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인터뷰] 시도를 넘나드는 시도의 이야기 - 시도


지난 한해 여러 사람들에게 활동이란 무엇인지, 활동가는 누구인지와 연결된 질문으로 인터뷰를 요청했다. 다들 어려운 질문이라고 했다. 그 어려운 질문에 나도 답을 해야 공평할 것 같다. 내가 현장이라고 인식하는 장이 존재할 때는 활동과 관련된 질문이 어렵지 않았다. 나의 말과 글, 걸음이 모두 활동이었고 그것이 어떤 활동인지, 왜 활동인지, 인식하고 연결해서 사고할 수 있었다. 활동현장을 떠나고 활동이 무엇인지 잃어버린 사람처럼 느껴졌다. 내가 그토록 열정을 쏟았던 것이 상처만 남긴 기분이었다. 다시 활동에 대한 질문을 할 수 있었던 건 여러 활동가와의 인터뷰 덕분이었다. 세대와 분야, 지역이 다양한 활동가들의 말에서 나의 경험을 해석하고 마주하고 아프고 가슴 벅차하며 다시 활동을 고민할 힘을 얻을 수 있었다. 나 역시 서로가 서로의 참조점이 되어주는 성찰적 글쓰기의 가능성에 동참해 본다.

 

Q. 당신은 활동가인가요? 어떤 사람이 활동가일까요? 활동이란 무엇일까요?

활동은 사회변화를 만드는 일인데 동기와 형식은 제각각이고 자기 질문과 문제의식을 사람들과 함께 풀어간다. 활동가는 문제의식을 나누고 문제를 푸는 방식을 궁리하는 장을 펼친다. 방법을 제안하고 실행한다. 자신의 속도만큼이나 사람들의 반응과 욕구를 면밀히 살핀다. 활동가는 더 좋은 사회, 동료시민들이 더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으로 연결하고 발화하고 작당하고 직조한다. 요새는 세상의 변화를 만들기 위한 활동 이전에 ‘나’라는 존재의 보존이 더 중요하게 느껴진다.

오랜 시간 활동가를 정체성이라고 생각했다. 활동가는 같은 걸 보아도 다른 생각을 한다고 생각했다. 요즘 생각은 다르다. 활동에 대한 특별함 주목, 무게를 과도하게 부여해온 것이 아닌가 싶다. 변화에 대한 욕구는 모든 인간이 갖고 있다. 오히려 노동자로 자기가 맡은 일에 대한 의지나 책임감, 직업윤리로 접근해도 무리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게 기본이 된 사회에서 활동은 오히려 예술의 영역인 것 같다. 얼마 전에 이런 내용을 페이스북에 썼더니 무게 좀 덜으라고 하더라. (웃음) 맞다, 내가 그동안 너무 무겁게 느끼고 활동했다.

 

Q. 다양한 활동이 있는데 지역(지방)에서 활동을 시작한 계기가 궁금해요. 그 활동이 나에게 미친 영향도요. 

부모님 집이 서울이 아니다. 중고등학교를 지리산에서 다녔다. 서울 수도권의 중심에서 산 시간보다 변두리에 산 시간이 길다. 왜 대학은 서울로 가야만 하는지, 서울에 가야 모든 기반시설이 있고 새로운 시도들이 일어나는지 짜증이 났다. 서울보다 지역에 사람도 더 많이 사는데 사람이 사는 것처럼 다뤄지지 않는 것도 싫었다. 지난 여름에 강원도로 여행을 갔는데 다른 지역에 태풍이 많이 불고 피해가 났는데도 서울을 지나가는 태풍 뉴스만 계속 나오더라.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다. 중앙방송에 나오는 뉴스와 드라마의 배경도 다 서울이다. 서울 외 사천만 인구가 천만이 사는 서울이란 배경에서 일어난 일들을 보고 선망하며 자란다. 그게 너무 X같았다. 지역에 살며 생기는 갈증과 결핍을 스스로 해결해보고 싶었다. 전체로 보면 서울보다 사는 사람도 많으니 공감하는 이들도 많을 것 같았다.

양적 에너지가 누적되어야 질적 변화가 이루어진다. 변화를 위한 활동을 축적하고 싶었다. 집값 비싼 서울보다 조금 더 여유를 갖고 정주해볼 수 있는 곳이 지역이라고 생각했다. 결과적으로 보면 그렇게 하진 못했다.

