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에서 인천공항을 연결하는 공항철도를 탔다. 캐리어를 챙긴 여행객 마냥 어딘가 떠나야 할 것 같은 기분이다. 김포공항역을 지나자 숲과 밭이 펼쳐지는 창밖 풍경도 낯설다. ‘검암역'에서 내렸다. 우동사(‘우리동네사람들' 줄임말)가 있는 곳. 우동사에서 살고 있는 수정을 만나기 위해서다.
수정은 바라는 삶을 고민하며 자립기술을 익히는 비전화공방에서 만났다. 비전화공방은 '제작자'라는 이름으로 1년 동안의 교육과정을 진행한다. 2017년 대학을 막 졸업하고 온 수정은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호기심어린 에너지가 가득했다. 제작자를 마칠 무렵, 그간 배운 것들을 자신의 삶에 녹였다. 자립하고 싶다고 했다. 우동사에서 뜻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 강화도에서 1시간 배를 타야하는 '볼음도'에서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은 잠시 멈춘 상태. 그 틈에 말을 건넸다. 20대 중반 그녀가 우동사에서 살고 있는 경험, 비전화공방과 볼음도에서 농사짓는 생활이 어떻게 남았는지 궁금했다. 그것을 바탕으로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까.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중심을 찾아가는 과정이 활동가의 삶이지 않을까.
만나자마자 수정이 동그랗게 웃는다. 말꼬리가 올라가는 특유의 말투, “재은! 왔어? 오랜만이다, 그지?” 나도 웃으며 큰 포옹을 나눴다. 수정의 건강하고 씩씩한 에너지가 전해진다.
* 사진출처: 남수정
뜻을 함께하는 관계, 안정감에 대해
수정은 우동사에 산지 2년 반이 다 되어 간다. ‘우동사'는 인천 검암동에서 적게 벌고 적게 쓰는 라이프스타일을 지향하는 마을공동체를 만들어가고 있다.
우동사에서 어떻게 살게 됐어요?
“책 보고 찾아갔어요. 마을공동체에 관한 책을 읽는데 '이거다' 싶었죠. 어느 마을이든 들어가고 싶다고 했더니 마침 불교단체에서 활동하던 친언니가 소개해줬어요.”
어떤 부분이 끌렸던 걸까요?
“지금도 자주 생각하는 건데요. 우동사에 사는 목적이 단순한 주거 셰어는 아니에요. '같이 산다는 건 무엇인지, 어떤 이유로 같이 살고자 하는지, 나는 어떻게 살고 싶은지' 각자의 기저에 있는 욕구나 바람을 물어가는 관계에 집중한다는 점이 끌렸어요.”
알듯말듯 하네요. 각자의 기저에 있는 욕구나 바람을 물어가는 관계라니.
“저도 처음엔 쭈뼛쭈뼛했어요. 같이 사는 게 좋다는 생각은 해도 제대로 관계 맺으며 살아본 경험이 없더라고요. 말을 어떻게 붙여야 할지 모르겠는 거죠.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러워졌어요. 원룸 살 때와 비교해보면 정말 달라요.
사람은 사람을 필요로 하는 것 같아요. 힘들거나 외롭다는 생각이 들 때 '알아줘'하는 마음이 있잖아요. 보통 SNS에 올리기도 하는데 저는 익숙하지 않아요. 그냥 같이 사는 사람들에게 "나 힘들어. 왜 이렇게 답답한지 모르겠어" 툭 얘기를 꺼내도 대화가 깊이 이어가요. 꺼낼 사람이 있다는 게 큰 차이예요.”
그러게요. 혼자 사는 것과 정말 다르겠어요.
“새로운 가족을 경험하는 것 같아요. 가족이라고 하면 '안정감'이 떠오르는데요. 우린 어떤 계약관계도 아니에요. 세입자 이런 개념도 아니고요. 계약서도 안 쓰고 혈연도 아니지만 안정감이 커져가는 게 신기해요.”
