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누구와의 만남]나눔디자이너 전성실

#. 나눔디자이너 전성실을 만나기 전에

 

한국의 골목을 그리워하는 전성실 선생님께. 

제가 보낸 크리스마스 카드 잘 받으셨나요? 크리스마스에 받으셔야 하는데 크리스마스가 되어서야 보내고 말았습니다. 미국에서의 학교생활은 어떠세요? 청년들과 함께 지낼 만 한가요? 예고해 드린 대로 오늘부터 선생님께 몇 통의 편지를 보내려고 합니다. 공부하느라 막바지 일탈을 즐기느라 바쁘겠지만 답장을 미루지는 말아주세요.

 

#. 첫번째 편지 : 나는 주체적인 삶을 살고 있나?

 

선생님, 학교를 그만둔 지도 벌써 2년이 지났죠? 연구소 대표님이라 불러야 하는데 입에 밴 습관이 바꿔지지 않네요. 참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했고 그 동안 수없이 질문을 받으셨을 거예요. 왜 학교를 그만두고 밖으로 나와 나눔교육을 할 결심을 하게 되었나요?

며칠째 내리는 눈으로 방콕신세입니다. 편지가 반갑기도 하고 걱정이 되고도 합니다. 나눔교육은 10여 년 전 아름다운 재단의 <나눔교육 교사연수>를 통해 접하게 되었습니다. 이 후에 교사연구회에서 배운 것들을 교실에서 아이들과 실천하다 보니 저만의 나눔교육법이 생겨나게 되었어요. ‘우리 교실에서만 나눔교육을 할 게 아니라 다른 선생님들도 나눔교육을 할 수 있도록 좀 알려드려야겠다’ 는 생각이 들어 다른 선생님들께도 전하게 되었어요.

옆 반 교실, 이웃 학교, 다른 지역의 선생님들과 만나면서 지역의 복지기관과 청소년 봉사단체들에서 강의를 할 기회가 생겼습니다.학교 선생님들에게 교실에서 나눔을 이야기하던 제게 또 다른 세상에 눈을 뜨게 해 준거죠. ‘나눔은 교실에서만 할 게 아니다.’라는 생각이었습니다. 학교에서는 정규 수업 외에도 선생님들이 해야 할 일이 많기 때문에 생각은 있지만 꾸준히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시민단체에서는 1년, 아니 더 오랜기간 동안 이루어지는 활동들이 많았습니다. 

자연스럽게 지역과 청소년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고 나눔에 대한 생각도 많이 달라졌습니다. ‘내 친구가 불쌍해서 나누고 TV에 나오는 아이가 불쌍해서 나누는 것’이 나눔의 전부라고 알고 있는 아이들이 지역에서 봉사나 나눔을 지속적으로 하기에는 한계가 많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 고민을 어떻게 풀어나갈지 새로운 공부와 교육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주말이나 방학을 이용해 외부 교육을 하면서 지역 활동가들과 관계를 맺고 <나눔인문학>을 시작하면서 학부형이 아닌 지역의어머니들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분들께 제가 항상 했던 말이 있어요. ‘내 지역을 바꾸기 위해서는 내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야한다.’ 그 분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저를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럼 나는 삶을 주체적으로 살고 있나?’ 라는 물음을 많이 하게 되고 아무리 생각해봐도 내 삶을 주체적으로 살지 못하는 것 같았습니다. 학교 밖에서는 자유롭게 일하고 다니는데 학교에서의 제 모습은 학교에서 시키는 일만 하고 있었습니다. 저를 필요로 하는 곳에 학교업무 때문에 갈 수 없는 것도 답답했습니다. 

학교에서만 하는 나눔교육이 아닌, 지역에서도 할 수 있는 나눔을 함께 꿈꾸기 위해, 제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기 위해서는 학교를 나올 수 밖에 없었어요. 누군가에게 고용되어서는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아직까지 명확한 답을 구한 것은 아니지만 꾸준히 찾으려고 노력 중입니다. 이 정도면 제가 학교를 그만 둔 이유에 대한 충분한 답이 되었을까요?


