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년 사이 전국적으로 중간지원조직이 많이 생겼다. 활동현장을 지원하는 행정조직인데 마을공동체, 사회적경제, 창업, 청년, 50+, 사회주택, 사회혁신, 성평등, 직장맘에 이르기까지 분야와 영역이 다양하다. 지원조직의 사업을 통해 활동을 경험하기도 하고 중간지원조직을 자신의 현장으로 삼는 활동가도 있다. 들고 나는 사람들을 보며 지원조직을 경험한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었다. 나 역시 지원조직에 있었고 각자의 경험을 어떻게 다르게 해석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진리는 예전에 함께 일했던 동료다. 타인의 시선을 덜 신경쓰고 자신의 욕구에 솔직한 사람이었다. '칼퇴요정'이라는 별명을 가진 그의 칼퇴 덕분에 정시 퇴근에 대한 죄책감을 덜 수 있었다. 자신이 훼손되는지도 모른채 서 있는 많은 사람들에 비해 그는 자신을 지키는 방법을 잘 알고 있었다. 조직에 있을 때도 짬짬이 식물을 키우고 산책을 했다. 그가 타인으로부터, 일로부터 자신을 지키며 사는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다. 작곡도 하고 노래도 부르는 그는 재능이 많고 최근에 다녀온 여행 이야기도 궁금하지만 이번엔 특별히 중간지원조직의 경험을 중심으로 물었다. 세곳의 중간지원조직을 경험하고 떡볶이집 알바를 하면 단순한 노동의 기쁨을 느끼고 있는 김진리님에게 활동에 대해 물었다.
- 인터뷰이: 김진리 (별칭 '작은', 떡볶이집 알바생)
- 인터뷰어: 시도 (더 이음)
- 인터뷰 날짜: 2019-01-02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나요? 전에 했던 일도 함께 소개해주셔도 좋아요.
주2일은 떡볶이집에서 알바를 해요. 뜨개질로 수세미 떠서 팔기도 하고. 제가 채식을 지향하고 있어서 집에서 두유를 발효시켜서 요거트를 만드는데요. 일주일에 한 번씩 이 두유 요거트를 판매 겸 배달하고, 월 1회는 ‘월간 두유요거트 통신’ 이라는 웹진을 만들어 발간하고 있습니다. 종종 ‘사회혁신’이나 ‘문화예술’영역에서 행사스텝이나 편집, 글 쓰는 아르바이트 같은 것도 들어와서 자잘하게 이런 일도 하고요. 프리랜서 알바생이랄까요.
자잘한 일들을 하기 전에는 중간지원조직에서 일했습니다. 2014년부터 2018년 상반기까지 자치구 마을공동체지원단과 사회적경제지원사업단, 서울시청년활동지원센터 총 세 개 조직에서 일했어요.
어떻게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나요?
첫 사회생활이었던 무역회사에서 일상화된 성차별과 야근에 지쳐서 8개월 만에 퇴사를 했어요. 자존감이 많이 낮아져있던 상태여서 사람도 못 만나고, 이력서 넣을 용기도 안 나서 집에서 다이어트만 하던 게 기억나요. 그러다가 청년허브를 우연히 알게 되어서 거기 있는 프로그램을 이것저것 참여하다가 사회혁신이랄지, 좀 더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목표가 생겼던 것 같아요. 특히 그 무렵에 20년 동안 살고 있는 동네에서 일어나는 사회문제에 경각심을 갖고 있었어요. 뭔가 지역에서 이런 일을 해볼 수 없을까 하던 차에 서울시 뉴딜일자리정책을 알게 되었고, 2014년에 그 사업 통해서 자치구마을공동체지원단에서 일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어요.
그 때 맡은 일이 ‘자치구청년네트워크사업’ 이었는데요. 그 때는 스킬도 없고 이 영역에 지식도 없고 동료도 없이 그냥 의욕만 앞서가지고 혼자서 삽질을 많이 했습니다.(웃음) 그 때 한창 소셜다이닝이 유행하고 있어서 그 형식을 빌려서 다양한 주제로 청년모임을 운영했어요. 지금까지 제 활동의 결을 보자면 ‘청년’이나 ‘지역’이라는 낱말이 주를 이루는데요. 그 계기가 된 것 같아요.
