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만사X지리산][지리산음악대] 돈보다 소중한 것들을 연주합니다, 살래재즈팀의 보석과 한결


관객으로서 재즈가 가장 멋지다고 느껴질 때는 역시 연주자의 즉흥이 펼쳐질 때다. 연주자들의 주고받는 대화 옆에 슬쩍 의자를 놓고 앉아있다 보면 어쩐지 나도 한 마디를 얹게 되는 기분이랄까. 하지만 그때의 희열을 함께 느끼려고 반드시 재즈를 잘 알 필요는 없다. 우리의 옆엔 다정한 연주자 보석과 한결이 있으니까. 요리사가 즐거운 마음으로 만들어낸 요리가 더 맛있게 느껴지는 것처럼 위안을 전하는 예술가들의 음악은 그 자체로 든든한 한 끼 음식이 된다.


여기저기 재즈가 풍년이다. 유튜브에도 스탠다드 재즈부터 K-pop을 편곡한 재즈 플레이리스트가 넘쳐나고, 노동요가 필요한 많은 노동자들은 귀가 피로해지는 음악을 잠깐 내려놓고 재즈를 찾기 시작했다. 그런데 작년부터 이곳, 지리산 산골에도 재즈가 울려퍼지고 있다. 시골의 동네카페부터 각종 활동가들의 연대 현장까지, 자신들이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라도 찾아간다는 살래재즈팀 이야기다. 그들은 연대가 필요한 곳에서, 음악이 필요한 곳에서 그들만의 방식으로 사람들에게 위로를 전한다. 우리는 재즈를 통해 무엇을 주고 받는걸까. 마음에 흐르는 질문을 품고 햇살이 무더웠던 6월의 어느 날, 살래재즈팀의 콘트라베이시스트 한결과 트럼페터 보석을 만났다.



사진: 남원시 산내면의 카페 '플래닛커피' 에서 매월 마지막주 토요일 공연한다. 오른쪽부터 한결, 보석, 객원연주자 박원형. (촬영: 임현택)




Q. 코로나 팬데믹 이후부터 지리산권에 살래재즈팀의 연주가 울려퍼지고 있어요. 살래재즈팀은 어떻게 소개할 수 있을까요?


한결: 지리산권에서 재즈를 전파하고 연주하는 살래재즈팀이고요. 산내에 살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어서 ‘살래재즈팀’, 혹은 ‘살래재즈트리오’라는 이름으로 주로 활동하고 있어요. 멤버들이 모두 산내에 살고 있다면 참 좋겠지만, 저희 둘로는 연주에 한계가 있어서 객원 멤버를 항상 모시고 와서 살래재즈트리오 혹은 살래재즈콰르텟 이런 식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 팀을 결성하게 된 건 산내에서 트럼펫을 연주하는 보석을 만나고나서였어요. 보석에 대한 얘기는 건너서 듣고 있었지만 만날 계기가 없었는데, 2년 전에 마을 분의 소개로 만나게 됐어요. 처음엔 그 마을 분과 셋이서 연주 팀을 만들어보려다 와해됐고, 이후에 재즈 팀을 해보고 싶어서 보석에게 제안을 했어요. 그런데 마침 보석이 재즈에 관심이 있었던 터라 고맙게도 팀을 결성하게 됐습니다.



Q. 요즘은 공연 이외에 어떤 활동을 하고 있어요?


보석: 저는 ‘장항마을’이라는 새로운 유니버스의 성원권을 얻게 됐어요. 집이 생기면서 ‘마을 사람’이라는 인식을 얻은 것 같아요. 그에 따라서 해야하는 마을 일이 되게 많더라고요. 저희 마을에는 귀농귀촌인이 거의 없고 특히 젊은 사람은 더욱 없어요. 그러다 보니 여기저기 마을 일을 돕고 있고, 그 대신 마을회관이라는 공용 공간을 자주 활용하고 있어요. 집에 와이파이와 냉장고가 없기 때문에 저에게 마을회관은 너무 중요한 곳이예요. 그리고 회관을 가면 자연스럽게 할머니들과 자주 만날 수밖에 없잖아요? 마을의 할머니들이랑 되게 친해지게 되면서 이제는 제 필요에 의해서가 아니더라도 마을회관에 자주 가고 있어요. 가서 할머니들께 휴대폰 플래시 끄는 거 도와드리거나 지로용지를 읽어드려요. 그 외에도 들깨 심기, 마을 수로 청소, 쓰레기 정리하기 같은 일들 때문에 마을 밖에 나올 시간이 많지 않아요. 그러면서 농산물 같은 걸 얻기도 하고요. 마을에 출근하지 않는 젊은 사람이 저뿐이니까 마을 분들은 도움이 필요할 때 집에 찾아오시거나 전화하시는데 다행히 그게 체질에 맞아요. 최근엔 마을 소풍도 같이 다녀왔는데 정말 신세계를 경험했네요. (웃음)



Q. 한결은 어머님이 이장이 되면서 ‘이장 아들’이 되셨죠? (웃음) 어떤 활동을 하면서 지내고 계신가요?


한결: 시골에서 이장의 파워는 엄청나더라고요. 이장 아들이라고 하면 아니꼬왔던 시선도 확 달라지세요. 어쨌든 저는 마을 일로 바쁘진 않고요. 주로 실상사작은학교, 인월중학교, 운봉중학교, 도서관의 수업을 많이 가요. 남은 시간에는 보통 공연 준비를 하고 있고요. 

학교에서는 밴드 수업과 통기타 수업을 하고 있는데, 아이들이 되게 좋아해줘요.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이 선생님이셔서 서당개처럼 습득했던 스킬들이 저도 모르게 나오더라고요. 아이들 가르치는 일이 되게 즐거워요. 그렇지만 연주할 때가 가장 행복해서 수업을 더 늘리고 싶진 않아요. 아직은 연주에 더 집중하고 싶은데 수입이 필요하다보니 수업은 유지하고 있어요. 




시골에서 음악한다고요?