 

교실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던 교사 전성실은 동료 선생님들, 지역의 청소년들과 어머니들, 시민사회 활동가들, 그리고 나처럼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 사람들조차도 선생님이라 부르는 ‘국민교사’ 아니 ‘모두의 선생님’이 되었다.

2년전, 학교를 그만둘 무렵 전성실은 참 많은 고민을 했다고 한다. 나눔교육을 위한 공부와 일에 대한 고민, 사람들과의 만남에 대한 고민, 돈을 버는 것과 쓰는 것에 대한 고민, 바쁘게 살지 천천히 살지에 대한 고민. 지켜보는 우리들의 눈에 비친 전성실은 ‘항상 새로운 사람을 만나며늘 바쁘게 일하는’ 삶을 살고 있었다.아직 명확한 답을 찾지 못했다는 그의 말처럼 ‘내가 나를 고용하며 사는 것’은 참 쉽지 않은 듯하다.

 

#. 두 번째 편지 : 도대체 자존감이란 무엇인가?

 

“자존감에는 서로 밀접하게 연관된 두 요소가 있다. 하나는 삶의 도전에 직면했을 때 필요한 기본적인 자신감인 ‘자기 효능감(self-efficacy)이고, 다른 하나는 자신이 행복을 누릴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고 느끼는 ‘자기 존중(self-respect)’이다.” _ 자존감의여섯기둥(너새니얼 브랜든 지음/교양인) 2장 자존감을 이루는 것들 중에서


선생님, 두번째 편지입니다. 오늘은 ‘탓’을 좀 해야겠습니다. 7개월 째 읽고 있는 책이 있습니다. 너새니얼브랜든의<자존감의 여섯기둥>입니다. 책장을 실컷 넘기다 앞으로 돌아오고 또 읽다가 앞으로 돌아오기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자존감이 뭐길래!!! 이렇게 끙끙대고 있는 걸까요? 이게 다 선생님의 ‘자존감 교육’ 때문입니다. 저에게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라고 얘기만 하지 않으셨어도…… 잠시 선생님 탓을 해 봅니다. 그런데요, 너새니얼브랜든이 ‘자존감’을 처음으로 대중하게 알리고 원리를 명확하게 규명한 학자라고 칭송 받아도 저는 선생님 편입니다. ㅎㅎㅎ 선생님이 가르쳐 준 자존감에는 아름다운 나눔이 존재하니까요.

제가 그런말을 했던가요?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ㅎㅎㅎ 교육 현장에서 만나는 분들이 ‘자존감은 무엇이고 나눔에 왜 필요한가요?’라는 질문을 많이 하십니다. 자존감은 나의 존재 그 자체입니다. 그 자체를 인정하고 나를 그대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누군가에 의해서 판단된 모습이 아닌 그저 나의 모습을 그대로 바라보고 인정하는 것입니다. 

알려진 대로 자존감에는 자아가치감과 자아효능감이 있습니다. 쉽게 이야기하자면 자아가치감은 내 존재가 가치있다고 느끼는 것이고 자아효능감은 내가 무엇인가를 잘 할 수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둘 다 자존감에서는 중요한 것들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아가치감은 살짝 잊어버리고 자신이 남들과 비교해서 뭘 잘하고 남들과 비교해서 뭘 더 많이 가지고 있는지만을 가지고 자신과 타인을 평가합니다. 그러다보니 나보다 못한 사람보다 나보다 잘난 사람을 동경하게 되고 그 사람보다 부족하다고 느끼면 나는 별로 가치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눔의 측면에서 예를 들면 나눔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나 나눔을 하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나 대부분 자아가치감보다는 자아효능감을 생각합니다.

 

‘저 사람은 돈이 없는 불쌍한 사람이니까 내가 가진 것을 주면 좋아할거야.’
‘난 시간이 좀 있으니까 저 사람들을 위해서 봉사를 하면 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거야.’
‘나는 나눌 것이 없는 사람이니까 나눌 수 없어’
‘나는 받는 사람이니까 받기만 해야지. 내가 뭘 나눌 수 있겠어’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과 제대로 된 나눔을 하지 못합니다. 나눔은 다른 사람보다 자아효능감이 높아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는 순간 타인과 나누면서 살아야 하는 존재입니다. 그러면서 자아가치감도 높아지는 것입니다. 불쌍해서 나누는 것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자연스럽게 나누는 것입니다. 

