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기훈’을 나타내는 세 가지 단어를 꼽아주시겠어요?
일단 저는 두 가지 큰 정체성으로 살아가고 있는데 하나는 추풍령중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는 교사라는 것이고, 하나는 책빵고스란히의 상상더하기 팀의 활동을 하고 있다는 것이 있어요. 세 가지 단어를 생각해 보니 비거니즘, 기후 정의, 교육노동자라는 점이 떠올랐어요. 저는 비건 지향으로 살기 시작한 그 때부터 삶에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다는 생각을 하고는 해요.
기후 정의의 경우 이 단어를 알게 된 후부터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계에 대한 해석을 새롭게 하게 되었고, 지속 가능한 삶을 위해 기후 문제에 대응할 때 정의로운 관점을 잃지 않으려고 하게 되었어요. 마지막으로 교육노동자라는 점은 사실 제일 바쁜 역할이어서 생각이 났어요.
Q. 요즘은 어떻게 지내고 있나요?
지금 학교에서 하는 일이 무척 바빠요. 교사들은 학기 말, 학년 말 이때 제일 바쁜데 지금 학기 말이어서요. 시험 문제를 내거나 평가를 했던 것들을 갈무리하고 학생들에게 피드백을 어떻게 해 줄지 고민하는 것, 그리고 학교에서 제가 맡아서 하는 것들 가운데 정산하고 보고서 써야 될 것들이 많아서 바쁘네요.
학교 밖에서도 추풍령에서 하고 있는 생태전환 수업들에 대한 사례 발표를 하기도 해서요. 그리고 이렇게 활동하는 나머지 시간들은 ‘대구N맥페스티벌’이나 ‘공존을 꿈꾸는 모두의 영화제’가 곧 진행될 예정이라 그런 것들을 함께 하고 있어요.
Q. 임금노동 안팎으로 ‘활동’을 하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 느껴지네요.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교육노동자로서 제가 속해 있는 곳이 전교조 충북지부의 기후정의위원회라는 곳이에요. 그 곳에서 다양한 기후정의 활동을 기본적으로 하고 있어요. 기후 수업 자료들을 개발하고 보급하는 일들을 기본적으로 하고, 각종 연대해야 될 사안들에 대해서 연대하는 활동들을 하는 게 있어요. 3월 30일에 충남 노동자 행진에 참여한다든지 또 6월 밀양 행정 대집행 10주기 기념 탈핵 집회 같은 곳에 참가한다든지 하는 것이죠. 오송 참사 1주기가 다가와서 연대 참여 같은 것도 하고 있어요. 여성위원회와 기후 문제와 여성 문제가 교차되는 지점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하면서 다양한 연구 활동을 공동으로 진행하고 있기도 하고요.
학교 내에서 학생들과 기후정의행진에 참여하기도 해요. 학생들에게 행진을 알리고, 함께 고민하고 기획하고 실천하는 이런 활동들을 하지요. 지난 6월에도 행진이 있었어요. 우리 학교에서 매년 두 차례 하고 있는 부분인데, 이번에는 전국학생기후정의행진 시기에 맞추어서 진행했어요.
Q. 비거니즘을 통해서 삶이 많이 변화되었다고 하셨는데, 어떻게 비거니즘을 만나셨나요?
사실 좀 먹는 것을 좋아하기도 하는 과한 육식주의자였고, ‘잘 먹어야 한다’고 생각하기도 했어요. 그러다가 기후 문제에 관심을 더 두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던 차에 읽었던 책이 김한민 작가의 <아무튼, 비건>이었어요. 그 안에서 육식의 여러 가지 문제를 알게 되었는데, 당시에 꽂혔던 부분이 기후 문제와 육식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었고요.
내가 기후 수업도 하는 교사이고 영향을 미치고 싶은 사람인데 고기를 계속 먹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그 책을 읽고서 옆지기와 함께 고기를 그만 먹어볼까 하는 이야기를 하게 되었죠. 옆지기의 경우에는 고기를 많이 먹지 않던 사람이라 좋다고 대답을 해 주었고, 그렇게 시작하게 되었어요. 그 때가 2019년 1월 1일이었어요. 이제 5년 정도가 되었네요.
