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변화를만드는사람들] 세상을 바꾸는 일에는 증언하고 선언하는 당사자의 목소리가 있어야죠. - 독립활동가 이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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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림은 강릉에서 생태, 환경을 주제로 청년들과 다양한 활동을 펼치는 독립활동가다. 생태전환마을 내일 협동조합 조합원으로 생태, 환경, 전환을 고민하는 사람들이 만나는 환대의 공간 내일상회를 운영하고, 기후위기 생태 교육과 텃밭농사도 짓는다. 여성, 교육 분야에서 활동하는 친구들과 성평등 숲문화 만들기 프로젝트 ‘모두의 숲’을 새롭게 시작했다.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당사자 운동가로서 지역, 청년, 생태를 어떻게 연결하고 있는지 구슬 꿰기 비법을 들어보기로 했다.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이혜림입니다. 강릉에서는 ‘솜씨’와 ‘호두’로 두루두루 불리고 있어요. 기후위기와 생태, 환경을 주제로 다양한 분야, 다양한 세대, 다양한 사람들을 모으고 같이 얘기하고 연결하는 활동을 하고 있어요.”  (사진촬영 : 바라봄사진관)


생태전환마을 내일, 협동조합이름이 내일이죠? 나의 일인가요? 아니면 오늘의 다음날인가요?

tomorrow의 내일이에요. ‘내일을 위한 모두의 선택’을 슬로건으로 내일상회 운영팀 5명, 텃밭농사팀 8명, 청소년 생태팀 6명이 주로 활동하고 있어요. 강릉 시내에서 무포장가게 내일상회를 운영하고, 시 외곽 구정면 제비리에서 퍼머컬처 방식의 생태농업 활동으로 작게 농사도 짓고 있어요. 이 공간들을 중심으로 청년, 청소년들과 환경 캠페인, 소규모 모임을 열고 있어요. 강릉청년들과 움직씨들(움직이는 씨앗들)이란 이름으로 에코 소셜 디자인 교육도 하고, 강릉 초·중·고 학교에 자원순환 활동을 하기도 해요. 

협동조합 내일은 지역 환경 문제에 연대하는 등 강릉에 있는 작은 그룹들의 연대체라고 보시면 됩니다. 


환경공익단체 상근활동을 그만두고 지금은 독립활동가죠? 내일상회에서는 어떤 역할을 하고 있나요? 

내일상회에서는 걱정 담당. 주로 시민참여 캠페인이나 연대활동을 담당하고 있어요.


* 생태전환마을 내일은 모두를 위한 자원순환 실천 환경 조성과 커뮤니티 활성화로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생태시민의 연결망을 만드는 협동조합이다. 생태, 환경, 전환을 고민하는 사람들이 만나는 환대의 공간이자 자원순환제품을 소개, 판매하는 무포장 가게 내일상회를 운영한다.  


쉴 겸 놀 겸해서 강릉에 왔다가 이주했다고 들었어요.

하하하 네. 2014년에 정동진독립영화제와 신영극장 일을 도울 겸해서 6개월 동안 강릉에 와 있었거든요, 그때 지금 같이 활동하는 친구들을 만나서 지역 커뮤니티 활동을 처음 해봤어요. 그리곤 원주, 서울에서 일하다가 강릉에서 뭐라도 같이 해보자는 친구들의 제안으로 다시 오게 되었어요.

당시 저는 어디서 살아야 하는지 크게 중요하지 않았고, 친구들이 무엇을 하려는지 궁금해서 함께 하게 되었어요. 와서는 청년커뮤니티 대표를 맡았어요. 낮에는 환경공익단체에서 상근하며, 저녁이나 주말, 쉬는 날에는 친구들이랑 청년 정책 제안활동도 하고, 미디어 활동, 여성주의 공부도 하며 20대를 보냈어요.


솜씨가 좋은가 봐요. 아니면 그 반대여서 별명이 솜씨인가요?

내 손으로 뭔가 살리는 일, 만드는 일을 하고 싶어서 ‘솜씨’라는 별명을 지었는데 그때부터 그림 그리고, 만들고 글 쓰는 일들을 많이 하게 됐어요. ‘호두’는 산림교육 활동할 때 청소년들과 평등문화의 하나로 부르는 에코네임이에요. 강릉에선 10대, 20대, 30대, 40대까지 할 것 없이 “솜씨!” “호두” 라고 불려요. 이제는 제 이름보다 더 친숙합니다. 


#. 질문지가 만들어지는 도시 강릉


변화를 만드는 사람 이혜림에게 강릉은 어떤 도시인가요?

지역 활동을 하며 여러 감정을 느껴요, 강릉이라는 지역 자체가 참 여러 의제가 많습니다. 강릉은 숲, 바다, 호수도 있고 생태, 문화자원이 풍부해서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생태감수성을 키울 수 있어요. 생태 자원들이 우리 주변에 있다는 걸 발견해 가는 게 행복하기도 해요.  반면에 올림픽 개최 도시였고 화력발전소도 지어지고 있고, 언제나 늘 조금 더 발전하고 개발되기를 바라는 지역이기도 하구요. 

그래서 다양한 관점으로, 다양한 사람들이 생태환경 분야 활동에 참여하는 것 같아요. 지역 난개발 문제나 지역의 문화와 생태자원이 파괴되는 것을 막고 지켜내려는 그룹도 있고, 강릉은 좋은 생태 관광 자원이 있으니까 그걸 잘 활용하고 보존하려는 사람들도 있고요. 

