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1. 국내 최초의 협동조합 주택 ’구름정원사람들‘
#. 프롤로그, 협동조합의 꿈
아파트 등의 주택은 개발회사가 짓고 이익은 그 회사와 ‘PF(’프로젝트 파이낸스) 대출을 해준 회사들이 가져간다. 예전엔 투기세력만 설쳤는데 ‘영끌족’(‘영혼까지 끌어모은다’는 뜻의 줄임말로 최대한 대출을 받아 집 사는 사람)까지 가세하면서 수도권 집값은 그야말로 미친 듯이 날뛴다. 이 나라에서 집은 안식처가 아니라 투기세력의 먹잇감으로 전락했다. 이로 인해 내 집 마련을 갈망하는 서민들은 자포자기한다. 그리고, 청년 상당수는 이 때문에 결혼을 포기한다.
내가 사는 집은 협동조합 주택이다. 조합원들이 직접 출자해 지었기 때문에 투자세력은 끼어들지 못했다. 그래서 일반주택 분양가보다 저렴하게 지어졌다. 옥상에 태양광 집열판을 설치하고 창은 3층 단열창을 사용하는 등 저에너지 고효율 친환경 주택으로 튼튼하게 지은 덕분에 관리비용과 유지비용이 적게 든다. 겨울엔 훈훈하고 여름엔 시원하다. 대한민국 최초로 협동조합을 만들어서 지은 ‘구름정원사람들’ 주택은 2015년 서울시건축상을 수상했다. 북한산 자락에 아름다운 공동체를 만들자는 꿈을 모아 지은 협동조합 주택이 그새 10년 됐다.
야망에 찬 도시의 그 불빛
어디에도 나는 없다
이 큰 도시의 복판에
이렇듯 철저히
혼자 버려진들
무슨 상관이랴
_ 조용필의 노래 ‘킬리만자로의 표범’ 가사 일부
꿈은 꿈일 뿐일까. 이웃이 고독사를 당해도 어찌할 수 없는 야망에 찬 도시에서 철저히 각자도생으로 살던 사람들이 나보다 이웃을 더 배려하고, 이웃을 위해 내가 더 수고하고, 이웃을 위해 손해를 감수하기란 쉽지 않다. 공동체 삶이란 구호가 아니라 생활이므로 공동체의 가치를 실현하려면 자잘한 이해관계에서 자기손해와 자기희생이 뒤따라야 하는데 쉽지 않은 일이다. ‘구름정원사람들’은 자잘한 이해관계를 극복하지 못하면서 각개의 삶으로 돌아갔다. 공동체의 꿈은 실패했지만 포기한 것은 아니다. 나는 여기서 살다가 생을 마칠 것이므로 실패했을지라도 이웃 간의 정을 쌓으며 살 것이다. 그러므로 투기 세력에게 내 집 마련의 꿈을 빼앗긴 사람들이여 협동조합 주택으로 저항하고 맞서시라. 저렴한 분양가로 튼튼하고 내실 있는 안식처를 마련하시라.
#. 엄마와 아내에서 협동조합 열혈 활동가로 성장한 이야기
▲사진 2. 경기도협동조합협의회 김은선 대표
’三歲之習 至于八十‘(삼세지습 지우팔십)
‘세 살 적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라는 고사성어다. 어릴 적 버릇은 늙어 죽을 때까지 고치기 힘들다고 하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사람의 습관은 세 살 전에 90% 이상 완성된다는 연구와도 일맥상통하니 어릴 적에 좋은 습관을 들이면 좋은 사람이 될 확률이 매우 높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고사성어는 옛말이 아니라 이 시대에도 매우 유효한 양육 지침일 것이다. 이를 잘 실천한 엄마가 있다.
김은선 대표는 세 아이의 엄마이다. 그는 자신의 아이들을 잘 키우기 위해 세 살까지는 양육에 전념했다. ‘초기 애착 형성’을 위해 36개월 동안은 엄마가 키워야 한다는 생각을 신념처럼 간직했다. 삼 남매의 터울이 많아서 양육 공백기에는 초·중등 학교에서 영어과 기간제 교사로 근무하며 가정을 돌보는 일에만 전념했다. 자녀 양육과 가정 돌보기에만 충실했던 주부가 협동조합 전도사이자 열혈 공익활동가로 성장했다. 김 대표의 성장 이야기를 들으면서 ‘암닭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라는 잘못된 속설을 ‘여성이 나서야 세상이 흥한다’라고 바꿔야 한다는 믿음이 생겼다.