Q. 두 사람 다 음악 전공자잖아요. 이런 분들이 가까운 마을에 있다는 게 항상 귀하게 느껴지는데요. 두 사람은 어떻게 음악을 전공하게 되었나요? 


한결: 저는 아무래도 어머니가 음악을 전공하셨다보니 자연스럽게 접하게 됐어요. 대안학교인 실상사작은학교에 진학하게 된 것도 밴드부가 있었기 때문이고요. 덕분에 재밌게 활동을 했지만 졸업 후에 저는 지레 겁먹고 음악을 앞으로는 하지 않을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친구들이 졸업 후에 음악을 계속 하는 걸 보고 ‘쟤도 가면 나도 가보자’하고 용기를 얻어서 서울재즈아카데미에서 음악을 하게 됐고요. 그런데 아이러니하게 그때 같이 갔던 동기는 서울제즈아카데미랑 맞지 않아서 나갔고, 저는 너무 재밌게 다녔어요. 



Q. 유학도 재즈 전공으로 간 거네요?


한결: 한국 실용음악이나 대학 시스템에서 공부하는 것들이 다 재즈예요. 그렇기 때문에 클래식은 클래식, 실용음악은 재즈를 공부한다고 생각하시면 돼요. 미국에 갈 땐 애초에 재즈가 좋아서 갔기 때문에 4년 정도 공부를 했어요. ESL(English Second Language Course)에 토플 점수가 모자라서 6개월 조건부 입학으로 시작해서 운이 좋게 3년 반 만에 조기 졸업했어요. 졸업 후에 코로나로 셧다운이 되고나서 산내로 돌아오게 됐죠. 



Q. 보석도 학창시절 때부터 음악을 전공했었죠?


보석: 중학교 때 관악합주부라는 관악기로만 구성된 오케스트라 동아리가 있었어요. 거기서 처음 트럼펫을 접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고등학교, 대학교까지 쭉 트럼펫을 공부하는 길로 가게 됐습니다.



Q. 그런데 산내에 귀촌하고 나서는 한동안 트럼펫을 놨던 시기가 있었다고 알고 있어요.


보석: 맞아요. 그때쯤엔 다른 걸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나 봐요. 트럼펫은 어렸을 때부터 계속 해왔던 건데, 이것 말고 내가 궁금한 것들, 해보고 싶은 것들을 발견하고 싶어서 산내로 귀촌을 결심한 거죠. 그런데 귀촌하고 보니까 실제로 해야 될 게 진짜 많은 거예요. 그러니까 하고 싶은 것보다 해야 될 것들, 또 여기서 할 수 있는 것들이 되게 많았어요. 음악이 하기 싫은 건 아니었는데 트럼펫은 혼자 음악할 수 있는 악기가 아니기도 하고 여기서는 같이 할 사람도 없으니까 자연스럽게 다른 일들에 집중하게 된 것 같아요. 그러다 한결을 우연히 만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다시 음악을 하게 된 거죠.



Q. 오랫동안 전공을 하면 그 전문성을 살려서 일을 하거나 더 깊이 파고들고 싶은 마음도 있었을 것 같아요. 그러기 위해서는 도시에서의 삶이 더 유리할 텐데 시골을 선택한 이유가 있었나요?


한결: 처음에는 코로나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집에 돌아와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그때는 마음이 되게 급했어요. 타지에서 공부하는 동안 돈을 어마어마하게 썼을 텐데 집에서 뒹굴거릴 수는 없잖아요. 그렇다고 여기에 연주자들이 많은 것도 아니라서 연주도 어려웠고요. 급한 마음에 돈이라도 벌어야겠다는 생각에 카페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어요. 음악은 코로나라는 핑계로 계속 미루고요. 왜, 음악하는 사람들이 산 속에 들어가서 몇 년씩 수련하잖아요. 저도 여기에서 수련해야겠다는 생각으로 한 2년을 보낸거죠. 그러다가 서울로 우연히 공연하러 가서 오랜만에 정말 잘하는 사람들과 연주한 적이 있어요. 그런데 좋긴 했지만 별로 재미는 없는 거예요. 일단 서울이라는 곳이 갑갑하게 느껴졌고, 너무 치열하게 살고 있는 것도 보였고요. 무엇보다 다른 뮤지션들의 공연을 보면서 무대와 관객을 위한 공연보다는 돈을 위해서 공연을 하고 있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 느낌이 제가 도시에서 음악을 하고싶지 않게 만드는 결정적 이유였어요. 

그리고 제가 공부했던 필라델피아에서는 로컬 뮤지션들이 되게 많았어요. 정말 동네의 작은 카페에서도 수준급의 연주자들이 음악을 즐기면서 여유 있게 연주하는 걸 보면서, 또 그런 뮤지션들에게 음악과 삶을 배웠다 보니 내가 그렇게 서울에서 살 돈이면 차라리 외국 가서 살겠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또 한편으로는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면서 전 세계가 인터넷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걸 보여준 것 같은데, 그러면서 내가 사는 장소가 그렇게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 생각했어요. 나만 잘하면 내가 어디에 숨어 있든 음악적인 활동을 계속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고민과 지역에서도 음악하는 환경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는 두 가지 마음으로 여기에 남게 됐어요.



Q. 그게 살래재즈팀 결성까지 연결된 건가요?


한결: 그렇죠. 한 가지 이유를 더하자면 트럼펫처럼 콘트라베이스도 혼자 연주하기 힘든 악기예요. 그래서 저희가 팀 결성을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둘 중에 한 명이라도 기타나 피아노 쪽이었으면 혼자 작업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럼에도 기타나 피아노는 팀에 필요하지만요.