*청년활동지원센터에서 여는 청년모임을 진행 중. 진행자가 김진리님.
활동이란 무엇일까요? 활동가는 무엇인가요? 나는 활동가인가요? 내가 하는 일을 무엇이라고 정의할 수 있나요?
왁! 너무 어려운 질문이약! 질문이 관념적이니까 답변도 관념적으로 해야겠다.
저는 모든 개별적 존재가 저 자신으로 온전히 존중받을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개인으로 존중받는 만큼 개인이 하는 모든 선택, 예를 들면 먹고, 입고, 사는 등의 모든 행태가 사회에 영향 미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부정적인 영향을 덜 끼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도 생각하고요. 그러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성찰하고, 그 성찰의 결과가 실제 삶의 방식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는데, 이 ‘삶의 방식’이 저는 활동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저는 지금까지 저를 ‘활동가’라고 소개해 본 적은 없는데요. 사람들이 다들 저더러 활동가라고 하니까 제가 하는 일들에 ‘활동’이라는 의미를 붙여보자면, 큰 고민 없이 떡볶이가 좋아서 하는 떡볶이 집 알바를 활동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요. 큰 틀에서, 채식을 지향하기 때문에 두유요거트를 팔면서 제 가치를 전하는 일이나 중간지원조직에서 일하던 시절에 지지와 공감을 기반으로 시민과 활동가를 지원했던 일도 ‘활동’이라고 정의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지역사회에서 활동하며 어려웠던 점은 없으세요? 중간지원조직에서의 경험이 많으신데 조직 또는 활동을 그만두고 싶을 때가 있다면 언제인가요? 그만두고 싶었던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아 어려운 일 진짜 너무 많다...... 예전에 김영하 작가가 쓴 어떤 책에서 ‘사람을 데이터로 환원하는’ 세상을 비판하는 문장을 읽은 적이 있어요. 활동을 시작한 계기에서 이야기했지만 그 때 제가 ‘청년네트워크’라는 사업을 담당했는데, 한 해 사업 마무리하고 제 고용계약도 끝날 즈음에 사무국장님이 저한테 그러시는 거예요. “진리씨, 이제 진리씨 그만두니까 한 해 동안 네트워크 사업하며 만났던 청년들 연락처랑 사는 곳을 엑셀에 정리해주시고, 몇 명인지 알려주세요.” 그 얘기 듣는데 벙 쪘죠. 몇 명인지 적고, 그냥 엑셀에 정리해두면 네트워크 사업이 끝나는 건가 싶어서요. 말 그대로 사람과 관계를 그냥 데이터쯤으로 여기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저도 처음 하는 일이었는데 동료도 없고, 피드백도 없고, 어떤 자세로 임해야 한다거나 무엇을 위해서 해야 한다는 이야기조차 누구와도 나눠본 적 없어서 제 나름대로 공부하고 의미를 띤 사업을 해나갔었어요. 근데 계약 끝나서 실업급여 받아야하는 상황도 너무 서러웠는데, 제가 한 일들이 그런 식으로 정리되니까 너무 화가 나더라고요.
제가 겪은 하나의 예시지만, 우리 지역의 신생 중간지원조직의 일이란 게 사실 전부 이런 식으로 돌아가는 게 아닌가 싶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저뿐만 아니라, 제게 그 말을 했던 그 사무국장님을 포함해서 다들 미숙했던 것 같아요. 중간지원조직이라는 게, 특히나 자치구에서 생겨나는 것들은 업력이 짧은 만큼 조직운영에 대한 경험도 적고요. 주어지는 사업비나 인건비도 너무나 적어요. 적은 인원이 많은 사람들을 상대하면서 의미 있는 활동도 해야 하고, 행정까지 처리해야 하니 혼자서 일당백을 맡아야 해요. 그러다보면 조직 내에서 소통이 적어지고, 조직문화는 물론이고 우리가 한 일들을 어떻게 잘 정리할 수 있을지 토론을 할 기회도 시간도 없어서 새로운 대안을 만들기가 너무 어려운 환경이에요. 그러다보니 체계 없는 혼돈 속에서 일하고 있다는 느낌을 자주 받아요. 어떤 때는 시키는 대로 해야 하는 권위적인 환경에 놓이다가도 어떤 때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아서 고군분투하는 느낌이 들고요. 일관성이 없어요.
