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인터뷰] 나의 우주에서 시작하는 뜨거운 균열 - 믿는페미

최근 몇 년간 한국사회에서 가장 핫한 주제는 페미니즘이다. 작년에 참여했던 페미니즘 활동가 교육에 사람들이 몰리는 것을 보며 자기 문제에서 출발해 직업적 사회활동가로 확장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영역을 가리지 않고 변화의 물결이 일어나고 있고, 다양하고 신선한 활동과 언어들이 쏟아져 나온다. 종교도 예외가 아닌데 그 중 두드러지는 활동을 보여주는 곳이 ‘믿는페미’다. 기독교와 페미니즘이 어떻게 양립할 수 있는지 의문을 던지는 이들에게 우리의 존재 자체가 양립의 증거라고 말하고, 둘 사이 경계에서 고민하고 불안해하는 이들에게 우리도 함께 고민하고 있다고 말한다. 바깥에선 할 수 없는, 믿는 사람이기에 가능한 애정 가득한 전투를 응원하며 ‘믿는페미’ 활동가들을 소개한다.

 

  • 인터뷰이: 믿는 페미 (달밤, 도라희년, 새말, 폴짝)
  • 인터뷰어: 시도 (더 이음)
  • 인터뷰 날짜: 2019-01-03

 

‘믿는페미’는 어떤 일(활동)을 하고 있는 곳인가요? 하고 있는 일에 대해 이야기해주세요.

 (폴짝) '믿는페미'는 2017년 3월에 만들어진 크리스천 페미니즘 운동단체에요. 처음에는 달밤, 더께더께, 오스칼네 고양이님이 단체를 만들었고, 현재는 달밤, 도라희년, 새말, 폴짝 이렇게 4명의 활동가가 함께 활동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매주 목요일마다 티스토리에 웹진 ‘날것’을 발행하고, 월 1회 ‘노브라’라는 책모임, 정기적이지는 않지만 팟캐스트 ‘믿는페미 교회를 부탁해’를 녹음해서 올리고 있어요. 이외에도 여성주의 예배인 ‘짓는 예배’와 여성들을 위한 수련회 ‘짖는 수련회’, 요청에 따라 인터뷰와 강연에 응하기도 합니다. 또 낙태죄 폐지 운동이나 교회 내 성폭력 근절, 성소수자 이슈와 관련하여 연대 및 활동을 하기도 해요.

이렇게 나열하고 보니 믿는페미가 하고 있는 일이 되게 많네요. (웃음) 이런 다양한 활동들을 하고 있는데 결국에 이것들을 관통하는 건 공고한 남성중심문화에 균열을 내고, 지워졌던 여성과 소수자들의 목소리를 내는데 있는 것 같습니다.

 

* 집회에 나가면 처음 만든 '믿는페미' 깃발

 


믿는페미의 활동을 보며 이 활동을 하는 사람들은 자신을 활동가라고 규정하는 지 궁금했어요. 당신은 활동가인가요? 활동이란 무엇일까요? 지금 하시는 일을 무엇이라고 정의하세요?

(새말) 어디에서 소개할 때에는 '믿는페미 활동가'라고 말하고 있는데, 활동의 정의에 대해 생각해보려니 약간 어렵네요.

 '활동'이란 당연하게 여겨졌던 사회문화, 통념에 문제를 제기하고, 옳다고 여기는 가치로 사회를 변화시켜가는 움직임이라고 생각합니다. 믿는페미 활동은 기독교 내에서 당연시 되었던 성차별적 문화, 소수자 혐오적 문화에 균열을 내고, 궁극적으로 성평등하게 변화시키려는 활동입니다.

그런데 '활동가'라는 단어가 주는 투쟁적인 느낌, 희생적인 느낌이 있는 것 같아요. 활동이 투쟁, 희생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에게 '고생한다', '힘들겠다'라는 이야기를 듣기도 하구요. 물론 믿는페미 활동을 하면서 성차별적 문화, 교회성폭력 사건들을 접하고 투쟁할 때에 마음이 너무나 아프지만, 활동에 고통스러운 부분만 있느냐고 하면 그건 아니거든요.

오히려 모이고, 이야기하고, 바꾸어가는 활동들이 우리에게 치유가 되기도 해요. 분노할 때는 분노하지만, 지속성을 가지기 위해 더 많이 즐겁고 유쾌한 믿는페미 활동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희생은 정말 하고 싶지 않아요. 여성이라 희생해온 것들이 얼마나 많은데! 현재는 믿는페미 활동에 대한 금전적 보상을 얻지 못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노동에 합당한 활동비가 생기기를 바라고 있고요. 지금 당장은 비금전적 보상들, 이를테면 활동을 하며 느끼는 충족감, 활동경험 축적, 공동체에서 느끼는 연대감, 희망사항이긴 하지만 변화해가는 교회문화 등등이 우리의 보상이 되고 있습니다.

