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누구와의 만남]배낭 속 영어책 2권이 세상을 바꾼다. - 프리랜서 활동가 최선희

“선희야 가방을 왜 쌌니~ ” 가방을 싼 선희는 서울을 떠난다. 태진아 아저씨는 선희에게 어디서 가방을 열어 사랑을 담으라 한다. 나도 가방을 싸는 선희를 알고 있다. 하지만 내가 아는 선희는 사랑을 나누기 위해 가방을 싸고, 빈 가방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다시 가방을 채워 떠날 준비를 한다.

청소년지도사, 공정여행가, 업사이클링 디자이너, 퍼실리테이터, 공동체놀이 전문가, 나눔교육가, 프리마켓 셀러 겸 반장, SNS 마케터, 때때로 스키&수영강사까지. 절대 밥은 굶지 않을, 어쩌면 요즘 시대 가장 선망받는 직업들만 모아놓은 것 같다. 

“뭐든 제가 쓰일 곳이 있는 곳에서 열심히 일 해야죠”를 입에 달고 살며 이 모든 일을 해 나가는 프리랜서 활동가 최선희가 [누구와의 만남] 다섯번째 누구이다.


위기를 기회로 바꾼 청소년 지도사


최선희는 만나면 만날수록, 알면 알수록 깊은 내공과 넘치는 에너지로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활동가다. 함께 모금을 공부했던 시기에는 매주 만났지만 그 후로 활동 무대와 하는 일이 달랐기에 자주 만나지는 못했다. 2014년 여름에 대전에서 만났던 우리는 2015년 가을, 지리산에서 다시 만났다. 서로의 안부를 묻고 어떻게 사는지는 대충 알고 있어 1년 2개월만의 만남이 어색하지 않았다. 지리산의 작은 마을로 나를 만나러 와 준 게 고마울 따름이었다. 2014년 대한민국은 참담했다. “선생님, 저는 아이들을 만나야 힘이 나는데, 몇 달째 만날 수 없으니 병이 날 것 같아요.”

 

 

세월호 사고 후, 학생들의 모든 교외 활동이 중단되었고 수련원에서 아이들을 맞이할 준비를 했던 최선희는 오랜 시간 아이들을 만날 수 없었다. 10여 년을 청소년지도사로 살면서 아마 가장 힘든 시기가 아니었을까 싶다. 나는 정말 최선희가 병이 나면 어쩌나, 쓰러지면 어쩌나 걱정했다. 

2015년 여름, 이번엔 ‘메르스 공포’가 대한민국을 뒤덮었고 최선희는 또 한번의 위기를 맞았다. 하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게 손발이 묶여 있는 것 같았던 작년과 달리 청소년 수련원이란 울타리를 벗어나 ‘프리랜서 활동가’라는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대전에서 같이 일했던 활동가가 같은 마을에 산다는 소식을 듣고 선물까지 챙겨 나타난 그녀는 만나자마자 많은 이야기를 쏟아놓는다. 지난번에 아이디어를 주고 받았던 커피 수레를 드디어 제작한다는 소식부터 얼마 전 다녀온 필리핀 공정여행의 에피소드들까지. 다시 찾아온 위기에 기죽지 않고 멋지게 도전을 시작한 그녀! ‘역시 최선희답다.’

배낭 속 영어책 2권이 세상을 바꾼다.


 

‘배낭 속에 꼬깃꼬깃 넣어간 영어책 몇 권으로 마을도서관을 만든다고?’ 처음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고대표(고두환 공감만세 대표)가 추구하는 꿈이 실현 가능할까 하고 의심했어요. 그리고 몇 년 동안 그 의심마저도 잊어버리고 지냈죠. 이번 여행에서 다시 그 도서관에 들렀어요. 2011년에 깜깜했던 그 교실은 환해졌고 ‘아시아평화도서관’이란 현판까지 딱 붙어 있는 거예요. 사스, 신종플루, 이번엔 메르스까지 여행상품이 좀 팔릴라 치면 별 희귀한 일들로 힘빠지게 하는데도 불구하고 공감만세의 나눔활동은 꾸준히 진행되고 있었던 겁니다.”


공감만세는 대전지역 20대 청년들이 의기투합해서 만든 전국 최초 청년 사회적 기업을 설립한 공정여행사로 국내는 물론 해외공정여행과 청소년여행학교, 공정여행가 양성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최선희와 공감만세는 파트너로 서로의 성장을 돕고 있다.

