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비(이하, 신) : 언제부터 활동하기 시작했어요?
– 정진임(이하, 정) : 2008년이요. 대학원 졸업하고 뭘 할까 고민하고 있던 차에요. 전공이 주로 공무원이 하는 일이었어요.
– 신 : 기록관리학이죠?
– 정 : 네. 취직도 잘 되는 곳이었어요. 그런데 과연 그 일이 재밌을까 싶고 내가 공무원이 맞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그러던 중에 대학원 한 학기 선배가 정보공개센터라는 시민단체를 만드는데 같이 해볼 생각 있냐고 묻더라고요. 고민을 좀 하다가 ‘일단 한 3년 해보고 아니다 싶으면 그만두고 다시 공부를 하든가 하지 뭐’라고 생각했어요. 스물 여섯 때였거든요. 3년 더 해도 어차피 서른 살이니까 일단 해보고 아니다 싶으면 빨리 빠지자 했죠.
– 신 : 나이로 보면 그전까지는 쭉 공부를 하셨네요.
– 정 : 네, 학부 졸업하고 바로 대학원 가고.
– 신 : 시민운동에 대해서는 학교에서 전공과 관련해서 배우셨을텐데 그 밖에 접점은 뭐가 있었어요? 어디 회원이었다거나?
– 정 : 아뇨. 그런 건 없었어요. 학교 다닐 때 선배들이나 주변에서 시민단체 활동하는 경우도 있어서 모르지는 않았지만요.
– 신 : 학생회 활동 하셨어요?
– 정 : 네.
– 신 : 운동권이셨어요?
– 정 : 네. 굳이 분류하자면. 그런데 저희 학교가 운동권이 많았어요. 한신대학교 나왔거든요. 환경이 그래서 학교에서 공부를 하면서도 내가 왜 이 공부를 하고 있지, 어떻게 써야 하지 그런 고민 했었어요.
_ 신 : 취직을 해야 하니까 그런 건 아닌가요?
_ 정 : 다른 길을 크게 생각을 안하는 것 같다는 느낌이 있었어요. 제가 단체에 온 뒤로도 1년 정도는 회원 중에 기록학 쪽 선생님이나 이런 분들이 공무원 시험 안 볼거냐 언제 볼거냐 많이 물으셨어요. 왜 다들 내가 아르바이트나 프로젝트를 한다고 생각하지? 이런 의문이 들더라구요. 기록학계에서는 당연히 나가는 길이 공무원밖에 없어서 그럴 수도 있지만 정보공개센터 활동도 내 학문의 연장선으로 보이게 하고 싶다는 생각 많이 했어요.
_ 신 : 그렇게 단체에 와서 활동을 시작하셨는데, 어떻게 된 거에요? 3년만 해보자한건데 8년이 되었어요.
_ 정 : 처음에 엄청 힘들었어요. 단체를 막 만드는 중에 들어왔거든요. 저는 시민단체라는 걸 전혀 경험해본 적이 없고, 이 일의 패턴에 대해서도 알지 못하는데 상근자는 선배랑 저 두 명이고. 소장은 제주도에 있어서 일주일에 많아야 한 두번 와서 잠깐만 있다가 가고. 회의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고. 혼자서 어디부터 어디까지 해야 하는건지 너무 막막한거에요. 그런데 차근히 알려주는 사람도 없고 물어볼 곳도 없었어요.
_ 신 : 선배가 일하는 스타일이 그랬던 건가요?
_ 정 : 성격적으로 그런 것도 있지만, 선배는 외부에 단체를 알려야 하니까 밖으로 많이 다녔어요. 그래서 처음에 한 일년 정도는 너무 힘들어서 단체가 빨리 망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진짜 많이 했어요. 내가 그만두는 건 너무 자존심 상하고 지는 것 같아서 싫은데 활동을 계속 하기는 너무 힘드니까.
_ 신 : 그런데 단체가 안 망한거네요.
_ 정 : 네. 한편으로는 또 망하면 안될 것 같고, 망하는 걸 보고 싶지는 않은 그런 복잡한 마음이었어요. 다른 사람들이 워낙 열심히 하기도 했고. 그래서 안 망하고 꾸역꾸역 가다보니 다른 동료들도 생기기 시작했죠.
_ 신 : 동료들이 언제부터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_ 정 : 1년 지난 뒤 한 명 들어왔고 조금씩 늘었어요. 지금이 제일 많아요. 상근자 다섯 명이에요. 3년차 이상이 3명이고 5년차인 1명은 현재 육아휴직 중이에요.
처음에 한 일년 정도는 너무 힘들어서
단체가 빨리 망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진짜 많이 했어요
_ 신 : 상근자가 꾸준히 늘었다는 건 계속 안 망할 분위기네요.
_ 정 : 네. 그리고 지금은 망하면 안된다고, 망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_ 신 : 처음에 그렇게 힘들다가 활동이 재밌어진 시기는 있어요?
_ 정 : 1년 있다가 동료가 한 명 생겼다고 했잖아요. 원래 공개채용을 하려다가 대실패를 하고, 아 역시 우리 같은 신생단체는 공채는 안되는구나 싶어서 주변에서 일할 사람을 찾던 중에 친했던 학교 후배가 들어오게 되었어요. 그렇게 알음알음 들어온 건 그 친구가 마지막인데요. 아무튼, 되게 좋았어요.
_ 신 : 뭐가 좋았어요?
_ 정 : 회의를 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그 전에 두 명 있을 때는 회의가 안되더라고요. 이제 회의를 할 수 있으니 좋고, 개인적으로는 동료가 생겨서 외로움이 줄기도 했죠. 무엇보다 얘도 단체가 빨리 망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는 만들고 싶지 않았어요.
_ 신 : 후배라서 그런 걸까요?
_ 정 : 그건 아니에요. 그 후로는 전혀 일면식 없는 사람들이 동료로 결합을 했는데 그때도 같은 마음이었거든요. 그런 걸로 봐서는 인맥 때문은 아닌 것 같아요.
_ 신 : 그럼 이유가 뭘까요?
_ 정 : 제가 조직형 인간이어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어요. 여기가 망했으면 하면서도 망하지 않기 위해서 계속 뭔가를 하고 있다든가, 좀 더 나아지길 바라며 계속 버티는 ‘존버’ 정신을 갖고 있어서가 아닐까 싶어요.
_ 신 : 그때 그 생각을 했던 거에요?
_ 정 : 그때는 안했죠. 지금 보면 그랬던 거 같아요. 그리고 직장에서의 고달픔과 별개로, 이 활동 자체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조금씩 했던 것 같아요.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 힘들었던 1년 동안, 교육이나 학습을 받지 못했어요. 정보공개라는 건 이런 거야, 우리 운동은 이런 중요성이 있어 그런 걸 전혀 듣지 못한 상태에서 맨땅에 헤딩해야 할 때 스스로 이유를 찾아가는 과정이 그 정도 필요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해요.
* 모든 분야에 정보공개운동이 필요하다. 사진은 정보공개센터와 청년유니온의 업무협약식
_ 신 : 그러면 뒤에 들어오신 분들에게는 본인이 받지 못했던 교육을 해주려고 하셨겠네요.
_ 정 : 네. 바로 다음 들어온 친구까지는 대략의 소개나 설명만 해주었을 뿐 제대로 못했어요. 그 이후부터는 2개월 수습기간을 두고 있고, 다른 단체나 활동가에게 소개를 하면서 활동가로 살아간다는 건 무엇인가 그런 이야기도 해요.
_ 신 : 그런 기회를 갖고 시작하는 것과 그렇지 못한 것, 어떻게 다른 것 같아요?
_ 정 : 저희가 어제 조직진단 회의를 했었는데 그걸 하면서 되게 의미 있는 이야기가 나왔어요. 활동가에겐 우리 조직에 대한 자존감, 직장에 대한 자존감이 필요하다고요. 우리 단체가 짱이야 그런 게 아니고, 교육이나 훈련, 관계로 만들어지는 자존감이죠. 그런 측면에 있어서 교육이 꼭 필요한 거라고 생각해요. 물론 교육의 효과가 똑같이 확 드러나는 건 아니지만요. 초기에 결합한 두 명은 제대로 교육을 못했지만, 어디를 내놔도 일을 잘할 사람들이에요. 척박한데서도 막 하는, 그런 성격의 부류여서.
_ 신 : 지금 구성원은 다양하게 섞여있는 거죠?
_ 정 : 네. 개인차가 커요. 사색과 사유가 되게 중요한 사람, 질문이 해결되지 않으면 힘들어하는 사람. 그래도 시스템은 있는 편이 좋아요. 왜냐면 직업 활동가로서 시민단체 들어가 일하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어쨌든 본인이 결심을 하고 시도하는 건데 자신의 정체성과 단체의 정체성을 혼자 생으로 고민하게 둬선 안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럴거면 굳이 단체 들어가서 활동할 필요가 있나.
_ 신 : 그러면 초기 두 명은 다행히 그게 잘 맞았던 건가요.
_ 정 : 그래도 많이 힘들어했죠. 둘이.
_ 신 : 회의하는 게 어려웠다고 했는데 어떤 사례가 있었어요?
_ 정 : 정책이나 기획은 보고를 받기 원하는 어른도 많이 계시고 그래서 그 자체가 어렵거나 하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일상적으로 결정할 것도 많잖아요. 제가 단체 들어가서 처음 한 일이 사무집기를 사는 거였어요. 전화 들이고 인터넷선 깔고. 그리고 총회 한 번도 안 해 본 상태에서 장소 정하고, 창립 총회 자료랑 초대장 만들어야했어요. 그런 일 하면서 플래카드는 어느 게 나을까 뭐 이런 사소한 하나하나를 같이 결정할 사람이 없었어요. 아니면 우리가 뭘 해볼까 기획하는 거, 정보공개청구를 이걸 해보자 그런 걸 동료와 의논해서 하는 것과 혼자 하는 게 되게 다르더라고요.
_ 신 : 같이 하는 게 더 좋으시다는 거죠?
_ 정 : 네, 저는 그랬어요. 다른 단체에는 혼자 일하는 활동가들도 있는데 되게 외로울 것 같아요.
활동가에겐 우리 조직에 대한 자존감,
직장에 대한 자존감이 필요해
_ 신 : 조직 외부와의 관계는 어때요?
_ 정 : 친구들이 활동가가 많아요. 이쪽에 와서 만난 게 아니라 전에 알던 친구들이요. 저랑 비슷하거나 앞서거나 뒤서거나 활동을 시작한 친구들인데, 바빠서 자주 만나지는 못해도 자주 연락하고 지내요.
_ 신 : 그러면 고민이나 문제를 서로 공유하고 그러나요?
_ 정 : 그렇죠. 뭐가 어렵다 이런 얘기들 나누고. 그 외에는 활동하면서 알게 된 사람들과 일 외에도 개별적으로 만나는 경우가 있기도 해요.
_ 신 : 자기 활동을 하는 데는 그 힘을 얻는 원천이 꼭 있는 것 같아요. 경험이랄까, 사람이랄까, 어떤 게 있으세요?
_ 정 : 저는 확실히 동료들이에요. 같이 일하는 동료의 존재가 엄청 커요. 저만 그렇게 생각하는 거 같진 않은데. 단체 대화방에서 휴가 때나 주말에나 그런 때도 서로 시덥잖은 수다를 엄청 많이 떨고, 보고 싶다 얘기도 많이 해요.
힘의 원천은 동료들이다.
_ 신 : 사적으로 많이 겹치는 관계네요?
_ 정 : 네. 정해진 회식 같은 게 아니라도 일상적으로도 자주 우리끼리 좋아서 술 마시러 가기도 해요. 그래서 이 관계 자체가 소중하고, 우리 활동에 시너지가 된다고 느껴요.
_ 신 : 일을 하다보면 어쩔 수 없이 갈등이 생길 수 있잖아요. 그럴 때 사적인 관계가 걸림돌이 되진 않아요?
_ 정 : 힘들기도 하죠. 그래도 좋은 게 많아요. 트러블이 생길 때는 최대한 직위나 경력, 직급이 가장 낮은 사람이 원하는 바가 뭘까, 그가 제일 덜 힘든 방향은 뭘까, 그걸 기준으로 삼아요.
_ 신 : 그렇게 했을 때 결과가 좋아요?
_ 정 : 네. 올해 활동가를 두 명 뽑았는데, 그때도 가장 최근에 합류한 활동가의 의견을 중요하게 반영했어요.
_ 신 : 그 결과가 좋았어요?
_ 정 : 네.
_ 신 : 개인적으로는 어때요? 삶의 방향을 결정짓는 것이 있었다면?
_ 정 : 학교. 학교가 제일 컸어요. 저는 되게 개인적인 인간이었어요. 주위 사람들과 친화적이지도 않았고. 보통 그러다보면 소외당할 수 있는데 혼자 소외당한다는 생각 별로 안하고 살았어요. 그런데 대학에서 여러 가지 관계를 경험하면서 함께 하는 것의 중요성, 같이 뭔가 도모하고 논의하는 것이 중요하고 기쁜 일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되게 친한 친구 중에 인권활동가가 있는데요, 제가 활동가가 되고 나서 그 친구가 인권적 측면에서 행동하거나 태도나 말이나 이런 것 고민하는 걸 보면서 아, 그냥 사람 좋다고만 일하는 게 아니다 그런 거 많이 배우기도 했어요.