그래서 지역에서 일할 때는 아 뾰족한 수가 없는 줄 알았는데 서울시청년활동지원센터에서 일할 때 방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란 걸 깨달았지 뭐에요. 우여곡절은 있지만 아무튼 조직원들 다수가 의지가 있으면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토론할 수 있는 시간과 기회를 계속 만들고, 조직문화를 변화시키겠다는 의지를 가진 상급자들이 제 이야기를 들어주고 마음을 여는 모습을 보면서 위로를 많이 받았죠. 이 조직이 조직원인 나를 보호해주고, 우리가 함께 만든 체계 속에서 일관성 있게 일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구나 하는 기분. 제가 한 일들의 의미가 흩어지지 않게 함께 붙들어주는 기분.
근데 저는 왜 그만뒀냐면요. 여전히 ‘행정’이라는 말에 가로막히는 일들이 많았기 때문이에요. 우리가 실행하는 가치를 사회로 계속 확산시키는 과정에서 필수불가결한 데이터를 만들고 수치로 증명해내야 하는 일이 많이 고단했던 것 같아요. 어쩔 수 없다는 걸 이해는 하지만, 몸과 마음이 많이 지쳤었어요. 그게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다만 중간지원조직의 일이 제게 잘 맞지 않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실제로 이런 일들이 힘들다고 이야기할 때마다 ‘나약하다’는 말도 정말 많이 들었었어요. 제 인터뷰를 읽다가 ‘이 세상에 하고 싶은 일만 하는 사람이 어딨어!’ 하고 반문하시는 분들도 많을 것 같아요. 아 근데. 모르겠어요. 그 때는 매일매일 왜 내가 죽고 싶은지 몰랐고요. 지금은 퇴사하고 하고 싶은 일만 하는데, 하루하루가 행복하니까, 개인적으로, 저의 말 때문에 누구도 상처받지 않길 바라며, 오직 저의 경우에서만 보자면, 아직까지는 이게 맞는 것 같아요.(웃음)
* 2015년, 좋아하는 친구들이랑 모여서 만들었던 길고양이 구조를 위한 고양이 축제 오마캣 준비모습. 사업비가 선정되기 위해서는 시민투표가 필요했다. 프레젠테이션은 2016년도에 진행. 발표자가 김진리님
그럼에도 계속 활동을 하는 동력은 어디에서 오나요? 활동을 지속하는 동기는 무엇인가요?
부조리한 사회에 대한 분노인가. (웃음) 사회에 대한 분노도 있지만요. 역시 사람이. 2014년에 활동 시작하면서 친구가 많이 생겼어요. 좋은 선배활동가도 많이 만나고요. 각자의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멋진 사람들을 보면 늘 겸허해져요. 그들과 계속 좋은 관계로 만나고 싶은 마음, 공감하고 지지하는 마음, 내가 받은 사랑만큼 보답하고 싶은 마음 같은 것이 동기가 돼요. 그래서 저는 중간지원조직 활동가는 이제 아니지만요. 저 나름대로, 그들을 지지하는 마음으로 활동을 계속 해나가고 싶습니다.
지금 우리 동네에 또는 일하는 영역에서 필요한 변화와 그 일을 하는 데 필요한 활동은 무엇일까요?
