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활동가인터뷰] 광장에서 차별금지법 법제화를 외쳐온, 활동가 김기홍

올해 21대 총선에 주변의 *논바이너리 트랜스젠더 활동가 2명이 출마했다. 필자가 10대 시절 언론에서 보았던 트랜스젠더는 연예인 하리수 님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성소수자 인권운동과 동시에 정치 세력화로 나아가고자 하는 그들의 에너지가 궁금했고, 작게나마 유세 활동 등을 열심히 공유했다.  

그러던 와중 총선 사전 투표일인 4/11, 김기홍 후보가 자진사퇴를 했다. 과거의 의혹에 대해서 공식 사과를 했음에도 온라인을 중심으로 비난의 목소리가 거셌기 때문이다. *비난 여론 중 일부는 트랜스젠더를 대상으로 한 사이버 불링(온라인 괴롭힘)에 해당하는 범위였으나, 한국 사회에선 성소수자에 대한 인식 자체가 낮다 보니 트랜스 혐오가 빈번하다. 

*논바이너리 (Non-Binary):비-성별이분법. 스스로의 성별 정체성을 사회적으로 인식하는 여성 또는 남성의 카테고리로 정의내리지 않음


한 사회의 시민이 활동가가 되어가는 과정을 기록으로 남기고자 했다. 어느 곳에서든 자리가 생기면 당당하고 힘있게 연설하고, 조랑말이 그려진 무지갯빛 제주퀴어문화축제 깃발을 들고 행진하던 그의 모습을 인상 깊게 기억하고 있었다. 성별 이분법을 중심으로 차별과 혐오를 조장하는 한국 사회에서 꼭 필요한 활동가라는 사실을 다시금 알리고 싶었다. 지난 5월, 제주 시내의 제주퀴어문화축제 사무실에서 나눈 대담을 공유하고자 한다.




성소수자 인권활동가는 보통 활동명을 쓰는데, 기홍은 실명으로 활동하고 있어요. 활동을 처음 시작하게 된 계기가 뭐였어요?

A. 처음부터 “상큼한 김선생” 쓰고 다녔거든요. 활동하면서 활동명을 본 적도 별로 없고, 딱히 쓰고 싶은 이름도 없는 거예요. 그래서 그냥 “김기홍”으로 썼죠. 제가 퀴어 활동 이전에 07년 말에 맥 쓰면서 활동을 시작했어요. 그 전엔 학생회에서 활동했고, 이때는 관공서 찾아다니면서 행동한 거 포스팅 올리고, 가끔 1인시위도 하고 기사도 났어요.

대외적으로 드러난 건 2016년 박근혜 퇴진 집회 때. 매번 발언을 해보려고 했는데 못 하다가 어느 날 하게 됐어요. 그날 김제동이 제주 와서 사회 보는 날이었고, 그날 누가 날 콕 집어서 올려 보내줬어요. 온갖 얘길 했죠. 그때 대외적으로는 화장하는 남성이었고, 비정규직 교사인데 공무원 정당 가입 못하는 거 등등 얘기를 했어요.

비정규직이래도 공무원에 준하는 “품위 유지의 의무”를 지켜야 하는데, 공무원하고 똑같은 복지 포인트를 주는 것도 아니고, 고용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고, 압력이 개별로 들어가는데 의무만 있고 권리는 주어지지 않죠.

그리고 2014년 4월 16일. 그때 제가 학교에서 근무할 때거든요. 전 실은 학생들 (세월호 참사) 그것도 있지만, 나중에 비정규직 교사, 기간제 교사분들이 순직 인정받지 못한 거. 의무는 있고. 품위 유지의 의무는 있고, 교사로서 정치적 중립의 의무도 있고, 교사로서 갖는 전문직의 의무도 있고, 교직 관중에 하나가 성직관이거든요. 성직관 안에서의 도덕적 의무? 온갖 의무는 있는데, 고용 형태가 다르다는 이유로 순직 인정을 받지 못하는 거예요. 정확히 말하면 공무원 연금을 내지 않고 있다는 이유로 순직을 직장에서 했는데 인정되지 않은 거예요. 현재 법이 그러니까.




