성을 유지할 수 있는 가능성의 시작이 아닐까. 인터뷰이는 단체활동과 사람에 대한 애정으로 활동을 지속하고 조직의 미래를 희망하고 기대한다. 이러한 긍정은 어디서 오는 것일지 더 궁금해진다. 활동을 지속시키는 동력이 조직 내외의 아픔과 상처도 잘 마주할 수 있는 힘이 되면 좋겠다.(_시도)
#시도 #민달팽이유니온 #주택 #주거 #집 #최지희 #청년주거 #서울
청년들의 삶 전반을 고민하며 정책을 제안하고 담론을 만들어왔던 청년단체들을 꼽으라면 ‘청년주거’의제를 구체화시키고 지금의 청년주거정책들의 주춧돌을 만들어왔던 ‘민달팽이유니온’을 빼놓고 말할 수 없다. 이제는 민달팽이주택협동조합과 함께 역할을 나눠 실제 집을 공급하고 주거의제를 확장시키고 있다. 청년 당사자들이 자신의 문제를 풀기 위해 만든 시민사회단체이자 회원들의 회비로 7년째 운영중인 이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어떤 고민을 가지고 있을까?
이런 질문 많이 받으시죠? (웃음) 지금 어떤 일을 하고 계세요?
‘민달팽이유니온’ 이라는 청년주거 문제를 다루는 단체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항상 소개를 할 때 어려운 것 같아요. 청년의 문제이기도 하고 주거의 문제이기도 하고. 청년의 주거를 이야기하는 것인데 이것 각각이 다루는 분야도 많은 것 같고요. ‘청년’은 그냥 나와 내 친구들과 내 주변에 보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좀 하고 싶었고 ‘주거’는 그냥 집 문제였어요.
청년주거 문제를 이야기하는 초반에는 자취를 할 수밖에 없는, 지방에서 올라온 대학생들 이야기를 했어요. 요새 가장 관심 있는 건 경제적으로든 물리적으로든 독립을 못하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 어떻게든 살고 있지만 안전한 공간에 살지 못하는, 특히 여성들, 약자들의 이야기에요. 원래도 대학생 주거를 이야기했던 건 대학생이 특별해서가 아니라 누구나 집을 집답게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었어요.
워낙 부동산 이슈가 들썩들썩하잖아요. 집을 집답게 바라보는 관점이 사회적 논의가 되는 시기인 것 같아요. 청년주거 이슈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도 점점 늘어나고 있는 것 같구요. 청년에서 시작하지만 전반적인 주거문제로 확장해서 보지 않으면 청년 주거 문제도 풀 수가 없다는 게 참 당연한 말이기도 하지만 요새 정말 깊이 느껴요.
*매년 10월 첫째주 월요일은 UN에서 정한 '세계 주거의 날 (UN Habitat day)'. '집없는 사람들의 달팽이 행진'이라는 이름으로 주거권 관련 단체들과 진행할 행사 준비를 하는 중. 달팽이 모양 박스를 멘 사람이 최지희님.
어떻게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나요? 활동을 시작한 계기가 궁금해요.
#활동의 시작은 대학에서.
뭔가 액션을 시작했던 것은 대학교를 다닐 때였던 것 같아요. 전 그 때 자취하고 있었는데 친구들끼리 술 먹고 늦게 들어가면 그 근처 사는 얘들이 같이 걸어가잖아요. 들어가면서 “니는 어디 사노? 얼마 주고 얼마에 사노?” “어떻게 돈(월세)내고 있어? 어떤 집이야?” “니는 집에 안 미안하나?”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부모님 집에 내려가면 아줌마들이랑 같이 앉아서 커피 먹고 노는데 “애 밑에 돈 백만원 깨지는 건 일도 아니다” 하시고 다들 죽겠다고 하세요. 친구들도 스스로는 월세를 감당 못하니까 부채감이 들고 뭘 좀 해보고 싶어도 하지 못하게 되고. 안정적인 직장을 쫓아서 막 가는데 사실 그게 맞는지도 잘 모르겠고 심지어 이미 구조적 문제 때문에 그것마저 잘 되지 않고. 이런 것들을 내내 봐왔죠. 그 때 누가 집 문제를 이야기하는 단체가 있다고 같이 해보자 그래서 오천원씩 내는 회원이 됐던 것 같아요. 그게 민달팽이유니온이에요.
