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 활동하시면서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이나 고민하고 있는 게 있으신가요?
가장 많이 하는 고민은 시민사회단체 내부에서 왜 동료들끼리의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갈등이 생길까? 아마도 운동하는 방식이나 속도에 대한 차이겠죠. 세대 간의 갈등에 대한 질문도 있던데 그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서 조직을 좀 더 원래 목적에 가깝게 운영할까, 뭐 그런 고민들이죠. NPO나 NGO는 사회 변화의 목적이 있잖아요. 영리행위를 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면 사회 변화를 추구하는 조직에서 왜 내적 갈등이 자꾸 생길까, 어떻게 하면 좀 더 협력해서 일을 잘 할 수 있을까, 갈등을 무마하는 게 아니라 함께 성장하는 방향으로 상생할 수는 없을까라는 고민들을 하게 되네요.
고민 해결의 단서가 좀 잡히세요?
쉽게 해결되지는 않을 거 같구요. 다양한 시도와 노력을 해봐야죠. 두 번째 고민은 지금 시국이 최순실과 박근혜 때문에 생긴 건데 과연 이번 기회에 우리 시민사회가 어느 정도까지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시민사회운동이라는 지금의 NGO 형태가 사실 87년에 생긴 것이란 말이예요. 박근혜-최순실 사태로 광장에 나온 사람들은 보다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하고 있어요. 근데 지금까지 NGO는 단체별로, 영역별로 분화되면서 삶의 여러 복합적인 문제 보다는 각 부문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했는데 이번 기회에 진짜 주민들이 참여하거나 주민들이 권력을 갖는 단계까지 실질적으로 갈 수 있을까? 누가 새로운 사회의 주도 세력이 될 수 있을까? 노동계도 아닌 거 같고, 정당도 아닌 거 같고, 시민사회단체들도 아닌 거 같다고 하는데 그러면 새로운 주체가 누구이고, 그들은 어떻게 새로운 사회를 만들 수 있을까? 그래서 제가 지금 하고 있는 운동은 뭘까? 역량을 갖고 있거나 비전이 있는 걸까? 그런 질문을 많이 해요. 자기 반성도 많이 하구요.
다른 분과의 인터뷰에서도 이야기했던 내용인데 지금 광장에서 시민사회단체의 역할은 뭘까, 활동가는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한 분은 과거와 달리 이미 시민들이 앞서가고 있기 때문에 선두에 서거나 깃발을 드는 것 자체가 소용이 없는 일이라고 하셨어요. 활동가들은 판을 깔아주는 정도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도 하셨구요. 방금 말씀하신 내용과 연관시켜서 광장에서 시민사회단체나 활동가는 무슨 역할을 하는 게 좋을까요?
서울시에 25개 구마다 마을넷이 있어요. 제가 중랑구 대표여서 회의에 참여하는데 지난 달 마을넷 대표자회의에서 시국선언을 발표했어요. 광장은 이미 존재하는 것이고 다양한 사회 세력들이 광장에 나와서 목소리를 내고 있잖아요. 거기에 맞춰서 마을넷도 시국선언을 했고 지난주 금요일에 시국선언문이 한겨레신문 광고로 나갔어요. 거기에서 강조된 것이 풀뿌리 공론장이예요. 공론장 이야기를 너무 많이 하고는 있지만 저는 조직화가 되지 않은 건 운동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옛날식 운동관을 갖는 사람이예요. 자유로운 개인을 믿지 않아요.
아무리 정치적 이슈가 되고 국회의원을 바꾸더라도 지역에서는 우리의 삶이 있고 사람들과의 관계가 있잖아요. 일상의 관계나 지역의 관계 속에서 사람들의 대화의 수준 내지는 상호작용의 수준이 달라지지 않고서는 광장이나 정치체제만 바꿔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의외로 광장에서 행동하는 것은 쉽다고 생각하는데요. 저는 광장에서 발언하고 집회를 참가하는 건 쉽지만 자기가 생활하는 지역이나 자기가 속한 조직에서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것은 어렵다고 보거든요. 저는 거기까지 나아가야 된다고 보기 때문에 지역에서 조직운동을 몇 년에 걸쳐서시민단체나 활동가가 열심히 해야된다고 생각을 하고 있어요. 다만 그 방법에 대해서는 요즘 고민이예요. 지역 주민들이 어떻게 정치적 주체로 설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어요.
지역의 주민들을 조직하고 정치적 주체로 서게 하는 것은 사실 오래전부터 있어 왔던 운동의 큰 방향이잖아요. 근데 지금 말씀하신 고민은 시민사회단체가 한동안 그런 조직화운동과는 동떨어진 흐름 속에 있었고 사업에만 빠져 있었기 때문에 지금부터 다시 밑바닥부터 재건해보자, 관계의 복원이나 새로운 관계 맺기를 시작해보자는 생각을 하고 계신 거네요.
그렇죠. 저는 지역에서 활동할 때 사업 중심으로 하지 않으려고 노력을 많이 했어요. 그게 제가 살고 있는 지역의 차이인데요. 제가 아마 남성이었다면 서울시의 마을공동체 지원정책과 자원이 나올 때 좀 더 공격적으로 끌어 와서 일을 했을 텐데 그렇게 하지는 않았거든요. 지역에서 좀 느리긴 하지만 운동 중심의 관계망, 돈이 없어도 맺어지는 관계망에 집중하려고 노력했어요. 이제 그런 관계망들이 서서히 생기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동안 지역에서 정치적인 발언이나 생각을 하는 분들이 사실 많지는 않았는데 이번에 중랑구에도 ‘중랑촛불행동’이 만들어졌어요. 각 정당과 마을넷에서 활동하는 다양한 단체와 모임에 속한 사람들이 한 30명이 모여 있어요. 카톡방도 만들어서 새로운 시도를 해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광장에서 발언하고 집회를 참가하는 건 쉽지만
자기가 생활하는 지역이나 자기가 속한 조직에서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것은 어려워
과거에 선생님이 지역에서 주민들을 조직하고 관계를 만들어내는 방식들이 있었죠? 그 시기가 어느 정도일지는 모르지만 그 시기의 방식과 지금 방식에 차이가 있나요?
크게 다르진 않을 거예요. 제가 지역에서 일한지 10년 정도 됐거든요. 그때도 지금처럼 한 사람 한 사람과 관계 맺고 신뢰 쌓는 방식으로 했어요. 그렇게 한 10년 활동을 하니까 지역에서 돈을 주든 안주든 활동하는 사람들이 좀 생겼어요. 그렇게 활동하시는 분들이 지금은 자기 목소리를 조금 더 내고 싶다거나 다른 전환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해요. 근데 그 다음 단계를 서로 잘 모르기 때문에 보다 많은 주민들과 소통하는 방법들을 교육이나 모임을 통해 시도해보려고 준비중이예요.
말씀하신 내용 중에 공감이 되는 게 광장에서 민주주의를 이야기하는 것은 쉬워도 실제 내가 살고 있는 지역과 일하고 있는 조직 안에서는 그런 이야기를 하기 쉽지 않다는 거예요. 그게 어떻게 보면 처음에 이야기하신 갈등 문제하고도 관련 있는 것 같은데요. 조직 내의 민주주의에 대해 많이 이야기하고 있잖아요. 조직은 수평적이고 민주적으로 운영되어야 한다고 보통 말하는데 여기서 민주적이라는 말에 담겨져 있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민주주의를 이야기할 때 방법론으로 이야기하는 경우가 있잖아요. 민주주의에 관한 어떤 기술, 이런 것도 사실 서구유럽식 기법들이 많죠. 1인 1표제도 마찬가지구요.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방법이죠. 저는 민주주의는 매우 피곤하고 고단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풀뿌리 조직에서 민주주의를 이야기할 때도 모든 사람이 골고루 이야기할 기회, 내지는 만장일치제와 같은 방법이 아니라 그 조직의 목표나 가치에 대해 많이 생각하는 편이예요. 우리가 생각하는 민주주의가 똑같이 1/N로 결정하고 1/N로 책임을 나누는 문제는 아니잖아요.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하는 가치가 있어요. 예를 들어 사회적 약자가 좀 더 존중받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던지, 주민자치가 제대로 되기를 바란다던지, 그런 문제죠.
민주주의는 체험이라고 생각해요. 지역에서 애들이 와서 노는 청소년 까페를 하고 있어요. 아줌마들이 운영하면 애들이 안 온다고 하는 분도 있던데 지금 50대 여성들이 그 까페를 운영하고 있거든요. 굉장히 열심히 하고 있어요. 지난 12일 촛불집회 때 제가 카페 담당이었는데 집회에 너무 나가고 싶어서 문 닫은 때를 빼고는 지금까지 한 번도 문을 닫은 적이 없어요.
모든 사람들은 자기 삶에서 공익성을 어느 정도 갖고 있어요. 제가 주로 만나는 사람들이 여성이거든요. 여성은 어떻게 보면 사회적 존재로서 역할을 인정받아본 적이 별로 없거든요. 엄마라는 존재이거나 일을 하더라도 대부분 비정규직이죠. 열악한 노동 환경에 처해있기 때문에 노동자로서 인정을 받아본 적도 없어요. 여성노동은 부업이거나 생계 보조수단일 뿐이죠. 많은 여성이 엄마나 아내 이외의 다른 사회적 정체성을 가져본 적이 별로 없단 말이예요.
우리 사회는 개인과 국가 사이, 가족 말고 사회적 문제를 논의하는 중간 단계가 없이 개개인이 다 국가와 마주해요. 그런 분들에게 선거 때 투표하는 것 말고 민주주의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내가 살고 있는 이 사회에서 자기 판단과 결정으로 사회 속에서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사회적 결정 과정에 참여하는 경험 없이 민주주의를 목숨처럼 지킬 수 있을까요? 우리 사회가 운영되는 구석 구석에서 여성들이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데 실제로는 가치가 평가되지 않고 마치 개인적인 일로 치부되면 여성들은 민주주의를 말하지 않아요.
여성들이 계모임 할 때 민주주의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지만 실제로는 굉장히 민주적인 운영 원리를 갖고 있어요. 한 사람이 독단적으로 운영되는 여성 모임은 잘 안 되거든요. 여성들은 그런 거 싫어해요. 공적인 조직에서 위계적인 경험을 해보지 않은 분들이 대부분이잖아요. 위계와 상부의 지시에 따라 결정하는 방식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민주적일 수밖에 없어요. 계모임을 하더라도 여러 계원들의 이야기를 다 들은 다음에 밥은 어디서 먹을 것이며, 곗돈을 어떻게 쓸 것인가를 결정해요. 이런 경험이 있기 때문에 여성들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민주주의 훈련이 되어 있다고 생각해요. 타인의 의견을 존중해요. 그 돌봄의 특성 때문에요.
그런데 그런 경험이 사회와 연결되지 않기 때문에, 그리고 정치가 결국은 권력을 배분하는 힘이라면 사회의 중요한 자원에 대한 결정권을 가져보지 못했기 때문에 민주주의가 굉장히 형식적인 것으로 다가오죠. 그래서 저는 민주적인 조직 운영을 이야기하거나 민주주의 사회를 지향해야 된다고 했을 때 여성들이 사회 문제에 관여하고 참여하는 경험을 하고 그 과정에서 뭔가가 변했다는 것을 느끼는 것 자체가 민주주의 교육이라고 생각해요.
자기 판단과 결정으로 사회 속에서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사회적 결정 과정에 참여하는 경험 없이
민주주의를 목숨처럼 지킬 수 있을까요?
여성의 입장을 말씀하셨지만 일반적인 이야기이기도 하네요. 이야기를 듣다보니까 문득 떠오르는 게 있는데요. 광장에서 민주주의는 일종의 익명성에 기반한 민주주의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러니까 이 광장에서는 아는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익명의 대중 속에서 이야기하는 거예요. 근데 지역에서는 다 관계가 있는 사람들이잖아요. 그 사람들을 일로만 만나는 게 아니라 생활 속에서 만나구요. 그런 차이 때문에 광장에서 민주주의는 쉬워도 생활 민주주의나 조직 내 민주주의는 어렵다고 할 수 있겠네요.
말씀하신대로 광장의 민주주의는 우리가 언론이나 교과서에서 배워왔던 일반적인 민주주의죠. 근데 지역으로 갔을 때는 민주적인가, 가족관계 내에서 나와 남편이 민주적인가 그런 문제에 만나게 되요. 가족 관계에서 민주주의, 지역 모임에서의 민주주의, 지역의 예산을 결정하는 곳에서의 민주주의, 직장에서의 민주주의와 연결되지 않으면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는 하나도 발전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자기가 속한 모든 조직에서 철저한 혁명이 이루어지지 않고서는 안 되는데 아마도 광장의 목소리가 그런 공간으로까지 번져가겠죠? 성찰과 함께 조직 문화의 변화가 있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근데 지역의 풀뿌리 단체는 여성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일반적으로는 민주주의적이라고 볼 수 있어요. 오래된 사람의 권위 같은 게 많지도 않고요. 사실 저조한 참여로 힘들지 누가 전횡을 일삼아서 하지는 않거든요. 그럴 만한 자원이 있는 것도 아니구요.
지금 온 국민이 헌법 공부를 하고 있잖아요. 탄핵 절차에 대해서도 공부하고 다음 정부가 해야 할 일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구요. 저는 신자유주의의 특징이 사람들을 끊임없이 개인화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소비자로 머무르게 하는 거죠. 풀뿌리운동이 지역에서 싸워야 될 민주주의는 이런 거예요. 한번 조직이 정한 것을 관성적으로 반복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총회와 월례 회의도 해야 되죠. 기존에 했던 사업, 회원 사업도 계속 해야죠. 우리가 가정에서 삼시세끼 밥을 먹는다고 가족 간의 애정이 확인되는 게 아닌 것처럼 풀뿌리 조직도 일상적인 일들을 멈추어야 할 때가 있어요.
국가는 이렇게 운영해도 되는 건지, 정치와 선거는 지금 이대로가 좋은지, 일상의 사고에 들어오지 않는 큰 문제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때가 필요해요. 우리 조직의 운영 원칙이나 발생하는 문제들이 국가 운영과 어떤 연결고리가 있는지, 지역에서는 나와 국가와 정치와 정부가 어떤 관계에 있는지를 계속 생각하는 계기를 만들 필요가 있어요.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다시 운동을 재구성하는 계기를 만들어야죠. 제가 2001년부터 여성환경연대에서 활동을 했는데요. 90년대 이후에 단체들이 분야별로 다 흩어졌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여성운동, 환경운동, 인권운동 등으로 다 나뉘고. 인권운동과 여성운동은 다른가요? 너무 웃기죠?
요즘은 활동가대회도 따로 하는 것 같아요. 여성활동가대회, 인권활동가대회, 환경활동가대회 등등.
