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선거 때 더불어민주당에서 낸 지자체장 후보는 전원 남성이었다. 후보자 지도가 돌며 이슈가 되었었는데 페미니즘을 말하지 않아도 이해하기 힘든 현상이었다. 활발한 여성운동과 사회적 인식 변화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의 변화는 요원해보인다.
운동과 정치 사이의 갭을 줄이고 여성의 정치참여 확대를 위한 연구와 활동을 하고 있는 젠더정치연구소 여성정치세력민주연대(이하, 여세연)의 역할이 중요한 시기이기도 하다. 여느 단체가 그렇듯 여세연 역시 1인 활동가 조직으로 해야 할 일에 비해 일할 사람이 부족하다. 여세연의 1인 활동가인 조혜민 님은 사명감도 높고 문제 인식이 촘촘해 단체의 일부터 사이드 활동까지 잘 해나가는 모범(?) 활동가처럼 보인다. 조근조근하고 설득력있게 설명하는 조혜민 님에게 활동이란 무엇일까? 내년부터 사무실에서 함께 상근할 동료가 생긴다는 소식에 축하를 전하며 활동에 대한 고민을 들어보았다.
- 인터뷰이: 조혜민 (별칭 '혜만',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 인터뷰어: 시도 (더 이음)
- 인터뷰 날짜: 2018-11-02
Q. 어떤 일을 하고 계세요? 지금 가장 관심 있게 하는 일 또는 활동에 관해 이야기해주세요.
여성정치운동단체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페미니스트 정치판을 만들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바탕으로 관련된 운동을 하고 있어요. 선거제도 개혁을 위해 모인 정치개혁 공동행동과 안희정 성폭력 사건 공대위에도 참여하고 있습니다. 2020 총선은 꼭 다른 정치판을 만들 수 있는 시작점을 이뤄내고 싶어서 열심히 활동하고 있어요. 어렵긴 하지만 이뤄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요즘 커졌어요. 꼭 이뤄낼 거에요! (웃음)
Q. 어떻게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나요? 활동을 시작한 계기가 궁금해요.
잠깐이긴 했지만, 고등학교 2학년 때, 청소년단체에서 활동을 시작했어요. 공부하는 걸 좋아했는데 경쟁하는 게 참 어려웠어요. 시험을 보기 위해 이해되지 않는 걸 외우고 성적에 따라 등수를 매기고 누군가는 울고 웃는 게 당연한 일상인 게 어려웠어요. ‘성적이 잘 나오면 괜찮아질까?’ 하는 마음에 죽기 살기로 공부도 하고 성적도 잘 받았어요.
근데 전혀 행복하지 않더라고요. 축하받을 일이라고도 생각되지 않았고요. 그저 이 이해되지 못하는 상황의 모든 탓을 제게 했었어요. ‘내가 적응을 못 하는구나, 남들은 다 잘 해내는데. 사회 부적응자구나, 나는.’ 평소에는 잘 지내다가 시험 기간에는 아무것도 못 먹고 토하고 계속 울고 자기만 했었어요. 조금씩 경쟁에 익숙해지기도 했는데 참 무서웠고요. 그러다가 “이런 상황은 네 탓이 아니야. 어른들의 잘못이야.”라고 말하는 한 선생님을 만나면서 많은 자책감을 내려놓고 활동을 고민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청소년 인권운동을 하고 싶었고, 포털사이트에 검색했는데 활동하는 단체가 서울에 있더라고요. 그래서 집이 인천인데 서울 단체 사무실에 가서 사람들도 만나고. 그런데도 힘든 게 나아지지 않아서 자퇴를 더 심각하게 고민하면서 자연스럽게 단체 활동은 하지 않았어요. 아무튼, 이게 활동을 시작한 계기였어요. (웃음)
* 현재 활동하는 단체 사무실 책상 앞에서 찍은 낙태죄폐지집회 독려 사진. '지금 당장' 티셔츠는 조혜민님이 좋아하는 옷.
활동가란 누구인가요? 활동가는 어떤 것일까요? 당신은 활동가인가요?
