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랫동안 시민사회 영역에서 활동하셨으니 지금 시기에 필요한 시민사회운동에 대한 답을 찾아보려고 인터뷰를 하고 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이 세상에 내 흔적이 남아 있는 것이 부담스러워졌어요. 내가 세상에 사라지는 순간 내 흔적도 사라지면 좋겠단 생각이 들더군요. 내가 부족한 게 많은 사람인데 너무 말을 많이 하고 사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서 그런 것 같아요.
활동의 흔적이 사라지면 존재한 것 자체도 없어져버리는 건데… 지금 시기는 활동하는 모든 내용이 누군가에 의해서 기록되고 공유되지만 선생님께서 활동하신 시기에는 의도적으로 기록하지 않으면 흔적 없이 사라져버리는 그런 시기 아니었나요?
– 윤 : 오래 전에는 그랬지만 90년대 중반쯤부터 제가 활동한 단체에서는 아카이브 개념이 들어오면서 기록과 정리를 중요하게 생각하기 시작했어요. 그 다음에는 아름다운 재단이었는데 어휴, 그때는 장난 아니었죠. 내 뜻과 관계없이 인터넷에 모두 다 남겨져 있으니까요. 제가 29살에 활동가로 일하기 시작했는데 올해 딱 30년이더라구요. 한 인간이 자기가 고민하고 성숙한 만큼 말하고 일하는 것인데 그 과정에 얼마나 시행착오가 많았을지, 잘난 척이나 똥폼은 또 얼마나 잡았을까요. 그런 것 생각하면 민망하고 부끄럽지요. 뭘 그렇게 확신과 자신감을 가지고 말도 많이 하고 했을까라는 자괴감도 들고, 그래도 부족한데 참 애썼다 그런 마음도 들고 해요.
올해가 활동한지 30년이어서 그런지 자꾸 돌아보는 거 같아요. 근데 나는 80년대 말부터 썼던 다이어리가 있거든요. 안 버리고 그대로 있어요. 그 안에 내 흔적이 다 있어요. 매일매일 무슨 회의를 했고, 주제는 무엇이었는지가 다 기록되어 있어요. 근데 아직은 열어보고 싶지가 않네요. 그걸 열어본다는 것은 단순히 자료를 정리한다는 게 아니라 그 당시의 나와 마주하는 과정이잖아요. 그때는 왜 그랬을까? 선택이 달랐다면 어땠을까? 수많은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던져보게 되겠죠. 아마도 내년 쯤에는 열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려나…. 근데 언젠가는 하루에 9번 회의한 적도 있더라구요. 민우회 사무처장 할 때였어요. ‘회의하는 몸’으로 산거죠. 왜 그랬는지 놀랄 일이지만 그렇게 일할 수 있었던 것이 무엇이었을까 생각할 때가 있어요.
나중에 여성운동사 정리할 때 유용하겠네요.
그럴 거 같아요. 지금 보니까 무슨 무슨 창간호 원본, 이런 게 다 그대로 있더라구요.
80년대 말부터 썼던 다이어리, 하루에 9번 회의한 기록도 있어
인터뷰 질문지를 준비했는데 먼저 말을 꺼내주셨으니까 자연스럽게 이어가보죠. 좀 전에 말씀 하신 것 중에 그동안 너무 말을 많이 하신 거 같아서 기록으로 남기고 싶지 않으시다고 했는데요. 당시의 시민운동이라는게 시민들의 의사를 대변하는 역할을 요구받아서 말을 많이 할 수밖에 없었잖아요. 그 말이 공감대를 얻어서 그 말이 담고 있는 주장과 가치가 사회에 널리 공유되게 하는 것, 그게 시민운동의 중요한 일 중의 하나였을 텐데 갑자기 말이 너무 많았다거나 기록으로 남겨지는 게 두렵다거나 생각하시게 된 계기가 있으셨나요?
2000년 이후로 제가 말하는 것이 좀 조심스러워진 거 같아요. 그 전에는 지금보다 훨씬 명확했죠. 노동법개악, 남녀고용평등법 문제, 탁아입법, 여성의 정치진출 등 굉장히 많은 여성(젠더) 이슈들이 발화되고 구현되고 있을 때였는데 아무 때나 기자가 마이크를 들이대도 금방 이야기할 수 있었어요. 열정과 확신이 가득했고, 이슈가 명확했으니까요. 근데 2000년도 이후부터는 내 언어가 부적절하고 불안전하다고 느끼기 시작했어요. 내가 말하는 것이 과연 질문에 대한 적절한 답일까라는 의문이 생기기 시작한 거죠. 그때부터 활동가로서의 내 고민이 시작된 것 같아요. “This is not the whole story”란 말이 있어요. 이게 전부는 아니라는 것, 그 당시에 그런 생각이 자꾸 들더라구요. 내가 지금 말하고 있는 게 전부일까?
2000년이라고 하는 시기가 당시의 개인적인 생각이나 성찰 때문일 수도 있는데, 굳이 2000년부터 그런 고민이 시작된 계기는 무엇이었을까요?
그때가 총선 낙선운동할 때였죠. 낙선운동을 하면서 시민운동의 영향력이 정점에 있을 때였는데 그때부터 내 고민이 시작된 것 같아요. 아마 시작은 ‘여성민우회’ 사무처장을 하던 1990년대 말부터였을 거예요. 자꾸 질문이 생겨나기 사작했어요. 근데 그런 질문을 붙잡고 차분히 생각할 시간이 없었어요. 하루에 9번 회의하고, 재정 사업한다고 이것저것 팔고, 일일호프도 하고, 이곳저곳 부서와 센터에서 성명서나 안건을 가지고 오면 그거 검토해야지, 매일매일 정신없이 보냈어요.
그때 내 속의 풀지 못한 질문에 대한 답답함 같은 것이 몸으로 나타나서 그때는 종일 편두통에 힘들었어요. 그런 와중에 ‘함께하는 시민행동’에서 ‘여울포럼’이라는 걸 했어요. 정기적으로 모여서 시민운동과 관계 없는 여러 분야의 사람들의 사회를 보는 새로운 시선, 시민운동에 관한 다양한 생각과 제안들, 때론 주제 없는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나누는 포럼이었는데 거기 가면서 숨이 좀 쉬어진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내 속의 질문도 단순명료해지고, 편두통도 완화되고 했어요. 내가 만나는 사람들은 대부분 시민운동가들과 조직 내부 사람들이었는데 지금까지 내가 활동하면서 만났던 사람들과는 다른 사람들, 지금까지 들었던 것과는 다른 이야기를 들었으니까요. 숨통이 좀 틔였다고나 할까.
This is not the whole story
내가 지금 말하고 있는 게 전부일까?
그러면 선생님 두통의 원인은 세상은 급격하게 변하고 있는데 꽉 짜여진 기존 운동의 틀 속에서 너무 오랫동안 반복해서 같은 일을 해오고 있는 상태, 그 안에서는 스스로의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힘들었던 건가요?
맞아요. 그거죠. 내가 스스로에게 질문을 하고 답을 찾다보면, ‘이게 전부가 아닐 텐데’, ‘분명히 다른 얘기가 있고 다른 실천들이 있을 텐데’… 그런 생각이 자꾸 드는 거예요. 내 생각이 깨지고 그러는 경험이 있기를 바랬는데 그 안에서는 아무리 질문을 해도 깨지지가 않고 계속 허덕이기만 했어요. 그 와중에도 계속 관성적으로 해내야만 하는 일이 있었으니 너무 힘들었던 거죠. 그렇다고 떠날 수도 없고, 관성의 트랙을 돌게 되는 것이 힘들었던 것 같아요. 그런 와중에 2004년쯤에 ‘창비’에 글을 하나 썼어요. 한국 진보여성운동에 대한 글이었는데 아마 제목이 “진보여성운동을 위한 시론”이었을 거예요. 여성이 말한 진보는 이런 거다. 그걸 썼는데 창비에서는 이런 글을 원한다고 했는데 이 글이 불편한 사람들도 있었던 것 같아요. 우리가 얼마나 고생해서 이만큼 왔는데 그러냐고 했어요.
그 글의 핵심 이야기가 무엇이었길래 마음에 안 들었을까요? 여성운동가의 제도정치권 진출에 대한 비판적인 내용이었나요?
아뇨. 오래되어서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그것 뿐 아니라 우리가 진보라고 할 때 여러 가지 이슈가 있는데, 우리가 지금까지 해온 진보는 단지 법제도와 정치권 진출이었나, 근데 정말 이것이 진보의 모든 내용인지 한번 생각해보자는 내용이었던 것 같아요.
아까 낙선 운동할 때부터 스스로에 대한 질문이 많아지셨다고 했는데, 구체적으로 낙선운동의 어떤 점이 그런 고민을 하게 했을까요?
낙선운동 말고도 또 하나의 계기가 있었는데, 2000년대가 여성이 제도정치권으로 진출하는 기회가 막 열리는 시점이었거든요. DJ가 대통령이 되면서부터였는데 그것도 고민을 시작하게 된 계기를 줬다고 볼 수 있겠네요. 우리 여성들이, 우리 선배들이 한 명씩 한 명씩 차례로 국회의원으로 가면서 뭔가 여성운동의 지형이 달라지고 있다는 것을 느꼈는데요. 그 전에 왜 내가 여성운동의 제도정치화 문제에 대해 고민을 좀 했냐면 90년 중반에 유학을 갔을 때 학회나 세미나를 가면 장기독재상태에 있다가 우리나라보다 조금 빨리 민주화운동을 경험한 나라의 활동가들을 만나는 기회가 있었어요. 그때 만난 친구들이 ‘운동을 그렇게 죽어라도 열심히 해서 리더들이 제도정치권에 들어갔는데 제도 밖 운동은 점점 약화되고 있다’는 얘기였어요. 칠레의 경우 우리말로 ‘여성부’ 이런 것을 만들어놨더니 여성운동 리더들이 다 들어갔는데 결국 여성운동은 영향력을 잃어갔다 것을 90년대 중반에 들었는데 우린 다를 거라 생각했죠.
어쨋든 2000년도 넘어서면서부터 나한테는 제도정치권 문제와 함께 도대체 운동이란 게 뭐냐, 내가 끝까지 붙잡고 가야할 운동의 모습은 도대체 어떤걸까라는 질문을 하기 시작했고 활동가로서 나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라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됐죠. 그때 제가 여성민우회 대표를 할 때였는데 나는 대표를 그만둔 이후에도 제도 정치 말고 다른 길을 모색해보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불확실한 상황이었죠. 그때는 제도정치권으로 가야 유능한 거였거든요. 능력 있는 사람이 가는 거고 그리고 그게 여성운동의 성과이자 발전이라고들 생각했으니까요.
90년대 말, 2000년대 초라고 하면 저는 신입활동가였는데 최근의 여러 상황과 오버랩되는 측면이 있네요. 선생님께서 제도정치권으로의 진입 과정을 보면서 운동의 본령이 무엇인지, 활동가로서의 정체성과 역할은 무엇인지를 고민하셨듯이 지금 활동가들도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다고 보여지거든요. 정치인은 아니지만 최근 몇 년 동안 지방자치단체에 중간지원조직들이 많이 생기면서 많은 활동가들이 그쪽으로 진출했어요. 행정의 틀 안에 들어간 활동가도, 여전히 외부에 있는 활동가도 정체성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근데 선생님께서도 당시에 그런 고민들을 혼자서만 생각하는 게 아니라 동료들과 함께 이야기하면서 답을 찾으려는 노력을 하셨을 것 같은데요.
어려웠어요. 운동 내에서의 주류의 인식이 달랐던 것 같아요. 선배들이 제도정치권에 들어가면 늘 축하파티 같은 것을 하거든요. 그럴 때면 “This is not the whole story”가 또 떠오르는 거죠. 95년 지방선거 때부터니까 올해가 여성운동이 제도정치권으로 진입한지 20년쯤 되는 시기예요. 제가 얼마 전에 여성운동단체의 대표를 하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서 그런 이야기를 했어요. ‘난 20년 동안 여성운동하다가 제도정치권에 들어간 사람들 모여서 축하파티하는 곳에 계속 가봤고 그 과정을 다 듣고 봐왔다. 이제 20년 되었는데, 이는 어떤 의미와 변화가 있었고, 한계는 무엇인지, 들어간 사람들과 현장에서 운동하고 있는 사람들은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다시 말해 여러 가지 성과와 성취의 경험들도 있지만 냉철하게 성찰하고 비판적으로 따져보는 시기인 것 같다구요. 창립선언문도 다 다시 써야 해요. 미션과 비전도 다시 정리해야 하구요. 내년이 ‘진보여성운동’이 출현한지 한 세대가 되는 시기예요. 아마 꽤 많은 단체들이 87년 전후로 만들어졌으니까 창립선언문이나 미션과 비전을 다시 정리하고 해야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기 시작한 계기,
여성운동의 제도정치권으로의 진출과 2000년 낙천낙선운동
만약에 지금의 선생님 생각을 가지고 그 당시로 돌아간다고 가정해보면요. 여성운동의 제도정치권 진출 문제에 대해서 어떤 판단을 하셨을까요?
사실 그런 고민을 할 때 ‘나는 그럼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자신의 삶의 가치와 방식에 대한 고민의 용광로 안에 자기를 빠뜨리지 않으면 허당이라는 걸 나중에 알았어요. 운동이 따로 있고 내 존재가 따로 있는 건 아니니까요. 거기서 주체적 조건, 객관적 조건 이렇게 이분법적으로만 따지는 것은 굉장히 남성적인 방식이죠. 선배들이 한 명 한 명 들어갈 때마다 ‘이건 아닌데… 이렇게 가는 건 아닌데…’ 이런 고민을 꽤 많이 했어요. 이럴려고 내가 여성운동 했나, 그게 도대체 뭔데 그렇게 한 순간에 떠나가는가 그런 생각에 우울해지기도 했구요. 저는 원칙적으로 운동의 제도정치권 진출을 반대하는 건 아니예요. 그 사람이 아니라 ‘우리’가 간다는 게 무슨 의미고, 어떻게 가야 되는 것이고, 간다면 그 사람과 함께 운동했던 사람들과는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서로 상생할 수 있을지에 대해 충분히 논의를 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았겠다라는 생각을 하죠. 그런데 그런 과정 없이 몇 사람 가까운 그룹들끼리 논의해서 결정을 해버리면 ‘우리가 함께 운동’한게 뭐가 되겠어요.
저는 여성운동 리더의 제도정치권 진출이 여성의 정치세력화이고, 여성운동의 성취라고만 이야기하면 안된다고 봐요. 운동의 어떤 이슈나 전략이나 성과든 우리가 되돌아볼 때는 여러 차원의 앵글로봐야 하는 거잖아요. 남은 사람의 앵글로도 봐야 하고 가는 사람의 앵글로도 봐야 되는 거잖아요. 근데 어느 순간부터 우리가 성취했던 운동의 성과나 관점이 단순하고 일방적이진 않는지, 빛과 그림자를 함께 봐야하지 않을지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가 가면서 흘려놓은 얼룩들은 다시 돌아오면 남아 있어요. 그래서 이건 운동의 방향에 대한 고민이면서 동시에 내 삶의 대한 고민이기도 하죠.
저는 30년 전, 정말 그 초롱초롱한 눈으로 모였던 젊은 여성운동가들의 눈빛이 기억나요. 질문을 놓치면 안되는 게 운동이라는 것은 어차피 생물체이고 유기체여서 어느 하나의 흐름이 성과를 내고, 다시 또 다른 존재로 만들어지고, 다른 세대가 또 다른 이슈를 갖고 나오고 이런 식이죠. 전형적으로 우리는 세컨드웨이브(second wave) 여성운동가였던 거 같아요. 미국의 여성운동 관점에서 말하자면 평등주의 여성운동이죠. 그래서 남성이 만들었던 그 제도 안에서 남성과 똑같은 몫으로 파워를 갖고, 똑같은 모습으로 드러나는 게 굉장히 중요한 세대였어요. 그리고 법과 제도를 만들어서 기회의 평등을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했던 세대였죠.