그러니까요. 사실 단체 대부분이 조직 규모가 작아요. 그래서 조직이 이 복잡한 한국 사회의 모든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문제에 대해 전체적으로 사고하기가 어려운 거예요. 활동가 개인은 더 그렇죠. 활동가 개개인이 전체적으로 사고를 못하는데 조직이 어떻게 전체적으로 사고를 할 수 있겠어요? 너무 개별화되어 있어요. 전체 시민사회도 한국 사회의 하나의 부속품에 불과한데 그 시민사회도 너무 쪼개져 있어요. 사회에 대한 총체적인 사고를 참여연대가 해요? 환경연합이 해요? 어떤 단체도 주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풀뿌리 정치에 대해서도 풀뿌리 단체들은 자기 이슈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러다 보니까 풀뿌리 운동은 마치 지역에서 소모임 만들고 복지 사업하는 게 일이라고 생각해요. 소모임 하나 만드는데도 몇 년이 걸리고 그걸 유지하면서 운영하고 사람들하고 소통하고 신뢰를 쌓는데도 몇 년이 걸리는데 그렇게 해서 언제 이 세상을 바꿀 수 있지?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하는 거예요.
부엌에서 세계를 본다라는 말이 맞다면 자기가 발 딛고 서 있는 곳에서 우리 사회를 전체적으로 볼 수 있는 계기가 필요해요. 지금은 미디어가 발달해서 정보의 문턱도 많이 낮아지고 커뮤니케이션 기술도 많이 발전했잖아요. 저는 그런 변화들이 시민 개개인에게 통합적 사고를 가능하게 해서 지역에서 내가 무엇을 할 것인가로 연결되는 전환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혁명의 시기가 시작되었다고 생각해요. 시민들의 의식이 한 번 더 업그레이드되는 계기가 왔다고 보는 게 촛불 현상이 시민사회 조직을 과소평가하고 개인을 강조했다면 저는 풀뿌리 조직들이 그런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주민들을 어떤 식으로든 네트워크로 조직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가정에서 삼시세끼 밥을 먹는다고
가족 간의 애정이 확인되는 게 아닌 것처럼
풀뿌리 조직도 일상적인 일들을 멈추어야 할 때가 있어요.
그런 시기가 왔다고 판단을 하시는 건데요. 사실은 2002년도 촛불집회 때도 시민사회운동의 역할 변화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고, 그 이야기는 2008년도 촛불 시기에도 다시 나왔습니다. 그리고 지금 2016년이란 말이에요. 그 당시에 가졌던 생각과 지금 시기의 생각에 달라진 점이 있으니까 지금이 때라고 생각하셨을 거 같은데요. 그 차이는 뭔가요? 단지 8년이라는 시간이 주는 변화? 아니면 이렇게 바닥까지 허물어지고 있는 상황을 더 직접적으로 경험해서일까요? 아니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계기로 만들어진 사회적 의제가 달라서일까요?
저는 2002년과 2008년도에 사실 임팩트가 크진 않았던 거 같아요. 2002년은 그냥 월드컵이 떠오르고 2008년은 미디어 환경이 변했구나와 개인의 발견 정도의 느낌이었어요. 2008년하고 2016년 사이에 중요한 변곡점이 있었다고 생각해요. 세월호요. 저는 세월호가 많은 사람들에게 국가의 본질에 대한 인식을 일깨워준 일이었다고 생각해요. 세월호 문제를 3년간 끌어오고 그걸 기억하겠다고 한 사람들이 있잖아요. 국가가 총체적으로 부실하다는 사고를 할 수 있었던 계기였다고 봐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세월호의 연장선 상에 있는 거고 대통령의 7시간 문제가 계속 나오는 것은 ‘우리에게 국가란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하고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2008년 금융위기가 있었죠. 사실 그건 IMF때부터 시작했다고 보는데 박근혜가 IMF 직후에 정치권으로 나왔어요. 당시 한나라당에 입당하고 보궐선거에서 압도적인 표로 당선되었죠. 만약 김영삼 정부가 IMF사태를 맞지 않고 한 정권만 더 90년대 식의 경제 성장을 했더라면 어땠을까요? 사실 90년대는 서태지와 아이들로부터 시작해서 씨네21 등 기억나는 게 있는데 참 문화적으로 자유로웠어요. 그 세대들이 한 세대만 더 있었더라면 박근혜 같은 사람은 받아들이지 않았을 텐데 IMF사태가 너무나 쉽게 박정희 향수를 불러왔죠.
그래서 2008년에는 광우병이라는 한 가지 이슈가 제기되었다면 지금은 전 세대 모든 계층에게 소수 권력이 국가를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는 위기감이 있기 때문에 지형이 조금 달라졌다고 생각해요. 보통 사람들도 굉장히 분노하고 있어요. 이제는 그 분노를 지역에서 거부감 없이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는 디딤돌을 놓고 참여의 장을 만들어야죠. 그래서 어떻게 보면 박원순 시장이 만든 마을공동체 정책이라는 게 나름 의미가 있어요. 저희 지역에 200명 정도가 모인 카톡방이 있거든요. 기회이기도 하고 고마운 현상이죠. 지금은 그래도 많은 관여자들이 지역에 생겼거든요. 서울시의 마을공동체 정책이 2012년부터 시작했어요. 세 명만 모으면 뭔가 할 수 있는 사업비를 줬어요. 서울시에서는 이 사업과 관련해서 상담을 받거나 사업을 해봤거나 어떻게든 관여된 사람을 12만 명 정도로 추산하고 있더라구요.
올해만 해도 제일 작은 규모의 사업으로 100만원씩 지원해주는 이웃 만들기 사업이 있는데요. 우리 지역만 해도 33팀이나 이 사업을 했어요. 그 내용도 꽤 다양해요. 카톡방에서 우리 동네는 요즘 무슨 일을 해요라는 정보를 공유하는데 이런 사람들이 200명 있다는 것은 지역별로 다르겠지만 엄청난 기반이 쌓이고 있다고 보는 거죠. 저도 지난 몇 년 동안 지역에서 그 일을 하느라 굉장히 많은 시간을 썼구요. 지금은 직능단체까지 관계를 맺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어요. 중랑구 의사회랑 한 달에 한 번 정기적인 만남도 가지고 있고 지역에서 뭔가 같이 해보려고 해요. 이런 일을 계속하면 지역에 누가 있는지도 알고 전체적인 그림이 그려지기 시작하거든요. 10년쯤 되니까 직능단체는 아직 시간이 없어서 긴밀한 협력은 안하고 있지만 지역에 있는 주요 단체들하고는 서서히 관계를 맺어가고 있고 우호적인 신뢰를 만들어가고 있는 거죠.
지금 카톡방에 있는 200명 정도 되는 사람들 중에는 기존에 만나지 못했던 새로운 분들이 많겠네요. 지역에서 10년 정도 풀뿌리 운동을 하셨으니까 서울시 마을공동체 사업을 통해 관계를 맺은 주민들과 기존의 풀뿌리 운동 차원에서 만난 주민들과는 어떤 차이가 있던가요?
10년 전에 중랑구라는 지역에는 시민사회조직이 거의 없었거든요. 그래서 맨 처음에는 진짜 보통의 주부들을 만났어요. 물론 부침이 있긴 했죠. 중간에 그만두신 분들도 있었고요. 훈련된 활동가가 없다보니까 힘들었지만 주부들하고 제도권 교육과는 다른 교육을 해보자, 환경을 생각해보자는 이야기를 하면서 공감대를 이룬 주부들하고 조직을 만드는데 진짜 5-6년 걸렸어요. 20명에서 출발해서 50명, 100명까지 갔는데 초창기에 했던 사람들이 지금은 지역에서 중요한 리더 역할을 하고 있죠. 그러니까 이 사람들은 10년 동안 훈련되어 왔기 때문에 조직적인 관점이 어느 정도 있어요. 역시 조직 경험은 다르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죠.
요즘은 마을공동체 사업을 계기로 지역에서 다른 사람을 만나게 되는데 그 사람들 중에는 사실 조직 활동가보다 훨씬 훌륭한 분들도 많아요. 왜냐하면 그동안 몰라서 그렇지 비슷한 생각을 하는 분들을 많이 만나게 되죠. 자기 동네에서 조직을 만들어서 참여하는 사람들 보면 ‘아, 참 훌륭한 사람이 많구나’라는 생각이 들죠. 우리가 조직을 민주적으로 운영하고 그런 괜찮은 사람들이 ‘저기는 열린 조직이고 공공을 생각하는 곳 같아’라고 느낄 때 함께 하거든요.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거죠. 그러니까 이건 링크죠.
제가 속한 조직의 모든 사람이 다 휼륭한 건 아니지만 몇 년간 힘들지만 매주, 매달 회의하고, 지역 활동을 같이 논의하고 공부했으니까 아무래도 활동 역량이 더 크다고 볼 수는 있는데 그렇다고 해서 지금 새롭게 만나는 사람들과 차이가 많이 나는 건 아니예요. 중요한 건 이미 훈련된 지역의 활동가들이 의미 있다고 보고, 마을 공동체 사업을 통해 만난 분들 중에서도 조금만 더 훈련되면 너무 좋겠다고 생각되는 자질 있는 분들을 만나는 계기가 만들어졌다는 거죠.
세월호가 많은 사람들에게
국가의 본질에 대한 인식을 일깨워준 일이었다고 생각해요.
선생님의 그런 경험이 지금 시기에 다시 지역에서 다시 바닥을 다지고 일상의 생활 속에서 민주주의 문제를 포함해 뭔가를 주민들과 같이 시도해볼 수 있겠다고 생각하신 근거가 될 수 있겠네요.
그럼요. 저는 꼭 우리가 만났던 사람뿐만 아니라 지금 시민사회, 사실은 시민사회단체에 포함되지 않았고 계기나 시간이 없었을 뿐이지 많은 사람들이 시민사회 구성원으로 성장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지금 광장에서의 촛불이 그냥 생겨난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동안 알게 모르게 지역과 우리 사회의 각 분야에서 노력했던 성과들이 쌓여서 만들어진 거라고 생각해요. 지역에서도 내가 조직해서 만난 사람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사회문제에 관심 갖고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이 존재한다고 보고 그 시민들하고 어떻게 관계 맺을까, 그 시민들하고 어떻게 협력할까가 중요하다고 봐요. 그런 플랫폼을 지역마다 어떻게 구축하느냐가 이제 중요한 과제라고 보는 거죠.
지금 말씀하신 그분들은 어떻게 보면 단체에 속해 있진 않죠? 그냥 모임일 뿐이죠. 아까 조직되지 않은 개인은 신뢰하지 않는다고 하셨는데요. 그 말씀에는 조직이라고 하는 것이 왜 중요한지가 담겨 있을 것 같아요. 최근에는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일은 하고 싶은데 단체에서는 못하겠다고 하는 젊은 활동가들이 있거든요. 이런 현상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방금 말씀하신대로 지역의 여러 모임이나 개인들하고 손잡는 게 중요하다고 하면 지금 시기에 조직이란 도대체 무엇이며 조직이 해야 할 일들은 무엇일까요?
우리가 조직의 경험이 별로 없어서 그래요. 예를 들어 젊은 활동가들이 말하는 조직은요. 상근 사무국장과 대표와 상근자가 있는 그런 관계 속에서의 조직만 생각한 거죠. 그런 조직이 아닌 관계망과 네트워크가 있는데 젊은 활동가들이 조직에서 일하기 싫다라고 할 때 핵심은 뭐냐면요. 네트워크는 감정 노동이 수반되는 엄청 피곤한 관계예요. 예를 들면 일반적인 위계 조직에서는 피곤하긴 해도 위에서 시키는 대로 하면 되니까 서로 조율해야할 게 별로 없거든요. 시키면 그 역할을 하면 되는데 우리가 맺고 있는 관계들은 그렇지 않죠.
새로운 네트워크를 만드는 데는 엄청난 감정 노동과 노력이 필요해요. 그게 힘든 거예요. 세 명만 모여도 거기에서 역할을 나눠서 뭔가 계속 한다는 건 엄청난 에너지를 투여해야 하는데 그런 에너지를 쏟는 게 힘들거나 하고 싶지 않은 거죠. 그건 모두가 마찬가지일거예요. 사실은 영리기업이나 정부는 이미 다 사명과 비전이 있어요. 제 3섹터의 모든 조직과 시민사회조직의 특성은 단체의 목적을 만들어야 되고, 그 목적을 어떻게 달성할 것인가 합의해야 되고, 비전을 어떤 방식으로 수용할 것인가에 대해서 많은 에너지를 쏟아야 하는데 그게 힘든 거죠. 하지만 저는 그걸 넘지 않고서는 시민사회가 역량을 갖추기 어렵다고 봐요.
우리가 생각하는 조직이 과거 시민사회단체처럼 대표와 사무국장과 상근직원이 있는 조직이라면 위계적일 수도 있고, 개인의 자율성이 보장되지 않는 조직문화도 있을 테고, 예전 386세대 문화부터 시작해서 남성위계적인 문화가 견디기 힘들 수도 있겠죠. 근데 예를 들어 중랑구를 바꾸자고 해보자구요. 내년도 중랑구 예산이 5000억쯤이에요. 그 5000억 예산이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지 전혀 관여하지 않는 개인들, 지역에 돌아가는 일에 관심 없고 정보도 없고 결정권도 행사하지 못하는 개인들이 모여 있는 중랑구라면 그게 뭘 바꾸는 거예요? 자기 삶에 영향을 미치는 지역의 정책이나 문제에 대한 정보도 없고, 참여하거나 관여할 수 없고, 관계망이 없는 그런 개인들이 뭘 바꿀 수 있겠어요? 민주주의는 구체적인 현실의 문제이지 우리가 토론을 기분 좋게 하는 게 민주주의는 아니잖아요?
우리가 이야기해야 할 것은 우리의 경제, 정치적 권리와 같은 거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소모임을 만드는 것도 결국은 개인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같이 논의하고 협력해서 해결하려는 거잖아요. 지역의 삶을 결정하고 있는 모든 것들에 누가 참여해서 어떻게 결정되고 있는가의 관점에서 봤을 때 그렇게 조직이 안 된 상황에서는 현실의 사회 문제를 아무 것도 해결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의미의 조직을 말하는 거예요. 청년들이 만약에 사회를 바꾸고 싶다면 청년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네트워크라던가, 정기적으로 정책 발의를 할 수 있는 기회라던가, 아니면 자기가 정말 고통스럽다고 메시지를 낼 수 있는 장을 갖고 있지 않다면 그냥 개인일 뿐이죠. 저는 이처럼 집단 행동할 수 있는 관계망이 없으면 그게 운동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굉장히 고리타분하죠?
자기 삶에 영향을 미치는 정책이나 문제에 대한 정보도 없고,
참여하거나 관여할 수 없고, 관계망이 없는,
그런 개인들이 뭘 바꿀 수 있겠어요?
