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꾼: 어떤 일을 맡아서 하거나 맡아서 할 사람.
지역사회를 건강하게 만들고 싶은 최문철은 꿈이자라는뜰(이하. 꿈뜰) 대표일꾼이다. 장애를 농업과 마을로 연결해 장애인의 자립과 사회활동을 지원하고자 시작한 꿈뜰을 넘어, 농촌의 다양한 구성원들이 서로를 보살피고 연결되는 마을 돌봄 공간을 만들고 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만나서 어울리고 함께 일하는 농장 꿈뜰에 들어서니 휠체어 이용자를 위한 틀두둑이 눈에 먼저 들어온다.

꿈이자라는뜰 대표일꾼 보루입니다. 청소년들이 처음엔 털보라고 불렀어요. 간혹 버릇없는 모습으로 비춰질 때가 있어서 외우기 싶고 부르기 쉬운 ‘보루’라는 별칭으로 바꿔 부르고 있습니다. ‘최후의 보루’와 발음이 같아서 혹시 그 뜻이냐고 오해를 받기도 해요. 그럴 땐 “그럴 리가요, 그냥 담배 한 보루 할 때 보루입니다”라고 답하죠. (사진촬영 : 바라봄사진관)
꿈이자라는뜰 대표와 우리마을의료조합 사무국장으로도 활동하고 계시죠?
꿈뜰을 만든 지 10년이 넘어가는데 시작은 학교와 마을교사를 연결하는 중간역할이었습니다. 오랫동안 꿈뜰의 대표일꾼을 맡고 있지만, 사람들이 저만 바라보지 않게 하려고 애를 많이 썼어요. 2018년 8월에 의료조합 일을 병행해야겠다고 결정하고, 3년 동안 두 집 살림을 하고 있습니다.
코로나19로 꿈뜰도 어려움이 많을 것 같아요.
저희가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텃밭수업 일수가 1년에 30회 정도 되거든요, 작년에 코로나로 개학을 늦게 하면서 수업 일수가 15회에서 20회로 줄어서 텃밭수업 수입이 많이 줄었습니다. 평소에도 워낙 요청을 안 하기도 했지만 다들 어려운데 도와달라고 후원 요청하기도 조심스러웠어요. 2020년은 200만 원 정도 적자였는데 도토리라는 지역의 경제협동체에서 대출받아서 한 해를 무사히 잘 넘겼어요.


* 꿈뜰은 한해의 활동, 농장 일꾼들의 이야기, 수입과 지출, 같이 활동한 사람들을 꼼꼼히 기록한 꿈이자라는뜰 편지를 이웃들에게 보낸다. (제공 : 꿈이자라는뜰)
#. 누구도 강요하지 않고, 부담주지 않고 함께 이야기하고 결정하는 꿈뜰
꿈뜰의 운영에는 특별함이 있다고 들었어요.
저희는 직원협동조합 방식으로 운영되는데요, 한 해가 끝나면 한 해 동안 어떤 일을 했는지 정리하고, 새해엔 어떻게 일할지 이야기해요. 누구도 이 일을 계속하라고 강요하거나 부담주지 않아요. 자기 상황에 따라서 이 일을 계속할지, 시간을 줄일지, 더 늘릴지를 결정하고 활동비와 급여를 얼마로 맞출지도 이야기해요.
3년 전에 시급을 5천 원에서 6천 원으로 큰 맘 먹고 올렸어요. 그 다음해에는 시급으로 하지 말고 기본소득처럼 가면 어떨까 해서 기본소득형태로 지급하고 있는데 나가는 돈이 크게 달라지진 않았습니다(웃음).
꿈뜰은 저처럼 일주일에 하루 일하는 사람도 있고, 이틀 일하는 사람도 있고, 3일 일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장애인 일꾼들은 하루에 2시간씩 주 3일을 일해요. 여기 있는 사람들 대부분이 지역에서 투잡 쓰리잡 뛰면서 살고 있어요.


* 협동조합방식으로 운영되는 꿈이자라는뜰. 모처럼 꿈뜰 일꾼들이 모두 모였다. (사진촬영 : 바라봄사진관)
활동비도 중요하지만 활동비와 상관없이, ‘나는 왜 이 일을 계속하고 있지’라는 질문을 저도 그렇고 아마 다들 하고 있을 거예요. 저희는 일을 하라고 강요하거나 부담을 느끼게 하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어쩌면 그런 부분이 자율적으로 스스로를 여기다 묶어놓지 않을까라는 생각은 들어요. 아울러 이 공간에서 일을 할 때 돈이 아닌 다른 보상을 같이 만들기 위해서도 애를 쓰고 있어요.
저희가 굉장히 좋아하는 시간이 밥 먹는 시간입니다. 우리가 농사짓고 우리가 차린 음식을 같이 먹는 시간을 모두 좋아하고 그 자체로 서로가 고마워해요.
각자 처한 상황은 다르지만 여기 오면 자기의 속내를 이야기하고, 우리가 일하고 싶고 가꾸고 싶은 조직이나 공간을 만드는 것에 자율성과 자발성이 보장된다는 게 계속 같이 지내는 이유가 아닐까 싶어요.
3년 동안 대표일꾼이 두 집 살림을 하면서 어려움은 없었나요?
그 전에도 혼자서 열일을 한 건 아니었어요. 동료들은 부하직원이 아니고, 또 지시에 따라 일하지 않는 것이 꿈뜰이 가진 장점이자 그동안 노력으로 만들어 온 우리의 모양이었어요.
사회의 많은 곳에서 개국 공신이 좋은 역할도 하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오히려 그 사람이 문제가 되는 경우가 많잖아요, 다른 사람의 성장에 방해가 되거나 사람들을 의존적으로 만들어서 건강한 조직이 되지 못하는 상황들을 봤어요. 저는 20년이 지나면 무조건 제 역할을 그만둔다는 생각을 했어요. 믿고 맡기고 기다리면서 좀 아슬아슬한 순간도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래. 그때 믿고 맡기고 열어두기 잘했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2019년에 꿈뜰 동료들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보루, 그 일을 어떻게 혼자서 해결했어요? 어떻게 대응했어요? 어떻게 그걸 할 수 있었어요?”였어요. 제가 아무리 어떤 면에서는 권한을 포기하고 기회를 공유하더라도 정말 확실하게 빈자리를 만드는 것 만큼 좋은 방법은 없는 것 같아요. 저도 포기되어지는 것이 자연스럽고요.
#. 누구나 올 수 있고 누구나 누릴 수 있는 아름답고 효율적인 공간으로
그럼 올해도 꿈뜰은 계속 잘 가꿔지고 있겠네요.
지금도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수업은 계속하고 있어요. 장애인 일꾼들도 계속 월, 화, 수 주 3일 일하고 있고요. 저희들도 월, 화, 수 3일은 계속 농장 가꾸면서 일하고 있어요. 그리고 농장은 저희만 사용하는 건 아니에요.
농장을 마을사람들과 공유한다는 의미인가요? 누가, 어떤 용도로 사용하나요?
꿈뜰 마을교사가 아닌 다른 마을교사가 이 공간에서 어린이집 장애인 친구들과 수업을 진행해요. 작년, 재작년은 어르신들이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한 달에 한 번 어르신들을 위한 공간으로 공유했고요. 2018년에 비장애청소년들이 ‘마을 정원과 나’라는 주제로 여기서 활동했는데 첫해는 제가 진행하고 지금은 동네 다른 마을교사가 운영하고 있어요. 여성농업인센터에서 여성그룹이 된장을 만드는 콩농사를 하고 싶을 때, 예산홍성환경운동연합에서 파타고니아의 후원을 받아서 노지에서 돼지 키우는 프로젝트를 하는데 농장 일부를 공유해서 사용했었어요. 농장을 아이들, 어르신들, 동물들, 또 비장애인 청소년들과 공유하는 기회들이 종종 생겼어요. 저희가 원래 바랐던 모양대로 자연스럽게 흘러왔어요. 작년부터는 코로나 때문에 그런 것들이 확 줄어들었죠. 여전히 이어지는 것도 있고 멈춘 것도 있고.

* 휠체어 이용자를 위한 틀두둑 (사진제공 : 꿈이 자라는 뜰)
꿈뜰은 장애인들이 자연과 함께 자립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농장에서 장애인과 비장애인 그리고 다양한 세대가 같이 지낼 수 있는 공간으로 이미 변하고 있었네요.
그걸 아주 진하게 맛볼 수 있는 날이 ‘허브데이’예요. 농장에 잔치를 하는 날인데 첫 농장을 만든 2011년부터 해마다 계속 했어요. 작년에도 다행히 10월에 4일 동안 잔치를 했어요. 수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오후 2시에서 5시 사이에는 누구든지 이 공간에 와서 즐길 수 있게 만들었어요. 와서 즐기는 사람도 있지만 즐길 거리를 제공하는 사람들도 있어야 되잖아요. 비폭력 대화를 하는 사람도 오고, 책을 전시해 놓는 자리도 있고 떡을 구워주는 사람도 커피를 대접하는 사람도 있고.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하는 사람, 이 공간에 와보고 싶은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서 다 같이 즐기는 거죠.