_ 신 : 그러면 학교나 시대적 상황이 많이 좌우했다고 보세요?
_ 정 : 제 경우에 그걸 학교에서 경험했는데 꼭 학교에서만 가능한 건 아니라고 봐요. 여러 가지 계기가 있을 거에요. 다만 혼자 생각하다가 확 터질 거라고는 생각 잘 안하는 편이에요. 사무국 활동가들과 이야기하다가 넌 어떻게 오게 되었니 이런 거 얘기하다보면 자기가 활동하던 서클이라든지, 학교 밖 공동체나 공간에서 경험하고 얘기한 것이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는 친구들도 있고. 막연하게 시민운동이라는 걸 하고 싶었다, 멋있어 보여서 찾아오게 되었다는 경우도 있어요.
_ 신 : 단체들이 활동가 재생산이 큰 고민이 된 지 오래 되었는데, 이 조직에서는 비교적 잘 풀고 계신 듯 하네요.
_ 정 : 네, 저희는 활동가 개개인의 자존감과 자기 정체성, 자율성 그런 걸 되게 중요한 포인트로 삼고는 있어요.
_ 신 : 그러면 평가하기 어려울 수도 있지만, 다른 단체들이 그 문제를 잘 못 풀고 있다고 보시는건가요?
_ 정 : 젊은 활동가들과 얘기하다보면 그런 게 확실히 느껴지죠. 조직의 경직성이 큰데, 젊은 활동가들이 생각할 때 내가 무얼 위해서 여기서 일을 해야 하는 건지를 잘 못 찾는 거죠.
_ 신 : 그런 생각을 다른 활동가들도 안 하지는 않을 텐데, 못 풀고 있는 이유가 뭘까요? 선배 활동가들의 고민은 뭐라고 생각해요?
_ 정 : 두려움도 있을 거 같아요. 시민사회에서 민주적이고 인권적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면서 활동한다고 생각하고 살아왔는데, 후배들이랑 얘기를 해보면 사실은 그렇지 못한 나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까봐 두렵지 않을까요. 지역 단체들과 네트워크 관계여서 한번은 정말 20년 넘는 고연차 활동가와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그 분이 그러더라고요. 나도 그런 걸 배운 적이 없어. 나도 선배들한테 활동가의 정체성이나 조직 운영 같은 걸 배운 적 없기 때문에 필요하다고 생각해도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
활동가의 자존감, 자기정체성, 자율성이 중요
_ 신 : 그러면 다른 활동가들이 문제제기하고 이야기하면 더 위축되겠네요.
_ 정 : 네. 그런 측면에서 두려움이 엄청 큰 거라고 생각해요.
_ 신 : 조직이 그냥 오래되고 한 자리에 오래 있으면 그렇게 되는 수도 있지 않을까요.
_ 정 : 당연해지는 것들이 있잖아요. 그 전에 사고가 안 났기 때문에 당연하게 유지되고 다들 잘 점검하지 않는 부분들.
_ 신 : 그 이유가 뭘까요?
_ 정 : 바쁘고 그런 것도 있지만, 점검의 중요성이 자꾸 밀리고 있다는 생각도 들어요. 왜 여기서 일을 하냐고 하면 민주사회 실현이라든가 사회변혁이라든가 자기 활동의 지향이 1번에 가고, 조직의 지속가능성 같은 건 상대적으로 뒤에 있게 되죠. 신경 안 쓰는 건 아니지만 그런 문제를 염두에 두고 고민해볼 계기가 너무 없는 거예요. 저희 단체가 어제 했던 조직 진단은 올해 들어온 활동가가 진행했는데, 1교시가 정관과 내규 검토였어요. 처음엔 솔직히 다른 것도 할게 많은데 정관을 왜 보나 싶었어요. 총회 때마다 보고 개정사항 바꾸는데 말이에요. 그런데 두 시간 정도 읽고 함께 얘기해보니 실질적으로 고쳐야하는 부분이나 인권감수성이 떨어지는 표현 방식이 적지 않더라고요. 예를 들면 배우자 부모 상에는 경조사비 얼마 준다 하는데 남자는 장인장모, 여자는 시부모 이렇게 써있다거나. 처음에 다른 곳에서 쓰는 규정문을 참고해서 만든 건데 그걸 볼 일이 별로 없으니까 신경을 안 쓰고 있었던 거에요.
_ 신 : 그 신입활동가는 왜 그걸 먼저 하자고 한 거에요?
_ 정 : 저희가 올해 조직진단 하기로 하고, 서울시NPO지원센터에서 하는 지속가능보고서 워크숍을 함께 했었어요. 그때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그 활동가랑 저랑 참여했는데 그때 그러더라고요. 왜 이런 걸 얘기 안해줬냐고. 예를 들어서 저희 단체에서는 의사결정권자가 회계를 담당하지 않는다는 원칙이 있어요. 전용을 막기 위해서죠. ‘그런 걸 왜 말해준 적이 없어? 중요한 건데?‘라고 묻더라고요. 오래 일한 사람들은 굳이 말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 못하거나 인수인계 위주로만 전하다보니까 회계 원칙 같은 건 드러나지 않아서 빠트리는 경우도 많고. 새로 들어온 사람이 그런 걸 자꾸 겪으면 나는 내용은 모른 채 그냥 주어진 일하러 온 존재인가 느끼게 되는거죠.
_ 신 : 실무만 처리할 뿐 스스로 생각을 할 수 없는 조건 같은 거네요.
_ 정 : 전체적으로 어떤 맥락에서 이 일을 하고 있는가 그런 게 납득이 안되죠. 일단 경험의 차이도 있고, 선배들도 배우면서 성장하지 않았던 그런 배경도 있고.
_ 신 : 본인은 선배 입장에서 그런 얘기를 들으면 어떤 생각해요?
_ 정 : 문제 제기를 받을 때라면 일단 빨리 사과를 해야 하죠. 최대한 빠른 사과.
_ 신 : 마찬가지로 두려움에 싸일 수 있잖아요.
_ 정 : 음, 그럴 때는 제대로 싸워야죠.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설명하고 상대방의 생각도 듣고. 그래서 저희 사무국에서는 하여튼 수다를 되게 많이 떨어요.
_ 신 : 평소에 수다를 많이 떠는 게 문제를 완화시켜 주나요?
_ 정 : 어쨌거나 제가 처음에 단체에서 혼자 힘들었던 경험이 있고, 그걸 저만 경험한 게 아니라서 되도록 그러지 말자는 암묵적인 공감대가 되게 커요. 말을 할 때도 청유형으로 한다거나.
_ 신 : 개인의 의지가 담긴 실천이 큰 거네요. 자기 경험을 반면교사로 삼아서요.
_ 정 : 그렇죠. 지적을 할 때도 단정적으로 하기보단 ‘이러면 안 될 것 같아’, 또는 ‘이건 어떻게 생각해?’ 라고 부드럽게 말해요.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으로부터 ‘너 그렇게 말하는 건 별로였어’ 그런 얘기 들을 때가 있어요. 그렇게 문제제기 받으면 바로 사과하죠. 미안하다고. 평소 수다를 많이 떨면 ‘너 왜 그랬어?’라고 묻거나 ‘아, 미안, 안 그럴께, 또 그러면 꼭 말해줘’ 라고 얘기하는 게 부드럽게 되요. 정색하고 ‘이리 좀 앉아보세요’ 하고서 얘기하는 거랑은 달라요. 그런 상황에서는 그다지 심각하지 않은 일도 심각해지는 경우가 있죠.
_ 신 : 규모가 작아서 가능한 것일 수도 있겠어요.
_ 정 : 물론 그렇겠죠. 큰 조직을 경험하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그래도 팀별 파트별로 쪼개서 보면 또 비슷할 거라고 생각해요.
_ 신 : 그럼 거꾸로 선배 활동가들이 흔히 말하는 후배 활동가들, 세대적 시각에서는 현재 젊은 활동가들이 단체를 직장으로만 생각하고 사적인 시간이나 자기 얘기를 굳이 섞으려 하지 않아서 쉽지 않다고 말하는 경우가 있거든요. 여기도 그런 면에서 세대는 다르지 않잖아요. 멤버들이 그런 경우는 없었어요?
_ 정 : 여기서 아직은 없었어요. 그런데 만약 그런 멤버가 있다면 굳이 억지로 말을 시키거나 그러지는 않을 거 같아요.
_ 신 : 현재의 조직 문화로 보면 문제가 될 수 있을 텐데요?
_ 정 : 그럴 수도 있겠네요. 어느 조직이나 사람이 되게 중요하잖아요. 활동가 한 명 채용하는 게 단체로서는 엄청난 부담인데. 그래서 일단은 가장 막내인 활동가 마음에 드는 걸로 결정하는 게 중요해요.
_ 신 : 아까 두려움 말씀하셨는데 선배 활동가들은 사실 상처도 꽤 크죠. 상처 고려하느라 말하지 않는다는 건 안 되지만, 실제로는 어려운 것 같아요
_ 정 : 맞아요. 선배들한테 뭐가 힘든지 너무 안 물어보는 것도 문제인 듯 해요. 제가 이전 선배에게 가장 미안한 점도 그거에요. 한 번도 그걸 안 물어본 것 같아요. 지금 동료들은 저에게 ‘너 뭐가 힘들어? 그 일 하는 거 버겁지 않아?’ 그런 거 자주 물어봐주거든요. 그런데 저는 안 그랬던게 정말 미안하더라고요.
_ 신 : 서로 말은 편하게 해요?
_ 정 : 네, 존대하고 싶으면 하고, 반말 쓰고 싶으면 쓰고.
_ 신 : 먹고 사는 건 어때요? 급여는 적정하다고 생각해요?
_ 정 : 저희는 단체 만들 때부터, 전반적으로 활동가들이 전문직 수준의 급여를 받아야 한다는 데에 모두 공감하고 있어요. 선배들의 역할이 컸죠. 실제로 충분히 책정하고 있진 못하지만, 다른 단체들에 비해서는 다소 나은 편이에요.
_ 신 : 대략 얘기해줄 수 있어요?
_ 정 : 기본급이 150이고 4대보험 공제하고 수당 계산하고 하면 20대 중반 신입 활동가 실수령액이 160만원쯤 되요. 그런데 지금 한 3-4년 된 활동가가 얘기하길, 처음에는 일반 회사 다니는 친구랑 차이가 별로 안 났는데 지금 보니까 격차가 커졌다고 해서 고민이에요.
_ 신 : 아, 그럼 초봉은 비교적 잡았지만 위로는 많이 못 높이신 모양이에요.
_ 정 : 단체 안에서 연차나 경력에 너무 차이를 많이 두기 꺼려지더라고요. 제가 사무국장이라 제일 많이 받고 있는데, ‘어, 이거 내가 너무 많이 받는거 아닌가’ 그런 생각 하거든요. 일을 다 똑같이 하는데 말이에요. 근속수당이 1년에 5만원인데 제가 그것만 해도 40만원이에요. 그 부분에 대해서 얘기하면 동료들이 그냥 두라고 하는데 저는 마음에 걸려요. 어쨌건 매년 형식적으로라도 임금인상을 하려고 논의를 하고, 각자 강의를 나가거나 외부 활동으로 수입이 생기는 일은 특정인에게 집중되지 않게 하고 있어요.
_ 신 : 그런 외부 활동 수입도 단체에 내놓는 경우들도 있잖아요.
_ 정 : 저희는 그러진 않아요. 그리고 꼭 사무국장이 할 필요 없는 것들, 연차 낮은 활동가도 어느 정도 강의할 때가 되었다 싶을 때는 나가도록 독려해요.
_ 신 :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차가 늘수록 다른 직장과 차이가 커지는 부분은 조정해야 하는 게 아닐까요?
_ 정 : 그래서 고민이에요.
_ 신 : 좀 더 좁혀서, 활동 시작할 때 개인적인 자금 사정은 어땠어요?
_ 정 : 되게 안 좋았어요. 학자금 대출이 너무 많았어요. 학부 때부터 쭉 받아서, 대학원에서는 안 받으려고 계속 미친 듯이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그것까지 받으면 진짜 끔찍한 상황이 도래할 것 같아서. 활동 시작한 뒤로도 경제적 상황은 계속 안 좋았는데, 몇 년 뒤 급여가 180만원을 넘어간 이후부터 카드빚이 안 생기더라고요. 그게 학자금 대출 다 갚은 시기랑 맞았을 수도 있어요. 어쨌든 이전에는 카드 연체가 계속 생겼는데 그게 안 생기는 시점이 드디어 온 거에요. 그렇게 생각해보면 사실 동료들 처지가 다 비슷할텐데, 급여가 적어도 이 정도는 필요하겠다 싶더라고요.