Q. 변화가 워낙 금세 이루어진 것 같은데, 어떻게 계속 그런 생활을 지속할 수 있었나요?
시작을 하고 한 2주 정도는 <도미니언> 같은 영화들, 영상들을 계속 돌려봤어요. 때마침 대전에서 제1회이자 마지막 회였던 비건 캠프가 열려서 참여하게 되었고, 비거니즘에 대해서 처음 직접적으로 접하게 됐어요.
노동 운동과 환경 운동을 할 때는 상대적으로 내 삶에 연결된다는 느낌이 덜했는데, 그러니까 내가 일상을 사는 것과 투쟁에 참가하는 것이 별개로 느껴지기도 했던 거죠. 그런데 고기를 안 먹는 건 그냥 삶 속에서 고민하고 갈등하고 계속 외부와 갈등의 요소들이 만들어지는 그런 일이 있는 것이더라고요. 그러는 과정이 더 예민하게 사회 문제나 삶의 문제를 바라보게 되는 계기가 되는 것 같아요.
Q. 책도 읽고, 영화도 보면서 문제의식을 가지고 변화하는 과정이 굉장히 빨랐던 것으로 느껴져요.
무척 빨리 변화했죠. 그러면서 페미니즘이나 동물권이나 이런 부분에 있어서 당사자성이라는 것을 좀 더 감각하게 되는 그런 것도 있더라고요. 제가 최근에 모임에서 내가 어떤 차별적 상황에 놓여 있는지 위치를 확인해 볼 기회가 있었는데, 지금까지 큰 차별 없이 살앙온 거예요.
남성이고, 이성애자이고, 지금은 운 좋게도 정규직 노동자이고, 그런 식으로 크게 차별이라는 걸 받지 않고 살아왔는데 제가 살면서 가장 소수자성을 느낄 때는 채식을 하면서 느끼는 건 거죠. 늘 신경 쓰이고 구박받고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데 그러면서 소수자성에 대해서도 약간은 느끼게 되는 것 같아요.
Q. 다른 삶의 방식을 택한다는 것이 우리를 어떤 소외의 경험으로 이끌기도 하잖아요. 그런 경험 가운데에서 소수자성을 유사하게 감각하는 계기가 생길 수도 있는 것 같아요. 혹시 그럼 기훈 님은 기후 운동과 동물권 운동이 어떻게 연결된다고 생각하시나요?
지금도 계속 책을 읽거나 동료들과 얘기를 하면서 찾아가고 있어요. 일단 기본적으로는 한 자본주의 사회가 동물이나 소수자들을 어떻게 대해왔느냐가 자연, 지구를 어떻게 대해왔는가랑 너무나 놀랍게도 닮아 있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끊임없이 착취해 오고 수탈해 온 것이 연결되어 있음을 공부하면서 알게 됐어요. 동물을 이렇게 대하다 보면 우리가 지속 가능한 지에 살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을 명백하게 발견하게 돼요.
Q. 조금 다른 질문인데, 어떤 순간에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느끼시나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무엇보다 어떤 죽음들을 경험할 때 그래요. 홍수가 나고 농장이 잠겨서 동물들이 떼죽음을 당했다거나, 오송 참사 같은 일이 일어나서 사람이 죽는다거나. 앞으로도 대비할 수 없는 어떤 갑작스러운 참사들이 계속 일어날 거고 더 빈번해질 거라는 게 느껴져서 좀 더 자주 감각하게 되는 것 같네요. 한국 뿐 아니라 전지구적으로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상황이니까, 그런 것이 좀 더 기후위기라는 걸 심각하게 받아들이게 하는 것 같네요.
Q. 활동이라는 걸 계속 해 오셨잖아요. 가장 기뻤던 기억은 무엇인가요?
청소년들과 같이 서울에서 열린 기후정의행진을 다녀오는 길이었는데, 개인적으로는 안전이나 여러 가지로 신경 쓸 일이 많았던 일이기도 했거든요. 그런데 청소년 참가자들이 마지막 정리 발언 같은 걸 할 때 부쩍 말의 깊이 생각의 깊이가 깊어지고 또 이 활동을 되게 의미 있게 생각한다는 걸 확인했을 때 되게 기뻤던 것 같아요.
