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1. 교수에서 공익활동가로 변신한 김종택 관장
“가난 때문에 고통을 겪었으면 돈에 한이 맺혀야 하는데, 돈이 아닌 공부에 한이 맺혔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공부에 매달렸습니다. 그러다가 나만 잘사는 공부를 해서 무엇하나? 고민하며 방황했습니다. 특히, 셋째 동생이 서울에서 죽은 이후, 허무주의에 빠지기도 하고, 아무리 애를 써도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는 불평등한 사회와 가난한 사람을 외면하는 교회에 대한 불만과 원망이 생겼습니다. 그렇게 방황하고 나처럼 고민하고 방황하는 청소년에게 올바른 길을 알려주는 교사 또는 목사가 되면 어떨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린 시절 겪은 가난의 아픔이 제 뼛속에 박혀서인지는 모르겠으나 가난한 아이들의 아픔과 눈물을 보면 견딜 수가 없습니다.”
김종택 관장은 부모있는 소년가장이었다. 부친의 가산탕진으로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하면서 공부에 한 맺힌 그는 검정고시로 명문고를 졸업했다. LG그룹에 속한 대기업을 15년 넘게 다녔고, 중소기업 CEO가 돼선 5천만 불 수출의 탑을 받기도 했다. 그는 가난의 비참함에선 벗어났으나 공부에 대한 목마름은 가시지 않았다. 그래서 주경야독으로 교육학, 신학, 목회학, 사회복지학 등을 공부하면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한 뒤 수원대 공공정책대학원 등에서 교수 생활을 했다. ‘한국요양보호사협회’를 설립하고 7년여 동안 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한국교회법연구소’ 이사장, 사회복지법인 ‘성산하모니복지재단’ 이사와 비영리 민간단체 ‘위기청소년의 좋은 친구 어게인’ 이사를 맡고 있다.
가난한 아이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어 공부방 운영
그의 고향은 전북 익산의 농촌이다. 그의 집은 부농은 아니었지만 학비와 끼니를 걱정할 정도의 빈농 또한 아니었다. 그런데 중농에서 자란 그는 중학교에 가지 못했다. 학교 대표로 학력경시대회에 출전할 정도로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었던 그가 중학교 교복을 입지 못하게 된 것은 부친이 가산을 탕진했기 때문이다. 노름으로 농사지을 땅과 가옥까지 날려버린 부친은 모친과 자식들은 고향에 남겨 두고 아내와 단둘이 무작정 상경했다.
할머니와 4명의 동생과 고향에 남겨진 그는 면사무소에서 배급받은 밀가루로 만든 수제비로 끼니를 때울 때가 많았다. 그 시절, 배급 밀가루로 만든 수제비로 끼니를 때운 사람 중 상당수는 밀가루 음식을 싫어한다. 김 관장의 말대로 “밀가루 음식을 지겹도록 먹었기” 때문이다. 영등포 난민촌에서 태어나 신정동 오목교 뚝방 판자촌에서 자란 필자 또한 밀가루 음식을 지겹도록 먹었기에 밀가루 음식을 좋아하지 않는다. 아아, 어찌하여 잊으랴! 뼈에 사무친 그 가난을 어찌 잊을 소냐.
김 관장과 필자가 잘 통하는 것은 가난의 아픔을 겪은 세대이기 때문이다. 그와 나는 가난한 아이들을 보면 가슴이 아파서 견딜 수가 없다. 가난의 피눈물을 흘렸기에 가난 때문에 고통을 겪는 아이들을 보면 어떻게든 도우려고 애쓰는 것이다. 그는 안산에서 공부방을 운영했다. 가난 때문에 학업을 중단해야 했던 그는 가난한 아이들에게 희망을 심어주기 위해 공부방을 운영했고 필자는 가난한 나라에서 온 중도입국 이주 청소년들을 위한 방과후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그 어떤 학생보다 우수한 학생이었던 그는 교복이 입고 싶었다. 하지만 할머니와 동생을 책임져야 할 소년가장이 되어 산에서 나무하고 똥지게와 물지게를 져야 했다. 교복 입은 친구들을 보면 부러운 게 아니라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았다. 김 관장은 “그때, 공부에 대한 한이 생겨서 그렇게 공부하고 또 공부했던 같다”고 말했다. 부모님이 고향을 떠난 3년 후, 시골에 남겨졌던 할머니와 4명의 동생과 함께 상경해 부모님이 사는 구로공단 입구 화장실도 없는 단칸방에서 8식구가 함께 살았다.
빈농에서 도시 빈민으로 이전됐을 뿐, 희망은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앞날이 캄캄했던 그에게 희망이 보인 것은 주경야독하는 고향 선배를 만나면서였다. 고향 선배는 주간엔 공장에 다니고 야간엔 검정고시 학원을 통해 중고교 과정을 마치고 육군3사관학교에 진학했다. 선배를 통해 희망의 통로를 발견한 그는 검정고시를 우수한 성적으로 통과하면서 가난한 인재들이 모이는 덕수상고에 진학했다. 가난이 공공의 적이었던 시절, 그는 공부를 통해 가난에서 벗어났지만 가난한 이들 곁을 떠나지는 않았다. 가난한 사람들은 공공의 적이거나 혐오의 대상이 아니라 공공의 연대로 보듬어야 할 이웃이기 때문이다.
‘인천 서구 국·공립 어린이집 아동학대 사건’을 기억하세요?
▲사진 2. 2020년 11월 문을 연 ‘인천서부아동보호전문기관’
인터뷰를 진행한 지난 6월 27일(목), ‘인천서부아동보호전문기관’(이하, 본 기관)의 상담실과 교육실 등의 모든 공간이 사용되고 있었다. 아동보호전문기관(이하, 아보전)은 가정폭력과 아동학대 등으로 피해당한 아동과 청소년들을 지원해주는 기관이다. 아보전이 활발하다는 것은 가정폭력과 아동학대 피해자들이 많이 발생한다는 뜻이므로 쌍수를 들어 환영할 일이 아니다. 2020년 11월 문을 연 ‘본 기관’에 접수된 아동학대 발생 건수는 전국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선두권을 다툰다고 한다.
그중에서 가장 끔찍한 사건은 지난 2021년 발생한 ‘인천 서구 국·공립어린이집 아동학대 사건’(이하, ‘어린이집 아동학대 사건’)이다. 이 어린이집 교사들은 장애아동을 비롯한 피해 아동들을 때리면서 웃기까지 했고, 아동들을 교실에 방치한 채 고기파티까지 벌인 것으로 밝혀져 충격을 주었다. 피해 아동 학부모들의 증언에 따르면 가해 교사들은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아동의 얼굴을 때리고 낮잠 시간에 잠을 자지 않는다는 이유로 머리채를 잡아서 억지로 잠을 자라고 눕히기도 하고 심지어, 아동들의 머리채를 잡고 교실을 끌고 다니고 발로 걷어차는 등의 학대를 저지른 것으로 밝혀졌다.
학대에 시달린 아동들은 잠들기 전 2~3시간 동안 울부짖으며 자신의 몸을 바닥에 던지는 등의 자해 증세를 보였다고 한다. 피해 아동 중에 자폐 아동의 부모는 자신의 아이가 25일간 등원하는 동안 148건의 학대를 당했다면서 장애가 있는 아동이라면 어떤 아동보다 세심하게 돌봐줄 것을 기대했는데 담임 보육교사는 어른의 육중한 몸으로 체중이 20kg도 안 되는 자신의 아이를 억누르는 등으로 학대했다면서 어린이집이 아니라 지옥이었다면서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이 어린이집 20~30대 보육교사 6명 전원이 자폐증 등을 가진 장애아동 5명을 포함한 1~6세의 아동들을 학대했다. 특히, 268건의 아동학대 중에서 자폐성 장애를 가진 아동 2명에게 각각 148건과 40건의 학대가 집중됐다. 인천지방법원은 2021년 9월 가해 보육교사 2명에게 징역 3~4년, 취업제한 명령 10년을 선고했고, 또 다른 가해 보육교사 4명에겐 징역 1년~1년6개월, 아동학대 방조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원장에겐 징역 4년을 선고하면서 법정 구속했다.
