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활동가인터뷰] 니 일 내 일이 어딨노? 같이 하면 내 일이지! - 우리동네 빵집 아저씨 이채섭

인터뷰어인 저는 2013년 남편을 따라 “울산광역시 북구”에 정착하고 직장인에서 전업주부로 제2의 삶을 살게 되면서 과연 새롭고 낯선 곳에서 뿌리도 없이 나는 어떤 일들을 하며 의미 있게 살 수 있을까를 고민하였습니다. 울산에서도 시골쯤인 곳인데도 대부분이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고 콘크리트 성냥갑과 같은 곳 사이사이 사람들간의 빈 곳을 채워주고 치유해주는 것은 무엇이고 과연 존재할까요?

사람들간의 틈을 메우고 연결하며 의미를 찾고 만들어 내는 분들을 만나게 되는 것은 너무나 값지고 소중한 일일 겁니다.

제가 만난 이채섭님은 동네에서 빵집을 운영하고 계셔서 “빵집아저씨”로 더 많이 불리는 분인데 울산광역시에서 처음으로 전환·운영된 농소3동 주민자치회의 위원장을 맡으시며 주민들이 자발적인 활동으로 살기 좋은 마을을 만들기 위해 일명 “동네일”이라는 여러 활동을 진행하셨다고 합니다.




언제 지금 사시는 이곳으로 이사를 오셨나요?

1999년도에 이사를 왔으니 이제 20년쯤 되었는데 그 때 초등학생이였던 큰 아들이 얼마 전 결혼을 해 가정을 꾸렸어요.


어떤 것이 계기가 되어서 마을을 위한 일들을 시작하게 되셨는지?

이 동네에 아파트촌이 생길 때 빵집을 열면서 들어왔고 여러 동네사람들과 어울리다보니 아이가 다니는 학교 운영위원 활동이 그 시작이였던 것 같아요. 들어와서 살다보니 사람들간의 단절이 눈에 보였어요. 갑자기 만들어진 아파트촌과 기존에 있었던 자연부락 사이에 서로 경계하며 소통이 없었습니다.  주민들이 서로 함께 잘 살았으면 좋겠다는 개인이 작은 바램으로 2002년 쯤에 “동네화합잔치”를 기획했습니다. 또, 내가 이 지역에서 사업을 하고 있다 보니 우리 가게를 이용하는 이웃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하고 싶기도 했고요.


Q. 동네 화합잔치라는 게 어떤 것이 였는지 조금 더 설명을 해주시겠어요?

빵집오픈하면서 썼던 작은 엠프가 하나 있었는데 이거랑 몇 가지 필요한 것 좀 빌려서 자연부락 어르신들하고 아파트 거주자들과 함께 작은 노래자랑 같은 것을 해보면 어떨까 생각했었던 것이 시작였었죠. 노래라는 것이 함께 부르다보면 흥도 나고 기분도 좋아지고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좋은 도구라고 생각했거든요. 개인적으로 기획하고 마을안의 아파트 4개 단지의 입주자대표단과 합심하여 자연부락민들을 모시고 도로를 막아놓고 판을 벌렸습니다.


이런 내용을 혼자서 기획.추진하기 쉽지 않으셨을텐데요?

근데 다들 마음은 있더라구요. 서로 어울려 살고 싶지 각을 세우고 살고 싶지 않은 게 사람마음인 것 같아요. 신규아파트들이 생기면서 마을일들이 아파트 중심으로 돌아가니 자연부락은 소외되는 느낌이 들었을 거고 누가 덥석 먼저 손을 잡아주지 않는 이상 다들 한 발짝씩 물러서 있었던거죠.  마을사람들 앞에서 노래부르고 박수쳐주고 막걸리잔 기울이며 함께 얘기도 나누고... 화합잔치 후에 서로 자주 연락도 하고 자연부락에서도 년초에 있는 마을회의나 잔치 때 불러주시더군요.


그 화합잔치는 아직도 진행되고 있는지 궁금하네요?

네~ 첫 해 그렇게  화합잔치를 마무리하고 내년에도 또 하자는 의견들이 모여졌어요. 그 때 같이 맘 맞는 동네사람들 21명이 모여서 2006년 정식으로 “농소큰사랑 작은음악회”라는 모임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꾸준히 동네화합잔치를 열고 있죠.