음. ‘나는 활동가에 부합한 사람이 아니야.’라는 생각을 정말 많이 했었어요. 활동하겠다고 결정하기까지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고요. 외면했었고 외면하고 싶었거든요. 많진 않지만, 예전에 했던 활동들에서 나와 함께 한 사람들은 너무 힘들어했고 성과의 기준이라는 게 애매하지만, 활동의 성과도 너무 좋지 않았고. 저 스스로도 너무 힘들어서 자신이 없었어요. 근데 나라는 사람이 이미 ‘그런 사람’이어서. 문제제기를 해야 직성이 풀리고 일상에서의 성장이 너무 중요하고요. 등등의 것들이 활동 판에 있어야만 충족되더라고요.
그리고 어쩌면 ‘활동가’, ‘성과’라는 것에 대해 잘못 생각해왔겠다 싶기도 했었어요. 활동가란 어떤 것일까 묻고 답할 때, 사회변화를 위해 나를 온전히 던질 수 있는 사람으로서의 사명감이 강조되기보단 운동 판에 있는 활동가가 행복한가, 건강한가, 성장 가능성을 확인하고 있는가라는 기준이 중심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더 고민하게 되었고요. 그런 의미에서 활동가란 누구인지, 어떤 것인지에 대한 물음보단 그 활동가 곁에 있는 이 ‘운동 판’이 무엇인지에 대한 물음이 우선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야 활동가가 어떤 것인지 누구인지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Q. 활동을 지속하는 동기는 무엇인가요? 계속 일할 수 있는 동력은 어디서 오나요?
‘내가 이상한 사람이 아니구나’를 확인하는 순간들인 것 같아요. 앞에서도 말했지만, 고등학교 때, 정말 많이 힘들었어요. ‘쓸데없는 물음들’로 가득 차 있다 보니 내가 이상한 사람인 것만 같고. 그래서 저 자신을 되게 많이 미워했거든요.
대학생이 되어 어떤 사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할 때도 비슷했어요. 진보적인 성향이 있는 사람들이 특정 사안에 대해 외면할 때, 그때도 그 사람들을 미워하기보단 저를 미워했어요. ‘내가 이상한 사람인가.’ 그래도 그런 과정들을 거쳐서 여성학을 만나고 여성운동을 하면서 내가 이상한 사람이 아니란 걸 확인하고 지지받고 하는 순간들이 너무 감사해요. 그런 의미에서 다양한 이유들로 자신을 탓할 사람들에게 내가 받았던 감사한 순간들을 주고 싶다는 욕심도 생기는 것 같고요. 그렇게 활동할 동력이 생기는 것 같아요.
Q. 조직을 그만두고 싶을 때가 있다면 언제인가요? 그만두고 싶었던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큰돈이 필요할 때 ‘그만두어야 하나?’ 하는 생각을 가장 많이 했던 것 같아요. 내가 필요로 하는 돈은 그렇게 큰돈이 아닌데 그런데도 휘청거릴 때, 불안하더라고요. 나중에 가족이 아프거나 해서 급히 돈이 필요할 때,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면 너무 힘들 것 같았어요. 아르바이트도 했었는데 어렵더라고요.
그래서 한 번은, 지금 이 월급으로 활동을 이어가기가 어려울 것 같다고 대표님 앞에서 울기도 했었어요. 그때 여러 의미로 참 슬프고 마음 아팠어요. 다들 어려운데. 단체 상황이 넉넉지 않은 걸 알기 때문에 참 먹먹했고요. 지금도 울컥하네요. 근데 대표님이 제 활동비는 당연히 올려야 한다고, 그건 단체 재정과 무관하게 조혜민 씨가 감당해야 할 부분이 아니라고 말씀해주시고 실제로 활동비가 인상되었어요. 돈도 돈이지만 그렇게 말씀해주시고 애써주셔서 너무 감사했던 기억이 나요. 그 이후에 활동도 더 안정적으로 할 수 있게 되었고요.
* 여세연 사무국에서 함께 일하는 동료들과 지난 여름 워크숍에서. 맨 왼쪽이 조혜민님.
Q. 조직을 떠나 활동 자체를 그만두고 싶었던 적은 없나요? 비영리, 시민사회 영역을 떠나고 싶을 땐 없었나요? 왜 떠나고 싶었어요? 그런데도 여전히 활동하는 이유는요?
앞에서 한 답변이랑 모순되기도 하고 이어지는 답변이기도 한데. 이 공간에서도 내가 이상한 사람이라고 느껴질 때, 내게 안전한 공간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 때 떠나고 싶더라고요. 사회변화를 위해 모인 우리가 우리 안의 모순되는 지점들에 대해서 변화해내지 못하고 혹은 그냥 넘어가려고 할 때, 얘기되지 못할 때, 먹먹하고 막막해요.