2019년에 허브데이에 왔던 아이가 그냥 지나가는 말로 “엄마 여기 너무 좋아. 또 오고 싶어”라고 말하는 걸 들었어요. 그런 순간이 굉장히 흐뭇해요.

* 2020년 허브데이 풍경 (사진제공 : 꿈이자라는뜰)
꿈뜰이 농촌 마을공동체에서도 굉장히 중요한 공유와 연대의 공간이네요.
꿈뜰을 만들 때 저희가 원했던 건 아름답고 효율적이고,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생태적인 공간이었어요. 그 기준이 장애인이었죠. 휠체어를 탄 사람도 올 수 있고, 소리를 지르는 사람도 올 수 있는 곳이면 어린 아이들이 와도 괜찮고 어르신들이 와도 좋은 공간이라고 생각했어요. 장애인들이 여기서 어떤 활동을 하는지, 누구와 활동하는지도 중요하지만 공간 자체가 주는 느낌이나 분위기가 있잖아요. 아름다운 공간과 좋은 분위기를 누리는 사람들을 장애인으로 국한시키지 않기로 했어요. 사람들이 와서 공간을 공유하고 즐기는 과정에서 당연히 더 넓어져야 된다는 생각으로 그 길을 열어둔 셈이죠.
#. 꿈뜰의 매력은 우리가 만들어가는 방식이 있다는 것
꿈뜰에서 함께 일하려면 어떤 선발과정을 거쳐야 하나요?
저희가 일꾼을 선발할 만큼 선망의 직종이 아니잖아요. 누구나 올 수 있어요. 대신 서로를 관찰하는 시간을 갖죠. 특별하거나 거대한 계약을 맺지는 않아요.
꿈뜰 농장 일꾼들의 약속(함께 열기) •기분, 부탁, 질문을 솔직하게 말하기 •실수해도 괜찮아. 그렇다고 모른 척 할 것은 아니야 •무엇이 불편한지 솔직하게 말해줘 •부드럽고 자세하게 질문하고 부탁하기 | 꿈이자라는뜰의 질문과 부탁 •자신과 주변을 살피고 있나요? 어려운 일이 생기면 멈추자고 이야기할 수 있나요? •일과 사람, 결과와 과정을 모두 소중하게 여기고 균형을 맞추고 있나요? •모두의 욕구를 소중히 여기고, 함께 만족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봅시다. •내 곁에 있는 사람을 느낌과 욕구를 가지고 있는 존재로 만나고 있나요? •살핌과 보살핌을 위해, 따로 시간을 내어 정리하고 기록을 남겨봅시다. |
* 꿈뜰농장 일꾼들은 ‘꿈뜰 일꾼들의 약속’과 ‘꿈이자라는뜰의 질문과 부탁’을 함께 읽고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지금은 어느 정도는 꿈뜰만의 색깔과 모양이 잡혀가는 과정이어서 일해보고 싶다는 사람들도 있지만 초기에는 되게 어려웠어요. 왜냐하면 제 입장에서는 급여나 활동비를 보장할 수 없는 상황에서 함께 일하자고 말하는 게 어려웠거든요. 아마 장애, 교육, 농사에 어느 정도 전문성이 있어야 꿈뜰에서 일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사람들도 있었을 거예요.
그런 전문성을 다 갖춘 사람은 아마도 우리나라엔 아직 없지 않을까요? 지금은 일단 함께 일해보고 경험하면서 우리에게 필요한 전문성을 쌓아가는 방식이에요.
신기하게도 초창기 방향에서 조금씩 다듬고 같이 만들어 가면서 새로운 동료가 하나 둘씩 연결이 되고 있어요. 생각보다 부침이 심하지도 않았고 돈 때문에 들어왔다 돈 때문에 나가는 경우도 거의 없었어요. 오히려 동료들의 분위기는 ‘적게 일하고 적게 벌고 싶다’여서 일을 막 늘리지 않아요. 또 감당하기 어려우면 하지말자고 서로 합의해서 결정해요.
혹시 소개할 만한 사례가 있나요?
허브데이는 손님을 초대해 잔치를 여는 날이기도 하지만 잔치를 즐기고도 싶은데 부엌데기로 일하는 게 힘들어서 또 하고 싶은 마음이 나지 않는다고 동료가 이야기 하는 거예요. 그래서 하지 않기로 결정했어요. 그리고는 ‘우리가 이걸 왜 하고 싶었지? 어떻게 하면 아무도 부엌데기가 되지 않는 잔치를 만들 수 있을까?’ 얘기하면서 방식을 바꿨어요. 오는 사람들이 자기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펼칠 수 있도록 자리만 깔아주기로. 우리가 상을 차리고 대접하는 방식에서 상은 차리되 잔치에서는 최소한의 역할만 하자고 했어요. 장애인이 무대에 올라가서 멋진 모습을 보여주는 방식에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만나서 섞이는 자리, 한 방향의 무대를 보지 않고 장터 같은 잔치를 만드는 거죠. 방식을 바꿨더니 다들 만족스럽고 편안하고 즐거웠어요.
어려움을 말할 수 있고 그걸 같이 바꿀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건강한 조직이라는 증거네요.
우리 안에서는 해야 하기 때문에 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어요. 다른 사람들의 희생을 요구하는 것도 좋은 게 아니잖아요. 적어도 꿈뜰에서는 덜 벌고 덜 누리더라도 누구도 희생하지 않고 누군가에게 지시하지 않기 위해 계속 다듬어 왔어요.
우리가 만들어가는 방식들이 생겨서 고맙고, 그렇게 전환할 수 있어서 되게 좋아요.
#장애와 함께 일하는 돌봄농장, 발달장애 청소년을 위한 교육농장
예전 인터뷰에서 꿈뜰이 하는 일을 사회적농업이나 교육농업, 치유농업의 영역으로 분류하고 유형 짓는 것에 대해 불편함이 있다고 했어요.
지금도 여전히 그렇습니다. 저희가 사회적농업이나 교육농업, 치유농업을 하겠다고 이 일을 시작한 게 아니었기 때문이에요. 어느 순간 우리를 설명할 수 있는 개념이 생기기 시작했다는 건 고마운 일이지만 정립되지 않은 개념에 갇히고 싶지 않아요. 한편으론 이 개념이 자리 잡히는 데 기여하고 싶은 마음도 있어요. 그래서 ‘저희는 사회적 농업을 하는 곳입니다’라고 설명하거나 ‘사회적 농장입니다’라고 하지 않아요. ‘저희는 장애와 함께 일하는 돌봄농장, 발달장애 청소년을 위한 교육농장’이라고 소개합니다. 물론 그 뒤에 계속 부연 설명이 더 필요하긴 해요.
우리마을의료조합(이하 의료조합)이 농림축산식품부 사회적 농업에 선정되었죠?
네, 명확하게 말하자면 의료조합이 출자해서 만든 홍성우리마을돌봄영농조합법인(이하 영농조합)이 농지를 마련하고, 2020년 말에 영농조합이 사회적농업 활성화 지원사업에 선정되었어요. 올해부터 사회적농업 활동들을 수행하고 있어요. 꿈뜰은 장애가 중심이라면 의료조합은 노인을 위한 공간을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 공간은 등급 여부에 상관없이 누구나 올 수 있어서 노인들이 요양원에 고립되는 방식이 아니라 지역 주민들과 계속 어울릴 수 있는 돌봄농장을 상상했어요.
농지와 법인 조직체를 가지고 있는 영농조합, 이웃 농장인 꽃잎열매밭, 그리고 꿈뜰까지 세 그룹과 의료조합까지 합쳐서 이 일을 같이 하고 있어요.
지금은 영농조합이 마련한 농지에 신규 농장을 조성하는데 집중하고 있어요. 꿈뜰은 장애인일꾼들이 일할 때 옆에서 챙기는 역할을 하는 동료일꾼에게 강사비를 지급하고, 지역주민들을 초대해서 저희가 차리는 밥상을 나누고 같이 이야기하는 네트워크 활동도 해요. 꽃잎열매밭은 노인들을 위한 원예프로그램으로 진행하고요.
#. 모든 지원 사업에는 꼭 필요한 곳에 편하게 예산을 쓰도록 유연한 운영이 필요
사회적농업을 하는 농장들을 만나면 활동을 잘하고 싶고, 예산도 잘 쓰고 싶은데 코로나로 상황이 여의치 않아서 많이 아쉬워해요. 1년 동안 해보니 어떤가요?
네. 저희도 그런 지점들이 좀 아쉬워요. 코로나로 대면 활동이 어려운 상황에서 올해 예산은 올해 다 써야 하는 규정을 좀 유연하게 바꾸면 좋겠다는 바람도 있어요. 제가 중간에서 예산을 유연하게 다룰 수 있는 사람이라면 대면 활동이 어려운 상황에서는 시설보수나 개선 예산 비중을 더 늘려서 기반조성에 투자할 수 있게 해주거나, 올해 예산을 다 쓰지 못하면 내년으로 유예해주는 방식을 검토할 것 같아요.
지원을 받아도 정말 필요한 곳에 편하게 예산을 쓸 수 없다는 게 가장 어려워요.
개인적으로 지난 10년 동안 제일 힘들었던 때가 2017년이었거든요, 그전까지는 한 번도 지원을 받지 않다가 농업기술센터에서 처음으로 5천만 원을 지원받았어요.