그래서 당시로는 혁명적인 순간들이 있었어요. 그 혁명적 순간들을 성취해내기 위해서 굉장히 오랫동안 열심히 운동을 했는데, 2000년도 오면서부터는 더 이상 그런 식으로는 여성운동이 사회적 영향력을 유지하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힘들었던 것 같아요. 몸은 거기에 있는데 어디로 나갈지 고민이 많던 시기에 우리가 영페니미스들의 도전을 받았어요. 90년대 중반부터였던 것 같은데 영페미니스트들을 만나면 또 무슨 비판을 받을지, 우리 보러 어쩌란 말인지 잔뜩 긴장도 했어요. 근데 그 친구들이 지금 40대가 됐어요. 지금은 또 새로운 영페미니스트들이 등장하고 있지요.
얼마 전에 여성재단에서 하는 여성회의에 갔었어요. 당시 영페미니스트였던 친구들은 이제 올드패션이 되고 20대 친구들이 등장하더군요. 우리가 농담으로 영!영!페미니스트라고 그랬어요. 그 전에는 한 번도 만나지 못했던 친구들이 나와서 강남역 10번 출구 이야기를 하고, 한글을 깨우칠 때부터 인터넷 서핑을 했던 세대이기 때문에 사이버성범죄를 이야기를 하고, 우리하고 민간성과 감수성이 많이 다르더라구요. 어째튼 이미 한 세대는 흘러갔고, 우리 다음에 등장했던 영페미니스트들이 지금 영영페미니스트들이 너무 무섭다고 하길래 우리끼리 배꼽잡고 웃었어요.
영영페미니스트들과 교류는 좀 하시나요?
제가 얼마 전에 20대 페미니스트 친구들이 모여있는 곳을 갔었어요. 사무실이자 자취방인데 반지하방에 모여서 일을 하고 있더라구요. 단체를 만든 것도 아닌데 무엇인가 일을 하고 있어요. 그 친구들 만나고 와서 나에게 필요한 거 있으면 얘기해달라 했더니 목록을 보냈더라구요. 그 친구들은 본인들이 당사자예요. 사이버성범죄 관련해서 일을 하고 있는데, 우리 때는 여성운동 시작하면 이론공부도 하고, 이념공부도 하고, 여성운동사 등에 대해 몇 차례 사전 교육도 받고 했거든요. 근데 그런 것도 없이 일단 자기들이 피해당사자로서 일을 시작했더라구요. 그 친구들이 일하는 반지하방에 갔었는데 고맙고, 미안하고 그랬어요. 그래서 내가 할 일이 중 하나가 이런 거구나, 이 친구들 이야기 듣고, 이 친구들이 필요로 하는 정보와 사람들을 연결시켜주는 것이 중요한 역할이겠구나 그런 생각을 했어요.
이야기를 잠깐 앞으로 되돌아가보면요. 지금은 운동의 제도화나 정치권 진출이 큰 이슈는 아니지만 여전히 다른 형태로 남아있는 문제는 있어요. 중간지원조직과 여러 지방자치단체에서 일하는 활동가들도 많은데요. 아까 말씀하셨던 것처럼 그것 자체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운동사회 내부에서의 열린 토론이 있고, 다양한 측면에서 그것들을 살펴보고, 서로의 역할을 정하고 인정하고 하는 과정이 있다고 하면, 즉 과정의 올바름만 획득한다면 괜찮다고 보시는 건가요?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그 과정이 선택이죠. 예를 들면 저는 후배들한테 개인적인 이야기를 많이 듣거든요. 근데 이게 개인의 문제는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지금쯤이면 중간지원조직 주변에서 돌고 있는 이야기들을 그들의 입으로 공개적으로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고 봐요. 마을 만들기 일을 하는 후배의 이야기인데요. 지금의 마을 만들기 사업으로 과연 마을이 만들어질 것인가라는 질문을 한지가 벌써 수 년째인데 답은 없고 계속 일만 있다는 거예요. 프로그램과 사업만 있고, 돈은 너무 많이 들어가고 있다는 말을 들은 지가 지금 2~3년은 된 거 같은데 저는 그냥 듣고만 있지 답을 못찾겠더라구요.
그 다음에 활동가들에게 ‘그럼 우리 보고 뭐 어떡하라는 이야기냐’ 이런 이야기를 많이 들어요. 우리도 나이 들고 경력 쌓이면 다 정치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요. 당연히 그렇죠. 근데 활동가들 중에서도 제도정치권이나 중간지원조직의 임원 역할이 아니라 다른 방식의 활동을 하고 있는 사람들도 많이 있거든요. 그리고 뭐 안하면 어때요? 꼭 단체가 아니더라도 자기 식대로 나 홀로 활동을 할 수도 있고, 기업에 가면 어떻고, 재단에 가면 어때요. 그게 뭐 문제겠냐구요. 그것은 개인의 선택이고 문제될 건 없지요. 다만, 하나하나 돌다리를 건너갈 때 굉장히 고민했던 것 같아요. 내가 좀 굼뜬 사람이라 그런지 모르지만 자기 고민을 발효시키는 과정이 필요해요. 뭐를 그만두고 선택하고 리뷰하는 과정에서 자신과 더 깊이 얘기하는 시간을 많이 가져야 해요. 자기를 쏙 빼놓고 운동만 평가하는 것, 그건 아닌 것 같아요. 운동과 나, 운동 속의 나, 운동 밖의 나, 이렇게 늘 자신의 위치와 마음상태를 생각해야지 자리를 옮길 때도 안정감과 확신이 생기겠지요. 그래야 조직을 떠나거나 운동방식을 바꿔도 미련이나 아쉬움이 남지 않아요. 떠날 때든 남을 때든 다 자기만이 아는 어떤 순간이 있는 것 같거든요.
인생의 경로 중에서 내가 굳이 시민운동을 택한 이유가 있는 거잖아요. 내 삶을 어떻게 살겠다고 하는 그 그림 속에서 살아가는 거죠.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점수별로 배정받은 것도 아니고 그러니까 자기 삶의 문제인거죠. 내가 선택한 것, 내가 책임져야 할 것, 내가 그 안에서 상당한 성취와 기쁨을 얻게 되는 거고, 그렇기 때문에 자기가 이동할 때나 누구를 향해서 비판을 할 때 자기만의 발효된 고민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자신과의 일치’를 이루는 것에 대한 관심을 갖는 것이 필요한 것 같아요.
제가 선생님을 알게 된 지는 꽤 되었는데요. 여성민우회 활동하고 아름다운재단 일하시다가 정리하고 휴식기를 가지셨잖아요. 그러다가 최근에 말씀하시는 거 보면 어째튼 조직에서의 일은 아니지만 여전히 다른 방식으로 활동을 하고 계시단 말이예요. 그것도 어째튼 그런 가치관의 연장선상에서 선택하신 거잖아요.
당연하죠. 내가 그만 둘 때는 ‘이제부터는 나는 내 식대로 할 거다’라는 생각이 있었어요. 핸리 데이빗 소로우가 그랬거든요. “나는 내 식대로 숨을 쉴 것이다”라고요. 그리고 그 사람 이야기 중에서 “사과나무와 떡갈나무는 크는 속도도 다르고 열매 맺는 시기도 다르다”는 이야기가 있어요. 왜 이 세상은 똑같은 시기에 열매 맺으라하고, 왜 똑같은 속도로 자라라고 하냐는 질문을 던진 거거든요. 이 책에서 배운 것은 운동의 방향과 속도는 그게 나의 속도와 흐름과도 맞아야 하는 거죠. 그래야 운동의 열매 안에 내 삶의 열매가 같이 맺어지고요.
지금 저는 나하고 이야기하면서 너는 왜 그때 그 질문이 있었고 지금은 어떻게 답을 찾고 싶은 거고 천천히 일하고 쉬면서 평생에 더는 없을 것 같은 그런 시간을 갖기로 한 것지요. 그렇게 열렬히 원했던 시간을 이제서야 갖게 된 거예요. 너무 잘 한 것 같아요. 그러니까 내 마음과 몸의 리듬을 따라서 일도 그렇게 선택을 하게 된 거구요. 그 대신 내가 정말 하고 싶은 한 가지가 뭐였냐면 그동안 내가 안 만나봤던 사람들을 좀 만나봐야지, 내가 접하지 않았던 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하나 좀 봐야지, 그리고 내가 읽어보지 않은 책이나 영화 중에서 내가 보고 싶었던 것들을 좀 찾아봐야지, 그런 거였어요. 내가 생각하는 자유라는 것은 시간과의 관계를 내가 선택하고 누릴 수 있는 상태인데 최근에는 이렇게 자유롭구나 싶어요. 조직과 무관하게 독립적인 개인으로서의 활동가, 그걸 해보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 상태가 되니까 활동가는 무엇으로 사는가, 운동은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는가, 이런 질문에 대해서 자유롭게 생각하게 되구요.
그러면 지금은 자유롭게 독립적으로 어떤 활동들을 하고 계시나요?
강의도 하고, 발표도 해요. 물론 그것도 다 골라서 하죠. 조직에서 시키는 게 아니니까. 그리고 후배들이 연락을 좀 하는 편이니까 개인적인 상의에서부터 운동에 대한 고민 등 굉장히 다양해요. 그러면서 인연이 있는 후배들과 만나서 관계 맺고 그러는 거죠. 그 다음에 나 혼자 시간으로는 짬짬히 여행도 가고 해요.
그런데 이렇게 살다보니까 생각을 정리하는데 있어서는 새로운 사람, 다른 차원의 일을 만났을 때 정리가 잘 되더라구요. 그래서 활동가들도 낯선 것들과의 만남이 참 중요하구나 그런 생각을 해요. 낯선 것과 마주하는 것 속에서 얻는 게 많았어요. 그 책이 번역서면 번역한 사람을 만나고 싶고, 글을 쓴 저자면 그 사람과 만나고 싶고 그래요. 연락해서 만나고 했어요. 굉장히 광대한 숲 안으로 걸어 들어가면서 여기는 백양나무, 여기는 소나무 이런 것들을 발견하는 기쁨 같은 게 있어요. 더플랜B 사이트에 올라온 이야기도 나에게는 생각을 정리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 곳이죠. 활동가로서 생각을 정리하고, 변화가 어디까지 왔는지 알고 배워 가는데 큰 도움이 되었어요.
나는 내 식대로 숨을 쉴 것이다.
사과나무와 떡갈나무는 크는 속도도 다르고 열매 맺는 시기도 다르다.
활동가 이야기 나왔으니까요. 사실 저도 그런 편이긴 한데 젊은 활동가들이 조직에서 일하는 것을 굉장히 힘들어하잖아요. 젊은 활동가들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자유롭게 기획해서 하고, 새로운 사람들과 관계 맺고, 내 방식을 찾아서 운동하고 싶은데 현실은 그게 아니란 말이예요. 이 상황, 이 간극을 어떻게 메워야 할까요? 그리고 그런 것을 용인해줄 수 있는 환경과 조건은 무엇이 있을까요? 과거의 틀로 본다면 저희가 시민사회와 활동가의 범위를 생각할 때 조직에서 일하는 상근활동가나 전업활동가, 그리고 조직화된 단체로만 한정짓는데 사실 지금은 그런 범위에 포함되지 않는 활동가나 조직같이 않은 조직들이 많이 생겨났단 말이예요. 그럼 시민사회나 활동가에 대한 정의도 새롭게 해야 하는 건 아닌가 그런 생각을 좀 하게 되는데요.
그렇죠. 저는 한 조직에서 의사결정의 힘을 가진 사람들이 생각을 좀 바꾸야 된다고 생각해요. 주 3일 근무할 수도 있구요. 활동가들의 활동을 여러 가지 배열로 달리 해보는 게 필요해요. 주 3일을 근무해도 되는 일도 있을 거고, 어떤 사람은 정말 프로젝트 베이스로 일하고 싶은 사람도 있을 거고, 계약직으로 일하고 탐색해보다가 지속하거나 그만두거나 뭐 그럴 수도 있는 거예요. 운동 방식이나 조직운영, 활동가들의 역할 등을 지금보다는 더 유연하게 해보는 게 필요하죠. 근데 그게 참 잘 안 되죠? 쉽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저는 그래야 한다고 생각해요. 실제 주 3일 근무하는 조직도 봤구요. 하나의 프로젝트가 끝나면 자유롭게 한 1년쯤 쉬었다가 여행 다녀와서 다시 돌아오는 친구도 있고, 귀농했다고 돌아오는 친구도 있고 해요. 오히려 변화에 충분히 노출하게 하고 적극적으로 변화의 흐름 속에 들어가게 하는 계기를 많이 주는 거죠. 그래야 일도 새로워지고 조직도 일을 잘 해낼 수 있어요. 뭐 조직이 크지 않으면 어때요? 이미 우리 조직이 관료화되었다는 이야기를 수도 없이 하잖아요.
이런 방식의 조직, 활동의 형태는 사실 오래 전부터 이야기 나오기도 했는데요. 선생님에게 추가로 묻고 싶은 것은 다들 좋다고 하는데 왜 안될까요? 그게 단지 의사결정권을 갖고 있는 사람들 때문일까요? 시민사회 조직에 있는 구조적인 문제나 문화의 문제도 있겠지만요. 사람들과 만나서 이야기하면 다 좋다고 이야기해요. 그런데 안될거야, 다들 이렇게 이야기를 하거든요.
어려운 문제지만 그래도 그렇게 해야 일도 되고, 조직도 살고, 활동가 개인들도 살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 절박함을 의사결정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아직 모른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말만 하고 실제 해본 사람은 많이 없어요. 이렇게 해도 되는구나 하는 사례들을 자꾸 만들어가고, 그 사례들이 충분히 공유되는 게 필요하죠. 근데 여전히 회의만 많고.. 사실 그렇게 안 해도 되요. 내려오는 이야기만 있고 올라가는 이야기가 없다는 게 문제인 것 같아요.
나는 조직이 과감하게 bottom up 하는 것을 진짜 당연시해야 할 것 같아요. 지금 광장에 시민들이 100만이 모여서 각자 방식대로 잘 하고 있는데 시민운동조직은 여전히 내부에서 bottom up 하는 것, 아래로부터의 이야기가 서슴없이 올라가는 것이 정착되지는 못한 것 같아요. 이제 시민운동이 더 민주적이고, 더 열려있다고 생각할 수 없는 면이 많죠. 그래야 한다고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면서도 말이죠. ‘관성’을 깨고 나오려는 과감함과 절박함이 부족한 건 아닐까요? 사실 꼭 그렇게 하지 않아도 조직은 유지될 수 있어요. 그렇지만 ‘관성’에 균열을 내며 앞으로 가는 것이 시민사회조직의 특징이자 책무가 아닐까요?
bottom up 이야기를 하셨으니까. 조직의 정관이나 실제 의사결정구조를 보면 회원 총회 있죠. 대부분의 시민단체가 회원총회가 최고 의사결정기구고, 그 밑에 일상적인 의사결정을 하는 운영위원회나 집행위원회가 있고, 그 다음에 사무국이 있고 그렇죠. 이게 상당수 시민단체들의 구조인거 같아요. 근데 이 구조가 사실상 제대로 작동되고 있다고 해야 할까요? 지금 시기에 이런 식의 구조가 정말 맞는 걸까요?
내가 활동가로 일할 때도 정관 따로, 실행 따로 그랬어요. 나는 이것부터 정말 문제라고 생각해요. 우리는 우리가 세워놓은 원칙과 우리가 실제 하고 있는 과정의 불일치를 그래도 되는 것처럼 받아들여왔단 말이죠. 총회는 왜 이 구조의 맨 상위에 있는지 제대로 생각해볼 기회도 없었고, 조직 내에 자문위원이 그리 많아도 자문 한번 안 받는 경우가 태반이잖아요. 그리고 조직들끼리 네트워크할 때도 무슨 연대나 본부 이런 기구는 많이 만드는데 이게 나중에 해산이 된 건지도 모르겠고 마무리가 어떻게 되는지도 모르는데 왜 자꾸 이런 거 만드는 지에 대한 질문을 하면서도 원래 그러려니 하면서 넘어간 거예요. 우리가 만든 원칙들인데 실행과정에서 불일치해도 그렇게 넘겨온 거죠.
조직에서 의사결정의 힘을 가진 사람들이 생각을 좀 바꾸야 된다고 생각해요.
그런 의사결정구조가 잘못됐다가 아니라 실제로 작동하고 있는 의사결정과는 다른 구조를 갖추고 있어서 문제다, 그걸 일치시켜야 한다 그 말씀이시죠?
