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신비(이하, 신) : 어떤 활동을 하고 있어요?
– 정윤서(이하, 정) : 지금 소속된 단체는 한 군데에요. 올해 몇 달 동안 일하느라 활동을 중단했었는데 너무 우울하더라고요. 일 자체의 문제도 있었지만, 그래서 그만두고 알바 하면서 다시 활동하고 있어요. <청소년활동기상청 활기>라는 곳이에요. 활기는 청소년 활동가들과 아수나로, 중고생연대, 십대 섹슈얼리티 같은 단체들과 네트워킹이나 지원사업을 해요. 청소년론을 연구하거나 책을 내기도 하고.
– 신 : 언제 만든 단체에요?
– 정 : 2011년인가? 아주 자세한 건 모르는데, 청소년 활동가 네트워크가 전신이에요. 활동가들이 소속 단위를 넘어서 네트워킹과 연대가 필요하잖아요. 더군다나 청소년 운동이 척박하니까, 지금의 활기와 비슷한 활동을 하다가 단체를 만들었다고 해요.
– 신 : 그럼 거기서 소속되었다는 건 어떤 의미에요? 회원이라는 건지, 아니면 책임을 가진 활동가?
– 정 : 운영을 하는 활동가에요. 돈은 받지 않아요.
– 신 : 무보수고, 책임은 있는? 그러면 운영위원 같은 직책이 있어요?
– 정 : 그런 체계적인 직책은 없어요. 연대체 형식을 띠고 있으니까 각 단체 담당자들이 있고, 개인 활동가도 결합하는 방식. 저는 개인 활동가에요. 그 안에 책임활동가라고 해서 재정지기, 공간지기 이렇게 둘이 있어요. 재정지기는 회계 담당이고, 공간 지기는 활기가 운영주체인 ‘나름아지트’라는 공간의 운영을 맡아요. 주2회 반나절 정도 나가는 반상근이에요. 그 두 사람 활동비는 월 30만원. 작년에는 20만원이었어요. 쏟는 시간에 비해 페이는 너무 적지만 좀 더 책임을 갖고 활동하는 사람들이죠.
– 신 : 그러면 고용관계 없이 그냥 활동비를 비공식적으로 드리는 거에요? 4대 보험은?
– 정 : 네, 그런 건 기대할 수 없죠. 든든기금이라는 기금이 있는데 거기서 활동지원금과 두 책임활동가 활동비를 줘요.
– 신 : 그 기금은 어디서 마련한 거에요?
– 정 : 인권단체들이랑 재단이 같이 만든 걸로 알아요. 그리고 저는 활기에서 활동하지만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일반 회원이기도 해요. 2006년에 처음 생긴 청소년연구포럼 아수나로가 청소년인권행동으로 이름을 바꾸고 10년째 활동해서 올해 여름에 10주년 행사 했어요. 모든 지역은 아니지만, 익산, 서울, 수원, 광주, 부산 이런 식으로 전국 지부가 있어요. 지역 여건에 따라 생겼다 없어졌다 해요. 올해 10주년 맞아서 처음으로 반상근 활동가 2명 생겼어요. 10주년 행사해서 천 만원 모았거든요. 그걸로 두 명 1년 계약직으로 채용했어요. 수도권 1명, 수도권 외에서 1명. 한 명은 서울, 한 명은 광주에 있어요. 서로 소통하면서 일을 분배하고 연락하고 그래요.
– 신 : 활동을 안 하니 우울했다고 했는데, 무슨 뜻이에요?
– 정 : 제가 보통 전문성이 있다고 말하는 기술, 돈을 벌 수 있는 일로 디자인을 해요. 처음에는 그냥 포토샵으로 친구들 사진 이상하게 만들고 그랬는데, 활동을 하다보니까 글자와 사진, 그림과 무언가를 조합하면 창작품을 만들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활동과 연결된 곳에서 돈을 벌고 싶었는데 그게 어렵기도 해서 구직을 했죠. 그런데 디자인이 3D업종이잖아요. 얼마 전에 일하던 곳에서는 임금 체불, 열정페이를 당연시하는 야근 문화까지 문제가 많았어요. 일하다보면 다른 데 이야기도 듣게 되잖아요. 디자인소호 성추행 사건이라든지, 디자인팀은 여직원이 많아서 높은 회장님, 사장님 술자리에서 흥을 돋우는 역할을 하더라 그런 폭로도 있고..
– 신 : 올해 문화예술계 성폭력 폭로 이어지고 있죠.
– 정 : 이게 비단 디자인계의 일만이 아니라 어떤 임금노동을 하더라도 마찬가지인 듯 해요. 출퇴근시간도 임금 안정성도 보장받을 수 없는 건데, 그런 환경은 활동이랑 크게 다를게 없어요. 원하는 걸 포기하고 이런 환경에서 일하는 게 우울했어요. 물론 활동은 나에게 돈을 한 푼도 안 주지만.
– 신 : 활동을 하기 위해서 버는 돈의 가치와 내 활동의 가치를 비교하는 거에요?
– 정 : 활동을 계속 하고 싶으니까, 어떻게 하면 연결할 수 있을까 계속 고민은 하고 있는데, 그래서 2-3년 전에는 디자인 사회적 기업 만들자고 활동가들하고 의논하고 계획도 짜보고 했는데, 활동에 치여서 무산되었어요.
– 신 : 돈 벌 시간이 없었군요. 그래서 자립할 직장을 찾아야겠다 생각했나봐요.
– 정 : 고등학생 때는 활동을 온전히 하려면 가장 먼저 넘어야 할 산이 부모에요. 부모가 나의 활동을 허락해줘야 온전한 활동을 할 수 있잖아요. 하다못해 회의를 하다가 밤에 열두시 넘어 집에 들어가는 것조차도 허락을 맡아야 했어요. 뭐 그건 나중에 포기했지만. 그러다가 스무 살이 넘고, 활동하면서 만들었던 대안학교에서 상근할 수 있어서 자립하기 시작했죠.
– 신 : 그 학교는 비인가였잖아요. 고등학교 졸업 인증은 아니죠? 현재 중졸 상태로 취업에 문제는 없어요?
– 정 : 아, 고졸이에요. 검정고시 봤어요.
– 신 : 그래요. 그럼 고졸로서는 취업이 어때요?
– 정 : 아직 제 나이대 디자인 일자리는 전문대졸 아니면 다들 고졸이고, 굳이 대졸 구하는 일자리는 제가 관심도 없다보니까 문제는 안되요. 그런데 사람들이 알바를 구하는 것과 취직은 다르게 보잖아요. 만약에 취직을 하게 된다면 엄청나게 작용을 하겠죠.
– 신 : 그러니까 디자인 업계가 알바로 고졸 뽑아서 3D 노동을 많이 시키는군요. 기획해서 할 수 있는 게 아니고 그냥 던져지는 것.
– 정 : 단순노동이죠. 맨날 누끼(사진이나 그림의 특정 부분만 사용하기 위해 필요한 부분의 테두리를 선택해서 배경을 삭제하는 작업) 따고, 포토샵 액션 기능처럼 마우스 딸각거리고. 그런 일이에요. 디자인 말고 다른 일에도 나름의 어려움이 있어요. 친구 한 명은 콜센터 일을 하거든요. 콜센터가 크게 인바운드랑 아웃바운드로 나눠지는데 아웃바운드가 좀 더 빡센 일이잖아요. 받는 사람이 화를 낼 확률도 높고 감정노동 확률도 높고. 그런데 대졸은 인바운드, 고졸은 아웃바운드로 배치가 된다는 거에요. 사실 스물한 살 초반 정도까지는 내가 지금까지 남들처럼 살아온 시간이 얼마나 있었나 이러면서 어떻게든 살겠지 싶었는데, 이제 그런 게 점점 눈앞에 보이기 시작하면서 고민이 많아졌어요. 청소년 활동가 중에 저 같은 고민 하는 사람 진짜 많아요. 대학 거부자와 고졸이 많잖아요. 중졸도 있고. 보통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보다 더 예민한 인권감수성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훨씬 많기 때문에, 이런 일반 직장에 쉽게 들어갈 수도 없고 더불어 쉽게 적응할 수도 없는 경우가 많단 말이에요. 그래서 더 전업으로 활동하기를 원하는데 오히려 다른 여성운동이나 시민단체보다 재정적인 기반은 뭐, 그냥 없다고 봐야죠. 없다보니까 활동가들이 더 고민이죠.
– 신 : 그러면 왜 일반 시민단체들을 직장으로 삼지 않아요? 낮에 단체 활동하고, 오프 시간에 원하는 청소년운동 하면 안 되나요?
– 정 : 시민사회단체는 일당백인 경우가 많지 않아요?
– 신 : 그런 면도 있지만 변화도 있는 듯 해요. 그리고 다른 직장보다는 서로 양해가 되지 않을까 싶은데요.
– 정 : 일단 제가 안 하는 이유는, 말했듯이 일당백이라는 거에 대한 부담감도 있고, 딱히 주변에 채용공고를 접할 기회가 없어서예요. 보통 사람인이든 알바천국이든 그런데를 주로 보니까.
– 신 : 저는 청소년운동에서 오히려 기존 운동단체에 거리감을 두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했어요.
– 정 : 돈을 번다는 게 최소 하루 아홉 시간에서 열 시간은 활동이 아닌 일에 써야 한다는 건데, 만약 할 수 있다면 좀 더 감정노동을 덜 할 수 있고, 쉽게 말하면 꼰대 없는? 그런 곳을 선택하려고 하겠죠. 일반 회사 들어가면 둘 중 하나에요. 그냥 저 사람들하고는 아예 섞이지 말자 하고 일만 하거나, 그럭저럭 지낼만 하겠다 싶으면 조금만 어울리거나 그럴 수 있어요. 그런데 시민단체는 아주 지척이잖아요. 극단적인 태도를 취할 수 없게 되겠죠. 칼퇴근하고 내 활동하러 가거나 하는 게 어려울 수도 있을 거 같아요.
– 신 : 일당백 문제는 확실히 있을 거 같아요. 그런 거 실제로 느낀 경험이 있어요?
– 정 : 청소년운동을 하다가 녹색당, 맘상모 같은 곳에 일하러 간 사람도 있긴 해요. 너무 바쁘고 여유가 없어서 정작 원래 하던 청소년운동을 하기가 곤란한 경우가 많아요. 마음이 떠난 경우도 있겠지만 일단 딱 봐도 너무 힘들어 보여요. 전업 활동가는. 그래서 뭐 하자고 말하기도 어렵고 그렇더라고요.
너무 바쁘고 여유가 없어서
정작 원래 하던 청소년운동을 하기가 곤란한 경우가 많아요.