지금은 스스로도 공정여행가임을 인정하는 최선희도 처음에는 여행과 나눔이 공존할 수 있을까? 반신반의했다고 한다. 공정여행을 통해 나눔을 실천한다는 이상적인 비전 때문이 아니라 평소 꿈꾸던 키워드 몇 개가 일치한다는 이유로 공감만세를 파트너로 선택했고 아이들과 함께 필리핀 루손섬 이푸가오주로 처음 공정여행을 떠났던 때를 떠올리며 이번 여행 이야기를 이어갔다.

 

“이번엔 도서관에서 책표지를 비닐로 싸는 작업을 했어요. 간간히 한국바코드가 찍힌 책을 보면서 함께 간 아이들이 ‘이거 한국사람이 갖고 온 책 맞아요?’라는 질문을 하기에 ‘맞다’고 했더니 아이들도 좀 감동한 눈치였어요. 책 다루는 손길이 더 정성스러워지는 게 옆에서 느껴지더라고요. 저도 ‘여행자의 배낭 속 책 두 권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는 공정여행가가 되어야겠다고 각오를 다졌죠.”

 

여행이 아이디어의 원천이었던 최선희에게 공정여행은 여행의 방식만이 아니라 삶의 터닝포인트가 되어준 것 같다.
 

 

9월에 열린 <대전지역 각급학교 학생들의 안전한 교육여행을 위한 정책 토론회>에서 최선희는 청소년들이 여행을 통해 지역과 사람을 알고, 관계를 통한 성장이 지속될 수 있도록 관심과 투자가 필요하며 특히 여행이 학생들의 성장과 성숙을 돕는 성과물이 될 수 있도록 지도자의 전문성과 안전에 대한 책무를 강조하는 발표로 눈길을 끌었다. 그 자리에서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어 낼 수 있었던 건 청소년들과 여행에서 쌓은 경험이 바탕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얼마 후 아이들과 공정여행을 떠나기 위해 다시 가방을 쌌다. 이번엔 좀 힘든 여행이 될 것 같다고 걱정하던 최선희에게 힘이 되어주지 못해 미안했다.

 

최선희와 아이들

 

한번은 최선희를 따라 대전시내 취약계층 학생들과 반나절 공정여행을 한 적이 있다. 날씨는 좀 더웠지만 대전=EXPO 였던 나에게 몇 시간의 원도심 여행은 과거로 돌아가 한국의 근·현대사를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하지만 함께 간 아이들이 내 눈에 거슬렸다. 해설사의 해설은 뒷전이고 옆 친구와 이유 없이 다투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힘들어서 걷기 싫다고 투덜대거나 덥다고 아이스크림을 사달라는 아이들도 있었다. 당장 혼을 내 줄을 세우고 싶은 나와는 반대로 최선희는 큰소리로 아이들을 혼내는 법이 없었다.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아이에겐 먼저 다가가 말을 걸고, 관심을 끌고 싶어 이상한 행동을 하는 아이의 기도 살려준다. 기어이 통제가 필요한 상황이 오면 그녀의 방식으로아이들의 눈과 귀를 한 곳으로 모으는 신기한 재주가 있었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나를 보며 오히려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

“선생님, 힘들죠?” 어른이란 이름으로, 나의 기준으로 아이들을 대하고 평가했던 내 자신이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다. 북한을 꼼짝 못하게 한다는 대한민국 중2도, 정규교육과정을 선택하지 않은 학교 밖 청소년도 최선희에겐 모두 아이들이다. 그저 사랑으로 보듬어야 할.

그래서 일까, 최선희에겐 2가지의 바램이 있다. 10년 넘게 청소년지도사로 활동하면서 함께 했던 아이들의 이야기를 책으로 펴내는 것과 청소년들이 스스로 디자인하고,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재단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누구든 최선희와 같이 하고 싶은 분이 있다면 망설이지 말고 그녀와 손을 잡아주세요! Right Now!

 

못하는 게 없는 체대나온 여자

 

 

스키, 골프, 등산, 탁구, 수영은 물론 마라톤풀코스 4회 완주까지. 최선희는 못하는 운동이 없는 체대 나온 여자다. 그런가 하면 <대전시민단체 어울림마당 민·관 워크샵>과 <대전 마을활동가 포럼결성식>에서는 공동체 놀이 전문가로 모임의 분위기를 하나로 만드는 역할을 하기도 하고, 퍼실리테이터가 되기도 한다.