Q. 어떤 계기로 협동조합 활동을 하게 되었나요.
“두 아이를 어느 정도 키운 2012년 ‘수원시평생학습관(현, 수원시글로벌평생학습관)’과 사회적기업 ‘(주)에듀머니’가 지역의 재무관리 전문가 양성 및 일자리 창출을 위해 공동사업으로 추진한 제1회 재무관리사 양성과정에 참여했습니다. 이 ‘재무관리사’ 양성사업은 기존 투자 중심의 재무 상담에 더해 위기 가정의 재무를 상담하고 컨설팅하는 내용까지 포함됐습니다. 건강한 소비 의식을 전파하는 지역 재무전문가 양성사업에는 수원에 거주하는 고학력 경력단절 여성과 전문직 퇴직자 등이 참여했습니다.
당시 에듀머니 제윤경 대표 등의 강사로부터 강의를 들으면서 노동 가치 중시, 불로소득에 의한 자본증식의 문제, 자본주의의 폐해와 함께 사는 공동체 등에 대해 눈뜨게 됐습니다. 무엇보다 기뻤던 것은 재무관리사 양성과정에 참여한 멤버들을 만나면서 인생이 달라진 점입니다. 모든 과정을 수료하고 자발적인 학습 동아리를 구성하며 앞으로 무엇을 함께 할까? 고민했습니다. 그때 당시, 신용카드 남발에 의한 가계부채가 1,000조에 이르고 신용불량에 의한 위기 가정이 속출하는 등 사회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재무관리 교육을 받으면서 신용불량(현, 채무불이행) 등의 경제문제는 개인의 문제로만 해석될 것이 아니라 사회적 차원에서도 되돌아봐야 할 문제라고 인식한 멤버들이 올바른 경제교육을 통해 재무관리를 도와주는 교육 기관을 만들자는 뜻을 모아 ‘라온경제교육협동조합’(현, 라온경제교육사회적협동조합. 이하, 라온) 사회적기업을 설립했습니다. 2013년 수원시가 주최한 사회적기업 창업오디션에 참여해 특별상을 수상하면서 사업화에 속도를 냈습니다. 참고로, ‘라온’은 ‘즐거운’이란 뜻을 가진 순수한 우리말입니다. 돈과 관련된 가정 경제 문제를 거론하면 불편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경제 이야기를 즐겁게 하면서 문제 해결을 도모하자는 취지를 담아 이름을 정했습니다.”
Q. ‘라온’은 어떤 사회적기업인가요.
“‘라온’은 어린이와 청소년, 성인에게 건강한 돈 철학 즉, 올바른 경제교육을 통해 더불어 사는 삶을 만들자는 뜻을 가진 사회적기업입니다. 경제는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에게 중요한 가치이자 수단입니다. 그런데 행복한 삶의 수단이 되어야 할 경제를 잘못 사용하면서 부채 등의 문제로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그래서, 경제의 노예가 아니라 주도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올바른 경제교육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청소년들에겐 사회적 기업가 정신을 소개하고, 청년과 성인에겐 사회적 경제와 협동조합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경제교육 강사 양성을 통해 경력전환 여성과 청년들에게 전문 강사 활동 기회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사진 3. 2023년 평택평생학습센터에서 진행한 슬기로운 경제교육 강사양성과정 수료식.
Q. 가정밖에 모르는 아내이자 엄마에서 사회를 변화시키는 열혈 공익활동가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결혼 후 10년 동안 자녀를 양육하며 엄마와 아내로서만 살았습니다. 어느 날 돌아보니 남편은 직장인으로 계속 성장하는 모습이 보이는데, 영어교사였던 나는 뭐지? 엄마와 주부의 역할을 중요한 가치로 여기며 살았는데 뭔가 빠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바쁜 사회인으로 살아가는 남편과는 반대로 자녀 양육에만 매몰되어 있는 것 같은 나의 모습이 대조되면서 경력단절 여성의 아픔과 절망이 엄습했습니다. 나의 존재를 까마득히 잊고 살던 어느 날, 엄마와 아내라는 존재만이 아니라 김은선이라는 존재를 확인해야겠다고 자각하면서 돌파구를 찾아 나섰습니다. 어떤 가정보다 행복한 가정이었고 부부 갈등이 거의 없는 평화로운 가정이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결혼 10년이 되면서 가부장적인 역할을 평등한 역할로 변화시켜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면서 이런 간극을 좁혀가는 과정에서 발생한 불화와 갈등으로 다소 힘들었습니다.”