주변의 활동가들이 그만두거나 힘들어하는 모습을 볼 때도 그렇고요. 그래서 조금이라도 변화시켜내고 싶은데. 노력은 하겠지만 만약 이 과정에서도 가능성을 발견해내지 못하고 제게 시민사회가 안전한 공간, 운동할 수 있는 판이라는 생각이 아니라는 판단이 온다면. 저는 그만할 거에요. ‘아니면 그만둔다.’라는 마음이 있어야 더 부담 없이 문제제기할 수 있고 건강하게 활동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Q. 시민사회가 어떤 모습이었으면 좋겠나요? 내가 기대하고 이상 하는 시민사회는 어떤 모습이에요? 그게 가능하게 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모두가 건강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가까운 사람들에게 연락을 주고받을 때, ‘몸, 마음 잘 챙겨요.’라는 말을 하곤 하는데 진심이에요. 운동하는 우리가 건강하지 않다면, 행복하지 않다면 어떠한 사회 변화도 성과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해요. 그런 의미에서 서로가 서로를 챙겨줄 수 있는 여유 정도는 있는 시민사회였으면 좋겠어요.
최근에 모란공원을 다녀왔는데 되게 많이 먹먹했어요. 계속 활동하다 보면 여러 이유로 이곳을 오겠구나 싶을 때, 너무 슬펐어요. 그간 운동한 선배들도 여러 아픔을 감당하면서 지금까지 각자의 자리에 있는 거구나, 싶기도 했고요. 그래서 조금 덜 슬프기 위해, 우리의 몸과 마음을 챙기기 위해, 우리가 운동을 왜 하는지, 바쁜 일정 속에서 그럼에도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인지 끊임없이 습관처럼 확인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시민사회 내 조직문화도 바뀌어야 할 것 같고요.
Q. 활동을 지속할 수 있도록 해주는 사람(동료, 선배, 후배, 가족 등등)이 있나요? 어떤 지지를 해주나요? 그 지지의 형태나 모습은 어떤 것인가요?
되게 어려운 질문인 것 같아요. 지지해주는 사람들은 분명 있는데 나 스스로 잘 버텨야 한다는 생각을 의도적으로 많이 하는 편이라. 관계에서도 상대방이 내게 어떤 사람인가에 대한 물음보단 내가 상대방에게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 많이 고민하는 편인데요. 요즘은 ‘내가 하는 운동이 가까운 사람들을 정말 행복하게 해주고 있는 걸까?’라는 생각을 정말 많이 해요.
어떤 고민도 없는 것처럼 쩌렁쩌렁하게 문제를 제기하는 편인데 마음속 깊이 쫄보거든요. 아무리 옳은 가치라고 하더라도 사람마다 각자의 속도가 다르고 내가 모르는 맥락들이 많다고 생각해요. 그러다 보니까 관계는 제게 힘이기보다 많은 물음을 던져주는 편이어서. 이걸 넘어서 지지를 받는다! 라고 생각을 잘 못 하는 편이에요. 이 질문을 받고 보니 사람들에게 마음의 문을 더 열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드네요. 분명 제 곁에서 힘주고 지지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18년 12월, 선거제도 개혁을 위한 여의도 불꽃집회 때 단체에서 깃발을 만들어 들고 갔던 첫 자리. 오른쪽에서 두번째가 조혜민님.
Q. 세대 차이를 느끼나요? 활동하는데 세대 차이가 걸림돌 또는 장점이 되는지, 만약 그렇다면 자신은 어떤 세대라고 생각하고 다른 세대와는 어떻게 다르고 그게 활동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요.
