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변화를만드는사람들] 이주노동자들의 기본권, 이제는 우리 사회도 같이 책임감을 가져야 - 노동인권활동가 정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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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 2021년 여름 우리에게 아주 익숙한 이름이 된 이 도시는 예전부터 문화다양성의 도시, 그리고 건강하고 활발한 공동체 활동으로도 알려져 있다.  

안산에 가면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는 지구인의 정류장이 있다. 그리고 그 곳에는 지구인 정은주가 있다. 20여 년간 저마다의 길을 길어온 사람들을 책으로 만났던 독서운동가에서 지금은 노동인권활동가로 현장에서 이주노동자들을 만난다. 우리가 만난 안산시 단원구 초지동 <토닥토닥 괜찮아 책방>에서 열혈 책방지킴이로도 활동 중이다. 

“저도 그렇고, 우리는 모두 이주민이잖아요.”로 시작한 대화는“모두가 지구인이 되면 좋겠어요.”로 끝.났다.

(사진촬영 : 바라봄사진관)


“안녕하세요. 정은주입니다. 저는 지구인의 정류장 사무국장으로 일하고 있고요, 독서운동가이고, 안산 토닥토닥 괜찮아 책방지킴이이기도 합니다. 동네에서는 다큐멘터리 감독이기도 해요. 지구인의 정류장은 노동인권을 주로 하는 곳이니까 노동인권활동가가 지금의 저를 가장 잘 설명해주는 말일 것 같네요.” 


평범한 동네주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상당히 많은 활동을 하시네요. 

동네가 저를 그렇게 키워주셨어요.


지금 일하는 지구인의 정류장은 어떤 단체인가요?

이름처럼 모든 지구인들이 누구나 머물다 갈 수 있는 곳이라는 의미거든요. 누구나 와서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찾아가도록 저희가 곁에서 도와주고 자기 모습을 찾고, 좀 더 멋있는 사람이 되어서 가면 또 만나요 하면서 인사하고 보내주는 곳이죠.  

우리나라에 온 이주노동자들이 일하면서 말이 서툴고 문화가 익숙하지 않아서 겪는 문제들이 엄청 많거든요. 이주노동자들이 노동 환경에서 문제가 생겼을 때, 월급을 못 받거나 폭력을 당했을 때 제일 먼저 찾게 되는 곳이 지구인의 정류장이에요. 노동이라든가 거주라든가 인권이 지켜지지 않는 환경이 엄청 많아요. 그렇지만 말이 통하지 않고 이 사회로 이주해 왔기 때문에 참아야 한다는 생각에 계속 참고 있다가 작년 12월처럼 이주노동자가 기숙사에서 사망하기도 하는 거예요. 

그래서 이주노동자들의 노동인권 상담을 주로 해요. 

그리고 이주노동자 대부분이 한 달에 평균 두 번 정도 쉬어요. 지구인의 정류장에 머무는 시간이 그 분들이 일하는 비닐하우스 말고 있는 그대로의 한국 사회를 만나는 유일한 시간이거든요, 이 분들이 한국에 와서 하고 싶은 것들을 혼자 할 수는 없으니까 같이 모여서 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갈 곳이 없는 이주노동자들의 쉼터를 운영하고 있어요. 이 분들은 일자리를 잃으면 잠잘 곳도 없어지거든요. 새로운 일을 구할 때까지 머물 수 있도록 지원해 드리죠. 지금 여성 쉼터와 남성 쉼터에서 15명 정도 지내고 있어요.   


지구인의 정류장에 머물 수 있는 기간이 제한되어 있나요?

제한이 있는 건 아닌데 이주노동자는 3개월 이내에 일을 못 구하면 미등록이 되어서 본인의 나라로 돌아가야 해요. 한국에 와서 임신을 하거나 특수한 경우에는 비자 기간을 연장해주기도 하지만 대부분 그 기간 안에 어떻게든 일자리를 구해서 나가려고 하시죠. 정말 힘든 일이라도 구해서.


비자를 연장해주는 특수한 경우는 주로 어떤 상황인가요?

한국에서 일한 지 4년 됐는데 그동안 월급을 하나도 못 받은 노동자가 있어요. 어떻게 그런 일이 있냐고 하시겠지만 농장주가 너무 잘해줬고 너는 딸 같다. 미리 돈을 받으면 네가 써버리니까 내가 통장에 잘 가지고 있다가 한 번에 주겠다고 해 놓고 한 푼도 안 준 거예요. 노동자는 일한 만큼 한 달에 한 번씩 돈을 받는 게 정당한 거니 그래도 확인을 해야 한다고 알려줬어요. 그런데 확인을 해보니 농장주가 돈이 하나도 없어요. 농장조차도 남의 소유로 되어 있고. 이런 경우는 기타비자로 변경해서 돈을 받을 때까지 한국에 머물러야 해요. 비자 기간이 끝나서 가버리면 받을 가능성이 희박해져요. 그런 분들은 쉼터에서 꽤 오래 있죠. 일 년 정도 지내는 분도 있어요. 쉼터에 오는 분들의  사연도 가지각색이에요.