한 해 한 해 이어가다보니 조금 더 잘하고 싶은 마음에 무대도 만들어지고 이런 저런 내용도 보강되고 장비도 갖추게 되었습니다. 음향장비는 그 동안 3번이나 업그레이드 됐어요. 다들 개인적으로 직업을 가지고 있는 회원들인데 처음에 조명이 뭔지 음향은 어떻게 하는지 무대는 또 어떻게 설치하는지, 좌충우돌을 겪으며 지금까지 함께 꾸준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아파트 윗집 사는 아이가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면 아랫집 사는 아줌마가 박수를 쳐주는 그런 그림을 그리고 있어요. 지금은 우리 동네에서 시작했던 그 형태로 다른 동네에 가서 끼있는 주민들을 무대를 마련해주고 있어요. 3월부터 10월까지 매월 정기적으로 지역의 아파트를 돌며 무대를 펼쳐요. 아파트 입대위며 부녀회며 같이 음식도 만들어 나누고 이웃간에 얼굴보고 이런 저런 자리를 함께 하다보면 서로 오해도 풀리기도 하고 그러죠. (울산 북구는 2020년 5월 현재 인구 약 22만명, 117개 아파트에 64,621세대가 거주중이며 농소 큰사랑 작은음악회는 농소1,2,3동의 아파트 단지마다 방문하여 문화행사를 개최하고 주민들간의 소통의 장을 마련해주고 있습니다.)


회원들이 일정한 비용을 받는 것도 아니라고 알고 있는데 꾸준히 활동이 이어지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회원들 대부분이 직장을 다니다보니 이 활동을 통해서 이웃과 어울린다고 생각하고 다들 기쁘게 참여합니다. 농소큰사랑 작은음악회가 정식으로 만들어진 것이 2006년이고 2002년부터 했으니 벌써 20년쯤 되었고 회원들이 이제 다 50대 중반들이네요. 지금은 그런 얘기를 별로 안하는데 초창기에는 끝나고 뒷풀이 자리에서 “야, 우리가 미쳤지 이 짓을 왜 하노? 이거 너무 힘든데 하지 말자” 하고 헤어져 한 일주일 지나면 회원들이 연락이 와서 “마, 다음은 어디고?” 합니다.

제가 “지겹지도 않냐? 고마하자” 하고 말하면 “힘들지만 재밌잖아~ ” 합니다. 지역주민들이 같이 어울릴 수 있는 공간 한 번 만들어보자는 초반 의도를 모두 동의해주는 고마운 사람들입니다.


이런 활동을 꾸준히 하다보면 어떠한 의도를 가지고 접근하는 분들도 계시지 않나요?

우리 모임에서 구의원도 둘이나 나왔고 구청장 후보로 나왔던 사람도 있어요. 저도 그렇고 주변 사람들이 처음에는 우리를 보고 “너그들 정치하려고 하느냐?”하는 얘기들 많이 했어요. 그걸 욕심을 내서 했던 회원들은 거의 없었습니다. 오히려 그런 목적을 가지고 들어왔다가 대부분은 얼마있다가 다 탈퇴를 하더라구요. 그저 꾸준하게 있는 사람들이 기회를 얻었을 뿐인거죠. 초창기에는 주민들 외에는 무대에 올리지 않았어요. 자치단체장이라도 와서 인사라도 할라치면 마이크를 껐었더랬죠. 하하



운영비 충당, 기술적인 면 어려움은 어떻게 해소했나요?

초기에는 회원들이 회비를 냈어요. 근데 점점 장비도 업그레드 하고 싶은 욕심도 생기고 그러던 차에 구청에서 강제(?)지원이 내려왔어요. 평소 우리 활동을 좋게 봐줬던 구청장이 예산지원을 지시한 것인데 처음에는 안 받겠다고 했는데 결국에는 지원을 받았습니다. 단, 예산지원 받는 대신 구청장 무대 안 올리는 것을 약속을 했었죠. 근데 하는 동안 2번 빼고 매번 무대에 올라와서 인사를 하더라구요. 하하




방범대나 주민자치회 활동에 대해서도 궁금합니다.

우리동에 “농소3동 자율방범대”라고 있었는데 어찌 하다보니 방범대장을 맡게 됐었어요. 초중고 학교도 많고 아이들이 늦게까지 학원도 다니고 해서 아빠들이 모여서 일주일에 한 번씩 당번을 정하고 야간순찰도 하고 구석에서 담배피는 아이들 지도도 했었죠. 동네가 아파트촌이고 아빠들은 잠만 자고 회사가는 곳이였는데 방범대 활동을 통해서 아빠들이 삼삼오오 모이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만남의 장소가 되었어요. 자기 순찰이 없는 날에도 방범초소에 들르기도 하고 처음에 10명 안팎이던 회원이 60명까지 늘어났었죠.

대부분 회원들이 직장인들이였어요. 회사마치고 다들 나와서 함께 해줬었죠. 우리 마을에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참 많더라구요. 참 좋은 사람들이 많이 사는 곳이예요.

