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활동가인터뷰] 동네에서 주민들과 재미있게 노는 사회운동 활동가, 김광원

김광원을 처음 만난 거 오래 전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이 주최한 풀뿌리운동 활동가 워크숍에서였다. 당시는 수많은 참여자 중 한 명이라 그냥 스쳐 지나간 정도였다. 그냥 격식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영혼? 정도가 첫 인상이었다. 그 후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 좀 더 자주 만나면서 ‘까칠’하다는 인상을 갖게 됐다. 단지 특정 사안에 대해서만 그런 게 아니라, 운동 내부의 문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사람에 대한 까칠함은 그리 좋아하지 않지만, 이런 류의 까칠함을 보이는 후배는 일단 호감이 가는 편이다.

김광원과 함께 사는 파트너도 수원과 행궁동에서는 상당히 인정받고 신뢰받는 활동가다. 그런데 반전은, 이 부부와 함께 있으면 옆에 있는 내가 민망할 정도의 ‘닭살 부부’라는 점이다. 그래서 이 인터뷰에서도 가끔 그 파트너가 등장한다.

그 후 좀 더 친해지면서 일용건설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한다는 걸 알게 됐다. 건강한 노동자로 살아가는 활동가. 그래서 더 호감이 갔다. 운동이 경제활동 수단이 아니니 운동 내부 문제들에 대해서도 자유롭게 까칠함을 유지할 수 있다. 그리고 시민운동단체의 ‘자원’활동 경력이 상당하다. 오랫동안 특정 단체에 상근하지 않고, 자원활동가로만 활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풀뿌리운동에 주로 관심을 가져온 내게 이는 매력적인 활동가의 모습이다.

김광원과는 참여예산 활동을 하면서 보다 많이 친해졌다. 그러면서 수원 지역에서만이 아니라 행궁동이라는 동네에서도 열심히 활동하는 모습을 비교적 가까이 볼 수 있었다. 최근에는 농반 진반으로 행궁동의 신진 유지라고 놀리기도 한다. 그만큼 동네에 튼튼하게 뿌리를 내리고 활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많은 주변 활동가들과도 마찬가지긴 하지만, 이 사람과도 개인적인 대화를 깊게 나눠 볼 기회는 별로 없었다. 그래서 겸사겸사 연락을 해 인터뷰 하자고 청했다. 개인적으로 친한 관계에서 인터뷰 한다는 것이 좀 쑥스러운 일이긴 하지만 흔쾌히 그러자고 해 그 신진 유지가 살고 활동하는 수원시 행궁동을 찾았다.



동네에서 놀고 활동하고...


요즘 뭐하고 지내요?

예전 같이 동네에서 놀고 있죠. 작년까지만 해도 동네 청년들이나 주민들과 그냥 술 먹는 모임, 친구 모임 같은 것들이 주였는데, 그래도 요즘은 이런저런 일들과 관련한 동네 모임들을 많이 하고 있어요.

재작년하고 작년에는 동네 공공 한옥 문제 갖고 주민들하고 열심히 했어요. 수원시에서 우리 동네에 공공한옥을 만들면서 주민들의 모임 공간 등으로 활용할 수 있다고 했어요. 처음엔 그랬는데, 재작년부터 이 공간을 임대해 줘 까페가 생겼어요. 그것도 프랜차이즈 까페가... 그래서 애초에 말한 대로 그 공간을 주민들에게 돌려 달라고 싸웠죠. 우리 동네에 이미 까페들이 많이 있거든요. 그래서 왜 시가 임대사업자처럼 공간을 사용하냐고 문제제기 했죠. 동네 까페 주인들하고 동네 청년들하고 모여서 이런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동네 신문에 싣기도 하고..