N맥페스티벌이나 영화제 준비할 때 사람들하고 대화 나누는 그런 순간도 되게 기뻐요. 어쨌거나 함께 수고롭게 이런 장소를 열고 프로그램을 이렇게 만들었는데 참여해 주는 사람들도 오롯이 즐겨주고, 서로 공유할 수 있는 것이 매우 기쁜 일이라고 생각해요. 두 경험의 비슷한 부분이라면 동료가 생기는 느낌이랄까요. 졸업한 청소년들도 또 같이 가고 싶다, 이런 이야기를 할 때가 있는데 어떤 마음이려나 싶다가도 결국 기뻐져요.
Q. 그랬군요. 그렇다면 힘들었던 기억은요?
계속 지는 경험을 할 때 좀 힘들어요. 청도 송전탑 때나 앞산 터널 운동을 할 때 그랬어요. 지고 나서 도망가듯이 그 곳에 가는 것을 피하기도 했는데, 어쩌다 가게 된 적이 있었거든요. 여전히 그곳에 남아서 슬픔을 견디거나 살아가고 있는 분들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고, 앞으로의 싸움에서 무엇까지 내가 책임지고 갈 것인가에 대한 생각들을 때로 하게 되었어요.
Q. 이야기를 듣다보니 인터뷰 초반에 이야기 했던 기후 운동이나 동물권 운동 말고도 많은 활동을 해 오신 것 같아요. 활동을 시작했던 때와 지금의 고민은 어떻게 다른가요?
대학에 오면서 학생회를 하면서 활동을 시작했는데, 그때는 싸워야 할 대상과 우리 편이 분명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졸업을 하고 나서는 일상 속에서 내가 살고 있는 터전이라거나 삶, 이런 곳에서부터 저항을 만들어야 한다는 감각에 집중을 하게 되었어요. 활동을 시작했던 때는 생각하지 못했던 다양한 소수자들의 삶이 지금 활동의 주요한 주제가 된 것 같아요. 한편으로는 반자본주의적으로 체제를 전환한다고 하면, 이전처럼 적과 아를 분명하게 하지 않고서 가능할까?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긴 해요. 답이 있지는 않은 문제인 것 같고요.
Q. 운동의 전략을 고민하는 건 늘 중요한 주제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럼 혹시 활동가로서의 삶에 대한 만족도를 1에서 5로 표현한다면?
저는 3.5에서 4 정도? 점수가 떨어지는 부분은 제가 살아온 궤적이 있으니까 다양한 활동을 하게 되는데, 그러다 보면 자연히 무리를 하게 되어서 주위에 많은 돌봄을 받게 되고 그러다 보면 미안해지기도 하는 것 같아요. 하지만 활동에 있어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자기애도 있는 편이라서 비교적 높은 점수를 선택했습니다.
Q. 그럼 활동가로서의 삶 말고, 내 삶에 대한 만족도는요?
2.5에서 3 정도요. 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학교 업무도 해야 하고, 일상생활도 유지를 잘 해야 하는데 누구나 그렇듯이 기본적으로 고민해야 할 부분이 있으니까요.
Q. 세상이 어떤 곳이었으면 하면서 활동을 하고 계신가요?
구체적인 사회의 모습을 생각해 보진 않았는데 최소한 이것은 없는 세상 정도로 생각하고 있죠. 예를 들어 최소한 다른 존재들을 함부로 대하지 않는 세상이라든지, 누군가의 꿈, 사랑 같은 거를 막지 않는 세상이라든지. 이런 목록들을 그냥 감각으로 그냥 가지고 있고 막 총체적으로 생각해 보지 않은 것 같아요.
Q. 그런 세상이 도래한다면 가장 먼저 하고 싶은 건 뭔가요?
여행을 가고 싶어요. 아직 마무리짓지 못한 여행이 좀 있어서 여유가 생기면 좋은 세상이 오지 않더라도 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베트남 남반부만 여행을 했는데 북쪽 지역들을 가 보고 싶고, 대만 채식 여행도 가보고 싶고요. 그리고 하나는 옆지기와 함께 그냥 가만히 있고 싶어요. 코로나 터지고 나서 집에 갇혀 있을 때 넷플릭스에서 <빨간머리 앤>을 정말 재미있게 봤어요. 그러고 다시 봉쇄가 풀려서 직장으로 돌아갈 때 좀 슬펐거든요. 그런 좋은 작품들을 보면서 한동안 좀 쉬고 싶어요.