또한 무엇을 가지고 있어야만 나눔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나눔은 가능합니다.내가 존재하기 때문에 나의 부모님이 나에게 많은 나눔을 하기도 하고 부모님이 존재하기 때문에 내가 부모님에게 많은 나눔을 하기도 합니다.

제 이야기를 잠깐 할까요? 재작년에 어머니께서 갑자기 돌아가셨습니다. 어머니께 무언가를 해드리고 싶어도 할 수 없고 어머니가 해주신 맛있는 된장찌개가 먹고 싶어도 이제 먹을 수 없습니다. 나누고 싶어도 나눌 수가 없는 것이지요. 나눔은 존재해야지만 가능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눔은 자존감이 중요합니다. 자신이 나눌 수 있는 소중한 존재라는 것만 알아도 누구나 나눔은 할 수 있습니다. 

2014년 가을, 제2회 공감영화제에서는 개막작인 마지막 인생의 길을 그린 영화 <엔딩노트>상영과 함께 성북구 월곡동에 거주하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장수사진이 전시되었다. 전성실이 어머니 장례식 때 받은 조의금의 일부를 기부하면서 형편이 어려운 어르신들의 장수사진 촬영이 이루어졌다는 훈훈한 소식과 갑자기 돌아가신 어머니께 제대로 된 영정사진을 놓아드리지 못한 죄스러운 마음이 누군가의 아버지, 어머니들을 위한 의미 있는 나눔이 된 사연이 알려져 사람들의 마음을 찡하게 만들었다.

 

#. 세 번째 편지 : 다양한 사람들과 다양한 생각_을 나누는 <나눔인문학>

 

“행복이란 즐거움과 의미의 포괄적 경험이다.” _ Tal Ben-Shahar

 

선생님께 편지를 보내야겠다고 생각한 건 <나눔인문학-행복편> 마지막 시간에 들려준 탈벤- 샤하르의 이 한 문장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10년 전, ‘지금 나의 일도 충분히 즐겁고 재미있지만 좀 더 유익한 일에 나의 에너지를 쏟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때 제 머리 속에는 ‘행복’이란 단어는 떠오르지 않았지만 저는 늘 행복하게 살고 싶은 욕심쟁이였나 봅니다. 현재의 행복과 미래의 행복이 조화를 이루는 삶을 늘 꿈꿉니다.

<나눔인문학> 첫 시간이 생각납니다. ‘팬미팅’ 인가 싶을 정도로 많은 ‘전성실 중독자’들이 모였고 스스럼없이 인사를 나누고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의 모습이 참 어색했습니다. 낯선 곳에 혼자 던져진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세 번째 수업이 있던 날, 어색하기만 했던 그 사람들 속에 섞여 행복을 이야기하는 저를 발견했습니다. <나눔인문학> 덕분에 영화를 보는 시각도 달라졌습니다.

 


오신 분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어색해 하던 모습이 저도 기억납니다. 그래서 적응 못할 줄 알았는데 끝까지 출석해서 저도 좀 놀랐습니다.^^ <나눔인문학>은 제가 부족해서 시작했던 프로젝트입니다. 책을 한 권 내기는 했지만(전성실은 착한책가게에서 출판한 자아존중감과 소통의 리더십을 키워주는 나눔교육 이야기 <아름다운 나눔수업>의 저자이다) 나눔에 대한 철학적 소양이 부족하다고 느끼고 있었습니다.

다양한 사람들과 다양한 생각을 나누고 싶어서 시작하게 되었는데 다행히 꾸준히 사람들이 모였고 다양한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되었습니다. 행복편은 <나눔인문학>의 7번째 주제였고요. 처음에는 책과 영화를 섞어서 진행했는데 책 읽을 시간이 부족한 직장인들이 많아 지금은 영화를 사용하여 소통할 수 있는 화두를 던지고 있습니다. <나눔인문학>을 진행하면서 만나는 지역의 어머니들께 교육과 아이들 양육에 대해 강의를 하다보면 항상 나오는 질문이 있습니다.


“선생님 다 알겠습니다.그런데 저희들이 어떻게 해야 아이들이 새로운 사회에서 살 수 있습니까?”