제가 느끼는 강릉은 중요한 가치들을 이야기해 볼만한 질문지가 만들어지는 도시예요. 정답이 정해진 게 아니라, 살아가면서 정의해야 하는 가치, 여러 합의가 필요한 지점들이 있는 질문들이 있어요. 올림픽이 끝난 도시가 아니라, ‘올림픽 이후에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지?’와 같은 질문이 이어지는. 

활동을 시작했을 때는 강릉에서 할 수 있는 게, 바꿀 수 있는 게 없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하고자 하면 뭐든 시작해 볼 수 있지 않나?’로 마음가짐이 바뀌었어요. 개인이 뭔가 관심이 있고 실천해보려고 한다면 연결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믿게 된 거죠. 


코로나 이후에는 어때요? 강릉은 관광도시이기도 하니까 경제를 위해선 사람들이 많이 찾아와야 하지만 모이면 또 걱정이잖아요. 

네, 맞아요. 지금은 계속 확인하는 과정 같아요. 저희가 주목하는 쓰레기 문제도 강릉이라서 좀 더 얘기해 볼 만한 주제라 생각해요. 관광지 쓰레기, 바다해변 쓰레기, 특히 강릉에는 카페가 많아 버려지는 일회용 컵과 커피 찌꺼기 처리도 이런 것들과 분리된 게 아니라 연결된 문제 같아요. 

커뮤니티 활동을 하는 제 입장에서는 코로나로 대면 활동은 당연히 줄었지만, 오히려 관심 있는 시민들은 많이 늘고 있어요. 단적인 예로 저희 강릉이 올해 문화 도시로 지정이 됐는데, 작년에 시민참여예산제에 환경을 주제로 실험을 해보려던 그룹들이 다섯, 여섯 팀이었는데 올해는 문화 예술이든 사진을 찍는 팀이든 자원순환이나 쓰레기, 관광지를 주제로 실험을 하려는 게 많아졌더라고요. 저는 그런 결과들이 코로나 팬데믹과 환경문제를 겪으면서 시민들이 직접 참여해서 해결해 보고 싶은 주제로 환경과 쓰레기, 강릉의 문화, 관광정책을 이야기하는 도시로 변해가는 거라 여겼어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이야기할 때 지금 강릉의 여러 가지 상황이나 사례로도  이야기 할 게 많은 도시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강릉은 관광지 이전에, 누군가에는 삶터니까요.


#. 동네에서 오래 버티려고 놀이터를 만들고 어떻게 놀지를 고민하다


청년들의 모임에서 협동조합 설립까지 이어졌어요. 활동의 변천사가 궁금합니다. 

처음에는 워낙 또래를 만나기 어려워서, 막연히 지역 청년들을 좀 모아보자고 시작했어요. 만나다 보니 강릉의 청소년들이 청년이 되는 과정에서 선택지가 너무 없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활동을 하면서 청소년들과 민감하게 연결되어 있자가 초반의 중심이었어요. 사람들이 모이면 각자의 관심사나 해결하고 싶은 주제나 의제, 그리고 앞으로 지역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이런 고민까지 나아가게 되더라고요. 

청년들의 삶에 대해 이야기 하다 보니, 우리 사회가 쓰레기나 물건을 일회용품으로 생산하고 소비하고 폐기하는 일회용 문화가 마치 청년이나 청년 문화를 다루는 방식과 비슷하다고 느껴졌어요. 일회용 청년, 일회용 문화가 팽배하면 우리가 선택하는 것, 우리가 서로를 다루는 방식도 비슷하게 작동하는 것 같아 마음이 아팠어요. 우리는 다르게 살아가야 한다고, 다른 선택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거 같아요. 

저희는 자원순환 전문가나 정책가는 아니잖아요. 그래서 쓰레기문제를 이야기할 때 일상의 생활방식이나 문화, 그리고 사회가 서로를 다루는 방식에 대해서 계속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야기를 계속 하고 중요한 문화가 되게 하려면 우리가 지역에서 버텨서 지속가능성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걸 공간에서 풀어보려고 동네에 공간을 먼저 얻었어요. 저희 멤버들이 용지각 근처에 두루두루 살고 있거든요. 우리의 놀이터 같은 공간을 먼저 얻고 일단 내일상회를 열었어요. 그 이후에 어떻게 운영할 것인지 1년 동안 고민해서 협동조합을 설립했어요. 


선 계약 후 계획이네요.  

네 그때 아름다운재단 공익단체 지원사업을 알게 되었어요. 6개월 동안 준비해서 생태전환마을의 그림을 그리고 도전했어요. 1차 합격을 하고 최종에서는 떨어졌지만 그때 정말 치열하게 고민해서 세웠던 계획들이 지금 활동의 기반이 되었어요. 

이전에는 어떤 활동을 할 때 회비를 모으거나, 지역사회에서 작게라도 모금을 하거나, 혹은 시민참여 사업에 지원해서 프로젝트로 해왔어요. 2020년 되면서 사이드 프로젝트가 아니라 업으로서 지역에서 생태적 활동이 지속가능하다는 걸 보여주자는 다짐을 하고 단체를 만들게 되었어요. 공부를 엄청 많이 했어요. 환경형 사회적 기업을 지향하면서 지역 문제를 해결하고 대안적 문화를 담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구성원들이 중요시하는 평등문화를 실현할 수 있는 1인 1표로 합의하는 모델인 협동조합으로 단체를 만들게 되었어요. 그렇게 사회적 경제 영역으로 들어왔습니다. 작년 12월에 정식으로 설립하게 됐어요. 공간도, 단체도 저희는 모든 걸 거꾸로 해 왔네요(웃음). 

