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공익활동가주간을 맞아, 그간 ‘일로만’ 만났지만 일과 활동을 넘어선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었던 활동가들을 만나 인터뷰했다. 첫 번째는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박한희 활동가다. 인권운동과 연이 있는 활동가라면 어느 연대체에서든 ‘한희’를 만나봤을 것이다. 희망법에서 활동하며 성소수자 인권단체의 연대체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 집행위원으로, 사실은 더 다양한 연대체에서 종횡무진 활동하고 있는 한희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국제성소수자혐오반대의날 투쟁대회
Q. 소속 단체와 주요 활동 소개 부탁드려요.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이하 ’희망법’)’에서 2017년부터 활동을 해오고 있고요. 희망법에는 성소수자, 집회의 자유, 기업과 인권, 장애인권, 이렇게 기본적으로 네 가지 분야가 있고, 그밖에 공익인권 일반으로 여러 활동들도 하고 있습니다. 저는 희망법에서 기본적으로는 성소수자 팀에서 활동하고 있고, 그러면서 성소수자 인권단체의 연대체인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이하 ‘무지개행동’)’ 집행위원,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집행위원으로도 참여하고 있어요. 그 외에도 집회의 자유, 국가인권위원회 대응, 10.29 이태원 참사, 코로나19 인권 대응 등등... 여러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Q. 최근에 가장 집중하고 있는 이슈는 어떤 게 있을까요?
무지개행동에서는 작년부터 혼인 평등, 동성혼 법제화를 메인 의제로 삼아서 ‘모두의 결혼’이라는 캠페인을 띄워 활동하고 있어요. 저도 그 멤버로서 대중 대상 강연을 하거나, 혼인 평등 서명 운동, 관련 소송 준비하는 활동들을 하고 있어요.
그리고 지금 국가인권위원회 상황이 너무 좋지 않은데요. (국가인권위는 몇몇 위원의 노골적인 혐오발언과 반인권적 행보로 퇴행을 거듭하고 있다.) 이 상황을 지금 막지 않으면 다음에 다른 활동들의 기반이 다 무너질 것 같은 상황이라서 심각하게 보고 다른 인권단체들과 대응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 어렵고 지쳐도, 기억하고 싶은 것들
트랜스젠더추모의날 행진
Q. 활동가의 활동이라는 게, 참 어려운 부분들이 많은 것 같아요. 혹시 활동하면서 가장 어렵고 힘들다고 느끼는 부분은 뭔가요?
제가 2017년부터 활동을 시작했는데, 그때 어쨌든 박근혜 탄핵 촛불이 있었고. 그나마 여지가 있을 때였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제가 인권운동과 처음 연을 맺은 게 2014년에 로스쿨 다닐 때, 잠깐 행사 같은 데에 얼굴 비추고 그럴 때였는데, 그때 친해졌던 활동가들이 제가 2017년에 전업 활동가로 와서 보니까 안 계시는 분들이 있는 거예요. 왜 떠났냐 물어보면 ‘너무 지쳐서 못하겠다’, ‘너무 세상은 안 변하고 대체 내가 언제까지 이렇게 해야 하나’ 해서. 근데 지금도 좀 비슷한 시기인 것 같거든요.
재작년부터 계속 후퇴만 경험하고 있는데, 저는 그래도 인권운동이 계속 있으니까 더 망가지지 않는 선에서 하방 저지를 하고 있다는 걸 다들 기억하면 좋겠어요. 물론 변화의 여지가 있는 환경일 때 운동이 치고 나가면서 성과, 변화 만드는 것도 중요하긴 하지만, 한 번 삐끗했을 때 어디까지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는지를 이미 여러 번 봐왔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최악의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게 하는 것이 인권운동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생각하는데, 사실 그게 많이 지치는 부분이죠. 눈에 보이는 변화가 있으면, 힘들지만 그래도 힘내자 하겠는데, 해도 해도 계속 똑같은 걸 막기만 하고 있으니까. 그래도 활동가들이나 시민들이나, 어딘가에서 계속 힘내서 싸우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Q. 어려움도 있지만, 활동이 정말 뿌듯하고 의미있는 지점, 매력이랄까? 그런 건 어떤 게 있을까요?