Q. 지금의 기훈 님이 있기까지 많은 영향을 끼친 사람이 있나요?
딱히 없어요. 지금은 나루를 포함해서 주변 친구들을 존경하죠. 어쨌거나 제가 활동을 하면서 만났던 사람들이 생각이 바뀌거나 냉소적인 태도를 취하기도 하는데, 계속 하고 있는 사람들을 존경하게 돼요.
Q. 10년 후에 기훈 님은 어떤 모습일 것 같나요?
그 때도 비슷한 일을 계속하고 있지 않을까요? 뭔가를 배우고, 할 수 있는 만큼을 하고, 또 배우고, 할 수 있는 만큼 하고, 그렇게 하고 있지 않을까 싶어요. 구체적으로는 빚이 여전히 있을 것 같아서 학교에서 계속 일을 하고 있지 싶고 활동도 계속하는, 그런 식으로 살고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그때는 정말 조심해야 할 게 많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지혜로운 어른이 되고 싶습니다.
Q. 다독가이기도 하시잖아요. 책을 추천해 주신다면?
책보다는 작가를 추천하고 싶네요. 한정현 작가의 책을 읽을 때마다 전율을 느끼고, 완전한 기쁨을 느껴요. 정세랑 작가도 정말 좋아하는데, 특히 <시선으로부터>를 제일 좋아해요. 그리고 최근에 <세상 끝의 버섯>이라는 책도 재미있게 읽었어요. 자본주의에 대해서 조금 다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더라고요.
Q. 함께 일하는 동료이면서도 이런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없었네요. 자주 이야기 나누면 좋겠어요.
좋아요, 이야기 나눕시다. 감사합니다.
#비건 #기후정의 #대구 #김기훈 #동물권
인터뷰어 : 나루
사랑의 방식에 대해 항상 고민하는 인간동물입니다. 대구동물권행동 비긴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2024공익활동가주간을 맞아 다양한 지역과 분야에서 자기만의 방식으로 변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활동가들을 만나 이들의 일과 삶에 대한 이야기를 기록하는 활동가인터뷰 공모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인터뷰 공모에는 여러 지역의 활동가들이 참여해주셨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공익활동가사회적협동조합 동행>, <한국시민사회지원조직네트워크>, <지리산이음>이 공동주최하고, <아름다운재단>이 지원했습니다. |
Q. ‘기훈’을 나타내는 세 가지 단어를 꼽아주시겠어요?
일단 저는 두 가지 큰 정체성으로 살아가고 있는데 하나는 추풍령중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는 교사라는 것이고, 하나는 책빵고스란히의 상상더하기 팀의 활동을 하고 있다는 것이 있어요. 세 가지 단어를 생각해 보니 비거니즘, 기후 정의, 교육노동자라는 점이 떠올랐어요. 저는 비건 지향으로 살기 시작한 그 때부터 삶에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다는 생각을 하고는 해요.
기후 정의의 경우 이 단어를 알게 된 후부터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계에 대한 해석을 새롭게 하게 되었고, 지속 가능한 삶을 위해 기후 문제에 대응할 때 정의로운 관점을 잃지 않으려고 하게 되었어요. 마지막으로 교육노동자라는 점은 사실 제일 바쁜 역할이어서 생각이 났어요.
Q. 요즘은 어떻게 지내고 있나요?
지금 학교에서 하는 일이 무척 바빠요. 교사들은 학기 말, 학년 말 이때 제일 바쁜데 지금 학기 말이어서요. 시험 문제를 내거나 평가를 했던 것들을 갈무리하고 학생들에게 피드백을 어떻게 해 줄지 고민하는 것, 그리고 학교에서 제가 맡아서 하는 것들 가운데 정산하고 보고서 써야 될 것들이 많아서 바쁘네요.
학교 밖에서도 추풍령에서 하고 있는 생태전환 수업들에 대한 사례 발표를 하기도 해서요. 그리고 이렇게 활동하는 나머지 시간들은 ‘대구N맥페스티벌’이나 ‘공존을 꿈꾸는 모두의 영화제’가 곧 진행될 예정이라 그런 것들을 함께 하고 있어요.
