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인터뷰] 페미니즘을 잘 아는 것에 대해 칭찬해 주는 사람이 없잖아요 - 청일점 여성단체 활동가 복동환

복동(별칭·28)을 처음 만난 건 지난해 대전여민회 임원 워크샵에서였다. 1박2일 동안 진행됐던 모임에서 그는 바지런하였다. 야채를 씻고 숟가락을 놓는 동작이 날렵했다. 육식을 안 하는 활동가를 고려해 두 종류로 차려진 밥상. 채식주의자인 그가 청일점으로 대전여민회에 입성한 이후 불어온 변화다.

호기심이 일었다. 하지만 내가 다시 복동을 떠올린 건 그로부터 몇 달 뒤, 우연히 그의 삶을 엿보게 되면서다. 함께 일하는 50대 선생님이 들여준 이야기는 흥미로웠다.

“복동이 말이야. 대학생이 되자마자 어머니에게 한 말이, ‘이제 자기 위해 밥을 하지 말라’는 말이었다네.”

자신의 도시락을 늘 직접 싸서 가지고 다닌다는 말끝에 나온 말이었다. 그가 관계를 맺어가는 방식을 잘 설명하는 이야기였다. 그 일이 있고 난 뒤. 나는 복동이 어떤 사람일까 더 궁금해졌다. 기회가 되면 인터뷰해야겠다 마음먹었다. 활동가 인터뷰 공모사업을 한다는 이메일을 더이음으로부터 받았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사람이 바로 복동이었다.

** 무대위에서 연주하는 복동환(사진제공-복동환)


다른 직장도 있을텐데 활동가로 일해야겠다 마음먹은 이유가 있어요?

“흠. 그냥 자연스럽게 그렇게 됐어요. 누군가가 좋아하는 삶이 아니라 내가 선택하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의지의 발로였던 거 같아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제일 중요하게 생각한 거네요?

“네. 저는 고등학교 때까지 부모님 말씀을 잘 듣는 학생이었어요. 어릴 때 피아노 치는 걸 좋아해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었어요. 부모님이 반대하셔서 얌전히 공부해 대학에 갔는데, 4월인가. 동아리 홍보 기간에, 우연히 학교의 밴드 동아리 연주 공연을 보게 됐는데 완전히 마음을 빼앗겼어요. ‘유레카’를 외쳤죠. 군대 가기 전까지 밴드 동아리에서 살았어요. ”


수업 들어가는 시간을 제외한 모든 시간 마다 연습을 하였다. 공강 시간에도 주말에도 예외가 없었다. 방학에도 동아리방에 나왔다. 워낙 열심히 연습한 덕분에 실력 있는 키보디스트로 성장할 수 있었다고. 복동은 2015년부터 대전의 전문 밴드 블리츠 (BliTz)에서 키보드 이스트 (FX라고 부른다)로 활동하고 있다. “올해 말에 앨범이 나올 계획”이라고 말하는 그는 좋아서 연신 웃어 댔다.


** 지난 해 성매매 추방기간에 열린 집회에서 복동환은 대표 발언을 했다.(사진제공-복동환)


채식은 어떻게 시작하게 됐어요?

“대학교 2학년 때, <<동물을 먹는다는 것에 대하여>>(조너선 사프란 포어 지음)를 읽었어요. 도서관에 꽂혀 있는걸 보고 흥미가 생겨 읽었는데, 이 책이 굉장한 충격을 줬어요. 그때 막연히 ‘고기를 먹지 말아야지’ 생각했어요. 그 후 하다 그만두다를 반복했는데, 본격적으로 시작한 건 2019년부터예요.

채식을 하는 건 삶의 태도와 관련이 있어요. 가만히 보면 우리는 주변 사람들이 하는 걸 따라 하며 살아가요. 술을 먹고 고기를 먹고 이런 것 부터요. 그런데 못 누리고 사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약자의 목소리를 귀 기울이게 되면서부터 2018년 술과 커피를 끊었고, 2019년에 고기를 끊었어요.

대전여민회에 들어오면서 여성을 재산으로 생각하고 착취해온 사회에 더 관심을 갖게 됐어요. 그런 것이 교차 되면서 채식에 대한 관심이 더 높아졌죠. 더 철저하게 채식을 하게 된 계기가 됐어요.”


복동은 “채식에 대한 반응이 너무 똑같아 한편으론 우습지만, ‘이렇게 획일화된 사고가 팽배해 어쩌나 걱정이 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고기 안 먹으면 건강에 큰 이상이 생길 것처럼 공포를 조장하는 문화를 씁쓸해 하였다.


청일점인데 대전여민회에서 일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네요.

청년 일자리 사업 중에 NGO 지원활동이 있었어요. 그 때 선택했던 단체가 대전여민회였어요. 한참 여성운동에 대한 관심이 많았어요. 여성차별 실태를 알고 싶었고요. 그래서 대전여민회를 선택했어요.

 

** 독서는 그의 삶을 변화시켰다. (사진제공-복동환)


여성운동에 처음부터 관심이 있었던 거네요.

(웃으면서) “사실 전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에 그러니까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에도 그 사건이 나와는 다른 이야기라고, 관련 없는 이야기라고 느꼈던 사람이예요. 그냥 주변 사람들이 페미니즘에 대한 목소리를 내니까 관심만 가지고 있었어요. 제가 책 읽는 걸 좋아해서 오래전부터 독서 모임을 운영했거든요. 독서 모임 멤버들이 페미니즘 관련 책을 열심히 읽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호기심이 생겼구요. 또 제가 좋아하는 뮤지션들이 페미니즘적 메시지를 담긴 노래를 부르니까 알아야겠다 싶었어요.”


