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인터뷰] "인문학으로 먹고 살 수 있을까?" 에 대한 실험, 활동가 김고은

대학 새내기 시절, 사회과학을 공부해보겠다고 모인 용감한 사람들 사이에서 고은을 만났다. 알고지낸지 꼬박 8년, 대학을 자퇴하고 문탁(분당에 있는 마을 인문학 공동체) 인문학 공부를 멈추지 않은 고은은 도서 『낭송 사자소학』 의 공동 역자이며, 『다른 이십대의 탄생』 을 썼고, 어느새 인문학 스타트업 <길드다>를 운영하고 있다. 

용인이라는 지역에서 청년들과 삶의 방향을 고민하며 인문학 세미나를 진행하고, 초등학생들과 한문을 매개로 만나며, 동양고전을 공부하는 고은. 고은이 인문학 스타트업을 시작하여 운영하게 되기까지의 이야기를 좀 더 들어보고 싶었다. 어떻게 지금이 되었는지. 그 사이에서 불안함은 없는지. 무엇이 고은을 움직이게 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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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어떻게 지내요? 코로나 때문에 오프라인 모임이 많은 <길드다>도 어려움이 많겠어요.

맞아요. 코로나 때문에 일이 많이 엎어졌어요. 계획했던 일은 진행시키지 못하고 있지만 공부하고 글 쓰면서 지내고 있어요.


엎어진 일들에 대해 얘기해줄 수 있나요? 어떤 일을 계획했었는지 궁금해요.

초등학생 대상 한자/한문 수업도 준비했었고, 10대 후반~20대 후반을 대상으로 하는 인문학 프로젝트 등이 있었어요.


방금 이야기한 수업/프로젝트들을 진행하는 이유는 무엇이에요? 인문학을 배워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인문학은 내가 어디를 어떻게 걷고 있는지에 대한 공부라고 생각해요. 내가 가지고 있었던 관점에 질문을 던지는 거죠. 원래 있던 길에 의문을 제기하면서요. <길드다>를 하면서 다양한 청년들을 만났는데, 20대들은 스스로를 불안정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물론 저도 그렇고요. 정해진 것이 없는 것에서 자기 길을 만들어 가야한다는 강박이 있으니까요. 그런데 그 과정에서 무언가를 단순히 수용하고 또는 거부하며 살기보다 어떤 방향을 가졌으면 하는 마음이 있어요. 그래서 청년들과 인문학 공부를 하는 것 같아요.

소학은 과거 사람들이 어떻게 관계를 맺었는지가 잘 나와 있는 책이에요. 제가 초등학생들이랑 수업을 해보면서 항상 느끼는 건, 그들은 무언가를 스펀지처럼 잘 흡수한다는 것이에요. 아직 말랑하기 때문에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것에 어려움이 없어요. 처음에는 왜 누군가를 기다려줘야 하는지, 도와줘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이나 반항을 하다가도 수업 끝자락에는 제가 먼저 이야기하지 않아도 이미 움직이고 있더라고요. 당연한 것들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것에도 나중에는 힘이 생기는 것이 느껴지고요.

   

고은은 여러 학문 중에서도 동양고전을 공부하잖아요. 관련해서 세미나도 열고, 한문 수업을 진행하기도 하고요. 왜 고전인지, 왜 오래된 것을 다루게 되었는지도 궁금해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고전을 고리타분하게 생각할 수 있어요. 어딘가 가부장적일 것 같고, 올드 할 것 같은 느낌도 있고요. 저도 처음엔 그랬는데요. 우연히 동양고전 공부를 추천받아서 시작했는데, 생각했던 것과 다르더라고요. 의외로 오늘날과 비슷한 것들이 많았어요. 생각하는 방식, 행동하는 양식만 다르더라고요. 그렇게 생각하니까 오히려 오늘날 보지 못하고 있는 것들을 비춰볼 수 있게 되었어요. 저는 동양고전을 내가 서 있는 토대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계속 던지는 학문이라고 생각해요. 익숙한 것들에 질문을 던지고, 오만함과 겸손함을 계속 생각하게끔 하고요. 그게 저한테 너무 매력적이라, 지금까지 계속 공부하고 있는 것 같아요.



고은의 이야기를 들으니까 우리가 인문학을 배우지 않을 이유는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결국은 우리 삶의 방향과 태도를 공부하는 것이니까요. 그것은 우리가 멈추지 않아야 하는 것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자연스레 더 많은 사람들이 인문학을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만약 이런 공부를 공교육 차원에서 진행하게 되면 어떨까요? 가능할까요?

음, 어디에서나 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다만 제도라는 특성과 형식에서 인문학이라는 내용물이 잘 채워질 수 있을까?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을까? 같은 질문이 들어요. 인문학은 섬세한 주의를 요하는데, 그 부분이 제도에서 포착되기는 조금 어려울 것 같거든요.


고은이 대학을 자퇴한 이유도 비슷한 것일까요? 대학에서의 공부에 생명력을 느끼지 못해서?

처음엔 대학이 재밌었어요. 친구들과 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것도, 인권 감수성이 높은 학내 문화도 좋았습니다. 하지만 제가 다녔던 학교에는 학생들 사이에 형성되어 있는 문화 외엔 제 마음을 잡아둘 만한 것은 없었어요. 정확히 설명할 수 없었지만 어딘가 부족한 느낌이 들었죠.


그것에 대한 후회나 불안은 없나요?

아직까지는 없어요. 결정에 대해서 후회하지 않는 스타일이기도 하고요. 지금 제가 활동하는 곳은 학위가 필요한 곳도 아니어서 크게 문제된 적도 없는 것 같아요. 오히려 학부 졸업장이 없는 게 메리트가 되지 않을까? 같은 생각도 해요.