– 신 : 세대, 이를테면 386 또는 X세대? 그런 분들의 활동에 대해 평소에 어떤 생각을 했어요?
– 정 : 나는 그분들은, 본인의 정의감에 도취된 사람이라는 생각을 진짜 많이 해요. 그 때문에 간과하는게 너무 많아요. 특히 인권 영역에서, 예를 들면 지금 광화문에 모이는 사람이 많은데 참 별 일이 다 있고(소수자 혐오 발언 등), 해일이 오는데 조개를 줍고 있냐는 식의 태도로 대표되는 꼰대니즘? 그런 게 참 보기 싫고, 만나고 싶지 않달까.
– 신 : 그런 권력관계가 내 운동에 직접 영향을 미치지는 않죠?
– 정 : 집회 장소에서는 마주치게 되죠. 최근에는 백남기 농민 장례식장에서 청소년 활동가 흡연 문제로 경찰 신고한 그런 사람들. 경찰 폭력으로 죽은 시민을 추모하고 경찰의 폭력 진압에 반대한다는 사람들이 정작 문제의 핵심을 고민하지 않고 있었던 거죠. 그 자리에 경찰을 부르다니. 사람이 다치거나 죽은 것도 아니고 청소년 흡연을 훈계하겠다는 이유로.
– 신 : 그때 그 분들이 단체 소속 활동가였어요? 아니면 일반 시민?
– 정 : 섞여있었던 걸로 알아요. 그 문제를 논의하던 SNS 글에서는 청소년보호법을 들먹이는 사람들도 있었어요. 악법 중의 악법인 청소년보호법을 가져와서 논의를 하다니…
– 신 : 왜 그러는 거 같아요?
– 정 : 그냥 평생 그렇게 살아와서 그 외의 다른 세상이 있다는 걸 모르는 것 같아요. 나이든 활동가만이 아니라 세대를 떠나서 대체로 그래요. 물론 나이 많은 세대가 좀 더하긴 해요. 다른 세상이 존재한다는 걸 상상을 못해요. 차별은 사실 거기서 오는 거잖아요. 장애인이 이 길을 지나갈 수 있다는 생각을 못하는 비장애인은 아무렇지 않게 턱을 하나 만들고 그러죠.
– 신 : 올해는 그런 이슈들이 자주 크게 논의가 되서, 화는 나지만 그래도 뭔가 논의라도 되는구나 하는 반가운 마음도 들던데요. 그렇다면 영역에 따라서는 좀 다른 느낌이 있어요? 인상비평이라고 할지라도, 이를테면 인권 분야는 좀 더 감수성이 높기는 하잖아요.
– 정 : 스스로를 인권활동가라고 정의하는 모든 사람과 잘 맞다고는 할 수 없지만, 기본적으로 인권을 생각하는 사람이 먼저 넘어야 하는 생각 깨기의 산이 있잖아요. 그걸 넘은 사람들과는 깊이 관계가 진전되지 않는 이상 극혐이다 싶은 경우는 별로 없어요. 그런데 예를 들면 녹색꼰대라는 표현이 있어요. ‘아이들을 위해 핵 없는 세상을’ 같은 구호를 고수하시는 분들. 왜 그렇게 거기 꽂히시는지. 공통점은 정의감에 도취된다는 것 같아요.
‘아이들을 위해 핵 없는 세상을’ 같은 구호에 왜 그렇게 거기 꽂히시는지…
– 신 : 청소년활동가로서 느끼는 한계는 뭐가 있어요? 스스로 성장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지 않아요?
– 정 : 역사적으로 고등학생운동이 있었지만 곧바로 연결되는 건 아니에요. 최근에 ‘인물로 만나는 청소년운동사’라는 책이 나왔어요. 두발자유화 운동부터 활동했던 분들 만나서 쓴 건데, 그런 걸 참고할 수 있는 정도예요. 사실 청소년운동이 척박하기도 하고 역사가 길지 않아서 그렇긴 하지만 저는 굳이 선배 세대를 자원 삼아서 클 필요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선배 세대라는 거, 축적된 다수의 경험은 화분에 주는 거름 같은 건데 거름이 나한테 안 맞을 수도 있고, 너무 많이 주면 풀이 썩잖아요.
– 신 : 그냥 길가에서 자라고 싶은 거에요?
– 정 : 네.
– 신 : 힘든 일도 꽤 겪었을텐데 여전히 그 방식 괜찮아요?
– 정 : 돈이 없는 건 참 안 괜찮은 거 같아요. 생각해보니 선배 세대가 빨리 생겨서 돈을 주셨으면 좋겠다 싶어요.
– 신 : 현재 상태에서 청소년운동이라고 지칭하는 그 운동을 계속 하기 원해요?
– 정 : 네. 사실 청소년운동은 꽤 세분화되요. 이때가 한 살 한 살이 커요. 아기들 월령 따지듯이. 그래서 저도 스물두 살이 되면서 고민이 너무 많았어요. 이제 내년에는 스물 셋 되서 더 고민이에요.
– 신 : 고민의 내용은?
– 정 : 그냥 늙기가 싫어요. 열 여덟이나 열 일곱에 고정되었으면 좋겠어요. 살기 편한 건 스물 한 두 살 되고부터였지만.. 열 일곱이면 청소년운동 발언도 하기 좋을 거 같고, 학교 관련해서 활동도 더 할 수 있을 거 같고.
– 신 : 그 운동에서 자기의 위치는 어떤 거에요? 내가 소위 청소년일 때는 자기 정체성 운동인데, 지금은?
– 정 : 법적으로 청소년은 만 18세, 19세, 23세로 다양한데, 어차피 저는 더 이상 당사자가 아니에요. 그 차이가 너무 커요. 스무살 되고서 부모 신분증 없이 내 핸드폰을 바꿀 수 있다는 게 너무 충격이었어요. 낯설음인데, 시간이 흐를수록 그 낯설음과 계속 마주해야 했어요. 처음 핸드폰을 바꿨을 때, 처음 신용카드 만들었을 때, 처음 혼자서 집을 계약했을 때. 하지만 사람이 처음 태어나면 눈앞에 보이는 모든 게 신기하다가 시간이 지나면 무뎌지듯이 저도 점점 무뎌지고 있어요. 이게 단순히 당사자성을 잃어서 활동가로서 입지가 달라지는 것만이 아니라 나의 감수성이나 태도에 영향을 미친다는 생각이 들어요. 하지만 꼭 당사자라야만 운동을 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당장 지금도 어딘가에서 입시나 가정폭력 문제에 노출된 채 도움을 못 받고 죽어가는 사람이 있을 거에요. 입시나 학교 구조, 억압이 자신의 삶과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걸 경험하는 청소년은 이 사회의 전반적인 문제의 뿌리와 같은 존재예요. 청소년인권 문제는 제가 가장 바뀌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너무 시급한 문제예요.
– 신 : 지금 제일 큰 고민은 뭐에요?
– 정 : 언제부턴가 운동이 넘을 수 없는 산을 넘으려고 제자리걸음 하는 느낌을 받아요. 활동가 수도 많이 줄었고, 여러 가지 현실적인 문제 때문이겠죠. 아수나로도 지부가 몇 개 줄어들고. 기존 활동가들은 각자의 문제가 있어서 떠나는 경우들이 있고, 새로 유입되는 경우도 적극 뛰어드는 경우가 그리 많지 않아요. (학교라든지) 현장의 정확한 상황은 잘 모르겠어요. 정말 상황이 더 척박해져서 활동이 어려운건지, 다른 이유가 있는 건지..
– 신 : 넘을 수 없는 벽이라는 느낌은 언제부터 생겼어요?
– 정 : 2014년 말쯤? 대략 2년쯤 전부터? 운동 시작하고 3년 다 되가던 때에요.
– 신 : 활동 3년차에 위기를 느낀다는 이야기는 많은데.
– 정 : 아, 그런데 저만 느끼는 문제가 아니라서. 활동 연차와 상관없이 그 즈음부터 같은 문제를 인식하는 경향이 있었어요. 일단 사람이 없으니까, 사람이 거기서 거기서니까.
– 신 : 냉정하게, 굳이 조직을 유지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요?
– 정 : 그렇다고 조직을 없앨 이유도 없는 거 같아요.
– 신 : 너무 힘드니까.
– 정 : 그렇다고 죽을 듯이 힘든 건 또 아니에요. 아직 할만은 한데 기운 빠지고 그런 일이 좀 많은거죠. 저는 원래 보기 좋고 세련되고 그런 거 좋아하는데, 언젠가부터 우리가 하는 활동이나 퍼포먼스가 임팩트가 없고 세련되지 못해서 관심을 못 받나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아마추어적이랄까? 우리는 활동을 전개하는데 있어서 나름 능숙한 면이 있어요. 하지만 앞서서 발언을 하거나 그럴 때 좀 더 전달력 있게 하면 더 임팩트 있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 할 때가 있어요. 주위에서 저 보고 까다롭대요. 사람이 없으니까 현실의 장벽이 높아져요. 활동 아이디어를 내고 실현하는 데 있어서 벽에 부딪치니까 더 위축되고, 생각이 쉽게 분출되지 못하고 그러니까 또 뭔가 확 지를 수 있는 활동을 꺼내지 못하고. 그런 게 있어야 새로운 사람이 오는데. 그 악순환의 굴레랄까.
– 신 : 그 현실의 벽이 뭐에요? 지금 시국이나 시민사회가 약해진 상황?
– 정 : 그냥 사람이 없어서, 조직 내부에 실무를 할 사람이 부족한 거요.
– 신 : 그럼 일종의 재생산의 문제라고 볼 수 있겠네요.
– 정 : 그렇다고 할 수 있겠네요.
– 신 : 만약에 새로운 사람이 많이 들어오고 활동이 활발해지면 본인은 뒤로 빠진다거나 그럴 생각은 있어요?
– 정 : 아뇨. 그래도 할 거에요.
– 신 : 사람이 없어서, 내가 더 여기 있어야 할 가아서 하는 건 아니라는 거네요.
– 정 : 아니에요. 저는 이기적인 사람이라. 그래도 뭔가 같이 할 사람이 있으면 좋겠어요.
– 신 : 해결책이 뭐가 있을까요?
– 정 : 돈이 있으면 해결될 거 같아요. 최소한.
– 신 : 운동이 막 성장하는 시기에는 어려워도 서로 북돋우면서 해나갈 수 있는데 운동이 현 상태가 정체되니까 하고 싶어서 하긴 하지만 흥이 안나는 그런 상황인걸까요?
– 정 : 네. 흥이 안 나는 상황. 어떻게 이 상황을 헤쳐가야 할까 고민해요.
– 신 : 하루하루 너무 치열해서 생각보다 지쳐있을지도 몰라요. 쉬어야 하는 것일지도.