일터가 있는 이주노동자들은 쉬는 날 수시로 왔다 갔다 하는 곳이네요?

네. 모여서 같이 뭔가 하자를 이야기할 수 있고 캄보디아에서는 몰랐던 사람들이 여기서 만나 새로운 친구가 되는 곳이기도 해요. 코로나 이전에는 명절에 전국에서 캄보디아 이주노동자 100명 정도가 모여서 밤새 전통 음악 듣고 맛있는 음식도 만들어서 나눠먹었어요. 진짜 친정집, 사랑방 같은 곳이에요. 


지구인의 정류장을 어떻게 알고 오는 건가요?

농촌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들이 많이 오거든요. 그래서 우리가 대대적으로 광고를 하는 것도 아닌데 안산에 있는 이곳을 어떻게 알고 왔냐고 물어 보면 안산에 가면 캄보디아 말을 하는 한국 사람이 있고, 그 사람이 우리 편에 서서 우리 이야기를 들어주고 우리의 목소리를 한국 사회에 전달해준다는 얘기를 듣고 찾아왔다고 하더라고요. 

‘이 분들이 지구인의 정류장을 이렇게 생각하고 있구나.’ 알게 됐어요.


그 분이 대표인 김이찬 감독님이죠? 그런데 지구인의 정류장에는 주로 캄보디아에서 온 이주노동자들이 많이 오나 봐요.

네네. 그렇게 특화돼 있어요. 처음부터 그렇게 한 건 아니었어요. 

이주노동의 역사가 가장 짧은 곳이 캄보디아예요. 제일 늦게 오다보니 이주노동자의 권리도 잘 모르고 농업을 기반으로 한 나라에서 왔기 때문에 주로 농촌으로 일하러 가게 돼요. 공장주와 달리 농장주는 우리 시골의 할아버지, 할머니라고 생각하시면 되거든요. 아무래도 노동자를 바라보는 시각이 좀 다르고 생활 전반에서의 구속이 많이 있더라고요. 


우리나라 농촌과 농업의 현실이 이주노동자 의존도가 높다고 들었어요. 코로나19로 이주노동자들이 돌아오지 못해서 주저앉는 농가들도 있다고 해요. 

맞아요. 우리 밥상에 올라오는 음식 재료 50% 이상이 이주노동자 손을 거쳐서 오는 거예요. 농사가 잘 될 때도 있고 잘 안될 때도 있는데 우리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힘든데 노동자들 인건비까지 줘야 되고 관리도 하라면 힘들다고는 하세요. 대부분은 기본에 맞춰서 잘 해주지만 저희에게는 문제가 있는 분들이 오다보니까 마음이 힘들어요. 이야기를 듣고 있자면 우리사회가 이주노동자들을 아직도 일하는 기계 대하듯이 하고 있다는 사실에 저도 많이 놀라요.   


#. 뭔가를 해야 될 것 같은, 나라도 해야 된다는 마음으로


소피의 세계는 청년 정은주에게 ‘사는 게 무엇일까, 왜 사는가’에 대한 해답을 준 책이다. 언젠가 청년 이주노동자에게 같은 질문을 받고 잊고 지냈던 이 책이 생각나 새로 읽게 되었다. 지금의 정은주에게는 위안이 되어준다고 한다.(사진촬영 : 바라봄사진관)


독서운동가로 도서관에서 근무하다 현장에서 노동인권을 다룬다는 게 쉽지 않을 것 같아요. 일의 내용이 많이 다를 것 같거든요.

완전 다를 것 같지만 또 같은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지구인의 정류장에서도 책읽기는 계속해요. 도서관에서 일할 때는 책 읽는 활동이 주가 되고 책에서 인권을 발견하고 사람을 연결했다면 지금은 책이 매개가 되고 직접 현장에 나가서 사람들을 만나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많이 달라진 것 같진 않아요. 도서관에 있을 때도 ‘사람책’이 참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거든요. 정말 다양한 사람책을 여기서 만나고 있다고 생각해요. 주변 분들은 많이 물어보세요. 편한 도서관에 있다가 왜 여기로 오게 됐냐고.  

 

왠지 도서관에서도 편하고 쉬운 일만 하진 않았을 것 같아요. 

다문화도서관에서도 ‘왜 이렇게까지 일 하느냐’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제 기질이 이미 그때도 활동가의 역할을 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러면서 내가 좀 더 깊이 있는 인권 활동을 하고 싶으면 진짜 현장에 나가야겠구나 생각한 것 같아요. 


지구인의 정류장에는 어떻게 합류하게 된 건지요.

도서관에서 20년 동안 사서로 일을 했는데 최근 6여년은 안산시 다문화도서관에서 근무했어요. 다문화도서관에서 일하면서 지구인의 정류장도 알게 됐고 결혼이주민과 이주 노동자들도 알게 된 거죠. 그분과 책 읽기를 6년 동안 계속 같이 했어요.

