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공익활동가주간]엄마사회학 콘텐츠 액티비즘, 리브스토리즈 대표 최은영

변화를만드는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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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고유 콘텐츠로 사람들을 울고 웃게 하고 싶다며 자신을 콘텐츠엔터테이너, 콘텐츠액티비스트라고 소개하는 1인 여성주의 활동가 최은영. 1인 기업 “리브스토리즈”를 운영하며, “엄마사회학 콘텐츠”를 전파하는 최은영 대표를 소개한다. 


Q. ‘리브스토리즈’는 어떤 곳인가요?

‘리브스토리즈’는 영문으로 ‘Live Stories’인데요, ‘자신의 이야기를 마음껏 표현하고 그것대로 살아보자’라는 의미가 있어요. 리브스토리즈는 2022년에 시작한 1인 기업이에요. “엄마”라는 주체가 어떤 사회적 요인들과 관계 맺고 있는지, 그 속에서 어떤 이야기를 갖는지, 엄마의 정체성을 가지고 능동적인 삶을 살려면 어떤 요인을 비중 있게 다루고, 삶의 요소 간에 어떻게 균형을 맞춰야 하는지, 구체적인 나다움을 위해 어떤 논리를 갖춰야 하는지, 결국 어떤 실천을 만들어가고 있는지에 대한 콘텐츠를 글, 영상으로 정리해서 확산하는 작업을 해요. 

가장 핵심적인 미션은 엄마들이 ‘엄마로서의 정체성’을 분명히 가지되, ‘나다움’에 대한 핵심적인 정체성을 온전히 세우고, 그와 관련된 활동을 하기 위한 시간을 땅따먹기하듯 확장해 갈 수 있도록 돕는데 있어요. 한 마디로 이야기하면, “엄마사회학”을 채울 콘텐츠를 만드는 작업을 하는 곳이죠. 


Q. 엄마사회학, 처음 듣는 단어에요.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주시겠어요?

엄마사회학은 “엄마 됨(mothering)”이라는 것이 사회적인 구조와 어떤 관계에 있는지 탐색하고, 언어로 정리해요. 엄마로서 부족하다고 느끼는 것, 해야만 하는 것이 어떻게 내 삶에 밀려 들어오는지 분명히 인식하자는 거예요. 불가피하게 떠안게 되는 것, 좀 강한 말로 표현하면 ‘억압’되는 것을 분명히 알자는 거죠. 그럼 ‘내 의지가 부족해서 이 모양 이 꼴이네.’와 같은 부정적인 감정에 휩싸인 사고를 덜하게 되겠죠. 

그 다음으로 ‘나다움’을 구체적으로 정의하는 작업을 해요. 엄마가 어떤 역량이 있고, 무엇을 할 수 있고, 사회적으로는 어떤 역할을 해낼 수 있는지. 스스로 인식하고, 타인을 설득하는 거죠. 나의 욕구 중에서도 사회적 실현 욕구에 집중해서 춤, 노래, 말, 영상 등 다양한 방법으로 자유롭게 표현하도록 해요. 저는 이런 콘텐츠를 아카이빙하고, 확산하는 역할을 하고 싶어요. 작년 하반기부터는 이 내용을 워크숍이나 강연으로 기획해서 테스트하고 있어요. 이 모든 내용이 엄마사회학이 되는 거죠.


Q. 워크숍, 강연을 테스트 중이라고 하셨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으로 진행되나요?

먼저, 엄마로서 겪는 억압이 사회구조적인 문제라는 것을 분석하는 콘텐츠를 전달해요. 내 탓도 아니고, 남편이나 자식 탓도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게 되죠. 그 후에 내 이야기를 글로 쫙 쓰고, 그다음으로 글, 영상, 춤, 노래 어떤 방식으로든 다양하게 표현해요. 굳이 말이 아니어도 괜찮아요. 저는 코치로서 질문하고, 참가자인 엄마들이 스스로 생각해보고, 찾아 표현하고, 계획할 수 있도록 돕지요. 



Q. 엄마사회학이라는 용어가 새로운데요, 이 용어는 어떻게 사용하시게 됐나요?

아이를 낳고 육아하면서, 생활 속 선택 하나하나를 예민하게 다루기 시작했어요. 현재 내가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것이 자의로 선택한 것인지 아니면 사회적으로 부여된 성역할인지 따져오면서 서서히 ‘엄마여성주의’ 같은 것이 자리를 잡은 것 같아요. 엄마의 관점, 여성의 관점으로 모든 걸 다시 보게 되고, 여러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고, 무슨 말을 상대에게 해줘야 할지를 끊임없이 고민했어요. 

