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공익활동가주간]청소년을 만나는 마을활동가, 학교와 마을을 연결하는 사회복지사 - 금천교육복지센터장 류경숙

변화를만드는사람들
조회수 374


Q.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도깨비로 통하는 금천아지매 류경숙입니다. 2013년 5월부터 본캐로 금천교육복지센터에서 아동청소년과 가족, 그리고 실무자 및 관계자들과 만나고 있습니다. 또 동네에서 공유공간이자 동네책방인 원테이블(want:able=onetable)을 9년째 운영하고 있습니다.


Q. 도깨비, 별명이 참 재미있는데요. 어떤 뜻인가요? 

 스물다섯살 공동육아 어린이집에서 일하기 시작하면서 지어진 별명이예요.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뚝딱뚝딱 일을 쉽게 해낸다는 의미의 도깨비입니다. 요즘은 청(소)년에게 “하고 싶은게 뭐야? 뭐가 필요해?” 하고 물어보고 가능한 선에서 만들어주고자 합니다.


Q. 초창기 공동육아 어린이집에서 일하셨다고요. 

네. 고등학교 졸업 후 2~3년 이 일 저 일 해보다 1993년 3월 야간신학교(이후- 보육교사훈련원으로 바뀜)에서 유아교육 공부를 했어요. 보육교사를 취득하고, 1995년 7월 서초구 우면동 ‘튼튼어린이집’ 교사로 일했어요. 아이들은 자연에서 마음껏 놀며 자란다고 생각했었는데, 저에게 정말 잘 맞는 일이었습니다. 매일 양재 시민의 숲이나 우면산에 산책하며 낮잠자고, 그림책을 정말 많이 읽어주었어요. 정말 행복했어요. 그러다 다음 해 96년에 결혼하고 임신하면서 휴직을 했었는데,, 지금까지 복직은 하지 않았네요.(웃음)


Q. 자녀들 키울 때도 마을에서 함께 키우셨다고요. 

신혼생활은 관악구 신림동에서 시작했어요. 27살 지금은 어린나이지만 첫 아이들 낳고 집에 있으면서 막막할 때 옆집 언니들과 서로 아이들을 봐주면서 함께 키웠어요. 내 아이도 공동육아 어린이집에 보내고 싶었지만 경제적으로 많이 어려워 보내지 못하고 동네사람들과 함께 아이들을 키웠어요. 그러다 2000년 1월 큰아이 4살 때 금천구로 이사를 왔어요.


Q. 드디어 금천으로 오셨군요! 평소에 보면 금천을 정말 많이 사랑하시는게 느껴지는데요, 처음 이사왔을 때는 어떠셨어요?

처음 저에게 금천은 오기 싫었던 곳이예요.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 움직였어요. 전셋집을 구하러 다니는데 뭔, 고개들이 그리 많은지 너무 낯설었고, 철재상가, 공구상가 등 불안요소들이 많았어요. 첫 번째 본 집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계약하면서 저의 금천구 생활이 시작되었어요. 

첫 해(2000년)는 많이 우울했어요. 그러다 복도형 아파트 아래윗층 또래 엄마들을 알고 어울리시 시작하면서 조금씩 적응해나갔지요. 그러다 별장숲이라고 불리는 시흥계곡을 알게 되었어요. 상수리나무가 많아서 저는 개인적으로 도토리숲이라고 불러요. 별장숲은 저를 살려준 숲이예요. 아이둘을 키우면서 자주 자건거를 타고 가서 놀던 곳. 이 숲이 없었다면 지금의 저는 없었을거예요.  별장숲을 찾고 안양천(한내천)에서 놀며 지역에 정을 붙였죠.


Q. 처음 금천에서 어떤 활동을 하셨나요?

아이들에게 다양한 그림책을 많이 읽어주고 싶었는데, 우리 형편으로 참 어려운 일이였어요. 알고 보니 금천구가 1996년 구로구에서 분구가 되었더라구요. 제가 이사와 보니 구청이 상가 건물에 있었고. 도서관이나 문화공간이 없더라구요. 그러다 우연히 방문도서 대여사업(아이북랜드)을 알게 되었고, 고객에서 시작해 직업으로 선택했어요. 

친척한데 얻은 큰 자전거(신문사 자전거라 불림)로 2001년 1월 2일(시흥4,5동점) 시작한 첫날인데, 지금도 그 날을 잊을 수가 없어요. 눈이 많이 내려 자전거를 탈 수 없어 철제로 된 캐리어에 책을 싣고 비닐을 씌우고 우비도 없이 노란 잠바를 입고 40여분 걸었어요.(첫날이라 흥분되고 설렘). 첫 회원 집 엘리베이터 거울에 비췬 제 모습을 잊지 못해요. 그런데도 얼마나 신이나고 행복했는지 몰라요.