회원으로 있으면서 기숙사 좀 지어보자고 세미나를 하는데 기웃거리기도 하고, 축제 때 벽돌모양 스티커에 각자 이야기 써서 탑 부수는 것도 해보고, 달팽이 모양으로 붕어빵 같은 빵 만들어서 팔기도 하고. 이런 걸 통해서 활동이란 것을 했던 것 같아요. 열심히 하긴 했지만 주도적으로 하던 친구들만큼 열심히 하지는 않았어요. 이런 것들을 하면 운동권이라고 보지 않을까 생각도 하고. 어렸을 때부터 괜히 데모같은 거 나가지 말라고 들어왔잖아요. 심지어 우리 집은 괜히 알바 같은 거 나가지 말고 그 시간에 공부해서 장학금 받는게 훨씬 낫다고, 그게 효율적인 일이라고 할 정도였으니까요.
겪어보니 이런 문제에 관심 갖고 참여하는 것이 나와 우리 집, 내 친구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라고 느끼긴 했지만 목소리를 내는 것이 여전히 금기를 깨는 것 같고 두렵기도 했어요. 그걸 그나마 깨게 해준 건, 다들 문제라고 하지만 뾰족한 방법이 없는 큰 문제를 겁도 없이 이야기해보겠다는 사람들이었어요. 그 사람들도 재미있었고 이런 이야기를 주변에 하는 것도 재미있었구요. 대학생들은 이런건가보다 세상엔 참 다양한 사람들이 많구나, 이런 것들도 할 수 있구나, 알아갔던 것 같아요.
#휴학하며 민달팽이 활동에 집중
3학년쯤에 휴학이 너무 하고 싶은데 엄두를 못 내다가 부모님이랑 대판 싸우고 한 학기 휴학을 했어요. 아무것도 안 하는게 목표였어요. 학원을 다니거나 스펙을 쌓는 일 외에 다른 것을 해보자고 생각했죠. 그 때 마침 민달팽이유니온이 정식 시민단체로 나가려고 하고, 대학생 주거권 네트워크도 꾸리고 여러모로 세상 밖으로 나가는 시기여서 그걸 같이 준비했어요. 그게 2013년도에요. 몇 달 안되는 기간 동안 서울시 사회적 아이디어 대회에 나가서 민달팽이 마을을 만들자고 해서 상도 받기도 하고, 공공기숙사 짓는 데에 MOU도 하고 이것저것 했었어요. 내 나름 열심히 하긴 했지만 휴학 기간이 끝나고서도 투신하면서 할 용기나 집념은 없었어요. 그래서 복학했죠.
#배움과 실천의 일치, 전공과 활동
저의 정체성을 구성하는데 사회복지학과 영향이 커요. 왜냐면 그 시기에 과를 통해 고민하고 구현하고 했던 게 많았거든요. 어릴 때부터 세상에 대한 것들을 어디에 가면 잘 배울 수 있을까 고민했어요. 그렇지만 대학가면 뭘 하는지, 무슨 과가 어떤지 사실 뭘 어떻게 알겠어요. 그런데 마침, 들어갔던 사회복지학과가 운이 좋게도 내가 찾던 그 곳이었던거죠. 모두가 너무 아픈 세상이잖아요. 그 다양한 이야기들을 따뜻한 가슴으로 바라보는 관점, 그리고 그것들을 변화시키기 위한 냉철한 지성에 대해 배울 수 있었던 곳이었다고 저는 생각해요. 학업을 막 성실히 했던 것은 아닌데 수업에서도, 친구들도 평소 내가 고민하는 것을 쏙쏙 짚어 알려줘서 너무 행복했어요. 다른 곳들은 보통 분위기 자체가 경쟁적으로 남을 압도해야하는 식이었다면, 여기는 서로의 말을 잘 들어주는 분위기인 것도 제가 사람들과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을 배우는 데 정말 중요했구요.