우동사에서 안정감을 느끼는 사람들의 규모는 얼마나 될까요?
“우동사는 5채 정도의 집이 있고. 다 합치면 20명 정도 살아요. 주변엔 이웃들이 있어요. 초기에 공동주거를 하다가 다른 집으로 이사한 사람들도 있고 뜻이 맞는 친구들이 검암으로 자리 잡은 경우도 있고요. 먼 동네로 이사 갔지만 계속 오며 가며 놀러 오고, 놀러 가는 만남도 있어요. 모두 포함하면 몇 명이나 되려나. 저도 궁금하네요.(웃음)”
마음을 주고받는 사람들 모두가 우동사군요. (웃음)
“맞아요, 뜻을 함께하는 느낌이요. 여기서 우리가 같이 사회를 만들어가고 있다는 생각을 해요.”
어떤 사회를 만들어가는 것 같아요?
“지금 말하는 사회는 사실 보이지 않죠. 머릿속에 있는 개념이에요. 다들 어떤 사회에서 살고 싶다는 이미지는 있잖아요. 예를 들어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그게 가능한 사회에서 살고 싶다고 했을 때 공감하는 사람들이 모이면 그런 사회가 되어가지 않을까요?
사회란 사람들의 합이라 생각해요. 한 명 한 명이 살고싶은 방식으로 살고, 혼자선 어려우니까 서로가 도우면서 가능해지는 것. 그렇게 살고싶은 사회를 만들어가는 거 아닐까요?”
어려운데요? 막상 같이 살다 보면 자잘한 것에 싸우기도 하고. 사회고 뭐고 시야가 좁아질 때가 있잖아요.
“우동사도 시행착오가 많아요. 그냥 되는 건 아니에요. 단지 모였다는 이유로, 마음만으로는 안 되는 것 같아요. 각자가 자신을 알아가려고 탐구한다고 해야 할까요. 자기를 알아가려는 움직임이 모이니까 시너지가 나요. 같이 사는 데에도 도움이 되고요. 자기를 알아가다 보면 타인을 이해할 수밖에 없으니까요. 나, 타인 그리고 사람을 이해하는 것이 자연스러워요. 그런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이에요.”
* 사진출처: 남수정 (우동사 사람들과)
자립하는 삶에 대한 고민
공대생인 그녀는 공부할수록 적정기술이 궁금했다. 2017년, 대학을 막 졸업하고 비전화공방(전기와 화학물질에 의존하지 않으면서 풍요로운 삶의 방식을 고민하는 공방)으로 향했다. 1년 간 기술을 익히며 바라는 삶을 연구한 뒤, 볼음도에서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비전화공방 활동은 어떤 계기로 하게 됐어요?
“손으로 하는 작업, 제작이 궁금했어요. 돌이켜보면 비전화공방은 삶을 전환하기에 좋은 입구예요. 대학을 막 졸업한 그 당시에 제가 선택할 수 있는 건 사회적 기업이나 단체에 들어가거나 교육기관에서 교육을 듣는 건데, 비전화공방이 있어 다행이었죠. 비전화공방은 1년 동안 바라는 삶을 살아가는 힘을 키우는 곳이에요. 지금의 제 관심사가 만들어진 계기가 됐어요.”
손으로 하는 작업, 제작에 익숙해졌어요?
“많이 배웠어요. 자신감과 용기가 생겼어요. 비전화공방 가기 전 내 상태는 쭈굴쭈글했거든요.(웃음) 살고 싶은 모습은 있지만 불안이 많았죠. 내가 진짜 무엇을 원하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안 그려졌고요. 비전화공방에서 비슷하게 생각하고 용기 내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힘을 얻었어요.”
비전화공방을 통해 지금의 관심사가 만들어졌다고 했잖아요. 볼음도에서의 농사인가요?
