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활동가인터뷰] 덕후출신 정치활동가, 김소희

나는 정치에 관심이 많다. 한 사회의 토대를 만드는 주요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학을 졸업하던 2012년에 마음 맞는 친구들과 '청년당'을 창당했다. 연일 청년 자살률을 다루는 뉴스를 보면서 청년의 목소리를 담은 정치권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부푼 꿈을 안고 거리를 누볐다. 정당을 창당하고 선거에 나가서 판판히 쓴맛을 봤다. 5000명의 당원을 모아야 하는 어려움부터 대학가에서 소리 높여 외치는 선거운동 말고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막막함까지. 2012년 총선에서 정당 득표율 0.3%, 8000표 가까이 받았지만 낙담했다. 넘기 어려운 거대한 벽을 확인하고 다른 길로 가겠다며 돌아 나왔다.

2017년, '우리미래(약칭 '미래당')'가 창당했다. 청년당을 함께 했던 몇 사람들이 이어간다고 해서 반가웠다. 2018년 6월 13일 제7회 지방선거에 서울시장 후보를 비롯해 구의원 출마 선언이 이어졌다. 페이스북을 통해 소식을 보고 있는 아는 얼굴이 도봉구의원으로 출마했다. 투표 결과 8.22%(3,463표)를 보며 '그녀는 어떤 마음일까' 궁금하다가 내 일상에 치여 흐지부지 흩어졌다. 그로부터 1년 뒤, 여전히 활동을 이어가는 모습을 보며 이야기나누고 싶었다. 그녀는 왜 정치를 시작했을까, 출마 경험이 어떻게 남았을까, 지금은 어떤 일상을 보내고 있나. 김소희 미래당 공동대표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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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맞는 '가심비' 정치모델

 

요즘 신문을 보니 여야 정치권이 2020년 총선을 향한 행보에 돌입했다고 하더라고요. 내년 총선이 2020년 4월 15일이던데 미래당은 어떤 준비를 하고 있나요?

"요즘 미래당은 작년 지방선거 경험을 바탕으로 재창당에 가까운 근본적인 이야기를 나누고 있어요. 회의회의회의의 연속이에요. 올해부터 ’우리미래’ 당명보다’ '미래당'이란 약칭을 대외적으로 쓰는데요. '우리미래'는 '우리'에 대한 인식이 각자 다양한 거예요. 우리나라에서 '우리'는 보편적인 거죠. 선명할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에 '미래'를 더 강조했어요. 우리에게 맞는 정치모델, 정당모델을 찾으려고 해요."

 

우리에게 맞는 정치모델, 정당모델을 찾는다는 건 미래당의 정체성을 고민하고 있다는 소리로 들려요. 여러 시행착오를 겪고 있을 것 같아요.

"맞아요. 미래당은 늘 정체성을 고민하고 있어요. '세대에 갇힌다'와 '선명해야 한다'가 왔다갔다 하거든요. 제 입장은 '현상보다 본질에 주목하자'에요. 기존 관념으로 청년을 보면 절대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있어요. 예를들면 가성비와 가심비의 차이에요. (가심비가 뭐에요?) 가심비는 마음가는대로 쓴다는 뜻인데요. 보통 청년들은 비정규직이고 알바를 하더라도 해외여행을 가고 취향대로 소비하잖아요. 근데 기성세대가 볼 땐 한심하게 느끼기 쉬워요. 우리 세대가 살아가는 사회구조적, 문화적 측면을 함께 봐야하는데 재단해버리면 더이상 대화가 안 되죠. 

정책도 그래요. 청년정책의 성과를 취업률로만 보니까 답답해요. 청년을 보는 관점, 정책을 판단하는 기준이랄까요. 여가 시간에 무엇을 하는지, 근무시간이 줄어들었는지, 어떤 정책과 연계되거나 새롭게 만들어지면 좋을지. '삶의 질'을 중심으로 사고하자는 제안을 하고 싶어요."

 

구의원 출마경험으로 남은 것

 

마음가는대로 쓰는 ‘가심비'를 청년의 특성으로 잡은 게 신선하네요. 청년을 보는 관점, 정책을 설계하는 기준이 전환될 필요가 있다는 말에 공감했어요. 그런 변화를 위해 작년 지방선거에서 도봉구의원으로 출마 한 거죠?