2천만 원이 시설 투자비였고, 3천만 원이 활동비였습니다. 활동비 중에 재료비와 외부강사비 외 실제 가장 많은 일을 하는 우리를 위한 인건비로 쓸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었어요. 일은 엄청 늘어났고, 또 가난했던 사람들이 큰돈을 지원받으니까 어떻게든 잘 쓰고 싶은 거예요. 농장을 옮겨야 할 시기라 새로운 터전 마련하는데 예산을 쓰고 싶은데 연말이 되도록 땅이 안 구해지는 거예요. 스트레스가 되게 심했어요. 담당 공무원이 저희 사정을 너무나 잘 이해해 주고 굉장히 유연하게 잘 대처해줬지만 되게 힘들었어요. 그때 겨우겨우 마련한 땅이 지금의 꿈뜰 농장이에요. 그 당시에도 사업비 사용이 조금만 더 유연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예산을 아주 어렵게 쓰고 나니 지원 사업이 너무 힘들었어요. 2018년에 농림축산식품부에서 사회적농업 지원 사업을 한다고 했을 때 안 하고 싶다, 우리가 행정적인 것들을 감당할 수 있을 때 시도하자고 했어요.
지금도 역시나 어렵지만 의료조합과 영농조합이 행정업무를 담당하고, 꿈뜰과 꽃잎열매밭에서 농부와 일꾼들이 실행하는 방식은 좋은 모델이라고 생각해요.
#. 민-관이 참여하는 면단위 농촌형 지역사회통합돌봄 모델 만들고 싶어
변화를 만드는 사람 최문철이 그동안 지역에서 해 왔고, 지금도 하고 있고, 앞으로 가고자 하는 방향이 결국 지역사회통합돌봄, ‘농촌형 커뮤니티케어’와 같은 결이라고 생각해요.
네, 그런 걸 생각하고 있기는 해요. 누가 커뮤니티케어를 하라고 해서 하는 건 아니에요. 지역사회통합돌봄이라는 개념을 도입하는 시점에서 지금 정부에서 추구하는 방향이나 방식이 조금 달라졌으면 하는 건 있어요.
가장 크게는 도시와 농촌은 접근 방식이 달라야 하고, 지금처럼 시·군·구 단위가 아니라 읍·면·동 단위로 가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농촌형 면단위 지역사회통합돌봄을 잘하는 게 의료조합의 바람이기도 합니다.
작년부터 의료조합을 중심으로 행정복지센터 사회복지팀, 보건소에 다양한 제안을 했어요. 현재 우리 수준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 같이 공부하고 방향성을 찾기 위해 한 달에 한 번 모여서 이야기 해보자고. 그런데 행정과 같이 모이는 게 아직은 쉽지는 않아요. 행정과 민간, 민간에서도 개인과 주민조직, 공공조직들을 어떻게든 엮어서 커뮤니티케어를 하고 싶은 이유는 조금만 협력하고 조율하고 공유하면 해결되는 지점들이 있기 때문이거든요. 그런데 그 필요와 문제의식이 좀처럼 공유되지 않는 거예요.

** 최문철 대표는 홍성우리마을의료조합 사무국장으로 농촌형 면단위 지역사회통합돌봄 모델을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사진촬영 : 바라봄사진관)
민-관이 함께 협력하고 조율하고 공유하는 커뮤니티케어를 어떤 형태로 구현하고 싶은가요?
홍성은 작년부터 주민자치회 시범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저도 주민참여자로 건강복지분과를 만들고, 관련 의제들을 조율하고 협력하는 일들을 도모하고 싶었어요. 지역사회 전체를 건강하게 만드는 좋은 방식이니까요. 의료조합 사무국장이자, 주민자치회 건강복지분과위원인 저와 동료 분과 위원들, 읍내 보건소와 행정복지센터 공무원이 한자리에 모여서 정부가 추진하는 커뮤니티케어 모델과 정보들을 찾아 공동학습을 진행했어요. 그리고 서로에게 필요한 것들을 면 단위에서 함께 탐색하고 발굴해서 해소할 수 있는 최소단위의 완결구조를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모든 걸 해결하겠다가 아니라 면단위에서 의료복지에 어떤 필요가 있는지, 어떤 자원들이 있는지 꺼내서 매칭해보자는 아이디어였어요. 지역 안에서 일을 할 때 제일 먼저 하는 작업이잖아요. 각각은 열심히 일하는데, 같이 공유하고 협력하지 않으니까 사각지대가 생기고 중복이 생겨요.
민-관이 협력해서 기존의 의료복지 분야에서 생기는 중복과 누락의 문제를 해결해보자는 시도였군요.
네, 말씀하신 대로 중복과 누락이 있는지 살피려면 면단위 안에서 행정복지센터, 주민 조직인 주민자치회, 의료조합이 한 자리에서 만나야 하는데 쉽게 안 뭉쳐지더라고요. 시간이 더 걸리겠지만, 최종적으로는 마을의 모든 자원을 조율하고 협력하는데 주민자치회가 주축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가장 바람직한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아직 갈 길이 먼가요?
작년에 홍동면 주민 원탁회의에서 발굴한 노인, 복지 관련 의제들을 주민자치회 건강복지분과에서 7개로 정리하고, 노인들은 실제로 어떤 주제가 가장 먼저 해결되기를 바라는지 물어보는 면담조사를 진행했어요. 홍동면 3,500명 인구 중에 65세노인 인구가 1,200명입니다. 그 중 120명을 대상으로 7개 의제에 대한 질문들을 하나하나 물어보고, 마지막에 우선순위를 물었더니 1순위가 이동지원이었어요. 원탁회의에서는 가장 하위순위였던 의제를 당사자들은 제일 먼저 해결해 줬으면 좋겠다는 거예요.
농촌의 교통문제는 정말 심각해요. 버스노선은 면단위 중심이 아니라, 읍내 중심이에요. 면단위 안에서 순환하는 구조가 아닌 셈이지요. 하루 4대 있던 버스가 올 초에 3대로 줄기도 했어요. 버스정류장과 멀리 떨어진 집도 많고, 자가용이 없는 노인들 중 보행이동이 어려운 분들도 아주 많아요. 버스 계단은 너무 높아서 오르내리기가 정말 어렵고요.
면담조사에서 의료기관 이용에 대해 물었더니, 의료비용이나 불친절이 문제가 아니었어요. 교통이 불편하고, 걷기가 힘들어서 병원가기가 너무 어렵다고들 말씀하셨어요. 다른 건 몰라도 의료기관 이동만큼은 꼭 해결하고 싶은데, 자칫하면 환자유인 알선행위로 의료법에 저촉될 수 있대요. 게다가 운수 관련법과 각종 이권도 아주 복잡해요.
누가 이 난제를 풀 수 있을까요? 주민들이 관공서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만으로는 안 돼요. 지금까지 아무도 문제제기를 하지 않았을까요? 공공과 민간이 조직적으로 만나서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대안을 함께 찾아야 해요. 교통문제를 한 방에 해결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한 번에 한 발짝씩만이라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으면 좋겠어요.
#. 불같이 일을 만들지 말고 주어지는 일을 물처럼 하자
이렇게 어려운 과정을 겪으면서 일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왜 이렇게 열심히 하세요?
저는 사명감이나 희생으로 묶이고 싶지는 않아요. 누구에게도 희생을 요구하거나 강요하고 싶지도 않고요. 왜 그렇게 열심히 하냐고 질문한다면 글쎄요...
서울에서 홍성으로 내려오기 전에 4년 정도 성인발달장애인들과 일주일에 한 번씩 꾸준히 만나는 기회가 있었어요. 그들의 삶을 보면서 하루라도 더 살다 가야 한다는 부모님들의 얘기가 무슨 의미인지 절절히 느껴지는 부분이 있었어요.
당시에 이주민 관련 NPO에서 일했어요. 이주민 대상으로 정부 위탁사업을 하는 과정에서 우리의 지원이 오히려 건강한 자립과 공동체 조직에 방해가 되는 느낌도 들었어요. 그때 농촌에 내려가서 농장을 일구면서 살고 싶은데, 어느 정도 자리가 잡히면 시설은 아니지만 그분들이 우리 동네로 오시면 같이 좋은 시간 보내고, 농장에 와서 같이 일하는 기회를 만들면 좋겠다고 막연하게 생각했어요.
개인적으로 내가 독립적으로 살아가는데 누군가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희생을 요구하지 않고 도움을 주고받으며 살 수 있으면 좋겠고 우리 아이를 조금 더 자연과 가깝고 사람들이 어울려 사는 마을에서 살게 하고 싶다는 바람이 있었어요.
마침 손에 잡힌 마하트마 간디의 <마을이 세계를 구한다>에서 이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농부라고 소개하는 거예요. 농사를 지으면 자립할 수 있고. 자립할 수 있으면 좀 더 자율적으로 마음껏 활동할 수 있겠다는 환상을 가지고 풀무학교 전공부에 입학을 했는데, 2년을 공부하고 나니 저라는 사람은 <마을이 세계를 구한다>에 나오는 마을일꾼처럼 될 수 없다는 걸 철저하게 깨닫고 그 환상이 깨졌어요.