저도 좀 신기한 게 ‘왜 여기까지 오게 되었을까’ 했을 때 이주노동자들을 알게 되면 올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활동가에게 왜 활동가가 됐냐고 했을 때 필연적인 무언가가 있는 것 같아요. 우리가 뭔가를 알게 되면 거기에서 역할을 할 수 밖에 없는, 내가 뭔가를 해야 될 것 같은 부채감이 생기잖아요. 게다가 일하는 환경이 열악하다보니 새로 진입하는 활동가도 없는 것 같고요.

우리 사회에서 못하는 일을 내가 발견했으니까 나라도 해야 된다는 그런 마음이 작용해서 2년 동안 준비했어요. 

농촌에서 혼자 일하는 여성이주노동자들은 범죄를 당할 위험요소가 많아요. 밤이 되면 가로등도 없이 어두운 지역의 숙소에서 혼자 지내고 숙소 자체도 농장주 한 명, 노동자 한 명인데 바로 붙어 있고 화장실, 욕실을 같이 쓰고 곳도 있어요. 이런 현실은 저도 모르잖아요. 그래서 책도 읽고 사회복지사 자격증도 따고 이 분야 공부를 하고 옮겨왔어요.

지구인의 정류장으로 온 가장 큰 이유는 당사자들이 문제를 해결하고 나서도 계속 찾아오고, 그 속에서 새로운 관계가 만들어지는 게 좋았어요.     

처음에는 문제가 생겨서 오는 곳이지만 해결하고 나면 싹 사라지는 게 아니라 다음에 비슷한 문제를 가진 사람들이 오면 문제를 해결한 경험이 있는 선배 이주노동자들이 그 과정을 친구한테 이야기해주면서 자기 또한 멘토가 되는 거예요. 그러면서 이주노동자들 간의 관계가 만들어지고 연대로 이어지게 되고요. 

여기서 만난 사람들이 곳곳에서 관계를 유지하면서 저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활동을 하게 되는, 그것이 가능한 곳이 지구인의 정류장이에요.

정류장 안에서 맺었던 인연들이 정류장을 떠나서도 이어지는 것에 저도 깜짝 놀랐어요. 캄보디아에 돌아가서도 서로 도와주고 같이 놀기도 하고 서너 시간을 오토바이 타고 가서 만나는 사이가 돼요. 그리고 한국과는 또 다른 환경인 고국에서 앞으로 어떻게 주체성을 가지고 일할건지 이야기 하는 모임들도 있었어요. 저희도 캄보디아로 초대받아 가서 그 모임을 만나기도 하고, 큰 노조와 협력해서 일을 벌이는 모습도 봤어요. 

거기까지 생각하지 않았는데 그분들 나름대로의 엄청난 잠재력이 있는 거예요. 우리가 잠재력을 심어준 게 아니라 그 분들이 정류장에 와서 스스로의 잠재력을 발견하고 캄보디아로 돌아가서도 꽃피우고 전파하는 거예요. 그래서 지구인의 정류장은 저희가 만드는 게 아니라 오시는 분들이 만들어 가는 곳이에요.


다문화도서관에서 일하기 전에도 문화다양성이나 이주노동자, 노동인권에 대한 관심이 있었나요?

결혼이주민은 마트를 가거나 일상에서 만나기는 하지만 실제 친분이 있는 사람은 없었고, 이렇게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일하는 지도 몰랐어요. 다문화도서관에 가서 일하면서 깜짝 놀라게 된 거죠. 안산에 살면서도 원곡동을 제대로 알지를 못했던 거예요. 한두 번 가서 중국 짜장면 먹고 문화다양성 체험하는 곳이었는데 일터가 되면서 완전히 새로운 세상을 알게 된 거예요.

저도 이주민이에요. 대학을 졸업하고 IMF가 터져서 지방에 직장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에 서울에 올라와서 대학도서관에서 계약직부터 시작했어요. 그때는 젊었고 어디든 가고 싶기도 했고요. 

다문화도서관에서 일하게 된 계기도 제가 여행을 많이 다니고 외국 문화에도 관심이 엄청 많아서 외국인에 대한 편견보다는 다양한 사람들을 내가 해외로 나가지 않고 도서관에서 만나면 얼마나 좋을까 해서 하게 된 거예요. 아니나 다를까 정말 전 세계 80개국 사람들을 다문화도서관에서 만나게 됐죠.

오시는 분들한테 실수하지 않기 위해서 뭔가 준비를 해야 된다는 생각에 책을 읽고 나름대로 준비했던 과정이 있었어요. 노동인권도, 문화다양성도 처음에는 도서관에서 책으로 배웠죠.(웃음)

책 좋아하는 사람들은 모든 걸 책에서 시작하죠.