수원대 등의 대학에서 사회복지 등을 가르치는 학자이자 사회복지 전문가로 활동하다가 지난 2020년 문을 연 ‘인천서부아동보호전문기관’의 책임자로 일하고 있는 김 관장에게 아동학대에 대해 여쭈었다.
▲사진 3. 인터뷰 중에도 전화를 받아야 할 정도로 바쁜 김종택 관장
Q. 본 기관의 아동학대 발생이 어느 정도인가요.
“인천 서구와 강화군을 관할하는 ‘본 기관’은 아동학대 신고 건수로 보면 전국에서 1~2등을 다툴 정도로 매우 심각합니다.”
Q. 아동학대 신고 건수가 많은 원인은 무엇일까요.
“빈곤 등의 경제적 원인이 가장 크다고 생각합니다. 가난 때문에 부부 갈등이 발생하고, 가난 때문에 가정이 해체되고, 가난 때문에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하고, 가난한 부모에게 가난과 학대를 받은 대물림 받고 자란 뒤, 부모가 되어서 어린 자녀들에게 가난과 학대를 그대로 대물림하는 등 빈곤 문제가 아동학대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동을 학대한 부모를 조사해보면 경제적, 교육적 정도가 매우 낮은 것으로 나타납니다.”
Q. 아동보호전문기관의 책임자로 4년간 일하면서 겪은 가장 가슴 아픈 사례를 꼽는다면?
“본 기관이 개관된 지 얼마 안 돼서 발생한 ‘어린이집 아동학대 사건’입니다. 이 사건을 뉴스로 접한 수많은 학부모와 시민들의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컸습니다. 특히, 피해 장애아동에게 가해진 학대는 끔찍할 정도였습니다. 관련 교사와 원장 등이 법정 구속되고 어린이집 운영자가 교체되었으니 끝났을까요. 아닙니다, 아동학대 사건은 권선징악으로 끝나선 곤란합니다. 본 어린이집 아동학대 사건뿐 아니라 또 다른 아동학대 사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세상의 아이들이 아동학대 피해자가 되지 않도록 재발 방지 대책을 세워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사건 발생 직후 ‘본 기관’이 현장을 조사하고 피해 아동과 부모에 대한 상담 및 치료 등을 진행했습니다. 이번 사건에서 우리는 교훈도 얻지 못했고 재발 방지 대책도 세우지 못했습니다. 장애아동에 대한 돌봄 서비스를 진행하기 위해선 장애아동의 특성에 맞는 시설과 전문 보육교사가 필요한데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이런 가운데 장애아동을 통합반에 몰아넣고, 장애아동 전문교육을 받지 못한 보육 교사에게 돌봄을 맡기다 보니, 장애아동과 학부모와 보육교사 모두 힘들 수밖에 없게 됩니다.
가슴 아픈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장애아동과 학부모들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장애아동을 위한 어린이집 확충하는 것이 가슴 아픈 것보다 급선무입니다. 사건이 발생하고 뉴스가 보도되면 그 충격으로 가슴 아파하고, 시간이 지나면 잊어먹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합니다. 꽃으로라도 때리지 말라는 말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직접 가한 학대와 폭력만이 아동학대가 아닙니다. 우리 사회는 장애아동과 그 학부모에게 적절한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한 채 ‘외면’ 또는 ‘묵시적 방관’이란 폭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봐야 합니다.”
상시적 야근과 저임금에 떠나는 직원들... 사회복지 현장은 공익의 최전선
▲사진 4. 아동학대 예방 캠페인을 하고 있는 김종택 관장과 직원들
Q. 직원들의 이직율이 높다고 들었습니다.
“매년 이직율이 3~40%대입니다. 미국의 아동보호전문기관의 경우 1인당 15가정 이하를 담당하고 있고, 한국에서도 1인당 25가정 이하를 권고하고 있는데, 우리 직원들은 1인당 40~50가정 정도 맡고 있습니다. 다른 사회복지 영역은 ‘클라이언트’(도움이 필요한 사람)의 개입 요구에 맞춰 사회복지 서비스를 제공하면 되지만 아동보호전문기관은 개입을 원치 않는 클라이언트의 반발을 무릅쓰고 개입해서 서비스를 제공해야 합니다. 아동학대 가해자의 대다수는 부모이고, 그 부모는 ‘왜 우리 집안일에 끼어드냐’는 식으로 반발합니다.
특히, 빈곤 가정의 가해 부모들은 ‘내 자식 내가 알아서 하는데 너희들이 뭔데’라는 식으로 적대적으로 대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자녀 양육에 대한 가치관, 기술, 태도, 방법 등의 교육을 받지 못한 부모들은 대체로 아동학대와 훈육을 구분하지 못합니다. 직원들은 이들 가정을 방문해서 서비스를 제공하는 과정에서 가해 부모의 공격에 노출되기도 합니다. 이처럼 위험한 업무와 상시적인 야간근무 그리고, 저임금에 시달리던 직원들이 눈물을 머금고 떠납니다. 그 직원들을 가지 말라고 잡을 수도 없고, 잘 가라고 편하게 떠나보내지도 못합니다.”
Q. 아동보호전문기관 직원들의 어려운 상황을 들으니 가슴이 답답합니다만, 전쟁터에서도 사랑이 꽃을 피우는 것처럼 아동학대의 전쟁터에서 꽃 핀 감동적인 사례가 있다면 듣고 싶습니다.
“가정 학대 피해자인 미정(가명)이는 엄마를 잃은 소녀입니다. 미정이 엄마는 남편과 심각한 갈등을 겪던 와중 자살이라는 끔찍한 선택을 했고, 미정이는 아빠가 엄마를 죽인 것이나 마찬가지라면서 아빠를 극도로 미워했습니다. 그렇지만 미성년자인 미정이는 아빠의 보호를 받을 수밖에 없는 처지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미정이는 엄마와 살던 곳을 떠나 낯선 인천으로 전학을 왔고,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했고, 자해를 일삼았기에 고위험군으로 분류된 학생이었습니다. 그런데 보호자인 미정이 아빠는 딸을 보호하기는커녕 방임과 방치로 학대한다는 사실이 발견되어 결국은 분리 조치했습니다.
상황이 개선된 것은 미정이가 본 기관의 직원들과 담당자였던 A선생님과 위탁한 시설의 B선생님과 친밀한 관계가 형성되면서부터였습니다. 미정이와 상담하고, 병원을 동행하고, 고민을 나누고, 함께 식사하는 등 따뜻한 관심으로 좋은 관계를 형성하면서 불안과 두려움에 시달리던 미정이가 안정을 찾고, 학교생활에 적응하고, 친구들이 많아지면서 약물치료를 중단할 정도로 호전됐습니다.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라는 말이 생각날 정도로 완전히 달라진 미정이를 보면서 아픔을 낫게 하는 가장 좋은 약은 사랑이라는 것을 거듭 깨달았습니다. 기쁜 소식은 미정이가 자신이 겪은 아픔을 글로 써서 낸 수기가 공모전에서 교육부장관상을 받은 것입니다. 만일 미정이에게 두 선생님을 비롯한 직원들의 따뜻한 사랑과 응원이 없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상상만 해도 끔찍합니다.