네, 그 말이예요. 현실적으로 그게 어렵다고 하면 구조를 바꿔놔야 하는 거잖아요. 운영프레임을 바꾸는게 필요하고 만약에 그렇게 할 수 없다면 어떻게 해서든지 현실에 가깝도록 노력이라도 해야지요. 100% 일치시킬 순 없지만 왜 안 되는가에 대해서 고민이라도 해봐야 하고요. 우리에겐 그럴싸한 언설이 너무 많아요.
사실 이건 다른 이야기인데요. 제가 단체의 대표가 되면서 너무 고민이 많았어요. 그것 때문에 안하고 싶었는데 하나는 돈을 만들어야 하는 거였구요. 또 하나는 연대회의나 집회 가서 연대사 같은거 하는 거였어요. 연대집회 나가면 갑자기 불러내서 연대사하라고 하잖아요. 일종의 우정출연 같은 건데 아무도 안 듣는 그 말을, 제가 연단 아래에 있을 때 듣지도 않았던 그 말을 너무 단호하고 강고하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예요. 왜 아무도 안 듣는 이야기를 사람들을 뙤약볕에 앉혀놓고 저렇게 해야 하나? 그런 생각을 많이 했어요. 언제 한번 “우리 리더들이 스스로 버려야 할 습관 5가지” 뭐 이런 주제로 이야기를 한번 해봤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선배들이 요즘 젊은 애들이랑 정말 일 못하겠다고 그래요. (왜 그러신대요?) ‘쌩깐다’고도 하고요. 선배들이 보기에 지금 애들은 매너가 너무 없다는 거죠. 너무 직업처럼 일한다는 건데 그만둔다고 해놓고 밀린 월차 다 쓰고 그렇다고도 해요. 이런 게 선배들 입장에서는 상상이 안되는 거죠. 우리는 퇴직금 받아도 어떤 경우는 절반을 조직에 내놓고 가고 그랬단 말이예요. 우리끼리 모이면 ‘나 힘들어, 힘들어’ 이렇게 말해요. 젊은 친구들과의 관계가 다 힘들다고요.
이성적으로 이해는 되는데 감정적으로는 인정이 안되는 거겠죠?
자기 경험에 비추어볼 때 기대했던 게 안나오는 거죠. 그리고 일을 같이 하는 방법, 즉 팀웤으로 하는 것을 모른다고 해요. 혼자서 하고 싶어하고 처음에 일 시작할 때 가르쳐주려고 하면 간섭한다고 그런다는 거예요. 그래서 가만두면 또 하나도 안 가르쳐주고 일만 던져주는 무책임한 사람이라고 한다는 거예요. 그게 또 다른 면이 있겠죠. 그런 이야기하면 우리가 막 웃어요. 세대 간의 차이를 어떻게 볼 것인가도 굉장히 중요한 주제죠? 근데 우리는 무엇이 다른가에 대해서 한 번도 공론화를 안하는 거 같아요. 잠깐잠깐 흘러가듯이 이야기하지만요.
시민사회 전체의 이슈는 아니겠지만 최근 몇년 동안 나온 키워드는 2가지인데요. 하나는 세대 간의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활동이냐 노동이냐의 문제죠. 사실 세대 간의 문제는 더플랜B에서도 많이 다루었던 주제이기도 하고 워낙 많이 이야기가 되고 있어서 아실텐데요. 2가지 문제에 대한 후배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는 어떠세요?
상상도 못했던 질문들을 하고 있는 거죠. 우리 때는 열정이나 헌신과 같은 이야기들이 얼마나 많이 동원됐어요. 그리고 당연히 조직이 우선이었죠. 운동하는데 직업이나 직장이나 이런 표현을 쓴다는 걸 들으면 놀랄 때가 있죠. 그런데 한 숨 돌리고 생각해보면 그 질문을 던지는 세대가 등장한 거잖아요. 그것을 달라진 현실로 받아들이고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왜 저 친구들은 노동이냐, 활동이냐, 직장이냐, 직업이냐, 이런 개념들을 놓고 고민하고 있는가를 담백하게 듣고 시작해야 하는 거죠.
선생님께서 처음 여성운동을 했던 시절, 그러니까 20년 전, 30년 전에도 선배 세대들과의 갈등은 있었을 텐데요. 그때의 중요한 갈등은 무엇이었는지 기억하시나요?
그때는 뭐 조직노선이나 핵심 사업에 대한 이야기가 주였죠. 그 다음에는 단체를 등록하는 것, 지금은 단체를 만들면 다 등록하잖아요. 근데 그때는 단체를 등록할 것이냐, 말 것이냐, 정부지원을 받을 것이냐 말 것이냐, 그러니까 제도권과의 관계 맺는 방식을 두고 엄청난 논쟁을 했던 것 같아요. 큰 변화의 계기가 있을 때마다 그랬는데 선배들하고 논쟁하다가 막 울면서 뛰쳐 나오기도 하고 그랬어요. 그만큼 그 주제가 모두의 관심사였어요. 결국 다 자기 식대로 결론을 낸다 하더라도 어째튼 논쟁하고 그랬으니까요. 그 다음 논쟁 이슈는 정치세력화의 문제였던 것 같아요. 그러다가 결론이 안날 때는 막후작업도 하죠. 선배들이 후배들 한명씩 불러서 설득도 하구요. 그 다음에는 니들끼리 이야기해보라고 하기도 하고 분과별로 모여서 이야기도 하고요. 그래서 회의가 많아졌을지도 모르지만 제 생각으로는 그 과정에서 bottom up을 많이 훈련받은 것 같아요. 그래서인지 민우회의 경우는 리더를 외부에서 모셔오진 않았어요. 아래로부터 성장한 활동가들이 대표가 되는 관행이 생겼어요.
지금 후배 세대들이 이야기하는 건 좀 달라요. 선생님께서는 조직의 굉장히 중요한 문제에 대해 선후배 가릴 것 없이 논쟁을 하고 그 과정에서 싸우기도 했지만 어째튼 합의를 하고, 또 분과별로도 이야기를 하면서 의견을 모아가는 과정을 거치고 최종 결론을 내신 건데요. 지금은 리더 그룹들이 중요한 결정을 하고 그걸 지시하는 경우에 대한 불만이 많거든요. 물론 논쟁의 이슈가 미시적인 것으로 많이 바뀌기는 했죠. 단체에서 주요하게 해야 할 일들은 이미 결정이 되어 있고 이 결정에 따른 사업들을 하기 위해 사람을 뽑았으니까 이 일을 잘하는 게 중요하지, 우리가 속한 이 단체가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 중요한 사업은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 논쟁할 기회가 별로 없는 거죠. 그게 어떻게 보면 후배 세대들의 불만이기도 하거든요. 그래서 조직이 비민주적이다라는 이야기도 하구요. 물론 이게 시민사회운동의 환경이 바뀐 측면 때문이기도 하지만요.
맞아요. 당시는 운동이 젊고 영향력과 사회적 반응 속도가 빠를 때였지요. 내가 활동하면서 참 기뻤을 때는 내 능력과 노력에 따라서 바뀔 수 있는 여지가 많았거든요. 예를 들면 내년도 사업계획 이야기할 때 활동가들이 다 정리해서 와요. 자기들끼리 두 번, 세 번 회의하고 이야기하면서 다 정리해서 가지고 와요. 그러니까 단체 문화가 변한다는 생각도 들고, 단체가 내가 원하는 방향과 가까워지고 있다는 생각도 들고 그런 거거든요. 이럴 때 활동가로서의 존재감을 느끼는 거죠. 진부한 말일 수 있지만 내가 변화의 주체가 되고 있구나라고 인식하는 것, 조직을 변화시키든 사회를 변화시키든 그런 감각이 커질수록 내 일에 대해 자부심이 생기고 신이 나고 그렇거든요. 그런 변화의 여지가 없으면 뭐하러 거기서 부속품처럼 시키는 일이나 하겠어요. 그게 회사랑 뭐가 달라요.
변화의 여지가 없다는 것에는 2가지 이유가 있는 것 같은데요. 단체의 사업 자체가 큰 프로젝트 중심으로 배치가 되어 있으니까 방향 자체는 이미 정해져 있는 거죠. 그 방향에 맞게 어떻게 할 것인가는 활동가의 몫일 수 있지만 어째튼 큰 방향은 정해졌으니까요. 다른 하나는 조직의 인적구성의 문제인데요. 보통은 10년 이상의 경력 있는 활동가가 사무처의 리더 역할을 하고 있는데 실무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1년~5년 사이 경력의 활동가들이죠. 중간 리더가 별로 없는 환경이 논쟁할 수 없게 만드는 측면도 있는 것 같아요.
프로젝트로 결정되어 있는 사업들이 이미 있다는 것, 그게 큰 차이인거 같아요. 우리 때는 프로젝트라는 게 별로 없었고 있더라도 아주 작은 규모였기 때문에 우리가 원하는 이슈를 스스로 찾아서 집중할 수 있었고, 현재 상황을 분석해서 일 자체를 우리가 다 기획했거든요. 그 일을 하기 위한 돈을 마련하려고 안 해본 짓이 없어요. 된장 만들어서 팔고, 양말도 팔고 이런거 있잖아요. 힘들지만 그런 게 주는 의미가 있었죠. 그 다음에 활동가로서의 자기 존재감이 다른 거 같아요. 이미 해야 할 일이 정해져 있다면 그 사람은 기획자가 아니라 수행자인거죠. 수행만 한다면 존재감은 정말 다를 것 같아요. 운동이란 게 비록 급여가 적지만 자기 스스로 사회를 바꾸는 동인이 되겠다는 것이고, 그것이 자존감의 근거일텐데 그게 적으면 재미도 의미도 잘 못 느끼겠지요.
이미 존재하는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것과 활동가로서의 존재감이 연결되는걸 이렇게 생각할 수 있죠. 프로젝트를 받지 않으면 재정이 어려우니까 내가 수행자로서 역할 하는 건 인정, 그러면 차라리 급여나 적정 수준으로 받으면 좋겠어, 그럼 난 그냥 직장으로 다닐 수 있어. 그게 아니라고 하면 내가 스스로 기획할 수 있는 여건이라도 충분히 마련해줘, 그러면 내가 이 곳에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라도 있는 거잖아, 뭐 이런 생각들이 있어요. 두 번째로 말씀드린 경험의 차이가 너무 큰 두 그룹만이 존재하는 상황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경험, 그건 난 좀 다르게 봐야 한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러니까 운동의 경력이 더 많다고, 경험이 더 크다고 해서 창의적이거나 적절한 운동 기획이 나오는 건 아니거든요. 상대적으로 그럴 수 있는 가능성이 크긴 하겠지만 오히려 자신의 경험보다는 후배 세대의 이야기를 많이 듣는 것, 그 속에서 창의적인 기획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한 가지 이슈가 있을 때 이 이슈를 어떤 언어로 써야 할지, 어떤 프로그램으로 드러낼지, 이런 것들은 젊은 세대로부터 배워가야 하는 것이 적지 않아요. 젊은 세대가 갖고 있는 그들의 새로운 시각, 다른 시각들이 잘 접목될 때, 그러니까 다른 관점과 경험들이 흡수될 때 풍부해진다는 건 상식이쟎아요.
경제적인 측면을 보면 과거에는 그 어려운 경제적 상황도 견딜 수 있을 만큼 좋았던 게 많았어요. 아까 이야기한 것처럼 일을 내가 기획했지, 다 내 작업인거니까요. 그래서 일한만큼 어떨 때는 제도가 만들어지고, 법이 만들어지고, 기관도 설립되고 했죠. 이런 것들 하나하나 따지면 굉장히 많죠. 자기가 기획한 좋은 아이디어가 사회에 반영이 되고, 그게 변화로 연결된다는 게 눈에 보일 때가 많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고생스러웠지만 떠나지 않게 되고 내가 이런 노동의 기쁨을 어디 가서 얻겠어,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거죠. 근데 사실, 수입이나 경제적인 조건이 더 좋아서 옮기겠다고 하면 그것도 선택이라고 생각해요.
계속 남아있겠다고 하면 그로 인한 어떤 기쁨 같은 것이 있을 테죠. 가치 있는 삶이라는 것이 나에게는 중요했고, 그 문제는 내가 어떻게 늙을 것인가하고도 관련된 고민이죠. 쉬면서 느낀 게 나는 무엇으로 어떻게 살고 싶은가,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야 하는지가 좀 더 명료해지더라구요. 젊어서는 조직의 결정이 제일 중요했었는데, 그래서 조직적 결정에 따라서 불철주야 일을 했는데 40대 중반이 되면서부터는 내가 이 일을 어떻게 느끼고 있는가, 내가 어떻게 해야 내가 기쁠 수 있는가, 잘하는 게 뭘까라고 하는 고민이 중심이 되더라구요. 그러니까 ‘마음의 네비게이션’이 중요해진 거죠. 실은 이게 빠지면 허당이예요. 자기가 없는 일, 그게 어떤 보람이 있겠어요.
근데 사람의 본성이라는 게 쉽게 바뀌는 게 아니잖아요. 내가 하는 일을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이로 인해 사회적 변화가 있고, 이런 결과에 대한 보람이나 자부심 같은게 운동을 놓치 못하게 하는 이유가 되는 것은 앞선 세대만이 느끼는 것은 아니죠. 지금 그런 게 없다는 것은 세대 차이 때문이거나 사람의 문제, 인식의 문제, 가치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 시민사회가 그런 변화를 만들어내는 동력이 과거에 비해 현저하게 줄어들었고, 활동가들도 사회변화의 주체로 내가 뭔가를 이루어냈다고 할 만한 것도 보이지 않는 환경 때문에 생기는 문제라고 볼 수도 있는 거겠죠.
그럴 수 있죠. 예를 들면 우리 때는 동창회 나가면 동창들이 우리를 보는 시선, 존경심이 대단했어요. 너 정말 고생한다, 계속 그런 일을 하다니 대단하다, 그러면서 도와주고, 티켓도 사주고, 회원가입도 했죠. 조직 내에서 뿐만 아니라 조직 밖에서 충분히 인정받았어요. 내가 정말 좋은 일을 하고 있는 것 맞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단 말이예요. 근데 지금은 자기 기획력이 발휘될 수도 없고, 먹고 사는 문제도 힘들고, 도대체 무엇이 활동가를 살게 만드냐는거죠. 무엇이 활동가에게 자부심을 줄 수 있느냐는 거예요. 그래서일까요? 요즘 보면 그렇게 조직의 일원으로서가 아니라 자기 홀로 활동가로 사는 사람들이 많이 보여요. 그들은 왜 나 홀로 운동을 시작했을까? 무엇이 다를까? 이런 점에 대해서도 깊이 한번 생각해보고 싶고 그래요.
과거에는 시민사회가 개입해서 바꿀 수 있는 사회의 틈이 굉장히 많아서 사실은 힘은 들지만 하나의 이슈를 잘 잡아서 지속적으로 하면 바뀔 수 있다는 확신도 있고 했는데 지금은 사실 어느 정도 제도적인 부분들이 정리가 되어 있어서 눈에 보이는 성과를 내기가 힘들잖아요. 이런 상황을 인정한다고 하면, 지금 활동가들에게 과거와 같은 열정이나 헌신을 요구하지 않으면서도, 그들로 하여금 지속가능한 활동을 가능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요?
진짜 그게 문제지요. 근데 내가 경험했던 것 중심으로 구조화된 생각만 해서 그럴 수 있는데요. 이미 우리는 one of them이 된 거 같아요. 과거의 주류 조직과 그 조직에서 일했던 사람들의 영향력은 정말 많이 축소되었죠. 지금 전체 시민운동권의 생태계를 보면 우리가 몸담았던 주류 조직은 그냥 하나의 부분이 되었죠. 지금은 한 개인이, 작은 공동체들이 움직이는 시대가 되기도 했구요. 그걸 조직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도 느껴요. 사회에 필요한 영향력을 끼쳐서 좋은 변화를 이끌어내는 게 사회운동의 존재 이유라고 하면 지금의 조직들도 존립할 수는 있을 거예요. 그리고 그 조직의 리더들도 조금 빛날 수 있어요. 이 정도 상황에서 시민운동조직과 일반 회사와 무슨 차이가 있을까요? 적어도 사회운동조직이라고 하면 훨씬 더 유연하고, 더 열려있고, 구성원들 간에 서로 영향을 주고 받을 수 있는 그런 조직으로 거듭나야 해요. 우리가 맨날 말은 혁신하자고 하지만 혁신이 어려운 조직 중에 시민운동은 예외일까요? 그것도 진단을 좀 해봐야죠. 왜 이렇게 안 바뀌는지. 2000년도 넘어서부터 제기되었던 문제가 15년이 지난 지금도 계속 반복되고 있는 것 같아요.