조직의 본질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고 이야기해보고 합의하는 과정이 필요하겠네요. 왜냐면 젊은 활동가들이 이야기하는 조직은 단체라는 틀이 있는 조직인데 선생님께서 말씀 하신 조직은 그 틀이 있는 조직만 의미하는 건 아니거든요. 네트워크로 연결되는 큰 범위까지를 하나의 큰 조직으로 보는 거니까요. 그 지점에서 개념 차이가 있는 거 같구요.
저는 지금의 시민사회 조직이 젊은 활동가들을 포함해 자유로운 개인이라고 생각하는 시민들의 열정을 담아서 시민사회를 강하게 하려면 조직 형태가 엄청 유연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바로 그 지점인거 같아요. 조직에 들어가고 싶어 하지 않는, 조직에서 일하고 싶지 않다고 하는 문제의식은요. 조직의 견고함에 못 견디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좀 전에 말씀하신 네트워크 활동만 해도 굉장히 피곤하고 스트레스 받는 일인데 그런 일을 자기 일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상황, 프로젝트의 실무적인 일들만 처리하는 곳이 되어버린 조직의 현재 상황이 못마땅한 거죠. 조직의 유연함에 대한 요구도 있지만 조직에서 실무적인 일들만 처리하는 활동가로는 일하고 싶지 않다는 의미도 있는 거죠.
제가 지금 여성환경연대 상임대표를 하고 있는데 끊임 없이 이야기해요. 조직이 유연해야 한다구요. 1년에 1월 한 달은 쉬라고도 하는데 활동가들이 못 쉰다고 하더라구요. 2월 총회 준비해야 한대요. 2월 11일이 총회인데 결국 타협해서 3주 쉬기로 했어요. 그리고 중랑구에서 초록상상 사무국장으로 있을 때 활동가들에게 몇 가지 룰을 만들었어요. 예를 들면 우린 출퇴근 없다, 본인이 맡은 일을 밤에 하든 낮에 하든 알아서 하자. 사무국은 유지해야 되니까 사람들이 올 때를 감안해서 근무 조정만 하고 본인이 어떤 일을 할 것인가에 대한 업무 중심으로 일을 하자 이렇게 했거든요. 그랬더니 한 활동가가 그게 익숙해져가지고 자기는 이제 기업에 취직 못할 것 같다고 해요.
사실은 NGO가 국가와 기업에 대응하는 역량이나 힘을 갖추려면 자기계발이나 역량강화, 사람들과의 관계망 같은 것을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고 봐요. 좋은 교육이 있다고 하면 출근 안하고 자유롭게 거기 가서 배우거나 네트워크할 수 있어야죠. 자기가 하는 일은 어떤 한 분야지만 이 분야가 한국사회 전체에서 어떤 의미를 가질 것인가에 대해 활동가 한 사람 한 사람이 비전을 가질 수 있도록 지원해줘야죠. 공무원처럼 정해진 프로젝트만 해야 하는 것도 아니구요. 너무 오랫동안 시민단체의 리더들이 잘못하지 않았나 싶어요.
프로젝트에 길들여졌다는 생각도 많이 들어요. 물론 프로젝트 하면서 목표가 뭘까, 성과가 뭘까 고민했던 사람들은 고생스러웠지만 그 역량은 무시할 수 없긴 하죠. 그렇게 길들여졌지만그렇게 또 훈련받던 사람들의 역량에 대해서 저는 존경하거든요. 저도 프로젝트하면서 고통스러웠던 경험이 있어요. 옛날 간사 시절에 프로젝트를 3개까지 했어요. 그건 내 삶에 무슨 의미였으며 시민사회에 얼마나 기여했을까 고민하죠. 프로젝트는 사실 누군가에 대한 약속이잖아요. 공공기관과 조직에 대한 약속이니까 개인한테는 그게 얼마나 큰 부담이예요? 그렇게 길들여지는 것이 과연 시민사회의 한 주체를 만들어내는데 적절했을까? 좋은 단련의 시간이었을까? 시민사회가 활동가들에게 프로젝트 외에 운동과 사회의 비전에 대한 어떤 훈련의 기회를 줬을까? 그런 생각을 요즘 하죠.
왜 우리는 출퇴근을 해야 되냐? 왜 사무실로 출근하고 주 5일제를 해야 하는가, 왜 내가 사무실에 없으면 일을 안 한다고 생각하지? 자기는 어디에서건 일하고 있는데 말이죠. 그런 질문들이 사실 조직의 유연성에 대한 문제제기죠. 또 하나는 선생님께서도 의사결정구조 이야기할 때 총회에 대해서 잠깐 이야기하셨잖아요. 시민사회단체의 일반적인 조직 형태로 보면 회원 총회가 있고, 운영위원회나 이사회가 있고, 또 각 위원회가 있고, 그 밑에 사무처가 있어요. 근데 규정으로는 그렇게 되어 있는데 실제로는 잘 작동하지 않아요. 사무국이 다 하죠. 단체마다 상황과 조건이 다르기 때문에 무엇이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정해진 원칙대로 하던지, 이 구조가 맞지 않다고 하면 이런 구조를 없애던지 해야 하는데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상태로 계속 가고 있단 말이예요. 뭔가 정리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그나마 잘하고 있는 게 여성민우회 같아요. 여성민우회는 페미니스트들이 내년에 무엇을 할 것인가를 모여서 결정해요. 회원들이 모여서 자유롭게 이야기한 후에 내년에는 무엇을 해보자고 결정해요. 회원들의 잡담회나 이런 걸 통해서요. 예를 들면 ‘1인 비혼자들의 주거문제를 내년 주요 의제로 해보자’ 이런 식인 거죠. 회원이라고 해서 다 참석하는 건 아니지만 지금의 시민사회단체 상황은 회원들에게 뭔가를 물어보는, 그리고 회원들이 어떤 삶의 문제를 갖고 있는지 이런 거에 관심을 가질 수 없는 구조예요.
보통 사무국에서 결정해서 총회에 올려서 투표하게 하죠.
그 과정이나 그런 투표가 민주적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데 비영리민간단체나 사단법인일 경우에는 법에서 요구하는 형식이 있으니까 그 형식을 따른 거죠. 전 만약에 우리가 사단법인을 유지해야겠다, 후원도 받고 이러기 위해서 법적인 형식을 유지하겠다고 하면 그것대로 굉장히 심플하게 갈 수 있다고 봐요. 그리고 진짜 회원들이 움직이는 조직이나 회원들이 운동하는 조직으로 가야죠. 근데 이제 회원들에게 연락하는 것도 두려워하죠. 전화 작업하잖아요. 그러면 그 참에 회비를 끊는다는 경우가 생기거든요. 회원들을 만나는 걸 두려워해요. 회비 때문에 두려워서 회원들과 소통을 못해요. 기본적으로는 회원들이 우리가 운동을 하는데 중요한 파트너거나 함께 운동을 하는 주체로 생각한다면 우리 단체 운동과 맞지 않거나 함께 하지 않으면 탈퇴하셔도 됩니다라는 과감함 같은 게 있어야 하는데 그냥 후원으로 만족하죠. 계속 그냥 후원자로 있어주길 바라는 거죠.
지금 사무실 내부에서도 논의하기가 어려운데 회원까지 들어와서 이거하자 저거하자 했을 때 그걸 담을 수 있는 역량이 없는 거죠. 그래서 회원들의 목소리 듣는 거 자체를 지금의 조직 형태는 두려워하고 있다고 생각을 해요. 회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거기서 제안해서 합의한 것을 총회에서 결정하게 한다면 저는 총회가 더 빨라져야 된다고 생각해요. 올해 우리가 뭘 했는지에 대해 가감 없이 평가받고 내년에는 뭘 했으면 좋겠는지에 대해 의견을 듣고 결정하는 게 필요하죠. 그렇지 않은 정말 형식적인 총회라면 그냥 심플하게 가는 게 맞구요.
지원 프로젝트가 시민사회의 한 주체를 만들어내는데 적절했을까?
좋은 단련의 시간이었을까?
스스로에게 질문하게 해
프로젝트 문제나 방금 회원들한테 연락하기가 두렵다는 이야기도 결국 재정 문제와 연결되어 있는 것 같아요. 프로젝트도 하고 싶어서 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어쩔 수 없이 재정 상황 때문에 하는 경우도 있거든요. 결국 악순환의 반복이긴 한데요.
프로젝트는요. 활동가들이 프로젝트 때문에 너무 고통스러워하고 있어요. 그래서 저는 단체 상근일을 그만두고 지역운동하면서는 프로젝트 500만 원짜리 이상 안했어요. 꼭 필요한 것만 했어요. 예를 들어 사람들을 교육한다거나 재료비를 구입한다거나 하는 정도의 사업에 필요한 것만 했어요. 사실은 운동을 하려면 사람들을 만날 시간이 더 있어야 되거든요. 교육비나 이런 거는 돈 많이 안 필요해요. 그리고 프로젝트할 때 인건비 주는 것도 아니잖아요. 그래서 지금 있는 단체에도 프로젝트는 활동가 한 명 당 한 개 이상 못하게 해요. 사실 여성재단의 프로젝트 접수 마감이 내일까지인데 하지 않기로 했어요.
사실 프로젝트가 재정에 기여되지는 않아요. 물론 프로젝트를 하면 회의비를 줄 수 있긴 하죠. 근데 밥값이나 차값은 자기가 내고 단체에 와서 무료로 강의도 해주고 이래야 좀 운동이 살아나지 프로젝트로 회의비 주고, 밥 주고 이렇게만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단체들이 프로젝트의 덫에서 벗어나야 해요. 그리고 행정에서도 일을 맡기고 싶거나 시민사회와 정말 같이 하고 싶다고 하면 인건비를 줘서 하든가 해야지 자꾸 프로젝트로 행정이 할 일을 대리하게 하는 것은 단체 역량에 맞게 거부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최소한의 프로젝트만, 꼭 해야 될 사업 중에 돈이 필요한 사업만 프로젝트를 내야죠. 제가 대표니까 이렇게 말할 순 있지만 그래도 전 그래야 된다고 생각해요. 악순환이예요.
사실 프로젝트하면 회원이 안 늘어요. 기본적으로 단체가 재정 운영을 안정적으로 하려면 회원을 늘리거나 지지 그룹을 확대해야 되는데 프로젝트로는 절대로 지지 기반 확대 못해요. 단체의 재정자립도는 프로젝트를 많이 할수록 떨어진다니까요. 나는 이런 걸 누가 데이터로 조사 좀 해줬으면 좋겠어요. 프로젝트를 많이 하는 단체일수록 회원이 없어요. 인원수를 줄여서라도 프로젝트를 줄여야 해요. 본래의 일, 회원들하고 만나고 대화하고 같이 책 읽는, 이런 일들을 늘려야 해요.
왜 활동가한테는 정년퇴직이 없냐라는 문제제기를 하기도 합니다. 그 말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는데 하나는 단체 대표나 사무처장을 하고 그 다음에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이기도 하구요. 또 하나는 단체 대표를 10년, 20년씩 계속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부정적인 의미도 포함되어 있어요.
활동가라는 직업으로서의 정체성을 이야기하는 거 같은데요. 저는 활동가라는 말 별로 안 좋아해서요.
그럼 선생님은 스스로를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노동자라고 생각해요. NGO활동가를 무엇으로 정의하냐라고 했을 때, 활동가를 지칭하는 명칭이 120개가 있다고 해요. 코디네이터나 촉진자부터 시작해서 시민사회에서 만든 명칭도 있고 행정의 요구에 의해서 만든 명칭도 있고요. 사실 중간지원조직으로서 행정의 요구를 수행하고 월급 받는 사람들도 NGO활동가라고 하잖아요. 그런 부분부터 생태안내자라고 하는 직업까지 굉장히 다양하죠.
저는 NGO활동가를 사회 변화를 위한 어떤 행위를 하는 노동자라고 생각해요. 근데 활동가라고 하면 노동법 적용을 받지 않는 고상한 느낌을 주는 거에요. 최근에 <사단법인 시민>에서 청소년을 위한 NGO가이드북을 만들었는데요. 90년대에는 NGO활동가를 간사라고 불렀어요. 근데 그게 일본에서 온 말이고 주요 단체들에서 교수와 같은 전문가들이 의사결정을 하고 간사는 뒷수발하는 비주체적인 느낌을 많이 줬잖아요. 그래서 요즘은 간사라는 말을 안 쓰거든요. 그리고 나서 활동가로 대체된 거예요. 그 가이드북에서 활동가를 NGO활동을 직업적으로,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이라고 정의를 내렸더라구요. 활동가는 우리사회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 사람을 의미할까요? 전업으로 하는 사람만 활동가인가? 비전업 활동가나 적극적인 시민참여자는 뭐라고 해야 할까요? 그럼 너무 스펙트럼이 넓어지죠.
일단 직업인으로서 활동가라는 걸 받아들인다는 전제 아래 말씀드리면 ‘사회 변화를 위해 어떤 일을 할 것인가를 끊임없이 내가 판단하고, 조직적인 형태로 운동하는 사람’을 활동가라고 생각해요. 사회와 사람을 변화시키는 특성을 갖고 있는 노동자인거죠. 그런데 노동이라고 말하면 임금이나 노동조건이 더 부각되는 것 같아요. 활동을 노동으로 규정하면 마치 대표나 처장에 고용된 저임금 돌봄노동자로서 노동권을 지켜야할 것 같고 저는 무능한 악덕 고용주가 되긴합니다만 저는 제 활동을 노동으로 생각하고 노동자로서 윤리와 책임을 가져야 한다고 스스로 다짐하고 있습니다. 7-8년 전인 것 같은데 <초록상상> 초기에 상근자가 나 밖에 없다고 1인 NGO활동가로 언론에서 나를 소개한 기사가 나간 적이 있어요. 솔직히 불쾌하더라구요. 나는 1인 NGO 싫어하거든요. 조직적인 운동을 좋아하는 옛날 스타일이예요.
NGO활동가는 계속 변화되는 상황에 맞춰서 어떤 운동이 이 사회에 필요한지를 파악하고, 그것을 자기 삶하고 일치시켜서 해나가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죽기 전까지는 활동가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은퇴도 없다고 생각하구요. 그래도 굳이 은퇴할 시점을 따지자면 저도 지금 50살쯤 되니까요. 이 업계에서 은퇴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시점은 사람이 싫어 질 때, 다른 사람과 만나서 뭔가를 도모하는 일이 싫어질 때, 사람을 만나는 게 짜증나고 귀찮을 때, 다른 사람을 설득하거나 하는 일들이 더 이상 하고 싶어지지 않을 때는 내가 운동을 해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만둘 거고, 두 번째로는 사회 변화를 더 이상 원하지 않을 때이지 않을까요?
사회 변화를 위해 어떤 일을 할 것인가를 끊임없이 내가 판단하고,
조직적인 형태로 운동하는 사람이 활동가
선생님에게 그런 시기가 있을까요?