한국 사회에 커밍아웃한 성소수자의 존재가 워낙 적다 보니, 대중적 관심이 성소수자 정치인의 정책보단 외모에 대한 의견을 더 받고 계시더라고요. 저는 그 반응들이 여성 혐오와 맞닿아 있다고 생각했어요. 사회적으로 ‘여성적’으로 보이는 이미지는 성별에 상관없이 평가되거나 압박받거나 검열하려 하죠. 예전에 국회 입성하게 되면 비키니를 입으시겠다고 하셨잖아요? 그 말씀처럼 사회적으로 한 성별에 특정 공간에서 요구하는 압력(외모, 태도, 말투)을 거부하는 것도 하나의 저항운동이라고 봐요.

“저를 보고 어떤 사람들이 "트랜스젠더 & 여성 이미지 고착화한다"라고들 하시는데, 개인으로서 무언갈 좋아할 수 있다는 기본 권리조차 인정하지 않으시는 것 같아요. 내가 나로서 살고 싶어서 정체성을 드러냈는데, 그 과정에서 저를 (트랜스젠더의) 대표 이미지처럼 여기더라고요. 그렇게 인식 될 수도 있겠지만, 저는 누군가를 대표하는게 아니라 "나는 이렇게 살아왔다", "이렇게 정체화 했다"라고 말하고 싶은거죠. 

(성별 정체성 및 표현에서) 확장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사회에서 "ㅇㅇ는 이래야 한다"는 한정짓는 방식이 많잖아요. 실은 사회 기본값이 남성이라는 이름이라면 모두, 그 외는 여성인거죠. 남은 존재들. 남을 여(餘)자 써서. 나머지 성(性)들. 프랑스혁명에 들어간 'HOMME' 라는걸 '인간' 이란 말로, '사람'이란 말로 확장, 해석하고 있죠. 제가 음악 전공했으니까, 수업 하다보면 프랑스 세속노래를 가지고 성가 미사를 맡는게 있어요. 그게 "미사, 무장한 사람" 무장한 사람 선율을 가지고 만든 미사다. 원어대로 "무장한 남자"라고 해도 상관없거든요. 계속 확장 할 수 있는 거잖아요. 남녀의 평등을 기초로. 


지난 18년 지방선거, 그리고 올해 20년 제21대 총선-총 2번의 출마를 마쳤고, 이번 총선의 경우엔 당 비례대표 후보로 선출되셨어요. 정치인 김기홍의 꿈은 무엇인가요?

정치 관련해서 "복지"라는 말을 부서에서 모든 정부 부처, 지역에서 복지를 삭제하는 정치적 꿈이 있어요. "복지 혜택"이란 말이 너무 시혜적이라, "시민 권리보장"으로 바꾸고 싶은 거죠.  보장해야 할 걸 보장하지 않고, 의무로. 보장이라면 권리여야 하는데 마치 복지 혜택이란 말처럼. 복지는 권리를 보장받는 거잖아요. 인간답게 살 권리를 보장받는 방법의 하나가 사회 복지 시스템인데, 이걸 복지 혜택이라고 하면서 권리가 아니라 혜택처럼 치부하니까.

(정부 부처 이름이)  "시민 권리보장"으로 바뀌게 되면 인권 중심으로 바라보게 되겠죠. 사회는 권리보장을 위한 국가가 어디까지 보장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논쟁을 하고 정치적 싸움을 하게 되는데, "복지혜택"이라고 하니까 선별복지냐 보편복지냐 하는 말만 나오게 되고. 애초에 복지를 한정된 자원으로 만들어놓고 한정된 자원의 배분 방법에 대해서, 보편복지가 왜 필요한지에 대한 설득을 계속해야 하고, 시민 권리보장을 위해서 세액 추징 등으로 가야 한다고 보거든요. 

우리는 국가라는 게 매우 큰 단위이고, 국가엔 의무고 시민에겐 권리가 되잖아요. “의무 없이 권리 없다” 는 행정부가 가져야할 자세이고, 시민은 권리 없이 의무가 되어야 한다는 거죠. 권리 차별에서 혼인-동성혼을 비롯한 그렇죠. (예를 들어) 가족의 범위도 되게 차별적이잖아요.

제가 정치개혁을 하려고, 활동가로서 왜 정치를 하려고 했었냐면 권력이 지나치게 몰려있어요. 대통령, 국회, 법원- 삼권분립이라고 하지만 국회에서 온갖 것들을 대통령에 위임했으니까 대통령 권한이 엄청나게 큰 거죠. 법원에서는 국회가 법을 이렇게 만들었으니까 수습할 수가 없고요. 국회의원 특권이 많다고, 300명 줄여야 한다고, 보좌관 9명씩 있다고 줄여야 한다고들 하는데, 저는 보좌관 열 몇 명까지 늘려야 한다고 생각해요. 국회 의원 수 최소 500명까지 되어야 해요.