이미 우리는 one of them이 된 거 같아요.
우리가 몸담았던 주류 조직은 그냥 하나의 부분이 되었죠.
이번에 인터뷰하는 이유 중 하나가 푸념만 하는 자리가 아니라 문제를 풀기 위한 구체적인 해법을 찾기 위해서거든요. 방금 선생님께서 더 유연한 조직, 더 열린 커뮤니케이션 이야기를 하셨잖아요. 개인들이 서로 영향력을 주고 받으면서 그 안에서 시너지를 만들어내고, 사회에 좋은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이 시민운동의 본래 임무라고 하면요. 조직 내에서의 커뮤니케이션이 잘 일어나지 않는다고 하면 조직을 벗어나서 조직과 개인, 개인과 개인들이 서로 영향력을 주고받을 수 있는 얼개를 잘 만들어내는 것도 현재의 문제를 넘어서기 위한 방향이 될 수도 있겠네요.
그렇죠. 자기 조직의 울타리를 벗어나서 다른 조직하고도 만나고 다른 사람들하고도 접선을 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해요. 국경 도시가 가장 번화한다고 하잖아요. 국경에서 꽃이 핀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아주 이질적인 두 지점이 만나서 전혀 새로운 것들이 만들어져요. 지금 조직의 리더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80년대에 대학을 다닌 세대인가요?
단체의 사무처장이나 사무국에서 중요한 의사결정을 하고 있는 활동가들은 사실 90년대 세대로 넘어간 것 같은데요. 근데 아까 말씀드렸듯이 조직의 의사결정구조에 사무국만 있는 것은 아니니까요. 회원총회도 있고, 운영위원회도 있고… 전체적인 의사결정구조의 상황을 보면 여전히 중요한 의사결정에 있는 사람들은 선배 세대들이 많이 있죠. 저는 거기에서도 눈에 보이지 않는 미묘한 갈등이 있다고 들었는데요. 과거의 운영위원이나 대표들은 사무처장과 동등한 입장에서 서로 상의하고 영향력을 주고 받는 관계였는데 지금은 사무처에는 새로 활동을 시작한 사람들이 많은데 운영위원들은 10년 이상 하고 있는 사람들도 많죠. 서로 영향력을 주고 받는 커뮤니케이션 관계라기 보다는 과거 영향력이 클 때부터 있었던 운영위원들이 지금 활동이 미비한 것에 대해 불만스럽고, 과거보다 일을 못한다고 생각하는 상황도 생기고 있다는 거죠.
충분히 그럴 수 있어요. 그래서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것부터라도 바꿔보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봐요. 바꿔야 할 것들 체크리스트부터 한번 찾아보면 좋겠어요. 그리고 그런 게 자꾸 반복해서 공유되어야 해요. 난 대표들 모아서 워크숍 같은 거 한 번 했으면 좋겠어요. 나이가 들수록 자신의 경험과 성취를 ‘상대화’하는 것, 말하기보다 들으려는 것, 자신이 답이라는 생각을 벗어나는 것을 의식적으로 노력해야할 것 같아요. 이것을 서로 이야기해야하고요.
좀 전에 국경을 활성화시키는 게 중요하다고 하셨어요. 저도 그 지점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요. 전통적인 조직 운동과 새롭게 생겨나고 있는 조직 아닌 조직들, 그리고 홀로 활동하고 있는 활동가들 사이의 경계를 어떻게 활성화시킬 것인가, 이 점에 대해 우리가 고민을 해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얼마 전에 한국여성대회에서도 서로 다른 다양한 그룹들이 모여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어요. 20대부터 60대 후반까지 있더라구요. 나처럼 오랫동안 조직에 몸담고 활동했던 사람들도 있지만 강남역 10번 출구와 관련해서 활동하고 있는 친구들, 디지털 성범죄이슈 등 까지 20대 젊은 층들의 발표를 들었는데 너무도 다양하게 달라진 젊은 세대들의 활동방식과 이들의 생각에 놀라고 고맙고 그랬어요. 이후 바로 후속 모임을 또 하더라구요. 세대간, 영역 간의 여러 사람들이 모여 다시 젊은 활동가들의 활동과 어려움 등을 들었는데 그 자리 선배들은 모두 ‘고맙다’ ‘미안하다’ ‘그랬구나, 우리가 무엇을 도와줄까’ 그러더군요. 이런 반응에 젊은 활동가들도 마찬가지로 놀라고 고마워하더라구요. 자꾸 모여서 서로의 활동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충격도 받고, 접속과 연결점을 찾아보려는 노력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경험한 중요한 계기였어요
리더십에 대한 이야기는 항상 나왔던 이야기죠. 제가 20대 활동가로 일할 때도 시민운동 리더의 역량은 무엇이냐라는 이야기를 많이 했었어요. 누구는 재정을 잘 챙기는 사람이라고도 하고, 누구는 장기적인 사회 비전에 대해 통찰력을 가지는 사람이라고도 하고요. 선생님께서는 오랫동안 현장 활동가에서부터 사무처의 리더, 조직 전체의 리더까지 다 해보셨잖아요. 현재는 비록 좀 거리를 두고 지켜보고 있는 입장이실 테지만 조직의 리더라고 하면 지금 시기에 가장 필요한, 혹은 갖추어야 할 역량과 자질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하나는 변화를 읽어내고 예측하는 능력, 또 하나는 조직 내의 다른 목소리, 작은 목소리를 경청하는 능력이 필요한 것 같아요. 잘 듣는 것만으로는 안 되고 그 안에 어떤 메시지가 있는지를 간파해내는 능력이 필요하겠죠. 제가 재단에 있을 때 기부 때문에 기업체를 많이 방문했어요. 그때 저에게 생긴 습관 중 하나가 그 기업이 어떤 기업인지를 알 수 있는 지표 중의 하나가 사장님하고 제일 말단 직원하고 얘기하는 분위기였어요. 어느 회사는 사장은 앉아있고 직원은 서서 굉장히 긴장된 상태에서 이야기를 하는데 어느 회사는 너무나도 편하게 탁자에 마주앉아서 이야기를 해요. 어린 친구가 뭘 알겠어라고 생각하면서 늘 배제해왔던 이야기, 파워가 제일 작은 사람들의 이야기에 담긴 다른 생각을 듣는 것이 중요하지요 제 경험으로 보니까 3년쯤 되는 시점에 많이 흔들리더라구요. 조직을 나갈까 말까 고민할 때, 전 자신에게 잘 맞는 일을 결정해놓고 그만 두겠다고 하면 100% 그냥 그러라고 했어요. 근데 뭔가 조직에 문제가 있어서 그만 둔다고 할 경우, 조직 안에서 해법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을 때는 붙잡게 되죠.
방금 말씀하신 더 좋은 일의 기준은 뭘까요?
그건 자신이 더 좋아하는 일, 더 잘할 수 있는 일이지요. 활동가가 처음부터 그런 일을 만나는 것은 아니니까요. 처음 만난 일이 딱 맞는 일이기도 하지요. 그러나 일의 경험이나 시야가 넒어지고, 다른 가능성을 보게 될 때 활동가 개인은 자신에게 더 끌리고, 더 잘할 수 있는 일을 보게 되거든요. 그러면 그런 선택은 정당하고 현명한 일이겠지요.
사회에 좋은 영향을 미치기 위해, 사회 변화를 위해 활동하는 조직이 다양해졌어요. 이제 시민단체 뿐만 아니라 중간지원조직도 있고, 사회적 기업도 있고, 협동조합도 있고요. 이 분야에서 일하는 친구들도 많아요. 근데 이 친구들이 생각하고 추구하는 가치가 시민운동하는 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거든요. 단지 그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서 어느 조직을 선택하느냐의 문제일 뿐이죠. 그렇게 보면 시민사회의 영역을 너무 협소하게 보지 말고 이런 영역까지 넓혀서 생각하고, 서로 인정하고 교류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또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활동가라고 하는 범주도 굉장히 넓어질 수 있을 것 같구요.
그렇죠? 우리가 전통적인 활동가, 전통적인 조직의 프레임에서 벗어나는 게 지금은 필요해요. 그리고 실제 과거 전통적인 조직에 있던 친구들이 이런 새로운 형태의 조직에 많이 들어가 있더라구요. 젊어서 시민단체 일하다가 이제는 마을 쪽 일하는 친구들도 많구요. 도서관운동, 생협운동으로 이동한 친구들도 있죠. 그런 다양한 것들이 이제 막 꽃피우는 시기잖아요. 개인 활동가와 조직 활동가 간의 경계도 중요하지만 전통적인 조직과 협동조합, 사회적 기업, 소셜 벤처 사이의 경계를 활성화시키는 것도 중요해보여요. 사실 이런 여러 가지 형태의 활동이 등장하는 것은 너무 당연한 거지요. 옛날에 우리는 애드보커시를 했던 조직들이잖아요. 근데 그 유형이 그냥 여러 유형중 하나로 정착이 되고, 또 필요하면 대거 모여서 뭔가 이슈를 만들어내고 그런 거겠죠. 나는 오히려 시민운동이 다양성이 높아져야 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시민운동에서 다양한 개인들, 다양한 조직들, 다양한 이슈들이 어떻게 만나는지를 잘 살펴야 하고, 이런 만나는 지점들을 활성화시키는 것이 시민운동 목소리가 커지는 기회가 아닐까 싶어요. 서로 각자의 역할이 있는 거니까.
저는 시민운동의 재정의는 이미 2000년 이후에 했어야 된다 생각하구요. 재정의를 하거나 개념을 바꿨어야 하는 거죠. 지역에서는 필요한 일을 그냥 하더라구요. 주부들도 그렇고 자기들이 해버리고요. 그 다양성은 보면 말할 수가 없이 많아요. 그게 마을공동체운동, 풀뿌리운동 등 여러 가지 용어로 설명이 되고 있는 거죠. 이러한 다양한 운동들이 등장했는데 상대적으로 이를 설명하는 언어와 토론들이 그만큼 활발해보이진 않아요.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개인들, 조직과 지역들에서 벌어지는 활동들이 어떻게 전개되고, 엮여지고, 강화돠고 약화되는지 등이 소란스럽도록 이야기되어야 할 것 같아요.
뿌리가 흔들리고 큰 변화가 요구되는 시점에서는 좀 급진적 논의나 활동이 많아졌으면 해요. 이 시대에 급진적이지 않으면 우리가 뭘로 존재할 수 있을까 싶어요. 생존할 수는 있겠지만 우리가 생존이 목적은 아니잖아요. 실질적 변화를 만들어내는 어떤 문화나 힘을 창출해내는 게 목적이기 때문에 지금 우리가 어디에 서있는지, 어디를 향해 발을 딛어야할지를 보다 분명하게 생각해야겠지요. 이런 점에서 기존 운동의 지체현상이 아주 오래된 것 같아요.
지금 개인적으로 자유롭게 활동하시면서 기대하는 게 있으신가요?
나는 그냥 잘 살고 싶어요. 내가 스스로 존재감을 만들어 내며 살고 싶다는 거예요. 타인의 평가, 사회적인 가중치로부터 좀 자유롭고 싶단 생각이 들고요. 아무래도 민주주의의 제도화, 구조화된 운동, 조직과 집단적 활동에 익숙했던 세대로서 그 관성과 익숙함을 털어내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한 것 같아요. 그러나 그 운동방식은 벗어나야 할 것이지만 한편 지금 운동의 태반이 되는 것이어서 현재를 비춰보는 거울처럼 여겨야겠지요. ‘옛 것은 지나갔는데 아직 새 것은 오지 않았다’는 말이 있잖아요. 그런데 새 것은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니까 새로운 사회, 새로운 정치와 운동에 대한 큰 그림과 방향이 이야기되면 좋겠어요.
거대담론이 한동안 공허하게 느껴지기도 했는데 이젠 그걸 이야기 해야 할 때인 듯해요. 내가 활동가로서 시행착오를 참 많이 했던 거 같아요. 그래도 놓치지 않았던 것은 나는 어떻게 살고 싶은 것이냐, 내가 가졌던 가치 있고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지켜가면서 산다는 게 도대체 뭘까라고 하는 생각을 참 많이 했던거 같아요. ‘나 자신과의 통합’을 이루고 싶었던 것 같아요. 안 그러면 난 숨을 못 쉴 것 같았거든요.
옛 것은 지나갔는데 아직 새 것은 오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이번에 광장에 나가보셨죠? 그때 어떤 느낌이 들던가요?
한 가지 다른 건 깃발이 너무 다양해진 거에요. 놀랬어요. 심지어 변리사 깃발도 있구요. 보육교사 깃발도 있고, 깃발에 맘대로 원하는 주장을 쓰고, 아래 이름도 만들어 넣고 깃발의 크기와 색깔, 로고도 너무 다양해졌더라구요. 민주노총 무슨 지부 등 많이 보았던 깃발도 있었지만 전처럼 두드러지게 보여진 건 아니었어요. 그리고 여러 작은 골목길 안에서 자기 식대로 꽹과리 치고 노래하고 기도하듯 홀로 있거나 가족끼리 앉아 있는 모습들도 봤구요. 다들 기록을 하고 싶어하는 것 같더라구요. 이 거대한 시대적 흐름 안에 내가 있었다는 것을 기록하고 싶은 마음 같은 게 느껴졌어요. 2008년도 광우병 집회할 때, 제가 꽤 인상 깊게 본 게 다들 각자의 자기 글씨체로 자기가 쓰고 싶은 이야기를 쓰고 온 것이었거든요. 그게 너무 기쁘더라구요. 좋았구요. 이번에는 당시보다 훨씬 다양해졌더라구요. 그때하고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아지고, 구성원들도 다양화되구요.
저는 사는 곳이 시골인지라 직접 광장에 나가지는 못하고 페이스북 라이브로 보곤 했는데요. 저는 사람들이 그런 공개된 장소에 나가서 모이고 교류하면서 조금씩 성장하기 시작한다고 생각하는 편이거든요. 근데 어떤 의문점들이 드냐면요. 87년에는 거리에서 집회를 통해서 직선제를 쟁취했던 말이예요. 대통령은 노태우가 되긴 했지만요. 어째튼 성공의 경험이죠. 근데 그 이후에 2002년, 2008년 거리의 촛불집회가 대규모로 있었어요. 하지만 그래서 도대체 뭐가 바뀐 거냐, 또다시 이런 과정을 통해서 개인들이 성장하는 것도 있지만 더 큰 절망감이나 좌절감 같은게 생기지는 않을까라는 생각도 들더라구요. 우리가 함께 쟁취해냈다는 경험이 없는데 혹시 그런게 시민사회나 활동가의 폭을 더 좁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구요.
한 구석에서 그런 두려움이 없지 않아요. 지그문트 바우만이 ‘진보는 추의 운동’과 같다고 했지요. 좌절된 혁명들이 누적되면 불행하긴 하지만 그게 끝이고 그게 전부는 아니겠죠. 결국 누구보다 먼저 다시 일어서야 하는 길을 찾아나서야 하는 것은 결국 운동이 아닐까요. 활동가가 겪어야 할 희노애락이 있지요. 그러나 그런 굴곡들을 견디고 다시 시작하고 하는 힘의 원천은 무엇보다 활동가 개인 안에 있는 것 같아요. 어느 조직에 있든, 어떤 형태의 사업을 하건 그건 그 다음의 문제일지도 몰라요. 한 개인이자 활동가로 자신의 삶을 단단히 주조해가기 위해 자신만의 방법과 탄력이 필요한 것 같아요. 다양한 경험과 관계에 스스로를 노출시켜가면서 교류하고 배우면서 자기 사유의 근력을 키워야겠지요. 다른 것들과의 조우, 일탈적 경험이 주는 힘을 바탕으로 자기 삶을 리드해가는 것, 그게 정말 필요한 일이죠. 정신적인 깊이나 단단함 이런 것들 갖춰나가지 않으면 어떻게 다른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겠어요. <끝>
_ 조아신
#서울 #윤정숙 #조아신 #아름다운재단 #여성민우회 #여성운동 #재단 #지원조직 #시민사회
오랫동안 시민사회 영역에서 활동하셨으니 지금 시기에 필요한 시민사회운동에 대한 답을 찾아보려고 인터뷰를 하고 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이 세상에 내 흔적이 남아 있는 것이 부담스러워졌어요. 내가 세상에 사라지는 순간 내 흔적도 사라지면 좋겠단 생각이 들더군요. 내가 부족한 게 많은 사람인데 너무 말을 많이 하고 사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서 그런 것 같아요.