사회복지 현장은 공익의 최전선입니다. 무한경쟁과 각자도생이 판을 치는 살벌한 사회에서 이런저런 위기에 처한 클라이언트들이 사회복지사들로부터 따뜻한 사랑과 지지를 받으면서 위기에서 탈출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런데, 공익의 최전선이어야 할 사회복지 현장이 때론 클라이언트의 아픔에 공감하고 위로하기보다 도움을 청하는 클라이언트를 실적의 대상으로 삼거나 아니면 귀찮은 존재로 여기는 관료적 태도를 보이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공익의 최전선에서 일하는 사회복지사들이 사회적 실패와 소외감으로 절망에 빠진 이웃을 외면한다면 그분들은 오갈 곳이 없게 되고, 벼랑 끝에 내몰린 이웃들은 세상을 원망하고 삶을 비관하다가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미정이를 외면했다면 미정이는 자해 다음에 자살을 선택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본 기관의 A 선생님(현재 퇴직)은 대학 시절에 전공이 맞지 않아서 방황의 아픔을 겪다가 대학교 학생상담사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서 극복한 경험이 있었습니다. 누군가의 도움으로 아픔을 극복한 사람에겐 빚진 자의 마음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아프고 힘든 사람을 보면 누구보다 그 아픔과 힘겨움에 공감하게 되고, 빚진 자의 심정으로 어려움을 겪는 이웃의 손을 잡아줍니다. 사랑하는 엄마를 잃으면서 슬픔에 빠진 한 소녀를 실적 대상으로 삼지 아니하고, 따뜻한 사랑과 나눔으로 보듬어준 A선생님의 사례를 나는 ‘생명을 살린 공익활동’이라고 평가하고 싶습니다.”
아동학대 가해자는 보육원 출신 미혼모... 비난과 낙인보다 관심과 사랑을
▲사진 5. 버려진 담배꽁초처럼 부모와 사회로부터 버려지고 방황하고 분노하는 위기청소년들.
필자는 소년원 출원생과 학교 밖 청소년, 미혼모와 이주 청소년 등의 위기 청소년을 돕고 있다. 어린 시절, 가난 때문에 버려짐의 아픔을 겪었던 필자는 부모와 사회로부터 버림받은 아이들의 눈물을 닦아주겠노라고 다짐했다. 하지만 아이들은 사랑보다는 돈을 원했고, 밥보다는 술과 담배를 좋아했고, 떠날 때는 그냥 떠나지 않고 등에 비수를 꽂았다. 버려지고 짓밟히고 깨진 환경에서 자란 그 아이들은, 그렇게 살라고 강요한 사회에 적응했고, 내 자식만 잘되면 된다는 어른들의 각자도생에 부응했다. 나만 찔리지 않으면 된다는 각자도생의 세상 어디에선가 칼을 가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나만 찔리지 않으면 되는 행운을 그대들은 꿈꾸고 있는가.
김 관장은 사회복지 전문가다. 필자는 ‘전문가’란 명사에서 ‘권위자’란 유의어를 알게 됐으나 진실함과 진정성은 잘 읽지 못한다. 그들은 전문가라는 타이틀을 따기 위해 투자한 시간과 자본만큼 권위자의 높은 자리와 고수익을 보장받기를 원한다. 뿌린 대로 거두는 것이 이치이지만 전문가란 자리가 어찌 그 자신만의 힘으로 이루어졌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왜 전문가와 공익성은 왜 등치(等値)하지 못할까. 필자가 김 관장을 존경하는 이유 중의 가장 중요한 것을 꼽으라면 그것은 사회적 약자를 도울 때, 거들먹거리지 아니하고 진실한 모습으로 최선을 다해 돕기 때문이다. 김 관장은 아동학대 가해자인 미혼모 수정(가명)씨와 피해자인 두 아이를 격리조치로 끝내지 않았다. 그렇게 하면 편하다. 그런데 김 관장은 수정씨와 두 아이를 살리기 위해 발 벗고 나섰다.
수정씨는 미혼모다. 부모가 이혼하면서 보육원에 맡겨졌다. 버림받은 사람은 부초처럼 떠돈다. 왜 그렇지 않겠는가. 자신을 낳아준 부모에게 버림받으면서 우주를 떠도는 미아가 됐는데 무슨 재주로 차디찬 이 세상에 정착할 수 있다는 말인가. 사랑을 받은 적이 없는 사람들은 사랑이 무엇이고, 어떻게 하는 것이 사랑인지 모른다. 그래서, 사랑이란 것을 하게 되면 굶주린 짐승이 음식을 허겁지겁 먹듯이 결핍된 애정 욕구를 채우기 위해 도박하듯이 사랑을 했다가 깨진 접시보다 더 산산조각이 난다. 사랑에 굶주렸던 수정씨는 한 사내를 만나 두 아이까지 낳았다. 하지만 그 사내놈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아났다. 미혼모가 된 수정씨는 두 아이를 잘 키우고 싶었다. 자신처럼 불쌍한 아이로 만들지 않으려고 애를 썼으나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 너무 일찍 망가져 버린 자신의 인생이 억울하고 화가 나서 아이들을 학대했다가 ‘본 기관’에 발견된 것이다.
김 관장은 수정씨에게 자립과 양육 능력이 생길 때까지 두 아이를 가정 위탁하자고 설득했다. 그래서 두 아이는 안전한 가정에서 제대로 된 돌봄과 양육을 받게 됐다. 그런 다음에 수정씨에게 꿈을 물었더니 ‘웹디자인’이 되고 싶다고 했다. 김 관장이 수정씨에게 그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대학 진학의 길로 인도했고, 직원들이 입학원서를 함께 작성하며, 격려하는 등 대학입학을 도왔다. 수정씨는 웹디자인을 배우는 대학생이 됐고, 현재 2학년 1학기를 마쳤다. 애완견을 키우고, 운동하고, 아르바이트하면서 열심히 학교 다니고 있다. 물론, 아이들도 가끔 만나 그리움을 달랜다. 아이들은 위탁가정에서 제대로 된 돌봄과 양육을 받으면서 잘 자라고 있다. 김 관장은 수정씨의 아르바이트 자리를 비롯해 필요한 도움을 주기 위해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등 학업과 취업을 도왔고 한 학기만 마치면 졸업하고 취업할 계획이다.
만일, 김 관장과 아보전이 수정씨 가정을 살리기 위해 발 벗고 나서지 않았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수정씨는 이 세상을 원망하면서 망가진 인생을 더 망가뜨렸을 것이고, 아동학대에 시달린 아이들은 절망의 늪에 버려졌을 것이다. 그러다 가정이 해체되면서 뿔뿔이 흩어지거나 아니면 끔찍한 뉴스의 주인공으로 등장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이 세상은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아니, 애를 낳았으면 책임져야지…애들만 불쌍해!”라며 몰상식한 관중처럼 야유를 보내거나 “행정당국과 사회복지기관은 무엇을 하는 거야!”라고 규탄하며 공동체의 책임을 전가하다가 그 사건이 뉴스에서 사라지면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위기에 처한 가정을 돌봐야 할 공동체적 책임이 있습니다.”
▲사진 6. 아동학대 예방 캠페인 소원나무에 걸린 카드엔 ‘엄마가 미안해!’
“수정씨와 같은 이웃의 아픔을 ‘사건’으로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수정씨 가정에서 발생한 아동학대는 ‘사건’이긴 하지만 ‘사건’으로만 보기보다는 위기에 처한 ‘사람’이 일으킨 사회 구조적인 문제로 사회공동체가 함께 해결해야 할 아픔으로 인식해야 합니다. 한 생명이 천하보다 귀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수정씨는 얼마나 소중한 생명입니까. 그녀는 두 아이의 엄마이고 그에겐 두 아이의 미래가 달려있습니다. (김 관장은 자신의 수고는 애써 감추었다. 그러면서) 우리 직원들이 작은 사랑의 씨앗을 뿌리고 수정씨가 스스로 삶을 새롭게 하면서 희망의 꽃이 피고 있습니다. 하지만 수정씨처럼 삶의 기반이 취약한 미혼모 가정은 언제든 절망이 덮치면 그 희망은 순식간에 무너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겐 수정씨처럼 위기에 처한 가정을 돌봐야 할 공동체적 책임이 있습니다.”