_ 신 : 대출 총액 얼마나 되었어요?
_ 정 : 2천만 원 정도였어요. 대학원 논문학기 때는 알바를 하기 어려워서 한번 더 받았는데 그건 재작년에 끝났어요. 총액은 다르지만 어쨌든 계속 갚을 게 있으니까 이건 그냥 나의 삶 같은 부분이었어요. 그게 어느 날 없어지니까 너무 신기하고 기쁘더라고요.
학자금 대출이 너무 많았다.
_ 신 : 취업할 때 그 고민 하셨을 거 아니에요. 이걸 안고 생활도 하면서 활동을 한다는 거.
_ 정 : 사실 집 자체도 되게 힘들었어요. 그래서 어머니와 울면서 얘기를 했죠. ‘너 너무 이기적인 거 아냐?’라고 하시더라고요. 제 동생은 그런 사정을 감내하면서 돈 버는 일을 하고 있는데, 저는 집에 보태주진 않아도 뭔가 안정적으로 자립은 해야 할게 아니냐고. 제가 하는 일이 자립이 가능하거나 안정적인 직장은 아니라고 보신 거에요. 아무튼 어머니랑 다투면서 어찌되었든 5년만 해보겠다고 했어요.
_ 신 : 그런데 5년은 이미 지났고.
_ 정 : 5년 아니고 한 3년 지났을 때부터 어머니가 물으시더라고요. ‘그래서 니가 생각하는 것에 도달하고 있다고 생각하냐, 목표한 삶에 얼만큼 부합하고 있냐’고요. 그러면 ‘그냥 아직 5년 안되었으니까 있어봐, 좀 더 기다려봐’ 했죠.
_ 신 : 집에서 다니셨어요? 결혼 하면서 나왔고요?
_ 정 : 네. 맞아요.
_ 신 : 지금 거의 대부분 학자금 대출을 받죠. 이게 정말 시대적인 상황이라서, 개인이 벗어나기 어려운 듯 해요.
_ 정 : 저희 신랑이 저보다 열 살 더 많아요. 다른 단체로 보면 대개 사무처장 정도 되는 나이인거죠. 그 친구는 학자금대출 안 받았어요. 제도가 없기도 했고요. 저는 결혼하고 나서도 학자금을 갚아야 했어요. 신랑은 그때서야 몸으로 인지하게 되었다고 해요. 지금 시대 젊은이들의 상황을요. 언어적으로 삼포세대 그런 걸 알고는 있지만 이게 정말 이런 거구나, 하고 이해를 했다고 해요. 우리 세대가 ‘민주화? 87년? 그게 뭐?’ 라고 막연하게 생각하는 것처럼, 서로 문자로만 이해하는 시대적인 차이도 있는 거 같아요.
_ 신 : 그런 단체 내 젊은 세대 활동가들이 어떤 시각으로 이 단체를 보고 있다고 봐요? 비교적 다른 곳보다 나은 환경이라 들어온 건지, 아니면 더 나은 직장을 포기하고 온 건지.
_ 정 : 사실 제 주변을 봐도 다들 직장생활 시작하는 게 비정규직이에요. 어떨 때는 제가 월급이 더 많을 때도 있고. 그래서 단체에 들어오는 게 경제적 부분에서 뭔가 크게 결심을 해야 하는 수준은 아닌 것 같아요. 오히려 개인적 성취와 만족, 그런 게 더 큰 게 아닌가.
_ 신 : 그런데 선배 세대 상당수는 경제적 부분을 가장 큰 문제로 보고 있는 듯 해요.
_ 정 : 희망제작소에서 ‘좋은 일이란 무엇인가’를 주제로 나온 연재 글이 있어요. 그 글에 일을 하는데 가장 중요한 포인트가 뭐냐는 설문조사 내용이 있어요. 답을 보면 급여가 생각보다 중요하거나 핵심적인 기준은 아니더라고요. 그건 저희 단체 안에서 다 얘기하고 있는 부분이에요. 예를 들어서 나는 200만 원이 필요한데 150만 원을 받는다면 단체 내에서 얘기를 해서 50만 원의 부수입을 얻을 일을 추가로 찾도록 협의하는 방법도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_ 신 : 급여도 중요한 문제긴 하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 문제가 있을 거다 라는 건가요?
_ 정 : 돈을 벌어야겠다 생각하면 애초에 시민단체를 고민하지 않았을 것 같아요. 부자 되려고 3년 안에 1억 모으려고 오는 경우는 없을테니까요. 어차피 선배들도 그 부분을 가지고 단체활동 시작하지 않았을텐데 그 고민은 이해가 잘 안되요.
_ 신 : 그럼 진짜 문제가 뭔지 좀 더 이야기할 필요가 있겠네요. 아까 이야기한 자존감이나 소통이나 그런 것 외에 어떤 문제가 있다고 보세요?
_ 정 : 여기서 나의 발전가능성, 그걸 보게 되는건데. 내가 여기서 10년 일을 하고 나면 어떤 사람이 되어 있을까? 어떤 역할을 하는 사람이 될까, 그런 생각을 했을 때 잘 안 떠오르는거죠.
_ 신 : 선배들을 보면서 찾기 어려운 걸까요?
_ 정 : 어찌 보면 선배들도 힘들게 살고 있는 걸 보면서 십년 후 그때 저 상황이라면 어떨까, 저렇게 헌신만 하면서 살아야 하는 것일까, 그런 고민 할 수도 있겠지요. 저 분은 십년 전에도 처장이었는데 지금도 처장이네. 그럼 십년 후에도…? 뭐 그런. 그리고 요즘은 활동가로서 정체성을 갖지 않아도 활동할 수 있는 사례나 모델이 보이기도 하니까 나도 그냥 저렇게 하는 게 좋지 않을까 싶기도 할테고요. 가치 중심적인 활동을 하면서 살고 싶다고 마음 먹었을 때 단체 말고도 선택할 게 많아진 건 사실이잖아요. 그리고 선배 세대는 새로운 것을 만드는 기쁨이라도 느꼈던 거죠. 단체를 창립하고 성공의 경험 같은 게 있는 건데. 지금 젊은 세대도 기존 단체에 들어가 순응하기보다는 또래들과 스타트업을 하든, 직접 뭔가 만들면서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 할 것 같아요. 한 활동가가 그런 얘기 하더라고요. 집회에서 연대 투쟁가를 부르는데 가사가 원래 ‘우리는 실패를 모른다. 후퇴도 모른다’ 그런 건데 자기들은 ‘우리는 실패를 모른다. 성공도 모른다’ 이렇게 부른대요. 그거 듣고 되게 충격 받았어요. 정작 그 활동가는 ‘왜 충격받아? 그냥 재밌으라고 부른 노래인데?’ 그러더라고요. 그게 너무 당연해서 재밌게 말하는 그런 상황인거에요. 하여튼 작고 사소한 성취, 그런 게 없는 거죠.
‘우리는 실패를 모른다. 후퇴도 모른다’
‘우리는 실패를 모른다. 성공도 모른다’
_ 신 : 정책이나 아젠다 중심의 운동이 지금 세대와 공감하기 어려운 점은 없을까요?
_ 정 : 저는 그 부분이 비관적으로 느껴지지는 않아요. 저희 활동도 정책 쪽이지만 지속적으로 관심을 받고 있는 편이고요.
_ 신 : 질문을 좀 더 구체적으로 하자면, 87년 이후에 운동은 시스템 자체가 없던 것을 만들어 나가니까 재미가 있고 힘이 있었다면, 지금은 시스템이 충분히 생겼고, 오히려 시스템을 뛰어넘어서 전문가 마음대로 휘두르는 그런 부분도 있고 해서 활동의 한계가 생기는 것 같아요. 의제 운동의 한계랄까.
_ 정 : 저희 운동 같은 경우는 카피가 쉬워요. 누구나 할 수 있는 걸 우리가 하고 있는 것 뿐이죠. 그 부분을 어떻게 할까 고민하고 있어요. 누구를 타겟으로 하고 어떻게 세분화할 것인가. 어쨌든 제도를 만들었으면 그걸 넓혀야 하지 않나 싶어요. 운동을 여기저기서 카피를 하면 그게 우리의 목적이기도 하지만, 그 시스템을 더 넓히고 진입장벽을 낮추는 것도 우리 운동이에요. 앞으로 2-3년 정도는 더 고민해야 할 것 같아요. 작년부터 논의하고 있는데 그게 당장 되는 게 아니더라고요. 되게 큰 결심이 필요해요.
_ 신 : 그런 고민을 하게 된 계기도 제도가 어느 정도 확산되고 있다고 생각하셨기 때문인거죠?
_ 정 : 저희 단체 초반 활동방식을 그대로 카피한 단체들이 지역에 생기고 있어요. 그런 곳에서 연대 요청이 오기도 하고, ‘이런 게 문제인데 너희가 더 해줘야 하는 게 아냐?’라고 요구하기도 하고요. 아무튼 이런 상황이면 우리는 뭘 해야 하는가 그런 고민 하게 되었죠. 게다가 2018년이면 단체 창립 10년이에요. 그래서 작년에 ‘우리 십 주년 준비 어떻게 하지?’ 얘기하다가 나온 과제기도 해요. 우리 운동을 평가해보자는 얘기를 하면서 그걸 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니까 지속적으로 해 오던 활동을 전부 계속 할 수는 없겠더라고요. 그게 결단인거에요. 거기 시간을 쓰다보면 회원들이 너희 요새 왜 아무것도 안 해? 그럴텐데.
_ 신 : 외부 요인과 내부 성찰 양쪽이 다 있었다는 거군요.
_ 정 : 네. 아무튼 그 준비를 하려면 열악한 현실상 뭔가를 접어야 하는데 기존에 하던 걸 접기가 너무 어려워요. 진짜 그것만 고민할 수 있는 단체는 거의 없는데, 그러다보니 앞으로의 전망을 고민할 때 가장 오래 활동해온 사람들이 주도하게 될 텐데 그러면 또 다른 활동가들은 짜여진 전망 안에서 실무만 수행하는 존재에 그치지 않을까.
_ 신 : 지금 다시 평가해도 이 단체가 계속 가야한다고 보시나요?
_ 정 : 일단 동료들이 계속 일하고 싶어 해요. 이 조직에서.
_ 신 : 그럼 본인도 계속, 십년 후에도 사무국장을 하시는 건가요?
_ 정 : 사실 저는 몇 년 전부터 순환제와 제비뽑기제를 하자고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는데 묵살당하고 있어요. 저는 내후년에 안식년을 갈 건데요, 동료들은 그때까진 네가 하면 좋겠다고 해요. 그 후는 그때 가서 보자는 거죠. 사실 동료들도 저에게 ‘네가 하고 싶은 것도 있을 건데 계속 사무국장 맡겨서 미안하다’고 말해주긴 해요.
_ 신 : 임원진에서 반대하거나 할 가능성은 없을까요?
_ 정 : 크게 이견이 있을 것 같진 않아요. 제안을 거절당하거나 그랬던 경험이 없어서일 수도 있는데. 뭔가 논의를 하자고 하면 사무국 결정을 존중하는 편이어서요.
_ 신 : 그분들이 재정이나 운영의 책임을 다 지시나요?
_ 정 : 그건 좀 약해요. 거의 사무국에서 해결하는 편이에요. 임원 중에서 기존 시민단체 경험 많은 분이 별로 없어요. 그래서 크게 관여하기 보다는 지지해주는 편이죠.
_ 신 : 임원 충원은 어때요? 어려운 편인가요?
_ 정 : 어렵죠. 그래도 다행인 건 초기 멤버가 거의 사임하지 않고 계속 해 주셔서요.
_ 신 : 본인은 계속 운동을 하고 싶다고 하셨는데, 실무자로서가 아니라 전문성을 좀 더 살려서 개인적으로, 예를 들어서 컨설팅같은 걸 하는 사례들이 있는데요, 그런 생각은 안하세요?
_ 정 : 여기서 전문성을 키우면 된다고 생각해요. 이 단체에서 처음부터 활동가 개개인이 전문가로 성장해야 한다고 얘기해왔기 때문에. 내가 만약 정보공개센터에 없는 정보공개전문가라면? 그게 상상이 잘 안 되는데 굳이 나가서까지 내가 따로 전문가가 되어야 하나? 여기서도 충분히 역할 할 수 있는데. 그렇게 생각해요.
_ 신 : 우연히 시작한 일이 인생 활동으로 굳어져가고 있네요.
_ 정 : 그렇죠. 요새 진짜 고민이 하나 있는데 활동가들이 다들 ‘1, 3, 5, 7년이 힘들어, 그때 고민이 많은 시기지.’ 그러는데 저는 그게 왜 당연한 건지 모르겠어요. 모든 활동가가 3년이 지나면 어떤 벽에 부딪친다면 그건 이 영역 전체가 고민을 해야 하는 문제지, 당연한거야라고 하면 안되는 거죠. 같은 문제가 반복해서 계속 나온다는 건 분명 구조적인 문제가 있는 거에요. 동료 중에도 있고, 저 같은 경우는 불면증도 경험하고 그랬어요. 그러면 이거 직업병이잖아요? 직업병인데 왜 해결할 생각을 안 하지? 그러니까 ‘내가 3년 차일 때 왜 힘들었을까, 나는 왜 잠이 안 올까?’ 이런 걸 놓고 다 얘길 해봐야 하는 게 아닐까요? 그래야 어떻게 해야 할지도 나올 건데.