“우동사에 살면서 자립하는 사람들의 마을을 꾸려나가는 것에 관심이 있었어요. 우동사에서 함께 지내는 정훈이 농사 같이 짓자고 제안을 했는데요. 농사로 내가 먹을 것들을 직접 생산하며 자립기반을 쌓고, 농산물을 팔아 조금이나마 소득을 얻어 일자리를 만드는 활동이라니 매력적이었어요.
돈을 많이 벌겠다는 게 아니에요. 내가 필요한 만큼을 벌 수 있는, 돈에 대한 막연한 불안과 의존도가 줄어드는 환경을 만드는 실험이었죠. 그런데 2년 동안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는 걸 느꼈어요.”
어땠는데요?
“빌리지를 구현하려다 보니 농사뿐 아니라 집을 지어야 했어요. 살 곳이 없어서 짧게 왔다 갔다 하게되고요. 집을 짓고 농사를 지어 마음 맞는 사람들이 모이는 거점을 만들려고 한건데요. 나는 안 되겠더라고요. 집을 짓고 뭐도 하고, 구상하는 건 좋은데 구상만 한다고 되지 않잖아요. 지난한 과정을 거쳐요. 집 하나도 총체적인 분야죠. 기초, 골조, 외장, 내장, 전기, 수도, 가스.. 맨땅에 수도를 연결하는 일은 상상 이상이에요.
하나부터 열까지 찾아보고 기획하고 진행하려다 보니 '내가 이걸 하고 싶었나' 생각이 들었어요. '있으면 좋겠어!'와 내가 진두지휘해야 하는 상황은 달라서 버거웠나 봐요. 멈춤을 선언하고 지금은 쉬고 있어요.”
* 사진출처: 남수정(비전화공방에서)
* 사진출처: 남수정 (볼음도에서)
나를 알아가는 것에 대해
수정은 올해부터 쉬고 있다. 우동사 사람들과 함께, 나를 알아가는 공부 중이다.
올해부터 쉬는 거죠? 잘 쉬고 있어요?
“활동 열심히 하다가 질린 상태랄까요. 힘들었던 것 같아요. 아무도 뭐라 하지않는데도, 단기적으로 결과물을 내야 한다는 압박이 있었어요. 농사를 짓고 빌리지를 일구는 건 눈에 바로 보이는 게 아니고요. 저 스스로 빨리 답을 내려고 하지 않았나 싶어요. 정답 없이 살고 싶은데 내 안에 답을 빨리 내려버려요. 이거 힘들었으니까 저거, 저거 힘들었으니까 그거 이런 식으로요. 나는 정말 무엇을 원하는지, 나란 누구인지 살피고 싶어졌어요.”
나를 알아간다는 건 뭘까요? 언제부터 '나'에 관심이 많았어요?
“저는 어릴 때부터 무엇이 삶을 구성하는지, 어떤 것이 행복인지 궁금했어요. 이과 머리를 굴려서 행복은 뭐가 있어야 가능한지 도식화했어요. 행복한 삶의 재료를 나열하고(웃음) 끝이 없어요. 삶은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는지. 이 우주는 어떤 건지. 내가 여기에 왜 관심이 생겼는지. 나는 누구인지. 인간은 도대체 어떤 존재인지”
보통 사춘기에 흔히 하는 고민이겠거니 하고 넘어갈 수도 있잖아요. 그런 질문을 지금까지 이어가는 이유랄까요? 어떤 계기가 있어요?
