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공익활동가포럼] 시민들이 주권자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장을 만드는 일

** 출처 : 정보연대


오기 전에 선생님의 단체 활동이 아닌 개인적인 이야기를 찾아보려고 인터넷 검색을 해봤는데 거의 나오지 않더라구요.

제가 그런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요. 그리고 최근 몇 년 동안은 밖으로 드러나는 일은 거의 안하고 있어요. 최근 시국 관련해서 모든 사람들이 거기에 힘을 보태도 부족할 상황이라는 건 분명한데 현재는 촛불 시민들의 열망과 분노를 표출시킬 수 있는 장을 만드는 것 중심이잖아요. 행진이나 문화제도 그런 취지일 테고요.

근데 제가 느끼는 문제의식은 좀 달라요. 촛불광장과 같은 큰 공간에서 목소리를 내는 것은 중요한 일인데 시민들은 관객으로 온 게 아니고 주권자로 오신 거죠. 그런데 우리에게는 주권자의 의사를 반영할 수 있는 구조가 없어서 이런 상태에 오게된 것 같아요. 주권자가 관객이 된 정치문화가 일반화되어서 권력을 자기들끼리 휘두르는 상황을 보고만 있을 수 없었던 거죠. 그리고 이 과정에서 운동 그룹이 대중과 멀어진 측면도 있구요. 이런 와중에 몇몇 사람들이 규모가 작더라도 시민들의 의견을 정책에 반영할 수 있는 구조가 무엇일까 고민하기 시작했어요. 지금 주권자 의사가 박근혜의 퇴진이라는 것은 알겠는데 그 이상 뭐가 있을까, 구체적으로 어떤 퇴진이고, 퇴진 이후에는 어떻게 되는 거며, 그 이후 대한민국은 어떻게 가는 거냐는 이야기가 필요하다는 말들이 있었죠.

그래서 광장에서 토론회를 한두 차례 하고 있어요. 앞으로도 계속 해나갈 건데 규모가 크진 않아요. 왜냐면 분노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기 때문에 아직은 작은 규모로 진행되는 토론은 소소하죠. 근데 머리를 맞대고 이야기하면 참 소중한 말들이 나와요. 그리고 토론회에 오신 분들의 만족도가 굉장히 높아요. 자기는 지금까지 집회에 참여해서 소리만 질렀는데 내 생각을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가 있어서 좋았다는 이야기들이 있어서 2차 토론회까지 했고 곧 3차 토론을 시작할거예요. 하여튼 지금 광장에서 이런 일을 하고 있어요. 어쩌면 낮은 목소리일 수 있지만 반드시 들어야할 주권자의 목소리를 들어보자, 주권자들이 말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 보자 해서 하고 있어요. 아까 말씀드렸지만 최근 몇 년간은 이것 말고는 대외적으로 한 게 거의 없어요. <인권재단 사람>에 들어온 이후에는 특히 더 없을 거예요.

제가 마이크 잡고 하는 일을 요즘 잘 안하는데요. 제가 40대 중반쯤 되었을 때 고민한 게 있어요. 한 10년 넘게 외부 활동을 해서 어지간하게 얼굴이 알려진 사람들은 뒤로 빠지고 3년에서 5년쯤 되는 중견활동가들이 조금 부족하더라도 대외적인 활동을 통해 더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는 게 좋겠다는 거예요. 그때부터 그런 의도가 좀 있었구요. 지금 재단에서도 인터뷰 같은 건 웬만하면 담당자가 직접 하라고 해요. 나이도 이제 30대 중후반인데 못할 것도 없죠. 좀 알려진 분과 하면 낫겠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어차피 저 같은 사람도, 박래군 소장님도 20대, 30대에는 다 똑같았어요. 현재의 리더들도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성장해왔다고 생각해요. 그런 사람들이 더 많아지면 좋은 거죠. 이번에 어찌하다 보니 밖으로 좀 돌고 있긴 한데 거기서도 웬만하면 얼굴 안내밀고 기획하고 진행하고 이런 일들만 하려고 해요.

 

광장에서 토론회를 개최한 이유,
규모가 작더라도 시민들의 의견을 정책에 반영할 수 있는 구조가 무엇일까?

 

말씀 하신 것 중에 제가 여쭤보고 싶은 게 2가지가 있네요. 얼마 전에 지금 시기에 활동가나 시민사회에 필요한 질문은 무엇할까에 관한 질문워크숍을 한 적이 있어요. 그 워크숍에서 나왔던 이야기가 최근의 시국 상황과 관련해서 광장이라는 공간에서 활동가의 역할이 도대체 무엇일까였어요. 예전의 선배들 같으면 앞에서 주도하고, 깃발을 들고, 사람들을 조직해서 우리가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주장도 했을 텐데 지금은 광장에서 그럴 수 있는 상황이 아니거든요. 지금은 시민들이 이슈에 관한 정보 습득도 훨씬 빠르고 방식의 다양성으로만 봐도 훨씬 풍부해요. 이런 상황 속에서 광장에서의 활동가 역할은 무엇일까요?

지금과 같은 시민사회운동의 흐름이 만들어진 것은 90년대 초, 87년 체제가 만들어지고 난 후 다양한 요구가 사회적으로 분출되고 노동운동이 비약적으로 성장한 시기였죠. 제가 보기에는 90년대 초반을 넘어가는 시점에 한국의 시민사회에 대한 고민도 시작된 것 같아요. 근데 그때도 그랬지만 시민사회라고 하는 개념이 불분명해요. 거의 모든 단체에 전업활동가가 있고, 시민들은 그 단체에 후원을 하거나 회원으로 참여하는 것이 일반적인 시민사회운동 조직 형태잖아요. 근데 시민들이 회원이다, 후원자다고 하지만 본인이 직접 자기 의사를 통해 단체 운영에 참여하고, 방향을 잡아가고, 정책을 실현하는 구조는 아니죠. 대부분 전업활동가가 중심이 되고 나머지는 후원인으로 지지하는 정도였죠. 그런 방식이 벌써 30 년을 온거예요. 최소 25 년간 지속되었어요. 

그 시기 동안 그런 방식의 집중된 시민사회운동 조직의 활동이 큰 효과를 본 건 사실이예요. 근데 아쉬운 것은 25년이 지난 지금 참여했던 시민들은 후원인 정도로만 남아 있고 나머지는 전업활동가가 중심이 된 ‘활동가 조직’이 된 것 같아요. 노동운동도 비슷해요. 당시에는 노동자 조직이 만들어진다고 할 때 밑에서부터 만들어져 올라와서 그 힘으로 민주노총을 포함해 여러 노동조직들이 건설됐지만 이후 노동운동은 IMF 이후 신자유주의가 물밀듯이 밀려들어오는 것에 대응하지 못한 채 대중과도 괴리된 운동으로 진행된 게 사실이죠. 그게 벌써 10년을 넘으면서 노동운동에 대한 신뢰가 많이 떨어졌어요.

그게 우리가 이명박, 박근혜를 거쳐온 이 시기를 겪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 중 하나인거 같아요. 시민운동과 민중운동, 노동운동이 함께할 대중들과 상당히 멀어지는 과정이 지난 20년간 지속되어왔죠. 힘을 발휘해서 치고 나갈 때도 있긴 했지만 대중들의 속도나 정서와 함께하지 못한 지점이 있었어요. 바로 이 지점에서 활동가들이 ‘그럼 우린 뭐하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는 거죠. 그리고 이제 깨닫고 있는 것 같아요. 현 상황에서 시민들의 움직임을 활동가가 통제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을 텐데, 그들을 지도한다는 말은 이미 말도 안 되는 소리구요. 그 안에 들어가서 그들과 함께 방향을 잡거나 큰 흐름을 만들어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예요. 활동가분들이 다들 그걸 힘들어하죠.

저는 ‘활동가는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질 때 ‘그 시민들이 누구냐’에 대한 분명한 인식이 필요하다고 봐요. 시민사회운동 조직이나 활동가를 후원하는 지원자냐, 아니면 그들이 곧 민주주의의 주권자냐, 어쩌면 개별적일 수 있겠으나 활동가들이냐 생각해봐야 하는 거죠. 그들이 집단적으로 의사를 표출하면서 거대한 힘을 보여주고 있는 지금은 그 시민들이 주권자로서 무슨 역할을 할 것인지에 대한 장을 만드는 것, 그게 저는 활동가 역할일 것 같아요.

공론의 장을 만드는 것, 판을 까는 것은 기술적인 문제기도 하지만 물자를 동원하고 적절하게 배분하는 문제이기도 하죠. 그런 일은 활동가들이 숙련되어 있어요. 숙련된 활동가들이 있으니까 그렇게 100만 명이 모이는 집회가 진행되잖아요. 저는 그게 판 까는 것 중 하나라고 생각하거든요. 근데 지금 광장에서의 판은 기존의 방식과 하나도 다르지 않아요. 대규모 군중을 모아놓고 연설을 해요. “제가 지금 하는 말이 여러분 의견과 같죠?”라고 물으면 “와” 하고 함성 지르는 방식이 하나도 다르지 않아요. 언젠가는 각자의 생활이 있고 바쁘고 정신없이 살다보면 이렇게 올라온 열기는 분명 사그라들 시기가 오거든요. 저는 그 시기에 광장에 나오지 않은 시민들과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해 지금 이야기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노동운동을 하는 사람에게는 파업이 가장 좋은 학교, 민주주의 학교다고 하잖아요. 저는 이 광장이 그 학교라는 생각이 들어요. 근데 그 학교에서 촛불.만 들다가, 소리만 지르다가, 행진만 하다가 돌아가는 게 아니라 광장에 나와서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도 대화를 시작하고, 자기의 문제의식도 공유하고, 놓쳤던 부분에 대해서도 습득하는 과정이 필요하죠. 그리고 이 과정에서 배운 것들을 내 주변 사람들과 어떻게 이야기할까를 고민하고 시도하다보면 그게 민주주의 학교인거죠. 그 과정에서의 경험들은 시민 개개인의 삶에 좋은 자양분이 되지 않을까 생각하거든요. 지금 당장은 어려울 수 있지만 규모가 큰 집회의 광장만이 아닌 다양한 광장이 필요하고 그 속에서 나온 이야기들이 지금 시국과 어떻게 연관되는지를 인식하게 하는 게 필요하구요 

집회에 가면 관성화된 습관 같은 게 보이기도 하죠. 소수자 비하나 차별, 혐오적인 발언들을 하는 분들이 가끔 있어요. 마이크를 잡으신 분들 중에서도 그런 발언을 하는 분들이 있어서 논란을 빚어요. 시민들과 이야기해야 할 부분이죠. 지금 중요한 것은 박근혜 퇴진이니까 넘어갑시다라고 무마하는 것이 아니라 집회를 어떻게 민주적으로 운영해가고, 모아진 의견들을 민주적으로 전달하고, 그걸 민주적으로 실현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하는 거죠.