김 관장이 강조했다. 우리에겐 수정씨처럼 위기에 처한 사회적 약자를 돌봐야 할 공동체의 책임이 있다고. 우리는 꽃을 피운 식물을 보면 기뻐한다. 하지만, 꽃이 꽃을 피우기 위해 견뎌야 했던 비바람과 목마름에는 관심이 많지 않다. 희망이란 꽃이 피게 하려면 사랑의 씨를 뿌리고 나눔이란 거름을 주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너무 쉬운 선택을 하고 있다. 사회적 약자들이 비바람에 쓰러지지 않도록 보살피기보다는 아동학대 가해자라고, 미혼모라고, 부모 없이 자란 아이라고, 가난한 사람들이라고 낙인찍고, 외면하고, 격리를 도모하면서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
김 관장은 아동학대 피해자인 미정이와 가해자인 수정씨와 같은 위기에 처한 이웃을 살리기 위해 수고하는 직원들이 고맙다. 하지만, 고강도의 업무와 저임금에 시달리다 지쳐서 떠나는 직원들을 차마 붙잡지 못한다. 밀려드는 사건과 사고는 아무리 굴려서 올려놔도 끊임없이 굴러 내려오는 시지프스의 돌처럼 버겁고 힘겹다.
“날마다 사건이 파도처럼 밀려들어 옵니다. 직원들은 퇴근 시간이 돼도 자유롭게 퇴근하지 못합니다. 밤이 깊은데도 퇴근하지 못한 직원들을 보면서 상시화된 야근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수년째 고민하고 있지만 뾰족한 해법을 찾지 못했습니다. 직원들은 아보전의 가치와 사명감으로 일을 시작했다가 견디기 힘들 정도로 힘든 격무와 야근에 시달리다가 떠납니다. 아보전이 싫거나 업무가 싫어서 떠난 직원은 거의 없습니다. 떠나는 직원들은 전우를 전쟁터에 두고 떠나는 것처럼 미안해하고 괴로워합니다. 떠나는 직원은 떠나면서 괴롭고, 날마다 폭주하는 사건에 시달리는 직원들은 보내면서 괴롭습니다.
아보전 가치에 대한 행정기관과 사회적 인식이 바뀌어야 합니다. 아동학대 사건이 뉴스를 통해 전해지면 사람들은 아보전에 비난의 돌을 던집니다. 말씀드린 것처럼 아보전 직원들은 밀려든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사투 아닌 사투를 벌이고 있는데 시민들은 비난의 돌을 던지고, 아보전을 관할하는 행정관청은 너희에게 업무를 위탁했으니 알아서 하라는 듯한 방관자적인 모습을 보일 때 매우 실망하게 됩니다. 아보전이 클라이언트에 대한 서비스를 향상하려면 인원 확충과 직원에 대한 처우 향상이 뒤따라야 합니다. 동일노동 동일임금까진 아니어도 동일노동 동일시간에 대한 보상은 있어야 합니다. 현재 본 기관의 직원들은 월 30시간 이상을 야근하는데 야근수당은 12시간밖에 반영해주지 않습니다. 아동학대 가해자들을 만나려면 그들이 퇴근하고 귀가한 밤에 만나야 하는데 야간근무에 대한 보상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문제 해결의 중심은 사건 현장... 사회복지 비용은 지출이 아니라 투자
▲사진 7. 인천광역시로부터 유공자 표창을 받은 ‘인천서부아동보호전문기관’ 직원들.
아직도 감독 기관은 갑이고 위탁기관은 을이다. 이런 관계에서 ‘보이는 갑질’과 ‘보이지 않는 갑질’이 발생한다. 갑인 공무원들에게 을인 위탁기관 종사자들의 인권과 처우는 관심사가 아니므로 밀려드는 아동학대 사건과 전쟁 아닌 전쟁을 벌이는 아보전 직원들의 야근과 과로에 대한 대책은 무대책이다. 공무원들의 불필요한 개입과 간섭이 발생할 때마다 아보전 직원들은 이중삼중의 스트레스를 받는다. 억울하면 출세하라는 노래를 부르며 자괴감에 빠질 것인가. 근로조건 개선의 머리띠를 매고 투쟁할 것인가. 하지만 직원들은 아보전을 탈출하는 것으로 해법을 찾는다.
김 관장은 이런 아보전의 현실을 보며, 누군가는 개혁해야 한다고 생각을 했고, 자신이 먼저 앞장서서 그 일을 하기로 작정했다고 한다. 그래서 아보전 관련 일이라면 국회든, 복지부든, 보장원이든 어디든 가리지 않고 목소리를 내고 있다. 아보전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되는 살아있는 법과 정책, 제도 마련을 위해 항상 맨 앞에 선다. 김 관장이 관계의 불편함을 감수하면서까지 항의하고 촉구하는 것은 사회복지 교수 출신이자 사회복지 전문가로서 아보전 후배들이 자긍심을 갖고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는 책임감 때문이다.
그는 정년퇴직 전에 후배들을 위해 꼭 해주고 싶은 일이 있다고 했다. 그것은 “한국아동보호전문기관협회의 사단법인화, 종사자 관련 아동복지법 별표 10의 개정, 시군구공무원들과 아보전 직원들 간의 불평등한 관계를 심화시키는 지도·감독 조항 삭제, 실제 야근 시간을 수당에 반영하도록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자신이 아니라 후배들을 위한 그의 꿈이 이루어지길 빈다. 김 관장은 인터뷰를 마치면서 여러 선진 복지국가를 방문한 경험에 비추면서 이런 말을 했다.
“북유럽 국가들의 현장 활동가들은 법과 제도, 지자체와 기관의 협력, 지역사회와의 연대, 갑을관계 갈등...등을 고민할 필요가 없는 환경 속에서 클라이언트의 인권과 복지향상을 위해 일합니다. 물론 선진적 시스템을 갖추었어도 아동학대와 가정폭력 등의 문제는 발생하기 마련입니다. 북유럽 또한 많은 시행착오와 어려움을 겪으면서 문제 해결의 중심은 행정이 아니라 현장이라는 답을 얻었고, 현장의 목소리와 의견을 중시하는 현재의 선진 시스템을 마련한 것입니다. 그래서 북유럽 현장 활동가들은 과로와 처우 문제에 고심하기보다 어떻게 하면 아동학대 사건 등을 잘 해결할 것인가? 어떻게 하면 아동이 행복한 권리를 누리게 할 것인가? 라는 본질에 초점을 맞추어 활동합니다.
북유럽 활동가들처럼 본질에 충실한 그런 날이 언제쯤 올까? 사회복지는 비용 지출이 아니라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근본적이고 장기적인 투자인데 우리 사회는 사회복지를 부정적 시간으로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학대 피해 아동이 외면당한 상태에서 성장할 경우 사회에서 낙오된 그는 자신을 외면한 사회를 공격하고 우리 사회는 사건 처리와 선도와 교화에 필요한 인력과 감독 등의 비용을 늘립니다. 반면에 피해 아동에게 서비스를 제공해 개선하면 그 아이는 공동체의 구성원이 되어 인간답게 살게 되고, 안전한 사회환경이 조성되면 사회적 비용이 절감됩니다. 사회복지는 단순한 비용 지출이 아니라 사람답게 사는 공동체 사회를 구현하기 위한 가치를 창출합니다.
’사회복지‘(社會福祉)에서 ’복‘(福)자는 물질적 풍요를, ’지‘(祉)자는 정신적 복을 말합니다. 물질적 서비스를 아무리 잘해주어도 정신적으로 빈곤하면 진정한 복지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복지 선진국이었던 영국에서 복지병이라는 사회적 문제가 야기됐습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도 미혼모와 장애인, 빈곤 노인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에게 물질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에 그치고 있습니다. 아픔과 외로움에 지친 이들의 상한 영혼을 치유해주는 복지 서비스 제공을 통해 이들의 자존심과 자립심도 함께 세워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인간이란 존재는 물질과 정신의 균형을 잘 유지해야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존재입니다. 저는 그래서 물질과 정신이 한쪽에 치우치지 아니하도록 균형을 맞추는 공동체 사회가 진정한 복지 공동체라고 생각합니다.”
인터뷰어 : 조호진
1989년 <노동해방문학>으로 작품활동 시작. 시집 『소년원의 봄』(2016년 도서출판삼인)과 수필집 『소년의 눈물』(2017 도서출판삼인) 등을 펴냈다. 현재 미혼모와 위기 청소년을 돕고 있는 60대 공익활동가다.