Q. 힘든 시기를 잘 극복하셨나요.
“라온 구성원들을 만나 협동조합 활동을 시작하면서 세상이 다시 빛나기 시작했습니다. 가족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었고, 해왔지만 동시에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했을 때 행복감이 커진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협동조합 활동을 통해 사회적 역량을 마음껏 발휘하는 아내의 행복한 모습을 보면서 남편은 아내의 사회활동을 존중하고 동의해주었습니다. 그렇게 살림과 자녀 양육을 함께하면서 신뢰를 회복했고 부부 관계는 더욱 성숙해졌습니다. 이처럼 불화와 갈등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사랑스러운 셋째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Q. 사회 진보를 위해서도 여성의 사회활동은 꼭 필요합니다. 그런데 출산과 육아와 살림이라는 문제로 부부 갈등과 여성 차별 문제 등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여성들이 만든 ‘라온경제교육협동조합’에서도 이런 어려움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제가 셋째 아이를 임신했던 2013년은 ‘라온’을 설립하던 해였는데 성장을 위해 집중해도 부족한 설립 시기에 주 멤버 7명 중에 어떤 멤버는 시 산하기관에 파견가고, 어떤 멤버는 자녀 임신과 출산 등의 이유로 협동조합 운영에 쉽지 않은 상황을 맞았습니다. 이처럼 위기 상황이었음에도 여성의 특성이 한껏 발휘되면서 공동 육아를 하는 등 협동과 배려의 힘으로 어려움을 극복해 나갔습니다. 특히 제가 강의를 나가면 ‘라온’ 창립 멤버이자 든든한 언니인 김효연 이사장님(김은선 회장은 전 이사장)이 양육을 도맡아 주실 정도여서 셋째를 낳은 것은 저이지만 셋째를 키운 사람들은 라온의 조합원들이었습니다. 이처럼 협력의 힘이 크다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사진 4. ‘라온’을 같이 만들고 ‘라온’을 같이 성장시킨 김은선(왼쪽) ‘라온’ 전 대표와 김효연 ‘라온’ 현 대표
Q. 협동조합은 ‘이익 공동체’라기보다 ‘가치 공동체’라는 생각이 듭니다. 가치보다 이익을 추구하는 세상에서 돈이 안 되는 협동조합 운동을 하기란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라온을 창립하기도 전에 경제교육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2012년 서울 수리초등학교를 비롯해 수원시의 초중고뿐 아니라 지역아동센터와 발달장애 청년을 대상으로 경제교육 진행을 시작했습니다. 재무관리사 양성교육을 수료하자마자 부족함을 느꼈던 멤버들과 어린이 경제교육 강사 과정을 스스로 열어 학습의 과정을 이어갔습니다. 동아리 시절부터 강의 요청이 계속되는 바람에 학습과 강의를 병행하는 과정이었습니다. 라온 창립 초기엔 강사료가 유일한 수입원이었는데 시간당 강사비는 3만 원에 불과하던 시절이었습니다.”
Q. 정부와 지자체의 지원을 기대하고 협동조합을 만들었다가 그렇지 않은 현실에 실망하고 해산하거나 유명무실하게 되어버린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라온’은 10년을 어떻게 견디었습니까.
“라온을 지킬 수 있었던 원동력은 협동조합 운동이 좋아서 모인 순수한 여성들이 서로 좋아하면서 끈끈한 삶의 공동체를 지향했기 때문입니다. 협동조합은 수고한 것에 비해 수입이 많지 않은 것은 사실입니다. 창립 후 3년 정도는 수입이 많지 않아도 견딜 수 있어야 합니다. 초기의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역량이 쌓이고 인정을 받게 되면 돈만 버는 것이 아니라 건강한 경제 가치를 크게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협동조합을 성장시키기 위해선 긴 호흡이 필요합니다.
협동조합뿐만이 아니라 어떤 일이든 초기엔 어렵기 마련입니다. 지난 2023년이 ‘라온’ 창립 10주년이었는데 출자금도 상향되었고 직접 고용한 직원 2명이 근무하고 있습니다. 협동조합을 지탱하는 가장 큰 힘은 헌신하는 리더십과 그에 대한 온전한 신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온유함과 든든함을 겸비한 김효연 이사장님의 리더십과 각자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는 조합원들의 응답이 ‘라온’을 지켰고 성장 동력이 됐습니다.”
▲사진 5. 상인협동조합 설립 지원 컨설팅으로 진행한 태안서부시장상인협동조합 창립총회에 참석한 김은선 대표.
Q. 엄마이자 주부, 공익활동가로 바쁘게 일하는 와중에 박사 학위까지 받았다고 들었습니다.
“지난 2022년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두 딸(21세, 17세)과 아들(11세)과 남편의 지원과 응원 덕분이었습니다. 큰 갈등을 극복하면서 남편도 저도 많이 달라졌습니다. 큰딸이 성남에 있는 이우학교를 다녔는데 남편이 3년 동안 수원에서 성남까지 직접 통학시켜주었고, 학교에서 야자와 보충수업이 없어지면서 일찍 귀가해 집안 정리를 맡아주었고, 아이들 공부를 시키는 등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엄마가 협동조합으로 바쁘게 활동하자 두 딸은 셋째로 태어난 막내 기저귀를 갈아주고 분유를 타주는 등으로 엄마를 대신해 동생을 돌봐주었습니다.