 

시민들이 주권자로서 무슨 역할을 할 것인지에 대한 장을 만드는 것, 
그게 저는 활동가 역할일 것 같아요.

 

그런 발언들 때문에 페이스북에서도 많은 논쟁이 있었죠. 지금도 진행중이구요.

엄청나죠. 근데 그게 광장에서는 안 나오잖아요. 광장에서는 큰 흐름에 쓸려가 버려요. 근데 광장의 민주주의는 분노와 열기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차분한 이성도 담을 수 있다고 보거든요. 그래서 저는 지금과 같은 시국에서 활동가는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다른 방식으로 해보면 주권자인 시민들의 이성적인 의견들을 어떻게 광장에서 논의되게 할 것인가예요. 논의의 장 안에서 끼어들어서 내 생각대로 유도하려고 하면 안되구요. 그냥 다양한 장을 펼치는 역할을 활동가들이 했으면 좋겠어요.

 

다양한 장을 만드는 역할을 이야기하셨는데 그건 운영자, 조력자, 지원자 역할이잖아요. 만약에 지금 광장에서의 요구가 수용되고 어느 시점에 정리가 되어 시민들이 일상으로 돌아갔을 때도 말씀하신 그런 역할은 활동가들의 새로운 역할로 유효할거라고 생각하시나요?

그렇죠. 여전히 유효하다고 봅니다. 그런 역할을 잘하는 그룹들이 있어요. 풀뿌리운동이나 마을운동 하시는 분들이 그런 분들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언뜻 생각해보면 저 사람들은 뭐하지? 그런 생각이 들어요.

 

지역에서, 마을에서 사람들 만나고 다니죠.

그죠? 그럼 어떻게 먹고 살지? 이게 제 머릿 속의 경직된 생각이죠. 활동가가 단체에서 일을 하면 단체 후원금으로 활동비를 받고 전업활동가로 일하는 것이 제 머릿 속에 박혀있는 생각이예요. 사실은 저도 이 부분을 고민하고 있는데요. 그런 전업 활동이 아닌 다른 활동이 분명히 존재한다고 보거든요. 근데 풀뿌리운동이나 마을운동하시는 분들은 제가 생각했던 것들을 이미 하고 계시더라구요. 그래서 그런 역할을 단체 내에서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은 거죠. 조건은 더 좋죠. 그래서 후원인으로만 존재하는 회원이 아니라 수많은 회원 모임을 만들어내고, 그 회원들을 찾아가고, 동네에서 사람들 만나듯이 회원들이 관심 가질만한 사안을 가지고 연락해서 만나면서 활동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 부분이 점점 더 강화되어야죠.

단체마다 회원들과 함께하는 활동의 영역을 늘려나가야 한다고 생각은 하지만 지금 당장 논평과 성명서 써야 하고, 기자회견도 해야 하고, 거리로 나가야 하는데 그럴 여력이 될까라는 고민을 하고 있으면 이미 그 일은 못할 것 같아요. 단체들이 회원들도 나오기 어려운 길거리 서명운동을 하는 대신에 우리 회원들한테 서명하게 하고, 그 자리에 일부러라도 찾아가보고 하면 어떨까요? 당장 시급한 현안이야 있겠지만 계획을 세워서 회원들과 무엇을 할 것인가, 시민들과 무엇을 할 것인가를 하나하나씩 만들어가면 좋지 않을까 생각해요.

 

아까 선생님께서 말씀 하신 것처럼 우리가 알고 있는 규모 있는 시민사회운동조직의 형태라는 게 20년~30년 전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잖아요. 회원총회가 있고, 공동대표가 있고, 이사회나 운영위원회, 사무국이 있고, 사무국에서 일하는 활동가들이 있어요. 그리고 그 활동가들은 전업활동가로서 시민들의 응원을 받아서 대신 목소리를 내주는 중간다리 역할을 해왔다고 보구요. 사실 오래 전부터 회원참여라는 이름으로 회원들과 함께 하려는 움직임은 있었죠. 근데 조금 전에 말씀하신대로 공론의 장을 만들거나 회원들이 뭔가 할 수 있게 도와주는 역할이 지금 시기의 활동가 역할이라고 한다면 조직의 구조도 변해야 하는 시점이 아닐까요?

그 부분은 치열한 토론이 필요해요. 실제 회원수가 1만명 되는 조직들도 보면 활동에 참여하는 회원 수는 굉장히 적어요. 어떤 단체는 아예 회원이라는 개념을 갖고 있지 않고 말 그대로 후원인으로만 규정해놓은 곳들도 있어요. 어떤 단체는 회원들의 활동을 단체의 중요한 정체성으로 인식하고 있는 곳들도 있구요. 양쪽 모두 장단점이 있을 텐데 회원이 많이 참여하는 단체일수록 덜 역동적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느낌이 있어요.

 

회원 참여가 많을수록 덜 역동적이라구요?

회원 참여가 많은 곳, 그런 활동을 중요시하는 단체일수록 좋은 말로 하면 조용하면서도 차분하게 가는 측면이 있고, 회원 참여가 적은 곳일수록 활동가 중심이이서 더 역동적이고 외부로 드러나는 게 많은 것 같아요. 이게 딜레마일 수 있는 게 결국 활동을 하다보면 많은 회원들이 지지를 하고 그 회원들의 후원금이 단체를 운영하는 재정 기반이 되는데 마을운동 하시는 분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게 쉽지 않은 거죠. 전업활동가들이 마을 안에 들어가서 발 빠르게 움직이면서 일하기는 굉장히 어려운 구조더라구요. 이 지점에서 전업활동가들이 선택을 해야 하는데 아무래도 많은 후원자들에게 드러날 수 있는 활동 방향으로 가게 되죠. 후원자들이 ‘내가 후원하는 단체가 이런 일을 하고 있구나’라는 걸 인식시킬 수 있는 활동에 더 집중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게 딜레마죠.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에서 젊은 활동가 인식조사를 한게 있어요. 내용 중에 자신은 큰 의의와 마음을 갖고 왔는데 급여 수준 때문에 이 상태로 언제까지 일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말이 있더라구요. 결국은 조직의 일원으로 자기가 존재하는데 그럼 조직이 성장하는 것이 자기 활동의 지속성을 보장하는 전제가 되요. 조직의 성장은 곧 많은 후원인들과 그 후원인들로부터 나오는 회비의 증가로 이어져야 하죠. 재정이 안정되어야 한다는 건데 결국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계속 외부에 노출되는 활동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거예요.

어떤 활동가가 이런 이야기도 했어요. 자기 단체 대표가 10년 전부터 지금까지 계속 대표라고 해요. 자기도 10년째 일하고 있지만 대표까지는 생각할 수도 없는 상황인거죠. 이걸 개인적인 욕심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텐데 제가 보기엔 마냥 무시할 수 없는 욕망이라고 생각해요. 뭐 부처님도 아니고 본인이 인정받고자 하는 욕망, 인정받는 일로 자부심과 자긍심을 느끼는 건 활동의 큰 동력이죠. 모든 사람에게 먹고 살아야 하는 문제와 자기가 사회에서 보여지는 위치가 무관하진 않거든요. 하는 일이 의미가 있으니 그걸로 된 거 아니냐고 말하는 것은 너무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 아닐까요?

지금 나이가 50살쯤 되신 분들은 운동을 시작할 때부터 수십 년이 지나면서도 그런 생각을 안했거나 못했던 것 같아요. 그 시기는 앞만 보고 달려야 했던 시기였고, 좋은 말로 하면 인생을 걸고 운동을 해왔고, 그게 활동가의 자세이고 삶이라고 생각해왔을 거예요. 그렇지 않은 삶은 생각하기도 어려웠구요. 그 사이에 가족을 포함해 많은 것들을 희생시키기도 했죠. 그런 뒷받침 없이 올 수 있었겠어요? 근데 요즘에는 막 활동을 시작하는 활동가들이 처음부터 그걸 고민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시작하는 기준선이 달라서 본인이 할 수 있는 것, 없는 것이 구분되죠. 할 수 없는 것이 주어졌을 때 부담감이 엄청 커지구요. 요즘 젊은 친구들 보면 저희 때보다 좋은 말로 하면 굉장히 합리적인 판단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이런 합리적인 판단이 조직 내에서 반영이 되면 시너지 효과가 일어날 텐데 그렇지 않을 때가 많은 거죠. 조직의 리더 입장에서는 아까 말씀드렸지만 그렇게 되려면 재정이 안정적이어야 하고 회원수가 많아야 하는데 그걸 이야기하기 시작하면 활동가들에게는 큰 부담이 되죠.

 

본인이 인정받고자 하는 욕망, 인정받는 일로 
자부심과 자긍심을 느끼는 건 활동의 큰 동력이죠. 

 

후배 활동가들이 가끔 이런 질문을 해요. 저도 활동한지 어느덧 15 년이 넘고 거의 20 년이 다 되어가는데 활동을 계속하게 하는 에너지가 뭐냐구요. 저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나는 이런 일이 적성에 맞는거 같다’고 해요. 거대한 이념이나 대안을 생각하고 시작했다기 보다는 우연한 기회에 이 일을 시작했고, 이런 일이 좋았고, 지금도 이런 일이 나에게 맞는 것 같아서 하고 있을 뿐이라구요. 선생님은 어떠신가요? 지금까지 활동을 계속 유지할 수 있게 한 동력은 무엇이었나요?