저부터 변해야죠. 진짜 저부터 변해야겠다고 생각했던 게, 퇴사 전에는 퇴사하기엔 너무 불안하고 계속 일하기엔 저와 맞지 않은 옷을 입고 있으니까 저는 매일매일 죽고 싶었었거든요. 그래서 ‘아 죽고 싶다.’ 하고 말하면 사람들이 ‘진리는 불평불만만 해’라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런 말들에 또 상처받고. 근데 마음을 먹고 퇴사를 하니까 죽고 싶기는커녕 세상이 참 아름답고 좋습디다. (웃음) 조직을 뛰쳐나와서 좋다는 뜻은 아니고요. 그 안에서 함께 일하던 친밀한 동료들을 자주 못 보고 좀 더 규모가 큰 일 경험을 할 수 없는 것은 아쉽긴 하지만요. 저 자신에게 집중하는 시간이 늘어나니까 제가 하고 싶은 활동과 그걸 이루기 위한 과정들이 좀 더 명확해지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제가 변화하기 위해서는 저 자신에게 집중할 시간이 늘어나야 한다고 결론적으로 말하고 싶어요. 근데 그게 밤낮으로 열심히 일하면 절대 불가능하고. 물론 가능하신 분들도 많을 거예요. 하지만 저는 중간조직에서 일하면서 ‘칼퇴요정’이라는 별명까지 가질 정도로 저녁 있는 삶을 살았지만, 저녁만 있는 삶으로는 부족했거든요. 열정적으로 밤낮 일하시며 자신에게 집중까지 하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한 편으로는 저 같은 사람들도 많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 이들을 위해서 어찌됐든 노동시간을 줄이고, 자기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과 환경이 제공될 수 있도록 토론해 나가는 건 어떨까요? 그럼 조직 안에서 일하더라도 죽고 싶기보다는 더 행복할 것 같아요.
* 지금 일하고 있는 떡볶이집. 회전율이 빨라서 늘 손님이 있다고 한다.
요즘 가장 집중하고 있는 생각, 그리고 내가 하고 싶은 일(활동)이 있다면요? 앞 질문과 유사할 수 있지만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내가 하고 싶은 것이 아닐 수 있으니까요.
제 경력은 오직 중간지원조직에서 일한 것뿐이지만요. 뭐랄까 너무 힘들었던 기억이 강렬해서. (웃음) 이제 중간지원조직에서 주5일, 매일 8시간을 풀타임으로 근무하는 것에는 조금 회의가 있어요. 하지만 마을공동체도 사회적경제도, 청년이 존중받는 사회를 만드는 것도 저는 무척이나 동감하고 있기 때문에 계속해서 이런 일을 해나가고 싶어요. 다만, 제가 견딜 수 있는, 저의 방식으로요. 두유요거트를 만들고, 손작업을 하고,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 나누고 공부하는 게 좋으니까 그런 방식으로 활동을 지속해나가고 싶어요.
얼마 전에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을 보다가 한 캐릭터가 ‘총도 힘이 있지만, 글에도 힘이 있소’ 하는 대사를 들은 적 있는데요. 요즘엔 글 쓰는 게 무척 재미있어서 ‘다양성’을 표방하는 웹진을 하나 만들었어요. 매달 두어 편씩 제가 쓰고 싶은 주제로 에세이를 써요. 아직은 주변 분들만 보아주시지만, 글 보시고 막 칭찬해주시면서 종종 관련된 일을 맡겨주실 때가 있어요. 이런 식으로 제가 쓰는 글들이 영향을 미치고 활동으로 연결되니까 기쁘더라고요. 일을 하더라도 저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해칠 만큼 바쁘지 않고요. 이렇게 세상에 좋은 영향 끼칠 수 있고, 제가 기쁠 수 있는 작은 일들을 해나가는 게 제가 요즘 가장 집중하는 생각이예요.
떡볶이집 일은 어떤가요? 떡볶이집에서 일하면 떡볶이랑 튀김 맘껏 먹을 수 있나요? 그렇다면 정말 부러울 것 같아요.