제주는 기초의회가 없거든요. 일은 점점 늘어나는데 의원이 줄어들고나서 제주에서 이런 사태가 일어났어요. 기초의원이 해야 할 조례, 감사 모두 광역의원이 맡는 거예요. 그러면 광역의원이, 기초자치단체에 있던 의원 수만 서른? 마흔 명 될 텐데 이걸 광역 40명 남짓에 가져온 거예요. 그럼, 일이 그냥 두 배가 아니죠.  너무 일이 많아지고 보좌관이 얼마 없으니까 의원이 아무리 해도 도지사 밑에 있는 직원 수 수천명, 이 사람 하는 걸 감시 못 하는 거예요.


이번 총선에서는 출마 기탁금 등이 지역구 페미니스트 후보로부터 이야기되기도 했어요. 대다수 2030 청년들의 경제자원이 출마에 걸림돌이 되는 게 사실이에요.

제가 계속해서 “이제 학교에서 돌아가고 싶다”는 이야기가 그거거든요. 직업 정치인이 되어선 안 된다고 생각해요. 누구나 쉽게 선거에 나갈 수 있어야 하고, 출마하는 리스크가 최소화 되어야 하고, 선거 자체로 생애가 위협받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전업 정치인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가야, 그래야 정치와 사회가 그 거리가 줄어들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전문가만 정치하는 세상이 아니라, 생활에서 정치하고 보좌관과 그걸 공공의 이름으로 세련되게 다듬는 일을 하고, 전문가를 키워내는 게 아니라 시민사회를 정치와 함께 시민들의 사회를 만들어나가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저는 계속 활동을 하고 싶었던 거고, 활동가로서 계속 살고 싶고, 교사로서 계속 살고 싶고, 계속 나의 삶을 살면서 나의 삶을 바꾸는. 당연히 내가 사는 동안에는, 정치인인 동안에는 실무를 내가 직접 하면 안 되는 거죠. 그에 대한 과도한 이익에 대해서는 견제해야 하는 게 맞고, 이건 정당정치로 해결하면 된다고 생각하고요.

예를 들어 권력이 집중된 경우, 주식 같은 경우 신탁제 얘기하고 있고, 그렇다면 애초에 재산이 없는 노동자들은 고려하지도 않는 거죠. 이 사람들은 어차피 출마 자체를 못 하니까, 이런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시민들이 정치를 불신해서가 아니라, 이야기를 나누고 필요한 정보에 접근할 창구가 한정적이라 서민과 정치가 멀어졌다고 생각해요. 국회 가까이 못 갈수록, 국회의원으로서 등용문이 한정적이라면, 계속해서 “귀족 정치”가 되겠죠.

저는 시민단체 활동가들도 정치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배신자” 이런 게 아니라 부족한 점을 함께 메꾸고. 권력 유지를 하는 게 아니라 바꿔나가야죠.  공천권을 누군가 독점하는 식도 웃기지만, 그러지 않도록 만들어야죠. 정당에서도 고민하고 정치권에서도 고민해야 하는 거고. 맨날 개혁 얘기하지만, 접근을 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개혁은 와닿지 않죠.

정의당 심상정 의원도 서울대 출신이고, (금속노조) 장 노릇 하던 사람이잖아요. 계속 그런 사람들만 정치하는 거잖아요. 그렇지 못한 구조를 만드는 게 정치개혁이고, 시민사회 활동가 모두가 그렇게 구축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총선 자진사퇴 이후 한 달 만에 이렇게 만나게 되었어요. 이번 총선을 통해 느낀 점, 혹은 고민이나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까요?

A. “저를 지지하는 사람이 많다.”, “제가 정치하길 바라는 사람이 많다”는 걸 확인한 시간이기도 했죠. 그러면 그거예요. 저희 당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가 누구도 정치인을 길러내지 않는다는 거죠. 이번에 지지자분들을 직접 만난 이후로, 지지자가 엄청나게 늘었어요.  제가 경선에서 1, 2차 둘 다 꼴찌 하긴 했지만 2차 경선에선 표가 줄었는데 저는 표가 1.5배로 늘었어요.