– 정 : 그런데 올해 디자인 알바 하면서, 두 달정도? 활동을 쉬었어요. 일단 병행하는게 불가능해서요. 전면중단. 그런데 정말 몸이 근지러워서 못 견디겠더라고요.
– 신 : 아, 그러면 에너지가 있는 걸지도 모르겠네요.
– 정 : 내년에는 워킹 홀리데이 하려고 해요. 가서 어린이 청소년 만나면서 기록 작업을 할까 생각중이에요.
– 신 : 그런 일 없이 그냥 가면 안되요?
– 정 : 아깝잖아요.
– 신 : 활동할 때, 시작할 때나 지금이나 활동에 필요한 에너지를 얻는 거, 공부랄까. 어떤 게 있었어요?
– 정 : 그게 좀 고민인 게, 청소년운동은 담론이 되물림되는 게 커요. 거기서 오는 빈 공간들. 그걸 채우기 위해서 여성학 책을 보고 소수자 학문을 공부하고, 스스로 역사를 되짚어보고 그러려고 해요. 하다못해 소수자 인권 전반에 대한 책을 읽는다거나 모임을 한다거나, 단체 내에서 공부모임을 만들어 공부를 한다거나 교육을 들으러 간다거나. 그런데 그것도 한계가 있다는 생각을 몇 년째 하고 있어요. 학교 도서관이나 논문 자료 같은 정보 접근은 대학생들에게 유리해요. 국회도서관 만18세 이상 출입이고. 그런 불합리한 구조들 때문에 더 길이 막히기도 해요.
– 신 : 그런걸 대학생이나 외부에 의존하는 것도 운동을 자력으로 못하게 되니까 안 좋겠죠.
– 정 : 네, 맞아요.
– 신 : 한계가 있다고 했는데 공부가 부족하다는 거에요, 아니면 다른 문제?
– 정 : 담론이 되물림되는 건 구전동화처럼 되물리는 사람에게 의존하는 거잖아요. 현실판 사람책이죠. 객관화된 자료가 필요하고, 우리가 이런 걸 했노라 기록도 해야 하는데 그럴 여유도 없거니와 참고할 자료에 접근하기도 어렵고. 시간도 없고, 돈도 없고.
– 신 : 다른 영역, 인권분야 같은 쪽에서 청소년운동에 대해 기록하거나 연구하기도 하잖아요. 그런 건 도움이 되요? 사실 자기 운동을 스스로 기록하는 것도 한편으로는 객관화가 안되거나 그런 점이 있잖아요.
– 정 : 도움 되죠. 그런데 부족하긴 하죠. 사실 인권운동에서 나온 책들은 외부라고 하기는 좀 어렵고 반은 내부라고도 할 수 있어서. 꼭 기록을 내부에서 해야할 필요는 없죠. 그런데 로우데이터랄까, 그런 걸 생산할 필요가 있잖아요. 물론 지금도 언론이나 외부에서 기록해주고 있긴 해요. 일단은 우리만의 힘으로 정보를 기록하고 생산한다는 게 불가능한 것도 맞고, 운동이 성장한다면 굳이 우리가 하지 않아도 해주는 사람들이 생길 거고. 연대하면서 같이 풀어나갈 문제긴 해요. 이건 우리가 할 거니까 껴들지 마 그런 건 아니에요. 아직 그만한 기회는 별로 없었어요.
– 신 : 어쨌든 이번에 나왔다는 그 청소년운동사 기록물은 나름의 의미가 있다고 봐요?
– 정 : 네. 1쇄를 500부 밖에 안 찍었어요. 교육공동체 벗에서 출판했는데, 안 팔릴 거 같다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저번 주인가 2쇄 나온다고 하더라고요. 청소년운동에 관심 있거나 그걸로 공부하려는 사람은 별로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무튼 공부하거나 학습하는 것. 그냥 담론을 되물림하지 않는 기록이나 언어화가 되게 중요하다고 느꼈어요. 어느 순간부터 내가 너무 상투적인 말을 뱉고 있다는 고민을 많이 했거든요. 그러지 않고 나만의 언어를 만들고 싶은데 이 상태로는 너무 모르겠는 거에요. 그래서 열아홉 살 때는 여성학에 관심가지고 그랬어요. 나만의 언어를 갖고 싶더라고요. 여성운동은 기록이 많잖아요. 다른 부문도 그렇지만 여성학이라는 학문도 있고. 지적 기반이 탄탄하고.
– 신 : 개인적으로 공부가 되는 건 요즘 뭐가 있어요?
– 정 : 저는 요즘 계속 해외 사례에 관심이 가요. 청소년이 주체가 된 운동 사례. 홍콩 우산혁명도 그래요. 얼마 전에 하자센터 청소년 창의 서밋 갔다가 홍콩 청소년들 만나서 인터뷰를 했어요. 비영어권 사람들끼리 영어로 힘들게.. 그렇게 해서 2016년 학생의 날 신문에 실었어요. 홍콩은 선거권과 피선거권이 일치하더라고요. 우리나라는 전혀 아니잖아요. 아무튼 그쪽으로 관심이 가요. 국내 청소년운동 영역이 좁다고도 느끼고, 물론 제가 아주 적극적으로 나서면 여러 운동 이야기도 듣고 하겠지만 지금은 그냥 SNS로 간접적으로 보는 걸로 만족하고 있어서.. 다른 곳에서 좀 참고하고 싶은 마음이랄까? 그런데서 힘을 얻는게 크더라고요.
– 신 : 기존 책이나 학문에서 영감을 받는 부분은 없어요?
– 정 : 최근에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나무에게서 온 편지’라는 소설이에요. 저자가 80~90년대 초 고등학생운동(줄여서 ‘고운’) 활동했던 사람인데, 그 이야기 쓴 거에요. 가난한 집의 존재감 없는 여자애가 그때 고운 활동하면서 탄압받던 이야기를 풀어가는데 백골단도 나오고 그래요. 고운 이야기를 진짜 들을 일이 없단 말이에요. 사람들이 고운때는 그랬었지 하면 아 그래? 하고 넘기곤 했는데 그 소설에서는 되게 현실적이고 생동감 있게 당시를 묘사하거든요. 전교조 교사가 영향을 주는 장면도 나와요. 담임 선생님이 여름방학 숙제로 교사는 노동자인가 고민해오라고 하는데 2학기 때 짤려서 다시는 못 보는 그런 장면도 나오고. 교사가 소개시켜줘서 민주화학교에 갔다가 활동가들 만나서 운동하고 백골단에 밟히고 굴욕 당하고.. 그러다가 나중에 주인공이랑 활동하던 친구들이 스무 살이 되요. 한 명은 재수학원 다니는데 돈이 없어서 칠판 지우는 일 하면 깎아준다더라 하고, 주인공은 군고구마 팔면서 지내는 이야기하고. 그렇게 뜨겁게 운동을 했는데 지금 남은 건 뭐지? 이런 식으로 마무리가 되요. 지금 제가 일하는 알바 가게에서는 9시에 출근해서 4시 반까지 일하는데 30분밖에 못 쉬어요. 점심을 먹을 수는 있는데, 너무 빨리 먹어야 돼서 저는 밥 안 먹고 봉지에 샐러드 담아서 파는 거 그런 거 먹어요. 그 30분 동안 창고에서 샐러드 먹으면서 그 책을 읽었어요. 그러면서 위로를 좀 받았어요.
– 신 : 위로가 되었다고요?
– 정 : 회의감도 물론 들었어요. 현실을 직면하는 기분. 소위 현타죠. 내가 활동을 하기 위해서 여섯시에 끝날 일을 네시 반에 끝내려고 파트타임 구했기 때문에 그 고된 노동을 하고 있는데… 보통 사무직 알바 구했으면 점심시간 식당에서 밥 먹고 사무실에서 쉬었을 텐데 그런 공간에서 그 책을 읽으니까 마음이 오묘해지더라고요.
9시에 출근해서 4시 반까지 일하는데 30분밖에 못 쉬어요.
그 30분 동안 창고에서 샐러드 먹으면서 그 책을 읽었어요.
그러면서 위로를 좀 받았어요.
– 신 : 지금 청소년운동은, 어쨌든 시민운동인가요?
– 정 : 애매해요. 청소년운동은 세대운동이잖아요. 이 세대운동 안에서도 사회 운동같은, 그러니까 노동 운동같은 운동 하는 사람도 있고 시민 운동같은 운동 하는 사람도 있고. 시민 운동같은 건 좀 더 정적이라고 해야 할까. 굳이 분류할 생각은 없는데, 노동운동은 좀 더 당사자가 많고, 이해관계 중심에 놓인, 삶과 매우 유착된 의제를 다루는 특징이 있는 거 같아요. 집회하면 뭔가 이상한 용어들, 민중가요? 그런 거 부르고 운동에 대해서 막 평론하고 그런 게 느껴지더라고요. 한편 시민운동은 선민의식이 강한 느낌도 있고.
– 신 : 청소년운동을 어떤 운동으로 분류하기는 애매하다는 거죠?
– 정 : 네. 기성의 운동 분류방식에 대입하기 어려운 것 같아요.
– 신 : 예를 들어서 LGBT운동 같은 쪽으로는?
– 정 : 크게 보면 인권운동이라고는 할 수 있을 듯 해요. 시민운동과는 계속 느끼는 거리감이 있거든요. 청소년운동이 시민운동이냐고 물으면 그렇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거 같은데 내가 하는 운동을 시민운동이라고 할 수 있을까 잘 모르겠어요. 소수자 운동, 인권운동 전반이 시민운동과 공감대를 형성하기 어려운 건 지금의 시민운동이 너무 주류중심적인 면이 있어서인 듯 해요. 시민운동이라고 일컬어지는 대다수의 단체나 활동이 정의하는 시민이 누구인가. 비장애인 시스젠더(생물학적 성과 본인이 지향하는 성이 일치하는 사람들. 이성애자일 수 있고). 사회가 정의하는 시민의 모습을 지향하고 있다는 그 느낌이 너무 강해서 기존의 시민운동이 그래서 더 싫다고 해야 하나… 그런 것이 채용공고 같은 데서도 드러나기 때문에 청소년활동가들이 그쪽 일자리에 굳이 관심갖지 않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 신 : 기성 운동이라는 것도 다양해지고 있죠. 풀뿌리 운동, 사회적 경제, 마을, 협동조합… 그런 종류들이 많이 생겼는데.
