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누구와의 만남]나와 우리 이웃의 마음을 돌본다. - 홍정수 신부

1992년 9월 1일. 노원역에 미도파 백화점이 오픈했다. 걸어서 백화점을 갈 수 있다는 즐거움도 잠시, 다음 해 그 동네를 떠났다.

2015년 12월 22일. 크리스마스를 몇 일 앞둔 노원역은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추억 속 미도파 백화점은 이미 오래 전에 롯데백화점으로 바뀌었고 빽빽하게 들어선 건물들과 간판들로 잠시 방향감각을 읽었다. ‘그래, 한 달만 뜸해도 동네가 변하는 세상인데…… 추억 놀이는 이제 그만’ 

2016년 1월 20일.  이번 겨울 최대 한파로 전국이 꽁꽁 얼었다. 다행히 두 번째 방문이라 지하철역에서 걸어가는 길이 그리 멀게 느껴지진 않는다. 새내기 후원자에게 신부님은 어떤 이야기들을 들려 주실까. 차가워진 손과 얼굴, 얼어있는 마음을 녹여주시겠지 하는 기대로 문을 열었다. 좁은 골목과 허름한 건물, 조금은 어두컴컴한 계단과 달리 따뜻함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춥죠? 얼굴이 아주 빨개졌네요.” 홍정수 신부와 정효선 상담심리사가 웃으며 맞이해 준다.

 

‘따뜻한 밥 한끼처럼 나와 우리 이웃의 마음을 돌보는 복지관’

 

마음복지관은 2008년 심리치료사, 음악, 미술 치료사들이 만든 ‘사회통합치유연구소’에서 출발했다. 심리치료를 받기 힘든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상담을 하고 장애인, 노숙인, 청소년을 대상으로 개인상담과 치료 캠프를 진행하기도 했다. 2013년 2월 성북구에 사회통합치유센터 마음복지관을 설립해 개인심리상담, 집단프로그램, 심리구호활동을 해왔다. 그리고 2015년 12월에 노원구에 두 번째 마음복지관을 개관했다. (마음복지관 홈페이지 http://mindfare.or.kr)

 

사회복지를 전공하고 사회복지시설과 시민단체에서 일했고 성공회 신부가 되고 나서 나눔의 집, 가출 청소년쉼터, 노숙인 상담센터에서도 일을 했어요. 단순한 서비스로서의 복지보다는 어른이 존중 받고 어른처럼 살아갈 수 있는, 아이가 아이처럼 살아갈 수 있는 좋은 복지에 대한 고민을 항상 했던 것 같아요. 그 고민들을 여기서 많이 풀어가려고 합니다. 마음복지관은 혼자 만든 게 아니에요. 여러 사람들이 같이 힘을 합쳐서 만든 거고, 저는 어느 정도의 대표성을 띠고 있는 거죠. 마음복지관이 처음 성북구에 문을 열었을 때 성북이 서울 25개 구중에서 자살률이 5위였어요. 지금은 그 아래로 떨어졌지만 그 배경에는 마음복지관이 상담을 잘해서가 아니라 뉴타운 개발로 가난한 사람들이 이전했기 때문이에요. 서울시의 자살률은 경제적 이유가 가장 큽니다. 왜 노원이냐고 물으셨죠? 노원구는 전체인구가 서울시의 5.9%지만 기초생활 수급권자의 10.97%가 거주합니다. 의료급여 수급권자의 비율도 4.01%(서울시 평균 2.33%)고요. 그리고 아직 마음복지관이 상담심리사와 치료들을 독립적으로 분리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두 지역을 유기적으로 운영할 수 있어야 하고요. 다행히 노원은 지역기반의 나눔의 집이 있고 주민조직도 잘 되어 있습니다. 시민사회 단체들을 방문해 인사도 하고 이야기도 나누고 조금씩 활동범위를 넓혀 가야죠. 처음부터 너무 무리하면 체하니까요.


‘내가 내 이웃을 이웃으로 바라보고 있는가’

 

마음복지관은 정부의 지원 없이 프로보노들의 재능기부와 후원자들의 기부금으로 운영되고 있다. 지금의 홍정수 신부와 마음복지관의 모습이 만들어진 데에는 오래 전 세미나에서 만난 한 신부님의 역할이 컸다.