“더듬어보면 부끄럽긴 한데(웃음) 초등학교 5학년 일요일 밤, 개콘이 끝날 즈음 방에 들어갔는데 방이 캄캄했어요. 갑자기 뒤에선 개콘이 끝나는 소리가 들리면서 혼자 진지해졌죠. '나는 왜 학교에 가야 할까? 내가 없어도 지구는 잘 돌아갈 텐데. 나는 왜 사는 걸까' 질문했어요. 이왕 태어난 거 잘 살아보자며 급 마무리하긴 했지만 시험기간이 되면 다시 괴로움이 찾아왔죠. '내가 이걸 왜 하고 있나. 이것과 내 인생은 무슨 관계인가' 하면서요. 시험 끝나면 또 잊어버리고요. (웃음)
사실 이런 것들이 반복되어왔다고 생각해요. 나에 대해 안다고 생각해도 매번 모르겠어요. 나도, 사람도, 인생도요. 모르는 것 투성이인데 안다고 그때그때 답을 내리고 가니까 모순되는 지점이 생겨요. 조급하게 결론 짓기보다 나를 제대로 알 때가 왔다는 생각이에요. 나는 어떤 씨앗을 가진 사람인지에 대해서 탐구해볼 생각이에요.”
탐구하는 방법이 있나요?
“우동사에선 일본 스즈카 애즈원 커뮤니티와 교류를 많이 해요. 거기서 사용하는 사이엔즈 메소드(SCIENZ method)라는 방법이 있어요. '인간'이 어떤 존재이고, '인간답게' 산다는 게 어떤 건지 제로베이스에서 알아가는 건데요. 스스로가 생각의 벽을 만들어 괴로워지고 자유롭지 못하게 됨을 알고 실제를 탐구해요. 본질과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일상에 적용하죠. 생활에서 갖가지 반응을 관찰하면서 어떤 게 생각이고 어떤 게 사실일까 구분하면서, 본래 나다운 삶은 어떤걸까 찾아가는 거예요.”
그 방법이 수정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어요?
“중심이 되고 있어요. 관찰하는 관점으로 하루를 살면 모든 게 다 소재가 돼요. '왜 이런 말을 들을 때 괴로울까? 왜 이런 일이 생겼을 때 힘들까?' 나를 살피는 동력이에요. 혼자가 아니라 같이 한다는 게 중요해요. 우동사에 함께 사는 사람들과 이런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살필 수 있어 좋아요.”
다시 우동사로 돌아오는군요. 수정은 나답게 산다는 게 어떤 것 같아요?
“애쓰지 않고 즐겁게 흘러나오는 그런 거요. 전 요즘 노래 부르고 춤추는 게 즐거워요. 작년부터 독학으로 우쿨렐레를 배우고 있어요. 푹 빠져서 연주하며 쉬고 있는데 같이 사는 언니들이 그래요. 주변에 누가 우쿨렐레 치냐고. 아무나 하는 거 아니래요. 응원을 받으니까 동네에서 잔치하는 날 공연했어요. 자유로워지는 것 같아요. 나를 표현하며 살고 있어요. 앞으로도 예술을 하게 되지 않을까. 언젠가는 글을 쓰고 노래를 만드는 작업을 할 거예요.(웃음)”
* 사진출처: 남수정 (사진에서 제일 왼쪽 빨간모자가 수정)
혼자 모든 것을 생산하며 고립된 채 사는 게 아니라, 할 수 있는 만큼 생산하고 관계를 통해 부족한 부분을 채우는 삶. 그것이 우리가 바라는 자립이다. (남수정, 한겨울에 전기 없이 2박 3일 캠핑카 여행 / 한겨레 20180125)
수정 이야기에서 ‘자립'과 ‘함께'가 공존했다. 나라는 사람을 이해하고 알아가는 과정을 함께 사는 사람들과 ‘함께'한다. 우동사와 비전화공방, 볼음도에서의 경험이 꿰어진다. 그녀는 무엇을 해도 자신을 탐구하며, 관계를 통해 부족한 부분을 채워갈 것이다.
활동은 이런 게 아닐까. ‘나는 어떤 사람인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누구와 함께하고 싶은지' 질문하는 에너지에서 비롯된다. 여러 경험 속, 무수한 시행착오 속에서 생기는 중심 같은 것. 활동가가 아닌 사람은 없을지도 모르겠다.
“난 내가 활동가란 생각을 해요. 지금은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 뭘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삶 연구원이랄까(웃음).”