Q. 그림책을 들고 동네 곳곳을 다니는 모습이 상상됩니다. 마을에서 재미있는 일들도 참 많으셨을 것 같은데요.

우리 아이들에게 문화공연도 체험학습도 많이 해주고 싶었어요. 늘 주머니 사정이 문제였지요. 우리 회원들의 부모들도 욕구는 있지만 여력이 없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제 회원들 대상으로 체험학습을 해보려고‘ 하늘딸별땅체험교실’을 열었어요. 동네에 늘 주차되어 있던 35인승 버스를 빌려 동네아이들을 모아 산과 들로 다녔여요. 역사체험, 생태체험등 한 달에 한 두 번 최소한의 회비를 받고 열심히 다녔어요. 

그러다 서울남부여성발전센터에서 체험학습역사강사과정을 들으며 역사, 생태 공부를 했고 이때 “숲지기강지기”라는NGO단체 활동을 시작했어요.(인생의 전환점이 됨) 학교숲, 유해식물제거, 역사체험, 생태체험등 공부하며 강사로 활동을 했어요. 여기에 더해 작은아이 7살 때 사회복지 공부를 했어요. 고등학교 때 보육원 봉사를 다니며 보육원 원장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공부하면서 그룹홈이나 지역아동센터를 해보자 싶었어요.


Q. 마을에서 아이들과 이웃들을 만나면서, 자연스럽게 사회복지로 연결됐네요. 

사회복지사 자격으로 처음 시작한 일이 다문화가족지원센터 방문지도사였어요. 2011년 결혼이주여성들과 자녀들을 만나며, 숲지기 강지기 활동과 병행하며 지냈어요. 그러다 2013년 4월에 숲지기 강지기를 같이 하던 지금 법인의 대표님께 연락이 왔어요. 깨비에게 너무너무 잘 맞는 일이 있다고요. 교육복지라는 일인데, 깨비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라고 하셨어요. 한 달 정도 고민하다가 2013년 5월부터 금천교육복지센터에서 일을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팀원으로 시작했고, 2014년 4월부터 센터장으로해서 지금까지 11년째 일하고 있어요



Q. 금천교육복지센터 터주대감, 류경숙 선생님의 시작이네요! 

처음에는 교육복지가 뭔지도 몰랐고, 학교와 만나는 일도 쉽지 않았어요. 저에게 학교는 거리감이 있었어요. 교사는 존경해야 하는 사람들이고, 감히 내가 선생님들과 같이 뭔가를 한다는 건 상상도 못 할 일이었죠. 처음에는 너무 떨려서 센터장님이 계시면 학교에 전화도 못하고...공문서도 쓸 줄 몰라서 입사를 결정하고 혼자 열심히 공부했어요. 

처음 일할 땐 틀에 짜여져 일을 한다는 것이 잘 맞지 않았어요. 사업계획서를 쓰는데, 일을 시작도 하기 전에 산출내역을 쓰라니 너무 힘들었죠. 그래도 다른 사업에 비해서 유연해서 좋았어요.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통으로 계획을 세우고, 세부 계획은 나중에 세울 수 있었죠. 다른 기관처럼 매뉴얼이 없었기 때문에 “가정방문을 몇 번 가서 안 되면, 종결” 이런 기준도 없고, 보호자가 승낙할 때 까지 가면됐어요. (문이 열릴 때 까지 찾아가고) 그런 유연함이 참 좋았어요. 


Q. 처음엔 힘들었다지만, 벌써 교육복지를 10년 넘게 하셨어요. 

일을 하면서 교육복지가 나한테 정말 잘 맞는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아이들을 만나는 게 너무 신났어요. 첫 사례부터 학교에 안가는 중2 여학생을 만났어요. 집에 매일 남자애들과 모여 있다는 얘기를 듣고, 아이의 편이 되어주기 위해서 그 남자애들도 다 만났어요. 혼내기보다 어떻게 하면 이 아이들의 편이 될까 생각했어요. 센터 행사를 하거나 도움이 필요하면, 애들을 불러서 함께 일하면서 호흡을 맞췄죠. 술 취한 아이에게 따귀도 맞고...

말 안 듣는데도 그 아이들이 너무 예뻤어요. 그 전에는 아프거나 혼자 있는 아이들을 볼 일이 별로 없었어요. ‘우리 동네에 이렇게 어렵게 사는 아이들이 있구나. 내가 살던 동네, 지나가며 보던 그 집안에 이 아이들이 있었구나.’ 그 때 처음 알게 된거죠.  