 

성공회 ‘나눔의 집’에서 오신 신부님이 ‘우리는 정부 돈을 안받는다. 정부 지원을 믿다가는 망한다. 우리의 목적은 주민을 조직하고 주민들의 힘을 만드는 것이지 돈을 끌어와서 복지혜택을 주는 게 아니다.’라고 말씀하시는데 사회복지를 전공한 저로서는 ‘저 분이 뭔가 오해를 하고 있구나. 사회복지라는 것은 민(民)과 관(官) 이 협력해서 잘 만들어야 하는데 왜 저렇게 얘기하시지?’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성공회 신부가 되고 복지 현장에서 일하다 보니 그 때 그 분의 말씀이 이해가 되더라고요.


홍정수 신부도 지원금으로 운영되는 큰 단체에서 일한 경험도 있다. 복잡한 서류와 행정적인 일들이 따르기도 하지만 사업비와 인건비에 대한 걱정 없이 일하는 것에 대한 안락함을 안다. 하지만 지원금을 받아 사람들에게 복지 서비스를 제공하고 실적을 보고하고 평가하는 이 과정들이 반복될 때마다 마음이 내내 불편했다고 한다. 

‘이게 진짜 만남일까?’
‘이게 진짜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
‘내가 내 이웃을 이웃으로 보고 있는가?’

냉정하게 물었을 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은 순간을 마주하게 되었다.

 

상대방을 하나의 대상자로 바라보게 되는 거예요. 나는 도움을 주는 사람으로, 그 사람은 도움을 받아야 되는 사람으로 여기는 이원적 구조를 스스로 만들어버리는 거죠. 불편한 마음이 많이 생겼어요. 그래서 여러 사람들이 힘을 합쳐 마음복지관을 만들게 된 거죠. 지금 마음복지관을 후원자들의 기부와 프로보노들의 재능기부로 운영하고 있지만 우리가 언제까지 유지할 수 있을까 걱정도 됩니다. 모금을 더 잘해야 하는데 개인적으로 한계가 온 게 아닌가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


마음복지관의 꿈은 실적과 평가보다 사람이 우선되는 곳으로 존재하는 것

** 사진출처 : 한겨레21

 

홍정수 신부는 참 솔직했다. 마음복지관 2호점이 개관하고 여기저기서 축하인사와 함께 3호점은 언제쯤, 어디에 생기냐는 관심이 커지고 있지만 정작 본인은 지금이 아주 힘든 시기라고 털어 놓았다.

 

지금이 제일 힘들어요. ㅎㅎㅎ 2호점을 내니까 고정비용이 많이 들어가죠. 우리가 하는 상담이나 프로그램들이 수익이 창출되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후원자들을 많이 모으는 게 저한테는 제일 당면 과제예요. 하지만 마음복지관의 제일 우선순위는 사람입니다. 내담자, 프로보노 활동가, 자원활동가, 그리고 일하는 선생님들 모두 ‘좋은 사람으로 존재하는 것이 좋겠다’는 것이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입니다. 우리가 서로를 평가하지 않고 행복을 나눌 수 있는, 좀 모호하지만 그 속에서 활동가들도 여유롭게 일하는 틀을 만들려고 노력하는 거죠.

우리는 결재라인이 없어요. 큰 일들은 저도 함께 챙기지만 선생님들에게 자율권을 준다는 것이 처음 사무국장님과 둘이서 마음복지관을 시작했을 때부터 만들어 온 문화입니다.


마음복지관은 내담자들을 위한 상담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프로보노와 활동가들을 위한 프로그램도 함께 운영하고 있다. 내부적으로 불필요한 서류와 보고로 시간을 허비하지 않는다는 것도 방침이라면 방침이다. 한 달에 한번 기부자들에게 보내는 소식지는 홍정수 신부가 직접 쓴 편지와 회계보고로 대신한다.

 

마음복지관의 숫자(1) – 상담의 법칙 15

 

마음복지관의 개인심리 상담은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한다. 상담비용은 경제적 상황에 따라 회당 5천원에서 2만원 사이다. 조금 여유가 있는 내담자의 경우에는 더 받기도 한다고 했다. 무료로 상담을 하지 않는 이유는 내담자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자존감을 위해서이다. 대신 회수에는 제한을 두지 않는다.

