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공익활동가포럼] 둑이 무너져야 새 판을 짤 건데 나 같은 사람이 막고 있는건 아닐까? - 김기민



– 신비(이하, 신) : 지금 주로 어떤 활동을 하고 계세요? 

– 김기민(이하, 김) : 월급 주는 곳은 서울시 청년허브. 서울 청년정치네트워크 소속 사회혁신 청년활동가로 파견활동 중이에요. 성북구에서 자치구 최초로 청년 관련 민간 거버넌스인 성북청년정책네트워크를 만드는데 그 일을 담당하고 있어요. 그 연장선에서 성북지역 청년 모임 만드는 일을 추진 중이죠.

 

– 신 : 월급은 최저 임금 수준이지요?

– 김 : 네. 이게 그냥 최저 임금이면 나은데 일당제라서 추석처럼 휴무일이 많으면 금액이 줄어요. 일당 5만원이니까 3일이면 15만 원이 빠지는 거에요. 그러면 너무 타격이 크더라고요. 서울시 뉴딜일자리 사업 일환인데요, 지속적인 일자리를 제공하는 게 아니라 일시적으로 부양하는 정책이다 보니 그런 문제가 있더라고요. 서울시가 사업 기조를 바꾸지 않는 한 상황은 계속 되겠죠. 생애 한 번밖에 못하니까 저는 올해로 끝이고요.

그리고 성북구 관련 활동을 여러 가지 해요. 성북 주민공동체 활동이랑, 활동가들의 연구모임인 성북 마을살이 연구회에 참여하고 있어요. 그리고 성북 마을기금 협의회라는 마을 공동체 기금 관련 활동도 해요. 그러다보니까 서울시 협치서울협의회에도 들어가 있고, 한살림 조합원으로 성북지구 운영위원이 되서 성북지역 마을모임을 얼마 전까지 했었어요. 함께하는 성북마당이라는 마을 회의에도 파견되서 참여하고 있고. 다 연결되는 것들이기는 한데… 그리고 성북지역에 17717이라고 성북 지역 문화예술 전시 공간이 있어요. 그게 올해 청년허브에서 주관한 청년 활력공간 지원 사업에 선정되서 그 사업 실무 맡아서 하고 있어요. 마지막으로 올해 계획에 없던 일인데 성북구 정릉4동에서 진행하는 담벼락 골목반상회에 실무책임자로 9월부터 일하고 있지요.

 

– 신 : 제일 처음 것 빼고는 다 자원 활동이에요? 다른 생계활동은 안 하세요?

– 김 : 그렇죠. 일부 활동비가 보조되는 게 있긴 한데… 그리고 사이사이에 인터뷰, 강의, 원고청탁, 회의 참석 등에서 생기는 부수입이 있기는 해요. 문제는 그런 돈은 제때 들어오는 경우가 별로 없어요. 너무 심해서 제가 한번 시트에 정리를 해 봤어요. 미수금이 엄청 많더라고요.

 

– 신 : 사는 집에도 돈이 들어가지 않아요?

– 김 : 현재 제가 좀 큰 집을 얻어서 공동 주거하는데, 월세를 제가 제일 많이 내긴 해요.

 

– 신 : 그럼 그 집 구할때도 목돈이 들어갔을텐데, 그 전에 살던 집 보증금인거에요?

– 김 : 네.

 

– 신 : 그 보증금은 어떻게 마련하셨어요?

– 김 : 제가 서른 몇 년 살면서 가장 고정적이고 확실하게 수입을 얻었던 때가 직업군인 생활 하던 때인데, 그땐 거의 돈 쓸 일 없으니까 모은 돈이 좀 있었어요. 그 중 일부를 카페 할 때 쓰고 나머지를 집 보증금으로 썼어요. 좀 부족한 건 가장 애용하는 부모님 대출 받았죠. 이자 없고 상환기간 없는.

 

– 신 : 그 (부모님) 대출은 안 갚으셨어요?

– 김 : 전혀 갚을 여력이 없어요. 뭐 언젠가는 반환할 수 있겠지만 현재는 어려워요.

 

– 신 : 부모님은 안 돌려드려도 괜찮으시대요? 부양은 안 해도 되고요?

– 김 : 저희 집에서 부모님이 제일 잘 사셔요. 부양 부담도 없고. 그러니까 이렇게 살고 있죠. 만약 제가 가족이나 부모님을 부양해야 했다면 사실 이런 방식의 삶을 살기는 어려웠을 것 같아요.

 

– 신 : 그렇다면 일단은 가족에 대한 의무에 크게 구애받지 않고 자기 선택으로 현재의 삶을 살고 계신 거네요?

– 김 : 네, 그런 점이 어떻게 보면 가족이 전면적으로 지지해주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가족으로 인해서 자기 삶을 일정 부분 분할해야 하는 그런 식의 환경이 아니었던 게 지금 제 삶을 가능하게 해 준 거고, 그게 사회적으로 고르게 누구나 누릴 수 있는 혜택이 아니라 저같이 운 좋은 사람만 누릴 수 있는 혜택인거죠. 그게 좀 안타까워요. 이건 개개인의 운이나 혜택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사회가 책임져야 하는 역할이라고 생각하는데, 아무튼 그런 점에서 부모님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 신 : 얘기 나온 김에 돈 얘기 좀 더 하죠. 먹고 살만 하세요?

– 김 : 생존은 가능해요. 저축은 못합니다.

 

– 신 : 빚은 안 져요?

– 김 : 빚 얘기하면 길어지는데… 카페할 때 소상공인 운영자금 대출 받은 게 지난 해 원리금 상환시기가 되서 다달이 30여만 원 갚아야 하는 상황이 되었어요.

 

– 신 : 카페를 할 때는 수지가 안 맞았나요? 대출은 왜 받으신 거에요?

– 김 : 그냥 유지 정도 하는 수준이었어요. 운영하다보면 돈이 들어올 때가 있고 안 들어올 때가 있죠. 또 리모델링 한번 하면서 여러 가지로 어려워서 대출을 받게 되었어요. 1500만 원 정도. 그 덕에 그 시기는 잘 넘겼는데, 빌린 돈은 정말 금방 없어지더라고요. 2014년에 공간 정리하려고 했는데 마지막에 자주 오시던 분이 사무실로 쓰고 싶다고 하셔서 카페 운영만 중단하고 유지하게 되었어요. 동네공간이라는 이름으로 공동사무실로도 쓰고 커뮤니티 공간으로 쓰고 있어요. 그러다보니 원래 공간 정리해서 보증금 받으면 갚으려던 빚이 그대로 남은 거죠.

