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누구와의 만남]이렇게 웃으면서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은 글쎄, 얼마나 될까? - 서장협 홍은영

10년 전쯤 이었던가, 김주혁, 엄정화 주연의 로맨틱코미디 영화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난다 홍반장>이 개봉했다. 멀쩡하게 생긴 30대 남자가 동네반장을 한다. 중국집 배달, 편의점 아르바이트 등 동네의 온갖 자잘한 일들을 처리하고 모르는 일도, 못하는 일도 없다. 서울에서 도도한 치과여사였던 여자는 협박용으로 사표를 내밀었다 그 자리에서 즉각 수리되는 불운을 겪으며 취업마저도 실패하고 홍반장의 동네에서 치과를 개업한다. 로맨틱 코미디의 뻔한 설정과 스토리 전개 때문이었는지 흥행에서는 별 재미를 보지 못했지만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나타나는 ‘짱가’의 자리를 한동안 홍반장이 차지했다.

2015년 7월 30일 오후 4시 서울시 NPO지원센터. ‘모금뒷담화’ 8탄 <티끌모아 태산되는 크라우드 펀딩의 마법> 준비가 한창이다. ‘모금뒷담화’? 생소한 사람들도 있겠지만 알만한 사람은 아는, 일년에 두 번, 잊을 만 하면 나타나 모금 단체들의 가려운 등을 시원하게 긁어주는 효자손 같은 프로그램이다. 흰 셔츠에 청바지를 맞춰 입고 분주히 움직이는 사람들, 무대와 음향, 조명을 점검하는 사람들. 그들 사이로 홍반장 아니 홍부장이 보인다. 홍반장과는 성별도 성격도 다르지만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난다’는 건 똑같다.

 

 

서울특별시장애인시설협회(이하 [서장협]) 후원결연사업부장 홍은영. ‘모금뒷담화’의 시작과 끝을 알리고, 2시간 동안 제일 앞자리에 앉아 행사를 진행한다. ‘모금뒷담화’의 보이지 않는 지휘자라고나 할까?

 

2시간의 짧은 토크쇼 같지만 준비하는데 상당히 많은 시간과 사람들의 공 필요해요. 기획부터 장소섭외, 교육홍보, 참가자 모집, 당일 현장 설치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죠. 한편의 연극처럼 박수를 받으며 ‘모금뒷담화’가 끝나지만 저희는 아직 끝난 게 아니예요. 좀 더 깊고 솔직한 이야기들이 오가는 참가자와 강사들간의 네트워크 자리가 마무리 되어야 한 회의 ‘모금뒷담화’가 끝납니다. 어렵게 시간을 내 오신 분들에게 업무에 도움이 되는 시간이었는지, 패널로 오신 분들은 비영리단체들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지고 서로 공감의 계기가 되었는지 정리의 시간도 갖고요. 모두가 만족하는 날에는 다리 뻗고 잘 수 있죠. 그렇지 못한 날도 있지만.


2002년 사회복지사로 [서장협]에 입사해 올해로 14년 차인 베테랑 홍부장도 긴장이 되는 모양이다. 많은 기업들과 연계해 임직원자원봉사활동, 꿈에그린도서관지원사업, 장애인 치료비 지원사업 등 기업사회공헌 사업을 진행하고 있지만 특히 ‘모금뒷담화’는 사회복지단체들의 후원담당자들을 위한 교육 사업이다 보니 개인적으로는 좀 더 큰 의미가 있다고 한다.

 

학부전공이 사회복지가 아니었어요. 시민단체에서 일하고 싶고, ‘인간미 나는 실천학문’을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사회복지대학원에 진학했고 졸업 후에 협회에 입사했어요. 사회복지사로 출발해 후원결연사업을 하다 보니 후원담당자들을 위한 자원개발교육, 후원교육이 절실하다는걸 느끼게 되었죠. 하지만 사회복지사들을 딱딱한 책상에서 강사만 바라보는 주입식형태의 모금교육에 시간을 뺏기게 하고 싶진 않았어요. 현장에서 얼마나 힘들게 일하는지 아니까 그 시간만큼은 교육이 주는 부담감을 좀 내려놓을 수 있도록 자유롭고 편안하게 해 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국장님과 같이 토크쇼처럼 모두가 유쾌한, 즐길 수 있는 교육을 해보자 해서 시작한 프로그램이 ‘모금뒷담화’입니다.  하지만 이마저도 시간을 낼 수 없는 사회복지사들이 많아요. 그래서 좀 안타깝죠.


사회복지사를 위한 프로그램에 사회복지사가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많은 사회복지시설들, 특히 소규모단체들의 사회복지사들은 몸이 열개라도 모자란다는 말이 너무 많이 들어 왔고 그들과 직접 소통하는 홍부장의 목소리로 들으니 이 현실이 조금 더 서글프다.  