"작년 지방선거는 '미래당'이 새롭게 창당하고 맞이하는 첫 선거이고, 누구라도 나가야 하니까 저도 출마했어요. 광역단체장, 시장은 멀게 느껴졌고 19년째 살고 있는 도봉구의원으로 나갔죠. 창당대회할 때 정의당 이정미 의원과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몇 살이냐고 묻더라고요. 34살이라 했더니 자신도 제 나이에 중앙당직자가 됐고 15년 만에 국회의원이 되었다는 거예요. '와, 멋있다' 생각했어요. 한 길을 꾸준히 하는 모습이 좋았어요. 직접 출마해보니 느껴지는 게 더 컸어요. '이렇게 15년을 해왔구나, 대단하다' 하고요. 

사실 어느 정도 득표만 받아도 괜찮다고 생각했지만 끝나고 나서 힘들긴 했어요. 주변에서 정치 싫고 시민활동 하겠다는 사람들이 이름있는 정당 공천받아 당선되는 걸 보니까 무기력해지더라고요. 큰 정당을 넘어서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어요. 좌절감도 밀려오고. 그리고 뭐만 하면 선거법이 가로 막더라구요. 제도권 안에 있는 의원에게만 맞춰져 있는 제도 같아요. 가진 것 없이 시작한 사람에게 쉽지 않은 일이구나. 출마하며 느꼈던, 말로 다 할 수 없는 한스러움이 많았어요."

 

출마 전과 후가 굉장히 달랐을 것 같아요. 선거운동하면서 어떤 걸 느꼈어요?

"무기력함은 선거 끝나고 나서의 상태고, 선거기간 중에는 내가 하고 싶은 걸 다 하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사람들을 만나면서 보이는 게 다르니까. 명함을 나눠주면서 느꼈어요. 내가 명함을 받는 입장일 땐 6번, 7번 사람들은 왜 출마할까 의아했는데요. 명함을 나눠주고 보니 그들은 거대 양당구조를 조금이라도 바꿔보려고 했던 거더라고요. 제가 7번을 받고도 3000표 넘게 받은 건 소수정당, 원외정당으로 무수하게 출마했던 정치 선배님들의 성과예요. 

또 하나는 지하철역에서 명함을 나눠주다 보면 하굣길이랑 겹치잖아요. 청소년들이 우르르 지나가면 뻘쭘한 거예요. 나눠줄 수도 없고 무시할 수도 없었어요. 그냥 스쳐 보내기 불편해서 그 친구들에게도 명함을 나눠줬어요. 같은 동네 사니까 어떤 구의원 나왔는지 보라고요. 누나냐, 언니냐 묻는 애들에겐 말장난도 했고요. 어떤 분이 지나가면서 그랬어요. '우리 애가 열심히 나눠주는 후보가 있다더니 이 후보였네' 하면서요. 나조차도 청소년 인권을 얘기하고 투표권 연령이 낮아져야 한다고 하지만 실제로 맞딱들이니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있나 생각해보게 됐어요. 청소년들이 다 다르게 느껴지는 경험이었어요.

마지막으로 청년에게 공감이 많이 됐어요. 선거운동은 보통 아침 7-8시부터 저녁 6-7시까지 하는데 그 시간대에 청년은 없었어요. 치열했던 유세현장에 청년은 없는 거지. 투표 3일 남겨두고 막차까지 유세를 했어요. 밤 11시가 넘어서부터 청년이 쏟아져 나오는 거예요. 일요일 아침 일찍 나가니까 밤새 아르바이트하고 이제 집에 간다는 사람도 많았고요. 이런 친구들에게 너네 왜 정치에 관심 없냐고 호통치는 게 얼마나 폭력적인가. 경제적으로 자립도 해야 하고, 당면한 일들이 산적한테 거기에 투표까지 하라고 하니까. 청소년 시기엔 정치의 정도 꺼내기 어려운 교육을 받잖아요. 갑자기 20살이 됐다고 투표하라고 하면 벙벙할 수밖에 없죠. 이해가 됐어요."

 

출마하면서 어떤 메시지를 던지고 싶었어요?

"도봉구는 개발에 대한 갈증이 많은 동네라고 생각해요. 서울에서 가장 집값이 안 오르는 곳이거든요. 창동·상계 신경제중심지 조성사업이 발표되고 2조원 넘는 재원이 투입될 예정이고, 2만석 규모 아레나 공연장이 생길예정이고 하면서 들썩들썩해요. 하지만 나는 그런 생각이었죠. 집값 오르는 것과 내 삶의 행복은 별개라고요. 지나고보니 메시지로 나를 표현하는 게 부족했던 것같아요. 선거운동 자체도 다르게 했어야 하는데 시간이 없을뿐더러 기존 방식에서 사고하게 되니까. 내가 하고자 하는 말과 그것을 드러내는 방식이 불일치 했다고 해야 할까요. 그래서 선명하게 나타내지 못했던 것 같은 아쉬움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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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하고 싶은 정치

 

앞으로가 더 고민이겠어요. 내년 총선에서 출마를 하게 될까요?

