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인터뷰] 나를 알아가는 삶 연구자, 수정

서울역에서 인천공항을 연결하는 공항철도를 탔다캐리어를 챙긴 여행객 마냥 어딘가 떠나야 할 것 같은 기분이다김포공항역을 지나자 숲과 밭이 펼쳐지는 창밖 풍경도 낯설다. ‘검암역'에서 내렸다우동사(‘우리동네사람들줄임말)가 있는 곳우동사에서 살고 있는 수정을 만나기 위해서다

수정은 바라는 삶을 고민하며 자립기술을 익히는 비전화공방에서 만났다. 비전화공방은 '제작자'라는 이름으로 1년 동안의 교육과정을 진행한다. 2017년 대학을 막 졸업하고 온 수정은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호기심어린 에너지가 가득했다. 제작자를 마칠 무렵, 그간 배운 것들을 자신의 삶에 녹였다. 자립하고 싶다고 했다. 우동사에서 뜻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 강화도에서 1시간 배를 타야하는 '볼음도'에서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은 잠시 멈춘 상태그 틈에 말을 건넸다. 20대 중반 그녀가 우동사에서 살고 있는 경험비전화공방과 볼음도에서 농사짓는 생활이 어떻게 남았는지 궁금했다그것을 바탕으로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까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중심을 찾아가는 과정이 활동가의 삶이지 않을까

만나자마자 수정이 동그랗게 웃는다말꼬리가 올라가는 특유의 말투, “재은왔어오랜만이다그지?” 나도 웃으며 큰 포옹을 나눴다수정의 건강하고 씩씩한 에너지가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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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출처: 남수정 

 

뜻을 함께하는 관계안정감에 대해 


수정은 우동사에 산지 2년 반이 다 되어 간다. ‘우동사'는 인천 검암동에서 적게 벌고 적게 쓰는 라이프스타일을 지향하는 마을공동체를 만들어가고 있다


우동사에서 어떻게 살게 됐어요?

책 보고 찾아갔어요마을공동체에 관한 책을 읽는데 '이거다싶었죠어느 마을이든 들어가고 싶다고 했더니 마침 불교단체에서 활동하던 친언니가 소개해줬어요.”  


어떤 부분이 끌렸던 걸까요

지금도 자주 생각하는 건데요우동사에 사는 목적이 단순한 주거 셰어는 아니에요'같이 산다는 건 무엇인지어떤 이유로 같이 살고자 하는지나는 어떻게 살고 싶은지각자의 기저에 있는 욕구나 바람을 물어가는 관계에 집중한다는 점이 끌렸어요.” 


알듯말듯 하네요각자의 기저에 있는 욕구나 바람을 물어가는 관계라니

저도 처음엔 쭈뼛쭈뼛했어요같이 사는 게 좋다는 생각은 해도 제대로 관계 맺으며 살아본 경험이 없더라고요말을 어떻게 붙여야 할지 모르겠는 거죠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러워졌어요원룸 살 때와 비교해보면 정말 달라요

사람은 사람을 필요로 하는 것 같아요힘들거나 외롭다는 생각이 들 때 '알아줘'하는 마음이 있잖아요보통 SNS에 올리기도 하는데 저는 익숙하지 않아요그냥 같이 사는 사람들에게 "나 힘들어왜 이렇게 답답한지 모르겠어툭 얘기를 꺼내도 대화가 깊이 이어가요꺼낼 사람이 있다는 게 큰 차이예요.” 


그러게요. 혼자 사는 것과 정말 다르겠어요. 

새로운 가족을 경험하는 것 같아요가족이라고 하면 '안정감'이 떠오르는데요우린 어떤 계약관계도 아니에요세입자 이런 개념도 아니고요계약서도 안 쓰고 혈연도 아니지만 안정감이 커져가는 게 신기해요.” 


우동사에서 안정감을 느끼는 사람들의 규모는 얼마나 될까요

우동사는 5채 정도의 집이 있고다 합치면 20명 정도 살아요. 주변엔 이웃들이 있어요초기에 공동주거를 하다가 다른 집으로 이사한 사람들도 있고 뜻이 맞는 친구들이 검암으로 자리 잡은 경우도 있고요먼 동네로 이사 갔지만 계속 오며 가며 놀러 오고놀러 가는 만남도 있어요모두 포함하면 몇 명이나 되려나저도 궁금하네요.(웃음)”


마음을 주고받는 사람들 모두가 우동사군요. (웃음

맞아요뜻을 함께하는 느낌이요여기서 우리가 같이 사회를 만들어가고 있다는 생각을 해요.” 


어떤 사회를 만들어가는 것 같아요

지금 말하는 사회는 사실 보이지 않죠머릿속에 있는 개념이에요다들 어떤 사회에서 살고 싶다는 이미지는 있잖아요예를 들어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그게 가능한 사회에서 살고 싶다고 했을 때 공감하는 사람들이 모이면 그런 사회가 되어가지 않을까요

사회란 사람들의 합이라 생각해요한 명 한 명이 살고싶은 방식으로 살고혼자선 어려우니까 서로가 도우면서 가능해지는 것그렇게 살고싶은 사회를 만들어가는 거 아닐까요?” 


