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활동가인터뷰] 호기심 많은 활동가, 이파람

이파람은 잎새와 바람을 합친 이름이다. 서른 살이 되던 해 자립을 꿈꾸며 스스로 이름을 지었다. 나는 손맛이 들어간 자그마한 장터에서 이파람을 만났다. 떡갈나무 잎으로 곱게 포장한 현미 쑥설기, 갈대 빨대, 그림엽서와 책.. 이파람의 손을 거치지 않은 것들이 없었다. 떡갈나무 잎을 뜯으러 산속을 헤매다가 멧돼지를 만난 일, 갈대를 꺾어다 500개 가까이 빨대를 만든 일, 그녀의 그림과 이야기를 엮은 책 하나하나에 자연의 흐름 따라 살고 싶은 마음이 담겨있다. 삶 속에서 자연스레 활동하는 그녀가 궁금했다.     

떡갈나무잎 두 장에 쌓인 현미 쑥설기를 샀다. 끈을 풀어 내 손바닥만 한 잎을 떼어내자 쑥이 잔뜩 섞인 떡이 나왔다. 깊은 산에서 숨을 크게 들이쉴 때 나는 향이 묻어난다. 한 잎 베어 물자 쑥의 쌉쌀함과 떡갈나무잎 특유의 향이 어우러져 한 번도 먹어본 적 없는 깊은 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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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천에서 이파람 (사진: 참참) 


비닐과 플라스틱이 없던 옛날엔 어땠을까?


플라스틱은 고약한 소재다. 짧은 순간 쉽게 쓰고 버린 뒤, 그저 태우거나 땅에 묻고 잊어버린다. 땅 속에서 어쩌면 영원히 썩지 않을지도 모른다. 소비자들은 소비한 것에 대한 책임과 의무를 다해냐 한다. 그래야 플라스틱이 왜 줄여야 하는 소재인지를 알게 된다. 

- 강신호(플라스틱, 재활용하면 할수록) / 작은것이아름답다 259, 플라스틱 없는  

 

어떻게 이걸 할 생각을 했어요?   

"되도록 비닐 포장을 피하고 싶었어요. 방앗간에서 비닐봉지에 하나씩 포장해주잖아요. 대안을 찾다 보니 '비닐이 없던 옛날에는 떡을 어떻게 보관했을까?' 궁금해서 인터넷으로 찾았어요. 떡갈잎으로 떡을 싸는 풍속이 있더라고요. 떡갈잎에는 항균 물질이 있어 밥이나 떡을 싸 두면 더운 날씨에도 쉽게 쉬지 않는대요. 바로 이거다! 했죠."  

 

해보니 어때요? 

"손이 많이 가요. 산 깊숙이 올라가서 떡갈나무 찾아 잎 뜯어야지, 떡을 싸야 하니까 두세 번 빡빡 씻어야지. 바짝 말려야지. 습기가 있으면 안 되거든요. 내가 미쳐서 이걸 하지 다른 사람이라면 못할 거란 생각도 했어요. 역설적으로 비닐이 대단한 발명품이에요. 어떻게 비닐을 만들었지.(웃음)"  

 

보기엔 쉽게 구할 수 있는 잎으로 두어 번 포장한 것 같은데 생각보다 손이 많이 가네요. 

"맞아요. 시간이 오래 걸려요. 얼마 전에 떡갈나무 잎 뜯으러 산에 올라가서 더위와 모기 때문에 진땀 뺐어요. 더군다나 떡갈나무가 잘 안 보이는 거예요. 한참 올라갔다가 내려오면서 길을 잃었는데 멧돼지를 만났어요. 사람 소리에 놀라 피해서 망정이지 큰일 날 뻔했어요. 생각보다 시간이 두 배나 걸려서 진짜 못 하겠다 싶고. 1년 동안 잘 해왔는데 이제는 힘들어요. 좀 지겨워졌어(웃음)." 