 

마음복지관은 상담횟수를 제한하지 않습니다. 제가 경험하기에 15~20번은 만나야 내담자와 내가 가까워지기 시작해요. 그때부터 자기 얘기를 하기 시작해요. 허물없이. 8회, 10회로 횟수를 제한해 끝낸다? 그건 그분들을 위한 게 아니죠. 저는 상담비를 낮추는 대신 상담을 오래 해라, 가급적 오래 해라라고 선생님들께 얘기해요. 오랫동안 하신 분들은 2년 동안 하신 분들도 있고 1년 정도 된 분들도 계시고요. 그분들이 정말 안정적으로 변화했을 때 종료를 준비합니다.


나눔의 법칙 70

 

마음복지관에는 심리, 영화, 명상, 그림 치료 등 각 분야의 전문가 70명이 프로보노로 활동하고 있다. 분야를 나누자면 개인상담을 도와주는 프로보노, 영화치료, 명상, 요가 등 집단프로그램을 도와주는 프로보노가 있다.

공식적으로 프로보노를 모집하지 않았지만 봉사를 위해 복지관을 찾은 프로보노가 마음복지관이 하는 일에 공감하고 새로운 후원자와 프로보노를 소개하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나눔의 마법이 이어지고 있다. 프로보노 뿐 아니라 프로그램 참가자들도 후원자가 된다.

 

MBSR(마음챙김 명상을 통한 스트레스 이완프로그램)에 참가하신 분들이 우울증이나 불안장애를 겪던 분들이 약을 줄이게 되거나 끊게 되고, 자기 삶이 변했다는 얘기를 들으면 보람이 있어요. ‘우리 복지관이 할 일을 하고 있구나’ 하는 안도감이 생기죠. 그 분들이 프로그램을 다른 분들에게 소개하고 후원자가 되어줍니다. 마음복지관이 가난하지만 이 일들을 계속 해나가고 유지할 수 있게 도와주시는 거죠.


돌봄의 법칙 3

 

누군가의 마음을 돌본다는 것. 충분히 아름답고 가치 있는 일이지만 상담가와 치료사들, 그리고 홍정수 신부의 마음은 누가 돌보는지 물었다.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는 그분일까?

 

상담에는 공감, 반영, 분리 이 3가지가 지켜져야 합니다. 먼저 사람을 만나서 이야기를 듣고 이 사람이 갖고 있는 어려움에 대해서 공감을 합니다. 그리고 공감으로 끝나면 안되고 반영을 해야 합니다. ‘나 같으면 그 상황이면 죽고 싶은 생각도 많이 들었을 것 같아.’ 그 사람에게 나의 언어로 표현을 해야 해요. 내담자가 진짜 공감을 만났을 때 ‘아, 내 마음을 알고 있구나.’ 그 자체가 큰 치유가 되요. 그렇게 상담을 하고 나면 분리를 해야 되요. 그 마음을 계속 갖고 있으면 병 걸려요. 그래서 반드시 분리가 되어야 합니다. 이 세가지가 조화롭게 이루어지지 않으면 치료도 안되고 자기도 병들어요. 저도 마음이 아주 건강한 사람은 아닌데 제 경우에는 명상이 큰 도움이 됩니다.


그리고 ‘나를 믿고 이렇게 아픈 얘기를 해 주는’ 내담자들에게 항상 ‘고맙다’는 마음속의 말을 아끼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나를 컨트롤 하지 못한 상태에서 누군가를 치료한다는 건 너무 위험한 거예요. 작년 초에는 저도 좀 우울했어요. 내담자의 힘든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가 너무 울고 있는 거예요. 처음에는 ‘내가 이 분들에게 공감을 잘하고 있구나’ 생각했는데 실은 그게 아니었던 거죠. 내 마음이 우울했던 거였어요. 그래서 휴가를 내고 40일 동안 미얀마로 수양을 다녀왔어요.


홍정수 신부는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며 상담가와 치료사들에게도 스스로를 돌보아야 한다는 당부를 놓치지 않았다.

 

복지보다, 돈보다 우선되어야 하는 건 인권(人權)

 

팍팍한 살림살이에도 사람이 우선이고 행복을 나눌 수 있는 마음복지관을 만들고 싶다는 홍정수신부가 힘주어 말하는 단어가 있다. 바로 ‘인권’

 