저는 아직까지 한국사회 시민사회운동이 무르익었다고 생각하지는 않거든요. 지금이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하고, 이 상황이 몇 년 동안 우리 사회를 움직이는 동력이 될 수 있다고 보지만 아직 기업이나 행정에 비해 시민사회 역량은 턱없이 부족하죠. 기업이나 행정은 역사와 조직을 가지고 있잖아요. 시민사회의 역사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프로젝트 문제라던가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해 아직 답을 못 내리고 있는 거예요. 풀뿌리운동은 더 그렇구요.
풀뿌리운동에서 어떻게 주민들이 참여하는 조직을 만들 것인가는 수십 년에 걸친 한 사회의 과제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제가 이제 겨우 15년쯤 했는데 은퇴 이야기를 하기는 좀 그래요. 한 사회에서 50대는 가장 왕성하게 활동하는 사람이잖아요. 대통령은 60대 이상이 하잖아요. 어떻게 보면 국가 운영도 저런 노땅들이 계속 하고 있는데 NGO에서는 왜 벌써 은퇴 이야기가 나오는지.. 50대만 되면 마치 은퇴해야 될 거 같고요. 문제는 한 조직의 대표를 계속 하는 문제 등에 있는 거겠죠. 후배들한테 빨리 물려주고 다시 적합한 자기의 삶과 경험에 맞는 일들을 찾아야죠.
제가 질문했던 활동가 개념은 아까 말씀하신 직업인으로서 월급을 받고 있는 활동가를 의미한 거구요.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걸로 보면 활동가의 범위가 굉장히 넓어지잖아요.
단체들은 임기가 있잖아요. 그러니까 일반 시민사회단체와 같은 NGO에서는 임기를 마치면 다른 형태로 활동을 해야죠. 왜냐면 후배들이 계속 활동력 있게 정부를 견제할 수 있는 적당한 시기가 40대쯤이에요. 50대부터는 약간 여유 있게 보기도 하고 타협도 하게 되거든요. 그러면 후방에 나가서 서포트하는 형태의 조직을 하는 게 좋죠.
선생님이 생각하기에 활동가로서의 전문성, 자질, 역량이라고 하는 건 뭘까요? 직업인으로서 월급 받고 일하는 활동가뿐만 아니라 일상적으로 생활 속에서 접할 수 있는 수많은 활동가들까지 포함해서요.
직업적 활동가라고 하면 NGO의 역사적 형성 과정에서 떠오르는 조직들이 있죠? 시민단체, 여성단체, 환경단체 하면 떠오르는 단체들이 있잖아요. 그리고 이런 단체에 적합한 활동가가 있어요. 근데 그런 단체하고 풀뿌리 단체하고는 활동가의 자격조건이나 필요 역량이 다르다고 봐요. 중앙단체는 국가적인 사안을 전체적으로 볼 수 있는 사고와 관심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추상적인 사고 능력뿐만 아니라 정책적으로 사고하는 능력, 연구능력, 실무능력 등이 있어야죠. 풀뿌리 활동가는 커뮤니케이션하는 능력과 그걸 피곤해하지 않을 인내심이 필요하죠. 가끔 우리가 활동가를 뽑고 나면 자기는 사람들을 만나는 게 너무 싫다고 말하는 경우가 있어요. 그럼 ‘너는 이 단체에 왜 왔니? 작가를 하지’라는 생각이 들어요. 시민사회운동이라고 하는 건 사람들과 함께 일하며 사회를 변화시키는 건데 그것조차도 모르고 오는 것 같아서요. 사람에 대한 애정이 있어야죠. 인권이라던가 이런 것에 대한 기본 인식이 없으면 저는 NGO활동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요.
풀뿌리운동은 기본적으로 커뮤니케이션 능력도 있어야 하고, 사람들을 싫어하지 않고 피곤해하지 않아야죠. 사람들하고 좋아서 만나는 게 아니더라도 사람들 이야기에 귀 기울여 잘 듣고 다양한 사람들 만날 수 있어야죠. 근데 그런 일들은 누구에게나 피곤한 일이예요. 누구는 그렇게 맨날 사람들 만나서 이야기 듣는 게 좋겠어요? 그렇지만 힘들어도 그걸 자기 일이라고 생각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게 최우선이라고 생각해요. 또 사람들을 만나고 조직하는 게 풀뿌리 활동가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긴 한데 사회에 대한 비전 이런 것 없이 실무 능력만 좋다고 되는 것도 아니구요.
풀뿌리운동하시는 어떤 분이 언제가부터 활동가들이 우리는 어떤 사회에 살고자 하는 지에 대한 질문을 안 하기 시작했다고 해요. 개인적으로 생각은 하더라도 그런 질문과 활동이 연결되지 않는다는 말이겠죠. 풀뿌리 활동이라는 게 밖으로 드러나는 일이 아니어서 끈기가 있어야 하잖아요. 선생님도 지역에서 계속 사람들 만나는 게 지칠 때가 있으실 것 같은데 그런 건 어떻게 극복해오셨나요?
지칠 때요? 저는 다행히 사람만나는 걸 지쳐하지는 않아요. 일하는 건 다 사람 만나는 거죠. 아침 회의, 점심 회의, 그거 다 사람만나는 거잖아요. 다양한 종류의 사람을 만나죠. 1대1로 만나서 인생 이야기, 생활 이야기 진지하게 하는 게 좋아해요. 그런 피로가 누적되면 독서를 하기도 하고 일기를 거의 매일 써요. 잠깐 잠깐이라도 돌아보는 시간, 개인적으로 글 쓰고 정리하는 시간을 통해서 재충전을 하는 거 같아요.
풀뿌리 활동가는 커뮤니케이션하는 능력과
그걸 피곤해하지 않을 인내심이 필요하죠.
쉽게 따라 할 수 없는 방법인데요. 왜 그 질문을 드리냐면 활동가가 어떻게 보면 사회를 돌보는 일을 하는 사람인데 왜 우린 스스로를 돌보지 못하는 상황에 직면했나라는 이야기가 나와서요. 그리고 제가 최근에 어떤 재단하고 지역 활동가들 인터뷰를 하고 있는데요. 감정노동이 너무 심해서 스트레스 받는다는 이야기를 하시더라구요. 한 조직에서 15년, 20년 일하면서 항상 같은 사람들을 술자리에서도 만나고, 회의에서도 만나고, 일도 같이 하고 이러다보니까 감정적인 스트레스가 너무 심하다는 거예요. 그래서 지역의 활동가들에게는 쉼프로그램에 대한 요구가 굉장히 많대요. 교육도 필요 없고 제발 좀 쉴 수 있게 해달라고요. 그래서 개인적인 스트레스나 어려운 상황들을 어떻게 해결하시는지 여쭤봤던 거예요.
저는 우리의 운동이 활동가들을 대할 때 개인의 삶에 관심을 기울여 사적인 얘기도 많이 귀담아 들었으면 해요. 그렇게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운동을 지속할 수도 없는데 쉴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요. 만약 내가 공무원이어서 민원 창구에서 계속 사람들을 만난다고 하면 진짜 힘들 거 같아요. 복지 현장도 마찬가지구요. 낯선 사람들 와서 계속 힘든 말 하다가 갈 거 아니예요. 활동가나 사람들의 삶을 통해 배움이 깊어가는 것도 있겠지만 피로감이 쌓일 때 쉴 수 있도록 서로 보살피는 것도 큰 과제겠죠. 저 역시 별다른 방법없이 동네에 엄청 친구가 많다 이렇게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중입니다.
최근 N명의 사회 혁신가 시국선언이라고 들어보셨는지 모르겠네요. 주로 소셜 벤처나 사회적 기업 등 사회 변화를 위한 영리 활동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주축이 돼서 시국선언을 준비하는 과정을 공유했어요. 시국선언만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그 시국선언 이후에 모여서 어떤 토론을 계속 해나갈 것인지 이야기도하구요. 과정 자체가 다른 선언들과 좀 다르긴 했는데 페이스북에 서명 요청글이 올라왔길래 서명을 하려고 클릭을 했는데 문든 이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내가 사회혁신가인가?’ 이 질문이 딱 들어오면서부터 쉽게 참여를 못하겠더라구요. 그 선언에는 사실 비영리단체 사람들도 많이 참여했는데 저는 약간 망설여졌어요. 아마도 사회혁신가라고 하는 명칭 때문에 그런 거 같긴 해요. 제가 처음 운동을 시작할 때는 시민운동가라는 말을 썼거든요. 근데 요즘은 시민운동가라는 말도 잘 안 쓰고 시민운동가 시국선언도 없잖아요. 만약에 누군가 시민운동가 시국선언에 참여해달라고 하면 나는 자신 있게 서명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도 들더라구요. 명칭이 다르듯이 다들 정체성이 다른 거예요. 누구는 마을 활동가, 누구는 중간지원조직 활동가, 누구는 풀뿌리 활동가, 여성운동가, 환경운동가, 협동조합에서 일하는 사람도 있고, 사회적 기업에 일하는 사람도 있고, 그냥 소셜 벤처라고 하는 기업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있죠. 근데 다들 스스로를 사회 변화를 위해서 일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명칭은 다르지만 최근 다양한 그룹들이 생겨난 거죠. 그만큼 조직 형태도 다양해졌구요. 형태와 방법은 다르지만 어쨌든 사회변화를 위해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인데 이 사람들 간의 경계라고 할까요? 이 부분을 어떻게 활성화시키고 서로 교류하게 할까요? 특히나 지금 20대나 30대 초반의 활동가들은 전통적인 풀뿌리 단체나 시민사회단체보다 사회적 기업이나 중간지원조직 같은 곳에서 시작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이 분들에게는 시민운동가들이 만드는 운동의 방법이나 결과물이 구려보일 수 있어요. 사회적 경제나 이런 영역은 좀 더 새로워 보이고 하니까 그쪽으로 가는 거겠죠. 서울시에는 여러 행정부서가 있잖아요. 부서의 사업들 중에 마을공동체사업이 있어요. 그 다음에 찾아가는 동주민센터 사업이 있고, 사회적 경제 사업도 있고, 문화 관련된 사업도 있죠. 이런 것들이 결국은 거버넌스의 틀인데 행정은 우리 사회의 어떤 방향을 놓고 업무분장을 한 거예요. 근데 사실은 자기네들끼리 행정 영역에서 실패를 하니까 할 수 없이 시민들하고 계속 어떤 접점을 마련해서 그 영역을 확대하려고 하는거죠. 이제 겨우 마을공동체 사업에만 조금 주민들이 참여하는 상황인데 지역마다 어떻게 협력할 것인가는 구성원들의 역량과 요구에 따라 달라질 테구요. 서로 협력해야만 좋은 지역사회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되면 협력이 가능해지겠죠.
저는 그래서 이 경계를 억지로 네트워크 한다고 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구요. 각 단위의 성장과 수준에 따라서 자연스럽게 연결될 거라고 봐요. 점차 아귀가 맞춰지겠죠. 아니면 공동 협력의 과정으로 가야만 퍼즐이 맞춰지지 않을까요? 시간이필요해요. 지금은 억지로 서로 연계하지 말고 서로 간에 신뢰를 쌓는 걸 우선해야 협력의 계기가 마련될 거예요.
네, 마지막 질문입니다. 앞으로 10년 동안 어떤 일에 집중하면서 살고 싶으세요?
제가 굉장히 꼴통인 게 아까 조직적인 운동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랬잖아요. 가끔 보면 시민사회 리더들이 앞으로 뭘 하고 싶냐고 물었을 때 뭘 하고 싶다고 말하는 거, 전 그런 것에 대해서 좀 불만이예요. 뭘 하고 싶다라는 건 자기가 몸 담은 조직이 결정할 일이죠. 내가 만약에 여성환경연대에 계속 있다고 하면 여성환경연대의 사업결정은 조직원들이 하는 거잖아요. 어떻게 대표가 미리 자기의 10년을 따로 세워놔요. 예를 들면 여성환경연대는 해마다 총회를 통해서 조직의 역량이나 상황에 따라서 사업계획을 정하잖아요. 그래서 진짜 소통하는 리더 내지는 운동가라고 하면 자기 조직의 역사적(^^) 사명에 따라야죠.
저는 일단 기본적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는 과도하게 잡지 않고 있어요. 지금 최순실이 이렇게 될지 어떻게 알았겠어요. 상황은 바뀌는 거죠. 제가 원래 올해와 내년에 하려고 했던 것이 바뀌고 있는 거죠. 저는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지역의 조직운동 상황에 따라 그때 그때 부응하는 일,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일들을 하겠다는 생각이예요. 10년 뒤 계획은 안 세워요. 그렇지만 이 단체에서 당분간 하고 싶은 일은 첫째는 여성환경연대를 우리 사회에 에코페미니즘을 확산하는 곳으로 만드는 거예요. 여성환경연대 초기에는 문순홍 선생님이 에코페미니즘에 대한 담론을 지원해주셨는데 암으로 돌아가셨거든요. 선생님이 돌아가시고 나서 엄청 타격이 큰 거예요. 그런 담론이 없으면 단체가 활동하는데 취약해요. 그런 기본적인 사상적 뒷받침이 저는 시민사회에 있어야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환경운동도 광범위하게 생태주의가 있어서 그 기반에서 운동을 하고, 여성운동도 여성주의운동과 여성학에 기반해서 운동이 되는 거거든요. 활동가가 이론도 겸하고 이럴 수 없거든요.
사회적으로는 하나의 운동세력이 성장하기 위한 이론적 뒷받침과 연구가 같이 가야 된다고 생각해요. 제가 초창기부터 여성환경연대에 있었는데 담론이 뒷받침되지 않은 것에 대한 고통이 너무 컸어요. 매번 해마다 사업계획이 바뀌고, 담론이 뭐고 우리의 목표가 뭐고 지향이 뭔가에 대한 부족함과 갈망이 너무 커서 그게 제 뼈에 사무쳐요. 한국의 에코페미니즘은 어떤 운동을 해야 하는지 한국적 에코페미니즘이 뭔지 정리하는 게여성환경연대의 과제면서 제 과제이기도 해요. 에코페미니즘 플랫폼을 만들고 에코페미니즘의 지지 기반을 확산해서 연구 작업도 장기적으로 만들었으면 좋겠고, 그런 조건을 만들어가는 게 제 과제죠.
또 하나는 아무리 담론이 있어도 중랑구라는 지역사회에서 운동하는 게 이제 겨우 시작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지역운동 10년 했지만 이제 겨우 사람들이 200명 모였어요. 42만명 중에 200명이면 얼마나 적어요. 서울이라는 곳의 한 지역에서 지역의 발전 전망을 어떻게 가질 것인지, 지방 자치를 확립하고, 각 분야별로 그런 논의를 할 수 있는 리더 그룹을 만드는 것이 마을의 과제구요. 그래서 저는 지금 청소년 까페를 하고 있지만, 생애 주기별로 청소년 조직부터 청년 조직, 중/장년 조직, 학교조직, 교육운동 조직, 이런 조직들을 동료들과 함께 만들어 나가는 게 제 장기적인 과제에요. <끝>
_ 조아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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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활동하시면서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이나 고민하고 있는 게 있으신가요?