들어와 보니 어땠나요? 대전여민회 32년 역사에서 남자 활동가는 처음이죠.?

(웃음) “네. 전에는 청년 창업을 지원하는 단체에서 일했었거든요. 그 일이 제 삶으로 연결이 잘 안 되더라고요. 대전여민회에 들어오고 나서부터는 같이 어울려서 무언가를 일구어 나갈 수 있다는 것을 느꼈어요. 그게 참 좋더라구요.”


남자 활동가여서 혹시 어려웠던 점이 있을까요?

“활동하면서 가장 힘들 때는 역시 편견 어린 시선을 받을 때 였어요. ‘결국 남자는 페미니스트가 될 수 없다’.  ‘당사자성이 결여된다’.  ‘여자를 좋아해서 어떻게 해 보려고 거기 들어간 거 아니냐’ 그런 메시지를 실제로 받았었어요. 여성들이 느끼는 ‘성별 분업적인 사고에 대한 반감이 이런 느낌이겠구나 싶었어요.

여성들에게 가해지는 위협이 없어지지 않을 텐데 ’‘왜 성별분업적인 사고에 갇혀 살아야 하지? 이건 잘못된 사고야.’ 말할 수 있는 감수성을 갖고 있어야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겠구나 느꼈어요. 역지사지 할 수 있는 계기가 됐어요. 이래서 여성운동 하는 거구나 확실히 알게 됐고요.”


그래서 이제..이겨냈나요?

“처음처럼 힘들지는 않아요. 동료들의 이야기가 힘이 됐어요. 반성매매 운동 하는 사람들도 성매매 하던 사람이 아닌 사람도 있지 않느냐. 다른 입장에서 말할 수 있는 거다. 너의 역할을 찾아서 나는 이런 일을 할 수 있다 말해주라고 위로해주더라고요.”


복동은 대전여민회에 들어와서 성차별이 이렇게 심하구나 실제 알게 됐다고 말했다.


“성착취 n번방 참여자 엄벌 촉구 시위를 대전지방법원 앞에서 했었어요. 왜 그런 시위를 법원 앞에서 시위하냐고 전화하는 사람이 있어요. 50대 대구 남자라고 당당히 말하면서 자기 의견을 말하는데 ‘혹시 남자세요’ 묻고 그냥 끊어버리더라고요. 말로만 듣던, 소문으로만 듣던 일이 실제로 현실에서 일어나는구나. 커뮤니티나 신문에서만 나오는 이야기가 아니구나. 아는 놀라운 경험이었어요. ”


복동은 세상을 살아갈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가 호기심과 재미란다. “삶이 항상 행복하지만은 않기 때문에 힘들고 어려움 속에서 재미를 찾는 것이 중요하단다. 그래야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고. 항상 호기심을 갖고 관계를 맺는 이유도 그래서다.


활동도 그런 호기심과 재미 속에서 이뤄지겠네요.

“맞아요. 저는 사람을 만날 때 궁금한 사람을 만나요. 그래야 그 사람을 만날 때 설레이기도 하고 고정관념이나 편견이 깨지기도 해요. 보통은 관심사가 겹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죠. 최근에 독립출판에 관한 책을 집필한 분을 만났어요.”


관련 정보를 어디서 얻는 거예요?

“디스코드 사용해요. 기능만 잘 쓰면 자기의 관심사를 한 채널에서 받아볼 수 있어요. 문화쪽에 관심이 많은데 문화계 성폭력 대응 매뉴얼 이런 것도 알려주고 하거든요. 얼마 전에 <<정치적인 식당>> 쓴 이라영님이 세바시 강연에 나왔는데 페미니즘 관련해서 연결해서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카톡방에 올렸어요. ”


복동은 “여성운동을 하면서 많이 변했다”고 덧붙였다. 문화 예술 분야에 관심이 많은 그가, 창작물이나 언론 매체물을 볼 때 페미니즘적으로 보려고 노력하게 됐단다. 성 상품화에도 관심이 많아졌다. 여성 아티스트들이 전달하려는 메시지에 귀 기울이고, 그것들에 대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사람을 찾게 된 점도 변화 중 하나다. 복동은 어딜 가서도 대전시민 복동이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대전에서 살아가고 있고, 대전에서 활동을 이어가고 싶어 그렇단다.


“활동가는 근무시간이 끝나도 인간과 사회. 앞으로 살아가야 할 방향과 관련해 계속 고민하는 사람이잖아요. 그런 삶이 좋아요.”


자신이 좋아하는 아티스트가 사회문제에 대해 이야기해 줄 때 가장 행복하다는 그를 만난 날. 복동이 좋아하는 김사월이 디지털 피해자 일상 프로젝트를 후원했다고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그에게 던졌던 마지막 질문은 청년세대로서 n포 담론을 어떻게 생각하냐였다. “n이 자신에게 필요한 것인가부터 고민해 봤으면 좋겠다”는 그의 말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결혼 직장 같은 거 말이예요. 누구나 하고 있으니까, 누구나 있으니까. 이런 생각을 버려야 할 거 같아요. 포기 보다 내가 선택하는 것에 방점을 두고 살아가야지요. ”


그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 내내, “페미니즘을 잘 아는 것에 대해 칭찬해 주는 사람이 없지 않냐”는 이민경 작가의 말이 그의 얼굴과 겹쳐져 나도 모르게 비식 웃음이 나왔다.




글 쓴 사람- 이은하

생애사 작가. 대전 여성운동의 대모 이정순 선생님을 비롯해 여러 활동가의 회고록을 썼다. <<페미니스트 비긴스,>> (오월의봄 출판사)가 곧 출판될 예정이다. 금산 별무리 고등학교 학생들과 이타적 자서전 쓰기 활동을 함께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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