– 정 : 마을카페를 만든다든지, 협동조합으로 사업을 벌인다든지 그런 거 자주 보이는데, 집단으로서의 역할을 보장받기 위해서 쉬운 방법을 택하는 거라고 봐요. 사실 마을이라는 게 어디 있나요? 먹고 살기 바빴을 텐데. 결국에는 뭉치지 않으면 살지 못하는 사회가 되었다는 얘기겠죠. 사람들이 마을에 대한 환상을 갖기 시작했다는 느낌은 있어요. 혼자 따로 살기 너무 힘드니까. 저도 딱 1년 반 정도 혼자 살면서 정말 힘들다는 생각 했어요. 고정비용도 어마무시하고, 치안문제도 힘들고. 그래서 지금 주거공동체 만들어서 같이 살고 있어요. 물론 불편한 점도 많고 혼자가 더 편한 경우도 많지만, 진짜 이따금 같이 살아서 정말 다행이다 생각할 때 있거든요.
– 신 : 혼자 사는 데 대해서는 막연한 두려움이에요, 아니면 실제적인 위협이 있었어요?
– 정 : 예를 들면 데이트폭력 가해자가 전화로 너 지금 어디냐? 그럴 때. 하다못해 배달음식 시킬 때도 주의를 해야 했고. 택배도 그렇고.. 일단 낯선 남성이 이 곳이 여자 혼자 사는 집이라는 걸 알게 하면 안된다는 데에 너무 촉각이 곤두서있어서 힘들었어요. 여성주의가 지금처럼 막 확산되기 이전이어서 주변에서는 제가 되게 유난스러운 사람이었어요. 저도 그때 제가 너무 예민하게 굴었나 보다 생각하긴 했는데, 메갈리아 보고 그런 다음에는 뭐야 니들도 다 그랬어? 왜 나보고 예민하다고 그랬어 하는 생각이 막 들더라고요.
– 신 : 혼자 사는 환경이 좀 더 나아진다면 어떤 선택을 할 것 같아요?
– 정 : 다른 이 하고도 이야기하면서 엄청 공감했던 적 있는데, 원룸 공간에 각자 살면서 같은 건물에 살고 싶어요. 운동도 그런 면이 있는 거 같아요. 모여야 가능한 일들이 있으니까 마을이라든지 협동조합 같은 거 계속 시도하는 게 아닌가. 기본소득이 보장되고 혼자서도 삶을 꾸릴 수 있다면 굳이 무리하게 공동체를 이루려 하지 않을 수도 있잖아요.
– 신 : 중간지원조직들에 대해서는 어떤 경험이 있어요? 공공의 기금으로 활동을 지원하는 곳들.
– 정 : 청년 관련해서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요.
– 신 : 청년 담론을 싫어하는 거에요?
– 정 : 네. 청년이라고 칭하는 사람 중에 구린 사람 너무 많이 봤어요. 청년 운동하는 사람들의 구림은, 청소년이 듣는 진짜 기분 나쁜 얘기 중 하나가 넌 너 나이대 사람 같지 않다는 거에요. 근데 청년 운동하는 사람들은 거꾸로 그런 ‘좀 다른 면’이 왜 그리 없는지. 운동에 대한 고민이 너무 대학생스럽다고 해야 하나?
– 신 : 대학생스럽다는 건 어떤 의미에요?
– 정 : 전형적인? 그냥 개인적인 경험인데, 그들이 예의가 너무 없었어요. 최근에 대학 카톡방 캡쳐 돌고 그랬잖아요. 그 20대 남성의 정제되지 않은 감성. 청년 위주 단체에서 연 모임을 갔는데 청소년이 저 하나였어요. 어떤 애가 청소년 운동에 대해서 이야기하는데 자기는 여고생 보러 가고 싶다는 거에요. 그러니까 주위에서 막 웃더라고요. 이를테면 그런 거에요. 나이브하달까.
– 신 : 지금 하고 있는 청소년운동단체에서는 같이 논의하고 결정하고 하는 구조는 어때요?
– 정 : 문제가 없는 조직은 단 하나도 없겠죠. 꾸준히 나온 얘기가 단체 내 권력문제예요. 나이 권력이라는 거 지양하긴 하지만, 나이가 좀 있는 사람들은 아무래도 청소년운동 경험이 꽤 되는 사람들이니까 지식권력? 말빨? 경험 같은 데 대해서 문제제기 많이 나와요.
– 신 : 문제제기의 내용은 뭐에요? 내가 해봤는데 안돼 같은 거?
– 정 : 그런 건 아니고, 뭔가 따박따박 막 얘기하는 거죠. 누가 아이디어를 내면, 다 같이 해볼까 하는 게 아니고, 그걸 하면 이런 문제가 있고 저런 부분을 고민해야 하고 그런 식으로 논의의 방향을 끌어가는 거죠. 저는 예전에도 남 눈치 잘 안 보고 그래서 별로 신경 안 썼는데 다른 활동가들이 문제제기 하는 거 들으면서 공감되더라고요. 어떻게 대응하고 주의를 환기시킬까 고민하고 있어요. 예전에는 아무하고도 말 놓고 그랬어요. 무대뽀로 밀고 나가기도 하고. 근데 이제 제가 나이가 좀 있는 사람이 되고 보니까 그렇게 행동하면 무서워하더라고요. 너무 충격받았어요. 늙고 싶어서 늙은 건 아닌데. 저는 처음 겪기 시작한 문제지만 오래 전부터 제기되던 문제예요. 표면적으로 선후배라는 거 자체가 존재하지 않지만, 어쨌든 경력과 지식권력은 무시할 수 없고 경계해야 하는 문제라는 거 계속 느껴요.
– 신 : 구조 자체는 누가 위원이어서 더 권한을 갖는다거나 그런 게 없는 거죠?
– 정 : 그런 거 없어요. 예를 들면 아수나로는 활동 회원 모두가 대표거든요. 50여명. 그리고 지역에도 있잖아요. 1년에 두 번씩 모여요. 하루 열 시간 토의하고 그런다고 해요. 그때 아니면 모여서 얘기할 기회가 별로 없으니까. 다 같이 의논하는 거죠.
– 신 : 그런 조직 형태가 최선의 방식이라고 보기 때문에 유지하려는 입장이에요? 대의제 같은 구조 말고?
– 정 : 운동 조직 안에서는 이게 최선이라고 생각해요. 그러지 않으면 소외되는 사람이 있게 마련이죠. 청소년운동 안에서도 대중조직 같은 걸 준비하는 사람도 있어요. 잘은 모르지만 그런 데서는 모두가 직접 참여하는 게 어렵겠죠. 하지만 제가 있는 운동조직 안에서는 최대한 실천할 수 있으면 해야 되는 거 같아요. 현재 상황에 가장 적합한 방식.
표면적으로 선후배라는 거 자체가 존재하지 않지만,
어쨌든 경력과 지식권력은 무시할 수 없어…
– 신 : 서른 두 살이 되면 어쩌고 있을 거 같아요?
– 정 : 그때까지 청소년운동을 할 수 있을지는 회의적이에요. 하고 싶어도.. 어떤 포지션으로 함께 할 수 있을지 잘 상상이 안 되요. 지금도 알게 모르게 활동에서 생긴 기득권이 있을 건데 그때가 되면 과연 그걸 잘 구분할 수 있을지, 끊임없이 경계하면서 존재할 수 있을지. 아무래도 다른 운동보다는 청소년운동이어서 더 고민하는 지점일 것 같아요.
– 신 : 성찰이 많이 필요한 조건이라는 거죠? 그 성찰에 그나마 도움이 되는 환경은 어떤 거에요?
– 정 : 동료들이 솔직하게 이야기해주는 게 제일 중요해요. 저희는 동료를 넘어서 친구관계가 되는 경우가 많아요. 나이 장벽을 허무니까 말을 놓고 지낸다거나. 그런 친분관계 때문에 또 이야기하기 어려워지는 상황 같은 것도 있거든요. 서로 옆에서 이야기해주는 거 그게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 신 : 마지막으로, 막연하게라도 지금 운동을 어떻게 보고 있어요? 어떤 영역이나 형태든 상관없지만 인상이라도 있다면?
– 정 : 이대로는 안 될 것 같다고 생각해요. 정의감을 내려놓고, 자아도취를 벗고, 좀 더 고민을 해야 되는 시기인 것 같아요. 이명박 지나서 박근혜 정부 들어오면서 운동이 척박해진 건 분명히 있거든요. 핍박과 탄압이 더 많고. 그런 현실적인 조건이 어려워진 건 사실인데, 그렇기 때문에 더 뭔가 흐르기보다는 고여 있는. 자기 방어적으로 살아남기 위해 취하는 형태인 것 같은데.
– 신 : 고여있다는 거, 예를 들어줄 수 있어요?
– 정 : 변화하지 않는달까. 변화라는 건 있을 수밖에 없는데, 같은 걸 마주하더라도 한 번, 두 번, 세 번 마주할 때마다 느낌이 다를 거 아니에요. 그걸 받아들이고 표현하는 방식이 바뀌어야 하는데. 사실 사람이 고민할 힘이 없고 하기 싫으면 아 저건 이렇게 했었지 하고 바로 내어버리게 되잖아요. 그 때문인지, 특히 여성주의 같은 경우는 운동 뿐 아니라 사회 전반을 확 덮쳤음에도 여전히 박근혜 미친년 이런 소리 나오고.. 우리는 잠깐 더 멈추더라도 고민을 하고, 고민할 시간을 벌어야 하는 게 아닌가.
– 신 : 고민의 범위는 전반적인 것?
– 정 : 전반이죠. 이렇게 해도 되는 건지, 내가 지금 뭘 하고 싶어서 이걸 하는 건지. 우리는 어떻게 같이 할 수 있을지. 내 태도는 어때야 하는지. 그런 여러 가지 것들. 이대로는 안될 것 같아요.
– 신 : 그게 정권이나 외부적 환경 때문에 약화된 것도 있다. 또 다른 이유는 뭘까요?
– 정 : 잘 모르겠어요. 1차적인 건 외부환경이죠. 너무 많은 영향을 끼치잖아요. 연쇄적으로. 그게 핵심적인 문제기도 하고, 사실은 그 이전부터 성찰하지 않아왔던 태도가 지금 와서 곪아 터진 거라고 봐요. 그게 맞물려서 더 큰 악효과를 내는 거죠.
– 신 : 외부탓만 하면서 내부 성찰이 부족한 점은 굳이 이야기하지 않으려고 한다는 뜻인가요?
– 정 : 네. 노무현 김대중 정부때. 그때는 이렇게 했다, 그런 거 이야기하는 거 보면 참 그때는 마냥 행복했다는 건지. 그때도 비정규직이 죽어가고 입시 경쟁으로 사람이 죽어가던 때인데. 지금 상황이 더 악화된 건 사실이지만, 결국에는 성찰하지 못한 죄를 받고 있는 거 아닐까요. 고민하지 않은 죄. <끝>
- 신비
#신비 #정윤서 #청소년활동기상청활기 #청소년운동 #서울 #청소년 #활기
– 신비(이하, 신) : 어떤 활동을 하고 있어요?