떡볶이집에서 하는 일들은 엄청 직관적이에요. 떡볶이집 알바생, 하면 딱 머릿속에 떠올려지는 게 있잖아요. 떡볶이 담아주고, 계산하고, 설거지하고 청소하고. 이렇게 마감치고 집에 가면 진짜 제 시간이에요. 중간지원조직에서 일할 땐 퇴근하고 나서도 일 생각하고, 회식할 때도 일 얘기 했거든요. 근데 떡볶이집은 퇴근하면 더 일 생각 할 필요가 없어요. 이렇게 단순한 일이 주는 행복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근데 아직 떡볶이집 알바 삼개월차기 때문에 쉽게 생각하는 걸 수도 있어요. 다음 달에는 단순한 일이 지겨워서 그만둘지도 모르지만요. 지금은 그냥 떡볶이집 알바도 재미있어요. 알바 가는 길에 떡볶이 먹을 생각하면 막 설레고 그래요. 근데 튀김이랑 순대는 없어요. (웃음)
#알바 #청년 #김진리 #중간지원조직 #떡볶이 #시도 #서울
최근 몇 년 사이 전국적으로 중간지원조직이 많이 생겼다. 활동현장을 지원하는 행정조직인데 마을공동체, 사회적경제, 창업, 청년, 50+, 사회주택, 사회혁신, 성평등, 직장맘에 이르기까지 분야와 영역이 다양하다. 지원조직의 사업을 통해 활동을 경험하기도 하고 중간지원조직을 자신의 현장으로 삼는 활동가도 있다. 들고 나는 사람들을 보며 지원조직을 경험한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었다. 나 역시 지원조직에 있었고 각자의 경험을 어떻게 다르게 해석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진리는 예전에 함께 일했던 동료다. 타인의 시선을 덜 신경쓰고 자신의 욕구에 솔직한 사람이었다. '칼퇴요정'이라는 별명을 가진 그의 칼퇴 덕분에 정시 퇴근에 대한 죄책감을 덜 수 있었다. 자신이 훼손되는지도 모른채 서 있는 많은 사람들에 비해 그는 자신을 지키는 방법을 잘 알고 있었다. 조직에 있을 때도 짬짬이 식물을 키우고 산책을 했다. 그가 타인으로부터, 일로부터 자신을 지키며 사는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다. 작곡도 하고 노래도 부르는 그는 재능이 많고 최근에 다녀온 여행 이야기도 궁금하지만 이번엔 특별히 중간지원조직의 경험을 중심으로 물었다. 세곳의 중간지원조직을 경험하고 떡볶이집 알바를 하면 단순한 노동의 기쁨을 느끼고 있는 김진리님에게 활동에 대해 물었다.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나요? 전에 했던 일도 함께 소개해주셔도 좋아요.
주2일은 떡볶이집에서 알바를 해요. 뜨개질로 수세미 떠서 팔기도 하고. 제가 채식을 지향하고 있어서 집에서 두유를 발효시켜서 요거트를 만드는데요. 일주일에 한 번씩 이 두유 요거트를 판매 겸 배달하고, 월 1회는 ‘월간 두유요거트 통신’ 이라는 웹진을 만들어 발간하고 있습니다. 종종 ‘사회혁신’이나 ‘문화예술’영역에서 행사스텝이나 편집, 글 쓰는 아르바이트 같은 것도 들어와서 자잘하게 이런 일도 하고요. 프리랜서 알바생이랄까요.
자잘한 일들을 하기 전에는 중간지원조직에서 일했습니다. 2014년부터 2018년 상반기까지 자치구 마을공동체지원단과 사회적경제지원사업단, 서울시청년활동지원센터 총 세 개 조직에서 일했어요.
어떻게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나요?
첫 사회생활이었던 무역회사에서 일상화된 성차별과 야근에 지쳐서 8개월 만에 퇴사를 했어요. 자존감이 많이 낮아져있던 상태여서 사람도 못 만나고, 이력서 넣을 용기도 안 나서 집에서 다이어트만 하던 게 기억나요. 그러다가 청년허브를 우연히 알게 되어서 거기 있는 프로그램을 이것저것 참여하다가 사회혁신이랄지, 좀 더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목표가 생겼던 것 같아요. 특히 그 무렵에 20년 동안 살고 있는 동네에서 일어나는 사회문제에 경각심을 갖고 있었어요. 뭔가 지역에서 이런 일을 해볼 수 없을까 하던 차에 서울시 뉴딜일자리정책을 알게 되었고, 2014년에 그 사업 통해서 자치구마을공동체지원단에서 일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어요.
그 때 맡은 일이 ‘자치구청년네트워크사업’ 이었는데요. 그 때는 스킬도 없고 이 영역에 지식도 없고 동료도 없이 그냥 의욕만 앞서가지고 혼자서 삽질을 많이 했습니다.(웃음) 그 때 한창 소셜다이닝이 유행하고 있어서 그 형식을 빌려서 다양한 주제로 청년모임을 운영했어요. 지금까지 제 활동의 결을 보자면 ‘청년’이나 ‘지역’이라는 낱말이 주를 이루는데요. 그 계기가 된 것 같아요.