그때 불같이 일을 만들거나 벌이려고 하지 말고 주어지는 일을 물처럼 하겠다고 마음 먹었어요. 꿈뜰의 중간 역할을 제안 받으면서 장애인, 이주여성, 노인과 어울릴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던 꿈이 생각보다 빨리 시작된 셈이에요
그때 생각한대로 진짜 물처럼 일하면서 흘러왔나요?
농촌에서 하고 싶었던 일이었고, 대안적인 삶의 방식이라고 생각했으니까 처음엔 굉장히 의욕적이었어요. 기본소득처럼 동네 분들이 챙겨주시는 돈도 너무 고마웠고요. 재미있게 일했고 동료들이 하나둘씩 생기는 좋은 변화도 있었어요. 그런데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하려면 규모와 역량을 키워야 하는데 스스로의 역량도 아쉽고, 꿈뜰의 성장도 느리고, 주변의 관심도 생각보다 천천히 올라가는 거예요.
농촌 면단위에서 장애라는 이슈만으로 꿈뜰이 지속할 수 있는 힘을 모아내기 어려웠어요. 그러면서 장애에서 노인으로 돌봄의 영역을 넓히면 주민 전체와 연결되고 의료조합이라는 큰 틀로 엮어 낼 수 있을 거라 상상했지요.
의료조합에서 일하면서 농촌 인구 감소와 삶의 질이 맞물려 있는 것이 보였어요. 아무리 조합차원에서 의료복지 여건을 개선하려고 노력해도 인구가 줄어들면 버스가 줄어들고, 가게가 사라지고 의료-복지-교육 기관들도 유지하기 어려워집니다. 그럴수록 삶의 질은 더욱 낮아져서 인구는 더 줄어들 수밖에 없죠. 인구감소와 삶의 질 문제는 의료조합에서 한 단계 더 올라가 주민자치회 차원에서 대안을 마련해야한다고 생각했어요.
장애와 꿈뜰에서 돌봄과 의료조합으로, 돌봄과 의료조합에서 삶의 질과 주민자치회로 문제 인식과 대응 조직이 조금씩 확장되는 것은 물처럼 자연스러운 흐름이기는 하네요. 아직은 문제가 해결될 희망이 보이지 않아서 힘들기 하지만요.
그래도 조금씩 나아가고 있다고 봐도 되지 않을까요?
주민자치회가 지역사회에서 적절한 위상을 가지고, 조율과 협력을 감당할 만한 힘을 가지기 위해서는 시간이 더 필요해 보여요. 방향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생각하지만 문제는 저의 깜냥이에요. 대안을 찾아가는 흐름은 자연스러웠지만 힘에 부치네요. 저의 역할을 한 단계 아래로 축소하는 것이 좋을지, 아니면 역량이 채워지는 동안 어떻게든 버텨내는 것이 좋을지 늘 고민입니다.
오늘 아침에 동료가 말하기를, 지역 활동을 오래한 사람은 어느 순간 시니컬해지더라는 거예요. 저는 냉소적인 사람도 되고 싶지 않고, 앓는 소리만 하는 사람 역시 되고 싶지 않아요. 지금은 절망적인 현실을 회피하지 않고 인정하면서도, 하루하루는 즐겁고 유쾌하게 살고 싶습니다.
여러 가지 걱정에 짓눌려 조금 우울한 시간을 보냈다는 글을 읽었어요. 이제는 최문철만의 버티는 힘이 생긴 것 같은데요?
시간이 많이 필요했어요. 힘든 이야기를 꺼낼 수 있는 기회와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는 사람들이 가까이 있어 되게 고마워요. 꿈뜰 동료들, 의료조합 동료들, 가족, 옆집 이웃, 목요일 저녁마다 같이 책 읽고 이야기 나누는 그룹도 있고요. 조금씩 나아가려고 애쓰는 동료들의 모습도 큰 힘이 되더라고요.
혹시 좀처럼 해결되지 않는 농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출마를 하거나 정치를 해 볼 생각은 없나요?
개인의 노력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구조적인 문제들이 있잖아요. 그런 일들이 계속 해결되지 않고 쌓이는 지점들이 제일 아쉬워요. 정치가 답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해 본 적은 있어요. 정치의 영역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제 자신을 잃지 않고 그 일을 감당해 낼 역량이 저에게는 없어요. 고통스럽지 않게, 담담하게 해낼 자신도 없고요. 이 짧은 인생에서.
#. 더디더라도 한번 시작된 변화는 쉽게 흔들리거나 사라지지 않는다는 믿음

* 사진촬영 : 바라봄사진관
그렇지만 지역 안에서 돌봄의 공간을 만들고 싶은 포부가 있잖아요.
그러게요. 그게 또 포부가 되네요. 10년 넘게 ‘왜 꿈뜰을 계속하고 있나요?’ 라는 질문을 받으면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니다.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거다 그리고 나와 내 아이들, 어머니를 위해 하는 일이다’라고 대답했어요. 그건 여전해요.
저는 농촌의 장점 중에 하나가 사람들이 물리적인 공간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내가 살아갈 공간을 잘 가꾸는 일, 삶의 영역과 반경을 좋게 만드는 노력은 당연히 누구나 할 수 있고 해야 되는 게 아닐까 생각해요. 왜냐하면 우리는 집 안에서만 사는 게 아니니까. 여기는 내가 살아갈 그리고 내 가족, 이웃이 같이 살아갈 공간이니까 그 공간을 잘 만드는 건 꼭 필요하고 중요한 일이잖아요.
농촌은 변화가 더디다고 하지요. 자원도 없고 사람도 없어서 그렇다고.
그런데 정말 아무 것도 없지는 않아요. 시간은 오래 걸리지만 시작된 변화는 쉽게 흔들리거나 하루아침에 사라지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있어요. 제가 하던 일을 지금 당장 그만두더라도 저는 여기에서 계속 살아갈 거잖아요. 떠나거나 사라진다면 그게 제일 아쉽지만 그래도 함께 한 경험과 사람들은 남습니다. 그 과정을 기록으로 정성스럽게 남겨두었다면 아쉬움이 크게 줄어들 테고요.
최문철 대표가 생각하는 건강한 돌봄의 공간은 어떤 모습인가요?
세계보건기구는 몸과 마음의 관계가 모두 안녕할 수 있어야 진짜 건강한 것이라고 정의해요.
의료조합에서 조합원들이 바라는 돌봄과 돌봄공간의 모습을 8가지로 정리했더니 주민들이 지금까지 살아왔던 연속성을 이어가면서 삶의 활력과 즐거움이 있는 새로운 다양성이 계속 이어지기를 바라고 있었어요. 연속성과 다양성이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있는 공간, 그 안에서 우리가 같이 살고 싶은 마음이죠.

* 홍성우리마을의료조합 조합원들이 바라는 돌봄 공간의 8가지 모습 (제공 : 꿈이자라는뜰)
#. 한 공간에 머물며 공간을 가꾸고 찾아오는 사람을 잘 맞이하고 싶은 자유로운 사람
마지막 질문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5년 후를 한번 상상해본다면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요?
되게 무거운 질문이네요. 5년 후에 뭐하고 있을까요? 단순하게 바람을 이야기하면 대표나 사무국장의 일은 그만하고 정원이 있는 꿈뜰 같은 공간에서 몸 쓰는 일하면서 오시는 손님을 잘 맞이하고 싶어요. 커피도 내려주고 이야기도 들어주고.
지금은 의료조합과 꿈뜰을 왔다 갔다 하면서 일을 하고 있는데 한 공간에 계속 머무르면서 일하고 싶어요. 제가 머무는 공간을 잘 가꾸고,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좋은 시간을 선물하고 필요하다면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는 공간 안에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 바람이 바람에서 끝나지 않고 꼭 실현되면 좋겠어요.
그러려면 먼저 많은 일들을 내려놔야겠죠. 의료조합이 어느 정도 틀을 잡으면 이 일을 더 잘할 수 있는 사람한테 넘겨주고 꿈뜰로 돌아와서 여기에 집중하는 게 개인적인 바람이기도 합니다. 제 깜냥으로는 이 정도 그릇을 잘 가꾸고 집중하기도 어렵거든요(웃음).
꿈뜰에서 하고 싶었던 건 누군가 한 사람이라도 상근하는 거였어요. 지역에서 살아갈 장애가 있는 졸업생에게 선생님 보러 오고 싶으면 언제든지 와도 좋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지금은 맞이할 여유가 없는 게 너무 아쉬워요. 그렇게 붙박이로 지낼 수 있으면 좋겠다가 노년의 바람이었어요.
조금 빨리 시작해서 노년까지 하시면 되죠. 진짜 마지막입니다. 변화를 만드는 사람 최문철은 어떤 사람이 되고 싶나요?
가끔은 주목도 받고 싶고 영향력도 가지고 싶어요. 하지만 그러다가 자신을 잃고 싶지는 않아요. 나와 이웃, 세상의 변화를 갈망하지만 휘둘리고 싶지도 않고, 휘두르고 싶지도 않아요. 사람들이 자기 모습으로 살아가고, 바라는 모습으로 성장할 수 있게 돕고 싶어요. 어떻게 하면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그게 가장 큰 고민이기도 해요.