 

저는 대학을 80년대 중후반에 다녔잖아요. 그때의 기억과 경험이 저에게는 엄청 강렬했던 것 같아요. 그 당시에는 사람은 어떻게 사는가, 어떻게 사는 게 인간답게 사는 길인지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20대 초반이니까 고민이 많았겠죠. 근데 그 고민의 결론은 늘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사는 거였어요. 한 번도 의심해본 적이 없어요. 이것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사는걸 고민해본 적이 없다는 거죠. 근데 변한 것은 있겠죠. 당시에는 깃발 들고 나가서 뛰어야 하는 것이 전부인줄 알았는데 한 20년쯤 활동하면서 달라진 게 있다면 운동하는 삶에서 저 뿐만 아니라 주변에 있는 동료와 후배 활동가들을 보게 된 것 같아요. 선배 활동가들을 보면 정말 존경하고 닮고 싶은 분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분도 있어요. 그건 동료활동가나 후배활동가들을 볼 때도 마찬가지죠. 죽을 때까지 이 마음이 바뀌진 않을 것 같아요.

제가 지금 인권운동을 하고 있으니까 인권의 증진과 인권세상의 실현을 위해 어떤 식으로든 기여하고 싶다는 마음은 분명 있어요. 그런데 후배활동가들을 보면, 계속 활동하고 싶은 마음은 있는데 어쩔 수 없는 현실적인 문제, 특히 경제적인 문제나 가족과의 관계 때문에 떠나면서 괴로워하는 것을 많이 봤어요. 지금 같이 하고 있는 사람들조차 저 친구가 언제까지 이 일을 계속 할 수 있을까 걱정하기 시작한 게 10년은 된 거 같아요. 그래서 그런 쪽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까 고민을 계속 해왔거든요. 어쨌든 질문에 대한 답이 빗나가긴 했는데 제 활동의 동력이라고 하면 그 젊은 시절에 스스로 마음 먹었던 것을 저버릴 수가 없는, 그것이 동력이예요.

 

그게 어쩌면 지금 인권재단 사람 일을 하게 된 이유일 수도 있겠네요.

그렇죠. 인권재단 사람에 들어온 첫 번째 이유는 후배활동가나 동료활동가들이 활동을 지속하지 못하는 문제를 고민할 즈음에 선배 한 명을 만났어요. 작은 규모지만 사람들의 의지를 모아서 소소하게 시작해보는 일종의 공동체 지원 같은 게 필요하다고 이야기했는데 실제 그렇게 한 분도 있었어요. 박래군 선생님처럼  대외적인 활동을 많이 하지만 인권활동가들이 지속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야겠다는 마음으로 재단을 생각하는 분들도 있었구요. 활동가들이 스스로 도울 수 있는 구조 혹은 여기에 동의하는 분들이 참여해서 활동가들의 어깨동무가 되는 그런 구조를 만들 수는 없을까라는 고민을 하면서 결합하게 된 거죠. 지금도 이 재단에서 하는 유일한 고민은 인권활동가들의 미래를 어떻게 함께 만들 수 있을까 하는 부분이예요. 인권재단 사람에서도 인권활동가를 대상으로 인식 조사를 한 적이 있어요. 근데 대부분이 상황만 된다면 앞으로 10년이고, 20년이고 이 일을 계속 하고 싶다, 근데 상황이 안된다는 거예요. 어떻게 인권활동가들이 계속 일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 것이냐, 그게 지금 고민이예요.

 

선생님께서 활동을 지속하게 하는 동력이라고 말씀하신 부분, 지금 젊은 활동가들은 그 마음만 가지고는 쉽지 않을 거예요. 좋은 일을 하고 싶다거나 기업에서 일하는 것보다는 내 가치관과 맞는 일을 하고 싶다는 마음은 있지만 이 일을 하기에는 현실이 너무 힘겨운 거죠. 그렇다면 지금 젊은 활동가들에게 지속가능한 동력을 만들어주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 같은데요. 그게 무엇일까요? 경제적 자립의 문제는 사실 동력이라기보다는 기본 조건일 테고요.

어려운 문제죠. 최근에는 기반이 무너져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요. 일단 경제적 자립 문제는 제쳐두더라도 자기 내면의 동력이 중요할 것 같은데요.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충분히 의미 있다는 믿음과 이 일로 세상이 더 나아질 거라는 희망, 이 두가지겠죠. 내면의 동력은 내가 믿고 싶어서 믿어지는 게 아니라 주변에 의해서 믿어지게 되잖아요. 저는 그게 결국 시민들로부터의 지지라고 생각해요. 또 하나는 조직 내에서 자기 역량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다는 믿음이겠죠. 이 두 가지는 기본인 거 같아요. 그리고 세상이 더 나아질 거라는 희망은 이 일을 해가면서 많은 사람들과 대화하면서 스스로 가능성을 찾는 과정에서 나오겠죠. 그걸 못 찾으면 아무리 조건이 좋아도 못하는 거거든요.

 

내면의 동력은 이해가 되는데 조금 전에 말씀하신 조직 내에서의 조건에 대해서는 이야기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네요. 몇몇 활동가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면 월급이 적은 것은 감수할 수 있다고 해요. 근데 이 조직에서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을 주도적으로 해볼 수 있고, 그걸 통해서 성장할 수 있다는 믿음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하거든요. 그 믿음이 없어지면 일을 할 이유가 없는 거죠.

아주 단순하게 말하면, 세속적인 의미에서의 승진도 가능하고, 책임자 위치에서 사회와 소통하는 과정을 통해 일정 부분 책임도 지고, 조직을 이끌어갈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한 비전을 말하는 거겠죠.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충분히 의미 있다는 믿음과 
이 일로 세상이 더 나아질 거라는 희망이 활동의 동력

 

인권재단 사람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어느 순간부터 활동가들이 주도적으로 기획해서 일을 해내는 기회가 많이 없어졌다는 이야기를 들어요. 프로젝트 중심의 일이 너무 많아서 활동가가 스스로 이슈를 만들고, 자원을 모으고, 목소리를 내고, 해결해가는 경험이 별로 없다는 거죠. 저는 이게 단순히 개인의 능력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으로 고착화된 측면이 있다고 보거든요. 마음먹기에 따라 달라지는 문제가 아닌 거죠. 그럼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가 항상 고민이거든요.

 

2000년대 중반쯤 이주노동자 쪽 일을 할 때 기억이 나네요. 총액으로 보면 그리 많진 않지만 정부 차원에서 이주노동자와 이주민 관련 사업비가 꽤 많이 풀리기 시작했어요. 기업에서 들어오는 돈도 많아졌구요. 노무현 정부 이후, 이주민 이슈가 우리 사회의 중요한 인권 이슈가 되면서 관련된 정책 자금이 민간으로 많이 유입되었고, 많은 프로젝트가 내려왔어요. 1년 동안 프로젝트만 10개 하는 단체도 있었는데 그걸 10명 정도의 활동가가 다 하는 거죠. 지치죠. 다음 해에는 그만큼 했기 때문에 또 해야 하는 거예요. 계속 일을 해야 했기 때문에 정말 운동가라기 보다는 프로젝트 매니저가 되어가는 상황이었죠. 

제가 일했던 곳에서 어느 날 프로젝트를 다 하지 않기로 해버렸어요. 그러면 당장 생기는 문제가 재정 문제죠. 프로젝트 비용은 단체 운영비로 사용할 수 있는 여지도 있기 때문에 그게 단체 재정과 연관이 되거든요. 근데 프로젝트를 안 하겠다고 하면 당장 부족한 부분을 어떻게 채울 것인가가 고민되잖아요. 그때 활동가들하고 회의를 했어요. 지금 우리 단체 상황에서 프로젝트를 하지 않으면 한 1년 쯤은 버틸 것 같은데 그 이후로는 불가능하다, 앞으로 일 년간 이렇게 가면서 이후에 규모를 줄일 것인지, 아니면 일 년 동안 우리 활동에 동의하는 사람들을 더 많이 만나고 찾아보고 할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한 거죠. 근데 다행히도 활동가들이 다 동의를 해줬어요.

그 이후 몇 년 동안 참 많이 애를 썼던 것 같아요. 저희야 작은 조직이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도 같은데 활동가들이 후원회원 가입서를 받아오고, 후원행사도 했던 기억이 나요. 위기는 한꺼번에 찾아온다고 공간을 무료로 빌려주셨던 분이 공간을 비워달라고 해서 짧은 시간에 몇천만 원을 모은 경험도 있었네요. 선배들의 불만 중의 하나가 ‘왜 후배 활동가들은 자기 조직이라고 생각 안하지?, 왜 후원회원 모집하려는 노력을 안 할까, 마지 직원처럼 일을 해’ 뭐 이런 거잖아요. 근데 저희는 그때 경험 때문에 서로 공감한 면이 많아진 것 같아요. ‘이곳이 내 조직이다’라는 생각도 커졌구요. 지금 보면 그때 일했던 활동가들이 다른 일들을 찾아서 나가긴 했는데 그래도 단체에서 결의를 하고, 활동가들에게 의사를 묻고, 단체의 진로에 대해 열어놓고 이야기하는 과정을 거쳐보면 달라지는 게 있죠. 활동가들이 이 조직이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프로젝트에 의존하지 말고 하고 싶은 일을 기획하고 그 일에 동의하는 사람들을 더 찾아보는 일에 집중할 수 있을 거예요. 물론 특별한 결심이 필요하긴 해요.

 

방금 말씀하신 그 과정을 거쳐서 결과적으로 어떻게 되었나요?

제가 알기로 그 단체는 적어도 지금까지는 프로젝트를 안 하고 있어요. 예전보다는 규모가 줄어서 활동가 수도 많지 않지만 프로젝트를 하지 않으니까 서류를 만드는 일 보다는 이주 노동자에 대한 상담과 그들의 인권문제에 대한 지원, 이주 노동자들이 필요로 하는 교육 등에 집중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어요.