2024공익활동가주간을 맞아 다양한 지역과 분야에서 자기만의 방식으로 변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활동가들을 만나 이들의 일과 삶에 대한 이야기를 기록하는 활동가인터뷰 공모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인터뷰 공모에는 여러 지역의 활동가들이 참여해주셨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공익활동가사회적협동조합 동행>, <한국시민사회지원조직네트워크>, <지리산이음>이 공동주최하고, <아름다운재단>이 지원했습니다. |
▲사진 1. 교수에서 공익활동가로 변신한 김종택 관장
“가난 때문에 고통을 겪었으면 돈에 한이 맺혀야 하는데, 돈이 아닌 공부에 한이 맺혔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공부에 매달렸습니다. 그러다가 나만 잘사는 공부를 해서 무엇하나? 고민하며 방황했습니다. 특히, 셋째 동생이 서울에서 죽은 이후, 허무주의에 빠지기도 하고, 아무리 애를 써도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는 불평등한 사회와 가난한 사람을 외면하는 교회에 대한 불만과 원망이 생겼습니다. 그렇게 방황하고 나처럼 고민하고 방황하는 청소년에게 올바른 길을 알려주는 교사 또는 목사가 되면 어떨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린 시절 겪은 가난의 아픔이 제 뼛속에 박혀서인지는 모르겠으나 가난한 아이들의 아픔과 눈물을 보면 견딜 수가 없습니다.”
김종택 관장은 부모있는 소년가장이었다. 부친의 가산탕진으로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하면서 공부에 한 맺힌 그는 검정고시로 명문고를 졸업했다. LG그룹에 속한 대기업을 15년 넘게 다녔고, 중소기업 CEO가 돼선 5천만 불 수출의 탑을 받기도 했다. 그는 가난의 비참함에선 벗어났으나 공부에 대한 목마름은 가시지 않았다. 그래서 주경야독으로 교육학, 신학, 목회학, 사회복지학 등을 공부하면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한 뒤 수원대 공공정책대학원 등에서 교수 생활을 했다. ‘한국요양보호사협회’를 설립하고 7년여 동안 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한국교회법연구소’ 이사장, 사회복지법인 ‘성산하모니복지재단’ 이사와 비영리 민간단체 ‘위기청소년의 좋은 친구 어게인’ 이사를 맡고 있다.
가난한 아이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어 공부방 운영
그의 고향은 전북 익산의 농촌이다. 그의 집은 부농은 아니었지만 학비와 끼니를 걱정할 정도의 빈농 또한 아니었다. 그런데 중농에서 자란 그는 중학교에 가지 못했다. 학교 대표로 학력경시대회에 출전할 정도로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었던 그가 중학교 교복을 입지 못하게 된 것은 부친이 가산을 탕진했기 때문이다. 노름으로 농사지을 땅과 가옥까지 날려버린 부친은 모친과 자식들은 고향에 남겨 두고 아내와 단둘이 무작정 상경했다.
할머니와 4명의 동생과 고향에 남겨진 그는 면사무소에서 배급받은 밀가루로 만든 수제비로 끼니를 때울 때가 많았다. 그 시절, 배급 밀가루로 만든 수제비로 끼니를 때운 사람 중 상당수는 밀가루 음식을 싫어한다. 김 관장의 말대로 “밀가루 음식을 지겹도록 먹었기” 때문이다. 영등포 난민촌에서 태어나 신정동 오목교 뚝방 판자촌에서 자란 필자 또한 밀가루 음식을 지겹도록 먹었기에 밀가루 음식을 좋아하지 않는다. 아아, 어찌하여 잊으랴! 뼈에 사무친 그 가난을 어찌 잊을 소냐.
김 관장과 필자가 잘 통하는 것은 가난의 아픔을 겪은 세대이기 때문이다. 그와 나는 가난한 아이들을 보면 가슴이 아파서 견딜 수가 없다. 가난의 피눈물을 흘렸기에 가난 때문에 고통을 겪는 아이들을 보면 어떻게든 도우려고 애쓰는 것이다. 그는 안산에서 공부방을 운영했다. 가난 때문에 학업을 중단해야 했던 그는 가난한 아이들에게 희망을 심어주기 위해 공부방을 운영했고 필자는 가난한 나라에서 온 중도입국 이주 청소년들을 위한 방과후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그 어떤 학생보다 우수한 학생이었던 그는 교복이 입고 싶었다. 하지만 할머니와 동생을 책임져야 할 소년가장이 되어 산에서 나무하고 똥지게와 물지게를 져야 했다. 교복 입은 친구들을 보면 부러운 게 아니라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았다. 김 관장은 “그때, 공부에 대한 한이 생겨서 그렇게 공부하고 또 공부했던 같다”고 말했다. 부모님이 고향을 떠난 3년 후, 시골에 남겨졌던 할머니와 4명의 동생과 함께 상경해 부모님이 사는 구로공단 입구 화장실도 없는 단칸방에서 8식구가 함께 살았다.
빈농에서 도시 빈민으로 이전됐을 뿐, 희망은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앞날이 캄캄했던 그에게 희망이 보인 것은 주경야독하는 고향 선배를 만나면서였다. 고향 선배는 주간엔 공장에 다니고 야간엔 검정고시 학원을 통해 중고교 과정을 마치고 육군3사관학교에 진학했다. 선배를 통해 희망의 통로를 발견한 그는 검정고시를 우수한 성적으로 통과하면서 가난한 인재들이 모이는 덕수상고에 진학했다. 가난이 공공의 적이었던 시절, 그는 공부를 통해 가난에서 벗어났지만 가난한 이들 곁을 떠나지는 않았다. 가난한 사람들은 공공의 적이거나 혐오의 대상이 아니라 공공의 연대로 보듬어야 할 이웃이기 때문이다.
‘인천 서구 국·공립 어린이집 아동학대 사건’을 기억하세요?
▲사진 2. 2020년 11월 문을 연 ‘인천서부아동보호전문기관’
인터뷰를 진행한 지난 6월 27일(목), ‘인천서부아동보호전문기관’(이하, 본 기관)의 상담실과 교육실 등의 모든 공간이 사용되고 있었다. 아동보호전문기관(이하, 아보전)은 가정폭력과 아동학대 등으로 피해당한 아동과 청소년들을 지원해주는 기관이다. 아보전이 활발하다는 것은 가정폭력과 아동학대 피해자들이 많이 발생한다는 뜻이므로 쌍수를 들어 환영할 일이 아니다. 2020년 11월 문을 연 ‘본 기관’에 접수된 아동학대 발생 건수는 전국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선두권을 다툰다고 한다.
그중에서 가장 끔찍한 사건은 지난 2021년 발생한 ‘인천 서구 국·공립어린이집 아동학대 사건’(이하, ‘어린이집 아동학대 사건’)이다. 이 어린이집 교사들은 장애아동을 비롯한 피해 아동들을 때리면서 웃기까지 했고, 아동들을 교실에 방치한 채 고기파티까지 벌인 것으로 밝혀져 충격을 주었다. 피해 아동 학부모들의 증언에 따르면 가해 교사들은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아동의 얼굴을 때리고 낮잠 시간에 잠을 자지 않는다는 이유로 머리채를 잡아서 억지로 잠을 자라고 눕히기도 하고 심지어, 아동들의 머리채를 잡고 교실을 끌고 다니고 발로 걷어차는 등의 학대를 저지른 것으로 밝혀졌다.
학대에 시달린 아동들은 잠들기 전 2~3시간 동안 울부짖으며 자신의 몸을 바닥에 던지는 등의 자해 증세를 보였다고 한다. 피해 아동 중에 자폐 아동의 부모는 자신의 아이가 25일간 등원하는 동안 148건의 학대를 당했다면서 장애가 있는 아동이라면 어떤 아동보다 세심하게 돌봐줄 것을 기대했는데 담임 보육교사는 어른의 육중한 몸으로 체중이 20kg도 안 되는 자신의 아이를 억누르는 등으로 학대했다면서 어린이집이 아니라 지옥이었다면서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이 어린이집 20~30대 보육교사 6명 전원이 자폐증 등을 가진 장애아동 5명을 포함한 1~6세의 아동들을 학대했다. 특히, 268건의 아동학대 중에서 자폐성 장애를 가진 아동 2명에게 각각 148건과 40건의 학대가 집중됐다. 인천지방법원은 2021년 9월 가해 보육교사 2명에게 징역 3~4년, 취업제한 명령 10년을 선고했고, 또 다른 가해 보육교사 4명에겐 징역 1년~1년6개월, 아동학대 방조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원장에겐 징역 4년을 선고하면서 법정 구속했다.