그러면, 저는 당에서 정치해서 성공한 거예요. 시간이 더 많이 필요했던 건지, 만날 기회가 필요했던 건지. 어쨌든 저는 직접 만난 사람은 설득하고, 지지자로 만든 거죠. 그렇다면 이건 시스템이 아닌 거죠. 결국에는 개인의 역량으로 된거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내가 아니라 모든 정치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개인기가 아니라 시스템 정치를 어떻게 해야 할까?

처음에는 나답게 살고 싶어서 정치를 시작한 게 더 컸는데, 중간에 친구도 둘이나 먼저 떠나고 나니까 “나를 위한 정치”가 사라져버렸어요. 내 삶을 위해서 하기 시작한 건데, 당위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한 건데, 그걸 칭찬받고 응원받는 것도 좀 웃기고. 그래서 계속 경계했거든요. 저는 무조건적인 지지가 무섭고, 정치인에게 팬이 있어선 안 된다고 생각해요. 생각해보면 활동가에게도 팬이 있으면 안 되는 거 같아요. 그러면 그 활동가가 바이블, 도그마가 되겠죠.


흔히 정치를 말할 때, 보수/진보라는 언어를 쓰게 되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요?

저는 보수라는 말도 싫어요. 보수가 어딨어요, 한국에. 지키고자 하는 가치가 없는데. 정치집단이, 어떤 가치를 주장하지 않잖아요. 근데 민주에서 민주화, 민주주의가 그렇게 중요한 가치 같지 않아요. 민주주의는 하나가 아닌데, 하나로 가져가려는 것. 그게 민주적 가치인가? 민주적 가치를 지키는 민주당인가? 보수가 대체 뭐길래. 우리나라에서 가장 핵심적으로 지켜야 하는 가치가 대체 뭐길래. 가치에 대한 논쟁 없이 기존에 해왔던 걸 그대로 지키는 걸 보수라고 하는 거잖아요. 왜 해왔는지 다 잊은 채로.

제주에서 제사 지낼 때 상이 이렇게 있고 여기가 입구면, 여기가 제사 지내고 큰 상이 있고, 여기에 안내상이 있고 문전상이 있어요. 이 문전상이 제사 지낼 때 거의 유교 방식으로 지내지만, 삼이라는 게 유교 방식이거든요. 초헌, 아헌, 종헌 이런 식으로 하는데 실은 제주에서는 전통 신앙과 연결돼 있어요. 여기는 문왕신을 모시는 곳이라 제일 먼저 마지막에 제사 지내기 전에 문왕신께. 무슨 제물을 올릴 때 제일 먼저 여기. 문전상에 제일 먼저 올려요. 여기엔 항상 가장 먼저 올리고 다음 조상상, 제일 마지막에 안내상. 여긴 조왕신 모시는 상이에요. 여기는 집안을 지키는 집, 대문을 지키는 문왕신께 올리는 상. 여기 따로, 주인이 따로 먼저 문왕신께 제를 지내요. 근데 이걸 아무도 알려주지 않아서 나중에 알게 된 거죠. 제사의 예도에 대해서 이유는 몰랐고, 그냥 답습만 하는 거예요. 이제까지 해왔으니까. “이게 원래 어떤 의미를 가진 거다” 없이. (** 제사 관련 참고 링크 - 논비건 이미지 있음)


그래서 최근에 기사 재조명되고 있죠. “명절에 오히려 유교 집안에서 간소하게 한다.”, “차례란 말처럼 다과만 간단하게 한다.”, “제사 때 음식 많이 하지 않는다”. 왜 그랬는지에 대한 이런 게 없으니까 허례허식만 발달한 거죠. 그래서 여태까지 보수가 뭘 지켜왔나요? 그래서 뭐만 하면 “학교는 보수적이기 때문에”.. 실체화된, 정리된 게 없는 성문화되지 못한 관습을 정리해놓은 게 있다면- 판례가 생기고 여기에 관습법이 생기는 건데, 뭐가 없잖아요. 그것조차 없으면서 대체 무슨 보수예요? 어떤 가치를 향해서 간다는 진보도, 정당도 없잖아요. 그 가치에는 이유가 따라야 하는 게 없고.