Q. 임금노동 안팎으로 ‘활동’을 하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 느껴지네요.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교육노동자로서 제가 속해 있는 곳이 전교조 충북지부의 기후정의위원회라는 곳이에요. 그 곳에서 다양한 기후정의 활동을 기본적으로 하고 있어요. 기후 수업 자료들을 개발하고 보급하는 일들을 기본적으로 하고, 각종 연대해야 될 사안들에 대해서 연대하는 활동들을 하는 게 있어요. 3월 30일에 충남 노동자 행진에 참여한다든지 또 6월 밀양 행정 대집행 10주기 기념 탈핵 집회 같은 곳에 참가한다든지 하는 것이죠. 오송 참사 1주기가 다가와서 연대 참여 같은 것도 하고 있어요. 여성위원회와 기후 문제와 여성 문제가 교차되는 지점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하면서 다양한 연구 활동을 공동으로 진행하고 있기도 하고요.
학교 내에서 학생들과 기후정의행진에 참여하기도 해요. 학생들에게 행진을 알리고, 함께 고민하고 기획하고 실천하는 이런 활동들을 하지요. 지난 6월에도 행진이 있었어요. 우리 학교에서 매년 두 차례 하고 있는 부분인데, 이번에는 전국학생기후정의행진 시기에 맞추어서 진행했어요.
Q. 비거니즘을 통해서 삶이 많이 변화되었다고 하셨는데, 어떻게 비거니즘을 만나셨나요?
사실 좀 먹는 것을 좋아하기도 하는 과한 육식주의자였고, ‘잘 먹어야 한다’고 생각하기도 했어요. 그러다가 기후 문제에 관심을 더 두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던 차에 읽었던 책이 김한민 작가의 <아무튼, 비건>이었어요. 그 안에서 육식의 여러 가지 문제를 알게 되었는데, 당시에 꽂혔던 부분이 기후 문제와 육식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었고요.
내가 기후 수업도 하는 교사이고 영향을 미치고 싶은 사람인데 고기를 계속 먹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그 책을 읽고서 옆지기와 함께 고기를 그만 먹어볼까 하는 이야기를 하게 되었죠. 옆지기의 경우에는 고기를 많이 먹지 않던 사람이라 좋다고 대답을 해 주었고, 그렇게 시작하게 되었어요. 그 때가 2019년 1월 1일이었어요. 이제 5년 정도가 되었네요.
Q. 변화가 워낙 금세 이루어진 것 같은데, 어떻게 계속 그런 생활을 지속할 수 있었나요?
시작을 하고 한 2주 정도는 <도미니언> 같은 영화들, 영상들을 계속 돌려봤어요. 때마침 대전에서 제1회이자 마지막 회였던 비건 캠프가 열려서 참여하게 되었고, 비거니즘에 대해서 처음 직접적으로 접하게 됐어요.
노동 운동과 환경 운동을 할 때는 상대적으로 내 삶에 연결된다는 느낌이 덜했는데, 그러니까 내가 일상을 사는 것과 투쟁에 참가하는 것이 별개로 느껴지기도 했던 거죠. 그런데 고기를 안 먹는 건 그냥 삶 속에서 고민하고 갈등하고 계속 외부와 갈등의 요소들이 만들어지는 그런 일이 있는 것이더라고요. 그러는 과정이 더 예민하게 사회 문제나 삶의 문제를 바라보게 되는 계기가 되는 것 같아요.
Q. 책도 읽고, 영화도 보면서 문제의식을 가지고 변화하는 과정이 굉장히 빨랐던 것으로 느껴져요.
무척 빨리 변화했죠. 그러면서 페미니즘이나 동물권이나 이런 부분에 있어서 당사자성이라는 것을 좀 더 감각하게 되는 그런 것도 있더라고요. 제가 최근에 모임에서 내가 어떤 차별적 상황에 놓여 있는지 위치를 확인해 볼 기회가 있었는데, 지금까지 큰 차별 없이 살앙온 거예요.
남성이고, 이성애자이고, 지금은 운 좋게도 정규직 노동자이고, 그런 식으로 크게 차별이라는 걸 받지 않고 살아왔는데 제가 살면서 가장 소수자성을 느낄 때는 채식을 하면서 느끼는 건 거죠. 늘 신경 쓰이고 구박받고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데 그러면서 소수자성에 대해서도 약간은 느끼게 되는 것 같아요.