개인 모금에 조금씩 한계를 느끼면서 기업 모금을 해야 하나 고민을 하다가도 시작하지 못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많은 기업들이 기부를 순수한 기부로 끝내지 않고 상담사례, 사진, 스토리를 요구해요. 사업 성과를 내고 그림을 만드는 게 저희한테는 달가운 일이 아닙니다. 성과와 평가보다 우선되어야 하는 것이 인권이라 생각해요. 저희는 내담자의 상담 사진, 밀양주민들과 함께 하는 캠프에서도 사진을 거의 찍지 않습니다. 그분들은 이미 너무 많이 사람들과 카메라에 상처받고 고통 받은 분들이거든요. 처음에는 아예 사진을 찍지 못하게 했어요. 제가 복지관에서 큰소리를 내는 일이 별로 없는데요, 내담자의 인적 사항이 밖으로 나와 있을 때는 아주 심하게 화를 냅니다. 가명도 못쓰게 해요. 동명이인이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오시는 분들이 우리를 믿고 찾아 올 수 있도록 기본을 지켜야 하는 것이죠. 복지보다 우선은 인권입니다.


홍정수 신부의 한마디 한마디에는 안타까움과 간절함이 섞여 있었다. 홍정수 신부는 그 동안 재난재해 구역을 찾아 현장에서 심리구호 활동을 꾸준히 해 왔다.

 

재해나 재난을 경험한 사람들은 그 순간의 무서웠던 기억이 마음속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계속 그때의 상황이 연상되고 괴로움이 남아있으면 트라우마로 자리잡게 되는 거죠. 48시간 내에 그 현장에 들어가서 ‘여러분들이 겪은 무서운 경험들이 몸과 마음에 이렇게 작동될 겁니다. 지극히 정상적인 것입니다.’라고 미리 교육을 시키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 분들이 심리적으로 안정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거죠. 그런데 현장에서 마주하는 현실은 참담합니다.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빽빽한 강당 바닥에서 잠을 청해야 하는 구미 불산누출사고 피해자들, 체육관 바닥에서 카메라와 취재진에 둘러싸인 세월호 유가족들의 심정을 생각해보세요. 너무 잔인한 거죠.


2012년 구미 불산누출사고 현장, 밀양송전탑 시위 현장, 2014년 세월호 유가족들이 머물렀던 진도체육관에서는 상식도, 공감도, 인권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며 기회가 되면 심리구호활동을 적극적으로 하고 싶다는 각오를 함께 전했다.

 

“여러분~ 마음복지관의 후원회원이 되어주세요!”

 

마음복지관이 2013년 문을 열고 홍정수 신부와 홍두호 사무국장의 활동에 많은 미디어와 기관에서 관심을 가졌지만 그 동안은 언론에 노출되고 지원을 받는 것을 꺼려했다. 매스컴과 미디어 노출로 유명세를 타 모금에는 성공을 했지만 주변의 지나친 관심과 편견이 부담스러워 실제로 치료를 받아야 할 사람들의 발길이 끊긴 단체를 보면서 본연의 역할을 할 수 없는 상황이 생기는 것에 경계해 왔다고 한다. 지금은 언론이라도 타서 모금이 잘 되었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들으니 가난한 집의 가장을 보는 것 같아 “국민 여러분! 마음복지관의 후원회원이 되어주세요!”라고 글로나마 응원을 보낸다.

 

앞에 나서서 같이 싸우지는 못하지만 그분들이 희망을 갖고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드리려고 합니다. 행복하게 투쟁하도록 마음에 힘을 주는 것이 제 일입니다.


오래 전 스스로에게 던졌던 홍정수 신부의 고민 ‘한 사람의 성직자로 이 세상에 어떻게 존재할 것인가’ 에 대한 답을 듣고 나오는 길, 여전히 공기는 차갑고 바람은 시리다. 그래도 얼었던 마음은 조금 녹은 듯하다.

 

홍정수 신부가 말하는 마음복지관의 꿈

 

– 마음복지관의 꿈은 마음이 아픈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입니다.
– 마음복지관의 꿈은 행복한 삶이 이루어지는 사회를 만드는 것입니다.
– 마음복지관의 꿈은 연구와 도전으로 개개인의 생명가치를 세우는 것입니다.
– 마음복지관의 꿈은 실적과 평가보다 사람이 우선되는 곳으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 마음복지관의 꿈은 누구나 편하게 마음을 돌보아 갈 수 있는 공동체를 가꾸는 것입니다.


마음복지관의 새해 소식지에서 <밀양 송전탑 투쟁 10주년 기념 행사>를 보고 잠시 뜨끔했다. ‘벌써 10년이나 된 건가?’ 마음복지관을 찾았던 날도 <밀양 주민과 함께 하는 힐링캠프> 준비로 홍정수 신부는 누군가와 전화 통화를 자주 했다.