Q. 우리 마을에서 살고 있는 다양한 아이들을 만나기 시작하셨군요. 

2015년 지역에서 핫하게 문제를 일으킨다는 청소년 무리 소식을 들었어요. 마침 이웃집 아들 친구들이었어요. 어느날 이웃집에 그녀석들이 놀러왔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만나서 팥빙수 사주면서 전화번호를 땄죠. 생각날 때 마다 ‘밥 먹었는지’ 안부 문자도하고, 정보 전달 문자도 보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전화가 왔어요. “저 여기 왔는데요.” 아이가 센터에 왔는데, 제가 없었어요. 그 날 그 흥분을 잊을 수 없어요. 다시 한 번 꼭 찾아와달라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어요. 일주일 후에 그 녀석이 다시 찾아왔어요. 고등학교에 가보니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거에요. 중학교 3년을 놀고, 사고를 치니 학교에서도 관심을 안 가져주고, 아는 것도 없고. 그러던 중에 제가 계속 정보 문자를 보낸거죠. 그 무리 녀석들이 많았는데, 다 만났어요. 아이들이 밖에서 배회하는 걸 보고, 편히 갈 만한 곳을 만들어야겠다 생각했어요. 2015년 9월에 마이너스 대출을 받아서 공간을 계약(500-25 /7평)하고, 2015년 11월 4일 공유공간 ‘원테이블’을 열었어요. 


Q. 원테이블도 마을 아이들을 만나면서 시작 된 곳이었군요!

‘원테이블’을 운영하기 위해서 ‘청소년을 바라보는 지역 모임, 청바지’를 만들었어요. 아이들 저녁밥을 먹이려면 간단한 조리를 해야 했어요. 휴게음식점 사업자를 내야 해서 제 이름으로 사업자등록까지 했어요. 법인(금천교육복지센터 운영 법인)에서 저의 지역활동에 대해 눈 감아 주셨고 응원해주셔서 가능했어요. 참 감사하죠. 처음 얻은 공간에서 2016년~2019년 12월까지 4년을 운영하고, 2020년에 지금 공간(5000-50/45평)으로 이사 왔어요. 



Q. 원테이블에서 기억나는 일, 아이들이 있을까요?

처음 만났던 아이들이 요리를 하고 싶어했어요. 마을에 요리를 잘하는 활동가에게 부탁해서 ‘화요만세(화요일에 만드는 맛있는 세상)’라는 프로그램을 운영했어요. 위에서 말한 핫한 그녀석들과 10회기 요리 활동을 했고, 마지막 10회기에 서프라이즈 파티를 열었어요. 녀석들에게 꼭 만나고 싶은 사람을 물었는데, 그 녀석이 중학교 2학년 때 담임선생님을 만나고 싶다는 거에요. 자기가 고생을 많이 시켜서 꼭 초대하고 싶다고요. 그래서 그녀석 몰래 수소문을 했어요. 선생님께서 육아휴직 중이셨는데도 흔쾌히 와주셨어요. 

아이들이 파티 준비할 때, 몰래 짜잔~하고 등장하셨는데, 그 녀석 심장이 떨어질 뻔 했다더라구요. 자기가 살면서 두 번 심장 떨어진 경험이 있는데, 한번은 나쁜짓해서 보호소에 엄마가 오셨을 때고, 다른 한 번이 선생님께서 파티에 오셨을 때라고요. 그 친구는 고등학교 잘 졸업하고, 지금 잘 살고 있어요. 처음에는 문신 때문에 군대에 가니 못가니 했는데, 해병대 전역했어요. 원테이블 이사할 때 도와주기도하고. 지난 번에는 전화해서 후원 할 수 있냐고 물으며 10만원을 입금해주더라구요. 고등 졸업 후 매년 스승의 날에 연락이 와요. 그 녀석들 보면 기뻐요.


Q. 정말 우리 마을 아이들을 위한 공간이었네요! 함께한 좋은 이웃들도 많았을 것 같아요.

원테이블은 모두의 아지트, 모두의 무대라고 표현해요.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공간이죠. 대학생, 자원활동가, 인턴 등 이 공간을 거쳐 간 분들이 참 많아요. 그 중에 제가 “보석”이라고 부르는 청년이 있어요. 제 친구랑 같은 프랜차이즈 제과점에서 아르바이트를 오래 해서 알게 됐는데, 참 성실했어요.(왜 젊은 친구가 아르바이트만 하고 있지? 안타까웠어요. 알고 보니 공무원 준비로 공부하면서 일을 하고 있던 거예요.) 