작년에는 화성 어차가 동네로 들어오는 것 때문에 이에 반대하느라 주민들하고 여러 활동들을 했어요. 시에서 어차를 바꾸면서 운행 경로도 바뀌었어요. 새로 도입한 어차가 애초 출발지인 팔달산을 올라가지 못했기 때문이에요. 그러다보니 이 어차가 평지를 운행하게 되면서 동네로 들어오게 된 거예요. 그래서 주민들의 반대가 컸죠. 우리 동네는 차 두 대가 못 지나가는 좁은 길인데, 여길 어차가 지나가면 그만큼 교통사고 위험이 높아지거든요. 그래서 학부모들도 안전문제로 반대하고... 일반 주민들도 “우리가 동물원 원숭이냐?” 하면서 반대하고. 그렇게 주민들과 함께 반대해서 결국 막아냈어요. 공공한옥 건은 실패했지만...

그래도 주민들이 모여서 뭔가를 한다는 경험은 좋았어요. 성공하든 실패하든 간에... 이런 문제 때문에 몇 번 모이고 나니까, 주민들이 동네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어요. 그래서 주민들이 동네 모임 하자고 해서 비전 모임이 시작됐어요. 비전 모임에서 주민들은 부담 없이 모여 동네 이야기를 하곤 해요. 그러다보니 동네 모임이 활성화되고 있어요. 최근엔 벼룩시장도 시작하고...


벼룩시장? 그건 여러 지역에서 하고 있는 거잖아... 좀 색다른 게 있나요?

우리랑 친하게 지내던 작가가 있는데, 마을 비전 모임에서 동네 벼룩시장을 한 달에 한 번 하면 좋겠다고 제안했어요. 이런 회의도 좋지만, 사람들이 부담 없이 올 수도 있고 자연스럽게 동네 이야기도 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고 싶다고... 동네 사람들이 그거 좋겠다고 해서, 3주 전부터는 매 주 해요. 작가는 그림도 갖고 오고, 노영란(김광원과 함께 사는 파트너)은 책을 좋아하니 책이 많아 책 갖고 나가 팔고, 나는 그걸 판 돈으로 술 사먹고... 지난 주에는 파전 만들어 먹기도 했어요. 우리끼리 어울리고, 지나가던 동네 사람도 함께 어울리는...


비전 모임은 어떻게 시작하게 됐어요?

계획적으로 시작한 건 아니고... 수원시에서 주민자치회를 전면 시행한다고 했는데, 아직까지 8개 동에서 시범실시만 하고 있어요. 게다가 초기에 시범 실시했던 곳은 기존 주민자치위원회와 별 다른 것도 없고... 여기에 대해 뭔가 대처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수원 활동가 몇 사람이 모임을 시작했어요. 그 때 호 샘도 와서 교육하고 그랬잖아요.

그러면서 이 힘을 동네별로 모으자. 위에서 주민자치를 시행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동네마다 학습모임을 만들자고... 시범실시 하는 지역부터 하자고 합의해서 우리 동네에서도 모임을 만들었어요. 그러다 최오진 전 마을르네상스 센터장이 동네 도시재생 현장 센터장으로 오면서 생태교통 페스티발 후속모임 만들자는 제안을 했고, 이야기가 급진전 됐죠. 그래서 관심 있는 사람들 만나서 같이 이야기하는 모임 만들게 된 거예요. 그러면서 젊은 주민들만이 아니라 나이 든 어르신들도 참여하게 되고... 동네 대화모임 같이 된 거에요.

한 50명 정도가 참여하고 있어요. 이 모임은 누구에게나 개방돼 있어요. 단톡방에 들어와 있는 주민이 그 정도라는 거예요. 그러다 모임 운영하는 게 좀 복잡해져서 대여섯 명으로 운영진을 꾸렸어요. 주로 전체 모임 준비하는 역할을 해요. 그런데, 운영진 단톡방을 따로 만들지 않고 전체 단톡방에서 운영진 모임 관련해서도 공지해요. 운영진 아닌 사람도 운영진 모임에 시간되면 올 수 있게... 편의상 운영진을 만들었지만, 운영진끼리만 모여서 회의하고 그런 일은 없어요. 운영진이 아니더라도 시간 되고 관심 있는 사람들은 항상 참여할 수 있게 하고 있어요.


벼룩시장, 비전 모임 외에는 요즘 어떤 활동을 하고 있어요?