#. 노동인권은 이주노동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사진촬영 : 바라봄사진관)



현장에서 참 많은 감정들이 생길 것 같은데요, 노동자들이 처한 상황이 당황스러울 때도 있고 길이 보일 땐 감격스러울 때도 있을 테고요. 한국인으로 이건 좀 부끄럽다는 순간도 있을 것 같아요. 

저는 모든 게 입장차이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오히려 제가 부끄러웠던 건 제가 처음에 글로 배워서 이주노동자들은 너무 힘들고 한국사회에 와서 피해만 받으니까 무조건 잘해줘야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게 문제였어요. 그게 잘못이었더라고요.

이건 이주노동자이기 때문에 아니라 노동자와 고용주의 문제예요. 우리나라 노동자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겪는 문제와 너무 똑같은 거예요. 그러니까 이주민들이라서가 아닌 거예요. 다만, 이주민은 언어적인 문제로 소통이 안 되면서 위험한 범죄에 노출되는 경우가 많아요. 

얼마 전에 지구인의 정류장으로 여성이주노동자가 찾아왔어요. 새벽에 강원도에서 택시를 타고 왔대요. 22살 청년이었는데 우리나라에 온 지도 몇 개 월 안 됐어요. 얼마나 급박했으면 그 새벽에 강원도에서 3시간 택시를 타고 왔겠어요, 울면서 ‘내가 힘들겠지만 자기가 겪은 이 일을 밝혀서 다시는 그 고용주가 여성이주노동자들을 고용할 수 없게 내가 만들겠다’고 하는데 제가 너무 부끄러우면서도 전율이 오는 거예요. 지금도 소름이 돋네요.

그리고 너무 마음이 아팠던 때도 있어요. 올해 1월에 여성이주노동자가 사진을 찍어서 보냈는데 저는 임신 8 ~ 9개월 된 줄 알았어요. 배가 빵빵한 거예요. 임신했냐고 물어봤더니 아프대요. 미혼이고 임신도 한 게 아니었어요. 빨리 오라고 해서 병원에 갔더니 난소에 지름 30cm 혹이 생긴 거예요. 작년 11월에 생겼는데 고용주에게 아파서 병원 가고 싶다고 했더니 눈치를 주면서 ‘너는 일하러 왔는데 무슨 병원이냐. 일하러 왔으면 돈을 벌어야지’ 이런 식으로 한 거예요. 고용주가 아프고 쉰다고 하는 말을 좋아하지 않으니까 계속 참다가 3개월 만에 혹이 그렇게 커져버린 거예요. 더 이상 견디지 못할 상태가 되어서야 이제 죽겠다 싶어서 고용주한테 말도 하지 못하고 택시 타고 온 거예요. 저도 그런 일이 처음이었거든요. 이걸 어떻게 해야 되나 했는데 아는 간호사께서 어느 병원에 전문 의사 선생님이 있다고 해서 찾아 갔죠. 

그런데 이 노동자가 너무 가난한 사람인거예요. 한국에 일하러 오면서 사채 빚을 내서 비행기표를 사서 왔어요. 한 달 월급 대부분을 캄보디아에 보내야 해서 자기가 가진 돈이 없는 거예요. 그러니 수술비가 없어요. 그래서 지역에 아는 분들한테 이런 사연이 있는데 십시일반 모아 달라 해서 모은 돈으로 수술을 했어요. 수술 부위가 워낙 커서 그렇긴 한데 그래도 지금은 건강하게 다시 일하러 갔어요. 3개월 안에 새로운 일을 구하지 않으면 불법체류자가 되니까 수술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일자리 찾으려고 면접을 보러 다니는데 이건 뭔가 시스템이 좀 잘못되었다 싶은 거예요. 법으로 정해 놓은 거 말고 인권이 우선 되면 좋겠는데 지금 우리 사회가 이 부분이 너무 약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어쨌든 지금은 버섯농장에서 조심조심하면서 일을 하고 있어요.

제가 너무 마음 아팠던 건 처음 병원에 갔을 때 의사 선생님이 환자를 캄보디아로 돌려보내야 한다고 하면서 ‘수술을 하더라도 위험한데 선생님이 어떻게 책임을 질거나 이 사람은 어쨌든 가족이 책임을 져야지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아니다’라고 했어요. 그런데 그 얘기를 듣는 순간 그 친구가 ‘선생님 사장님한테 전화해 주세요.’라는 거예요. 왜요? 했더니 자기가 병에 걸려서 거기 일하러 못 간다고 얘기를 해서 다른 곳으로 옮겨도 된다는 고용주 사인이 있어야 불법이 안 된다는 거예요. 그 상황에서 불법 체류자가 될까봐 그걸 걱정하고 있는 거예요.


혹시 그게 고용허가제와 관계있는 건가요?

맞아요. 그게 고용허가제예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제가 너무 분노해서 처음으로 병원 앞에서 소리를 질렀어요. 너무 화가 나는 거예요. 도대체 고용허가제 이게 뭔데 사람이 아파서 캄보디아로 돌아가야 한다는 말을 듣는 순간에도 그걸 생각해야 하나, 그때 둘이 껴안고 울고 의사 선생님도 울고 그랬어요. 