함께 활동하는 조합원들은 각자 자신의 활동분야가 다 달라요. 다양한 분야 활동가들의 연합체 같은 성격이다 보니 이 다양성이 환경 문제를 해결하는 데 되게 중요한 키워드가 됐어요. 환경은 쓰레기만 잘 줍는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개인의 실천만으로도 한계가 있잖아요. 환경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 우리 지역에서, 나와 우리가 협력해서, 모두가 한 걸음 나아가는 것이라 생각하게 되었고요. 영화 만드는 사람들, 음악 하는 사람들, 사진 찍는 사람들이 환경 문제에 참여할 수 있도록 다양한 제안을 해요. 제로웨이스트 공간이 더 생겨도 좋겠지만, 동네 책방, 사회복지시설, 동네 카페에서 하나씩 실천하는 제로웨이스트 지향 문화가 자리 잡길 바라거든요. 올해는 환경 문제가 다양한 영역의 사람들이 지역에서 같이 이야기를 모아야 해결할 수 있는 일이라는 걸 알리기 위해 사람들 연결하고 생각들을 모으는 작업들을 계속하고 있어요.


#. 청소년은 미래 세대가 아니라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는 이 시대의 구성원


올해는 청소년들과 많이 만난다고 들었어요. 주로 어떤 활동을 같이 하나요?

기후위기 대응활동과 자원순환 활동을 주로 많이 하고 있어요. 강릉청소년마을학교인 ‘날다학교’와 생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어요. 날다학교는 청소년들이 지역사회에서 다양한 경험을 통해 삶과 마을을 바꾸는 곳이에요. 학교 끝나고, 혹은 주말에 내일상회에 모여서 종이도 만들고, 목공예도 하고, 생태텃밭 활동도 함께해요. 저희는 지역 청소년과 청년들이 만날 수 있도록 연결고리를 만들고 있어요. 같은 고민을 하는 동료로서 언니, 형, 오빠들을 만나니까 서로 시너지가 나요. 같이 쓰레기도 줍고 사진도 찍고 전시도 하며, 재미있는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어요.  

생태동아리 친구가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을 만나서 “숨통이 트인다"라는 이야기를 한 후로는 저희는 청소년들 만나러 어디든 가자가 목표가 되었어요. 청소년을 지원하는 청소년활동지원센터, 아동복지센터, 청소년 동아리, 학교, 청소년 지원기관에도 적극적으로 제안을 하고 있어요. 학교에서 요청하거나 내일상회로 오겠다고 하면 대체로 무조건 만나고 있습니다. 그 문턱을 넘어서야 청소년을 만날 수 있으니까요. 


청소년들과 했던 재미있는 프로그램이나 프로젝트가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작년에 초등학교 2학년과 쓰레기 프로젝트를 함께 했어요. 쓰레기 선생님을 초대했거든요. 처음에는 담당 선생님과 함께 의견을 주고받으며 환경교육 프로젝트 구성했어요. 프로젝트는 한 달 동안 쓰레기를 주제로 진행되었는데, 저희는 프로젝트 후반부에 합류했어요. 학교에서 먼저 책을 읽고 책 속의 실천 활동을 하나씩 해봤어요. 연극도 만들고, 분리배출 활동을 하면서 어느 정도 관심사가 생긴 이후에 저희가 합류해서 활동을 이어나갔죠. 그동안 궁금했던 것을 답해 주기도 하고, 마을로, 지역으로 함께 나가 쓰레기를 줍고 샴푸바도 만들면서 시간을 보냈어요. 그 과정에서 우리의 역할은 청소년들의 활동을 목격해주고 정의해주는 거였어요. 다른 지역, 전 세계에서 어떤 활동들이 이루어지는지 공유하고 우리가 환경문제 해결을 위해 힘쓰는 지구시민이라는 것을 알려줬어요. 지금까지의 환경교육은 외부가 강사가 한 달에 한두 번 정해진 시간에 하는 정도여서 연결성이나 지속성이 좀 부족한 경향이 있었어요.  일회적 방식이 아니라 학교가 중심이 되고, 지역사회 청년 혹은 전문가들이 협력하는 프로젝트였다고 생각해요. ‘너희가 지금 하는 일이 우리가 하는 일과 같다’고 바라봐 주는 그 과정이 되게 의미 있고 재미있었어요. 저희 역시 학교랑 연결이 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지금까지도 학생들이 학교의 환경 캠페이너이자 쓰레기 감사단으로 엄청 열심히 활동하고 있대요. 만들기나 체험이 아닌 삶이 되는 과정이 되게 좋았어요. 학교와 지역사회가 같이 환경 교육 모델을 만드는 과정이 저희도 인상 깊었고, 그 모델은 올해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금 하는 활동 중 하나는 날다 청소년 생태동아리 팀과 똥.구.밭똥으로 지구를 구하는 생태 텃밭 이야기 프로젝트입니다. ‘내가 싼 건 내가 치운다, 내가 만든 쓰레기는 내가 다 해결한다’가 컨셉이에요. 자기 똥오줌에서부터 사용한 비닐, 플라스틱들을 텃밭 농자재나 퇴비로 만드는 일을 같이 하고 있어요. 이 프로젝트는 청소년들이 직접 구상하고 발표해서 강릉시 문화도시 시민참여제 사업에 선정되었어요. 앞으로 청소년들과 직접 생태 화장실도 직접 만들어보려고 하고, 김장하면 동네 분들에게 나누기로 했어요. 