저희 단체나 제 경험으로만 놓고 보면 일단 3년이 지나면 선배가 되요. 아무것도 모를 때 선배들 모습 보면서 나도 몇 년쯤 하면 저 정도 하겠지 생각했는데 사실 안 그렇다는 걸 알게 되죠. 그런데 후배는 생기고 이 작은 조직에서 내가 지금 이 정도 역할은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게 잘 안 되니까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 내가 못나서 이런 건가, 이런 생각 하는 거에요. 그런 시기가 1, 3, 5, 7 같은 연차로 나타나는게 아닐까 싶어요. 저는 수면장애가 너무 심한데 한 동안은 너무 심해서 어쩌지 싶을 정도로 여러 가지 생각이 떠나지 않아서 꽤 오래 잠을 못자고 그랬어요. 그 얘길 하니까 선배들이나 친구들도 그렇다고 하고 더 힘들었던 얘기도 해주더라고요. 그러니까 이게 참 보편적인 거구나 하고 넘어갔는데 나중에 후배도 그렇다는 얘기를 듣고는 뜨악하게 되었어요. 보편적인 만큼 큰 문제구나라고 느꼈죠. 올해 그랬어요.
_ 신 : 어떤 시도가 가능할까요? 연차별로 할 수 있는 거?
_ 정 : 동료 활동가, 우리 단체가 아닌 다른 단체의 동료 친구가 많아져야 한다는 생각을 자주 했어요. 전국에 흩어진 단체들 모였는데 보니까 선배들, 처장들이 다 친한 거에요. 형, 누구야 서로 그러는데 연차 낮은 활동가들은 서로 멀뚱멀뚱하더라고요. 선배들은 오래 만나기도 했고, 그 시기에 활동가가 되는 경로가 비슷해서 다 서로 친구인거에요. 그런데 지금은 그렇지 않은거죠. 제가 단체에서 힘들거나 끙끙대거나 했을 때, 안전한 다른 단체 친구들이 위로가 많이 되었거든요. 다른 직장에서 일하는 친구들에게 말하면 ‘그래도 넌 니가 하고 싶은 거 하잖아’라는 대답 듣기 십상이기 때문에 얘기를 안 하는게 낫고, 게다가 우리 단체 회원으로 가입시켰는데 문제를 얘기하기도 어렵고요. 그런데 다른 활동가들 만나면 하소연하거나 같은 경험을 공유하고 있어서 얘기하기 편해요.
_ 신 : 개인적으로 활동하면서 알게 된 분들인 거죠? 그건 또 개인차가 있을 건데. 그런 동료관계를 형성하려면 뭐가 필요할까요
_ 정 : 만날 수 있는 장 자체가 없어진 거 같아요. 예전에 활동가 대회 같은 거, 아니면 활동가들 모아서 연수 보내고 그런 프로그램 있었잖아요. 애드보커시 운동 쪽은 토론회에서 만나거나 하는 수준이지 서로 교류하는 게 별로 없어요. 활동가대회나 프로그램이 그런 계기를 만들어 주는 건데 지금은 그 계기조차 없는 거니까. 서울시NPO지원센터에서 5년차, 10년차, 중견활동가, 뭐 그런 묶음으로 프로그램을 했었는데 그게 그런 시도가 아니었을까 생각은 들어요. 그런데 후속으로 연결이 잘 안된 게 아쉽더라고요.
_ 신 : 정말 너무 없는 상황이네요.
_ 정 : 그래서 생뚱맞지만 지역 활동 연대체에 가입했어요. 활동 특성이 그래서인지 연대활동을 많이 하는 곳이 아니기도 해서 단체가 섬 같은 거에요. 아는 사람도 별로 없고 그래서 저희가 뭐 많이 하는 것도 없어도 연대활동을 지속하려고 노력해요.
우리 단체가 아닌 다른 단체의 동료 친구가 많아져야
_ 신 : 중간지원조직들이 그 부분을 채워주려고는 하는데. 제3의 누군가가 만들어줘서 되는 건가 싶기도 해요.
_ 정 : 어려운 것 같아요. 이걸 내가 다 하기는 어렵고 누가 좀 고민해주면 좋겠는데 말이에요.
_ 신 : 의제 중심이 아닌 다양한 활동이 많아진 편인데 운동이 어떤 측면에서 변했다고 보세요? 아니면 안 변했다든지.
_ 정 : 조직 베이스가 아닌 개인의 느슨한 결사체가 많아진 느낌이에요. 사회적 경제, 청년, 마을 등 그룹으로 묶인 사람들 보면 그런 경우가 많아서. 어렵지 않게 누구나 할 수 있는 운동이 되면 운동이 양적 질적 팽창할 수 있으니까 좋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운동을 지탱하는 베이스가 시 예산이라든가 그런 경우가 많아서 본질적인 것을 이야기하지 않고 너무 팬시해지고 있는 게 아닌가 걱정되기도 해요. 청년은 푸르지, 재기발랄하지, 뭐 그런 쪽으로. 지금 그런 게 필요한 상황도 이해는 해요. 뭔가 도모하려고 할 때 재정적 받침이라든가 지속성을 위해 필요한 거. 그러면 그 준비를 하면서 상징적인 이미지를 강화하는 것 보다는 더 본질적인 질문을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생각해요. 왜 청년 문제가 있는거지, 왜 마을이 해체되는 거지? 어차피 관의 재정을 끊어지기 마련이니까 눈치 보지 않고 그런 거 적극적으로 얘기해야 하는 거 같은데, 모여서 뭐 해보자고 포스트잇 예쁘게 붙이고 같이 밥 먹자 그러면서 현상적인 것에 그치는 느낌이 있어요. 그런 단계도 분명 필요하지만 제가 못 보는 건지 몰라도 그걸 뛰어넘는 것까지 잘 안보여서, 그게 참 안타깝고 화가 나기도 하고 그래요.
_ 신 : 기존 단체들은 그런 베이스를 갖고 있다고 보시는 건가요? 최소한 조직을 운영할 수 있는 구조? 그게 없는 상태에서 외적인 부분에 치중한다는 건가요?
_ 정 : 네. 관의 지원으로 시작한 운동은 그게 끊어지고 나서 어떻게 지속할 수 있을까, 되게 단기적으로 10개월, 이렇게 지원하는데 그걸 경험한 사람이 많아지는 것과 그 이후 단계까지 심도 깊게 파고든 사람들이 있는 건 다르겠죠.
_ 신 : 무조건 지속해야 한다고 요구하시는 건 아닐거고, 지속할 때 좋은 점이 있다고 보시는 건가요?
_ 정 : 어쨌든 시민사회가 변화의 동력을 그런 쪽에 일부 두고 있는 상황인데, 그 사람들이 일순간에 활동의 주체가 아니라 사업의 대상자가 되버릴 수도 있겠다는 것. 사회적 경제나 협동조합이나 어느 쪽이든요. 어떤 활동가는 ‘협동조합 참 쉽다’라는 책 쓴 사람 만나서 따지고 싶다고 그러더라고요. 협동이 얼마나 어려운 건데 너무 쉽게 표면적인 것만 얘기하니까.
조직 베이스가 아닌 개인의 느슨한 결사체가 많아진 느낌
_ 신 : 경제적인 게 핵심은 아닐 수 있지만 어쨌거나 관에서 기금을 내니까 그 돈 받으면서 조금이라도 사회적 활동을 하고 싶어하는 경우도 있을 거 같아요. 단체 활동에 매이다보면 자기가 원하는 걸 못할 가능성도 클 테고, 그런 점이 작용하는 것도 있지 않을까요?
_ 정 : 그럴 수도 있죠. 저희가 주4일 출근제를 고민한 이유 중 하나는 활동에 퍼센티지를 두는 건 어떨까 싶어서에요. 단체에서 해야 하는 일을 하면서도 어느 정도는 내가 원하는 것, 그러니까 알바를 하든, 다른 활동을 하든, 쉬든, 자기 활동을 유지하기 위한 시간으로 쓸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_ 신 : 그런 성장을 결국 조직을 기반으로 하는게 더 낫다고 보시는 건가요?
_ 정 : 독립 활동가가 꼭 단체에 들어와야 한다는 건 아닌데, 그래도 난 여기서 길을 찾을테야라고 들어왔던 사람이 포기하고 다른 길로 가겠다고 나가는 것은 막거나 줄일 수 있지 않을까요? 요즘 시민운동의 가장 큰 특징이 활동가 이직이 많아져서 허리층이 없어지고 있다는 거랑 단체 베이스 아닌 활동가가 많아지고 있다는 두 가지라고 봐요. 일단 개인 활동가가 많아지는 건 기술이나 시대적 배경이 많이 작용하는 것 같아요. 그렇지만 단체에서 이탈하는 활동가가 많다는 건 정말 해결해야 하는 문제예요. 의미도 모른 채 무작정 헌신하지 않고도 일할 수 있는 틀을 제시해야 하는 게 아닌가.
_ 신 : 다른 곳에서 그런 사례를 보신 적은 있으실까요?
_ 정 : 예를 들면 구성원 역량의 70%를 단체에 필요한 걸 하고, 30%는 자유롭게 쓰는 실험을 하는 단체가 있어요. 단체 상황이나 구성원 성향에 따라서 다르게 표현할 수 있는 부분이겠죠. 저희는 주 4일 출근제를 하고 있고요. 어느 단체 평간사협의회에서 찾아와서 주 4일제에 대해서 물어보셨는데요, 그때 주4일 출근제를 하고 나서 휴가일수를 줄였냐는 질문이 있었어요. 주 4일 업무가 아니라 ‘출근’이어서 나머지 하루는 출근하지 않지만 활동을 자유롭게 하는 것 뿐이라 휴가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데 말이에요.
_ 신 : 소위 근태에 해당하는, 출퇴근 관리해야 하는 그 부분을 줄이신거네요. 일을 줄인 건 아니고.
_ 정 : 네. 일을 바로 줄일 수는 없지만, 일단 사무실에 나와있는 시간을 줄여야 일도 줄 수 있을 듯 해요. 줄이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하고 싶은 일을 한다거나, 해야 된다고 생각하던 일을 할 시간을 주는 거죠.
_ 신 : 기술적인 것도 작용하겠죠. 만나지 않아도 소통할 수 있고.
_ 정 : 맞아요. 꼭 금요일만 출근 안할 필요가 있냐고도 해요. 그런데 사실 저희 동료들이 서로 너무 보고 싶어해서 정해놓고 만나야 하더라고요. 다른 날 쉬고 싶으면 휴가를 쓰면 되요. 어차피 있는 휴가도 잘 못쓰니까.
단체에서 이탈하는 활동가가 많은 상황, 우리가 해결해야 하는 문제
_ 신 : 예를 들어 육아 때문에 화요일은 꼭 재택해야겠다 그러면 어쩌죠?
_ 정 : 아직 그런 상황은 없었는데, 발생하면 같이 협의해서 결정할 것 같아요.
_ 신 : 마지막으로, 활동가로서 어떤 공부를 중요시하세요? 또는 지금 나에게 영향을 주고 있는 책도 좋고, 사람도 좋고 그런 게 있으시다면 알려주세요.
_ 정 : 저는 같이 일하는 동료들이 중요해요. 최근에 되게 힘들어하는 활동가가 한 명 있는데, 이유가 뭘까 서로 얘기하다보니까 지금 시국 상황에 내가 뭘 해야 할까, 그냥 촛불 들고 나가기만 하는 거 말고 활동가로서 뭘 해야 하는 걸까 그 고민이 의외로 엄청 컸더라고요. 그걸 알고서 ‘와, 내가 너무 요새 그냥 좋게 좋게 살고 있었나? 아니면 극심한 무력감에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고 희망 없이 살고 있었던 건가? 아프다고 느껴야 하는데 왜 안 아픈거지?’하고 고민하게 되더라고요. 동료들과 술 마시면서도 자주 그 부분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어요. 그렇게 영향을 많이 주고 받는게 제일 커요. 다행인건 제가 보기에 짝사랑 같지는 않아요. 서로 되게 의지하고 그래서. 사실 이게 저희 단체의 약점 중 하나에요. 누가 이탈하거나, 손실이 되었을 때 타격이 되게 커요. 심정적으로도 업무적으로도.
_ 신 : 십년 후에는 어떤 단체로 있을지 궁금해지네요.
_ 정 : 음, 그때도 존재하고 있을까요? 아마 있을 거 같아요.
_ 신비
#신비 #정진임 #정보공개센터 #정보공개 #서울 #민주주의 #참여 #투명 #장상미
– 신비(이하, 신) : 언제부터 활동하기 시작했어요?