 

큰 일 겪었네. 지겨울만해요.(웃음) 갈대 빨대도 직접 만들었죠?

"갈대 빨대도 500개는 만들었을 거예요. 지금까지 계속할 수 있었던 건 사람들 반응 때문이에요. 기뻐하는 사람들이 있고, 이걸 이렇게 할 수 있구나 놀라워하니까요. 나름의 사명감이 생겨요. 자연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로 만드는 것들이 더 많이 퍼지면 좋겠다고 생각하고요." 

 

쓰레기 문제에 관심 갖게 된 계기가 있어요?

"작년 4월에 쓰레기 문제가 사회적 이슈가 됐잖아요. 중국에서 수입 안 한다고 하고. 홍천군청 홈페이지 들어가니까 분리배출 하던 비닐도 매립용 쓰레기봉투에 버리라고 하더라고요. 그러면 어떻게 되겠어요? 땅에 묻거나 태울 거 아니에요. 비닐 썪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고 태워도 안 좋은 물질이 나올 테니까. 그때부터 쓰는 비닐을 모으기 시작했어요. 비닐에 든 걸 안 사게 되더라고요. 쓰레기랑 같이 살다 보니 내 문제가 된 거죠. 그런데도 비닐이 늘어나요." 

 

생각해본 적 없던 시골생활 

 

2017년 초, 도시에서 나고 자란 그녀는 홍천으로 이주했다. 자연 가까이에서 살고 싶었다. 뜻이 맞는 동반자와 자연과 어울리는 방식으로 농사짓는 '자연농'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만난 인연으로 농사지을 땅을 빌려준다는 사람들이 생겨 도시를 떠날 수 있었다. 

 

서울에선 어떤 일을 했었어요?

"디자이너였어요. 웹포스터 만들고, 리플릿이나 현수막 만드는 일이요. 최근까지도 지인분이 하는 행사 포스터를 만들기도 했는데요. 디자인 일이 많지 않아요. 시골에 오면서 일을 받지 않기도 했고요. 여기서 할 수 있는 일들로 돈을 벌고 싶어서요. 언니네텃밭 꾸러미 알바를 하기도 하고 시골 초등학교 버스통학 아르바이트도 해봤어요" 

 

언니네텃밭 꾸러미 알바요? 

"홍천에서 언니네텃밭(여성농민생산자협동조합) 사람들을 알게 되어 최근까지도 매주 꾸러미 포장작업을 도와드리고 종종 생산하는 일을 부탁받았어요."  

 

저도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데 시급으로만 생활을 이어가기엔 부족할 때가 많더라고요. 시골에 살면 지출이 줄어요?

"확실히 적어요. 교통비는 기름값 때문에 더 드는데요. 그래도 언니네텃밭에서 만난 언니들이 파치(부서지거나 흠이 나서 못 쓰게 된 물건)를 잔뜩 주셨어요. 마트가 머니까 먹고 싶은 게 있어도 바로 사 먹지 못해서 참고 그러면 안 먹고 싶어요. 확실히 소비를 덜 하게 돼요." 

 

도시에 살면 욕구가 계속 생기는 것 같아요. 먹고 싶은 욕구, 사고 싶은 욕구 

"그죠? 저도 그래요. 서울을 떠나고 싶었던 이유 중 돈 문제가 제일 컸어요. 서울에서 삶을 유지하려면 돈이 많이 들어요. 월세가 꼬박꼬박 나가고, 내 지갑을 탐내는 것들이 넘쳐나요. 유혹을 못 참고 군것질을 많이 했어요. 걷다가 뭐 보이면 사 먹고요. 시골은 확실히 소비가 줄어서 그만큼 덜 벌어도 되니까 좋아요."  

 

어떤 계기로 도시를 떠나야겠다 생각한 거예요? 