전부터 특별히 하는 거 없었어요.(웃음) 처음에 행궁동 청년회 만들 때는 목적의식적으로 인문학 공부도 하고 그랬어요. 그런데, 모임을 하다보니 밴드하고 싶은 사람들은 밴드모임 하는 식으로 나갔죠. 이런 건 사명감으로 하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하는 건데, 그게 더 재밌더라구요. 사명감과 기존 운동을 하는 방식으로 동네를 바꿀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하게 됐죠.

청년회 모임을 하다보니 동네 청년들의 혼밥이 없어졌어요. 그걸 보면서 내가 의식적으로 하지 않더라도, 사람들이 모이면 하고 싶은 것들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그래서 기존의 운동을 하는 방식보다는 자연스럽게 하고 싶은 것들을 하는 게 더 좋아지더라구요. 솔직히 동네 사람들은 일 끝나고 쉬고 싶은 데 동네에서 또 다른 뭔가를 하고 싶겠어요. 그런데 모여서 놀자고 하면 부담 없이 오더라구요. 그렇게 놀다보니, 우리가 굳이 의식하지 않았는데도 사회적 문제에 대해서도 함께 찾아가면서 해결하기 위한 활동들이 나오더라구요. 공공한옥이나 화성 어차 같은 문제도 그렇게 시작됐어요. 벼룩시장도 그렇거든요. 내가 의식적으로 뭘 하겠다는 게 아니고, 한 명이 그런 생각을 하다가 모여서 그런 이야기를 하니까 자연스럽게 그런 활동으로 이어지잖아요. 그래서 운동 마인드로 뭔가 끌어가려고 하는 것보다, 자리를 마련하고 거기서 자연스럽게 어떤 활동으로 이어지고...


그런 방식이 좋은데, 그건 행궁동이 가진 특징도 영향을 끼치지 않았을까? 행궁동은 골목길도 존재하고 외부로부터 좀 단절돼 있는 오래된 동네라는 특징 같은 거... 그래서 공공작가들도 많이 거주하고, 생태교통 페스티발 같은 국제적 행사를 치러내면서 동네 주민 거점들도 많이 생기고...

꼭 그렇지만은 않은 거 같아요. 물론, 이 동네 주민들에게는 자부심이 있어요. 근처에 팔달산도 있고, 살기 좋다고 하는... 또 동네 청년회가 만들어진 것도, 생태교통 페스티발 전에 기타반을 하다가 뒤풀이 하면서 청년회 만들어보자고 해서 만든 거에요.


기타반? 누가 만들고 가르쳤어?

내가... 야매로... 잘 치는 건 아니고... 그냥... 그렇게 계속 모이고... 사람들이 물어봐요. 옛날부터 친했던 친구냐고... 거기에는 외부에서 새롭게 이 동네로 이주한 사람들도 있어요.


그래도 그 멤버들이 동네에서 주로 일하고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라는 특징은 있지 않을까?

그렇죠. 공방사람들도 있고 작가들도 동네에서 시간을 많이 보내죠. 혼밥은 동네 사람들이 해요. 낮에도 있는 사람이...


낮에 동네에 젊은 사람들이 많이 있는 게 행궁동의 특징 아닐까?

동네에서 가게 하는 사람들 중에 젊은 사람들이 많은 건 사실이에요. 또 그 사람들이 대부분 이 동네에 살고 있기도 하고...


* 동네 탁구대회



동네 비공식 모임 활동에서 신진 유지로 입지를 다지다.


이런 자연스런 모임이 주민자치회 같은 공식적인 주민조직들과 관계를 맺게 된 계기가 있었을 텐데...

이들과 청년회 간 조직간 관계를 맺지는 않았어요. 개인적 관계로... 내가 참여예산 지역회의 위원을 하니까... 내가 꼬셔서 청년들 몇 명이 주민참여예산에 참여하기도 하고... 그리고 최근에 4명이 주민자치회에 들어갔다가 다 나왔어요. 한 명은 통장을 하기도 하고... 이 정도 경험을 갖게 된 거죠.