청소년들이 지역사회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어요. 어떻게 보면 저희가 백번 말하는 것보다 청소년들이 공식적인 자리에서 우리는 미래 세대가 아니라 지금의 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대의 구성원이라는 말을 하는 게 더 울림이 크고 설득력이 있더라고요. 청소년들이 진짜 많이 고민하는 모습 보면 감탄해요. 


#. 다양한 활동으로 자연스럽게 조금씩 지역과 사람들에게 스며들기


청소년들이 물려받는 게 아니라 지금 문제를 해결하는 주체라고 당당히 얘기하는 게 확 와 닿네요. 

활동하다보면 몇몇 분들이 청소년들을 환경운동가로 키우려는 거냐는 이야기도 하는데, 청소년들의 진로는 정말 다양해요. 같이 활동하면서 관심사나 꿈, 미래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하는데 ‘나는 건축 일을 하고 싶은데 생태 건축을 하고 싶다’고 해요. 영화감독이 되고 싶은 친구도 있는데 이런 이야기들을 취재하고 알리는 감독이 되겠다고 하고요. 저는 각자 자기 영역에서 환경을 생각하는 사람으로, 감수성 있는 사람으로 선택하고 성장할 수 있다고 봐요.  


생태감수성을 가진 직업인이 된다. 청소년은 정말 많이 다르군요. 듣다보니 내일의 활동이 지역사회에 미치는 영향력도 꽤 클 것 같아요. 

강릉 뿐 아니라 강원도 곳곳에서 연락을 주시고, 다양한 분야에서도 고민을 던지세요. 카페 사장님이 제로웨이스트를 실천하고 싶은데 어떻게 시작할 수 있냐고 찾아오시고, 프리마켓 행사를 준비하는데 사전에 교육을 받을 수 있는지, 어떤 걸 좀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지 묻기도 하시구요. 소개를 받아 연락했다는 분들도 있어요. 현수막을 만들려고 하는데 대안이 있냐 해서, 종이 현수막을 추천하기도 하고, 비닐 포장 없는 간식을 알려드리기도 해요. 강릉 지역에서 제작 가능한 업체를 발굴해서 소개하고, 직접 방문해서 고민도 나누면서, 지역 업체리스트가 만들어지고 있어요.

저는 다양한 분야에서 같이 한 걸음씩 걸어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런 활동이 보편적이고 대중적인 것은 아니지만 대안적인 선택의 하나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상상해요. 내일상회가 참여하면 함께 하는 그룹들이 저희와 함께 한다는 이유만으로도 지지해주고, 쓰레기 하나, 간식 하나라도 더 고민하고 더 바꾸려고 하는 노력들이 보여요. 한꺼번에 다 바꿀 순 없지만요.


그동안의 활동들이 자연스럽게 조금씩 지역사회와 시민들에게 스며들었군요. 

‘마이크를 잡는 게 정말 중요하구나’ 얘기해요. 청년들, 청소년들이 마이크를 잡는 기회가 적기도 하고, 모두에게 공평한 기회가 주어지지 않으면 발언할 기회가 별로 없어요. 그래서 어딜 가면 무조건 우리가 여기 와 있다는 걸 알리려고 해요. 행사를 할 때도 쓰레기를 좀 최소화하자, 이런 일을 하는 팀이 지역에 있으니까 꼭 이야기를 해달라고 부탁드리죠. 특별한 걸 하지 않아도 그런 자리에서 계속 함께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예전에 ‘청년들에게 돈을 달라는 얘기가 아니다. 청년들을 지역사회 구성원들로서 인정해 주고 결정의 자리에 많이 초대해 주고, 비율을 늘려 달라. 청년정책위원회에 청년을 초대하는 게 아니라 환경문제를 논의하는 위원회에 청년위원을 꼭 넣어 달라’고 얘기하고 다녔어요. 

뱉은 말이 있어서 누가 그런 자리에 초대하면 할 말이 없어도, 일단 갑니다.


비로소 청년들에게 마이크를 잡을 수 있는 기회가 생겼네요. 

기회를 달라, 불러달라고 했으니까 연락 오면 가요. 긴장되니까 가기 전에 어떤 요지로 말할지 엄청 열심히 정리해서 가죠. 담담한 척 하지만 손을 떨면서 발언해도 될까요? 하면서 얘기해요. 대신 한 명에게 절대 맡기지 않으려고 하고요, 구성원들이 회의로 어떤 얘기를 하고 올지 미리 정하고 필요하면 연습도 하고요. 


#. 사람, 공간, 그 안에서 만들어지는 이야기가 있는 내일상회


공간을 먼저 만들고 뭘 할지를 생각했다고 했는데 실제 운영해보니 내일상회라는 공간이 주는 힘이나 상징성이 크죠? 

저는 공간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저희가 지향하는 게 되게 추상적이잖아요. 손에 잘 잡히지도 않고 계속 진행되는 과정에 있는 ing의 상태죠. 이렇게 해서 지구를 지켜냈다는 결과물이 있는 것도 아니고 생태감수성이 100%까지 차올랐다고 수치로 보여줄 수도 없어요. 12월 30일까지 사업완료! 이렇게 끝나는 일도 아니잖아요. 


커뮤니티나 플랫폼으로서 공간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뭔가요?

우리의 활동을 현실화시키고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뭘까 생각했을 때 하나는 사람, 그리고 공간, 장소라고 생각했어요. 또 하나는 사람들과 공간에서 만들어진 이야기. 이 세 가지가 결국 증거와 결과라고 생각해요.  