주중에는 각종 회의와 강연 등의 일정이 가득 차 있어서 밤늦은 시간까지 활동할 때가 많습니다. 거기다 박사 논문까지 써야 해서 정말 바쁘고 힘들었습니다. 성격상 무엇이든 시작하면 끝까지 해내는 편이어서 이를 감당하는 것은 저의 몫일 수 있었으나, 남편과 아이들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박사 학위 취득은 어려웠을 것입니다. 바쁜 와중에도 아이들의 고민과 주문에 카톡 등을 통해 수시로 응답하고, 해결하는 방식으로 부족한 시간을 보완했습니다. 3남매는 협동조합 활동을 하면서 사회적 역량을 발휘하고 박사 학위까지 취득한 엄마를 자랑스러워합니다. 박사 학위를 취득하면서 협동조합 등 사회적경제와 관련된 기관들에서 진행하던 강의를 포함한 다양한 기관에서의 요청으로 활동 영역이 확대되고 있습니다.”
#. 에필로그, 협동조합 꽃이 만발하는 그날을 위해
▲사진 6. 경기도사회적경제원의 2023년 성과공유회에서 수원시이종협동조합연합회가 진행한 협동조합 내실화 사업의 경과와 성과를 발표하는 김은선 대표.
‘협동’(協同)의 사전적 의미는 ‘서로 마음과 힘을 하나로 합한다’라는 뜻이다. 무한경쟁의 세상에서 각자도생으로 살아가는 우리가 서로 도우면서 살 수 있을까? 이 시대를 보면서 나는 협동조합에 대해 ‘반신반의’(半信半疑)했다. 협동조합의 필요성을 공감하고 지지하나 이기주의에 체화된 사람들이 자기희생과 헌신이 뒤따라야 가능한 ‘협동조합’이란 깃발을 과연 드높일 수 있을까.
지난 2021년 10월, 김정원 경기도협동조합 선임대표가 쉰셋의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 고인은 경기도 남양주 별내에 협동조합형 공공지원 민간임대주택 ‘위스테이별내’를 만드는 데 전력투구했다. 국토교통부 시범사업으로 조성된 ‘위스테이별내’는 총 491세대로 구성됐는데 아파트 전체 입주민이 조합원이다. 남양주시협동조합연합회 회장과 경기도협동조합 선임대표였던 고인은 ‘나의 종교는 협동조합‘이라고 말할 정도로 협동조합 운동에 모든 것을 바친 열혈 활동가였다.
동료를 잃은 김은선 대표는 장례 3일 동안 빈소를 지켰다. 황망한 유족을 대신해서 협동조합 활동가와 관계 공무원 등의 조문객들을 접대했다. 2020년, 암 투병하던 ’수원지역협동조합협의회‘ 배현경 대표가 돌아가셨을 때도 3일간 빈소를 지켰다. 협동조합 활동가뿐 아니라 시민사회 동료들은 궂은일을 도맡아 하는 김 대표를 일러 ’의리가 있는 사람‘이라고 평한다. 돈 놓고 돈 먹기 게임을 하는 천민자본주의는 의리를 요구하지 않지만 척박한 땅에서 돈이 안 되는 협동조합을 성장시키고 꽃 피우기 위해선 누군가 눈물로 씨를 뿌리고 땀 흘리며 물을 주어야 한다. 이런 일을 누가 할까. 돈에 눈먼 사람이 할까. 이익에 약삭빠른 사람이 할까. 쫀쫀한 남자보다, 얍삽한 사내보다 의리를 더 중시하는 여성 활동가 김은선 대표가 협동조합을 꽃피우기 위해 눈물로 씨를 뿌리고 있다.
각자도생과 개인 이기주의가 뿌리내린 이 땅은 협동조합의 꽃을 피우기엔 메마른 땅이다. 이런 땅에 협동조합의 씨를 뿌리면 뜨거운 햇볕에 말라 죽기 십상이다. 그렇다고 해서 씨 뿌리기를 포기해선 곤란하다. 욕망에 눈먼 자들이 이 세상을 사막으로 만들 때, 사막을 푸른 숲으로 만들기 위해 생을 바친 공익의 선지자들이 있었듯이 박토(薄土)를 옥토(沃土)로 만들기 위해 눈물의 씨를 뿌리는 공익활동가들이 선전하고 있으므로 무심하지 않은 하늘이 비를 내려줄 것이다. 그리하여, 값진 수고로 인해 협동조합의 꽃이 만발하는 그날이 반드시 올 것이므로 그대들이여, 더욱 박차를 가하시라.
#경기 #사회적기업 #협동조합 #김은선
인터뷰어 : 조호진
1989년 <노동해방문학>으로 작품활동 시작. 시집 『소년원의 봄』(2016년 도서출판삼인)과 수필집 『소년의 눈물』(2017 도서출판삼인) 등을 펴냈다. 현재 미혼모와 위기 청소년을 돕고 있는 60대 공익활동가다.