그래도 동네 청년들이 주민자치회에 들어가는 등의 계기가 있을 텐데. 자연스런 모임의 장점도 있지만, 단점도 있잖아. 자연스런 모임에서는 주민자치회에 들어가자 이런 얘기가 잘 나오지 않는데...

물론, 동네 친구들이 모이면 동네 이야기만 하지는 않아요. 드라마 이야기도 하고... 그러다 한 번쯤은 동네 얘기 하거든요. 뭐가 불편하다는 등. 그러면 필요한 정보를 주는 거죠. 주민자치회에도 한 번 들어가면 좋겠다 등. 처음에는 그런 얘기 해봤자 씨알도 안 먹히죠. 그래서 처음엔 그냥 놀았어요. 술 먹고... 그러다가 어떤 이야기 속에서 자연스럽게 이런 저런 사회적 주제로 발전하기도 해요. 가끔은 그런 주제에 대해 치열하게 얘기하기도 해요.

그러면서 서로서로 영향을 주면서 변해가요. 나도 전에 비해 훨씬 유연해지고... 그렇게 시간이 지나다보니 동네 이야기도 하게 되고... 처음부터 이런 얘기 하면 이런 신뢰관계가 형성 안 되죠. 동네 공공한옥 문제도 그래요. 서로 신뢰하는 관계가 먼저 만들어져 있으니까 자연스럽게 이 문제에 대해서도 이야기할 수 있게 된 거죠. 이 얘기가 나오니까 운동 근처에도 가본 적 없는 한 명이 TV 등에서 봤다며 피켓 시위 해보자고 제안한 거예요. 그래서 피켓 들고 시위도 하고 그랬죠.


* 동네 청년들과 공공한옥 까페 임대 반대 피켓팅 중


전에 들은 바로는 주민자치회와도 함께 일 해본 적이 있다고...

제가 동네 축제 준비하는 사무국장을 한 적이 있었어요. 나혜석 축제... 무대 세우고 공연하는 것보다 동네 공방 등의 공공예술 작가 등과 함께 나혜석 책 읽기, 낭독하기 등을 하면서 여성문제를 함께 나누는 식으로 이야기 많이 했어요. 동네 축제다보니 동네에서 문화제 추진위원회 같은 거를 주민들이 만들게 되고, 몇 년 전부터는 주민자치회에서 주관해요.


광원씨에게 왜 그 축제 사무국장을 맡겼을까? 기존 유지들은 좀 폐쇄적인 편인데...

유지들 중에도 스펙트럼이 다양해요. 그 중에 젊은 층과 교류하려는 사람도 있어요. 이 분들이 다른 분들 설득해서 청년회와 함께 하자고 설득한 거죠. 그러니까 이 분들이 먼저 저에게 손을 내밀었어요.


동네에 청년회가 있다는 걸 그 사람들이 안다는 것 자체는 이미 관계가 있었다는 건데...

제가 참여예산 지역회의 활동하다보니 좀 알려졌죠. 지역회의에는 동네 어르신과 유지들도 들어와 있어요. 제가 지역회의 초창기에 총무를 했거든요. 총무도 하고 수원시 주민참여예산 연구회에도 참여하고, 수원시 주민참여예산 네트워크 활동도 하다보니, 내가 지역회의에서 안내자 같은 역할을 하게 된 거예요. 그러면서 동네 청년회가 있다는 소개도 하고...

참여예산 지역회의 활동을 동네에서 잘 써먹고 있어요. 한 번 알려지니까, 연구회 회장일 때 동네 어르신들이 “연구회 회장이래” 하면서 인정해 주고... 참여예산 네트워크 활동도 하니까 수원시 예산에 대해서도 공부했는데, 동네에서 놀이터 만들어달라는 요구를 오래 전부터 했어요. 거기에 제가 수원시에서 그 예산이 잡혀 있다는 정보도 주고 하니까 저를 신뢰하게 됐죠. 그러면서 동네에서 예산 전문가로 인정도 받게 되니, 또 주민들이 이러저러한 일로 상담도 하고 문의하기도 하는데 그에 잘 응하니까... 그렇게 인정을 받게 된 거죠.