 

세대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볼까요? 사실 세대 간의 문제는 언제나 존재하죠. 지금의 문제는 10년 혹은 20년 이상 단체에서 일하신 리더들이 있고, 젊은 활동가들이 있는데 흔히 말하는 중견활동가가 별로 없는 것이라고 해요. 10~20년 차이면 굉장히 큰 편인데 선생님이 일하고 계신 인권재단 사람은 어떤가요?

박래군 소장님의 경우, 직책상으로는 부설기관 소장이지만 실질적인 대표 역할을 해주고 있죠. 저하고는 6살 차이가 나는데 그 다음 활동가하고 저하고 9살 차이가 나요. 나머지는 다 비슷해요. 10년 이내 활동하신 분들이 6명 있어요. 다행이죠. 지금 말씀하신 부분에 대해서 저는 명확한 의견이 있어요. 선배들이 정말 잘못한 거예요.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싫어하시겠지만 선배들이 지금 ‘젊은 활동가들은 자기 조직이라는 관점을 갖고 있지 못하다, 조금만 힘들면 그만 둔다고 한다’는 불평을 해요. 실제 제 나이쯤 되는 활동가도 많이 없어요. 물론 50대 초반이나 40대 중후반의 활동가는 많겠지만 개별 단체로 가보면 생각보다 적어요. 제가 그런 불만을 이야기한 선배들에게 이렇게 이야기했어요. ‘10년 전에도 대표였고, 10년 후에도 대표일 것 같은 분이 계시는데 나도 거기에서 일하다보면 사무국장 한 5년 하고 나면 갈 데가 없겠구나라는 생각이 들 것 같아요. 그러면 그만두지 여기가 뭐라고 계속 일하겠어요’라구요.

이런 말을 한 이유는 후배들이 리더쉽을 발휘할 수 있게 비켜주고 그 후배들을 지원하는 역할을 하겠다는 마음을 먹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예요. 근데 그 분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요. 아직도 자기가 할 일이 있다고 해요. 당연히 있죠. 근데 그 단체에 있어야만 계속 그 일을 할 수 있는지는 고민을 좀 해봐야죠. 물론 직접적으로 그렇게 요청하기는 어려워요. 젊은 활동가들도 자기를 인정해주지 않는 조직에 계속 남아 있기 어렵잖아요. 근데 한 20년 이상 활동한 사람에게 그 조직을 떠나라고 하면 당장 개인이 되어버리는데 그게 쉬운 일은 아니죠. 그래도 과감하게 내려놓고 가시는 분들이 있어요. 그런 분들을 보면 굉장히 공부를 열심히 하시더라구요. 뭔가 새로운 길을 찾으시더라구요. 그리고 보통 그런 분들은 민주적으로 조직을 운영하셨어요. 그런걸 보면 사람은 잘 안 바뀌는구나라는 생각도 하죠.

 

사람은 쉽게 안 바뀌죠. 더군다나 20년, 30년 한 분야에서 일하면 자기만의 생각이 명확해지는데 바꾸기가 쉽지 않죠. 그래서 사람이 바뀌기를 기대하는 것 보다는 바뀔 수밖에 없는 환경이나 조건을 마련하느냐가 중요할 것 같아요.

저는 조직 내에서는 적어도 정년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제가 아는 어떤 활동가분은 지금 몸담고 있는 조직에서 평생 활동가로 일하고 싶다고 하는데 제가 농담처럼 ‘제발 좀 하지 마라’고 했어요. 옥상옥이 될 가능성이 크잖아요. 젊은 활동가들에게 자리를 넘겨준다는 말이 적절할지는 모르겠지만 선배그룹들은 자리를 넘겨주고 뒤에서 지원하는 역할을 할 수 없을까? 제 짧은 생각으로는 그게 가장 좋은 방안인 것 같아요.

활동가가 20년 넘게 그 자리에서 일을 할 수 있었던 건 단지 자기 의지만 갖고 할 수 있는 건 아니예요. 저도 마찬가지구요. 박래군 소장님도 마찬가지예요. 아까 말씀드린 대로 가족을 포함해 누군가가 희생한 부분이 있어요. 그 희생의 영역에는 경제적인 것도 있고, 오랜 시간 지지해준 것도 있어요. 경제적인 부분만 놓고 본다면 그런 선배님들은 지금 조직에서 활동하지 않아도 충분히 다른걸 찾아낼 수 있는 능력은 된다고 봐요. 물론 지금 받는 활동비 정도는 못받을 수 있겠죠. 하지만 그 부분도 어려운 시기를 겪어온 분들이기 때문에 조금 더 내려놓으면 가능할거라 생각해요.

자기를 드러내기 보다는 후배들을 먼저 드러내주는 역할을 선배가 하고, 그 후배가 드러나는 과정 속에서 조직이 성장하는걸 보고, 그 조직을 후원할 사람을 선배들이 만나고 다니면 조직이 좀 더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선배들이 그런 역할을 해주면 후배들이 일 할만 하겠죠. 물론 그 후배가 자기만큼 조직을 사랑하지 않아서 불안할 수는 있어요. 근데 그것 또한 세상의 흐름인거 같아요. 이 시대조차 내가 쥐고 흔들겠다는 욕심을 부리면 ‘70~80대 노인들이 왜 10대가 살아갈 미래를 결정합니까라는 것과 똑같은 논리니까 걱정하지 말고 내려놓읍시다’라고 이야기해요. 이런 분위기가 형성되면 좋겠어요. 저는 그렇게 하려고 해요. 이런 말 자주 하거든요. 저는 지금부터 5년 이상 가지 않을 거예요. 물론 살짝 겁이 나기도하죠.

 

5년 후에 다시 한번 인터뷰했으면 좋겠네요.

네, 일부러라도 와주세요. 저도 이런 말을 하면 사실 겁나요. 그럼 5년 후에 나는 뭐하지? 그래도 지금은 인권재단 사람의 사무처장이니까 명함이라도 내밀고 인터뷰도 하잖아요. 근데 개인 최현모로 존재했을 때 누가 날 찾을까라는 두려움 같은 게 있어요. 모두에게 있는 두려움이겠죠. 근데 저는 이 두려움조차도 어쩌면 주제 넘는 두려움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처음 운동을 시작할 때는 이런걸 상상해보지도 않았거든요. 그저 세상이 바뀌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근데 돌이켜보면 여전히 부족하고 답답하지만 세상은 정말 많이 바뀌었어요. 세상을 바꾸는데 저도 어느 정도는 기여했다고 생각해요. 여기서 더 바라는 게 있다면 뭘까? 지금 당장 새로운 민주주의 사회로 확 넘어가면 좋겠죠. 물론 기대사항이고 그걸 위해 할 수 있는 게 있다면 하겠는데 이 자리에 꼰대처럼 쭈그리고 앉아서 그것을 지도하는 사람으로 남고 싶지는 않아요. 그 일을 제가 직접 하는 것보다 저보다는 조금 늦게 시작했지만 더 열정적이고, 더 힘 있고, 더 머리가 팍팍 돌아가는 후배들을 도와주고 싶어요.

 

혹시 일하시면서 세대 차이를 느끼실 때가 있으세요?

있죠. 예를 들면 다급한 일이 생겼을 때 ‘아 이것 좀 빨리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라고 하면 저 같으면 누구든 같이 밤을 새워서라도 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편이예요. 근데 요즘 젊은 활동가들은 다 자기 일이 있어요. ‘전 안됩니다’라는 말이 금방 나오죠. 당연히 우리 조직이 책임지고 가지 않으면 못할 일이거든요. 물론 같이 하는 활동가도 있긴 사죠. 처음에는 당혹스럽더라구요.

술자리에서 세대 차이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을 때 그걸 불만처럼 이야기하기도 했구요. ‘요즘 애들 말야, 아무리 일 많고 바빠도 해야 되는 거잖아’라고 말은 하지만 요즘은 그걸 받아들이게 된 거 같아요. 이게 지금 우리 현실이라고 생각해요. 수준이 낮다 높다의 문제가 아니라 운동의 현실적인 상황이 이렇다, 그럼 여기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걸 무시하고 무리하게 가면 결국 함께 할 수 있는 활동가조차도 나가 떨어져요. 물론 그런 일 때문에 부딪치기도 해요. 후배들과 부딪치는 게 아니라 주변과 부딪치게 되죠. 그 단체에서 안 해주면 어디서 하냐고 하는데 ‘우리가 할 수 없는 거다’라고 생각해야죠. 그걸 인정하고 다시 낮은 곳에서부터 기반을 쌓아갑시다라고 해야죠. 물론 쉬운 일은 아니지만요.

 

활동가가 20년 넘게 그 자리에서 일을 할 수 있었던 건 
단지 자기 의지만 갖고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누군가가 희생한 부분이 있어

 

사회를 돌보는 사람을 활동가라고 할 수 있는데 왜 활동가들은 스스로를 돌보지 못하는 상황에 처했을까라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어요. 경제적인 부족은 감수할 수 있지만 그에 반해 삶의 여유도 찾고 싶고, 일의 자율성 문제나 출퇴근 문제를 포함해서 정말 저녁이 있는 삶을 정말 살고 싶다고 말하는 활동가들이 많거든요. 저는 그런 게 새로운 동력이 될 수 있겠다고도 생각해요. 일반 기업에서 일하는 것보다 조금 더 여유롭게, 조금 더 생각할 여지가 있고, 더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있는 활동 말이죠. 혹시 이런 점을 채우기 위해 인권운동쪽이나 인권재단 사람에서 시도해본 게 있을까요?

여기 오기 전에는 이주민운동, 그 전에는 언론운동을 했는데 사실 거기서는 거의 개인 활동가 비슷하게 활동했기 때문에 그걸 조직이라고 말하기는 힘들지만 이주노동자운동 할 때부터 안식년에 대한 이야기를 했어요. 지금은 안식년을 주는 곳이 많지만 없는 곳도 많거든요. 특히나 인권 운동 쪽에서는 안식년을 감히 말하기 어려울 정도죠. 큰 조직이 아니면 안식년 제도 도입하기 쉽지 않아요. 왜냐면 둘이 일하고 있는데 어떻게 안식년을 쓰겠어요.