저는 중간활동가 세대로 가고 있는 중이라고 표현을 많이 하는데 활동을 오래 한 분들과 이제 새롭게 활동 판에 진입한 분들 사이에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중간 역할을 되게 잘하고 싶다는, 아무도 주지 않은 부담감과 책임감을 느끼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는 세대 차이라는 말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 권력 관계가 있다고 생각해요. 쉽지 않게 운동한 역사 역시도 중요하지만 그럼에도 나이, 경력, 위치가 주는 권력은 존재할 수밖에 없고 이는 한편 그런 지점에서 취약한 누군가가 있음을 보여주는 거라고 봐요. 그런 의미에서 각자가 자신이 가진 권력에 대해서 돌아보는 게 필요하고 조직 내 활동가들끼리 공유하는 게 필요하고요. 활동가들의 ‘차이’는 시민사회를 보다 발전시키고 활동가들을 성장시킬 수 있다고도 믿어요.
예전에 40대 중반의 여성 기혼 활동가분과 얘기했는데 그분의 직업과 월급이 가정 내에서는 일이기보단 하고 싶은 일 하는, 약간은 취미 활동처럼 느껴져서 인정받지 못하는 순간들이 있다는 말을 듣고 충격받았었어요. 한 번도 그런 고민을 저는 해본 적이 없었거든요. 그때 이후로 내가 많이 얘기 나눠보지 못한 활동가들의 경험은 참 다양하고 그건 쉽게 추측할 수 없는 맥락이구나, 더 많이 고민해봐야지, 관심 가져야지, 라고 생각했어요.
Q. 앞으로 10년 후 모습을 상상해 봐주세요. 뭐 하고 있을 것 같아요? 그 때도 활동하고 있나요?
시민 사회활동을 하고 싶은 분들이 있을 때, 해도 좋은 활동이라고, 분명 행복해질 수 있을 거라고 말할 수 있는 활동을 하고 싶어요. 누군가에게 “혜만처럼 활동할 수 있다면 나도 하고 싶다.”라는 말을 듣고 싶은데. 욕심이겠죠. 그만큼 혼자만의 시간도 잘 갖고 여행도 가고 활동도 할 수 있는 만큼 즐겁게 건강하게 룰루랄라 하는 활동가였으면 좋겠다! 10년 후에는 지금 하는 활동을 이어나가는 사람이 된다기보단 그때의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간 운동을 했으니 요건 해야 하지 않겠어? 라기보단 그때의 제가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선택할 수 있는 사람! ‘아니면 뭐 어때’ 의 마음으로! 근데 왠지 그럼에도 활동은 계속하고 있을 것 같아요.
#정치 #페미니즘 #조혜민 #젠더 #여성정치 #정당 #시도 #서울 #인천
지난 선거 때 더불어민주당에서 낸 지자체장 후보는 전원 남성이었다. 후보자 지도가 돌며 이슈가 되었었는데 페미니즘을 말하지 않아도 이해하기 힘든 현상이었다. 활발한 여성운동과 사회적 인식 변화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의 변화는 요원해보인다.
운동과 정치 사이의 갭을 줄이고 여성의 정치참여 확대를 위한 연구와 활동을 하고 있는 젠더정치연구소 여성정치세력민주연대(이하, 여세연)의 역할이 중요한 시기이기도 하다. 여느 단체가 그렇듯 여세연 역시 1인 활동가 조직으로 해야 할 일에 비해 일할 사람이 부족하다. 여세연의 1인 활동가인 조혜민 님은 사명감도 높고 문제 인식이 촘촘해 단체의 일부터 사이드 활동까지 잘 해나가는 모범(?) 활동가처럼 보인다. 조근조근하고 설득력있게 설명하는 조혜민 님에게 활동이란 무엇일까? 내년부터 사무실에서 함께 상근할 동료가 생긴다는 소식에 축하를 전하며 활동에 대한 고민을 들어보았다.
Q. 어떤 일을 하고 계세요? 지금 가장 관심 있게 하는 일 또는 활동에 관해 이야기해주세요.
여성정치운동단체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페미니스트 정치판을 만들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바탕으로 관련된 운동을 하고 있어요. 선거제도 개혁을 위해 모인 정치개혁 공동행동과 안희정 성폭력 사건 공대위에도 참여하고 있습니다. 2020 총선은 꼭 다른 정치판을 만들 수 있는 시작점을 이뤄내고 싶어서 열심히 활동하고 있어요. 어렵긴 하지만 이뤄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요즘 커졌어요. 꼭 이뤄낼 거에요! (웃음)
Q. 어떻게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나요? 활동을 시작한 계기가 궁금해요.
잠깐이긴 했지만, 고등학교 2학년 때, 청소년단체에서 활동을 시작했어요. 공부하는 걸 좋아했는데 경쟁하는 게 참 어려웠어요. 시험을 보기 위해 이해되지 않는 걸 외우고 성적에 따라 등수를 매기고 누군가는 울고 웃는 게 당연한 일상인 게 어려웠어요. ‘성적이 잘 나오면 괜찮아질까?’ 하는 마음에 죽기 살기로 공부도 하고 성적도 잘 받았어요.