– 정진임(이하, 정) : 2008년이요. 대학원 졸업하고 뭘 할까 고민하고 있던 차에요. 전공이 주로 공무원이 하는 일이었어요.
– 신 : 기록관리학이죠?
– 정 : 네. 취직도 잘 되는 곳이었어요. 그런데 과연 그 일이 재밌을까 싶고 내가 공무원이 맞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그러던 중에 대학원 한 학기 선배가 정보공개센터라는 시민단체를 만드는데 같이 해볼 생각 있냐고 묻더라고요. 고민을 좀 하다가 ‘일단 한 3년 해보고 아니다 싶으면 그만두고 다시 공부를 하든가 하지 뭐’라고 생각했어요. 스물 여섯 때였거든요. 3년 더 해도 어차피 서른 살이니까 일단 해보고 아니다 싶으면 빨리 빠지자 했죠.
– 신 : 나이로 보면 그전까지는 쭉 공부를 하셨네요.
– 정 : 네, 학부 졸업하고 바로 대학원 가고.
– 신 : 시민운동에 대해서는 학교에서 전공과 관련해서 배우셨을텐데 그 밖에 접점은 뭐가 있었어요? 어디 회원이었다거나?
– 정 : 아뇨. 그런 건 없었어요. 학교 다닐 때 선배들이나 주변에서 시민단체 활동하는 경우도 있어서 모르지는 않았지만요.
– 신 : 학생회 활동 하셨어요?
– 정 : 네.
– 신 : 운동권이셨어요?
– 정 : 네. 굳이 분류하자면. 그런데 저희 학교가 운동권이 많았어요. 한신대학교 나왔거든요. 환경이 그래서 학교에서 공부를 하면서도 내가 왜 이 공부를 하고 있지, 어떻게 써야 하지 그런 고민 했었어요.
_ 신 : 취직을 해야 하니까 그런 건 아닌가요?
_ 정 : 다른 길을 크게 생각을 안하는 것 같다는 느낌이 있었어요. 제가 단체에 온 뒤로도 1년 정도는 회원 중에 기록학 쪽 선생님이나 이런 분들이 공무원 시험 안 볼거냐 언제 볼거냐 많이 물으셨어요. 왜 다들 내가 아르바이트나 프로젝트를 한다고 생각하지? 이런 의문이 들더라구요. 기록학계에서는 당연히 나가는 길이 공무원밖에 없어서 그럴 수도 있지만 정보공개센터 활동도 내 학문의 연장선으로 보이게 하고 싶다는 생각 많이 했어요.
_ 신 : 그렇게 단체에 와서 활동을 시작하셨는데, 어떻게 된 거에요? 3년만 해보자한건데 8년이 되었어요.
_ 정 : 처음에 엄청 힘들었어요. 단체를 막 만드는 중에 들어왔거든요. 저는 시민단체라는 걸 전혀 경험해본 적이 없고, 이 일의 패턴에 대해서도 알지 못하는데 상근자는 선배랑 저 두 명이고. 소장은 제주도에 있어서 일주일에 많아야 한 두번 와서 잠깐만 있다가 가고. 회의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고. 혼자서 어디부터 어디까지 해야 하는건지 너무 막막한거에요. 그런데 차근히 알려주는 사람도 없고 물어볼 곳도 없었어요.
_ 신 : 선배가 일하는 스타일이 그랬던 건가요?
_ 정 : 성격적으로 그런 것도 있지만, 선배는 외부에 단체를 알려야 하니까 밖으로 많이 다녔어요. 그래서 처음에 한 일년 정도는 너무 힘들어서 단체가 빨리 망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진짜 많이 했어요. 내가 그만두는 건 너무 자존심 상하고 지는 것 같아서 싫은데 활동을 계속 하기는 너무 힘드니까.
_ 신 : 그런데 단체가 안 망한거네요.
_ 정 : 네. 한편으로는 또 망하면 안될 것 같고, 망하는 걸 보고 싶지는 않은 그런 복잡한 마음이었어요. 다른 사람들이 워낙 열심히 하기도 했고. 그래서 안 망하고 꾸역꾸역 가다보니 다른 동료들도 생기기 시작했죠.
_ 신 : 동료들이 언제부터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_ 정 : 1년 지난 뒤 한 명 들어왔고 조금씩 늘었어요. 지금이 제일 많아요. 상근자 다섯 명이에요. 3년차 이상이 3명이고 5년차인 1명은 현재 육아휴직 중이에요.
처음에 한 일년 정도는 너무 힘들어서
단체가 빨리 망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진짜 많이 했어요
_ 신 : 상근자가 꾸준히 늘었다는 건 계속 안 망할 분위기네요.
_ 정 : 네. 그리고 지금은 망하면 안된다고, 망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_ 신 : 처음에 그렇게 힘들다가 활동이 재밌어진 시기는 있어요?
_ 정 : 1년 있다가 동료가 한 명 생겼다고 했잖아요. 원래 공개채용을 하려다가 대실패를 하고, 아 역시 우리 같은 신생단체는 공채는 안되는구나 싶어서 주변에서 일할 사람을 찾던 중에 친했던 학교 후배가 들어오게 되었어요. 그렇게 알음알음 들어온 건 그 친구가 마지막인데요. 아무튼, 되게 좋았어요.
_ 신 : 뭐가 좋았어요?
_ 정 : 회의를 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그 전에 두 명 있을 때는 회의가 안되더라고요. 이제 회의를 할 수 있으니 좋고, 개인적으로는 동료가 생겨서 외로움이 줄기도 했죠. 무엇보다 얘도 단체가 빨리 망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는 만들고 싶지 않았어요.
_ 신 : 후배라서 그런 걸까요?
_ 정 : 그건 아니에요. 그 후로는 전혀 일면식 없는 사람들이 동료로 결합을 했는데 그때도 같은 마음이었거든요. 그런 걸로 봐서는 인맥 때문은 아닌 것 같아요.
_ 신 : 그럼 이유가 뭘까요?
_ 정 : 제가 조직형 인간이어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어요. 여기가 망했으면 하면서도 망하지 않기 위해서 계속 뭔가를 하고 있다든가, 좀 더 나아지길 바라며 계속 버티는 ‘존버’ 정신을 갖고 있어서가 아닐까 싶어요.
_ 신 : 그때 그 생각을 했던 거에요?
_ 정 : 그때는 안했죠. 지금 보면 그랬던 거 같아요. 그리고 직장에서의 고달픔과 별개로, 이 활동 자체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조금씩 했던 것 같아요.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 힘들었던 1년 동안, 교육이나 학습을 받지 못했어요. 정보공개라는 건 이런 거야, 우리 운동은 이런 중요성이 있어 그런 걸 전혀 듣지 못한 상태에서 맨땅에 헤딩해야 할 때 스스로 이유를 찾아가는 과정이 그 정도 필요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해요.
* 모든 분야에 정보공개운동이 필요하다. 사진은 정보공개센터와 청년유니온의 업무협약식
_ 신 : 그러면 뒤에 들어오신 분들에게는 본인이 받지 못했던 교육을 해주려고 하셨겠네요.
_ 정 : 네. 바로 다음 들어온 친구까지는 대략의 소개나 설명만 해주었을 뿐 제대로 못했어요. 그 이후부터는 2개월 수습기간을 두고 있고, 다른 단체나 활동가에게 소개를 하면서 활동가로 살아간다는 건 무엇인가 그런 이야기도 해요.
_ 신 : 그런 기회를 갖고 시작하는 것과 그렇지 못한 것, 어떻게 다른 것 같아요?
_ 정 : 저희가 어제 조직진단 회의를 했었는데 그걸 하면서 되게 의미 있는 이야기가 나왔어요. 활동가에겐 우리 조직에 대한 자존감, 직장에 대한 자존감이 필요하다고요. 우리 단체가 짱이야 그런 게 아니고, 교육이나 훈련, 관계로 만들어지는 자존감이죠. 그런 측면에 있어서 교육이 꼭 필요한 거라고 생각해요. 물론 교육의 효과가 똑같이 확 드러나는 건 아니지만요. 초기에 결합한 두 명은 제대로 교육을 못했지만, 어디를 내놔도 일을 잘할 사람들이에요. 척박한데서도 막 하는, 그런 성격의 부류여서.
_ 신 : 지금 구성원은 다양하게 섞여있는 거죠?
_ 정 : 네. 개인차가 커요. 사색과 사유가 되게 중요한 사람, 질문이 해결되지 않으면 힘들어하는 사람. 그래도 시스템은 있는 편이 좋아요. 왜냐면 직업 활동가로서 시민단체 들어가 일하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어쨌든 본인이 결심을 하고 시도하는 건데 자신의 정체성과 단체의 정체성을 혼자 생으로 고민하게 둬선 안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럴거면 굳이 단체 들어가서 활동할 필요가 있나.
_ 신 : 그러면 초기 두 명은 다행히 그게 잘 맞았던 건가요.
_ 정 : 그래도 많이 힘들어했죠. 둘이.
_ 신 : 회의하는 게 어려웠다고 했는데 어떤 사례가 있었어요?
_ 정 : 정책이나 기획은 보고를 받기 원하는 어른도 많이 계시고 그래서 그 자체가 어렵거나 하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일상적으로 결정할 것도 많잖아요. 제가 단체 들어가서 처음 한 일이 사무집기를 사는 거였어요. 전화 들이고 인터넷선 깔고. 그리고 총회 한 번도 안 해 본 상태에서 장소 정하고, 창립 총회 자료랑 초대장 만들어야했어요. 그런 일 하면서 플래카드는 어느 게 나을까 뭐 이런 사소한 하나하나를 같이 결정할 사람이 없었어요. 아니면 우리가 뭘 해볼까 기획하는 거, 정보공개청구를 이걸 해보자 그런 걸 동료와 의논해서 하는 것과 혼자 하는 게 되게 다르더라고요.
_ 신 : 같이 하는 게 더 좋으시다는 거죠?
_ 정 : 네, 저는 그랬어요. 다른 단체에는 혼자 일하는 활동가들도 있는데 되게 외로울 것 같아요.
활동가에겐 우리 조직에 대한 자존감,
직장에 대한 자존감이 필요해
_ 신 : 조직 외부와의 관계는 어때요?
_ 정 : 친구들이 활동가가 많아요. 이쪽에 와서 만난 게 아니라 전에 알던 친구들이요. 저랑 비슷하거나 앞서거나 뒤서거나 활동을 시작한 친구들인데, 바빠서 자주 만나지는 못해도 자주 연락하고 지내요.
_ 신 : 그러면 고민이나 문제를 서로 공유하고 그러나요?
_ 정 : 그렇죠. 뭐가 어렵다 이런 얘기들 나누고. 그 외에는 활동하면서 알게 된 사람들과 일 외에도 개별적으로 만나는 경우가 있기도 해요.
_ 신 : 자기 활동을 하는 데는 그 힘을 얻는 원천이 꼭 있는 것 같아요. 경험이랄까, 사람이랄까, 어떤 게 있으세요?
_ 정 : 저는 확실히 동료들이에요. 같이 일하는 동료의 존재가 엄청 커요. 저만 그렇게 생각하는 거 같진 않은데. 단체 대화방에서 휴가 때나 주말에나 그런 때도 서로 시덥잖은 수다를 엄청 많이 떨고, 보고 싶다 얘기도 많이 해요.
힘의 원천은 동료들이다.
_ 신 : 사적으로 많이 겹치는 관계네요?
_ 정 : 네. 정해진 회식 같은 게 아니라도 일상적으로도 자주 우리끼리 좋아서 술 마시러 가기도 해요. 그래서 이 관계 자체가 소중하고, 우리 활동에 시너지가 된다고 느껴요.
_ 신 : 일을 하다보면 어쩔 수 없이 갈등이 생길 수 있잖아요. 그럴 때 사적인 관계가 걸림돌이 되진 않아요?
_ 정 : 힘들기도 하죠. 그래도 좋은 게 많아요. 트러블이 생길 때는 최대한 직위나 경력, 직급이 가장 낮은 사람이 원하는 바가 뭘까, 그가 제일 덜 힘든 방향은 뭘까, 그걸 기준으로 삼아요.
_ 신 : 그렇게 했을 때 결과가 좋아요?
_ 정 : 네. 올해 활동가를 두 명 뽑았는데, 그때도 가장 최근에 합류한 활동가의 의견을 중요하게 반영했어요.
_ 신 : 그 결과가 좋았어요?
_ 정 : 네.
_ 신 : 개인적으로는 어때요? 삶의 방향을 결정짓는 것이 있었다면?
_ 정 : 학교. 학교가 제일 컸어요. 저는 되게 개인적인 인간이었어요. 주위 사람들과 친화적이지도 않았고. 보통 그러다보면 소외당할 수 있는데 혼자 소외당한다는 생각 별로 안하고 살았어요. 그런데 대학에서 여러 가지 관계를 경험하면서 함께 하는 것의 중요성, 같이 뭔가 도모하고 논의하는 것이 중요하고 기쁜 일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되게 친한 친구 중에 인권활동가가 있는데요, 제가 활동가가 되고 나서 그 친구가 인권적 측면에서 행동하거나 태도나 말이나 이런 것 고민하는 걸 보면서 아, 그냥 사람 좋다고만 일하는 게 아니다 그런 거 많이 배우기도 했어요.