"한 4-5년 됐을 거예요. 맨 처음은 청년허브였어요. 청년허브에서 하는 청년참이란 지원사업을 통해 지역에 사는 또래 친구들을 만났었어요. 서울이 아닌 다른 곳에서 사는 가능성을 알게 된 것 같아요. 그러다가 태국 치앙마이로 관광 갔었는데요. 도시에 나무랑 풀, 초록색이 많아서 놀랐어요. 집 울타리 안에 큰 나무가 자라고 있기도 하고요. 식물과 함께 하는 사람들의 일상이 멋졌어요. 자연과 함께 살고 싶다 생각하게 됐죠. 돌아가면 어디가 있을까, 고민했을 때 서울은 아니었어요. 처음이었어요. 시골에서 살아볼까 생각한 건." 

 

서울로 돌아와서 고민을 이어갔겠어요. 

"네, 돌아와서 먹거리 문제에도 관심이 생겼어요. 집 앞에 있는 시장은 덜 가고 되고 생협을 이용했는데 생협은 포장 문제가 걸리는 거예요. 믿을 수 있는 안전한 먹거리를 먹으려면 내가 직접 키울 수밖에 없겠더라고요. 그래서 자급하는 농사에 관심 갖게 됐어요. 시골에 내려가게 되면 내가 먹을 만큼은 농사짓고 싶었어요." 

 

행동력이 빠른 것 같아요. 그렇게 생각한 지 1-2년 만에 시골살이를 하게 됐으니까요. 

"시골 내려가서 살아야지, 농사지으며 살아야지 생각은 막연했어요. 한 10년 내로 가면 좋겠다 정도? 그러던 중에 참참(남편의 별칭)을 만났어요. 참참이랑 이야기 나누다 보니 참참은 어릴 때부터 시골에서 살았어서 언젠간 고향에서 살겠다는 생각이 있더라고요. 깜짝 놀랐어요. 둘 다 그런 생각이 있다는 게요. 같은 꿈을 가진 두 사람이 만나니까 앞당겨지더라고요. 막연히 혼자 생각할 때보다 누군가를 만나면서 행동하는 용기가 생겼어요." 

 

같이 할 수 있는 동료이자 동반자네요.

"크더라고요. 혼자였다면 지금 서울이었는지 몰라요.(웃음)" 

 

그것도 괜찮죠(웃음). 홍천으로 간 이유가 있나요?  

"시골살이에 관심이 있으니까 정선에서 하는 집짓기 수업을 들으러 다녔어요. 비슷한 시기에 '지구학교'를 가게 됐어요. 고음실 마을 가장 깊은 골짜기에 있는 곳인데요. 한 해 동안 자연농을 배웠어요. 정기적으로 다니다 보니 밭을 빌려주겠다는 분도 생기고 인연이 맞아서 홍천에서 살게 됐어요."  

 

자연농이요?

"다큐멘터리를 통해 '자연농'을 알게 됐는데 농사짓게 된다면 꼭 자연농으로 하고 싶었어요. 자연농은 흙속 미생물의 세계를 존중하는 농법이에요. 땅을 갈아엎지 않고, 풀과 벌레와 싸우지 않고요. 저는 농부님들이 논밭의 생명을 평화의 방식으로 대하는 태도에 감동받았거든요."  

 

실제 자연농으로 농사지어보니 어땠어요? 

"자연농을 빙자한 방치논이 되어버렸어요.(웃음) 우리 밭을 보다 못한 이웃들이 서로의 밭을 둘러보며 지금은 무얼 심을지, 갈무리하는 방법 등을 함께 나눴죠. 저희처럼 우왕좌왕하던 초짜 농부들에겐 참 감사한 일이에요."  

 

좋은 관계 안에 있었네요. 그래도 막상 살면서 기대와 다른 점도 많을 것 같아요.  