Q. 보석의 경우엔 어떤가요? 도시가 아닌 시골에서 음악하고 싶은 이유가 있었나요?


보석: 정말 많이 듣는 질문이에요. 왜 젊은 나이에 여기에서 이러고 있냐고 주변에서 정말 많이들 물어보시거든요. 근데 저는 제 음악의 전문성을 발휘해서 더 갈고 닦거나 이걸로 더 성공하고 싶은 마음이 그다지 없는 것 같아요. 예전부터 ‘그냥 이만하면 됐다’는 마음이 있는 것 같아요. 그게 제 실력에 만족해서는 아니예요. 공연이 끝나면 늘 만족스럽지 못하고 괴로운데, 그럼에도 그 전문성을 갈고 닦는 현장이라는 곳이 제 삶의 질을 높여주는 현장은 아닌 것 같아요. 음악 씬도 그렇고 그 음악 씬이 포진되어 있는 도시도 그렇고요. 바쁘게 정신없이 사느라 마음의 여유가 없는데, 음악도 공장에 나가는 마음으로 해야 했어요. 그래서 귀촌 이후에 음악을 다시 시작할 때도 마음의 여유가 사라지는 걸 경계하려는 마음을 그대로 갖고 있어요. 한편으로는 그냥 여기서도 뭔가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요. 


한결: 이 질문에서 한 가지 더 얘기드리고 싶은 게 있어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이 동네에 살았기 때문에 마을 사람들이 저의 존재에 대해 알고 계시거든요. 그런데 최근 한 10년 간 여기를 떠나있다가 다시 만났을 때, 생태적인 삶에 대해 공부도 많이 하고 그 삶에 만족하는 분들조차 제가 이곳에 있다는 걸 의아하게 생각하시더라고요. 왜 도시에 있지 않느냐는 거죠. 그런 질문이 굉장히 아이러니하게 느껴져요. 

최근에 만났던 분과도 지금과 비슷한 이야길 나눴는데, 그 분은 어디에 살아도 괜찮다고 말하는 제 말이 자신감에서 비롯된 것 같다고 이야기해주셨어요. 그 말이 저에게 크게 다가오더라고요. 무슨 말이냐면, 제가 서울에서 음악 공부를 해보지 않았거나 유학을 가지 않았다면 이 지역에 살고 있어도 자격지심을 느꼈을 것 같아요. ‘난 우물 안 개구리야’ 생각했을 것 같은데, 오히려 바깥을 경험하고 오니 내가 어디에 있다는 게 중요하지 않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한 거죠. 지금도 일정이 있으면 서울로 가서 활동할 수 있고요. 장소에 대한 제약이 없어진 것 같아요. 


보석: ‘성공해서 서울로 간다’는 말은 보편적이지만, 생각해보면 성공한 사람들 결국 시골에 가서 살지 않나요? (웃음) 시골에서 마당있는 좋은 집에서 살잖아요. 그리고 저도 도시에 있을 땐 음악 말고 별로 궁금한 게 없었고, 필요한 것도 없었던 것 같아요. 제 스스로도 ‘음악하는 나’ 말고는 쓸모가 없어 보였어요. 음악 이외의 나에 대한 쓸모나 필요가 없다고 느껴져서 ‘나중에 음악을 못하게 되면 큰일 난다’는 생각이 늘 있었어요. 그런데 시골에 오면서 여기서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졌어요. 필요한 것, 궁금한 것도 너무 많아서 음악말고도 쓰임을 받을 수 있는 게 가장 큰 차이 같아요. 



사진: 콘트라베이스를 연주하는 한결. 남원시 산내면의 카페 '플래닛커피' 에서 매월 마지막주 토요일 공연한다. (촬영: 임현택)



재즈는 옥상에서 나누는 농담 같은 것



Q. 재즈의 어떤 부분이 좋았나요? 


한결: 저는 원래 싱어송라이터가 되거나 인디밴드를 하고 싶었어요. 사실 재즈가 되게 싫었어요. 왜냐면 그동안은 정해진 음악만을 했었는데 재즈는 수업에 들어가면 갑자기 “솔로 해봐.” 이런 식으로 요구하거든요. 베이스 악기로 솔로 연주를 해본 적이 없는데 그런 식으로 갑자기 즉흥 연주를 강요하는 곳이었기 때문에 스트레스가 많았죠. 서울재즈아카데미에서는 계속 연주자의 기회를 푸시하더라고요. 그렇게 재즈가 지루하다고 생각할 무렵에 함께 다녔던 친구가 같이 재즈 스터디를 해보자 하면서 저를 이끌어줬어요. 그래서 20살부터 재즈를 시작한 거예요. 그 친구 계기로 유학도 가게 되면서 음악을 계속 하게 됐죠. 그때 재즈를 하지 않았으면 지금까지 안 했을 것 같아요.

그리고 재즈를 연주할 땐 기본적인 큰 틀만 잡고 세부적인 걸 정하지 않아요. 매번 연주할 때마다 느낌이 다르거든요. 10분 전에 연주한 걸 다시 해보라고 하면 똑같이 못 해요. 저희는 그냥 코드만 보고 연주하는 거죠. 만약 새로운 외부 연주자가 오면 또 새로운 대화가 이어지는 거예요. 이분은 여기서 이런 걸 주는구나, 하면 그걸 캐치하고 배워가요. 그러니까 사실 저는 제가 공연하면서 저 스스로에 대해 만족해요. 내 재미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그래서 재즈를 계속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냥 오늘 기분에 따라서 왔다갔다 할 수 있는 게 재즈의 매력 같아요. 



Q. 재즈는 즉흥적이라는 인식과 더불어 연주자가 서로 호흡하고 대화하는 연주라는 대중적인 인식이 있잖아요. 그런데 재즈에 대해 잘 모르는 관객은 그걸 캐치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을 것 같아요. 연주자들끼리 경험하는 짜릿한 순간에 대해 설명해주신다면요? 어떤 느낌인가요?


한결: 예를 들어 제가 어떤 코드를 연주하다가 변화를 줬어요. 근데 피아노가 그걸 캐치하고 저를 따라와줄 때. 제가 표현하는 특정한 리듬을 다른 악기가 같이 연주할 때 그런 걸 느껴요. 그래서 보석한테 부탁하는 것 중에 하나가 프리하게 연주해달라는 거예요. 그러면 그 느낌에 맞춰서 가죠. 그때의 기분에 따라 여기에서 조용해졌으면 좋겠다 하면 다 같이 조용해지고 여기서 다이나믹하게 가면 좋겠다고 하면 서로 신호를 주고받으면서 연주하는 거죠.