그냥 흘려보냈던 것도 더는 그럴 수 없었어요. 예를 들어 며칠 전,. 화장실 선반 위에 놓인 치약의 튜브를 깨끗하게 위로 짜 올릴 것인가를 고민했어요. 개인적으로는 깔끔하게 올려놓아 다음 사람이 쓰기 좋게 만들어 놓고 싶은 순수한 욕구가 있지만, 혹시 성역할적으로 내가 학습된 건 아닐까 생각하는 거죠. 여성이 해줘야 할 일로 나도 모르게 학습돼서 하고 싶은 것으로 착각하고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하지 않았어요. 

요즘은 여성주의자라고 밝히기 어려운 세상이잖아요. 꼭 여성주의라는 말을 쓰지 않고, 나만의 고유한 영역을 표현하는 다른 언어를 써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좀 더 좁게 나와 밀착된 것만 다루리라는 마음도 있어서 “엄마사회학”이라고 쓰게 됐어요. 나중에는 엄마시민으로서, 예를 들면 ‘마더액트’라는 타이틀로 더 적극적인 활동을 제안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합니다. 실천을 계속 일삼다 보면 자신이 가장 몸소 느끼는 영역에서 뭘 하지 않을 수 없고, 뭘 하게 되는 것 같아요.


Q. 지금 이 일을 하는데, 엄마로서의 경험이 굉장히 중요했던 것 같아요. 

영리와 비영리 영역에서 일을 해오다가 출산 후 휴직을 했어요. 돌이 될 때까지 온전히 육아에 집중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아이 돌 무렵에 갑자기 엄마가 뇌출혈로 쓰러지셨어요. 식물인간으로 8년 동안 병석에 계시다가 3년 전에 돌아가셨어요. 그때는 혼이 쏙 빠지고, 너무 정신이 없어서 일을 이어나가기 힘들었어요. 그러다 조금 정신을 차린 후에는 프리랜서로 프로젝트성 일을 주로 했어요. 

아이를 키우면서 뭔가를 할 때도 나를 괴롭힐 수밖에 없는 생각이 수시로 올라왔어요. 내가 이것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 내가 남편에게 어디까지 요구할 수 있는가. 그다음 내가 이 시간을 어떻게 써야 할까. 내가 지금 이 행동을 해도 되나. 모든 것을 다시 세팅해야 하니 괴로웠어요. 

이때, 지인 소개로 ‘하자센터’에서 하는 독박육아 주제 모임에 우연히 참여했어요. 마음 맞는 멤버들을 만나서 독박육아를 주제로 하는 팟캐스트를 2년 동안 운영했어요. “씽투육아”라는 팟캐스트에서 멤버들과 마음껏 떠들고 대안을 모색했죠. 이를 통해 갈증을 많이 해소했어요. 콘텐츠가 점점 생기고, 아카이빙 되고, 내 관점이 생기면서 어떤 현상이나 문제에 대해 내 의견을 얘기하는 것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되었어요. 계속 이야기하고 싶은 거예요. 또, 나와 비슷한 처지의 여성을 돕고 싶다는 생각을 참 많이 했어요. 

 

Q. 엄마로서 경험을 살려 사업을 구상하게 되신 거군요?

정부에서 여성들이 스타트업을 시작하게 하는 지원은 많은데, 지속되게 하는 지원은 없어요. 외부 멘토링, 컨설팅 말고 실제로 일하는데 필요한 기획 회의, 문서 제작 등을 도와주는 코워커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처음에는 제 경험을 살려서 사업계획서 작성이나 기획 회의를 같이하는 서비스를 제공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앞서 이야기했듯이 제 고유 콘텐츠가 생기기 시작하면서 제가 무대에 서서 제 입으로 무언가 전하고 싶어졌어요. 다른 사람들을 서포트하기만 할 게 아니라 말이죠. 경력 내내 판을 만들어서 다른 사람들을 세우는 일을 주로 했어요. 그런데, 가장 행복하고 짜릿했던 때를 떠올려보면, 내 생각을 내 언어로 정리해서 말로 표현할 때였어요. 내 콘텐츠로 일해보고 싶다고 생각하면서 지금의 리브스토리즈를 생각하게 됐어요. 



Q. 처음에 어떻게 활동가로 일을 하게 되셨나요?

대학에서 생명공학을 전공했는데, 꼭 가고 싶었던 과는 아니었어요. 그래서 딴짓을 많이 했어요. 음악동아리를 하면서 1996년에 대학가요제에 나갔는데, 운좋게도 대상을 받았어요. 그 때문에 학교에서 노래로 행사를 홍보해달라는 부탁을 받았어요. 여학생 밴드 보컬로 학교 정문 앞에서 공연하면서 여학생 관련 행사를 안내하고, 메시지도 전했어요. 