– 정윤서(이하, 정) : 지금 소속된 단체는 한 군데에요. 올해 몇 달 동안 일하느라 활동을 중단했었는데 너무 우울하더라고요. 일 자체의 문제도 있었지만, 그래서 그만두고 알바 하면서 다시 활동하고 있어요. <청소년활동기상청 활기>라는 곳이에요. 활기는 청소년 활동가들과 아수나로, 중고생연대, 십대 섹슈얼리티 같은 단체들과 네트워킹이나 지원사업을 해요. 청소년론을 연구하거나 책을 내기도 하고.
– 신 : 언제 만든 단체에요?
– 정 : 2011년인가? 아주 자세한 건 모르는데, 청소년 활동가 네트워크가 전신이에요. 활동가들이 소속 단위를 넘어서 네트워킹과 연대가 필요하잖아요. 더군다나 청소년 운동이 척박하니까, 지금의 활기와 비슷한 활동을 하다가 단체를 만들었다고 해요.
– 신 : 그럼 거기서 소속되었다는 건 어떤 의미에요? 회원이라는 건지, 아니면 책임을 가진 활동가?
– 정 : 운영을 하는 활동가에요. 돈은 받지 않아요.
– 신 : 무보수고, 책임은 있는? 그러면 운영위원 같은 직책이 있어요?
– 정 : 그런 체계적인 직책은 없어요. 연대체 형식을 띠고 있으니까 각 단체 담당자들이 있고, 개인 활동가도 결합하는 방식. 저는 개인 활동가에요. 그 안에 책임활동가라고 해서 재정지기, 공간지기 이렇게 둘이 있어요. 재정지기는 회계 담당이고, 공간 지기는 활기가 운영주체인 ‘나름아지트’라는 공간의 운영을 맡아요. 주2회 반나절 정도 나가는 반상근이에요. 그 두 사람 활동비는 월 30만원. 작년에는 20만원이었어요. 쏟는 시간에 비해 페이는 너무 적지만 좀 더 책임을 갖고 활동하는 사람들이죠.
– 신 : 그러면 고용관계 없이 그냥 활동비를 비공식적으로 드리는 거에요? 4대 보험은?
– 정 : 네, 그런 건 기대할 수 없죠. 든든기금이라는 기금이 있는데 거기서 활동지원금과 두 책임활동가 활동비를 줘요.
– 신 : 그 기금은 어디서 마련한 거에요?
– 정 : 인권단체들이랑 재단이 같이 만든 걸로 알아요. 그리고 저는 활기에서 활동하지만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일반 회원이기도 해요. 2006년에 처음 생긴 청소년연구포럼 아수나로가 청소년인권행동으로 이름을 바꾸고 10년째 활동해서 올해 여름에 10주년 행사 했어요. 모든 지역은 아니지만, 익산, 서울, 수원, 광주, 부산 이런 식으로 전국 지부가 있어요. 지역 여건에 따라 생겼다 없어졌다 해요. 올해 10주년 맞아서 처음으로 반상근 활동가 2명 생겼어요. 10주년 행사해서 천 만원 모았거든요. 그걸로 두 명 1년 계약직으로 채용했어요. 수도권 1명, 수도권 외에서 1명. 한 명은 서울, 한 명은 광주에 있어요. 서로 소통하면서 일을 분배하고 연락하고 그래요.
– 신 : 활동을 안 하니 우울했다고 했는데, 무슨 뜻이에요?
– 정 : 제가 보통 전문성이 있다고 말하는 기술, 돈을 벌 수 있는 일로 디자인을 해요. 처음에는 그냥 포토샵으로 친구들 사진 이상하게 만들고 그랬는데, 활동을 하다보니까 글자와 사진, 그림과 무언가를 조합하면 창작품을 만들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활동과 연결된 곳에서 돈을 벌고 싶었는데 그게 어렵기도 해서 구직을 했죠. 그런데 디자인이 3D업종이잖아요. 얼마 전에 일하던 곳에서는 임금 체불, 열정페이를 당연시하는 야근 문화까지 문제가 많았어요. 일하다보면 다른 데 이야기도 듣게 되잖아요. 디자인소호 성추행 사건이라든지, 디자인팀은 여직원이 많아서 높은 회장님, 사장님 술자리에서 흥을 돋우는 역할을 하더라 그런 폭로도 있고..
– 신 : 올해 문화예술계 성폭력 폭로 이어지고 있죠.
– 정 : 이게 비단 디자인계의 일만이 아니라 어떤 임금노동을 하더라도 마찬가지인 듯 해요. 출퇴근시간도 임금 안정성도 보장받을 수 없는 건데, 그런 환경은 활동이랑 크게 다를게 없어요. 원하는 걸 포기하고 이런 환경에서 일하는 게 우울했어요. 물론 활동은 나에게 돈을 한 푼도 안 주지만.
– 신 : 활동을 하기 위해서 버는 돈의 가치와 내 활동의 가치를 비교하는 거에요?
– 정 : 활동을 계속 하고 싶으니까, 어떻게 하면 연결할 수 있을까 계속 고민은 하고 있는데, 그래서 2-3년 전에는 디자인 사회적 기업 만들자고 활동가들하고 의논하고 계획도 짜보고 했는데, 활동에 치여서 무산되었어요.
– 신 : 돈 벌 시간이 없었군요. 그래서 자립할 직장을 찾아야겠다 생각했나봐요.
– 정 : 고등학생 때는 활동을 온전히 하려면 가장 먼저 넘어야 할 산이 부모에요. 부모가 나의 활동을 허락해줘야 온전한 활동을 할 수 있잖아요. 하다못해 회의를 하다가 밤에 열두시 넘어 집에 들어가는 것조차도 허락을 맡아야 했어요. 뭐 그건 나중에 포기했지만. 그러다가 스무 살이 넘고, 활동하면서 만들었던 대안학교에서 상근할 수 있어서 자립하기 시작했죠.
– 신 : 그 학교는 비인가였잖아요. 고등학교 졸업 인증은 아니죠? 현재 중졸 상태로 취업에 문제는 없어요?
– 정 : 아, 고졸이에요. 검정고시 봤어요.
– 신 : 그래요. 그럼 고졸로서는 취업이 어때요?
– 정 : 아직 제 나이대 디자인 일자리는 전문대졸 아니면 다들 고졸이고, 굳이 대졸 구하는 일자리는 제가 관심도 없다보니까 문제는 안되요. 그런데 사람들이 알바를 구하는 것과 취직은 다르게 보잖아요. 만약에 취직을 하게 된다면 엄청나게 작용을 하겠죠.
– 신 : 그러니까 디자인 업계가 알바로 고졸 뽑아서 3D 노동을 많이 시키는군요. 기획해서 할 수 있는 게 아니고 그냥 던져지는 것.
– 정 : 단순노동이죠. 맨날 누끼(사진이나 그림의 특정 부분만 사용하기 위해 필요한 부분의 테두리를 선택해서 배경을 삭제하는 작업) 따고, 포토샵 액션 기능처럼 마우스 딸각거리고. 그런 일이에요. 디자인 말고 다른 일에도 나름의 어려움이 있어요. 친구 한 명은 콜센터 일을 하거든요. 콜센터가 크게 인바운드랑 아웃바운드로 나눠지는데 아웃바운드가 좀 더 빡센 일이잖아요. 받는 사람이 화를 낼 확률도 높고 감정노동 확률도 높고. 그런데 대졸은 인바운드, 고졸은 아웃바운드로 배치가 된다는 거에요. 사실 스물한 살 초반 정도까지는 내가 지금까지 남들처럼 살아온 시간이 얼마나 있었나 이러면서 어떻게든 살겠지 싶었는데, 이제 그런 게 점점 눈앞에 보이기 시작하면서 고민이 많아졌어요. 청소년 활동가 중에 저 같은 고민 하는 사람 진짜 많아요. 대학 거부자와 고졸이 많잖아요. 중졸도 있고. 보통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보다 더 예민한 인권감수성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훨씬 많기 때문에, 이런 일반 직장에 쉽게 들어갈 수도 없고 더불어 쉽게 적응할 수도 없는 경우가 많단 말이에요. 그래서 더 전업으로 활동하기를 원하는데 오히려 다른 여성운동이나 시민단체보다 재정적인 기반은 뭐, 그냥 없다고 봐야죠. 없다보니까 활동가들이 더 고민이죠.
– 신 : 그러면 왜 일반 시민단체들을 직장으로 삼지 않아요? 낮에 단체 활동하고, 오프 시간에 원하는 청소년운동 하면 안 되나요?
– 정 : 시민사회단체는 일당백인 경우가 많지 않아요?
– 신 : 그런 면도 있지만 변화도 있는 듯 해요. 그리고 다른 직장보다는 서로 양해가 되지 않을까 싶은데요.
– 정 : 일단 제가 안 하는 이유는, 말했듯이 일당백이라는 거에 대한 부담감도 있고, 딱히 주변에 채용공고를 접할 기회가 없어서예요. 보통 사람인이든 알바천국이든 그런데를 주로 보니까.
– 신 : 저는 청소년운동에서 오히려 기존 운동단체에 거리감을 두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했어요.
– 정 : 돈을 번다는 게 최소 하루 아홉 시간에서 열 시간은 활동이 아닌 일에 써야 한다는 건데, 만약 할 수 있다면 좀 더 감정노동을 덜 할 수 있고, 쉽게 말하면 꼰대 없는? 그런 곳을 선택하려고 하겠죠. 일반 회사 들어가면 둘 중 하나에요. 그냥 저 사람들하고는 아예 섞이지 말자 하고 일만 하거나, 그럭저럭 지낼만 하겠다 싶으면 조금만 어울리거나 그럴 수 있어요. 그런데 시민단체는 아주 지척이잖아요. 극단적인 태도를 취할 수 없게 되겠죠. 칼퇴근하고 내 활동하러 가거나 하는 게 어려울 수도 있을 거 같아요.
– 신 : 일당백 문제는 확실히 있을 거 같아요. 그런 거 실제로 느낀 경험이 있어요?
– 정 : 청소년운동을 하다가 녹색당, 맘상모 같은 곳에 일하러 간 사람도 있긴 해요. 너무 바쁘고 여유가 없어서 정작 원래 하던 청소년운동을 하기가 곤란한 경우가 많아요. 마음이 떠난 경우도 있겠지만 일단 딱 봐도 너무 힘들어 보여요. 전업 활동가는. 그래서 뭐 하자고 말하기도 어렵고 그렇더라고요.
너무 바쁘고 여유가 없어서
정작 원래 하던 청소년운동을 하기가 곤란한 경우가 많아요.