수원대 등의 대학에서 사회복지 등을 가르치는 학자이자 사회복지 전문가로 활동하다가 지난 2020년 문을 연 ‘인천서부아동보호전문기관’의 책임자로 일하고 있는 김 관장에게 아동학대에 대해 여쭈었다.
▲사진 3. 인터뷰 중에도 전화를 받아야 할 정도로 바쁜 김종택 관장
Q. 본 기관의 아동학대 발생이 어느 정도인가요.
“인천 서구와 강화군을 관할하는 ‘본 기관’은 아동학대 신고 건수로 보면 전국에서 1~2등을 다툴 정도로 매우 심각합니다.”
Q. 아동학대 신고 건수가 많은 원인은 무엇일까요.
“빈곤 등의 경제적 원인이 가장 크다고 생각합니다. 가난 때문에 부부 갈등이 발생하고, 가난 때문에 가정이 해체되고, 가난 때문에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하고, 가난한 부모에게 가난과 학대를 받은 대물림 받고 자란 뒤, 부모가 되어서 어린 자녀들에게 가난과 학대를 그대로 대물림하는 등 빈곤 문제가 아동학대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동을 학대한 부모를 조사해보면 경제적, 교육적 정도가 매우 낮은 것으로 나타납니다.”
Q. 아동보호전문기관의 책임자로 4년간 일하면서 겪은 가장 가슴 아픈 사례를 꼽는다면?
“본 기관이 개관된 지 얼마 안 돼서 발생한 ‘어린이집 아동학대 사건’입니다. 이 사건을 뉴스로 접한 수많은 학부모와 시민들의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컸습니다. 특히, 피해 장애아동에게 가해진 학대는 끔찍할 정도였습니다. 관련 교사와 원장 등이 법정 구속되고 어린이집 운영자가 교체되었으니 끝났을까요. 아닙니다, 아동학대 사건은 권선징악으로 끝나선 곤란합니다. 본 어린이집 아동학대 사건뿐 아니라 또 다른 아동학대 사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세상의 아이들이 아동학대 피해자가 되지 않도록 재발 방지 대책을 세워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사건 발생 직후 ‘본 기관’이 현장을 조사하고 피해 아동과 부모에 대한 상담 및 치료 등을 진행했습니다. 이번 사건에서 우리는 교훈도 얻지 못했고 재발 방지 대책도 세우지 못했습니다. 장애아동에 대한 돌봄 서비스를 진행하기 위해선 장애아동의 특성에 맞는 시설과 전문 보육교사가 필요한데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이런 가운데 장애아동을 통합반에 몰아넣고, 장애아동 전문교육을 받지 못한 보육 교사에게 돌봄을 맡기다 보니, 장애아동과 학부모와 보육교사 모두 힘들 수밖에 없게 됩니다.
가슴 아픈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장애아동과 학부모들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장애아동을 위한 어린이집 확충하는 것이 가슴 아픈 것보다 급선무입니다. 사건이 발생하고 뉴스가 보도되면 그 충격으로 가슴 아파하고, 시간이 지나면 잊어먹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합니다. 꽃으로라도 때리지 말라는 말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직접 가한 학대와 폭력만이 아동학대가 아닙니다. 우리 사회는 장애아동과 그 학부모에게 적절한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한 채 ‘외면’ 또는 ‘묵시적 방관’이란 폭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봐야 합니다.”
상시적 야근과 저임금에 떠나는 직원들... 사회복지 현장은 공익의 최전선
▲사진 4. 아동학대 예방 캠페인을 하고 있는 김종택 관장과 직원들
Q. 직원들의 이직율이 높다고 들었습니다.
“매년 이직율이 3~40%대입니다. 미국의 아동보호전문기관의 경우 1인당 15가정 이하를 담당하고 있고, 한국에서도 1인당 25가정 이하를 권고하고 있는데, 우리 직원들은 1인당 40~50가정 정도 맡고 있습니다. 다른 사회복지 영역은 ‘클라이언트’(도움이 필요한 사람)의 개입 요구에 맞춰 사회복지 서비스를 제공하면 되지만 아동보호전문기관은 개입을 원치 않는 클라이언트의 반발을 무릅쓰고 개입해서 서비스를 제공해야 합니다. 아동학대 가해자의 대다수는 부모이고, 그 부모는 ‘왜 우리 집안일에 끼어드냐’는 식으로 반발합니다.
특히, 빈곤 가정의 가해 부모들은 ‘내 자식 내가 알아서 하는데 너희들이 뭔데’라는 식으로 적대적으로 대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자녀 양육에 대한 가치관, 기술, 태도, 방법 등의 교육을 받지 못한 부모들은 대체로 아동학대와 훈육을 구분하지 못합니다. 직원들은 이들 가정을 방문해서 서비스를 제공하는 과정에서 가해 부모의 공격에 노출되기도 합니다. 이처럼 위험한 업무와 상시적인 야간근무 그리고, 저임금에 시달리던 직원들이 눈물을 머금고 떠납니다. 그 직원들을 가지 말라고 잡을 수도 없고, 잘 가라고 편하게 떠나보내지도 못합니다.”
Q. 아동보호전문기관 직원들의 어려운 상황을 들으니 가슴이 답답합니다만, 전쟁터에서도 사랑이 꽃을 피우는 것처럼 아동학대의 전쟁터에서 꽃 핀 감동적인 사례가 있다면 듣고 싶습니다.
“가정 학대 피해자인 미정(가명)이는 엄마를 잃은 소녀입니다. 미정이 엄마는 남편과 심각한 갈등을 겪던 와중 자살이라는 끔찍한 선택을 했고, 미정이는 아빠가 엄마를 죽인 것이나 마찬가지라면서 아빠를 극도로 미워했습니다. 그렇지만 미성년자인 미정이는 아빠의 보호를 받을 수밖에 없는 처지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미정이는 엄마와 살던 곳을 떠나 낯선 인천으로 전학을 왔고,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했고, 자해를 일삼았기에 고위험군으로 분류된 학생이었습니다. 그런데 보호자인 미정이 아빠는 딸을 보호하기는커녕 방임과 방치로 학대한다는 사실이 발견되어 결국은 분리 조치했습니다.
상황이 개선된 것은 미정이가 본 기관의 직원들과 담당자였던 A선생님과 위탁한 시설의 B선생님과 친밀한 관계가 형성되면서부터였습니다. 미정이와 상담하고, 병원을 동행하고, 고민을 나누고, 함께 식사하는 등 따뜻한 관심으로 좋은 관계를 형성하면서 불안과 두려움에 시달리던 미정이가 안정을 찾고, 학교생활에 적응하고, 친구들이 많아지면서 약물치료를 중단할 정도로 호전됐습니다.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라는 말이 생각날 정도로 완전히 달라진 미정이를 보면서 아픔을 낫게 하는 가장 좋은 약은 사랑이라는 것을 거듭 깨달았습니다. 기쁜 소식은 미정이가 자신이 겪은 아픔을 글로 써서 낸 수기가 공모전에서 교육부장관상을 받은 것입니다. 만일 미정이에게 두 선생님을 비롯한 직원들의 따뜻한 사랑과 응원이 없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상상만 해도 끔찍합니다.