보통 사회복지라고 하면 봉사, 사회복지사, 요양보호사 느낌이 강하고 중요한 부분이지만, 행정가, 액티비스트 역시 사회복지 하는 사람들의 정말 중요한 역할이에요. 이론과 실천처럼, 저는 학교에서 수업으로 배운 것들을 민달팽이 활동을 통해 경험했어요. 공부와 삶이 연결되어 있는 것, 안에서 배우는 것과 밖에서 배우는 것이 다 연결되어있다는 것을 경험했죠. 그래서 민달팽이유니온 활동을 하고서 다시 사회복지학과로 돌아가서 수업을 들었을 때 더 재미있고 좋았던 것 같아요.
#진로 고민, 여전히 살아있네?!
이렇게 벅차게 공부하고 생각한 것을 어디서 어떻게 직업으로 풀어낼 수 있을까 고민했을 때 주변 친구들이 가는 경로는 자신이 없더라구요. 그것도 물론 훌륭한 일인데 나에게 그 길이 잘 맞을지는 의문이었어요.
제가 나고 자란 환경은 권위주의라던지 기존 사회의 구심력이 강력하게 작동하는 곳이었다고 생각해요. 저에게 서울은 권위에서 해방된 공간, 그렇지만 냉혹한 현실을 마주하는 공간이었어요. 민달팽이 활동 역시 이 모든 것을 바꿔볼 작은 시도, 꿈틀거림이었지만 세상을 바꿀 수 있으리라는 확신은 없었구요. 이런 문제의식을 주변 친구들, 가족들과 나누고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우리가 사는 세상을 바꿔보기 위한 귀한 시도라는 것을 설득할 수 있을까?
휴학하면서 민달팽이 활동할 때는 자신이 없었어요. 그랬는데 복학하고 진로를 고민하며 민달팽이유니온을 돌아보니 안 망하고 살아있는거에요. 심지어 2년 전에 계획했던 것을 다 하고 있는거에요. 그게 저한테는 좀 충격이었어요. 이런 활동이 중요하다고 생각은 했지만 동시에 사상누각 같다는 생각을 했는데 오히려 확실하지 않았던 건 나였구나 싶더라구요. 알바해서 그 돈으로 활동하는 사람들, 나처럼 가볍게 활동했던 사람들의 시간과 에너지가 다 모이니까 변화를 만들어내고 단단한 기반을 다지기도 하는구나 깨달았죠.
다시 이 일을 직업으로 해볼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어떻게 하면 행복할 수 있을까, 삶이 나아지는 제일 좋은 방법이 뭘까 생각을 해봤을 때 이 활동을 하면 그럴 수 있겠다 싶었어요.
* 2015년 대학생 기숙사 사업을 담당하여 진행한 기자회견. 학생들의 기숙사 건립 활동의 결과물로 기부받아 생긴 기숙사가 터무니없이 높은 비용을 받는 것에 대한 기숙사 문제 해결 활동을 하던 시기. 가운데 회색 상의 차림이 최지희님
자신을 활동가라고 생각하신다고 느껴져요. 활동가는 누구인가요? 활동은 무엇인가요?
저는 원래 활동이나 역사 관련해서 관심이 많았어요. 여전히 이런 저런 관심을 가지고 생활에서 실천할 수 있는 걸 하고 있어요. 지금 저는 주거 분야를 활동의 영역이자 업으로 삼고 있지만 그게 아니어도 주거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잖아요. 직업, 직군으로서의 활동가가 분명 필요한 영역이긴 하지만, 그 활동가라고 하더라도 당연히 혼자서 문제를 해결할 수 없어요.
모임을 열고 사람들을 모으는 상근자, 관련 소식을 보내면 링크라도 한번 열어보는 사람, 정책 간담회를 가는 사람, 이런 활동이 가능하도록 회비를 내는 사람 모두 다 자기가 할 수 있는 영역에서 세상을 좋게 변화시킬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게 다 활동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그런 사람들 중에 전업으로 활동을 하는 활동가인거죠.