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하며 지역에 대한 이해와 애정이 더 깊어졌다. 동시에 지역에 대한 애증도 많아졌다. 부작용으로 서울을 좋아하게 됐다. 서울의 익명성이 좋고 거대 도시의 에너지와 역동이 좋다. 통계적으로 서울은 인구 대비 나와 잘 맞는 사람을 만날 확률이 더 높다. 1/1000과 1/30은 엄청 큰 차이다. 환경, 생태, 인권, 젠더, 권위에 대한 감수성이 있는 사람들과 일상적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것은 나의 행복에 중요한 조건이다. 활동을 지속하는 핵심 이유 중 하나는 이 생태계는 내가 살기에 상대적으로 안전하다고 느껴서다.

지역에서의 활동 1부가 막이 내린 기분이다. 2부가 또 열려야 할 것 같다. 20대 내내 나에게 던져진 질문에  최선을 다해 답했는데, 막상 하고 나니 더 큰 숙제가 생긴 느낌이다. 빚을 갚았는데 빚이 또 생겼다. 활동이 나에겐 세상에 대한 빚이라는 무게감이 있다. 이젠 그 무게를 덜고 먼지같이 사는 것이 목표다.

 

* 지역에서 활동하며 마음이 어려울 때면 가까운 바다에 일몰을 보러 갔다. 

 

Q. 지역사회에서 활동하며 어려웠던 점은 없으세요? 조직 또는 활동을 그만두고 싶을 때가 있다면 언제인가요? 그만두고 싶었던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어려웠던 점은 너무 많다. 근데 꼭 지역이라 어려운 건 아니다. 어렵지만 활동은 나의 주요한 정체성이고 즐거운 라이프스타일이라서 놓칠 수 없는 것 같다. 아무 것도 안 할수가 없다. 막 뭔가가 하고 싶어서 몸이 근질근질하다. 작년엔 활동 자체를 그만두고 싶어서 별별 진로를 다 고민했지만 균형을 잡을 일이지 그만둘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더라.

활동 과정 속에서 여러 한계들, 거버넌스라는 운동방식의 한계, 행정조직과 사업에 흡수되는 활동과 사람, 평등하기 어려운 민관협치, 함께 할 동료가 없고 활동가가 지속하기 어려운 경제적 여건, 나 자신에 대한 기대가 무너지는 일들, 특히 활동에 대한 사유화나 도구화에 대한 욕구를 느낄 때면 자신이 환멸스러워서 견디기 어려웠다. 나만은 내가 욕했던 사람들과 같은 사고나 결정을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저절로 그런 마음이 생길 때면 인간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기도 했다.

어느 순간 어떤 사례로 소비되고 열정과 영혼, 네트워크가 쓰여졌다는 느낌이 들 때는 회의감도 들었다. 그럼에도 나의 고민을 나눌 수 있는 장을 마련하고 초대해준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사적인 나로 이루어진 관계보다 공적인 나가 커졌을 때 그 갭을 버티기 어려웠다. 매사 책 잡히지 않으려고 조심하는 관계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 나로 살고 싶었다. 나에게 기대하는 모습으로 살려고 노력하는 것이 버거웠다. 내부의 기준을 잘 세우고 작은 결정이라도 타협하지 않아야 자신이 훼손되지 않더라. 나를 지키려고 활동을 멈춘 것 같다. 이미 너덜너덜해진 후에 알게 된 사실이다.

중간지원조직에서도 일했었다. 지원조직을 자기 현장으로 삼고 더 잘 지원할 수 있는 유연함과 감수성을 갖춘 사람, 기관이 많아지는 것은 참 중요하고 소중하다. 특히 젊은 세대들이 행정의 지원을 받는 사업이나 중간지원조직을 통해 활동이란 것을 접하게 되는데 첫 만남이 많은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지원조직과 현장, 대표와 매니저, 여러 역할과 조직에서의 경험은 나란 사람을 아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나는 행정 일을 하며 누군가를 지원하는 것보다 내가 중심이 되어 나의 속도와 컨디션대로 하고 싶은 것들을 직접 기획하고 시도하는 것이 더 즐거운 사람이다. 더 정확히는 그런 자유가 건강한 욕망을 촉진하고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들을 발견하고 끄집어낸다. 이걸 아는데 한참 걸린 것 같다.