2024공익활동가주간을 맞아 다양한 지역과 분야에서 자기만의 방식으로 변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활동가들을 만나 이들의 일과 삶에 대한 이야기를 기록하는 활동가인터뷰 공모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인터뷰 공모에는 여러 지역의 활동가들이 참여해주셨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공익활동가사회적협동조합 동행>, <한국시민사회지원조직네트워크>, <지리산이음>이 공동주최하고, <아름다운재단>이 지원했습니다. |
▲사진 1. 국내 최초의 협동조합 주택 ’구름정원사람들‘
#. 프롤로그, 협동조합의 꿈
아파트 등의 주택은 개발회사가 짓고 이익은 그 회사와 ‘PF(’프로젝트 파이낸스) 대출을 해준 회사들이 가져간다. 예전엔 투기세력만 설쳤는데 ‘영끌족’(‘영혼까지 끌어모은다’는 뜻의 줄임말로 최대한 대출을 받아 집 사는 사람)까지 가세하면서 수도권 집값은 그야말로 미친 듯이 날뛴다. 이 나라에서 집은 안식처가 아니라 투기세력의 먹잇감으로 전락했다. 이로 인해 내 집 마련을 갈망하는 서민들은 자포자기한다. 그리고, 청년 상당수는 이 때문에 결혼을 포기한다.
내가 사는 집은 협동조합 주택이다. 조합원들이 직접 출자해 지었기 때문에 투자세력은 끼어들지 못했다. 그래서 일반주택 분양가보다 저렴하게 지어졌다. 옥상에 태양광 집열판을 설치하고 창은 3층 단열창을 사용하는 등 저에너지 고효율 친환경 주택으로 튼튼하게 지은 덕분에 관리비용과 유지비용이 적게 든다. 겨울엔 훈훈하고 여름엔 시원하다. 대한민국 최초로 협동조합을 만들어서 지은 ‘구름정원사람들’ 주택은 2015년 서울시건축상을 수상했다. 북한산 자락에 아름다운 공동체를 만들자는 꿈을 모아 지은 협동조합 주택이 그새 10년 됐다.
꿈은 꿈일 뿐일까. 이웃이 고독사를 당해도 어찌할 수 없는 야망에 찬 도시에서 철저히 각자도생으로 살던 사람들이 나보다 이웃을 더 배려하고, 이웃을 위해 내가 더 수고하고, 이웃을 위해 손해를 감수하기란 쉽지 않다. 공동체 삶이란 구호가 아니라 생활이므로 공동체의 가치를 실현하려면 자잘한 이해관계에서 자기손해와 자기희생이 뒤따라야 하는데 쉽지 않은 일이다. ‘구름정원사람들’은 자잘한 이해관계를 극복하지 못하면서 각개의 삶으로 돌아갔다. 공동체의 꿈은 실패했지만 포기한 것은 아니다. 나는 여기서 살다가 생을 마칠 것이므로 실패했을지라도 이웃 간의 정을 쌓으며 살 것이다. 그러므로 투기 세력에게 내 집 마련의 꿈을 빼앗긴 사람들이여 협동조합 주택으로 저항하고 맞서시라. 저렴한 분양가로 튼튼하고 내실 있는 안식처를 마련하시라.
#. 엄마와 아내에서 협동조합 열혈 활동가로 성장한 이야기
▲사진 2. 경기도협동조합협의회 김은선 대표
’三歲之習 至于八十‘(삼세지습 지우팔십)
‘세 살 적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라는 고사성어다. 어릴 적 버릇은 늙어 죽을 때까지 고치기 힘들다고 하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사람의 습관은 세 살 전에 90% 이상 완성된다는 연구와도 일맥상통하니 어릴 적에 좋은 습관을 들이면 좋은 사람이 될 확률이 매우 높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고사성어는 옛말이 아니라 이 시대에도 매우 유효한 양육 지침일 것이다. 이를 잘 실천한 엄마가 있다.
김은선 대표는 세 아이의 엄마이다. 그는 자신의 아이들을 잘 키우기 위해 세 살까지는 양육에 전념했다. ‘초기 애착 형성’을 위해 36개월 동안은 엄마가 키워야 한다는 생각을 신념처럼 간직했다. 삼 남매의 터울이 많아서 양육 공백기에는 초·중등 학교에서 영어과 기간제 교사로 근무하며 가정을 돌보는 일에만 전념했다. 자녀 양육과 가정 돌보기에만 충실했던 주부가 협동조합 전도사이자 열혈 공익활동가로 성장했다. 김 대표의 성장 이야기를 들으면서 ‘암닭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라는 잘못된 속설을 ‘여성이 나서야 세상이 흥한다’라고 바꿔야 한다는 믿음이 생겼다.