_ 신 : 그러면 학교나 시대적 상황이 많이 좌우했다고 보세요?
_ 정 : 제 경우에 그걸 학교에서 경험했는데 꼭 학교에서만 가능한 건 아니라고 봐요. 여러 가지 계기가 있을 거에요. 다만 혼자 생각하다가 확 터질 거라고는 생각 잘 안하는 편이에요. 사무국 활동가들과 이야기하다가 넌 어떻게 오게 되었니 이런 거 얘기하다보면 자기가 활동하던 서클이라든지, 학교 밖 공동체나 공간에서 경험하고 얘기한 것이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는 친구들도 있고. 막연하게 시민운동이라는 걸 하고 싶었다, 멋있어 보여서 찾아오게 되었다는 경우도 있어요.
_ 신 : 단체들이 활동가 재생산이 큰 고민이 된 지 오래 되었는데, 이 조직에서는 비교적 잘 풀고 계신 듯 하네요.
_ 정 : 네, 저희는 활동가 개개인의 자존감과 자기 정체성, 자율성 그런 걸 되게 중요한 포인트로 삼고는 있어요.
_ 신 : 그러면 평가하기 어려울 수도 있지만, 다른 단체들이 그 문제를 잘 못 풀고 있다고 보시는건가요?
_ 정 : 젊은 활동가들과 얘기하다보면 그런 게 확실히 느껴지죠. 조직의 경직성이 큰데, 젊은 활동가들이 생각할 때 내가 무얼 위해서 여기서 일을 해야 하는 건지를 잘 못 찾는 거죠.
_ 신 : 그런 생각을 다른 활동가들도 안 하지는 않을 텐데, 못 풀고 있는 이유가 뭘까요? 선배 활동가들의 고민은 뭐라고 생각해요?
_ 정 : 두려움도 있을 거 같아요. 시민사회에서 민주적이고 인권적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면서 활동한다고 생각하고 살아왔는데, 후배들이랑 얘기를 해보면 사실은 그렇지 못한 나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까봐 두렵지 않을까요. 지역 단체들과 네트워크 관계여서 한번은 정말 20년 넘는 고연차 활동가와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그 분이 그러더라고요. 나도 그런 걸 배운 적이 없어. 나도 선배들한테 활동가의 정체성이나 조직 운영 같은 걸 배운 적 없기 때문에 필요하다고 생각해도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
활동가의 자존감, 자기정체성, 자율성이 중요
_ 신 : 그러면 다른 활동가들이 문제제기하고 이야기하면 더 위축되겠네요.
_ 정 : 네. 그런 측면에서 두려움이 엄청 큰 거라고 생각해요.
_ 신 : 조직이 그냥 오래되고 한 자리에 오래 있으면 그렇게 되는 수도 있지 않을까요.
_ 정 : 당연해지는 것들이 있잖아요. 그 전에 사고가 안 났기 때문에 당연하게 유지되고 다들 잘 점검하지 않는 부분들.
_ 신 : 그 이유가 뭘까요?
_ 정 : 바쁘고 그런 것도 있지만, 점검의 중요성이 자꾸 밀리고 있다는 생각도 들어요. 왜 여기서 일을 하냐고 하면 민주사회 실현이라든가 사회변혁이라든가 자기 활동의 지향이 1번에 가고, 조직의 지속가능성 같은 건 상대적으로 뒤에 있게 되죠. 신경 안 쓰는 건 아니지만 그런 문제를 염두에 두고 고민해볼 계기가 너무 없는 거예요. 저희 단체가 어제 했던 조직 진단은 올해 들어온 활동가가 진행했는데, 1교시가 정관과 내규 검토였어요. 처음엔 솔직히 다른 것도 할게 많은데 정관을 왜 보나 싶었어요. 총회 때마다 보고 개정사항 바꾸는데 말이에요. 그런데 두 시간 정도 읽고 함께 얘기해보니 실질적으로 고쳐야하는 부분이나 인권감수성이 떨어지는 표현 방식이 적지 않더라고요. 예를 들면 배우자 부모 상에는 경조사비 얼마 준다 하는데 남자는 장인장모, 여자는 시부모 이렇게 써있다거나. 처음에 다른 곳에서 쓰는 규정문을 참고해서 만든 건데 그걸 볼 일이 별로 없으니까 신경을 안 쓰고 있었던 거에요.
_ 신 : 그 신입활동가는 왜 그걸 먼저 하자고 한 거에요?
_ 정 : 저희가 올해 조직진단 하기로 하고, 서울시NPO지원센터에서 하는 지속가능보고서 워크숍을 함께 했었어요. 그때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그 활동가랑 저랑 참여했는데 그때 그러더라고요. 왜 이런 걸 얘기 안해줬냐고. 예를 들어서 저희 단체에서는 의사결정권자가 회계를 담당하지 않는다는 원칙이 있어요. 전용을 막기 위해서죠. ‘그런 걸 왜 말해준 적이 없어? 중요한 건데?‘라고 묻더라고요. 오래 일한 사람들은 굳이 말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 못하거나 인수인계 위주로만 전하다보니까 회계 원칙 같은 건 드러나지 않아서 빠트리는 경우도 많고. 새로 들어온 사람이 그런 걸 자꾸 겪으면 나는 내용은 모른 채 그냥 주어진 일하러 온 존재인가 느끼게 되는거죠.
_ 신 : 실무만 처리할 뿐 스스로 생각을 할 수 없는 조건 같은 거네요.
_ 정 : 전체적으로 어떤 맥락에서 이 일을 하고 있는가 그런 게 납득이 안되죠. 일단 경험의 차이도 있고, 선배들도 배우면서 성장하지 않았던 그런 배경도 있고.
_ 신 : 본인은 선배 입장에서 그런 얘기를 들으면 어떤 생각해요?
_ 정 : 문제 제기를 받을 때라면 일단 빨리 사과를 해야 하죠. 최대한 빠른 사과.
_ 신 : 마찬가지로 두려움에 싸일 수 있잖아요.
_ 정 : 음, 그럴 때는 제대로 싸워야죠.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설명하고 상대방의 생각도 듣고. 그래서 저희 사무국에서는 하여튼 수다를 되게 많이 떨어요.
_ 신 : 평소에 수다를 많이 떠는 게 문제를 완화시켜 주나요?
_ 정 : 어쨌거나 제가 처음에 단체에서 혼자 힘들었던 경험이 있고, 그걸 저만 경험한 게 아니라서 되도록 그러지 말자는 암묵적인 공감대가 되게 커요. 말을 할 때도 청유형으로 한다거나.
_ 신 : 개인의 의지가 담긴 실천이 큰 거네요. 자기 경험을 반면교사로 삼아서요.
_ 정 : 그렇죠. 지적을 할 때도 단정적으로 하기보단 ‘이러면 안 될 것 같아’, 또는 ‘이건 어떻게 생각해?’ 라고 부드럽게 말해요.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으로부터 ‘너 그렇게 말하는 건 별로였어’ 그런 얘기 들을 때가 있어요. 그렇게 문제제기 받으면 바로 사과하죠. 미안하다고. 평소 수다를 많이 떨면 ‘너 왜 그랬어?’라고 묻거나 ‘아, 미안, 안 그럴께, 또 그러면 꼭 말해줘’ 라고 얘기하는 게 부드럽게 되요. 정색하고 ‘이리 좀 앉아보세요’ 하고서 얘기하는 거랑은 달라요. 그런 상황에서는 그다지 심각하지 않은 일도 심각해지는 경우가 있죠.
_ 신 : 규모가 작아서 가능한 것일 수도 있겠어요.
_ 정 : 물론 그렇겠죠. 큰 조직을 경험하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그래도 팀별 파트별로 쪼개서 보면 또 비슷할 거라고 생각해요.
_ 신 : 그럼 거꾸로 선배 활동가들이 흔히 말하는 후배 활동가들, 세대적 시각에서는 현재 젊은 활동가들이 단체를 직장으로만 생각하고 사적인 시간이나 자기 얘기를 굳이 섞으려 하지 않아서 쉽지 않다고 말하는 경우가 있거든요. 여기도 그런 면에서 세대는 다르지 않잖아요. 멤버들이 그런 경우는 없었어요?
_ 정 : 여기서 아직은 없었어요. 그런데 만약 그런 멤버가 있다면 굳이 억지로 말을 시키거나 그러지는 않을 거 같아요.
_ 신 : 현재의 조직 문화로 보면 문제가 될 수 있을 텐데요?
_ 정 : 그럴 수도 있겠네요. 어느 조직이나 사람이 되게 중요하잖아요. 활동가 한 명 채용하는 게 단체로서는 엄청난 부담인데. 그래서 일단은 가장 막내인 활동가 마음에 드는 걸로 결정하는 게 중요해요.
_ 신 : 아까 두려움 말씀하셨는데 선배 활동가들은 사실 상처도 꽤 크죠. 상처 고려하느라 말하지 않는다는 건 안 되지만, 실제로는 어려운 것 같아요
_ 정 : 맞아요. 선배들한테 뭐가 힘든지 너무 안 물어보는 것도 문제인 듯 해요. 제가 이전 선배에게 가장 미안한 점도 그거에요. 한 번도 그걸 안 물어본 것 같아요. 지금 동료들은 저에게 ‘너 뭐가 힘들어? 그 일 하는 거 버겁지 않아?’ 그런 거 자주 물어봐주거든요. 그런데 저는 안 그랬던게 정말 미안하더라고요.
_ 신 : 서로 말은 편하게 해요?
_ 정 : 네, 존대하고 싶으면 하고, 반말 쓰고 싶으면 쓰고.
_ 신 : 먹고 사는 건 어때요? 급여는 적정하다고 생각해요?
_ 정 : 저희는 단체 만들 때부터, 전반적으로 활동가들이 전문직 수준의 급여를 받아야 한다는 데에 모두 공감하고 있어요. 선배들의 역할이 컸죠. 실제로 충분히 책정하고 있진 못하지만, 다른 단체들에 비해서는 다소 나은 편이에요.
_ 신 : 대략 얘기해줄 수 있어요?
_ 정 : 기본급이 150이고 4대보험 공제하고 수당 계산하고 하면 20대 중반 신입 활동가 실수령액이 160만원쯤 되요. 그런데 지금 한 3-4년 된 활동가가 얘기하길, 처음에는 일반 회사 다니는 친구랑 차이가 별로 안 났는데 지금 보니까 격차가 커졌다고 해서 고민이에요.
_ 신 : 아, 그럼 초봉은 비교적 잡았지만 위로는 많이 못 높이신 모양이에요.
_ 정 : 단체 안에서 연차나 경력에 너무 차이를 많이 두기 꺼려지더라고요. 제가 사무국장이라 제일 많이 받고 있는데, ‘어, 이거 내가 너무 많이 받는거 아닌가’ 그런 생각 하거든요. 일을 다 똑같이 하는데 말이에요. 근속수당이 1년에 5만원인데 제가 그것만 해도 40만원이에요. 그 부분에 대해서 얘기하면 동료들이 그냥 두라고 하는데 저는 마음에 걸려요. 어쨌건 매년 형식적으로라도 임금인상을 하려고 논의를 하고, 각자 강의를 나가거나 외부 활동으로 수입이 생기는 일은 특정인에게 집중되지 않게 하고 있어요.
_ 신 : 그런 외부 활동 수입도 단체에 내놓는 경우들도 있잖아요.
_ 정 : 저희는 그러진 않아요. 그리고 꼭 사무국장이 할 필요 없는 것들, 연차 낮은 활동가도 어느 정도 강의할 때가 되었다 싶을 때는 나가도록 독려해요.
_ 신 :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차가 늘수록 다른 직장과 차이가 커지는 부분은 조정해야 하는 게 아닐까요?
_ 정 : 그래서 고민이에요.
_ 신 : 좀 더 좁혀서, 활동 시작할 때 개인적인 자금 사정은 어땠어요?
_ 정 : 되게 안 좋았어요. 학자금 대출이 너무 많았어요. 학부 때부터 쭉 받아서, 대학원에서는 안 받으려고 계속 미친 듯이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그것까지 받으면 진짜 끔찍한 상황이 도래할 것 같아서. 활동 시작한 뒤로도 경제적 상황은 계속 안 좋았는데, 몇 년 뒤 급여가 180만원을 넘어간 이후부터 카드빚이 안 생기더라고요. 그게 학자금 대출 다 갚은 시기랑 맞았을 수도 있어요. 어쨌든 이전에는 카드 연체가 계속 생겼는데 그게 안 생기는 시점이 드디어 온 거에요. 그렇게 생각해보면 사실 동료들 처지가 다 비슷할텐데, 급여가 적어도 이 정도는 필요하겠다 싶더라고요.