동네 도시재생 주민협의체에도 참여했다고 알고 있는데...

옆 동네가 도시재생 지역인데, 주민협의체 운영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위원들이 주변 사람들에게 이리저리 문의하다가 저를 소개받게 된 거죠. 제가 동네에서 예산 전문가로 인정받기도 하니까, 결산서 보는 것 도와달라는 요청을 받았어요. 그래서 참여했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TF 팀 꾸려서 사업계획 세우는 것까지 다른 위원들과 함께 하고 전 빠졌어요.


* 마을대화모임



건강한 노동자이자 전문적인 자원 활동가


이 동네에는 어떻게 이사 오게 됐어요?

결혼하고 처음 산 곳은 병점의 계단식 아파트에요. 3년 살았는데, 옆집 사람을 서너 번밖에 못 봤어요. 너무 소통이 없는 거죠. 그러다 아까 얘기한 나혜석 축제가 열리는 거리인 행궁동 발전위원회가 생기고 함께 사는 노영란씨가 여기서 여러 일들을 하기 시작했어요. 그러면서 이 동네 사람들 사귀기 시작했고, 아는 사람이 있고 동네 사람들이 있는 이 동네에 이사 오자고 했어요. 집을 찾다가 여러 조건이 맞는 이곳으로 이사했어요.


그 전에는 어떤 일 했는데?

건설노조에서 상근했어요. 물론, 여기 이사 올 때는 현장 일을 시작했고... 건설노조에서 상근할 때 상근자들끼리, 언제까지 상근만 할 수 있겠느냐, 전문 상근직은 옳지 않다는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그래서 현장 일을 따라다니며 미장일을 배웠죠.


노조 활동 하다가 어떻게 동네 일을 지금처럼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됐어?

매일 저녁마다 상근자들끼리 논쟁이 많았어요. 이런 논쟁을 조합원들과 하지 않고, 우리끼리만 했어요. 소모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우리끼리 논쟁하기보다는 조합원들과 많이 만나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 때 조합원들 만나듯이 동네에서 주민들을 만나야 한다는 고민도 했죠. 그러다가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을 만난 거예요. 이음을 통해서 나도 노조 안에서 소모적 논쟁을 하기보다, 조합원이나 동네 주민들과 만나는 활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다산인권센터에 가입해서 소모임 활동도 하고 그랬어요.

책에서도, 세계화가 오는 데 이 걸 극복하는 길은 지역에서 주민들과 뭘 해야 한다고 강조하잖아요. 그래서 참여예산 활동도 했어요. 노조상근 그만두고는 주로 동네 일 했죠.


‘풀자연 이음’이 광원씨의 지금 활동에 좋은 큰 영향을 미쳤네.

예. 처음 참여예산 활동을 할 때 그 활동 공간이 너무 시 중심인 거예요. 그래서 수원시 주민참여예산 연구회도 그만두고 지금은 지역회의 활동만 해요. 그리고 ‘수원여성회’ 사무실이 이 동네 근처로 이사했어요. 그래서 여성회 회원들하고도 모임을 해요. 의회 방청도 하고, 본인들 관심사가 나오면 그걸 시에 제안하거나 의원들에게 제안하는 등의 소모임 활동도 하고 있어요. 그래서 작년에 시랑 관계된 건 다 그만뒀어요. 동네 모임 만들자고 생각했는데, 기회가 잘 맞아서 비전모임도 만들고 그러고 있어요.


김광원 하면 지역 시민운동단체에 상근하지 않고 자원 활동가만 오래 했다는 걸로 유명한데... 자원활동가 이력 좀 소개해줄 수 있어?

처음엔 평화인권연대, 청년 생태주의자 키에서 자원 활동했어요. 수원에서는 다산인권센터, 환경운동센터 등에서 자원활동가로 일하고 있어요. 지금은 수원여성회에서도 자원활동하고 있고요.


그런데, 자원활동가의 의미는 뭘까?