술인가? 좋은 친구들? (웃음)
이번 4월에 했던 아이다호데이(IDAHO,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 생각이 나요. 2019년 이후로 오랜만에 아이다호 야간 행진을 했거든요. 생각보다 사람들이 많이 모였고 종로3가 쪽으로 행진을 하는데, 제가 트럭에 올라가서 구호 외치면서 둘러보는데 주위에 있던 시민들이 즐겁게 웃어주는 거예요.
저는 활동할 때 뭐, 물질적인 보상 이런 게 아니라 이런 것 때문에 활동하는 것 같아요. 어쨌든 내가 원하는 활동을 할 수 있다는 거. 저도 일반 회사를 다녀봤지만 내 가치관이나 성향과 맞지 않아도 회사가 시키는 대로 해야 하는데, 물론 활동도 내가 하고 싶은 대로만 다 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내가 옳지 않은 걸 억지로 하는 건 아니잖아요. 이런 방향으로 세상이 바뀌어야 한다고,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활동할 수 있고, 그러다 보면 아이다호 때처럼 호응해주는 사람, 응원해주는 사람들도 만나고. ‘모두의 결혼’ 서명 캠페인을 나가도 세대 상관없이 응원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해요. 그런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게 활동의 좋은 점 같아요.
Q. 공익활동가로서의 '처음'은 무엇이었나요? 왜 시작하게 되었는지?
사실 이런 ‘운동의 세계’가 있다는 걸 전혀 몰랐어요. 저는 대학교 공대를 졸업했는데 그 학교는 아예 학생운동이 없었거든요. 그래서 뭐, 시민단체, 인권단체가 존재한다는 건 알지만 그게 제가 접하고 활동할 수 있다거나, 활동가로 일할 수 있다거나 이런 걸 전혀 몰랐죠.
2년 정도 회사에서 일을 했는데, 일 자체가 너무 맞지 않아서 도저히 못하겠더라고요. 그리고 그때 저의 가장 큰 고민은, 트랜스젠더라는 정체성을 못 숨기는 날이 언젠가는 올 거다, 이렇게 계속 숨기고 살 수는 없을 거라는 거였어요. 근데 회사원일 때 트랜스젠더라는 정체성이 드러나면 그냥 일자리를 잃게 되잖아요. 그러니까 하루라도 빨리 여기서 탈출해서 다른 일을 해야겠다, 자격증이 있는 게 좋겠다 싶었어요. 로스쿨에 갈 때도 그냥 막연히 성소수자들을 도울 수 있는 일을 하면 좋겠다 했던 거고, 희망법처럼 공익 로펌이 있다는 것도 전혀 몰랐었거든요.
2014년에 처음으로 퀴어 퍼레이드에 가봤고, 그즈음 진로 고민을 하면서 ‘희망법’을 알게 됐고, 성소수자 활동가들도 만나고, 여러 활동에도 참여해보게 되고. 그러니까 사실 활동을 해야겠다고 결심했다기보다는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려보니 여기까지... (웃음) 투쟁이 없는 삶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된 거죠. 많은 활동가들이 그렇지 않나요?
#. 달라진 환경 속, 운동의 변화에 대한 고민
트랜스젠더추모의날 행진
Q. 처음 시작할 때와 지금, 달라진 점이 있다면?
저 스스로 달라진 점은, 이제는 앞선 활동가들이 했던 걸 잘 따라가는 게 아니라 나만의 활동 방향과 원칙을 잘 세워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냥 짜여진 걸 하는 게 아니라 나만의 활동은 무엇이고 내가 속한 조직에서 활동을 어떻게 만들어갈지를 고민해야 하는 시기가, 일종의 중간 관리자의 시기가 온 거죠. 어느새 신입사원은 끝났고, 조직에서 가장 힘들다는 중간 관리자의 시기가 됐죠.
외부적인 상황도 많이 바뀌었다고 생각해요. 2017년, 활동을 시작할 당시에는 무언가를 펼쳐볼 여지가 있었다면, 지금은 ‘지켜야 하는’ 시기로 바뀐 것 같고요. 모든 운동 영역이 그렇겠지만 성소수자 운동도 2019년이 기세도 좋고 새 단체들도 생겨나던 정점이었던 것 같은데, 이후에 코로나 타격이 확실히 컸어요. 많은 대학 동아리들이 사라지기도 했고. 그래서 이런 시기에 운동 전반에 어떻게 다시 힘을 모아낼 수 있을까 고민이죠.