 

사회 전반적인 변화와 교육의 변화를 이야기하고 아이들이 앞으로 이렇게 해야 살아갈 수 있다고 하면 어머니들은 주변의 어머니들과는 다른 이야기를 듣다 보니 이후에 자신들이 어떻게 하면 좋을 지를 묻는 것이죠. 그 때마다 인문학을 공부하시라고 권합니다. 하지만 어머니들에게는 부담스러운 이야기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영화를 추천해드립니다. 함께 모여서 제가 추천한 영화를 보시고 이야기를 나눠보시라고 권합니다. 모임이 실제로 이어지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모임을 하다가 그분들이 제게 메일을 보내 옵니다. 영화를 보면서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막히는 것들이 있으니 한번 오셔서 <나눔인문학>을 진행해달라고 요청을 하세요. 이렇게 적극적인 분들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겠죠?^^ 

지역에서 어머니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드는 생각은 <나눔인문학>은 단순히 인문학 지식을 넓히는 것이 아니라 나와 우리 가족이 잘 살 수 있도록 내 지역을 바꾸기 위해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하게 만드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실제로 어머니들은 인문학이 진행되면 될수록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시고 아이들의 문제에서 점점 자신의 문제를 바라보기 시작하십니다. 그러다 자신의 지역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하십니다. 요즘 마을만들기가 유행하고 있는데요, 관이나 외부전문가가 아닌 지역의 주민으로서 스스로 고민하는 계기를 만들어주는 데도 역할을 하고 있었습니다.

<나눔인문학>은 지역의 주민들이 지역의 문제를 인문학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하고 그것을 자신의 문제로 해결하려고 노력하게 하는 주체를 발견하고 연대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나눔인문학>의 매력은 다양한 세대, 다양한 직업, 다양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한가지 주제에 대해 의견과 경험을 나누는 것이다. 일방적인 주장이 아닌 서로의 생각을 인정하는 데서 출발한다. 나눔교육을 하는 사람이 왜 지역의 문제에 관심을 가지는지 사실 좀 궁금했다. 전성실이 학교를 그만둔 이유와 <나눔인문학>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어느 정도의 궁금증이 풀렸다. 

<나눔인문학>은 나의 문제가 나만의 문제가 아니고 지역의 문제, 조금 더 나아가 사회의 문제가 남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우리 스스로 깨닫게 해준다. 그리고 나와 우리가 문제 해결을 위한 고민과 노력을 함께 해 나가야 한다는 성숙한 시민의식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전성실의 처방전이다. 오늘 <나눔인문학> 8번째 주제가 담긴 메일을 받았다. 전성실이 돌아오는 2016년 3월에 시작되는 새로운 주제는 바로 다.양.성.

 

#. 네 번째 편지 : 내 시작은 일탈이었으나 끝은 새로운 도전

 

대한민국은 폭설과 강추위로 모든 것이 꽁꽁 얼었습니다. 여행객들은 발이 묶이고(글로 쓰고 보니 이 표현이 참 공포스럽습니다.) 섬 지역에선 생필품이 바닥이 나기도 했습니다. 이러다 우리들의 마음도 얼어버릴까 걱정입니다. 이 겨울이 가고 봄이 되면 다시 한국에서 선생님의 강의를 들을 수 있겠지요. 여행이 아닌 공부를 위해 떠난다는 것이 우리 나이에 쉽지만은 않은 도전입니다. 그 용기에 박수를 보냈던 한 사람으로서 그 곳에서 배운 것들을 더 많이 나눠 주실 거라 기대하며 기다리고 있습니다. 새로운 계획을 미리 귀띔해주시면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겠습니다.

전 세계가 폭설과 추위로 고생입니다. 이게 다 우랄블로킹 때문이라지요. 그런데 그 우랄 블로킹의 원인은 지구 온난화 때문이라고 합니다. 지구온난화가 강추위의 원인이라니 참 아이러니합니다. 우선 유학이 아니고 연수라는 것을 밝히는 바입니다. 

시작은 일탈이었습니다. 매일 2~3개의 강의가 이어지면서 ‘이러다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러려고 학교를 그만 둔 게 아닌데 뭔가 탈출구가 필요했고 늘 영어에 대한 부족함을 느끼고 있어 어학연수를 가보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연수 준비를 하면서 제가 하고 싶은 일과의 연결지점을 발견했습니다.