_ 신 : 대출 총액 얼마나 되었어요?
_ 정 : 2천만 원 정도였어요. 대학원 논문학기 때는 알바를 하기 어려워서 한번 더 받았는데 그건 재작년에 끝났어요. 총액은 다르지만 어쨌든 계속 갚을 게 있으니까 이건 그냥 나의 삶 같은 부분이었어요. 그게 어느 날 없어지니까 너무 신기하고 기쁘더라고요.
학자금 대출이 너무 많았다.
_ 신 : 취업할 때 그 고민 하셨을 거 아니에요. 이걸 안고 생활도 하면서 활동을 한다는 거.
_ 정 : 사실 집 자체도 되게 힘들었어요. 그래서 어머니와 울면서 얘기를 했죠. ‘너 너무 이기적인 거 아냐?’라고 하시더라고요. 제 동생은 그런 사정을 감내하면서 돈 버는 일을 하고 있는데, 저는 집에 보태주진 않아도 뭔가 안정적으로 자립은 해야 할게 아니냐고. 제가 하는 일이 자립이 가능하거나 안정적인 직장은 아니라고 보신 거에요. 아무튼 어머니랑 다투면서 어찌되었든 5년만 해보겠다고 했어요.
_ 신 : 그런데 5년은 이미 지났고.
_ 정 : 5년 아니고 한 3년 지났을 때부터 어머니가 물으시더라고요. ‘그래서 니가 생각하는 것에 도달하고 있다고 생각하냐, 목표한 삶에 얼만큼 부합하고 있냐’고요. 그러면 ‘그냥 아직 5년 안되었으니까 있어봐, 좀 더 기다려봐’ 했죠.
_ 신 : 집에서 다니셨어요? 결혼 하면서 나왔고요?
_ 정 : 네. 맞아요.
_ 신 : 지금 거의 대부분 학자금 대출을 받죠. 이게 정말 시대적인 상황이라서, 개인이 벗어나기 어려운 듯 해요.
_ 정 : 저희 신랑이 저보다 열 살 더 많아요. 다른 단체로 보면 대개 사무처장 정도 되는 나이인거죠. 그 친구는 학자금대출 안 받았어요. 제도가 없기도 했고요. 저는 결혼하고 나서도 학자금을 갚아야 했어요. 신랑은 그때서야 몸으로 인지하게 되었다고 해요. 지금 시대 젊은이들의 상황을요. 언어적으로 삼포세대 그런 걸 알고는 있지만 이게 정말 이런 거구나, 하고 이해를 했다고 해요. 우리 세대가 ‘민주화? 87년? 그게 뭐?’ 라고 막연하게 생각하는 것처럼, 서로 문자로만 이해하는 시대적인 차이도 있는 거 같아요.
_ 신 : 그런 단체 내 젊은 세대 활동가들이 어떤 시각으로 이 단체를 보고 있다고 봐요? 비교적 다른 곳보다 나은 환경이라 들어온 건지, 아니면 더 나은 직장을 포기하고 온 건지.
_ 정 : 사실 제 주변을 봐도 다들 직장생활 시작하는 게 비정규직이에요. 어떨 때는 제가 월급이 더 많을 때도 있고. 그래서 단체에 들어오는 게 경제적 부분에서 뭔가 크게 결심을 해야 하는 수준은 아닌 것 같아요. 오히려 개인적 성취와 만족, 그런 게 더 큰 게 아닌가.
_ 신 : 그런데 선배 세대 상당수는 경제적 부분을 가장 큰 문제로 보고 있는 듯 해요.
_ 정 : 희망제작소에서 ‘좋은 일이란 무엇인가’를 주제로 나온 연재 글이 있어요. 그 글에 일을 하는데 가장 중요한 포인트가 뭐냐는 설문조사 내용이 있어요. 답을 보면 급여가 생각보다 중요하거나 핵심적인 기준은 아니더라고요. 그건 저희 단체 안에서 다 얘기하고 있는 부분이에요. 예를 들어서 나는 200만 원이 필요한데 150만 원을 받는다면 단체 내에서 얘기를 해서 50만 원의 부수입을 얻을 일을 추가로 찾도록 협의하는 방법도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_ 신 : 급여도 중요한 문제긴 하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 문제가 있을 거다 라는 건가요?
_ 정 : 돈을 벌어야겠다 생각하면 애초에 시민단체를 고민하지 않았을 것 같아요. 부자 되려고 3년 안에 1억 모으려고 오는 경우는 없을테니까요. 어차피 선배들도 그 부분을 가지고 단체활동 시작하지 않았을텐데 그 고민은 이해가 잘 안되요.
_ 신 : 그럼 진짜 문제가 뭔지 좀 더 이야기할 필요가 있겠네요. 아까 이야기한 자존감이나 소통이나 그런 것 외에 어떤 문제가 있다고 보세요?
_ 정 : 여기서 나의 발전가능성, 그걸 보게 되는건데. 내가 여기서 10년 일을 하고 나면 어떤 사람이 되어 있을까? 어떤 역할을 하는 사람이 될까, 그런 생각을 했을 때 잘 안 떠오르는거죠.
_ 신 : 선배들을 보면서 찾기 어려운 걸까요?
_ 정 : 어찌 보면 선배들도 힘들게 살고 있는 걸 보면서 십년 후 그때 저 상황이라면 어떨까, 저렇게 헌신만 하면서 살아야 하는 것일까, 그런 고민 할 수도 있겠지요. 저 분은 십년 전에도 처장이었는데 지금도 처장이네. 그럼 십년 후에도…? 뭐 그런. 그리고 요즘은 활동가로서 정체성을 갖지 않아도 활동할 수 있는 사례나 모델이 보이기도 하니까 나도 그냥 저렇게 하는 게 좋지 않을까 싶기도 할테고요. 가치 중심적인 활동을 하면서 살고 싶다고 마음 먹었을 때 단체 말고도 선택할 게 많아진 건 사실이잖아요. 그리고 선배 세대는 새로운 것을 만드는 기쁨이라도 느꼈던 거죠. 단체를 창립하고 성공의 경험 같은 게 있는 건데. 지금 젊은 세대도 기존 단체에 들어가 순응하기보다는 또래들과 스타트업을 하든, 직접 뭔가 만들면서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 할 것 같아요. 한 활동가가 그런 얘기 하더라고요. 집회에서 연대 투쟁가를 부르는데 가사가 원래 ‘우리는 실패를 모른다. 후퇴도 모른다’ 그런 건데 자기들은 ‘우리는 실패를 모른다. 성공도 모른다’ 이렇게 부른대요. 그거 듣고 되게 충격 받았어요. 정작 그 활동가는 ‘왜 충격받아? 그냥 재밌으라고 부른 노래인데?’ 그러더라고요. 그게 너무 당연해서 재밌게 말하는 그런 상황인거에요. 하여튼 작고 사소한 성취, 그런 게 없는 거죠.
‘우리는 실패를 모른다. 후퇴도 모른다’
‘우리는 실패를 모른다. 성공도 모른다’
_ 신 : 정책이나 아젠다 중심의 운동이 지금 세대와 공감하기 어려운 점은 없을까요?
_ 정 : 저는 그 부분이 비관적으로 느껴지지는 않아요. 저희 활동도 정책 쪽이지만 지속적으로 관심을 받고 있는 편이고요.
_ 신 : 질문을 좀 더 구체적으로 하자면, 87년 이후에 운동은 시스템 자체가 없던 것을 만들어 나가니까 재미가 있고 힘이 있었다면, 지금은 시스템이 충분히 생겼고, 오히려 시스템을 뛰어넘어서 전문가 마음대로 휘두르는 그런 부분도 있고 해서 활동의 한계가 생기는 것 같아요. 의제 운동의 한계랄까.
_ 정 : 저희 운동 같은 경우는 카피가 쉬워요. 누구나 할 수 있는 걸 우리가 하고 있는 것 뿐이죠. 그 부분을 어떻게 할까 고민하고 있어요. 누구를 타겟으로 하고 어떻게 세분화할 것인가. 어쨌든 제도를 만들었으면 그걸 넓혀야 하지 않나 싶어요. 운동을 여기저기서 카피를 하면 그게 우리의 목적이기도 하지만, 그 시스템을 더 넓히고 진입장벽을 낮추는 것도 우리 운동이에요. 앞으로 2-3년 정도는 더 고민해야 할 것 같아요. 작년부터 논의하고 있는데 그게 당장 되는 게 아니더라고요. 되게 큰 결심이 필요해요.
_ 신 : 그런 고민을 하게 된 계기도 제도가 어느 정도 확산되고 있다고 생각하셨기 때문인거죠?
_ 정 : 저희 단체 초반 활동방식을 그대로 카피한 단체들이 지역에 생기고 있어요. 그런 곳에서 연대 요청이 오기도 하고, ‘이런 게 문제인데 너희가 더 해줘야 하는 게 아냐?’라고 요구하기도 하고요. 아무튼 이런 상황이면 우리는 뭘 해야 하는가 그런 고민 하게 되었죠. 게다가 2018년이면 단체 창립 10년이에요. 그래서 작년에 ‘우리 십 주년 준비 어떻게 하지?’ 얘기하다가 나온 과제기도 해요. 우리 운동을 평가해보자는 얘기를 하면서 그걸 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니까 지속적으로 해 오던 활동을 전부 계속 할 수는 없겠더라고요. 그게 결단인거에요. 거기 시간을 쓰다보면 회원들이 너희 요새 왜 아무것도 안 해? 그럴텐데.
_ 신 : 외부 요인과 내부 성찰 양쪽이 다 있었다는 거군요.
_ 정 : 네. 아무튼 그 준비를 하려면 열악한 현실상 뭔가를 접어야 하는데 기존에 하던 걸 접기가 너무 어려워요. 진짜 그것만 고민할 수 있는 단체는 거의 없는데, 그러다보니 앞으로의 전망을 고민할 때 가장 오래 활동해온 사람들이 주도하게 될 텐데 그러면 또 다른 활동가들은 짜여진 전망 안에서 실무만 수행하는 존재에 그치지 않을까.
_ 신 : 지금 다시 평가해도 이 단체가 계속 가야한다고 보시나요?
_ 정 : 일단 동료들이 계속 일하고 싶어 해요. 이 조직에서.
_ 신 : 그럼 본인도 계속, 십년 후에도 사무국장을 하시는 건가요?
_ 정 : 사실 저는 몇 년 전부터 순환제와 제비뽑기제를 하자고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는데 묵살당하고 있어요. 저는 내후년에 안식년을 갈 건데요, 동료들은 그때까진 네가 하면 좋겠다고 해요. 그 후는 그때 가서 보자는 거죠. 사실 동료들도 저에게 ‘네가 하고 싶은 것도 있을 건데 계속 사무국장 맡겨서 미안하다’고 말해주긴 해요.
_ 신 : 임원진에서 반대하거나 할 가능성은 없을까요?
_ 정 : 크게 이견이 있을 것 같진 않아요. 제안을 거절당하거나 그랬던 경험이 없어서일 수도 있는데. 뭔가 논의를 하자고 하면 사무국 결정을 존중하는 편이어서요.
_ 신 : 그분들이 재정이나 운영의 책임을 다 지시나요?
_ 정 : 그건 좀 약해요. 거의 사무국에서 해결하는 편이에요. 임원 중에서 기존 시민단체 경험 많은 분이 별로 없어요. 그래서 크게 관여하기 보다는 지지해주는 편이죠.
_ 신 : 임원 충원은 어때요? 어려운 편인가요?
_ 정 : 어렵죠. 그래도 다행인 건 초기 멤버가 거의 사임하지 않고 계속 해 주셔서요.
_ 신 : 본인은 계속 운동을 하고 싶다고 하셨는데, 실무자로서가 아니라 전문성을 좀 더 살려서 개인적으로, 예를 들어서 컨설팅같은 걸 하는 사례들이 있는데요, 그런 생각은 안하세요?
_ 정 : 여기서 전문성을 키우면 된다고 생각해요. 이 단체에서 처음부터 활동가 개개인이 전문가로 성장해야 한다고 얘기해왔기 때문에. 내가 만약 정보공개센터에 없는 정보공개전문가라면? 그게 상상이 잘 안 되는데 굳이 나가서까지 내가 따로 전문가가 되어야 하나? 여기서도 충분히 역할 할 수 있는데. 그렇게 생각해요.
_ 신 : 우연히 시작한 일이 인생 활동으로 굳어져가고 있네요.
_ 정 : 그렇죠. 요새 진짜 고민이 하나 있는데 활동가들이 다들 ‘1, 3, 5, 7년이 힘들어, 그때 고민이 많은 시기지.’ 그러는데 저는 그게 왜 당연한 건지 모르겠어요. 모든 활동가가 3년이 지나면 어떤 벽에 부딪친다면 그건 이 영역 전체가 고민을 해야 하는 문제지, 당연한거야라고 하면 안되는 거죠. 같은 문제가 반복해서 계속 나온다는 건 분명 구조적인 문제가 있는 거에요. 동료 중에도 있고, 저 같은 경우는 불면증도 경험하고 그랬어요. 그러면 이거 직업병이잖아요? 직업병인데 왜 해결할 생각을 안 하지? 그러니까 ‘내가 3년 차일 때 왜 힘들었을까, 나는 왜 잠이 안 올까?’ 이런 걸 놓고 다 얘길 해봐야 하는 게 아닐까요? 그래야 어떻게 해야 할지도 나올 건데.