피플포체인지가 만난 농촌 마을공동체활동가 최문철은 차근차근 흩어진 구슬을 꿰고, 엉킨 실을 풀어가는 좋은 삶의 기록자입니다.
#홍성 #충남 #꿈이자라는뜰 #정원 #장애 #돌봄 #의료 #최문철 #변화를만드는사람들 #피플포체인지 #아름다운재단
글쓴이 : 이경원
기획, 기록, 연결로 변화를 만드는 일과 사람을 돕는다.
일꾼: 어떤 일을 맡아서 하거나 맡아서 할 사람.
지역사회를 건강하게 만들고 싶은 최문철은 꿈이자라는뜰(이하. 꿈뜰) 대표일꾼이다. 장애를 농업과 마을로 연결해 장애인의 자립과 사회활동을 지원하고자 시작한 꿈뜰을 넘어, 농촌의 다양한 구성원들이 서로를 보살피고 연결되는 마을 돌봄 공간을 만들고 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만나서 어울리고 함께 일하는 농장 꿈뜰에 들어서니 휠체어 이용자를 위한 틀두둑이 눈에 먼저 들어온다.
꿈이자라는뜰 대표와 우리마을의료조합 사무국장으로도 활동하고 계시죠?
꿈뜰을 만든 지 10년이 넘어가는데 시작은 학교와 마을교사를 연결하는 중간역할이었습니다. 오랫동안 꿈뜰의 대표일꾼을 맡고 있지만, 사람들이 저만 바라보지 않게 하려고 애를 많이 썼어요. 2018년 8월에 의료조합 일을 병행해야겠다고 결정하고, 3년 동안 두 집 살림을 하고 있습니다.
코로나19로 꿈뜰도 어려움이 많을 것 같아요.
저희가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텃밭수업 일수가 1년에 30회 정도 되거든요, 작년에 코로나로 개학을 늦게 하면서 수업 일수가 15회에서 20회로 줄어서 텃밭수업 수입이 많이 줄었습니다. 평소에도 워낙 요청을 안 하기도 했지만 다들 어려운데 도와달라고 후원 요청하기도 조심스러웠어요. 2020년은 200만 원 정도 적자였는데 도토리라는 지역의 경제협동체에서 대출받아서 한 해를 무사히 잘 넘겼어요.
* 꿈뜰은 한해의 활동, 농장 일꾼들의 이야기, 수입과 지출, 같이 활동한 사람들을 꼼꼼히 기록한 꿈이자라는뜰 편지를 이웃들에게 보낸다. (제공 : 꿈이자라는뜰)
#. 누구도 강요하지 않고, 부담주지 않고 함께 이야기하고 결정하는 꿈뜰
꿈뜰의 운영에는 특별함이 있다고 들었어요.
저희는 직원협동조합 방식으로 운영되는데요, 한 해가 끝나면 한 해 동안 어떤 일을 했는지 정리하고, 새해엔 어떻게 일할지 이야기해요. 누구도 이 일을 계속하라고 강요하거나 부담주지 않아요. 자기 상황에 따라서 이 일을 계속할지, 시간을 줄일지, 더 늘릴지를 결정하고 활동비와 급여를 얼마로 맞출지도 이야기해요.
3년 전에 시급을 5천 원에서 6천 원으로 큰 맘 먹고 올렸어요. 그 다음해에는 시급으로 하지 말고 기본소득처럼 가면 어떨까 해서 기본소득형태로 지급하고 있는데 나가는 돈이 크게 달라지진 않았습니다(웃음).
꿈뜰은 저처럼 일주일에 하루 일하는 사람도 있고, 이틀 일하는 사람도 있고, 3일 일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장애인 일꾼들은 하루에 2시간씩 주 3일을 일해요. 여기 있는 사람들 대부분이 지역에서 투잡 쓰리잡 뛰면서 살고 있어요.
* 협동조합방식으로 운영되는 꿈이자라는뜰. 모처럼 꿈뜰 일꾼들이 모두 모였다. (사진촬영 : 바라봄사진관)
활동비도 중요하지만 활동비와 상관없이, ‘나는 왜 이 일을 계속하고 있지’라는 질문을 저도 그렇고 아마 다들 하고 있을 거예요. 저희는 일을 하라고 강요하거나 부담을 느끼게 하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어쩌면 그런 부분이 자율적으로 스스로를 여기다 묶어놓지 않을까라는 생각은 들어요. 아울러 이 공간에서 일을 할 때 돈이 아닌 다른 보상을 같이 만들기 위해서도 애를 쓰고 있어요.
저희가 굉장히 좋아하는 시간이 밥 먹는 시간입니다. 우리가 농사짓고 우리가 차린 음식을 같이 먹는 시간을 모두 좋아하고 그 자체로 서로가 고마워해요.
각자 처한 상황은 다르지만 여기 오면 자기의 속내를 이야기하고, 우리가 일하고 싶고 가꾸고 싶은 조직이나 공간을 만드는 것에 자율성과 자발성이 보장된다는 게 계속 같이 지내는 이유가 아닐까 싶어요.
3년 동안 대표일꾼이 두 집 살림을 하면서 어려움은 없었나요?
그 전에도 혼자서 열일을 한 건 아니었어요. 동료들은 부하직원이 아니고, 또 지시에 따라 일하지 않는 것이 꿈뜰이 가진 장점이자 그동안 노력으로 만들어 온 우리의 모양이었어요.
사회의 많은 곳에서 개국 공신이 좋은 역할도 하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오히려 그 사람이 문제가 되는 경우가 많잖아요, 다른 사람의 성장에 방해가 되거나 사람들을 의존적으로 만들어서 건강한 조직이 되지 못하는 상황들을 봤어요. 저는 20년이 지나면 무조건 제 역할을 그만둔다는 생각을 했어요. 믿고 맡기고 기다리면서 좀 아슬아슬한 순간도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래. 그때 믿고 맡기고 열어두기 잘했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2019년에 꿈뜰 동료들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보루, 그 일을 어떻게 혼자서 해결했어요? 어떻게 대응했어요? 어떻게 그걸 할 수 있었어요?”였어요. 제가 아무리 어떤 면에서는 권한을 포기하고 기회를 공유하더라도 정말 확실하게 빈자리를 만드는 것 만큼 좋은 방법은 없는 것 같아요. 저도 포기되어지는 것이 자연스럽고요.
#. 누구나 올 수 있고 누구나 누릴 수 있는 아름답고 효율적인 공간으로
그럼 올해도 꿈뜰은 계속 잘 가꿔지고 있겠네요.
지금도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수업은 계속하고 있어요. 장애인 일꾼들도 계속 월, 화, 수 주 3일 일하고 있고요. 저희들도 월, 화, 수 3일은 계속 농장 가꾸면서 일하고 있어요. 그리고 농장은 저희만 사용하는 건 아니에요.
농장을 마을사람들과 공유한다는 의미인가요? 누가, 어떤 용도로 사용하나요?
꿈뜰 마을교사가 아닌 다른 마을교사가 이 공간에서 어린이집 장애인 친구들과 수업을 진행해요. 작년, 재작년은 어르신들이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한 달에 한 번 어르신들을 위한 공간으로 공유했고요. 2018년에 비장애청소년들이 ‘마을 정원과 나’라는 주제로 여기서 활동했는데 첫해는 제가 진행하고 지금은 동네 다른 마을교사가 운영하고 있어요. 여성농업인센터에서 여성그룹이 된장을 만드는 콩농사를 하고 싶을 때, 예산홍성환경운동연합에서 파타고니아의 후원을 받아서 노지에서 돼지 키우는 프로젝트를 하는데 농장 일부를 공유해서 사용했었어요. 농장을 아이들, 어르신들, 동물들, 또 비장애인 청소년들과 공유하는 기회들이 종종 생겼어요. 저희가 원래 바랐던 모양대로 자연스럽게 흘러왔어요. 작년부터는 코로나 때문에 그런 것들이 확 줄어들었죠. 여전히 이어지는 것도 있고 멈춘 것도 있고.
* 휠체어 이용자를 위한 틀두둑 (사진제공 : 꿈이 자라는 뜰)
꿈뜰은 장애인들이 자연과 함께 자립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농장에서 장애인과 비장애인 그리고 다양한 세대가 같이 지낼 수 있는 공간으로 이미 변하고 있었네요.
그걸 아주 진하게 맛볼 수 있는 날이 ‘허브데이’예요. 농장에 잔치를 하는 날인데 첫 농장을 만든 2011년부터 해마다 계속 했어요. 작년에도 다행히 10월에 4일 동안 잔치를 했어요. 수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오후 2시에서 5시 사이에는 누구든지 이 공간에 와서 즐길 수 있게 만들었어요. 와서 즐기는 사람도 있지만 즐길 거리를 제공하는 사람들도 있어야 되잖아요. 비폭력 대화를 하는 사람도 오고, 책을 전시해 놓는 자리도 있고 떡을 구워주는 사람도 커피를 대접하는 사람도 있고.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하는 사람, 이 공간에 와보고 싶은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서 다 같이 즐기는 거죠.
2019년에 허브데이에 왔던 아이가 그냥 지나가는 말로 “엄마 여기 너무 좋아. 또 오고 싶어”라고 말하는 걸 들었어요. 그런 순간이 굉장히 흐뭇해요.