무슨 마음인지 정확히 표현할 순 없지만 밀양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소식을 접하고 누군가를 통해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마음이 불편했고 미안했다. 그래서 외면했다. 누군가는 일종의 부채의식이라고 했고, 누군가는 투쟁을 혐오하는 자의 용기 부족이라고 했다. 한번도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했고 묻지도 듣지도 못했던 밀양 이야기. 누구보다 가까이, 현장에서 그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었던 홍정수 신부에게 물었다.

 

신부님, 밀양은 지금 어떤가요? 가서 주민들과 어떤 이야기를 나누시나요?

 

가서 뭐하냐고요? 처음에는 내려가서 그냥 같이 있는 거죠. 같이 밥도 먹고 막걸리도 마시고. 농성장에 가고 주민들 있는 데 가면 연대자들이 처음에는 많이 왔어요. 서울에서도 오고. 경찰이 오면 젊은 사람들이 나서서 싸우면 큰 싸움이 되어 버려요. 주로 할머니들이 앞에 서게 되죠. 저는 앞에 서서 싸우기보다는 조금 물러나 있어요. 혹시 다치지는 않는지 지켜보고요.

경찰하고 부딪히고 하다 보면 다쳐서 병원에 입원하는 분들이 있어요. 저는 밀양 가면 병원부터 갔어요. 병원은 상담하기 참 좋아요. 혼자 계시고, 조용하고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이 많으니까. 그러면 1시간 정도 얘기 듣고 오는 거예요. 3주 마다 밀양을 내려갔으니까 퇴원하실 때가 되면 굉장히 가까운 관계가 만들어지는 거죠. 처음에는 제가 신부인지 아닌지도 모르고 상담을 하는 사람인지 아닌지도 모르는데 관계가 조금씩 만들어지다가 캠프를 한번 하니까 그분들과 굉장히 밀착된 거죠. 

사실은 밀양도 굉장히 다양한 심리치료 전문가들이 내려갔어요. 그 분들은 상담실을 딱 만들어주고 누군가가 상담 받을 사람들을 데려다 줘서 상담만 할 줄 알았던 거거든요. 그런데 거기는 거의 전쟁터 같았거든요. ‘여기서 상담은 굉장히 사치스러운 거다. 그냥 같이 있어 줘야겠다.’ 생각했고 그렇게 했어요. 무료하죠. 긴 시간을 주민들이랑 멀뚱멀뚱 앉아 있는 시간이 계속되니까요. 겨울에는 춥기도 엄청 춥고. 농성장에서 같이 자는데 불을 뗀 나무의 연기가 밖으로 빠져나가지 않아서 연기 마시고 자기도 하고요. ㅎㅎㅎ 그렇게 계속 만나는 횟수를 차곡 차곡 쌓아가니까 조금씩 신뢰가 생기기 시작하는 거죠.

어떤 사람들은 심리치료 한다고 내려와서 속 얘기 다 뒤집어 놓고 그 다음부터 안 오니까, 그 분들은 오히려 저항감이 생기는 거거든요. 용산이나 세월호나 상처를 입은 분들도 아마 그런 경험을 했을 거라 생각해요. 어떤 문제가 터졌을 때 심리치료전문가들이 들어가지만 지속성이 담보되어 있지 않으면 오히려 그 분들이 다른 치료를 받기에 더 힘들게 끔 만들어버리는 거죠. 저는 치료해야겠다는 생각보다는 같이 있어줘야겠다 생각했고요. 

또 혼자 가면 심심(ㅋㅋ)하니까 동료 신부님들, 선생님들과 같이 가게 됐죠. 언젠가 동네 주민이 집에 옥탑방을 하나 지었대요. 그런데 ‘신부님 오시면 이제 여기서 주무세요.’ 하면서 저에게 방을 내주시는 거예요. 다들 저한테 고생한다고 하지만 따뜻한 방에서 맛있는 밥 먹고 그러고 옵니다.

 

할머니들이 싸우는 장면들, 또 가끔은 보기 힘든 장면들이 있어요. 솔직히 안타깝기도 하고, 너무 심한 장면들을 보면 누가 뒤에서 그들의 투쟁에 할머니들을 이용하는 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있어요.