"정말 많아요. 홍천에서 집을 구할 때였어요. 귀농을 생각하면 당연히 마당이 딸린 단층집일 거라 상상했어요. 시골에 빈집이 늘고 있다는 기사를 접하면서 그럼 내가 저기서 살아봐야겠다 기대했거든요. 근데 아니었어요. 홍천은 서울에서 멀지 않아서인지 빈집이 없어서 결국 밭에서 도보로 40분 거리에 있는 편의점 위층에서 살았어요. 군부대 앞이라 매일 애국가를 들으며 깼어요."  

 

일상을 주의 깊게 살피는 호기심 

 

올해 봄, 강릉에서 살기 시작했다. 참참이 어릴 때부터 살던 시골집이 비어있고 바로 뒤에 자그마한 밭이 있었기 때문이다. 홍천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조금 더 자연과 가까게 살아도 좋겠다는 마음을 냈다. 거리를 떨어져있지만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친구들이 있어 가능한 선택이었다. 


도시를 떠나 시골에서 산지 3년이 다 되어가죠? 낯설기도 했을텐데 일상을 꾸려가는 힘이랄까. 동력이 궁금해요.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친구들의 존재가 커요. 손작업을 좋아하는 친구들이 있는데요. 1년 동안 모은 비닐을 어떻게 써볼까 얘기하거나 집 뒤에 많이 자란 대나무로 뭘 해볼까 고민하면 '이거 해보자'며 주고받는 친구들이에요. 거리는 떨어져 있는 편이지만 한 달에 2-3번은 만나요. 서울에 살 때 그렇게 만나는 친구는 없었거든요. 비슷한 관심사가 있으니 만날 일이 계속 생겨요. 유랑농악단도 같이 해서 연습을 하고 행사 때 공연도 하고." 

 

유랑농악단이요? 농악이라니. 풍물패인거죠? 

"네, 풍물패 이름이에요. 친구 따라 성북동에 있는 '종점목공소'가 문을 여는 날 갔어요. 다양한 손기술을 가진 이들의 아지트인데요. 잔치에 앞서 언덕 아래에서부터 골목길을 다라 꽹과리와 북, 장구를 치며 목공소까지 걸어 올라오는데 어찌나 즐겁게 놀던지 한눈에 반했죠. 풍물의 매력을 알게 됐어요. 어느새 저도 함께 하게 됐지 뭐예요.(웃음)" 

 

풍물의 매력이 뭐예요? 

"농사를 짓다 보면 내 뜻대로 되지 않는 하늘을 향해 절로 기도하게 돼요. 그럴 때 혼자서 마음으로 빌기보다는 여러 사람과 흥겨울 방법이 있으면 좋을 것 같았는데 풍물이 딱이에요. 함께 어우러져 악기를 연주하다 보면 이것 자체가 간절히 기도하는 마음의 표현이란 생각이 들어요. 많은 이들과 즐겁게 교감할 수 있는 예술이고요. 서울에서 연습하는 공간이 있고 사회적 이슈가 있는 곳에서 길놀이를 하기도 해요."   

 

간절히 기도하는 마음의 표현이라니, 정말 멋져요. 어디어디서 굿 혹은 길놀이를 했어요? 

"저는 2017년 겨울부터 함께 했는데요. 양평 부용리 시농제, 서울 레드북스 '푼돈들' 14주년 기념굿, 어반비즈서울 '햇꿀전' 오프닝굿, 이리카페 출판기념회, 콜트콜텍 해고노동자 끝장투쟁 응원굿, 산안마을 시농제, 양평 다람쥐 개업식과 시시장 등.. 정말 많죠? 함께 하는 친구들의 에너지가 대단해요."  

  

강릉으로 이사하고 나니 새롭게 하고 싶은 게 많을 것 같아요. 