 

– 신 : 그럼 지금 그걸 고스란히 갚고 계신건가요?

– 김 : 아뇨. 그게 너무 힘들어서, 도중에 사람들에게 보증금 받으면 돌려주기로 하고 출자금 600만 원 모아서 빚 청산했어요. 그러고 나서야 수지가 딱 맞는 삶이 된 거죠.

 

– 신 : 그럼 동네공간은 어떻게 운영해요? 조합인가요?

– 김 : 협동조합이나 그런 건 아닌데, 조합의 원리나 체계를 차용해서 분담해서 운영하고 있어요. 행정적으로는 건축 디자인업 하시는 분에게 계약을 승계한 상태고, 보증금은 제 돈이 그대로 들어있는 거고, 공간 함께 사용하는 사람들이 사용료를 모아서 입금하죠. 신뢰가 기반되지 않으면 유지하기 어려운 구조예요.

 

– 신 : 흔히 얘기하는 미래에 대한 불안은 없나요?

– 김 : 옛날엔 있었어요. 사회생활 하면서 강요받는 불안이 있잖아요. 내 중심이 서 있지 않은 상태에서 강요되는 불안, 거기 휘둘리긴 했어요. 어떤 직업을 가져야 하고 얼마를 모아야 하고. 그렇지만 내 중심이 잡히고 삶에 대한 확신을 갖고 나니 외부의 강요나 위협이 전혀 중요하지 않게 되서 그 후로는 내일에 대해 생각하지 않게 되었어요. 또 하나 개인적 배경도 있는 게, 2년 정도 아팠다고 했잖아요. 그때 경험이 큰 역할 했어요. 사람이 천년만년 살 것처럼 내일 모레, 1년 뒤, 10년 뒤까지 생각하고 사는 게 아무 의미가 없다는 걸 크게 느꼈어요. 그 두 가지 이유 때문에 미래에 대한 걱정은 거의 안 하고 살아요.

 

– 신 : 그때 아팠던 건 해결 되셨어요?

– 김 : 그건 완치되는 건 아니고, 꾸준히 약 먹고 관리하고 그렇게 지내요.

 

– 신 : 그럼 그것도 돈은 들겠네요.

– 김 : 아, 그렇지도 않아요. 제 병이 수술을 해야 하거나 그런 건 아니고 꾸준히 검사하고 약 조제 받아서 먹고 그런거다 보니까 경제적 부담이 크지 않아요. 희귀난치성 질환 산정특례제도라고 해서, 약재비든 진료비든 90%를 건강보험공단이 부담하고 10%만 본인부담이라서 비용이 되게 절감이 되더라고요. 굳이 실손 보험 혜택이 아니더라도 건강보험만으로도 충분히 감당 가능한 수준이에요. 그 전까지는 사실 건강보험에 큰 신뢰나 기대가 없었어요. 물론 아직도 부족하지만, 우리나라 건강보험 제도가 남부럽지 않은 수준까지는 아니라도 최소한의 역할은 하더라고요. 이 제도의 혜택을 경험해본 사람이 느낄 수 있는 거고 그냥 계속 보험료 내기만 하는 사람은 못 느끼는 게 문제인데요. 그래도 만약을 대비하기 위해서 공동체은행 빈고(서울 용산구 해방촌의 공동주거집단 빈집에서 운영하는 대안금융)에서 건강 보험계를 하고 있긴 해요.

 

– 신 : 그럼 기존 보험은 없으세요?

– 김 : 저는 제 명의로 했던 거는 이 생활 하기 전에 이미 다 정리한 상태인데, 저 모르게 부모님이 들어두신 보험이 있긴 할 거에요. 실손, 연금보험 같은 거… 그런 건 제가 손댈 수 있는 건 또 아니고. 그거 말고 또 있는지는 모르겠어요.

 

– 신 : 지금 사는 집 월세가 비교적 높지 않나요 

– 김 : 단독주택인데요. 성북동 시세 생각해보면 그렇게 엄청 무리한 수준은 아닌 것 같아요. 비용대비 만족스럽고 공동 주거자들도 적은 비용으로 넓은 공간 쓸 수 있어서 만족감 갖고 있는 듯 해요.

 

– 신 : 현재 수지가 딱 맞는 삶이라고 하셨는데, 정리해보면 어떻게 되죠?

– 김 : 세전 수입이 140~150만 원 정도 되는데, 집이랑 동네 공간 분담금 합해서 공간에 쓰는 비용이 1/3 정도 되고, 나머지는 먹고 사는 거랑 개인 용돈, 제가 후원하는 단체들 회비, 조합 출자금이나 회비 그런 데 쓰고 있어요. 저축이나 보험은 별도로 없어요.

 

– 신 : 현재 뉴딜일자리 수준의 급여라면 기존 단체들에서 상근하면 비슷한 금액을 정규직으로 받을 수 있을 듯 해요. 그런 생각은 한 해보셨어요?

– 김 : 제 성향이 정말 안 맞는 것 같아요. 고정된 곳에 있는 것이. 사실 조직이라는 건 아무리 진보적이고 열린 곳이라도 기본적으로 조직이기 때문에 갖는 보수성, 체계 등이 있을 수 밖에 없어요. 그런 체계 자체를 부정하는 건 아닌데 저랑 맞지는 않더라고요. 조직의 구성원으로서 보다는 개인으로서 대등하게 협력할 건 하고 프로젝트 끝나면 정리하고 이런 식이 맞았던 것 같아서.

뉴딜일자리는 그런 면에서 잘 맞았어요. 제가 역량이 되고 의지가 있으면 계획도 세우고 그 안에서 움직이는 게 포괄적으로 위임받을 수 있으니까요. 역량이 너무 부족하거나 파견단체에서 요구하는 게 견고하거나 하면 어렵겠지만 여긴 다행히 자율성을 주었고 제 역량에도 맞았어요. 그런 정도의 업무 환경을 제공할 수 있는 단체는 제가 볼 때는 별로 없거든요. 그러니 이런 상태로 계속 가는 게 좋지 않을까. 저는 그냥 재직기간 동안 4대 보험만 되면 좋아요. 보수가 좀 더 늘면 좋겠지만, 소위 제 3섹터에서 이 정도 이상의 급여를 받으면서 자율적으로 일한다는 건 현실적으로 아직 무리인 듯 해요. 물론 더 나아져야 하지만 그건 우리가 기대하는 이상이고 지향점인거지 그걸 바로 현실에 적용하는 건 또 별개의 문제니까요.

 

– 신 : 그런 성향이 내 또래나, 좀 무리하게 확장하면 내 세대에 많은 편인 거 같아요, 아니면 극소수인듯 해요?