상근 활동가는 아니고, 또 부를 때만 가는 회원도 아니죠. 소모임을 운영하거나 이에 참여하는 등 적극적인 회원이 자원활동가 아닐까요?


이렇게 많은 활동을 하면서 현장 노동일까지 하는 건 너무 힘들지 않아? 현장 노동일이 주 생계수단이잖아?

노가다 일도 지금은 많이 좋아졌어요. 최근 임금이 많이 올라서, 기술자들은 꽤 괜찮게 벌어요. 저는 현장에서 그래도 손 빠른 기술자로 통해서, 내가 필요하면 잘 상의해서 빠지곤 해요. 한 달에 13일 정도 일해요. 최근 코로나로 일을 거의 안 하지만...


노동운동은 어떻게 하게 됐어?

제 사회운동 이력은 학생운동부터 시작돼 노동운동과 현재의 운동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돼요. 학생운동 할 때도 전통적인 마르크스주의에서 벗어나 여성, 평화, 환경 등으로 관심을 넓혔어요. 제가 속한 그룹은 주로 알튀세르의 책을 보면서 공부했어요. 그래서 우리가 주도해 학교에서 환경운동 그룹을 만들기도 했어요.

그런데, 나는 그때부터 비정규직 노동운동에 관심이 많이 갔어요. 그 때에도 비정규직과 정규직 노조 간 갈등이 생기곤 했어요. 그걸 보면서, 운동이 이렇게 조직 중심으로 가면 이런 폐단이 있구나, 운동도 기존의 것이 아닌 뭔가 새로운 형태가 필요하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비정규직 노동운동에 관심이 많았어요.

그렇지만, 노동운동이 아닌 운동에도 관심이 많기는 했어요. 그래서 평화인권연대, 청년 생태주의자 키 등에서 활동을 계속했죠. 그리고 여성모임에도 참여했어요. 대표적으로 여성 100인위원회 활동(정식 명칭은 ‘운동사회 성폭력 뿌리 뽑기 100인위원회’)에도 참여했어요.


그럼 이런 활동들은 학생운동 시절에 병행한 건가?

음~~ 학교 관둔 후에요. 학교에선 짤렸죠. 데모하다가 학사경고 받아서 짤렸어요. 학생운동 한다고 한 과목 빼고 일괄적으로 F를 주더라고요. 짤리고도 계속 학교에서 운동하다가 군대 갔다 와서 평화인권연대 등에서 자원활동 시작했어요.


* 행궁동 청년들


요즘에는 주로 어떤 고민을 많이 해요?

주민자치회 등에 들어가 그런 기존 조직을 바꾸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 조직을 보다 튼튼히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비전모임도 마을회의 같이 바꾸면 좋겠다는 생각 등 조직 형태를 바꾸는 게 좋겠다는... 전에는 편하게 많이 모여서 기반을 넓혔다면, 지금은 공식적 모임이 아니더라도 자생적인 모임을 좀 더 공고히 해야겠다고 생각해요.


개인적으론?

동네에서 계속 기반을 넓혀가는 게 재밌어요.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시각이 넓혀져요. 동네를 알아가고 사람을 알아가고... 옛날 운동과 달리 동네와 사람을 넓혀가며 만나가는 게 좋아요. 재밌게 사람들하고 놀고 싶어요. 저는 혼자 노는 건 잘 못해요.


함께 사는 영란씨가 수원지역 시민사회운동가들에겐 광원씨보다 더 신뢰를 받는 활동가라 알고 있는데...(웃음) 어떻게 만났어?

효선 미순 촛불집회 하면서 만났어요. 그 때 제가 노동운동에서 지역으로 넘어오려고 ‘다산인권센터’에서 소모임하고 그럴 땐데, 노영란은 센터 활동가였어요. 촛불집회 끝나면 매번 뒤풀이를 했는데, 그러면서 잘 알게 됐죠.

전쟁 중에서도 사랑은 싹 튼다고... 그러면서 정분이 났구나(웃음)


_ 인터뷰어 : 이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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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년 활동가이야기주간 프로젝트 일환으로 기획/진행한 '활동가 인터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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