그러다 2017년에 알바를 그만두더라구요. 때는 이때다 싶어 마침 청바지에서 시작한 후기 청소년 대상 배움터(이십계단프로젝트) 코디네이터를 제안했어요. 이십계단 프로젝트를 계기로 ‘보석’과 또다른 청년 2명, 총 세명의 청년이 합류했어요. 드디어 보석과 소중한 인연이 시작된거죠. 보석님은 지역에서 나고 자랐지만, 지역을 잘 몰랐어요. 원테이블을 통해 지역을 알게 됐다고 해요. 현재는 지역 청년들과 문화예술 협동조합을 운영하고 있어요. 골목 축제를 기획하고, 진행하는 등 마을에서 보석 같은 일을 하며, 보석 같은 사람으로 살고 있어요. 

  

Q. 공간을 통해 자연스럽게 마을 청년들도 만나게 되셨군요! 청년들과 함께 한 일들도 많다고요.

2018년 3월 17년에 만난 청년들이 책방을 해보고 싶어 해서 공유공간을 책방으로 운영했어요. 어르신이 많은 동네 골목에 청년들이 모이니 어르신들이 참 좋아하셨어요. 유기묘를 보살피면서 동네 어르신들과 마찰도 있었는데, 잘 풀어가면서 지냈어요. 낭독극도 하고, 마을 성년식도 하고, 동네 어르신들 모셔서 음악회도 하고, 어르신 자서전 쓰기도 하고..그렇게 시작한 활동으로 마을공동체상도 많이 받았어요. 


Q. 청년들이 마을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다양한 지원도 하셨다구요. 

청년 쉐어하우스 나비를 운영하고 있어요. 처음엔 제가 나중에 독립해서 살고 싶어서 얻은 월세집이었어요. 마침 문화예술을 하는 동네 청년이 집 계약이 끝나서 금천을 떠날 상황이 된 거에요. 난 아직 독립할 생각이 없으니 그 집에 살라고 했죠. 지금은 청년들이 모여서 함께 살고 있어요. 지역을 떠날 청년이었는데, 이 쉐어하우스로 지역에 남아서 열심히 활동하고 있어요. 덕분에 한명 붙잡았죠. 


Q. 교육복지사업을 하는데 마을을 잘 아는 것이 큰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어떤가요?

가정방문 하다 보면 가슴 아픈 일이 너무 많아요. 내가 뭔가를 할 수 있을거라 생각했는데,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어요. 할 수 있는 일은 기다리는 일, 찾아가거나 문 두드려 주는 일, 좋은 정보가 있을 때 제공 해 주는 일, 연락 왔을 때 반갑게 맞아주는 일이에요. 아이가 지역 안에서 행복하게 지낼 수 있는 비빌언덕을 만들어주려고 해요. 제가 하는 모든 마을 활동 목표는 아이들과 지역자원을 연계하는 데 있어요. 

마을에서 만나는 모든 자원은 교육복지센터로 통해요. 우리 센터는 외부 멀리서 오는 강사, 기업형 강사가 아닌 이 지역에서 살고 있는 어른, 강사, 활동가를 연결해요. 자원이 필요할 때 마을을 둘러보면 연결 해 줄 분이 있죠. 센터에서는 서로 잘 만나는지, 어려움은 없는지 모니터링하면서 양쪽의 소리를 들어줘요. 아동, 가정이 필요한 것이 있으면, 꾸준히 새로운 일을 찾아내주고, 없으면 제안까지 해요. 우리가 만나는 아이들 대부분이 청년, 성인이 되어서도 이 지역에 살고 있어요. 모른척하다가 노년기 돼서 지원하지 말고, 건강하게 자라서 건강한 어른, 구성원이 되도록 시스템을 만들어줘야한다고 생각해요. 


Q. 마을분들과 함께했던 일 중에 기억에 남는 사례가 있을까요? 

2022년부터 3년째 대한체육회에서 지원하는 행복나눔 스포츠교실로 당구 수업을 하고 있어요. 초5부터 21세까지 15명의 청소년이 참여해요. 주말 돌봄이 잘 안되고, 경계선 지능인, 중도입국 청소년, 말 안하는 아이까지, 다양한 아이들이에요. 토요일 아침 10시부터 시작하는데, 15회기 동안 안 빠지고, 9시 반부터 와서 기다릴 정도로 적극적이에요. 