저희는 공유지 만드는 일을 되게 중요하게 생각했어요. 내일상회는 생태, 환경을 주제로 활동하는 사람들이 모이고 공부할 수 있도록 열려 있는 공간이자 공유지예요. 저희들의 아지트이면서 수많은 가치를 담을 수도 있고. 그래서 저희는 용기내서 내일상회를 열기로 결정했어요. 그 선택이 저희의 활동의 과정이자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내일상회를 굳이 ‘상회’라는 이름으로 연 이유는 강원 지역에 제로웨이스트 상품을 소개하는 곳이 없었어요. 내일상회는 가게이긴 하지만 물품이 많지는 않아요. 무포장 가게이기도 하지만 선택할 수 있는 권리, 실천할 수 있는 커뮤니티를 만드는 플랫폼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자본주의 시대에 강릉에 내일상회가 있다는 것, 지역에 제로웨이스트 공간이 있다는 건 중요하다고 봐요. 공간이 살아남고 선언하고 이 자리를 꿋꿋이 지키는 일이 되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계속 오래오래 버티고 싶어요(웃음). 

참! 내일상회를 <공동체은행 빈고>의 공동체 공간으로 옮겨요. 그 공간은 정말 여러 사람들이 같이 만든 커먼즈예요. 


#. 활동의 지향성을 담은 근거지에서 공동체성과 문제해결방식을 보여주는 공유공간으로

* 사진촬영 : 바라봄사진관


텃밭도 원래 도시 안에서 했었는데 아무리 농사를 잘 짓고 흙을 다 살려도 저희 땅이 아니니까 건물이 지어지면 쫓겨나게 되는 거예요. 어떻게 할 수가 없더라고요. 다행히 이제 쫓겨나지 않을 생태공유지가 생겼어요. 

공간이라는 것 자체가 처음에는 활동의 근거지이자 저희 지향점을 담고 있는 공간이었다면 이제 더 나아가서 공유 공간으로 만들어가는 것도 저희가 가진 공동체성과 문제해결 방식을 보여주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더 생태적이고 공동체적인 공간으로 만들어 가야 하고요.


사람, 공간, 그 안에서 만들어지는 이야기들을 지속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것들이 있잖아요.

맞아요. 저희도 ‘우리가 생각하는 지속 가능성에는 어떤 게 들어있을까’ 엄청 고민한 시기가 있었어요. 한 달 동안 고민해서 내린 결론은 ‘돈은 있어야 하고 돈을 벌어야 한다. 단, 화폐를 100으로 놓지 말자, 대신 공유지가 있어야 한다’ 였어요. 

공유지는 우리의 거점 공간이 될 수도 있고, 활동 장소가 될 수도 있으니까요. 예를 들어 텃밭은 우리의 활동지가 될 수도 있어요. 저희는 채식을 지향하는 사람들이라 화폐가 아니어도 기본 먹거리는 자급할 수 있기 때문에 텃밭활동을 열심히 해요.

요즘은 제로웨이스트샵을 운영하면서 연고나 샴푸 같은 생활재도 텃밭작물을 활용해서 만들어요. 어느 정도는 자급이 가능할 것 같아요. 저희가 가진 재능들을 돈을 받지 않고 교환하는 것, 화폐가 중심이 되는 사회에서 그 밑에 보이지 않는 숨은 노동들, 그림자 노동들을 교환하고 호혜와 연대를 우리의 지속가능성 항목에 넣으면 대도시에서는 몰라도 강릉이라는 지역 공동체 안에서는 화폐 비율을 높이지 않아도 살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시도하고 있어요. 


아직 1년이 되지 않았지만 생태전환마을 내일은 잘 가고 있나요? 

각자 역할을 잘 해 나가고 있어요. 협동조합에서 근무하는 4명이 모두 월급을 받아요. 주 20시간 일하고 나머지 시간에 자기가 배우고 싶은 것도 배우고, 생산 활동을 더 해도 되고요. 

혼자 판단하기는 어려운데 협동조합을 만들 때 목표가 이 활동으로 풀타임은 아니어도 먹고 사는 사람들을 3명 이상 만들자고 했으니까 그건 달성한 것 같아요. 지속될지는 더 지켜봐야 되겠지만. 텃밭도 400평정도 되거든요, 저희뿐만 아니라 청소년팀, 같이 농사짓는 사람들도 많이 늘었어요. 내일상회를 이용하는 시민들이나 청소년층도 많아졌고, 꼭 이 공간이 아니어도 저희가 지향하는 걸 자신들의 공간에 입히려는 시도들이 많이 늘어났으니까 잘 가고 있다, 고전하고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더 잘해야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하겠죠? 


#. 공간도 관계도 비어있는 시간이 필요,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잘 지내고 있다

* 사진촬영 : 바라봄사진관


저희 공간은 비어 있을 때도 많아요. 예전에는 공간이 비어 있는 시간이 되게 초조했어요. 청년 활동 할 때는 청년들이 학교를 다니거나 직장생활을 하니까 낮에는 당연히 공간이 비어 있었어요. 주변에서 낮에 공간을 놀리는 게 아깝다고 하고, 우리도 비어 있는 공간에 대해서 항상 초조했어요. 혹시 우리가 잘못하고 있나, 낮에 활동할 사람들을 둬야 하나 고민 했었는데 요즘은 공간이 비어 있는 것도 되게 중요한 것 같아요. 