가장 많이 하는 고민은 시민사회단체 내부에서 왜 동료들끼리의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갈등이 생길까? 아마도 운동하는 방식이나 속도에 대한 차이겠죠. 세대 간의 갈등에 대한 질문도 있던데 그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서 조직을 좀 더 원래 목적에 가깝게 운영할까, 뭐 그런 고민들이죠. NPO나 NGO는 사회 변화의 목적이 있잖아요. 영리행위를 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면 사회 변화를 추구하는 조직에서 왜 내적 갈등이 자꾸 생길까, 어떻게 하면 좀 더 협력해서 일을 잘 할 수 있을까, 갈등을 무마하는 게 아니라 함께 성장하는 방향으로 상생할 수는 없을까라는 고민들을 하게 되네요.
고민 해결의 단서가 좀 잡히세요?
쉽게 해결되지는 않을 거 같구요. 다양한 시도와 노력을 해봐야죠. 두 번째 고민은 지금 시국이 최순실과 박근혜 때문에 생긴 건데 과연 이번 기회에 우리 시민사회가 어느 정도까지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시민사회운동이라는 지금의 NGO 형태가 사실 87년에 생긴 것이란 말이예요. 박근혜-최순실 사태로 광장에 나온 사람들은 보다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하고 있어요. 근데 지금까지 NGO는 단체별로, 영역별로 분화되면서 삶의 여러 복합적인 문제 보다는 각 부문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했는데 이번 기회에 진짜 주민들이 참여하거나 주민들이 권력을 갖는 단계까지 실질적으로 갈 수 있을까? 누가 새로운 사회의 주도 세력이 될 수 있을까? 노동계도 아닌 거 같고, 정당도 아닌 거 같고, 시민사회단체들도 아닌 거 같다고 하는데 그러면 새로운 주체가 누구이고, 그들은 어떻게 새로운 사회를 만들 수 있을까? 그래서 제가 지금 하고 있는 운동은 뭘까? 역량을 갖고 있거나 비전이 있는 걸까? 그런 질문을 많이 해요. 자기 반성도 많이 하구요.
다른 분과의 인터뷰에서도 이야기했던 내용인데 지금 광장에서 시민사회단체의 역할은 뭘까, 활동가는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한 분은 과거와 달리 이미 시민들이 앞서가고 있기 때문에 선두에 서거나 깃발을 드는 것 자체가 소용이 없는 일이라고 하셨어요. 활동가들은 판을 깔아주는 정도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도 하셨구요. 방금 말씀하신 내용과 연관시켜서 광장에서 시민사회단체나 활동가는 무슨 역할을 하는 게 좋을까요?
서울시에 25개 구마다 마을넷이 있어요. 제가 중랑구 대표여서 회의에 참여하는데 지난 달 마을넷 대표자회의에서 시국선언을 발표했어요. 광장은 이미 존재하는 것이고 다양한 사회 세력들이 광장에 나와서 목소리를 내고 있잖아요. 거기에 맞춰서 마을넷도 시국선언을 했고 지난주 금요일에 시국선언문이 한겨레신문 광고로 나갔어요. 거기에서 강조된 것이 풀뿌리 공론장이예요. 공론장 이야기를 너무 많이 하고는 있지만 저는 조직화가 되지 않은 건 운동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옛날식 운동관을 갖는 사람이예요. 자유로운 개인을 믿지 않아요.
아무리 정치적 이슈가 되고 국회의원을 바꾸더라도 지역에서는 우리의 삶이 있고 사람들과의 관계가 있잖아요. 일상의 관계나 지역의 관계 속에서 사람들의 대화의 수준 내지는 상호작용의 수준이 달라지지 않고서는 광장이나 정치체제만 바꿔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의외로 광장에서 행동하는 것은 쉽다고 생각하는데요. 저는 광장에서 발언하고 집회를 참가하는 건 쉽지만 자기가 생활하는 지역이나 자기가 속한 조직에서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것은 어렵다고 보거든요. 저는 거기까지 나아가야 된다고 보기 때문에 지역에서 조직운동을 몇 년에 걸쳐서시민단체나 활동가가 열심히 해야된다고 생각을 하고 있어요. 다만 그 방법에 대해서는 요즘 고민이예요. 지역 주민들이 어떻게 정치적 주체로 설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어요.
지역의 주민들을 조직하고 정치적 주체로 서게 하는 것은 사실 오래전부터 있어 왔던 운동의 큰 방향이잖아요. 근데 지금 말씀하신 고민은 시민사회단체가 한동안 그런 조직화운동과는 동떨어진 흐름 속에 있었고 사업에만 빠져 있었기 때문에 지금부터 다시 밑바닥부터 재건해보자, 관계의 복원이나 새로운 관계 맺기를 시작해보자는 생각을 하고 계신 거네요.
그렇죠. 저는 지역에서 활동할 때 사업 중심으로 하지 않으려고 노력을 많이 했어요. 그게 제가 살고 있는 지역의 차이인데요. 제가 아마 남성이었다면 서울시의 마을공동체 지원정책과 자원이 나올 때 좀 더 공격적으로 끌어 와서 일을 했을 텐데 그렇게 하지는 않았거든요. 지역에서 좀 느리긴 하지만 운동 중심의 관계망, 돈이 없어도 맺어지는 관계망에 집중하려고 노력했어요. 이제 그런 관계망들이 서서히 생기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동안 지역에서 정치적인 발언이나 생각을 하는 분들이 사실 많지는 않았는데 이번에 중랑구에도 ‘중랑촛불행동’이 만들어졌어요. 각 정당과 마을넷에서 활동하는 다양한 단체와 모임에 속한 사람들이 한 30명이 모여 있어요. 카톡방도 만들어서 새로운 시도를 해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광장에서 발언하고 집회를 참가하는 건 쉽지만
자기가 생활하는 지역이나 자기가 속한 조직에서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것은 어려워
과거에 선생님이 지역에서 주민들을 조직하고 관계를 만들어내는 방식들이 있었죠? 그 시기가 어느 정도일지는 모르지만 그 시기의 방식과 지금 방식에 차이가 있나요?
크게 다르진 않을 거예요. 제가 지역에서 일한지 10년 정도 됐거든요. 그때도 지금처럼 한 사람 한 사람과 관계 맺고 신뢰 쌓는 방식으로 했어요. 그렇게 한 10년 활동을 하니까 지역에서 돈을 주든 안주든 활동하는 사람들이 좀 생겼어요. 그렇게 활동하시는 분들이 지금은 자기 목소리를 조금 더 내고 싶다거나 다른 전환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해요. 근데 그 다음 단계를 서로 잘 모르기 때문에 보다 많은 주민들과 소통하는 방법들을 교육이나 모임을 통해 시도해보려고 준비중이예요.
말씀하신 내용 중에 공감이 되는 게 광장에서 민주주의를 이야기하는 것은 쉬워도 실제 내가 살고 있는 지역과 일하고 있는 조직 안에서는 그런 이야기를 하기 쉽지 않다는 거예요. 그게 어떻게 보면 처음에 이야기하신 갈등 문제하고도 관련 있는 것 같은데요. 조직 내의 민주주의에 대해 많이 이야기하고 있잖아요. 조직은 수평적이고 민주적으로 운영되어야 한다고 보통 말하는데 여기서 민주적이라는 말에 담겨져 있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민주주의를 이야기할 때 방법론으로 이야기하는 경우가 있잖아요. 민주주의에 관한 어떤 기술, 이런 것도 사실 서구유럽식 기법들이 많죠. 1인 1표제도 마찬가지구요.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방법이죠. 저는 민주주의는 매우 피곤하고 고단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풀뿌리 조직에서 민주주의를 이야기할 때도 모든 사람이 골고루 이야기할 기회, 내지는 만장일치제와 같은 방법이 아니라 그 조직의 목표나 가치에 대해 많이 생각하는 편이예요. 우리가 생각하는 민주주의가 똑같이 1/N로 결정하고 1/N로 책임을 나누는 문제는 아니잖아요.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하는 가치가 있어요. 예를 들어 사회적 약자가 좀 더 존중받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던지, 주민자치가 제대로 되기를 바란다던지, 그런 문제죠.
민주주의는 체험이라고 생각해요. 지역에서 애들이 와서 노는 청소년 까페를 하고 있어요. 아줌마들이 운영하면 애들이 안 온다고 하는 분도 있던데 지금 50대 여성들이 그 까페를 운영하고 있거든요. 굉장히 열심히 하고 있어요. 지난 12일 촛불집회 때 제가 카페 담당이었는데 집회에 너무 나가고 싶어서 문 닫은 때를 빼고는 지금까지 한 번도 문을 닫은 적이 없어요.
모든 사람들은 자기 삶에서 공익성을 어느 정도 갖고 있어요. 제가 주로 만나는 사람들이 여성이거든요. 여성은 어떻게 보면 사회적 존재로서 역할을 인정받아본 적이 별로 없거든요. 엄마라는 존재이거나 일을 하더라도 대부분 비정규직이죠. 열악한 노동 환경에 처해있기 때문에 노동자로서 인정을 받아본 적도 없어요. 여성노동은 부업이거나 생계 보조수단일 뿐이죠. 많은 여성이 엄마나 아내 이외의 다른 사회적 정체성을 가져본 적이 별로 없단 말이예요.
우리 사회는 개인과 국가 사이, 가족 말고 사회적 문제를 논의하는 중간 단계가 없이 개개인이 다 국가와 마주해요. 그런 분들에게 선거 때 투표하는 것 말고 민주주의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내가 살고 있는 이 사회에서 자기 판단과 결정으로 사회 속에서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사회적 결정 과정에 참여하는 경험 없이 민주주의를 목숨처럼 지킬 수 있을까요? 우리 사회가 운영되는 구석 구석에서 여성들이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데 실제로는 가치가 평가되지 않고 마치 개인적인 일로 치부되면 여성들은 민주주의를 말하지 않아요.
여성들이 계모임 할 때 민주주의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지만 실제로는 굉장히 민주적인 운영 원리를 갖고 있어요. 한 사람이 독단적으로 운영되는 여성 모임은 잘 안 되거든요. 여성들은 그런 거 싫어해요. 공적인 조직에서 위계적인 경험을 해보지 않은 분들이 대부분이잖아요. 위계와 상부의 지시에 따라 결정하는 방식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민주적일 수밖에 없어요. 계모임을 하더라도 여러 계원들의 이야기를 다 들은 다음에 밥은 어디서 먹을 것이며, 곗돈을 어떻게 쓸 것인가를 결정해요. 이런 경험이 있기 때문에 여성들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민주주의 훈련이 되어 있다고 생각해요. 타인의 의견을 존중해요. 그 돌봄의 특성 때문에요.
그런데 그런 경험이 사회와 연결되지 않기 때문에, 그리고 정치가 결국은 권력을 배분하는 힘이라면 사회의 중요한 자원에 대한 결정권을 가져보지 못했기 때문에 민주주의가 굉장히 형식적인 것으로 다가오죠. 그래서 저는 민주적인 조직 운영을 이야기하거나 민주주의 사회를 지향해야 된다고 했을 때 여성들이 사회 문제에 관여하고 참여하는 경험을 하고 그 과정에서 뭔가가 변했다는 것을 느끼는 것 자체가 민주주의 교육이라고 생각해요.
자기 판단과 결정으로 사회 속에서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사회적 결정 과정에 참여하는 경험 없이
민주주의를 목숨처럼 지킬 수 있을까요?
여성의 입장을 말씀하셨지만 일반적인 이야기이기도 하네요. 이야기를 듣다보니까 문득 떠오르는 게 있는데요. 광장에서 민주주의는 일종의 익명성에 기반한 민주주의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러니까 이 광장에서는 아는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익명의 대중 속에서 이야기하는 거예요. 근데 지역에서는 다 관계가 있는 사람들이잖아요. 그 사람들을 일로만 만나는 게 아니라 생활 속에서 만나구요. 그런 차이 때문에 광장에서 민주주의는 쉬워도 생활 민주주의나 조직 내 민주주의는 어렵다고 할 수 있겠네요.
말씀하신대로 광장의 민주주의는 우리가 언론이나 교과서에서 배워왔던 일반적인 민주주의죠. 근데 지역으로 갔을 때는 민주적인가, 가족관계 내에서 나와 남편이 민주적인가 그런 문제에 만나게 되요. 가족 관계에서 민주주의, 지역 모임에서의 민주주의, 지역의 예산을 결정하는 곳에서의 민주주의, 직장에서의 민주주의와 연결되지 않으면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는 하나도 발전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자기가 속한 모든 조직에서 철저한 혁명이 이루어지지 않고서는 안 되는데 아마도 광장의 목소리가 그런 공간으로까지 번져가겠죠? 성찰과 함께 조직 문화의 변화가 있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근데 지역의 풀뿌리 단체는 여성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일반적으로는 민주주의적이라고 볼 수 있어요. 오래된 사람의 권위 같은 게 많지도 않고요. 사실 저조한 참여로 힘들지 누가 전횡을 일삼아서 하지는 않거든요. 그럴 만한 자원이 있는 것도 아니구요.
지금 온 국민이 헌법 공부를 하고 있잖아요. 탄핵 절차에 대해서도 공부하고 다음 정부가 해야 할 일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구요. 저는 신자유주의의 특징이 사람들을 끊임없이 개인화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소비자로 머무르게 하는 거죠. 풀뿌리운동이 지역에서 싸워야 될 민주주의는 이런 거예요. 한번 조직이 정한 것을 관성적으로 반복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총회와 월례 회의도 해야 되죠. 기존에 했던 사업, 회원 사업도 계속 해야죠. 우리가 가정에서 삼시세끼 밥을 먹는다고 가족 간의 애정이 확인되는 게 아닌 것처럼 풀뿌리 조직도 일상적인 일들을 멈추어야 할 때가 있어요.
국가는 이렇게 운영해도 되는 건지, 정치와 선거는 지금 이대로가 좋은지, 일상의 사고에 들어오지 않는 큰 문제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때가 필요해요. 우리 조직의 운영 원칙이나 발생하는 문제들이 국가 운영과 어떤 연결고리가 있는지, 지역에서는 나와 국가와 정치와 정부가 어떤 관계에 있는지를 계속 생각하는 계기를 만들 필요가 있어요.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다시 운동을 재구성하는 계기를 만들어야죠. 제가 2001년부터 여성환경연대에서 활동을 했는데요. 90년대 이후에 단체들이 분야별로 다 흩어졌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여성운동, 환경운동, 인권운동 등으로 다 나뉘고. 인권운동과 여성운동은 다른가요? 너무 웃기죠?
요즘은 활동가대회도 따로 하는 것 같아요. 여성활동가대회, 인권활동가대회, 환경활동가대회 등등.