작년에는 태릉에서 열린 세계당구대회에도 초대 받았어요. 집중이 힘든 친구들인데, 긴 시간 잘 참여했어요. 얼마 전 학교장 간담회에서 ‘금천은 탁구가 유명한데 왜 당구를 하냐, 당구장은 담배도 많이 피고, 공간이 나쁘지 않냐’는 질문을 받았어요. 처음엔 저도 당구에 대한 이미지가 좋지 않았어요. 대부분 당구장이 지하에 있고, 실내흡연도 많이 하고, 주말에는 영업해야 하니 평일 오전에만 가능하다고해서 공간 찾기도 쉽지 않았어요. 

그러다 이웃 소개로 지금 수업하는 당구장을 알게 됐어요. 여사장님이시고, 건물 3층에 공간도 정말 쾌적해요. 수업 있는 토요일은 영업도 오후부터 시작하고, 아이들 멘토도 해 주셨어요. 교장선생님께 당당하게 3년 동안 아이들이 어떻게 변했는지, 당구장이 얼마나 쾌적하고 좋은지 말씀드렸어요. 이 친구들은 농구, 배구, 탁구, 배드민턴처럼 공을 주고받는 것이 어려운 아이들이에요. 당구는 내 속도, 내 걸음으로 쳐요. 몸에 힘을 빼고, 감각으로 하는 운동이에요. 우리 아이들이 입사각, 반사각, 45도, 이런 말들은 잘 못 알아듣지만 감각적으로 금방 배워서 잘 쳐요. 흥미도 높고, 열심히 참여하면서 성공 경험도 하고. 우리 아이들에게 진짜 필요하고, 잘 맞는 운동이에요. 

작년에 센터 가족프로그램으로 한 번 한 적 있는데, 늘 뒤로 물러나있던 아빠들이 나서서 아이들을 가르쳐주시더라구요. 프로그램외에 아빠랑 당구장에 찾아가는 아이들도 있어요. 그럼 사장님이 간식도 챙겨주시구요. 코로나 시기에 지원사업을 받아서 당구장도 안정적인 수입이 되고, 아이들도 좋고. 이웃과 관계하면서 서로 윈윈이 되었죠.  



Q. 활동가로서의 관심사, 고민이 있나요? 

언젠가 돈이 있으면 사회사업재단을 만들고 싶어요. ‘지역복지재단 나비’라고 예전에 이름은 만들었어요. 나비는 불완전 변태, 벗어나면 아름다운 나비가 되듯이 사람도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룹홈’도 운영하고, 홍세화 선생님의 ‘장발장 은행’처럼 집 없는 청(소)년들에게 돈이 필요할 때 긴급하게 내어주고 싶어요. 많은 사람에게 얘기하면 우주의 기운이 온다고 하잖아요. 좋은 사람이 나타날지도 모르니까 계속 말하고 다녀요. 오래전에 동네 엄마가 그러더라구요. “자기는 그거 하고 싶다고 맨날 하더니, 그거 하고 있더라~~” 그 한마디에 깨달았죠.


Q. 미래에 어떤 삶을 살고 싶으세요?

전 미래를 계획하고 움직이지 않아요. 삶의 흐름에 따라, 상황에 맞춰서 살고 싶어요. 준비된 곳에 가는 건 안 좋아해요. 새롭게 뭔가 하는 게 좋아요. 유년부터 20년은 포천에서, 5년은 이곳저곳에서 살았고, 지금 금천에서 25년째 살고 있어요, 이후 노년의 삶을 살 곳은 아직 고민 중이에요. 시골집도 유튜브로 찾아보고, 외지에 가서 어려운 일을 해보고 싶기도 해요. 부모님 계신 지역으로 가서 부모님 케어하고, 지역 어르신 챙기는 일을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도 하구요. 어디에서든 필요한 일,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어요. 


#금천 #서울 #교육 #마을활동가 #류경숙 #조미리


글쓴이 : 조미리
마을활동가 채타피(조미리)입니다. 학교사회복지사이기도하고, 인권, 노동, 성관련 교육활동가이기도합니다. 청소년 시절부터 서울 은평구에서 시민사회 활동을했고, 사회복지와 청소년학을 공부하고 학교사회복지사로 일해왔습니다.

2024공익활동가주간을 맞아 다양한 지역과 분야에서 자기만의 방식으로 변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활동가들을 만나 이들의 일과 삶에 대한 이야기를 기록하는 활동가인터뷰 공모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인터뷰 공모에는 여러 지역의 활동가들이 참여해주셨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공익활동가사회적협동조합 동행>, <한국시민사회지원조직네트워크>, <지리산이음>이 공동주최하고, <아름다운재단>이 지원했습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