사회복지 현장은 공익의 최전선입니다. 무한경쟁과 각자도생이 판을 치는 살벌한 사회에서 이런저런 위기에 처한 클라이언트들이 사회복지사들로부터 따뜻한 사랑과 지지를 받으면서 위기에서 탈출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런데, 공익의 최전선이어야 할 사회복지 현장이 때론 클라이언트의 아픔에 공감하고 위로하기보다 도움을 청하는 클라이언트를 실적의 대상으로 삼거나 아니면 귀찮은 존재로 여기는 관료적 태도를 보이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공익의 최전선에서 일하는 사회복지사들이 사회적 실패와 소외감으로 절망에 빠진 이웃을 외면한다면 그분들은 오갈 곳이 없게 되고, 벼랑 끝에 내몰린 이웃들은 세상을 원망하고 삶을 비관하다가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미정이를 외면했다면 미정이는 자해 다음에 자살을 선택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본 기관의 A 선생님(현재 퇴직)은 대학 시절에 전공이 맞지 않아서 방황의 아픔을 겪다가 대학교 학생상담사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서 극복한 경험이 있었습니다. 누군가의 도움으로 아픔을 극복한 사람에겐 빚진 자의 마음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아프고 힘든 사람을 보면 누구보다 그 아픔과 힘겨움에 공감하게 되고, 빚진 자의 심정으로 어려움을 겪는 이웃의 손을 잡아줍니다. 사랑하는 엄마를 잃으면서 슬픔에 빠진 한 소녀를 실적 대상으로 삼지 아니하고, 따뜻한 사랑과 나눔으로 보듬어준 A선생님의 사례를 나는 ‘생명을 살린 공익활동’이라고 평가하고 싶습니다.”
아동학대 가해자는 보육원 출신 미혼모... 비난과 낙인보다 관심과 사랑을
▲사진 5. 버려진 담배꽁초처럼 부모와 사회로부터 버려지고 방황하고 분노하는 위기청소년들.
필자는 소년원 출원생과 학교 밖 청소년, 미혼모와 이주 청소년 등의 위기 청소년을 돕고 있다. 어린 시절, 가난 때문에 버려짐의 아픔을 겪었던 필자는 부모와 사회로부터 버림받은 아이들의 눈물을 닦아주겠노라고 다짐했다. 하지만 아이들은 사랑보다는 돈을 원했고, 밥보다는 술과 담배를 좋아했고, 떠날 때는 그냥 떠나지 않고 등에 비수를 꽂았다. 버려지고 짓밟히고 깨진 환경에서 자란 그 아이들은, 그렇게 살라고 강요한 사회에 적응했고, 내 자식만 잘되면 된다는 어른들의 각자도생에 부응했다. 나만 찔리지 않으면 된다는 각자도생의 세상 어디에선가 칼을 가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나만 찔리지 않으면 되는 행운을 그대들은 꿈꾸고 있는가.
김 관장은 사회복지 전문가다. 필자는 ‘전문가’란 명사에서 ‘권위자’란 유의어를 알게 됐으나 진실함과 진정성은 잘 읽지 못한다. 그들은 전문가라는 타이틀을 따기 위해 투자한 시간과 자본만큼 권위자의 높은 자리와 고수익을 보장받기를 원한다. 뿌린 대로 거두는 것이 이치이지만 전문가란 자리가 어찌 그 자신만의 힘으로 이루어졌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왜 전문가와 공익성은 왜 등치(等値)하지 못할까. 필자가 김 관장을 존경하는 이유 중의 가장 중요한 것을 꼽으라면 그것은 사회적 약자를 도울 때, 거들먹거리지 아니하고 진실한 모습으로 최선을 다해 돕기 때문이다. 김 관장은 아동학대 가해자인 미혼모 수정(가명)씨와 피해자인 두 아이를 격리조치로 끝내지 않았다. 그렇게 하면 편하다. 그런데 김 관장은 수정씨와 두 아이를 살리기 위해 발 벗고 나섰다.
수정씨는 미혼모다. 부모가 이혼하면서 보육원에 맡겨졌다. 버림받은 사람은 부초처럼 떠돈다. 왜 그렇지 않겠는가. 자신을 낳아준 부모에게 버림받으면서 우주를 떠도는 미아가 됐는데 무슨 재주로 차디찬 이 세상에 정착할 수 있다는 말인가. 사랑을 받은 적이 없는 사람들은 사랑이 무엇이고, 어떻게 하는 것이 사랑인지 모른다. 그래서, 사랑이란 것을 하게 되면 굶주린 짐승이 음식을 허겁지겁 먹듯이 결핍된 애정 욕구를 채우기 위해 도박하듯이 사랑을 했다가 깨진 접시보다 더 산산조각이 난다. 사랑에 굶주렸던 수정씨는 한 사내를 만나 두 아이까지 낳았다. 하지만 그 사내놈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아났다. 미혼모가 된 수정씨는 두 아이를 잘 키우고 싶었다. 자신처럼 불쌍한 아이로 만들지 않으려고 애를 썼으나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 너무 일찍 망가져 버린 자신의 인생이 억울하고 화가 나서 아이들을 학대했다가 ‘본 기관’에 발견된 것이다.
김 관장은 수정씨에게 자립과 양육 능력이 생길 때까지 두 아이를 가정 위탁하자고 설득했다. 그래서 두 아이는 안전한 가정에서 제대로 된 돌봄과 양육을 받게 됐다. 그런 다음에 수정씨에게 꿈을 물었더니 ‘웹디자인’이 되고 싶다고 했다. 김 관장이 수정씨에게 그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대학 진학의 길로 인도했고, 직원들이 입학원서를 함께 작성하며, 격려하는 등 대학입학을 도왔다. 수정씨는 웹디자인을 배우는 대학생이 됐고, 현재 2학년 1학기를 마쳤다. 애완견을 키우고, 운동하고, 아르바이트하면서 열심히 학교 다니고 있다. 물론, 아이들도 가끔 만나 그리움을 달랜다. 아이들은 위탁가정에서 제대로 된 돌봄과 양육을 받으면서 잘 자라고 있다. 김 관장은 수정씨의 아르바이트 자리를 비롯해 필요한 도움을 주기 위해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등 학업과 취업을 도왔고 한 학기만 마치면 졸업하고 취업할 계획이다.
만일, 김 관장과 아보전이 수정씨 가정을 살리기 위해 발 벗고 나서지 않았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수정씨는 이 세상을 원망하면서 망가진 인생을 더 망가뜨렸을 것이고, 아동학대에 시달린 아이들은 절망의 늪에 버려졌을 것이다. 그러다 가정이 해체되면서 뿔뿔이 흩어지거나 아니면 끔찍한 뉴스의 주인공으로 등장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이 세상은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아니, 애를 낳았으면 책임져야지…애들만 불쌍해!”라며 몰상식한 관중처럼 야유를 보내거나 “행정당국과 사회복지기관은 무엇을 하는 거야!”라고 규탄하며 공동체의 책임을 전가하다가 그 사건이 뉴스에서 사라지면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위기에 처한 가정을 돌봐야 할 공동체적 책임이 있습니다.”
▲사진 6. 아동학대 예방 캠페인 소원나무에 걸린 카드엔 ‘엄마가 미안해!’
“수정씨와 같은 이웃의 아픔을 ‘사건’으로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수정씨 가정에서 발생한 아동학대는 ‘사건’이긴 하지만 ‘사건’으로만 보기보다는 위기에 처한 ‘사람’이 일으킨 사회 구조적인 문제로 사회공동체가 함께 해결해야 할 아픔으로 인식해야 합니다. 한 생명이 천하보다 귀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수정씨는 얼마나 소중한 생명입니까. 그녀는 두 아이의 엄마이고 그에겐 두 아이의 미래가 달려있습니다. (김 관장은 자신의 수고는 애써 감추었다. 그러면서) 우리 직원들이 작은 사랑의 씨앗을 뿌리고 수정씨가 스스로 삶을 새롭게 하면서 희망의 꽃이 피고 있습니다. 하지만 수정씨처럼 삶의 기반이 취약한 미혼모 가정은 언제든 절망이 덮치면 그 희망은 순식간에 무너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겐 수정씨처럼 위기에 처한 가정을 돌봐야 할 공동체적 책임이 있습니다.”