어떤 커뮤니티도 만들어지면 소강세가 있잖아요. 근데 그런 상황을 되게 속상해 했던 것 같아요. 그게 너무 당연했던 건데. 비어있는 시간이 없으면 에너지가 너무 과잉될 것 같아요. 내일상회 운영하면서 그런 걸 많이 배운 것 같아요. 

이 공간이 지금 비어 있고 소강상태인 건 우리가 그만큼 다른 걸로 충전을 하고 있다는 걸 목격할 수 있게 됐고, 여기에는 없지만 각자 잘 지내고 있다는 믿음도 생겼어요. 

공간도 관계도 비어 있는 시간들이 되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공간은 비어 있는 게 당연하다는 그런 생각도 들고요. 원래 공간의 空은 비어있다는 뜻이잖아요(웃음).


#. 다양한 정체성을 민주적으로 운영할 줄 아는 당사자 운동가


독립활동가 이혜림은 참 다양한 정체성을 갖고 있고, 그 정체성들이 유기적으로 결합하고 연결되어서 활동으로 이어진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저는 생태환경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고 청년 운동도 하고, 여성주의 활동도 하고, 교육 관련 일도 하고 있어요. 하나하나 놓고 보면 각각이 큰 분야니까 광범위하게 활동하는 것 같지만 이런 활동을 시작한 20대 후반에도 그랬고 30대 초반에도 ‘지금 시기의 나의 정체성’으로 활동하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당사자 운동을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청년 캠프에 갔다가 구도완 선생님의 생태민주주의를 만나면서 제가 다양한 정체성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변화를 추구하고 변화를 만드는 일을 하고 있지만 내 안의 어떤 부분은 변화를 두려워하는 많은 정체성들이 있어요. 어떤 문제에는 되게 보수적이고 어떤 문제에 있어서 되게 급진적인 나를 두고 무엇이 나인지 알아차리는 게 되게 어려웠어요. 

내 안의 많은 정체성도 합의와 토론과 조정이 필요하고, 스스로 나를 민주적으로 잘 운영하는 사람이 되어야죠.  


내 안의 다양한 정체성을 알아차리고 스스로 합의와 조정으로 나를 민주적으로 운영하는 사람이라, 멋있어요. 그게 사람들과 연결되면서 활동에도 잘 담겨지는 거군요.

사람들은 경험이 다르고 살아온 환경도 다르잖아요. 어린 시절에 광부였다 농부가 된 아버지와 자식을 위해 꿈을 포기한 어머니의 삶이 저에게 미친 영향들이 분명 있어요. 내가 여성으로서 어떻게 살아왔는지, 내가 살던 지역의 변화들도 살피게 됐어요. 

나의 정체성으로 목소리를 내는 일이 지극히 개인적인 일이지만 이 시대의 증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된 것 같아요. 지금의 이혜림은  2021년 기후 위기 시대의 증언자가 되는 거죠. 

저의 다양한 정체성이 같은 이야기를 하고 싶은 사람들과 연결되었을 때 활동으로 이어졌던 것 같아요. 자기의 정체성을 설명하고 목소리 내는 일이 꼭 누군가에게 주어지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같은 환경에 살아도 다른 선택으로 사는 사람도 있잖아요. 

그래서 저는 당사자 운동을 하고 있다 생각해요. 지금의 이혜림은 30대로 겪는 사회적 배경과 문화적 맥락에서 선택한 일들을 증언하는 거고요. 

40대 50대 60대가 되어도 다른 사람의 삶이 아니라 내 삶에서 내가 겪는 일에 목소리를 내고 증언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래서 저는 잘 기록하는 것, 사람들이 모였을 때 조금 불편하지만 공평하게 말할 수 있는 것에 관심이 많아요.


#. 청년이 일 잘하는 이유는 반짝이는 천재성이 아닌 치밀함과 치열함으로부터 


청년들이 일하는 방식이 궁금해요. ‘청년들이 하니까 뭔가 다른 것 같아’ 이런 얘기 많이 하잖아요. 자주 듣죠?

자주 들어요. 청년, 특히 MZ세대들은 뭔가 반짝이는 아이디어로 일할 것 같다고. 그런데 제가 요즘 주목하는 사람들을 보면 진짜 치열하고 치밀하게 일하고 있더라고요. 꼼꼼하기 기록하고 불편한 요소들을 계속 확인하면서 해결하고 일해요.

저희도 청년활동 할 때 디지털 도구와 기술을 활용해서 설문조사도 하고 이야기하고 싶은 주제에 관심 있는 사람들의 의견을 미리 물어보고 확인하거든요. 그 과정에 참여했던 분들이 나중에 교육이나 워크숍이 열리면 오시더라고요. 조사하고 확인하는 과정은 하나의 홍보이기도 해요. 당연히 프로그램이 끝나면 회고와 평가도 꼼꼼히 하죠. 청년들이 일을 잘 하는 건 반짝이는 천재성이 있어서가 아니라 치열하게 매달려 일해서예요.


치열함과 함께 청년들과 일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주목할 만한 게 있을까요?

제가 지역에서 청년활동과 환경운동을 하면서 좋았던 건 이미 정해진 약속과 규칙을 따르는 게 아니라 같이 규칙을 만들고, 약속을 만드는 거였어요. 만나면 행동문화약속을 꼭 읽고 자기를 소개하는 과정을 엄청 철저히 지키려고 해요. 

그리고 고립되지 않고 안전하다는 것. 개인을 혼자두지 않으려고 살피는 게 좋은 것 같아요. 