Q. 활동가로서 요즘 많이 하는 고민이나 생각들은 어떤 게 있나요?
단순히 그냥 먹고 산다는 것뿐만은 아닌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는 꼰대가 되지 않는 게 중요한 것 같고요. 꼰대가 안 되려면 좋은 동료가 옆에서 오래 함께해야 하는 것 같은데. 한 단체가 잘 되면 될 문제가 아니라 운동 전반이 살아나야 좋은 동료와 길게 함께할 수 있는 것 같아요. 근데 지금 사실 신입 활동가도 없고 허리(중간) 활동가도 없고 선배 활동가도 없다고들 하죠.
요즘은 그런 생각도 들어요. 기자회견을 계속 하고는 있는데 기자회견을 위한 기자회견을 한다는 느낌? 방식은 20년 전과 크게 다를 게 없잖아요. 여전히 기자회견이 유효한 방식이기도 한데, 운동을 알리는 방식이라는 차원에서는 다른 방법도 찾아야 할 것 같은데 잘 떠오르지가 않아요. 우리가 유튜브가 인기 있다고 그걸 다 따라갈 필요는 없겠지만 이런 시대 변화에 맞게 운동도 스스로를 알리는 방식을 잘 키워봐야 하는 게 아닌가에 대한 고민이 있어요.
#. 트랜스젠더 당사자로서 운동하기
평등세상 앞당기는 인권궐기대회
Q. 한희는 트랜스젠더 정체성을 드러내고 방송에도 출연했었고, 검색하면 ‘나무위키’에도 등장해요. 정체성을 드러내고 활동하는 것, 어떤가요?
성소수자가 낯선 사람들한테 성소수자 이야기를 할 때, 아무래도 당사자가 말할 때 더 설득력있게 받아들인다는 느낌이 있죠. 그런데 저는 그런 경계를 잘 잡아야 한다는 생각을 해요. 그렇게 되면 당사자가 아닌 활동가들이 말하는 건 안 먹히는 얘기가 되는 거고, 운동 구도가 왜곡된다고 생각하거든요. 성소수자 운동이 당사자만의 운동으로 가서도 안되는 거고요. 반대로 성소수자 이슈 아닌 활동을 할 때 불편할 때도 있어요. 제가 집회의 자유 이야기하는 건 트랜스젠더 정체성과 아무 상관이 없는데도 결국은 ‘트랜스젠더 당사자’의 이야기로 필터링되고 해석되는 것에 대한 부담감도 있어요.
Q. 트랜스젠더인 숙대 합격생이 결국 입학을 포기하게 됐던 사건부터 변희수 하사의 죽음까지, 최근 몇 년이 트랜스젠더에게 유독 가혹한 시간이라고 느껴졌어요. 한희는 그 시간을 어떻게 보냈나요?
복잡했죠. 여러 사건들이 발생하면서 언론사, 방송사에서도 트랜스젠더에 대해 다루고 어마어마한 사회적 관심들이 있었는데, 한편으로는 그 관심이 좋은 건 아니잖아요. 누군가가 죽어서 이렇게 관심갖는 행동이라는 게 얼마나 문제적이에요. 어떤 안타까운 일들이나 비극적인 죽음 앞에서, 내가 당사자로서 또는 활동가로서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하는가가 늘 고민인데 사실 그때는 정신이 없었던 것 같아요. 어느 날은 이렇다가, 어느 날은 또 저렇다가, 그렇게 그냥 좀 갈팡질팡했던 것 같아요.