*청년활동지원센터에서 여는 청년모임을 진행 중. 진행자가 김진리님.
활동이란 무엇일까요? 활동가는 무엇인가요? 나는 활동가인가요? 내가 하는 일을 무엇이라고 정의할 수 있나요?
왁! 너무 어려운 질문이약! 질문이 관념적이니까 답변도 관념적으로 해야겠다.
저는 모든 개별적 존재가 저 자신으로 온전히 존중받을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개인으로 존중받는 만큼 개인이 하는 모든 선택, 예를 들면 먹고, 입고, 사는 등의 모든 행태가 사회에 영향 미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부정적인 영향을 덜 끼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도 생각하고요. 그러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성찰하고, 그 성찰의 결과가 실제 삶의 방식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는데, 이 ‘삶의 방식’이 저는 활동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저는 지금까지 저를 ‘활동가’라고 소개해 본 적은 없는데요. 사람들이 다들 저더러 활동가라고 하니까 제가 하는 일들에 ‘활동’이라는 의미를 붙여보자면, 큰 고민 없이 떡볶이가 좋아서 하는 떡볶이 집 알바를 활동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요. 큰 틀에서, 채식을 지향하기 때문에 두유요거트를 팔면서 제 가치를 전하는 일이나 중간지원조직에서 일하던 시절에 지지와 공감을 기반으로 시민과 활동가를 지원했던 일도 ‘활동’이라고 정의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지역사회에서 활동하며 어려웠던 점은 없으세요? 중간지원조직에서의 경험이 많으신데 조직 또는 활동을 그만두고 싶을 때가 있다면 언제인가요? 그만두고 싶었던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아 어려운 일 진짜 너무 많다...... 예전에 김영하 작가가 쓴 어떤 책에서 ‘사람을 데이터로 환원하는’ 세상을 비판하는 문장을 읽은 적이 있어요. 활동을 시작한 계기에서 이야기했지만 그 때 제가 ‘청년네트워크’라는 사업을 담당했는데, 한 해 사업 마무리하고 제 고용계약도 끝날 즈음에 사무국장님이 저한테 그러시는 거예요. “진리씨, 이제 진리씨 그만두니까 한 해 동안 네트워크 사업하며 만났던 청년들 연락처랑 사는 곳을 엑셀에 정리해주시고, 몇 명인지 알려주세요.” 그 얘기 듣는데 벙 쪘죠. 몇 명인지 적고, 그냥 엑셀에 정리해두면 네트워크 사업이 끝나는 건가 싶어서요. 말 그대로 사람과 관계를 그냥 데이터쯤으로 여기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저도 처음 하는 일이었는데 동료도 없고, 피드백도 없고, 어떤 자세로 임해야 한다거나 무엇을 위해서 해야 한다는 이야기조차 누구와도 나눠본 적 없어서 제 나름대로 공부하고 의미를 띤 사업을 해나갔었어요. 근데 계약 끝나서 실업급여 받아야하는 상황도 너무 서러웠는데, 제가 한 일들이 그런 식으로 정리되니까 너무 화가 나더라고요.
제가 겪은 하나의 예시지만, 우리 지역의 신생 중간지원조직의 일이란 게 사실 전부 이런 식으로 돌아가는 게 아닌가 싶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저뿐만 아니라, 제게 그 말을 했던 그 사무국장님을 포함해서 다들 미숙했던 것 같아요. 중간지원조직이라는 게, 특히나 자치구에서 생겨나는 것들은 업력이 짧은 만큼 조직운영에 대한 경험도 적고요. 주어지는 사업비나 인건비도 너무나 적어요. 적은 인원이 많은 사람들을 상대하면서 의미 있는 활동도 해야 하고, 행정까지 처리해야 하니 혼자서 일당백을 맡아야 해요. 그러다보면 조직 내에서 소통이 적어지고, 조직문화는 물론이고 우리가 한 일들을 어떻게 잘 정리할 수 있을지 토론을 할 기회도 시간도 없어서 새로운 대안을 만들기가 너무 어려운 환경이에요. 그러다보니 체계 없는 혼돈 속에서 일하고 있다는 느낌을 자주 받아요. 어떤 때는 시키는 대로 해야 하는 권위적인 환경에 놓이다가도 어떤 때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아서 고군분투하는 느낌이 들고요. 일관성이 없어요.