이 곳 Grand Rapids로 오게 된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 지역은 Grand Valley State University를 중심으로 Philanthropy 연구가 활발히 진행이 되고 있습니다. 특히 지역 기업들의 기부를 통해 지역이 유지되고 있다는 점도 관심을 끌었습니다. 한국과는 다른 뭔가를 배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Learning to Give와 같은 나눔과 관련된 단체들과의 연대가 가능할 것이란 기대도 있었고요. 

4개월 정도 지난 시점에서 처음에 기대했던 것들을 발견하지는 못했지만 그 이상의 것들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사소하게는 그동안 미국에 대해 잘못 알고 있었던 것들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된 것도 있고 다양한 나라에서 온 세대를 뛰어넘는 친구들과의 만남 속에서 제 자신을 심하게 되돌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다양성에 대해서도 더 깊이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2016년 첫 <나눔인문학>의 주제는 다양성입니다. 혼자 있으면서 스스로 밥을 해먹고 혼자 생활하면서 내가 삶을 그동안 주체적으로 살고 있었는지 반성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앞으로의 계획은 아직 특별한 것은 없습니다. 지난 편지에서도 이야기했듯이 나눔이란 개인과 개인 간의 주고 받는 행위를 넘어서 공동체 안에서 다양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도구가 될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을 위해 필요한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적용해보면서 지역이 변화할 수 있는 기회들을 만들고 싶습니다. 

6개월 동안의 미국 생활에서 살짝 힌트를 얻은 프로젝트가 하나 있어 한국에 가자마자 팀을 꾸려 프로그램 개발에 주력하려고 합니다. 지역의 공간과 나와의 관계 속에서 마을에서 나의 역할을 찾아보고 실천해보는 프로그램을 청소년들과 함께 해보려고 합니다. 그 프로젝트 준비를 위해 2월에 미시건 주의 청소년 기금위원회를 방문할 예정에 있습니다.

다른 한가지는 감정과 관련된 프로그램을 개발하려고 합니다. 감정노동의 시대에 타인에게 감정을 표현하고 나눌 기회가 막혀있는 현대인들에게 감정나눔의 중요성과 실천활동들을 널리 알리려고 합니다.

 

#. 다섯 번째 편지 : 행복한 전성실에게 영감을 주는 책, 영화 그리고 사람

 

처음 편지를 쓰기로 하고 세 번을 넘길 수 있을까 했는데 벌써 다섯 번째 편지입니다. 이번 편지를 마지막으로 하고 나머지 이야기들은 한국에 오시면 맛있는 밥이라도 먹으면서 해야겠습니다.

그 동안 얼굴 보면서 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글로 할 수 있어 참 좋았습니다. ‘아, 이래서 전성실 선생님에게 사람들이 많은 영감을 받는구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만난 모금가들, 활동가들, 선생님들이 선생님의 강의를 듣고 참 행복했다는 표현을 하더군요. 이제 조금 이해가 될 것도 같습니다. 그래서 궁금해졌습니다. 선생님, 지금 행복한가요? 그 행복은 어디서 오는 건가요? 

이제 조금 익숙해지기 시작했는데 벌써 마지막 편지라고 하니 시원섭섭합니다. 전성실의 행복이라…… 마지막에 가장 어려운 질문을 던지는군요. 일단 저는 행복합니다. 삶의 고비가 많았지만 현재 제가 건강하게 살아있고 가족들도 건강하게 지내고 있기 때문에 행복합니다. 학교를 그만두고 떠돌이 생활을 하고 있지만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고 이야기 나누고 새로운 생각들을 꿈꾸면서 저만의 행복을 찾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이곳에 와 있는 것이겠지요.

제 주위에는 좋은 사람들과 꿈꾸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렇게 어리지도 않은데 꿈을 꾸고 살고 있습니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 꿈꾸는 순간 순간이 행복합니다. 지금 당장 우리 앞에서 그 꿈이 이뤄지지 않더라도 행복합니다. 왜냐하면 언젠가는 우리가 꿈꾸는 것들이 이뤄질 것이라고 믿으니까요. 지금 생각해보니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행복을 찾는 제 모습이 보입니다. 