#. 등산을, 게임을, 고양이를 좋아하는 한희를 응원하며
Q. 운동 말고는, 요즘 어떤 고민이 있어요?
가족이 최근에 갑자기 큰 수술을 받아서 재활병원에 입원해계세요. 그래서 가족돌봄을 해야 하는 상황이 저한테 처음인데요. 이제 내가 누군가를 돌봐야 하고, 돌보려면 무엇이 필요하고, 이런 걸 고민해야 하는 나이가 됐구나 싶고, 돌봄 이슈가 예전부터 관심은 있었지만 의제로서 얘기했었지 정말 나에게 당장 닥친 일이라고는 생각을 안했었거든요. 근데 이게 정말 나한테 닥쳤고, 돌봄이 결국 가족 몫으로 남겨진 거예요. 그랬을 때 이런 걸 어떻게 잘 대처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서로 지치지 않고 잘 돌볼 수 있을까, 그러려면 뭐가 필요할까 이런 걸 고민하게 됐어요. 다른 활동가들과도 돌봄에 대한 것을 잘 공유해봤으면 좋겠어요.
Q. 취미가 있나요?
요즘 많이는 못하고 있지만 게임입니다. 닌텐도에서 ‘역전재판’이라고... 진짜 재밌어요, 꼭 해봐요. 손을 놓을 수가 없어요. 그 게임 하면서 변호사 꿈꾼 사람들 은근 많아요. 현실 변호사랑 전혀 맞지도 않는데.
Q. ...그 정도라고요?
진짜 은근 있다니까.
Q. 또 다른 취미나 좋아하는 것 있어요?
요새 간헐적으로 하긴 했는데, 등산 좋아해요. 다음주에 일본에 후지산 가요. 그래서 지난주에 훈련차 설악산에 다녀왔어요.
아, 그리고 마작도 좋아해요. 마작 진짜 재밌어요. 활동가 몇 명 마작 멤버가 있어요. 중독자들이에요. 마작의 매력은... 어찌 말로 할 수가 없어요. 해봐요, 해보면 알아요. 중국에 속담 있잖아. ‘인간이 앉아서 할 수 있는 것 중에 최고는 마작’이라고.
Q. 아무도 안 물어봤지만, 받아보고 싶은 질문(답하고 싶은 질문)이 있다면?
Q. 고양이 귀엽나요? A. 우리 고양이 귀엽습니다.
이름은 ‘나늬’예요. 고양이 이름이 왜 ‘나늬’냐고 하면 제가 항상 대답하기 귀찮아서 ‘그냥 제가 한희라서 나늬예요~’라고 답하는데요. 사실은 ‘눈물을 마신 새’라는 판타지 소설에서 최고 미녀를 상징하는 이름이에요. 나늬는 10살이에요. 3개월 때부터 같이 살아서 10년 같이 살았고, 어릴 때는 활발해서 같이 많이 놀았는데 요즘은 잠을 많이 자요.
어느 순간부터 모든 인생이 귀찮아졌는지... 정말 아무것도 안 하고 어떻게 이렇게 잘 자는지. 심지어 츄르(고양이들이 좋아하는 간식)도 안 먹고 자기 밥만 먹어요. 건강검진 해보면 너무 건강하대요. 요즘은 그냥 자고, 안 자면 멍하니 쳐다보고 있고...
Q. 제가 다음 인터뷰이로 국제민주연대 나현필 사무국장님을 만나요.(한희와 현필은 국가인권위 대응 활동을 함께 하고 있다.) 혹시 현필에게 궁금한 점이 있나요?
나현필... 국가인권위 대응 활동 때문에 요즘 우울해보여요. 무슨 마음인지 너무 알겠는데 많이 지친 것 같아서 힘내라고 해주고 싶어요. 힘내서 같이 합시다!
나 국장님 소문난 아이돌 덕후인데. 요새 덕질하는 아이돌 누구인지 물어봐주세요.
Q. 다른 공익활동가들에게 한마디 남긴다면
가끔 다른 단체 동료가 연락이 와요. 활동 관련해서 어려운 얘기 하다가, 모르겠다 한희야 술이나 먹자 이러거든요. 요즘은 그런 마음이 많이 들어요. 세상이 안 바뀌면 술이든 술이 아니어도 맛있는 걸 먹고, 그냥 하던 일 하다 보면 또 바뀌어 있겠죠. 지금은 그냥 하던 일을 지치지 않고 잘 하는 것도 중요한 것 같아요. 힘들 때는 누구한테는 연락도 하고 기대기도 하면서 정말 끈질기게 같이, 잘 버텼으면 좋겠어요.