보석: 만약 우리가 A라는 곡을 연주하는데, 합주 이후에 한 명씩 솔로 연주를 한단 말이예요. 그러면 그때부터는 정해진 멜로디가 아니라 그날 그순간 생각나는 걸 해요. 그래서 엄청 유명한 B라는 곡의 한 소절만 솔로에 넣으면 재즈에서는 ‘저 사람 되게 농담 잘한다’ 이런 느낌을 주는 거예요. 그때는 B곡의 메인 멜로디를 코드만 맞춰서 연주해도 무방하거든요. 이런 게 위트있고 귀여워보이는 거죠. 


한결: 미국에서는 그럴 때 관객에서 반응이 와요.


보석: 그렇게 진짜 농담 주고받는 느낌도 있고요. 만약 잔잔하거나 무게 있는 발라드를 하면, 왜 그런 거 있잖아요. 밤 12시에 편의점 옥상에 둘이 앉아서 맥주 한잔하면서 이야기하는 느낌. (웃음) 



Q. 너무 재밌는데요? 그런 기분은 악기의 구성에 따라서도 변할 것 같은데, 두 사람의 악기가 독특하잖아요. 각자가 느끼는 트럼펫과 콘트라베이스의 매력은 뭐라고 생각하나요?


보석: 우선은 공통된 장점이라고 생각하는 게 재즈 씬에서 콘트라베이스나 트럼펫은 연주자를 구하기 너무 어려운 악기예요. 그런데 하필 저희 둘이 구하기 어려운 악기를 맡고 있으니 피아노나 기타 같은, 상대적으로 구하기 쉬운 악기만 섭외하면 되는 장점이 있어요. 그리고 가끔은 연주회 페이가 너무 적어서 외부 연주자를 섭외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는데 그럴 땐 되게 걱정되거든요. 둘만 가서 구성이 너무 단촐해지면 어떡하지 하고요. 그런데 콘트라베이스의 물성 자체가 주는 중압감이 있어요. TV에서만 보던 악기 같은 포스가 있어서 빵- 소리만 나도 괜히 더 좋게 들리는 것도 있어요. (웃음) 희귀한 악기라서 많이 좋아해주시는 반응이 장점이에요.


한결: 제 경우엔 성향상 남을 도와주는 걸 되게 좋아해요. 케어해주는 역할을 좋아하는데 베이스가 딱 그런 포지션이에요. 남을 더 돋보이게 만들어주는 포지션. 그런데 없으면 허전한. 그리고 베이스가 있으면 박자나 화성도 잡아주니까 다른 악기 연주자가 편하고요. 보통은 드러머가 그런 역할을 하는데 재즈 드러머 구하기가 너무 어려워서 제가 그 역할을 하고 있어요. 

그런데 보통 밴드 합주에서 베이스는 가위바위보 져서 하는 악기, 기타 수 모자라서 하는 거예요. (웃음) 심지어 비틀즈도 그렇게 시작했다는 거 아니겠어요? 그런데 저는 어릴 때도 베이스 기타를 보면 그 앞에만 서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누구나 스트라이커를 하고 싶은데 아무도 하기 싫어하는 수비수를 하는 느낌이에요. 없어서는 안 되는 받쳐주는 울림이 좋았던 것 같아요.



Q. 보석은 느끼는 트럼펫의 매력은요?


보석: 저도 한결과 일치하는 성향이 있어요. 드러나지 않지만 꼭 필요하다는 점에서요. 감초 같은 조연 있잖아요. 그런데 재즈에서 트럼펫은 그야말로 주연 역할을 해야 하는 악기라서 이게 내 성격과 맞나 하는 생각도 자주 해요. 저는 드러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한편으로는 저한테 그런 모습이 없다고 할 순 없거든요. 예를 들어 편한 사람들끼리 있을 때 광대가 되기를 자처하는 모습도 있는데 그런 모습이 되게 트럼펫적인 모습이라고 생각해요. 이런 양가적인 마음이 트럼펫과 닮아있는 것 같아요.


한결: 보석없이 공연하다가 보석과 함께 공연하면 차이가 확 느껴지거든요. 한 번은 진주에 공연이 있었는데, 그전엔 한 번도 앵콜이 나오지 않다가 보석의 트럼펫이 합류하고 바로 앵콜이 나왔어요. (웃음) 이런 방점, 중심을 딱 잡아주는 트럼펫의 역할이 굉장히 크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진: 트럼펫을 부는 보석. 남원시 산내면의 카페 '플래닛커피' 에서 매월 마지막주 토요일 공연한다. (촬영: 임현택)



꾸준한 연주의 소중함



Q. 비전공자 입장에서는 음악, 미술, 디자인처럼 창작의 영역에 있는 전공자들은 루틴을 만들어서 매일 꾸준히 연습하는 자기만의 방식이 있을 것 같다는 환상이 있어요. 두 사람은 어떤 방식으로 연주 연습을 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한결: 요즘은 매일 꾸준히 한다기보다는 한참 열심히 연습할 때보다는 덜 한 것 같아요. 한창 연습 많이 할 때는 안 하면 병 걸리는 사람처럼 연습했어요. 그런 압박감이 있었어요. 


보석: 많은 연주자들이 그때 해 놓은 연습으로 먹고 사는 느낌이에요. 젊을 때, 입시 때 헬스장 다니듯이 연습을 했던 메모리로 살아가는 것 같아요. 저는 요즘 꾸준한 연습보다 꾸준한 연주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혼자하는 연습은 되게 한정된 행위거든요. 나 혼자 있는 집, 내가 원하는 걸 얼마든지 할 수 있는 환경에서, 틀리면 다시 하면 되는 게 연습이라면, 연주나 공연은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몰라요. 내 앞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나를 보고 있고, 그런 감정적 압박속에서 내 감정을 잘 컨트롤하는 것도 너무 중요하다고 느껴요.