활동 자체를 그만두고 싶었던 적은 없나요? 비영리, 시민사회 영역을 떠나고 싶을 땐 없었나요? 왜 떠나고 싶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활동을 하는 이유는요?
엄청 많았죠. 이유는 역시나 사람들에게 실망하는 것밖에 없는 것 같아요. 우리가 그토록 바꾸고 싶어 했던 것들로부터 안전하고 자유롭다고 여기는 이 공간과 속에서 나를 옭아매는 무거운 중력들을 정면으로 볼 때. 괴로웠죠.
저는 애초에 문제의식이 날카롭지 못해요.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에요. 그래서 끊임없이 깨어있고 문제를 문제라고 바라보는 여기가 좋았던거죠. 그런데 그렇게 둔한 내가 여기에서도 무언가 문제를 느끼고 ‘이건 문제가 있다’라고 말하기까지, 오랫동안 견디고 지나온 시간이 있었어요. 그 때 절망감이 들었죠. 이 사람들에 대한 실망이라기보다 이런 활동 전반에 대한 절망 같은 것이었어요. 밖에서 보면 이렇게 변화를 만들어내고 평등하고 자유로운 우리들의 관계도 결국 별수 없는 것인가. 세상이란게 그런건가?
기존의 강력한 중력 속에 있다가 지금 여기로 올 때, 저는 나름의 고민과 번뇌를 통해서 이 길을 확신하고 왔거든요. 이렇게 사는 것이 장기적으로는 더 합리적이고 다 같이 잘 살 수 있는 방법이라는 생각으로요. 그래서 내가 생각하는 지향이자 최저선이 침범당할 때의 현타, 그게 엄청 컸어요.
조금 더 구체적으로 물어봐도 될까요? 열정과 애정이 많은 곳에 대한 절망을 오게 했던 사건이 있었나요?
시민사회가 자유롭고 평등한 문화에 대한 감수성이 있다면 청년 단체가 가장 높을꺼라는 생각을 했어요. 시민 사회 내에서도 일상 속 민주주의, 평등문화 이런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편이니까요. 일반 회사에서도 ‘90년대생이 들어온다’ 이런 책이 요새 인기라면서요. 그것에 대한 신뢰와 자부심이 있었는데 그 신뢰가 무너지는 과정을 겪었고, 어느 순간 그 결과를 마주하니까 충격이었어요. 일상 속의 민주주의가 구현되는 수준 높은 문화가 우리 단체에는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심각한 수준의 일들이 있었고 그것이 드러났고,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바로잡기 위해 애썼고, 그런데 또 쉽게 왜곡되고 오해와 상처를 낳고, 그런 과정들이 끝나지 않은 것 같고.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바로잡기 위해 애썼고, 그럼에도 쉽게 왜곡되고 오해와 상처를 낳고, 그런 과정들이 끝나지 않은 것 같고. 그래서 여전히 절망스럽기도 한 것 같아요.
그래도 우리의 활동들을 다시 긍정할 수 있다면, 그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일을 꺼내놓고 마주하고 있다는 점. 이 상처들을 직면하고 회복하는 것을 올해 민달팽이의 중점 과제로 삼은 것에 비해선 큰 진전이 없었고 여전히 너무 불안전하고 아직도 너무 많은 해결과제들이 있지만 그럼에도 큰 역경을 마주하고 넘어오고 있는 과정 중인건 맞는 것 같아요. 이것이 가능하도록 절망에만 머무르지 않고 끊임없이 용기를 내 준 사람, 그리고 그에 조우하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점이 저에게는 매번 새삼스럽게 놀랍고 아픈 점이에요. 그렇게 용기내주고 애쓴 사람들이 상처입고 침잠하고 잊혀져가는 것들에 대한 개인과 집단의 상실감과 부채감, 이걸 어떻게 하면 긍정적이고 건설적으로 제대로 마주할 수 있는지가 늘 고민이에요.