저에게서 영감을 받은 분들이 많다니 기쁘면서도 누군지 궁금하네요.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명단을 좀 넘겨주세요. 차라도 한잔 해야겠습니다.^^ 책부터 이야기 해볼까요, 대학 시절 읽었던 패트릭모디아노의 <추억을 완성하기 위하여>에 이런 문장이 나옵니다.


“갓난아기가 슬픈 것은 추억이 없기 때문이고 노인이 슬픈 것은 더 이상 만들 추억이 없기 때문이다.”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만드는 추억을 무척이나 중요하게 생각하는 내용입니다. 관계의 과거와 현재, 미래가 있는데 그 중 어느 하나도 소중하지 않은 것은 없습니다. 과거만 보고 살 수도 없고 미래만 보고 살 수도 없습니다. 우리의 관계는 매 순간 소중한 것이잖아요. 원래부터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소중하고 고맙습니다.

영화 <내일을 향해 쏴라> 보셨는지요. 고등학교 동창 중에 영화 감독인 친구가 있었는데 우리는 모여 그 친구가 추천하는 영화를 보곤 했습니다. 응답하라 1988의 쌍문동 5총사가 그랬던 것처럼요. 마지막 장면에 두 주인공이 죽는 것을 알면서도 총을 쏘면서 나가는 장면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어려서부터 소심하고 부끄러움을 많이 타던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사람이 무언가를 위해서 저렇게 무모한 행동도 할 수가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덕분에 저는 살면서 매우 많은 무모한 행동들을 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얘기하기가 그렇습니다. 남들이 한번도 해보지 못한 일들을 매우 많이 해봤습니다. 혹시 지금 제가 교사를 그만두고 서점에서 일하고 한 때 콘도를 팔았던 것을 떠올리시나요? 그것도 무모한 행동들 중 하나가 될 순 있겠네요. 이 영화는 지금의 제가 있게 만들어준 영화가 아니었나 생각해 봅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영감을 준 사람에 대해서는 한편의 글로 대신할까 하는데요, 글이 좀 길어서 걱정입니다. 괜찮다면 그 글을 보내드릴 테니 한번 읽어보시면 어떨까요? 

그리고 정말 한 페이지가 넘는 글을 함께 보내왔다. ‘교육’이라 쓰고 ‘나눔’이라 읽는다. 전성실은 나눔교육가이며 나눔디자이너이다. 교실에서 프레네 교육을 연구하고 나눔교육을 실천하며 나눔과 자존감을 함께 가르쳤다. 무조건 많이 나누어야 한다고 다그치거나 많이 나누는 기술을 가르치지 않고 왜 나누어야 하는지 먼저 이야기한다.

<나눔 인문학>과 <나눔대학>으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영감을 주고받는다. 나눔디자이너를 꿈꾸는 사람들을 만나고 함께 꿈을 이루기 위해 함께 노력한다. 그래서 전성실이 하는 나눔교육은 교육이기도 하지만 나눔이기도 하다. 학교에서 지역으로 나오고 공부를 위한 새로운 도전을 하는 전성실을 응원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새해에는 어디든 가는 떠돌이 생활 대신 조금 더 여유로운 시간을 가져보라 당부하면서도 전성실과 나눔연구소만의 정체성을 가질 수 있는 재미있는 프로그램이 많아졌으면 하는 욕심을 부려 본다. 


추신 : 주로 편지글에서 사연을 다 쓰고 난 뒤에 덧붙이는 말.  또는 그런 글의 머리에 쓰는 말. 전성실에게 영감을 준 사람을 소개하는 한편의 글을 소개하려고 한다.

  

스포일러가 될 지 모르겠으나 ‘주인공은 맨 마지막에 등장한다.’ 오늘도 딱풀이다.(딱풀: 서점 직원들의 은어로 오전 오후 2교대 근무를 하지 않고 하루 종일 일한다는 것을 뜻한다) 벌써 한 달째다. 이 무슨 오기인가. 아침 10시부터 밤 10시까지 쉬지 않고 서서 일하다보니 이제는 다리가 퉁퉁 붓다 못해 터지려고 한다.