한편으로는 서울시의 보조금지원으로 운영되는 조직이 왜 ‘‘모금뒷담화’’라는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하는지에 대한 의문도 함께 풀렸다. 수많은 유명인들을 불러놓고도 강연이 아닌 토크쇼여야 하는 이유, 왜 대규모 강당이 아닌 아담한 소극장에서 토크쇼가 진행되는지, 행사 시작 전에 영화관에서나 볼 법한 매너영상을 상영하는지에 대한 것도 모두 참가자들을 위한 배려이고 치밀한 계획하에 만들어진 장치였다. 2011년 가을 ‘특이한 세 남자의 ‘모금뒷담화’로 시작해 횟수로는 벌써 5년, 당시에는 꽤 신선한 시도였고 나름의 팬들을 확보하며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건 이런 노력의 결과이리라.

 

‘모금뒷담화’ [서장협]의 대표브랜드가 되기까지

 

 

그동안 ‘모금뒷담화’를 찾아준 패널들도 아주 다양하다. 모금에 대한 진지한 접근이나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가 필요할 땐 국내의 내놓으라 하는 모금가들이 찾아왔고, 모금과 기부의 영역을 넘나드는 셀러브리티도 단골손님이다. 홍보, 기업후원, 소셜 마케팅과 크라우드 펀딩에 이르기까지 모금이 필요한 단체들에게 유용한 주제들을 선정해 각 분야의 전문가들을 초청하고 비법과 사례를 참가자들과 나눈다.

프로그램 참가자들이 내는 소정의 참가비는 장애학생 교육비 지원에 쓰인다. ‘모금뒷담화’가 교육인 듯, 강의 아닌, 토크쇼 같은 프로그램을 지향하는 만큼 교육을 준비하는 [서장협], 실제 진행을 맡게 되는 호스트와 패널들, 그리고 참가자들이 조화롭게 어울릴 수 있어야 하고 그래서 더욱 세심한 준비가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모금뒷담화’ 8탄 ‘티끌모아 태산되는 크라우드 펀딩의 마법’ 도 꽤나 성공적이다.

2~3년 전부터 모금의 새로운 채널로 부상한 크라우드 펀딩을 다음카카오 뉴스펀딩 김귀현 총괄팀장과 크라우드펀딩 플랫폼을 실제로 운영했던 유캔스타트 김정환 대표가 함께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호스트 서경덕은 패널과 참가자들 사이에서 유연하게 2시간 동안 토크쇼를 진행했고, 패널들은 크라우드 펀딩의 성공요건과 성공, 실패 사례를 아낌없이 풀어놓았다. 마지막에는 참가자들의 꽤 쓸만한 질문들과 패널들의 답변들이 이어졌다. 물론 홍부장의 말처럼 더 깊은 뒷담화는 네트워크 자리에서 이어지겠지만. ‘모금뒷담화’가 8회를 맞으며 [서장협]의 대표브랜드가 되기까지 가장 큰 힘이 되어준 사람들이 있다.

 

혼자서는 결코 해낼 수 없는 교육입니다. ‘모금뒷담화’는 호스트인 서경덕 교수님의 힘이 커요. 한국홍보전문가로 유명하시잖아요. 저희 협회 홍보대사로 활동하고 계신데요, ‘모금뒷담화’ 시작부터 지금까지 함께 해주고 계세요. 평소에도 최신 트렌드와 모금 동향에 대해 많은 정보를 나누지만 특히 ‘모금뒷담화’를 위해서 패널 섭외까지 직접 해주고 계시답니다. 이미 충분히 고맙고 감사하지만 모금단체가 ‘갑’이 되는 그날까지 ‘모금뒷담화’를 함께 해주시리라 굳게 믿고 있습니다. 올 가을에 9탄, 10탄이 이어질 계획이구요.


진행은 물론 기회가 될 때마다 참가자들에게 맥주 한캔씩 쏜다는 서경덕교수는 이날도 참가자 모두에게 바나나맛 우유 한 단지를 돌렸다. (왜 맥주가 바나나맛 우유가 되었을까? 이날 행사장은 주류가 반입이 안되는 곳이었다.) 무늬만 홍보대사가 아닌 단체의 사업에 발벗고 나서는 홍보대사가 있다는 건 [서장협]으로선 아주 큰 복이다. 서경덕 교수가 [서장협]의 홍보대사가 되는 과정은 다음에 소개할 기회가 있으리라.

 

사람의 힘이 곧 조직의 힘

 

그리고 ‘모금뒷담화’에 결코 빼 놓을 수 없는 사람들, 바로 [서장협]의 직원들의 힘이다. 홍부장은 각자 맡은 업무는 일사불란하게, 그러면서도 현장에서 서로를 배려하며 조화롭게 합을 맞춰가는 직원들을 보며 ‘동료애’를 느낀다고 했다. ‘모금뒷담화’뿐만 아니라 [서장협]의 팀웍과 동료애는 업계(?)에서 유명하다. 함께 일해본 기업이나 단체들이라면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은 많지. 이렇게 웃으면서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은 글쎄, 얼마나 될까?” 한 단체의 사무국장이 [서장협]의 직원들을 두고 했던 말이 생각난다. 실제로 현장에서 만나는 [서장협] 사람들을 보면 ‘이 사람들은 지치지도 않나.’라는 생각을 절로 하게 된다. 일하는 손에서는 오랫동안 조직 내에서 체계적으로 일을 배우고 익힌 노하우가 느껴진다면, 얼굴에는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는 일에는 손을 보태는 마음이 보여진다고나 할까. 