활동의 흔적이 사라지면 존재한 것 자체도 없어져버리는 건데… 지금 시기는 활동하는 모든 내용이 누군가에 의해서 기록되고 공유되지만 선생님께서 활동하신 시기에는 의도적으로 기록하지 않으면 흔적 없이 사라져버리는 그런 시기 아니었나요?
– 윤 : 오래 전에는 그랬지만 90년대 중반쯤부터 제가 활동한 단체에서는 아카이브 개념이 들어오면서 기록과 정리를 중요하게 생각하기 시작했어요. 그 다음에는 아름다운 재단이었는데 어휴, 그때는 장난 아니었죠. 내 뜻과 관계없이 인터넷에 모두 다 남겨져 있으니까요. 제가 29살에 활동가로 일하기 시작했는데 올해 딱 30년이더라구요. 한 인간이 자기가 고민하고 성숙한 만큼 말하고 일하는 것인데 그 과정에 얼마나 시행착오가 많았을지, 잘난 척이나 똥폼은 또 얼마나 잡았을까요. 그런 것 생각하면 민망하고 부끄럽지요. 뭘 그렇게 확신과 자신감을 가지고 말도 많이 하고 했을까라는 자괴감도 들고, 그래도 부족한데 참 애썼다 그런 마음도 들고 해요.
올해가 활동한지 30년이어서 그런지 자꾸 돌아보는 거 같아요. 근데 나는 80년대 말부터 썼던 다이어리가 있거든요. 안 버리고 그대로 있어요. 그 안에 내 흔적이 다 있어요. 매일매일 무슨 회의를 했고, 주제는 무엇이었는지가 다 기록되어 있어요. 근데 아직은 열어보고 싶지가 않네요. 그걸 열어본다는 것은 단순히 자료를 정리한다는 게 아니라 그 당시의 나와 마주하는 과정이잖아요. 그때는 왜 그랬을까? 선택이 달랐다면 어땠을까? 수많은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던져보게 되겠죠. 아마도 내년 쯤에는 열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려나…. 근데 언젠가는 하루에 9번 회의한 적도 있더라구요. 민우회 사무처장 할 때였어요. ‘회의하는 몸’으로 산거죠. 왜 그랬는지 놀랄 일이지만 그렇게 일할 수 있었던 것이 무엇이었을까 생각할 때가 있어요.
나중에 여성운동사 정리할 때 유용하겠네요.
그럴 거 같아요. 지금 보니까 무슨 무슨 창간호 원본, 이런 게 다 그대로 있더라구요.
80년대 말부터 썼던 다이어리, 하루에 9번 회의한 기록도 있어
인터뷰 질문지를 준비했는데 먼저 말을 꺼내주셨으니까 자연스럽게 이어가보죠. 좀 전에 말씀 하신 것 중에 그동안 너무 말을 많이 하신 거 같아서 기록으로 남기고 싶지 않으시다고 했는데요. 당시의 시민운동이라는게 시민들의 의사를 대변하는 역할을 요구받아서 말을 많이 할 수밖에 없었잖아요. 그 말이 공감대를 얻어서 그 말이 담고 있는 주장과 가치가 사회에 널리 공유되게 하는 것, 그게 시민운동의 중요한 일 중의 하나였을 텐데 갑자기 말이 너무 많았다거나 기록으로 남겨지는 게 두렵다거나 생각하시게 된 계기가 있으셨나요?
2000년 이후로 제가 말하는 것이 좀 조심스러워진 거 같아요. 그 전에는 지금보다 훨씬 명확했죠. 노동법개악, 남녀고용평등법 문제, 탁아입법, 여성의 정치진출 등 굉장히 많은 여성(젠더) 이슈들이 발화되고 구현되고 있을 때였는데 아무 때나 기자가 마이크를 들이대도 금방 이야기할 수 있었어요. 열정과 확신이 가득했고, 이슈가 명확했으니까요. 근데 2000년도 이후부터는 내 언어가 부적절하고 불안전하다고 느끼기 시작했어요. 내가 말하는 것이 과연 질문에 대한 적절한 답일까라는 의문이 생기기 시작한 거죠. 그때부터 활동가로서의 내 고민이 시작된 것 같아요. “This is not the whole story”란 말이 있어요. 이게 전부는 아니라는 것, 그 당시에 그런 생각이 자꾸 들더라구요. 내가 지금 말하고 있는 게 전부일까?
2000년이라고 하는 시기가 당시의 개인적인 생각이나 성찰 때문일 수도 있는데, 굳이 2000년부터 그런 고민이 시작된 계기는 무엇이었을까요?
그때가 총선 낙선운동할 때였죠. 낙선운동을 하면서 시민운동의 영향력이 정점에 있을 때였는데 그때부터 내 고민이 시작된 것 같아요. 아마 시작은 ‘여성민우회’ 사무처장을 하던 1990년대 말부터였을 거예요. 자꾸 질문이 생겨나기 사작했어요. 근데 그런 질문을 붙잡고 차분히 생각할 시간이 없었어요. 하루에 9번 회의하고, 재정 사업한다고 이것저것 팔고, 일일호프도 하고, 이곳저곳 부서와 센터에서 성명서나 안건을 가지고 오면 그거 검토해야지, 매일매일 정신없이 보냈어요.
그때 내 속의 풀지 못한 질문에 대한 답답함 같은 것이 몸으로 나타나서 그때는 종일 편두통에 힘들었어요. 그런 와중에 ‘함께하는 시민행동’에서 ‘여울포럼’이라는 걸 했어요. 정기적으로 모여서 시민운동과 관계 없는 여러 분야의 사람들의 사회를 보는 새로운 시선, 시민운동에 관한 다양한 생각과 제안들, 때론 주제 없는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나누는 포럼이었는데 거기 가면서 숨이 좀 쉬어진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내 속의 질문도 단순명료해지고, 편두통도 완화되고 했어요. 내가 만나는 사람들은 대부분 시민운동가들과 조직 내부 사람들이었는데 지금까지 내가 활동하면서 만났던 사람들과는 다른 사람들, 지금까지 들었던 것과는 다른 이야기를 들었으니까요. 숨통이 좀 틔였다고나 할까.
This is not the whole story
내가 지금 말하고 있는 게 전부일까?
그러면 선생님 두통의 원인은 세상은 급격하게 변하고 있는데 꽉 짜여진 기존 운동의 틀 속에서 너무 오랫동안 반복해서 같은 일을 해오고 있는 상태, 그 안에서는 스스로의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힘들었던 건가요?
맞아요. 그거죠. 내가 스스로에게 질문을 하고 답을 찾다보면, ‘이게 전부가 아닐 텐데’, ‘분명히 다른 얘기가 있고 다른 실천들이 있을 텐데’… 그런 생각이 자꾸 드는 거예요. 내 생각이 깨지고 그러는 경험이 있기를 바랬는데 그 안에서는 아무리 질문을 해도 깨지지가 않고 계속 허덕이기만 했어요. 그 와중에도 계속 관성적으로 해내야만 하는 일이 있었으니 너무 힘들었던 거죠. 그렇다고 떠날 수도 없고, 관성의 트랙을 돌게 되는 것이 힘들었던 것 같아요. 그런 와중에 2004년쯤에 ‘창비’에 글을 하나 썼어요. 한국 진보여성운동에 대한 글이었는데 아마 제목이 “진보여성운동을 위한 시론”이었을 거예요. 여성이 말한 진보는 이런 거다. 그걸 썼는데 창비에서는 이런 글을 원한다고 했는데 이 글이 불편한 사람들도 있었던 것 같아요. 우리가 얼마나 고생해서 이만큼 왔는데 그러냐고 했어요.
그 글의 핵심 이야기가 무엇이었길래 마음에 안 들었을까요? 여성운동가의 제도정치권 진출에 대한 비판적인 내용이었나요?
아뇨. 오래되어서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그것 뿐 아니라 우리가 진보라고 할 때 여러 가지 이슈가 있는데, 우리가 지금까지 해온 진보는 단지 법제도와 정치권 진출이었나, 근데 정말 이것이 진보의 모든 내용인지 한번 생각해보자는 내용이었던 것 같아요.
아까 낙선 운동할 때부터 스스로에 대한 질문이 많아지셨다고 했는데, 구체적으로 낙선운동의 어떤 점이 그런 고민을 하게 했을까요?
낙선운동 말고도 또 하나의 계기가 있었는데, 2000년대가 여성이 제도정치권으로 진출하는 기회가 막 열리는 시점이었거든요. DJ가 대통령이 되면서부터였는데 그것도 고민을 시작하게 된 계기를 줬다고 볼 수 있겠네요. 우리 여성들이, 우리 선배들이 한 명씩 한 명씩 차례로 국회의원으로 가면서 뭔가 여성운동의 지형이 달라지고 있다는 것을 느꼈는데요. 그 전에 왜 내가 여성운동의 제도정치화 문제에 대해 고민을 좀 했냐면 90년 중반에 유학을 갔을 때 학회나 세미나를 가면 장기독재상태에 있다가 우리나라보다 조금 빨리 민주화운동을 경험한 나라의 활동가들을 만나는 기회가 있었어요. 그때 만난 친구들이 ‘운동을 그렇게 죽어라도 열심히 해서 리더들이 제도정치권에 들어갔는데 제도 밖 운동은 점점 약화되고 있다’는 얘기였어요. 칠레의 경우 우리말로 ‘여성부’ 이런 것을 만들어놨더니 여성운동 리더들이 다 들어갔는데 결국 여성운동은 영향력을 잃어갔다 것을 90년대 중반에 들었는데 우린 다를 거라 생각했죠.
어쨋든 2000년도 넘어서면서부터 나한테는 제도정치권 문제와 함께 도대체 운동이란 게 뭐냐, 내가 끝까지 붙잡고 가야할 운동의 모습은 도대체 어떤걸까라는 질문을 하기 시작했고 활동가로서 나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라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됐죠. 그때 제가 여성민우회 대표를 할 때였는데 나는 대표를 그만둔 이후에도 제도 정치 말고 다른 길을 모색해보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불확실한 상황이었죠. 그때는 제도정치권으로 가야 유능한 거였거든요. 능력 있는 사람이 가는 거고 그리고 그게 여성운동의 성과이자 발전이라고들 생각했으니까요.
90년대 말, 2000년대 초라고 하면 저는 신입활동가였는데 최근의 여러 상황과 오버랩되는 측면이 있네요. 선생님께서 제도정치권으로의 진입 과정을 보면서 운동의 본령이 무엇인지, 활동가로서의 정체성과 역할은 무엇인지를 고민하셨듯이 지금 활동가들도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다고 보여지거든요. 정치인은 아니지만 최근 몇 년 동안 지방자치단체에 중간지원조직들이 많이 생기면서 많은 활동가들이 그쪽으로 진출했어요. 행정의 틀 안에 들어간 활동가도, 여전히 외부에 있는 활동가도 정체성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근데 선생님께서도 당시에 그런 고민들을 혼자서만 생각하는 게 아니라 동료들과 함께 이야기하면서 답을 찾으려는 노력을 하셨을 것 같은데요.
어려웠어요. 운동 내에서의 주류의 인식이 달랐던 것 같아요. 선배들이 제도정치권에 들어가면 늘 축하파티 같은 것을 하거든요. 그럴 때면 “This is not the whole story”가 또 떠오르는 거죠. 95년 지방선거 때부터니까 올해가 여성운동이 제도정치권으로 진입한지 20년쯤 되는 시기예요. 제가 얼마 전에 여성운동단체의 대표를 하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서 그런 이야기를 했어요. ‘난 20년 동안 여성운동하다가 제도정치권에 들어간 사람들 모여서 축하파티하는 곳에 계속 가봤고 그 과정을 다 듣고 봐왔다. 이제 20년 되었는데, 이는 어떤 의미와 변화가 있었고, 한계는 무엇인지, 들어간 사람들과 현장에서 운동하고 있는 사람들은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다시 말해 여러 가지 성과와 성취의 경험들도 있지만 냉철하게 성찰하고 비판적으로 따져보는 시기인 것 같다구요. 창립선언문도 다 다시 써야 해요. 미션과 비전도 다시 정리해야 하구요. 내년이 ‘진보여성운동’이 출현한지 한 세대가 되는 시기예요. 아마 꽤 많은 단체들이 87년 전후로 만들어졌으니까 창립선언문이나 미션과 비전을 다시 정리하고 해야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기 시작한 계기,
여성운동의 제도정치권으로의 진출과 2000년 낙천낙선운동
만약에 지금의 선생님 생각을 가지고 그 당시로 돌아간다고 가정해보면요. 여성운동의 제도정치권 진출 문제에 대해서 어떤 판단을 하셨을까요?
사실 그런 고민을 할 때 ‘나는 그럼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자신의 삶의 가치와 방식에 대한 고민의 용광로 안에 자기를 빠뜨리지 않으면 허당이라는 걸 나중에 알았어요. 운동이 따로 있고 내 존재가 따로 있는 건 아니니까요. 거기서 주체적 조건, 객관적 조건 이렇게 이분법적으로만 따지는 것은 굉장히 남성적인 방식이죠. 선배들이 한 명 한 명 들어갈 때마다 ‘이건 아닌데… 이렇게 가는 건 아닌데…’ 이런 고민을 꽤 많이 했어요. 이럴려고 내가 여성운동 했나, 그게 도대체 뭔데 그렇게 한 순간에 떠나가는가 그런 생각에 우울해지기도 했구요. 저는 원칙적으로 운동의 제도정치권 진출을 반대하는 건 아니예요. 그 사람이 아니라 ‘우리’가 간다는 게 무슨 의미고, 어떻게 가야 되는 것이고, 간다면 그 사람과 함께 운동했던 사람들과는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서로 상생할 수 있을지에 대해 충분히 논의를 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았겠다라는 생각을 하죠. 그런데 그런 과정 없이 몇 사람 가까운 그룹들끼리 논의해서 결정을 해버리면 ‘우리가 함께 운동’한게 뭐가 되겠어요.
저는 여성운동 리더의 제도정치권 진출이 여성의 정치세력화이고, 여성운동의 성취라고만 이야기하면 안된다고 봐요. 운동의 어떤 이슈나 전략이나 성과든 우리가 되돌아볼 때는 여러 차원의 앵글로봐야 하는 거잖아요. 남은 사람의 앵글로도 봐야 하고 가는 사람의 앵글로도 봐야 되는 거잖아요. 근데 어느 순간부터 우리가 성취했던 운동의 성과나 관점이 단순하고 일방적이진 않는지, 빛과 그림자를 함께 봐야하지 않을지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가 가면서 흘려놓은 얼룩들은 다시 돌아오면 남아 있어요. 그래서 이건 운동의 방향에 대한 고민이면서 동시에 내 삶의 대한 고민이기도 하죠.
저는 30년 전, 정말 그 초롱초롱한 눈으로 모였던 젊은 여성운동가들의 눈빛이 기억나요. 질문을 놓치면 안되는 게 운동이라는 것은 어차피 생물체이고 유기체여서 어느 하나의 흐름이 성과를 내고, 다시 또 다른 존재로 만들어지고, 다른 세대가 또 다른 이슈를 갖고 나오고 이런 식이죠. 전형적으로 우리는 세컨드웨이브(second wave) 여성운동가였던 거 같아요. 미국의 여성운동 관점에서 말하자면 평등주의 여성운동이죠. 그래서 남성이 만들었던 그 제도 안에서 남성과 똑같은 몫으로 파워를 갖고, 똑같은 모습으로 드러나는 게 굉장히 중요한 세대였어요. 그리고 법과 제도를 만들어서 기회의 평등을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했던 세대였죠.