#박한희 #활동가인터뷰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성소수자 #서울
인터뷰어 : 도구
활동가, 영화감독. 여전히 사람을 좋아하고 궁금해합니다. 세상에 다정함 하나는 남기고 가고 싶어요.
2024 공익활동가주간을 맞아, 그간 ‘일로만’ 만났지만 일과 활동을 넘어선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었던 활동가들을 만나 인터뷰했다. 첫 번째는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박한희 활동가다. 인권운동과 연이 있는 활동가라면 어느 연대체에서든 ‘한희’를 만나봤을 것이다. 희망법에서 활동하며 성소수자 인권단체의 연대체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 집행위원으로, 사실은 더 다양한 연대체에서 종횡무진 활동하고 있는 한희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국제성소수자혐오반대의날 투쟁대회
Q. 소속 단체와 주요 활동 소개 부탁드려요.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이하 ’희망법’)’에서 2017년부터 활동을 해오고 있고요. 희망법에는 성소수자, 집회의 자유, 기업과 인권, 장애인권, 이렇게 기본적으로 네 가지 분야가 있고, 그밖에 공익인권 일반으로 여러 활동들도 하고 있습니다. 저는 희망법에서 기본적으로는 성소수자 팀에서 활동하고 있고, 그러면서 성소수자 인권단체의 연대체인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이하 ‘무지개행동’)’ 집행위원,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집행위원으로도 참여하고 있어요. 그 외에도 집회의 자유, 국가인권위원회 대응, 10.29 이태원 참사, 코로나19 인권 대응 등등... 여러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Q. 최근에 가장 집중하고 있는 이슈는 어떤 게 있을까요?
무지개행동에서는 작년부터 혼인 평등, 동성혼 법제화를 메인 의제로 삼아서 ‘모두의 결혼’이라는 캠페인을 띄워 활동하고 있어요. 저도 그 멤버로서 대중 대상 강연을 하거나, 혼인 평등 서명 운동, 관련 소송 준비하는 활동들을 하고 있어요.
그리고 지금 국가인권위원회 상황이 너무 좋지 않은데요. (국가인권위는 몇몇 위원의 노골적인 혐오발언과 반인권적 행보로 퇴행을 거듭하고 있다.) 이 상황을 지금 막지 않으면 다음에 다른 활동들의 기반이 다 무너질 것 같은 상황이라서 심각하게 보고 다른 인권단체들과 대응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 어렵고 지쳐도, 기억하고 싶은 것들
트랜스젠더추모의날 행진
Q. 활동가의 활동이라는 게, 참 어려운 부분들이 많은 것 같아요. 혹시 활동하면서 가장 어렵고 힘들다고 느끼는 부분은 뭔가요?
제가 2017년부터 활동을 시작했는데, 그때 어쨌든 박근혜 탄핵 촛불이 있었고. 그나마 여지가 있을 때였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제가 인권운동과 처음 연을 맺은 게 2014년에 로스쿨 다닐 때, 잠깐 행사 같은 데에 얼굴 비추고 그럴 때였는데, 그때 친해졌던 활동가들이 제가 2017년에 전업 활동가로 와서 보니까 안 계시는 분들이 있는 거예요. 왜 떠났냐 물어보면 ‘너무 지쳐서 못하겠다’, ‘너무 세상은 안 변하고 대체 내가 언제까지 이렇게 해야 하나’ 해서. 근데 지금도 좀 비슷한 시기인 것 같거든요.
재작년부터 계속 후퇴만 경험하고 있는데, 저는 그래도 인권운동이 계속 있으니까 더 망가지지 않는 선에서 하방 저지를 하고 있다는 걸 다들 기억하면 좋겠어요. 물론 변화의 여지가 있는 환경일 때 운동이 치고 나가면서 성과, 변화 만드는 것도 중요하긴 하지만, 한 번 삐끗했을 때 어디까지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는지를 이미 여러 번 봐왔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최악의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게 하는 것이 인권운동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생각하는데, 사실 그게 많이 지치는 부분이죠. 눈에 보이는 변화가 있으면, 힘들지만 그래도 힘내자 하겠는데, 해도 해도 계속 똑같은 걸 막기만 하고 있으니까. 그래도 활동가들이나 시민들이나, 어딘가에서 계속 힘내서 싸우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Q. 어려움도 있지만, 활동이 정말 뿌듯하고 의미있는 지점, 매력이랄까? 그런 건 어떤 게 있을까요?