_ 인터뷰어 : 이재은
#비전화공방 #이재은 #수정 #농사 #공동체 #자립 #공동주거 #우동사 #인천 #서울 #2020년
2020년 활동가이야기주간 프로젝트 일환으로 기획/진행한 '활동가 인터뷰'입니다.
서울역에서 인천공항을 연결하는 공항철도를 탔다. 캐리어를 챙긴 여행객 마냥 어딘가 떠나야 할 것 같은 기분이다. 김포공항역을 지나자 숲과 밭이 펼쳐지는 창밖 풍경도 낯설다. ‘검암역'에서 내렸다. 우동사(‘우리동네사람들' 줄임말)가 있는 곳. 우동사에서 살고 있는 수정을 만나기 위해서다.
수정은 바라는 삶을 고민하며 자립기술을 익히는 비전화공방에서 만났다. 비전화공방은 '제작자'라는 이름으로 1년 동안의 교육과정을 진행한다. 2017년 대학을 막 졸업하고 온 수정은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호기심어린 에너지가 가득했다. 제작자를 마칠 무렵, 그간 배운 것들을 자신의 삶에 녹였다. 자립하고 싶다고 했다. 우동사에서 뜻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 강화도에서 1시간 배를 타야하는 '볼음도'에서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은 잠시 멈춘 상태. 그 틈에 말을 건넸다. 20대 중반 그녀가 우동사에서 살고 있는 경험, 비전화공방과 볼음도에서 농사짓는 생활이 어떻게 남았는지 궁금했다. 그것을 바탕으로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까.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중심을 찾아가는 과정이 활동가의 삶이지 않을까.
만나자마자 수정이 동그랗게 웃는다. 말꼬리가 올라가는 특유의 말투, “재은! 왔어? 오랜만이다, 그지?” 나도 웃으며 큰 포옹을 나눴다. 수정의 건강하고 씩씩한 에너지가 전해진다.
* 사진출처: 남수정
뜻을 함께하는 관계, 안정감에 대해
수정은 우동사에 산지 2년 반이 다 되어 간다. ‘우동사'는 인천 검암동에서 적게 벌고 적게 쓰는 라이프스타일을 지향하는 마을공동체를 만들어가고 있다.
우동사에서 어떻게 살게 됐어요?
“책 보고 찾아갔어요. 마을공동체에 관한 책을 읽는데 '이거다' 싶었죠. 어느 마을이든 들어가고 싶다고 했더니 마침 불교단체에서 활동하던 친언니가 소개해줬어요.”
어떤 부분이 끌렸던 걸까요?
“지금도 자주 생각하는 건데요. 우동사에 사는 목적이 단순한 주거 셰어는 아니에요. '같이 산다는 건 무엇인지, 어떤 이유로 같이 살고자 하는지, 나는 어떻게 살고 싶은지' 각자의 기저에 있는 욕구나 바람을 물어가는 관계에 집중한다는 점이 끌렸어요.”
알듯말듯 하네요. 각자의 기저에 있는 욕구나 바람을 물어가는 관계라니.
“저도 처음엔 쭈뼛쭈뼛했어요. 같이 사는 게 좋다는 생각은 해도 제대로 관계 맺으며 살아본 경험이 없더라고요. 말을 어떻게 붙여야 할지 모르겠는 거죠.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러워졌어요. 원룸 살 때와 비교해보면 정말 달라요.
사람은 사람을 필요로 하는 것 같아요. 힘들거나 외롭다는 생각이 들 때 '알아줘'하는 마음이 있잖아요. 보통 SNS에 올리기도 하는데 저는 익숙하지 않아요. 그냥 같이 사는 사람들에게 "나 힘들어. 왜 이렇게 답답한지 모르겠어" 툭 얘기를 꺼내도 대화가 깊이 이어가요. 꺼낼 사람이 있다는 게 큰 차이예요.”
그러게요. 혼자 사는 것과 정말 다르겠어요.