아! 이런 게 조직의 힘이라는 건가. 이런 사람들이 일하는 [서장협]은 어떤 곳일까? ‘서울특별시장애인복지시설협회는 서울시의 지도, 감독을 받으며 서울시 장애인복지시설 및 재가장애인의 결연, 후원을 지원하는 관리하는 단체입니다.’라고 홈페이지에 소개되어 있다. 협회는 협회 고유의 업무와 전체를 총괄하는 사무국과 서울시에서 위탁 받은 장애인후원결연사업을 수행하는 후원결연사업부로 나뉘어져 있는데 홍부장이 사회복지사로 입사할 당시 사무국장을 포함해 3명이었던 조직이 한때 직원 25명의 대규모 조직으로 확대된 적도 있었지만, 지금은 14명의 직원들이 함께 일하고 있다.

서울시로부터 1995년부터 위탁 받은 장애인후원결연사업은 기업사회공헌사업, 교육사업, 장애인인식개선사업, 기부자관리, 후원금품배분, 자원관리, 홍보사업을 담당하고 협회사무국에서는 거주시설 장애인, 종사자, 장애인거주시설을 위해 서울시에 정책제안 및 개발, 종사자 전문성 향상을 위한 교육지원사업, 정책사업(연구 및 조사사업), 권익옹호사업, 인식개선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서장협]이 하는 일들은 직원들 개개인의 사명감도 필요하지만 단체의 역할을 수행하는 데는 중심을 잘 지키고 서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일까 사무실로 들어서면 책장을 가득 채운 정리된 문서들이 조금은 경직되고 중압감을 느끼게 되는데 직원들의 책상 위에 올려진 액자를 보는 순간 긴장감이 확 풀어진다.


 

 

홍부장의 책상에는 ‘가장 빛나는 별 홍은영’ 그 옆은 ‘삶을 미소짓게 만드는 멋진 당신 김설희’의 자리다. 어쩜 이렇게 예쁜 이름들을 지었을까 궁금했는데 협회가 주최하는 후원인의 밤 행사에서 캘리그라피 작가가 정해놓은 세가지 문구 중 하나라고 고백한다. 좀 맥 빠지긴 했지만 홍부장의 고백이 솔직해서 좋다. 

“사회복지는 내가 좋아서 시작했지만 희노애락을 주는 일입니다. 지금은 초심으로 즐겁고 잘하려고 해요.” 내가 만난 홍부장은 온화하고 따뜻했다. 지금 가장 빛나는 별은 아닐지라도 사회복지사로 첫발을 내디딘 처음의 마음처럼 ‘가장 인간미 나는 별’임은 분명하다. 그리고 그 마음이 계속되었으면 좋겠다. 빛나는 별처럼. 

‘모금 뒷담화’가 진행될수록 담당자들의 고민도 만만치 않은 것 같다. 분위기가 무르익으면 패널과 참가자들이 각자의 조직과 일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으며 깊은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는데 뒷담화가 뒷담화로 끝나지 않고 특급 정보인양 개인의 블로그나 SNS에 공유되는 바람에 가끔 난처한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단다.

개인적으로 모금뒷담화가 계속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한마디 하자면 “뒷담화에 대한 예의를 지킵시다. 은밀하게 위대하게.”



  

[누구와의 만남] 일 – 사람 – 조직의 이야기 

“저 더플랜B에 나눔과 모금을 주제로 글을 쓰기로 했어요.”   10편의 글을 어떻게 써 나갈지 나름의 목차를 정하고 지인에게 조언을 구했을 때 축하는 아니지만 격려 정도는 내심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반응은 의외였어요.  “더 플랜B 저도 자주 보는데요, 거기… 글 쓰는 사람도, 읽는 사람들도 내공이 장난 아니던데요…… ”   덜컥 겁이 났습니다. 그제서야 무심코 지나쳤던 다른 사람들이 쓴 글과 사람들의 면면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어쩌자고 그랬지’로 시작된 후회는 ‘어떻게든 되겠지’로 결론지어졌습니다. 그래서 써보기로 했습니다. 전문가가 아니면서 전문가인척하고 글을 쓸 수는 없겠지요. 여전히 나눔은 모호하고, 기부는 부족하고, 모금은 어렵기만 합니다. 하지만 책으로, 귀동냥으로 배운 얕은 지식으로 나눔. 기부. 모금에 대한 글을 써 보겠다고 마음 먹은 ‘나’의 용기에 경의를 표하며 누구와의 만남을 통해 작지만 소중한 이야기를 나누려고 합니다.   

글쓴이 Leelawadee는 누구나 한번쯤은 살아보고 싶어하는 서울-지리산-통영을 오가며 나름대로 일과 삶의 균형을 지켜나가고 있다. 아무것도 안 하는 것 같지만 끊임없이 무언가를 하면서 남부럽지 않게 살고 있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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