그때 의사선생님도 캄보디아 의료기술로는 힘들다고 했어요. 저도 이 친구 사정을 설명하면서 우리 사회가 이렇게 보내서는 안 된다고 얘기를 했어요. 다행히 전문 의사 선생님 만나서 수술이 잘 되었어요. 


#. 자신감을 갖게 해 준 지구인들의 연대

(사진촬영 : 바라봄사진관)


비용은 십시일반 모은 걸로 모두 해결됐나요?

처음에 제가 페이스북에 이 친구 사연을 올렸어요.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지역에서 십시일반 모아주셨는데 여기서 중요한 게 뭐냐면 이 친구가 수술비도 있어야 하고 입원비도 있어야 하는데 일을 못하게 되잖아요. 제가 올린 글을 공유가 되면서 이주노동자들이 만원, 2만원, 5만원 이렇게 모아서 100명이 넘게 후원을 해줬어요. 

그때 계산 해보니 이주 노동자가 100명 정도 후원을 했고 지역 주민 40명이 후원을 했어요. ‘와, 이게 가능하구나. 해결하지 못할 일이 없고 마음을 다 하면 이렇게 다 해결이 되는구나.’ 그래서 저도 그때 좀 약간 자신감을 가졌어요.  

이 친구들은 여기서 끝나는 게 아닌 거예요. 명절이나 스승의 날, 여성의 날 같은 기념일, 여름 휴가 때 선생님 보고 싶다 사진도 보내오고, 안부를 전해옵니다.  


기쁨과 슬픔, 좌절과 보람의 연속이네요.

이주노동자에게 생기는 문제와 범죄는 우리나라 시스템이 그렇게 되게끔 만들어져 있어요. 예를 들면 냉·난방이 되지 않는 비닐하우스 기숙사라도 월급에서 8%~15% 까지는 월세로 낼 수 있다고 나라에서 정해놨어요. 이 제도를 악용하는 고용주가 있고, 노동자들은 뭔지도 모르고 나라에서 정해놨기 때문에 돈을 내는 거예요. 그런 걸 보면서 우리가 좀 일을 더 열심히 해야 되겠구나 생각이 들어요. 


지역 안에 병원이나 협력 기관들이 있나요? 

지구인의 정류장에는 농촌에서 일하는 여성이주노동자들이 제일 많이 와요. 우리사회에서 소수자 중에서도 소수자죠. 사회적 혜택에도 소외되고 건강상 위기에 처해 있는 사람들이 많아요. 화장실에 자주 못가기 때문에 비뇨기과 질환도 많거든요. 

MOU를 맺지는 않았지만 지구인의 정류장 옆에 있는 산부인과나 비뇨기과 선생님들은  이주노동자와 여성에 대한 이해도도 높고 아주 친절하게 천천히 설명해주시고요, 진단서를 무료로 발급해 주시는 선생님들이 계시죠. 많은 분들이 자기 일처럼 도와주셔서 이 시스템 속에서도 그나마 굴러가고 희망을 보는 것 같아요. 이렇게 고마운 사람들을 여기 오면서 많이 만나게 되었어요. 


지난 겨울 여성이주노동자가 비닐하우스 숙소에서 사망하는 안타까운 일이 기사화 되기도 했어요. 지구인의 정류장 역할이 컸죠?

작년에도 이주노동자 20여명이 사망했는데 그냥 돌연사로 처리 됐어요. 기숙사에 아침에 갔더니 죽어 있었다는 거죠. 쇼켕씨 사망관련 기사는 우리 사회가 이제 참고만 있지 않겠다는 걸 보여준 것 같아요. 거기에는 많은 연대단체와 활동가, 당사자들의 노력이 있었고요. 제가 조금이라도 일조를 했다고 생각되는 건 공론화인 것 같아요.  

당시에 대표님이 쇼켕씨 동료들과 통화가 되었는데 캄보디아어로 말하니까 저는 전혀 못 알아들었죠. 끝나고 나서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날 불이 꺼져 너무 추워서 동료들 4명은 다른 데 가서 잤는데 그 분만 영하 18도에서 혼자 자다가 사망했다는 거예요. ‘너무 마음이 아프네’ 하는 얘기를 듣는 순간 또 전율이 일면서 어떻게 우리나라에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있지 했어요. 대표님은 10여 년 동안 그런 경우를 봐 왔던 분이니까  또 한 사람이 안타까운 목숨을 잃었다는 마음이었다면 저는 처음 겪는 일이라 우리 사회에 너무 화가 나고 이건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되어서 그냥 넘어갈 수 없었어요. 울면서 그냥 넘어가면 안 된다고 했어요. 그럼 이야기를 들어 보자 해서 그 분들의 이야기를 녹음하고 결혼이주민들의 도움으로 통번역을 해서 보니 그동안 그런 일들이 많았던 게 드러난 거예요.  


그래서 기사화 되었던 거군요.  