* 2020년 허브데이 풍경 (사진제공 : 꿈이자라는뜰)
꿈뜰이 농촌 마을공동체에서도 굉장히 중요한 공유와 연대의 공간이네요.
꿈뜰을 만들 때 저희가 원했던 건 아름답고 효율적이고,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생태적인 공간이었어요. 그 기준이 장애인이었죠. 휠체어를 탄 사람도 올 수 있고, 소리를 지르는 사람도 올 수 있는 곳이면 어린 아이들이 와도 괜찮고 어르신들이 와도 좋은 공간이라고 생각했어요. 장애인들이 여기서 어떤 활동을 하는지, 누구와 활동하는지도 중요하지만 공간 자체가 주는 느낌이나 분위기가 있잖아요. 아름다운 공간과 좋은 분위기를 누리는 사람들을 장애인으로 국한시키지 않기로 했어요. 사람들이 와서 공간을 공유하고 즐기는 과정에서 당연히 더 넓어져야 된다는 생각으로 그 길을 열어둔 셈이죠.
#. 꿈뜰의 매력은 우리가 만들어가는 방식이 있다는 것
꿈뜰에서 함께 일하려면 어떤 선발과정을 거쳐야 하나요?
저희가 일꾼을 선발할 만큼 선망의 직종이 아니잖아요. 누구나 올 수 있어요. 대신 서로를 관찰하는 시간을 갖죠. 특별하거나 거대한 계약을 맺지는 않아요.
꿈뜰 농장 일꾼들의 약속(함께 열기)
•기분, 부탁, 질문을 솔직하게 말하기
•실수해도 괜찮아. 그렇다고 모른 척 할 것은 아니야
•무엇이 불편한지 솔직하게 말해줘
•부드럽고 자세하게 질문하고 부탁하기
꿈이자라는뜰의 질문과 부탁
•자신과 주변을 살피고 있나요? 어려운 일이 생기면 멈추자고 이야기할 수 있나요?
•일과 사람, 결과와 과정을 모두 소중하게 여기고 균형을 맞추고 있나요?
•모두의 욕구를 소중히 여기고, 함께 만족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봅시다.
•내 곁에 있는 사람을 느낌과 욕구를 가지고 있는 존재로 만나고 있나요?
•살핌과 보살핌을 위해, 따로 시간을 내어 정리하고 기록을 남겨봅시다.
* 꿈뜰농장 일꾼들은 ‘꿈뜰 일꾼들의 약속’과 ‘꿈이자라는뜰의 질문과 부탁’을 함께 읽고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지금은 어느 정도는 꿈뜰만의 색깔과 모양이 잡혀가는 과정이어서 일해보고 싶다는 사람들도 있지만 초기에는 되게 어려웠어요. 왜냐하면 제 입장에서는 급여나 활동비를 보장할 수 없는 상황에서 함께 일하자고 말하는 게 어려웠거든요. 아마 장애, 교육, 농사에 어느 정도 전문성이 있어야 꿈뜰에서 일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사람들도 있었을 거예요.
그런 전문성을 다 갖춘 사람은 아마도 우리나라엔 아직 없지 않을까요? 지금은 일단 함께 일해보고 경험하면서 우리에게 필요한 전문성을 쌓아가는 방식이에요.
신기하게도 초창기 방향에서 조금씩 다듬고 같이 만들어 가면서 새로운 동료가 하나 둘씩 연결이 되고 있어요. 생각보다 부침이 심하지도 않았고 돈 때문에 들어왔다 돈 때문에 나가는 경우도 거의 없었어요. 오히려 동료들의 분위기는 ‘적게 일하고 적게 벌고 싶다’여서 일을 막 늘리지 않아요. 또 감당하기 어려우면 하지말자고 서로 합의해서 결정해요.
혹시 소개할 만한 사례가 있나요?
허브데이는 손님을 초대해 잔치를 여는 날이기도 하지만 잔치를 즐기고도 싶은데 부엌데기로 일하는 게 힘들어서 또 하고 싶은 마음이 나지 않는다고 동료가 이야기 하는 거예요. 그래서 하지 않기로 결정했어요. 그리고는 ‘우리가 이걸 왜 하고 싶었지? 어떻게 하면 아무도 부엌데기가 되지 않는 잔치를 만들 수 있을까?’ 얘기하면서 방식을 바꿨어요. 오는 사람들이 자기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펼칠 수 있도록 자리만 깔아주기로. 우리가 상을 차리고 대접하는 방식에서 상은 차리되 잔치에서는 최소한의 역할만 하자고 했어요. 장애인이 무대에 올라가서 멋진 모습을 보여주는 방식에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만나서 섞이는 자리, 한 방향의 무대를 보지 않고 장터 같은 잔치를 만드는 거죠. 방식을 바꿨더니 다들 만족스럽고 편안하고 즐거웠어요.
어려움을 말할 수 있고 그걸 같이 바꿀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건강한 조직이라는 증거네요.
우리 안에서는 해야 하기 때문에 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어요. 다른 사람들의 희생을 요구하는 것도 좋은 게 아니잖아요. 적어도 꿈뜰에서는 덜 벌고 덜 누리더라도 누구도 희생하지 않고 누군가에게 지시하지 않기 위해 계속 다듬어 왔어요.
우리가 만들어가는 방식들이 생겨서 고맙고, 그렇게 전환할 수 있어서 되게 좋아요.
#장애와 함께 일하는 돌봄농장, 발달장애 청소년을 위한 교육농장
예전 인터뷰에서 꿈뜰이 하는 일을 사회적농업이나 교육농업, 치유농업의 영역으로 분류하고 유형 짓는 것에 대해 불편함이 있다고 했어요.
지금도 여전히 그렇습니다. 저희가 사회적농업이나 교육농업, 치유농업을 하겠다고 이 일을 시작한 게 아니었기 때문이에요. 어느 순간 우리를 설명할 수 있는 개념이 생기기 시작했다는 건 고마운 일이지만 정립되지 않은 개념에 갇히고 싶지 않아요. 한편으론 이 개념이 자리 잡히는 데 기여하고 싶은 마음도 있어요. 그래서 ‘저희는 사회적 농업을 하는 곳입니다’라고 설명하거나 ‘사회적 농장입니다’라고 하지 않아요. ‘저희는 장애와 함께 일하는 돌봄농장, 발달장애 청소년을 위한 교육농장’이라고 소개합니다. 물론 그 뒤에 계속 부연 설명이 더 필요하긴 해요.
우리마을의료조합(이하 의료조합)이 농림축산식품부 사회적 농업에 선정되었죠?
네, 명확하게 말하자면 의료조합이 출자해서 만든 홍성우리마을돌봄영농조합법인(이하 영농조합)이 농지를 마련하고, 2020년 말에 영농조합이 사회적농업 활성화 지원사업에 선정되었어요. 올해부터 사회적농업 활동들을 수행하고 있어요. 꿈뜰은 장애가 중심이라면 의료조합은 노인을 위한 공간을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 공간은 등급 여부에 상관없이 누구나 올 수 있어서 노인들이 요양원에 고립되는 방식이 아니라 지역 주민들과 계속 어울릴 수 있는 돌봄농장을 상상했어요.
농지와 법인 조직체를 가지고 있는 영농조합, 이웃 농장인 꽃잎열매밭, 그리고 꿈뜰까지 세 그룹과 의료조합까지 합쳐서 이 일을 같이 하고 있어요.
지금은 영농조합이 마련한 농지에 신규 농장을 조성하는데 집중하고 있어요. 꿈뜰은 장애인일꾼들이 일할 때 옆에서 챙기는 역할을 하는 동료일꾼에게 강사비를 지급하고, 지역주민들을 초대해서 저희가 차리는 밥상을 나누고 같이 이야기하는 네트워크 활동도 해요. 꽃잎열매밭은 노인들을 위한 원예프로그램으로 진행하고요.
#. 모든 지원 사업에는 꼭 필요한 곳에 편하게 예산을 쓰도록 유연한 운영이 필요
사회적농업을 하는 농장들을 만나면 활동을 잘하고 싶고, 예산도 잘 쓰고 싶은데 코로나로 상황이 여의치 않아서 많이 아쉬워해요. 1년 동안 해보니 어떤가요?
네. 저희도 그런 지점들이 좀 아쉬워요. 코로나로 대면 활동이 어려운 상황에서 올해 예산은 올해 다 써야 하는 규정을 좀 유연하게 바꾸면 좋겠다는 바람도 있어요. 제가 중간에서 예산을 유연하게 다룰 수 있는 사람이라면 대면 활동이 어려운 상황에서는 시설보수나 개선 예산 비중을 더 늘려서 기반조성에 투자할 수 있게 해주거나, 올해 예산을 다 쓰지 못하면 내년으로 유예해주는 방식을 검토할 것 같아요.
지원을 받아도 정말 필요한 곳에 편하게 예산을 쓸 수 없다는 게 가장 어려워요.
개인적으로 지난 10년 동안 제일 힘들었던 때가 2017년이었거든요, 그전까지는 한 번도 지원을 받지 않다가 농업기술센터에서 처음으로 5천만 원을 지원받았어요.