– 김 : 제가 이런 부분까지 이야기 나눌 수 있는 관계가 별로 없어서 그런지, 기회가 없어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제 주변을 보면 일단 특이한 편인 거 같아요. 사실 조직이 주는 안정성이라는 게 있거든요. 해야 할 일이 명확히 있고 그렇게 부여받은 역할, 합의된 역할을 딱 수행하면 되는 걸 좀 더 편하게들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저 같은 방식은 사실 어떻게 보면 경계가 없는 거거든요. 하려면 할 수도 있고 아니면 안할 수 있는, 그 폭이 되게 넓고 유연해서 자기가 할 일에 대한 명확한 상이 잡혀있지 않은 사람에게는 오히려 일하기 어려울 수도 있어요.

일반적으로 추측하기는 어렵지만 안정적인 일자리를 선호하는 경향이 커지면 커졌지 반대의 경향은 아닌 듯 해요. 그런데 달리 보면 이런 문제도 있는 것 같아요. 만약 비정규 일자리에 더 많은 급여, 복지혜택이나 사회 안전망이 제공된다거나 하면 과연 사람들이 그런 안정적인 일자리만 고집을 할까. 과감하게 추측해보자면 그건 아닌 거 같아요. 소위 말하는 복지 잘 되어있고 비정규 일자리 보호 잘 해주는 북유럽 같은 사회들과 견주어보면 말이에요. 정규직보다 비정규직에 두 배 이상 더 잘 보장해주고, 비정규든 정규든 기본적인 사회보험 혜택 다 주어지고 하면 저는 사람들이 일자리 안정성에 그렇게까지 집착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사실 조직이라는 건 아무리 진보적이고 열린 곳이라도 

기본적으로 조직이기 때문에 갖는 보수성, 체계 등이 있을 수 밖에 없어요.

 

– 신 : 지금 우리 사회에서 선택하기에는 너무 위험도가 높으니까 그런 거라는 말씀이죠?

– 김 : 그렇죠. 최소한, 급여를 두 배로 올리지는 않더라도 사회보장이나 사회안전망만 확실히 구축되도 좀 더 유연하게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우리나라는 아직 그게 안 되어 있으니까.

 

– 신 : 지금 어디 가면 자신을 뭐라고 소개해요?

– 김 : 여러 가지 활동 하고 있어서, 가는 곳 마다 거기 맞는 역할로 소개해요. 그때그때 달라요. 제일 많이 쓰는 건 아무래도 직업적인 명함이죠. 청년 혁신활동가라고 하는데 사람들이 잘 못 알아 들어서 그냥 ‘서울시 산하 기관인 청년허브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하고 말 때도 있어요. 틀린 말은 아니니까.

 

– 신 : 활동가라고 생각하고 사신지 얼마나 되신 거에요. 

– 김 : 저는 사실 아직도 제가 활동가라고 스스로를 호명할 수 있나에 대해 명확하게 잘 모르겠어요. 보통 우리가 활동가라고 할 때 갖는 상 같은 게 있잖아요. 그런데 제가 거기에 부합하는 사람인가? 어떤 면에서는 그런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고. 제가 관여하거나 참여하고 있는 활동의 내용이나 참여하는 밀도에 따라 층위가 다른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요즘 서울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협치 관련해서 보면, 거기서 참여하는 사람들은 저를 아마 활동가라고 생각할 것 같아요. 그런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단지 저를 파견한 성북동천이라는 주민 모임의 한 구성원이거든요. 물론 실무 역할을 좀 더 많이 하긴 하죠. 그런데 실무적인 활동을 많이 한다고 해서 그게 활동가일까? 그건 아닌 듯 해요. 각자 결합하는 밀도도 다르고 할 수 있는 일이 다른데, 내가 어떤 서류를 쓰는 일을 좀 한다고 해서 활동가라고 하긴 어려워요. 활동가라기보다는 실무자라고 하면 맞을지도요.

 

– 신 : 그러면 어떤 느낌이죠? 활동가라고 하기에는 내가 별로 치열하지 않아, 그런 건가요? 또는 굳이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이 활동가라야 해?

– 김 : 두 번째예요. 이건 꼭 활동가라고 호명되지 않은 사람이라도 마음을 먹으면 할 수 있는 일이에요. 시민단체 활동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하지만, 특히 지역 활동에 있어서 그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활동이라는 것을 활동가라고 호명되는 사람들만 하는 것이 아니고, 주민 누구나 하고 싶은 게 있으면 가능한 만큼 해보는 게 지역 활동의 기본이라고 생각해요. 동네에서 주민들도 그렇고, 활동가라고 호명되는 분들도 주민으로서의 당사자성과 활동가로서의 정체성이 굉장히 엄격히 구분되어 있다고 생각하시는 경향이 좀 있는 것 같아요. 그걸 비판하는 것까지는 아니지만 저는 그렇게는 생각하지 않거든요. 그러다보니까 활동가라는 호명을 받을 때, 혹은 나 스스로에게 질문할 때 명확하게 답이 안 나왔던 것 같아요. 지금도.

 

– 신 : 두 가지 전략이 있을 수 있죠. ‘시민 누구나 할 수 있어, 나도 평범한 사람이야’ 라고 하거나, ‘누구나 활동가일 수 있는 거 아냐?’ 이렇게 접근하는 쪽도 있는 것 같아요. 그 중에 앞쪽이라고 봐야겠네요.

– 김 : 1시민 1단체 가입, 1주민 1지역단체 활동. 이런 식으로 자기가 적을 두고 할 수 있는 영역을 찾아서 소소하게라도 참여하고, 심리적 보상감이나 자존감도 좀 획득하고 그러면 활동, 단체, 모임도 더 탄탄하게 운영될 수 있어요. 지금은 활동가의 소진 현상이 나올 수 밖에 없는게 역할 분담이나 책임의 분산 이런 게 잘 안되다 보니까 결국 상임활동가, 전임으로 일하는 사람에게 많은 역할이 가게 되는 것이죠. 일정부분 그런 사람이 필요한 건 사실인데, 모든 일을 다 그렇게 상설 조직이나 전담 활동가에게 맡기는 방식이 과연 앞으로도 유효할까요? 저는 아닌 것 같아요.

 

– 신 : 이전에는 유효했다고 보시는 거에요?