그러니까요. 사실 단체 대부분이 조직 규모가 작아요. 그래서 조직이 이 복잡한 한국 사회의 모든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문제에 대해 전체적으로 사고하기가 어려운 거예요. 활동가 개인은 더 그렇죠. 활동가 개개인이 전체적으로 사고를 못하는데 조직이 어떻게 전체적으로 사고를 할 수 있겠어요? 너무 개별화되어 있어요. 전체 시민사회도 한국 사회의 하나의 부속품에 불과한데 그 시민사회도 너무 쪼개져 있어요. 사회에 대한 총체적인 사고를 참여연대가 해요? 환경연합이 해요? 어떤 단체도 주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풀뿌리 정치에 대해서도 풀뿌리 단체들은 자기 이슈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러다 보니까 풀뿌리 운동은 마치 지역에서 소모임 만들고 복지 사업하는 게 일이라고 생각해요. 소모임 하나 만드는데도 몇 년이 걸리고 그걸 유지하면서 운영하고 사람들하고 소통하고 신뢰를 쌓는데도 몇 년이 걸리는데 그렇게 해서 언제 이 세상을 바꿀 수 있지?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하는 거예요.
부엌에서 세계를 본다라는 말이 맞다면 자기가 발 딛고 서 있는 곳에서 우리 사회를 전체적으로 볼 수 있는 계기가 필요해요. 지금은 미디어가 발달해서 정보의 문턱도 많이 낮아지고 커뮤니케이션 기술도 많이 발전했잖아요. 저는 그런 변화들이 시민 개개인에게 통합적 사고를 가능하게 해서 지역에서 내가 무엇을 할 것인가로 연결되는 전환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혁명의 시기가 시작되었다고 생각해요. 시민들의 의식이 한 번 더 업그레이드되는 계기가 왔다고 보는 게 촛불 현상이 시민사회 조직을 과소평가하고 개인을 강조했다면 저는 풀뿌리 조직들이 그런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주민들을 어떤 식으로든 네트워크로 조직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가정에서 삼시세끼 밥을 먹는다고
가족 간의 애정이 확인되는 게 아닌 것처럼
풀뿌리 조직도 일상적인 일들을 멈추어야 할 때가 있어요.
그런 시기가 왔다고 판단을 하시는 건데요. 사실은 2002년도 촛불집회 때도 시민사회운동의 역할 변화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고, 그 이야기는 2008년도 촛불 시기에도 다시 나왔습니다. 그리고 지금 2016년이란 말이에요. 그 당시에 가졌던 생각과 지금 시기의 생각에 달라진 점이 있으니까 지금이 때라고 생각하셨을 거 같은데요. 그 차이는 뭔가요? 단지 8년이라는 시간이 주는 변화? 아니면 이렇게 바닥까지 허물어지고 있는 상황을 더 직접적으로 경험해서일까요? 아니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계기로 만들어진 사회적 의제가 달라서일까요?
저는 2002년과 2008년도에 사실 임팩트가 크진 않았던 거 같아요. 2002년은 그냥 월드컵이 떠오르고 2008년은 미디어 환경이 변했구나와 개인의 발견 정도의 느낌이었어요. 2008년하고 2016년 사이에 중요한 변곡점이 있었다고 생각해요. 세월호요. 저는 세월호가 많은 사람들에게 국가의 본질에 대한 인식을 일깨워준 일이었다고 생각해요. 세월호 문제를 3년간 끌어오고 그걸 기억하겠다고 한 사람들이 있잖아요. 국가가 총체적으로 부실하다는 사고를 할 수 있었던 계기였다고 봐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세월호의 연장선 상에 있는 거고 대통령의 7시간 문제가 계속 나오는 것은 ‘우리에게 국가란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하고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2008년 금융위기가 있었죠. 사실 그건 IMF때부터 시작했다고 보는데 박근혜가 IMF 직후에 정치권으로 나왔어요. 당시 한나라당에 입당하고 보궐선거에서 압도적인 표로 당선되었죠. 만약 김영삼 정부가 IMF사태를 맞지 않고 한 정권만 더 90년대 식의 경제 성장을 했더라면 어땠을까요? 사실 90년대는 서태지와 아이들로부터 시작해서 씨네21 등 기억나는 게 있는데 참 문화적으로 자유로웠어요. 그 세대들이 한 세대만 더 있었더라면 박근혜 같은 사람은 받아들이지 않았을 텐데 IMF사태가 너무나 쉽게 박정희 향수를 불러왔죠.
그래서 2008년에는 광우병이라는 한 가지 이슈가 제기되었다면 지금은 전 세대 모든 계층에게 소수 권력이 국가를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는 위기감이 있기 때문에 지형이 조금 달라졌다고 생각해요. 보통 사람들도 굉장히 분노하고 있어요. 이제는 그 분노를 지역에서 거부감 없이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는 디딤돌을 놓고 참여의 장을 만들어야죠. 그래서 어떻게 보면 박원순 시장이 만든 마을공동체 정책이라는 게 나름 의미가 있어요. 저희 지역에 200명 정도가 모인 카톡방이 있거든요. 기회이기도 하고 고마운 현상이죠. 지금은 그래도 많은 관여자들이 지역에 생겼거든요. 서울시의 마을공동체 정책이 2012년부터 시작했어요. 세 명만 모으면 뭔가 할 수 있는 사업비를 줬어요. 서울시에서는 이 사업과 관련해서 상담을 받거나 사업을 해봤거나 어떻게든 관여된 사람을 12만 명 정도로 추산하고 있더라구요.
올해만 해도 제일 작은 규모의 사업으로 100만원씩 지원해주는 이웃 만들기 사업이 있는데요. 우리 지역만 해도 33팀이나 이 사업을 했어요. 그 내용도 꽤 다양해요. 카톡방에서 우리 동네는 요즘 무슨 일을 해요라는 정보를 공유하는데 이런 사람들이 200명 있다는 것은 지역별로 다르겠지만 엄청난 기반이 쌓이고 있다고 보는 거죠. 저도 지난 몇 년 동안 지역에서 그 일을 하느라 굉장히 많은 시간을 썼구요. 지금은 직능단체까지 관계를 맺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어요. 중랑구 의사회랑 한 달에 한 번 정기적인 만남도 가지고 있고 지역에서 뭔가 같이 해보려고 해요. 이런 일을 계속하면 지역에 누가 있는지도 알고 전체적인 그림이 그려지기 시작하거든요. 10년쯤 되니까 직능단체는 아직 시간이 없어서 긴밀한 협력은 안하고 있지만 지역에 있는 주요 단체들하고는 서서히 관계를 맺어가고 있고 우호적인 신뢰를 만들어가고 있는 거죠.
지금 카톡방에 있는 200명 정도 되는 사람들 중에는 기존에 만나지 못했던 새로운 분들이 많겠네요. 지역에서 10년 정도 풀뿌리 운동을 하셨으니까 서울시 마을공동체 사업을 통해 관계를 맺은 주민들과 기존의 풀뿌리 운동 차원에서 만난 주민들과는 어떤 차이가 있던가요?
10년 전에 중랑구라는 지역에는 시민사회조직이 거의 없었거든요. 그래서 맨 처음에는 진짜 보통의 주부들을 만났어요. 물론 부침이 있긴 했죠. 중간에 그만두신 분들도 있었고요. 훈련된 활동가가 없다보니까 힘들었지만 주부들하고 제도권 교육과는 다른 교육을 해보자, 환경을 생각해보자는 이야기를 하면서 공감대를 이룬 주부들하고 조직을 만드는데 진짜 5-6년 걸렸어요. 20명에서 출발해서 50명, 100명까지 갔는데 초창기에 했던 사람들이 지금은 지역에서 중요한 리더 역할을 하고 있죠. 그러니까 이 사람들은 10년 동안 훈련되어 왔기 때문에 조직적인 관점이 어느 정도 있어요. 역시 조직 경험은 다르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죠.
요즘은 마을공동체 사업을 계기로 지역에서 다른 사람을 만나게 되는데 그 사람들 중에는 사실 조직 활동가보다 훨씬 훌륭한 분들도 많아요. 왜냐하면 그동안 몰라서 그렇지 비슷한 생각을 하는 분들을 많이 만나게 되죠. 자기 동네에서 조직을 만들어서 참여하는 사람들 보면 ‘아, 참 훌륭한 사람이 많구나’라는 생각이 들죠. 우리가 조직을 민주적으로 운영하고 그런 괜찮은 사람들이 ‘저기는 열린 조직이고 공공을 생각하는 곳 같아’라고 느낄 때 함께 하거든요.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거죠. 그러니까 이건 링크죠.
제가 속한 조직의 모든 사람이 다 휼륭한 건 아니지만 몇 년간 힘들지만 매주, 매달 회의하고, 지역 활동을 같이 논의하고 공부했으니까 아무래도 활동 역량이 더 크다고 볼 수는 있는데 그렇다고 해서 지금 새롭게 만나는 사람들과 차이가 많이 나는 건 아니예요. 중요한 건 이미 훈련된 지역의 활동가들이 의미 있다고 보고, 마을 공동체 사업을 통해 만난 분들 중에서도 조금만 더 훈련되면 너무 좋겠다고 생각되는 자질 있는 분들을 만나는 계기가 만들어졌다는 거죠.
세월호가 많은 사람들에게
국가의 본질에 대한 인식을 일깨워준 일이었다고 생각해요.
선생님의 그런 경험이 지금 시기에 다시 지역에서 다시 바닥을 다지고 일상의 생활 속에서 민주주의 문제를 포함해 뭔가를 주민들과 같이 시도해볼 수 있겠다고 생각하신 근거가 될 수 있겠네요.
그럼요. 저는 꼭 우리가 만났던 사람뿐만 아니라 지금 시민사회, 사실은 시민사회단체에 포함되지 않았고 계기나 시간이 없었을 뿐이지 많은 사람들이 시민사회 구성원으로 성장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지금 광장에서의 촛불이 그냥 생겨난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동안 알게 모르게 지역과 우리 사회의 각 분야에서 노력했던 성과들이 쌓여서 만들어진 거라고 생각해요. 지역에서도 내가 조직해서 만난 사람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사회문제에 관심 갖고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이 존재한다고 보고 그 시민들하고 어떻게 관계 맺을까, 그 시민들하고 어떻게 협력할까가 중요하다고 봐요. 그런 플랫폼을 지역마다 어떻게 구축하느냐가 이제 중요한 과제라고 보는 거죠.
지금 말씀하신 그분들은 어떻게 보면 단체에 속해 있진 않죠? 그냥 모임일 뿐이죠. 아까 조직되지 않은 개인은 신뢰하지 않는다고 하셨는데요. 그 말씀에는 조직이라고 하는 것이 왜 중요한지가 담겨 있을 것 같아요. 최근에는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일은 하고 싶은데 단체에서는 못하겠다고 하는 젊은 활동가들이 있거든요. 이런 현상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방금 말씀하신대로 지역의 여러 모임이나 개인들하고 손잡는 게 중요하다고 하면 지금 시기에 조직이란 도대체 무엇이며 조직이 해야 할 일들은 무엇일까요?
우리가 조직의 경험이 별로 없어서 그래요. 예를 들어 젊은 활동가들이 말하는 조직은요. 상근 사무국장과 대표와 상근자가 있는 그런 관계 속에서의 조직만 생각한 거죠. 그런 조직이 아닌 관계망과 네트워크가 있는데 젊은 활동가들이 조직에서 일하기 싫다라고 할 때 핵심은 뭐냐면요. 네트워크는 감정 노동이 수반되는 엄청 피곤한 관계예요. 예를 들면 일반적인 위계 조직에서는 피곤하긴 해도 위에서 시키는 대로 하면 되니까 서로 조율해야할 게 별로 없거든요. 시키면 그 역할을 하면 되는데 우리가 맺고 있는 관계들은 그렇지 않죠.
새로운 네트워크를 만드는 데는 엄청난 감정 노동과 노력이 필요해요. 그게 힘든 거예요. 세 명만 모여도 거기에서 역할을 나눠서 뭔가 계속 한다는 건 엄청난 에너지를 투여해야 하는데 그런 에너지를 쏟는 게 힘들거나 하고 싶지 않은 거죠. 그건 모두가 마찬가지일거예요. 사실은 영리기업이나 정부는 이미 다 사명과 비전이 있어요. 제 3섹터의 모든 조직과 시민사회조직의 특성은 단체의 목적을 만들어야 되고, 그 목적을 어떻게 달성할 것인가 합의해야 되고, 비전을 어떤 방식으로 수용할 것인가에 대해서 많은 에너지를 쏟아야 하는데 그게 힘든 거죠. 하지만 저는 그걸 넘지 않고서는 시민사회가 역량을 갖추기 어렵다고 봐요.
우리가 생각하는 조직이 과거 시민사회단체처럼 대표와 사무국장과 상근직원이 있는 조직이라면 위계적일 수도 있고, 개인의 자율성이 보장되지 않는 조직문화도 있을 테고, 예전 386세대 문화부터 시작해서 남성위계적인 문화가 견디기 힘들 수도 있겠죠. 근데 예를 들어 중랑구를 바꾸자고 해보자구요. 내년도 중랑구 예산이 5000억쯤이에요. 그 5000억 예산이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지 전혀 관여하지 않는 개인들, 지역에 돌아가는 일에 관심 없고 정보도 없고 결정권도 행사하지 못하는 개인들이 모여 있는 중랑구라면 그게 뭘 바꾸는 거예요? 자기 삶에 영향을 미치는 지역의 정책이나 문제에 대한 정보도 없고, 참여하거나 관여할 수 없고, 관계망이 없는 그런 개인들이 뭘 바꿀 수 있겠어요? 민주주의는 구체적인 현실의 문제이지 우리가 토론을 기분 좋게 하는 게 민주주의는 아니잖아요?
우리가 이야기해야 할 것은 우리의 경제, 정치적 권리와 같은 거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소모임을 만드는 것도 결국은 개인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같이 논의하고 협력해서 해결하려는 거잖아요. 지역의 삶을 결정하고 있는 모든 것들에 누가 참여해서 어떻게 결정되고 있는가의 관점에서 봤을 때 그렇게 조직이 안 된 상황에서는 현실의 사회 문제를 아무 것도 해결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의미의 조직을 말하는 거예요. 청년들이 만약에 사회를 바꾸고 싶다면 청년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네트워크라던가, 정기적으로 정책 발의를 할 수 있는 기회라던가, 아니면 자기가 정말 고통스럽다고 메시지를 낼 수 있는 장을 갖고 있지 않다면 그냥 개인일 뿐이죠. 저는 이처럼 집단 행동할 수 있는 관계망이 없으면 그게 운동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굉장히 고리타분하죠?
자기 삶에 영향을 미치는 정책이나 문제에 대한 정보도 없고,
참여하거나 관여할 수 없고, 관계망이 없는,
그런 개인들이 뭘 바꿀 수 있겠어요?