네. 기사화 되고 나서 대표님이 ‘나라면 지나갔을 텐데 정은주 선생님 역할이 되게 컸다’고 이야기를 했어요. 저는 처음 겪는 일이라 이런 일을 오랫동안 겪었던 활동가와는 좀 다르게 다가왔던 것 같아요. 초심자의 감수성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런데 참 슬픈 건 그 일이 있고도 3~4명이 더 사망했지만 그냥 똑같이 돌연사로 처리 된 거예요. 그래서 많이 변하지 않는구나하면서도 어쨌든 사망이 드러나면서 제가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이런 상황들을 몰랐던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지게 된 것에 약간 희망을 좀 걸고 있죠.


#. 이주노동자들의 노동권, 건강권, 거주권, 이동권이 지켜지기를

(사진촬영 : 바라봄사진관)


시스템에 대한 얘기를 했는데요, 정책이나 제도적으로 이것만은 좀 바뀌었으면 하는 게 있나요? 

일단 건강보험에 대해서 얘기하고 싶은데요, 저는 이주노동자들이 1년에 한 번씩 건강검진을 받을 수 있게끔 의무화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모든 노동자, 이주노동자들도 건강보험에 가입하게 되어 있어요. 농촌에 있는 분들은 지역가입자로 보험에 가입하고 100% 보험료를 내거든요, 그런데 내고 있으면 뭐해요. 병원을 못 가는데.

아파서 오시는 분들 보면 3~4년을 일했는데 한 번도 건강검진을 받은 적이 없어요. 그래서 왜 한 번도 받지 않았냐고 물어보면 쉬는 날이 없대요. 노동자로서 차별 없이, 일하는 시간이 보장돼야 하고, 이주노동자들이 자신의 건강을 돌볼 수 있는 시간을 갖게 해 줘야 하는데 그중에 하나가 1년에 한 번씩 무조건 건강검진을 하게끔 해 줬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이주노동자들의 이동권에 대한 거예요. 너무 긴박한 상황에서 일터에서 몸만 빠져 나온 여성이주노동자와 같이 버스를 타고 짐 가지러 간 적이 있어요. 종점에서 내려서 20분을 더 택시를 타고 들어가는 곳에 기숙사가 있는 거예요. 현장에 가서 더 충격적인 건 너무 시설이 열악해요. 더럽고. 택시를 잠깐 기다리시라 하고 짐을 가지고 나오는데 이건 이동권, 주거권이 완전 빵점이에요. 인권이 어딨어요. 혼자 범죄를 당할 수밖에 없는 너무 위험한 환경이죠.

우리가 노동력이 필요해서 노동자로 데려왔잖아요. 그럼 일한 만큼 월급을 주고 좀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은 만들어줘야죠. 뭔가 더 바라는 게 아니에요.

정부에서 주선을 해서 들어오는데 그냥 들어오면 끝. 그 다음은 너희들 알아서 해 이런 거예요. 어떻게 지내는지 현장에 와보지 않은 거죠. 물론 행정 담당자들도 일이 엄청 많다는 걸 알아요. 아는데 좀 더 자세히 살펴봐야 되고 우리가 필요해서 데려왔으면 그분들이 기본권을 지킬 수 있게끔 우리 사회가 다 같이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는 거죠.

원래 천성이 밝은 편인데 이런 일들을 계속 만나니까 하루에도 기분이 오르락내리락 하는 거예요. 이 친구들 만나서 즐겁게 뭔가 하고 자신의 잠재력이나 용기를 찾아가는 과정을 보면 막 힘이 나다가도 시스템으로 어쩔 수 없는,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게 없을 때는 마음이 너무... 뭔가 움직여야 되고 법을 바꿔야 하는데 너무나 큰 덩어리니까 바로바로 되지 않는 거예요. 그래도 희망은 버리지 않고 있어요.


#. 지구인의 정류장이 결혼이주민들의 활동무대가 되고
이주노동자들의 노동인권 플랫폼이 되도록


허술한 시스템에서도 희망을 보고, 변하지 않는 거대한 불합리에서도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는 얘기를 계속 하시네요. 

다문화도서관에서 만났던 친구들과 계속 관계가 유지되고 있거든요, 지역에서 알게 된 분들이 제가 지구인의 정류장으로 오면서 그동안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던 것들을 저를 통해서 알게 됐다는 이야기도 많이 하세요. 특히 결혼이주민들도 이주노동자들의 상황에 대해서 전혀 몰랐다는 거예요. 서로 만나서 이야기를 해보면 서로를 아끼는 애틋함이 있어요. 서로 사랑하는 마음이 있는데 만나서 이야기할 기회가 없었던 거예요. 