페미니즘 관점에서 얘기하다 보니 내 경험과 문제의식에서 나오는 것들이라 메시지가 내재화되는 느낌이 너무 좋았어요. 이때의 문화 프로그램이 제 안의 스위치를 켜줬어요! 다음 해에는 신입여학생 대상 포럼에서 사회를 봤는데, 이때 제 말발이 참 살아났던 것 같아요. 사회를 보려면, 어떤 현상에 관해서 제 입장에서 이야기를 풀게 되는데, 생각들이 정리되면서 말로 하게 되고... 어떤 생각이 들어와서 움트고, 동시에 꽃이 피고 했던 것 같아요. 

이때, 세상에 널려 있는 다양한 정보와 지식을 제대로 취하고, 내용성을 가지려면 영어를 잘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처음에는 통역대학원을 준비하다가 국제대학원을 알게 되면서 대학원에서 국제협력을 전공했죠. 


Q. 생명공학에서 국제교류로 전공을 바꾸셨군요. 그럼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활동가로 활동하게 된 건가요?

대학원에 다니면서 활동가로 활동하기 시작했어요. 첫 활동은 2001년에 여성환경연대에서 봉사활동으로 국제교류 업무를 했어요. 2002년 유엔환경회의와 같이 열리는 NGO 포럼에 한국 시민사회도 참여할 예정이었는데요, 여성환경연대가 시민사회 여성환경위원회의 사무국 역할을 했죠. 

한국여성환경 분야 단체와 개인들의 참여를 위한 국제 소통, 현지에서 개최할 행사 기획을 했어요. 대학원 졸업 후에는 여성문화예술기획, 한국 YMCA연합회, 쓰레기문제해결을 위한 시민협의회 등에서 봉사하거나 근무했어요. 그러다 2004년에 재단법인 ‘여해와 함께(전 대화문화아카데미)’에서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했어요. 한국 사회 문제를 주제로 각계 주요 인사들을 초청해 대화하는 프로그램을 기획했어요. 

민주화, 세계화 시대의 양극화 문제 등 각종 정치 사회적 이슈에 대해 오피니언 리더들의 의견을 교류하는 장이었어요. 한 달에 이삼 회가량 대화모임이 있었고, 그때마다 녹취록을 촘촘하게 작성하고, 대화록으로 출간하는 실무를 담당했어요. 이 일을 하면서 활자에 대해 집중하는 능력을 길렀던 것 같아요. 


Q. 영리 영역에서도 일했다고 했는데, 어떤 일을 했나요?

비영리 영역의 가치와 순수한 열정이 좋기도 했지만,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일 처리 하는 것 같기도 한 느낌이 가끔 들곤 했어요. 그게 프로페셔널하지 않다고 느꼈죠. 또 비영리에서 일한다는 것은 많은 설명이 필요한 것이어서 피곤하다는 생각이 들 때쯤에 영리기업으로 옮겨 일해보자 싶었고, 제가 주로 대화모임을 기획, 진행하고, 홍보 콘텐츠를 만드는 일을 했기 때문에 컨벤션 기획사를 선택했어요. 

정말 업무로드가 너무 컸고 새벽 한두 시까지 일하는 것이 다반사였어요. 철저히 ‘을’로 일하면서 모멸감을 많이 느꼈어요. 결국 이런 대우를 견딜 수 없어 1년 정도 일하다 그만뒀어요. 이후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라는 공기업에서 투자홍보위원이라는 전문 직군에서 일했어요. 한국의 비즈니스 환경을 홍보하는 콘텐츠를 만들고, 산업별 보고서를 다양한 언어로 만드는 일을 주로 했어요. 별문제를 일으키지 않으면 계속 일할 수 있었는데, 3년 일하고 그만뒀어요. 

개선을 위해 이런저런 제안을 했지만 반영은 커녕 논의해보지도 않는 태도를 경험하고 의욕이 완전히 바닥이 되어 마음을 접었지요. 또한 홍보팀은 백업부서라서 투자 유치를 하는 프론트 부서의 요구를 대체로 들어줘야만 하는 위치에 있었기에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 없음에 자존심도 많이 상했던 것 같아요. 참 핑계가 많지요? (웃음) 결국 퇴사하고 다시 비영리 활동 영역으로 돌아갔지요. 



Q. 비영리로 돌아와서는 어떤 일을 했나요?

 프로페셔널하게 여겨지지 못하는 비영리 영역의 일면이 개선되려면 ‘돈’이 있어야 하지요. 돈을 가져야 명분을 이루기 위한 각종 방법을 적극적으로 붙일 수가 있으니까요. 돈을 만들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결심으로 희망제작소의 ‘모금전문가학교’에서 공부했어요. 

그 후에 모금 컨설팅 회사인 도움과 나눔에서 선임 컨설턴트로 일했어요. 1년 정도 일을 하다가 이제 내 사업을 해야겠다 싶어서 퇴사했어요. 그 밖의 활동으로 여성신문 주최의 성평등 관련 국제회의 기획을 하였어요. 스타트업에서 일할 때도 감정코칭, 성평등 관련 사업 기획 등 제가 활동해왔던 주제의식의 맥락에서 일 경험을 쌓았습니다. 