"하면 하겠는데 더 현실적으로 변했어요. 처음 출마할 땐 '내가 이런 생각하니까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하겠지. 빚지고 해도 어떻게든 되겠지.'했는데 지금은 국회의원 기탁금부터 따져보게 돼요."

 

구의원은 200만원, 국회의원 기탁금이 1500만원이라고 들었어요. 정치 현실은 녹록치 않죠. 그럼에도 앞으로 어떤 활동, 어떤 정치를 하고 싶어요?

"재미있는 정치를 하고 싶어요. 개인취향이 있듯이 정치취향이 있는 정치요. 그동안 제도와 시스템에서 사고해온 것 같아요. 정당은 많은 사람들이 지지하게끔 만드는 거잖아요. '정당에서 왜 그런 걸 해?' 할지라도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는 것들을 고민하고 있어요. 만약 어떤 사람들이 플라스틱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고 하면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테이크아웃 안 쓰기 운동을 하는 거죠. 거기서부터 시작해야 제도는 물론이고 사람들 인식도 바뀐다고 생각해요. 고양이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동물정책을 논의 하듯이요. 평범한 사람도 정치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결이 맞는 사람들을 만나고 싶어요.

그리고 최근에 하고 싶은 게 생겼는데요. 초중고 돌면서 정치설명회를 하고 싶어요. 취업이나 진학 설명회 말고 정치, 정당설명회요. 이번에 청소년 박람회에 부스로 참여했어요. 지방자치단체가 주관해서 여는 행사인데 엄청 크더라고요. 버스로 학생들을 싣고 와요. 우리 부스만 2000명 정도 왔나. 정당을 걸기보다 우리가 하는 '공감학교' 컨셉으로 부스를 진행했거든요. 마음이 어떤지, 무엇이 고민인지 이야기를 나눴어요. 대부분이 학교, 학원 얘기를 했어요. 학원 다니기 싫다, 선생님이 자기보다도 모른다.. 이런 말을 들으니까 교권이 무너진다는 게 어떤 것인지 알겠어요. 여기서 만난 친구들은 내가 무슨 말을 하면 잘 이해해요. 이들의 민주 감수성을 어떻게 살릴 수 있을까. 고민으로 남았어요."

 

노래가사에서 시작한 나의 정치

 

어떤 계기로 정치에 관심갖게 됐는지 궁금했어요.

"정치를 어떻게 시작했냐고 물으면 사회운동이나 총학생회 얘기를 해야 될 것 같은데 사실 난 서태지와아이들에 열광했고 고등학교 땐 공부 제쳐두고 H.O.T를 따라다녔어요. 어쩌다 이러고 있는지 나도 모르겠어요(웃음). 근데 지금 생각해보니 사회의식이 없었던 게 아니었어요. HOT 노래 중에 '늑대와 양' 들으면서 학교폭력문제에 대해 공감했거든요. 사회적인 메시지가 담긴 노래를 좋아해서 이승환 음악도 즐겨 들었어요. 어쩌면 나의 정치는 노랫말에서 시작하는지도 몰라요. 1997년에 KBS에서 염색한 가수들은 출연을 못 했거든요. 검은색 머리이거나 두건을 썼죠. 팬클럽 차원에서 방송심의규정 철폐운동을 하고 그랬다니까요."

 

요즘도 좋아하는 가수가 있나요?

"요즘은 BTS를 좋아해요. '얘네가 왜 이렇게 떴지?' 궁금해서 역주행하기 시작했어요. 이 흐름을 알고나니 미래당에게도 새로운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이 들었어요. 흔히 말하는 3대 대형기획사 소속이 아닌 중소기획사에서 시작한 모습이 거대 정당 사이에 있는 원외정당 ‘미래당’의 모습이 오버랩되어 보였어요. BTS가 뜬 건 누구나가 자기 얘기라고 느끼게 했기 때문인 것 같아요. 멤버들 자신의 이야기로 노래가사를 쓰기 시작하면서 공감을 일으켰어요. 게다가 VLIVE, 유튜브 등 다양한 플랫폼에서 이들의 일상이 보이니까 친밀하게 느껴지는 거예요. 방탄소년단이란 아이돌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며 나도 슈퍼스타가 되는 느낌이랄까. 재미있는 건 빌보드 상을 받아도 숙소에 돌아와서 멤버들끼리 파티하며 실시간 방송을 해요. '저희 상 받았어요. 여러분들 덕분입니다' 하는 거죠. 보고 있으면 그래요. '저들이 대단한 사람 같지만 알고 보면 나와 같은 사람이구나.' BTS의 메시지는 아미(BTS팬클럽 이름) 덕분에 이렇게 되었다는 게 핵심이에요. 그것에 대한 글로벌적인 공감대가 퍼진 거죠. 선한 영향력이라 봐요."