– 신 : 세대, 이를테면 386 또는 X세대? 그런 분들의 활동에 대해 평소에 어떤 생각을 했어요?
– 정 : 나는 그분들은, 본인의 정의감에 도취된 사람이라는 생각을 진짜 많이 해요. 그 때문에 간과하는게 너무 많아요. 특히 인권 영역에서, 예를 들면 지금 광화문에 모이는 사람이 많은데 참 별 일이 다 있고(소수자 혐오 발언 등), 해일이 오는데 조개를 줍고 있냐는 식의 태도로 대표되는 꼰대니즘? 그런 게 참 보기 싫고, 만나고 싶지 않달까.
– 신 : 그런 권력관계가 내 운동에 직접 영향을 미치지는 않죠?
– 정 : 집회 장소에서는 마주치게 되죠. 최근에는 백남기 농민 장례식장에서 청소년 활동가 흡연 문제로 경찰 신고한 그런 사람들. 경찰 폭력으로 죽은 시민을 추모하고 경찰의 폭력 진압에 반대한다는 사람들이 정작 문제의 핵심을 고민하지 않고 있었던 거죠. 그 자리에 경찰을 부르다니. 사람이 다치거나 죽은 것도 아니고 청소년 흡연을 훈계하겠다는 이유로.
– 신 : 그때 그 분들이 단체 소속 활동가였어요? 아니면 일반 시민?
– 정 : 섞여있었던 걸로 알아요. 그 문제를 논의하던 SNS 글에서는 청소년보호법을 들먹이는 사람들도 있었어요. 악법 중의 악법인 청소년보호법을 가져와서 논의를 하다니…
– 신 : 왜 그러는 거 같아요?
– 정 : 그냥 평생 그렇게 살아와서 그 외의 다른 세상이 있다는 걸 모르는 것 같아요. 나이든 활동가만이 아니라 세대를 떠나서 대체로 그래요. 물론 나이 많은 세대가 좀 더하긴 해요. 다른 세상이 존재한다는 걸 상상을 못해요. 차별은 사실 거기서 오는 거잖아요. 장애인이 이 길을 지나갈 수 있다는 생각을 못하는 비장애인은 아무렇지 않게 턱을 하나 만들고 그러죠.
– 신 : 올해는 그런 이슈들이 자주 크게 논의가 되서, 화는 나지만 그래도 뭔가 논의라도 되는구나 하는 반가운 마음도 들던데요. 그렇다면 영역에 따라서는 좀 다른 느낌이 있어요? 인상비평이라고 할지라도, 이를테면 인권 분야는 좀 더 감수성이 높기는 하잖아요.
– 정 : 스스로를 인권활동가라고 정의하는 모든 사람과 잘 맞다고는 할 수 없지만, 기본적으로 인권을 생각하는 사람이 먼저 넘어야 하는 생각 깨기의 산이 있잖아요. 그걸 넘은 사람들과는 깊이 관계가 진전되지 않는 이상 극혐이다 싶은 경우는 별로 없어요. 그런데 예를 들면 녹색꼰대라는 표현이 있어요. ‘아이들을 위해 핵 없는 세상을’ 같은 구호를 고수하시는 분들. 왜 그렇게 거기 꽂히시는지. 공통점은 정의감에 도취된다는 것 같아요.
‘아이들을 위해 핵 없는 세상을’ 같은 구호에 왜 그렇게 거기 꽂히시는지…
– 신 : 청소년활동가로서 느끼는 한계는 뭐가 있어요? 스스로 성장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지 않아요?
– 정 : 역사적으로 고등학생운동이 있었지만 곧바로 연결되는 건 아니에요. 최근에 ‘인물로 만나는 청소년운동사’라는 책이 나왔어요. 두발자유화 운동부터 활동했던 분들 만나서 쓴 건데, 그런 걸 참고할 수 있는 정도예요. 사실 청소년운동이 척박하기도 하고 역사가 길지 않아서 그렇긴 하지만 저는 굳이 선배 세대를 자원 삼아서 클 필요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선배 세대라는 거, 축적된 다수의 경험은 화분에 주는 거름 같은 건데 거름이 나한테 안 맞을 수도 있고, 너무 많이 주면 풀이 썩잖아요.
– 신 : 그냥 길가에서 자라고 싶은 거에요?
– 정 : 네.
– 신 : 힘든 일도 꽤 겪었을텐데 여전히 그 방식 괜찮아요?
– 정 : 돈이 없는 건 참 안 괜찮은 거 같아요. 생각해보니 선배 세대가 빨리 생겨서 돈을 주셨으면 좋겠다 싶어요.
– 신 : 현재 상태에서 청소년운동이라고 지칭하는 그 운동을 계속 하기 원해요?
– 정 : 네. 사실 청소년운동은 꽤 세분화되요. 이때가 한 살 한 살이 커요. 아기들 월령 따지듯이. 그래서 저도 스물두 살이 되면서 고민이 너무 많았어요. 이제 내년에는 스물 셋 되서 더 고민이에요.
– 신 : 고민의 내용은?
– 정 : 그냥 늙기가 싫어요. 열 여덟이나 열 일곱에 고정되었으면 좋겠어요. 살기 편한 건 스물 한 두 살 되고부터였지만.. 열 일곱이면 청소년운동 발언도 하기 좋을 거 같고, 학교 관련해서 활동도 더 할 수 있을 거 같고.
– 신 : 그 운동에서 자기의 위치는 어떤 거에요? 내가 소위 청소년일 때는 자기 정체성 운동인데, 지금은?
– 정 : 법적으로 청소년은 만 18세, 19세, 23세로 다양한데, 어차피 저는 더 이상 당사자가 아니에요. 그 차이가 너무 커요. 스무살 되고서 부모 신분증 없이 내 핸드폰을 바꿀 수 있다는 게 너무 충격이었어요. 낯설음인데, 시간이 흐를수록 그 낯설음과 계속 마주해야 했어요. 처음 핸드폰을 바꿨을 때, 처음 신용카드 만들었을 때, 처음 혼자서 집을 계약했을 때. 하지만 사람이 처음 태어나면 눈앞에 보이는 모든 게 신기하다가 시간이 지나면 무뎌지듯이 저도 점점 무뎌지고 있어요. 이게 단순히 당사자성을 잃어서 활동가로서 입지가 달라지는 것만이 아니라 나의 감수성이나 태도에 영향을 미친다는 생각이 들어요. 하지만 꼭 당사자라야만 운동을 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당장 지금도 어딘가에서 입시나 가정폭력 문제에 노출된 채 도움을 못 받고 죽어가는 사람이 있을 거에요. 입시나 학교 구조, 억압이 자신의 삶과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걸 경험하는 청소년은 이 사회의 전반적인 문제의 뿌리와 같은 존재예요. 청소년인권 문제는 제가 가장 바뀌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너무 시급한 문제예요.
– 신 : 지금 제일 큰 고민은 뭐에요?
– 정 : 언제부턴가 운동이 넘을 수 없는 산을 넘으려고 제자리걸음 하는 느낌을 받아요. 활동가 수도 많이 줄었고, 여러 가지 현실적인 문제 때문이겠죠. 아수나로도 지부가 몇 개 줄어들고. 기존 활동가들은 각자의 문제가 있어서 떠나는 경우들이 있고, 새로 유입되는 경우도 적극 뛰어드는 경우가 그리 많지 않아요. (학교라든지) 현장의 정확한 상황은 잘 모르겠어요. 정말 상황이 더 척박해져서 활동이 어려운건지, 다른 이유가 있는 건지..
– 신 : 넘을 수 없는 벽이라는 느낌은 언제부터 생겼어요?
– 정 : 2014년 말쯤? 대략 2년쯤 전부터? 운동 시작하고 3년 다 되가던 때에요.
– 신 : 활동 3년차에 위기를 느낀다는 이야기는 많은데.
– 정 : 아, 그런데 저만 느끼는 문제가 아니라서. 활동 연차와 상관없이 그 즈음부터 같은 문제를 인식하는 경향이 있었어요. 일단 사람이 없으니까, 사람이 거기서 거기서니까.
– 신 : 냉정하게, 굳이 조직을 유지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요?
– 정 : 그렇다고 조직을 없앨 이유도 없는 거 같아요.
– 신 : 너무 힘드니까.
– 정 : 그렇다고 죽을 듯이 힘든 건 또 아니에요. 아직 할만은 한데 기운 빠지고 그런 일이 좀 많은거죠. 저는 원래 보기 좋고 세련되고 그런 거 좋아하는데, 언젠가부터 우리가 하는 활동이나 퍼포먼스가 임팩트가 없고 세련되지 못해서 관심을 못 받나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아마추어적이랄까? 우리는 활동을 전개하는데 있어서 나름 능숙한 면이 있어요. 하지만 앞서서 발언을 하거나 그럴 때 좀 더 전달력 있게 하면 더 임팩트 있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 할 때가 있어요. 주위에서 저 보고 까다롭대요. 사람이 없으니까 현실의 장벽이 높아져요. 활동 아이디어를 내고 실현하는 데 있어서 벽에 부딪치니까 더 위축되고, 생각이 쉽게 분출되지 못하고 그러니까 또 뭔가 확 지를 수 있는 활동을 꺼내지 못하고. 그런 게 있어야 새로운 사람이 오는데. 그 악순환의 굴레랄까.
– 신 : 그 현실의 벽이 뭐에요? 지금 시국이나 시민사회가 약해진 상황?
– 정 : 그냥 사람이 없어서, 조직 내부에 실무를 할 사람이 부족한 거요.
– 신 : 그럼 일종의 재생산의 문제라고 볼 수 있겠네요.
– 정 : 그렇다고 할 수 있겠네요.
– 신 : 만약에 새로운 사람이 많이 들어오고 활동이 활발해지면 본인은 뒤로 빠진다거나 그럴 생각은 있어요?
– 정 : 아뇨. 그래도 할 거에요.
– 신 : 사람이 없어서, 내가 더 여기 있어야 할 가아서 하는 건 아니라는 거네요.
– 정 : 아니에요. 저는 이기적인 사람이라. 그래도 뭔가 같이 할 사람이 있으면 좋겠어요.
– 신 : 해결책이 뭐가 있을까요?
– 정 : 돈이 있으면 해결될 거 같아요. 최소한.
– 신 : 운동이 막 성장하는 시기에는 어려워도 서로 북돋우면서 해나갈 수 있는데 운동이 현 상태가 정체되니까 하고 싶어서 하긴 하지만 흥이 안나는 그런 상황인걸까요?
– 정 : 네. 흥이 안 나는 상황. 어떻게 이 상황을 헤쳐가야 할까 고민해요.
– 신 : 하루하루 너무 치열해서 생각보다 지쳐있을지도 몰라요. 쉬어야 하는 것일지도.
