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공익활동가주간]권위주의와 교차 차별을 없애는 리더가 되고 싶은 순천 YWCA 자원활동가 김지숙

변화를만드는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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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의 끄트머리 전라남도 순천시. 자연스레 순천만과 바다가 떠오른다. 그런데 순천에 이사 와 보니 순천에는 높은 산이 많다. 순천 시내에 여기저기 불쑥불쑥 솟아있는 높은 산들, 그 중에 가장 큰 난봉산 자락 ‘매산등’이라는 마을에 김지숙 씨가 살고 있다. 


‘매산등’은 순천 원도심의 언덕배기에 있는 꽤 넓은 마을이다. 어린아이들 공동묘지(애기장터)가 있던 이 지역에 사람이 들어와 살기 시작한 건 1910년대다. 미국 남장로회 선교사들이 주거구역과 병원 구역, 학교 구역, 예배당을 따로따로 구성해 작은 계획 도시를 만든 것이다. 생긴 건 미국 사람인데 전라도 사투리를 너무나 잘 해서 유명한 인요한(올 해 국회의원이 됨) 씨가 바로 이 동네 토박이 ‘매산등 사람’이다. 매산등은 전국에서 유일하게 전기와 수도 시설까지 갖춰놓고 시작한 ‘완벽한 선교부’였고 중요한 선교 거점이었다. 그리고 이곳에서 순천의 근대 교육과 근대 의료(우리나라 최초 119 구급차가 전시돼 있음)가 시작되었다.



<사진 1 - 매산등 성지순례 길에 있는 안력산 병원 격리 병동>


“내가 이 동네 인싸에요!”


김지숙 씨를 처음 만난 건 지난 4월 ‘순천 원도심 문화유산 해설사 양성과정’(순천시 주최)에서였다. 현장 답사하는 날 선교사 주거지를 지날 때 하얀 셔츠에 노란색 긴 스카프(나중에 알고 보니 세월호 10주기 합창단 복장이었다)를 걸친 여인이 신이 나서 말히고 있길래 고개를 돌려 쳐다보았다. 향교에서 만났을 때 같은 광산 김씨라고 반가워했던 여인이다.


“제가 기독교 역사 박물관 저 위쪽에 살거든요.”하면서 우거진 숲 옆으로 난 길을 가리켰다. 저렇게 높은 곳에 집이 있나 싶을 정도였다. 그날 우린 그 유명한 웃장에서 ‘웃장 국밥’에 쏘주 한 병을 나눠 마시며 친구가 됐다. 알고 보니 이 친구, 순천 YWCA 거물급 활동가였다.    


10년 전 시댁 옆에 집을 지어 이사 왔다는 김지숙 씨에게 ‘묵상의 숲’이라는 입간판이 서있는 난봉산 등산로를 먼저 걷자고 제안했다. 그랬더니 우산 하나를 챙겨 나온다. 맷돼지도 있지만 거미줄 때문에라도 우산은 필수라고. 봄에는 군락을 이루는 히어리와 얼레지를 비롯해 온갖 야생화가 말도 못하게 피어난다며 우산을 휘휘 저으며 앞장 서는 김지숙 씨를 따라 숲으로 들어가니 이건 동네 야산이 아니다. 지리산 깊은 산중처럼 아름드리 나무들이 빼곡하게 서 있고 계곡에는 맑은 물도 제법 흘렀다. 팔손이와 야생 차나무도 여기저기 많이 보였다. 


<사진2 - 난봉산 등산로를 걸어 선교사들의 상수도 시설 쪽으로 안내하고 있는 김지숙 씨>



계곡에는 작은 둑을 쌓고 둥근 우물을 깊이 파서 물을 모아 대량으로 마을에 공급할 수 있도록 만든 상수도 시설도 있었다. 우물에는 지금도 맑은 물이 가득 차 있지만 그 물을 이용했던 선교사들은 이제 아무도 없고 그들의 집은 텅 비어 있다. 그러나 그들이 뿌려놓은 씨앗은 순천을 전국에서 알아주는 교육 도시로 만들었고 선진 생태 도시로 만들었다.

 

“아침마다 강아지 데리고 여기를 산책해요. 오늘도 새로운 하루를 주셔서 감사하다는 기도, 저를 당신의 도구로 써주세요 하는 기도를 하죠.”


삶이 곧 기도라는 김지숙 씨는 기도실이나 방안에서가 아니라 산 속을 걸으면서 ‘주님’을 만나고 있었다. 