요즘 최선희는 진정한 업사이클링 디자이너가 되기 위해 고군분투중이다. 버려진 자투리 나무들을 주워와 자르고 색칠해 생활소품을 만드는 목공을 취미로 시작하더니 어느 날 청소년들과 함께 ‘자투리 나무 그리고’라는 동아리를 만들었다. 지금은 그림을 배우던 공방 스승님(최선희는 그를 꼭 선생님이 아닌 스승님이라 적어달라 했다.)과 공방 사람들에게 좋은 일하는 ‘협동조합 마을공방’ 설립과 폐가구를 이야기가 있는 리폼가구로 탄생시키는 일에 대한 멘토링을 하고 있다. 스승과 제자는 어느새 멘티와 멘토로 아름다운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 정말 일 벌이는 데는 이만한 선수가 없다.

지역 프리마켓에 자신의 작품을 판매하는 판을 벌리며 업사이클링 작가로 가능성을 인정받기 시작했고 지난 10월 <세상을 보는 색다른 생각, 지리산에 모이고 잇다>라는 주제로 지리산에서 열린 이음포럼에서는 100명의 포럼 참가자들을 위해 밤을 새워 자투리 나무를 자르고 다듬어 색칠을 하고 도장을 찍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으며 멋진 선물을 마련해주었다.

 

 

“뭐든 제가 쓰일 곳이 있는 곳에서 열심히 일해야죠”

최선희는 찾는 사람이 많다. 부탁하면 거절도 없다. 가지고 있는 것은 나누고 모자라면 채워서 나눈다. 아는 것을 나누고 모르는 것은 배우고 또 배워서 나눈다. 누군가는 ‘설마? 너무 과장된 표현 아닌가?’라고 할지도 모르지만 내가 지켜본 최선희는 그렇다. 

그녀가 이런 삶을 살아가는 건 인생의 나침반이 되어준 ‘배우고 또 배우라’는 아버지의 가르침과 ‘당당하게 살아가라’는 어머니의 응원이 있어 가능했다. 그리고 지금은 수시로 싸는 가방을 붙잡지 않고 묵묵히 지켜봐 주는 든든한 남편이 큰 힘이 되고 있다고 한다. 이렇게 바쁘게 사는 거 힘들지 않아요? 왜 이렇게 자꾸 일을 만들어요? 하고 물었다.


“힘들다고 생각하면 항상 힘들걸요? 아이들을 만나는 일, 제가 하는 일이 그리 만만하진 않았어요. 하지만 힘들다고 포기하거나 주저하는 것보다 그.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고 싶은 일은 해봐야 한다는 생각에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저는 주변 사람들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그러니까 뭐든 제가 쓰일 곳이 있는 곳에서 열심히 일해야죠. 올해 6월 퇴사를 앞두고 고민할 때도 소속이 없어지면 힘들겠지만 오히려 제약 없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거든요.”


쉽지 않은 선택이었음을 알기에 최선희의 대답에 잠시 먹먹해졌다. ‘조직’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기도 하지만 도전을 철저히 막아버리기도 한다. 외부로부터 나를 보호해주는 방패가 되기도 하지만 내부에서 더 큰 고통을 주는 창으로 변해 버리기도 한다. 누군가는 방패를 선택하고 누군가는 도전을 선택한다. 나도 그런 고민을 하고 살았다. 그래서 나는 최선희의 선택을 누구보다 힘차게 응원한다. 

지역의 교육재단에서 여행에 대한 강의를 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어떻게 거절할지 방법을 연구하다 순간 최선희가 떠올라 추천했더니 강의의 반응이 좋았나 보다. 담당자로부터 좋은 분을 소개주어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2016년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왔다. 최선희는 참 고마운 사람이다. 자투리가 주는 작은 기쁨을, 배우고 나눔의 소중함을 가르쳐 주는 참 고마운 사람. 좀 뜬금없지만 마지막으로 질문을 하나 해볼까 한다. ‘나는 조직에 필요한 사람으로 일할 것인가? 아니면 내가 필요한 조직에서 일할 것인가?’ 이 말장난 같은 2가지 질문을 놓고 고민하던 때가 있었다. 당신의 선택은?



글쓴이 : 이경원 
누구나 한번쯤은 살아보고 싶어하는 서울-지리산-통영을 오가며 나름대로 일과 삶의 균형을 지켜나가고 있다. 아무것도 안 하는 것 같지만 끊임없이 무언가를 하면서 남부럽지 않게 살고 있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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