“새로운 가족을 경험하는 것 같아요. 가족이라고 하면 '안정감'이 떠오르는데요. 우린 어떤 계약관계도 아니에요. 세입자 이런 개념도 아니고요. 계약서도 안 쓰고 혈연도 아니지만 안정감이 커져가는 게 신기해요.”
우동사에서 안정감을 느끼는 사람들의 규모는 얼마나 될까요?
“우동사는 5채 정도의 집이 있고. 다 합치면 20명 정도 살아요. 주변엔 이웃들이 있어요. 초기에 공동주거를 하다가 다른 집으로 이사한 사람들도 있고 뜻이 맞는 친구들이 검암으로 자리 잡은 경우도 있고요. 먼 동네로 이사 갔지만 계속 오며 가며 놀러 오고, 놀러 가는 만남도 있어요. 모두 포함하면 몇 명이나 되려나. 저도 궁금하네요.(웃음)”
마음을 주고받는 사람들 모두가 우동사군요. (웃음)
“맞아요, 뜻을 함께하는 느낌이요. 여기서 우리가 같이 사회를 만들어가고 있다는 생각을 해요.”
어떤 사회를 만들어가는 것 같아요?
“지금 말하는 사회는 사실 보이지 않죠. 머릿속에 있는 개념이에요. 다들 어떤 사회에서 살고 싶다는 이미지는 있잖아요. 예를 들어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그게 가능한 사회에서 살고 싶다고 했을 때 공감하는 사람들이 모이면 그런 사회가 되어가지 않을까요?
사회란 사람들의 합이라 생각해요. 한 명 한 명이 살고싶은 방식으로 살고, 혼자선 어려우니까 서로가 도우면서 가능해지는 것. 그렇게 살고싶은 사회를 만들어가는 거 아닐까요?”
어려운데요? 막상 같이 살다 보면 자잘한 것에 싸우기도 하고. 사회고 뭐고 시야가 좁아질 때가 있잖아요.
“우동사도 시행착오가 많아요. 그냥 되는 건 아니에요. 단지 모였다는 이유로, 마음만으로는 안 되는 것 같아요. 각자가 자신을 알아가려고 탐구한다고 해야 할까요. 자기를 알아가려는 움직임이 모이니까 시너지가 나요. 같이 사는 데에도 도움이 되고요. 자기를 알아가다 보면 타인을 이해할 수밖에 없으니까요. 나, 타인 그리고 사람을 이해하는 것이 자연스러워요. 그런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이에요.”
* 사진출처: 남수정 (우동사 사람들과)
자립하는 삶에 대한 고민
공대생인 그녀는 공부할수록 적정기술이 궁금했다. 2017년, 대학을 막 졸업하고 비전화공방(전기와 화학물질에 의존하지 않으면서 풍요로운 삶의 방식을 고민하는 공방)으로 향했다. 1년 간 기술을 익히며 바라는 삶을 연구한 뒤, 볼음도에서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비전화공방 활동은 어떤 계기로 하게 됐어요?
“손으로 하는 작업, 제작이 궁금했어요. 돌이켜보면 비전화공방은 삶을 전환하기에 좋은 입구예요. 대학을 막 졸업한 그 당시에 제가 선택할 수 있는 건 사회적 기업이나 단체에 들어가거나 교육기관에서 교육을 듣는 건데, 비전화공방이 있어 다행이었죠. 비전화공방은 1년 동안 바라는 삶을 살아가는 힘을 키우는 곳이에요. 지금의 제 관심사가 만들어진 계기가 됐어요.”
손으로 하는 작업, 제작에 익숙해졌어요?
“많이 배웠어요. 자신감과 용기가 생겼어요. 비전화공방 가기 전 내 상태는 쭈굴쭈글했거든요.(웃음) 살고 싶은 모습은 있지만 불안이 많았죠. 내가 진짜 무엇을 원하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안 그려졌고요. 비전화공방에서 비슷하게 생각하고 용기 내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힘을 얻었어요.”