조직의 본질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고 이야기해보고 합의하는 과정이 필요하겠네요. 왜냐면 젊은 활동가들이 이야기하는 조직은 단체라는 틀이 있는 조직인데 선생님께서 말씀 하신 조직은 그 틀이 있는 조직만 의미하는 건 아니거든요. 네트워크로 연결되는 큰 범위까지를 하나의 큰 조직으로 보는 거니까요. 그 지점에서 개념 차이가 있는 거 같구요.
저는 지금의 시민사회 조직이 젊은 활동가들을 포함해 자유로운 개인이라고 생각하는 시민들의 열정을 담아서 시민사회를 강하게 하려면 조직 형태가 엄청 유연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바로 그 지점인거 같아요. 조직에 들어가고 싶어 하지 않는, 조직에서 일하고 싶지 않다고 하는 문제의식은요. 조직의 견고함에 못 견디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좀 전에 말씀하신 네트워크 활동만 해도 굉장히 피곤하고 스트레스 받는 일인데 그런 일을 자기 일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상황, 프로젝트의 실무적인 일들만 처리하는 곳이 되어버린 조직의 현재 상황이 못마땅한 거죠. 조직의 유연함에 대한 요구도 있지만 조직에서 실무적인 일들만 처리하는 활동가로는 일하고 싶지 않다는 의미도 있는 거죠.
제가 지금 여성환경연대 상임대표를 하고 있는데 끊임 없이 이야기해요. 조직이 유연해야 한다구요. 1년에 1월 한 달은 쉬라고도 하는데 활동가들이 못 쉰다고 하더라구요. 2월 총회 준비해야 한대요. 2월 11일이 총회인데 결국 타협해서 3주 쉬기로 했어요. 그리고 중랑구에서 초록상상 사무국장으로 있을 때 활동가들에게 몇 가지 룰을 만들었어요. 예를 들면 우린 출퇴근 없다, 본인이 맡은 일을 밤에 하든 낮에 하든 알아서 하자. 사무국은 유지해야 되니까 사람들이 올 때를 감안해서 근무 조정만 하고 본인이 어떤 일을 할 것인가에 대한 업무 중심으로 일을 하자 이렇게 했거든요. 그랬더니 한 활동가가 그게 익숙해져가지고 자기는 이제 기업에 취직 못할 것 같다고 해요.
사실은 NGO가 국가와 기업에 대응하는 역량이나 힘을 갖추려면 자기계발이나 역량강화, 사람들과의 관계망 같은 것을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고 봐요. 좋은 교육이 있다고 하면 출근 안하고 자유롭게 거기 가서 배우거나 네트워크할 수 있어야죠. 자기가 하는 일은 어떤 한 분야지만 이 분야가 한국사회 전체에서 어떤 의미를 가질 것인가에 대해 활동가 한 사람 한 사람이 비전을 가질 수 있도록 지원해줘야죠. 공무원처럼 정해진 프로젝트만 해야 하는 것도 아니구요. 너무 오랫동안 시민단체의 리더들이 잘못하지 않았나 싶어요.
프로젝트에 길들여졌다는 생각도 많이 들어요. 물론 프로젝트 하면서 목표가 뭘까, 성과가 뭘까 고민했던 사람들은 고생스러웠지만 그 역량은 무시할 수 없긴 하죠. 그렇게 길들여졌지만그렇게 또 훈련받던 사람들의 역량에 대해서 저는 존경하거든요. 저도 프로젝트하면서 고통스러웠던 경험이 있어요. 옛날 간사 시절에 프로젝트를 3개까지 했어요. 그건 내 삶에 무슨 의미였으며 시민사회에 얼마나 기여했을까 고민하죠. 프로젝트는 사실 누군가에 대한 약속이잖아요. 공공기관과 조직에 대한 약속이니까 개인한테는 그게 얼마나 큰 부담이예요? 그렇게 길들여지는 것이 과연 시민사회의 한 주체를 만들어내는데 적절했을까? 좋은 단련의 시간이었을까? 시민사회가 활동가들에게 프로젝트 외에 운동과 사회의 비전에 대한 어떤 훈련의 기회를 줬을까? 그런 생각을 요즘 하죠.
왜 우리는 출퇴근을 해야 되냐? 왜 사무실로 출근하고 주 5일제를 해야 하는가, 왜 내가 사무실에 없으면 일을 안 한다고 생각하지? 자기는 어디에서건 일하고 있는데 말이죠. 그런 질문들이 사실 조직의 유연성에 대한 문제제기죠. 또 하나는 선생님께서도 의사결정구조 이야기할 때 총회에 대해서 잠깐 이야기하셨잖아요. 시민사회단체의 일반적인 조직 형태로 보면 회원 총회가 있고, 운영위원회나 이사회가 있고, 또 각 위원회가 있고, 그 밑에 사무처가 있어요. 근데 규정으로는 그렇게 되어 있는데 실제로는 잘 작동하지 않아요. 사무국이 다 하죠. 단체마다 상황과 조건이 다르기 때문에 무엇이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정해진 원칙대로 하던지, 이 구조가 맞지 않다고 하면 이런 구조를 없애던지 해야 하는데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상태로 계속 가고 있단 말이예요. 뭔가 정리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그나마 잘하고 있는 게 여성민우회 같아요. 여성민우회는 페미니스트들이 내년에 무엇을 할 것인가를 모여서 결정해요. 회원들이 모여서 자유롭게 이야기한 후에 내년에는 무엇을 해보자고 결정해요. 회원들의 잡담회나 이런 걸 통해서요. 예를 들면 ‘1인 비혼자들의 주거문제를 내년 주요 의제로 해보자’ 이런 식인 거죠. 회원이라고 해서 다 참석하는 건 아니지만 지금의 시민사회단체 상황은 회원들에게 뭔가를 물어보는, 그리고 회원들이 어떤 삶의 문제를 갖고 있는지 이런 거에 관심을 가질 수 없는 구조예요.
보통 사무국에서 결정해서 총회에 올려서 투표하게 하죠.
그 과정이나 그런 투표가 민주적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데 비영리민간단체나 사단법인일 경우에는 법에서 요구하는 형식이 있으니까 그 형식을 따른 거죠. 전 만약에 우리가 사단법인을 유지해야겠다, 후원도 받고 이러기 위해서 법적인 형식을 유지하겠다고 하면 그것대로 굉장히 심플하게 갈 수 있다고 봐요. 그리고 진짜 회원들이 움직이는 조직이나 회원들이 운동하는 조직으로 가야죠. 근데 이제 회원들에게 연락하는 것도 두려워하죠. 전화 작업하잖아요. 그러면 그 참에 회비를 끊는다는 경우가 생기거든요. 회원들을 만나는 걸 두려워해요. 회비 때문에 두려워서 회원들과 소통을 못해요. 기본적으로는 회원들이 우리가 운동을 하는데 중요한 파트너거나 함께 운동을 하는 주체로 생각한다면 우리 단체 운동과 맞지 않거나 함께 하지 않으면 탈퇴하셔도 됩니다라는 과감함 같은 게 있어야 하는데 그냥 후원으로 만족하죠. 계속 그냥 후원자로 있어주길 바라는 거죠.
지금 사무실 내부에서도 논의하기가 어려운데 회원까지 들어와서 이거하자 저거하자 했을 때 그걸 담을 수 있는 역량이 없는 거죠. 그래서 회원들의 목소리 듣는 거 자체를 지금의 조직 형태는 두려워하고 있다고 생각을 해요. 회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거기서 제안해서 합의한 것을 총회에서 결정하게 한다면 저는 총회가 더 빨라져야 된다고 생각해요. 올해 우리가 뭘 했는지에 대해 가감 없이 평가받고 내년에는 뭘 했으면 좋겠는지에 대해 의견을 듣고 결정하는 게 필요하죠. 그렇지 않은 정말 형식적인 총회라면 그냥 심플하게 가는 게 맞구요.
지원 프로젝트가 시민사회의 한 주체를 만들어내는데 적절했을까?
좋은 단련의 시간이었을까?
스스로에게 질문하게 해
프로젝트 문제나 방금 회원들한테 연락하기가 두렵다는 이야기도 결국 재정 문제와 연결되어 있는 것 같아요. 프로젝트도 하고 싶어서 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어쩔 수 없이 재정 상황 때문에 하는 경우도 있거든요. 결국 악순환의 반복이긴 한데요.
프로젝트는요. 활동가들이 프로젝트 때문에 너무 고통스러워하고 있어요. 그래서 저는 단체 상근일을 그만두고 지역운동하면서는 프로젝트 500만 원짜리 이상 안했어요. 꼭 필요한 것만 했어요. 예를 들어 사람들을 교육한다거나 재료비를 구입한다거나 하는 정도의 사업에 필요한 것만 했어요. 사실은 운동을 하려면 사람들을 만날 시간이 더 있어야 되거든요. 교육비나 이런 거는 돈 많이 안 필요해요. 그리고 프로젝트할 때 인건비 주는 것도 아니잖아요. 그래서 지금 있는 단체에도 프로젝트는 활동가 한 명 당 한 개 이상 못하게 해요. 사실 여성재단의 프로젝트 접수 마감이 내일까지인데 하지 않기로 했어요.
사실 프로젝트가 재정에 기여되지는 않아요. 물론 프로젝트를 하면 회의비를 줄 수 있긴 하죠. 근데 밥값이나 차값은 자기가 내고 단체에 와서 무료로 강의도 해주고 이래야 좀 운동이 살아나지 프로젝트로 회의비 주고, 밥 주고 이렇게만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단체들이 프로젝트의 덫에서 벗어나야 해요. 그리고 행정에서도 일을 맡기고 싶거나 시민사회와 정말 같이 하고 싶다고 하면 인건비를 줘서 하든가 해야지 자꾸 프로젝트로 행정이 할 일을 대리하게 하는 것은 단체 역량에 맞게 거부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최소한의 프로젝트만, 꼭 해야 될 사업 중에 돈이 필요한 사업만 프로젝트를 내야죠. 제가 대표니까 이렇게 말할 순 있지만 그래도 전 그래야 된다고 생각해요. 악순환이예요.
사실 프로젝트하면 회원이 안 늘어요. 기본적으로 단체가 재정 운영을 안정적으로 하려면 회원을 늘리거나 지지 그룹을 확대해야 되는데 프로젝트로는 절대로 지지 기반 확대 못해요. 단체의 재정자립도는 프로젝트를 많이 할수록 떨어진다니까요. 나는 이런 걸 누가 데이터로 조사 좀 해줬으면 좋겠어요. 프로젝트를 많이 하는 단체일수록 회원이 없어요. 인원수를 줄여서라도 프로젝트를 줄여야 해요. 본래의 일, 회원들하고 만나고 대화하고 같이 책 읽는, 이런 일들을 늘려야 해요.
왜 활동가한테는 정년퇴직이 없냐라는 문제제기를 하기도 합니다. 그 말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는데 하나는 단체 대표나 사무처장을 하고 그 다음에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이기도 하구요. 또 하나는 단체 대표를 10년, 20년씩 계속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부정적인 의미도 포함되어 있어요.
활동가라는 직업으로서의 정체성을 이야기하는 거 같은데요. 저는 활동가라는 말 별로 안 좋아해서요.
그럼 선생님은 스스로를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노동자라고 생각해요. NGO활동가를 무엇으로 정의하냐라고 했을 때, 활동가를 지칭하는 명칭이 120개가 있다고 해요. 코디네이터나 촉진자부터 시작해서 시민사회에서 만든 명칭도 있고 행정의 요구에 의해서 만든 명칭도 있고요. 사실 중간지원조직으로서 행정의 요구를 수행하고 월급 받는 사람들도 NGO활동가라고 하잖아요. 그런 부분부터 생태안내자라고 하는 직업까지 굉장히 다양하죠.
저는 NGO활동가를 사회 변화를 위한 어떤 행위를 하는 노동자라고 생각해요. 근데 활동가라고 하면 노동법 적용을 받지 않는 고상한 느낌을 주는 거에요. 최근에 <사단법인 시민>에서 청소년을 위한 NGO가이드북을 만들었는데요. 90년대에는 NGO활동가를 간사라고 불렀어요. 근데 그게 일본에서 온 말이고 주요 단체들에서 교수와 같은 전문가들이 의사결정을 하고 간사는 뒷수발하는 비주체적인 느낌을 많이 줬잖아요. 그래서 요즘은 간사라는 말을 안 쓰거든요. 그리고 나서 활동가로 대체된 거예요. 그 가이드북에서 활동가를 NGO활동을 직업적으로,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이라고 정의를 내렸더라구요. 활동가는 우리사회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 사람을 의미할까요? 전업으로 하는 사람만 활동가인가? 비전업 활동가나 적극적인 시민참여자는 뭐라고 해야 할까요? 그럼 너무 스펙트럼이 넓어지죠.
일단 직업인으로서 활동가라는 걸 받아들인다는 전제 아래 말씀드리면 ‘사회 변화를 위해 어떤 일을 할 것인가를 끊임없이 내가 판단하고, 조직적인 형태로 운동하는 사람’을 활동가라고 생각해요. 사회와 사람을 변화시키는 특성을 갖고 있는 노동자인거죠. 그런데 노동이라고 말하면 임금이나 노동조건이 더 부각되는 것 같아요. 활동을 노동으로 규정하면 마치 대표나 처장에 고용된 저임금 돌봄노동자로서 노동권을 지켜야할 것 같고 저는 무능한 악덕 고용주가 되긴합니다만 저는 제 활동을 노동으로 생각하고 노동자로서 윤리와 책임을 가져야 한다고 스스로 다짐하고 있습니다. 7-8년 전인 것 같은데 <초록상상> 초기에 상근자가 나 밖에 없다고 1인 NGO활동가로 언론에서 나를 소개한 기사가 나간 적이 있어요. 솔직히 불쾌하더라구요. 나는 1인 NGO 싫어하거든요. 조직적인 운동을 좋아하는 옛날 스타일이예요.
NGO활동가는 계속 변화되는 상황에 맞춰서 어떤 운동이 이 사회에 필요한지를 파악하고, 그것을 자기 삶하고 일치시켜서 해나가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죽기 전까지는 활동가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은퇴도 없다고 생각하구요. 그래도 굳이 은퇴할 시점을 따지자면 저도 지금 50살쯤 되니까요. 이 업계에서 은퇴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시점은 사람이 싫어 질 때, 다른 사람과 만나서 뭔가를 도모하는 일이 싫어질 때, 사람을 만나는 게 짜증나고 귀찮을 때, 다른 사람을 설득하거나 하는 일들이 더 이상 하고 싶어지지 않을 때는 내가 운동을 해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만둘 거고, 두 번째로는 사회 변화를 더 이상 원하지 않을 때이지 않을까요?
사회 변화를 위해 어떤 일을 할 것인가를 끊임없이 내가 판단하고,
조직적인 형태로 운동하는 사람이 활동가
선생님에게 그런 시기가 있을까요?