– 김 : 그런 편이죠. 저는 산업화시대를 살았던 사람은 아니지만 우리 부모님을 보면서 간접적으로 체험한 것이 있잖아요. 저희 부모님은 먹고 사는 문제 외에 다른 일에 에너지를 쓴다거나, 하다 못해 여가시간조차도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 잘 모르셨던 것 같아요. 이제 나이가 들어 좀 먹고살만해지니까 여가나 취미활동을 하게 된 거지, 제가 어렸을 때만 해도 아버지가 집에서 쉬시는 모습을 한 번도 제대로 본 적이 없거든요. 그런 사회에서 1시민 1단체 이건 말이 안되죠. 그럴 때는 정치인이나 시민활동가들이 일정부분 역할을 위임받거나 후원자/회원이 내는 후원금, 회비로 월급을 받으면서 일반 시민이 하지 못하는 역할을 책임지고 한다는 그런 암묵적인 동의 같은 게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시민사회 영역 활동에 대해서 많은 시민이 지지하고, 꼭 회원으로 가입하지 않더라도 심정적으로 동의하고 활동에 긍적적인 시그널을 보내왔던 건 그런 공감대가 있었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어느 시기부터 점점 그 체계로는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나 국면을 맞닥뜨리기 시작하다가 이제는 하나의 국면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전면적인 변화를 요구받는 상황에 온 거죠. 그동안 했던 방식으로 가다가는 시민 영역 활동 자체가 지속가능하지 않겠다는 변화의 한복판에 서 있는 것 같아요.

 

– 신 : 그게 언제쯤이라고 생각해요?

– 김 : 제가 지역 활동에 적극 참여하게 된 게 2013년인데, 그 전까지는 공공영역에서 활동한거라고는 2010년 말부터 서울 프라이드 영화제에서 자원 활동 했던 것 말고는 거의 없어요. 더 이전에는 환경운영연합에 회원가입해서 회비 내고, 월드비전이나 복지 단체 후원하거나 그런 정도였고.

 

모든 일을 다 그렇게 상설 조직이나 전담 활동가에게 맡기는 방식이 

과연 앞으로도 유효할까요? 저는 아닌 것 같아요.

 

– 신 : 그때는 다른 일을 하셨어요?

– 김 : 직업 활동을 하면서 살았었죠. 2007년까지는 장교로 군 생활을 했는데 20대 후반에 몸이 좀 아파서 2년 정도 사회생활을 못했고, 그 후에 성북동 와서 카페 하다가 2013년도에 지역 활동 하게 된 거에요.

 

– 신 : 그렇다면 카페 하실 때까지는 직접 활동은 없으셨던 거네요. 환경운동연합 회원일 때는 어땠어요?

– 김 : 거긴 대학생 때부터 회원이었어요. 회비를 내는 것만으로 암묵적인 공감, 동의가 충분히 가능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어느 순간 회비를 내는 것만으로는 뭔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냥 CMS를 등록해놓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일까 하는. 영화제 활동을 통해 그나마 제가 직접적으로 참여하는 경험을 하면서 깨달은 것 같아요. 그리고 지역 활동 하면서는 확실히 느꼈어요. 아 이게 기존의 방식대로는 안되겠구나라고.

 

– 신 : 그러면 회원으로만 있을 때 단체에서 좀 더 활동하고 싶다는 욕구를 자극하는 게 없었나요? 돈 내는 것 말고 같이 해야겠다거나 그런 자극이요 

– 김 : 환경운동연합을 예로 들면, 그 단체의 역량 범위에서 노력은 열심히 한 것 같아요. 소식지를 보낸다거나 참여요청 연락을 한다든가. 그런데 제가 그런 자극에 반응할 만큼 자각이 없었던 상태였어요. 노력은 했는데 제가 못받은 거죠.

 

– 신 : 그쪽에서 발신이 부족했거나 방향이 잘못되었거나 그럴 수도 있잖아요.

– 김 : 물론 발신하는 입장에서 노력의 내용이나 질을 평가할 수는 있겠지만, 그게 효과적으로 잘 이루어졌다고 해서 과연 내가 움직였을까 생각해보면 그것도 내가 준비가 된 상태여야 효과가 있는 것 같아요. 준비가 안되어 있으면 아무리 좋은 신호를 보내도 움직이기 어렵죠. 물론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는 문제긴 한데..

 

– 신 : 카페를 하신 이유는 뭐에요?

– 김 : 안이한 마음으로 그냥 카페 한번 해볼까 하는 거였어요. 지금 있는 성북동에는 달리 연고도 없었어요. 원래 2년 정도 명륜동에서 살았어요. 그래서 혜화동, 동숭동 쪽으로 찾아보다가 마땅한 게 없어서 성북동으로 와봤더니 마침 마음에 드는 공간이 있어서 계약하고 시작한 거에요. 그게 티티카카 카페예요. 2011년에 시작해서 2015년 초에 문 닫았죠.

 

– 신 : 카페 2층에 있던 문화도시연구소와도 카페를 열었기 때문에 접속하신 건가요?

– 김 : 그렇죠. 한 건물에 있다 보니까 오가며 인사하다가 알게 된 거죠. 뭐 하는 곳인지도 몰랐어요. 동네 사시는 주민들이니까 이웃관계였던 거지. 그런데 자주 오가면서 관계가 만들어졌죠.

 

– 신 : 그럼 동네 활동도 그렇게 자연스럽게?

– 김 : 그게 사실은 굉장히 인위적이었어요. 희망제작소에서 2012년부터 성북동 역사문화지구단위 계획 관련 지역 공동체 연구용역을 했어요. 그래서 희망제작소 뿌리센터 연구원들이 2012년 한 해동안 주민을 만나는 밑작업을 했는데 그 과정에서 서로 알게 되었어요. 일 년 뒤 그분들이 그동안의 작업을 토대로 성북동 마을학교라는 공동체 학습 과정을 열면서 저를 초대해주셨어요. 4주 과정을 듣고 지역에서 주민이 어떤 활동을 할 수 있는지 그림을 그려보는데 많은 분들이 참여해서 다양한 아이디어를 모았어요. 그때 모인 사람들이 주축이 되서 성북동천이라는 마을모임을 만들었어요. 게다가 마침 2012년에 문을 연 성북구 마을 만들기 지원센터에서 지원사업도 받았어요. 처음에는 아이디어만 가진 주민들이 모였는데 그렇게 실제 모임이 되기까지 희망제작소 연구원들의 역할이 컸죠. 모이고, 사업 문서화하고 그런 과정을 도와주셨어요. 그 후에 1년 정도 사업을 진행하고 나서부터는 연구원들은 손을 떼고 후원하는 역할로 물러났어요.

 

– 신 : 프라이드영화제는 어떻게 참여하게 되셨어요?