Q. 어떤 계기로 협동조합 활동을 하게 되었나요.
“두 아이를 어느 정도 키운 2012년 ‘수원시평생학습관(현, 수원시글로벌평생학습관)’과 사회적기업 ‘(주)에듀머니’가 지역의 재무관리 전문가 양성 및 일자리 창출을 위해 공동사업으로 추진한 제1회 재무관리사 양성과정에 참여했습니다. 이 ‘재무관리사’ 양성사업은 기존 투자 중심의 재무 상담에 더해 위기 가정의 재무를 상담하고 컨설팅하는 내용까지 포함됐습니다. 건강한 소비 의식을 전파하는 지역 재무전문가 양성사업에는 수원에 거주하는 고학력 경력단절 여성과 전문직 퇴직자 등이 참여했습니다.
당시 에듀머니 제윤경 대표 등의 강사로부터 강의를 들으면서 노동 가치 중시, 불로소득에 의한 자본증식의 문제, 자본주의의 폐해와 함께 사는 공동체 등에 대해 눈뜨게 됐습니다. 무엇보다 기뻤던 것은 재무관리사 양성과정에 참여한 멤버들을 만나면서 인생이 달라진 점입니다. 모든 과정을 수료하고 자발적인 학습 동아리를 구성하며 앞으로 무엇을 함께 할까? 고민했습니다. 그때 당시, 신용카드 남발에 의한 가계부채가 1,000조에 이르고 신용불량에 의한 위기 가정이 속출하는 등 사회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재무관리 교육을 받으면서 신용불량(현, 채무불이행) 등의 경제문제는 개인의 문제로만 해석될 것이 아니라 사회적 차원에서도 되돌아봐야 할 문제라고 인식한 멤버들이 올바른 경제교육을 통해 재무관리를 도와주는 교육 기관을 만들자는 뜻을 모아 ‘라온경제교육협동조합’(현, 라온경제교육사회적협동조합. 이하, 라온) 사회적기업을 설립했습니다. 2013년 수원시가 주최한 사회적기업 창업오디션에 참여해 특별상을 수상하면서 사업화에 속도를 냈습니다. 참고로, ‘라온’은 ‘즐거운’이란 뜻을 가진 순수한 우리말입니다. 돈과 관련된 가정 경제 문제를 거론하면 불편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경제 이야기를 즐겁게 하면서 문제 해결을 도모하자는 취지를 담아 이름을 정했습니다.”
Q. ‘라온’은 어떤 사회적기업인가요.
“‘라온’은 어린이와 청소년, 성인에게 건강한 돈 철학 즉, 올바른 경제교육을 통해 더불어 사는 삶을 만들자는 뜻을 가진 사회적기업입니다. 경제는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에게 중요한 가치이자 수단입니다. 그런데 행복한 삶의 수단이 되어야 할 경제를 잘못 사용하면서 부채 등의 문제로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그래서, 경제의 노예가 아니라 주도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올바른 경제교육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청소년들에겐 사회적 기업가 정신을 소개하고, 청년과 성인에겐 사회적 경제와 협동조합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경제교육 강사 양성을 통해 경력전환 여성과 청년들에게 전문 강사 활동 기회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사진 3. 2023년 평택평생학습센터에서 진행한 슬기로운 경제교육 강사양성과정 수료식.
Q. 가정밖에 모르는 아내이자 엄마에서 사회를 변화시키는 열혈 공익활동가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결혼 후 10년 동안 자녀를 양육하며 엄마와 아내로서만 살았습니다. 어느 날 돌아보니 남편은 직장인으로 계속 성장하는 모습이 보이는데, 영어교사였던 나는 뭐지? 엄마와 주부의 역할을 중요한 가치로 여기며 살았는데 뭔가 빠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바쁜 사회인으로 살아가는 남편과는 반대로 자녀 양육에만 매몰되어 있는 것 같은 나의 모습이 대조되면서 경력단절 여성의 아픔과 절망이 엄습했습니다. 나의 존재를 까마득히 잊고 살던 어느 날, 엄마와 아내라는 존재만이 아니라 김은선이라는 존재를 확인해야겠다고 자각하면서 돌파구를 찾아 나섰습니다. 어떤 가정보다 행복한 가정이었고 부부 갈등이 거의 없는 평화로운 가정이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결혼 10년이 되면서 가부장적인 역할을 평등한 역할로 변화시켜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면서 이런 간극을 좁혀가는 과정에서 발생한 불화와 갈등으로 다소 힘들었습니다.”