김 관장이 강조했다. 우리에겐 수정씨처럼 위기에 처한 사회적 약자를 돌봐야 할 공동체의 책임이 있다고. 우리는 꽃을 피운 식물을 보면 기뻐한다. 하지만, 꽃이 꽃을 피우기 위해 견뎌야 했던 비바람과 목마름에는 관심이 많지 않다. 희망이란 꽃이 피게 하려면 사랑의 씨를 뿌리고 나눔이란 거름을 주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너무 쉬운 선택을 하고 있다. 사회적 약자들이 비바람에 쓰러지지 않도록 보살피기보다는 아동학대 가해자라고, 미혼모라고, 부모 없이 자란 아이라고, 가난한 사람들이라고 낙인찍고, 외면하고, 격리를 도모하면서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
김 관장은 아동학대 피해자인 미정이와 가해자인 수정씨와 같은 위기에 처한 이웃을 살리기 위해 수고하는 직원들이 고맙다. 하지만, 고강도의 업무와 저임금에 시달리다 지쳐서 떠나는 직원들을 차마 붙잡지 못한다. 밀려드는 사건과 사고는 아무리 굴려서 올려놔도 끊임없이 굴러 내려오는 시지프스의 돌처럼 버겁고 힘겹다.
“날마다 사건이 파도처럼 밀려들어 옵니다. 직원들은 퇴근 시간이 돼도 자유롭게 퇴근하지 못합니다. 밤이 깊은데도 퇴근하지 못한 직원들을 보면서 상시화된 야근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수년째 고민하고 있지만 뾰족한 해법을 찾지 못했습니다. 직원들은 아보전의 가치와 사명감으로 일을 시작했다가 견디기 힘들 정도로 힘든 격무와 야근에 시달리다가 떠납니다. 아보전이 싫거나 업무가 싫어서 떠난 직원은 거의 없습니다. 떠나는 직원들은 전우를 전쟁터에 두고 떠나는 것처럼 미안해하고 괴로워합니다. 떠나는 직원은 떠나면서 괴롭고, 날마다 폭주하는 사건에 시달리는 직원들은 보내면서 괴롭습니다.
아보전 가치에 대한 행정기관과 사회적 인식이 바뀌어야 합니다. 아동학대 사건이 뉴스를 통해 전해지면 사람들은 아보전에 비난의 돌을 던집니다. 말씀드린 것처럼 아보전 직원들은 밀려든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사투 아닌 사투를 벌이고 있는데 시민들은 비난의 돌을 던지고, 아보전을 관할하는 행정관청은 너희에게 업무를 위탁했으니 알아서 하라는 듯한 방관자적인 모습을 보일 때 매우 실망하게 됩니다. 아보전이 클라이언트에 대한 서비스를 향상하려면 인원 확충과 직원에 대한 처우 향상이 뒤따라야 합니다. 동일노동 동일임금까진 아니어도 동일노동 동일시간에 대한 보상은 있어야 합니다. 현재 본 기관의 직원들은 월 30시간 이상을 야근하는데 야근수당은 12시간밖에 반영해주지 않습니다. 아동학대 가해자들을 만나려면 그들이 퇴근하고 귀가한 밤에 만나야 하는데 야간근무에 대한 보상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문제 해결의 중심은 사건 현장... 사회복지 비용은 지출이 아니라 투자
▲사진 7. 인천광역시로부터 유공자 표창을 받은 ‘인천서부아동보호전문기관’ 직원들.
아직도 감독 기관은 갑이고 위탁기관은 을이다. 이런 관계에서 ‘보이는 갑질’과 ‘보이지 않는 갑질’이 발생한다. 갑인 공무원들에게 을인 위탁기관 종사자들의 인권과 처우는 관심사가 아니므로 밀려드는 아동학대 사건과 전쟁 아닌 전쟁을 벌이는 아보전 직원들의 야근과 과로에 대한 대책은 무대책이다. 공무원들의 불필요한 개입과 간섭이 발생할 때마다 아보전 직원들은 이중삼중의 스트레스를 받는다. 억울하면 출세하라는 노래를 부르며 자괴감에 빠질 것인가. 근로조건 개선의 머리띠를 매고 투쟁할 것인가. 하지만 직원들은 아보전을 탈출하는 것으로 해법을 찾는다.
김 관장은 이런 아보전의 현실을 보며, 누군가는 개혁해야 한다고 생각을 했고, 자신이 먼저 앞장서서 그 일을 하기로 작정했다고 한다. 그래서 아보전 관련 일이라면 국회든, 복지부든, 보장원이든 어디든 가리지 않고 목소리를 내고 있다. 아보전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되는 살아있는 법과 정책, 제도 마련을 위해 항상 맨 앞에 선다. 김 관장이 관계의 불편함을 감수하면서까지 항의하고 촉구하는 것은 사회복지 교수 출신이자 사회복지 전문가로서 아보전 후배들이 자긍심을 갖고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는 책임감 때문이다.
그는 정년퇴직 전에 후배들을 위해 꼭 해주고 싶은 일이 있다고 했다. 그것은 “한국아동보호전문기관협회의 사단법인화, 종사자 관련 아동복지법 별표 10의 개정, 시군구공무원들과 아보전 직원들 간의 불평등한 관계를 심화시키는 지도·감독 조항 삭제, 실제 야근 시간을 수당에 반영하도록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자신이 아니라 후배들을 위한 그의 꿈이 이루어지길 빈다. 김 관장은 인터뷰를 마치면서 여러 선진 복지국가를 방문한 경험에 비추면서 이런 말을 했다.
“북유럽 국가들의 현장 활동가들은 법과 제도, 지자체와 기관의 협력, 지역사회와의 연대, 갑을관계 갈등...등을 고민할 필요가 없는 환경 속에서 클라이언트의 인권과 복지향상을 위해 일합니다. 물론 선진적 시스템을 갖추었어도 아동학대와 가정폭력 등의 문제는 발생하기 마련입니다. 북유럽 또한 많은 시행착오와 어려움을 겪으면서 문제 해결의 중심은 행정이 아니라 현장이라는 답을 얻었고, 현장의 목소리와 의견을 중시하는 현재의 선진 시스템을 마련한 것입니다. 그래서 북유럽 현장 활동가들은 과로와 처우 문제에 고심하기보다 어떻게 하면 아동학대 사건 등을 잘 해결할 것인가? 어떻게 하면 아동이 행복한 권리를 누리게 할 것인가? 라는 본질에 초점을 맞추어 활동합니다.
북유럽 활동가들처럼 본질에 충실한 그런 날이 언제쯤 올까? 사회복지는 비용 지출이 아니라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근본적이고 장기적인 투자인데 우리 사회는 사회복지를 부정적 시간으로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학대 피해 아동이 외면당한 상태에서 성장할 경우 사회에서 낙오된 그는 자신을 외면한 사회를 공격하고 우리 사회는 사건 처리와 선도와 교화에 필요한 인력과 감독 등의 비용을 늘립니다. 반면에 피해 아동에게 서비스를 제공해 개선하면 그 아이는 공동체의 구성원이 되어 인간답게 살게 되고, 안전한 사회환경이 조성되면 사회적 비용이 절감됩니다. 사회복지는 단순한 비용 지출이 아니라 사람답게 사는 공동체 사회를 구현하기 위한 가치를 창출합니다.
’사회복지‘(社會福祉)에서 ’복‘(福)자는 물질적 풍요를, ’지‘(祉)자는 정신적 복을 말합니다. 물질적 서비스를 아무리 잘해주어도 정신적으로 빈곤하면 진정한 복지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복지 선진국이었던 영국에서 복지병이라는 사회적 문제가 야기됐습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도 미혼모와 장애인, 빈곤 노인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에게 물질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에 그치고 있습니다. 아픔과 외로움에 지친 이들의 상한 영혼을 치유해주는 복지 서비스 제공을 통해 이들의 자존심과 자립심도 함께 세워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인간이란 존재는 물질과 정신의 균형을 잘 유지해야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존재입니다. 저는 그래서 물질과 정신이 한쪽에 치우치지 아니하도록 균형을 맞추는 공동체 사회가 진정한 복지 공동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