– 김 : 그냥, 당사자 활동으로서 참여했어요. 성소수자 운동 진영에도 모든 이슈를 아우르는 인권단체 같은 곳도 있고, 주제별로 접근하는 곳도 있어요. 저는 영화, 문화예술 관련 분야에 관심이 있다 보니까 영화제를 알게 되서 2011년부터 자원 활동가로 참여했어요. 그게 작년 상임활동으로까지 연결되서 4~5년 가까이 한 거에요.

 

– 신 : 그 활동은 자신에게 어떤 의미였어요? 사람들과의 교류인지, 아니면 영화제의 주제나 메시지를 외부로 발신하는데 있었어요? 다 있겠지만 어느 쪽에 중점이 있었나요?

– 김 : 처음에는 사실 자존감을 얻는 과정이었어요. 내가 성소수자로서 이런 역할을 할 수 있구나. 나 혼자 사는 게 아니라 커뮤니티 안에서 전체의 공리를 증진시키는 활동을 할 수 있구나 그런 차원에서 시발점이 되었어요. 영화에 관심도 있었지만. 사실 영화제에서 트는 영화가 마음에 들 때도 있지만 아닐 때도 많아서 대체 누가 작품을 선정하는지 의문을 갖고 있었어요. 그걸 풀고 싶어서 들어가 봤는데, 결국은 프로그래머의 영향이 크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그 과정에서 초반에는 이런 활동을 통해서 공적 역할을 한다는 자부심이 좀 컸고, 활동이 깊어질수록 내부에서 교류가 깊어지는 것도 좋더라고요. 어쨌든 사회에 다양성의 가치를 보여주고 확산하는 활동을 한다는 게 매력적이었어요.

 

– 신 : 거기서 동료를 많이 만나셨나요?

– 김 : 네. 그 전까지 성소수자 네트워크에서 인간적인 관계가 그렇게 많지는 않았거든요. 거기 활동하면서 좀 넓어졌던 것 같아요.

 

– 신 : 그게 지금 어느 정도로 중요해요? 인간관계에서?

– 김 : 10을 최고로 봤을 때 3정도?

 

– 신 : 그럼 아주 지배적인 건 아니네요? 그 당시는 좀 높았겠죠?

– 김 : 네. 하지만 그때도 5를 넘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제 삶의 여정을 돌아봤을 때, 프라이드가 어느 정도인가에 따라서 커뮤니티 소속감이 달라지거든요. 내 위치나 입장에 대한 확신이 취약할 때는 그런 관계 안에서 많이 채우고 싶은 욕구가 있지만. 나이를 먹고 사회활동을 하고 인간관계의 층위가 깊어지면서, 결정적으로 내 정체성에 대한 확신과 토대가 탄탄해지니까 그런 관계에 기대는 부분이 점점 축소되더라고요. 건강한 과정인 것 같아요.

 

– 신 : 그때 나머지 5는 어떤 관계였어요?

– 김 : 그건 제 개인적인 인간 관계들이었죠. 다행히 인복이 많아서 크게 어려움이 없었어요. 주위에서 제 정체성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주고 참견하지 않아서 거부당한 경험이 별로 없어요. 개인적인 인간 관계에서 얻은 지지나 기반이 확실했기 때문에 커뮤니티의 관계에 크게 기대지 않아도 되었어요. 사실 그렇지 못한 관계인 경우, 그러니까 가족이나 지인에게 공감받지 못하는 경우는 커뮤니티 내의 관계가 중요해질 수밖에 없거든요.

 

– 신 : 그 영화제의 동료들은 어떤 상태였다고 생각해요? 

– 김 : 각자 삶의 지향과 지지기반이 있는 상태에서 참여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꼭 성소수자만 모이는 것도 아니고 다양한 사람들이 섞여있어서 전반적으로는 자기 정체성과 존재에 대한 기반이 어느 정도 있는 사람이 더 많았던 것 같아요.

 

– 신 : 그런 사람들이 주가 되어야 활동이 가능한 걸까요?

– 김 : 현실적으론 그런 면이 있는 게, 일단은 자원활동이니까 자기 본업은 본업대로 하면서 시간을 배분해야 해서, 정말 원해서 참여하더라도 활동이 쉽지 않더라고요. 그런데 심리적으로 취약한 상태라면 더 어렵겠죠. 관심 있는 누구라도 같이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은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걸 채워줄 수 있는 힘이 영화제 조직 자체에 있는 건 아니다보니까 결국 남는 건 자기 기반이 탄탄한 사람이었던 것 같아요. 현실이랄까. 중장기적으로 보면 다양한 참여가 가능하도록 고민해봐야 할 지점인 것 같아요.

 

– 신 : 아까 얘기랑 좀 연결해서, 기존 운동방식 그러니까 회원으로 있던 단체 같은 방식이 시간이 흐르면서 어쨌든 좀 잘 작동하지 않는 것 같다고 하셨잖아요. 정규직 일자리 선호도를 떠나서 운동 자체는 기존 단체, 조직을 좀 더 탄탄하게 만들어서 과연 잘 될 것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다는 걸로 들었는데요, 그 부분에 대해 좀 더 얘기해주시겠어요?

– 김 : 단체가 회원과 공유하는 의제들이 있잖아요. 언젠가부터 점점 그 의제가 일상 속에서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그런 과제나 일, 그런 것에 대한 회원의 욕구나 기대를 점점 채워주지 못하기 때문이 아닌가. 너무 모든 활동이 광역 단위고 전국 단위 의제를 중심으로 되니까. 물론 그런 의제도 중요하죠. 예를 들자면, 지금 시국 관련해서 매주 집회가 열리고 많은 사람이 참여해서 문제제기를 하고 이러고 있긴 한데, 우리가 매일같이 전국적이고 광역 단위의 주제에만 매달려서 살 수는 없잖아요. 일상 속에서 해결할 일도 산적해있고 그런 것도 들여다 봐야 하는데… 중앙의 의제도 물론 다 맞는 말이고 필요한 일이긴 한데, 내가 매일같이 그 일에만 매달릴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욕구를 채워주는 접근, 이런 것이 얼마나 효과적으로 이루어졌나 하는 부분을 생각해보면 반성할 부분이 있죠.