그래서 지역에서 일할 때는 아 뾰족한 수가 없는 줄 알았는데 서울시청년활동지원센터에서 일할 때 방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란 걸 깨달았지 뭐에요. 우여곡절은 있지만 아무튼 조직원들 다수가 의지가 있으면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토론할 수 있는 시간과 기회를 계속 만들고, 조직문화를 변화시키겠다는 의지를 가진 상급자들이 제 이야기를 들어주고 마음을 여는 모습을 보면서 위로를 많이 받았죠. 이 조직이 조직원인 나를 보호해주고, 우리가 함께 만든 체계 속에서 일관성 있게 일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구나 하는 기분. 제가 한 일들의 의미가 흩어지지 않게 함께 붙들어주는 기분.
근데 저는 왜 그만뒀냐면요. 여전히 ‘행정’이라는 말에 가로막히는 일들이 많았기 때문이에요. 우리가 실행하는 가치를 사회로 계속 확산시키는 과정에서 필수불가결한 데이터를 만들고 수치로 증명해내야 하는 일이 많이 고단했던 것 같아요. 어쩔 수 없다는 걸 이해는 하지만, 몸과 마음이 많이 지쳤었어요. 그게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다만 중간지원조직의 일이 제게 잘 맞지 않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실제로 이런 일들이 힘들다고 이야기할 때마다 ‘나약하다’는 말도 정말 많이 들었었어요. 제 인터뷰를 읽다가 ‘이 세상에 하고 싶은 일만 하는 사람이 어딨어!’ 하고 반문하시는 분들도 많을 것 같아요. 아 근데. 모르겠어요. 그 때는 매일매일 왜 내가 죽고 싶은지 몰랐고요. 지금은 퇴사하고 하고 싶은 일만 하는데, 하루하루가 행복하니까, 개인적으로, 저의 말 때문에 누구도 상처받지 않길 바라며, 오직 저의 경우에서만 보자면, 아직까지는 이게 맞는 것 같아요.(웃음)
* 2015년, 좋아하는 친구들이랑 모여서 만들었던 길고양이 구조를 위한 고양이 축제 오마캣 준비모습. 사업비가 선정되기 위해서는 시민투표가 필요했다. 프레젠테이션은 2016년도에 진행. 발표자가 김진리님
그럼에도 계속 활동을 하는 동력은 어디에서 오나요? 활동을 지속하는 동기는 무엇인가요?
부조리한 사회에 대한 분노인가. (웃음) 사회에 대한 분노도 있지만요. 역시 사람이. 2014년에 활동 시작하면서 친구가 많이 생겼어요. 좋은 선배활동가도 많이 만나고요. 각자의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멋진 사람들을 보면 늘 겸허해져요. 그들과 계속 좋은 관계로 만나고 싶은 마음, 공감하고 지지하는 마음, 내가 받은 사랑만큼 보답하고 싶은 마음 같은 것이 동기가 돼요. 그래서 저는 중간지원조직 활동가는 이제 아니지만요. 저 나름대로, 그들을 지지하는 마음으로 활동을 계속 해나가고 싶습니다.
지금 우리 동네에 또는 일하는 영역에서 필요한 변화와 그 일을 하는 데 필요한 활동은 무엇일까요?