술인가? 좋은 친구들? (웃음)
이번 4월에 했던 아이다호데이(IDAHO,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 생각이 나요. 2019년 이후로 오랜만에 아이다호 야간 행진을 했거든요. 생각보다 사람들이 많이 모였고 종로3가 쪽으로 행진을 하는데, 제가 트럭에 올라가서 구호 외치면서 둘러보는데 주위에 있던 시민들이 즐겁게 웃어주는 거예요.
저는 활동할 때 뭐, 물질적인 보상 이런 게 아니라 이런 것 때문에 활동하는 것 같아요. 어쨌든 내가 원하는 활동을 할 수 있다는 거. 저도 일반 회사를 다녀봤지만 내 가치관이나 성향과 맞지 않아도 회사가 시키는 대로 해야 하는데, 물론 활동도 내가 하고 싶은 대로만 다 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내가 옳지 않은 걸 억지로 하는 건 아니잖아요. 이런 방향으로 세상이 바뀌어야 한다고,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활동할 수 있고, 그러다 보면 아이다호 때처럼 호응해주는 사람, 응원해주는 사람들도 만나고. ‘모두의 결혼’ 서명 캠페인을 나가도 세대 상관없이 응원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해요. 그런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게 활동의 좋은 점 같아요.
Q. 공익활동가로서의 '처음'은 무엇이었나요? 왜 시작하게 되었는지?
사실 이런 ‘운동의 세계’가 있다는 걸 전혀 몰랐어요. 저는 대학교 공대를 졸업했는데 그 학교는 아예 학생운동이 없었거든요. 그래서 뭐, 시민단체, 인권단체가 존재한다는 건 알지만 그게 제가 접하고 활동할 수 있다거나, 활동가로 일할 수 있다거나 이런 걸 전혀 몰랐죠.
2년 정도 회사에서 일을 했는데, 일 자체가 너무 맞지 않아서 도저히 못하겠더라고요. 그리고 그때 저의 가장 큰 고민은, 트랜스젠더라는 정체성을 못 숨기는 날이 언젠가는 올 거다, 이렇게 계속 숨기고 살 수는 없을 거라는 거였어요. 근데 회사원일 때 트랜스젠더라는 정체성이 드러나면 그냥 일자리를 잃게 되잖아요. 그러니까 하루라도 빨리 여기서 탈출해서 다른 일을 해야겠다, 자격증이 있는 게 좋겠다 싶었어요. 로스쿨에 갈 때도 그냥 막연히 성소수자들을 도울 수 있는 일을 하면 좋겠다 했던 거고, 희망법처럼 공익 로펌이 있다는 것도 전혀 몰랐었거든요.
2014년에 처음으로 퀴어 퍼레이드에 가봤고, 그즈음 진로 고민을 하면서 ‘희망법’을 알게 됐고, 성소수자 활동가들도 만나고, 여러 활동에도 참여해보게 되고. 그러니까 사실 활동을 해야겠다고 결심했다기보다는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려보니 여기까지... (웃음) 투쟁이 없는 삶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된 거죠. 많은 활동가들이 그렇지 않나요?
#. 달라진 환경 속, 운동의 변화에 대한 고민
트랜스젠더추모의날 행진
Q. 처음 시작할 때와 지금, 달라진 점이 있다면?
저 스스로 달라진 점은, 이제는 앞선 활동가들이 했던 걸 잘 따라가는 게 아니라 나만의 활동 방향과 원칙을 잘 세워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냥 짜여진 걸 하는 게 아니라 나만의 활동은 무엇이고 내가 속한 조직에서 활동을 어떻게 만들어갈지를 고민해야 하는 시기가, 일종의 중간 관리자의 시기가 온 거죠. 어느새 신입사원은 끝났고, 조직에서 가장 힘들다는 중간 관리자의 시기가 됐죠.