근데 전혀 행복하지 않더라고요. 축하받을 일이라고도 생각되지 않았고요. 그저 이 이해되지 못하는 상황의 모든 탓을 제게 했었어요. ‘내가 적응을 못 하는구나, 남들은 다 잘 해내는데. 사회 부적응자구나, 나는.’ 평소에는 잘 지내다가 시험 기간에는 아무것도 못 먹고 토하고 계속 울고 자기만 했었어요. 조금씩 경쟁에 익숙해지기도 했는데 참 무서웠고요. 그러다가 “이런 상황은 네 탓이 아니야. 어른들의 잘못이야.”라고 말하는 한 선생님을 만나면서 많은 자책감을 내려놓고 활동을 고민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청소년 인권운동을 하고 싶었고, 포털사이트에 검색했는데 활동하는 단체가 서울에 있더라고요. 그래서 집이 인천인데 서울 단체 사무실에 가서 사람들도 만나고. 그런데도 힘든 게 나아지지 않아서 자퇴를 더 심각하게 고민하면서 자연스럽게 단체 활동은 하지 않았어요. 아무튼, 이게 활동을 시작한 계기였어요. (웃음)
* 현재 활동하는 단체 사무실 책상 앞에서 찍은 낙태죄폐지집회 독려 사진. '지금 당장' 티셔츠는 조혜민님이 좋아하는 옷.
활동가란 누구인가요? 활동가는 어떤 것일까요? 당신은 활동가인가요?
음. ‘나는 활동가에 부합한 사람이 아니야.’라는 생각을 정말 많이 했었어요. 활동하겠다고 결정하기까지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고요. 외면했었고 외면하고 싶었거든요. 많진 않지만, 예전에 했던 활동들에서 나와 함께 한 사람들은 너무 힘들어했고 성과의 기준이라는 게 애매하지만, 활동의 성과도 너무 좋지 않았고. 저 스스로도 너무 힘들어서 자신이 없었어요. 근데 나라는 사람이 이미 ‘그런 사람’이어서. 문제제기를 해야 직성이 풀리고 일상에서의 성장이 너무 중요하고요. 등등의 것들이 활동 판에 있어야만 충족되더라고요.
그리고 어쩌면 ‘활동가’, ‘성과’라는 것에 대해 잘못 생각해왔겠다 싶기도 했었어요. 활동가란 어떤 것일까 묻고 답할 때, 사회변화를 위해 나를 온전히 던질 수 있는 사람으로서의 사명감이 강조되기보단 운동 판에 있는 활동가가 행복한가, 건강한가, 성장 가능성을 확인하고 있는가라는 기준이 중심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더 고민하게 되었고요. 그런 의미에서 활동가란 누구인지, 어떤 것인지에 대한 물음보단 그 활동가 곁에 있는 이 ‘운동 판’이 무엇인지에 대한 물음이 우선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야 활동가가 어떤 것인지 누구인지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Q. 활동을 지속하는 동기는 무엇인가요? 계속 일할 수 있는 동력은 어디서 오나요?
‘내가 이상한 사람이 아니구나’를 확인하는 순간들인 것 같아요. 앞에서도 말했지만, 고등학교 때, 정말 많이 힘들었어요. ‘쓸데없는 물음들’로 가득 차 있다 보니 내가 이상한 사람인 것만 같고. 그래서 저 자신을 되게 많이 미워했거든요.
대학생이 되어 어떤 사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할 때도 비슷했어요. 진보적인 성향이 있는 사람들이 특정 사안에 대해 외면할 때, 그때도 그 사람들을 미워하기보단 저를 미워했어요. ‘내가 이상한 사람인가.’ 그래도 그런 과정들을 거쳐서 여성학을 만나고 여성운동을 하면서 내가 이상한 사람이 아니란 걸 확인하고 지지받고 하는 순간들이 너무 감사해요. 그런 의미에서 다양한 이유들로 자신을 탓할 사람들에게 내가 받았던 감사한 순간들을 주고 싶다는 욕심도 생기는 것 같고요. 그렇게 활동할 동력이 생기는 것 같아요.