그리고 농촌 지역에 있으면 꾸준한 연주를 경험하기가 되게 어렵잖아요. 공연장이 있어야 하고, 그 공연을 보러 오는 사람들이 있어야 하는데 정말 다행히도 이런 시골에서 한 달에 한 번씩 공연을 하고 있어요. 이 정기공연 덕분에 이웃 지리산권이나 저희와 지향점이 비슷한 단체나 행사에서도 저희를 불러주세요. 덕분에 이런 감각을 잊지 않고 기억할 수 있는 요즘이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Q. 그런데 합주가 되려면 우선 개인 연습이 되고나서 모이는 거잖아요. 개인연습과 합주까지 많은 에너지를 쓸 것 같은데 연습하고 만나는 과정이 부담되진 않나요?


한결: 저희 합주는 몇 번의 프로세스가 있는데 첫 번째 합주에 모였을 때 우선 가이드라인, 스케치를 줘요. 그래서 처음엔 부담갖지 않고 일단 와서 ‘이렇게 연습하면 되겠다’ 정도의 느낌만 공유하는 거죠. 그러고나면 본인이 각자가 곡을 완성해오는 과정이라서 그렇게 부담스럽진 않아요. 


보석: 저는 음악을 하면서 전 세계가 인터넷으로 연결돼 있다는 말을 체감 못할 때가 많았거든요. 합주도, 공연도 만나서 해야 하는데, 그것도 한 번만 만나진 않잖아요. 그런데 한결이 ‘싱크룸’이라는 화상 합주 프로그램을 알려줬어요. 화상 합주인데도 딜레이나 버퍼링이 없어서 어디에서도 연주할 수 있는 게 장점이었어요. 저희도 바쁠 때는 싱크룸으로 만나면서 부담없이 연습하고 있어요.



Q. 마을의 카페에서 매달 정기공연을 하고 있죠? 연습보다 연주가 중요하다는 보석의 말처럼 이곳에서의 꾸준한 공연이 두 사람에게 소중할 것 같아요.


한결: 한 달에 한 번하는 정기공연이 저에게 의미가 큰데요. 연습하면서 새로운 실험도 해보고 이 공연이 새로운 원동력이 되기도 해요. 공연을 여는 카페 사장님이 감사하게도 공연이 꾸준히 열릴 수 있도록 후원을 해주고 계시고요. 

저희가 기타나 피아노 연주자를 모시기 어려운데, 정기공연이 있기 때문에 이걸 계기로 외부 연주자를 섭외할 수 있게 돼요. 이렇게 쌓인 공연 레퍼토리를 갖고 다른 곳에서 공연을 다닐 수도 있고요. 처음엔 외부연주자 섭외가 정말 어려웠어요. 한 달에 한 번씩 온다는 것 자체가 부담되고, 열 곡이 넘는 곡을 준비해야 하니까 꽤 스트레스도 되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언제든지 불러달라는 연주자들이 많아서 되게 감사하죠. 이제는 공연 섭외가 오면 누구를 섭외할지 행복한 고민을 하고 있어요. 외부 연주자가 왔을 때 동네를 보여주면서 여기에 정착하라고 슬쩍 꼬시면서요. (웃음) 


보석: 그리고 플래닛카페의 정기공연은 티켓 가격이 없는 공연이지만 입장 시에 1인 1음료를 시키는 걸 권장드리고 있어요. 그 수익으로 저희에게 페이를 주시지만, 사실 그 수익으로는 저희 페이를 절대 맞출 수 없거든요. 나머지는 사장님의 사비라고 하더라고요. 


한결: 처음엔 소액의 공연비를 책정해야하나 고민도 했었는데 첫 공연을 보시고 마을 주민 한 분이 저에게 개인적인 후원을 해주셨어요. 그걸 받는 순간 마을에서 저를 응원해주신다는 느낌을 받으면서 그런 마을분들께 입장료는 받지 않아야겠다 생각했어요. 그래서 카페 사장님과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사장님은 처음부터 입장료를 생각하지 않으셨더라고요. 그런 점이 감사했죠. 그리고 요즘은 농번기라 처음보다는 공연을 찾는 분이 줄어들었지만, 사장님은 계속 이 공연이 유지되기를 바라셔서 또 감사해요.


보석: 그래서 사실 지역의 문화예술도 주거와 복지만큼 잘 다뤄져야 하고 소중하게 이야기되어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지역의 문화예술은 연주자인 저희와 이것이 지속되길 바라는 개인들의 마음으로 이끌어가는 느낌이라 이런 문제도 지역사회 안에서 공공의 이야깃거리로 잘 풀어내고 싶다는 마음이 있어요.



사진: 구례 사포마을 골프장 반대 문화제에서 공연하고 있다. 왼쪽에서 세번째가 보석, 네번째가 한결. (제공:한결)



나를 필요로 하는 곳에 발을 담그고



Q. 지리산권 이곳저곳에서 살래재즈팀을 불러주는 걸 보면 점점 많은 사람들이 음악과 공연의 중요성을 알아가는 것 같아요. 이렇게 공연하면서 가장 행복한 순간은 언제였나요? 


보석: 형식적인 공연보다 지리산권에서 벌어지는 공연이 더 감동적인 순간이 많아요. 과거에 공연할 때 행복의 기준이라 하면 클린하게 잘 끝난 공연, 그리고 페이가 많은 공연이었는데, (웃음) 여기선 그런 걸 기준으로 놓기 어려워요. 대신 이곳에서 하는 공연의 행복은 우리 음악이 필요한 곳에 가닿았을 때에 느껴요. 예를 들면 최근에 골프장 건설이 예정되어서 숲을 밀어놓고 벌목지를 탐사하고 있는 구례 사포마을에서 행보를 규탄하는 연대 문화제에 초대받아서 갔었는데요. 이런 행사에서 저희를 불러준다는 게 너무 감사한 일이었기 때문에 연대하는 차원에서 이 행사를 위해서 민중가요나 연대 현장에서 자주 불리는 노래를 편곡하고 준비했어요. 그렇게 공연에서 마을 주민분들과 대책위 분들에게 연대의 마음을 전했던 순간이 엄청 행복했어요. 이 순간엔 공연의 페이가 별로 중요한 게 아니게 되는 거죠. 내가 행복의 우선순위에 돈을 두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체감하게 될 때의 행복감이 있어요. 그리고 저희를 불러준 팀에서 ‘와줘서 너무 고맙다. 너무 잘 들었다’ 얘기해주시면 돈을 받지 않아도 정말 괜찮았어요. 