이주노동자 운동할 때 이런 일도 있었어요. 저 혼자 생각했던 건 아니고 대표하던 분도 같은 생각을 하셨던데 오래 일한 사람에게 1년을 되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주는데 본인이 만나왔던 이주노동자들의 고향을 가게 해보자고 했어요. 그게 호응이 좋았어요. 예를 들어 10년 정도 이주노동자 운동을 하면 이주노동자들하고 많이 친해져요. 이 사람들을 보면 대부분 지연 관계로 많이 모이거든요. 예를 들어 그 사람들이 살았던 동네가 베트남 어디라고 하면 거길 가보자는 거죠. 이주노동자들이 부탁한 짐들 바리바리 싸가지고 가서 그 집에 전달도 해주고, 거기서 전화도 해주고 그런 일이죠. 그걸 굉장히 좋아했어요. 왜냐면 자기는 지금까지 죽어라 상담만 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이 친구들의 고향에 가보니까 자기가 굉장히 고마운 사람으로 인식되어 있다는 걸 느끼게 된 거죠. 이 친구들의 가족들에게 그걸 느낀 거예요. 그리고 한국에 있다가 돌아가거나 쫓겨난 친구들도 만나게 되는데 서로 펑펑 울고 그래요. 그런 게 굉장히 큰 동력이 되더라구요.

 

사회적 인정을 받았다는 느낌이었겠네요 .

그런 것도 있죠. 맨날 이 친구들이 아쉬운 소리만 해서 보기 싫기도 했는데 그것만 있는 건 아니었구나 싶었던 거죠. 개인적으로 고마움을 느끼는 건 당연하고 한국에서 나름 역할을 했던 친구 중에는 자기 고향에 돌아가서 가난한 아이들을 위한 장학사업을 하거나 밥 굶는 아이들을 위한 사업을 하는 친구들도 있거든요. 그런걸 보면서 내적 동력을 주기 위해서는 시간을 많이 줘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시간을 많이 주는 게 제일 좋은 것 같아요.

인권재단 사람은 당연히 주 5일제 근무구요. 어쩔 수 없이 주 6일을 근무하게 되면 그 다음 주 하루를 더 쉽니다. 안식월도 있구요. 3년차, 5년차, 7년차 안식월을 두고 있는데 당연히 유급으로 가고 있습니다. 버겁긴 하죠. 사실 이번에 안식월을 두 사람이 동시에 쓰게 됐어요. 엄청 힘듭니다. 바쁘고 몸 쓸 일도 많고요. 이럴 때 결단이 필요한데 두 사람이 빠진 자리를 다른 방법으로 채우겠다고 비정규직을 쓰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일을 최소화해야죠. 가장 기본적인 일을 하면서 남아 있는 사람들이 힘들어서 일 못하겠다는 생각은 하지 말게 하자는 게 기본이었어요. 근데 답답하게도 최근 시국 상황 때문에 지금 엄청 바쁘네요. 근데 뭐 그건 조직이 감수해야 할 일인 거 같아요.

 

제가 있었던 단체에도 안식년이 있었고 안식년이나 안식월이 있는 단체들을 많이 봤어요. 근데 활동가들이 안식년을 다녀오고 나서 단체를 그만두는 경우를 꽤 봤어요. 이런 현상은 단순히 쉬고 싶어서가 아니라 단체 밖에서 운동을 보니까 단체 안에서 운동하는 것과는 다른 면이 보이기 시작한 거죠. 얼마 전 질문워크숍에서 나온 질문 중 하나가 ‘왜 운동이 단체 안에서 이루어져야 하느냐’였습니다. 선생님께서도 오래 전에는 개인 활동가로 일했다고 하셨는데 요즘 단체에서 일하는 건 싫지만 공익적 활동은 하고 싶다는 분들이 많거든요. 그럼 이제까지 단체 중심으로 활동해왔던 사람들과 최근에 등장하고 있는 개인 활동가들, 온라인 중심의 커뮤니티 활동그룹과는 어떤 관계 맺기를 해야 할까요?

거기 회원으로 들어가야죠. 계급장 떼고. 그거 외에는 없다고 생각해요.

 

온라인 커뮤니티나 개인 활동가들 그룹에 회원으로 들어간다?

예를 들면 제가 평화 관련 단체에서 일을 했다고 하자구요. 평화운동하고 있는 개인 활동가들 굉장히 많아요. 집회에 나오기도 하고 온라인 커뮤니티 내에서 소통해가면서 막 등장한다구요. 근데 이 분들하고 소통해야겠다면서 ‘저는 무슨 평화단체의 사무처장 아무개입니다’ 이렇게 들어가는 순간, 이미 그들과 같이 하자는 이야기가 아니게 되죠. 조직의 직책을 내려놓고 그리로 가는 게 맞다고 봐요. 그렇게 해서 새로운 조직이 또 만들어질 수도 있죠. 그런 조직이 상근체계를 두고 있지는 않지만 늘 소통하는 조직이 될 수도 있어요. 전 선배들이 그런 곳에 가면 좋겠어요. 그분들의 경험과 노하우가 결코 적지 않은데 그 속에 들어가서 이야기하고 그 안에서 평회원으로 허심탄회하게 소통할 수 있는 문화를 같이 만들어가야죠.

 

내적 동력을 주기 위해서는 시간을 많이 줘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시간을 많이 주는 게 제일 좋은 것 같아요.

 

이런 사람들이 등장할 수 있는 기회나 드러날 수 있는 장을 펼쳐주는 것도 시민사회의 역할일 수 있겠네요. 인권운동에도 그런 활동가들이 많을 것 같은데요. 꼭 활동가로 불리지 않더라도 인권을 위해서 개인적으로나 몇몇 사람들과 모여서 활동하고 있는 분들 있죠. 그런 분들하고의 관계 맺기는 어떻게 하시나요?

대부분 현장에서 이루어져요. 일과 관계없이 따로 관계맺는 건 아니고 투쟁 현장에 나타나서 역할을 하죠. 그렇다고 그 분들이 조직으로 들어가서 그 조직의 일원이 되는 경우는 흔하진 않아요. 지금도 반올림 싸움 계속 하고 있는데 매주 한 두 번씩 가서 지킴이 활동하는 개인 활동가들도 꽤 있어요. 역할도 다양하죠. 어떤 사람은 영상을 계속 찍어서 올리고, 사진도 찍고요. 예전에 밀양송전탑 싸움 할 때도 참 많은 사람들이 오고갔어요. 오히려 단체 활동가들보다 더 깊숙히 들어가는 경우가 있죠. 어떤 분은 밀양에 방 하나 얻어가지고 두세 달씩 그 집에서 살면서 동네 할머니들하고 같이 지내기도 했어요. 할머니들이랑 같이 일하고 같이 농성장 가서 내려와서 밥해 먹고 그런 활동들이예요. 그렇게 활동하는 분들이 있는데 단체에 속해 있는 활동가는 그렇게 못하죠. 단체 활동은 단체가 준 미션이 있기 때문에 그걸 수행하는 역할을 하게 되죠. 제주도 강정에 가면 2-3년째 거기 살고 계신 분들 있잖아요. 그 분들은 서울에 올라와서 강정 관련된 후원주점도 하고 다 하고 계시죠.

 

인권재단 사람에서는 인권활동가들과 어깨동무를 하고 싶다고 했는데 그 인권활동가의 범주에 그런 분들도 포함되나요?

그 정도까지 가주면 참 좋은데 아직은 그렇게까지 못하고 있죠. 물론 지원하는 사업이 있긴 해요. 개인 활동가를 지원하는 건데 저희가 직접 기획했다기 보다는 작년에 한 분이 돌아가셨어요. 수원 지역을 중심으로 반올림 관련 개인 활동가로 일하던 분이었는데 지병이 있으셨어요. 어느 날 그분이 사진 찍는걸 굉장히 좋아한다는 걸 알게 되었고 그래서 거의 모든 반올림 현장에서 몇 년간 사진을 찍으셨어요. 사진은 홍보수단으로 굉장히 중요하죠. 근데 지병 때문에 돌아가셨거든요. 그때 같이 함께 했던 사람들과 장례를 치뤘는데 이 분은 거의 빈털털이여서 모금을 했어요. 돈을 모았는데 다행히도 병원에서 장례와 관련된 비용을 꽤 많이 할인해주신거예요. 그래서 그 돈이 거의 고스란히 남았어요. 그 돈을 저희 재단에 기부하면서 그런 개인 활동가들에게 쓰고 싶다고 했어요. 그래서 개인 활동가들도 저희 재단의 쉼프로그램에 신청할 수 있어요. 추천을 받아서 상을 주기도 하구요. 아직 많진 않지만 그 정도의 지원 사업이 있어요.

 

제가 지금까지 생각해왔던 단체는 일반적인 시민사회단체입니다. 지금 20대나 30대 활동가들을 보면 중간지원조직이나 사회적 기업, 협동조합이라고 하는 시민사회단체와는 다른 형태의 조직에서 본인이 하고자 하는 활동을 하고 있죠. 그리고 그 일은 활동이라기 보다는 노동이라고 생각하는 측면이 강해요. 오래 전부터 활동가에게 요구되는 헌신이나 열정 보다는 스스로 직장인이라고 생각하죠. 그 인식의 차이에서 노동권 문제나 임금 문제, 야근 등 근로조건의 문제 등으로 갈등이 생기기도 해요.

이게 아까 말씀드린 내적 동력하고도 관련이 깊다는 생각이 들어요. 몇몇 사례를 보면서 느낀 건데 젊은 활동가라는 말이 적절할지 모르겠습니다만 이제 막 활동을 시작한 20대 중반부터 30대 초반까지의 활동가 그룹의 특징 중 하나가 직장인으로 생각하는 분들이 꽤 있더라구요. 당연히 노동조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없죠. 그건 아마 선배 활동가들이 잘 이해못하실 거예요. 저도 처음에는 이해가 안 갔으니까요. 선배들은 이 일을 하고 싶어서 왔기 때문에 이 조직의 일에 참여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만족해요. 