Q. 조직을 그만두고 싶을 때가 있다면 언제인가요? 그만두고 싶었던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큰돈이 필요할 때 ‘그만두어야 하나?’ 하는 생각을 가장 많이 했던 것 같아요. 내가 필요로 하는 돈은 그렇게 큰돈이 아닌데 그런데도 휘청거릴 때, 불안하더라고요. 나중에 가족이 아프거나 해서 급히 돈이 필요할 때,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면 너무 힘들 것 같았어요. 아르바이트도 했었는데 어렵더라고요.
그래서 한 번은, 지금 이 월급으로 활동을 이어가기가 어려울 것 같다고 대표님 앞에서 울기도 했었어요. 그때 여러 의미로 참 슬프고 마음 아팠어요. 다들 어려운데. 단체 상황이 넉넉지 않은 걸 알기 때문에 참 먹먹했고요. 지금도 울컥하네요. 근데 대표님이 제 활동비는 당연히 올려야 한다고, 그건 단체 재정과 무관하게 조혜민 씨가 감당해야 할 부분이 아니라고 말씀해주시고 실제로 활동비가 인상되었어요. 돈도 돈이지만 그렇게 말씀해주시고 애써주셔서 너무 감사했던 기억이 나요. 그 이후에 활동도 더 안정적으로 할 수 있게 되었고요.
* 여세연 사무국에서 함께 일하는 동료들과 지난 여름 워크숍에서. 맨 왼쪽이 조혜민님.
Q. 조직을 떠나 활동 자체를 그만두고 싶었던 적은 없나요? 비영리, 시민사회 영역을 떠나고 싶을 땐 없었나요? 왜 떠나고 싶었어요? 그런데도 여전히 활동하는 이유는요?
앞에서 한 답변이랑 모순되기도 하고 이어지는 답변이기도 한데. 이 공간에서도 내가 이상한 사람이라고 느껴질 때, 내게 안전한 공간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 때 떠나고 싶더라고요. 사회변화를 위해 모인 우리가 우리 안의 모순되는 지점들에 대해서 변화해내지 못하고 혹은 그냥 넘어가려고 할 때, 얘기되지 못할 때, 먹먹하고 막막해요.
주변의 활동가들이 그만두거나 힘들어하는 모습을 볼 때도 그렇고요. 그래서 조금이라도 변화시켜내고 싶은데. 노력은 하겠지만 만약 이 과정에서도 가능성을 발견해내지 못하고 제게 시민사회가 안전한 공간, 운동할 수 있는 판이라는 생각이 아니라는 판단이 온다면. 저는 그만할 거에요. ‘아니면 그만둔다.’라는 마음이 있어야 더 부담 없이 문제제기할 수 있고 건강하게 활동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Q. 시민사회가 어떤 모습이었으면 좋겠나요? 내가 기대하고 이상 하는 시민사회는 어떤 모습이에요? 그게 가능하게 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모두가 건강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가까운 사람들에게 연락을 주고받을 때, ‘몸, 마음 잘 챙겨요.’라는 말을 하곤 하는데 진심이에요. 운동하는 우리가 건강하지 않다면, 행복하지 않다면 어떠한 사회 변화도 성과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해요. 그런 의미에서 서로가 서로를 챙겨줄 수 있는 여유 정도는 있는 시민사회였으면 좋겠어요.
최근에 모란공원을 다녀왔는데 되게 많이 먹먹했어요. 계속 활동하다 보면 여러 이유로 이곳을 오겠구나 싶을 때, 너무 슬펐어요. 그간 운동한 선배들도 여러 아픔을 감당하면서 지금까지 각자의 자리에 있는 거구나, 싶기도 했고요. 그래서 조금 덜 슬프기 위해, 우리의 몸과 마음을 챙기기 위해, 우리가 운동을 왜 하는지, 바쁜 일정 속에서 그럼에도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인지 끊임없이 습관처럼 확인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시민사회 내 조직문화도 바뀌어야 할 것 같고요.