주변의 반응을 보면 많은 분들이 하시는 말이 ‘사실 이 정도까지 드러내놓고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보면서 처음에는 놀랐다, 동시에 그래서 여긴 좀 다른 곳이라는 희망을 느꼈다’고 하세요. 그런 이야기들이 저에게는 이 일을 계속 하는 동력인 것 같아요. 시민사회 대나무숲만 보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이런 문제를 겪잖아요. 다들 조용히 사라지는 방식, 문제제기를 하든 못하든 그냥 조용히 사라지는 현실들에서 민달팽이에서는 그나마 그 문제를 끊임없이 수면 위로 끌어왔던 노력들이 있었던 거죠. 저는 문제를 드러나게 하는 데는 부족한 사람이에요. 그렇다면 다른 사람들이 정말 애써서 여기까지 끌어올린 그 노력을 이어받지 못해 ‘결국 안되네’ 이렇게 남도록 두진 않아야겠다, 그게 나의 역할이겠다 하는 생각이에요.
* 매년 참여하고 있는 서울시의 거버넌스 플랫폼, '서울청년정책네트워크'(='청정넷')의 2018년 살자리분과의 모습. 주거팀은 언제나 인기가 많아서 함께하는 사람도 많다. 최지희님이 손을 들어서 환한 표정을 짓고 있다.
충격받고 절망하면서도 계속 활동할 수 있는 동력은 무엇인가요?
하나는 여기에서 만나는 사람들이요. 저의 성향은 만나면 꼬리부터 흔드는 강아지 같은 느낌이거든요. 저는 사람들을 진짜 좋아하는 것 같아요. 애정과 호기심이 있는 사람이라 활동인 아닌 다른 영역에 갔어도 즐겁게 지냈을 것 같긴해요.
여기가 좋은 건, 물론 개개인이 힘들고 좋고의 주기는 있지만 그 기저에 있는 생동감이 좋아요. 변화가 딱 일어나는 어떤 ‘특별한’ 순간이 아니라, 아닌 일상적으로 변화를 만들어 내는 지난한 순간들. 그 모든 순간들에 있는 생동감이 너무 멋있어요. 여기서 만난 사람들은 하나하나 다 멋있어서 이곳을 사랑할 수밖에 없게 해요.
또 하나는 내가 이 일을 함으로 만들어내는 작은 틈이 너무 좋아요. 역사는 앞으로만 나아가지 않는다고 생각하거든요. 언제든지 역사는 빠르게 후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후퇴를 하는 시기에는 후퇴를 늦추는 틈, 앞으로 나아갈 때는 작은 틈들이 모여서 이벤트가 생기고 변화의 모멘텀을 만들고. 이런 것들을 보는게 재미있는 것 같아요.
구체적으로 예를 들면 역세권 2030청년주택만 하더라도 애초에 청년주거란 이슈 자체가 사회적으로 전혀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한 결과거든요. 청년들이 장애인, 노인보다 힘드냐는 저항을 받으면서 청년주거의 열악함, 절박함을 호소하기도 하고 통계나 실태조사로 사람들의 목소리를 드러내기로 하고. 사람들의 목소리가 모이는 광장을 만들어서 거기서 분출되는 에너지로 중요한 문제라는 것을 보여주기도 하고.
다양한 방법들로 청년주거문제를 다뤄서 (사실 논란이 많은 정책이지만) 역세권 2030같은 정책을 만든 것도 대단한 변화를 만든 거라고 생각해요. 세세하게 들어가보면 갈 길이 구만리로 머니까 해나가야 할 일은 많지만요.