제가 지구인의 정류장으로 오면서 도서관에서 활동했던 결혼이주민들이 통번역도 하고 오히려 활동가의 역할을 해주고 있어요. 대표님도 인정하셨어요. 이분들이 오래 남을 활동가가 되실 것이라고. 저는 이게 엄청 중요한 지점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결혼이주민들도 이주노동자들을 돕고 싶어 하는 마음이 있어요. 우리사회에 와서 안정되었고 내 나라 나의 조국에 도움이 되고 싶다는 생각도 있는데 그동안은 역할이 없었던 거예요. 저를 따라서 여기 와서 활동을 하면서 ‘선생님이 여기 계서서 내가 뭔가 할 수 있게 되었다’고 얘기를 해요. 지금 결혼이주민 8명이 같이 활동하는데 엄청난 자부심을 가지고 열심히 하고 계세요. 저는 이게 너무 소중하고 앞으로 훨씬 더 많이 진전이 있을 거라는 생각하거든요.


앞으로 지구인의 정류장에서 활동할 결혼이주민들의 역할이 기대됩니다. 

처음에 8명으로 조직을 했는데 그 분들이 모일 때마다 또 한두 명씩 지역에서 같이 활동할 친구들을 데려와서 규모가 점점 커지고 있어요. 저는 그 분들의 역할이 엄청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상담도 캄보디아어를 하는 분이 대표를 맡았어요. 

지구인의 정류장은 결혼이주민이나 이주노동자 스스로가 상담도 하고 이주노동자들의 노동인권을 위한 플랫폼으로 가야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자신의 권리를 찾기 위해 용기 내는, 너무나 멋진 사람들에게 힘을 얻다

(사진촬영 : 바라봄사진관)


조직과 지역사회의 엄청난 변화이자 정은주 국장님의 보람일 것 같아요.

저는 그렇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어요. 매일 매일 엄청 엄청 보람 있어요.

요즘은 아파서 병원에 가고 싶은 여성이주노동자들이 많이 오거든요. 일주일에 3~4명은 있어요. 한번은 등이 너무 아픈 친구가 있었는데 주위에서 등이 아픈 건 엄청 큰 병이라고 했대요. 그런데 6개월 정도를 병원에도 못가고 참았대요. 고용주는 당연히 좋아하지 않을 거고, 돈 벌러 왔는데 아프면 일 못하니까 나가라고 할까봐 참다가 너무 아파서 온 거예요. 알고 보니 일을 너무 많이 해서 생긴 근육통이었던 거예요. 이 친구가 자리에서 폴짝 폴짝 뛰면서 ‘선생님 너무 다행이에요.’ 하는 거예요. 너무 걱정을 많이 하고 있었던 거죠. 이 작은 정보가 없어서 6개월 동안 얼마나 끙끙 앓았겠어요. 의사 선생님은 이해가 안 되는 거죠. 왜 이렇게 좋아하냐고 할 정도로. 병명 하나를 아는 것만으로도 이주노동자들은 너무나 안심이 되는 거예요. 현장에서 매일매일 이런 장면을 보기 때문에 저는 그게 약간 활력소, 비타민이 되는 것 같아요. 

저를 움직이게 하는 힘은 이 사람들이에요. 

나를 지지하고 힘이 나게 하는 사람들이 당사자들이죠. 당사자들과의 만남에서 제가 항상 힘을 얻어요. 이 분들이 우리를 찾아왔을 때 절대로 저희가 뭔가를 대신해 준다고 생각하지 않거든요. 이 사람들이 스스로 자신의 권리를 찾게끔 이야기 해 주는 것뿐이에요. 이런 것은 당신의 권리고, 이걸 찾기 위해서는 어떤 것들을 갖추어야 되고, 확인해야 된다고. 스스로 물어보고 답을 찾아야 한다고 얘기하는데 그걸 허투로 듣지 않고 용기를 내서 고용주한테 간단 말이에요. 

우리는 이분들한테 말이 잘 안통하기 때문에 무조건 녹음하라고 하거든요. 그걸 가져오는데 들어보면 눈물이 나요. 그동안 고용주한테 말 한마디 못하다가 ‘사장님 제 월급이 왜 이렇게 작아요.’ ‘몸이 아파요.’를 연습해서 이야기 하는데 그걸 들으면 진짜 울컥해요. 얼마나 큰 용기를 낸 거예요. 그런 모습들을 보여주는 것이 저한테 가장 큰 힘이 되죠. 너무 멋있어요. 이 친구들의 모습이 불쌍하고 가엽고 이런 게 아니라 너무 멋있어요. 자신들을 찾아가는 과정이.

너무 안쓰럽다는 마음으로 이주노동자들을 만나면 이 일을 오래 할 수도 없을 것 같고.


코로나19로 모든 상황이 안 좋아졌어요. 이주노동자들의 사정은 더 안 좋겠지요.

코로나19이후 많은 일들이 있었죠. 그 중에 재난지원금이 있죠. 