국가든 시민사회든, 조직 자체가 굉장히 기존의 중앙집권적인 체계로 되어있어요. 예전처럼 공감대를 바탕으로 해서 역할을 맡기는 것은 사실 중앙집권적 체계에서 효율적으로 작동하잖아요. 그런데 지금은 이런 구성원 개개인의 욕구를 중앙집권적 체계에서 다 받아줄 수가 없고, 요구할 수도 없을 것 같아요. 결국 조직도 분산되고 분권되어야 하는데, 아직 그렇지 못해서 기존 조직이 회원 활동을 소극적으로 하거나 점점 더 멀어지고 있는 게 아닌가 해요. 저는 자치조직, 구성원들이 자기가 살고 있는 일상 속에서 모일 수 있는 그런 조직이나 모임이 안에서 만들어지고 그런 모임이 왕성하게 이루어지고, 그래서 중앙과 말단의 활동이 자율적으로 돌아가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고 도와주고 각자 할 건 하고 이런 체계가 갖춰지지 않으면 괴리는 점점 커질 거라고 봐요. 어느 순간 그 괴리감을 견딜 수 없게 되면 조직이든 운동이든 와해되지 않을까요?

지역 활동 하다보면 관제 동원 같은데 대한 문제의식이 많은데 생각해보면 구청만 주민을 동원하나? 아니거든요. 주민조직 안에서도 중앙 단위, 중심을 자처하면서 다른 참여자를 동원하는 그런 의식을 갖고 그런 방식을 답습하는 사람과 조직이 있어요. 어떻게 보면 그동안 보고 배운 게 그런 것들이니까 익숙한 것도 있고. 그런데 그런 식이면 이 작은 지역 조직에서도 괴리가 되는 거거든요. 주민들과 조직 지도부라는 사람들 사이에서 서로 보는 게 달라지는 거죠. 조직 안에서 그런 간극이 커질수록 활동은 약해질 수밖에 없고 구성원들은 이탈할 수 밖에 없는 것 같아요. 어떻게 하면 구성원들이 자기가 하고 싶은 활동을 할 수 있는 만큼 하도록 지원할 것인지 그런 체계를 잘 만들고 그 과정에서 성장한 사람들이 중앙 단위로 역할을 하고 참여하고, 광역 단위 의제들은 지역 단위에서 모아 담아내는 그런 체계로 나아가는 방법과 수단을 강구하는 게 앞으로 단체나 조직이 고민할 지점이라고 봐요. 저 역시 고민해야 하는 부분이죠.

 

우리가 매일 전국적이고 광역 단위의 주제에만 매달려서 살 수는 없잖아요. 

일상 속에서 해결할 일도 산적해있고 그런 것도 들여다 봐야 하는데…

 

– 신 : 본인은 지금 지역의 지도부신가요? 또는 지금은 아니라도, 점점 끌려 들어가고 계신가요? 

– 김 : 리더의 역할을 맡은 건 아니지만 의제를 선도하거나 생산하고 알린다는 측면에서는 주민이 볼 때 지도부라고 생각할 수는 있을 것 같아요. 꼭 장자 들어가는 직함 달지 않아도, 정보가 나오는 출구가 되는 것만으로도 지도부네, 하는 인식을 갖게 할 수 있는 거죠. 정보의 힘이 그렇게 크기도 하고.

 

– 신 : 기존 조직 안에서 변화를 할 것인가, 밖에서 새롭게 할 것인가의 문제도 있겠죠. 

– 김 : 제가 재작년에 청년허브에서 소셜작당모의학교 참여했는데요, 그런 얘기가 나왔어요. 기존 조직은 못 바꾼다고. 만약에 하고싶은 게 있으면 그냥 밖에서 새로 시작하는 게 더 효과적일 것이라고. 일정부분 공감하는 게 있었어요. 기존 조직 바꾸는 건 정말 어렵죠. 지금까지 조직이 왔다는 건 나름의 성과가 있기 때문에 온 건데 그 성공의 경험과 성과를 부정하고 부인한다는 건 정말 어려울 것 같아요. 제가 그 입장이라도 못 받아들일 것 같아요. 그래서 조직 밖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보면서 아, 우리도 바뀌어야겠구나 자극받는 효과도 있을 거라고 보고. 물론 내부에서 변화의 노력을 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그 역시 계속 하는 의미가 있고, 그게 안팎에서 일어나고 자극을 주고받으면서 기성 조직의 활동도 바뀔 수 있는 거죠. 양쪽 다 일어나면 좋겠는데, 개인적으로는 밖에서 하고 싶어요.

 

– 신 : 그렇다면 지금 조직 바깥에서 그런 운동의 불씨가 보이고 성장하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아니면 아직 시작단계라고 보시는지? 사실 2~30년 동안 이어져온 기존 운동의 성과가 굉장히 크고 그 효과성이 입증된 게 많기 때문에, 그걸 변화시키거나 영향을 주려면 굉장히 큰 힘이 필요할 거고요.

– 김 : 거의 그만한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2~30년. 지금은 시작단계인 것 같아요.

 

– 신 : 시작단계라면, 대략 언제쯤 시작되었을까요? 2008년? 아니면 더 최근? 서울시장 바뀌고 나서?

– 김 : 체감하기로는 서울시장 바뀌고 좀 느껴지는 게 있긴 해요. 단초를 당기는 데 역할을 했겠죠. 그걸 부인할 수는 없는 것 같아요. 공과에 대한 평가는 있겠지만, 아주 근본적인 시작점은 아닐지라도 최소한 그걸 가시화해서 드러내는 역할을 한 건 있으니까. 30년보다는 좀 더 단축될 수 있겠지만, 그동안 일어난 현상이나 성과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키려면 그만한 시간이 들지 않을까 싶어요. 특히 성공적이라고 자평하는 성과일수록 그만큼 오래 걸리겠죠. 제가 그런 면에서는 좀 보수적으로 접근해서 그런 거 같아요. 차를 브레이크를 밟아도 속도가 주는 데는 시간이 걸리잖아요. 더디긴 할텐데 어쨌든 브레이크를 밟고 신호를 주면 어느 순간은 멈출 때가 있을 거고, 그때 다시 엑셀레이터를 밟으면 그 방향으로 나갈 수 있겠죠. 개인적 차원에서 10년 20년은 금방이지만 어떤 사회현상이나 조직 자체를 바꾸는 데는 길다면 긴 시간이죠.

 

– 신 : 운동에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사람들 중에는 기존 운동을 해온 사람이 많아요. 그 욕구가 뭘까 궁금한데, 아마도 수혈하고 싶은 욕구가 많은 것 같아요. 기존 운동으로 예전만큼 뭔가 잘 안되니까 새로운 얘기를 하거나 다른 시각을 가진 사람을 수혈받고 싶어 하는 게 아닌가. 단체가 자력으로 변화하기는 어렵고, 그래서 밖에서 뭔가 좀 할 것 같으면 데려다가 의미부여를 직접 해주고, 그래 너 활동가야, 그래 운동 이렇게 해야지라고 알려주는 역할을 자꾸 하고 싶어하는 게 아닌가? 저는 그런 의심을 좀 하는데요, 이런 생각 혹시 해보신 적 있으세요?