Q. 다른 삶의 방식을 택한다는 것이 우리를 어떤 소외의 경험으로 이끌기도 하잖아요. 그런 경험 가운데에서 소수자성을 유사하게 감각하는 계기가 생길 수도 있는 것 같아요. 혹시 그럼 기훈 님은 기후 운동과 동물권 운동이 어떻게 연결된다고 생각하시나요?
지금도 계속 책을 읽거나 동료들과 얘기를 하면서 찾아가고 있어요. 일단 기본적으로는 한 자본주의 사회가 동물이나 소수자들을 어떻게 대해왔느냐가 자연, 지구를 어떻게 대해왔는가랑 너무나 놀랍게도 닮아 있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끊임없이 착취해 오고 수탈해 온 것이 연결되어 있음을 공부하면서 알게 됐어요. 동물을 이렇게 대하다 보면 우리가 지속 가능한 지에 살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을 명백하게 발견하게 돼요.
Q. 조금 다른 질문인데, 어떤 순간에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느끼시나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무엇보다 어떤 죽음들을 경험할 때 그래요. 홍수가 나고 농장이 잠겨서 동물들이 떼죽음을 당했다거나, 오송 참사 같은 일이 일어나서 사람이 죽는다거나. 앞으로도 대비할 수 없는 어떤 갑작스러운 참사들이 계속 일어날 거고 더 빈번해질 거라는 게 느껴져서 좀 더 자주 감각하게 되는 것 같네요. 한국 뿐 아니라 전지구적으로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상황이니까, 그런 것이 좀 더 기후위기라는 걸 심각하게 받아들이게 하는 것 같네요.
Q. 활동이라는 걸 계속 해 오셨잖아요. 가장 기뻤던 기억은 무엇인가요?
청소년들과 같이 서울에서 열린 기후정의행진을 다녀오는 길이었는데, 개인적으로는 안전이나 여러 가지로 신경 쓸 일이 많았던 일이기도 했거든요. 그런데 청소년 참가자들이 마지막 정리 발언 같은 걸 할 때 부쩍 말의 깊이 생각의 깊이가 깊어지고 또 이 활동을 되게 의미 있게 생각한다는 걸 확인했을 때 되게 기뻤던 것 같아요.
N맥페스티벌이나 영화제 준비할 때 사람들하고 대화 나누는 그런 순간도 되게 기뻐요. 어쨌거나 함께 수고롭게 이런 장소를 열고 프로그램을 이렇게 만들었는데 참여해 주는 사람들도 오롯이 즐겨주고, 서로 공유할 수 있는 것이 매우 기쁜 일이라고 생각해요. 두 경험의 비슷한 부분이라면 동료가 생기는 느낌이랄까요. 졸업한 청소년들도 또 같이 가고 싶다, 이런 이야기를 할 때가 있는데 어떤 마음이려나 싶다가도 결국 기뻐져요.
Q. 그랬군요. 그렇다면 힘들었던 기억은요?
계속 지는 경험을 할 때 좀 힘들어요. 청도 송전탑 때나 앞산 터널 운동을 할 때 그랬어요. 지고 나서 도망가듯이 그 곳에 가는 것을 피하기도 했는데, 어쩌다 가게 된 적이 있었거든요. 여전히 그곳에 남아서 슬픔을 견디거나 살아가고 있는 분들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고, 앞으로의 싸움에서 무엇까지 내가 책임지고 갈 것인가에 대한 생각들을 때로 하게 되었어요.
Q. 이야기를 듣다보니 인터뷰 초반에 이야기 했던 기후 운동이나 동물권 운동 말고도 많은 활동을 해 오신 것 같아요. 활동을 시작했던 때와 지금의 고민은 어떻게 다른가요?
대학에 오면서 학생회를 하면서 활동을 시작했는데, 그때는 싸워야 할 대상과 우리 편이 분명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졸업을 하고 나서는 일상 속에서 내가 살고 있는 터전이라거나 삶, 이런 곳에서부터 저항을 만들어야 한다는 감각에 집중을 하게 되었어요. 활동을 시작했던 때는 생각하지 못했던 다양한 소수자들의 삶이 지금 활동의 주요한 주제가 된 것 같아요. 한편으로는 반자본주의적으로 체제를 전환한다고 하면, 이전처럼 적과 아를 분명하게 하지 않고서 가능할까?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긴 해요. 답이 있지는 않은 문제인 것 같고요.