우리가 어떤 보수/진보/중도 얘기하지만, 무슨 가치를 얘기하길래. 누구도 어떤 가치를 얘기하지 않는데. 학습도 가치도 없는데 나와서 하면 욕하기 바쁘고. 누굴 본보기로 퇴출해서 될 게 아니라, 잘못에 대해 학습할 수 있게끔 해야죠. 그건 강압으로 모두가 알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그럴 거면 군사주의, 억압 정치해서 법과 도덕의 구분을 없애버리면 되잖아요.



우리 인터뷰 시작할 때,  ‘범주화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했죠. 명료하게 폭력 및 사건으로 규정되지 않더라도 특정 집단에 일상적인 차별과 폭력이 존재하고, 이를 감지할 수 있는 사람이 활동가라고 생각해요. 저는 그 한 사람이 지속해서 활동가로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줘야 활동가가 유입될 수 있다고 봐요. 구체적으로 직업 환경이나, 인건비 등의 기반이 있어야, 많은 이들이 활동을 지속할 수 있고, 대중들도 권리 운동의 가치에 대해 인식하고 시민사회 활동가를 직업의 하나로 생각할 이들이 늘어날 거라고 봐요.

저는 다들 필요하다는 데에는 동의할 거로 생각해요. 우리에게 필요한 건 시간과 돈이라는 자원과 그리고 함께할 연대자들이 필요한 건데, 누구도 돈을 못 버는데, 실은 활동가들이 후원 많이 하잖아요. 지금 비자금이나 이런 것들이 문제가 되고 있는데, 지정기부금을 통해 투명성 유지하는 것도, 그 과정이 까다롭잖아요. 단체 일도 그렇고. 

투명성은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까다로운 절차인가? 신뢰할 수 없는 상황이라 하더라도, 신뢰할 수 있는 시스템을 공공으로 구축하면 안 되나, 하는 생각도 하고. 그리고 시스템을 만들 때, 직접 이용할 사람들이 쉽게 참여할 방법도 계속 고민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제가 해왔던 활동 중 하나가 "웹 접근성, 웹 공공문서". 이 운동을 자발적으로 했어요. 과나 단체 소속이 아니라 제 필요에 의해서 시작했고, 이 활동을 통해서 장애 접근성에 대해 배울 수 있었어요. 접근성이라는 게 금전, 신체 상태, 지역 모두 포괄한다는 걸 알게 된 거죠. 오픈소스를 활용하게 됐을 때 장점이 뭐가 있나 봤더니, 여긴 다 서비스로 돈을 벌고 있더라고요. 그건 서비스 제공하는 사람들 인건비로 쓰고 있고, 지역 경제가 활성화된다는 얘기잖아요? 시스템상 관리할 사람이 필요하니 이런 걸 모두 시민단체에서도 감시할 수 있는 거고.

그래서 오픈 API 같은 경우도 기업-구글, 네이버, 다음, 카카오 등 되게 많지만 실은 오픈 API를 공개할 곳 중 하나가 공공기관이죠. 필요하다면 데이터를 공유하여 사용하게끔 해야 하고- 이건 공공의 세금에 의해서 쓰였기 때문이고요. 이렇게 되면 우리가 정보공개를 청구하지 않아도 직접 찾아볼 수 있어서 상대적으로 투명해지죠. 예를 들어 오픈소스를 하게 되면 취약점도 쉽게 해결할 수 있겠죠.

활동 당시 웹 접근성 이슈 중 하나가 장애인 웹 페이지가 별도로 만들어지면서 업데이트 주기가 달라지고, 결국엔 접근성 자체가 떨어지는 걸 봤어요. 지금도 모바일 페이지하고 정보 접근성이 차이가 나는 경우가 많잖아요? 제주퀴어문화축제 개최 첫해에 시 대상으로 소송할 때나, 인천퀴어문화축제 첫 개최 관련해서 연대 방문했을 때 녹취록 다 남겨놨지만, 결국 인권위 합의에서 부결 되고. 결과적으로 이런 것들이 접근할 수 있는 문제들이 다 배제되는 거라고 봐요.

제가 웹 접근성 운동 전에, 웹 문서 표준을 먼저 봤거든요. 근데 표준이 중요한 게 아니라 접근성이 중요하다고 하더라고요. 그때 "표준"에서 장점을 크게 확인하게 됐어요. 당시에 충전기가 24핀, 20핀 나오고. 지금은 마이크로 usb 애플 24핀, 애플 라이트닝 usb-c 이렇게 많이 쓰고 있죠. 표준화 됐을 때의 장점이 있는데, 꺼리는 거죠. 공공건물도 표준화가 일정 부분 필요한데 그러지 않고 있고요. 표준화 과정에서도 불투명한 부분이 많고, 이해 당사자가 결합하지 않은 경우가 많아요. 애초에 접근성이 떨어지는 거죠. 존재 자체를 모르니까.