고은이 운영하고 있는 인문학 스타트업 <길드다>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가볼까요? <길드다>는 어떤 곳인지 소개해주세요.

<길드다>는 함께 8년 정도 인문학을 공부한 청년 4명이 모여서 시작된 스타트업이에요. 비청년이신 사장님(길드다 멤버들의 스승님) 1명까지 포함해서 멤버는 총 5명이고요. 각자 전문분야(동양고전, 목공 등)를 가지고 공부하고 활동하며 삶을 꾸려나가는 그룹이에요. 2017년 겨울부터 준비해서 2018년 봄에 문을 열게 되었어요.


<길드다> 라는 이름에 담긴 의미(뜻)가 있나요?

‘길드'는 중세시대에 있었던 그 길드예요. 길드는 함께 배움을 구하는 최초의 대학이자, 빵을 나누는 최초의 회사라고 할 수 있어요. 우리는 대학도 회사도 아니지만, 우정으로 맺어진 일과 지식의 네트워크라는 뜻을 담았어요. '다'는 한자 多예요. 길드다는 다양성을 중요한 의미로 삼고 있어요. 또 多가 겹쳐지고 포개진다는 뜻도 가지고 있어서, 길드다 이름에 그 의미도 포함시켰고요.


스타트업을 꾸리게 된 계기는요? 인문학을 사업화 했을 때 어떤 가능성이 있을 것이라고 보았는지 궁금해요.

먹고 살아야 하니까요. (웃음) 인문학 스타트업에 대한 아이디어는 저희 멤버의 사장님으로 계신 선생님이 처음 제안하셨어요. 저희도 인문학 공부를 오래 했는데 삶을 유지하는 일과는 계속 별개가 되니까 두 개를 연결 짓고 싶었고, 그렇게 인문학으로 먹고 살 수 있을까? 에 대한 실험을 시작하게 된 거죠.


그래서, 먹고 살 수 있을 것 같나요? 이제 3년차에 접어들었잖아요.

(긴 침묵) 아직 확신은 없지만, 돈을 벌 수 있어서 이 일을 하는 게 아니라 이 일을 하면서 버는 돈으로 삶을 꾸려보고 싶은 마음이 강한 것 같아요. 어쩌면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 순서가 좀 다른 거죠. 점차적으로 규모를 확장해나가고 싶어요.


 


요즘 가장 큰 고민이 있다면 무엇이에요?

어떻게 내 기반을 잘 쌓으면서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을까? 요. 이 두 가지를 잘하기가 어려운 것 같아요.


고은의 이야기에는 ‘기반’ 이라는 단어가 많이 등장하는 것 같아요. 기반을 잘 쌓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을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그래서 어떤 노력을 하고 있다면요?

아무래도 (절대적인) 시간과 꾸준함이 중요하지 않을까요? 다른 사람들은 다 잘하고 있는 것 같고, 나는 가진 것이 없다고 느껴질 때 조바심이 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기반이 잘 쌓인 20대는 사기 캐릭터라고 생각해요. 지금은 조각보를 꿰매야 할 시기니까요.


고은은 본인이 활동가라고 생각하나요?

네, 저는 (학자라기보다는) 활동가라고 생각해요. 앞으로도 활동가일 것 같고요.


왜요? 고은은 ‘활동가’에 대한 정의를 어떻게 내리고 있는지도 궁금해요.

저는 공부를 하긴 하지만 학문을 연구하는 사람은 아닌 것 같아요. 작게는 어떻게 하면 어제보단 조금 더 나은 오늘을 살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크게는 어떻게 이 사회에서 사람들과 함께 잘 살 수 있을까를 생각해요. 그리고 무엇보다 직접 나서서 사람들을 만나서 프로젝트를 하고, 만날 수 있기를 바라며 글을 쓰고, 만나야겠다고 생각하며 새로운 일들을 기획하죠. 활동가는 고민하고 움직이는 그 과정을 위해 공부하고 그 과정을 공부로 만드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그럼 활동가의 덕목이 뭐라고 생각해요?

기다리는 능력, 여백을 갖는 능력이요. 내 몸 하나 먹이기도 빠듯한 오늘날 나와 세상에 대한 고민을 놓치지 않고 가지고 있는 건 훌륭한 일이지만, 고민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마음이 즐겁기는 어려운 것 같아요. 그럴 때 필요한 건 아마도 나와 내 친구, 그리고 세상을 기다리고 믿는 능력일테고요.


이번 코로나19 사태 이후 우리는 ‘포스트 코로나’ 라는 단어를 자주 발견하고 사용하는데요. 포스트 코로나 시대 이후 우리의 삶은, 우리의 활동은, 시민사회는 어떻게 변할까요?

정말 예측하기 어려워요. 긍정적으로 생각해보자면, 지구화 시대에 과하게 확대되어있는 생활반경이 좀 줄어들지 않을까 싶어요. 다 같이 환경에 대해 생각해볼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최근 재미있게 읽은 책 또는 추천하고 싶은 책이 있나요? 이 질문을 마지막으로 인터뷰를 마치려 해요. 혹시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함께 해줘도 좋아요.

최근에 일라이 클레어의 『망명과 자긍심』을 재밌게 읽었어요. 하나의 정체성으로 명명하기 어려운 저자가 사회에서 집을 찾지 못하고 망명하지만, 동시에 자신의 몸을 집으로 자긍심 그 자체로 바라보려는 모습이 마음을 울렸어요. 사회에서 처절하게 망명하면서도 자긍심을 곧추세우는 일, 어렵고 지난한 과정을 필요로 하지만 모두에게 필요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인터뷰 ㅣ 송윤지 (greeneryunj@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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