한 달 전, 처음으로 시작한 서점 근무여서 무척 피곤한 참에 전날 직원들과 함께, 그것도 점장님과 함께 과음을 하다 보니 다음 날 지각을 하고 말았다. 이것을 그냥 넘어가실 점장님이 아니다. 직원종례 시간에 던진 한 마디에 나는 불끈하고 말았다.


“전 주임, 내일 딱풀이다.”  점장으로서 당연히 할 수 있는 말인데, 왠지 무언가에 지는 것 같아 오기가 올라와서 한 마디 내던졌다.

“하루 가지고 되겠습니까? 한 달 딱풀 하겠습니다.” 이에 점장님은 기다리셨다는 듯이 “그래? 그럼 그렇게 하자. 전 주임, 약속 지켜야 한다.” 그 후 한 달이 된 오늘도 난 딱풀이다. 아마 내일도, 그 다음 날도 얼마간은 계속 딱풀일 것 같다. 점장님의 전략에 넘어간 것 같다. 한 달 동안의 딱풀 생활로 업무는 이제 거의 파악했다.


쏟아지는 신간들, 매일 매일 변하는 판매순위, 판매순위 따라 다시 진열해야 할 도서들, 도서주문, 도서반품, 도서배송 등등. 지금 생각해도 어떻게 이 많은 일들을 그렇게 빨리 배웠는지 놀라울 따름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업무는 어느 곳에 어떤 책이 있는지를 아는 것이다. 거의 외워야 한다. 어찌 한 두 권도 아닌 책들을 다 외울 수 있을까? 의아해 할 수도 있지만 매일 만지고 찾고 진열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외워진다. 동료들은 이제 슬슬 못 찾는 책이 있으면 나에게 보낸다. 나라면 다 찾는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도 그럴 것이 못 찾는 책이 있으면 끝까지 물고 늘어져서 찾아내니 말이다.

벌써 5년 전의 일이다. 교직생활을 하다 사정이 생겨 쉬다가 무작정 책이 좋아 시작한 것이 서점 근무다. 처음엔 하루 종일 책만 날랐다. 그러다 하루 종일 책만 묶기도 했다. 얼마간 성실히 일한 것을 유심히 보신 점장님은 조금씩 내게 믿음을 주시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체력의 한계를 이기지 못하고 또다시 지각을 했다. 하지만 점장님은 내게 믿음을 주는 말씀을 종례 시간에 하셨다.

 

“전 주임, 오늘 또 지각했지?”
“네.”
“실수는 지나갔다. 지나간 일은 모두 잊겠다. 하지만 내일은 오늘보다 더 노력해야 한다.”

 

그 동안 나의 잘못에 대해 야단치고 다그치고 실망의 뜻을 비추는 분들은 많았지만 실수에 대해 믿음과 기회를 주신 분은 처음이었다. 이 일이 있은 후로 한 번 시작된 믿음은 흔들림이 없었다. 그래서 믿음에 보답하기 위해 전보다 더 열심히 일했다.

그 후로 교직에 복귀하면서 아이들을 대하는 관점에 변화가 생겼다. 아이들의 잘못에 쉽게 실망하거나 다그치기보다는 끊임없고 흔들림 없는 믿음을 주려고 노력하게 되었다. 실수에 대해 야단이나 꾸지람보다는 기회를 주려고 노력한다. 믿음을 나누려고 많이 노력한다. 아이들과의 관계에서 믿음만큼 확실한 치료약은 없기 때문이다. 내가 믿음을 나누면 아이들도 나에게 믿음을 나누어준다. 내가 믿어주는 것에 실망을 주고 싶지 않기 때문에 더욱 노력하고 자신의 믿음도 내게 나누어 주는 것이다. 아직 한 번도 불러본 적은 없지만 이러한 깨달음을 주신 점장님을 진정 스승이라 부르고 싶다. _ 아름다운 재단 콩반쪽 2006.7월호

 


글쓴이는 누구나 한번쯤은 살아보고 싶어하는 서울-지리산-통영을 오가며 나름대로 일과 삶의 균형을 지켜나가고 있다. 아무것도 안 하는 것 같지만 끊임없이 무언가를 하면서 남부럽지 않게 살고 있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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