Q. 힘든 시기를 잘 극복하셨나요.
“라온 구성원들을 만나 협동조합 활동을 시작하면서 세상이 다시 빛나기 시작했습니다. 가족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었고, 해왔지만 동시에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했을 때 행복감이 커진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협동조합 활동을 통해 사회적 역량을 마음껏 발휘하는 아내의 행복한 모습을 보면서 남편은 아내의 사회활동을 존중하고 동의해주었습니다. 그렇게 살림과 자녀 양육을 함께하면서 신뢰를 회복했고 부부 관계는 더욱 성숙해졌습니다. 이처럼 불화와 갈등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사랑스러운 셋째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Q. 사회 진보를 위해서도 여성의 사회활동은 꼭 필요합니다. 그런데 출산과 육아와 살림이라는 문제로 부부 갈등과 여성 차별 문제 등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여성들이 만든 ‘라온경제교육협동조합’에서도 이런 어려움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제가 셋째 아이를 임신했던 2013년은 ‘라온’을 설립하던 해였는데 성장을 위해 집중해도 부족한 설립 시기에 주 멤버 7명 중에 어떤 멤버는 시 산하기관에 파견가고, 어떤 멤버는 자녀 임신과 출산 등의 이유로 협동조합 운영에 쉽지 않은 상황을 맞았습니다. 이처럼 위기 상황이었음에도 여성의 특성이 한껏 발휘되면서 공동 육아를 하는 등 협동과 배려의 힘으로 어려움을 극복해 나갔습니다. 특히 제가 강의를 나가면 ‘라온’ 창립 멤버이자 든든한 언니인 김효연 이사장님(김은선 회장은 전 이사장)이 양육을 도맡아 주실 정도여서 셋째를 낳은 것은 저이지만 셋째를 키운 사람들은 라온의 조합원들이었습니다. 이처럼 협력의 힘이 크다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사진 4. ‘라온’을 같이 만들고 ‘라온’을 같이 성장시킨 김은선(왼쪽) ‘라온’ 전 대표와 김효연 ‘라온’ 현 대표
Q. 협동조합은 ‘이익 공동체’라기보다 ‘가치 공동체’라는 생각이 듭니다. 가치보다 이익을 추구하는 세상에서 돈이 안 되는 협동조합 운동을 하기란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라온을 창립하기도 전에 경제교육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2012년 서울 수리초등학교를 비롯해 수원시의 초중고뿐 아니라 지역아동센터와 발달장애 청년을 대상으로 경제교육 진행을 시작했습니다. 재무관리사 양성교육을 수료하자마자 부족함을 느꼈던 멤버들과 어린이 경제교육 강사 과정을 스스로 열어 학습의 과정을 이어갔습니다. 동아리 시절부터 강의 요청이 계속되는 바람에 학습과 강의를 병행하는 과정이었습니다. 라온 창립 초기엔 강사료가 유일한 수입원이었는데 시간당 강사비는 3만 원에 불과하던 시절이었습니다.”
Q. 정부와 지자체의 지원을 기대하고 협동조합을 만들었다가 그렇지 않은 현실에 실망하고 해산하거나 유명무실하게 되어버린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라온’은 10년을 어떻게 견디었습니까.
“라온을 지킬 수 있었던 원동력은 협동조합 운동이 좋아서 모인 순수한 여성들이 서로 좋아하면서 끈끈한 삶의 공동체를 지향했기 때문입니다. 협동조합은 수고한 것에 비해 수입이 많지 않은 것은 사실입니다. 창립 후 3년 정도는 수입이 많지 않아도 견딜 수 있어야 합니다. 초기의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역량이 쌓이고 인정을 받게 되면 돈만 버는 것이 아니라 건강한 경제 가치를 크게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협동조합을 성장시키기 위해선 긴 호흡이 필요합니다.
협동조합뿐만이 아니라 어떤 일이든 초기엔 어렵기 마련입니다. 지난 2023년이 ‘라온’ 창립 10주년이었는데 출자금도 상향되었고 직접 고용한 직원 2명이 근무하고 있습니다. 협동조합을 지탱하는 가장 큰 힘은 헌신하는 리더십과 그에 대한 온전한 신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온유함과 든든함을 겸비한 김효연 이사장님의 리더십과 각자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는 조합원들의 응답이 ‘라온’을 지켰고 성장 동력이 됐습니다.”
▲사진 5. 상인협동조합 설립 지원 컨설팅으로 진행한 태안서부시장상인협동조합 창립총회에 참석한 김은선 대표.
Q. 엄마이자 주부, 공익활동가로 바쁘게 일하는 와중에 박사 학위까지 받았다고 들었습니다.
“지난 2022년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두 딸(21세, 17세)과 아들(11세)과 남편의 지원과 응원 덕분이었습니다. 큰 갈등을 극복하면서 남편도 저도 많이 달라졌습니다. 큰딸이 성남에 있는 이우학교를 다녔는데 남편이 3년 동안 수원에서 성남까지 직접 통학시켜주었고, 학교에서 야자와 보충수업이 없어지면서 일찍 귀가해 집안 정리를 맡아주었고, 아이들 공부를 시키는 등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엄마가 협동조합으로 바쁘게 활동하자 두 딸은 셋째로 태어난 막내 기저귀를 갈아주고 분유를 타주는 등으로 엄마를 대신해 동생을 돌봐주었습니다.