"강릉에 오니까 새로워요. 홍천이랑 많이 다르더라고요. 같은 강원도라고 하기도 이상할 정도로요. 확실히 태백산맥 안과 밖, 영동 영서가 달라요. 강릉은 감나무도 있고 식생이 다르거든요. 강릉에서 아직 겨울을 겪어보지 못했지만 따뜻할 것 같아요. 홍천에 없는 대나무도 많아요. 오죽이라고 하잖아요. 오죽만이 아니라 왕대라고 우리 집 뒤에 큰 대나무가 자라요. 최근에 친구가 담양에서 대나무 공예하는 분에게 기술을 배웠다고, 알려준다고 해서 배워봤거든요. 시간이 많이 걸려요. 정말 필요한 것만 만들 수 있겠지만 대나무 활용법을 알아가고 있어요." 

 

대나무로 무얼 해봤어요? 

"집 주변에 오죽이 엄청 자라요. 집을 뚫고 올라오기도 하거든요. 뒷집 할머니가 자주 베어버리는데 저는 그게 아깝더라고요. 가지를 치다 보면 이쑤시개를 만들 수 있고 일본에서는 새순 돋을 때의 껍질로 삼각김밥이나 초밥을 포장하는 용도로도 쓴대요. 저도 연구 중이에요."  

 

주로 포장지를 개발하네요? (웃음)

"아, 그러네(웃음). 비닐이랑 플라스틱을 대체할 수 있으니까요."  

 

장터 출점을 많이 하는 편이에요?  

"여태까지 10번 정도 됐나. 장터 나가는 건 재밌어요. 뭐랄까, 삶의 실험 공간 같아요. 내가 직접 만들다 보니 일상의 한 부분을 내놓는 느낌이 있어요. 그것들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보며 용기를 얻어요. 내 삶을 응원받고 있는 기분이랄까. 맨 처음엔 누가 살까 걱정했거든요. 잘 팔리면 신기해요. 진짜 되네 하면서요." 

 

이파람은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것들로 이런저런 실험을 많이 하는 것 같아요. 앞으로는 어떤 것들이 하고 싶어요?  

"하고 싶은 게 정말 많아요. 술도 빚어야지, 빵도 구워야지 한과도 모래에 튀겨봐야지. 저희 동네 근처에 유명한 한과마을이 있어요. 옛날에는 뜨거운 모래에 한과를 튀겼대요. 그것도 해보고 싶어요. 천연염색도 하고 싶고 그러려면 쪽도 키워야 하고요. 책으로 본 것들, 옛날에는 이렇게 했었다더라, 비닐과 플라스틱 없는 시절에 이렇게 해봤다는 걸 읽으면 꼭 해보고 싶어요.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니까요."  

 

정말 많네요. 그런 에너지는 어떻게 생겨요? 

"호기심 같아요. 궁금한 게 많아요. 여행을 가서 좋은 걸 봐도 '내 생활에서 어떻게 적용시키지?' 고민해요. 손으로 만드는 걸 좋아하고 불편한 게 있으면 스스로 바꿔나가려고 하거든요. '어떻게 이걸 해보지?' 사고가 일상적이에요. 주변을 바꿔본 경험이 있으니까 새로 시도하는 것에도 스스럼없어요."  

 

호기심 많은 활동가라 이름 붙여야겠다(웃음). 앞으로는 어떻게 살아가고 싶어요? 

"하루를 규칙적으로 살고 싶어요. 아직 도시에서의 습성이 남아서 밤에 늦게 자고 아침에 늦게 일어나요. 늦게 일어나서 농사일하려면 볕이 뜨거워서 '에잇 오늘은 안 되겠다'해버려요. 이제 밭이 가까운 환경에서 살게 됐잖아요. 문 열고 나가면 밭이라서 새벽에 일찍 일어나서 작업하고 아점 먹고, 내가 하고 싶은 작업을 하는 일상을 꿈꾸고 있어요. 그것밖에 없어요. 그렇게 살 수 있으면 완벽할 것 같아요. 습관을 바꾸고 싶어요." 