그래서 당시로는 혁명적인 순간들이 있었어요. 그 혁명적 순간들을 성취해내기 위해서 굉장히 오랫동안 열심히 운동을 했는데, 2000년도 오면서부터는 더 이상 그런 식으로는 여성운동이 사회적 영향력을 유지하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힘들었던 것 같아요. 몸은 거기에 있는데 어디로 나갈지 고민이 많던 시기에 우리가 영페니미스들의 도전을 받았어요. 90년대 중반부터였던 것 같은데 영페미니스트들을 만나면 또 무슨 비판을 받을지, 우리 보러 어쩌란 말인지 잔뜩 긴장도 했어요. 근데 그 친구들이 지금 40대가 됐어요. 지금은 또 새로운 영페미니스트들이 등장하고 있지요.
얼마 전에 여성재단에서 하는 여성회의에 갔었어요. 당시 영페미니스트였던 친구들은 이제 올드패션이 되고 20대 친구들이 등장하더군요. 우리가 농담으로 영!영!페미니스트라고 그랬어요. 그 전에는 한 번도 만나지 못했던 친구들이 나와서 강남역 10번 출구 이야기를 하고, 한글을 깨우칠 때부터 인터넷 서핑을 했던 세대이기 때문에 사이버성범죄를 이야기를 하고, 우리하고 민간성과 감수성이 많이 다르더라구요. 어째튼 이미 한 세대는 흘러갔고, 우리 다음에 등장했던 영페미니스트들이 지금 영영페미니스트들이 너무 무섭다고 하길래 우리끼리 배꼽잡고 웃었어요.
영영페미니스트들과 교류는 좀 하시나요?
제가 얼마 전에 20대 페미니스트 친구들이 모여있는 곳을 갔었어요. 사무실이자 자취방인데 반지하방에 모여서 일을 하고 있더라구요. 단체를 만든 것도 아닌데 무엇인가 일을 하고 있어요. 그 친구들 만나고 와서 나에게 필요한 거 있으면 얘기해달라 했더니 목록을 보냈더라구요. 그 친구들은 본인들이 당사자예요. 사이버성범죄 관련해서 일을 하고 있는데, 우리 때는 여성운동 시작하면 이론공부도 하고, 이념공부도 하고, 여성운동사 등에 대해 몇 차례 사전 교육도 받고 했거든요. 근데 그런 것도 없이 일단 자기들이 피해당사자로서 일을 시작했더라구요. 그 친구들이 일하는 반지하방에 갔었는데 고맙고, 미안하고 그랬어요. 그래서 내가 할 일이 중 하나가 이런 거구나, 이 친구들 이야기 듣고, 이 친구들이 필요로 하는 정보와 사람들을 연결시켜주는 것이 중요한 역할이겠구나 그런 생각을 했어요.
이야기를 잠깐 앞으로 되돌아가보면요. 지금은 운동의 제도화나 정치권 진출이 큰 이슈는 아니지만 여전히 다른 형태로 남아있는 문제는 있어요. 중간지원조직과 여러 지방자치단체에서 일하는 활동가들도 많은데요. 아까 말씀하셨던 것처럼 그것 자체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운동사회 내부에서의 열린 토론이 있고, 다양한 측면에서 그것들을 살펴보고, 서로의 역할을 정하고 인정하고 하는 과정이 있다고 하면, 즉 과정의 올바름만 획득한다면 괜찮다고 보시는 건가요?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그 과정이 선택이죠. 예를 들면 저는 후배들한테 개인적인 이야기를 많이 듣거든요. 근데 이게 개인의 문제는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지금쯤이면 중간지원조직 주변에서 돌고 있는 이야기들을 그들의 입으로 공개적으로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고 봐요. 마을 만들기 일을 하는 후배의 이야기인데요. 지금의 마을 만들기 사업으로 과연 마을이 만들어질 것인가라는 질문을 한지가 벌써 수 년째인데 답은 없고 계속 일만 있다는 거예요. 프로그램과 사업만 있고, 돈은 너무 많이 들어가고 있다는 말을 들은 지가 지금 2~3년은 된 거 같은데 저는 그냥 듣고만 있지 답을 못찾겠더라구요.
그 다음에 활동가들에게 ‘그럼 우리 보고 뭐 어떡하라는 이야기냐’ 이런 이야기를 많이 들어요. 우리도 나이 들고 경력 쌓이면 다 정치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요. 당연히 그렇죠. 근데 활동가들 중에서도 제도정치권이나 중간지원조직의 임원 역할이 아니라 다른 방식의 활동을 하고 있는 사람들도 많이 있거든요. 그리고 뭐 안하면 어때요? 꼭 단체가 아니더라도 자기 식대로 나 홀로 활동을 할 수도 있고, 기업에 가면 어떻고, 재단에 가면 어때요. 그게 뭐 문제겠냐구요. 그것은 개인의 선택이고 문제될 건 없지요. 다만, 하나하나 돌다리를 건너갈 때 굉장히 고민했던 것 같아요. 내가 좀 굼뜬 사람이라 그런지 모르지만 자기 고민을 발효시키는 과정이 필요해요. 뭐를 그만두고 선택하고 리뷰하는 과정에서 자신과 더 깊이 얘기하는 시간을 많이 가져야 해요. 자기를 쏙 빼놓고 운동만 평가하는 것, 그건 아닌 것 같아요. 운동과 나, 운동 속의 나, 운동 밖의 나, 이렇게 늘 자신의 위치와 마음상태를 생각해야지 자리를 옮길 때도 안정감과 확신이 생기겠지요. 그래야 조직을 떠나거나 운동방식을 바꿔도 미련이나 아쉬움이 남지 않아요. 떠날 때든 남을 때든 다 자기만이 아는 어떤 순간이 있는 것 같거든요.
인생의 경로 중에서 내가 굳이 시민운동을 택한 이유가 있는 거잖아요. 내 삶을 어떻게 살겠다고 하는 그 그림 속에서 살아가는 거죠.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점수별로 배정받은 것도 아니고 그러니까 자기 삶의 문제인거죠. 내가 선택한 것, 내가 책임져야 할 것, 내가 그 안에서 상당한 성취와 기쁨을 얻게 되는 거고, 그렇기 때문에 자기가 이동할 때나 누구를 향해서 비판을 할 때 자기만의 발효된 고민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자신과의 일치’를 이루는 것에 대한 관심을 갖는 것이 필요한 것 같아요.
제가 선생님을 알게 된 지는 꽤 되었는데요. 여성민우회 활동하고 아름다운재단 일하시다가 정리하고 휴식기를 가지셨잖아요. 그러다가 최근에 말씀하시는 거 보면 어째튼 조직에서의 일은 아니지만 여전히 다른 방식으로 활동을 하고 계시단 말이예요. 그것도 어째튼 그런 가치관의 연장선상에서 선택하신 거잖아요.
당연하죠. 내가 그만 둘 때는 ‘이제부터는 나는 내 식대로 할 거다’라는 생각이 있었어요. 핸리 데이빗 소로우가 그랬거든요. “나는 내 식대로 숨을 쉴 것이다”라고요. 그리고 그 사람 이야기 중에서 “사과나무와 떡갈나무는 크는 속도도 다르고 열매 맺는 시기도 다르다”는 이야기가 있어요. 왜 이 세상은 똑같은 시기에 열매 맺으라하고, 왜 똑같은 속도로 자라라고 하냐는 질문을 던진 거거든요. 이 책에서 배운 것은 운동의 방향과 속도는 그게 나의 속도와 흐름과도 맞아야 하는 거죠. 그래야 운동의 열매 안에 내 삶의 열매가 같이 맺어지고요.
지금 저는 나하고 이야기하면서 너는 왜 그때 그 질문이 있었고 지금은 어떻게 답을 찾고 싶은 거고 천천히 일하고 쉬면서 평생에 더는 없을 것 같은 그런 시간을 갖기로 한 것지요. 그렇게 열렬히 원했던 시간을 이제서야 갖게 된 거예요. 너무 잘 한 것 같아요. 그러니까 내 마음과 몸의 리듬을 따라서 일도 그렇게 선택을 하게 된 거구요. 그 대신 내가 정말 하고 싶은 한 가지가 뭐였냐면 그동안 내가 안 만나봤던 사람들을 좀 만나봐야지, 내가 접하지 않았던 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하나 좀 봐야지, 그리고 내가 읽어보지 않은 책이나 영화 중에서 내가 보고 싶었던 것들을 좀 찾아봐야지, 그런 거였어요. 내가 생각하는 자유라는 것은 시간과의 관계를 내가 선택하고 누릴 수 있는 상태인데 최근에는 이렇게 자유롭구나 싶어요. 조직과 무관하게 독립적인 개인으로서의 활동가, 그걸 해보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 상태가 되니까 활동가는 무엇으로 사는가, 운동은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는가, 이런 질문에 대해서 자유롭게 생각하게 되구요.
그러면 지금은 자유롭게 독립적으로 어떤 활동들을 하고 계시나요?
강의도 하고, 발표도 해요. 물론 그것도 다 골라서 하죠. 조직에서 시키는 게 아니니까. 그리고 후배들이 연락을 좀 하는 편이니까 개인적인 상의에서부터 운동에 대한 고민 등 굉장히 다양해요. 그러면서 인연이 있는 후배들과 만나서 관계 맺고 그러는 거죠. 그 다음에 나 혼자 시간으로는 짬짬히 여행도 가고 해요.
그런데 이렇게 살다보니까 생각을 정리하는데 있어서는 새로운 사람, 다른 차원의 일을 만났을 때 정리가 잘 되더라구요. 그래서 활동가들도 낯선 것들과의 만남이 참 중요하구나 그런 생각을 해요. 낯선 것과 마주하는 것 속에서 얻는 게 많았어요. 그 책이 번역서면 번역한 사람을 만나고 싶고, 글을 쓴 저자면 그 사람과 만나고 싶고 그래요. 연락해서 만나고 했어요. 굉장히 광대한 숲 안으로 걸어 들어가면서 여기는 백양나무, 여기는 소나무 이런 것들을 발견하는 기쁨 같은 게 있어요. 더플랜B 사이트에 올라온 이야기도 나에게는 생각을 정리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 곳이죠. 활동가로서 생각을 정리하고, 변화가 어디까지 왔는지 알고 배워 가는데 큰 도움이 되었어요.
나는 내 식대로 숨을 쉴 것이다.
사과나무와 떡갈나무는 크는 속도도 다르고 열매 맺는 시기도 다르다.
활동가 이야기 나왔으니까요. 사실 저도 그런 편이긴 한데 젊은 활동가들이 조직에서 일하는 것을 굉장히 힘들어하잖아요. 젊은 활동가들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자유롭게 기획해서 하고, 새로운 사람들과 관계 맺고, 내 방식을 찾아서 운동하고 싶은데 현실은 그게 아니란 말이예요. 이 상황, 이 간극을 어떻게 메워야 할까요? 그리고 그런 것을 용인해줄 수 있는 환경과 조건은 무엇이 있을까요? 과거의 틀로 본다면 저희가 시민사회와 활동가의 범위를 생각할 때 조직에서 일하는 상근활동가나 전업활동가, 그리고 조직화된 단체로만 한정짓는데 사실 지금은 그런 범위에 포함되지 않는 활동가나 조직같이 않은 조직들이 많이 생겨났단 말이예요. 그럼 시민사회나 활동가에 대한 정의도 새롭게 해야 하는 건 아닌가 그런 생각을 좀 하게 되는데요.
그렇죠. 저는 한 조직에서 의사결정의 힘을 가진 사람들이 생각을 좀 바꾸야 된다고 생각해요. 주 3일 근무할 수도 있구요. 활동가들의 활동을 여러 가지 배열로 달리 해보는 게 필요해요. 주 3일을 근무해도 되는 일도 있을 거고, 어떤 사람은 정말 프로젝트 베이스로 일하고 싶은 사람도 있을 거고, 계약직으로 일하고 탐색해보다가 지속하거나 그만두거나 뭐 그럴 수도 있는 거예요. 운동 방식이나 조직운영, 활동가들의 역할 등을 지금보다는 더 유연하게 해보는 게 필요하죠. 근데 그게 참 잘 안 되죠? 쉽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저는 그래야 한다고 생각해요. 실제 주 3일 근무하는 조직도 봤구요. 하나의 프로젝트가 끝나면 자유롭게 한 1년쯤 쉬었다가 여행 다녀와서 다시 돌아오는 친구도 있고, 귀농했다고 돌아오는 친구도 있고 해요. 오히려 변화에 충분히 노출하게 하고 적극적으로 변화의 흐름 속에 들어가게 하는 계기를 많이 주는 거죠. 그래야 일도 새로워지고 조직도 일을 잘 해낼 수 있어요. 뭐 조직이 크지 않으면 어때요? 이미 우리 조직이 관료화되었다는 이야기를 수도 없이 하잖아요.
이런 방식의 조직, 활동의 형태는 사실 오래 전부터 이야기 나오기도 했는데요. 선생님에게 추가로 묻고 싶은 것은 다들 좋다고 하는데 왜 안될까요? 그게 단지 의사결정권을 갖고 있는 사람들 때문일까요? 시민사회 조직에 있는 구조적인 문제나 문화의 문제도 있겠지만요. 사람들과 만나서 이야기하면 다 좋다고 이야기해요. 그런데 안될거야, 다들 이렇게 이야기를 하거든요.
어려운 문제지만 그래도 그렇게 해야 일도 되고, 조직도 살고, 활동가 개인들도 살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 절박함을 의사결정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아직 모른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말만 하고 실제 해본 사람은 많이 없어요. 이렇게 해도 되는구나 하는 사례들을 자꾸 만들어가고, 그 사례들이 충분히 공유되는 게 필요하죠. 근데 여전히 회의만 많고.. 사실 그렇게 안 해도 되요. 내려오는 이야기만 있고 올라가는 이야기가 없다는 게 문제인 것 같아요.
나는 조직이 과감하게 bottom up 하는 것을 진짜 당연시해야 할 것 같아요. 지금 광장에 시민들이 100만이 모여서 각자 방식대로 잘 하고 있는데 시민운동조직은 여전히 내부에서 bottom up 하는 것, 아래로부터의 이야기가 서슴없이 올라가는 것이 정착되지는 못한 것 같아요. 이제 시민운동이 더 민주적이고, 더 열려있다고 생각할 수 없는 면이 많죠. 그래야 한다고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면서도 말이죠. ‘관성’을 깨고 나오려는 과감함과 절박함이 부족한 건 아닐까요? 사실 꼭 그렇게 하지 않아도 조직은 유지될 수 있어요. 그렇지만 ‘관성’에 균열을 내며 앞으로 가는 것이 시민사회조직의 특징이자 책무가 아닐까요?
bottom up 이야기를 하셨으니까. 조직의 정관이나 실제 의사결정구조를 보면 회원 총회 있죠. 대부분의 시민단체가 회원총회가 최고 의사결정기구고, 그 밑에 일상적인 의사결정을 하는 운영위원회나 집행위원회가 있고, 그 다음에 사무국이 있고 그렇죠. 이게 상당수 시민단체들의 구조인거 같아요. 근데 이 구조가 사실상 제대로 작동되고 있다고 해야 할까요? 지금 시기에 이런 식의 구조가 정말 맞는 걸까요?
내가 활동가로 일할 때도 정관 따로, 실행 따로 그랬어요. 나는 이것부터 정말 문제라고 생각해요. 우리는 우리가 세워놓은 원칙과 우리가 실제 하고 있는 과정의 불일치를 그래도 되는 것처럼 받아들여왔단 말이죠. 총회는 왜 이 구조의 맨 상위에 있는지 제대로 생각해볼 기회도 없었고, 조직 내에 자문위원이 그리 많아도 자문 한번 안 받는 경우가 태반이잖아요. 그리고 조직들끼리 네트워크할 때도 무슨 연대나 본부 이런 기구는 많이 만드는데 이게 나중에 해산이 된 건지도 모르겠고 마무리가 어떻게 되는지도 모르는데 왜 자꾸 이런 거 만드는 지에 대한 질문을 하면서도 원래 그러려니 하면서 넘어간 거예요. 우리가 만든 원칙들인데 실행과정에서 불일치해도 그렇게 넘겨온 거죠.
조직에서 의사결정의 힘을 가진 사람들이 생각을 좀 바꾸야 된다고 생각해요.
그런 의사결정구조가 잘못됐다가 아니라 실제로 작동하고 있는 의사결정과는 다른 구조를 갖추고 있어서 문제다, 그걸 일치시켜야 한다 그 말씀이시죠?