그러면 이 일을 계속 하기 위한 조건은 무엇일까? 후원을 만들어 내고, 회원을 조직하고, 그들과 함께 할 수 있는 것을 찾고, 그러면서 재정 상황도 조금씩 개선해가는 것을 다 일이고 활동이라고 생각했었죠. 근데 직장으로 인식하고 있는 활동가의 가장 큰 특징은 그런 일들을 자기가 하는 고유의 일과 분리해서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조직을 만들고 운동을 시작했던 선배들은 불만일거예요. 그러니까 선배들이 요즘엔 활동가를 찾을 수가 없다는 말을 하죠. 자기 조직 안에 많은 직원이 있지만 이들이 활동가로 인식되지 않는 거고, 직원들도 활동가에게 요구되던 열정 페이나 이런 것들 때문에 부담스러워하는 것 같아요.

저는 이 현실을 자꾸 과거에 대비시켜서 이야기를 하면 답이 안 나온다고 생각해요. 그런 문제를 풀 수 있는 시기를 우리가 많이 놓쳐왔다는 느낌이예요. 선배들이 살았던 그 시기처럼 운동하는 사람이 없다라고 하면 ‘왜 없을까’를 진지하게 고민해보고, 객관적으로 그런 사람이 없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하면 그 현실을 인정하고 거기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뭔가 잘못했다면 무엇을 잘못했는지 이야기해서 느리게 가더라도 다시 쌓아올리기 위한 방법을 찾아야 되는데 급한 일들이 많다고 해서 늘 그런 문제는 뒷전이었고 결국 때를 놓치게 된 거죠. 이 상황이 한 10년쯤 지나고 나면 이제 그런 이야기를 함께 할 수 있는 후배들 조차 없을 거예요.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나이 차이가 10년, 20년 차이가 나는데 이제 막 들어온 신입활동가와 20년간 그 조직에서 일했던 사람이 어떻게 터놓고 이야기가 가능하겠어요. 객관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이죠. 지금 우리가 이런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는 이유인 것 같은데요. 우리가 늘 타파하고자 했던 권위주의, 늘 지키려고 했던 민주주의라는 걸 운동 진영 내에서도 무시하면서 올 수밖에 없었던 시기를 우리가 살아왔다는 거죠. 그 사이에 생긴 이 엄청난 간극을 서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 간극의 원인이 되고 있는 문제를 풀 수 있는 기회를 놓쳐 버린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해요.

현실을 놓고 본다면 나는 직업으로서 이걸 선택했다, 돈만 보고 직업을 선택한 게 아니고 이 일이 의미가 있고 그래서 세상을 조금이라도 나아지게 하고 조금이라도 희망이 있는 곳으로 만들기 위해서 혹은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일이니까 하겠다, 동기들에 비해서 급여가 좀 낮고 상황이 더 힘들긴 하지만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것 자체가 의미 있어서 일한다예요. 근데 노동자인거죠. 그걸 전제를 놓고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그 사람들을 다 놓치고 배제할게 아니라면 그 조건을 맞춰야 되는 거 같아요. 우리가 활동이라는 말로 이야기하지만 실제로 노동 맞죠. 활동과 노동의 차이가 뭔가요? 활동가는 스스로 알아서 일하는 사람이고 노동자는 주어진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볼 수 있어요. 단체에서 스스로 알아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았기 때문에 활동가 보다는 직원이 된 상황이 저는 맞다고 봐요. 그러면 그렇게 직원의 마음으로 들어온 사람이 활동가가 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을 선배나 조직 전체가 고민해야죠.

직원으로 들어온 분들은 이 조직이 본인에게 ‘활동가 역학을 원하고 있다’라는 것을 인식을 하고 내가 활동가로 가기 위한 방법은 무엇일까를 터놓고 이야기해야 할 것 같아요. 내가 활동가가 되어야 한다면 활동가는 무엇인가에 대해서도 이야기해봐야죠. 옛날엔 활동가론이라는 것도 있었잖아요. 학습이 필요하다면 학습을 하고 토론이 필요하다면 토론을 하고 그걸 통해서 자기 자신을 들어다 봐야 하는 거 같아요. 그런 다음에 내가 원하는 게 이게 아니라고 판단되면 정리하면 되는 일이예요. 그런 사람이 다 나갔다라고 하면 그건 조직이 고민을 해야 할 문제죠. 이런 식의 조직운영 방식이나 운동방식은 더 이상 지속할 수 없겠구나라는 판단을 내려야 되는 거고 거기에 맞춰서 뼈를 깎는 노력을 다시 해야 되는 거죠.

 

구체적으로 어떤 것부터 시작해볼 수 있을 까요? 이런 현실을 인정하고 다시 시작해야 된다고 했을 때 선배그룹 혹은 조직이 할 수 있는 첫 번째 조치는 무엇일까요? 뭐 여러 가지 방법들이 있겠지만요.

저도 사실 답이 없긴 한데요. 지금 일하고 있는 젊은 활동가들의 요구를 다 맞추려면 조직 규모가 더 커져야 된다는 답이 나올 수 있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재정 규모를 훨씬 더 키워야겠죠. 예를 들면 저녁 6시면 퇴근을 해야 하는데 당장 내일 아침 기자회견이 잡혀 있어요. 그럼 밤 늦게까지 일해야 되는 사람이 생기잖아요. 노동법을 적용한다면 야근 수당 줘야죠. 근데 야근수당 주려면 재정 규모가 늘어나야 하고 그걸 관리하기 위한 체계도 다시 만들어야 되잖아요. 그런걸 다 맞추려면 재정 규모가 더 늘어나야 하는데 그러면 운영하기 어렵죠. 저는 그 지점에서 고민이 필요한 거 같아요. 그런 상황을 알고 있는 젊은 활동가들이 대안을 낼 수 있어야 해요. 지금 당장은 어렵다 하더라도 하나씩 하나씩 조건을 맞춰 봅시다, 재정 규모를 키워봅시다고 결의할 수 있어요.

근데 그건 이제 막 들어온 활동가가 할 수 있는 영역은 아니잖아요. 그때 선배들 역할이 있는 거죠. 단상에 올라가서 마이크 잡는 것, 대외적으로 드러나는 일만 선호하지 말고 우리 활동가들이 오랫동안 일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데 역할이 있다면 그 역할을 받아 안아야 된다고 생각해요. 1년만이라도 해보는 거죠. 그러면 그 마이크는 누가 잡아요? 후배들이 잡게 하면 되요. 처음엔 부족할 수도 있고 불만족스러울 수도 있어요. 근데 그들이 계속 운동을 할 사람들인데 그런 기회를 줘야죠. 그런 훈련의 기회를 주지 않고 우선 급하니까 내가 마이크를 잡는다 하면 악순환이 박복될 뿐이예요.

제가 보기엔 80년대와 90년대 초반을 지나왔던 선배들이 아직도 주축인데 이들이 70살, 80살이 되었을 때 한탄만 하다가 끝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운좋게 이번에 박근혜 퇴진하고 다음부터 민주정부가 수립되고 그 힘이 30년쯤 간다면 또 다른 가능성이 있겠지만 그렇지 않고 계속 롤러코스터 타듯이 한다면 또 한 번 밑바닥을 치겠죠. 권위주의가 나타날 거고, 사람들은 다시 소외될 거고, 삶에서 자기 희망을 찾지 못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가고…. 지금 최악이잖아요. 자살률 세계 1위, 노인 자살률은 정말 부동의 1위예요. 정말 희망이 없는 시대인거 같은데 만약 운동에서 희망을 찾는다면 저는 젊은 활동가들이 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기 위해 선배들이 나서야 된다고 봐요. 그 구조가 뭘지는 아직 이야기해보지 못했지만 이제는 해야 할 거 같아요.

 

직원의 마음으로 들어온 사람이 활동가가 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을 
선배나 조직 전체가 고민해야죠.

 

활동가란 도대체 뭘까요? 예전엔 활동가론도 있었다는데 지금 시기에 활동가는 어떤 역할을 하는 사람일까요? 세상을 변화시키는 사람이라는 막연한 정의 말구요.

 

제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요. 아주 구체적이지는 않지만 저는 정말 세상이 달라지는 걸 보고 싶은 꿈이 있어요. 옛날에도 있었지만 지금도 있거든요. 이 꿈을 버리지는 않을 거 같아요.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 사람들 만나고 조직하는 것, 여기서 조직이라는 말은 단순히 사람을 모아서 묶어 낸다는 것을 넘어서 교육과 소통을 다 포함하잖아요. 그런 사람이 활동가라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세상의 변화라는 큰 목표가 있는 거고 그 변화의 과정에 함께하고 있는 많은 인권 활동가들이 이 활동을 지속할 수 있게 물적 기반을 만들어내는 게 지금의 제 운동이예요.

 

최현모 선생님은 인권활동가를 위한 활동가시네요.

그렇게 인정받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저는 그게 지금 시점의 제 운동이라고 보거든요. 제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인권활동가에 대해서 이야기해요. 아까 말씀하셨지만 ‘사회를 돌보고 있지만 자신의 삶은  돌보지 못하는 활동가들이 자신의 삶과 사회를 함께 돌볼 수 있도록 돕고 싶다, 스스로 돌볼 수 없는 처지에 이는 인권활동가들을 위해 당신이 조금만 여유를 내준다면 돌볼 수 있다, 그 사람들이 자신을 돌보게 되면 당신이 누구를 도와준다는 차원을 넘어 당신과 인권활동가들이 이 세상을 바꾸는데 기여할거다’라고 말하는 게 저의 운동의고 조직방식이예요. 이걸 지치지 않고 하는게 제가 생각하는 활동가로서의 본모습이라고 생각해요.