 

정당 창당하고 출마하고 선거운동하느라 바빴을 텐데 BTS는 언제 팠어요? 

"지방선거 끝나고 땅굴 파면서 BTS도 팠어요.(웃음)"

 

자연스레 창당한 '미래당'

 

땅굴에서 BTS를 만난 셈이네요.(웃음) 서태지와아이들, HOT 그리고 BTS를 좋아하는 건 누구나 있을 수 있는데 어떻게 정당까지 만들게 됐어요? 

"우연히 하게 됐어요. 저는 직장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콘서트 다니면서 풀던 직장인이었어요. 회사 다닌 지 5-6년이 되던 29살이 힘들었거든요. 구조조정으로 잘리는 사람도 많고. 저는 도시계획 관련된 일을 하고 있었는데 더 이상 개발할 땅이 없으니 뭘 해야 할지 모르겠고. 내 미래가 안 보였어요. 그때 많은 팟캐스트, 인문학 정치 관련 강의를 들으러 다녔는데 우연찮게 통일이야기를 듣게 됐죠. '통일이 되면 도시계획만한 직업이 없겠다, 조금 더 버터야겠다' 희망이 생기더라고요. 

그때부터 NGO활동을 시작했고 거기서. 현장탐방이라고 이슈가 있는 현장을 다녔거든요. 언론에서의 프레임이 아니라 밀양 할머니를 먼저 만났고 4대강도 내성천의 아름다움이 먼저 눈에 들어왔어요. 세월호 사고가 있고 나서 유가족분들과 삼보일배를 했었는데 가슴이 찡했어요. 그냥 같이 하고 싶어 졌어요. 뭐가 되든. 그렇게 만난 친구들이랑 뭐라도 해보자 얘기하다가 청년당 경험이 있는 사람이 있다 보니 자연스레 정당을 하게 됐어요. 청년당은 해산되었는데도 다시 하자는 걸 보니 재미있나 보다 생각했는데 낚였어요.(웃음)"

 

낚인 거 치고 벌써 3년이네요. (웃음) 마지막 질문입니다. 계속 이어가는 동력이 무엇인가요?

"내가 이걸 하는 원동력은 사실 사람이에요. '미래당 정체성이 뭐지?'고민하다가 결국 여기 모인 사람들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사람들이 가끔 얼마 받냐고 물어보는데요. 여기 모인 사람들은 다 자원활동으로 참여해요. 좋아서 하는 일이니까요. 좋아하는 사람들과 경험을 공유하고 있어요. 미래당이 없었으면 내가 어떻게 당대표를 하고 출마를 하겠어요. 값으로 매길 수 없는 경험이죠. 물론 활동을 지속하려면 계속 이렇게는 할 수 없겠지만 그럼에도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하는 사람들이 바꾸는 정치는 어떨까. 꼭 우리만이 아니라 각자의 영역에서 그렇게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많을 거예요. 비슷한 사람들을 모으는 작업은 생각보다 쉽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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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번 고개를 끄덕였다. 나에게 각인된 '정치'가 좌절의 경험으로 남아서인지 약간은 무겁고 긴장된 상태로 미래당 사무실을 찾아갔었는데 웬걸, 실컷 웃었다. 스스럼 없이 가볍고 시원해졌다. 원래 아는 사이라 친근하기도 했지만 경계를 허물고 견고한 벽의 틈을 내려는 사람들이 갖는 특유의 친화력 덕분일 것이다. 구의원 출마경험을 진득하게 얘기하다가도 BTS가 대화의 주제가 되자 랩처럼 빨라지는 속사포 말들에 빨려들어갈 뻔했다. 정치의 기본(활동의 기본이기도 하다)은 주변에 대한 관심, 뭔가 해보겠다는 에너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치계의 BTS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하는 사람들의 정치가 기대된다.

_ 재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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