어려운데요막상 같이 살다 보면 자잘한 것에 싸우기도 하고사회고 뭐고 시야가 좁아질 때가 있잖아요

우동사도 시행착오가 많아요그냥 되는 건 아니에요단지 모였다는 이유로마음만으로는 안 되는 것 같아요각자가 자신을 알아가려고 탐구한다고 해야 할까요자기를 알아가려는 움직임이 모이니까 시너지가 나요같이 사는 데에도 도움이 되고요자기를 알아가다 보면 타인을 이해할 수밖에 없으니까요타인 그리고 사람을 이해하는 것이 자연스러워요그런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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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출처: 남수정 (우동사 사람들과)

 

자립하는 삶에 대한 고민  


공대생인 그녀는 공부할수록 적정기술이 궁금했다. 2017대학을 막 졸업하고 비전화공방(전기와 화학물질에 의존하지 않으면서 풍요로운 삶의 방식을 고민하는 공방)으로 향했다1년 간 기술을 익히며 바라는 삶을 연구한 뒤, 볼음도에서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비전화공방 활동은 어떤 계기로 하게 됐어요 

손으로 하는 작업제작이 궁금했어요돌이켜보면 비전화공방은 삶을 전환하기에 좋은 입구예요대학을 막 졸업한 그 당시에 제가 선택할 수 있는 건 사회적 기업이나 단체에 들어가거나 교육기관에서 교육을 듣는 건데비전화공방이 있어 다행이었죠비전화공방은 1년 동안 바라는 삶을 살아가는 힘을 키우는 곳이에요지금의 제 관심사가 만들어진 계기가 됐어요.” 


손으로 하는 작업제작에 익숙해졌어요

많이 배웠어요자신감과 용기가 생겼어요비전화공방 가기 전 내 상태는 쭈굴쭈글했거든요.(웃음살고 싶은 모습은 있지만 불안이 많았죠내가 진짜 무엇을 원하는지어떻게 해야 하는지 안 그려졌고요비전화공방에서 비슷하게 생각하고 용기 내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힘을 얻었어요.”  


비전화공방을 통해 지금의 관심사가 만들어졌다고 했잖아요볼음도에서의 농사인가요

우동사에 살면서 자립하는 사람들의 마을을 꾸려나가는 것에 관심이 있었어요우동사에서 함께 지내는 정훈이 농사 같이 짓자고 제안을 했는데요농사로 내가 먹을 것들을 직접 생산하며 자립기반을 쌓고농산물을 팔아 조금이나마 소득을 얻어 일자리를 만드는 활동이라니 매력적이었어요

돈을 많이 벌겠다는 게 아니에요내가 필요한 만큼을 벌 수 있는돈에 대한 막연한 불안과 의존도가 줄어드는 환경을 만드는 실험이었죠그런데 2년 동안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는 걸 느꼈어요.” 


어땠는데요

빌리지를 구현하려다 보니 농사뿐 아니라 집을 지어야 했어요살 곳이 없어서 짧게 왔다 갔다 하게되고요집을 짓고 농사를 지어 마음 맞는 사람들이 모이는 거점을 만들려고 한건데요나는 안 되겠더라고요집을 짓고 뭐도 하고구상하는 건 좋은데 구상만 한다고 되지 않잖아요지난한 과정을 거쳐요집 하나도 총체적인 분야죠기초골조외장내장전기수도가스.. 맨땅에 수도를 연결하는 일은 상상 이상이에요

하나부터 열까지 찾아보고 기획하고 진행하려다 보니 '내가 이걸 하고 싶었나생각이 들었어요. '있으면 좋겠어!'와 내가 진두지휘해야 하는 상황은 달라서 버거웠나 봐요멈춤을 선언하고 지금은 쉬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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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출처: 남수정(비전화공방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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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출처: 남수정 (볼음도에서)

 

나를 알아가는 것에 대해 


수정은 올해부터 쉬고 있다우동사 사람들과 함께나를 알아가는 공부 중이다


올해부터 쉬는 거죠잘 쉬고 있어요

활동 열심히 하다가 질린 상태랄까요힘들었던 것 같아요아무도 뭐라 하지않는데도단기적으로 결과물을 내야 한다는 압박이 있었어요농사를 짓고 빌리지를 일구는 건 눈에 바로 보이는 게 아니고요저 스스로 빨리 답을 내려고 하지 않았나 싶어요정답 없이 살고 싶은데 내 안에 답을 빨리 내려버려요이거 힘들었으니까 저거저거 힘들었으니까 그거 이런 식으로요나는 정말 무엇을 원하는지나란 누구인지 살피고 싶어졌어요.” 