당장 청년 주택 반대 플랭카드만 하더라도 변화가 드러나요. 주민들 반대로 그동안 기숙사가 무산되고 행복주택이 무산됐고. 청년들이 여기 들어오면 다 빈민촌, 모텔촌 되고 우리 초등학교 아이들 위험해서 어떡하란 말이냐, 심지어는 ‘세월호 참사의 위험을 잊으셨나요.’ 이런 것도 붙었어요. 이렇게 혐오적으로 바라봤어요. 집값 떨어지는 걱정을 다른 방식으로 드러내는거죠. 근데 이젠 주민들 반응도 조금 바뀌고 내거는 플랭카드 문구도 바뀌었어요. ‘닭장같이 좁은 곳에 (청년들이) 그렇게 높은 임대료를 지불하며 어떻게 사냐.’, ‘청년들을 위한 임대주택이 아니라서 반대한다.’ 이런 문구가 걸려요. 반대를 하는 진짜 이유와 별개로 사회에 나오는 메시지들이 달라지는 것, 그리고 그동안은 집값 떨어지면 큰 일 난다고 생각하는 목소리에 주목할 수밖에 없었다면 이제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주목한다는 것을 느껴요.
시민사회가 어떤 모습이었으면 좋겠나요? 내가 기대하고 이상하는 시민사회는 어떤 모습이에요? 그게 가능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제가 막 용기가 뛰어나서 전면에 나서서 뭔가를 하는 사람은 아니에요. 민달팽이가 좋고 든든했던, 선택할 수 있었던 이유는 거대해 보이고 해결할 수 없어 보이는 문제라고 해도 계속 이야기를 꺼내고 결국 균열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한참 힘들어서 극단적으로 그만둘까를 고민할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는 안전하고 자유로울 수 있는 곳이라는거에요. 그게 저에게는 정말 중요했어요. 저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민달팽이란 이름 안에서 오가고 머무를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해요.
한 마디로 말하면 다양성이 존중받는 것. 명절 때 내려가면 나이부터 결혼까지 낯선 사람으로부터 같은 말을 여섯 번을 넘게 들었는데요. 민달팽이 안에서는 우리 사회의 강력한 중력이자 경쟁체제로 존재하는 나이, 성별, 학력, 사회적 위치, 경제적 위치, 인종 다양한 것들로부터 멀어지려고 해요. 물론 실수를 하겠죠. 하지만 실수인 것을 깨닫고 사과하고 좀 나아지려고 하는 의지가 있어요. 남에게 위해가 되는 말이 아니라면 무슨 말이든 할 수 있고 힘들면 힘들다고 나를 내보여도 되는 그런 공간, 시민사회도 그런 안전한 공간이어야 되는 것 같아요.
초기에 주거의제, 청년의제를 이야기해오던 주체들이 있고 이제는 주체도 다양해지고 담론도 확장되고 있죠. 그런 거 있잖아요. 골목에 국밥집이 처음 생겨서 터 닦아놓으면 그 골목에 국밥집이 주르륵 생기고 국밥골목이 되면 누가 원조인지 논란이 붙잖아요. 그래도 그 골목 자체는 계속 살고 더 강해지잖아요. 시민사회라는 활동 전반이 같은 논리라고 생각해요. 어떻게 인간이 이렇게 다양할 수가 있나, 생각하고 해결하는 방식도 이렇게 다를 수가 있나? 같은 가치를 두고 이렇게나 다른 모습으로 이 가치를 추구한다고 말할 수 있나? 이런 당황스러움이 있었어요. 그런데 이젠 그냥 내려놓게 되었달까. 가치와 실제 언행, 방법 이런 것들에서 다양할 수 밖에 없고, 그냥 최선을 다해 내 방법과 내 가치를 일치시켜며 살아가는 노력을 할 수 밖에 없지 않을까. 그런 것들이 섞여서 나아가지 않을까 해요.
*2018 여름, 민달팽이 전체 상근자 워크샵에 가서 하반기 사업 논의를 하는 중. '발제자의 의자'에 앉아서 담당 사업을 발제하는 중
세대차이를 느끼나요? 활동을 하는데 세대 차이가 걸림돌 또는 장점이 되는지, 만약 그렇다면 자신은 어떤 세대라고 생각하고 다른 세대와는 어떻게 다르고 그게 활동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요.