 

최현모 선생님은 인권활동가를 위한 활동가라고 할 수 있고, 활동가는 내가 활동하는 분야에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수 있게 교육하고, 소통하고, 판을 만들어 주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다라고 정의할 수 있겠네요.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제 경험을 잠깐 말씀 드리면 저는 단체에 들어가서 처음에는 정책 관련 일을 했지만 대부분은 기획이나 단체의 일을 지원하는 일을 했거든요. 그때 선배들이 이야기했던 것 중 하나가 전문성을 키워야 된다고 했어요. 여기서 전문성은 이슈나 정책에 대한 전문성인거죠. 전문성을 키워야 전문가들과 대등한 입장에서 이슈를 주도할 수 있고, 발언할 수도 있다구요. 그래서 대학원을 가라거나 영어 공부해서 유학을 가라거나 이런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근데 저는 그런 전문성보다 활동가에게 필요한 전문성이라고 하면 말씀하신대로 사람을 조직하고, 조직을 관리하고, 시민들과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생각하는데 왜 그 부분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는지가 불만이기도 했거든요.

옛날에는 몰랐는데 이제는 좀 알 거 같아요. 활동가 조사내용 보면 비슷한 이야기가 있어요. 자기가 어떤 사안에 대해 많은 시간을 투여해서 사람들 만나면서 이슈화시켜놨는데 결국 마이크 잡는 사람은 교수와 변호사라구요. 그러면서 비애를 느꼈다고 하더라구요. 물론 자기가 마이크 잡는 그런 역할만 운동은 아니지만요. 지금 사무처장을 하고 있는 사람조차도 어디 나가서는 교수나 이런 사람들 들러리 역할을 하거나 그 사람들을 보조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데 그 모습이 자기의 미래라면 이 일 안하겠다고 말하는 사람을 봤어요. 

너무 솔직한 이야기지만 지금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는 거죠. 예전에는 지금보다 훨씬 덜 했던 것 같아요. 과거에는 변호사나 교수와 같은 분들이 이런 현장 활동이나 시민사회운동의 영역에 많이 들어오지 못했어요. 근데 어느 순간부터 많은 교수와 변호사를 포함한 전문가 그룹들이 이 안에 들어왔고 그 분들이 간판 역할들을 하고 있거든요. 이건 현장에서, 흔히 말하는 활동가라고 하는 사람들한테는 좌절하게 하는 요소인 것 같아요. 그러니까 너도 전문성을 키워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왔겠죠. 예를 들어 평화, 군축, 인권운동을 할 때 그 어느 전문가보다 더 많은 책을 읽고, 더 많은 논리를 이해하고, 그것으로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고, 훌륭한 글을 써낼 수 있는 그런 역량을 갖춰야 한다고도 해요. 근데 저는 그건 무리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이론적으로 접근하는 것까지 활동가에게 요구하는 건 요즘처럼 전문화하는 시기에 무리라는 느낌이 좀 들어요.

활동가의 고유한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것도 조직이 책임져야 할 부분이죠. 제가 좀 친한 변호사한테 나쁜 말로 활동가 등 파먹고 사는 인간이라고 농담처럼 이야기를 해요. 그런 말이 그들에게도 인식될 수 있을 만큼 전문가 그룹을 설득하는 일도 조직이 해야 되는 일이라고 봐요. 전문가들도 자기가 연구한 결과물을 사회에 내놓을 때 활동가들이 가지고 있는 노하우를 많이 활용하잖아요. 그 과정에서 자기 결과물에 활동가가 어떤 역할을 하고 있음을 반영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도 조직이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방금 말씀하신 내용과 맥락이 맞는건 아니지만 조직의 의사결정구조에 대한 이야기와도 연관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대부분 시민사회운동 조직의 의사결정구조가 사실은 활동가들의 의사결정구조는 아니잖아요. 외부의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서 위원회를 구성해서 의사결정을 하고 자문위원들도 많구요. 예전에 시민사회단체가 공신력을 얻기 힘들었을 때 전문성 있고 명망 있는 사람들을 통해 단체의 신뢰를 높여주는데 기여하기도 했어요. 의사결정의 실제화 문제, 즉 그 의사결정구조가 맞냐 틀리냐를 떠나 실제 일을 기획해서 집행하고 의사결정을 하는 사람들과 문서나 정관상에 의사결정하는 사람이 다른 문제가 생긴단 말이예요. 사실 의사결정구조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지 않다고 봐도 되는 거겠죠. 이 간극을 없애기 위해서는 정관상의 의사결정구조가 제대로 작동되게 하던가, 아니면 조직 체계와 정관을 바꿔서 실제 일하는 사람 중심으로 의사결정구조를 만들던가 해야 할 것 같아요. 이 문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런 고민을 실천하고 있는 곳이 인권운동에는 좀 있어요. 후원회원이라는 개념으로 해서 그들이 총회를 하는 게 아니라 그들은 후원인이고 총회는 활동가가 하는 거예요. 거기서 결정을 하죠. 회원들은 말 그대로 지지하는 그룹일 뿐이지 의사결정에 참여하지 않는 구조인데 제가 보기에는 아직 실험단계인 거 같아요. 대부분은 이사회나 회원총회 구조를 가지고 있는데 회원 총회와 활동가가 괴리되고 있는 측면도 있고 회원총회 자체를 활동가가 조직하는 곳도 있어요.

 

이사회라고 하면 법적인 권한과 책임이 있잖아요. 재정 문제도 이사회에서 책임져야 하는 측면도 있는 거구요.

이사회가 재정에 도움이 되는 경우는 보통은 초창기이고 시간이 지나면서 이사회는 의사결정구조라고 하는 틀에서 역할을 하는 수준이죠. 가끔 이사님들이 재정적인 뒷받침을 해주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요.

 

의사결정구조 안에서 활동가들이 느끼는 자괴감 같은게 있죠. 지금과 같은 형식적인 의사결정구조는 이제는 아닌 거 같다라고 정리를 하는 어떤 결단이 필요할 것도 같은데요.

굉장히 큰 조직적 결단이 필요하겠죠. 사단법인이나 재단법인, 협동조합처럼  법적 틀 내에서 인준이 필요한 조직들은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신생 단체들은 의사결정구조에서 실험을 좀 해보면 좋겠다 싶어요.

 

새롭게 일을 해보려는 사람들이나 모임을 보면 단체를 만들고 싶지 않은 이유 중 하나가 형식적인 의사결정구조나 회원 구조를 갖춰야 하는 것도 있는 것 같아요. 차라리 우리가 돈 내면서 하는 게 편하다고도 하죠. 단체를 만들면 해야 되는 여러 가지 행정적인 일들이 번거로워서 단체가 아닌 커뮤니티 그룹으로만 존재하는 곳들도 있구요. 그렇다라고 하면 우리가 기존의 시민사회조직을 법적인 틀을 가지고 있는 단체나 혹은 연대회의에 소속되어 있는 단체들만 생각했는데 이제는 범위를 훨씬 넓혀야 되지 않을까요? 그러면 기존의 연대기구나 네트워크 조직들이 해야 될 일들도 완전히 달라질 것 같은데요. 이 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인권운동 상황을 중심으로 설명해주셔도 되고요.

인권운동도 그런 조직들이 되게 많아요. 저희가 나름 지원 체계 내에서 지원하고 있는 곳들 중에서도 보면 흔히 말하는 임의단체라고 하잖아요. 법인이나 비영리단체로 등록하지 않고 세무서에만 신고되어 있는 거요. 심지어 그렇지 않은 곳도 많이 있어요. 세무서에 신고하는 것도 통장을 만들기 위해 하는 거지. 그런 형식적 절차도 없이 사람들이 모여 있고 개인명의의 통장으로 재정 관리하는 곳들도 꽤 있어요. 그런 모임들이 행정적인 일은 잘 못하죠. 그래서 저희들하고 같이 지원사업을 할 때도 보면 곤란을 느낄 때가 있어요. 왜냐면 이게 밖으로 드러나야 하는데 도대체 이걸 어떻게 검증할지에 대한 고민을 할 때가 있죠. 사회 시스템에서 그런걸 요구하기 때문에 결국 거기에 맞추는 건데 그게 극복될 수 있을까요? 그것 부분까지 다 포괄할 수 있는 새로운 틀은 아직 없는 거 같아요. 예를 들면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같은 곳도 수백 개 단체가 속해 있긴 하지만 다 포함시키지 못하고 있죠. 다만, 여러 그룹들을 만나긴 하는 것 같더라구요. 다양한 그룹들 만나는데 그 그룹들이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와 같은 틀 안에 들어올 의사가 없는 거겠죠.

옛날에는 시민사회가 뭐냐고 하면 시민사회운동을 하는 단체의 어떤 틀을 생각했는데 이제는 그런 인식이 깨지는 시기가 아닐까 싶어요. 법인이나 비영리단체가 아닌 임의단체들도 그렇고, 오늘 모였다가 내일 흩어질 수도 있는 조직도 시민사회 안에 포함해야 하는 거 아니냐는 거죠. 근데 그들의 의사를 시민사회로 수렴하기 위한 새로운 구조는 뭐냐고 하면 그건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일단은 지금 있는 활동가들이 그런 판들을 자꾸 깔아주고, 논의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 주고, 그 안에서 의견들을 수렴 할 수 있는 어떤 구조를 만들어야겠죠. 그런 구조를 만드는 것을 기존의 시민사회운동 단체들이 해야 할 일이라는 느낌은 있는데요. 잘 될지 모르겠습니다만 최근에 그걸 한번 실험해보려고는 하고 있어요.

예를 들면 제가 광장에서 토론회를 계속 하고 있는데요. 그런 욕구를 갖고 있는 분들은 많은 것 같아요. 기존 조직을 운영하고 있는 분들 중에도 꽤 있는 거 같구요. 그렇지 않은 일반 시민들 중에도 있는데 그런 장이 없어서 못하는 거라면 오프라인에서 할 수 있는 건 한계가 있으니까 오프라인과 온라인을 결합한 의견수렴구조를 만들어보면 어떨까 생각도 해봤어요. 예를 들어 국민 대토론나 시민 대토론라는 주간을 정하고, 그 주간 중에 올라오는 많은 의견들을 묶어낼 수도 있잖아요. 그걸 카테고리화하거나 키워드로 묶어서 공개 토론을 하고, 거기서 나온 의견들을 다시 받아서 재토론하는 과정을 거치면 어느 정도 수렴될 수 있을 것 같거든요. 노동, 여성, 인권, 집회문화까지 다양한 주제들이 나올 수 있겠죠. 그래서 그런 다양한 의견들을 수렴할 수 있다면 시민사회단체와 같은 조직들이 시민들과 호흡하고 소통하는 방식을 통해 만들어낸 기초자료로 쓸 수도 있구요.