비전화공방을 통해 지금의 관심사가 만들어졌다고 했잖아요. 볼음도에서의 농사인가요?
“우동사에 살면서 자립하는 사람들의 마을을 꾸려나가는 것에 관심이 있었어요. 우동사에서 함께 지내는 정훈이 농사 같이 짓자고 제안을 했는데요. 농사로 내가 먹을 것들을 직접 생산하며 자립기반을 쌓고, 농산물을 팔아 조금이나마 소득을 얻어 일자리를 만드는 활동이라니 매력적이었어요.
돈을 많이 벌겠다는 게 아니에요. 내가 필요한 만큼을 벌 수 있는, 돈에 대한 막연한 불안과 의존도가 줄어드는 환경을 만드는 실험이었죠. 그런데 2년 동안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는 걸 느꼈어요.”
어땠는데요?
“빌리지를 구현하려다 보니 농사뿐 아니라 집을 지어야 했어요. 살 곳이 없어서 짧게 왔다 갔다 하게되고요. 집을 짓고 농사를 지어 마음 맞는 사람들이 모이는 거점을 만들려고 한건데요. 나는 안 되겠더라고요. 집을 짓고 뭐도 하고, 구상하는 건 좋은데 구상만 한다고 되지 않잖아요. 지난한 과정을 거쳐요. 집 하나도 총체적인 분야죠. 기초, 골조, 외장, 내장, 전기, 수도, 가스.. 맨땅에 수도를 연결하는 일은 상상 이상이에요.
하나부터 열까지 찾아보고 기획하고 진행하려다 보니 '내가 이걸 하고 싶었나' 생각이 들었어요. '있으면 좋겠어!'와 내가 진두지휘해야 하는 상황은 달라서 버거웠나 봐요. 멈춤을 선언하고 지금은 쉬고 있어요.”
* 사진출처: 남수정(비전화공방에서)
* 사진출처: 남수정 (볼음도에서)
나를 알아가는 것에 대해
수정은 올해부터 쉬고 있다. 우동사 사람들과 함께, 나를 알아가는 공부 중이다.
올해부터 쉬는 거죠? 잘 쉬고 있어요?
“활동 열심히 하다가 질린 상태랄까요. 힘들었던 것 같아요. 아무도 뭐라 하지않는데도, 단기적으로 결과물을 내야 한다는 압박이 있었어요. 농사를 짓고 빌리지를 일구는 건 눈에 바로 보이는 게 아니고요. 저 스스로 빨리 답을 내려고 하지 않았나 싶어요. 정답 없이 살고 싶은데 내 안에 답을 빨리 내려버려요. 이거 힘들었으니까 저거, 저거 힘들었으니까 그거 이런 식으로요. 나는 정말 무엇을 원하는지, 나란 누구인지 살피고 싶어졌어요.”
나를 알아간다는 건 뭘까요? 언제부터 '나'에 관심이 많았어요?
“저는 어릴 때부터 무엇이 삶을 구성하는지, 어떤 것이 행복인지 궁금했어요. 이과 머리를 굴려서 행복은 뭐가 있어야 가능한지 도식화했어요. 행복한 삶의 재료를 나열하고(웃음) 끝이 없어요. 삶은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는지. 이 우주는 어떤 건지. 내가 여기에 왜 관심이 생겼는지. 나는 누구인지. 인간은 도대체 어떤 존재인지”
보통 사춘기에 흔히 하는 고민이겠거니 하고 넘어갈 수도 있잖아요. 그런 질문을 지금까지 이어가는 이유랄까요? 어떤 계기가 있어요?