청년들은 일하는 방식이나 과정이 민주적일 거라고 생각하는데 가부장적이고 강압적이고 권위적인 그룹도 많아요. 규칙이 없는 팀도 있어요. 청년들이 모이면 민주적이고 공평하게 일할 것 같고 아이디어도 힘들지도 않고 쏟아낼 것 같지만 그건 환상이에요. 

무엇보다 MZ세대들은 동네방네 소문을 잘 내는 것 같아요. 잘한 일이든 못한 일이든. 저희 세대는 ‘자랑’을 대체하는 많은 언어가 있어요. 홍보, 공유, 확산, 스피커처럼 우리의 가치를 확산하는 좋은 언어들이 많이 생겼어요. 옛날에는 이런 단어들이 대중적 단어가 아니었잖아요. 


선배 세대들이 일했던 방식이나 과정,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다르다가 느껴져요.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같이 약속을 정하고 안전함을 확보하는 것도 인상적이고요. 

약속을 정하고 확인하는 것, 그 약속을 조롱하지 않고 지키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반전은 약속이 있다고 다 지켜지지는 않는다는 거죠(웃음). 어쨌든 그걸 지향하는 공동체이고, 불편한 얘기를 할 수 있게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 이 세상에 새로운 건 없다. 구슬을 꿰듯 지혜를 잘 모으고 잘 나눠야

* 사진촬영 : 바라봄사진관


일할 때, 그리고 사람들과 관계를 맺을 때 꼭 지키려는 원칙이나 기준이 있나요?  

저는 일에 착수하기 전에 엄청 많은 레퍼런스를 모으고 시작해요. 원하는 게 있거나 필요한 게 있으면 다양한 각도로 살펴 줄 사람들을 모으고 같이 협업하려고 해요. 

‘이 세상에 새로운 것은 없다. 그래서 지혜를 잘 긁어모아서 잘 나눠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가 구슬을 꿴다고 하는 것도 그런 의미예요.

 

그 구슬을 꿰는 게 쉬운 게 아니잖아요. 구슬을 꿰기 위해 사람을 모으는 것,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에 대한 부담은 없나요? 

저는 되게 에너지 보존적인 내향적 사람이거든요. 그런데 새로운 사람도 잘 만나요. 대신 사적 시간에는 집에서 고양이랑 누워만 있어요(웃음).

사람들을 만날 때 힘든 점? 힘든 점 있죠. 오늘 만날 사람들이 안전한 사람들일까 걱정되기도 하고 만나고 와서도 계속 같이 일할 수 있을까 고민도 많고. 사람과의 관계는 늘 어렵죠. 


#. 지역살이에 중요한 건 의미 있는 관계와 의미 있는 장소를 만드는 것 


새로운 도전이든, 귀향이든, 청년이든, 중년이든 지역에서 뭔가 해보고 싶은 분들이 많아요. 지역살이 선배로 어떤 조언을 해주고 싶나요?

강릉에 있는 친구들에게 왜 강릉에서 살고 있는지, 강릉을 떠날 생각이 있다는 친구에게 왜 떠나고 싶은지를 물어봤어요. 떠나려는 이유는 돈이었어요. 일자리와 생계의 문제였죠.

그런데 강릉에 계속 살고 싶은 이유는 ‘관계’였어요. 돈, 직업, 집도 중요하지만 ‘지역살이’에서 가장 중요한 건 의미 있는 관계와 의미 있는 장소들이 많이 생기는 거였어요.  

지역에서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다면 결국에는 사람과 장소인 것 같아요. 무엇보다 동의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게 중요해요. 혼자서는 진짜 어렵더라고요. 제로웨이스트를 하든 생태적 삶을 살든 나를 지켜봐주고, 좋은 자극을 주거나 지쳤을 때 괜찮아 라고 말해주는 사람들이 곁에 있는 게 진짜 중요해요. 그래서 지역에 오면 관심 있는 커뮤니티를 먼저 찾아보라고 얘기해주고 싶어요. 완벽하고 친밀한 관계가 아니어도, 일주일에 한 번 보는 형식적 관계가 되더라도 내 가치관과 지향이 같은 커뮤니티를 찾아보면 좋겠어요.  

저는 지역에 나만의 의미 있는 장소가 생기니까 떠나고 싶다가도 아까워서 못 떠나더라고요. 


강릉을 떠나지 못할 만큼 고마운 사람들이 많겠죠?

그동안 한 번도 받아보지 못한 질문인데요, 내일상회 멤버들이 가장 고맙죠. 지역에서 계속 살고 싶다고 생각하게 해준 의미 있는 관계들이고, 또 의미 있는 장소들을 같이 만드는 사람들이니까요. 강릉에서의 삶도 공유하고 있어서 좋은 것 같아요.  

저희가 성공적인 활동들도 많았지만 실패도 많았거든요, 우리는 실패를 같이 경험하고 나눈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 순간을 기억하고 있고, 활동하면서 실수하거나 실패했을 때 서로 말해줄 수 있는 사람들이에요.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지역 환경단체로 같이 연대하고 목소리를 내면서 좋은 순간도 있지만 우리가 뭘 할 수 있을까, 뭘 바꿀 수 있을까 좌절하고 속상한 순간도 같이 공유하면서 서로의 변화와 상처를 보고 같이 성장하는 것 같아요. 


강릉살이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요?