 

믿는페미 활동을 하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희년) 함께 활동하는 ‘달밤’의 권유가 있었어요. 달밤과는 대학원 여성신학 세미나에서 만났어요. 어느 날 달밤이 크리스천 페미니즘 운동 일환으로 다른 동료들과 함께 믿는페미의 모임을 꾸리게 됐는데, 그 활동 중 하나가 팟캐스트라며 저보고 팟캐스트 패널로 참여하면 어떻겠냐고 제안했어요.

 그 당시 저는 교회 안에서 페미니즘 운동을 할 수 있을까? 할 수 없다면 교회를 벗어나 일반 여성 단체에서 활동해야하나? 라는 고민을 하는 상황이었구요. 어쩌면 팟캐스트 패널로 참여하면서 위의 고민에 대해 좀 더 명확한 해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미한 기대를 가지고 그 제안에 승낙했어요. 팟캐스트 패널로 참여하면서, 후에 믿는페미 코어멤버로 활동하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크리스천 페미니즘 운동 활동가로 참여하게 된 게 믿는페미 활동 계기가 되었어요.

 

* 온라인에서도 상시 판매중인 2018 퀴어문화축제 기념 스티커. 믿는페미에서 제작했다.

 

활동하며 어려웠던 점은 없으세요? 그만두고 싶을 때가 있다면 언제인가요? 그만두고 싶었던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달밤) 그만두고 싶었던 적은 단연코 없어요. 이렇게 좋은 운동, 멋진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거든요. 기독교처럼 가부장적인 종교를 버리지 못하면서 페미니즘을 하겠다니 어불성설이라는 비난을 듣곤 합니다만 우리의 고민을 더 깊고 풍성하게 만들 뿐 타격을 주지는 못해요. 왜 우리가 신앙을 버리지 못하는 걸까 고민하기보다는 내 신앙은 내 건데 왜 버리나, 잘못 믿고 잘못 해석하는 사람이 버려야지! 하는 생각으로 버티죠.

기독교가 가부장적인 문화와 성차별적인 사회 배경 아래서 조형된 종교라는 걸 이해하면서도, 그 시대적 한계를 넘어서는 초월성을 찾으려고 해요. 예를 들면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라거나 “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 같은 것들요. 기독교는 궁극적으로 사랑을 말하는 종교인데 그 안에서 성차별과 폭력이 용인된다는 게 말이 되나요. 바꿔야죠. 바꿔나가야죠, 우리가, 그리고 함께하는 사람들이.

 
인터뷰를 하며 활동의 힘듬과 불안함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듣게 되는데 달밤에게는 변화의 동력과 확신이 느껴지네요. 계속 활동하는 동력은 어디에서 오나요? 활동을 지속하는 동기는 무엇인가요? 

(폴짝) 현재 활동하는 4명 모두 본업이 따로 있기 때문에 믿는페미 활동에 시간, 체력, 돈을 들여가며 활동하는 게 버거울 때도 있는 것 같아요. 그럼에도 이 활동을 지속할 수 있게 하는 가장 큰 동력은 ‘동료’들인 것 같아요. ‘믿는페미가 아니었으면 접점이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서로 다른 경로로 살아온 사람들이 동료라는 이름으로 모인 것도 신기하고, 그렇게 모인 사람들과 이토록 잘 맞을 수 있다는 것도 신기해요. 저에게는 없는 에너지와 장점이 많은 멤버들이라서 많이 배우고, 많이 의지하게 되더라고요.

저는 어떤 일을 시작하면 세심하고, 꾸준하게 지속할 수 있는 반면에 새로운 아이디어가 샘솟는 사람은 아니에요. 반면 저희 멤버들 중 새말님과 달밤님은 신선하고 새로운 아이디어가 퐁퐁 샘솟는 사람들이고, 희년님은 그걸 적절하게 현실화시켜주는 장점이 있어요. 그래서 늘 멤버들을 보면서 ‘오! 이런 것도 가능하구나!’ 하면서 놀라기도 하고, 새로운 아이디어와 에너지를 얻기도 해요. 그래서 이런 동료들과 함께하는 것은 저에게 큰 즐거움이고, 이런 즐거움이 믿는페미 활동의 동력, 동기가 됨과 동시에 제 삶을 지탱하고 있고, 삶을 살아가는데 큰 동력이 되고 있어요. 

그리고 또 다른 동기는 믿는페미 활동에 관심을 가져주시는 분들인 것 같아요. 때로는 ‘관심에 부응할 수 있을까?’하는 마음에 부담스럽기도 하고, 믿는페미 활동이 공감을 얻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 걱정이 될 때도 있지만 더 많은 순간에 믿는페미의 이야기에 공감해주시고, 활동을 응원해주시는 분들이 계세요. 그런 분들의 반응을 보면서 힘을 얻고, 아직 믿는페미가 해야 할 일이 많이 있겠구나 싶고 그래요.