외부적인 상황도 많이 바뀌었다고 생각해요. 2017년, 활동을 시작할 당시에는 무언가를 펼쳐볼 여지가 있었다면, 지금은 ‘지켜야 하는’ 시기로 바뀐 것 같고요. 모든 운동 영역이 그렇겠지만 성소수자 운동도 2019년이 기세도 좋고 새 단체들도 생겨나던 정점이었던 것 같은데, 이후에 코로나 타격이 확실히 컸어요. 많은 대학 동아리들이 사라지기도 했고. 그래서 이런 시기에 운동 전반에 어떻게 다시 힘을 모아낼 수 있을까 고민이죠.
Q. 활동가로서 요즘 많이 하는 고민이나 생각들은 어떤 게 있나요?
단순히 그냥 먹고 산다는 것뿐만은 아닌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는 꼰대가 되지 않는 게 중요한 것 같고요. 꼰대가 안 되려면 좋은 동료가 옆에서 오래 함께해야 하는 것 같은데. 한 단체가 잘 되면 될 문제가 아니라 운동 전반이 살아나야 좋은 동료와 길게 함께할 수 있는 것 같아요. 근데 지금 사실 신입 활동가도 없고 허리(중간) 활동가도 없고 선배 활동가도 없다고들 하죠.
요즘은 그런 생각도 들어요. 기자회견을 계속 하고는 있는데 기자회견을 위한 기자회견을 한다는 느낌? 방식은 20년 전과 크게 다를 게 없잖아요. 여전히 기자회견이 유효한 방식이기도 한데, 운동을 알리는 방식이라는 차원에서는 다른 방법도 찾아야 할 것 같은데 잘 떠오르지가 않아요. 우리가 유튜브가 인기 있다고 그걸 다 따라갈 필요는 없겠지만 이런 시대 변화에 맞게 운동도 스스로를 알리는 방식을 잘 키워봐야 하는 게 아닌가에 대한 고민이 있어요.
#. 트랜스젠더 당사자로서 운동하기
평등세상 앞당기는 인권궐기대회
Q. 한희는 트랜스젠더 정체성을 드러내고 방송에도 출연했었고, 검색하면 ‘나무위키’에도 등장해요. 정체성을 드러내고 활동하는 것, 어떤가요?
성소수자가 낯선 사람들한테 성소수자 이야기를 할 때, 아무래도 당사자가 말할 때 더 설득력있게 받아들인다는 느낌이 있죠. 그런데 저는 그런 경계를 잘 잡아야 한다는 생각을 해요. 그렇게 되면 당사자가 아닌 활동가들이 말하는 건 안 먹히는 얘기가 되는 거고, 운동 구도가 왜곡된다고 생각하거든요. 성소수자 운동이 당사자만의 운동으로 가서도 안되는 거고요. 반대로 성소수자 이슈 아닌 활동을 할 때 불편할 때도 있어요. 제가 집회의 자유 이야기하는 건 트랜스젠더 정체성과 아무 상관이 없는데도 결국은 ‘트랜스젠더 당사자’의 이야기로 필터링되고 해석되는 것에 대한 부담감도 있어요.
Q. 트랜스젠더인 숙대 합격생이 결국 입학을 포기하게 됐던 사건부터 변희수 하사의 죽음까지, 최근 몇 년이 트랜스젠더에게 유독 가혹한 시간이라고 느껴졌어요. 한희는 그 시간을 어떻게 보냈나요?
복잡했죠. 여러 사건들이 발생하면서 언론사, 방송사에서도 트랜스젠더에 대해 다루고 어마어마한 사회적 관심들이 있었는데, 한편으로는 그 관심이 좋은 건 아니잖아요. 누군가가 죽어서 이렇게 관심갖는 행동이라는 게 얼마나 문제적이에요. 어떤 안타까운 일들이나 비극적인 죽음 앞에서, 내가 당사자로서 또는 활동가로서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하는가가 늘 고민인데 사실 그때는 정신이 없었던 것 같아요. 어느 날은 이렇다가, 어느 날은 또 저렇다가, 그렇게 그냥 좀 갈팡질팡했던 것 같아요.