작년에 저도 놀란 게 똑같이 일을 하고 세금도 내기 때문에 그건 당연히 될 거라고 했는데 안 됐어요. 저희는 굉장히 아쉬웠는데 이주노동자들은 당연히 안 될 거라고 처음에 생각하고 있었던 거예요. 그런데 우리 사회가, 그리고 당사자들이 계속 이야기를 하면서 그다음부터는 ‘우리도 받을 수 있겠구나’ 생각하게 된 거예요. 안산시에서 우리나라 최초로 이주노동자들에게도 재난지원금을 주는데 시민들은 10만원, 이주노동자들은 7만원을 책정한 거예요. 그럴 때 이주노동자들 스스로 ‘왜 우리는 7만 원이야?’를 생각하게 된 거예요. 동등하게 세금 내니까 우리도 동등하게 달라고 스스로 이야기하게 된 거예요. 그 변화를 제가 봤잖아요. 너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당사자가 당사자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 가장 중요하거든요

우리의 활동이 눈앞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으로 하다 보면 그 문제가 해결되고 또 다른 문제가 생기면 다른 해답을 줘야 하는데 자신의 권리에 대해서 이야기를 계속 하다보면 결국 스스로 그걸 찾아서 이야기를 하게 되더라고요. 코로나19로 어려운 상황이지만 그런 변화가 너무 놀라워요.

그리고 보이지 않는 차별은... 보이는 차별을 저도 같이 겪었어요.

등이 아파서 온 친구와 동네 병원에 같이 갔는데 일을 많이 해서 염증이 생긴 거다 보니 몸에 열이 있었나 봐요. 분명히 저희 정류장에서 체온을 재고 갔는데 병원 입구에서 이상 온도 감지가 뜬 거예요. 갑자기 저기서 ‘잠깐만! 나가세요.’ 하더니 문 밖에서 10분 넘게 기다리는데 아무 안내도 없어요. 창고 같은데서 둘이 30분을 기다렸어요. 

만약 그 분이 혼자 왔다면 얼마나 두려웠겠어요. 코로나 때문이라고 상황을 설명을 해 주고 나서 제가 너무 기분 나빠서 의사 선생님이 왔을 때 ‘뭔가 설명을 해주거나 그래야지, 밖에서 30분 넘게 기다렸다.’고 했더니 저보고 ‘한국 사람이었어요?’ 그러는 거예요. ‘아니 한국 사람이고 아니고 그게 중요한가요?’ 했더니 너무 바빠서 그랬다는데 저도 더 이상 뭐라고 말을 할 수는 없더라고요. 코로나19로 여러 가지 상황이 나빠지니까 소수자들은 더 소외되고 차별도 있고, 고용주들이 노동자들을 구속하고 통제가 더 심해졌어요.


분위기를 좀 바꿔보죠. 지역에서 또 어떤 활동을 준비하고 있나요?

지금 아주 중요한 일이 있어요. 지구인의 정류장이 중심이 되어서 내년 개국을 목표로 안산공동체라디오를 준비하고 있어요. 안산에 좋은 NGO가 참 많아요. 공동체도 엄청 발전한 곳이란 건 잘 아시죠? 안산에 특색 있는 공동체들이 자신들의 목소리로 활동을 너무 잘하고 있어요. 이런 목소리들이 모이는 플랫폼이 생겨서 뭔가 더 엮어지기를 바라는데 어떻게 하면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하던 차에 방송통신위원회에서 17년 만에 주파수를 내려준다고 신청을 하라는 거예요. 요즘 다양한 채널이 있지만 주파수가 대표성과 공공성도 있잖아요. 불과 얼마 전에 주파수 승인이 났어요.

또 다양성하면 안산이잖아요. 주파수를 통해 다양한 목소리들을 훨씬 더 재미있고 의미있게 지역사회에 들려줄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고 있어요. 그래서 지금 일이 너무 많아요.(웃음)


공동체라디오도 개국하고 나면, 5년 후에는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여기서 일을 점점 더 크게 키우고 있을 것 같긴 합니다만,  

저는 별로 다르지 않을 것 같아요. 5년 후에는 우리사회도 차별금지법도 제정되고 이주민을 만나도 호들갑 떨지 않고 평범한 내 친구, 내 이웃으로 만나게 될 것 같아요. 그러기를 바라고요. 

우리는 전부 다 이주민이잖아요. 길을 떠나온 사람들이고 그 길을 좀 멀리 떠나 왔거나 가까이서 왔거나 그 차이밖에 없거든요. 이런 만남이 지역에서 많이 생길 거라고 저는 자신할 수 있을 거 같아요. 이미 많이 이제 그렇게 됐고요. 

저희 지구인의 정류장 쉼터도 50명이 넘는 지역주민들이 함께 만들어주신 거예요. 변화가 변화를 만들고 그 변화가 새로운 변화를 만들어 가고 있는 것 같아요. 저는 모두가 지구인이 되기를 꿈꾸는데 많은 분들이 진정한 지구인이 되어 있지 않을까 그런 상상을 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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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포체인지가 만난 노동인권활동가 정은주는 긍정의 힘으로 우리를 진정한 지구인들의 세상으로 안내할 지구인의 도서관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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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이경원
기획, 기록, 연결로 변화를 만드는 일과 사람을 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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