한결: 저는 보석이 이야기했던 것과 반대의 상황을 경험하면서 비슷한 감정을 느꼈어요. 작년에 한 사찰의 재즈 공연을 갔는데 그때 무대에 한국에서 탑클래스 연주자들이 왔거든요. 그런데 그 무대에서 시간 한 번 때우고 가겠다는 연주자들의 태도가 보였어요. 지역에서는 자주 볼 수 없는 무대니까 관객들은 좋아하셨는데 저는 그걸 보는 순간 저런 음악은 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보석이 이야기했던 사포마을 공연 같은 경우는 돈과 관계없이 정말 행복했거든요. 

그래서 저희는 공연료의 일부를 공금으로 비축해두기도 해요. 저희 밥값이나 기름값으로 쓰거나 외부 연주자들 오면 밥 사주고, 페이가 적은 공연이라면 이 공금으로 외부 연주자를 섭외하기도 하는 거죠. 신기하게 돈이 딱 맞게 들어와요. 단순히 돈뿐만 아니라 어떤 것이라도 더 챙겨주시려고 하는 섭외자 분들의 마음이 너무 감사하더라고요. 



Q. 활동가의 활동이나 연대 현장 같은 곳에서 더 불러달라고 하는 살래재즈팀의 마음이 궁금했어요. 우리가 필요한 곳이 있다면 불러달라고 하는 마음은 어떤 건가요? 공연의 페이를 일순위로 생각하지 않는 태도가 참 멋지다고 생각했거든요.


보석: 연대 현장의 공연에서만 행복을 느꼈다기보다는 거기서 큰 보람을 느끼고 다시 또 다른 공연에 초대되는 순환이 좋았어요. 예를 들면 작년 크리스마스 연휴 때 지리산권의 3개 지역을 3일 간 돌면서 캐롤을 배달했거든요. 제가 사는 산내면뿐만 아니라 이웃 지역인 함양, 구례까지요. 이런 걸 기획해서 한 건 아니었는데 섭외 연락이 딱 알맞게 온 거예요. 구례에서는 시즌을 종료하는 커뮤니티 공간에서 공연을 했었고, 함양에서도 청년 커뮤니티에게 초대를 받은 거였어요. 내가 사는 이 지역 말고 이웃 지역과 내가 연결되는 느낌이 생소하지만 큰 보람으로 다가와요. 그 지역분들과 이야기 나누다 보면 이웃 동네 친구가 생기는 느낌을 자주 받아요. 이제 불러 주시는 곳이 많이 생겨서 스폰서가 있으면 좋겠어요. (웃음)


한결: 그 과정에서 재미있는 건 저희가 유랑단처럼 모든 악기를 제 차에 가득 실어서 이동하거든요. 이동하면서 보석이나 다른 연주자들과 이야기하는 시간이 되게 즐거워요. 근황 토크도 하고 있었던 일도 이야기하면서요. 최근에는 함양 청년커뮤니티를 통해서 거창 산 정상에 있는 풍력발전소에서 재즈 공연을 했어요. 오가는 길에 우리가 언제 이런 곳에서 연주해보겠냐, 그런 이야기를 했었어요. 


보석: 한결의 차 덕분에 합천의 숲이나 구례의 양수댐, 저수지 바로 옆의 사포마을 같은 곳까지 가서 공연할 수 있는 것 같아요. 가는 길의 풍경도 너무 아름답지만, 그 시간은 저희가 음악을 계속 탐구해야 하는 입장으로서 이동하는 길에 재즈 이야기도 정말 많이 나누거든요. 그런데 재즈 음악을 들으면서 한가롭게 시골 길을 달리는 것 자체가 너무 낭만적인 거예요. 노을이 질 때 어울리는 음악을 바꿔 듣기도 하면서요. 이게 도시 음악인이 느끼지 못하는 오감적인 넉넉함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어요. 


한결: 미국에 있을 때 미술관을 갈 수 있는 기회가 많았는데, 고흐나 피카소, 모네의 그림들이 있었어요. 그게 너무 부러운 거예요. ‘얘네는 이런 작품에서 영감 받으면서 음악하는구나’ 하는 마음이 들면서 뭔가 불공평한 것 같았는데, 지리산 다니면서 그것 못지 않은 영감을 얻고 있어요. 



Q. 지금 공연 레퍼토리는 주로 창작곡인가요? 아니면 있는 곡들을 편곡하고 있나요? 


한결: 지금은 창작곡보다는 기존의 곡들을 하는 경우가 많아요. 원래 저는 스탠다드 연주를 많이 해요. 스탠다드라고 하면 미국에서 1890년대부터 1920년대에 브로드웨이 뮤지컬에서 나왔던 음악들이 재즈로 바뀌어서 연주되는 곡들이예요. 그래서 미국인들에게는 재즈가 익숙한 거예요. 어렸을 때 들었던 노래들이니까요. 근데 한국에서 아메리카 스탠다드를 연주하면 공감대가 없고 무슨 노래인지 모르는 거예요. 대중적인 재즈는 <Fly to the moon> 같은 곡이나 디즈니 주제곡, 크리스마스 캐롤 정도라서 재즈를 알리면서 가장 큰 애로사항이 관객분들과 교감이 안 되는 부분이에요. 

그래서 제가 요즘 시도하는 부분이 사람들에게 익숙한 한국의 곡을 재즈로 편곡해서 ‘코리언 스탠다드’로 만드는 거예요. 아직 생소할 수 있는 자작곡을 내는 것보다 사람들한테 익숙한 노래를 재즈로 편곡해서 재즈에 더 가까워질 수 있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예를 들어 이번 공연은 포크송 특집으로 김광석 님의 노래나 <터> 같은 노래들을 준비하고 있어요. 관객들에게 익숙한 재즈를 많이 전달하고 싶은데, 이걸 창작곡이라고 해야할 지 애매하긴 하네요.