그러니까 운동하면서 "우린 여기에 있다", 굉장히 오래된 구호잖아요. "WE ARE HERE". 이게 다 접근성인 거예요. 이제까지 존재하는지 몰랐고, 아니면 알더라도 법에서 고려하지 않은 거예요. 그 말은 "공식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럼 사회는 뭔가 할 필요가 없는 거예요. 지금 법에서는. 지금 법에서 포지티브 리스트를 쓰고 있어요. 특정 예외를 두어야 하는 건 네거티브 리스트를 써야 하는데, 그걸 포지티브 리스트를 쓰고 있어요. 뭐가 없느냐, 뭘 필요로 하느냐를 파악하는 게 아니니, 수요에도 관심이 없고, 공급만 하면 알아서 되는 게 아니잖아요?

공급 자체도 한정적으로만 사용하게끔 포지티브 리스트로 만들어놓고, 수혜자들이 정책을 통해서 실제 어떻게 반응하는지 의견을 수렴하는 게 아닌 시스템을 설계하고 있어요. 당장에 실무자를 안 뽑잖아요. 지금 제주 제2공항만 해도, 공항 슬롯 부족하다고 얘기하기에 관제탑 인력을 더 채용하면 된다고 하는데도 근무자 채용을 안 해요. 채용 안 하려고 공항 새로 짓겠다는 이야기인데, 사회가 대체로 인건비에 투자하는 걸 꺼리는 경향이 있다고 봐요. 공무원 급여 총량 관리제 기준의 예외인 직군이 교사나 소방공무원이에요. 사람이 필요한데 뽑을 제정이 없으니 비정규직을 채용하게끔 하죠. 비정규직 조장? 국가가 했죠. 상시업무인데도 불구하고 "사람 뽑으면 세 부담이 가중된다"..

그러다 보니까 어떤 활동가로서 사업에 선정 되도, 대표는 급여를 못 받아요. 제주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 대표자가 저인데, 전 어떤 사업을 해도 저는 인건비를 못 받아요. 그런 곳이 많죠. 대표자가 착복한다고들 생각하지만, 인권단체라고 하는 곳들이 보통 임의단체잖아요? 아닌 경우도 많고. 자발적으로 활동하는 거고. 이 특성을 아는 곳들이 많이 없어요.

저는 성소수자 인권 활동가가 아니라, 생존 활동가라는 말을 해왔었는데 이젠 ‘생존’이란 말도 못 하겠어요. 가끔 이런 생각이 들어요. “우린 서비스 제공자인가?” 퀴어문화축제를 준비하면서 최저임금을 지급 받는 것도 아니고. 저희 관점에서 운동 차원으로 할 수 있는 제일 나은 방법을 택하고 있고 누구에게나 그렇듯 저희에게도 사안에서 맥락이 있으니까요.

지금 퀴어 인권단체 활동가나 대표자가, 돈을 안 받고 일할 사람들에 가깝잖아요. 그렇게 활동가가 점점 사라질까 봐. 일상 유지를 못 하고, 활동가야 생겨나가겠지만 금방금방 떨어져 나가면서, 활동가의 기록이 남지 않을 것 같고 그런 것들이 좀 걱정 돼요. 나름 아카이빙한다고 하지만, 그게 끊어질 경우에 아카이빙이 의미가 있을까 하고요.

저희 제주퀴어문화축제조직위도 나름 자랑을 했거든요. 우리 만 3년이 다 돼가고 올해 4년째인데, 두 번째 해부터, 2018년부터 활동비를 지급하기 시작했어요. 첫 회 10만 원. “우리 활동비는 줄이지 말자”는 결의가 있었거든요. 이듬해 공동조직위원장 체제가 되면서 활동비를 얼마나 할지 얘기가 나와서, “그냥 10만 원 나눠서 하자” 고 했더니, 조직위원들이 “그렇겐 안 된다. 활동비를 늘리지는 못하더라도 줄여선 안 된다. 10만 원씩 두 명 하자.” 올해는 “이제 한 명 더 주자, 어떻게 하든 간에 활동가를 늘여가자.” 그래서 지금 10만 원 받는 사람 세 명이거든요. 이렇게 나름의 시스템을 만드는 것만으로 자랑스럽지만, 한편으론 슬픈 거죠. 겨우 10만 원씩 준다고 이 사람들 다 같이 구르면서 누구는 10만 원, 누구는 못 받고 그것도 조금 마음이 그런 거죠.