2천만 원이 시설 투자비였고, 3천만 원이 활동비였습니다. 활동비 중에 재료비와 외부강사비 외 실제 가장 많은 일을 하는 우리를 위한 인건비로 쓸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었어요. 일은 엄청 늘어났고, 또 가난했던 사람들이 큰돈을 지원받으니까 어떻게든 잘 쓰고 싶은 거예요. 농장을 옮겨야 할 시기라 새로운 터전 마련하는데 예산을 쓰고 싶은데 연말이 되도록 땅이 안 구해지는 거예요. 스트레스가 되게 심했어요. 담당 공무원이 저희 사정을 너무나 잘 이해해 주고 굉장히 유연하게 잘 대처해줬지만 되게 힘들었어요. 그때 겨우겨우 마련한 땅이 지금의 꿈뜰 농장이에요. 그 당시에도 사업비 사용이 조금만 더 유연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예산을 아주 어렵게 쓰고 나니 지원 사업이 너무 힘들었어요. 2018년에 농림축산식품부에서 사회적농업 지원 사업을 한다고 했을 때 안 하고 싶다, 우리가 행정적인 것들을 감당할 수 있을 때 시도하자고 했어요.
지금도 역시나 어렵지만 의료조합과 영농조합이 행정업무를 담당하고, 꿈뜰과 꽃잎열매밭에서 농부와 일꾼들이 실행하는 방식은 좋은 모델이라고 생각해요.
#. 민-관이 참여하는 면단위 농촌형 지역사회통합돌봄 모델 만들고 싶어
변화를 만드는 사람 최문철이 그동안 지역에서 해 왔고, 지금도 하고 있고, 앞으로 가고자 하는 방향이 결국 지역사회통합돌봄, ‘농촌형 커뮤니티케어’와 같은 결이라고 생각해요.
네, 그런 걸 생각하고 있기는 해요. 누가 커뮤니티케어를 하라고 해서 하는 건 아니에요. 지역사회통합돌봄이라는 개념을 도입하는 시점에서 지금 정부에서 추구하는 방향이나 방식이 조금 달라졌으면 하는 건 있어요.
가장 크게는 도시와 농촌은 접근 방식이 달라야 하고, 지금처럼 시·군·구 단위가 아니라 읍·면·동 단위로 가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농촌형 면단위 지역사회통합돌봄을 잘하는 게 의료조합의 바람이기도 합니다.
작년부터 의료조합을 중심으로 행정복지센터 사회복지팀, 보건소에 다양한 제안을 했어요. 현재 우리 수준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 같이 공부하고 방향성을 찾기 위해 한 달에 한 번 모여서 이야기 해보자고. 그런데 행정과 같이 모이는 게 아직은 쉽지는 않아요. 행정과 민간, 민간에서도 개인과 주민조직, 공공조직들을 어떻게든 엮어서 커뮤니티케어를 하고 싶은 이유는 조금만 협력하고 조율하고 공유하면 해결되는 지점들이 있기 때문이거든요. 그런데 그 필요와 문제의식이 좀처럼 공유되지 않는 거예요.
** 최문철 대표는 홍성우리마을의료조합 사무국장으로 농촌형 면단위 지역사회통합돌봄 모델을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사진촬영 : 바라봄사진관)
민-관이 함께 협력하고 조율하고 공유하는 커뮤니티케어를 어떤 형태로 구현하고 싶은가요?
홍성은 작년부터 주민자치회 시범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저도 주민참여자로 건강복지분과를 만들고, 관련 의제들을 조율하고 협력하는 일들을 도모하고 싶었어요. 지역사회 전체를 건강하게 만드는 좋은 방식이니까요. 의료조합 사무국장이자, 주민자치회 건강복지분과위원인 저와 동료 분과 위원들, 읍내 보건소와 행정복지센터 공무원이 한자리에 모여서 정부가 추진하는 커뮤니티케어 모델과 정보들을 찾아 공동학습을 진행했어요. 그리고 서로에게 필요한 것들을 면 단위에서 함께 탐색하고 발굴해서 해소할 수 있는 최소단위의 완결구조를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모든 걸 해결하겠다가 아니라 면단위에서 의료복지에 어떤 필요가 있는지, 어떤 자원들이 있는지 꺼내서 매칭해보자는 아이디어였어요. 지역 안에서 일을 할 때 제일 먼저 하는 작업이잖아요. 각각은 열심히 일하는데, 같이 공유하고 협력하지 않으니까 사각지대가 생기고 중복이 생겨요.
민-관이 협력해서 기존의 의료복지 분야에서 생기는 중복과 누락의 문제를 해결해보자는 시도였군요.
네, 말씀하신 대로 중복과 누락이 있는지 살피려면 면단위 안에서 행정복지센터, 주민 조직인 주민자치회, 의료조합이 한 자리에서 만나야 하는데 쉽게 안 뭉쳐지더라고요. 시간이 더 걸리겠지만, 최종적으로는 마을의 모든 자원을 조율하고 협력하는데 주민자치회가 주축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가장 바람직한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아직 갈 길이 먼가요?
작년에 홍동면 주민 원탁회의에서 발굴한 노인, 복지 관련 의제들을 주민자치회 건강복지분과에서 7개로 정리하고, 노인들은 실제로 어떤 주제가 가장 먼저 해결되기를 바라는지 물어보는 면담조사를 진행했어요. 홍동면 3,500명 인구 중에 65세노인 인구가 1,200명입니다. 그 중 120명을 대상으로 7개 의제에 대한 질문들을 하나하나 물어보고, 마지막에 우선순위를 물었더니 1순위가 이동지원이었어요. 원탁회의에서는 가장 하위순위였던 의제를 당사자들은 제일 먼저 해결해 줬으면 좋겠다는 거예요.
농촌의 교통문제는 정말 심각해요. 버스노선은 면단위 중심이 아니라, 읍내 중심이에요. 면단위 안에서 순환하는 구조가 아닌 셈이지요. 하루 4대 있던 버스가 올 초에 3대로 줄기도 했어요. 버스정류장과 멀리 떨어진 집도 많고, 자가용이 없는 노인들 중 보행이동이 어려운 분들도 아주 많아요. 버스 계단은 너무 높아서 오르내리기가 정말 어렵고요.
면담조사에서 의료기관 이용에 대해 물었더니, 의료비용이나 불친절이 문제가 아니었어요. 교통이 불편하고, 걷기가 힘들어서 병원가기가 너무 어렵다고들 말씀하셨어요. 다른 건 몰라도 의료기관 이동만큼은 꼭 해결하고 싶은데, 자칫하면 환자유인 알선행위로 의료법에 저촉될 수 있대요. 게다가 운수 관련법과 각종 이권도 아주 복잡해요.
누가 이 난제를 풀 수 있을까요? 주민들이 관공서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만으로는 안 돼요. 지금까지 아무도 문제제기를 하지 않았을까요? 공공과 민간이 조직적으로 만나서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대안을 함께 찾아야 해요. 교통문제를 한 방에 해결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한 번에 한 발짝씩만이라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으면 좋겠어요.
#. 불같이 일을 만들지 말고 주어지는 일을 물처럼 하자
이렇게 어려운 과정을 겪으면서 일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왜 이렇게 열심히 하세요?
저는 사명감이나 희생으로 묶이고 싶지는 않아요. 누구에게도 희생을 요구하거나 강요하고 싶지도 않고요. 왜 그렇게 열심히 하냐고 질문한다면 글쎄요...
서울에서 홍성으로 내려오기 전에 4년 정도 성인발달장애인들과 일주일에 한 번씩 꾸준히 만나는 기회가 있었어요. 그들의 삶을 보면서 하루라도 더 살다 가야 한다는 부모님들의 얘기가 무슨 의미인지 절절히 느껴지는 부분이 있었어요.
당시에 이주민 관련 NPO에서 일했어요. 이주민 대상으로 정부 위탁사업을 하는 과정에서 우리의 지원이 오히려 건강한 자립과 공동체 조직에 방해가 되는 느낌도 들었어요. 그때 농촌에 내려가서 농장을 일구면서 살고 싶은데, 어느 정도 자리가 잡히면 시설은 아니지만 그분들이 우리 동네로 오시면 같이 좋은 시간 보내고, 농장에 와서 같이 일하는 기회를 만들면 좋겠다고 막연하게 생각했어요.
개인적으로 내가 독립적으로 살아가는데 누군가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희생을 요구하지 않고 도움을 주고받으며 살 수 있으면 좋겠고 우리 아이를 조금 더 자연과 가깝고 사람들이 어울려 사는 마을에서 살게 하고 싶다는 바람이 있었어요.
마침 손에 잡힌 마하트마 간디의 <마을이 세계를 구한다>에서 이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농부라고 소개하는 거예요. 농사를 지으면 자립할 수 있고. 자립할 수 있으면 좀 더 자율적으로 마음껏 활동할 수 있겠다는 환상을 가지고 풀무학교 전공부에 입학을 했는데, 2년을 공부하고 나니 저라는 사람은 <마을이 세계를 구한다>에 나오는 마을일꾼처럼 될 수 없다는 걸 철저하게 깨닫고 그 환상이 깨졌어요.