주중에는 각종 회의와 강연 등의 일정이 가득 차 있어서 밤늦은 시간까지 활동할 때가 많습니다. 거기다 박사 논문까지 써야 해서 정말 바쁘고 힘들었습니다. 성격상 무엇이든 시작하면 끝까지 해내는 편이어서 이를 감당하는 것은 저의 몫일 수 있었으나, 남편과 아이들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박사 학위 취득은 어려웠을 것입니다. 바쁜 와중에도 아이들의 고민과 주문에 카톡 등을 통해 수시로 응답하고, 해결하는 방식으로 부족한 시간을 보완했습니다. 3남매는 협동조합 활동을 하면서 사회적 역량을 발휘하고 박사 학위까지 취득한 엄마를 자랑스러워합니다. 박사 학위를 취득하면서 협동조합 등 사회적경제와 관련된 기관들에서 진행하던 강의를 포함한 다양한 기관에서의 요청으로 활동 영역이 확대되고 있습니다.”
#. 에필로그, 협동조합 꽃이 만발하는 그날을 위해
▲사진 6. 경기도사회적경제원의 2023년 성과공유회에서 수원시이종협동조합연합회가 진행한 협동조합 내실화 사업의 경과와 성과를 발표하는 김은선 대표.
‘협동’(協同)의 사전적 의미는 ‘서로 마음과 힘을 하나로 합한다’라는 뜻이다. 무한경쟁의 세상에서 각자도생으로 살아가는 우리가 서로 도우면서 살 수 있을까? 이 시대를 보면서 나는 협동조합에 대해 ‘반신반의’(半信半疑)했다. 협동조합의 필요성을 공감하고 지지하나 이기주의에 체화된 사람들이 자기희생과 헌신이 뒤따라야 가능한 ‘협동조합’이란 깃발을 과연 드높일 수 있을까.
지난 2021년 10월, 김정원 경기도협동조합 선임대표가 쉰셋의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 고인은 경기도 남양주 별내에 협동조합형 공공지원 민간임대주택 ‘위스테이별내’를 만드는 데 전력투구했다. 국토교통부 시범사업으로 조성된 ‘위스테이별내’는 총 491세대로 구성됐는데 아파트 전체 입주민이 조합원이다. 남양주시협동조합연합회 회장과 경기도협동조합 선임대표였던 고인은 ‘나의 종교는 협동조합‘이라고 말할 정도로 협동조합 운동에 모든 것을 바친 열혈 활동가였다.
동료를 잃은 김은선 대표는 장례 3일 동안 빈소를 지켰다. 황망한 유족을 대신해서 협동조합 활동가와 관계 공무원 등의 조문객들을 접대했다. 2020년, 암 투병하던 ’수원지역협동조합협의회‘ 배현경 대표가 돌아가셨을 때도 3일간 빈소를 지켰다. 협동조합 활동가뿐 아니라 시민사회 동료들은 궂은일을 도맡아 하는 김 대표를 일러 ’의리가 있는 사람‘이라고 평한다. 돈 놓고 돈 먹기 게임을 하는 천민자본주의는 의리를 요구하지 않지만 척박한 땅에서 돈이 안 되는 협동조합을 성장시키고 꽃 피우기 위해선 누군가 눈물로 씨를 뿌리고 땀 흘리며 물을 주어야 한다. 이런 일을 누가 할까. 돈에 눈먼 사람이 할까. 이익에 약삭빠른 사람이 할까. 쫀쫀한 남자보다, 얍삽한 사내보다 의리를 더 중시하는 여성 활동가 김은선 대표가 협동조합을 꽃피우기 위해 눈물로 씨를 뿌리고 있다.
각자도생과 개인 이기주의가 뿌리내린 이 땅은 협동조합의 꽃을 피우기엔 메마른 땅이다. 이런 땅에 협동조합의 씨를 뿌리면 뜨거운 햇볕에 말라 죽기 십상이다. 그렇다고 해서 씨 뿌리기를 포기해선 곤란하다. 욕망에 눈먼 자들이 이 세상을 사막으로 만들 때, 사막을 푸른 숲으로 만들기 위해 생을 바친 공익의 선지자들이 있었듯이 박토(薄土)를 옥토(沃土)로 만들기 위해 눈물의 씨를 뿌리는 공익활동가들이 선전하고 있으므로 무심하지 않은 하늘이 비를 내려줄 것이다. 그리하여, 값진 수고로 인해 협동조합의 꽃이 만발하는 그날이 반드시 올 것이므로 그대들이여, 더욱 박차를 가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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