나를 알아간다는 건 뭘까요언제부터 ''에 관심이 많았어요 

저는 어릴 때부터 무엇이 삶을 구성하는지어떤 것이 행복인지 궁금했어요이과 머리를 굴려서 행복은 뭐가 있어야 가능한지 도식화했어요행복한 삶의 재료를 나열하고(웃음끝이 없어요삶은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는지이 우주는 어떤 건지내가 여기에 왜 관심이 생겼는지나는 누구인지인간은 도대체 어떤 존재인지” 


보통 사춘기에 흔히 하는 고민이겠거니 하고 넘어갈 수도 있잖아요그런 질문을 지금까지 이어가는 이유랄까요어떤 계기가 있어요 

더듬어보면 부끄럽긴 한데(웃음초등학교 5학년 일요일 밤개콘이 끝날 즈음 방에 들어갔는데 방이 캄캄했어요갑자기 뒤에선 개콘이 끝나는 소리가 들리면서 혼자 진지해졌죠. '나는 왜 학교에 가야 할까내가 없어도 지구는 잘 돌아갈 텐데나는 왜 사는 걸까질문했어요이왕 태어난 거 잘 살아보자며 급 마무리하긴 했지만 시험기간이 되면 다시 괴로움이 찾아왔죠. '내가 이걸 왜 하고 있나이것과 내 인생은 무슨 관계인가하면서요시험 끝나면 또 잊어버리고요. (웃음

사실 이런 것들이 반복되어왔다고 생각해요나에 대해 안다고 생각해도 매번 모르겠어요나도사람도인생도요모르는 것 투성이인데 안다고 그때그때 답을 내리고 가니까 모순되는 지점이 생겨요조급하게 결론 짓기보다 나를 제대로 알 때가 왔다는 생각이에요나는 어떤 씨앗을 가진 사람인지에 대해서 탐구해볼 생각이에요.” 


탐구하는 방법이 있나요

우동사에선 일본 스즈카 애즈원 커뮤니티와 교류를 많이 해요거기서 사용하는 사이엔즈 메소드(SCIENZ method)라는 방법이 있어요. '인간'이 어떤 존재이고, '인간답게산다는 게 어떤 건지 제로베이스에서 알아가는 건데요스스로가 생각의 벽을 만들어 괴로워지고 자유롭지 못하게 됨을 알고 실제를 탐구해요. 본질과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일상에 적용하죠. 생활에서 갖가지 반응을 관찰하면서 어떤 게 생각이고 어떤 게 사실일까 구분하면서본래 나다운 삶은 어떤걸까 찾아가는 거예요.” 


그 방법이 수정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어요? 

중심이 되고 있어요관찰하는 관점으로 하루를 살면 모든 게 다 소재가 돼요. '왜 이런 말을 들을 때 괴로울까왜 이런 일이 생겼을 때 힘들까?' 나를 살피는 동력이에요혼자가 아니라 같이 한다는 게 중요해요우동사에 함께 사는 사람들과 이런 이야기를 나누고함께 살필 수 있어 좋아요.” 


다시 우동사로 돌아오는군요수정은 나답게 산다는 게 어떤 것 같아요 

애쓰지 않고 즐겁게 흘러나오는 그런 거요전 요즘 노래 부르고 춤추는 게 즐거워요작년부터 독학으로 우쿨렐레를 배우고 있어요푹 빠져서 연주하며 쉬고 있는데 같이 사는 언니들이 그래요주변에 누가 우쿨렐레 치냐고아무나 하는 거 아니래요응원을 받으니까 동네에서 잔치하는 날 공연했어요자유로워지는 것 같아요나를 표현하며 살고 있어요앞으로도 예술을 하게 되지 않을까언젠가는 글을 쓰고 노래를 만드는 작업을 할 거예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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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출처: 남수정 (사진에서 제일 왼쪽 빨간모자가 수정) 

 

 

혼자 모든 것을 생산하며 고립된 채 사는 게 아니라할 수 있는 만큼 생산하고 관계를 통해 부족한 부분을 채우는 삶그것이 우리가 바라는 자립이다(남수정한겨울에 전기 없이 23일 캠핑카 여행 한겨레 20180125) 

수정 이야기에서 자립'함께'가 공존했다나라는 사람을 이해하고 알아가는 과정을 함께 사는 사람들과 함께'한다우동사와 비전화공방볼음도에서의 경험이 꿰어진다그녀는 무엇을 해도 자신을 탐구하며관계를 통해 부족한 부분을 채워갈 것이다

활동은 이런 게 아닐까. ‘나는 어떤 사람인지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누구와 함께하고 싶은지질문하는 에너지에서 비롯된다여러 경험 속무수한 시행착오 속에서 생기는 중심 같은 것활동가가 아닌 사람은 없을지도 모르겠다 

난 내가 활동가란 생각을 해요지금은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 뭘 한다고 생각하거든요삶 연구원이랄까(웃음).”


_ 인터뷰어 : 이재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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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년 활동가이야기주간 프로젝트 일환으로 기획/진행한 '활동가 인터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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