어떤 운동 단체이든 단체와 운동이 더 커지고, 파급력을 가지기를 원하면서 동시에 관련된 문제나 상황들이 다 해결되고 개선되어서 더 이상 단체와 운동이 필요하지 않게 되는 날들을 바라고 계실 것 같아요. 저 역시 현재의 차별적인 교회 구조와 그 안에서의 성폭력, 소수자를 향한 혐오들이 단체와 제가 움직이는 동력이 됨과 동시에 모두가 평등해져서 여성과 약자들이 더 이상 대상화 되지 않고도 ‘신앙’할 수 있게 되어서 믿는페미가 존재하지 않아도 되는 날이 오기를 바라면서 활동하고 있어요.

 

* 강남역 여성혐오범죄 희생자 1주기 추모예배(짓는예배) "살아남아, 다시 붙인다" 

 

여러 가지 활동을 하고 계신데 지금 활동하시는 분야에서 필요한 변화와 그 일을 하기 위해 필요한 활동은 무엇일까요? 믿는페미의 왕성한 활동만큼 고민도 많으실 것 같아요.

(희년) 현재 팟캐스트 PD예요. 피디로서 팟캐를 이끌어갈 굵직한 주제와 내용 등을 기획하는 역할을 하죠. 대체적으로는 교회 내 여성/소수자들이 겪는 (성)차별과 폭력에 대한 이슈를 다루다보니, 굉장히 유익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팟캐를 기획하는 자와 듣는 청취자들의 피로도가 높아지는게 사실이에요. 일상적으로 가볍게, 반복적으로 들을 수 있는 팟캐의 묘미를 잘 살리지 못한 게 아쉬웠죠. 그래서 올해부터는 포지션을 바꿔서 새로운 멤버가 팟캐스트 피디로 활동하게 됐어요. 멤버의 교체로 인해 좀 더 새롭고 다채로운 팟캐스트의 기획을 기대할 수 있을 거 같아요.

(공통) 앞으로 믿는페미가 나아가야 할, 고민해야 할 방향에 대해 논하고 싶어요.

먼저 '교회 내 페미니즘 운동을 위해 어떻게 구체적인 전략을 짜야할까?' 예요. 실제로 교회에서는 페밍아웃으로 인해 공격받고 배제되는 사람이 많아요. 페미니즘의 언어는 교회에서 너무 낯설고 불편한 존재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기독교의 언어로 페미니즘을 어떻게 재구성할지에 대해 생각해봐야 해요. 

또 하나는 믿는페미의 입문 문턱을 낮춰서, 믿는페미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하면 쉽게, 효율적으로 전략적으로 다가갈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에요.

세 번째는 믿는페미 문화를 형성하는 것이에요. 여성주의 관점에서 성서를 묵상하는 큐티책, 여성 수련회, 지역투어, 정기 모임, 교회학교 페미니즘 신앙교재, 믿는페미 지부 형성하기 등을상상해보고 있어요.

네 번째는 “믿는”의 범위와 영역에 대한 고민과 성찰을 끊임없이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기독교라는 개신교 안에서 페미니즘 운동을 하는 단체죠. 그래서 다른 종교와의 연대 가능성에 대한 폭을 넓혀가려고 해요.

한편, 정통 기독교 교리에서 벗어난 종교단체를 ‘이단’ 혹은 ‘사이비’ 라고 하는데, ‘믿는’ 이라고 하는 명목 하에 이들과의 연대가 가능할지에 대한 많은 고민이 있어요. 실제로 믿는페미에서 이단 종교 지도자로부터 발생한 성폭력 피해를 해결하기 위해 함께 연대했는데, 이 때 제기된 문제가 바로 “이단과 어떻게 연대할 수 있는가?”였어요. 과연 이단과 정통을 가르는 교리를 따라갈 것인지, 아니면 그 기준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야 하는지에 대해 계속해서 고민하고 있어요.

 

* 2018년 10월 8일-9일, 믿는 페미에서 주최한 '짖는 수련회' 

 

믿지 않는 사람도 한번쯤 생각하게 되는 고민이네요.  앞으로 하고 싶은 일(활동)이 있다면요? 

(달밤) 믿는페미가 하고 있는 여러 활동에 고루 애정이 있고 앞으로 계속해 나갈 예정이고요, 좀 특별하게 더해진 게 있다면 낙태죄 폐지 운동과 관련해서 「배틀 그라운드」 저자들과 포럼 혹은 북토크를 기획하고 있어요. 무지개예수와 공동주최로요.

낙태죄 폐지 운동에 소극적으로 결합해오긴 했지만 뭔가 제대로 장을 만들지는 못했었는데, 성과재생산포럼에서 좋은 책을 내주셔서 저희에게도 큰 자극이 되었어요. 열심히 읽고 공부하고, 이 주제에 대해 믿는페미로서 낼 수 있는 목소리를 내보려고 해요. 워낙 어려운 주제인데, 기독교 신앙에서 ‘죄’의 문제, 그리고 죄책감이 아주 민감하고 무거운 고리여서 그럴 거예요.

기독교가 여성들에게 지워 놓은 죄책감의 무게가 너무 큰 나머지 임신중절, 그리고 낙태죄를 공론장에 올리기조차 쉽지 않은 거지요. 우리 중 누구도 전문가는 아니지만, 정성껏 성실하게 공부하고 운동해 나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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