Q. 이렇게 들으니 공연 준비라는 게 정말 큰 노력들이 모여서 만들어지는구나 새삼 느끼게 돼요. 그렇다면 기억에 남는 가장 인상에 남았던 공연을 뽑아줄 수 있나요? 


한결: 우선 정기공연을 펼치는 플래닛카페 공연인데요. 와 주신 분들도 재즈를 좋아해 주시고 무엇보다도 정말 집중해서 들어주시거든요. 제가 미국에서 봤던 무대보다 오히려 더 존중해 주세요. 물론 재즈 문화는 관객들이 공연에 집중하기보다 시끄럽게 떠들기도 하고 와인잔도 부딪혀가면서 듣는 것이지만, 여기에서 집중하는 공연으로 존중받는 기분은 그것대로 좋아요. 

그리고 구례 공연에서 좋았던 건 그날 저희가 벚꽃나무 밑에서 연주했거든요. 벚꽃이 휘날리던 무대였는데, 악기 안에 벚꽃 잎이 들어가는 사이에서 공연을 하는데 그 장면이 너무 아름다웠어요. 또 구례의 수수 님과 함께 스페인 민중가요를 편곡해서 함께 불렀는데, 리허설 한 번도 없이 너무 좋은 에너지로 공연을 마쳤어요. 

마지막으로, 저희 마을의 실상사에서 공연한 것이 기억에 남는데요. 그때 내가 왜 여기서 살고 있고 왜 이 마을에서 공연하고 있는지를 느꼈어요. 나를 다시 초심으로 되돌려주는 기분이요. 그 공연은 작년에 실상사에서 만들었던 카혜님의 앨범을 발표하는 자리였는데요. 제가 전체 공연 기획도 맡고 제가 수업하고 있는 작은학교 밴드부를 위해 앨범 수록곡 하나를 록 밴드 사운드로 편곡해서 아이들이 연주할 수 있게 기획했어요. 또, 재즈밴드 한결의 앨범에 있는 곡들을 재즈로 편곡해 연주했는데, 마을 분들이 너무 재미있게 봤다고, 좋았다고 이야기해주시는 것이 감사했어요. 그리고 제가 이 마을에 살게 된 계기가 돼주신 실상사 도법스님도 리허설을 했던 몇 시간동안 관객석을 지켜주셨고요. 그걸 보면서 마을을 위해 내가 좋은 활동을 하고 있다고 느껴지더라고요.


보석: 저도 구례 사포마을에서 공연했던 게 커다란 기억으로 남았어요. 공연 끝나고 그 공연에 대해서 저희 둘이 여러 번 회자를 할 정도로요. 어떤 공연은 저희가 쓰이기만 하는 느낌을 받을 때가 종종 있는데, 좋은 기획과 충분한 페이로 섭외해주셨지만 저희를 기능으로만 쓰는 공연은 하고 나서 찜찜해요. 확실히 돈보다는 내가 왜 이 장소에서 연주를 하고 있는지를 자각하게 해주는 공연이 저희에게 너무 필요하고, 그게 저에게도 좋은 공연이라고 생각해요.



사진: 구례 사포마을 골프장 반대 문화제에서 공연하고 있다. 왼쪽이 보석, 오른쪽이 한결. (제공:한결)



음악으로 위로하는 법



Q. 앞으로 추구하고 싶은 음악, 그리고 각자가 느끼는 음악에게 받는 힘이 있다면요? 


한결: 저는 고등학교 때부터 음악관이 딱 있었어요. ‘위로가 될 수 있는 음악’. 솔직하게 말하면 제가 지금 하고 있는 재즈 음악은 연주자들을 위한 음악이지, 관객을 위한 음악은 아니예요. 그렇지만 나중에 정말 제 음악이 위로가 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자주 생각해요.


보석: 저는 언젠가는 우리만의 음악을 하고 있으면 좋겠어요. 보컬리스트나 작곡가도 스타일이 있는 것처럼 같은 재즈라도 스타일이 다르거든요. 그래서 우리 스타일, 우리만의 시그니쳐가 정형화되면 좋겠어요. 

그리고 위로가 되는 음악을 하고 싶다는 한결의 말에도 공감해요. 연대 현장 공연에서 재즈가 주는 위로에 대해 느꼈거든요. 재즈는 보통 사랑 노래가 많은데, 이런 가사는 연대 현장에서는 어울리지 않잖아요. 근데 재즈의 매력은 편곡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전혀 다른 음악이 될 수 있다는 거예요. 네모라는 도형은 편곡을 통해서 직사각형, 정사각형 모양이 되지만, 재즈라는 장르를 거치면 별이 되거나 세모가 되는 것처럼 아예 그 모양과 색깔을 바꿔버려요. 이런 걸 경험할 때마다 신선한 충격을 받아요. 그래서 아는 사람만 즐기는 재즈 말고 익숙한 노래를 저희 스타일로 편곡했을 때 음악으로부터의 위로와 즐거움을 주고받을 수 있지 않을까요?


한결: 이런 이야길 나눴던 이유가 사실 지금의 공연은 다른 재즈 팀을 모셔와도 저희 공연과 비슷한 소리를 낼 거예요. 그런데 우리만의 스타일이 있다면 어디에서 공연하더라도 “살래재즈팀인가보다.” 할 거잖아요. 우리 공연이 우리만의 색깔이 있었으면 좋겠고, 유행처럼 소비되는 칵테일 재즈 말고 꾸준히 지속할 수 있는 재즈를 하고 싶어요. 재즈의 유행이 꺼져도 지리산에서 활동하는 살래재즈팀만의 재즈를 하고 싶은 거죠. 최종적으로는 ‘재즈를 좋아한다’가 아니라 ‘살래재즈팀을 좋아한다’라는 말을 듣고 싶어요.  