저는 아직까지 한국사회 시민사회운동이 무르익었다고 생각하지는 않거든요. 지금이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하고, 이 상황이 몇 년 동안 우리 사회를 움직이는 동력이 될 수 있다고 보지만 아직 기업이나 행정에 비해 시민사회 역량은 턱없이 부족하죠. 기업이나 행정은 역사와 조직을 가지고 있잖아요. 시민사회의 역사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프로젝트 문제라던가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해 아직 답을 못 내리고 있는 거예요. 풀뿌리운동은 더 그렇구요.
풀뿌리운동에서 어떻게 주민들이 참여하는 조직을 만들 것인가는 수십 년에 걸친 한 사회의 과제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제가 이제 겨우 15년쯤 했는데 은퇴 이야기를 하기는 좀 그래요. 한 사회에서 50대는 가장 왕성하게 활동하는 사람이잖아요. 대통령은 60대 이상이 하잖아요. 어떻게 보면 국가 운영도 저런 노땅들이 계속 하고 있는데 NGO에서는 왜 벌써 은퇴 이야기가 나오는지.. 50대만 되면 마치 은퇴해야 될 거 같고요. 문제는 한 조직의 대표를 계속 하는 문제 등에 있는 거겠죠. 후배들한테 빨리 물려주고 다시 적합한 자기의 삶과 경험에 맞는 일들을 찾아야죠.
제가 질문했던 활동가 개념은 아까 말씀하신 직업인으로서 월급을 받고 있는 활동가를 의미한 거구요.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걸로 보면 활동가의 범위가 굉장히 넓어지잖아요.
단체들은 임기가 있잖아요. 그러니까 일반 시민사회단체와 같은 NGO에서는 임기를 마치면 다른 형태로 활동을 해야죠. 왜냐면 후배들이 계속 활동력 있게 정부를 견제할 수 있는 적당한 시기가 40대쯤이에요. 50대부터는 약간 여유 있게 보기도 하고 타협도 하게 되거든요. 그러면 후방에 나가서 서포트하는 형태의 조직을 하는 게 좋죠.
선생님이 생각하기에 활동가로서의 전문성, 자질, 역량이라고 하는 건 뭘까요? 직업인으로서 월급 받고 일하는 활동가뿐만 아니라 일상적으로 생활 속에서 접할 수 있는 수많은 활동가들까지 포함해서요.
직업적 활동가라고 하면 NGO의 역사적 형성 과정에서 떠오르는 조직들이 있죠? 시민단체, 여성단체, 환경단체 하면 떠오르는 단체들이 있잖아요. 그리고 이런 단체에 적합한 활동가가 있어요. 근데 그런 단체하고 풀뿌리 단체하고는 활동가의 자격조건이나 필요 역량이 다르다고 봐요. 중앙단체는 국가적인 사안을 전체적으로 볼 수 있는 사고와 관심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추상적인 사고 능력뿐만 아니라 정책적으로 사고하는 능력, 연구능력, 실무능력 등이 있어야죠. 풀뿌리 활동가는 커뮤니케이션하는 능력과 그걸 피곤해하지 않을 인내심이 필요하죠. 가끔 우리가 활동가를 뽑고 나면 자기는 사람들을 만나는 게 너무 싫다고 말하는 경우가 있어요. 그럼 ‘너는 이 단체에 왜 왔니? 작가를 하지’라는 생각이 들어요. 시민사회운동이라고 하는 건 사람들과 함께 일하며 사회를 변화시키는 건데 그것조차도 모르고 오는 것 같아서요. 사람에 대한 애정이 있어야죠. 인권이라던가 이런 것에 대한 기본 인식이 없으면 저는 NGO활동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요.
풀뿌리운동은 기본적으로 커뮤니케이션 능력도 있어야 하고, 사람들을 싫어하지 않고 피곤해하지 않아야죠. 사람들하고 좋아서 만나는 게 아니더라도 사람들 이야기에 귀 기울여 잘 듣고 다양한 사람들 만날 수 있어야죠. 근데 그런 일들은 누구에게나 피곤한 일이예요. 누구는 그렇게 맨날 사람들 만나서 이야기 듣는 게 좋겠어요? 그렇지만 힘들어도 그걸 자기 일이라고 생각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게 최우선이라고 생각해요. 또 사람들을 만나고 조직하는 게 풀뿌리 활동가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긴 한데 사회에 대한 비전 이런 것 없이 실무 능력만 좋다고 되는 것도 아니구요.
풀뿌리운동하시는 어떤 분이 언제가부터 활동가들이 우리는 어떤 사회에 살고자 하는 지에 대한 질문을 안 하기 시작했다고 해요. 개인적으로 생각은 하더라도 그런 질문과 활동이 연결되지 않는다는 말이겠죠. 풀뿌리 활동이라는 게 밖으로 드러나는 일이 아니어서 끈기가 있어야 하잖아요. 선생님도 지역에서 계속 사람들 만나는 게 지칠 때가 있으실 것 같은데 그런 건 어떻게 극복해오셨나요?
지칠 때요? 저는 다행히 사람만나는 걸 지쳐하지는 않아요. 일하는 건 다 사람 만나는 거죠. 아침 회의, 점심 회의, 그거 다 사람만나는 거잖아요. 다양한 종류의 사람을 만나죠. 1대1로 만나서 인생 이야기, 생활 이야기 진지하게 하는 게 좋아해요. 그런 피로가 누적되면 독서를 하기도 하고 일기를 거의 매일 써요. 잠깐 잠깐이라도 돌아보는 시간, 개인적으로 글 쓰고 정리하는 시간을 통해서 재충전을 하는 거 같아요.
풀뿌리 활동가는 커뮤니케이션하는 능력과
그걸 피곤해하지 않을 인내심이 필요하죠.
쉽게 따라 할 수 없는 방법인데요. 왜 그 질문을 드리냐면 활동가가 어떻게 보면 사회를 돌보는 일을 하는 사람인데 왜 우린 스스로를 돌보지 못하는 상황에 직면했나라는 이야기가 나와서요. 그리고 제가 최근에 어떤 재단하고 지역 활동가들 인터뷰를 하고 있는데요. 감정노동이 너무 심해서 스트레스 받는다는 이야기를 하시더라구요. 한 조직에서 15년, 20년 일하면서 항상 같은 사람들을 술자리에서도 만나고, 회의에서도 만나고, 일도 같이 하고 이러다보니까 감정적인 스트레스가 너무 심하다는 거예요. 그래서 지역의 활동가들에게는 쉼프로그램에 대한 요구가 굉장히 많대요. 교육도 필요 없고 제발 좀 쉴 수 있게 해달라고요. 그래서 개인적인 스트레스나 어려운 상황들을 어떻게 해결하시는지 여쭤봤던 거예요.
저는 우리의 운동이 활동가들을 대할 때 개인의 삶에 관심을 기울여 사적인 얘기도 많이 귀담아 들었으면 해요. 그렇게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운동을 지속할 수도 없는데 쉴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요. 만약 내가 공무원이어서 민원 창구에서 계속 사람들을 만난다고 하면 진짜 힘들 거 같아요. 복지 현장도 마찬가지구요. 낯선 사람들 와서 계속 힘든 말 하다가 갈 거 아니예요. 활동가나 사람들의 삶을 통해 배움이 깊어가는 것도 있겠지만 피로감이 쌓일 때 쉴 수 있도록 서로 보살피는 것도 큰 과제겠죠. 저 역시 별다른 방법없이 동네에 엄청 친구가 많다 이렇게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중입니다.
최근 N명의 사회 혁신가 시국선언이라고 들어보셨는지 모르겠네요. 주로 소셜 벤처나 사회적 기업 등 사회 변화를 위한 영리 활동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주축이 돼서 시국선언을 준비하는 과정을 공유했어요. 시국선언만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그 시국선언 이후에 모여서 어떤 토론을 계속 해나갈 것인지 이야기도하구요. 과정 자체가 다른 선언들과 좀 다르긴 했는데 페이스북에 서명 요청글이 올라왔길래 서명을 하려고 클릭을 했는데 문든 이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내가 사회혁신가인가?’ 이 질문이 딱 들어오면서부터 쉽게 참여를 못하겠더라구요. 그 선언에는 사실 비영리단체 사람들도 많이 참여했는데 저는 약간 망설여졌어요. 아마도 사회혁신가라고 하는 명칭 때문에 그런 거 같긴 해요. 제가 처음 운동을 시작할 때는 시민운동가라는 말을 썼거든요. 근데 요즘은 시민운동가라는 말도 잘 안 쓰고 시민운동가 시국선언도 없잖아요. 만약에 누군가 시민운동가 시국선언에 참여해달라고 하면 나는 자신 있게 서명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도 들더라구요. 명칭이 다르듯이 다들 정체성이 다른 거예요. 누구는 마을 활동가, 누구는 중간지원조직 활동가, 누구는 풀뿌리 활동가, 여성운동가, 환경운동가, 협동조합에서 일하는 사람도 있고, 사회적 기업에 일하는 사람도 있고, 그냥 소셜 벤처라고 하는 기업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있죠. 근데 다들 스스로를 사회 변화를 위해서 일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명칭은 다르지만 최근 다양한 그룹들이 생겨난 거죠. 그만큼 조직 형태도 다양해졌구요. 형태와 방법은 다르지만 어쨌든 사회변화를 위해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인데 이 사람들 간의 경계라고 할까요? 이 부분을 어떻게 활성화시키고 서로 교류하게 할까요? 특히나 지금 20대나 30대 초반의 활동가들은 전통적인 풀뿌리 단체나 시민사회단체보다 사회적 기업이나 중간지원조직 같은 곳에서 시작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이 분들에게는 시민운동가들이 만드는 운동의 방법이나 결과물이 구려보일 수 있어요. 사회적 경제나 이런 영역은 좀 더 새로워 보이고 하니까 그쪽으로 가는 거겠죠. 서울시에는 여러 행정부서가 있잖아요. 부서의 사업들 중에 마을공동체사업이 있어요. 그 다음에 찾아가는 동주민센터 사업이 있고, 사회적 경제 사업도 있고, 문화 관련된 사업도 있죠. 이런 것들이 결국은 거버넌스의 틀인데 행정은 우리 사회의 어떤 방향을 놓고 업무분장을 한 거예요. 근데 사실은 자기네들끼리 행정 영역에서 실패를 하니까 할 수 없이 시민들하고 계속 어떤 접점을 마련해서 그 영역을 확대하려고 하는거죠. 이제 겨우 마을공동체 사업에만 조금 주민들이 참여하는 상황인데 지역마다 어떻게 협력할 것인가는 구성원들의 역량과 요구에 따라 달라질 테구요. 서로 협력해야만 좋은 지역사회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되면 협력이 가능해지겠죠.
저는 그래서 이 경계를 억지로 네트워크 한다고 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구요. 각 단위의 성장과 수준에 따라서 자연스럽게 연결될 거라고 봐요. 점차 아귀가 맞춰지겠죠. 아니면 공동 협력의 과정으로 가야만 퍼즐이 맞춰지지 않을까요? 시간이필요해요. 지금은 억지로 서로 연계하지 말고 서로 간에 신뢰를 쌓는 걸 우선해야 협력의 계기가 마련될 거예요.
네, 마지막 질문입니다. 앞으로 10년 동안 어떤 일에 집중하면서 살고 싶으세요?
제가 굉장히 꼴통인 게 아까 조직적인 운동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랬잖아요. 가끔 보면 시민사회 리더들이 앞으로 뭘 하고 싶냐고 물었을 때 뭘 하고 싶다고 말하는 거, 전 그런 것에 대해서 좀 불만이예요. 뭘 하고 싶다라는 건 자기가 몸 담은 조직이 결정할 일이죠. 내가 만약에 여성환경연대에 계속 있다고 하면 여성환경연대의 사업결정은 조직원들이 하는 거잖아요. 어떻게 대표가 미리 자기의 10년을 따로 세워놔요. 예를 들면 여성환경연대는 해마다 총회를 통해서 조직의 역량이나 상황에 따라서 사업계획을 정하잖아요. 그래서 진짜 소통하는 리더 내지는 운동가라고 하면 자기 조직의 역사적(^^) 사명에 따라야죠.
저는 일단 기본적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는 과도하게 잡지 않고 있어요. 지금 최순실이 이렇게 될지 어떻게 알았겠어요. 상황은 바뀌는 거죠. 제가 원래 올해와 내년에 하려고 했던 것이 바뀌고 있는 거죠. 저는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지역의 조직운동 상황에 따라 그때 그때 부응하는 일,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일들을 하겠다는 생각이예요. 10년 뒤 계획은 안 세워요. 그렇지만 이 단체에서 당분간 하고 싶은 일은 첫째는 여성환경연대를 우리 사회에 에코페미니즘을 확산하는 곳으로 만드는 거예요. 여성환경연대 초기에는 문순홍 선생님이 에코페미니즘에 대한 담론을 지원해주셨는데 암으로 돌아가셨거든요. 선생님이 돌아가시고 나서 엄청 타격이 큰 거예요. 그런 담론이 없으면 단체가 활동하는데 취약해요. 그런 기본적인 사상적 뒷받침이 저는 시민사회에 있어야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환경운동도 광범위하게 생태주의가 있어서 그 기반에서 운동을 하고, 여성운동도 여성주의운동과 여성학에 기반해서 운동이 되는 거거든요. 활동가가 이론도 겸하고 이럴 수 없거든요.
사회적으로는 하나의 운동세력이 성장하기 위한 이론적 뒷받침과 연구가 같이 가야 된다고 생각해요. 제가 초창기부터 여성환경연대에 있었는데 담론이 뒷받침되지 않은 것에 대한 고통이 너무 컸어요. 매번 해마다 사업계획이 바뀌고, 담론이 뭐고 우리의 목표가 뭐고 지향이 뭔가에 대한 부족함과 갈망이 너무 커서 그게 제 뼈에 사무쳐요. 한국의 에코페미니즘은 어떤 운동을 해야 하는지 한국적 에코페미니즘이 뭔지 정리하는 게여성환경연대의 과제면서 제 과제이기도 해요. 에코페미니즘 플랫폼을 만들고 에코페미니즘의 지지 기반을 확산해서 연구 작업도 장기적으로 만들었으면 좋겠고, 그런 조건을 만들어가는 게 제 과제죠.
또 하나는 아무리 담론이 있어도 중랑구라는 지역사회에서 운동하는 게 이제 겨우 시작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지역운동 10년 했지만 이제 겨우 사람들이 200명 모였어요. 42만명 중에 200명이면 얼마나 적어요. 서울이라는 곳의 한 지역에서 지역의 발전 전망을 어떻게 가질 것인지, 지방 자치를 확립하고, 각 분야별로 그런 논의를 할 수 있는 리더 그룹을 만드는 것이 마을의 과제구요. 그래서 저는 지금 청소년 까페를 하고 있지만, 생애 주기별로 청소년 조직부터 청년 조직, 중/장년 조직, 학교조직, 교육운동 조직, 이런 조직들을 동료들과 함께 만들어 나가는 게 제 장기적인 과제에요. <끝>
_ 조아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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