 

Q. 그럼에도 계속 그 일을 하는 동력은 어디에서 오나요? 활동을 지속하는 동기는 무엇인가요? 

그 자체로 신나고 즐겁다. 말 통하는 사람들과 일하고 친구할 수 있어서 좋다. 더 나은 것에 대한 순수한 열망, 변화의 의지가 모이는 기쁨, 변화를 확인하며 느끼는 보람이 있다. 그 변화가 거창하고 큰 것은 아니다. 한 번의 두드림이고 더 시도해볼 수 있는 가능성이고 더 나은 세상에 대한 희망이다. 활동을 하며 세상을 낙관할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물론 활동 때문에 비관도 하지만. 비워야 채우듯이 여유와 여력이 있어야 활동도 가능한 것 같다.     

 

Q. 지금 우리 동네에 또는 일하는 영역에서 필요한 변화와 그 일을 하기 위해 필요한 활동은 무엇일까요?

무얼 더 할까가 아니라, 무얼 더 빼고 하지 않을까를 고민해야 한다. 필요를 고민할 시간이 필요하다. 사업과 돈 이전에 함께 숙의할 시간이 별로 없다. 넘치게 일하지 말고 일정 부분 비워둔 채 일하면 좋겠다. 

나를 포함해서 내 주변의 또래 활동가들이 우울증에 걸린 것 같다. 무기력하고 스스로 무능하다고 느낀다. 우울감을 자주 느끼고 자책의 언어를 사용한다. 어떤 기사에서는 젊은 세대가 집단 우울증에 걸린 것 같다고 한다. 스스로 이 상황을 빠져나올 수 있을 것 같지 않은 깊은 절망감에서 오는 우울감과 무력감. 무엇이 해법인지 모르겠다. 함께 모여 고통을 나눠도 줄어들지 않는 것 같다. 일하는 사람의 마음과 생각을 자꾸 질문하면 좋겠다. 각자 자기 자신에게 제일 관심이 많겠지만 다른 사람들의 안부도 물어주면 좋겠고. 있는 그대로 수용되는 경험이 결핍되어 있다. 각자도생의 세상에서 활동가라고 다르지 않은 것 같다.

 

* 산호뜨개 제안자이자 과학저술자인 마가렛 웨르하임이 독일의 Kunst der Westkuste 박물관에서 산호뜨개 전시물과 함께 있다. 이상기후로 사라지는 산호의 생태계 내 위치를 재조명하고 산호에 대한 관심을 환기하는 커뮤니티 아트로 산호뜨개를 기획하고 전 세계적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한국에서도 제주의 정은혜 선생님의 제안으로 프로젝트를 진행중이다. 이 프로젝트에 큰 감동을 받아서 친구들과 산호뜨개모임을 하고 있다. (사진출처: 2012,Institute for Figuring) 

 

Q. 요즘 가장 집중하고 있는 생각, 그리고 내가 하고 싶은 일(활동)이 있다면요?

지난 활동들을 돌아보며 괴롭고 힘들었던 지점들을 마주하고 있다. 한 때는 보여지는 명분(?) 때문에 어떤 선택을 하기도 했고, 추구하는 가치를 위해 나 자신을 도구화하기도 했다. 운동은 기획이 아니다. 누군가를 대상화, 도구화하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다. 개인의 지속가능성을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는 강한 의지를 갖고 있다. 하고 싶은 활동은 잘 모르겠다. 최근에 산호뜨개 모임하면서 무척 즐거웠다. 재미와 의미를 다 갖춘 일을 오랜만에 만난 느낌이었다.

 

Q. 활동가 인터뷰를 진행하면 느낀 소회가 있다면?

인터뷰 말미마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삼키고 정제했던 이유는 독자들이 인터뷰이의 생각을 직접 대면하고 확인하며 글을 읽는 자신과 소통하길 바래서였다. 누군가의 인터뷰를 읽고 조직을 진단한다는 소식도 반가웠고, 누군가의 인터뷰를 읽으며 공감하고 위로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 보람도 느꼈다. 글이 글로만 존재하지 않고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고 작은 변화를 만든다는 기쁨이 있었다. 좋은 인터뷰이들 덕분이다. 

인터뷰를 정리하고 맞춤법을 맞춰가면서 누군가의 이야기를 수십번씩 읽을 수 있었다. ‘나’에게 집중해왔던 에너지를 타인을 온전히 경청하는데 쓰는 것이 묘하게 기뻤다. 더 플랜B에 올라온 다른 글들을 읽으며 공익활동의 흐름과 이슈를 톺아볼 수 있었던 것도 수확이다. 이 글도 누군가에겐 요긴하게 읽히고 시간이 지나면 역사가 될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앞으로 남은 인터뷰도 잘 기록하고 싶다.  

_ 인터뷰이, 인터뷰어: 시도 (인터뷰 날짜: 2019-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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