“살구야, 대추야, 보름아, 단감아, 엄마 왔다.” 


선교사 마을 담장이 보이는 곳에 왔을 때 김지숙 씨가 나무 아래 빈터를 바라보며 인사했다. 강아지를 묻었나?

“달구들을 묻었죠. 집에서 키우던 닭들이 죽으면 한 마리 한 마리 묻어주는 거에요. 달걀만 감사히 얻어 먹고 닭은 먹지 않아요. 함께 사는 가족이니까요.”


사람들 발길이 안 닿는 곳, 아침 햇살이 가장 아름답다는 이곳에 반려 동물 ‘닭’들을 묻어 주고 있었다. 봄에 맨발로 이 길을 걸으면 땅에서 올라오는 생명체들의 움직임이 느껴져 간질간질하다는 김지숙 씨는 YWCA의 목적 중 하나 ‘창조질서의 보전’을 이렇게 실천하고 있었다.


YWCA는 나의 운명, 40년 전에 받은 스누피 초대장


난봉산 산책을 마치고 김지숙 씨가 갓 구운 우리밀 빵, 긴 콩 방울 토마토 볶음, 내가 좋아하는 살구와 자두를 비롯한 과일 그리고 커피가 아닌 ‘녹차’로 상을 차렸다. 상차림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차 문화 박사과정까지 수료한 인재가 차려준 다과상이었다.


“시어머니가 선교사 집에서 요리사로 일하셨어요. 스무살 무렵이던 1950년대 중반부터 선교사 집에서 음식을 만드셨는데 배움은 짧아도 영특하셔서 목사님들과 사모님들이 아주 좋아하셨대요. 특히 미국 전국 요리대회에서 2등을 하실 정도로 요리를 잘 하셨던 배 목사 사모님에게 요리를 배우셔서 서양 요리를 아주 잘 하셨죠. 저희 집은 명절날 나물, 전 이런 한국 음식 안 하고 통닭 튀기고 스파게티, 피자, 스프, 시나몬롤 같은 걸 만들어요. 결혼해서 처음 봤을 때는 너무 신기했는데 이제는 저도 시나몬롤을 아주 잘 굽게 되었죠.” 


불시에 찾아오는 거지들을 위해서도 늘 밥을 넉넉히 남겨놓았던 시어머니. 그 시어머니와 딸이 바로 순천 YWCA 회원이자 활동가였고 남편은 YWCA 어린이집 1회 졸업생이다. 그런 집안에 김지숙 씨가 시집을 간 것이다. 그러나 김지숙 씨와 YWCA의 보이지 않는 인연은 시댁만이 아니었다.  



<사진3- 40년 전 목포 Y틴 친구가 준 스누피 초대장>


1986년도 목포여고를 다니던 김지숙 씨는 어느날 친구에게 스누피 모양의 초대장을 받았다. 목포 YWCA 청소년 단체인 ‘Y틴’이 하는 일일찻집 초대장이었다. 40년 전 그 초대장을 아직도 가지고 있다며 방에 가서 작은 스누피 모양 종이를 가지고 나오길래 조심스럽게 펼쳐보니 한쪽에는 ‘Y틴 찻집 목적 - 환경보존 사업 위한 기금 마련’이라고 박혀 있고 다른 한쪽에는 ‘85년에는 찻집 수익금을 소흑산도 분교에 “풍금”을 전단하였다’고 써있다. 40년 전 청소년들이 환경보존과 섬마을 아이들을 위해 일일찻집을 하다니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그러나 김지숙 씨는 그날 이후 YWCA를 까맣게 잊고 살았다. 그런데 지금은 순천YWCA 이사 겸 부회장 특히 환경살림위원회를 꾸리고 있으니 스누피는 이런 미래를 알고 있었을까?


순천 YWCA는 한국전쟁 이후 전쟁 고아들을 돌보는 일부터 시작해 정말 많은 일을 해왔고 조직도 키워 왔다. 창립 80주년을 앞두고 있는 지금은 순천 남초등학교 앞 5층짜리 높은 건물에 ‘여성인력개발센터’라는 부속기관까지 운영하고 있는 순천시 대표 여성단체다.