개인적으로는 고양이들이랑 가족이 됐던 순간이 기억에 남아요. 공동체적으로는 청소년들을  더 많이 만나야겠다고 다짐한 계기가 되기가 된 장면이 있어요. 생태, 기후위기를 고민하는 청소년들과 모임을 마무리하는 자리에서 고등학교 1학년 친구가 ‘이야기할 수 있는 친구를 만나서 너무 좋다’고 그래서 ‘숨통이 트인다’고 썼더라고요. 그때 나이에 상관없이 같이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나는 게 중요하다는 게 더 크게 와 닿았어요. 저희를 친구라고 표현한 건 감동이었어요. 같이 활동하는 중학교 선생님도 나를 친구라 부르는 청소년이 생겼다며 엄청 좋아하셨어요. 

우리는 같은 걸 지향하고 문제를 해결하려고 같은 목소리 내는 사람들이니까 친구고, 이야기할 수 있는 숨통이 트이는 공동체를 만났다고 말해 준 그 순간이 기억에 남아요. 

어떻게든 더 많은 청소년을 만나고 싶어서 청소년이 부르면 어디든 가겠다고 선언했어요.


#. 지역에만 머무르지 않기 위해선 지역을 더 많이 알아야 


요즘 가장 큰 관심은 뭐예요?  

지역에 있지만 지역에만 머무르지 않고 계속 연결되면서 같은 목소리 내는 사람들과 네트워크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우리 지역에 대해서 더 많이 알아야겠다는 생각도 많이 합니다. 강원도는 산불도 자주 나고, 강릉은 비가 오면 항상 남대천이나 경포호수 근처에 수해가 발생해요. 우리가 모든 걸 해결할 수 없겠지만 그 상황에서 우리가 대처할 수 있을지 지역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사람들과 같이 고민하고 대응하고 안전한 마을을 만들 수 있도록 얘기해보고 싶어요.

그리고 저희들도 청년의 시기가 얼마 안 남았잖아요. 친구들이랑 모이면 ‘우리 이제 청년 아니면 뭐야’하면서도 지역에서 우리가 어떤 역할을 하면 좋을지 많이 이야기해요. 


#. 성평등 숲문화 만들기 프로젝트 모두의 숲


친구들과 새로 시작하는 프로젝트도 소개해주세요.

그동안 활동하면서 만났던 여성 활동가, 교육자와 함께 올해 ‘모두의 숲’이라는 성평등 숲문화 만들기 프로젝트를 하고 있어요. 

숲 분야에도 되게 성차별적 요소들이 많아요, 예를 들어 식물이름에 처녀치마가 있는데 교육현장에서 ‘처녀치마니까 꽃잎을 들춰봐’ 이런 식으로 사용되는 거예요. 성평등 관점에서 이런 것들을 바꿔보려고 교육활동도 하고 현장에 가서 숲선생님들 재교육하고, 결과물로도 만들어보려고 해요. 제가 오랫동안 활동했던 숲, 산림 분야에 다른 친구들이 같이 참여해서 새로운 걸 하는 게 아니라 각자 활동분야의 관점으로 다시 정리하고 바꾸는 일을 하고 있어요. 그동안 차곡차곡 모은 구슬들을 엮는 중이랍니다. 


‘모두의 숲’이야 말로 이혜림의 정체성이 유기적으로 작동하는 프로젝트군요.

네. 그래서 제가 있는 분야에서 세상을 바꾸는 일을 재미있게 하고 있어요. 다들 이 많은 걸 어떻게 하냐고 하는데 힘든 게 아니라 정말 재미있게 하고 있어요.


덤덤하게 별거 아닌 것처럼 “재미있게 했어요”라고 얘기하지만 일 잘하는 비결인 치밀함과 치열함이 전해지는데요.  

하하하 이렇게까지 할 줄 알았다면 아마 시작하지 못했을 거예요. 활동하다 보니까, 이렇게 정리해보니까 이만큼 했더라고요. 알고 있었으면 못했을 거예요. 

* 사진촬영 : 바라봄사진관


마지막 질문입니다. 지난 활동가 인터뷰에서 ‘지금은 구슬을 꿰는 일을 하고 있다면, 앞으로 나만의 구슬을 만들고 싶다’고 했는데요. 5년 후 이혜림은 어떤 모습일까요?  

요즘의 저는 구슬사춘기에 빠진 것 같아요. 제 안의 다양한 정체성으로 세상과 관계 맺으면서 활동한다고 열심히 선언하다가, 그 안에서 나의 대표 정체성을 하나 꼽으려고 하니 정말 혼란스러워요. 당분간은 구슬을 잘 엮는 사람으로 계속 지내고 싶어요. 하지만 구슬을 엮어낸 결과물이 새로운 언어와 새로운 약속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구슬을 안정적으로 엮을 수 있는 안전한 선, 그걸 지키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기후정의를 고민하며 강원도 청소년들과 만나기 위해 어디든 가겠다고 약속했으니 지키기 위해 꼼꼼한 실행계획을 세워볼 작정입니다. 강원도 지역만의 생태환경, 환경문제를 같이 고민하는 교육과정과 캠페인을 기획하면서 우리 지역의 삶을 바꾸는 일도 좀 더 해나가 보려고 해요. 공부도 하고, 연구도 해서요. 

우리 사회의 문턱을 낮추는 일도 하지만, 문턱을 넘는 일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러려면 역시 당분간은 문턱을 낮추고 문턱을 넘나드는 사람들을 잘 엮어야겠죠. 그리고 별일 없으면 계속 강릉에 살려구요! 



피플포체인지가 만난 독립활동가 이혜림은 재미와 의미 있는 변화의 세계를 탐구하는 내일연구소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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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이경원
기획, 기록, 연결로 변화를 만드는 일과 사람을 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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