저는 초창기부터 함께하는 구성원으로 있다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데, 예를 들어 내가 여기를 나간다고 하면 이제까지 이어져온 것들이 끊어질까봐 걱정이 되죠.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여기서 활동한지 오래되었으니까 세월이 쌓여서 알고 있는 것들, 이런 맥락에서 이런 결정들을 했던거야, 저렇게 만들어진거야 이야기할 수가 있는데 그럴 사람이 없어질 것이 고민이 되요. 근데 이 고민은 정말로 답을 모르겠어요. 왜냐하면 저 역시 구태의연함이 있고 그걸 제 스스로가 많이 느끼거든요. 그래서 새로 온 사람들이 올 때마다 새로운 시도를 해보는 것이 정말 중요하구나 느껴요. 내가 민달팽이 유니온의 과거 사람들과 같이 했던 것에 집중하면 다른 것을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가장 좋은 것은 새로운 사람들이 뭔가를 해볼 수 있도록 OB들은 뒤로 물러나서 여건들을 지원하고 필요할 때 대화 나누면 제일 좋은데. 그런 면에서 지금의 구성원들과 어떻게 운영을 해나갈지 고민이 많죠. 제 임기가 끝났을 때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만큼의 역량이나 기반이 있는가도 고민이구요.
10년 후 모습을 상상해봐주세요. 뭐하고 있을 것 같아요? 그 때도 활동하고 있나요?
시민사회라는게 애초에 모호한 일을 하는 곳이라고 생각해요. 눈에 보이지 않잖아요. 친구들이 물어보면 설명하기가 어려워요. 시민단체 안에서도 저기 뭐하는 것이야 싶은 게 많잖아요. 애초에 저는 이 일을 직업으로 삼겠다, 활동가로 살겠다 생각할 때는 민달팽이 말고 다른 활동은 어떤 것이 있는지 어떻게 가능한지도 몰랐어요. 그냥 민달팽이라는 문만 통과했던거에요. 그만큼 저에게 애정이 크고 수많은 사람의 시간과 노력과 일상이 담겨있는 총체이기 때문에 그런 일을 겪었어도 이 곳을 떠나는 것을 상상해보지 못했던거죠.
나름 4~5년 정도 활동을 하다보니, 그리고 주변을 볼 수 있게 회복이 좀 되니까 다시 다양한 세상이 보여요. 요새 저는 다양한 세상과 주거 이야기를 하는게 재미있어요. 아직 못가본 세상이 너무 많구요. 일어나지 않은 일은 일어나기 전까지는 모른다는게 제 생각이긴 한데, 그래도 ‘집은 사는 것이 아니라 사는 곳이다’ ‘누구든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자유롭고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어야 한다’는 모토로 활동을 계속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정말 그러면 너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 '보유세 강화 시민행동'이라는 네트워크의 공동 대표단으로 참여한 기자회견에서 청년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보유세를 강화해야한다고 발언하는 최지희님.
청년들이 만든 시민단체는 뭔가 다를거라고 기대하지만 조직 내부에서 겪는 갈등, 사건, 위기 등은 전통적인 시민사회단체와 다르지 않다. 오히려 위기가 왔을 때 어떤 태도로 대처하는지, 위기에서 얻은 교훈을 어떻게 단체의 운영에 반영하는지가 다름을 말할 수 있는 기준일 것이다. 민달팽이 역시 문제를 꺼내고 말할 수 있었던 것은 용기 있게 나선 사람들의 행동과 말이 있어 가능하다고 말한다. 해결되었다고 말하기엔 여전히 진통중이지만 문제를 문제라고 공개적으로 말할 수 있는 조직문화야말로 어떤 위기에도 우리의 건강성을 유지할 수 있는 가능성의 시작이 아닐까. 인터뷰이는 단체활동과 사람에 대한 애정으로 활동을 지속하고 조직의 미래를 희망하고 기대한다. 이러한 긍정은 어디서 오는 것일지 더 궁금해진다. 활동을 지속시키는 동력이 조직 내외의 아픔과 상처도 잘 마주할 수 있는 힘이 되면 좋겠다.(_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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