– 정 : 그런데 올해 디자인 알바 하면서, 두 달정도? 활동을 쉬었어요. 일단 병행하는게 불가능해서요. 전면중단. 그런데 정말 몸이 근지러워서 못 견디겠더라고요.
– 신 : 아, 그러면 에너지가 있는 걸지도 모르겠네요.
– 정 : 내년에는 워킹 홀리데이 하려고 해요. 가서 어린이 청소년 만나면서 기록 작업을 할까 생각중이에요.
– 신 : 그런 일 없이 그냥 가면 안되요?
– 정 : 아깝잖아요.
– 신 : 활동할 때, 시작할 때나 지금이나 활동에 필요한 에너지를 얻는 거, 공부랄까. 어떤 게 있었어요?
– 정 : 그게 좀 고민인 게, 청소년운동은 담론이 되물림되는 게 커요. 거기서 오는 빈 공간들. 그걸 채우기 위해서 여성학 책을 보고 소수자 학문을 공부하고, 스스로 역사를 되짚어보고 그러려고 해요. 하다못해 소수자 인권 전반에 대한 책을 읽는다거나 모임을 한다거나, 단체 내에서 공부모임을 만들어 공부를 한다거나 교육을 들으러 간다거나. 그런데 그것도 한계가 있다는 생각을 몇 년째 하고 있어요. 학교 도서관이나 논문 자료 같은 정보 접근은 대학생들에게 유리해요. 국회도서관 만18세 이상 출입이고. 그런 불합리한 구조들 때문에 더 길이 막히기도 해요.
– 신 : 그런걸 대학생이나 외부에 의존하는 것도 운동을 자력으로 못하게 되니까 안 좋겠죠.
– 정 : 네, 맞아요.
– 신 : 한계가 있다고 했는데 공부가 부족하다는 거에요, 아니면 다른 문제?
– 정 : 담론이 되물림되는 건 구전동화처럼 되물리는 사람에게 의존하는 거잖아요. 현실판 사람책이죠. 객관화된 자료가 필요하고, 우리가 이런 걸 했노라 기록도 해야 하는데 그럴 여유도 없거니와 참고할 자료에 접근하기도 어렵고. 시간도 없고, 돈도 없고.
– 신 : 다른 영역, 인권분야 같은 쪽에서 청소년운동에 대해 기록하거나 연구하기도 하잖아요. 그런 건 도움이 되요? 사실 자기 운동을 스스로 기록하는 것도 한편으로는 객관화가 안되거나 그런 점이 있잖아요.
– 정 : 도움 되죠. 그런데 부족하긴 하죠. 사실 인권운동에서 나온 책들은 외부라고 하기는 좀 어렵고 반은 내부라고도 할 수 있어서. 꼭 기록을 내부에서 해야할 필요는 없죠. 그런데 로우데이터랄까, 그런 걸 생산할 필요가 있잖아요. 물론 지금도 언론이나 외부에서 기록해주고 있긴 해요. 일단은 우리만의 힘으로 정보를 기록하고 생산한다는 게 불가능한 것도 맞고, 운동이 성장한다면 굳이 우리가 하지 않아도 해주는 사람들이 생길 거고. 연대하면서 같이 풀어나갈 문제긴 해요. 이건 우리가 할 거니까 껴들지 마 그런 건 아니에요. 아직 그만한 기회는 별로 없었어요.
– 신 : 어쨌든 이번에 나왔다는 그 청소년운동사 기록물은 나름의 의미가 있다고 봐요?
– 정 : 네. 1쇄를 500부 밖에 안 찍었어요. 교육공동체 벗에서 출판했는데, 안 팔릴 거 같다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저번 주인가 2쇄 나온다고 하더라고요. 청소년운동에 관심 있거나 그걸로 공부하려는 사람은 별로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무튼 공부하거나 학습하는 것. 그냥 담론을 되물림하지 않는 기록이나 언어화가 되게 중요하다고 느꼈어요. 어느 순간부터 내가 너무 상투적인 말을 뱉고 있다는 고민을 많이 했거든요. 그러지 않고 나만의 언어를 만들고 싶은데 이 상태로는 너무 모르겠는 거에요. 그래서 열아홉 살 때는 여성학에 관심가지고 그랬어요. 나만의 언어를 갖고 싶더라고요. 여성운동은 기록이 많잖아요. 다른 부문도 그렇지만 여성학이라는 학문도 있고. 지적 기반이 탄탄하고.
– 신 : 개인적으로 공부가 되는 건 요즘 뭐가 있어요?
– 정 : 저는 요즘 계속 해외 사례에 관심이 가요. 청소년이 주체가 된 운동 사례. 홍콩 우산혁명도 그래요. 얼마 전에 하자센터 청소년 창의 서밋 갔다가 홍콩 청소년들 만나서 인터뷰를 했어요. 비영어권 사람들끼리 영어로 힘들게.. 그렇게 해서 2016년 학생의 날 신문에 실었어요. 홍콩은 선거권과 피선거권이 일치하더라고요. 우리나라는 전혀 아니잖아요. 아무튼 그쪽으로 관심이 가요. 국내 청소년운동 영역이 좁다고도 느끼고, 물론 제가 아주 적극적으로 나서면 여러 운동 이야기도 듣고 하겠지만 지금은 그냥 SNS로 간접적으로 보는 걸로 만족하고 있어서.. 다른 곳에서 좀 참고하고 싶은 마음이랄까? 그런데서 힘을 얻는게 크더라고요.
– 신 : 기존 책이나 학문에서 영감을 받는 부분은 없어요?
– 정 : 최근에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나무에게서 온 편지’라는 소설이에요. 저자가 80~90년대 초 고등학생운동(줄여서 ‘고운’) 활동했던 사람인데, 그 이야기 쓴 거에요. 가난한 집의 존재감 없는 여자애가 그때 고운 활동하면서 탄압받던 이야기를 풀어가는데 백골단도 나오고 그래요. 고운 이야기를 진짜 들을 일이 없단 말이에요. 사람들이 고운때는 그랬었지 하면 아 그래? 하고 넘기곤 했는데 그 소설에서는 되게 현실적이고 생동감 있게 당시를 묘사하거든요. 전교조 교사가 영향을 주는 장면도 나와요. 담임 선생님이 여름방학 숙제로 교사는 노동자인가 고민해오라고 하는데 2학기 때 짤려서 다시는 못 보는 그런 장면도 나오고. 교사가 소개시켜줘서 민주화학교에 갔다가 활동가들 만나서 운동하고 백골단에 밟히고 굴욕 당하고.. 그러다가 나중에 주인공이랑 활동하던 친구들이 스무 살이 되요. 한 명은 재수학원 다니는데 돈이 없어서 칠판 지우는 일 하면 깎아준다더라 하고, 주인공은 군고구마 팔면서 지내는 이야기하고. 그렇게 뜨겁게 운동을 했는데 지금 남은 건 뭐지? 이런 식으로 마무리가 되요. 지금 제가 일하는 알바 가게에서는 9시에 출근해서 4시 반까지 일하는데 30분밖에 못 쉬어요. 점심을 먹을 수는 있는데, 너무 빨리 먹어야 돼서 저는 밥 안 먹고 봉지에 샐러드 담아서 파는 거 그런 거 먹어요. 그 30분 동안 창고에서 샐러드 먹으면서 그 책을 읽었어요. 그러면서 위로를 좀 받았어요.
– 신 : 위로가 되었다고요?
– 정 : 회의감도 물론 들었어요. 현실을 직면하는 기분. 소위 현타죠. 내가 활동을 하기 위해서 여섯시에 끝날 일을 네시 반에 끝내려고 파트타임 구했기 때문에 그 고된 노동을 하고 있는데… 보통 사무직 알바 구했으면 점심시간 식당에서 밥 먹고 사무실에서 쉬었을 텐데 그런 공간에서 그 책을 읽으니까 마음이 오묘해지더라고요.
9시에 출근해서 4시 반까지 일하는데 30분밖에 못 쉬어요.
그 30분 동안 창고에서 샐러드 먹으면서 그 책을 읽었어요.
그러면서 위로를 좀 받았어요.
– 신 : 지금 청소년운동은, 어쨌든 시민운동인가요?
– 정 : 애매해요. 청소년운동은 세대운동이잖아요. 이 세대운동 안에서도 사회 운동같은, 그러니까 노동 운동같은 운동 하는 사람도 있고 시민 운동같은 운동 하는 사람도 있고. 시민 운동같은 건 좀 더 정적이라고 해야 할까. 굳이 분류할 생각은 없는데, 노동운동은 좀 더 당사자가 많고, 이해관계 중심에 놓인, 삶과 매우 유착된 의제를 다루는 특징이 있는 거 같아요. 집회하면 뭔가 이상한 용어들, 민중가요? 그런 거 부르고 운동에 대해서 막 평론하고 그런 게 느껴지더라고요. 한편 시민운동은 선민의식이 강한 느낌도 있고.
– 신 : 청소년운동을 어떤 운동으로 분류하기는 애매하다는 거죠?
– 정 : 네. 기성의 운동 분류방식에 대입하기 어려운 것 같아요.
– 신 : 예를 들어서 LGBT운동 같은 쪽으로는?
– 정 : 크게 보면 인권운동이라고는 할 수 있을 듯 해요. 시민운동과는 계속 느끼는 거리감이 있거든요. 청소년운동이 시민운동이냐고 물으면 그렇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거 같은데 내가 하는 운동을 시민운동이라고 할 수 있을까 잘 모르겠어요. 소수자 운동, 인권운동 전반이 시민운동과 공감대를 형성하기 어려운 건 지금의 시민운동이 너무 주류중심적인 면이 있어서인 듯 해요. 시민운동이라고 일컬어지는 대다수의 단체나 활동이 정의하는 시민이 누구인가. 비장애인 시스젠더(생물학적 성과 본인이 지향하는 성이 일치하는 사람들. 이성애자일 수 있고). 사회가 정의하는 시민의 모습을 지향하고 있다는 그 느낌이 너무 강해서 기존의 시민운동이 그래서 더 싫다고 해야 하나… 그런 것이 채용공고 같은 데서도 드러나기 때문에 청소년활동가들이 그쪽 일자리에 굳이 관심갖지 않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 신 : 기성 운동이라는 것도 다양해지고 있죠. 풀뿌리 운동, 사회적 경제, 마을, 협동조합… 그런 종류들이 많이 생겼는데.