네, 그 말이예요. 현실적으로 그게 어렵다고 하면 구조를 바꿔놔야 하는 거잖아요. 운영프레임을 바꾸는게 필요하고 만약에 그렇게 할 수 없다면 어떻게 해서든지 현실에 가깝도록 노력이라도 해야지요. 100% 일치시킬 순 없지만 왜 안 되는가에 대해서 고민이라도 해봐야 하고요. 우리에겐 그럴싸한 언설이 너무 많아요.
사실 이건 다른 이야기인데요. 제가 단체의 대표가 되면서 너무 고민이 많았어요. 그것 때문에 안하고 싶었는데 하나는 돈을 만들어야 하는 거였구요. 또 하나는 연대회의나 집회 가서 연대사 같은거 하는 거였어요. 연대집회 나가면 갑자기 불러내서 연대사하라고 하잖아요. 일종의 우정출연 같은 건데 아무도 안 듣는 그 말을, 제가 연단 아래에 있을 때 듣지도 않았던 그 말을 너무 단호하고 강고하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예요. 왜 아무도 안 듣는 이야기를 사람들을 뙤약볕에 앉혀놓고 저렇게 해야 하나? 그런 생각을 많이 했어요. 언제 한번 “우리 리더들이 스스로 버려야 할 습관 5가지” 뭐 이런 주제로 이야기를 한번 해봤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선배들이 요즘 젊은 애들이랑 정말 일 못하겠다고 그래요. (왜 그러신대요?) ‘쌩깐다’고도 하고요. 선배들이 보기에 지금 애들은 매너가 너무 없다는 거죠. 너무 직업처럼 일한다는 건데 그만둔다고 해놓고 밀린 월차 다 쓰고 그렇다고도 해요. 이런 게 선배들 입장에서는 상상이 안되는 거죠. 우리는 퇴직금 받아도 어떤 경우는 절반을 조직에 내놓고 가고 그랬단 말이예요. 우리끼리 모이면 ‘나 힘들어, 힘들어’ 이렇게 말해요. 젊은 친구들과의 관계가 다 힘들다고요.
이성적으로 이해는 되는데 감정적으로는 인정이 안되는 거겠죠?
자기 경험에 비추어볼 때 기대했던 게 안나오는 거죠. 그리고 일을 같이 하는 방법, 즉 팀웤으로 하는 것을 모른다고 해요. 혼자서 하고 싶어하고 처음에 일 시작할 때 가르쳐주려고 하면 간섭한다고 그런다는 거예요. 그래서 가만두면 또 하나도 안 가르쳐주고 일만 던져주는 무책임한 사람이라고 한다는 거예요. 그게 또 다른 면이 있겠죠. 그런 이야기하면 우리가 막 웃어요. 세대 간의 차이를 어떻게 볼 것인가도 굉장히 중요한 주제죠? 근데 우리는 무엇이 다른가에 대해서 한 번도 공론화를 안하는 거 같아요. 잠깐잠깐 흘러가듯이 이야기하지만요.
시민사회 전체의 이슈는 아니겠지만 최근 몇년 동안 나온 키워드는 2가지인데요. 하나는 세대 간의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활동이냐 노동이냐의 문제죠. 사실 세대 간의 문제는 더플랜B에서도 많이 다루었던 주제이기도 하고 워낙 많이 이야기가 되고 있어서 아실텐데요. 2가지 문제에 대한 후배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는 어떠세요?
상상도 못했던 질문들을 하고 있는 거죠. 우리 때는 열정이나 헌신과 같은 이야기들이 얼마나 많이 동원됐어요. 그리고 당연히 조직이 우선이었죠. 운동하는데 직업이나 직장이나 이런 표현을 쓴다는 걸 들으면 놀랄 때가 있죠. 그런데 한 숨 돌리고 생각해보면 그 질문을 던지는 세대가 등장한 거잖아요. 그것을 달라진 현실로 받아들이고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왜 저 친구들은 노동이냐, 활동이냐, 직장이냐, 직업이냐, 이런 개념들을 놓고 고민하고 있는가를 담백하게 듣고 시작해야 하는 거죠.
선생님께서 처음 여성운동을 했던 시절, 그러니까 20년 전, 30년 전에도 선배 세대들과의 갈등은 있었을 텐데요. 그때의 중요한 갈등은 무엇이었는지 기억하시나요?
그때는 뭐 조직노선이나 핵심 사업에 대한 이야기가 주였죠. 그 다음에는 단체를 등록하는 것, 지금은 단체를 만들면 다 등록하잖아요. 근데 그때는 단체를 등록할 것이냐, 말 것이냐, 정부지원을 받을 것이냐 말 것이냐, 그러니까 제도권과의 관계 맺는 방식을 두고 엄청난 논쟁을 했던 것 같아요. 큰 변화의 계기가 있을 때마다 그랬는데 선배들하고 논쟁하다가 막 울면서 뛰쳐 나오기도 하고 그랬어요. 그만큼 그 주제가 모두의 관심사였어요. 결국 다 자기 식대로 결론을 낸다 하더라도 어째튼 논쟁하고 그랬으니까요. 그 다음 논쟁 이슈는 정치세력화의 문제였던 것 같아요. 그러다가 결론이 안날 때는 막후작업도 하죠. 선배들이 후배들 한명씩 불러서 설득도 하구요. 그 다음에는 니들끼리 이야기해보라고 하기도 하고 분과별로 모여서 이야기도 하고요. 그래서 회의가 많아졌을지도 모르지만 제 생각으로는 그 과정에서 bottom up을 많이 훈련받은 것 같아요. 그래서인지 민우회의 경우는 리더를 외부에서 모셔오진 않았어요. 아래로부터 성장한 활동가들이 대표가 되는 관행이 생겼어요.
지금 후배 세대들이 이야기하는 건 좀 달라요. 선생님께서는 조직의 굉장히 중요한 문제에 대해 선후배 가릴 것 없이 논쟁을 하고 그 과정에서 싸우기도 했지만 어째튼 합의를 하고, 또 분과별로도 이야기를 하면서 의견을 모아가는 과정을 거치고 최종 결론을 내신 건데요. 지금은 리더 그룹들이 중요한 결정을 하고 그걸 지시하는 경우에 대한 불만이 많거든요. 물론 논쟁의 이슈가 미시적인 것으로 많이 바뀌기는 했죠. 단체에서 주요하게 해야 할 일들은 이미 결정이 되어 있고 이 결정에 따른 사업들을 하기 위해 사람을 뽑았으니까 이 일을 잘하는 게 중요하지, 우리가 속한 이 단체가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 중요한 사업은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 논쟁할 기회가 별로 없는 거죠. 그게 어떻게 보면 후배 세대들의 불만이기도 하거든요. 그래서 조직이 비민주적이다라는 이야기도 하구요. 물론 이게 시민사회운동의 환경이 바뀐 측면 때문이기도 하지만요.
맞아요. 당시는 운동이 젊고 영향력과 사회적 반응 속도가 빠를 때였지요. 내가 활동하면서 참 기뻤을 때는 내 능력과 노력에 따라서 바뀔 수 있는 여지가 많았거든요. 예를 들면 내년도 사업계획 이야기할 때 활동가들이 다 정리해서 와요. 자기들끼리 두 번, 세 번 회의하고 이야기하면서 다 정리해서 가지고 와요. 그러니까 단체 문화가 변한다는 생각도 들고, 단체가 내가 원하는 방향과 가까워지고 있다는 생각도 들고 그런 거거든요. 이럴 때 활동가로서의 존재감을 느끼는 거죠. 진부한 말일 수 있지만 내가 변화의 주체가 되고 있구나라고 인식하는 것, 조직을 변화시키든 사회를 변화시키든 그런 감각이 커질수록 내 일에 대해 자부심이 생기고 신이 나고 그렇거든요. 그런 변화의 여지가 없으면 뭐하러 거기서 부속품처럼 시키는 일이나 하겠어요. 그게 회사랑 뭐가 달라요.
변화의 여지가 없다는 것에는 2가지 이유가 있는 것 같은데요. 단체의 사업 자체가 큰 프로젝트 중심으로 배치가 되어 있으니까 방향 자체는 이미 정해져 있는 거죠. 그 방향에 맞게 어떻게 할 것인가는 활동가의 몫일 수 있지만 어째튼 큰 방향은 정해졌으니까요. 다른 하나는 조직의 인적구성의 문제인데요. 보통은 10년 이상의 경력 있는 활동가가 사무처의 리더 역할을 하고 있는데 실무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1년~5년 사이 경력의 활동가들이죠. 중간 리더가 별로 없는 환경이 논쟁할 수 없게 만드는 측면도 있는 것 같아요.
프로젝트로 결정되어 있는 사업들이 이미 있다는 것, 그게 큰 차이인거 같아요. 우리 때는 프로젝트라는 게 별로 없었고 있더라도 아주 작은 규모였기 때문에 우리가 원하는 이슈를 스스로 찾아서 집중할 수 있었고, 현재 상황을 분석해서 일 자체를 우리가 다 기획했거든요. 그 일을 하기 위한 돈을 마련하려고 안 해본 짓이 없어요. 된장 만들어서 팔고, 양말도 팔고 이런거 있잖아요. 힘들지만 그런 게 주는 의미가 있었죠. 그 다음에 활동가로서의 자기 존재감이 다른 거 같아요. 이미 해야 할 일이 정해져 있다면 그 사람은 기획자가 아니라 수행자인거죠. 수행만 한다면 존재감은 정말 다를 것 같아요. 운동이란 게 비록 급여가 적지만 자기 스스로 사회를 바꾸는 동인이 되겠다는 것이고, 그것이 자존감의 근거일텐데 그게 적으면 재미도 의미도 잘 못 느끼겠지요.
이미 존재하는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것과 활동가로서의 존재감이 연결되는걸 이렇게 생각할 수 있죠. 프로젝트를 받지 않으면 재정이 어려우니까 내가 수행자로서 역할 하는 건 인정, 그러면 차라리 급여나 적정 수준으로 받으면 좋겠어, 그럼 난 그냥 직장으로 다닐 수 있어. 그게 아니라고 하면 내가 스스로 기획할 수 있는 여건이라도 충분히 마련해줘, 그러면 내가 이 곳에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라도 있는 거잖아, 뭐 이런 생각들이 있어요. 두 번째로 말씀드린 경험의 차이가 너무 큰 두 그룹만이 존재하는 상황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경험, 그건 난 좀 다르게 봐야 한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러니까 운동의 경력이 더 많다고, 경험이 더 크다고 해서 창의적이거나 적절한 운동 기획이 나오는 건 아니거든요. 상대적으로 그럴 수 있는 가능성이 크긴 하겠지만 오히려 자신의 경험보다는 후배 세대의 이야기를 많이 듣는 것, 그 속에서 창의적인 기획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한 가지 이슈가 있을 때 이 이슈를 어떤 언어로 써야 할지, 어떤 프로그램으로 드러낼지, 이런 것들은 젊은 세대로부터 배워가야 하는 것이 적지 않아요. 젊은 세대가 갖고 있는 그들의 새로운 시각, 다른 시각들이 잘 접목될 때, 그러니까 다른 관점과 경험들이 흡수될 때 풍부해진다는 건 상식이쟎아요.
경제적인 측면을 보면 과거에는 그 어려운 경제적 상황도 견딜 수 있을 만큼 좋았던 게 많았어요. 아까 이야기한 것처럼 일을 내가 기획했지, 다 내 작업인거니까요. 그래서 일한만큼 어떨 때는 제도가 만들어지고, 법이 만들어지고, 기관도 설립되고 했죠. 이런 것들 하나하나 따지면 굉장히 많죠. 자기가 기획한 좋은 아이디어가 사회에 반영이 되고, 그게 변화로 연결된다는 게 눈에 보일 때가 많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고생스러웠지만 떠나지 않게 되고 내가 이런 노동의 기쁨을 어디 가서 얻겠어,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거죠. 근데 사실, 수입이나 경제적인 조건이 더 좋아서 옮기겠다고 하면 그것도 선택이라고 생각해요.
계속 남아있겠다고 하면 그로 인한 어떤 기쁨 같은 것이 있을 테죠. 가치 있는 삶이라는 것이 나에게는 중요했고, 그 문제는 내가 어떻게 늙을 것인가하고도 관련된 고민이죠. 쉬면서 느낀 게 나는 무엇으로 어떻게 살고 싶은가,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야 하는지가 좀 더 명료해지더라구요. 젊어서는 조직의 결정이 제일 중요했었는데, 그래서 조직적 결정에 따라서 불철주야 일을 했는데 40대 중반이 되면서부터는 내가 이 일을 어떻게 느끼고 있는가, 내가 어떻게 해야 내가 기쁠 수 있는가, 잘하는 게 뭘까라고 하는 고민이 중심이 되더라구요. 그러니까 ‘마음의 네비게이션’이 중요해진 거죠. 실은 이게 빠지면 허당이예요. 자기가 없는 일, 그게 어떤 보람이 있겠어요.
근데 사람의 본성이라는 게 쉽게 바뀌는 게 아니잖아요. 내가 하는 일을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이로 인해 사회적 변화가 있고, 이런 결과에 대한 보람이나 자부심 같은게 운동을 놓치 못하게 하는 이유가 되는 것은 앞선 세대만이 느끼는 것은 아니죠. 지금 그런 게 없다는 것은 세대 차이 때문이거나 사람의 문제, 인식의 문제, 가치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 시민사회가 그런 변화를 만들어내는 동력이 과거에 비해 현저하게 줄어들었고, 활동가들도 사회변화의 주체로 내가 뭔가를 이루어냈다고 할 만한 것도 보이지 않는 환경 때문에 생기는 문제라고 볼 수도 있는 거겠죠.
그럴 수 있죠. 예를 들면 우리 때는 동창회 나가면 동창들이 우리를 보는 시선, 존경심이 대단했어요. 너 정말 고생한다, 계속 그런 일을 하다니 대단하다, 그러면서 도와주고, 티켓도 사주고, 회원가입도 했죠. 조직 내에서 뿐만 아니라 조직 밖에서 충분히 인정받았어요. 내가 정말 좋은 일을 하고 있는 것 맞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단 말이예요. 근데 지금은 자기 기획력이 발휘될 수도 없고, 먹고 사는 문제도 힘들고, 도대체 무엇이 활동가를 살게 만드냐는거죠. 무엇이 활동가에게 자부심을 줄 수 있느냐는 거예요. 그래서일까요? 요즘 보면 그렇게 조직의 일원으로서가 아니라 자기 홀로 활동가로 사는 사람들이 많이 보여요. 그들은 왜 나 홀로 운동을 시작했을까? 무엇이 다를까? 이런 점에 대해서도 깊이 한번 생각해보고 싶고 그래요.
과거에는 시민사회가 개입해서 바꿀 수 있는 사회의 틈이 굉장히 많아서 사실은 힘은 들지만 하나의 이슈를 잘 잡아서 지속적으로 하면 바뀔 수 있다는 확신도 있고 했는데 지금은 사실 어느 정도 제도적인 부분들이 정리가 되어 있어서 눈에 보이는 성과를 내기가 힘들잖아요. 이런 상황을 인정한다고 하면, 지금 활동가들에게 과거와 같은 열정이나 헌신을 요구하지 않으면서도, 그들로 하여금 지속가능한 활동을 가능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요?
진짜 그게 문제지요. 근데 내가 경험했던 것 중심으로 구조화된 생각만 해서 그럴 수 있는데요. 이미 우리는 one of them이 된 거 같아요. 과거의 주류 조직과 그 조직에서 일했던 사람들의 영향력은 정말 많이 축소되었죠. 지금 전체 시민운동권의 생태계를 보면 우리가 몸담았던 주류 조직은 그냥 하나의 부분이 되었죠. 지금은 한 개인이, 작은 공동체들이 움직이는 시대가 되기도 했구요. 그걸 조직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도 느껴요. 사회에 필요한 영향력을 끼쳐서 좋은 변화를 이끌어내는 게 사회운동의 존재 이유라고 하면 지금의 조직들도 존립할 수는 있을 거예요. 그리고 그 조직의 리더들도 조금 빛날 수 있어요. 이 정도 상황에서 시민운동조직과 일반 회사와 무슨 차이가 있을까요? 적어도 사회운동조직이라고 하면 훨씬 더 유연하고, 더 열려있고, 구성원들 간에 서로 영향을 주고 받을 수 있는 그런 조직으로 거듭나야 해요. 우리가 맨날 말은 혁신하자고 하지만 혁신이 어려운 조직 중에 시민운동은 예외일까요? 그것도 진단을 좀 해봐야죠. 왜 이렇게 안 바뀌는지. 2000년도 넘어서부터 제기되었던 문제가 15년이 지난 지금도 계속 반복되고 있는 것 같아요.