저희 단체나 제 경험으로만 놓고 보면 일단 3년이 지나면 선배가 되요. 아무것도 모를 때 선배들 모습 보면서 나도 몇 년쯤 하면 저 정도 하겠지 생각했는데 사실 안 그렇다는 걸 알게 되죠. 그런데 후배는 생기고 이 작은 조직에서 내가 지금 이 정도 역할은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게 잘 안 되니까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 내가 못나서 이런 건가, 이런 생각 하는 거에요. 그런 시기가 1, 3, 5, 7 같은 연차로 나타나는게 아닐까 싶어요. 저는 수면장애가 너무 심한데 한 동안은 너무 심해서 어쩌지 싶을 정도로 여러 가지 생각이 떠나지 않아서 꽤 오래 잠을 못자고 그랬어요. 그 얘길 하니까 선배들이나 친구들도 그렇다고 하고 더 힘들었던 얘기도 해주더라고요. 그러니까 이게 참 보편적인 거구나 하고 넘어갔는데 나중에 후배도 그렇다는 얘기를 듣고는 뜨악하게 되었어요. 보편적인 만큼 큰 문제구나라고 느꼈죠. 올해 그랬어요.
_ 신 : 어떤 시도가 가능할까요? 연차별로 할 수 있는 거?
_ 정 : 동료 활동가, 우리 단체가 아닌 다른 단체의 동료 친구가 많아져야 한다는 생각을 자주 했어요. 전국에 흩어진 단체들 모였는데 보니까 선배들, 처장들이 다 친한 거에요. 형, 누구야 서로 그러는데 연차 낮은 활동가들은 서로 멀뚱멀뚱하더라고요. 선배들은 오래 만나기도 했고, 그 시기에 활동가가 되는 경로가 비슷해서 다 서로 친구인거에요. 그런데 지금은 그렇지 않은거죠. 제가 단체에서 힘들거나 끙끙대거나 했을 때, 안전한 다른 단체 친구들이 위로가 많이 되었거든요. 다른 직장에서 일하는 친구들에게 말하면 ‘그래도 넌 니가 하고 싶은 거 하잖아’라는 대답 듣기 십상이기 때문에 얘기를 안 하는게 낫고, 게다가 우리 단체 회원으로 가입시켰는데 문제를 얘기하기도 어렵고요. 그런데 다른 활동가들 만나면 하소연하거나 같은 경험을 공유하고 있어서 얘기하기 편해요.
_ 신 : 개인적으로 활동하면서 알게 된 분들인 거죠? 그건 또 개인차가 있을 건데. 그런 동료관계를 형성하려면 뭐가 필요할까요
_ 정 : 만날 수 있는 장 자체가 없어진 거 같아요. 예전에 활동가 대회 같은 거, 아니면 활동가들 모아서 연수 보내고 그런 프로그램 있었잖아요. 애드보커시 운동 쪽은 토론회에서 만나거나 하는 수준이지 서로 교류하는 게 별로 없어요. 활동가대회나 프로그램이 그런 계기를 만들어 주는 건데 지금은 그 계기조차 없는 거니까. 서울시NPO지원센터에서 5년차, 10년차, 중견활동가, 뭐 그런 묶음으로 프로그램을 했었는데 그게 그런 시도가 아니었을까 생각은 들어요. 그런데 후속으로 연결이 잘 안된 게 아쉽더라고요.
_ 신 : 정말 너무 없는 상황이네요.
_ 정 : 그래서 생뚱맞지만 지역 활동 연대체에 가입했어요. 활동 특성이 그래서인지 연대활동을 많이 하는 곳이 아니기도 해서 단체가 섬 같은 거에요. 아는 사람도 별로 없고 그래서 저희가 뭐 많이 하는 것도 없어도 연대활동을 지속하려고 노력해요.
우리 단체가 아닌 다른 단체의 동료 친구가 많아져야
_ 신 : 중간지원조직들이 그 부분을 채워주려고는 하는데. 제3의 누군가가 만들어줘서 되는 건가 싶기도 해요.
_ 정 : 어려운 것 같아요. 이걸 내가 다 하기는 어렵고 누가 좀 고민해주면 좋겠는데 말이에요.
_ 신 : 의제 중심이 아닌 다양한 활동이 많아진 편인데 운동이 어떤 측면에서 변했다고 보세요? 아니면 안 변했다든지.
_ 정 : 조직 베이스가 아닌 개인의 느슨한 결사체가 많아진 느낌이에요. 사회적 경제, 청년, 마을 등 그룹으로 묶인 사람들 보면 그런 경우가 많아서. 어렵지 않게 누구나 할 수 있는 운동이 되면 운동이 양적 질적 팽창할 수 있으니까 좋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운동을 지탱하는 베이스가 시 예산이라든가 그런 경우가 많아서 본질적인 것을 이야기하지 않고 너무 팬시해지고 있는 게 아닌가 걱정되기도 해요. 청년은 푸르지, 재기발랄하지, 뭐 그런 쪽으로. 지금 그런 게 필요한 상황도 이해는 해요. 뭔가 도모하려고 할 때 재정적 받침이라든가 지속성을 위해 필요한 거. 그러면 그 준비를 하면서 상징적인 이미지를 강화하는 것 보다는 더 본질적인 질문을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생각해요. 왜 청년 문제가 있는거지, 왜 마을이 해체되는 거지? 어차피 관의 재정을 끊어지기 마련이니까 눈치 보지 않고 그런 거 적극적으로 얘기해야 하는 거 같은데, 모여서 뭐 해보자고 포스트잇 예쁘게 붙이고 같이 밥 먹자 그러면서 현상적인 것에 그치는 느낌이 있어요. 그런 단계도 분명 필요하지만 제가 못 보는 건지 몰라도 그걸 뛰어넘는 것까지 잘 안보여서, 그게 참 안타깝고 화가 나기도 하고 그래요.
_ 신 : 기존 단체들은 그런 베이스를 갖고 있다고 보시는 건가요? 최소한 조직을 운영할 수 있는 구조? 그게 없는 상태에서 외적인 부분에 치중한다는 건가요?
_ 정 : 네. 관의 지원으로 시작한 운동은 그게 끊어지고 나서 어떻게 지속할 수 있을까, 되게 단기적으로 10개월, 이렇게 지원하는데 그걸 경험한 사람이 많아지는 것과 그 이후 단계까지 심도 깊게 파고든 사람들이 있는 건 다르겠죠.
_ 신 : 무조건 지속해야 한다고 요구하시는 건 아닐거고, 지속할 때 좋은 점이 있다고 보시는 건가요?
_ 정 : 어쨌든 시민사회가 변화의 동력을 그런 쪽에 일부 두고 있는 상황인데, 그 사람들이 일순간에 활동의 주체가 아니라 사업의 대상자가 되버릴 수도 있겠다는 것. 사회적 경제나 협동조합이나 어느 쪽이든요. 어떤 활동가는 ‘협동조합 참 쉽다’라는 책 쓴 사람 만나서 따지고 싶다고 그러더라고요. 협동이 얼마나 어려운 건데 너무 쉽게 표면적인 것만 얘기하니까.
조직 베이스가 아닌 개인의 느슨한 결사체가 많아진 느낌
_ 신 : 경제적인 게 핵심은 아닐 수 있지만 어쨌거나 관에서 기금을 내니까 그 돈 받으면서 조금이라도 사회적 활동을 하고 싶어하는 경우도 있을 거 같아요. 단체 활동에 매이다보면 자기가 원하는 걸 못할 가능성도 클 테고, 그런 점이 작용하는 것도 있지 않을까요?
_ 정 : 그럴 수도 있죠. 저희가 주4일 출근제를 고민한 이유 중 하나는 활동에 퍼센티지를 두는 건 어떨까 싶어서에요. 단체에서 해야 하는 일을 하면서도 어느 정도는 내가 원하는 것, 그러니까 알바를 하든, 다른 활동을 하든, 쉬든, 자기 활동을 유지하기 위한 시간으로 쓸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_ 신 : 그런 성장을 결국 조직을 기반으로 하는게 더 낫다고 보시는 건가요?
_ 정 : 독립 활동가가 꼭 단체에 들어와야 한다는 건 아닌데, 그래도 난 여기서 길을 찾을테야라고 들어왔던 사람이 포기하고 다른 길로 가겠다고 나가는 것은 막거나 줄일 수 있지 않을까요? 요즘 시민운동의 가장 큰 특징이 활동가 이직이 많아져서 허리층이 없어지고 있다는 거랑 단체 베이스 아닌 활동가가 많아지고 있다는 두 가지라고 봐요. 일단 개인 활동가가 많아지는 건 기술이나 시대적 배경이 많이 작용하는 것 같아요. 그렇지만 단체에서 이탈하는 활동가가 많다는 건 정말 해결해야 하는 문제예요. 의미도 모른 채 무작정 헌신하지 않고도 일할 수 있는 틀을 제시해야 하는 게 아닌가.
_ 신 : 다른 곳에서 그런 사례를 보신 적은 있으실까요?
_ 정 : 예를 들면 구성원 역량의 70%를 단체에 필요한 걸 하고, 30%는 자유롭게 쓰는 실험을 하는 단체가 있어요. 단체 상황이나 구성원 성향에 따라서 다르게 표현할 수 있는 부분이겠죠. 저희는 주 4일 출근제를 하고 있고요. 어느 단체 평간사협의회에서 찾아와서 주 4일제에 대해서 물어보셨는데요, 그때 주4일 출근제를 하고 나서 휴가일수를 줄였냐는 질문이 있었어요. 주 4일 업무가 아니라 ‘출근’이어서 나머지 하루는 출근하지 않지만 활동을 자유롭게 하는 것 뿐이라 휴가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데 말이에요.
_ 신 : 소위 근태에 해당하는, 출퇴근 관리해야 하는 그 부분을 줄이신거네요. 일을 줄인 건 아니고.
_ 정 : 네. 일을 바로 줄일 수는 없지만, 일단 사무실에 나와있는 시간을 줄여야 일도 줄 수 있을 듯 해요. 줄이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하고 싶은 일을 한다거나, 해야 된다고 생각하던 일을 할 시간을 주는 거죠.
_ 신 : 기술적인 것도 작용하겠죠. 만나지 않아도 소통할 수 있고.
_ 정 : 맞아요. 꼭 금요일만 출근 안할 필요가 있냐고도 해요. 그런데 사실 저희 동료들이 서로 너무 보고 싶어해서 정해놓고 만나야 하더라고요. 다른 날 쉬고 싶으면 휴가를 쓰면 되요. 어차피 있는 휴가도 잘 못쓰니까.
단체에서 이탈하는 활동가가 많은 상황, 우리가 해결해야 하는 문제
_ 신 : 예를 들어 육아 때문에 화요일은 꼭 재택해야겠다 그러면 어쩌죠?
_ 정 : 아직 그런 상황은 없었는데, 발생하면 같이 협의해서 결정할 것 같아요.
_ 신 : 마지막으로, 활동가로서 어떤 공부를 중요시하세요? 또는 지금 나에게 영향을 주고 있는 책도 좋고, 사람도 좋고 그런 게 있으시다면 알려주세요.
_ 정 : 저는 같이 일하는 동료들이 중요해요. 최근에 되게 힘들어하는 활동가가 한 명 있는데, 이유가 뭘까 서로 얘기하다보니까 지금 시국 상황에 내가 뭘 해야 할까, 그냥 촛불 들고 나가기만 하는 거 말고 활동가로서 뭘 해야 하는 걸까 그 고민이 의외로 엄청 컸더라고요. 그걸 알고서 ‘와, 내가 너무 요새 그냥 좋게 좋게 살고 있었나? 아니면 극심한 무력감에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고 희망 없이 살고 있었던 건가? 아프다고 느껴야 하는데 왜 안 아픈거지?’하고 고민하게 되더라고요. 동료들과 술 마시면서도 자주 그 부분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어요. 그렇게 영향을 많이 주고 받는게 제일 커요. 다행인건 제가 보기에 짝사랑 같지는 않아요. 서로 되게 의지하고 그래서. 사실 이게 저희 단체의 약점 중 하나에요. 누가 이탈하거나, 손실이 되었을 때 타격이 되게 커요. 심정적으로도 업무적으로도.
_ 신 : 십년 후에는 어떤 단체로 있을지 궁금해지네요.
_ 정 : 음, 그때도 존재하고 있을까요? 아마 있을 거 같아요.
_ 신비
#신비 #정진임 #정보공개센터 #정보공개 #서울 #민주주의 #참여 #투명 #장상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