– 정 : 마을카페를 만든다든지, 협동조합으로 사업을 벌인다든지 그런 거 자주 보이는데, 집단으로서의 역할을 보장받기 위해서 쉬운 방법을 택하는 거라고 봐요. 사실 마을이라는 게 어디 있나요? 먹고 살기 바빴을 텐데. 결국에는 뭉치지 않으면 살지 못하는 사회가 되었다는 얘기겠죠. 사람들이 마을에 대한 환상을 갖기 시작했다는 느낌은 있어요. 혼자 따로 살기 너무 힘드니까. 저도 딱 1년 반 정도 혼자 살면서 정말 힘들다는 생각 했어요. 고정비용도 어마무시하고, 치안문제도 힘들고. 그래서 지금 주거공동체 만들어서 같이 살고 있어요. 물론 불편한 점도 많고 혼자가 더 편한 경우도 많지만, 진짜 이따금 같이 살아서 정말 다행이다 생각할 때 있거든요.
– 신 : 혼자 사는 데 대해서는 막연한 두려움이에요, 아니면 실제적인 위협이 있었어요?
– 정 : 예를 들면 데이트폭력 가해자가 전화로 너 지금 어디냐? 그럴 때. 하다못해 배달음식 시킬 때도 주의를 해야 했고. 택배도 그렇고.. 일단 낯선 남성이 이 곳이 여자 혼자 사는 집이라는 걸 알게 하면 안된다는 데에 너무 촉각이 곤두서있어서 힘들었어요. 여성주의가 지금처럼 막 확산되기 이전이어서 주변에서는 제가 되게 유난스러운 사람이었어요. 저도 그때 제가 너무 예민하게 굴었나 보다 생각하긴 했는데, 메갈리아 보고 그런 다음에는 뭐야 니들도 다 그랬어? 왜 나보고 예민하다고 그랬어 하는 생각이 막 들더라고요.
– 신 : 혼자 사는 환경이 좀 더 나아진다면 어떤 선택을 할 것 같아요?
– 정 : 다른 이 하고도 이야기하면서 엄청 공감했던 적 있는데, 원룸 공간에 각자 살면서 같은 건물에 살고 싶어요. 운동도 그런 면이 있는 거 같아요. 모여야 가능한 일들이 있으니까 마을이라든지 협동조합 같은 거 계속 시도하는 게 아닌가. 기본소득이 보장되고 혼자서도 삶을 꾸릴 수 있다면 굳이 무리하게 공동체를 이루려 하지 않을 수도 있잖아요.
– 신 : 중간지원조직들에 대해서는 어떤 경험이 있어요? 공공의 기금으로 활동을 지원하는 곳들.
– 정 : 청년 관련해서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요.
– 신 : 청년 담론을 싫어하는 거에요?
– 정 : 네. 청년이라고 칭하는 사람 중에 구린 사람 너무 많이 봤어요. 청년 운동하는 사람들의 구림은, 청소년이 듣는 진짜 기분 나쁜 얘기 중 하나가 넌 너 나이대 사람 같지 않다는 거에요. 근데 청년 운동하는 사람들은 거꾸로 그런 ‘좀 다른 면’이 왜 그리 없는지. 운동에 대한 고민이 너무 대학생스럽다고 해야 하나?
– 신 : 대학생스럽다는 건 어떤 의미에요?
– 정 : 전형적인? 그냥 개인적인 경험인데, 그들이 예의가 너무 없었어요. 최근에 대학 카톡방 캡쳐 돌고 그랬잖아요. 그 20대 남성의 정제되지 않은 감성. 청년 위주 단체에서 연 모임을 갔는데 청소년이 저 하나였어요. 어떤 애가 청소년 운동에 대해서 이야기하는데 자기는 여고생 보러 가고 싶다는 거에요. 그러니까 주위에서 막 웃더라고요. 이를테면 그런 거에요. 나이브하달까.
– 신 : 지금 하고 있는 청소년운동단체에서는 같이 논의하고 결정하고 하는 구조는 어때요?
– 정 : 문제가 없는 조직은 단 하나도 없겠죠. 꾸준히 나온 얘기가 단체 내 권력문제예요. 나이 권력이라는 거 지양하긴 하지만, 나이가 좀 있는 사람들은 아무래도 청소년운동 경험이 꽤 되는 사람들이니까 지식권력? 말빨? 경험 같은 데 대해서 문제제기 많이 나와요.
– 신 : 문제제기의 내용은 뭐에요? 내가 해봤는데 안돼 같은 거?
– 정 : 그런 건 아니고, 뭔가 따박따박 막 얘기하는 거죠. 누가 아이디어를 내면, 다 같이 해볼까 하는 게 아니고, 그걸 하면 이런 문제가 있고 저런 부분을 고민해야 하고 그런 식으로 논의의 방향을 끌어가는 거죠. 저는 예전에도 남 눈치 잘 안 보고 그래서 별로 신경 안 썼는데 다른 활동가들이 문제제기 하는 거 들으면서 공감되더라고요. 어떻게 대응하고 주의를 환기시킬까 고민하고 있어요. 예전에는 아무하고도 말 놓고 그랬어요. 무대뽀로 밀고 나가기도 하고. 근데 이제 제가 나이가 좀 있는 사람이 되고 보니까 그렇게 행동하면 무서워하더라고요. 너무 충격받았어요. 늙고 싶어서 늙은 건 아닌데. 저는 처음 겪기 시작한 문제지만 오래 전부터 제기되던 문제예요. 표면적으로 선후배라는 거 자체가 존재하지 않지만, 어쨌든 경력과 지식권력은 무시할 수 없고 경계해야 하는 문제라는 거 계속 느껴요.
– 신 : 구조 자체는 누가 위원이어서 더 권한을 갖는다거나 그런 게 없는 거죠?
– 정 : 그런 거 없어요. 예를 들면 아수나로는 활동 회원 모두가 대표거든요. 50여명. 그리고 지역에도 있잖아요. 1년에 두 번씩 모여요. 하루 열 시간 토의하고 그런다고 해요. 그때 아니면 모여서 얘기할 기회가 별로 없으니까. 다 같이 의논하는 거죠.
– 신 : 그런 조직 형태가 최선의 방식이라고 보기 때문에 유지하려는 입장이에요? 대의제 같은 구조 말고?
– 정 : 운동 조직 안에서는 이게 최선이라고 생각해요. 그러지 않으면 소외되는 사람이 있게 마련이죠. 청소년운동 안에서도 대중조직 같은 걸 준비하는 사람도 있어요. 잘은 모르지만 그런 데서는 모두가 직접 참여하는 게 어렵겠죠. 하지만 제가 있는 운동조직 안에서는 최대한 실천할 수 있으면 해야 되는 거 같아요. 현재 상황에 가장 적합한 방식.
표면적으로 선후배라는 거 자체가 존재하지 않지만,
어쨌든 경력과 지식권력은 무시할 수 없어…
– 신 : 서른 두 살이 되면 어쩌고 있을 거 같아요?
– 정 : 그때까지 청소년운동을 할 수 있을지는 회의적이에요. 하고 싶어도.. 어떤 포지션으로 함께 할 수 있을지 잘 상상이 안 되요. 지금도 알게 모르게 활동에서 생긴 기득권이 있을 건데 그때가 되면 과연 그걸 잘 구분할 수 있을지, 끊임없이 경계하면서 존재할 수 있을지. 아무래도 다른 운동보다는 청소년운동이어서 더 고민하는 지점일 것 같아요.
– 신 : 성찰이 많이 필요한 조건이라는 거죠? 그 성찰에 그나마 도움이 되는 환경은 어떤 거에요?
– 정 : 동료들이 솔직하게 이야기해주는 게 제일 중요해요. 저희는 동료를 넘어서 친구관계가 되는 경우가 많아요. 나이 장벽을 허무니까 말을 놓고 지낸다거나. 그런 친분관계 때문에 또 이야기하기 어려워지는 상황 같은 것도 있거든요. 서로 옆에서 이야기해주는 거 그게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 신 : 마지막으로, 막연하게라도 지금 운동을 어떻게 보고 있어요? 어떤 영역이나 형태든 상관없지만 인상이라도 있다면?
– 정 : 이대로는 안 될 것 같다고 생각해요. 정의감을 내려놓고, 자아도취를 벗고, 좀 더 고민을 해야 되는 시기인 것 같아요. 이명박 지나서 박근혜 정부 들어오면서 운동이 척박해진 건 분명히 있거든요. 핍박과 탄압이 더 많고. 그런 현실적인 조건이 어려워진 건 사실인데, 그렇기 때문에 더 뭔가 흐르기보다는 고여 있는. 자기 방어적으로 살아남기 위해 취하는 형태인 것 같은데.
– 신 : 고여있다는 거, 예를 들어줄 수 있어요?
– 정 : 변화하지 않는달까. 변화라는 건 있을 수밖에 없는데, 같은 걸 마주하더라도 한 번, 두 번, 세 번 마주할 때마다 느낌이 다를 거 아니에요. 그걸 받아들이고 표현하는 방식이 바뀌어야 하는데. 사실 사람이 고민할 힘이 없고 하기 싫으면 아 저건 이렇게 했었지 하고 바로 내어버리게 되잖아요. 그 때문인지, 특히 여성주의 같은 경우는 운동 뿐 아니라 사회 전반을 확 덮쳤음에도 여전히 박근혜 미친년 이런 소리 나오고.. 우리는 잠깐 더 멈추더라도 고민을 하고, 고민할 시간을 벌어야 하는 게 아닌가.
– 신 : 고민의 범위는 전반적인 것?
– 정 : 전반이죠. 이렇게 해도 되는 건지, 내가 지금 뭘 하고 싶어서 이걸 하는 건지. 우리는 어떻게 같이 할 수 있을지. 내 태도는 어때야 하는지. 그런 여러 가지 것들. 이대로는 안될 것 같아요.
– 신 : 그게 정권이나 외부적 환경 때문에 약화된 것도 있다. 또 다른 이유는 뭘까요?
– 정 : 잘 모르겠어요. 1차적인 건 외부환경이죠. 너무 많은 영향을 끼치잖아요. 연쇄적으로. 그게 핵심적인 문제기도 하고, 사실은 그 이전부터 성찰하지 않아왔던 태도가 지금 와서 곪아 터진 거라고 봐요. 그게 맞물려서 더 큰 악효과를 내는 거죠.
– 신 : 외부탓만 하면서 내부 성찰이 부족한 점은 굳이 이야기하지 않으려고 한다는 뜻인가요?
– 정 : 네. 노무현 김대중 정부때. 그때는 이렇게 했다, 그런 거 이야기하는 거 보면 참 그때는 마냥 행복했다는 건지. 그때도 비정규직이 죽어가고 입시 경쟁으로 사람이 죽어가던 때인데. 지금 상황이 더 악화된 건 사실이지만, 결국에는 성찰하지 못한 죄를 받고 있는 거 아닐까요. 고민하지 않은 죄. <끝>
- 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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