이미 우리는 one of them이 된 거 같아요.
우리가 몸담았던 주류 조직은 그냥 하나의 부분이 되었죠.
이번에 인터뷰하는 이유 중 하나가 푸념만 하는 자리가 아니라 문제를 풀기 위한 구체적인 해법을 찾기 위해서거든요. 방금 선생님께서 더 유연한 조직, 더 열린 커뮤니케이션 이야기를 하셨잖아요. 개인들이 서로 영향력을 주고 받으면서 그 안에서 시너지를 만들어내고, 사회에 좋은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이 시민운동의 본래 임무라고 하면요. 조직 내에서의 커뮤니케이션이 잘 일어나지 않는다고 하면 조직을 벗어나서 조직과 개인, 개인과 개인들이 서로 영향력을 주고받을 수 있는 얼개를 잘 만들어내는 것도 현재의 문제를 넘어서기 위한 방향이 될 수도 있겠네요.
그렇죠. 자기 조직의 울타리를 벗어나서 다른 조직하고도 만나고 다른 사람들하고도 접선을 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해요. 국경 도시가 가장 번화한다고 하잖아요. 국경에서 꽃이 핀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아주 이질적인 두 지점이 만나서 전혀 새로운 것들이 만들어져요. 지금 조직의 리더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80년대에 대학을 다닌 세대인가요?
단체의 사무처장이나 사무국에서 중요한 의사결정을 하고 있는 활동가들은 사실 90년대 세대로 넘어간 것 같은데요. 근데 아까 말씀드렸듯이 조직의 의사결정구조에 사무국만 있는 것은 아니니까요. 회원총회도 있고, 운영위원회도 있고… 전체적인 의사결정구조의 상황을 보면 여전히 중요한 의사결정에 있는 사람들은 선배 세대들이 많이 있죠. 저는 거기에서도 눈에 보이지 않는 미묘한 갈등이 있다고 들었는데요. 과거의 운영위원이나 대표들은 사무처장과 동등한 입장에서 서로 상의하고 영향력을 주고 받는 관계였는데 지금은 사무처에는 새로 활동을 시작한 사람들이 많은데 운영위원들은 10년 이상 하고 있는 사람들도 많죠. 서로 영향력을 주고 받는 커뮤니케이션 관계라기 보다는 과거 영향력이 클 때부터 있었던 운영위원들이 지금 활동이 미비한 것에 대해 불만스럽고, 과거보다 일을 못한다고 생각하는 상황도 생기고 있다는 거죠.
충분히 그럴 수 있어요. 그래서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것부터라도 바꿔보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봐요. 바꿔야 할 것들 체크리스트부터 한번 찾아보면 좋겠어요. 그리고 그런 게 자꾸 반복해서 공유되어야 해요. 난 대표들 모아서 워크숍 같은 거 한 번 했으면 좋겠어요. 나이가 들수록 자신의 경험과 성취를 ‘상대화’하는 것, 말하기보다 들으려는 것, 자신이 답이라는 생각을 벗어나는 것을 의식적으로 노력해야할 것 같아요. 이것을 서로 이야기해야하고요.
좀 전에 국경을 활성화시키는 게 중요하다고 하셨어요. 저도 그 지점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요. 전통적인 조직 운동과 새롭게 생겨나고 있는 조직 아닌 조직들, 그리고 홀로 활동하고 있는 활동가들 사이의 경계를 어떻게 활성화시킬 것인가, 이 점에 대해 우리가 고민을 해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얼마 전에 한국여성대회에서도 서로 다른 다양한 그룹들이 모여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어요. 20대부터 60대 후반까지 있더라구요. 나처럼 오랫동안 조직에 몸담고 활동했던 사람들도 있지만 강남역 10번 출구와 관련해서 활동하고 있는 친구들, 디지털 성범죄이슈 등 까지 20대 젊은 층들의 발표를 들었는데 너무도 다양하게 달라진 젊은 세대들의 활동방식과 이들의 생각에 놀라고 고맙고 그랬어요. 이후 바로 후속 모임을 또 하더라구요. 세대간, 영역 간의 여러 사람들이 모여 다시 젊은 활동가들의 활동과 어려움 등을 들었는데 그 자리 선배들은 모두 ‘고맙다’ ‘미안하다’ ‘그랬구나, 우리가 무엇을 도와줄까’ 그러더군요. 이런 반응에 젊은 활동가들도 마찬가지로 놀라고 고마워하더라구요. 자꾸 모여서 서로의 활동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충격도 받고, 접속과 연결점을 찾아보려는 노력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경험한 중요한 계기였어요
리더십에 대한 이야기는 항상 나왔던 이야기죠. 제가 20대 활동가로 일할 때도 시민운동 리더의 역량은 무엇이냐라는 이야기를 많이 했었어요. 누구는 재정을 잘 챙기는 사람이라고도 하고, 누구는 장기적인 사회 비전에 대해 통찰력을 가지는 사람이라고도 하고요. 선생님께서는 오랫동안 현장 활동가에서부터 사무처의 리더, 조직 전체의 리더까지 다 해보셨잖아요. 현재는 비록 좀 거리를 두고 지켜보고 있는 입장이실 테지만 조직의 리더라고 하면 지금 시기에 가장 필요한, 혹은 갖추어야 할 역량과 자질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하나는 변화를 읽어내고 예측하는 능력, 또 하나는 조직 내의 다른 목소리, 작은 목소리를 경청하는 능력이 필요한 것 같아요. 잘 듣는 것만으로는 안 되고 그 안에 어떤 메시지가 있는지를 간파해내는 능력이 필요하겠죠. 제가 재단에 있을 때 기부 때문에 기업체를 많이 방문했어요. 그때 저에게 생긴 습관 중 하나가 그 기업이 어떤 기업인지를 알 수 있는 지표 중의 하나가 사장님하고 제일 말단 직원하고 얘기하는 분위기였어요. 어느 회사는 사장은 앉아있고 직원은 서서 굉장히 긴장된 상태에서 이야기를 하는데 어느 회사는 너무나도 편하게 탁자에 마주앉아서 이야기를 해요. 어린 친구가 뭘 알겠어라고 생각하면서 늘 배제해왔던 이야기, 파워가 제일 작은 사람들의 이야기에 담긴 다른 생각을 듣는 것이 중요하지요 제 경험으로 보니까 3년쯤 되는 시점에 많이 흔들리더라구요. 조직을 나갈까 말까 고민할 때, 전 자신에게 잘 맞는 일을 결정해놓고 그만 두겠다고 하면 100% 그냥 그러라고 했어요. 근데 뭔가 조직에 문제가 있어서 그만 둔다고 할 경우, 조직 안에서 해법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을 때는 붙잡게 되죠.
방금 말씀하신 더 좋은 일의 기준은 뭘까요?
그건 자신이 더 좋아하는 일, 더 잘할 수 있는 일이지요. 활동가가 처음부터 그런 일을 만나는 것은 아니니까요. 처음 만난 일이 딱 맞는 일이기도 하지요. 그러나 일의 경험이나 시야가 넒어지고, 다른 가능성을 보게 될 때 활동가 개인은 자신에게 더 끌리고, 더 잘할 수 있는 일을 보게 되거든요. 그러면 그런 선택은 정당하고 현명한 일이겠지요.
사회에 좋은 영향을 미치기 위해, 사회 변화를 위해 활동하는 조직이 다양해졌어요. 이제 시민단체 뿐만 아니라 중간지원조직도 있고, 사회적 기업도 있고, 협동조합도 있고요. 이 분야에서 일하는 친구들도 많아요. 근데 이 친구들이 생각하고 추구하는 가치가 시민운동하는 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거든요. 단지 그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서 어느 조직을 선택하느냐의 문제일 뿐이죠. 그렇게 보면 시민사회의 영역을 너무 협소하게 보지 말고 이런 영역까지 넓혀서 생각하고, 서로 인정하고 교류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또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활동가라고 하는 범주도 굉장히 넓어질 수 있을 것 같구요.
그렇죠? 우리가 전통적인 활동가, 전통적인 조직의 프레임에서 벗어나는 게 지금은 필요해요. 그리고 실제 과거 전통적인 조직에 있던 친구들이 이런 새로운 형태의 조직에 많이 들어가 있더라구요. 젊어서 시민단체 일하다가 이제는 마을 쪽 일하는 친구들도 많구요. 도서관운동, 생협운동으로 이동한 친구들도 있죠. 그런 다양한 것들이 이제 막 꽃피우는 시기잖아요. 개인 활동가와 조직 활동가 간의 경계도 중요하지만 전통적인 조직과 협동조합, 사회적 기업, 소셜 벤처 사이의 경계를 활성화시키는 것도 중요해보여요. 사실 이런 여러 가지 형태의 활동이 등장하는 것은 너무 당연한 거지요. 옛날에 우리는 애드보커시를 했던 조직들이잖아요. 근데 그 유형이 그냥 여러 유형중 하나로 정착이 되고, 또 필요하면 대거 모여서 뭔가 이슈를 만들어내고 그런 거겠죠. 나는 오히려 시민운동이 다양성이 높아져야 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시민운동에서 다양한 개인들, 다양한 조직들, 다양한 이슈들이 어떻게 만나는지를 잘 살펴야 하고, 이런 만나는 지점들을 활성화시키는 것이 시민운동 목소리가 커지는 기회가 아닐까 싶어요. 서로 각자의 역할이 있는 거니까.
저는 시민운동의 재정의는 이미 2000년 이후에 했어야 된다 생각하구요. 재정의를 하거나 개념을 바꿨어야 하는 거죠. 지역에서는 필요한 일을 그냥 하더라구요. 주부들도 그렇고 자기들이 해버리고요. 그 다양성은 보면 말할 수가 없이 많아요. 그게 마을공동체운동, 풀뿌리운동 등 여러 가지 용어로 설명이 되고 있는 거죠. 이러한 다양한 운동들이 등장했는데 상대적으로 이를 설명하는 언어와 토론들이 그만큼 활발해보이진 않아요.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개인들, 조직과 지역들에서 벌어지는 활동들이 어떻게 전개되고, 엮여지고, 강화돠고 약화되는지 등이 소란스럽도록 이야기되어야 할 것 같아요.
뿌리가 흔들리고 큰 변화가 요구되는 시점에서는 좀 급진적 논의나 활동이 많아졌으면 해요. 이 시대에 급진적이지 않으면 우리가 뭘로 존재할 수 있을까 싶어요. 생존할 수는 있겠지만 우리가 생존이 목적은 아니잖아요. 실질적 변화를 만들어내는 어떤 문화나 힘을 창출해내는 게 목적이기 때문에 지금 우리가 어디에 서있는지, 어디를 향해 발을 딛어야할지를 보다 분명하게 생각해야겠지요. 이런 점에서 기존 운동의 지체현상이 아주 오래된 것 같아요.
지금 개인적으로 자유롭게 활동하시면서 기대하는 게 있으신가요?
나는 그냥 잘 살고 싶어요. 내가 스스로 존재감을 만들어 내며 살고 싶다는 거예요. 타인의 평가, 사회적인 가중치로부터 좀 자유롭고 싶단 생각이 들고요. 아무래도 민주주의의 제도화, 구조화된 운동, 조직과 집단적 활동에 익숙했던 세대로서 그 관성과 익숙함을 털어내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한 것 같아요. 그러나 그 운동방식은 벗어나야 할 것이지만 한편 지금 운동의 태반이 되는 것이어서 현재를 비춰보는 거울처럼 여겨야겠지요. ‘옛 것은 지나갔는데 아직 새 것은 오지 않았다’는 말이 있잖아요. 그런데 새 것은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니까 새로운 사회, 새로운 정치와 운동에 대한 큰 그림과 방향이 이야기되면 좋겠어요.
거대담론이 한동안 공허하게 느껴지기도 했는데 이젠 그걸 이야기 해야 할 때인 듯해요. 내가 활동가로서 시행착오를 참 많이 했던 거 같아요. 그래도 놓치지 않았던 것은 나는 어떻게 살고 싶은 것이냐, 내가 가졌던 가치 있고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지켜가면서 산다는 게 도대체 뭘까라고 하는 생각을 참 많이 했던거 같아요. ‘나 자신과의 통합’을 이루고 싶었던 것 같아요. 안 그러면 난 숨을 못 쉴 것 같았거든요.
옛 것은 지나갔는데 아직 새 것은 오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이번에 광장에 나가보셨죠? 그때 어떤 느낌이 들던가요?
한 가지 다른 건 깃발이 너무 다양해진 거에요. 놀랬어요. 심지어 변리사 깃발도 있구요. 보육교사 깃발도 있고, 깃발에 맘대로 원하는 주장을 쓰고, 아래 이름도 만들어 넣고 깃발의 크기와 색깔, 로고도 너무 다양해졌더라구요. 민주노총 무슨 지부 등 많이 보았던 깃발도 있었지만 전처럼 두드러지게 보여진 건 아니었어요. 그리고 여러 작은 골목길 안에서 자기 식대로 꽹과리 치고 노래하고 기도하듯 홀로 있거나 가족끼리 앉아 있는 모습들도 봤구요. 다들 기록을 하고 싶어하는 것 같더라구요. 이 거대한 시대적 흐름 안에 내가 있었다는 것을 기록하고 싶은 마음 같은 게 느껴졌어요. 2008년도 광우병 집회할 때, 제가 꽤 인상 깊게 본 게 다들 각자의 자기 글씨체로 자기가 쓰고 싶은 이야기를 쓰고 온 것이었거든요. 그게 너무 기쁘더라구요. 좋았구요. 이번에는 당시보다 훨씬 다양해졌더라구요. 그때하고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아지고, 구성원들도 다양화되구요.
저는 사는 곳이 시골인지라 직접 광장에 나가지는 못하고 페이스북 라이브로 보곤 했는데요. 저는 사람들이 그런 공개된 장소에 나가서 모이고 교류하면서 조금씩 성장하기 시작한다고 생각하는 편이거든요. 근데 어떤 의문점들이 드냐면요. 87년에는 거리에서 집회를 통해서 직선제를 쟁취했던 말이예요. 대통령은 노태우가 되긴 했지만요. 어째튼 성공의 경험이죠. 근데 그 이후에 2002년, 2008년 거리의 촛불집회가 대규모로 있었어요. 하지만 그래서 도대체 뭐가 바뀐 거냐, 또다시 이런 과정을 통해서 개인들이 성장하는 것도 있지만 더 큰 절망감이나 좌절감 같은게 생기지는 않을까라는 생각도 들더라구요. 우리가 함께 쟁취해냈다는 경험이 없는데 혹시 그런게 시민사회나 활동가의 폭을 더 좁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구요.
한 구석에서 그런 두려움이 없지 않아요. 지그문트 바우만이 ‘진보는 추의 운동’과 같다고 했지요. 좌절된 혁명들이 누적되면 불행하긴 하지만 그게 끝이고 그게 전부는 아니겠죠. 결국 누구보다 먼저 다시 일어서야 하는 길을 찾아나서야 하는 것은 결국 운동이 아닐까요. 활동가가 겪어야 할 희노애락이 있지요. 그러나 그런 굴곡들을 견디고 다시 시작하고 하는 힘의 원천은 무엇보다 활동가 개인 안에 있는 것 같아요. 어느 조직에 있든, 어떤 형태의 사업을 하건 그건 그 다음의 문제일지도 몰라요. 한 개인이자 활동가로 자신의 삶을 단단히 주조해가기 위해 자신만의 방법과 탄력이 필요한 것 같아요. 다양한 경험과 관계에 스스로를 노출시켜가면서 교류하고 배우면서 자기 사유의 근력을 키워야겠지요. 다른 것들과의 조우, 일탈적 경험이 주는 힘을 바탕으로 자기 삶을 리드해가는 것, 그게 정말 필요한 일이죠. 정신적인 깊이나 단단함 이런 것들 갖춰나가지 않으면 어떻게 다른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겠어요. <끝>
_ 조아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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