밀양의 투쟁에 대해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주는 것은 좋은데요, 언론이나 지지자들이 할머니들의 인권이 보호되지 않는 사진이나 글들을 올리고 SNS를 통해서 공유되는 걸 볼 때는 너무너무 속상합니다. 현장의 상황이 치열하다는 표현을 그런 방식으로 한다는 것, 당사자나 가족들이 보면 얼마나 속상하겠습니까. 사람들은 자극적인 이슈들에 반응하지만 그건 인권이 없는 무식한 짓입니다. 그 가족들은 어떻게 살라고.

 

송전탑은 세워졌고, 전류는 흐르고 있잖아요. 이제 밀양의 투쟁은 끝난 건가요? 그 분들은 그 자리에 살고 계신 거죠?

 

밀양의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고 봐요. 끝났다고 보면 주민들은 얼마나 허망해요? 이제는 ‘송전탑을 뽑는 투쟁을 하자.’라고 하는데 밀양의 싸움은 반핵 투쟁으로 이어지고 있어요. 원전이 만들어지는 곳에 가서 같이 도와주고. ‘왜 하필 우리집 앞에 이런 게 생겼나’ 이런 투정과 싸움이 아니라 ‘우리나라 에너지 문제다 쓸데없이 전기를 많이 만들고 위험한 발전소를 많이 만드냐’ 그 싸움으로 전환되고 있는 거죠.

아직도 300명 넘는 분들이 합의서에 도장을 찍지 않고 있어요. 도장을 찍으면 보상금이 나오고 하지만 그분들은 그래도 이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돈 몇 푼에 잘못된 것을 인정할 수 없다는 거죠. 아직 자존심이 있고 그걸 지켜나가는 주민들이 있기 때문에 아직 계속 되고 있다고 보는 거죠.

 

곧 밀양주민들과 힐링캠프 또 하시죠? 캠프에선 주로 어떤 프로그램을 진행하나요?

 

캠프에서는 주로 집단상담을 해요. 그룹별로 모여서 게임도 하고 자기소개도 하고. 저의 입장은 좀 더 긍정적이고 삶의 의미를 돌아볼 수 있는 게 뭔가 고민했고 그걸 조명해주는 게 집단상담이거든요. 이분들의 생각은 굉장히 송전탑에 맞춰져 있어요. 송전탑만 봐도 불안하고 울분이 터지고 우울해지고 그런 상황이예요. 밀양주민들 중에는 매우 심한 스트레스 장애를 겪는 분이 많아요. 2013년에 스트레스 지수를 측정했더니 911 테러 당사자들의 스트레스 지수보다 훨씬 높게 나왔다는 거예요. 제가 가서 봐도 잠을 제대로 주무시는 분들이 없어요. 

‘우리가 이렇게 힘든데 그래도 의미가 있는 게 한가지라도 있다면 그게 뭘까요?’ 하면 ‘그래도 많은 연대자들이 오고 우리를 도와줬고 그런 사람들을 만난 게 나한테는 참 힘들었지만 그래도 참 고맙게 생각한다.’라는 얘기를 해요. ‘아 그래요? 그럼 다른 분들도 이런 경험이 있으면 한번 얘기해보시죠.’ 그러면 모두 그런 경험들을 이야기하는 거잖아요. 굉장히 울분에 차있고 힘들고 했던 일들이지만 이런 게 삶의 해석을 바꾸는 계기가 되는 거에요.

 

아! 역시 우리는 역시 사람을 통해 희망을 보는 군요.

 

그러면서 주제가 전환되는 거죠. 그 마음을 심어주는 거죠. 저희 캠프의 목적은 그거예요. ‘여기 같이 싸워 오신 우리 동료, 마음사람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좀 표시 하면 어떨까요?’하면서 주민들에게 끈끈함을 만들어주는 거죠.

송전탑을 뽑으면 문제가 해결된다 그런 게 아니라 가지고 있는 스트레스를 상황에 대한 의미를 다르게 해석하는 것을 캠프에서 전하려고 합니다. 앞에 나서서 싸우지는 못하지만 뒤에서나마 그분들이 희망을 갖고 살아갈 수 있게 끔 도와드리는 거죠.”

밀양의 투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홍정수 신부의 밀양이야기도 여전히 진행중이다. 지금쯤 힐링캠프가 열리고 있겠지?




글쓴이는 누구나 한번쯤은 살아보고 싶어하는 서울-지리산-통영을 오가며 나름대로 일과 삶의 균형을 지켜나가고 있다. 아무것도 안 하는 것 같지만 끊임없이 무언가를 하면서 남부럽지 않게 살고 있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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