– 김 : 기존 단체에 초대받거나 그런 건 별로 없어서 잘 모르겠어요. 그런데 수혈은 실제 수혈도 그렇잖아요. 남의 피가 들어와서 내 일부가 되잖아요. 그래서 기본적으로 수혈은 결국 아무리 꾸준히 외부의 피가 들어온다 하더라도 나라는 인체조직 자체를 바꿀 수 있는 행위는 아닌 것 같아요. 그냥 유지시켜주는 거지. 자기 자신을 바꾸려면 스스로 달라지는 것 말고는 답이 없지 않을까요? 만약에 못 바꾸고 더 이상 한계가 왔다 그러면 그냥 끝내는 게 맞는 거죠. 새로운 미션을 가지고 그 미션에 동의하는 새로운 사람들과 함께 만드는 게 맞는 거 같아요.

하지만 아까 얘기한 것처럼 성과가 있고 역사가 있는 상태에서 새로운 걸 한다는 건 정말 어려운 거잖아요. 그만큼 애정이 있으니까 그걸 닫을 수 없고. 저도 안 그래도 오늘 아침에 그런 생각을 했는데요. 동네에서 잡지를 만들고 있는데 8호가 나와요. 이게 8호까지 올 거라고 전혀 생각을 못했었는데, 막상 여기까지 오니까 10호까지 갈 수 있을 거 같은 거에요. 왠지 더 할 수 있을 거 같더라고요. ‘이러다 10년 가는 단체 되는 거 아냐?’라고 생각했었는데 지금 얘기하다 보니까 위험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싶네요. 이 모임은 구성원이 명시적으로 합의하고 지켜온 가치가 있어요. 제가 자주 쓰는 말이기도 하고요.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을 때까지만 하자. 의무감으로 하지 않고, 하고 싶은 만큼 하는 거다. 그래서 모두가 하고 싶지 않아지면 끝. 근데 이게 몇 번, 고작 8호 나온다고 10년 갈 생각 하는 거 보면 욕심이나 성과에 대한 집착 같은 게 어찌 보면 인간의 본성인 건가, 활동하는 사람이 갖는 본성인가 싶은 생각이 번뜩 드네요. 경계해야겠어요.

 

– 신 : 경험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건, 결국 세대가 바뀔 수밖에 없다는 것일까요? 시간이 2~30년 걸린다면 말이에요.

– 김 : 그런데 단순히 세대만 바뀐다고 되는 건 아닐 거에요. 새로운 세대가 새로운 생각을 해야 하는 거죠. 물리적으로 바꾸면 된다는 건 안이하고 위험한 생각이죠. 끊임없이 자각하고 새로운 생각과 인식을 계속 전파하고 공유하지 않으면 별반 달라지지 않을 것 같아요.

 

만약에 못 바꾸고 더 이상 한계가 왔다 그러면 그냥 끝내는 게 맞는 거죠.

 

– 신 : 아까 질문하긴 했는데 주변에 그런 새로운 생각을 갖고 시도하는 사람이 좀 보이세요? 

– 김 : 보이기는 하지만 아직 이 정도면 새로운 세상이 오겠네 하는 느낌이 드는 정도는 아니에요. 무대에 이제 막 등장한 정도? 지역 활동 특성이랄까. 시민사회도 마찬가진지는 모르겠어요. 제 나이도 적은 편이 아닌데 지역에선 여전히 어린 축에 속하고 밑에서 받쳐줘야 하는 입장이라. 보면 되게 장급이 많아요. 30대 정도에서 활동하는 사람이 드물더라고요. 어리다고 해야 40대, 그 다음은 5~60대에서 70대도 많고. 나이 자체가 나이만 가지고 기성세대 여부를 판단하긴 어렵겠지만, 주로 나이 드신 분들이 가진 사고방식, 활동 방식이 낡은 면이 있기는 해요.

 

– 신 : 그분들은 어떤 경로로 성장하신 분들인가요?

– 김 : 마을 만들기 사업을 통해서나, 주민자치위원, 통반장 같은 경로로 등장하신 경우가 많죠. 모두가 그런 건 아닌데 경향성을 부정하긴 어렵더라고요. 그분들과 교류할 때 갖는 어려움 피로감 분명 있어요. 그래도 소통의 끈을 놓을 수 없는 건 그 분들을 움직이지 않으면 지역 자체가 바뀌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그분들 강제로 은퇴시키고 젊은 사람들 끌어들이면 그게 수혈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안 되는 거 같아요. 아무리 저 같은 사람이 이 판에 들어온다고 해도 판 안에서 계속 활동하는 사람들의 인식이 조금이라도 바뀌지 않으면 물과 기름처럼 따로 놀거고, 결국 각자 자기 방식 안에서 작동은 하겠지만 이 전체 틀이나 지역이 달라지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함께 움직이면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고 낡은 인식과 사고방식을 고수하는 분들에게 ‘아, 어쩌면 내가 생각하는 게 100% 옳지 않을 수 있겠구나’ 또는 ‘아, 저런 방식도 가능하겠구나’ 정도의 인식을 갖게 만들지 않으면 결국은 저 같은 사람이 하는 얘기는 저만 하고 끝나는 거죠. 자기 위안일 뿐이에요. 그걸 위해서 이런 활동을 하고 있는 건 아니거든요. 조금이라도 지역을 변화시키고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만들고 싶다면 한 단계 더 나가야 해요. 그러다보니까 해야 할 일도 많아지죠. 아까 얘기한 여러 활동에 발을 담그고 역할을 하고, 발언에 대해 책임지는 행동도 하게 되고.

 

– 신 : 한 곳에 적을 두고 오래 계신 건 아니지만, 대신에 여러 층위의 조직을 경험하신 셈인데요. 조직들에 대한 생각이 있다면요? 특히 협동조합 활동 많이 하셨는데..