“더듬어보면 부끄럽긴 한데(웃음) 초등학교 5학년 일요일 밤, 개콘이 끝날 즈음 방에 들어갔는데 방이 캄캄했어요. 갑자기 뒤에선 개콘이 끝나는 소리가 들리면서 혼자 진지해졌죠. '나는 왜 학교에 가야 할까? 내가 없어도 지구는 잘 돌아갈 텐데. 나는 왜 사는 걸까' 질문했어요. 이왕 태어난 거 잘 살아보자며 급 마무리하긴 했지만 시험기간이 되면 다시 괴로움이 찾아왔죠. '내가 이걸 왜 하고 있나. 이것과 내 인생은 무슨 관계인가' 하면서요. 시험 끝나면 또 잊어버리고요. (웃음)
사실 이런 것들이 반복되어왔다고 생각해요. 나에 대해 안다고 생각해도 매번 모르겠어요. 나도, 사람도, 인생도요. 모르는 것 투성이인데 안다고 그때그때 답을 내리고 가니까 모순되는 지점이 생겨요. 조급하게 결론 짓기보다 나를 제대로 알 때가 왔다는 생각이에요. 나는 어떤 씨앗을 가진 사람인지에 대해서 탐구해볼 생각이에요.”
탐구하는 방법이 있나요?
“우동사에선 일본 스즈카 애즈원 커뮤니티와 교류를 많이 해요. 거기서 사용하는 사이엔즈 메소드(SCIENZ method)라는 방법이 있어요. '인간'이 어떤 존재이고, '인간답게' 산다는 게 어떤 건지 제로베이스에서 알아가는 건데요. 스스로가 생각의 벽을 만들어 괴로워지고 자유롭지 못하게 됨을 알고 실제를 탐구해요. 본질과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일상에 적용하죠. 생활에서 갖가지 반응을 관찰하면서 어떤 게 생각이고 어떤 게 사실일까 구분하면서, 본래 나다운 삶은 어떤걸까 찾아가는 거예요.”
그 방법이 수정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어요?
“중심이 되고 있어요. 관찰하는 관점으로 하루를 살면 모든 게 다 소재가 돼요. '왜 이런 말을 들을 때 괴로울까? 왜 이런 일이 생겼을 때 힘들까?' 나를 살피는 동력이에요. 혼자가 아니라 같이 한다는 게 중요해요. 우동사에 함께 사는 사람들과 이런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살필 수 있어 좋아요.”
다시 우동사로 돌아오는군요. 수정은 나답게 산다는 게 어떤 것 같아요?
“애쓰지 않고 즐겁게 흘러나오는 그런 거요. 전 요즘 노래 부르고 춤추는 게 즐거워요. 작년부터 독학으로 우쿨렐레를 배우고 있어요. 푹 빠져서 연주하며 쉬고 있는데 같이 사는 언니들이 그래요. 주변에 누가 우쿨렐레 치냐고. 아무나 하는 거 아니래요. 응원을 받으니까 동네에서 잔치하는 날 공연했어요. 자유로워지는 것 같아요. 나를 표현하며 살고 있어요. 앞으로도 예술을 하게 되지 않을까. 언젠가는 글을 쓰고 노래를 만드는 작업을 할 거예요.(웃음)”
* 사진출처: 남수정 (사진에서 제일 왼쪽 빨간모자가 수정)
수정 이야기에서 ‘자립'과 ‘함께'가 공존했다. 나라는 사람을 이해하고 알아가는 과정을 함께 사는 사람들과 ‘함께'한다. 우동사와 비전화공방, 볼음도에서의 경험이 꿰어진다. 그녀는 무엇을 해도 자신을 탐구하며, 관계를 통해 부족한 부분을 채워갈 것이다.
활동은 이런 게 아닐까. ‘나는 어떤 사람인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누구와 함께하고 싶은지' 질문하는 에너지에서 비롯된다. 여러 경험 속, 무수한 시행착오 속에서 생기는 중심 같은 것. 활동가가 아닌 사람은 없을지도 모르겠다.
“난 내가 활동가란 생각을 해요. 지금은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 뭘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삶 연구원이랄까(웃음).”
_ 인터뷰어 : 이재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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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활동가이야기주간 프로젝트 일환으로 기획/진행한 '활동가 인터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