Q. 편곡을 하는 두 사람도 곡이 변하는 모습을 보면서 재밌을 것 같아요. 그렇다면 앞으로 더 해보고 싶은 활동이 있나요?


한결: 저는 두 가지가 있어요. 한 가지는 개인적으로 제가 하는 ‘재즈밴드 한결'이라는 팀이고요. 여기에서 많은 공연 레퍼토리가 만들어지죠. 살래재즈팀과 함께 여기에서 개인적인 작업을 꾸준히 하고 싶고요. 

또 한 가지는 산내에 빅밴드를 하나 만들고 싶다는 거예요. 미국은 크리스마스 연말 시즌만 되면 빅밴드가 엄청 많아요. 대규모 오케스트라처럼 브라스 밴드가 캐롤을 보여주는데 진짜 멋있거든요. 그게 미국인들이 겨울을 보내는 문화인 거죠. 산내에서도 비전공자들이 소모임처럼 한 주에 한 번씩, 1년 정도 연습해서 크리스마스 때 공연을 한 번 하면 정말 재밌고 멋있을 것 같아요.


보석: 저는 소박한 상상인데요. 재즈 CD를 내고 싶어요. 우리가 공연하는 걸 어떤 기록의 형태로 남기고 싶더라고요. 그런데 유통이나 음원 사이트에서는 들을 수 없고 산내에 있는 매장이나 카페들에서만 구매할 수 있는 거죠. 공CD에 매직으로 팀 이름을 적고, 신문지 포장해주고. (웃음) 예전에 ‘월간 정상순’을 기획하는 똥폼과 이야기하다가 외부 도시에 가서 공연요청이 왔을 때 가지 않고 ‘너네가 여기로 와~’ 라는 마인드로 공연을 연다는 말을 하셨거든요. 그 말이 저에게 아직도 인상깊게 남아있어요. 저희도 여기에서만 듣고 즐길 수 있는 문화를 만들고 싶어요. 


Q. 그게 예술가로서 진짜 멋있는 거잖아요.


보석: 뮤지션들 공연가면 CD 판매하잖아요. 오늘 공연을 기억하면서 다시 돌려 듣기도 하고요. 저희도 CD가 있으면 공연 때 CD를 팔아서 경비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저희 앙상블의 구성이 재즈 드럼도 없을 정도로 단촐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렇기 때문에 편안하게 들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거든요. 일상에서, 운전하면서 듣기 좋은, 그리고 산내에서만 구할 수 있는 크리스마스 캐롤 앨범을 고마운 분들에게 나눠드리는 것들을 최근에 상상해봤어요.



Q. 살래재즈팀의 CD앨범과 살래브라스밴드의 공연이 정말로 실현될 것 같아서 기대되네요. 너무 즐겁고 재밌을 것 같아요. 두 사람도 마을 주민들과 관객에게 감사함을 많이 느끼지만, 이웃 마을 주민으로서 이런 재즈 공연을 시골에서 들을 수 있어서 마을 주민들도 정말 복받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요? 


한결: 마을분들에게 감사한 마음이 가장 커요. 공연 홍보 게시물에 ‘좋아요’도 많이 눌러주시고 호응도 많이 해주시거든요. 사실 이런 일에 관심이 없을 수도 있고, 안 좋아할 수도 있는 데도 항상 좋아해주시고 불러주시는 것 자체가 저희에게는 정말 감사한 일이예요. 거기에 제가 힘을 받기도 하고요. 산내 분들이나 지리산 분들이 든든한 서포터로 느껴져요.


보석: 저는 한결에게 가장 고맙다는 생각을 정말 많이 해요. 정확히 말하자면 음악하는 파트너가 한결이라서 다행이라는 생각이요. 음악하는 사람들 중에 성격이 사납거나 독특한 분들이 많거든요. 그런데 같이 공연을 만들려면 조율해야 될 것들이 되게 많은데 그 부분에서 한결과 잘 맞는다는 건 정말 행운이죠. 

우리나라에서 일반적으로 공연문화 예술을 바라볼 때 생각하는 태도가 있잖아요. 항상 가장 후순위에 있거나 무시하는 시선들이요. 그런 시선 때문에 페이가 적어지거나 소비되는 뮤지션들이 많아지고, 이런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공연 이후에 연주자 팀이 와해되는 경우가 정말 많거든요. 

물론 그런 현실적인 문제도 참 중요하지만, 여기에서는 그너머에 다른 생각들을 더 할 수 있는 곳이거든요. 한결은 페이와 관계없이 어떤 취지의 행사에서 우리가 꼭 필요하다고 같이할 수 있냐고 물어보면 “괜찮아요. 그런 공연이 있으면 언제든 알려주세요.” 라고 이야기해줘요. 이런 합의가 어렵지 않게 잘 되면 실력, 음악적인 진지함, 방향성 이런 것들은 조금 부차적으로 밀려나요. 어쨌든 같이하는 사람이 편해야 하는데 그 무드를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한결과 같이 하고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정말 많이 하죠.


한결: 저도 그런 측면에서 보석과 잘 맞아요. 저희 둘 다 게으르고 태평한 구석이 있어요.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편하게 준비하다 보면 그게 좋은 공연으로 이어질 때도 많더라고요. 서로 재촉하거나 고칠 것들이 많이 없어서 다행이에요.




오늘의 할 일을 책상에 펼쳐놓고 BGM을 고른다. 오늘은, 역시 재즈 플레이리스트지. 스피커에선 드럼과 베이스의 비트 위에 피아노와 트럼펫의 소리가 얹어진다. 소리가 마음을 통과하는 듯한 음악이 시작되고 나면 울적하고 무기력한 마음은 원래부터 없었던 것처럼 사라지고, 이제 무엇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된다. 



진행 / 넉넉
글 / 승현

2024년 6월 21일, 남원시 산내면 지리산문화공간 토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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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승현

지리산 귀촌인 인터뷰집 <어디에나 우리가> 저자. 세상의 본질에 대한 호기심을 동력으로 살아간다. 



이 인터뷰 프로젝트는 '임팩트 그라운드' 지원사업의 일환으로  재단법인 브라이언임팩트가 후원하고 사회적협동조합 지리산이음이 기획·운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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