– 김 : 협동조합 절대 만들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해보니까 나에겐 참 민주주의가 맞지 않는구나. 내 안의 독재적 성격을 인정해야겠구나.. 가장 못 견디겠는 건 설득하고 그런 게 아니라 왜 이 사람들은 회의 나와서 발언만 하고 일상 속에서 조직 구성원으로서 활동하고 참여하지 않을까? 민주주의는 참여로 작동하는 시스템인데, 총회 와서만 역할을 하려고 하고. 그러면 너무 꼴 보기 싫은 거예요. 발언에 대해 행동으로 책임지지 않을 사람들이 주장하는 걸 못 견디겠어요. 그 부분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요. 이게 비단 이 조직의 문제만은 아니에요. 회의 자리에서 말만 하고 책임지지 않는 사람이 다른 곳에도 너무 많아요. 자기 일이 많다는 이유로. 그렇게 말하면 다른 사람은 안 바빠서 일하는 건지, 솔직히 저 같으면 부끄러워서 그렇게 말 못 할 것 같아요. 책임감 때문에 거절 못해서 회의 참석한다, 그럴 거면 안하는 게 나아요. 겨우 오랜만에 회의 한번 와서 너희들 왜 이렇게밖에 못했냐 말할 거면 그냥 안 왔으면 좋겠어요. 스스로 활동가라고 자임한다면 적어도 자기 말에 대해서는 행동으로 책임지는 그 정도 자세는 갖춰야 한다고 생각해요. 무슨 자문회의도 아니고 같이 하는 자리인데 유체이탈 화법이 청와대에만 있지 않더라고요.

 

– 신 : 그런 분들이 점점 많아진다고 느껴요?

– 김 : 그 보다는 제가 활동하면서 계속 확인하게 되는 것 같아요. 동네든 시 전체든 어디 가나 그런 사람들과 마주쳐요. 때로 절차가 미흡하다는 이유로 그동안 어렵게 해온 일 자체를 부정하고 엎어버리는 그런 사람. 열심히 해온 사람들의 기운을 확 꺾어놓고는 옳은 소리 했다는 자부심을 갖더라고요. 그런 태도는 자발성을 핵심 가치로 하는 조직에서 자발성의 근간을 허물어뜨리는 거에요.

 

– 신 : 중요한 포인트인 것 같아요. 기존 단체에서 새로운 세대가 적응하기 어려운 게, 가치를 떠나서 직위가 높아질수록 실무를 하기보다는 말을 하는 입장이 되잖아요. 예전에 어떻게 했든 그걸 떠나서 현재는 신입 활동가가 뭔가 하면 그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말만 하니까 좌절하거나 반발하는 경우가 생기고.

– 김 : 논의할 시간이 충분치 않으니까 그냥 넘어갈 때가 많은데 정말 까놓고 그 부분만 놓고 한번 토론해보고 싶어요. 지금 이게 절차, 원칙, 논리적으로 옳고 그른 거 지적하는 게 중요하냐, 함께 하는 과정,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해서 만들어 가는 거, 그게 더 중요하냐. 적어도 그런 토론 통해서 제가 납득이라도 하고 싶어요. 너무 답답하거든요. 그런데 그런 분들은 또 바쁘다고 안 오시죠. 바쁘다는 것 그 자체는 이해해요. 활동에 참여하는 사람이 너무 적으니까. 사회가 시민을 이런 활동에 참여할 여유를 주지 않으니까. 지배계층, 통치자들이 멋대로 사회를 지배할 수 있는 환경이죠. 이 문제가 타파되지 않으면 참 어려울 듯 해요. 이런 상태로 계속 과도기적으로 가면 열심히 하는 사람들만 희생하고 소진되고 결국 포기하고 말 거에요. 그런 면에서 저는 기본 소득이나 시민 급여 같은 의제들 동의하고 지지해요. 참여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기반을 마련해야 해요.

 

스스로 활동가라고 자임한다면 

적어도 자기 말에 대해서는 행동으로 책임지는 

그 정도 자세는 갖춰야 한다고 생각해요.

 

– 신 : 그걸 위해서라도 지금 바쁘게 일하는 사람들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세요? 둑을 막는 역할, 이 둑을 꼭 막아야 하는 건지? 

– 김 : 둑 얘기하니까 생각나는데요. 제가 활동하는 거 보고 누가 너 때문에 세상이 안 망한다. 한번 둑이 무너지고 망해야 사람들이 새 판을 짤 건데 너 같은 애들이 그걸 막고 있다고 말했어요. 그땐 좀 당황스러웠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어떤 면에서 그런 말씀 하신건지 이해가 되요. 뭐, 어쨌든 이왕 에너지 쓰고 일하는 활동가라면 말만 하지 말고, 이름 걸고 발 걸치고 있는 활동에는 적어도 자기 역할 충실히 했으면 해요. 그게 안되면 본인 성과 낼 수 있는 본인 일에만 충실하면 좋겠어요.

 

– 신 : 위계적인 구조에서도 공감할 수 있는 문제겠어요. 

– 김 : 수직적인 위계가 일으키는 문제일 수 있죠. 수평적으로 각자의 활동이 잘 펼쳐지고 함께 해야죠. 나이가 들고 먹고 사는 문제에 골몰하다보면 실무보다는 입으로 하는 활동으로 옮겨가는 경향이 나타나는 듯 해요. 사회적 위계의 중요한 요인인 가부장제가 미치는 영향이기도 하다고 봐요.

 

– 신 : 어느 정도 활동해오신 과정은 살펴본 듯 해요. 자기 생각을 정리하고 세상을 이해하는 일종의 공부 같은 건 어떻게 하세요?

– 김 : 저는 혼자 책을 읽거나 하는 것도 좋지만, 사람들과 함께 이야기 나누고 토론하는 게 좋아요. 2013년, 14년 즈음 스터디 모임을 굉장히 열성적으로 많이 했는데 그때 힘으로 지금까지 해온 것 같아요. 당시 그렇게 열심히 한 건 스스로 자양분이 필요했던 것 같아요. 공동체와 사회적 경제 관련해서 많이 공부했어요. 저희 카페에서 공부해보자고 모인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시작했어요. 관련된 책을 같이 읽고 토론하는 식이었어요. 책 목록을 지금 다 기억하진 못하는데 사회적 경제 관련해서 일본이나 유럽에서 나온 책들.

 

– 신 :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책은? 영화나 드라마 같은 건 안 보시나요?

– 김 : 일단 문학은 잘 안 읽구요. SF는 영화로는 봐도 책으로는 잘 안보고. 드라마는 챙겨 보는 거 못해요. 귀찮아서. 음악은 들리면 듣고.

 

– 신 : 일상이 되게 고요하시겠어요. 입력이 많지 않네요.

– 김 : 문화예술이나 창작, 만드는 행위에는 관심도 별로 없고 잘 하지도 못해요. 시간 날 때는 그냥 시간이나 자원을 소비하기만 하지 생산하는 건 거의 없는 듯 해요. 여유가 생길 때는 세상에 어떤 것도 보태지 않고 그냥 가만히 시간을 흘려보내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여행을 좋아해요. 지난해 혼자 길게 여행 갔었는데 내년에 다시 가볼까 해요. <끝>

_ 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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