저부터 변해야죠. 진짜 저부터 변해야겠다고 생각했던 게, 퇴사 전에는 퇴사하기엔 너무 불안하고 계속 일하기엔 저와 맞지 않은 옷을 입고 있으니까 저는 매일매일 죽고 싶었었거든요. 그래서 ‘아 죽고 싶다.’ 하고 말하면 사람들이 ‘진리는 불평불만만 해’라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런 말들에 또 상처받고. 근데 마음을 먹고 퇴사를 하니까 죽고 싶기는커녕 세상이 참 아름답고 좋습디다. (웃음) 조직을 뛰쳐나와서 좋다는 뜻은 아니고요. 그 안에서 함께 일하던 친밀한 동료들을 자주 못 보고 좀 더 규모가 큰 일 경험을 할 수 없는 것은 아쉽긴 하지만요. 저 자신에게 집중하는 시간이 늘어나니까 제가 하고 싶은 활동과 그걸 이루기 위한 과정들이 좀 더 명확해지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제가 변화하기 위해서는 저 자신에게 집중할 시간이 늘어나야 한다고 결론적으로 말하고 싶어요. 근데 그게 밤낮으로 열심히 일하면 절대 불가능하고. 물론 가능하신 분들도 많을 거예요. 하지만 저는 중간조직에서 일하면서 ‘칼퇴요정’이라는 별명까지 가질 정도로 저녁 있는 삶을 살았지만, 저녁만 있는 삶으로는 부족했거든요. 열정적으로 밤낮 일하시며 자신에게 집중까지 하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한 편으로는 저 같은 사람들도 많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 이들을 위해서 어찌됐든 노동시간을 줄이고, 자기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과 환경이 제공될 수 있도록 토론해 나가는 건 어떨까요? 그럼 조직 안에서 일하더라도 죽고 싶기보다는 더 행복할 것 같아요.
* 지금 일하고 있는 떡볶이집. 회전율이 빨라서 늘 손님이 있다고 한다.
요즘 가장 집중하고 있는 생각, 그리고 내가 하고 싶은 일(활동)이 있다면요? 앞 질문과 유사할 수 있지만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내가 하고 싶은 것이 아닐 수 있으니까요.
제 경력은 오직 중간지원조직에서 일한 것뿐이지만요. 뭐랄까 너무 힘들었던 기억이 강렬해서. (웃음) 이제 중간지원조직에서 주5일, 매일 8시간을 풀타임으로 근무하는 것에는 조금 회의가 있어요. 하지만 마을공동체도 사회적경제도, 청년이 존중받는 사회를 만드는 것도 저는 무척이나 동감하고 있기 때문에 계속해서 이런 일을 해나가고 싶어요. 다만, 제가 견딜 수 있는, 저의 방식으로요. 두유요거트를 만들고, 손작업을 하고,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 나누고 공부하는 게 좋으니까 그런 방식으로 활동을 지속해나가고 싶어요.
얼마 전에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을 보다가 한 캐릭터가 ‘총도 힘이 있지만, 글에도 힘이 있소’ 하는 대사를 들은 적 있는데요. 요즘엔 글 쓰는 게 무척 재미있어서 ‘다양성’을 표방하는 웹진을 하나 만들었어요. 매달 두어 편씩 제가 쓰고 싶은 주제로 에세이를 써요. 아직은 주변 분들만 보아주시지만, 글 보시고 막 칭찬해주시면서 종종 관련된 일을 맡겨주실 때가 있어요. 이런 식으로 제가 쓰는 글들이 영향을 미치고 활동으로 연결되니까 기쁘더라고요. 일을 하더라도 저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해칠 만큼 바쁘지 않고요. 이렇게 세상에 좋은 영향 끼칠 수 있고, 제가 기쁠 수 있는 작은 일들을 해나가는 게 제가 요즘 가장 집중하는 생각이예요.
떡볶이집 일은 어떤가요? 떡볶이집에서 일하면 떡볶이랑 튀김 맘껏 먹을 수 있나요? 그렇다면 정말 부러울 것 같아요.
떡볶이집에서 하는 일들은 엄청 직관적이에요. 떡볶이집 알바생, 하면 딱 머릿속에 떠올려지는 게 있잖아요. 떡볶이 담아주고, 계산하고, 설거지하고 청소하고. 이렇게 마감치고 집에 가면 진짜 제 시간이에요. 중간지원조직에서 일할 땐 퇴근하고 나서도 일 생각하고, 회식할 때도 일 얘기 했거든요. 근데 떡볶이집은 퇴근하면 더 일 생각 할 필요가 없어요. 이렇게 단순한 일이 주는 행복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근데 아직 떡볶이집 알바 삼개월차기 때문에 쉽게 생각하는 걸 수도 있어요. 다음 달에는 단순한 일이 지겨워서 그만둘지도 모르지만요. 지금은 그냥 떡볶이집 알바도 재미있어요. 알바 가는 길에 떡볶이 먹을 생각하면 막 설레고 그래요. 근데 튀김이랑 순대는 없어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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