주민자치회는 울산 북구가 2013년에 전국 주민자치박람회를 유치했었는데 그때 운영국장을 맡아서 활동했었어요. 그 때 전국에서 주민자치위원회를 주민자치회로 전환하는 시기였는데 우리동이 시범동으로 전환이 됐었거든요. 또 주민자치박람회를 준비하면서 전국의 좋은 사례를 보고 실행하시는 분들을 만나게 되면서 재미도 있었고 참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자치회 사무국장부터 위원장까지 5년 정도 활동했었고 그 때 선진 지역이라고 할까? 다른 곳에서는 주민들이 스스로가 마을을 위해서 고민을 하고 일을 만들어내고 직접 찾아다니면서 예산도 확보도 하는 것을 보고 배우면서 우리도 직접 실행해보려고, 말 그대로 “주민 자치”를 해보려고 많이 노력했었어요.


그 때 마을에서 활동하시면서 기억나시는 일들이 혹시 있으신지요?

마을 근처에 유해한 공단이 조성될 뻔 한 일이 있었습니다. 주민들이 그때 정말 똘똘 뭉쳤었어요. 그 지역이 365일 중에 200일 넘게 북풍이 불어 주민 거주 지역에 유해할 수 있다는 객관적인 자료를 근거로 주민설명회도 하고 주민서명도 받고, 간담회도 열었었죠. 실제로 미처 검토하지 못한 부분을 주민들이 찾아낸 부분인데 이 때문에 공단 조성이 재검토 되었습니다.

지금은 이런저런 주민 주도의 활동을 지원해주는 사업들이 많은데 그 때는 거의 없었어요. 자치회 활동을 하면서 공모사업도 했었는데 아이들 안전관련된 “옐로카펫”이라든지 밤에 후미진 거리 바닥에 쏠라표지빔도 설치하는 일도 추진했었죠. 동네 들어오는 입구에 방치되었던 으슥한 곳에 “마실터”라는 작은 공원도 조성했었습니다.


“농소문화마당”이라는 협동조합도 만드셨다고 들었어요.

주민자치회 하면서 마을에서 지도도 만들고, 마을라디오 팟케스트, 마을신문도 만들고 했었죠. 하다보니 너무 재밌었어요. 그러면서 자연스레 사회적경제 영역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계속 뭔가 우리도 마을안에서 수익사업도 해보자는 의견들이 2018년부터 모아져서 2019년도에 만들어진 게 “농소문화마당”이라는 협동조합입니다.


그런데 운명의 장난이였나요. 갑자기 건강이 나빠지셨어요.

네, 맞아요. 2019년 3월에 갑자기 몸이 안 좋아져서 많은 일들이 중단되었었죠. “궤양성대장”이라는 병으로 지금까지 약 1년 3개월쯤 투병중입니다. 몸무게가 약 28kg쯤 빠졌습니다. 조합을 막 시작했던 시기였는데...하하하


너무 아쉬워요. 또, 마을안에서 뜻을 함께 하시려는 모임들끼리 모였었잖아요.

2018년도 하반기에는 농소3동에서 이런 저런 마을활동 하는 사람들을 한 번 다 모아보자 하는 의견이 있었어요. 그 때 도서관, 마을공동체, 봉사단체 등 연대해서 활동을 함께 해보자는 팀이 모두 11개 팀이 모였었죠. 우리도 그 때 만났었나요?


네, 그 때 전 가슴이 떨렸었던 기억이 납니다. 협동조합에서는 어떤 활동을 하고 계신지요?

지금은 마을에서 함께 참여하는 활동을 구상하여 “철의 노래”라는 이름으로 300명 정도 합창을 기획하고 있어요. 그리고 교육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천천히 마을 안에서 다시 조금씩 조합원들과 함께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지역에서 “동네일”하는 활동가들에게 전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무엇보다 사람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사람과 사람이 소통할 수 있는 마을들을 가지고 일을 하면은 참 재미있을 것 같아요. 그것을 놓치지 마시길 바랍니다.



지금 사시고 있는 집이 너무 좋으시다는 이채섭 대표님은 오늘도 따님과 함께 하늘을 쳐다보고 “구름 너무 이쁘다”하고 작은 기쁨을 느끼셨다네요. 우리동네가 참 좋으시대요. 마을 앞에는 동천강이 흐르고 뒤에는 작지만 천태산이 있고 아파트촌이지만 구석구석 농사를 지을 수 있는 곳이 있고요. 이런 좋은 곳에 사람들이 정을 나누며 행복하게 살기를 희망하신다면 여러번의 늦은 밤 인터뷰를 기꺼이 함께 해주셨습니다감사합니다. 늘 건강하세요.



활동가이야기주간2020 프로젝트의 '활동가인터뷰 공모 지원사업'으로 진행한 인터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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