그때 불같이 일을 만들거나 벌이려고 하지 말고 주어지는 일을 물처럼 하겠다고 마음 먹었어요. 꿈뜰의 중간 역할을 제안 받으면서 장애인, 이주여성, 노인과 어울릴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던 꿈이 생각보다 빨리 시작된 셈이에요
그때 생각한대로 진짜 물처럼 일하면서 흘러왔나요?
농촌에서 하고 싶었던 일이었고, 대안적인 삶의 방식이라고 생각했으니까 처음엔 굉장히 의욕적이었어요. 기본소득처럼 동네 분들이 챙겨주시는 돈도 너무 고마웠고요. 재미있게 일했고 동료들이 하나둘씩 생기는 좋은 변화도 있었어요. 그런데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하려면 규모와 역량을 키워야 하는데 스스로의 역량도 아쉽고, 꿈뜰의 성장도 느리고, 주변의 관심도 생각보다 천천히 올라가는 거예요.
농촌 면단위에서 장애라는 이슈만으로 꿈뜰이 지속할 수 있는 힘을 모아내기 어려웠어요. 그러면서 장애에서 노인으로 돌봄의 영역을 넓히면 주민 전체와 연결되고 의료조합이라는 큰 틀로 엮어 낼 수 있을 거라 상상했지요.
의료조합에서 일하면서 농촌 인구 감소와 삶의 질이 맞물려 있는 것이 보였어요. 아무리 조합차원에서 의료복지 여건을 개선하려고 노력해도 인구가 줄어들면 버스가 줄어들고, 가게가 사라지고 의료-복지-교육 기관들도 유지하기 어려워집니다. 그럴수록 삶의 질은 더욱 낮아져서 인구는 더 줄어들 수밖에 없죠. 인구감소와 삶의 질 문제는 의료조합에서 한 단계 더 올라가 주민자치회 차원에서 대안을 마련해야한다고 생각했어요.
장애와 꿈뜰에서 돌봄과 의료조합으로, 돌봄과 의료조합에서 삶의 질과 주민자치회로 문제 인식과 대응 조직이 조금씩 확장되는 것은 물처럼 자연스러운 흐름이기는 하네요. 아직은 문제가 해결될 희망이 보이지 않아서 힘들기 하지만요.
그래도 조금씩 나아가고 있다고 봐도 되지 않을까요?
주민자치회가 지역사회에서 적절한 위상을 가지고, 조율과 협력을 감당할 만한 힘을 가지기 위해서는 시간이 더 필요해 보여요. 방향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생각하지만 문제는 저의 깜냥이에요. 대안을 찾아가는 흐름은 자연스러웠지만 힘에 부치네요. 저의 역할을 한 단계 아래로 축소하는 것이 좋을지, 아니면 역량이 채워지는 동안 어떻게든 버텨내는 것이 좋을지 늘 고민입니다.
오늘 아침에 동료가 말하기를, 지역 활동을 오래한 사람은 어느 순간 시니컬해지더라는 거예요. 저는 냉소적인 사람도 되고 싶지 않고, 앓는 소리만 하는 사람 역시 되고 싶지 않아요. 지금은 절망적인 현실을 회피하지 않고 인정하면서도, 하루하루는 즐겁고 유쾌하게 살고 싶습니다.
여러 가지 걱정에 짓눌려 조금 우울한 시간을 보냈다는 글을 읽었어요. 이제는 최문철만의 버티는 힘이 생긴 것 같은데요?
시간이 많이 필요했어요. 힘든 이야기를 꺼낼 수 있는 기회와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는 사람들이 가까이 있어 되게 고마워요. 꿈뜰 동료들, 의료조합 동료들, 가족, 옆집 이웃, 목요일 저녁마다 같이 책 읽고 이야기 나누는 그룹도 있고요. 조금씩 나아가려고 애쓰는 동료들의 모습도 큰 힘이 되더라고요.
혹시 좀처럼 해결되지 않는 농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출마를 하거나 정치를 해 볼 생각은 없나요?
개인의 노력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구조적인 문제들이 있잖아요. 그런 일들이 계속 해결되지 않고 쌓이는 지점들이 제일 아쉬워요. 정치가 답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해 본 적은 있어요. 정치의 영역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제 자신을 잃지 않고 그 일을 감당해 낼 역량이 저에게는 없어요. 고통스럽지 않게, 담담하게 해낼 자신도 없고요. 이 짧은 인생에서.
#. 더디더라도 한번 시작된 변화는 쉽게 흔들리거나 사라지지 않는다는 믿음
* 사진촬영 : 바라봄사진관
그렇지만 지역 안에서 돌봄의 공간을 만들고 싶은 포부가 있잖아요.
그러게요. 그게 또 포부가 되네요. 10년 넘게 ‘왜 꿈뜰을 계속하고 있나요?’ 라는 질문을 받으면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니다.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거다 그리고 나와 내 아이들, 어머니를 위해 하는 일이다’라고 대답했어요. 그건 여전해요.
저는 농촌의 장점 중에 하나가 사람들이 물리적인 공간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내가 살아갈 공간을 잘 가꾸는 일, 삶의 영역과 반경을 좋게 만드는 노력은 당연히 누구나 할 수 있고 해야 되는 게 아닐까 생각해요. 왜냐하면 우리는 집 안에서만 사는 게 아니니까. 여기는 내가 살아갈 그리고 내 가족, 이웃이 같이 살아갈 공간이니까 그 공간을 잘 만드는 건 꼭 필요하고 중요한 일이잖아요.
농촌은 변화가 더디다고 하지요. 자원도 없고 사람도 없어서 그렇다고.
그런데 정말 아무 것도 없지는 않아요. 시간은 오래 걸리지만 시작된 변화는 쉽게 흔들리거나 하루아침에 사라지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있어요. 제가 하던 일을 지금 당장 그만두더라도 저는 여기에서 계속 살아갈 거잖아요. 떠나거나 사라진다면 그게 제일 아쉽지만 그래도 함께 한 경험과 사람들은 남습니다. 그 과정을 기록으로 정성스럽게 남겨두었다면 아쉬움이 크게 줄어들 테고요.
최문철 대표가 생각하는 건강한 돌봄의 공간은 어떤 모습인가요?
세계보건기구는 몸과 마음의 관계가 모두 안녕할 수 있어야 진짜 건강한 것이라고 정의해요.
의료조합에서 조합원들이 바라는 돌봄과 돌봄공간의 모습을 8가지로 정리했더니 주민들이 지금까지 살아왔던 연속성을 이어가면서 삶의 활력과 즐거움이 있는 새로운 다양성이 계속 이어지기를 바라고 있었어요. 연속성과 다양성이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있는 공간, 그 안에서 우리가 같이 살고 싶은 마음이죠.
* 홍성우리마을의료조합 조합원들이 바라는 돌봄 공간의 8가지 모습 (제공 : 꿈이자라는뜰)
#. 한 공간에 머물며 공간을 가꾸고 찾아오는 사람을 잘 맞이하고 싶은 자유로운 사람
마지막 질문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5년 후를 한번 상상해본다면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요?
되게 무거운 질문이네요. 5년 후에 뭐하고 있을까요? 단순하게 바람을 이야기하면 대표나 사무국장의 일은 그만하고 정원이 있는 꿈뜰 같은 공간에서 몸 쓰는 일하면서 오시는 손님을 잘 맞이하고 싶어요. 커피도 내려주고 이야기도 들어주고.
지금은 의료조합과 꿈뜰을 왔다 갔다 하면서 일을 하고 있는데 한 공간에 계속 머무르면서 일하고 싶어요. 제가 머무는 공간을 잘 가꾸고,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좋은 시간을 선물하고 필요하다면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는 공간 안에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 바람이 바람에서 끝나지 않고 꼭 실현되면 좋겠어요.
그러려면 먼저 많은 일들을 내려놔야겠죠. 의료조합이 어느 정도 틀을 잡으면 이 일을 더 잘할 수 있는 사람한테 넘겨주고 꿈뜰로 돌아와서 여기에 집중하는 게 개인적인 바람이기도 합니다. 제 깜냥으로는 이 정도 그릇을 잘 가꾸고 집중하기도 어렵거든요(웃음).
꿈뜰에서 하고 싶었던 건 누군가 한 사람이라도 상근하는 거였어요. 지역에서 살아갈 장애가 있는 졸업생에게 선생님 보러 오고 싶으면 언제든지 와도 좋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지금은 맞이할 여유가 없는 게 너무 아쉬워요. 그렇게 붙박이로 지낼 수 있으면 좋겠다가 노년의 바람이었어요.
조금 빨리 시작해서 노년까지 하시면 되죠. 진짜 마지막입니다. 변화를 만드는 사람 최문철은 어떤 사람이 되고 싶나요?
가끔은 주목도 받고 싶고 영향력도 가지고 싶어요. 하지만 그러다가 자신을 잃고 싶지는 않아요. 나와 이웃, 세상의 변화를 갈망하지만 휘둘리고 싶지도 않고, 휘두르고 싶지도 않아요. 사람들이 자기 모습으로 살아가고, 바라는 모습으로 성장할 수 있게 돕고 싶어요. 어떻게 하면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그게 가장 큰 고민이기도 해요.
피플포체인지가 만난 농촌 마을공동체활동가 최문철은 차근차근 흩어진 구슬을 꿰고, 엉킨 실을 풀어가는 좋은 삶의 기록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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