그러다 엄마로 살게 되면서 육아, 나의 일, 가정에서 나의 역할, 생활 요소들 간의 균형 등 고민할 거리들이 복잡해졌죠. 그런 가운데 ‘나’라는 개인이 이토록 사회 속에서 공명할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절감하고, 나를 둘러싼 요인들, 관련된 이야기들을 마구 쏟아냈어요. 팟캐스트, 뉴스레터 등 다양한 방법으로 이야기하다 지금의 리브스토리즈라는 브랜드까지 오게 된 것이죠.  


Q. 정말 다양한 경험을 거치며, 단단해진 것 같아요. 본인이 생각하기에 활동가로서 강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저는 굉장히 기발하지는 않아도 약간 신선한 아이디어가 잘 나오는 편이에요. 그리고 그것을 콘텐츠로 만들고, 말로 표현하기를 즐깁니다. 제가 진지한 이야기를 좋아하긴 하지만, 재미있는 코드에 담아서 하길 원하거든요. 진지하게 보고서를 쓰듯 하는 게 아니라 생활 속 에피소드를 활용해서 말끝에 한번 딱 웃기고 싶고...글을 쓸 때도 솔직을 넘어선 적나라함으로 한 번 승부를 본다든지. 얘기하다 보면 미리 생각한 건 아닌데 솔직하게 이야기하다 보면 괜스레 웃기고 싶은 욕심이 생겨요. 

그렇게 이야기하고 난 뒤의 사람들의 피드백이 좋은 편이었어요. “너무 재미있어요. 목소리도 좋고, 말도 참 잘하시네요.”라는 말씀을 들을 때 기분이 너무 좋습니다. 말할 때, 단어 선택을 굉장히 신중히 하거든요. 누구한테 욕먹기 싫어서가 아니라 내가 뜻하고자 하는 바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표현을 찾는 것에 집중해요. 이 단어를 꼭 써야만 내가 뜻하는 바가 전달되겠다는 생각을 해요. 누군가 단어가 귀에 쏙쏙 꽂힌다는 말을 해 준 적이 있는데 제 노력을 알아준다 싶어서 너무 고마웠어요. 

그리고 실무적인 실행력이 좋은 편인 것 같아요. 일이 되게 하는 의지가 강하달까요? 진심을 다해서 열심히 하고요. 일하는 조직을 위해 뭘 할 수 있을지를 조직의 미션과 나를 연결시켜 고민하고, 분명한 역할을 인식하여 탄력받아 일하고자 해요. 

마지막으로 대화할 때 경청과 공감에 힘을 쏟습니다. 그렇게 집중하다 보면 상대의 입장에서 이야기하게 되고 그분과 같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얼지 자연스레 고민이 이어지게 돼요. 



Q. 본인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어떤 사람인가요?

나의 콘텐츠로 사람들에게 공감을 주는 #콘텐츠엔터테이너 라고 표현하고 싶네요. 저는 재미있는 코드에 진지한 이야기를 담아서 하고 싶어요. 저는 제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가닿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사람이고 표현을 한땀 한땀 짜가는 것이 큰 의미가 있습니다. 


Q. 앞으로의 미래를 상상해보면, 어떤 삶을 살고 싶나요? 

많은 표현을 하고, 그 표현된 내용이 사람들에게 영감과 계기를 제공하는 삶을 살고 싶어요. 나를 온전히 사용하고, 나의 잠재력을 구체적으로 구현하고 싶어요. 엄마사회학 콘텐츠 분야의 대표 플레이어가 되고 싶은 것이죠. 대화의 상대로서, 코칭받고 싶은 코치로서, 기획 아이디어를 나눌 파트너로서. 생각만해도 큰 웃음 방긋 나오네요. (웃음)


#서울 #리브스토리즈 #최은영 #엄마사회학 #콘텐츠액티비즘


글쓴이 : 조미리
마을활동가 채타피(조미리)입니다. 학교사회복지사이기도하고, 인권, 노동, 성관련 교육활동가이기도합니다. 청소년 시절부터 서울 은평구에서 시민사회 활동을했고, 사회복지와 청소년학을 공부하고 학교사회복지사로 일해왔습니다.

2024공익활동가주간을 맞아 다양한 지역과 분야에서 자기만의 방식으로 변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활동가들을 만나 이들의 일과 삶에 대한 이야기를 기록하는 활동가인터뷰 공모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인터뷰 공모에는 여러 지역의 활동가들이 참여해주셨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공익활동가사회적협동조합 동행>, <한국시민사회지원조직네트워크>, <지리산이음>이 공동주최하고, <아름다운재단>이 지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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