 

습관 바꾸는 게 제일 어렵대요(웃음). 

"맞아요.(웃음) 그리고 농사도 제대로 지어보고 싶은 꿈이 있어요. 농사짓는다고 말은 하지만 변변치 않았거든요. 농사를 잘 지어서 부모님께 보내드리고 싶어요. 여태까지는 한 번도 드린 적이 없어요. 아침에는 농사짓고 한낮에는 작업하고 해지면 잠드는 일상을 살아보고 싶어요."  

 

작업이라고 하면 최근에 낸 책 같은 거죠?  

"네, 열매하나 출판사와 인연이 되어 함께 책을 낸 경험이 좋아요. 혼자서 '작업해야지' 하면 잘 안 되거든요. 제 그림을 좋아하고 같이 해보자는 분이 있으니까 그 책임감에 하게 됐는데 하면서는 힘들었어요. 마감이 매달 있어서 맞추기 어렵더라고요. 제가 하나를 꾸준히 잘 못하는 사람인데 1년 반 동안 마감을 지키는 생활을 했다니. 스스로에게 자부심이 생겼어요. 또 책이 아니었다면 내 기억 속에만 남을 일을 기록할 수 있어 다행이에요. 내가 혼자서 생각만 하고 말 것들, 흘려보냈던 것들을 잡을 수 있어서. 그게 다른 사람들에게 영감이 되었다고 하니까요. 개인적인 얘기이지 않을까, 누가 궁금해할까 걱정이 많았는데 책 나오고 나서 친구들이 좋았다고 고맙다고 하니까 자신감이 생겨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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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파람의 책 '이파브로의 탐구생활'과 굿즈 '설경' 설명글 (사진: 이파람의 친구) 

 

우리는 마주 보고 앉자마자 매미소리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녀가 이렇게 말했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서울에 오니 가장 놀란 게 뭔 줄 알아요?" 뭐냐고 묻자 매미소리라고 했다. "시골에 살면 매미가 우는지도 잘 몰라요. 다른 풀벌레 소리와 섞이기도 하지만 참매미는 조용히 울거든요. 근데 도시에 사는 말매미는 시도 때도 없이 울어요." 그때서야 이해했다. 매미소리에 파묻혀 여름을 보냈다는 사실을, 도시와 시골은 전혀 다른 감각을 경험할 수밖에 없다는 걸 말이다. 

여름여행으로 간 강릉에서 이파람네에 놀러갔다. 함께 사는 냉이와 배추(고양이 두마리)의 느릿느릿한 움직임을 지켜보는 것으로도 시간이 훌쩍 지났다. 이파람 집은 고요했다. 바람에 일렁이는 나뭇잎이 풀벌레 소리와 섞여 깊은 소리를 만들어냈다. 가만히 생각했다. 바라는대로 살아가는 움직임을 어떤 '활동'이라 할 수 있을까. 일상의 부분을 포착하는 관찰력, 실제 생활에서 적용해보는 시도, 주변 사람들과 함께 하려는 마음. 변화는 여기서부터 시작할 것이다. '하루하루의 습관을 바꾸고 싶다'고 말하는 그녀의 눈빛이 기억난다. 

 

중앙을 벗어나 가장자리로 간다는 건 다시 말하면 자립에 대한 의지였다. 의식주를 제 손으로 꾸릴 수 있는 삶, 자본에 의존하지 않고 자급자족하는 삶을 한번 살아보고 싶었다. 지난 몇 년 동안 자립을 위해 혼자 걷기도 하고 둘이 걷기도 하며 깨달은 것은 '자립'이 누구에게도 기대지 않거나 오롯이 혼자 서는 걸 의미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살가운 친구, 좋은 이웃들과 일상을 함께 만들어 나갈 때 '진짜 자립'을 할 수 있음을 느꼈다. 

 

-이파람, 이파브르의 탐구생활 중에서. 

 

- 재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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