학교를 예를 들어 교사도 처음에 적응이 어렵고 조직 업무에 못 따라갈 수 있어요. 그 사람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학습을 권장하고 환경을 마련하고, 새로운 직원이 보상을 받으면서 여러 가지를 사회적으로 높일 수 있도록 하는데, 활동가는 그게 없잖아요. 활동가가 너무 처절하다시피. 얼마 받더라도, 그거 받는 걸 부러워하거나, 아니면 미안해하거나, 그나마 낫다고 생각하는 게 참 슬프긴 슬퍼요. 그래서 활동가들이 활동비를 좀 더 받게 하고 싶어서, 요즘에 돈을 벌고 싶어요.


올 초부터 현재까지 우리의 일상에서 “코로나 19” 라는 키워드를 빼놓고 설명하기 어려운 거 같아요. 전국적으로 긴급재난지원금이 전달되고, 질병관리본부의 브리핑이 매일 뉴스에 나오죠. 시민사회 활동가로서 세계적 유행/감염병을 겪은 정부에게 어떤 변화가 오리라 예상하세요?

저는 어떻게든 간에 정부가 간섭하는 게 비대해질 거라고 생각해요. 더 비대해지는데, 점점 재정적 지원은 크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계속 어느 순간 우리 누군가가 알 권리라는 이름으로 누군가의 권리를 침해하고, 접근성이라는 이유로 공리주의적 관점에서 다수가 접근성을 확보했다는 이유로 개인정보가 침해되는 경우가 늘어날 가능성이 생기겠죠.

시민의 권리가 억압되는 방식으로 집회도 감염병 이슈가 터질 때마다 집회 금지 처분을 내릴 거고, 금지 방법으로는 물리적 폭력이거나, 정신적 폭력, 금전적 폭력이거나. 화물연대 파업이 불법 파업인 이유가, 그들이 노동자가 아니란 이유에서라면서요? 그럼 자영업자가 파업 집회하겠다는데 왜 불법이라고 탄압해요? 이 말도 안 되는 일들이 다 시민의 권리가 우선이 아니기 때문이에요. 자영업자, 특수고용직이란 말도 나오는데, (이런 식으로) 집회결사의 자유 등의 시민 권리가 축소시키지 않을까.

학교 같은 경우에도, 등교를 못 보내면 경제활동 자체도 줄어들 수밖에 없고, 이건 국가가 최소한의 보장을 안 하고 있으니까. 심지어 학교에서 청소년 복지의 많은 부분을 담당하던 게 있는데 학교가 작동하지 않으면 복지 시스템이 무너지는 거잖아요. 감염병 예방이라는 말로 집회 금지, 뭐 금지.. 여기에서 다르게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 외면할 것 같아요. 점점 더 취재도 줄어들 거고. 누군가가 집회를 하는 것도 큰 문제인 것마냥 얘기하게 될 거고 누군가를 비난하기 더 쉬워지겠죠.

코로나 19 전에도, "정부가 바뀌니까 일 잘하네, 정부가 이만큼 할 수 있네" 하는데 그 말은 곧 대통령 권한이 얼마나 크다는 거예요? 대통령 하나 바뀐 걸로 많이 바뀐다면 시스템이 없다는 거잖아요? 박근혜 국정농단 때도 돌아갈 건 돌아갔거든요. 시스템이 어느 정도 잡혀있는데, 그걸 행정부가 법과 관계없이 임의로 할 수 있는 부분이 많은 건 견제할 수 없는 괴물을 키우는 거 아닌가요?

이 정부 이후로, 재난지원금 시행할 때도 고위관리직 중심으로 자발적 기부. 월급 초과금 수당 반납 등을 했는데, 너무 황당하죠. 세금을 더 걷어야지. 그걸 대통령이 앞장서서 하겠다? 그걸 왜 앞장서서 반납하나요? 시민의 권리니까 그냥 쓸 수 있게 하면 되는데, 반납하면 세액공제 된다는데 세금을 못 내는 사람들에겐 세액공제 해봤자 의미 없는 거잖아요. 있는 사람들은 받아서 세액공제 하나, 같은 거잖아요.