Q. 활동을 지속할 수 있도록 해주는 사람(동료, 선배, 후배, 가족 등등)이 있나요? 어떤 지지를 해주나요? 그 지지의 형태나 모습은 어떤 것인가요?
되게 어려운 질문인 것 같아요. 지지해주는 사람들은 분명 있는데 나 스스로 잘 버텨야 한다는 생각을 의도적으로 많이 하는 편이라. 관계에서도 상대방이 내게 어떤 사람인가에 대한 물음보단 내가 상대방에게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 많이 고민하는 편인데요. 요즘은 ‘내가 하는 운동이 가까운 사람들을 정말 행복하게 해주고 있는 걸까?’라는 생각을 정말 많이 해요.
어떤 고민도 없는 것처럼 쩌렁쩌렁하게 문제를 제기하는 편인데 마음속 깊이 쫄보거든요. 아무리 옳은 가치라고 하더라도 사람마다 각자의 속도가 다르고 내가 모르는 맥락들이 많다고 생각해요. 그러다 보니까 관계는 제게 힘이기보다 많은 물음을 던져주는 편이어서. 이걸 넘어서 지지를 받는다! 라고 생각을 잘 못 하는 편이에요. 이 질문을 받고 보니 사람들에게 마음의 문을 더 열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드네요. 분명 제 곁에서 힘주고 지지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18년 12월, 선거제도 개혁을 위한 여의도 불꽃집회 때 단체에서 깃발을 만들어 들고 갔던 첫 자리. 오른쪽에서 두번째가 조혜민님.
Q. 세대 차이를 느끼나요? 활동하는데 세대 차이가 걸림돌 또는 장점이 되는지, 만약 그렇다면 자신은 어떤 세대라고 생각하고 다른 세대와는 어떻게 다르고 그게 활동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요.
저는 중간활동가 세대로 가고 있는 중이라고 표현을 많이 하는데 활동을 오래 한 분들과 이제 새롭게 활동 판에 진입한 분들 사이에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중간 역할을 되게 잘하고 싶다는, 아무도 주지 않은 부담감과 책임감을 느끼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는 세대 차이라는 말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 권력 관계가 있다고 생각해요. 쉽지 않게 운동한 역사 역시도 중요하지만 그럼에도 나이, 경력, 위치가 주는 권력은 존재할 수밖에 없고 이는 한편 그런 지점에서 취약한 누군가가 있음을 보여주는 거라고 봐요. 그런 의미에서 각자가 자신이 가진 권력에 대해서 돌아보는 게 필요하고 조직 내 활동가들끼리 공유하는 게 필요하고요. 활동가들의 ‘차이’는 시민사회를 보다 발전시키고 활동가들을 성장시킬 수 있다고도 믿어요.
예전에 40대 중반의 여성 기혼 활동가분과 얘기했는데 그분의 직업과 월급이 가정 내에서는 일이기보단 하고 싶은 일 하는, 약간은 취미 활동처럼 느껴져서 인정받지 못하는 순간들이 있다는 말을 듣고 충격받았었어요. 한 번도 그런 고민을 저는 해본 적이 없었거든요. 그때 이후로 내가 많이 얘기 나눠보지 못한 활동가들의 경험은 참 다양하고 그건 쉽게 추측할 수 없는 맥락이구나, 더 많이 고민해봐야지, 관심 가져야지, 라고 생각했어요.
Q. 앞으로 10년 후 모습을 상상해 봐주세요. 뭐 하고 있을 것 같아요? 그 때도 활동하고 있나요?
시민 사회활동을 하고 싶은 분들이 있을 때, 해도 좋은 활동이라고, 분명 행복해질 수 있을 거라고 말할 수 있는 활동을 하고 싶어요. 누군가에게 “혜만처럼 활동할 수 있다면 나도 하고 싶다.”라는 말을 듣고 싶은데. 욕심이겠죠. 그만큼 혼자만의 시간도 잘 갖고 여행도 가고 활동도 할 수 있는 만큼 즐겁게 건강하게 룰루랄라 하는 활동가였으면 좋겠다! 10년 후에는 지금 하는 활동을 이어나가는 사람이 된다기보단 그때의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간 운동을 했으니 요건 해야 하지 않겠어? 라기보단 그때의 제가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선택할 수 있는 사람! ‘아니면 뭐 어때’ 의 마음으로! 근데 왠지 그럼에도 활동은 계속하고 있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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