#. 등산을, 게임을, 고양이를 좋아하는 한희를 응원하며
Q. 운동 말고는, 요즘 어떤 고민이 있어요?
가족이 최근에 갑자기 큰 수술을 받아서 재활병원에 입원해계세요. 그래서 가족돌봄을 해야 하는 상황이 저한테 처음인데요. 이제 내가 누군가를 돌봐야 하고, 돌보려면 무엇이 필요하고, 이런 걸 고민해야 하는 나이가 됐구나 싶고, 돌봄 이슈가 예전부터 관심은 있었지만 의제로서 얘기했었지 정말 나에게 당장 닥친 일이라고는 생각을 안했었거든요. 근데 이게 정말 나한테 닥쳤고, 돌봄이 결국 가족 몫으로 남겨진 거예요. 그랬을 때 이런 걸 어떻게 잘 대처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서로 지치지 않고 잘 돌볼 수 있을까, 그러려면 뭐가 필요할까 이런 걸 고민하게 됐어요. 다른 활동가들과도 돌봄에 대한 것을 잘 공유해봤으면 좋겠어요.
Q. 취미가 있나요?
요즘 많이는 못하고 있지만 게임입니다. 닌텐도에서 ‘역전재판’이라고... 진짜 재밌어요, 꼭 해봐요. 손을 놓을 수가 없어요. 그 게임 하면서 변호사 꿈꾼 사람들 은근 많아요. 현실 변호사랑 전혀 맞지도 않는데.
Q. ...그 정도라고요?
진짜 은근 있다니까.
Q. 또 다른 취미나 좋아하는 것 있어요?
요새 간헐적으로 하긴 했는데, 등산 좋아해요. 다음주에 일본에 후지산 가요. 그래서 지난주에 훈련차 설악산에 다녀왔어요.
아, 그리고 마작도 좋아해요. 마작 진짜 재밌어요. 활동가 몇 명 마작 멤버가 있어요. 중독자들이에요. 마작의 매력은... 어찌 말로 할 수가 없어요. 해봐요, 해보면 알아요. 중국에 속담 있잖아. ‘인간이 앉아서 할 수 있는 것 중에 최고는 마작’이라고.
Q. 아무도 안 물어봤지만, 받아보고 싶은 질문(답하고 싶은 질문)이 있다면?
Q. 고양이 귀엽나요? A. 우리 고양이 귀엽습니다.
이름은 ‘나늬’예요. 고양이 이름이 왜 ‘나늬’냐고 하면 제가 항상 대답하기 귀찮아서 ‘그냥 제가 한희라서 나늬예요~’라고 답하는데요. 사실은 ‘눈물을 마신 새’라는 판타지 소설에서 최고 미녀를 상징하는 이름이에요. 나늬는 10살이에요. 3개월 때부터 같이 살아서 10년 같이 살았고, 어릴 때는 활발해서 같이 많이 놀았는데 요즘은 잠을 많이 자요.
어느 순간부터 모든 인생이 귀찮아졌는지... 정말 아무것도 안 하고 어떻게 이렇게 잘 자는지. 심지어 츄르(고양이들이 좋아하는 간식)도 안 먹고 자기 밥만 먹어요. 건강검진 해보면 너무 건강하대요. 요즘은 그냥 자고, 안 자면 멍하니 쳐다보고 있고...
Q. 제가 다음 인터뷰이로 국제민주연대 나현필 사무국장님을 만나요.(한희와 현필은 국가인권위 대응 활동을 함께 하고 있다.) 혹시 현필에게 궁금한 점이 있나요?
나현필... 국가인권위 대응 활동 때문에 요즘 우울해보여요. 무슨 마음인지 너무 알겠는데 많이 지친 것 같아서 힘내라고 해주고 싶어요. 힘내서 같이 합시다!
나 국장님 소문난 아이돌 덕후인데. 요새 덕질하는 아이돌 누구인지 물어봐주세요.
Q. 다른 공익활동가들에게 한마디 남긴다면
가끔 다른 단체 동료가 연락이 와요. 활동 관련해서 어려운 얘기 하다가, 모르겠다 한희야 술이나 먹자 이러거든요. 요즘은 그런 마음이 많이 들어요. 세상이 안 바뀌면 술이든 술이 아니어도 맛있는 걸 먹고, 그냥 하던 일 하다 보면 또 바뀌어 있겠죠. 지금은 그냥 하던 일을 지치지 않고 잘 하는 것도 중요한 것 같아요. 힘들 때는 누구한테는 연락도 하고 기대기도 하면서 정말 끈질기게 같이, 잘 버텼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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