Q. 운동의 전략을 고민하는 건 늘 중요한 주제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럼 혹시 활동가로서의 삶에 대한 만족도를 1에서 5로 표현한다면?
저는 3.5에서 4 정도? 점수가 떨어지는 부분은 제가 살아온 궤적이 있으니까 다양한 활동을 하게 되는데, 그러다 보면 자연히 무리를 하게 되어서 주위에 많은 돌봄을 받게 되고 그러다 보면 미안해지기도 하는 것 같아요. 하지만 활동에 있어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자기애도 있는 편이라서 비교적 높은 점수를 선택했습니다.
Q. 그럼 활동가로서의 삶 말고, 내 삶에 대한 만족도는요?
2.5에서 3 정도요. 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학교 업무도 해야 하고, 일상생활도 유지를 잘 해야 하는데 누구나 그렇듯이 기본적으로 고민해야 할 부분이 있으니까요.
Q. 세상이 어떤 곳이었으면 하면서 활동을 하고 계신가요?
구체적인 사회의 모습을 생각해 보진 않았는데 최소한 이것은 없는 세상 정도로 생각하고 있죠. 예를 들어 최소한 다른 존재들을 함부로 대하지 않는 세상이라든지, 누군가의 꿈, 사랑 같은 거를 막지 않는 세상이라든지. 이런 목록들을 그냥 감각으로 그냥 가지고 있고 막 총체적으로 생각해 보지 않은 것 같아요.
Q. 그런 세상이 도래한다면 가장 먼저 하고 싶은 건 뭔가요?
여행을 가고 싶어요. 아직 마무리짓지 못한 여행이 좀 있어서 여유가 생기면 좋은 세상이 오지 않더라도 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베트남 남반부만 여행을 했는데 북쪽 지역들을 가 보고 싶고, 대만 채식 여행도 가보고 싶고요. 그리고 하나는 옆지기와 함께 그냥 가만히 있고 싶어요. 코로나 터지고 나서 집에 갇혀 있을 때 넷플릭스에서 <빨간머리 앤>을 정말 재미있게 봤어요. 그러고 다시 봉쇄가 풀려서 직장으로 돌아갈 때 좀 슬펐거든요. 그런 좋은 작품들을 보면서 한동안 좀 쉬고 싶어요.
Q. 지금의 기훈 님이 있기까지 많은 영향을 끼친 사람이 있나요?
딱히 없어요. 지금은 나루를 포함해서 주변 친구들을 존경하죠. 어쨌거나 제가 활동을 하면서 만났던 사람들이 생각이 바뀌거나 냉소적인 태도를 취하기도 하는데, 계속 하고 있는 사람들을 존경하게 돼요.
Q. 10년 후에 기훈 님은 어떤 모습일 것 같나요?
그 때도 비슷한 일을 계속하고 있지 않을까요? 뭔가를 배우고, 할 수 있는 만큼을 하고, 또 배우고, 할 수 있는 만큼 하고, 그렇게 하고 있지 않을까 싶어요. 구체적으로는 빚이 여전히 있을 것 같아서 학교에서 계속 일을 하고 있지 싶고 활동도 계속하는, 그런 식으로 살고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그때는 정말 조심해야 할 게 많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지혜로운 어른이 되고 싶습니다.
Q. 다독가이기도 하시잖아요. 책을 추천해 주신다면?
책보다는 작가를 추천하고 싶네요. 한정현 작가의 책을 읽을 때마다 전율을 느끼고, 완전한 기쁨을 느껴요. 정세랑 작가도 정말 좋아하는데, 특히 <시선으로부터>를 제일 좋아해요. 그리고 최근에 <세상 끝의 버섯>이라는 책도 재미있게 읽었어요. 자본주의에 대해서 조금 다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더라고요.
Q. 함께 일하는 동료이면서도 이런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없었네요. 자주 이야기 나누면 좋겠어요.
좋아요, 이야기 나눕시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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