“진정한 성평등 사회로 나아가기위해 여성의 경제적 자립은 물론 그들이 어디서든 자기 삶을 잘 꾸려나가고 자신감 있게 살 수 있도록 도와주고 훈련시키는 곳이죠. 매해 전라남도와 지자체가 주최하고 여러 기관들이 협력하여 대규모 직업 박람회도 개최하고 있는데 꽤 성과를 내고 있어서 YWCA의 중요한 활동으로 자부심을 느끼고 있어요.”



<사진 4 - 용산에서 후쿠시마 핵오염수 반대 시위를 하고 있는 활동가들>


환경살림위원회를 3년째 맡고 있는 김지숙 씨는 어떻게 하면 회원들이 환경문제에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실천할 수 있을까 늘 고민하며 다양한 활동을 만들어 나가고 있다. 수세미 열매를 회원들과 직접 삶고 말려 천연 수세미를 만들어 나눠주는가 하면 관광객이 많이 찾는 순천만과 와온 해변에 가서 해양 쓰레기를 줍기도 했다. 뿐만 아니다. 2023년 일본에서 후쿠시마 핵 오염수를 바다에 쏟아 붓겠다고 발표하자 용산까지 올라가서 전국에서 모인 사람들과 함께 깃발을 흔들며 외쳤다. “무책임한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를 반대한다!”


순천만을 지켜 전국 대표 생태 관광지로 만들고, 저수지를 지켜 호수 공원으로 만들고, 모래 판매 사업으로 황폐해져 가는 동천 유역을 국가정원으로 만든 순천시. 얼마 전 2023년 관광객 수가 에버랜드, 경복궁을 앞질러 전국 1위였다는 보도가 있었다. 이런 일을 해 낸 건 행정 기관, 정치권이 아니었다. 바로 YWCA같은 시민단체들이었고 김지숙 씨 같은 시민들이었다. 김지숙 씨는 여기에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순천만의 갯벌과 자연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생명을 존중했으면 하는 마음에서 ‘순천 YWCA 환경 사랑 캠페인 송’도 만들었다.


순천만 드넓은 갯벌 위에/ 밀려오는 물결 솨솨솨솨/ 짱뚱어 달음박질 두루미/ 날아올라 두루루루/ 갈대밭 스치는 바람에/ 노래를 들어요 랄라랄라/ 환경 사랑 생명 존중/ 세상을 살리는 순천 Y (김지숙 작사, 남주희 작곡)


몽골의 사막화는 우리 탓이오! 내 탓이오!


김지숙 씨는 환경살림위원회 활동에 조금 더 욕심을 부려 며칠 전에 YWCA 활동가 13명과 몽골의 사막에 다녀온 것이다. 편안한 대한민국에 앉아서는 기후 위기를 실감할 수 없으니 현장에 가서 직접 보고 확실하게 느끼자는 것이다. 이번 여행의 핵심 활동은 사막화를 막기 위해 조성되고 있는 ‘은총의 숲’에 나무를 심고 오는 것. 그러나, 

“우리가 갔을 때 은총의 숲이 있는 지역에 감염병이 돌아 숲 근처에도 갈 수 없었어요. 나무를 심지 못해 안타까웠지만 정말 많은 것을 느끼고 공부를 많이 하고 왔지요. 특히 사막을 3시간 동안 트래킹하면서 기후위기를 뼈저리게 느꼈어요.”



<사진5 - 사막화가 극심하게 진행되고 있는 몽골 사막을 걷는 활동가들>


70대 활동가 두 명을 포함해 모두 50대 이상의 여성들인데 사막을 3시간 동안 걸었다니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중무장하고 걸였죠. 아무도 포기하지 않았어요. 많이 덥고 햇볕이 따가웠지만 한국처럼 습도가 높지 않아서 견딜 만했어요. 나무 그늘에 가면 시원했는데 사막화가 너무나 빨리 진행되고 있어서 나무가 정말 별로 없었어요.”


그곳에는 사막화 지표 식물인 하르간이 급속도로 번지고 있었다. 하르간은 손으로 뽑아내기 힘들 정도로 깊숙이 뿌리를 내리는 식물인데 아무 짝에도 쓸모없고 오로지 낙타만이 잎을 뜯어 먹을 뿐이란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잘 사는 나라들 때문에 아무 죄 없는 몽골같은 가난한 나라들이 피해를 보는 거에요. 강이 흘렀던 자리도 그냥 다 모래가 되어 있었어요. 모래도 우리나라 모래처럼 건축 재료를 쓸 수 있는 알갱이 모래가 아니라 흙처럼 날리는 모래여서 아무 쓸모가 없다고 해요.”