Q. 추가 질문으로, 코로나 19 관련해서 이태원 집단감염 확진자가 나온 이후로, 성소수자 정체성을 향한 시민 및 언론의 차별 및 혐오가 정당화되는 반응들이 나왔죠. 악의적 논조  및 개인정보 침해로 문제가 된 국민일보의 해당 기사는 내용을 일부 삭제하였고, 방역 당국과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이 업무협약을 마친 후 “코로나 19 성소수자 긴급 대책본부”가 출범되었어요.

GLAAD(미국 미디어 내 성소수자 모니터링 및 권익 보호 비영리단체/glaad.org)가 모니터링을 하니까 그나마 민간 가이드라인을 제공할 수 있는 거고, 우리나라는 그 가이드라인도 국가인권위가 초안 잡고, 기자협회가 동의해서 취재윤리강령을 만들었는데, 그건 기자 개개인에게만 해당하는 거고 언론사엔 관계가 없잖아요? 비영리 시민단체가 압력단체가 되지도 못하고 있고, 힘이 없고.

제주퀴어문화축제 첫해에, 저희 소송했잖아요. (제주시의 신산공원사용허가거부처분 효력 정지) 그러니까 돈 걱정이 제일 많이 드는 거예요. “패소하게 되면 돈은?" 이게 민사 이런 것들, 민사든 행정소송이든 이런건 변호사비용 청구하는게 관례거든요. 그게 딱 보이니까, 만약에라도 지면 암담해 지는거예요. 

이런 게 점점 더 늘어나겠죠. 차별금지법이 국회 통과된다고 하더라도, 사각지대의 약자들에게는 민사 등으로 괴롭히겠죠.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 국토부 산하공기업인 JDC도 땅 복원해서 돌려달라고 하는데, 복원 안 해서 이걸 또 민사 따로 넣어야 하고. 행정부가 나서서 법원을 안 지키는데, 져놓고 안 지키잖아요.



나가며

이외에도, 세 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으나, 지면 관계상 다 싣지 못했다. “정치인 김기홍”에 대한 기사는 미디어에 여러 차례 나왔기 때문에, 조금 더 진솔한 이야기를 남기려 했고, 무엇보다도 제주에서의 인터뷰는 그의 건강을 직접 살피려는 마음에서 시작했다. 답변 중에 잠시 언급되지만, 작년 말 성소수자 지인 2명을 두 달 간격으로 먼저 떠나보내고 꿋꿋이 총선에 출마한 그를 꽤 걱정하고 있었다. 인터뷰를 진행한 본인도 친구들을 먼저 떠나보낸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성소수자가 자신의 모습대로, 평등하게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서 정치에 뛰어들어 여러 언론과 인터뷰를 해온 그에게 본인은 아마추어 인터뷰어였겠지만, 1년에 한 번 열리는 지역 퀴어문화축제조차 보수개신교 세력을 중심으로 조직적으로 방해받고, 올 초 트랜스젠더로 커밍아웃한 대학생과 군 하사가 원하는 조직으로부터 배제되는 경험을 고통스럽게 지켜본 사람으로서 권리투쟁을 위해 헌신하는 활동가들의 진심과 열의가 사그라지지 않기를 바랐고, 그의 목소리를 최대한 담아내고자 했다. 

지난달 말 발의된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2007년부터 철회와 폐기를 반복한- 시민사회 운동진영에서 오랫동안 투쟁해온 법안이었다. 청소년, 이주민, 난민, 장애인, 여성 등 차별과 폭력에 노출되어온 이들의 오랜 염원이었던 이 법안은 정치인 김기홍의 주요 의제이기도 했다.  한국 사회가 더욱 평등으로 향하는 그 길에 그의 자리가 꼭 존재하기를 바라며 글을 마친다.



인터뷰어 : 이드 / “트랜스젠더” 활동가에서 “그냥” 활동가가 되고 싶은 사람.

성소수자 인권지지집단 조직 캠페인 “나는 앨라이입니다(http://iamally.kr/)” 거리 캠페이너로 활동했다.

▷ 김기홍 CONTACT: freshteacherkim@gmail.com

▷ 제주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 

CMS 정기후원: bit.ly/제주퀴퍼_정기후원가입

일시후원: 농협 301-0235-1482-11 제주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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