 

오늘 모였다가 내일 흩어질 수도 있는 조직도
시민사회 안에 포함해야 하는 거 아닐까

 

일종의 판을 열주는 거잖아요. 제가 온라인상으로는 시국대화주간이라고 이름 붙여서 한번 해보자고 제안을 한 적이 있어요. 저도 어떤 조직에 속해 있긴 하지만 전업 활동가가 있는 것도 아니고 해서 저 혼자서 그 제안을 적극적으로 실현시키는 어렵더라구요. 페이스북 글을 보고 몇몇 분들이 참여해주긴 했는데 조직화된 흐름이 만들어지지 않는 이상 자발적 흐름만으로는 한계가 보이더라구요. 그래서 이런 종류의 일에 조직의 역할이 있을 수 있겠다 싶더라구요.

 

어찌 보면 활동가들은 판을 까는 기술자들이라고도 할 수 있잖아요. 거기에 집중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은 들어요. 이런 시기에 활동가들은 무엇을 해야 할까라는 질문에는 판을 까는 역할을 하는 것이 맞다고 봐요. 기존에는 판을 깔고 끌어가는 역할까지 했잖아요. 지금은 끌어가는 역할을 하는 것 자체가 제가 보기에는 시대착오적이예요. 이미 시민들이 활동가들보다 훨씬 더 빨리 정보를 공유하고, 나름 분석도 다 하고 있고, 대안도 제시하거든요. 문제는 그게 다 무작위로 흩어져버리는 거예요. 그걸 모아내는 역할과 함께 그런 장을 만드는 역할을 이 광장에서 해낼 수 있으면 그것도 큰 역할이라고 봐요. 근데 아직은 광장에서 큰 집회들에 더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작지만 꼭 필요한 활동들이 많이 외면되고 있는 건 현실이죠. 그래도 표 나지 않고 잘 드러나지 않는 역할을 활동가들이 고민해야 할 거 같아요.

저는 마을 활동 하시는 분들 보면서 ‘참 표도 안 나는데 정말 잘 하신다’ 그런 생각 들었거든요. 저 같은 사람만 해도 별건 없지만 이렇게 큰 판 속에서 왔다 갔다 하는 인간이잖아요. 이런 게 운동이었던 시대가 있었어요. 그런 운동이 시대적으로 큰 역할 한 것도 맞구요. 근데 더 이상은 아닌 거 같아요. 지금은 판은 만든다고 해서 만들어지는 게 아니고 의도하지 않은 판이 생기는 거 같아요. 근데 이런 판이 생겨났을 때 기존의 운동 조직들이 역할을 해준다면 시너지가 나오지 않을까요? 그렇게 생각하면 시민사회단체들이 더 밑으로 내려가야 될 것 같아요. 노동운동하는 분들한테도 그런 이야기 한 적이 있는데 조직은 하지 않고 정책만 이야기하니까 운동이 점점 더 쪼그라드는 거라고. 그래서 조직을 하는 것이 운동을 재건하는 가장 빠른 길이라고 봐요. 근데 그건 오래 걸리는 일이죠.

제 경험이겠지만 80년대와 90년대에 운동이 봇물처럼 터진 이유는 60년대, 70년대에 사람들이 감옥가고 죽어가면서 했던 무수히 많은 작은 노력들이 모아져서 나온 것이지 어느 순간 갑자기 툭 튀어나온 게 아니거든요.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은 계속 쌓여왔는데 누군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계속 그런 열망을 모으고 쌓아오는 역할을 해왔던 거죠. 물론 그때도 유명하신 분들이 많이 있었지만 그게 저는 활동가가 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조직운동도 다시 그 방향으로 전환을 해야 해요. 이슈 투쟁이나 정책 입안을 위한 활동도 중요하겠지만 그만큼 하방운동을, 더 내려가야 한다고 보는 거죠.

 

사실 단체들의 조직운동이 꽤 오랜 시간 동안 없었다고 봐야죠.

없었어요. 이제는 이걸 다시 해야 된다는 봐요. 어쩔 수 없이 민주주의는 투표를 통해서 바꾸는 거예요. 그럼 투표로 말하는 시민들, 이상한 사람 찍지 않고 정말로 의미 있는 투표를 할 수 있는 시민들을 만들어 내는 역할, 그게 민주주의고, 인권운동이고, 노동운동이라고 생각해요.

 

시국토론회를 통해 지금 광장의 역동성 속에서 활동가들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나름 실험하고 계신거기도 하네요.

그렇긴 한데 잘 안 됩니다. 잘 안 된다는게 사람이 적게 모인다는 건데요. 사실 이런 토론회가 관심받기 쉽지 않는 시국이긴 해요. 하지만 이런 쪽으로 사람들이 계속 참여하지 않으면 금방 식어버릴 수도 있고 좌절하는 시민만 남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누구 말대로 운이 정말 좋아서 탄핵도 되고 다음 선거 때도 정권교체되면 국민들이 승리감을 맛볼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럼 그 다음은 뭘까? 이게 막연하잖아요. 근데 저는 이런 토론이 계속 이어져 간다면 그런 막연함이 좀 더 명확해지지 않을까 싶은 거죠.

 

사실 그런 비슷한 문제의식은 2002년 촛불집회 때부터 시작해서 2008년 촛불집회 때도 강하게 터져 나왔어요. 그러다가 다시 논의가 사라져버리고 다시 2016년이란 말이에요.

벌써 10년 넘게 운동 진영에서 이 고민을 하고 있어요. 근데도 아직 상황은 똑같아요.

 

어떻게 보면 우리가 몸담고 있는 조직의 형태와 운동 방식이 벌써 20년, 30년 된 모델이죠. 30년쯤 되었으니 소멸하는 시기가 됐고 결국 2016년에 와서야 정리될 수 있는 문제였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2008년에도 지금 시기가 아니면 시민들의 신뢰도 없어지고, 더 이상 단체로서 존립하기도 쉽지 않을 거다라고 했는데…

우리끼리 농담이지만 이제 조직운동의 가치는 집회기획자 수준이구나라고 말하기도 해요. 지금 집회를 기획하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게 뭐 있냐, 그거 외엔 아무 것도 없다고 하는데 이렇게 말하는 상황이라면 참… 이제는 큰 조직들도 규모를 좀 축소할 필요가 있어요. 이건 아주 개인적 판단인데 우리 국민들 참 1등 좋아하는구나 생각을 많이 해요. 그런 문화에 영합해온 것이 또 우리 운동이기도 한 거 같아요. 그런 인식의 틀을 바꿔내는 역할도 했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늘 눈에 보이는 것들 중심으로 해온 것 같은 거죠. 운동도 효율성 중심으로 왔는데 이제는 그거 내려놔야 된다고 생각해요. 효율성이 필요한 지점은 분명히 있지만 그 효율성이야말로 전체가 협의해서 만들어낸 효율성이면 가장 좋겠어요.

 

한국에서 시민사회운동이 시작된 시점을 사람마다 다르게 보긴 하지만 내년이면 87년 민주화운동의 30년이 됩니다. 사실 대부분의 시민사회운동 조직들이 87년 이후에 공개로 전환하고, 97년 이후에 꽤 많이 생겨나기도 했죠. 지금까지 큰 영향력을 행사했던 단체들 대부분이 20년에서 30년 되었을 거에요. 그렇게 보면 최근에 만들어진 조직들은 기존의 방식을 따르지 않고 만들어지고 있고, 기존의 조직들은 지금 시기에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어요. 이런 경계를 넘고 있는 과정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네요.

그렇게 크게 성장하고 영향을 미쳤던 단체들도 비슷한 과정으로 온 거 같아요. 규모를 키우고 분과 만들면서 문어발식으로 커졌죠. 효율적이면서 기민하게 움직일 수 있었어요. 근데 시간이 오래 지나면서 대중과 많은 괴리가 생겼고, 그래서 최근의 시국 상황에서도 역할이 굉장이 축소되고 있는 거죠. 노동조합에서 파업을 할 때 파업의 명분은 공공성인데 왜 모든 시민은 월급 때문에 파업했다고 생각할까요? ‘또 얼마나 더 받자고 저래’라는 말이 아주 쉽게 나오는 이유는 우리 운동이 변질된 것이 아니라 놓치고 온 것이 있어서 그런 거예요. 그 놓친 것에 말씀 하신 젊은 활동가들이 들어와서 느끼는 괴리감이나 비전없음도 들어가있는 거겠죠.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물어 볼께요. 지금 하는 일은 5년만 하고 그만 하신다고 했는데 그 다음에 뭐 하고 싶으세요?

제가 다른 활동가들한테 도움을 줄 수 있는 선배 활동가가 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언제든 오면 밥 먹고, 며칠 쉬어갈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어요.  그게 어디일지는 아직 모르지만요. 그렇다고 제가 돈이 많아서 혼자 할 수는 없을 것 같구요. 그걸 함께 할 사람들을 좀 모아 보려구요. 동의할 사람이 몇 명이 될지는 아직 모르죠. 다들 바쁜 세상이다 보니 자기 일 챙기기도 바빠서. 50대 중후반이 그럴 나이잖아요. 근데 할 수만 있으면 정말 하고 싶어요.

 

선생님은 여전히 운동 내에서의 일을 생각 하고 계시네요.

저는 그걸 떠나서 생각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어요. 운동의 현장에 직접 있지 않을 수는 있지만 운동하고 있는 사람들과 어떤 식으로든 함께 하고 있을 거예요. 그 안에 있고 싶고 그게 또 제일 좋아요. 어쨌든 그게 좋은 거면 그거 해야죠. 그리고 농담이긴 하지만 저도 이제 돈 좀 벌어가지고 한 1년에 몇 백 만원씩 기부하는 사람으로, 기부자님, 이런 말 듣고 싶어요.

_ 조아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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