내가 먹는 고기가 내가 타는 자동차가 내가 누리는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이들의 땅을 이렇게 못쓰게 만들고 있었다는 것을 14명의 순천 YWCA 활동가들은 가슴 깊이 느끼고 왔다. 



<사진 6 - 세월호 참사 10주기 순천시민 합창단에 함께 한 YWCA>


순천 YWCA에는 역사가 깊은 합창단이 있다. 그 합창단이 올 해 순천 시민들과 함께 크고 의미있는 무대를 만들었다. 세월호 참사 10주기를 맞아 ‘416명 시민합창 연주회’를 개최한 것이다. 순천 YWCA(지휘 김현복)와 YMCA 합창단(지휘 김애정)과 6.15통일 합창단(박종렬)이 주도하고 여러 시민들, 학생들이 참여해 416명을 구성, 노란 스카프를 길게 늘이고 함께 노래를 불렀다. 그날 저녁 시민들이 지키고 만들어낸 호수공원 잔디광장에는 천여 명의 시민들이 모여 시민 합창단의 노래를 들으며 10년 전에 어이없이 바다 속으로 사라진 학생들과 이웃들을 소환했다. 기억은 폭력에 맞설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그리고 얼마 전에는 순천 YWCA 건물 앞에서 ‘1987년 6월 민주항쟁 기념 순천 표지석 제막식’도 있었다. 6월 항쟁 때 순천에서도 대규모 시위가 있었다. 당시 YWCA 회장의 남편이 순천 중앙교회 청년회 회장이었는데 대학생들보다 먼저 유인물을 만들어 배포했고 YWCA건물에 항쟁 본부를 차렸으니 항쟁의 중심지였던 것이다. 그때 YWCA 여성 회원들은 밖에 나가서 돌을 던지며 싸우지는 못해도 지하실에 모여서 1년 동안 끊이지 않고 릴레이 기도회를 했다.


권위주의와 교차 차별을 없애는 YWCA 리더 되고파


김지숙 씨는 요즘 고민이 많다. 차차기 회장으로서 단련을 하고 있는 부회장의 위치에 있다보니 고민의 크기는 더욱 커지고 깊어만 간다.  

“YWCA는 기독교 여성, 특히 청년성을 가진 단체에요. 그런데 젊은 여성들의 참여가 매우 저조해지고 있어요. 어떻게 하면 신입 회원을 늘릴 수 있을지 고민입니다. 또 순천 Y하면  떠오르는, 지역민들에게 충분히 녹아들 수 있는 활동을 만들고 싶어요.”


김지숙 씨가 만들어 나가고 싶은 YWCA의 모습에는 이런 것도 있다. 

“세대 간이든 배움의 차이든 빈부 격차든 서로 상처를 주고 받는 ‘교차 차별’이 우리 안에서도 존재해요. 회장이든 이사든 사무총장이든 직책을 맡은 사람들이 먼저 권위의식을 벗어던지고 차별에 대한 감수성을 높이는 Y를 만들고 싶어요.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적용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우리나라의 진보와 민주화에 앞장 섰던 대표 여성 단체 YWCA, 그러나 역사가 오래 된 만큼 어느새 ‘보수’ 이미지가 씌워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김지숙 씨를 만나 순천 YWCA의 활동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여전히 초심을 잃지 않으려는 김지숙 부회장과 활동가들을 보면서 나는 흔쾌히 회원 가입서를 썼다.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치심을 자기 삶에 실천함으로써 정의 평화 창조질서의 보전이 이루어지는 세상을 건설’하고자 하는 순천 YWCA활동가들을 응원한다.


#순천 #전남 #김양오 #김지숙 #YWCA


글쓴이 : 김양오
전라북도 남원에서 15년 살면서 지리산권 작은변화 활동가와 기록활동가를 했고 역사동화 네 권을 썼다. 올 1월에 전라남도 순천에 와서 새로운 역사를 배우고 사람을 사귀고 있다.

2024공익활동가주간을 맞아 다양한 지역과 분야에서 자기만의 방식으로 변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활동가들을 만나 이들의 일과 삶에 대한 이야기를 기록하는 활동가인터뷰 공모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인터뷰 공모에는 여러 지역의 활동가들이 참여해주셨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공익활동가사회적협동조합 동행>, <한국시민사회지원조직네트워크>, <지리산이음>이 공동주최하고, <아름다운재단>이 지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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